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설과 윤회설의 문제
김 진*
[한글 요약]
불교에서 무아설과 윤회설 사이의 모순은 석가의 이론적 세계관찰의 결과와 그의 실천적 이상목표가 대립적으로 설정된 데서 비롯되었다. 석가의 무아설은 (무아설을 포함하는) 언제나 동일한 세계법칙 아래에 있는 다르마 이론과 (윤회설을 포괄하는) 카르마 이론 사이의 불가피한 모순을 기술하고 있다.
다르마 이론에서 말하는 무아설은 다르마의 가상세계에서 결합되고 재결합되는 것은 존재자나 불변적 실존원핵, 또는 인간의 진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정하고 있다. 그와 반대로 윤회설은 카르마적 인과사슬과 삼사라의 세계를 극복할 수 있는 영원히 존재하는 진아의 실체를 요구하고 있다. 불교에서 이처럼 무아설과 윤회설 사이에서 제기되는 모순은 칸트가 비슷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적용하였던 참된 존재라는 이론적 이념의 요청전제를 통하여 모순 없이 사유될 수 있다.
주 제 어 : 칸트, 석가, 불교, 무아-윤회설, 요청명제
1. 무아-윤회 논쟁
불교철학에서 가장 전통적이고 중요한 철학적 물음은 무아설과 윤회설 사이의 관계설정에 대한 것이다. 가장 일반적인 논쟁의 형태는 무아설과 윤회설이 상호 모순적이라는 주장과 양립 가능하다는 주장 사이에서 제기된다. 그러나 이 논쟁은 불교에서의 무아설과 윤회설이 기존의 그것과 어떤 차이를 갖고 있는가에 대한 해석상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어떤 이들은 무아설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 주장 내용을 살펴보면 특정한 형태의 자아존재를 전제하기도 하고, 혹자는 윤회설을 주장하면서도 윤회의 주체를 부정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불교에서의 무아-윤회 논쟁은 무아설과 윤회설에 대한 개념 해석상의 차이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어 왔던 것이다.
석가의 어떤 가르침에 충실하자면 무아설은 절대적일 수 있다. 그러나 석가의 다른 가르침으로 보면 무아설이나 유아설 그 어느 것도 모두 미혹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되면 무아설이 불교의 고유한 입장이라고 주장할 수조차 없게 된다. 불교에서의 구원 또는 해탈의 주체 설정과 관련하여 어떤 사람들은 세속적 실천적 차원에서는 유아설을 인정하면서도 무아설이 진정한 진리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이 경우의 현상적 자아나 그 부분들은 참된 자아가 아니라는 점에서 비아설(非我說)이 정당화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나카무라 하지메는 무아설의 기본적으로 불변하는 실체적 원리의 부정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실천적 차원에서의 진아를 부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무아설을 말하면서도 아트만이 단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였던 것이다. 바로 여기에 불교철학의 아포리아가 은폐되어 있는 것이다. 무아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에서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 불교계에서는 석가의 무아설과 연기설이 상호 모순되지 않는다고 해석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만일 불교 안에서 그 두 가지 이론이 모순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종교로서의 불교는 결코 성립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계 안에서는 암묵적으로 두 이론 사이의 모순 관계를 극복하기 위한 교의체계 구축에 적지 않은 노력을 경주해왔던 것이 사실이며, 그것이 바로 불교교리사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에 대하여 불교철학자 칼루파하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영원한 '자아'를 부정한 물질주의자들은 재생과 도덕적 책임도 함께 부정하였다. 그러나 석가는 그와 같은 '자아'를 부정하면서도 카르마와 재생의 이론은 유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카르마와 재생의 이론, 그리고 무실체성(無我)의 이론을 화해시키는 것은 서구의 불교학자들만이 직면한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석가의 동시대인들에게나 그의 후대 제자들에게도 많은 어려움을 야기하였기 때문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불교의 카르마 및 재생 이론이 불교 이전의 그것들과 아주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사실상 인도의 철학 및 종교 사상에 대한 석가의 가장 중요한 기여 중의 하나는 '자아'와 같이 검증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실재를 가정하지 않고서 카르마와 재생의 현상을 설명한 데 있다.
