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정 개념 도입에 관하여
최 지 연1)
목 차
Ⅰ. 서론 Ⅱ. 본론 2.1 초기불교 수행과 4선 2.2 4선과 4무색정 2.3 무색정에서 드러나는 자이나적인 요소 Ⅲ.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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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지금의 다양한 불교 모두가 붓다의 직접적인 가르침으로 귀속된다고 믿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붓다의 교설이 전승 과정에서 시대, 문화, 사람들의 개인차 등의 요소들에 의해 다르게 이해되고 변용,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범위를 축소하여 붓다의 교설이라고 알려진 초기 경전으로 한정하더라도 그 안의 설명이나 개념들이 모순되거나 불일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인 예로 초기불교 수행인 4선 중 제1선에 대한 불일치한 내용이 있다. 4선에 대한 전형적인 서술에서 1선은 尋伺의 분별을 통해 도달하고, 2선은 心一境性 상태로서 묘사된다. 그런데 1선을 심일경성에서 출발한다고 하는 문헌 또한 발견된다. 이러한 설명은 제2선에 심일경성이 일어난다고 설명하는 점, 제1선은 심사를 통한 취득이라는 전형적인 서술과 모순된다.2) 이외에도 붓다의 해탈도에 대한 다양한 설명, 해탈 개념에 대한 판이하게 다른 이해 등이 불일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불일치, 모순된 요소 가운데 무색정에 주목하고자 한다. 무색정은 4선과 함께 8등지, 9차제정을 형성하며 초기불교 가운데 가장 중요시 되는 수행론, 혹은 개념이다. 그런데 무색정은 그것에 선행하는 4선과 어떤 면에서 매우 다르며 모순되기까지 하다. 이런 모호성 때문에 부파불교에서는 4무색정을 수행자가 다음 생에 태어나는 4가지 세계로 이해하기도 하고,3) 『청정도론』에서는 명상의 대상을 수행단계로 분류한 카쉬나(kaśina)이론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 같이 다양한 해석은 무색정이 4선과 잘 조화되기 않기 때문일 것이다. 대다수의 학자들이 4무색정은 불교 고유의 것이 아니라고 추측4)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들에 따르면 4선이 불교 내에 발생한 것으로, 더 나아가 붓다의 해탈도로서 인정되는 것과 달리 무색정은 타 학파, 특히 자이나교의 영향5)을 받아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본고의 목적은 무색정이 4선과는 다소 이질적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4선 다음단계의 수행체계로 형성된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러한 파악을 위한 방법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불교 內에서 구하는 것과 外에서 구하는 것이다. 전자는 불전 내에서 모순된 요소들을 비교하여 원형을 찾고 그 역사적 전개를 살펴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후자는 불교와 외부 종교와의 비교를 통해 불교식의 원형과 아닌 것을 가려내고 이후에 추가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요소들을 통해 불교에서 그러한 요소를 받아들인 의도를 추측하는 것이다. 필자는 후자의 방법으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하며, 여기서는 자이나를 외적인 도구로 삼고자 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불교의 4선․4무색정과 자이나 수행체계의 내용을 검토함으로써 무색정을 통해 불교 수행에 추가된 이질적인 요소들을 고찰할 것이다. 이를 통해 불교가 그러한 요소들을 받아들인 의도에 대해 조금이나마 접근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본 논의는 무색정의 도입을 통해 4선에 추가된 요소와 의도를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그 방법은 자이나의 유사 개념과 비교하여 고찰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전 내에 있는 4선․4무색정의 용례와 발전과정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니카야에 자주 등장하는 정형구6)를 통해 4무색정의 이질적인 요소를 살피고 그것을 자이나 수행체계와 비교할 것이다.
한편 자이나에 4무색정과 정확히 일치되는 수행론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자이나 수행론의 몇몇 요소들이 무색정 개념과 비교될 수 있다. 따라서 전체적인 수행체계, 혹은 수행의 개념에 대한 고찰을 통해 무색정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요소를 탐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자이나의 가장 대중적인 경전인 Tattvārtha-Sūtra(TS.)를 주로 참고했다.
Ⅱ. 본론
1 초기불교 수행과 4선
무색정이 4선과 다소 이질적이라는 것은 곧 무색정이 초기불교 수행론에 비해 이질적이라는 의미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초기불교 수행론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된 것인지, 4선은 그에 부합하는 지를 우선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브롱코스트(Bronkhorst)는 인도의 수행전통을 불교와 불교 외, 즉 자이나 및 힌두전통7)이라고 하는 두 분류로 구분했다.8) 이러한 분류는 기존의 인도 수행전통에서 불교수행을 분리해낸 것과 마찬가지이다. 즉 붓다에 의한 불교는 기존의 인도전통에 비해 수행에 대한 이해가 전혀 다르다.9)
자이나 및 힌두전통은 윤회와 고통의 원인이 업이라고 설명한다. 이 업과 윤회의 주체는 영혼, 혹은 자아로 묘사되는 실재이며, 윤회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혼은 행위를 중지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고행, 명상, 자아나 실재에 대한 지식 등을 통해 도달할 수 있다. 즉 그들에게 있어 수행이란 순수하고 본질인 영혼을 외부의 세계들로부터 분리해내는 수단 및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붓다는 자아(ātman) 등의 실재를 부정하고, 14무기설에서 알 수 있듯이 현상 세계에서의 고뇌의 해결에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경향은 우파니샤드의 대주석가 야갸발키야(yājñavalkya)의 사상과 비교되곤 한다.10) 야갸발키야는 아뜨만을 윤회의 주체로서의 존재보다 행위와 욕망으로서의 존재로 인식했다. 이것은 궁극적인 실재로서의 아뜨만이 아닌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아뜨만으로서 그것의 不死가 야갸발키야의 지향점이다.11) 또 그는 이러한 현상적 아뜨만을 5감과 心 (manas)의 6가지의 성질로 분석했다. 이는 붓다의 견해와 흡사하다.
