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철학사 강의안 9
- 초기불교의 주요 가르침 -
1. 붓다의 출신 배경
불교의 開祖를 붓다(Buddha, √budh의 pp.)라고 부르는 것은 인도사상 일반에서 인정되고 있다. 그리고 불교도를 바웃드하(Bauddha)라고 부르는 것도 다른 교도들간에 사용되고 있다. 또한 이 용어는 자이나교에서도 유사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이 말이 불교의 전용어가 된 것은 불교가 ‘지혜의 종교’로서의 색채가 강한 까닭이다.
자이나교에서는 그들의 개조인 와르다마나(Vardhamāna)를 지나(Jina)라고 부른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의 추종자를 자이나(Jaina)라고 부른다. 그런데 불교에서도 붓다를 지나로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이룬 성자를 아라한(Arahant, √arh)이라고 부르는데, 이 용어 또한 불교와 자이나교 양쪽에서 사용하였다. 이 외에도 무니(Muni, Sakka-muni, Śakya-muni), 바가밧(Bhagavat, 世尊), 여래(Tathāgata, 如來) 등도 쌍방에서 사용한다.
釋尊(sakka-muni)으로 한역되는 붓다의 성은 고따마(Gotama, 최상의 소)이다. 출가하기 전의 이름은 싯닷타(Siddhattha, 완성된 목적을 지닌, 목적을 이룬)이다. 그의 계급은 바라문(Brāhmaṇa), 왕족(Kṣatriya), 평민(Vaiśya), 노예(Śūdra) 중에서 두 번째였다. 그런데 이러한 계급의 구분은 석가족 자체에서의 구분이 아니며, 아리안(Āryan) 종족을 정점으로 한 카스트(Caste) 제도의 산물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석존의 아버지는 정반왕(淨飯王, Suddhodana)이었고 어머니는 마야부인(摩耶, Māya)이었다. 마야부인은 당시의 관습대로 해산을 위해 친정인 데바다하(Devadaha)로 가던 중, 룸비니(Lumbinī) 동산에 이르렀을 때 석존을 낳았다고 한다. 석존의 생존 년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기원전 623년에 탄생하여 기원전 595년 (29세)에 출가하고, 동 589년 (35년)에 깨달음을 얻어, 544년 (80세)에 입멸하였다는 설이 널리 인정되고 있다.
석존이 속한 샤카족은 오늘날 네팔과 인도의 국경부근에 거주했다. 수도는 까필라바스뚜(Kapilavastu)이었으며 벼농사를 위주로 농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사캬족이 어떠한 종족인가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다. 인도로 이주해 들어온 아리안 계통의 종족이라는 확증도 없고, 아시아계의 민족에 속한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석존의 종교적 성향이라든가 명상적인 성품 등을 고려하여 볼 때, 유목민이 아닌 토착 아시아계의 혈통을 이어 받았다는 설이 유력하다.
2. 붓다의 성장과 출가
전설에 따르면 석존이 태어났을 때, 히말리야로부터 아시따 깔라데바(Asita Kāladevala)라는 선인이 내려와 어린 그의 모습을 보고 만약에 그가 왕위를 계승한다면 전 세계를 통일하는 전륜성왕이 될 것이고 출가를 한다면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그러나 석존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은 석존을 나은 지 7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하여 이모인 마하빠자빠띠고따미(Mahāpajāpatī-Gotamī)의 손에 의해 자라나게 된다.
유년기의 석존은 비교적 유복한 환경 속에서 전통적인 학문과 전투기술을 배웠다. 특히 그가 학습한 내용은 장래의 통치자에게 요구되는 제반 분야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베다(Veda)의 연구와 아울러 여섯 가지 보조적인 학문들, 예컨대 음성학(śikṣā)․예식학(kalpa)․문법학(vyākaraṇa)․어원학(nirukta)․운율학(chandas)․천문학(jyotiṣa) 등이 거기에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에 대한 지식은 훗날 붓다가 지녔던 날카로운 학문적 식견의 토대가 되었다.
