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장과 조계종법의 이해
(이 연구는 2013년도 조계종 교수아사리 연구비 지원에 의한 연구물임.)
임경미(원영)/조계종 교육아사리
• 목 차 •
Ⅰ. 들어가는 말
Ⅱ. 율장과 조계종법의 틀
1. 율장의 구성 체계
2. 조계종법의 구성 체계
Ⅲ. 율장과 조계종단의 법
1. 계(界)에 의한 승가의 개념차이
2. 사의(四依)를 기본으로 하는 생활방침
3. 수계 및 교육에 관한 규정
4. 포살과 화합승가
5. 범죄행위에 대한 징계규정
Ⅳ. 나오는 말 - 율과 종법에 대한 논의
한글요약
불교가 인도의 토양에서 자라나 보편적인 세계 종교로 자리 잡은 지 어언 2600년이다. 최초의 불교는 새로운 공동체의 형성이라는 점에서 당시 인도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종교였다. 그렇게 불교가 출가 수행자들의 공동체를 이루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종교 공동체가 지금까지도 ‘승가(僧伽, Saṃgha)’라고 하는 특수종교집단의 형태로 유지 전승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수행공동체를 가리키는 이 ‘승가’라고 하는 단어에는 ‘어떤 목적을 위해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공동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처음에는 불교와 무관한 용어에 불과했으나, 점차 불교공동체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그러한 승가내부에는 조직을 구성하는 출가자의 존재가 있다. 승가구성원들은 세속의 번잡한 삶으로부터 벗어나 ‘출가(出家)’라고 하는 행위를 통해 승가 내부로 들어왔다. 이때부터 출가자들은 승가의 규율에 관한 것들을 익히고 실천하며 일상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이렇게 출가자가 승가 내부에서 일상 수행생활을 하는데 있어 행동규범의 기준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율장(律藏)’이다. 따라서 이 율장에는 2600년전 인도의 생활상이 그대로 들어 있으며, 그 시대와 사회상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부처님 당시의 온갖 상황과 사회상을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는 율장이기에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그에 대한 고민도 점점 깊어갔다. 율장의 현실 적용에 관한 문제가 그것이다. 율장에 관한 논쟁은 길고긴 불교사 위에서 분열을 초래하기도 했고, 때로는 정체성을 가름하는 커다란 이슈로 등장하게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본고에서는 지금의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을 규율하고 있는 몇 가지 율과 종법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21세기 조계종단에는 현대에 맞는 율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단순히 지금의 종헌종법에만 의존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현재의 종헌종법은 장점도 많지만 여러모로 소략한 내용과 형식으로 되어 있어 많은 개선과 보완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 시대 출가자들은 종헌의 문제점을 파악하여 합리적으로 현대사회에 맞게 효율적인 법령들을 율에 맞게 제정·개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진정 시대에 맞는 변화와 압축의 힘은 본질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본래의 의도를 더욱 또렷하게 살려주는 법이다. 그러니 과거의 율장만을 강조하거나 현대의 종법만을 중시해선 안 된다. 어느 한쪽만을 지팡이로 삼아 의지할 일은 아닌 것이다. 현대에는 지금 시대에 맞는 규율과 제도가 필요하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지금 현재 드러나 있는 현상의 난제들을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
Ⅰ. 들어가는 말
어느 나라든지 그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면, 종교에 영향을 받은 자기들만의 고유한 법문화라는 것이 있었다. 인도에서는 베다 시대 이후로 무려 2천년 넘게 오늘에 이르기까지 카스트제도가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로마법의 경우에는 기독교의 역사가 늘 함께 해왔고, 중국에서는 한대(漢代) 이후로 청대(淸代)까지 유교사상이 제도화됨으로써 관료사회를 체계화시키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국가에 영향을 주어 한국은 삼국시대 이후로 유교적 정신풍토를 바탕으로 아직도 사회질서가 유지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법의 역사와 문화는 국가별로만 차이나는 것이 아니다. 종교 또한 마찬가지다. 본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불교의 율장과 현대사회의 조계종법만 해도 그러하다. 초기의 불교승가는 출가자의 일상생활과 승가운영을 원만히 운영하기 위해 의식과 규칙을 제정하고 율장(律藏)을 정비했다. 거기에는 불교발생지인 인도 내의 전통과 관습, 문화 등이 적절하게 융합해가면서 자신들의 땅 인도에 불교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더해져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율장’을 통해 이러한 승가운영체계를 갖춘 불교가 인도의 토양에서 자라나 보편적인 세계 종교로 자리 잡은 지 어언 2600년, 그 사이 불교는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다양한 문화와 전통을 접했고, 그에 맞게 변화하며 대응해갔다. 무엇보다도 출가불제자인 승가는 자발적 의지에 의해 불교에 귀의하고 승가가 정한 규율을 지키며 생활하려 애썼다. 승가는 자발적 의지에 기초한 제도로써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것으로 성문화된 내부규율을 가진 종교집단이다.
하지만 이처럼 고고한 이상을 품고 자발적 의지를 갖춘 출가자 집단도 붓다의 메시지를 널리 전파하는 과정에서 율장의 적용에 대한 문제들이 적지 않았다. 긴 세월동안 무수히 많은 제국들이 무너지고 다시 세워졌으며 역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흘러갔다. 승가 또한 지역과 시대에 따라 나름대로 율장의 규정을 재해석하거나 새롭게 규정함으로써 특색 있는 승가형태를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중국불교를 보면 가장 잘 알 수 있고, 지금의 한국불교를 보아도 인도불교 초기의 승단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담고 있다. 21세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불교는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불교를 불교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현대불교는 그 나름대로 이 시대에 맞는 구조와 특성,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가 잘 반영되어 나타난 승가 형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인도 땅에서 초기승가가 원만히 운영되기 위해 구성원들의 생활에 율장이 기준으로서 작용했다면, 지금의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단에서는 율 외에도 대승계, 청규, 종헌종법 등이 포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특히 종단을 운영함에 있어서는 종헌종법이 만들어 놓은 제도에 의해 실질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고는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단의 종헌종법과 전통적으로 전승되어오는 율장에 대해 그 규정적 의미와 적용의 차이에 대해 서술하는데 목적을 두고자 한다. 현행 종법이 율과 다르다는 얘기를 많이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그 특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이 미흡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필자 자신 또한 출가자의 한 사람으로서 율장과 종헌종법으로부터 동시에 영향을 받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해 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그에 대한 파악이 가능할 수 있도록 승가 운영원리의 측면에서 몇 가지 규정을 통해 접근해 갈 생각이다.
그를 위해 먼저 조계종법과 율장의 구성 체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하겠다. 그 다음은 현재 조계종단의 구성원을 통제하는 각 규율에 대해 그 상황을 알아보고, 이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 있는 조계종법과 전통승가의 율 내용을 비교해가면서 정리해가도록 하겠다.
Ⅱ. 율장과 조계종법의 틀
1. 율장의 구성 체계
종헌종법 외에 조계종단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 가진 것이 율장이다. 율은 부처님 열반 이래로 수많은 출가자들의 행동양식을 바로잡는 근거가 되었다. 그럼 먼저 율이란 어떤 것인지 그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제자들이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부처님은 원만한 승가운영을 위해 방편을 두셨다. 그들의 욕망을 단속할 규범들을 사건이 생길 때마다 율(vinaya, 律)을 하나씩 제정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隨犯隨制). 그리고 그 내용을 기록한 것을 가리켜 ‘율장(律藏)’이라고 한다.
