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인문과학 1

반주삼매(般舟三昧)와 대승불교의 기원

수선님 2019. 7. 14. 12:13

반주삼매(般舟三昧)와 대승불교의 기원

한재희/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 박사과정


1) Ⅰ 서론.

Ⅱ 반주삼매의 원류.

Ⅲ 반주삼매의 특징.

Ⅳ 반주삼매와 대승불교.

Ⅴ 결론.


요약문

반주삼매는 초기 대승불교의 특징적인 요소들이 잘 나타나 있는 불수념의 한 종류다. 반주삼매의 원류은숫따니빠따,앙굿따라 니까야,증일아함경과 같은 초기경전들에서 발견되는데, 이것이반주삼매에 이르러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반주삼매경에서 설

명하는 반주삼매에서는, 출가주의에 대한 강조와 관상의 대상으로 명시되는 아미타불에 관한 모호한 표현, 그리고 대승화된 공사상이 나타난다. 이와 같은 근거들을 통해반주삼매경의 찬술이 기존 불교전통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특히, 반주삼매의 과정에서 수행자는 현전한 가상의 붓다를 친견하고, 그것에 대한 실체화를 하는데, 이 과정이 새로운 경전의 생산을 가능케 하는 전제가 되었다고 보았다. 이와 같이 등장한 새로운 경전이 법사를 중심으로 진행된 ‘경전 확산 운동(textual movement)’으로 발전하여 훗날 대승불교의 기원으로 이어졌다고 추론해 보았다.


Ⅰ. 서론

19세기 말, 리즈 데이비스(T. W. Rhys Davids)가 창립한 빨리경전협회(Pali Text Society)에 의해 빨리어 원전에 대한 체계적인 편집과 번역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초기불교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 결과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교학에서 나타나는 차이점들이 확인되었고, 이로 인해 학계에서는 새로운 다르마를 설하는 대승불교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후 많은 학자들이 그와 같은 대승불교의 기원을 규명하기 위한연구를 시도했으나, 고대 인도인들의 연대기적 사고방식의 부재와 필사본 보존에 불리한 인도의 기후, 초기 대승문헌들 간에 나타나는 교학 상의 불일치 등의 문제는 이 문제에 대한 접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이와 같은 조건 하에서, 20세기에 진행된 대승불교의 기원에 관한 연구의 중심에는 ‘대중부(Mahāsāṇghika) 기원설’과 ‘재가자 기원설’이 있었다. 마에다(前田), 케른(H. Kern), 리스 데이비즈 등에

의해 주장된 ‘대중부 기원설’은, 대중부와 대승불교의 교리에서 나타나는 유사성을 근거로 대승불교가 대중부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했음을 주장했다. 20세기 초 프르질루스키(J. Przyluski)에 의해

처음 주장된 ‘재가자 기원설’은 대승불교를 재가자 중심의 반교권적(anticlerical) 종교운동으로 보았다. 특히 1968년 히라카와(平川)는「初期大乘佛敎の硏究」에서 대승불교가 불탑을 중심으로 활동한 재가자 공동체에 의해서 기원했다는 ‘불탑기원설’을 제시했는데, 이 학설은 약 20년 가까이 여러 학자들의 동의를 받으며 대승불교의 기원에 대한 가장 유력한 학설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이후, 쇼펜(G. Schopen)과 해리슨(P. Harrison)등의 연구 성과들에 의해 히라카와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었고, 현재까지 대승불교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가설들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이와 관련하여 주요한 성과들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대승불교가 다양한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한 경권신앙(book cults)에 의해 흥기했다는 쇼펜의 주장1), 대승경전의 문자화가 대승불교 기원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곰브리치(R.Gombrich)의 주장2), 산야(山野)에서 고행하던 출가자 공동체에 의해서 대승이 기원했다는 레이(R. Ray)와 나티얼(J. Nattier), 부셰(D. Boucher)의 주장 등이 있다.

1) 쇼펜은 금강경의 한 구절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초기 대승경전들이 불탑신앙(stūpa cults)에

호의적이었다는 히라카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오히려 법신(dharmakāya)개념을

전제로 한 경권 신앙(sūtracults)이 더 중요시 되었음을 주장했다. Schopen(2005[1975])

pp. 171-172.)

2) 대승불교와 관련하여 곰브리치의 물음은, ‘왜 대승 이외의 다른 불교는 존속하지 못했는가?’

이다. 즉, 암송을 통한 구전 전승에 의존해 왔던 기존의 불교 전통에 새로운 주장이 편입되

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경우, ‘경전의 문자화’라는 새로운 전승 방식을 택

함으로서 존속이 가능했다 Gombrich(2005[1990]) p. 81; 이에 대한 반론으로, 초기 대승

경전 역시 구전 전승되었다는 Vetter(1994)가 있음.)


특히 해리슨은 다음과 같은 일련의 연구들을 통해 대승불교 기원에 대한 가설을 제시했다.


① “Buhhānusmṛti in the Pratyutpannabuddhasaṃmukhāvasthitas mādhi-sūtra”, Journal of

Indian Philosophy 6, 1978. 2

② “Who Gets to Ride in the Great Vehicle? Self-image and identity among the followers of

early Mahāyāna”, Journal of the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Buddhist Studies, 10(1), 1987.

③ “Searching for the Origins of the Mahāyāna: What Are We Looking For?”, The Eastern Buddhist, 28(1), 1995.


①에서는 1세기 전후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초기 대승경전인『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 Pratyutpannabuddhasammukhāvasthitasamādhi-sūtra』의 연구를 통해, 명상과 대승불교 기원의 연관성을 처음으로 주장했다. ②에서는 168년에서 189년, 지루가참(支婁迦讖, Lokakṣema)에 의한 한역된 초기 대승경전들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대승불교의 정체성을 파악하고자 했다. 이 연구

를 알 수 있는 초기 대승불교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초기 대승불교는 재가자와 여성에게 개방적이지 않았다. 둘째, 승원의 엘리트주의에 반대하고, 개인의 열반보다 높은 가치

를 추구했다. 셋째, 초기 대승을 주도했던 보살(菩薩, bodhisattva)은 출가자 신분이었다. 넷째, 단일한 학파로서의 정체성이 없었다. 다섯 째, 아라한의 지위를 인정했다, 즉 초기불교 전통을 부정하지 않았다. 여섯 째, 관음, 문수와 같은 초월적인 보살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지 않았다. ①과 ②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연구에서 해리슨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대승불교 초기의 발전은 산야(山野)에서 거주하는 승려들에게서 기원했다. 많은 대승경전들은 도시, 재가자, 헌신적 종교 운동과는 거리가 먼, 불교 본연의 영감(inspiration)을 회복하기 위한 철저한 고행주의적 시도였다는 증거를 제공한다.