붓다가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견해에 따르면, 16세 때에 야쇼다라(Yaśodharā)와 결혼해서 외아들 라훌라(Rāhula)를 얻었고, 그 이후 29세에 이르러 인생의 문제를 놓고 깊이 고민한 나머지 가족을 버리고 출가하여 유행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문출유(四門出遊)의 전설에 의하면, 유년기의 석존은 네 성문의 밖으로 나가 인간의 생로병사를 차례대로 목격했다고 한다. 즉 동문에서 노인을, 남문에서 병자를, 서문에서 죽은 사람을, 북문에서 사문을 목격했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은 세속적인 기쁨에 대한 깊은 회의와 함께 출가의 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석존은 이미 출가 전에 당시 유행하였던 모든 종교와 사상에 상당한 조예가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을 실질적으로 체득하는 데에 오로지 관심을 두었다고 한다. 출가 직후, 유명한 종교가인 알라라깔라마(Ālāra-Kālāma)와 웃다까라마뿟따(Uddaka-Rāmaputta)를 찾은 것도 바로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禪定(jhāna)의 실습자로서, 알라라깔라마는 그에게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에 이르는 방법을, 그리고 웃다카라마뿟따는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에 이르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만족하지 못했다. 이들 미묘한 선정은 그 안에 들어 마음이 고요해지면 부동의 진리와 합체된 것으로 느껴지지만 그 선정에서 깨어나면 다시 일상의 동요하는 마음으로 되돌아오게 된다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1)
3. 깨달음과 사성제
그리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을 써서 6년 간의 고행을 하게 된다. 그러나 고행도 역시 신체를 쇠약하게 할 뿐 깨달음(成道)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하고서 고(苦)와 락(樂)이라는 양극단을 피한 중도의 실천법을 스스로 개발하게 된다. 이 방법에 의한 용맹정진을 거듭한 결과 마침내 깨달음(正覺)을 이루게 된다. 그곳은 간지스(Ganges) 강의 지류인 네란자라(Nerañjarā) 강 부근에 있는 한 보리수 나무 아래였다.
석존이 6년간의 고행 끝에 35세의 나이로 깨달음을 얻은 사건을 두고 성불(成佛), 성도(成道), 대오(大覺), 활연대오(豁然大悟), 확철대오(廓徹大悟),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辱多羅三邈三菩提, anuttara-samyak-saṁbodhi) 등의 여러 용어가 사용된다. 아무튼 이러한 체험을 통해 인간 싯다르타는 붓다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에 따라 깨달음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수많은 제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해서 불교라는 종교가 형성되었다.
초기불교의 경전에는 석존이 깨달은 내용이 과연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다양하게 묘사된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의 우이하꾸주(宇井伯壽) 선생은 15종의 이설이 있음을 밝힌 적이 있다. 이들 중에서 사성제(四聖諦)와 십이연기(十二緣起觀) 그리고 사선삼명(四禪三明: 宿命智, 天眼智, 漏盡智)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나 사선삼명의 귀결인 누진지는 사성제의 멸성제(滅聖諦)와 동일하고, 십이연기 또한 사성제의 고성제(苦聖諦)와 집성제(集聖諦) 및 그것의 구조와 밀접한 상관 관계에 있다.