정리하자면 붓다는 절대적인 아뜨만의 존재는 완전히 부정하고 주관적이며 상대적인 아뜨만은 5온의 결합 형태로 인식되는 것만 가능할 뿐 실재화하지 않는다. 외부세계 역시 12處 간의 觸에 의한 인식으로써 드러날 뿐 실재하지 않는다. 즉 일체는 인식 상태로만 그 존재를 이해할 수 있으며 그러한 인식은 주관적인 것으로서 개인의 심리현상에 국한된다. 따라서 개인의 고통은 욕망에 의한 것이며, 그것은 주관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소멸과 소멸했다는 인식 역시 주관적인 것이다. 그러한 소멸에 대해 모두에게 공통되는 방법은 12처 간의 촉을 끊는 것이다.12)
붓다의 이러한 견해는 4선의 과정에서 잘 드러나며, 붓다의 해탈지에 관한 슈미트하우젠과 페터의 분석에서 역시 ‘4선을 통한 누(漏)의 멸’이라는 결론을 얻는다.13)
2. 4선과 4무색정
4선과 4무색정에 관한 팔리 경전 내에서의 내용에는 그 이름과 순서가 모두 동일하다. 이것은 팔리 경전이 성립된 때에는 이들의 내용이 이름도 순서도 이미 확립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14) 이 점은 그 각각의 정형구와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확인할 수 있다.
우선 4선의 정형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제1선 - 실로 감각적인 욕망에서 분리되어, 선하지 않은 법에서 분리되어, 尋(vitakka)과 伺(vicāra)를 지니고, 분별로부터 일어난 기쁨(pīti)과 행복(sukha)이 있는 첫 번째 선정에 들어가 머문다.
② 제2선 - 심과 사에 대해 억제하여 내적인 평온과 마음이 집중된 상태(心一境性)로서 심과 사가 없고, 삼매로부터 일어난 기쁨과 행복이 있는 두 번째 선정에 들어가 머문다.
③ 제3선 - 기쁨이 사라지고 평정이 머물고 sati를 지니고 바른 앎을 지니고 신체에 의한 행복을 감수하는, 고귀한 이들이 ‘평정하고 sati를 지니고 행복을 느낀다.’라고 말하는 세 번째 선정에 들어가 머문다.
④ 제4선 - 행복을 버리고 고통을 버려 이전의 쾌락과 슬픔에서 벗어나 고통도 없고 행복도 없는 평정과 sati가 완성된 네 번째 선정에 들어가 머문다.15)
이상에서 4선에 대한 기술은 각 선정의 상태에 대한 묘사를 중심으로 한다고 파악된다. 각각의 과정의 진행은 이전 상태에 있었던 어떤 느낌이 소멸하고 다음 단계의 느낌을 인식한다.
①의 설명에서 수행자는 초선에 들기 위해서 감각적인 욕망과 선하지 않은 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선하지 않은 법이란 외도들에 대한 믿음이나 잘못된 기존 관념들로 이해되며 감각적인 욕망은 말 그대로 감각의 만족을 향한 욕망과 좌절을 말한다. 이 두 가지에서 벗어나 수행자는 초선에 드는데 이 변화의 순간의 상태가 有尋, 有伺이다. 즉 심과 사가 앞의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별을 통해 기쁨과 행복이 일어난다. 초선은 어떤 선정의 수승한 상태라고 보기에 부족해 보인다. 사유와 성찰을 통해 분별하여 탐욕과 고뇌를 끊고 그로 인한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상태로서 다시 말해 2선 이후에 진행될 고도의 선정 체험을 위한 예비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수행자에게 심사의 분별은 더 이상 필요 없다. 이러한 심과 사의 작용이 멈추면서 더 깊고 고요한 정신적인 집중 상태에 이른다. 여기서부터가 본격적인 선정 혹은 삼매 상태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삼매로부터 일어난 기쁨과 행복이 수행자를 감싼다.
다음으로, 삼매에 든 수행자에게 발생했던 기쁨이 우선 사라지면서 평정(upekkhaka)과 집중 상태를 계속 관찰하는 sati라는 앎이 항상 한다. 기쁨에서 평정 등의 교체는 2선의 기쁨이 감정적인 것이었고 이제 모든 감정이 사라지고 평정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직 남아 있는 행복은 신체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이는 감각을 만족시키는 행복이 아니라 육체의 편안함을 말한다. 즉 1,2선에서 각각 분별과 삼매를 통해 일어난 pīti와 sukha는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만족 상태에 도달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마지막의 4선은 육체적인 행복마저 버려진 평정과 사티의 유지 상태로 4선에 대한 기술은 끝이 난다.
이상과 같이 4선은 감정적이고 육체적인 느낌들에 대한 인식에서 벗어나 평정과 사티를 확고히 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Heiler 등은 4선을 ‘감각들의 정복(reduction of feelings)’16)이라고 이해한다.
4무색정에 대한 정형구는 다음과 같다.