이와 같은 연구들을 바탕으로, 본 논문에서는『반주삼매경』에 나타나는 반주삼매(般舟三昧,

Pratyutpannabuddhasammukhāvasthita-samādhi)에 대한 고찰을 통해 대승불교 기원의 일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반주삼매는 ‘현재의 붓다가 현전(現前)하는 삼매’라는 뜻으로, 마음속으로 붓다를 지속적으로 관상하는 명상법인 불수념(佛隨念, buddhānusmṛti)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불수념은 초기경전에서부터 대승경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불교 문헌들에서 광범위하게 언급되고 있는데, 각각의 문헌에서 언급되는 불수념이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는 것이 확인된다. 따라서 초기 대승경전으로 분류되는『반주삼매경』에 나타나는 불수념, 즉 반주삼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초기 대승불교의 특징을 파악하는 것이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반주삼매경』에 대한 연구는 이미 해리슨에 의해 진행된 바 있다. 그리고 본 논문 역시 해리슨의 연구에 기반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반주삼매경』에 대한 해리슨의 연구가 이루어진지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고 그 동안 대승불교의 기원에 관한 새로운 연구들이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대승불교의 기원에 대한 문제는 많은 학자들이 천착하고 있는 주제인 만큼, 의미 있는 가설과 새로운 정보들이 계속해서 누적되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이것들을 반영한『반주삼매경』의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현존하는『반주삼매경』의 판본으로는 네 가지 한역본과 한 가지 티벳본,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카다릭(Kadalik) 지역에서 발견된 산스끄릿본 일부가 다. 본 논문에서는 지루가참(支婁迦讖, Lok

akṣema)의 한역본(T. 418)을 중심으로 하되, 의미가 명확하지 않거나 더욱 자세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티벳본을 비롯한 한문 이역본들과 산스끄릿본을 참고할 것이다. 그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T. 416,『대방등대집경념현호분(大方等大集經賢護分)』, 5卷, 사나굴다 역, 595 C.E.

② T. 417,『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 1卷, 지루가참 역, 179 C.E.

③ T. 418,『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 3卷, 지루가참 역, 179 C.E.

④ T. 419,『발파보살경(拔陂菩薩經)』, 1卷, 역자미상, 약 220 C.E.

⑤ Ḥphags pa da ltar gyi saṅs rgyas mṅon sum du bzhugs paḥitiṅ ṅe ḥdzin ces bya ba theg

pa chen poḥi mdo, 26 Chapter, translated by Śākyaprabha and Ratnarakṣita, 약 800 C.E.

⑥ “Bhadrapāla Sūtra”, A.F. R. Hoernle, ed. Manuscript Remains of Buddhist Literature(Oxford, 1916), pp. 88-93.


Ⅱ. 반주삼매의 원류

1. <빠라야나왁가>의 불수념

반주삼매란 현재의 붓다가 눈앞에 현전하는 삼매(Pratyutpannabuddhasammukhāvasthita-samādhi)를 말한다. 이것은 마음속으로 붓다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관상(觀想, visualizing)한다는 점

에서, 불수념(buddhānusmṛti)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명상 방법은 광범위한 불교 문헌들에서 확인된다. 윌리엄스(P. Williams)의 주장에 의하면, 불교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지는 『숫따니빠따(Suttanipāta)』의 <빠라야나왁가(Pārāyaṇavagga)>에서는 불수념의 초기 형태가 발견된다.10)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브라만 바와리(Bāvarī)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구하기 위해 그의 제자 16명을 붓다에게 보낸다. 그들은 붓다를 만나 16가지 질문을 하고, 붓다에게서 만족스러운 답을 듣는다. 이에 바와리의 제자들은 아라한이 되어 붓다의 곁에 머물기로 결심한다. 이 때, 삥기야(Piṇgiya)라는 나이든 제자 한 명만이 아라한이 되지 못한 채 바와리에게 붓다의 가르침을 전하러 돌아오게 된다. 붓다의 가르침을 전해들은 바와리는 삥기야에게 왜 그토록 훌륭한 스승인 붓다의 곁에 머물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한다. 그질문에 대해 삥기야는 다음과 같은 답을 한다.


브라만이여, 저는 한 순간도 매우 지혜롭고 현명한 고따마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저는 낮과 밤 동안 지속적인 노력으로 그분을 눈으로 [보는 것] 처럼 마음으로 봅니다. 밤에도 마음으로 그를 숭배하기 때문에, 나는 그분과 단 [한 순간도] 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3) Suttanipāta, [1140] Nāhaṃ tamhā vippavasāmi muhuttam api brāhmaṇa Gotamā bhūripaññāṇā,

Gotamābhūrimedhasā. [1142] Passāmi naṃ manasā cakkhunā va rattindivaṃ brāhmaṇa

appamatto, namassamāno vivasemi rattiṃ, ten eva maññāmi avippavāsaṃ.


이와 같은 삥기야의 대답에서, 명상에 대한 구체적인 용어나 방법이 언급되진 않는다. 하지만 ① 밤과 낮 동안의 지속적인 수행을 통해 ② 마음속에서 붓다를 친견하고 ③ 그것을 실제 붓다라고 인식하여 숭배하는 일련의 과정은, 이후 반주삼매와 같이 정형화 된 불수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붓다를 친견할 수 없는 삥기야가 처한 상황은, 역사상의 붓다가 열반에 들었기 때문에 스승을 친견할 수 없었던 후대 불교도들의 상황과 유사하다.


2. 『앙굿따라니까야』와 『증일아함경』의 불수념

<빠라야나왁가>보다 후대에 형성된 『앙굿따라니까야(Aṇguttara nikāya)』와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보다 구체화된 불수념이 나타난다. 두 문헌에서 모두 불수념(P: buddhāssati, C: 念佛)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독자적인 수행도로 발전하지 않고 염(smṛti, 念)의 일부로 나타나고 있다. 다음은 『앙굿따라니까야』와 『증일아함경』에서 ‘10가지 대상에 대한 염’을 설명한 부분이다.


비구들이여, 계발하고 발전시키면, 깨어있음으로, 평정으로, [감각과 의식의] 정지로, 내적인 고요함으로, 특별한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인도하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부처

님, 부처님의 가르침, 승가, 계, 보시, 하늘, 호흡, 죽음, 신체, 내적인 고요함에 대한 염(smṛti)이다.