따라서 깨달음에 관한 각종의 이설들은 내용적으로 중첩되며, 설법을 듣는 이들의 됨됨이에 따라 다른 형식으로 묘사된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마하핫티빠도빠마숫따(Mahāhatthipadopamasutta, MN. I. 184쪽 이하)』에 묘사되듯이, 석존이 깨닫고 가르친 모든 내용은 사성제의 교설을 중심으로 서로 회통될 수 있다. 즉 현상적 존재 일반에 관한 모든 유형의 가르침은 고성제와 고집성제에 배대할 수 있고, 궁극의 경지에 관련한 교리적․실천적 가르침들은 고멸성제와 고멸도성제에 배속시킬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삿짜상윳따(Saccasaṁyutta)에는 “과거세․미래세․현세를 막론하고 어떠한 사문이나 바라문이든지 있는 그대로 깨달은 바를 설한다면 그것은 곧 사성제이니, 고(苦)․집(集)․멸(滅)․도(道)의 사성제를 힘써 닦으라.(SN. V. 416쪽 이하)”는 가르침이 반복적으로 묘사된다. 또한 초기불교의 수행론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마하사띠빳타나숫딴다(Mahāsatipaṭṭhāna-Suttanta)』에서도 몸(身)․느낌(受)․마음(心)․법(法)에 대한 통찰을 통해 궁극적으로 사성제를 깨닫는 수행의 과정이 제시된다. (DN. II. 290-315쪽)
4. 깨달음의 특징
석존의 깨달음과 관련하여 주목할 사항은 그것이 사물에 대한 이지적 자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 측면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그는 인간을 불행으로 이끄는 가장 근원적인 심리적 동기로서 탐욕(貪, rāga)과 성냄(瞋, dosa)과 어리석음(癡, moha)의 3가지를 지목하였다. 이점에 근거하여 그는 이전까지 전해져 내려온 모든 유형의 세계관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였다.2)
석존은 절대적인 영원한 존재를 갈구하지도 않았고, 또한 허무적인 비존재에도 빠지지 않는 가운데 실재에 대한 통찰과 분석을 진행해 나갔다. 그는 자신의 깨달음이 내면의 탐욕을 해소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이해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즉 ‘고통의 원인(苦集聖諦)’으로서 갈애(taṅhā)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고통(苦聖諦)’의 자체는 결코 극복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그는 한때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가르치는 일을 주저했다고 한다.
그러나 탐욕․성냄․어리석음의 소멸은 결국 타인과의 관계에서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자리(自利)의 성취란 연기(緣起)와 무아(無我)에 대한 체득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따라서 석존의 깨달음은 중생 제도라는 이타(利他)의 실천행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지닌다. 그는 최초로 다섯 명의 수행자에게 자신이 깨달은 내용을 전하는 데에 성공한다. 그 장소가 바로 녹야원(鹿野園, Migadāya)이며 여기서 행한 최초의 설법을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 부른다.
5. 재가자에 대한 가르침
석존은 형벌을 통한 범죄의 근절을 부질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범죄를 근절시키려면 국민의 경제적인 여건을 개선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재가자의 신분으로서 현재의 삶(現世)과 미래의 삶(來世)에서 인간을 행복으로 인도해 줄 네 가지가 사항들에 대해 언급하였다. 먼저 현재의 삶에서 행복을 가져다 주는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① 자신이 종사하는 직업에 근면하고 원기 왕성해야 한다(勞力具足 uṭṭhānasampadā). ② 땀흘려 벌어들인 소득을 잘 보존해야 한다(守護具足 ārakkhāsampada). ③ 바른 길로 인도해 줄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善友具足 kalyāṇamittatā-sampada). ④ 자기의 소득에 맞게 합리적으로 소비해야 한다(等命具足 sammājivikata-sampada).
한편 내세의 행복을 가져오는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① 믿음의 성취이다. 도덕적, 정신적, 지적 가치를 믿고 신뢰한다. (信具足 saddhāsampadā). ② 계행의 성취이다. 살생하고 훔치고 속이고 거짓말하는 등의 파괴적이고 해로운 생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戒具足 sīlasampadā). ③ 베풂의 성취이다. 부에 대한 애착과 같은 망상을 내지 말고 자선을 하거나 관용을 베푼다(捨具足 cagasampadā). ④ 지혜의 성취이다. 번뇌를 없애고 열반의 경지로 이끌어주는 지혜를 닦는다(慧具足 paññnāsampadā).