‘율’은 본래 ‘제거하다․훈련하다․교육하다’라고 하는 의미를 지니는 동사로부터 파생된 명사다. 그 안에는 ‘제거, 규칙, 행위규범’의 의미가 담겨있다. 심신을 잘 다스려 번뇌와 악행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고, 나쁜 습관을 버려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나간다는 의도가 내재되어 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승가운영을 위한 규칙을 일컫는 단어로 쓰이게 되었다.
따라서 <율장>은 일종의 ‘승가규칙의 모음집’이다. 여기에는 출가자들이 개인적으로 지켜야 할 규칙과 공동으로 시행해야 할 규칙으로 나누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지켜야 할 규칙을 ‘학처(學處)’라고 하고, 이를 모은 것을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라고 부른다. 이 바라제목차는 승가 규정에 대한 위반사항을 무거운 죄에서 가벼운 죄까지 나누어 정리하고 있다.
또 공동으로 시행해야 할 의식 및 규칙에는 출가자의 입단의식인 수계(受戒)와 3개월간 한곳에 머물러 수행하는 안거(安居), 율장을 암송하는 포살(uposatha, 布薩) 등이 있다.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의식으로 화합승가의 운영원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승가의 운영법규를 율장에서는 ‘건도(khandhaka, 犍度)’라고 한다. 이는 모두 승가질서를 유지하고 출가자들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보다 나은 종교단체로 나아가기 위해 제정된 승가의 행동규범이다. 즉 율장의 구성은 크게 ‘바라제목차’와 ‘건도’로 나눌 수 있다. 그 구성 체계는 다음과 같다.2)
구분 내용
바라제목차 ① 바라이(波羅夷), 출가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고 추방되는 규정
② 승잔(僧殘), 자격정지, 승가에 남아있을 수 있는 죄 중 가장 무거운 규정
③ 부정(不定), 비구가 여성과 자리를 함께 한 경우의 규정, 비구니에게는 없음.
④ 사타( 捨墮), 소유가 금지되어 있는 물건을 소유했을 경우의 규정
⑤ 바일제(波逸提), 언어, 행동 등 생활규범으로 인하여 생긴 규정
⑥ 바라제제사니(波羅提提舍尼), 타인에게 고백하고 참회하는 규정
구분 장과 조문번호
종단의 이념 제1장 종명 및 종지
제1조(명칭), 제2조(종지), 제3조(소의경전)
제2장 본존, 기원 및 사법
제4조(본존불), 제5조(불기), 제6조(사법), 제7조(법맥상승)
제3장 종단
제8조(구성원), 제9조(승려), 제10조(신도), 제11조(겸직금지),
제12조(권리 의무와 분한, 법계와 의제)
제4장 의식과 법회
제13조(의식), 제14조(법회)
제5장 계단
제15조(전계), 제16조(계단 설치), 제17조(전계대화상), 제18조(3사7증)
중앙기관 구성 제6장 종정
제20조(자격)제19조(지위), 제21조(추대), 제22조(임기),
제23조(권한), 제24조(종회해산권), 제25조(종정예경실)
제7장 원로회의
제26조(구성), 제27조(의장 부의장), 제28조(권한), 제29조(사무처),
제30조(종법위임)
제8장 중앙종회
제31조(입법기구), 제32조(구성), 제33조(자격), 제34조(임기),
제35조(겸직금지), 제36조(의결사항), 제38조(사법절차유제,
제37조(면책특권), 제39조(회기), 제40조(의장 부의장), 제41조(정족수),
제42조(발안권), 제43조(종법안의 공포와 확정), 제44조(예결산), 제45조
(종단 및 원유재산 처분동의), 제46조(종무보고와 종무감사), 제47조
(종무질의), 제48조(불신임 결의 ), 제49조(의원징계), 제50조(종회의원
선거 등)
제9장 총무원
제1절 총무원장
제51조(중앙종무행정기구), 제52조(구성과 총무원장 선출, 부장 임명),
제53조(자격), 제54조(권한)
제2절 종무회의
제55조(구성), 제56조(관장사항)
제3절 각 부서
제57조(조직, 직무범위 등)
제10장 교육원
제58조(교육 행정기구), 제59조(자격과 선출), 제60조(권한)
제2절 교육원 회제1절 교육원장
제61조(구성), 제62조(관장사항)
제3절 각 부서 및 교육기관
제63조(조직 직무범위 등), 제64조(교육기관), 제65조(위원회 연구소)
제11장 포교원
제1절 포교원장
제66조(포교행정기구), 제67조(자격과 선출), 제68조(권한)
제2절 포교원 회의
제69조(구성), 제70조(관장사항)
제3절 각 부서
제71조(위원회, 연구소와 포교사 교육기관), 제72조(조직 직무범위 등)
제12장 호계원
제73조(사법기관의 구성), 제74조(호계원장과 호계위원),
제75조(관장사항), 제76조(위헌 종법 결정 제청), 제77조(비공개 심리),
제78조(변호받을 권리), 제79조(운영)
제13장 법규위원회
제80조(위헌심판기구의 구성), 제81조(정족수)
제14장 선거관리
제82조(선거관리위원회 구성)
제15장 위원회
제83조(소청심사위원회 등)
제16장 본사주지회의
제84조(구성과 운영)
산하기관구성 제17장 교구
제1절 교구종회
제85조(구성), 제86조(의결사항), 제87조(회기), 제88조(종법위임)
제2절 본사
제89조(교구본사의 역할), 제90조(구성), 제91조(본사 주지),
제92조(임기와 권한대행), 제93조(말사주지),
제93조의 2(특별교구)
제18장 사찰
제94조(사찰 창건과 사설사암), 제95조(사찰의 용도), 제96조(사찰 경내),
제97조(경내 건축제한), 제98조(주지), 제99조(주지 임기보장),
제100조(자격요건 등), 제101조(사찰운영위원회)
제19장 수행
제1절 총림
제102조(종합수행도량), 제103조(구성과 지정), 제104조(방장)
제105조(방장 추대와 자격, 임기), 제106조(총림 주지)
제2절 선원
제107조(선원의 종류), 제108조(기본선원), 제109조(종법 위임)
제3절 기타 수행기관
제110조(염불원과 참회원 등), 제111조(종법 위임)
신도 제20장 신도회 및 신도단체
제112조(중앙신도회, 신도단체 등), 제113조(구성과 운영, 등록 등)
사업 제21장 문화, 복지 및 사회 활동
제114조(사회문화사업), 제115조(사회구제활동),
제116조(승려노후복지원), 제117조(불교사회복지원), 제118조(종법 위임)
재정 제22장 재정 및 회계
제119조(종단 재산 전용 금지), 제120조(재산 처분 승인), 제121조(수입),
제122조(회계연도), 제123조(교육 포교예산 우선 원칙),
제124조(재정공개 원칙)
상벌 제23장 포상 및 징계
제125조(포상권자 징계권자), 제126조(포상의 종류), 제127조(징계의 종류),
제128조(사면), 제129조(상벌사항 등)
종헌개정 제24장 종헌 개정
제130조(종헌개정), 제131조(개정효력 제한)
부칙
이상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종헌이 종단의 역사적 연원과 이념에서부터 종단운영 체계 및 법령에 관한 개정에 대해 규정함으로써 조계종단 전체를 총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계종단이 한국불교에서 가지는 역사적 정통성을 강조하는 것은 물론이고, 종단의 현대적 운영체계까지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출가자 개인이 지켜야 할 행동규범뿐만 아니라, 조계종단을 구성하는 사부대중 전체를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출가대중은 비구와 비구니, 재가대중은 우바새와 우바이로 이들만을 사부대중으로 전제로 하고 있다. 행자나 사미, 사미니, 식차마나니는 예비 과정에 있어서 종단의 정식 구성원으로 명시되어있지 않다. 단 승려법 제4조에 의거하여 사미계 이상을 받은 경우 출가대중에 준하며, 행자는 재가대중으로 분류한다.