4) Ekadhammo bhikkhavo bhāvito bahulīkato ekanta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ṃvattati. Katamo ekadhammo? Buddhāssati··· pe ···

Dhammānussati ··· pe ··· Saṇghānussati ··· pe ···Sīlānussati ··· pe ··· Cāgānussati ··· pe ···

Devatānusatti ··· pe ···Ānāpānasati ··· pe ··· Maraṇasati ··· pe ··· Kāyagatāsati ··· pe ···

Upasamānussati. Anguttara Nikāya, vol. 1, p. 30.


그대는 마땅히 염을 행하라. 즉, 부처님을 염하고, 법을 염하며, 비구승을 염하고, 계를 염하라. 보시를 염하고, 하늘을 염하며, 적정(寂靜)을 염하고, 호흡을 염하라. 육신을 염하고, 죽음을 염하라.

5) 汝當念修行. 念佛, 念法, 念比丘僧, 念戒, 念施, 念天, 念休息, 念安般, 念身, 念死.)


여기에서는 염의 첫 번째 대상으로 불수념이 제시된다. 비록 그 구체적인 설명은 나타나지 않지만, 두 문헌에서 거의 동일한 형태의 불수념이 언급되고 있다. 주목할 만 한 점은, 문헌에서 나타나는 비라선(毘羅先) 장자의 일화다. 그는 붓다로부터 7일 뒤에 죽어서 체곡지옥(涕哭地獄)에 떨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데, 마지막 날 위와 같은 ‘10가지 대상에 대한 염’의 공덕으로 욕계 육천의

첫 번째인 사천왕천(四天王天)에 태어나게 된다. 이와 같이 불수념과 관련된 7일 이라는 시간적 설정은, 후에『반주삼매경』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만약 일심으로 염하기를 하루 낮과 밤, 혹은 칠일 낮과 밤으로 한다면, 깨어있을 때 아미타불을 친견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꿈에서라도 친견할 것이다.

6) 一心念若一晝夜, 若七日七夜, 過七日以後, 阿彌陀佛, 於覺不見, 於夢中見之.) 반주삼매경

(TD 13) 905a16-17.


다음은 『앙굿따라니까야』와 『증일아함경』 제2권 <광연품(廣演品)>의 ‘6가지 대상에 대한 염’ 가운데 염불에 대한 설명이 나타나는 부분이다. 앞에서 인용한 ‘10가지 대상에 대한 염’ 비해 보

다 상세한 설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마하나마여, 그대는 다음과 같이 여래를 염해야 한다. ‘실로 그 존귀한 분은, 존경 받을 만 한 분, 완전히 깨달은 분, 지혜와 실천을 갖춘분, [피안으로] 잘 가실 분, 세간을 잘 아시는 분, 위없는 분, 사람을잘 인도하는 분, 신과 인간의 스승, 깨달은 분 그리고 세존이시다.’라고.

7) Idha tvaṃ Mahānāma Tathāgataṃ anussareyyāsi ‘iti pi so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ṃ

buddho Bhagavā’ ti.) Anguttara Nikāya, vol. 5, pp. 329


만약 어떤 비구가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전면에 집중하여 염하며,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부처님을 염하면, 여래의 형상을 볼 수 있다. 이에 눈을 떼지 말고 여래의 공덕을 염하라. 여래의 신체는 금강과 같고, 십력(十力)을 구족했고 (……)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마땅히 항상 생각하라. 부처님을 염하는 것에서 떨어지지 않으면, 이런온갖 공덕을 얻을 것이다.

8) 若有比丘正身正意, 結跏趺坐, 繫念在前, 無有他想, 專精念佛 觀如來形. 未曾離目, 已不離目,

便念如來功德, 如來體者, 金剛所成 十力具足 ··· 諸比丘! 常當思惟, 不離佛念, 便當獲此諸善功德.

증일아함경


여기에서 고려해야 할 점은, 관불(觀佛)삼매의 초기 형태가 나타나는『증일아함경』과는 대조적으로, 『앙굿따라니까야(Aṇguttara nikāya)』에서는 관불삼매의 요소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

실이다. 이와 같은 차이가 나타난 원인은『증일아함경』의 한역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증일아함경』은 산스끄리뜨본「에꼿따라 아가마(Ekottara Āgama)」를 카슈미르 출신의 역경승 승가제바(僧伽提婆, Samghadeva)가 397-398년에 한역한 것인데, 그 과정에서 서북인도 지역이나 세린디아(Serindia)에서 구성된 교정본을 사용했다. 따라서 해당 지역에서 발전했던 대승불교 사상과 관불삼매 전통이『증일아함경』에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3. 초기불교 불수념의 특징

『숫따니빠따』,『앙굿따라 니까야』,『증일아함경』에 나타나는 불수념은 아직 불교 전통 내에서 독자적인 수행도로 자리 잡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공사상과 같은 특정 사상과도 연계되지 않았

다.18) 이와 같은 이유로, 초기불교 수행도를 연구한 학자들은 초기불교의 불수념이 대승불교의 그것에 비해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보았다. 테라와다의 명상수행 전통을 연구한 킹(W. Kin

g)에 의하면, 초기불교에서 불수념은 ‘명상하는 이의 마음을 수행에 유리하게 만들 수는 있으나, 보다 높은 의식으로 이끌 수 없고, 깊은 내면에 도달하게 할 수도, 외부 자극으로부터 해방을 가져올

수도 없는’ 수행이라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콘즈(E. Conze)의 경우, 그것을 수행의 장애를 없애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받아들였고, 훼터(T. Vetter)는 The ideas and meditative practices of earl

y Buddhism에서 다루지 않을 정도였다. 이와 같은 불수념에 대한 저평가는, 역사상의 붓다가 불수념을 하지 않았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붓다가 실제로 수행한 명상법이 무엇인지는 규명되지 않았으나, 최소한 자신에 대한 염인 불수념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향은 초기 대승불교 시대에 이르러 변하게 된다. 즉, 불수념 수행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반주삼매경』을 비롯한 여러 초기 대승경전들에서 나타나는 것

이다. 이러한 변화의 기저에는 붓다가 우리 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통함과, 스승의 현존에 대한 열망이 자리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수행자가 명상 속에서 친견하는 붓다를 실체화

하는 과정과 무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4장에서 보다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Ⅲ. 반주삼매의 특징

1. 반주삼매의 주체

『반주삼매경』에서는 재가자인 바드라빨라(Bhadrapāla)가 반주삼매의 주체로 등장하는 동시에, 재가의 삶을 출가의 삶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인식하는 출가주의적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모순을 통해서 초기 대승경전을 찬술했던 이들의 가치관과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제2장 <행품(行品)>에 나타나는반주삼매의 구체적인 수행방법은 다음과 같다.