칼루파하나의 이와 같은 설명은 무아적 윤회설에 근거하고 있다. 물론 그 자신은 개인적으로 무아설과 카르마 이론이 근본적으로 모순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무아설과 윤회설 사이의 상충 문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불교철학의 핵심문제로 다루어져 왔다는 사실을 부정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는 무아설과 윤회설을 이율배반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무아설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갖고 있다고 비판한다. 석가는 자아의 존재를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고서 중도의 입장을 취하였기 때문에, 무실체성의 이론(the theory of nonsubstantiality)은 한편으로는 브라만이나 아트만과 같은 우파니샤드적 실체의 존재를 부정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가능한 모든 연속성을 극단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물질론에 대한 부정의 입장으로서, 모든 가능한 자아 존재의 부정보다는 그 두 가지 극단적 대립 사이의의 중도를 지향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처럼 애매모호한 칼루파하나의 해석은 무아설의 근본입장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화시키고 있으며, 중도적 관점에서의 무아설은 "연기적(緣起的) 실체" 개념과 같은 새로운 형이상학적 명제의 정당화 주장으로 변질될 위험을 안고 있다.
일본의 유명한 선불교 학자 아베 마사오는 석가의 시도를 실천철학적 관점에서 새롭게 평가한다. 석가가 우파니샤드 철학, 다원론, 회의론, 허무주의와 같은 그 이전의 모든 세계관적 철학을 지양하고 무아설과 연기설을 새롭게 주장했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아베는 석가가 이와 같은 시도를 통하여 유와 무 사이의 대립 차원을 넘어서서 자유로운 절대무(해탈)의 실천적 토대를 마련하였다고 해석한다.
칼루파하나가 주장하는 중도적 무실체성의 주체, 그리고 마사오 아베가 제안한 해탈을 지향하는 자유로운 주체와 같은 개념은 역사적으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석가 이후의 불교계에서는 무아설과 윤회설 사이의 모순을 가장 중요한 철학적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이론적 보완작업을 경주해 왔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중관사상, 중도주의, 유식사상, 여래장사상 등은 무아설과 윤회설의 논리적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서 새롭게 제시된 이론명제들이었다. 이와 같은 주의て주장들은 모두 상견과 단견을 배제하여 공과 무아사상을 주체적으로 철저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후대의 해석들이 석가의 초기불교사상의 근본정신과 일치할 수 있는가는 여전히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다.
국내의 불교학자 김항배는 초기불교의 기본 교설인 삼법인의 핵심이 무아설에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 "'무아설'을 단지 '아'의 존재에 대한 적극적 부정으로만 본다면" 업과 윤회를 주장하는 불교 교설의 전체 체계와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에, 무아설을 진아설과 조화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초기불교의 무아설은 진아(ϧtman)의 적극적 부정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진정한 我가 아닌 것을 '我'라고 잘못 알아서 이에 대해 집착하는 그릇된 '我見'을 제거하기 위함이라는" 히라카와 아키라(平川彰)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즉 무아설을 상대화함으로써 윤회설과 진아설을 취하고자 한 것이다.
일본의 불교학자 增田英男은 무아설에 대한 해석 가능성을 다섯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로 무아설을 절대적으로 중시하는 입장이 있다. 이 경우에는 무아를 자아 존재의 부정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자아의 존재를 전제하는 윤회설은 불교의 본지가 아니고 그 당시에 유행하던 것을 첨가한 것 또는 방편적 응용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주체성의 문제는 미해결의 상태로 남게 된다. 둘째로 주체성을 강조하는 입장이 있다. 이 경우에 무아는 "주체로서의 자아"(主體我)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집과 집착에 빠진 고정적인 "실체로서의 자아"(實體我)를 부정할 뿐이고, 따라서 참된 자아(眞我)의 존재는 긍정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는 결국 무아설의 근본 취지를 훼손할 수밖에 없게 된다.
