승가의 수행과 생활 규칙을 정한 것을 율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계장이라는 말은은 없지만
율장은 있습니다.
승가의 규칙을 정한 율은 수행승의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스스로 또는 붓다에 의해서
제정 되었지만 많은 율의 조목들이(바라제목차) 재가자(불교도뿐만 아니라 비불교도까지 포함)
들의 비난이나 요청에 의해서 만들어 졌습니다.
승가는 어떠한 경우에도 재가자들의 후원이나 보시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고 더욱이
사회적으로 승가라는 존재 자체가 비난의 대상이 된다면 문제가 보통 심각해 지는게 아니지요.
그래서 붓다께서는 재가자들이 조금이라도 수행승을 비난 하거나(많은 부분들이 요즈음 보면
솔직히 불필요 한 조항들입니다) 하면 바로 율로 제정을 했습니다. 승가를 사회의 비난으로부터
보호 함으로써 존재 하게끔 해야 했기 때문 입니다.
계는 계율이라고도 하는데 계와 율은 실제로 다른 의미로 쓰입니다.
먼저 율은 출가한 비구 비구니 스님들이 지켜야 하는 승단의 규율을 말합니다. 승단이라고 하는
사회가 존립하기 위해서 지켜야만 하는 규율인 것이죠. 따라서 타율적인 규범을 말합니다.
이러한 율을 깨면 승단에 의해서 제재를 받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율은 살생, 도둑질, 거짓말(큰 거짓말), 음행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기면 승단에서 쫓겨납니다.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의 남방불교에서는 자자와 포살(보름에 한 번 하는) 법회때 율의 조항을
외우고, 그동안 율을 어긴 것이 있으면 스스로 참회하고 거기에 대한 적당한 제재를 받습니다.
스스로의 승가를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는 자정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잘못의 경중에 따라서
승단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결정권도 박탈 당하지요. 이처럼 율에 의해서
엄격하게 출가집단의 질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율 속에 계(戒)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계는 무엇일까요? 계란 자율적으로 지켜야 하는 도덕적 윤리적 규범을 말합니다.
부처님의 재가제자들에게는 율은 없고 계만 있습니다. 반면에 스님들은 율 속에 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인 계는 오계 라고 되어 있어 항상 지켜야 하는 규범입니다. 계는 마음으로 지킵니다.
설령 내가 길을 지나가다 모르고 개미를 죽일 수 있잖아요. 이것은 고의적으로 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에서 계를 어긴 것이 아닙니다.
동기와 의지에 따라서 계를 지키고 계를 파하기도 하는 것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로 지켜야
하는 계입니다. 남이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로 지키려고 하는 것이 계입니다.
그렇다면 계를 깼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순간 참회하고 다시 계를 지키려고 하면 됩니다.
부처님께 절하면서 삼보에 귀의하고 부처님께 자기 마음으로 맹세를 하면서 '다섯 가지를 다시
지키겠습니다.' 하면 되는 것이죠.
이 오계를 일상생활 속에서 철저히 지키고 사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다섯 가지 계는 깨뜨린다고 해서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것이 계의 정신입니다. 다시
지켜야겠다고 마음먹고, 또 지키려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계를 자주 받고, 부처님께 늘 지키겠다고 스스로 마음먹는 것이 계의 정신입니다. 계는 스스로
정신을 흐트러뜨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울타리이기 때문에 그 울타리를 내 잘못으로 망가뜨렸다고
해서 다 쓰러뜨리면 도둑이나 외부사람들이 쉽게 들어오겠지요. 한쪽 귀퉁이 울타리가 무너졌으면
다시 고쳐서 이어 놓으면 됩니다. 이것은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계를 지키겠다고 다짐하고 설령 깨뜨렸다고 해도 참회하고 다시 마음을 고쳐먹는 것이
계의 정신 입니다.
계를 깬 것은 자기한테 나쁜 업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그 나쁜 업(惡業)의 과보(果報)는 자기가
받습니다. 그런데 그 과보를 받을 때 우리는 결과로서 받으면서 또다시 악업을 짓습니다. 그러면
악업, 나쁜 행위에 대한 결과는 계속 이어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나쁜 행위에 대한 결과를
받으면서 마음으로 이젠 나쁜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 악업은 단절됩니다.
업은 마음의 의지작용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업은 마음으로 짓고, 말로 하고, 행동으로
합니다. 오계를 열 가지로 펼치면 십선계(十善戒) 또는 십선업(十善業)이 되는데, 그 열 가지 중에서
말(語)로 짓는 업이 네 가지나 됩니다. 절에서 기도할 때 항상 독송하는 『천수경』에
십악참회(十惡懺悔)가 나오는데, 그 십악참회를 짓지 않는 것이 십선업입니다.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의도적인 행위를 좋게 만드는 것, 이것이 십선업이고, 이것을 나쁘게
짓는 것이 십악업이 되는 것입니다.
오계를 지키면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는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천상에서 태어나고 싶으면 십선업을
닦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는 부처님이 재가 수행자들이 닦아야 할 덕목으로 강조한 가르침입니다.
실론섬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7652463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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