어떻게 현재제불실재전립삼매(現在諸佛悉在前立三昧, pratyutpannabuddhasaṃmukhāvasthita-samādhi)를 얻을 수 있는가? 바드라빨라여, 이와 같다.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는 계를 철저히 지키고 홀로 한곳에 머물면서, 마음속으로 서방의 아미타불을 염하라. 마땅히 이와 같이 염해야 한다.‘이곳에서부터 천억만 불국토(buddha-kṣetra)를 지나면 수마제(sukhāvatī)라는 나라가 있다. 아미타불은 그곳의 보살들 가운데에서 경을 설하고 계시며, 모든 이들이 항상 아미타불을 념하고 있다.’

9) 何因致現在諸佛悉在前立三昧.如是跋陀和, 其有比丘比丘尼, 優婆塞優婆夷, 持戒完具, 獨一處止,

心念西方阿彌陀佛. 今現在隨所聞當念. 去是間千億萬佛剎, 其國名須摩提. 在眾菩薩中央說經,

一切常念阿彌陀佛.


이와 같이, 바드라빨라여, 만약 출가 혹은 재가보살이 서방의 아미타정토(sukhāvatī)에 대한 것을 들으면, 마땅히 아미타불을 염하고 계를 어기지 말아야 한다. 만약 일심으로 염하기를 하루 낮과 밤, 혹은 칠일 낮과 밤으로 한다면, 깨어있을 때 아미타불을 친견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꿈에서라도 친견할 것이다.

10) 如是跋陀和菩薩, 若沙門白衣, 所聞西方阿彌陀佛剎, 當念彼方佛不得缺戒. 一心念若一晝夜,

若七日七夜, 過七日以後, 阿彌陀佛, 於覺不見, 於夢中見之.


재가자가 경전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히라카와(平川)는 이 경전이 대승불교의 재가자 기원설과 관련 있음을 주장했지만, 그것과는 반대로, 윌리엄스(P. Williams)는 이 경전이 오히려 재가의 삶을 부정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왜냐하면 표면적으로 재가자가 경전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오히려 재가의 삶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전 곳곳에서 재가자가 반주삼매를 수행하고자 한다면, 출가자의 삶과 동등한 혹은 그 이상의 두타행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출가주의가 강조되고 있다.

11) ① 홀로 떨어진 곳에 머물 것 ② 이성과의 성관계를 금할 것 ③세간사를 잊고 수행에만

전념할 것.반주삼매경(TD 13) 910b15-17.)

不得與女人交通, 不得自為, 亦不得教他人為. 不得有恩愛於妻子, 不得念男女,不得念財產.

常念欲棄妻子, 行作沙門; 반주삼매경 (TD 13) 906a16-21.菩薩復有四事, 疾得是三昧.

何等為四. 一者不得有世間思想, 如指相彈頃三月.二者不得臥出三月, 如指相彈頃. 三者經行

不得休息, 不得坐三月,除其飯食左右. 四者為人說經, 不得望人衣服飲食, 是為四


이와 같은 경향은, 비슷한 시기에 한역된 다른 초기 대승경전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2세기 후반 지요(支曜)에 의해 한역된『성구광명정의경(成具光明定意經)』과 안현(安玄)에 의해 180년

에 한역된『법경경(法鏡經)』, 지루가참에 의해 한역된『유일마니보경(遺日摩尼寶經)』과『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에서도 재가자로서의 삶을 부정하고, 상대적으로 출가의 삶을 우위에 두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쇼펜(G. Schopen) 1세기 경 북서인도 지역에서 성립되었다고 추측되는『미륵대사자후경』에서 역시 재가자의 열등한 위치 및 보수적인 승단의 관점을 옹호하는 인식이 나

타난다고 보았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대승불교의 출가자 기원을 짐작할 수 있게 만드는 근거라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레이(R. Ray), 나티얼(J. Nattier)은 당시의 승가가, 승원 혹은 산야에서 거주하는 출가자 공동체로 양분되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즉, 주류불교(Mainstream Buddhism)시대에 이르러 불교는 점차적으로 승원 중심의 사변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는데, 이에 반대한 소수의 승려들이 유행과 걸식을 기반으로 한 불교 본연의 생활 방식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 승원이 아닌 산야에서의 고행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반주삼매경』과 상기한 초기 대승경전들은 이들의 가치관과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재가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함으로써 승원 중심의 승단과의 차별성을 확보하고, 동시에 출가주의를 고수함으로

써 불교 본연의 보수적인 가치를 옹호한 것으로 보인다.


2. 관상의 대상

월지국의 역경승 지루가참에 의해 한역된 『반주삼매경』은 아미타불이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이다. 이 문헌에서는 수행자가 반주삼매를 하는 동안 ‘서방의 아미타불(西方阿彌陀佛)’에 대해 관상할 것을 명시하고 있는데, 티벳본과 다른 한역본들에서 아미타불이 아닌 석가모니불을 연상시키는 표현들이 발견된다. 다음은 티벳본 3장에서 나타나는 아미타불에 대한 설명이다.


훌륭한 가문의 아들이여, 부처님에 대해 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여래를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 분은 여래이고, 아라한이며, 완전히 깨달으신 분이다. 지혜와 행위를 성취하신 분이고, 피안으로 잘 가신 분이다. 세상을 이해한 분이고 위없는 분이며 모든 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이다. 신들과 인간의 스승이고, 부처님이며, 세존이시다.

12) rigs kyi bu / de la saṅs rgyas rjes su dran pa de gaṅ źe na / ‘di lta ste / gaṅ de

bźin gśegs pa yid la byed pas te / ‘di ltar de ni de bźin gśegs pa dgra bcom pa

yaṅ dag par rdzogs pa ‘i saṅs rgyas / rig pa daṅ źabs su ldan pa / bde bar gśegs

pa / ‘jig rten mkhyen pa / skyes bu ‘dul ba ‘i kha lo sgyur ba / bla na med

pa / lha daṅ mi rnams kyi ston pa / saṅs rgyas bcom ldan ‘das.