셋째로 무아설과 주체성(윤회설)이 양립할 수 있다는 입장이 가능하다. 이 설은 상호간의 입장 차이를 인정하면서 두 가설의 동시적 존립을 도모하고 있으나, 이는 모순의 회피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넷째로 무아설과 유아론을 동시에 부정하는 입장이 있다. 석가의 무기, 즉 중도가 불교의 본지라고 보고 어떤 것에 대해서도 확정적인 언표를 하지 않는 전략(방편)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무기는 진리 그 자체가 아니라 표현 불가능한 진리현상에 대한 소극적인 판단중지에 지나지 않는다. 다섯째로 무아설과 주체설의 양자를 초월하고 지양한 고차원적 견지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입장이 있다. 유아와 무아를 분별하는 주객분열적이고 분석적인 입장을 희론(戱論)이라고 보고, 이를 절대적으로 부정하고 초월한 무분별지(無分別智), 즉 반야의 체험적 실증에서 진실의 주체(法身, 自性淸淨心)가 확립된다고 본다. 增田英男은 이것이야말로 추구되어야 할 입장이라고 본다.
이에 대하여 정승석은 깨달은 사람(覺者)의 입장에서는 다섯 번째 설이 옳으나, 윤회설은 그 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범부의 세계를 반영하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으며, 그와 같은 차이에서 무아설과 윤회설의 현상적인 대립 또는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은 동일한 목표와 취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서로 일맥 상통하며 양립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세 번째의 주장 역시 모순회피적인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면 알라야식은 그 모순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소하는데 유용하며, 바로 그 때문에 알라야식은 무아와 윤회의 양립을 담보하는 개념이 될 수 있다. 알라야식은 상반되는 기능과 작용을 하나로 결합하는 원동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때문에 알라야식이 윤회의 주체라고 말하거나 해탈의 주체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고 하였다(정승석, 219).
이상과 같은 논의에서 우리는 처음에 문제되었던 무아설과 윤회설의 양립 가능성에 대한 물음이 해결되었다기보다는 더욱 더 복잡하게 되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 문제를 불교철학의 대표적인 아포리아로 규정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될 수 있는" 문제라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우선 무아설과 윤회설을 중심으로 원시불교사상의 근본 교의 체계 속에 들어있는 모순구조를 드러낸 후에, 이 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분명한 자기 입장을 갖고 있는 국내의 두 불교학자, 즉 윤호진 교수와 정승석 교수의 입장을 검토하면서 칸트주의적 시각에서 이 문제를 재조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2. 원시불교의 근본사상과 그 내적 모순
석가의 가르침을 원형에 가장 가깝게 전승하고 있는 문헌은 {아함경}(阿含經)이다. 아함경에서 가장 대표적인 석가의 사상은 사성제설(四聖諦說: 苦集滅道)과 삼법인설(三法印說)로 압축할 수 있다. 이 두 이론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여기에서 우리는 세계현상에 대한 석가의 근본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네 가지 진리(추가: 三法印說을 말함)란 어떤 것이냐? 모든 존재와 현상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니 이것이 첫 번째 근본 진리이다. 모든 존재와 현상은 괴롭다는 것이니 이것이 두 번째 근본 진리이다. 모든 존재와 현상에는 실체로서의 '나'가 없다는 것이니 이것이 세 번째 근본 진리이다. 번뇌가 다 멸하면[滅盡] 열반이라는 것이니 이것이 네 번째 근본 진리이다.
이 텍스트에서 첫 번째의 진리, 즉 "제행무상"(諸行無常)과 세 번째의 진리, 즉 "제법무아"(諸法無我)는 모든 형이상학적 실체의 존재를 부정하는 명제이다. 물론 여기에는 해석상의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지금까지도 정설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최소한 이 두 명제로부터 석가가 제기한 무아설이 정형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두 번째의 진리, 즉 "일체개고"(一切皆苦)와 네 번째의 진리, 즉 "열반적정"(涅槃寂靜)은 종교적 행위주체로서의 자아 개념을 전제하고 있다. 괴로움이 있다면 괴로움의 주체가 있을 것이고, 그와 같은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난 열반적 주체가 존재해야 할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불교이론 속에서 주체의 해체(무아설)와 주체의 구성이 동시에 지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석가 당시의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고, 그 이후의 불교이론가들이 여러 학설과 주장을 제시하였으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적절한 해결책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삼법인(三法印)에 담겨 있는 불교철학적 모순 명제는 결코 그대로 간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형이상학적 주체이든지 현상적 주체이든지 간에 모든 가능한 주체가 해체될 수밖에 없는 철학적 세계관 속에서 태어나서 행위하고 죽게 되는, 그러면서도 어떤 형태의 주체라고도 부를 수 없는 그런 연기적 주체가 설정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와 같은 연기적 주체 혹은 윤회적 주체는 현상적 또는 형이상학적 주체와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는가? 태어나서 고통 속에 머물러 있다가 열반적정의 세계를 찾아 들어가는 나는 도대체 어떤 나인가?