나아가 석존은 아나타삔다까(anāthapiṇḍaka)라는 부유한 장자에게 가정생활을 통해 누릴 수 있는 네 가지 행복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하였다. ① 공정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경제적인 안정이나 부를 향유하는 행복(利益樂 atthisukkha). ② 자신과 가족, 친구나 친척 또는 칭찬할 만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자기의 벌어들인 부를 아낌없이 베푸는 행복(受用樂 bhogasukkha). ③ 빚이나 채무가 없는 행복(無債樂 anaṇasukkha). ④ 신체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악을 저지르지 않고 과오가 없는 청정한 생활을 하는 행복(無過樂 anavajjasukkha)
이 네 가지 가운데 세 가지가 경제적인 측면이라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나 경제적, 물질적 행복은 과실 없는 청정한 생활로부터 오는 정신적 행복의 1/16의 가치도 되지 못한다고 이야기했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결국 석존은 외형적인 행복보다는 내면의 행복에 더 많은 가치를 두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외면적인 행복의 가치를 인정했던 반면, 거기에 머물지 말고 내면의 행복으로 나아가길 권하였다. 석존의 가르침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순서는 보시에 관한 가르침(施論, dānakatha) → 계율에 관한 가르침(戒論, sīlakatha) → 천상세계에 관한 가르침(生天論, saggakatha) → 사성제에 관한 가르침(四聖諦)의 형식을 띤다.
6. 초기불교의 철학적 독특성
철학 일반을 실체(substance)와 과정(process) 혹은 존재(being)와 생성(becoming)이라는 2가지 관점에서 구분해 보는 것이 가능하다. 실체와 존재에 주력하는 입장에서는 외견상의 변화와 다양성 저변에 어떠한 불변적 실체를 가정하는 경향을 지닌다. 이것을 일컬어 ‘실체적 존재론(substance ontologies)’이라고 한다. 한편 과정과 생성에 비중을 두는 입장에서는 영구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고를 일컬어 ‘과정적 존재론(process ontologies)’ 혹은 ‘양태적 존재론(modal ontologies)’이라 한다.
서양철학사에서 빠르메니데스(Parmenides),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s), 데카르트(Descartes), 라이프니쯔(Leibniz), 스피노자(Spinoza) 등의 철학은 실체적 존재론의 대표적인 사례가 된다. 반면에 헤라클리투스(Heraclitus), 베르그송(Bergson), 화이트헤드(Whitehead)의 철학은 과정적 존재론의 예들이다. 인도의 철학 무대에선 자이나교(Jainism), 상키야(Sāṇkhya), 베단따(Vedānta) 등의 학파와 함께 전통적인 힌두교가 실체적 존재론에 근거해 있다.
붓다의 가르침은 전형적인 과정적 존재론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붓다의 중심적인 가르침은 보편적인 변화와 무상의 교설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하며 무상하다. 영구히 지속하고 머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사물은 나왔다가 사라지고 태어남이 있는 곳에는 죽음이 있다. 만남이 있는 곳에는 헤어짐이 있고, 시작이 있는 곳에는 끝이 있다. 붓다는 변화와 무상이란 모든 존재의 기본적 특성이라고 가르쳤다.
보편적 변화와 무상의 교리는 이른바 연기설의 형식으로 귀착된다. 붓다는 연기설을 常住論(eternalism)과 斷滅論(annihilationism)의 두 극단을 피하는 중도로서 권장했다.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전자의 상주론은 경험의 대상일 수 없는 영구 불변의 실체를 미리 가정하고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독단적이다. 후자의 단멸론은 일상적인 경험에 반하여 실재가 자취 없이 소멸되어 버린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역시 독단적이다.
7. 무아설과 현상적 자아
연기설의 또 다른 귀결은 無我(anatta)의 교설이다. 즉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此有故彼有)”, “이것이 일어남으로 저것이 일어난다(此生故彼生)”,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다(此無故彼無)”, “이것이 소멸하므로 저것이 소멸한다(此滅故彼滅)”라는 연기의 기본공식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자아의 실재성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는 무아설로 이어진다.