이와 같이, 초기불교 문헌들에서 석가모니불을 수식하는 정형구인 ‘붓다의 10가지 호칭(如來十號)’이,『반주삼매경』의 티벳본에서 대승의 붓다인 아미타불을 수식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표현은 595년 사나굴다(闍那崛多)에 의한 한역된『반주삼매경』의 이역본, 『대방등대집경현호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더 나아가, 티벳본과『대방등대집경현호분』에서는 아미타불을 가리켜, ‘세존이자 여래이고 아라한이며 정등각자인 아미타불(bcom

ldan ‘das de bźin gśegs pa dgra bcom payaṅ dag par rdzogs pa’i saṅs rgyas tshe dpag

med)과 ‘서방의 아미타이자, 여래이고, 아라한이며, 정등각자(西方阿彌陀如來應供等正覺)’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대승의 대표적인 붓다인 아미타불을 일컬어 ‘아라한’이라 칭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에 대한 혼동된 표현들은 다음의 두 가지 원인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한다. 첫째,『반주삼매경』이 찬술 될 당시 아미타불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게 성립되지 않

았다는 점이다. 아미타불 숭배 및 정토사상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경전으로는『무량수경』과 『아미타경』을 들 수 있다. 두 경전의 성립 연대는 불분명하나,『무량수경』은 2세기 말 이전으로 소급되고,『아미타경』은 402년 구마라집에 의해서 한역되었다. 따라서『무량수경』과『아미타경』에서 나타나는 아미타불 개념이 확립되기 전『반주삼매경』이 찬술되었고, 그 결과 위와 같은 표현들이 문헌에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이 경전의 목적이 아미타불에 대한 숭배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 할 수 있다. 즉,반주삼매경의 저자(혹은 저자들)는 아미타불 숭배가 아닌, 반야사상을 궁극적으로 강조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굳이 관상의 대상이 아미타불이 아니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전에서 아미타불이 언급되는 이유는, 이 경전이 찬술되었다고 추정되는 북서인도 간다라지역에서 아미타불에 대한 숭배가 성행했었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3. 반주삼매와 공사상

해리슨(P. Harrison)에 의하면, 초기 대승불교에는 정토사상과 반야사상이 공존하고 있었으며, 『반주삼매경』에 두 사상 간의 접점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 경전의 제5장 <무착품(無着

品)>과 제10장 <청불품(請佛品)>에서는 수행자가 반주삼매 속에서 친견하는 아미타불과 그 체험이 가진 공성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이와 같이 바드라빨라여, 보살이 부처님을 친견함에 있어서 마음으로 염한 것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있는 바가 없음을 설했기 때문이다. 경전에서 있는 바가 없음을 설했고, 그 가운데 본래 무너지고 본래 끊어졌기 때문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이를 ‘집착할 바가 없다’고 한다.

13) 如是跋陀和, 菩薩見佛, 以菩薩心念無所著. 何以故, 說無所有. 經說無所有, 中不著.

壞本絕本. 是為無所著.


바드라빨라여, 이 보살은 마땅히 부처님을 염하고 부처님을 친견해야 하며 마땅히 경을 들어야 하지만, 집착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본래 없으며, 이 법도 인연하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본래 공하여 있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14) 佛告跋陀和, 是菩薩當念佛當見佛當聞經, 不當有著. 何以故, 佛本無是法無所因.

何以故, 本空無所有.


계속해서 경전에서는 세 가지 꿈과 관련한 비유를 통해 공성을 설명한다. 수행자가 반주삼매에서 붓다를 친견하는 것은 마치 ① 소문으로만 들은 음녀를 꿈 속에서 찾아가 만나는 것 ② 굶주린 자가 꿈속에서 음식을 먹는 것 ③ 고향을 떠나 온 자가 꿈 속에서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래 공한 대상에 집착하는 것은 불에 달구어진 쇳덩어리를 손으로 잡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수행자는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35) 그리고 이보다 더 나아가, 제2장 <행품(行品)>에서는 삼매 속에 현현한 붓다 뿐만 아니라 삼계(三界) 전체가 공하다고 설한다.


[부처님을] 친견하면 즉시 여쭈어라. 묻는 즉시 대답하실 것이다. 다르마를 듣는 것에 크게 기뻐하며, 이와같이 염하라. ‘부처님은 어디에서 오셨으며, 나는 어디로 가는가.’ 스스로 염하라. ‘부처님은 오신 곳도 없고, 나 또한 갈 곳이 없다.’ 스스로 삼계를 염하라. ‘욕계, 색계, 무색계, 이 삼계는 마음으로 만들어 졌다.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 본다.’

15) 見即問. 問即報. 聞經大歡喜, 作是念.佛從何所來, 我為到何所. 自念佛無所從來, 我亦無所至.

自念三處, 欲處, 色處,無想處, 是三處意所為耳. 我所念即見.


슈미트하우젠(L. Schmithausen)은 이 부분을 불교 문헌들에서 최초로 나타나는 ‘삼계유심(三界唯心)’의 구조로 지목했다. 삼계유심이란 우리가 속해 있는 삼계가 마음의 반영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그것이 성립된 과정은 다음과 같다. ① 붓다를 관상하는 수행자는 삼매 속에서 일련의 영상을 경험한다. ② 수행자는 그 영상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이해한다. ③ 더 나아가 영상뿐만 아니라 우리의 외부세계도 그와 같이 마음이 작용한 결과라고 일반화한다. 이와 같은 사고는 반야부 계열 경전군에서 자주 나타나는 ‘대승환영주의(Mahāyanistic illusionism)’로 귀결된다. ‘대승환영주의’는 삼매의 체험을 비롯한 모든 외부 대상들이 실재하지 않는 환영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모든 다르마의 무자성을 설하는 공사상의 발전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반주삼매경』에 나타나는 공사상은 초기 대승불교의 핵심적인 교학인 동시에, 초기경전에서부터 그 존재가 확인되고 있다. 고메즈(L. O. Gómez)의 경우, 가장 오래된 불교 문헌인 『숫따니빠따

(Suttanipāta)』의 <아탓까왁가(Aṭṭhakavagga)>와 <빠라야나왁가(Pārāyabavagga)>에서 원시중관(proto-Mādhyamika)라고 할 수 있는 대승 공사상의 원형을 찾았다. 이 두 장에서는 다른 초기경전에서 나타나지 않는 이질적인 경향이 존재했는데, 이것이 주류불교(Mainstream Buddhism) 시대에는 잠재하고 있다가 대승의 시대에 이르러 다시 주목을 받아 부각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윌리엄스 역시, 법의 공성(dharmaśūnyatā)이 대승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이미 그러한 개념이 대중부의 지말분파인 뿌르와샤이라(Pūrvaśaila)의「로까누와르따나(Lokānuvartana)」와 하리와르만(Harivarman)의「사뜨야싯띠 샤스뜨라(Satyasiddhi śāstra)」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영진은 『팔천송반야경(Aṣṭasāhasrika Prajñāpāramitā Sūtra)』에 나타나는 공성에 대한 기술이,『숫따니빠따』와『소공경(Cūḷasuññatasutta)』,『대공경(Mahāsuññatasutta)』의 공사상에 대한 계승임을 주장했다.41) 즉, 초기경전에서 초기 대승불교 공사상의 원류가 발견되며, 그것이 발전적으로 계승되어 초기 대승불교만의 특징적이 공사상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대승불교도들이 기존 불교전통의 용어와 개념을 새로운 방법으로 재해석하여 활용했다는 맥퀸(G. MacQueen)은 주장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도 유효하다.