1) "주체의 부정"에 대하여: 무아설
브라만적 사고에 젖어있던 석가 당시의 사람들에게 그의 무아설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석가 이전의 주체 개념은 실제로 서구철학적 주체 개념과 유사한 것이었다. 석가가 새롭게 제시한 무아의 개념은 분명히 서구적이거나 브라만적인 실체적 주체 개념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석가가 모든 가능한 주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었고, 실제로 많은 경우에는 지금 우리가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참된 나의 모습은 아니라는 의미에서의 비아설적 요소가 강조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석가의 무아설에 대하여 온갖 형태의 물음들이 제기되었다. 많은 제자들과 반대자들로부터 무아설의 참된 의미에 대하여 질문을 받은 석가는 그 자신의 전생 윤회를 말하면서 인간, 즉 우리들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부분들이나 전체가 나의 참된 모습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비구여, 물질과 몸은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비구가 대답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만일 영원하지 않다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그렇습니다." "비구여, 만일 영원하지 않고 괴로운 것이며 변하는 법이라면, 과연 불제자[聖弟子]들이 그 변하는 물질과 몸에서 실체로서의 '나' 또는 '내 것'을 헤아리고 그것이 내 가운데 있고 내가 그 가운데 있다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비구여, 감수 작용은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 "영원하지 않습니다." […].
"비구여, 지각 작용은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 "영원하지 않습니다." […].
"비구여, 의지와 충동은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 "영원하지 않습니다." […].
"비구여, 분별의식은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 "영원하지 않습니다." […].
이 세상의 모든 물질과 몸은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섬세한 것이든, 잘난 것이든 못난 것이든, 가까운 것이든 소원한 것이든 모두 다 실체로서의 '나'가 아니요 '내 것'도 아니며 그것이 내 가운데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 가운데 있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이 세상의 모든 감수 작용·지각 작용·의지와 충동·분별의식은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친 것이든 섬세한 것이든, 잘난 것이든 못난 것이든, 가까운 것이든 소원한 것이든 모두 다 실체로서의 '나'가 아니요 '내 것'도 아니며 그것이 내 가운데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 가운데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물음은 새로운 의문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마갈다국 사람들도 결코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석가의 무아설에 대하여, "만일 물질과 몸·감수 작용·지각 작용·의지와 충동·분별의식이 영원하지 않은 것이라면 무엇이 살고 무엇이 고락을 받는가?"라고 의심하였다. 마갈다국 사람들의 이 상식적 물음에는 이미 무아설과 연기설의 관계라는 철학적 화두가 부각되어 있었다. 이에 대한 석가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어리석은 범부들은 가르침을 듣지 못해 '나'는 곧 '나'라고 보아 나에 집착한다. 그러나 실체로서의 나란 없는 것이요 나의 것 또한 없으며 실체로서의 나란 비어있는 것이요 나의 것 또한 비어 있는 것으로, 존재의 요소들[法]이 생겨나면 곧 생겼다가 그것들이 멸하면 곧 멸해 버리니, 모두 인연 따라 모여 괴로움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연이 없으면 모든 괴로움도 멸한다. 중생들은 인연 따라 끊이지 않고 모여 갖가지 상황[諸法]을 일으키나니, 부처[如來]는 중생들이 끊이지 않고 생기는 것을 보고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 것이라고 설하신다. […] 모두가 다 실체로서의 '나'가 아니요 나의 것이 아니며 나는 그것에 속한 것이 아님을 지혜로운 관찰로써 진실 그대로 알아야 하오.