ⓐ 空無邊處(ākāsānañcāyatana) - 형체에 대한 관념(saññā)을 초월하고서 장애에 대한 관념을 버리고서 다양성에 대한 관념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서(amanasikāra) ‘허공은 끝이 없다’라고 [관념화(saññā)한]17) 공무변처에 들어가 머문다.
ⓑ 識無邊處(viññāṇañcāyatana) - 완전히 공무변처를 초월하고서 ‘의식은 끝이 없다’라고 [관념화(saññā)한] 식무변처에 들어가 머무른다.
ⓒ 無所有處(ākiñcaññāyatana) - 완전히 식무변처를 초월하고서 ‘어떠한 것도 없다’라고 [관념화(saññā)한] 무소유처에 들어가 머무른다.
ⓓ 非想非非想處(nevasaññānāsaññāyatana) - 완전히 무소유처를 초월하고서 비상비비상처에 들어가 머무른다.18)
4무색정은 4선 만큼 자세한 묘사가 없다. 단지 이전단계를 초월함으로써 다음 단계로 올라간다고 설명한다. 우선 4선에서 무색정으로 넘어오기 위해서 3가지에 대한 관념(saññā)을 버려야 한다. 형체(rūpa), 장애(paṭigha), 다양성(nānatta)이 그것이며 이 설명을 통해 4선에는 이와 같은 인식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여기서 형체는 물질, 혹은 우리가 시각을 통해 인식되는 대상을 뜻한다. 그리고 장애는 색, 성, 향, 미, 촉을 통한 인식이라는 Vibhaṅga의 설명을 통해19) 신체의 감각을 통한 인식이며, 이는 곧 형체와 마찬가지로 물질세계에 대한 인식이라고 이해된다. 마지막으로 다양성은 감각을 통한 인식이기 때문에 생기는 개념으로서 물질세계에 대한 감각을 통한 이해는 다양성을 초월할 수 없다. 즉 이 세 가지는 우리의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한 인식을 세 가지 측면에서 지칭하는 것으로서 각각은 인식 대상, 인식 기관, 인식 상태를 의미한다.
이를 통해 4선은 물질세계(色界)로 국한되어 버린다. 4선에서 멸해진 漏 또한 색계의 것으로 격하된다. 하지만 무색정이 이후에 추가된 것을 전제한 본고에서의 이러한 해석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무색정의 정형구에는 이외에 다른 구체적인 설명이 없으므로 4선과 비교하여 드러나는 모호성을 검토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모호성은 3가지로 지목할 수 있다.
첫째, 각 선정의 명칭이다. 4선의 명칭은 ‘첫 번째 선정(paṭhamaṃ jhānaṃ)’부터 ‘네 번째 선정’까지 순차적인 의미 외에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이와 달리 4무색정의 명칭은 각 단계에 대한 특징을 설명하며 그러한 특징의 處(āyatana)라는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의 處는 영역, 혹은 界를 가리키며, 마치 외부에 존재하는 어떤 세계를 상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空無邊處에서 非想非非想處에 이르는 과정을 이전 영역을 초월하여 다음 영역으로의 이동을 통해 진행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4선이 수행자의 심리 상태를 중심으로 한 것과 대비된다.
둘째, 허공, 의식, 所有, 非想非非想의 관계이다. 우선 허공이 무한하다는 것은 물질세계에 대한 관념을 뛰어넘어 ‘허공이 무한하다’라는 관념적 세계에 들어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공간적인 무한함에 대한 인식이며, 이를 초월하여 ‘의식이 무한하다’라는 관념적 세계에 들어간다. 여기서 ‘의식이 무한하다’는 것은 의식의 일어남이 끊임이 없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공간적으로 그것을 확대하여 의식자체가 없어진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튼 이것을 초월하여 ‘아무것도 없다’라는 관념적 세계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 모든 관념적 세계를 초월한 비상비비상처에 들어간다. 이들의 관계가 선정이 점점 깊어지는 추이를 설명한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전환되는 각각의 개념 간에 일관성 내지 어떤 동일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田上太秀는 이 4단계에 대해 “인도인들의 분류벽, 열거주의의 산물로 그 내용에 중요한 의미는 없다. … 4무색정의 체계는 각각이 독립적으로 행해지던 선정설을 통합한 것이다.”20)라고 말한다.
셋째, saññā의 의미에 대한 것이다. 4무색정에서 나타나는 saññā의 용례는 2가지이다. 하나는 4선에서 무색정으로 전환될 때 사라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상비비상처에서 사용되면서 이전의 3단계에 대한 인식을 설명하는 것이다. 슈미트하우젠에 따르면 saññā의 의미는 어떤 대상을 인식함에 있어서 ①그것의 독특한 특성을 통한 인상을 이미지의 형태로 떠올리거나 이해하는 것을 통한, 혹은 ②주관적이거나 일반적인 개념들의 적용을 통한 대상에 대한 명확하고 뚜렷한 인식 혹은 통각이다.21) 여기서 ②는 기존에 가진 기억이나 개념들을 통해 대상을 언어로써 이해하고 인식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반면 ①은 감각을 뛰어넘어 정신적으로 이미지나 관념이 떠오르면서 인식되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마치 꿈의 세계 같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이해에서 볼 때 공무변처에서 사라지는 saññā는 ②의 의미로 보이고, 비상비비상처의 saññā는 ①과 ②의 의미 모두를 포함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22)
3. 무색정에 드러나는 자이나적인 요소
이상과 같이 무색정은 4선의 체계에 비해 모호함과 이질성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4선에 추가된 무색정이 4선의 묘사들과 다른 개념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렇게 추가된 개념들이 의도하는 바를 자이나 수행과의 비교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1) 자이나의 수행체계
1) 업에 대한 이해
우선 자이나의 수행체계를 이해하려면 그들의 업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극심한 고행주의로 알려진 자이나교는 독특한 업론으로도 유명하다. 그들은 업을 물질로 파악하며 입자처럼 스스로 활동한다. 그들이 설명하는 업물질에 의한 영혼의 속박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자이나는 무한한 공간을 미세점(pradeśa)이라고 하는 최소한의 점으로 나누고 있다. 다수의 영혼23)은 각각 1 pradeśa를 점유한다. 하지만 형체가 없어서 눈으로는 볼 수 없다. 여기에 업물질이 달라붙어 영혼과 결합하게 되는데, 이것을 業身(karma-sārira)이라고 한다. 이 업신이 자궁으로 들어가 여러 형태의 신체를 받아 세상에 나오게 된다. 업신은 업물질에 갇힌 영혼을 말한다. 이것은 자유로웠던 본래의 영혼과는 달리, 결합된 물질을 통해 활동하며, 새로운 업의 유입(āsrava)을 초래한다.