인간에게 ‘영혼’이니, ‘자아’니, ‘정령’으로 알려진 영구적 실체가 있다는 것은 거의 모든 문화에서 발견되는 오래된 믿음이다. 원시인들뿐 아니라 현대의 철학자들도 이러한 믿음에 찬동하는 경우가 많다. 세계의 대종교들, 예컨대 유대교․기독교․회교․자이나교․힌두교는 인간의 영혼이 불멸의 실체라고 가르친다. 소크라테스․플라톤․칸트와 같은 철인들 또한 영혼을 영원한 실체로서 인정한다.
이들 대부분의 철학과 종교에서는 영구 불변하는 영혼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비록 인간의 육신은 변하고 소멸할지라도 그의 영혼은 변함이 없다고 본다. 이러한 영혼을 일컬어 자이나교에서는 지와(Jīva, 영혼)라 하였고, 상키야 철학에서는 뿌루샤(puruṣa, 정신)라 하였으며, 그밖의 힌두교에서는 아뜨만(Atman, 주체) 혹은 브라흐만(Brahman, 우주적 실체)이라 불렀다.
그러나 이들 철학과 극히 대조적으로 붓다는 인간 속에 영구, 지속적인 실체가 없다고 주장한다. 자아나 영혼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은 감각․인상․지각․영상․느낌․충동 따위이지 결코 실체나 사물이 아니다. 따라서 붓다는 인간을 신체(色, rūpa)․느낌(受, vedanā)․지각(想, saññā)․지음(行, saṅkhāra)․의식(識, viññāna)이라는 5가지 경험적 요소(五蘊, pañcakkhandhā)만으로 분석한다.
붓다에 따르면, 자아 혹은 영혼이란 이러한 5가지 경험적 요소들의 일시적인 모임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을 넘어선 어떠한 별개의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인간이 5가지 요소의 모임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면, 그 안에 물질적이건 정신적이건 어떠한 실체도 있을 수 없다. 이러한 붓다의 생각은 데이비드 흄(David Hume)의 철학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붓다는 5가지 요소의 결합으로 이해된 현상적 자아나 영혼의 존재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의 배후에 그것을 넘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영구․불변적 실체로서의 자아나 영혼이 있다는 믿음에 한해 비판하였을 뿐이다. 붓다는 변화하는 자아는 기꺼이 인정하였지만 불변의 실체적 자아는 환상으로서 거부한다. 그러한 환상은 부분적으로는 우리의 언어적 습관에,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탐욕․집착․불안전․두려움 등과 같은 심리적 요소에서 기인한다.
붓다는 항구적 영혼의 개념을 부정하였고, 의식이란 영구적 실체가 아닌 단지 부단한 흐름이라고 보았다. 이점은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의 견해와 유사한 것으로, 의식적 흐름의 각 순간은 직전의 순간의 조건에 의존하여 일어날 뿐이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현재와 미래 사이에 지속성을 주는 것은 의식의 간단없는 흐름이며 영속적인 영혼이 아니다.
8. 무아설의 윤리성
붓다에 따르면, 사람이 자신의 행위에 책임져야 하는 것은 그가 항구적 영혼을 소유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과거․현재․미래의 생존이 인과적 사슬로 묶여 있는 부단한 흐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자신의 행위에 책임이 있다는 것은, 그가 영속적인 영혼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생존의 지속성 때문이다. 이러한 무아설이 윤리와 도덕에 대해 함축하고 있는 뜻은 심대하다.
인류사에 있어서 인간의 물질적 진보는 놀라운데 반해 윤리적인 그것은 답습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동굴이나 정글 속에 살았던 옛 선조들보다 나은 것이 없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간들은 수 천년 전과 같이 짐승들의 세계 어디에도 비교되지 않는 열광으로 전쟁을 하고 있다. 예나 다름없이 우리는 여전히 동물과 이웃 모두를 죽이는데 희열을 느끼고 있으며 고통과 파괴를 즐긴다.