또 중요한 점은 조계종 전 종도를 대표하는 이들을 선출하여 종도의 입장을 대변하도록 한다는 것이며, 원만한 종단운영을 위해 과반수 참석에 과반수 찬성을 전제로 한 다수결의 원칙을 적용시키도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조계종법의 구성을 살펴보면, 큰 틀은 출가자 개개인의 행위를 제약하는 규범과 사건을 심의하는 규범, 그리고 조직을 운영함에 있어 필요한 조직규범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Ⅲ. 율장과 조계종단의 법
조계종의 구성원으로서 정식 출가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종단이 인정하는 절차와 방식으로 수계를 받아야 한다. 그 정통성의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사분율>이다. 조계종 승려라면 누구나 <사분율>의 내용을 수지해야만 한다. 이것이 정식 승려로서의 첫걸음이다.
조계종 종헌 제9조에 의하면, 조계종 승려라면 반드시 구족계와 보살계를 수지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대승불교국가에 해당하는 한국불교이지만, 대승보살도로서 보살계를 수지함과 동시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율에 근거하여 구족계를 수지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출가자들 사이에서 심리적 갈등이 비교적 큰 것중에 하나가 바로 이러한 율의 수지문제이다. 길고 긴 역사 속에서 불교교단이 온전한 형태로 존속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율이 존재했기 때문인데, 정작 그것의 현실적 적용에 있어 출가자들은 시대와 환경의 차이를 극복해내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한편, 율에 근거한 ‘출가수계’에는 ‘보살계’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보살계는 불교의 계율이 출가승단의 규범이라는 성격을 넘어 보편적 윤리문화로 정착되었음을 상징함과도 같다. 특히 한국불교를 비롯한 동아시아불교국가에서 불교도들에게 권유된 자비 실천은 대승적 계율관의 정립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한때는 승가의 율과 대승계가 서로 상치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어 율장을 ‘소승의 율’이라는 이름으로 경시하기도 했지만, 대승계가 담고 있는 자비의 개념은 초기불교 시대부터 이미 존재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10). 그러므로 구족계를 수지할 때에 대승계를 받는다고 해서 그것을 논리에 맞지 않다고 부정하기보단 숭고한 두 개의 정신을 잘 이어받는다는 측면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 사고방식일 것이다.
이와 같이 승가의 율과 대승계를 함께 받고 정식 출가자가 되면, 이후부터는 또 다른 개념의 규율이 기다리고 있다. 청규이다. 총림에서는 총림청규, 선원에서는 선원청규가 별도로 있다. 각 처소마다 그곳만의 특성이 담긴 청규가 존재한다. 최근에는 조계종청규까지 제정되어 조계종단 전체구성원의 일상생활을 제어하는 청규가 발표되었다. 모두가 일상생활 속의 청규이다.
조계종 승려들은 출가할 때 수지하는 ‘구족계’와 ‘보살계’, 종단의 구성원으로서 준수해야 하는 종헌종법, 그리고 사찰의 일상생활 속에서 통제되는 ‘청규’에 이르기까지 실로 많은 규범들에 둘러싸여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크게 구별되는 것이 인도의 초기승가로부터 오늘에까지 전승되어 의지하고 있는 ‘율장’과 현대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단이 제정한 ‘종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조계종단에 통제할 힘을 제공하고 있는 율장과 종법을 비교해가면서 파악해가도록 하겠다.
1. 계(界)에 의한 승가의 개념차이
초기승가와 종단의 형태를 비교하기 위해서는 영역구분을 기준으로 하는 승가의 개념에서부터 시작하겠다. 양자가 승가의 개념부터 달라진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승가의 승가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계(界, sīmā)’에 대한 개념을 알아야 하는데, 계(界)란, 갈마를 실행하기 위해 일정하게 획정된 구역으로 승가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를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결정하여 효력이 발생할 수 있도록 묶는 것을 결계(結界)라고 한다.
승가의 모든 결정사안은 바로 이 계 안에 살고 있는 비구들의 전원 참석과 만장일치의 합의에 의해 결정짓도록 되어 있다. 즉, 승가 내에서 일어나는 주요행사는 동일한 경계 안에 머무는 비구들의 참석으로 결정되어야만 그 유효성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우선적으로 계가 설정되어야만 비로소 승가가 형성된다는 원리이다.
계의 설정방식은 이러하다. 계는 승가의 지역적 영역을 말하는 것이므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승가인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표식-나무나 바위와 같은 자연물-을 기점으로 영역을 정해놓고, 승가합의를 거쳐 결계(結界)를 하고 공식적으로 선포함으로써 승가의 거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승가의 토지소유권과는 별개 사항으로 스님들이 승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토지와 건물이 없어도 결계하는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한 번 결계한 이상, 그 승가는 별도의 말소의식을 행하지 않는 한 영원히 지속된다.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승가를 우리는 ‘현전승가(現前僧伽)’ 라고 부른다.
곧 현전승가는 한 개인의 출가자가 속한 현실 속의 승가를 말한다. 따라서 승가구성원들은 승가행사에 하루 동안 걸어서 참석할 수 있는 거리를 기준으로 현전승가를 설정했다. 그 당시에는 걷는 것 말고는 출가자가 달리 이용할 교통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지역설정의 기준은 ‘걸어서 승단의 행사에 참석하고 충분히 되돌아갈 수 있는 거리’였던 것이다.
이는 탁발범위와도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날 먹을 음식을 그날 탁발을 해서 오전 중에 먹어야 하는 초기승단의 출가자들은 제아무리 먼 거리의 아란야(阿蘭若)에 산다 해도 오전 중에 걸식하여 공양을 해결할 수 있는 거리에 살아야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전승가 또한 그렇게 걸어서 오갈 수 있는 거리상의 범위를 제한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초기승가가 있던 인도사회에는 무수히 많은 현전승가가 공존하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각 현전승가 간에 갈등과 분쟁이 있기도 했을 것으로 추측 가능하다.
이와 같이 현전승가는 눈앞에 실재하는 출가집단을 가리키며, 실질적 운영주체가 되기 때문에 출가수행공동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중전체의 합의에 의해 결론을 도출하고, 승가 내의 모든 의식과 활동이 전부 현전승가를 기준으로 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상의 특징을 생각하면, 장구한 불교역사의 토대가 되는 것이 바로 현전승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초기승단에는 전 지역에 퍼져있는 불교전체의 승가를 통틀어 아우르는 승가개념이 있었다. ‘사방승가(四方僧伽)’가 그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방승가는 전 세계가 하나의 승단이라는 이상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총체적 출가집단을 포괄적으로 의미하는 용어이다. 즉, 사방승가는 어떤 특정한 행동을 하는 승단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불교에 몸담고 있는 자라면 누구나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개념으로 출가자들의 참다운 소속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승가에는 이렇게 현전승가와 사방승가의 개념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조계종단은 다른 형태로 구분할 수 있겠다. 예를 들면 종단 전체를 하나의 승가로 볼 수 있는 ‘종단승가’라든지, 전국 25개 교구를 별도로 나누어 승가로 묶는 ‘교구승가’, 그리고 현재 거주하고 있는 개개의 사찰을 하나의 승가로 보는 ‘사찰승가’로 구분할 수 있겠다. 이러한 용어들은 21세기 한국불교를 살아가는 출가자의 한 사람으로서 논자가 새롭게 제시하는 용어임을 밝히는 바이다.