이와 같이 업의 부착을 불러 속박을 일으키는 원인은 미망(mithyātva), 무절제(avirati), 영적 태만(pramāda), 오염(kaṣāya, 번뇌), 영혼의 진동(yoga)이라는 5가지이다.24) 이 가운데 영혼의 진동(yoga)25)이 가장 근원적인 것이다. 진동은 몸(身)과 말(口), 마음(意)을 통해 행위를 일으키는 근본적인 활동으로서 자이나에서 수행은 업물질의 유입을 차단하여 그것을 제거해나가는 과정이며 종극에는 身口意의 활동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26).
2) 명상(dhyāna)과 그에 따른 영혼의 상태(guṇasthāna)
자이나 역시 가장 중요시하는 수행법은 명상(dhyāna)이다. 자이나교에서 명상(dhyāna)이란 ‘1 antarmuhūrta(약 48분)의 시간까지 하나의 대상에 생각을 집중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27) 그것은 첫째, 불쾌한 것에 대한 명상(ārta-dhyāna), 둘째, 유해한 것에 대한 명상(raudra-dhyāna), 셋째, 진리에 대한 명상(dharma-dhyāna), 넷째, 빛나는 것에 대한 명상(śukla-dhyāna)의 4가지로 나뉜다.28) 이러한 분류는 집중의 대상을 어떤 것으로 삼느냐에 따른 것이며, 이 각각은 다시 대상을 4가지로 세분화하고 있다.29)
첫째, ārta-dhyāna는 괴로운 감정과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욕망에 대해 관찰하는 것이다. 세부 대상은 ⓐ불쾌한 것과의 접촉과 그것의 빠른 제거(aniṣṭa-saṃyogaja), ⓑ행복한 것과의 분리와 재결합(viparīta), ⓒ질병과 고통에 의한 괴로움,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빠르게 회복되는 것(vedanāya), ⓓ감각적인 즐거움에 대한 동경(nidāna)의 4가지이다.30)
둘째, raudra-dhyāna는 자이나의 五誓 중 네 가지를 어기는 것, 즉 ⓐ상해(hiṃsānanda), ⓑ거짓말(mṛṣānanda), ⓒ도둑질(steyānanda), ⓓ부의 축적(viṣaya-saṃkṣaṇānanda)에 대한 명상이다. 이렇게 자신이 계를 범하는 상황을 명상함으로써 그것이 얼마나 나쁜지에 대해, 또 그에 따른 업의 축적으로 인해 윤회에서 고통 받을 자신에 대해 명상하는 것이다.
셋째 dharma-dhyāna는 ⓐ9가지 실재에 대한 Jina의 가르침(ājñā-vicaya), ⓑ고통의 근원(apāya-vicaya), ⓒ업의 결과(vitāka-vicaya : 업 물질의 유입과 결합, 제거), ⓓ우주의 구조(saṃsthāna-vicaya)에 대해서 강하게 집중하는 것이다.31) 이것은 그 대상들에서 알 수 있듯이 세계의 진리에 대한 명상이다.
넷째 śukla-dhyāna는 ⓐ다양한 개념에 대한 명상(pṛthaktva-vitarka), ⓑ단일한 개념에 대한 명상(ekatva-vitarka), ⓒ신비한 힘의 유지, 미세한 움직임의 상태(sūkṣmakriyā-anivartin), ⓓ행위의 완전한 지멸(vyuparatakriyā- anivartin)에 대해 명상한다.32)
이 모든 명상을 마친 수행자는 호흡 등의 신체 유지조차 사라진, 완전한 정지 상태가 된다. 마침내 수량업이 모두 소진되면, 육체의 죽음이 일어난다. 이제 영혼은 육체를 떠나, 최고천(loka-ākāśa)으로 올라간다.33)
이러한 명상들은 자이나에서 설명하는 ‘영혼의 상태들’과 관련하여 그 수승한 단계들과 발전을 같이 한다. 다시 말해 자이나의 명상은 단계적으로 대상에 따라 분류되며 그 각각의 대상을 명상함에 따라 도달하는 영혼의 상태가 바뀐다. 이것을 구나스타나(guṇasthāna)라고 한다.