이와 같은 연구들을 통하여,『반주삼매경』의 공사상은 초기 대승만의 독창적인 교학이 아니며, 초기불교 및 주류불교의 교학적 배경 하에서 발생했음을 확인 수 있다. 이것은 대승불교가 사상적

으로 기존의 불교전통과 단절되어 있지 않음을 증명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초기불교와 주류불교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것임을 보여주는 근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대승불교가 기존의 불교전통과는 전혀 다른 공동체, 이를테면 불탑을 중심으로 한 재가자집단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이와 같은 공사상의 계승 및 발전이 불가능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Ⅳ. 반주삼매와 대승불교

1. 반주삼매에서의 관불(觀佛)

『반주삼매경』에서 붓다는 바드라빨라에서 반주삼매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먼저, 계를 철저히 지키고 조용한 곳에 홀로 머무는 등, 수행의 외적 조건이 요구된다. 그것이 충족되

면, 수행자는 붓다에 대한 시각적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떠올린다. 그 기간이 7일에 이르기 전에 수행자는 아미타불을 친견하는데, 이때의 체험은 현재 아미타불이 설법을 하고 있는 영상(vision)처

럼 묘사되고 있다. 다음은 티벳본 8장과『반주삼매경』 제2장 <행품(行品)>에 나타나는 반주삼매의 구체적인 방법이다.


바드라빨라여, 어떻게 보살마하살들이 이 삼매를 계발하는가? 바드라빨라여, 지금 내가 네 앞에 앉아서 법을 설하는 것과 같이, 보살들은, 여래이고 아라한이며 정등각자가 붓다의 왕좌에 앉아서 법을 설한다고 염한다. 또한 보살들은 여래가 훌륭한 형상을 하고, 보기에 좋으며,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신체적으로 완벽함을 지녔다고 염한다. 보살들은 100가지 이익을 만드는 위대한 분의 상호(mahāpuruṣa takṣaṇa)를 지닌, 여래이고 아라한이며 정등각자의 신체를 본다. 또한 보살들은 [그 상호들을] 외적인 상(nimitta)으로 이해한다.

16) bzaṅ skyoṅ / de la byaṅ chub sems dpa’ sems dpa’ chen po ‘i tiṅ ṅe ‘dzin ‘di ji ltar

bsgom par bya źe na / bzaṅ skyoṅ / ‘di lta ste dper na ṅa da ltar khyod kyi mdun

na ‘dug ciṅ chos ston pa de bźin du / bzaṅ skyoṅ / byaṅ chub sems dpas de bźin

gśegs pa dgra bcom pa yaṅ dag par rdzogs pa’i saṅs rgyas kyi gdan la bźugs śiṅ

chos ston par yaṅ yid la bya’o // des rnam pa thams cad kyi mchog daṅ ldan

pa / gzugs bzaṅ ba / mdzes pa / blta nasdug pa / sku yoṅs su grub pa daṅ ldan

par de bźin gśegs pa rnams yid la bya’o // de bźin gśegs pa dgra bcom pa yaṅ

dag par rdzogs pa’i saṅs rgyas kyi skyes bu chen po’i mtshan re re yaṅ bsod nams

brgyas bskyed par blta’o // mtshan ma rnams kyaṅ gzuṅ bar bya’o //


이런 보살마하살들은 천안통을 갖지 않고도 여래를 보고, 천이통을 갖지 않고도 진실한 법을 들으며, 신족통을 갖지 않고도 불국토에 이른다. 이생에서 목숨이 다한 후, 저 생에서 불국토를 보는 것이 아니다. 지금 앉은 상태에서 아미타불을 친견하고, 설하신 경을 받아 지녀서, 삼매 가운데 모두 능히 구족한다. [삼매에서 나온 후] 다른 사람들에게 이것을 설한다.44)

17) 是菩薩摩訶薩, 不持天眼徹視, 不持天耳徹聽, 不持神足到其佛剎. 不於是間終, 生彼間佛剎乃見.

便於是間坐, 阿彌陀佛, 聞所說經悉受得, 從三昧中悉能具足. 為人說之.


여기에서 주목할 만 한 점은, 반주삼매의 수행자가 신통력이 아닌 현실적인 경험을 통해 아미타불을 친견한다는 것이다. 게틴(R.Gethin)에 의하면, 불교 전통 내에서 율장의 내용과는 대조적으로,

신통력을 긍정하는 경향이 존재했다고 한다. 즉, 신통력이 해탈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의 ‘긍정적인 방편’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반주삼매경』은 아미타불의 친견이 온전한

현실적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고 강조하고 있다. 『대지도론』에서는 이것을 더욱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데, 반주삼매를 통한 붓다의 친견과 천안(天眼)의 계발로 인한 붓다의 친견이 다른 것임

을 다음과 같이 설명 한다.