무아의 논리에 입각할 때, 이러한 비극의 인류사는 윤리학과 존재론 사이의 비양립성에 원인을 둔다. 모든 철학과 종교적 가르침들은 한편으론 인간이 구원되어야 할 영구적인 영혼 혹은 자아를 갖고 있다고 가르치면서, 다른 편으로는 자비와 관용 나아가 무엇보다도 비이기성을 권고한다. 그러나 영원한 자아나 영혼을 갖고 있다고 믿는 한 비이기적이 된다는 것은 어려울 뿐 아니라 부자연스럽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견해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윤리적 가르침 사이의 갈등 상황에 처해 있다. 자아를 인정하는 한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이타적 삶을 강요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회의와 긴장 그리고 불안감으로 이끄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붓다에 따르면 이러한 문제는 영혼이든가 자아의 관념이 극복될 때라야 비로소 해소될 수 있다.
붓다는 이러한 방식으로 존재론적인 견해가 윤리적 문제에 관련이 되며, 또한 양자가 서로 상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하였다. 붓다는 일체의 이기적 행위에 대해 그것의 근거로서 작용하는 자아의 관념을 해소시키는 것을 통해 전면적인 이타적 삶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따라서 붓다의 무아설은 도덕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독특한 방식의 존재론적 근거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 참고문헌
각묵 옮김, 『디가니까야 제1권』, 울산: 초기불전연구원, 2005.
전재성 옮김, 『맛지마니까야 제1권』, 서울: 한국빠알리성전협회, 2002.
권오민 지음, 『인도철학과 불교』, 서울: 민족사, 2004.
이지수 옮김, 『인도철학』, 서울: 민족사, 1991.
이호근 옮김, 『인도불교의 역사 상권』, 서울: 민족사, 1991.
1) 이와 관련하여 Aṅguttara-Nikaya, vol.4. p.410; Saṁyutta-nikāya, vol.2. p.222 등에는 초기불교의 완성된 선정체계로서 ‘九次第住等至(nava-anupubbavihārasamāpatti, 九次第定)’가 묘사된다. 이러한 9단계의 체계 내에서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는 7번째와 8번째에 배속된다. 9단계에 이르는 선정의 전체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初禪: 尋과 伺와 喜와 樂이 머문다. ② 第二禪: 尋과 伺는 지멸되고 喜와 樂이 머문다. (尋과 捨의 語行이 지멸된다) ③ 第三禪: 喜는 지멸되고 樂과 念과 捨가 머문다. ④ 第四禪: 非苦非樂의 捨念淸淨만이 머문다. (늘숨과 날숨의 身行이 지멸된다) ⑤ 空無邊處: 色想, 有對想, 種種想이 지멸된다. ⑥ 識無邊處: 空無邊處想이 지멸된다. ⑦ 無所有處: 識無邊處想이 지멸된다. ⑧ 非想非非想處: 無所有處想이 지멸된다. ⑨ 想受滅(滅盡定): 想과 受가 지멸된다.(想과 受의 意行이 지멸된다)
2) 특히 불멸 직후 첫 번째 결집에서 편찬된 범망경(梵網經, Brahmajālāsutta)은 이러한 초기불교의 태도를 잘 나타내고 있다. 즉 범망경에서는 당시까지 전해져 내려온 일체의 견해를 62가지로 분류하고, 그들 모두가 내면적인 탐욕과 집착에 엮이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러한 범망경의 논지는 여러 견해들이 야기하는 ‘맛(assāda)’과 ‘환란(ādīnava)’을 깨달아 그들로부터의 ‘벗어남(nissaraṇa)’을 실현함으로써 해탈에 이른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임기영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dlpul1010/2684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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