구나스타나 이론은 영혼을 상태에 따라 다음의 14가지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⑴ 그릇된 견해의 상태(mithyādṛṣṭi), ⑵ 바른 견해를 약간 경험한 상태(sāsvādana), ⑶ 그릇된 견해와 바른 견해가 혼합된 상태(samyagmithyādṛṣṭi), ⑷ 바른 견해를 가졌지만 절제가 없는 상태(aviratasamyaktva), ⑸ 부분적인 절제 상태(deśavirata), ⑹ 태만한 완전한 절제 상태(pramattavirata), ⑺ 태만도 없는 완전한 절제 상태(apramattavirata), ⑻ 새로운 의욕이 일어난 상태(apūrvakaraṇa), ⑼ 해탈을 위한 의욕이 일어난 상태(anivṛtti-karaṇa), ⑽ 근절되지 않은 미세한 오염의 상태(sūkṣma-sāmparāya), ⑾ 오염이 억제된 상태(upaśānta-moha), ⑿ 오염이 지멸된 상태(kṣīṇa-moha), ⒀ 영혼의 진동(yoga)만 남은 해탈(sayoga-kevalin), ⒁ 영혼의 진동까지 사라진 완전한 해탈(ayoga-kevalin). 그리고 이 14번째 단계 이후는 완전한 자유를 의미한다.34)
각 단계들은 앞에서 언급한 속박의 원인 5가지를 제거해가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자이나에서 영혼의 상태라고 설명하는 것은 속박의 원인이 얼마나 제거되었는가 하는 것을 보여준다.
각 영혼의 상태에 진행되는 명상수행은 <표 1>와 같다. ⑴, ⑵, ⑶단계는 자이나에 입문하지 않은 상태로 명상을 수행하기 위한 예비적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표 1> 명상수행과 구나스타나35)
4가지 명상 | 명상의 대상(16가지 명상) | 구나 스타나 |
불쾌한 것에 대한 명상 (ārta-dhyāna) | ⓐ불쾌한 것과의 접촉과 그것의 제거 (aniṣṭa-saṃyogaja) | ⑷,⑸,⑹ |
ⓑ행복한 것과의 분리와 재결합(viparīta) | ||
ⓒ질병과 고통에 의한 괴로움과 빠른 회복(vedanāya) | ||
ⓓ감각적인 즐거움에 대한 동경(nidāna) | ||
유해한 것에 대한 명상 (raudra-dhyāna) | ⓐ상해(hiṃsānanda) | ⑷,⑸ |
ⓑ거짓말(mṛṣānanda) | ||
ⓒ도둑질(steyānanda) | ||
ⓓ부의 축적(viṣaya-saṃkṣaṇānanda) | ||
진리에 대한 명상 (dharma-dhyāna) | ⓐ9가지 실재에 대한 Jina의 가르침(ājñā-vicaya) | ⑺ |
ⓑ고통의 근원(apāya-vicaya) | ||
ⓒ업의 결과(vitāka-vicaya) | ||
ⓓ우주의 구조(saṃsthāna-vicaya) | ||
순수한 것에 대한 명상 (śukla-dhyāna) | ⓐ다양한 개념에 대한 명상(pṛthaktva-vitarka) | ⑻,⑼, ⑽,⑾ |
ⓑ단일한 개념에 대한 명상(ekatva-vitarka) | ⑿ | |
ⓒ신비한 힘의 유지, 미세한 움직임의 상태 (sūkṣmakriyā-anivartin) | ⒀ | |
ⓓ행위의 완전한 지멸(vyuparatakriyā-anivartin) | ⒁ |
3) samudghāta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이나에서는 명상의 단계에 따라 영혼의 상태가 바뀐다. 그리고 각 영혼의 상태의 변화에 대해서도 어떤 물질적인 입자의 이동으로 이해하는데 그것을 samudghāta라고 한다. samudghāta에는 모두 7가지 종류36)가 있는데 이는 수행의 각 단계를 이동할 때 적용된다. 여기서는 그 원리만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우선 samudghāta란 자신의 신체를 버리지 않고 영혼의 한 조각(jīva-piṇḍa)이 신체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말한다.37) 이것은 고도의 집중 상태에서 가능한 것으로서 이렇게 신체를 나온 영혼조각 혹은 자아의 미세점(ātma-pradeśa)을 확장하거나 내던지는 방법으로 명상상태에서의 정신적인 경험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격한 번뇌가 일어나서 신체를 나온 자아의 미세점이 타인을 害한다거나(kaṣāya-samudghāta) 다음 생에 태어날 장소를 확인하고 온다거나 할 수 있다(Māraṇāntika-samudghāta). 그리고 모르는 내용을 스승에게 직접 찾아가 묻고 올 수도 있다(āhāraka-samudghāta).38) 주석서마다 그 해석이 다르긴 하지만 수행을 통한 신통력이나 삼매체험을 물질화된 영혼 입자가 직접 체험한다는 이해로 보인다.