그럼 ‘종단’을 하나의 승가로 묶었을 때, 이 개념은 어떻게 볼 것인가?
이는 1962년에 ‘대한불교조계종’이라는 종단이 출범하면서 전국의 승려가 동일한 종헌종법에 의해 규율되는 점을 강조하여 나타내는 용어가 아닐까 싶다. 인도의 초기승가에서는 지역별로 무수한 현전승가들이 있었지만, 멀리 떨어져있는 각각의 현전승가는 독립적으로 운영되었다. 즉 인도의 초기불교에서 각각의 현전승가는 수계, 교육, 포살, 징계 등을 별도로 시행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오늘날 조계종단은 개별사찰이나 교구본사에서 독자적으로 수계, 교육, 징계 등을 행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이 점이 초기인도승가와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계종은 종단 차원에서 종헌종법에 명시된 법령에 의해 수계, 교육, 포살, 징계 등을 시행하고 있다.
따라서 종단 전체를 하나의 승가로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명명하여 본고에서는 ‘종단승가’라고 일컫고자 하는 것이다. 종단승가 개념은 언뜻 보기에는 과거 초기승가의 사방승가와 비슷한 것 같지만, 사실상 현전승가가 하던 역할을 그대로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교통, 통신 등의 발달로 전국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고대 인도에서는 교통이나 통신이 발달하지 않아 지역별로 떨어져 있던 현전승가를 일시에 통합적으로 운영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러한 불편 없이 먼 거리에 거주하는 출가자까지도 동일한 내용을 일시에 수용하고 적극 참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동일한 승가영역으로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불교에서는 종단이라고 하는 개념이 과거의 현전승가와 사방승가가 가지고 있던 역할을 다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현실적으로 운영해야 할 현전승가의 역할이나 의식과 함께 포괄적 의미의 사방승가 개념이 더해져서 ‘종단승가’ 라고 하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다.
한편, 종단을 들여다보면 ‘교구승가’란 개념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불교의 출가자들은 누구나 자신이 속한 교구본사를 가지고 있다. 조계종단은 총25개 교구본사를 가지고 있는데, 출가를 하게 되면 지역별 또는 본사별로 자신이 거주하는 사찰의 소속교구본사에 등록하도록 되어 있다. 조계종도라면 누구나 다 종단승가의 구성원이자 교구승가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교구승가에서는 ‘교구종회’라고 하는 대의기구를 두어 승가운영에 참여하며, 교구별로 함께 포살을 함으로써 수행처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종단에 소속된 개별사찰 또한 하나의 승가개념으로 파악하여 ‘사찰승가’라고 부를 수 있겠다. 사찰승가는 공찰이든 사설사암이든 상관없다. 조계종에 등록된 사찰이라면 국가가 지정한 문화재 사찰이든 개인이 건설한 사설사암이든 관계없이 종단의 운영체계 안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과거의 현전승가 개념이 어쩌면 개별사찰과 가장 유사한 형태를 갖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율장에서 말하는 현전승가는 기본적으로 4인 이상이어야만 인정되었으나, 조계종단이 인정하는 개별 사찰승가는 인원수와 상관없이 단 한 사람의 출가자가 살고 있어도 종단에 등록된 사찰이라면 조계종의 사찰로 인정된다. 또한 사찰승가에서는 대중공사, 종무회의 사찰운영위원회 등 여러 형
태의 회의체(갈마기구)가 있다.
이상과 같이 인도불교의 현전승가는 결계를 해야만 성립되는 승가였다. 거기서는 결계를 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걸어서 모일 수 있는 거리인가’를 측정하여 정했다. 당시에는 교통이나 통신이 전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물리적 거리에도 매우 제한적이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다르고 경제나 과학발전으로 인해 인도승가와는 전혀 상황이 달라서 걸어서 모일 수 있는 거리를 승가개념으로 두지 않는다.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수용할 상황이 바뀌었다고 하는 것이다. 예전처럼 나라 전체를 두고 낱낱이 작은 지역으로 구분하지 않아도 충분히 하나의 승단으로서 묶을 수 있게 되었다. ‘종단승가’, ‘교구승가’, ‘사찰승가’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이와 같이 결계의 성격이나 승가의 구성형태가 달라짐으로써 오늘날의 조계종단은 인도사회의 초기승가가 행했던 수계, 교육, 징계 등의 모든 점에서 운영형태와 갈마형태가 달라진다고도 말할 수 있다. 즉 율장정신은 계승하고 있으나,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2. 사의(四依)를 기본으로 하는 생활방침
종교를 이해하는 태도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 가운데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것이 종교인들의 생활상이다.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종교인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공간에 대해 세상과는 다른 맑고 깨끗한 이미지를 만들어가고자 애쓴다. 이는 어쩌면 종교인들보다도 종교를 믿는 신도들에 의해 그렇게 의미부여가 되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재가불자들은 자신들이 사는 세상을 혼탁한 곳이라고 여기며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반면, 부처님을 모시고 출가자들이 생활하는 사찰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세계와는 다른 초월적인 공간으로서 인식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불교의 경우에는 출가자라면 누구나 검소한 생활상을 보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깔려있다. 초기승가라고 해서 늘 그렇게 살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적어도 초기승가 내세운 승가의 생활원칙을 보면 출가자의 검소하고 겸손한 자세가 담겨있다. 부처님 당시의 출가자들은 네 가지 생활원칙인 ‘사의(四依, cattāro nissayā)’에 근거하여 생활했다. 사의란 걸식(乞食, piṇḍiyālopabhojana), 분소의(糞掃衣, paṃsukūlacīvara), 수하좌(樹下坐, rukkhamūlasenāsana), 진기약(陳棄藥, pūtimuttabhesajja)
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음식은 탁발에 의존하고, 옷은 버려진 천 조각이나 시체를 쌌던 천을 깨끗이 빨아서 조각을 내고 다시 기워 만든 것을 입으며, 출가수행자가 머무는 곳은 나무 밑이어야 하고, 아플 때의 처방은 소의 오줌을 썩혀 발효시킨 것으로 해결하도록 한다는 원칙이다. 이것이 완벽하게 부처님 당시에 실행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당시 출가수행자 모두가 지켜야 할 기본적인 생활 방식이며 덕목으로서 제시되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시대가 변해도 변치 않을 이 네 가지 기본방침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바뀌지 않을 기본적인 승가원칙이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도 걸식을 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럼 조계종 스님들이 분소의를 입는가? 아니다. 한국불교에서 수하좌가 가능한가? 분명 아니다. 아플 때는 진기약을 쓰는가? 그 또한 아니다. 지금의 실상으로 본다면 조계종단은 생활원칙을 사의에 둔다고 <사분율>을 통해 배우지만, 사의에 둔다고 볼 수는 없는 실정이다. 다만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는 출가자의 생활원칙으로서 사의의 정신이 계승되어오고 있는 것은 맞다.