석가의 이 대답은 지극히 애매모호하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현상세계는 실재세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계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실체 개념을 부정하고 실재를 생성과 변화의 측면에서 서술한다고 해서 주체 개념을 부정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무아설이 주체존재의 절대부정을 지향한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불교에서 주체의 부정이 서구적 주체 개념의 부정으로 한정될 경우에는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것이 생성과 운동과 변화를 강조하는 철학자들의 주체 개념까지도 부정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석가의 무아설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고 어디까지를 부정하는지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석가가 자신의 주장을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도입했던 논지를 살펴보면 무아설이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석가가 불교의 진리를 설파하기 전, 고대 인도에는 '아트만'과 '브라만'의 존재를 인정하는 우파니샤드 사상과, 그와 같은 관념적 형이상학에 반대하여 물질적 세계만이 존재한다는 물질주의자들을 으뜸으로 하는 육사외도의 사상이 공존하고 있었다. 물질론자들은 의식이나 정신의 존재는 물질적인 것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에 인격과 도덕의 문제를 상정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그 당시의 가장 일반적인 두 가지 세계이론, 즉 전변설(轉變說; pariɧāmavāda)과 적취설(積聚說; arambhavāda)이었다. 전변설에 의하면 모든 존재의 다양성은 브라만의 자기전개에 불과하다. 세계존재의 생성과 소멸은 브라만의 숨결에 지나지 않으며, 이로부터 곧 신이 세계의 모든 존재를 창조했다는 사인론(邪因論)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적취설에 의하면 세계의 존재는 더 이상 분리되지 않은 순간적 요소들의 이합집산에 구성되고, 그것이 그것으로서의 모습을 유지하는 한에서만 자기동일성을 갖게 된다. 이로부터 모든 존재는 원인 없이 자체적으로 존재한다는 무인론(無因論)이 성립된다. 이 두 가지 유형의 세계이해에 대하여 석가가 보여주었던 태도는 두 주장체계 모두를 부정하면서도 어떤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이른바 무기적 입장이었다.
육사외도의 사상에 대한 석가의 비판은 매우 단호하였다. 석가는 도덕부정론자였던 푸라나 카사파(Pūraɧa Kassapa), 숙명론자였던 막칼리 고살라(Makkhali- Gosāla), 고행주의자였던 니간타 나타푸타(Nigaɧʍha-Nātaputta), 회의론자였던 산쟈야 벨라티푸타(Sañjaya-Belaʍʍhiputta), 물질론자였던 아지타 케사캄발린(Ajita-Kesakambala), 그리고 물질적인 것(地て水て火て風)과 정신적인 것(苦て樂て命)으로 된 일곱요소설을 주장하였던 파쿠다 캇차야나(Pakudha Kaccāyana)를 모두 배척하였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인류가 생각할 수 있었던 가능한 모든 세계해석을 부정한 셈이다. 이처럼 석가가 주창한 불교사상은 그 이전의 모든 세계해석에 대한 배척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것들에 대한 어떤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칸트가 시도했던 것처럼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는 전략을 선택하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가 제시한 이론철학적 주장들과 실천철학적인 주장들 사이에는 어떤 불일치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석가는 일차적으로 아트만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석가는 다시 특별한 설명 없이 아트만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전자에 충실한 제자들은 극단적인 무아설에 이르게 되고, 후자를 따르는 제자들은 무아설의 극단화를 피하여 현상존재를 승인하거나 여러 가지 형태의 존재요청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석가의 설명에 의하면 어떤 경우에는 부정되기도 하고 다른 경우에도 인정되기도 하는 존재자들은 스스로 존립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의 법에 의하여 서로 매개되어 발생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스스로 그것이지 못하고 그것을 이루어내는 여러 가지의 계기들에 의하여 비로소 어떤 특정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하는 즉시 그것과 다른 어떤 것으로 이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체적 존재의 운동과 변화를 설명하기 위하여 현실성과 가능성의 원리를 도입한 것과 비슷하지만, 석가가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어떤 불변적 초월성을 가진 형상존재를 설정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석가에 의하면 존재를 이루어내는 여러 계기들, 즉 오온, 십이처, 십팔계, 육계가 모두 서로 매개되어 일어나기 때문에, 어떤 것이 그것이라고 정해진 모습을 단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모든 존재는 神我나 실체성을 가진 어떤 실재 및 요소들의 결합이 아니고, 그것 자체가 다른 모든 것과의 의존적 매개활동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다. 