이 중 kevali-samudghāta는 해탈 직전에 수행하는 것으로서 유여열반에 든 영혼이 자신에게 남은 업과 수량업의 길이를 같게 만드는 작업이다. 영혼 조각은 우주만큼 자신의 크기를 확장시켰다가 다시 원래 크기로 돌아오는 작업을 8기(samaya)로 진행된다. 앞의 4기 동안 영혼은 수직으로 길어져 세계(loka)의 끝점까지 늘어난 다음, 다시 사방으로 넓혀 온 세계를 가득 채울 만큼 팽창한다. 그리고 남은 뒤의 4기 동안 앞의 과정을 거꾸로 진행하여 원래 크기로 돌아온다. 자이나에서는 이러한 영혼의 확장이 젖은 옷의 팽창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옷의 노출된 면이 증가할수록 더 빨리 마르는 것처럼 이것은 남은 업물질을 감소시키거나 즉각적인 결과를 낳고 소멸하도록 한다.39)
(2) 무색정에서 드러나는 자이나적 요소
자이나의 수행 원리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원래 순수하고 자유로운 영혼은 업물질이 유입되면서 속박당한다. 명상을 통해 각 단계에서 그에 해당하는 업물질이 분리되어 나가고 점차 다시 가벼워진 영혼은 위의 단계로 상승한다. 그리고 각 단계의 명상은 영혼조각이 직접 신체를 빠져나와 그 단계의 명상과 그때 일어나는 인식 및 감정을 직접 체험하고 돌아온다. 명상의 마지막 단계에서 영혼 조각은 자신을 무한히 확장하여 남아있는 업물질을 모두 분리시키고 신체로부터 완전히 분리된다. 이것은 육신의 죽음이며, 영혼의 해탈이다.
앞에서 살펴본 무색정이 갖는 모호함은 첫째, 외부 영역에 대한 설정, 둘째, 허공, 의식, 所有, 非想非非想의 관계, 셋째, saññā의 의미이다. 이러한 요소가 자이나의 수행 원리에서 어떻게 설명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4무색정을 자이나에 적용해 보도록 하자.
우선 허공이 무한하다는 인식은 4선에서 형체, 장애, 다양성에 대한 想이 사라지면서 도달하는 것이다. 여기서 다양성은 자이나의 순수에 대한 명상 중 첫째 명상이다. 이것은 대상에 대한 집중을, 존재의 무수한 형태의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대상을 계속해서 옮겨 다니며 집중한다. 이때의 대상이 되는 존재는 무한하고 따라서 허공이 무한하다는 인식에 도달할 것이다. 불교에서 다양성을 초월하여 공무변처에 이르는 것은 자이나에서 śukla-dhyāna의 ⓐ다양한 개념에 대한 명상을 통해 ⑿구나스타나, 즉 모든 오염(번뇌)을 소멸한 영혼의 상태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는 4선에서 漏를 소멸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해된다.
그 후의 의식이 무한하다는 인식은 ⓑ단일한 개념에 대한 명상을 통해 도달되는 ⒀구나스타나 상태로 이해된다. 이는 ‘한 면에 적용되는 개념에 대한 명상’이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이전의 다양한 개념에 대한 명상이 대상을 옮겨가며 진행한 것이라면, 이것은 하나에 집중하여 그 집중을 점점 더 깊이 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깊어지는 의식은 결국 무한하다는 인식에 도달하고 이것이 ⒀구나스타나 상태이다.
이제 수행자에게는 호흡을 비롯한 신체의 기본 대사만이 남아 있는데 그러한 미세한 움직임에 집중하여 그것마저도 모두 중지되는 ⒁구나스타나 상태에 이른다. 이 상태의 영혼은 모든 업물질로부터 분리되고 신체의 죽음을 맞는다. 이는 무소유처에 적용된다고 생각하는데, 자이나 식으로 말하면 무소유란 영혼이 머물던 신체를 떠나 어떠한 업물질도 더 이상 가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이제 영혼은 모든 행위의 완전한 지멸을 확인하고 자유로운 상태가 되어 최고천에 머문다. 즉 열반 그 자체를 말한다. 이러한 영혼의 상태는 비상비비상처로 이해할 수 있다.
<표 2> 자이나 명상과 불교 무색정
자이나 śukla-dhyāna와 구나스타나 | 불교 4무색정 | |
śukla-dhyāna | ⓐ다양한 개념에 대한 명상 | 공무변처 |
영혼의 상태 | ⑿ 오염이 지멸된 상태 | |
śukla-dhyāna | ⓑ단일한 개념에 대한 명상 | 식무변처 |
영혼의 상태 | ⒀ 영혼의 진동(yoga)만 남은 해탈 | |
śukla-dhyāna | ⓒ신비한 힘의 유지, 미세한 움직임의 상태 | 무소유처 |
영혼의 상태 | ⒁ 영혼의 진동까지 사라진 완전한 해탈 | |
śukla-dhyāna | ⓓ행위의 완전한 지멸 | 비상비비상처 |
영혼의 상태 | 최고천으로 승천 |
이상을 통해 앞에 제시한 무색정의 모호성 중 첫째와 둘째는 자이나 체계에서는 무리 없이 적용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합성 때문에 무색정이 자이나의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게다가 위에서 활용한 자이나의 명상체계가 무색정보다 앞선 것이라는 근거 역시 현재는 없다. 단지 자이나와의 이러한 조화가 영혼의 역할이라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자이나에서 속박된 영혼은 무거운 상태로서 수행을 통해 업물질이 제거되면 점점 가벼워지고 14단계의 구나스타나 단계를 따라 상승한다. 결국 모든 업물질이 떨어져나가면 최고천까지 올라가 머물게 된다. 무색정의 각 단계의 영역은 4선의 ‘감각들의 정복’과정과 달리 선정을 통해 도달하는 단계, 혹은 상태에 대한 개념인 것이다.