반주삼매는 욕망에서 자유로운 자(vītarāga)와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한 자(avītarāga) 모두가 얻지만, 천안은 오직 욕망에서 자유로운 자만이 얻는다. 반주삼매는 내적인 형상화(saṃkalpa)의 끊임없는 명상(nityabhāvanā), 끊임없는 수행(nityaiṣevana)의 결과로 도출된 영상(vision)이다. 신통지(abhijñā)의 수행으로 얻어지는 천안통(divyacakṣu)은, 색계의 사대(四大)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리고 천안은 사방(caturdiśa) 에서 완전한 광명을 향유한다. 둘은 다르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그리고 필요한 질문은, ‘왜 반주삼매의 수행자는 삼매 속에 현현한 붓다를 실체화하여, 현실적인 체험으로 인정했나’일 것이다. 왜냐하면 기존의 불교전통에서는 삼

매 속에서 나타나는 일체의 이미지 혹은 영상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지야마(梶山)는 초기 대승문헌이 찬술되기 시작했던 시기를 일컬어, ‘사리를 모신 불탑에 대한 숭배가 정점에 달했을 때이며, 불교도들이 다시 한 번 붓다를 친견하길 염원했던 때’라고 한 바

있다. 즉, 당시 불교도들 사이에서, 현재불의 시대가 지나갔다는 사실에서 오는 비통함이 커짐과 동시에, 붓다를 친견하고자 하는 열망이 고조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는 수행자로 하여

금 삼매 속에서 현현하는 붓다의 모습을 실체화 하는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붓다가 입멸한 후에도 법신(dharmakāya)이 사리를 통해 승원에 계속 현존한다는 교리적 이해는, 수행

자가 위와 같이 해석하는 것을 보다 용이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2. 반주삼매와 대승경전의 출현

반주삼매의 수행자는 삼매 속에서 현전한 붓다를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차원으로 인식한다. ① 수행자는 관상수행을 통해 삼매 속에서 실체화된 붓다를 친견한다. 이때는 신통이 아닌 일반적인

인식을 통해 붓다를 인식하며, 그렇게 현전한 붓다를 실제 붓다와 동일하다고 인정한다. ② 그렇게 친견한 붓다로부터 공성에 대한 가르침을 듣고, 눈앞에 현전한 붓다의 본성 역시 공하다고 인식한

다. 그리고 더 나아가 붓다뿐만 아니라 삼계 전체가 공하다고 인식한다. 일견 모순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 두 가지 인식은 어떻게 이해 될 수 있는가?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반주삼매경』에

서 ①의 인식은 분명히 현실적인 인식으로 설명된다. 심지어 수행자가 반주삼매 속에서 아미타불을 친견하지 못한다면 꿈에서라도 친견한다고 할 정도로, 신통력에 기반 하지 않은 현실적인 인식임

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체험은 어디까지나 삼계에 속하는데, 2장 행품(行品)의 설명에 의하면 삼계 역시 공성을 속성으로 하는 마음으로 만들어 졌다. 따라서 삼계가 공하다는 ②의 인식은, 그 삼계안에서 일어나는 삼매 체험인 ①의 인식을 포괄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주삼매경』에서 ①의 인식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①의 인식이 대승경전의 출현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즉, 반주삼매의 수행자가 삼매를 통해 실체화 된 붓다를 친견함으로써, 역사상의 붓다가 입멸한 후 중단되었던 새로운 경전의 찬술이 재개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실제로, 이 경전에서는 보살을 가리켜 ‘큰 배움을 얻은 자(bahuśruta,

mang du thos pa)’라 칭하고 있고, 붓다를 친견하면 반드시 가르침을 구해야 하며, 그렇게들은 바를 수지, 암송, 유포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반주삼매경』의 제8장 <옹호품(擁

護品)>에서 수행자가 반주삼매를 통해 듣게 되는 다르마에 대한 설명이 등장한다.


또한 바드라빨라여, 이 보살이 아직 읽어보지 못한 경이나 전에 들어보지 못한 경을, 이 삼매의 위신력으로 얻을 것이다. 꿈속에서 그경의 이름을 얻고 자세히 경을 보고 들어라. 만약 낮에 그것을 얻지 못했다면 밤에 꿈에서라도 얻으리라.

18) 復次跋陀和, 是菩薩所未誦經, 前所不聞經卷, 是菩薩持是三昧威神. 夢中悉自得其經卷名,

各各悉見悉聞經聲.


이에 해당하는 티벳본과 산스끄리뜨본을 살펴보면 그 의미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바드라빨라여, 이 삼매를 지키는 보살들은, [이전에] 설해지거나 들은 바 없는 경전들을

들을 것이다. 그들의 꿈속에서라도 [들을 것이다].

19) bzaṅ skyoṅ / gźan yaṅ tiṅ ṅe ‘dzin ‘di ‘dzin pa ‘i byaṅ chub sems dpa’ de la ma

bśsd ciṅ ma thos pa ‘i mdo sde dag kyaṅ tha na rmi lam du ‘aṅ sgra grag ciṅ

dbyaṅs thos par ‘gyur ro //


그리고 또 재가자여, 보살은 드러나지 않았고 얻은 적 없는 다르마의 음성을 듣고, [그것을] 얻는다. 그리고 그는 보살 삼매의 힘으로 그다르마를 듣는다.

20) [pu]nar aparaṃ gṛ[hapate] tasya bodhisatvasya anuddiṣṭāpratilabdhā dharmaśabdā

śrotrāvabhāsamā[ga]cchanti pratilabhati ca sa bodhisa[tva]sya samādher anubhāvena

tāṃ [dharmā]ṃ śṛṇo[ti].


해리슨에 의하면, 이와 같이 반주삼매의 수행자가 ‘새로운 다르마’를 듣는 부분이 대승경전의 갑작스런 출현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이와 관련하여, 제4장 <비유품(譬喩品)>에서는 이 경전의 내용이 당시의 불교와 이질적인 것이었음을 확인 할 수 있는 부분이 나타난다. 이 경전이 ‘붓다의 친설이 아니며, 후대에 만들어진 위경일 뿐’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반주삼매경』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자들이 존재했다는 것은, 이 경전의 내용이 당시로서는 비주류적인 것 혹은 생소한 것이었음을 반증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이질적인 다르마의 등장이 후대에 대승으로 규정되는 새로운 경전의 발생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3. 경전 확산 운동(textual movement)과 대승불교

『반주삼매경』의 제4장 <비유품(譬喩品)>과 제16장 <불인품(佛印品)>에서는 수행자가 반주삼매 속에서 들은 새로운 다르마를 문자화하여 수지, 암송 할 것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① 이와 같이 바드라빨라여, 보살이 이 삼매를 듣고도 글로 쓰지 않고 배우지 않으며 외우지 않고 지니지 않으면, 모든 천인과 사람들이 크게 슬퍼하고 걱정하며 ‘이 보배로운 경전을 잃었다’라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심오한 삼매를 잃었기 때문이다.

21) 如是跋陀和, 是菩薩聞是三昧已,不書不學不誦不持如中法, 一切諸天人民, 皆為大悲憂言,

乃亡我爾所經寶. 用失是深三昧故.


② 이후에 이 삼매를 들은 사람이 경전을 글로 쓰고 배우며 외우고 지니기를 최후의 하루 낮과 밤까지 한다면, 그 복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며 스스로 불퇴전의 경지에 이르러 원하는 바를 얻을 것이다.