현재 조계종 스님들의 삶을 살펴보면 대략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다. 우선 의복은 한복스타일의 회색 승복으로 통일했으며, 종단이 직접 제작한 가사를 법계에 맞게 수하도록 되어 있다. 남방의 가사색을 떠올리면 우리가 얼마나 다른 복장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가사의 경우, 조(條)를 나누어 분소의의 형태를 띠어 그 정신을 기억하도록 하고 있다.
(종단에서는 가사원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가사원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령’에 의하면, 제1조(목적)에서 ‘이 영은 법계위원회에서 결의한 조계종 통일 가사 및 의제 제작 보급 사업을 집행하기 위하여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총무부내에 설치하는 대한불교조계종 가사원(이 하 가사원이라 칭함)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음식은 또 어떠한가? 초기승단에서는 식량을 얻기 위한 생산 활동의 전면적인 금지와 더불어, 음식의 저장이나 조리까지도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그날 걸식한 음식은 반드시 그 날 오전 중에 모두 소비해야 하며, 저장해 두었다가 먹어서는 안 된다. 음식물을 정사 안에 저장하는 것(anta-vuttha, 內宿), 음식을 정사 안에서 끓이는 것(anta-pakka, 內熟), 비구 스스로 끓여 먹는 것(sāma-pakka, 自熟)이 모두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출가자들은 음식을 탁발을 통해 해결하지 않는다. 부처님 당시에는 금지된 형태였던 취사행위가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간혹 탁발을 하는 스님들도 볼 수 있으나, 조계종의 경우에는 탁발이 금지되어 있다. 승려법 제47조에 의해 ‘상습적인 탁발 행위자’는 ‘공권정지 5년 이상 제적의 징계에 처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는 곧 탁발하는 승려는 조계종 스님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조계종은 1964년 승가의 위의정립을 위해 탁발을 금지시켰다. 다만 공공선의 목적성을 띠고 종교행사의 일환으로 시행되는 것은 허용되었을 뿐이다. 예를 들면, 1997년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 월주스님이 불교의 사회참여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실시한 적이 있었던 것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조계종단은 탁발의 정신은 담고 있으나, 일상의 기본방침으로는 탁발이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수하주의 경우도 그렇다. 부처님 당시에도 나무 밑에서 생활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부처님 당시의 인도는 숲에서 생활하는 것이 가능한 자연환경을 가졌기에 이러한 원칙을 전면에 내세울 수 있었지만, 사계절의 변화를 겪는 한국의 자연환경을 생각한다면 수하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출가자가 약제로 사용할 수 있는 진기약의 경우에는 지금과 비교하기 곤란한 측면이 있다. 의학의 발달로 인해 진기약과 현대의학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므로 이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겠다.
이상과 같이 초기승가의 일상생활 규정인 사의의 원칙과 조계종단의 현대화된 의식주 개념은 동일선상에서 같은 원칙을 내세울 수는 없다. 하지만 네 가지 기본생활원칙이 가진 출가자의 정신은 나름대로 계승하려고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다만, 생활방침 면에서 한가지 더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 있다. 그것은 조계종단이 초기승가의 무소유 공동체와는 달리 1700년간 한반도에서 형성된 한국불교의 유형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조계종단은 국가 다음으로 많은 토지를 가지고 있고, 문화재로 지정된 많은 사찰건축물, 각종 동산 및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자산을 보유한 조계종단이 그에 적합한 관리운영체계를 갖추었느냐 하는 것은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3. 수계 및 교육에 관한 규정
예나 지금이나 출가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불제자로 살겠다는 서약을 하게 되는데, 그것을 우리는 수계(受戒)라고 한다. 부처님 당시에는 어린 나이에 일찍 승가에 들어왔을 경우, 일단 사미계를 수지했다가 만 20세가 되었을 때 구족계를 받고 정식 비구가 되며, 20세 이상인 경우에는 같은 자리에서 사미계와 비구계를 곧바로 이어서 수계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라훌라의 출가를 예를 들 수 있다. 「사분율」제34권, 「오분율」제17권, 「십송율」제21권, 「마하승기율」제29권 등에 자세히 기록 되어 있다.)
이때 출가지원자에 대한 자격심사를 하는데, 그 심사주체는 다름아닌 승가가 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승가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전체구성원이 참여한 현전승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다만 수계를 위해 현전승가가 결계한 구역에 별도로 설정한 작은 결계구역이 있고, 그 안에 수계에 필요한 만큼의 승가구성원들이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은사가 되는 화상, 수계의식의 사회를 맡은 갈마사, 심사를 맡은 아사리, 그리고 7명의 증인이 되는 수계위원들이 여법한 절차를 거쳐 출가자를 받아들이는 수계의식이 작은 계(界) 안에서 거행되었던 것이다.
(* 율장의 출가자격기준은 이러하다. ‘이전에 외도였다가 일단 불교로 전향해 비구가 된 후 다시 외도로 돌아간 전향자, 이전에 외도였던 자가 비구가 되고 싶어 할 경우에는 4개월간의 관찰기간을 거쳐 그 결과 아직
외도의 가르침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판단되는 자, 중병인, 관리, 범죄자, 부채자, 노예, 20세가 되지 아니한 자, 부모의 허락을 받지 아니한 자, 황문-거세자 및 동성애자, 적주자-가짜비구, 축생, 오역죄를
범한 자, 비구니를 더럽힌 자, 양성구유자-양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자, 신체장애자 및 병자’
* 각각의 현전승가를 구성하는 출가자들이 소계(小界)를 형성하는 결계를 하고 계단을 만들어 출가수계를 했다. 계단의 설정은 현전승가 구성의 기본원칙인 결계(結界)를 통해 이루어진다. 우선 현전승가 안에 공백지
대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수계용 계단을 설정하도록 한다. 그리고 평소에는 그곳의 출입을 금지해 두었다가 수계를 할 때에만 계단을 이용하게 한다. 그렇게 하면, 중앙의 소계 주변에 띠 모양의 공백지대가 에워싸고, 그 주위를 대계가 둘러싸는 형태가 된다. 이런 방법으로 계단을 미리 설정해 두면, 수계의식을 행할 때마다 일일이 계단을 만들거나 없앨 필요가 없어진다.
* 「사분율」 34권 (大正藏22, 814c-816c), 「오분율」 17권 (大正藏22, 119하-120중), 「십송률」 21권 (大正藏23, 155중-157상), 「마하승기율」 29권 (大正藏22, 413하-415중)에 구족계 수계의식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조계종단에서 이루어지는 수계는 어떤 모습일까? 조계종단에서는 현전승가를 기준으로 삼아 수계한다고 잘라 말하기 어렵다. 현전승가의 개념이 살아있기는 하되, 현전승가보다는 종단 전체가 하나의 현전승가와 사방승가 개념을 섞어놓은 것 같은 효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수계의 경우에는 종단 구성원 전체가 동일한 수계행사 장소에 다 참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단이 공인하는 수계의식에 따라 계단을 설정하고 입단의식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모두가 참여한 것과 같은 효력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계단법’이라는 종법에 의거해 종단이 인정하는 계단에서 인가하여 수계를 하므로, 모두가 납득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항은 이러하다. ‘계단법’ 제6조를 보면, 수계를 위해 ‘계단위원회’를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여기 보면 초기 현전승가에서 수계를 위해 계단을 설치했던 내용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계단에 관련한 주요사항을 심의하고 결정하기 위하여 전계대화상을 포함한 11인 이내의 계단위원으로 구성되는 계단위원회를 둔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역할 또한 마찬가지다.