그리고 각 단계에서 진행되는 명상은 samutghāta를 통해 영혼 조각이 직접 신체 밖에 나가서 체험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세 번째 문제, saññā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무색정 개념이 4선에 비해 이질감을 주는 이유는 영혼, 즉 수행의 과정을 이끄는 주체에 대한 문제 때문이다. 자이나에서 영혼은 samutghāta를 통해 수행 및 삼매상태, 신비체험 등을 직접 경험한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이러한 실재에 대해서 부정하기 때문에 수행자의 삼매체험을 saññā라는 관념화, 혹은 이미지화를 통해 인식한다고 생각한다. 이때의 saññā는 슈미트하우젠의 ①의 의미로 한정된다.
즉 무색정의 단계는 수행자의 삼매체험을 설명하는 것이고 그것이 갖는 모호함은 실재로서의 주체의 부정 때문이다.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삼매체험을 이미지, 혹은 관념으로서 떠올려 정신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짐작 할 수 있다.
Ⅲ. 결론
지금까지 무색정이 4선에 비해 이질적인 요소에 대해 그 양상을 자이나 수행과의 비교를 통해 살펴보았다. 4선은 감정적이고 육체적인 느낌들에 대한 인식에서 벗어나 평정과 사티를 확고히 하는 과정을 그 심리적인 추이로써 묘사한 것이다. 반면 무색정은 4선이 심리 상태를 묘사하는 것과 달리 어떤 특징을 가진 외부 영역에 들어간다고 묘사한다. 그리고 그 각 단계들 간의 연관성이나 그 특징들에 대한 인식(saññā)에 대해 모호함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모호성을 자이나 수행 체계에서 적용한 결과, 그것은 영혼의 역할을 배제한 데서 발생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불교가 영혼 등의 존재를 부정하는 가운데 4선에 삼매체험을 추가하려한 시도에서 그러한 모호성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요가수트라 또한 좋은 예가 된다. 요가수트라의 4종의 有想三昧(심, 사, 환희, 我見) 개념이 불교의 4선 체계의 반영이라는 점40)은 본고의 논의, 즉 4선은 단순히 ‘감각들의 정복’과 사티 등의 완성을 위한 것이라는 입장에서 볼 때 꽤나 흥미롭다. 불교에서 4선의 심, 사, 기쁨, 행복 등의 개념은 선정상태의 진행에서 발생하고 사라지는 심리적인 추이를 묘사한 것이다. 반면 요가의 유상삼매는 집중의 대상에 따라 삼매의 질을 구분한 것이다.
위의 2.1을 참고하면 이러한 견해 차이는 불교식의 수행개념을 자이나 및 힌두전통 식에서 이해하는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요가에서 4선을 삼매의 분류로 체계화할 수 있었던 것은 수행의 주체와 대상이라는 분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붓다의 4선 체계는 그것을 수행하는 주체나 대상이 되는 어떤 존재를 상정하지 않는다. 그러한 존재들은 일시적이고 주관적으로 단지 ‘인식’될 뿐이다.
결국 무색정은 4선을 통해 완성되는 주관적인 심리적 고뇌의 극복에 덧붙여, 삼매체험을 통한 열반 개념을 체계화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다른 수행전통들이 대상에 따라 삼매 체험을 분류한 것과 달리 무색정은 ‘어떤 것에 대한 인식’이라는 관점에서 묘사되어 있다. 이는 수행을 이끄는 주체 혹은 대상의 존재를 배제하고 정신적인 관념, 혹은 이미지로써 삼매체험을 설명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정리하자면, 2.1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붓다의 해탈에서 수행의 목적은 현상적인 개인의 고통, 즉 욕망을 멸하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설해진 4선의 체계는 붓다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4선을 통한 평정과 사티의 완성은 일부의 수행자들에게는 유지하기 힘든 것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4선에 덧붙여 해탈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으며, 그것은 초기 경전 내에서 2가지 경향으로 나타난다. 푸셍이 합리주의적 경향과 신비주의적 경향이라고 표현한 것이 그것이다. 전자는 해탈을 지적인 작업을 통해 인식함으로써 도달하는 것으로 보고, 후자는 몰아적인 수행을 통해 열반계를 신체로써 접촉하는 것이라고 간주한다.41)
4선 이후에 이러한 경향이 추가되는 예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붓다의 해탈지에 대해 MN No. 36에서는 4선의 완성 후 3明의 획득을 통해 모든 루를 소멸한다고 하고, MN No. 26에서는 4선을 완성한 후 4무색정을 거쳐 상수멸에 도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무색정이 불교 내의 신비주의적 경향의 수행자들에 의해 추가된 것이라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으며, 목적은 ‘몰아적인 수행을 통한 열반’ 체계의 강화일 것이다. 그리고 무색정의 내용들은 4선에 삼매체험을 추가함으로써 그들의 견해를 완성시키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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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국대 인도철학과 박사과정
2) Fox(1989: 87~89)
3) 水野弘元(1981: 77~78)
4) 무색정이 적어도 붓다의 수행도가 아니라는 것은 브롱코스트가 4정려 뒤에 4무색정이 뒤따르는 형태는 가장 오래된 아비달마 리스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해 입증했다. 게다가 앙드레 바로는 붓다가 출가 후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를 닦았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 김성철(2004: 12)
5) Bronkhorst(1993: 87)는 자이나 초기 명상 중 무한에 대한 숙고가 공무변처, 식무변처에 대응한다고 본다.
6) 4무색정과 관련된 개념인 8해탈과 상수멸 등은 본고의 범위 외의 것으로써 여기서는 다루지 않는다.
7) 고행전통, 즉 슈라마나(śramana)를 말하며 Bronkhorst는 이들을 주류(main stream)라고 표현한다.