22) 卻後世時聞是三昧者, 書學誦持經卷,最後守一日一夜, 其福不可計, 自致阿惟越致, 所願者得.


하지만 스킬톤(A. Skilton)은 여기서의 ‘삼매(samādhi)’가 명상 수행에서의 정신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반주삼매경』을 지칭한다고 보았다. 여러 초기 대승경전들, 특히 ‘삼매’를 제목으로

가지는 일군의 삼매경(samādhi sūtra)들에서 ‘삼매’라는 단어는 ‘삼매와 관련된 목록(samādhi

list)’을 가리키는 용례로 쓰이며, 더 나아가 해당 경전 자체를 의미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인용하고 있는『반주삼매경』의 일부분 역시, 초기 대승의 삼매경인『사마디라자 수뜨라(

Samādhirāja Sūtra)』,『슈람가마사마디 수뜨라(Śūraṃgamasamādhi Sūtra)』에서 삼매경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동일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①은 ‘이와 같이 바드라빨라여, 보살이 이 경전을 듣고도 글로 쓰지 않고…’로, 그리고 ②는 ‘이후에 이 경전을 들은 사람이 글로 쓰고…’라고 이해해야 한다. 즉, 이 부분은 경전의 내용을 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수지, 암송 할 뿐만 아니라 필사하여 복제할 것 까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이러한 해석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반주삼매경』의 저자(들)이 경전에 대한 필사를 매우 중요시 여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것이 대승불교의 기원을 설명하는 하나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11년, 캐나다의 젊은 불교학자인 드루즈(D. Drewes)는 대승불교가 법사(法師, dharmabhāṇaka)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경전확산 운동(textual movement)’에서 기인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기존의 불교전통 내에는 새로운 다르마를 적극적으로 설하는 출가자들 -스스로를 ‘법사’라고 칭하며, 또 그와같이 기록되는- 이 존재했는데, 그들에 의해 찬술된 경전들이 유포 및 전승되어 대승불교라는 새로운 흐름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사실, 초기 대승경전이 법사들에 의해서 찬술되었다는 주장은 이미 시즈타니(靜俗), 맥퀸(G. MacQueen), 해리슨에 의해서 제기된 바 있다. 드루즈는 이러한 선행 연구들을 바탕으로 대승불교 기원의 문제에 있어서 법사의 역할에 더욱 천착한 것이다. 여기에서, 바나까(bhāṇaka)라는 용어는 빨리 니까야에서부터 발견되는데, 그것은 경전의 암송과 편집을 담당하거나, 각각의 니까야를 전승했던 출가자 집단을 지칭한다. 그것이 초기 대승경전에서는 다르마(dharma)와 결합하여, 대승의 설법가를 가리키는 용어로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반주삼매경』에서도 역시 ‘법사(法師, dharmabhāṇaka)’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대방등대집경념현호분』에서 23회, 『반주삼매경(T. 417)』에서 1회, 『반주삼매경(T. 418)』에서 5회, 티벳본에서 10회가 나타난다.65) 그리고 여기에서 ‘법사’는 붓다와 같이 따르고 공경하며 공양해야 할 대상으로 언급되고 있다. 특히, 『반주삼매경(T. 418)』의 제6장 <사배품(四輩品)>의 게송은, 경전의 법사에 대한 공경과 그 경전의 수지, 암송 그리고 유포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드루즈의 의견과 맥락을 같이 한다.


항상 걸식하고 별청(別請)을 받지 말며, 모든 욕락(欲樂)을 남김없이 버려라. 이 삼매[경]을 듣고 따르며 법사를 세존과 같이 공경하라. 이 삼매[경]을 암송하고 다니고 항상 게으르지 말아라. 경전의 가르침[을전함]에 인색하지 말고, 공양을 구하지 않으며 다만 경전을 베풀어라.

23) 常乞食不受請 悉棄捨諸欲樂.所從聞是三昧 敬法師如世尊. 有誦行是三昧 常精進莫懈怠.

不得惜於經法 不求供乃與經.


이와 같이, 본 게송에서는 엄격한 수행을 강조하는 출가주의와 초기 대승경전 찬술의 주역인 법사에 대한 공경, 그리고 대승경전의 확산과 같은 초기 대승불교의 특징적인 요소들이 잘 드러나고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논의를 바탕으로, 반주삼매에 대한 고찰을 통하여 대승불교 기원의 일면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 반주삼매의 수행자는 삼매 속에서 현전하는 붓다를 친견하며, 그 붓다

를 실체화 한다. 이것은 석가모니불의 입멸 이후 정지했던, 새로운 경전에 대한 찬술을 가능케 하는 전제가 된다. ② 수행자는 반주삼매를 통해 친견한 붓다로부터 새로운 다르마, 즉 대승화 된 공사상- 을 배우는데, 이점이 대승불교가 사상적으로 기존의 불교 전통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가 된다. ③ 이와 같이 새로운 다르마를 설하는 경전이, 법사들을 중심으로 진행된 ‘경전확산 운동(textual movement)’에 의해 추후 대승불교라고 불리는 새로운 흐름을 형성했다.


Ⅴ. 결론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승불교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가설들이 제기되어 왔다. 특히, 근래에는 경전 숭배 전통(book cults)과 산야(山野)에서의 고행주의 전통, 불수념 수행과 관련된 가설들이 주목 받은 바 있다. 이 가운데서 필자는 불수념의 한 종류인 반주삼매를 중심으로 대승불교의 기원을 조명해 보고자 했는데, 이 수행 방법에서 초기 대승불교만의 특징적인 요소가 잘 나타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반주삼매의 특징과 그것을 통해 설명할 수 있는 대승불교의 기원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반주삼매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불수념 수행이 초기경전에서부터 확인된다. 그리고 그것은 초기 대승불교 시대에 이르러 방법론적으로 보다 구체화되었으며, 사상적으로도 공사상과 관련하여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둘째, 반주삼매에 대한 설명에서 출가주의에 대한 강조와 관상의 대상으로 명시되는 아미타불에 대한 부정확한 표현, 그리고 대승화된 공사상이 나타난다. 이것은 『반주삼매경』의 찬술이 기존 불교전통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음을 증명한다.


셋째, 반주삼매의 과정에서 현전한 가상의 붓다에 대한 실체화가 새로운 경전의 생산을 가능케 했다. 그리고 법사를 중심으로 진행된 ‘경전 확산 운동(textual movement)’이 대승불교의 기원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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