제 7 조 (역할) 계단위원회는 다음의 사항을 관장한다.
1. 각종 계단의 설치 및 통제
2. 각종 계단의 운영과 관리
3. 수계식 거행
4. 계단에 관련된 중요사항의 심의 의결
6. 계단 및 계율에 관하여 계단위원회에 부의한 사항의 심의 의결
율장이 제시하는 바에 따라 구성되었던 소규모 계단과 3사 7증의 역할을 지금은 ‘계단법’에 의거하여 ‘계단위원회’가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율장의 수계건도 내용이 이 시대 종법에 가장 잘 전달되어 있는 것이 바로 ‘계단법’이 아닌가 싶다.
이와 같이 수계의식을 거친 정식 출가자들은 승가의 일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승가교육을 받는다. 그런데 승가교육 측면에서도 같음과 다름을 모두 찾아볼 수 있다. 과거에는 은사스님인 ‘화상(和尙)’과 은사스님을 대신하던 ‘아사리(阿闍梨)’에 의해 도제식 기본교육이 실시되었다면, 지금의 조계종단은 조계종단이 인정하는 승가대학이라는 교육기관에서 공동으로 4년 동안 초기불교에서 대승불교, 포교일선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각종 사회관련 지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습과 교학을 연찬해야 한다.
이 시대에는 초기승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들을 배우는 것 같다. 하지만 어쩌면 불교 역사가 긴만큼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길고긴 불교역사 속에서 불교의 사상과 교학이 발전해왔고, 그에 따라 현대에 출가하고 살아가고 있는 승려들이 배우고 익혀야할 내용 또한 방대해졌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사람의 출가자가 한 스승 밑에서 학습하기보다는 더 다양한 전문지식을 갖춘 스승에게서 배워야할 것들이 많은 셈이다. 출가자로서 필요한 기초적 소양교육이야 은사에게서 배운다지만, 기본교육에서부터 전문교육에 이르기까지는 분야별 전문지식을 갖춘 많은 스승에게서 배워야 하는 시대가 되었기에 그러하다. 물론 인도에도 수경아사리(受經阿闍梨)와 같이 전문 지식을 갖추고 경을 가르치는 스승이 있어 교육을 했던 점을 고려하면 이 또한 전혀 생뚱맞은 얘기는 아니다.
현재 종단이 규정하고 있는 각급 교육기관과 승가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수사들에 대해서는 ‘교육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교육법>
제 5 장 교육기관
제 47 조 (종류)
본종의 도제로 하여금 차별없이 종단 발전과 사회 개발에 필요한 교육을 실시하기 위하여 다음의 교육기관을 설치한다.
1. 기초교육기관 : 행자교육원
2. 기본교육기관 : 승가대학(강원), 중앙승가대학교, 동국대학교(서울·경주) 불교대학, 기본선원
3. 전문교육기관 : 승가대학원, 학림, 율원, 선학연수원
4. 재교육기관 : 중앙연수원
5. 특수교육기관 : 어산작법학교 등
[불기 2551(2007). 11. 6 개정]
제 4 장 교육교역자
제 41 조 (정의)
교육교역자라 함은 종법에 의하여 설립된 교육기관에서 직접 지도교육을 하는 자를 말한다.
제 42 조 (의무)
교육교역자는 속불혜명 전법도생이 본분인 출가사문을 교육시키는 사표로서 고매한 품성과 지혜를 함양하고 학문을 연찬하고 교육방법을 연마하여 종도교육에 전심전력하여야 한다.
제 43 조 (자격)
각급 교육기관의 교육교역자는 국가법령 또는 종법에 의하여 교육자로서의 자격이 있는 승려를 원칙으로 한다.
인도 당시의 아사리 제도를 잘 살펴보면, 지금 기본교육을 담당하는 각 승가대학이나 승가대학원의 교수들이 모두 전문지식을 갖춘 스승들의 모습과 매우 유사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종단의 자격심사를 거쳐 종단이 인정하는 교수사여야만 하는데, 이 또한 종단이 인정하는 자격과 조건을 갖춘 준비된 교수, 즉 ‘교육교역자’에 의해서만 출가자를 교육할 수 있다는 ‘교육법’ 규정에 의한 것이다.
(「사분율」에서는 아사리를 출가(出家), 수계(受戒), 교수(敎授), 수경(受 經), 의지(依止)아사리의 5종류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상과 같이 수계 및 교육에 관련된 내용들은 율장에 근거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수계의식이나 교육내용은 초기승가의 형태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다고 할 수 있겠으나, 기본정신이나 방침에 비추어보면 연관성이 충분히 있으며, 과거의 제도를 오늘날 계승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
4. 포살과 화합승가
수계 및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진 승가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승가행사인 ‘포살(布薩, uposatha)’에 참여하게 된다. 초기승가의 포살은 같은 구역에 결계한 현전승가 구성원들에 의해 현전승가별로 이루어졌다. 인도 당시에 행해지던 포살의 유래를 보면, 불교가 아닌 타종교에서 행해지던 의식을 불교가 채택해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불교 이외의 종교인들은 보름에 한 번, 신에게 올리는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그 제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제사 전날, 반드시 단식을 했는데, 그것을 아주 중요한 관습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렇게 제사 전날 행하는 단식일을 가리켜 ‘포살’이라고 불렀다.
(오키모토 가쯔미(沖本克己)는 논문에서 포살에 대해 유래와 변천과정에 대해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沖本克己, 布薩について , 印仏学 46(23-2) pp.259-265.)
불교가 포살을 받아들이고 난 뒤 부처님은 이 모임에서 계본을 낭송하기로 결정하고, 제자들에게 자신이 지정한 계목을 세 번씩 외우도록 했다. 승가에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율을 정했기 때문에 지금 남아있는 율장처럼 그렇게 긴 내용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후 불교의 포살의식은 스님들이 보름에 한번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율장을 암송하고 자기행동을 반성하는 모임이 되었다. 곧 청정승가를 이루는 모임이다.
포살을 실행할 수 있는 승가의 인원수는 최소한 4명으로 이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에는 바라제목차를 낭송하며 포살을 해야 한다. 하지만 만약 4명의 비구를 못 채웠을 경우에는 다른 방식으로 포살을 실행하게 된다. 포살은 자신이 한 행동을 돌아보며 만약 범계 사실이 있다면 이를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써 청정과 평안을 되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포살은 동일한 결계구역 안에 머무는 비구 전원의 참석이 필요한 정기적인 행사로써 점차 화합을 상징하는 의식으로서 더욱 더 중시되었다. 이것이 인도승가에서 행해지던 승가포살의 주요 내용이다.
(3명일 경우에는 청정포살이라 하여, 총명 유능한 한 비구가 다른 비구들 에게 '존자들이시여, 제 말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오늘은 15일 포살입 니다. 만약 존자 여러분들에게 있어 시기적절하다면 우리들은 서로 청정 포살을 실행할 수 있습니다‘라고 고지한다. 이것이 3명일 경우의 포살이 며, 1명일 경우에는 다른 비구들이 돌아올 집회당이나 천막, 나무 밑의 장소를 청소하고 마실 물과 씻을 물을 준비하고 자리를 마련하고 등불 을 밝히고 앉아있어야 한다. 만약 어떤 비구들이 온다면 그들과 함께 포 살을 해야 하며, 만약 오지 않는다면,오늘은 나의 포살이다라고 결 의해야 한다. 이것이 1명일 경우의 결의(決意)포살이다. 「계율과 불교윤리」 (조계종출판사, 2011) pp.62-6)
그럼 지금의 조계종단은 포살을 어떻게 시행하고 있을까 살펴보자. 현재 조계종단은 현전승가의 개념이라기보다는 교구별로 나누어 포살을 진행하고 있다. 대개 하나의 교구는 6∼9개의 지자체를 포괄하기 때문에 꽤 넓은 구역이지만, 교통이 발달한 시대이기 때문에 몇시간 안에 다 모일 수 있다. 조계종의 ‘결계및포살에관한법’에 의하면, 이 법의 목적은 ‘포살 및 결계 등에 관한 사항을 정하여 승가의 공의 전통을 선양하고, 수행종풍을 진작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있다.