8) 이하의 내용은 Bronkhorst(1993) 참조.
9) 水野弘元(1981: 82)은 선정설에 대해 붓다의 원시불교만이 관념적 합리주의로 일관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불교 외의 다른 사상을 물론 부파 이후의 불교까지도 선정에 대한 구체화, 사실화 작업 때문에 불합리한 양상에 이르렀다고 평한다.
10) 이하 박태섭 역(1991: 196~204), Bronkhorst(1993: 112~123) 참조.
11) 이태승(1985: 57~67)
12) 이권학(1994: 60)
13) 김성철(2004: 11~14) 참조.
14) 藤本晃(2005: 114)
15) ①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②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③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ati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ṃvedesiṃ yaṃ taṃ ariyā ācikkhanti: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④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ṃ atthagamā adukkhaṃ asukhaṃ upekkhāsatipārisuddhi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16) Kuan(2005: 285) 재인용.
17) saññā에 대한 번역어 선택과 ti에 saññā를 첨가한 이유는 Schmithausen(1981: 215) n.51 참조.
18) ⓐ sabbaso rūpasaññānaṁ samatikkamā paṭighasaññānaṁ atthagamā nānattasaññānaṁ amanasikārā ananto ākāso ti ākāsānañcāyatanaṁ upasampajja viharati ⓑ abbaso ākāsānañcāyatanaṁ samatikkamā. anantaṁ viññāṇan ti viññāṇañcāyatanaṁ upasampajja viharati ⓒ sabbaso viññāṇañcāyatanaṁ samatikkamā na ’tthi kiñcīti ākiñcaññāyatanaṁ upasampajja viharati ⓓ sabbaso ākiñcaññāyatanaṁ samatikkamā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upasampajja viharati
19) Bucknell(1993: 384)
20) 田上太秀(1987: 51~52)
21) Schmithausen(1981: 215) n.51.
22) 이것은 4선에 뒤따르는 형태의 4무색정에서 파악되는 saññā의 의미이다. saññā 해석의 다른 용례에 대해서는 이영진(2005) n.43. 참조.
23) 자이나의 영혼(jīva)은 개인의 자아 개념으로 아뜨만(ātman)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다른 인도철학 학파들의 아뜨만 개념과 달리 그들의 아뜨만은 궁극적인 유일자도 관조자도 아닌 세계를 구성하는 다수의 개아이다.
24) mithyādarśanāviratipramādakaṣāyayogā bandhahetavaḥ / TS. 8.1.
25) yoga의 일반적인 의미는 ‘결합’이지만, 자이나에서는 속박을 초래하는 양상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E. B. Cowell은 ‘impulse’(충동, 자극), J. L. Jaini 등은 ‘vibration’(진동, 동요), Mardla 등은 ‘activity’(활동, 흔들림) 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또 金倉圓照는 作爲라고 번역한다. 이처럼 단순한 행위나 활동 자체를 말한다기보다는 이것을 일으키는 어떤 작용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본고에서는 영혼이 업물질의 유입을 초래하는 모양을 연상하여 ‘진동’이라는 표현을 선택했다.
26) 이것은 궁극적으로 신체의 죽음을 의미한다.
27) uttamasaṃhananasyaikāgracintānirodho dhyānam āntarmuhūrtāt // TS. 9.27.
28) ārtaraudradharmaśuklāni // TS. 9.28.
29) 이하의 서술은 Jaini(1990: 251~273) 참조.
30) ārtamamanojñasya samprayoge tad viprayogāya smṛtisamanvāhāraḥ // viparītaṃ manojñasya // vedanāyāśca // nidānaṃ ca // TS. 9.30~33.
31) ājñā'pāyavipākasāsthānavicayāya dharmam apramattasaṃyatasya // TS. 9.37.
32) pṛthaktvaikatvavitarkasūkṣmaktiyāpratipātivyuparataktiyānivṛttīni // TS. 9.41.
33) Jaini(1990: 270)
34) mithyātvaṃ sāsanaḥ miśraḥ aviratasamyaktvaṃca deśavirataśca / viratāḥ pramattaḥ itaraḥ apūrvaḥ anivṛttiḥ sūkṣmaśca // upaśāntaḥ kṣīṇamohaḥ, sayogakevalijinaḥ, ayogī ca / caturdaśa jīvasamāsāḥ krameṇa siddhāśca jñātavyāḥ // GS.jk. 9~10.
35) 표의 내용 중 dharma-dhyāna까지의 명상과 구나스타나와의 관계는 TS. 9.35~37의 내용을 참조한 것이고, śukla-dhyāna와 구나스타나 각 단계의 관계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松濤誠廉(1967a: 233) 참조.
36) ①vedanā-samudghāta, ②kaṣāya-samudghāta, ③vaikriya-samudghāta, ④Māraṇāntika-samudghāta, ⑤taijasa-samudghāta, ⑥āhāraka-samudghāta, ⑦kevali-samudghāta. 이 7가지는 Ṭhāṇamgasuttam 등의 초기 자이나 경전에 열거되어 있지만 ⑦을 제외하고는 그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나머지 6가지에 대해서는 후대의 주석가들이 추가한 내용이다. - 松濤誠廉(1967b: 253)
37) 松濤誠廉(1967b: 254) 재인용.
38) 松濤誠廉(1967b: 254~258)
39) Tatia(1955: 280), Jaini(1990: 268~269).
40) 이하 정승석(2005: 164~17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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