오온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은 자기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오온이라는 법 자체에도 정해진 어떤 자기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형이상학적 실체론이나 불변적인 실체를 부정하는 물질론 등을 모두 부정하면서 석가가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한 무아설(無我說)과 그가 실천철학적 구원론적 종교이론에서 특별한 설명 없이 전제하고 있는 주체 개념(윤회설과 열반의 주체) 사이에서 발견되는 논리적 불일치는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불교철학의 아포리아를 이루고 있다. 한편에서는 존재론적 주체가 부정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니르바나적 주체가 전제되고 있는데, 그와 같은 주체 개념의 긍정과 부정이 서 있는 지평은 연기설 또는 윤회설이다. 연기설 및 윤회설은 주체의 형성, 소멸, 신생에 관한 논의이기 때문에 무아설과는 모순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2) "주체의 승인"에 대하여: 윤회설
업설 또는 윤회설은 고통으로부터의 해탈이나 열반을 주제화하고 있으며, 따라서 필연적으로 인격적 통일성을 가진 주체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다. 이 이론은 이전의 것과 지금의 것이 현상적으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더라도, 그 둘 사이에 동일성의 비밀이 은폐되어 있다는 전제 하에서만 성립될 수 있다. "윤회"(輪廻, samsara)는 "함께"라는 뜻의 sam과 "달리다", "흐르다", "건너다", "빨리 움직이다"는 뜻을 가진 sara가 합쳐진 말이고, "카르마"(Karma)는 "일", "행동", "행위"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따라서 카르마 및 윤회신앙은 자연현상이 법칙적으로 생기하는 것처럼 인간의 모든 행위 사실들 역시 법칙적으로 승계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이것이 가능하게 되기 위해서는 도덕적 행위주체의 존재, 그리고 자연법과 도덕법의 구조동일성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윤회설에 근거하여 우리는 불교를 가장 세련된 형태의 도덕종교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베다 시대에는 업설이 아직 정형화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관측이다(윤호진, 26쪽 이하). 최상의 쾌락과 불사에 대한 염원이 있었지만 대개는 현세적인 삶의 연속으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은 제사행위가 마술적인 덕을 유발시켜서 최상의 물질적 기쁨을 가져온다고 생각함으로써 도덕적 행위보다는 제의적 은총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차츰 행위에 의한 우주적 인과성의 원리로 정착되면서, 자연과 도덕의 세계를 동시에 꿰뚫는 법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브라흐만 시대에는 사후세계의 문제가 하나의 확실한 사실로서 전제되었으며, 미래적인 삶과 행복의 문제가 중시되었다. {브라흐마나}에서는 제사행위가 미래적 삶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인자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업의 문제보다는 공덕의 수단으로서 제사의 문제가 중시되었다. 그러나 기원전 10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사이에서 형성되었다고 추정되고 있는 {우파니샤드}에서는 윤회와 업 사상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서는 인간의 운명이 의식(儀式)이나 제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행위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보았다. 베다와 브라흐만 시대에 형성되기 시작한 아트만 개념 역시 우파니샤드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영원한 개별 인격을 뜻하는 형이상학적 주체 개념으로 자리잡게 된다. 영원 유일의 영혼적 실재로서 그것에 의하여 모든 것이 살아있게 되는 것, 그것은 바로 아트만이었고, 이것은 카르마적 주체 개념으로 자리잡게 된다.