2006년부터 종단차원에서 시행된 포살은 율장에서 행해졌던 반성의 의미도 들어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현실적으로 출가자가 각자 어디에서 안거수행을 하고 있는지 그 소재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 되어버린 측면이 적지 않다. 물론 율장의 정신과 형식을 이어받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출가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수행생활을 돌아보고 잘못을 참회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계율의식 고취에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단, 조계종단의 결계는 인도승가의 현전승가와는 달리 결계대중이 안거 중에 포살만을 행하며, 수계, 교육, 징계 등의 갈마는 행하지 않는다.
5. 범죄행위에 대한 징계규정
앞의 승가의 개념규정에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초기승가는 인도 전역에 흩어져있던 ‘현전승가’와 전체를 아우르는 ‘사방승가’의 개념으로 승가를 운영했다. 반면 조계종단은 현전승가와 사방승가의 개념 대신에, 사찰승가, 교구승가, 종단승가로 전체를 나누어 그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것은 곧, 초기승가의 기준은 ‘율’이고, 조계종단의 기준은 ‘종헌종법’이라는 말도 성립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따라서 초기승단에서 계를 파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율 규정을 어겼다는 것이 된다. 그렇게 율을 파한 자는 율장 규정에 의거해 범계한 자가 소속된 현전승가의 ‘징벌갈마’를 통해 벌을 받게 된다는 결과를 낸다. 죄에 따라 부여되는 벌칙 또한 달라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불공주(不共住): 바라이죄에 대한 처벌, 출가자로서의 자격을 상실, 승가추방
② 별주(別住): 승잔죄에 대한 처벌, 죄를 저지른 비구가 그것을 즉시 승단에 고백하지 않았을 경우, 그 죄를 숨긴 기간만큼 다른 비구들과 분리시켜 혼자 따로 살게 하는 벌칙.
③ 마나타(摩那): 승잔죄에 대한 처벌, 죄를 저지른 자가 그것을 승단에 고백하고 6일 밤낮 동안 참 회, 근신처분
④ 사타( 捨墮): 가사나 발우 등의 물건을 규정 이상 소유한 죄에 대한 처벌, 4인 이상의 승가에게 물품을 제출하고 참회
⑤ 돌길라(突吉羅): 행위와 말로 저지른 가벼운 죄. 고의일 때는 1명의 비구 앞에서 참회, 고의가 아 닐 때는 마음속으로 참회하면 죄가 소멸됨.
징벌갈마란 고절갈마, 의지갈마, 빈출갈마, 하의갈마, 3종의 거죄갈마 등의 7종 갈마를 주로 일컫는 것으로 범계 행위를 한 비구에게 일정한 벌을 부과하여 복죄(服罪)를 구하는 갈마를 말한다. 이 갈마들은 비구가 죄를 저지르고도 이를 자발적으로 고백하고 참회하지 않는 경우에 실행되는 것으로 승가는 원한다면 언제라도 범계 사항에부합하는 징벌갈마를 통해 범계비구에게 자신의 죄를 알리고 인정하게 하여 복죄시킬 수 있다.
(한편, 이외 승잔죄를 저지른 자에게 부과되는 별주와 마나타도 징벌갈마 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데, 단 별주와 마나타는 범계한 본인의 고백과 참회가 기본이 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의미의 징벌갈마와는 구별된다.이 외, 징벌갈마의 일종으로 복발갈마, 현시갈마, 범단법이 있다. 불학연 구소 편, 「계율과 불교윤리」 (조계종출판사, 2011) pp.107-131.)
이때는 주로 백사갈마(白四羯磨, ñatticatuttha kamma)가 열린다. 백사갈마는 제시한 안건에 대한 승인의 가부를 세 번 반복해서 묻고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 사이에 단 한사람이라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어야만 가결되는 것이다. 즉 만장일치를 전제로 한다. 만약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갈마는 무효가 된다. 그밖에 분쟁을 처리해야 할 경우나 승가에서 누군가를 추방시켜야 할 경우 등을 다룰 때도 활용되었다.
그럼 조계종단은 어떠한가. 조계종단에서 범계 또는 종헌종법 위반 행위를 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소속된 사찰이나 교구에서가 아닌, 종단 차원에서 구성된 징계관련 사정기구인 호법부나 호계원의 조사및 절차를 거쳐 징계관련 종법에 의해 그 잘잘못을 판결한다. 징계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승려법> 제 8 장 징계
제 45 조 징계의 내용과 경중은 다음 순위에 의한다.
1. 멸빈
가. 승적을 박탈하고 승복, 법복, 승려증 등 승려신분에 관계되는 일체의 모든 것을 회수하고,
나. 사찰에서 빈척하고
다. 복적 또는 재득도할 수 없다.
2. 제적
가. 승적에서 제외되며
나. 승려신분상의 일체의 공권은 박탈된다.
다. 승복을 착용할 수 없다.
라. 참회 근신의 정상에 따라 종헌 종법에 의하여 복적할 수 있다.
마. 복적한 경우 승랍계산에 있어서 징계기간을 제외한 과거 승랍은 인정한다.
바. 복적은 징계받은 날부터 10년이 경과하여야 한다. [불기 2543(1999).1.28 개정]
사. 제적의 징계처분을 받은 자는 복적된 날부터 5년이 경과하지 아니하면 중앙종회의원 및
종무원에 취임할 수 없다. [불기 2543(1999).1.28 개정]
3. 법계강급: 현재의 법계에서 1급 이상 강급한다.
4. 공권정지
가. 집행기간 중 일체의 공직에 취임하지 못한다.
나. 기간은 최하 3개월, 최고 10년까지로 한다.
5. 면직 : 현 공직에서 해임됨을 말한다.
6. 변상
가. 승려로서 종단 재산을 불법으로 취득한 사실이 판명되었을 때 이에대한 변상금을 종단에
납부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나. 변상 판정에는 납부 기간을 정하여야 한다.
7. 문서견책
경미한 비위에 대하여 문서 견책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징계규정을 명시하고 있는 종헌종법의 승려법은 ‘종헌 제12조에 의하여 승려의 자격, 권리, 의무, 분한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며 승려가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이며 수행자로서 대중의 사표가 되고, 부처님의 중생구제 원력 실천자로서 수행과 전법을 통하여 불국토건설의 사명을 다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율장에서 말하는 징계내용과는 어휘도 다르고, 처벌내용도 상이한 것으로 보이지만, 승려법상의 징계사유에는 율장의 바라제목차 중 ‘바라이’나 ‘승잔’에 해당하는 내용들이 두루 포함되어 있으며, 범계자에게 그에 따른 처벌을 엄격하게 적용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다만, 처벌규정에 맞게 벌을 주고 참회를 통해 맑은 수행자로 거듭난다고 하는 면에서는 제대로 실현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Ⅳ. 나오는 말 - 종법과 율에 대한 논의
초기승가와 조계종단을 비교해 보면,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출가자 집단인 승가의 성립취지는 같은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21세기 오늘날의 정치, 사회, 문화, 환경은 이천년 전의 인도사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출가자의 일상생활은 상당부분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출가자들은 율장과 종헌종법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특히 1994년 종단개혁 당시, 1962년 제정된 간략하게 되어있던 종헌종법을 대폭 확대하여 제·개정한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부분하다. 종교단체가 종교법에 의존하지 않고 세속적인 국가체계에 의존하여 법을 만들었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대두되었다. 조계종단은 종헌종법이 아닌 율장에 의존하여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종헌종법의 현실 적용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드러난 것으로 맞는 말이지만, 현실은 이미 종법체계에 의해 운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온 절충안 중 하나가 ‘율은 현대사회를 반영해서 신속히 개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율의 개변 가능성과 승려법의 당위성 검토 라는 논문에 이런 글이 있다.
‘율은 현대사회를 반영해서 신속히 개변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体는 변화하지 않아야 한다. 마치 지도리나 수레바퀴의 중앙이 자신들은 같은 위치에 있으면서 모든 변화를 주관하는 것처럼, 율은 그렇게 변화속의 고요라는 중도의 적절점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에는 반드시 계몽이 뒤따라야 한다. 제아무리 좋은 가치라고 해도 계몽을 통해서 대중의 의식 속에서 선택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자현, 율의 개변 가능성과 승려법의 당위성 검토 , 「율장정신의 현실적 진작과 종단적 적용」 (제1회 대승불교세미나 자료집, 2011) pp.84-115.
이 논문은 ‘승려법’을 중심으로 개정하되, 율장을 근거로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한편, 율장을 근간으로 종단이 운영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율장의 징계갈마와 호계원법이라는 논문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현 징계제도가 위에서 언급한 특수한 상황을 바탕으로 성립된 것이라 할지라도 대한불교조계종이 부처님의 법과 율을 신봉하고 이를 전승하는 출가승가로서의 정통성을 종지종풍으로 삼고 있으며, 이러한 종지종풍과 수행가풍을 바탕으로 정진하는 한국불교의 대표종단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부처님 재세시부터 출가자들의 행동규범으로써 전승되어온 율장정신을 근간으로 종단이 운영되어야 한다는 원칙으로부터 벗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덕문, 율장의 징계갈마와 호계원법 , 「율장정신의 현실적 진작과 종단 적 적용」 (제1회 대승불교세미나 자료집, 2011) pp.126-15)
이 논문도 율장에 근거해서 호계원법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2006년 제44회 한국불교학회 춘계학술발표대회에서는 <계율의 현대적 조명>이라는 주제로 계율에 관한 다양한 발표가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계율과 조계종의 종헌종법 이라는 기조발표다. 이 논문은 조계종을 선종으로 규정하며 종헌종법에 부처님이 제정한 계율에 대한 명시가 없어서 모든 구성원이 혼란을 격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종헌은 계율과 청규에 대한 확실한 표현으로 근거를 밝히지 않고 있어 청규에 대해서 호법청규와 호국청규의 어느 것에 비중을 두는지도 불확실하다. (중략) 이제라도 조계종의 정체성을 밝힐 종단의 의무를 부여받은 각종 위원회는 구체적 연구를 통하여 불타의 존엄성과 현실의 적합성을 충분히 고려한 종헌종법의 틀이 갖추어질 수 있도록 성실히 임해야 할 것이다.”
(무관, 계율과 조계종의 종헌종법 , 「제44회 한국불교학회 춘계학술대회」 (서울:한국불교학회, 2006) pp.24-37
이와 같이 지금의 종헌종법이 세속적인 법체계와 닮아 있다는 생각에서 많은 이들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율장이 지금의 조계종단에서 종단운영논리로써 과연 얼마만큼 적합한가를 물었을 때는 조금 더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과거에는 불교를 국가에서 국가의 법령에 의해 관리 운영했다. 조선시대에는 경국대전이라는 국가법령에 그 구체적 감독내용과 승인사항이 규정되어 있었을 정도였다.
‘승려가 되려는 자는 3개월 이내에 예조에 보고하고 베 30필을 납부하면 도첩을 발급한다.’ ‘선종과 교종은 3년마다 승려를 선발하는 시험(승과)을 치러서 각 30명씩 지도자를 배출한다.’ ‘사찰의 주지는 선교양종에서 예조에 복수로 추천하면, 예조는 이조에 문서를 이첩하고 이조가 심사하여 최종 주지를 발령한다. 주지 임기는 30개월이다. 주지가 잘못을 저지르면 주지는 물론 추천한 자까지 처벌한다.’
(현응, 한국불교중흥의 길을 위하여 (서울: 조계종교육원, 한국불교중흥 을 위한 대토론회 12월 자료집, 2011)
그러다가 20세기 초부터는 국가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나 자주적이고 자율적인 불교교단을 설립하겠다는 근대적 노력이 있었다. 지금의 조계종은 1700년 한국불교의 전통과 역사 속에서 한반도에서 존재해 온 불교자산을 국가가 인정하고 관리하는 유일한 종교단체라고 할 수 있다. 사찰의 부동산 등의 자산을 개인적으로 소유하지 않고, 공적으로 소유 관리하며, 전통사찰과 승려를 동일한 종헌종법으로 규율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과거에는 국가가 관리하던 불교와 불교자산을 이제는 법률의 힘을 빌려 종단이 직접 관리 운영한다. 불교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 법률과 종단 법률이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기에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만일 그러한 법적 제도가 종단 안에 정비되어 있지 않다면, 불교 자산은 오로지 국가법에 의거해 관리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율장의 내용만으로 21세기의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단을 유지운영하기 위한 지침을 마련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종헌종법을 더 연구하고 율장에 맞게 고쳐서 합리적으로 세분화하고 법이 제대로 적용될 수 있도록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지금의 종단은 수많은 문제와 오류의 발생 가능성을 안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법령이 많고 복잡해서 엄청나게 잘 만든 법령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율장과 종헌종법이 대립각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서로에 대한 불신이 상당하다. 그렇지만, 앞에서 쭉 살펴본 바와 같이 지금 시대에는 율장만 가지고도 안 되고, 종법만 가지고도 어렵다.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다면 종단을 올곧게 운영하기 어려운 형편이 되고 만다.
그럼 종단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가장 큰 과제는 승가의 규율과 생활원칙을 제시하는 종헌종법을 율장을 전제로 하되 어떤 식으로든 보다 합리적으로 현대화시켜야 할 것이다. 더불어 불교의 사상과 교리까지도 현대적으로 다시 결집하고 정리해야 마땅하다. 승려법 등 각종 법령들을 정비하는 것은 물론, 시대가 필요로 하는 입법을 지속적으로 진행하여 제·개정할 수 있도록 노력하되, 거기에는 율에 해박한 이들과 함께 논의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징계에 관한 종단자정기관의 일관되지 못한 양형이라든지, 분쟁해결기관이 서로 대립한다든지 하는 등 종헌종법에 의거하여 판결을 내리는 기관들의 문제점이 적지 않다. 이와 같이 수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는 조계종단이 하루빨리 제도와 율에 근거한 법령을 정비하여 한국불교의 삼보정재를 잘 보존 관리하며, 현대사회의 승가활동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하여 바로바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실론섬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2610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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