힌두교에서 아트만과 카르마의 결합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행위와 결과에는 시차가 존재하며, 그 사이에는 어떤 특별한 연계성이 있어야 한다. 죽음이라는 현상은 행위 결과의 발생을 저지하지 못한다. 업력에 의하여 영혼은 하나의 신체에서 다른 신체로 이동하게 된다. 인간의 영혼은 업에 의하여 구속되며, 과거 행위의 결과로 인하여 영혼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정승석, 251). 이와 같은 업 이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행위주체의 인격적 동일성의 확보가 요구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전 존재와 이후 존재의 신체적 차이 또는 개체적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전자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후자에게 전가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인격적 동일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힌두인들은 그것을 아트만이라고 불렀고 쟈이나교도들은 지바(jiva)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와 같은 행위주체의 인격적 동일성이 확보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업의 구속성과 행위주체의 자유 사이에서 오는 대립과 갈등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카르마 이론에 의하면 윤회의 상태에 있는 자는 불가항력적인 과보에 의하여 구속되어 있기 때문에 행위주체의 자유의지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카르마는 우파니샤드에서부터 윤리적 행위로 발전되다가, 불교신앙에 이르게 되면서 그 도덕주의적 측면을 완전하게 구비하게 되었다. 불교에서는 현세적인 인간적 삶의 차이가 전생에 지은 업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불교는 실체적 주체 개념을 파기하면서 카르마 이론을 수용하였기 때문에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되었다. 이러한 사태는 {잡아함경}의 한 구절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업의 과보는 있지만 그것을 짓는 자는 없다". 따라서 불교의 사상적 특징을 무아설로 규정할 경우에 이것은 필연적으로 카르마 이론과 모순되지 않는가라는 물음이 부단하게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의 해체 노력이 불교사상사를 발전시켜 왔던 것도 사실이다. 불교에서는 업력을 담지하여 과보로서 전달하는 실체적 자아존재를 부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상적인 행위주체의 존재까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그와 같은 현상적 주체는 참된 의미에서의 주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선에서 무마시키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가아(假我)를 전제함으로써 이타적인 자비행이나 윤회설을 가능하게 하려는 것이다(정승석, 260). 가아는 불변적 고정적인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악행에 의하여 악하게 될 수 있고 선행에 의하여 선하게 될 수 있는 가능적 존재이다. 그러나 이같은 가아의 설정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전의 가아와 지금의 가아, 그리고 다음에 나타나게 될 가아 사이에 어떤 인격적 동일성의 근거가 없다면 카르마 이론이 들어설 자리가 없고, 그런 것이 있다면 무아설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아설과 카르마적 연기설의 문제를 연기론적 입장에서 보면 무아설이 어떻게 이해될 수밖에 없는지 분명하게 된다. 무아설의 입장에서 아트만은 그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그것이 아니라고 할 것도 없었다. 모든 것은 그것이 아닌 동시에 그것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이 주체적 존재를 긍정하는 것인지 부정하는 것인지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카르마적 연기설의 입장에 이 문제를 들여다 보면, 그것이 아니면서 그것이 아닌 것도 아닌 어떤 존재자의 행위 사실은 모두 보존되어 이전의 존재자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출현하게 되는 지금의 것에 대하여 승계된다. 다시 말하면 무아설의 입장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던 도덕적 실천의 주체의 존재와 그 인격적 동일성이 전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에서 막스 베버가 "카르마 이론은 세계를 엄격하게 합리적이고 윤리적으로 결정된 우주로 전환시켰다"라고 말한 것은 정당한 것이다.
이제 카르마적 연기설의 측면에서 바라볼 경우에 불교의 수행이론 및 열반의 가능성 조건으로서 도덕적 행위주체의 존재가 필연적으로 요구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몇 가지 예문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는 카르마적 주체의 설정이 필연적으로 무아설의 근본을 뒤흔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자 한 것이다.
불교의 수행이론 가운데는 사정근(四正勤)에 대한 논의가 있다. 이는 네 가지의 바른 끊음에 대한 것이다. 여기에서 끊어야 할 대상은 악업, 즉 악한 행위 결과들이 분명할 것이다. 이와 같은 악업은 끊음으로써 끊고(斷斷), 율의로써 끊고(律儀斷), 보호함으로써 끊고(隨護斷), 닦음으로써 끊지(修斷)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우리는 이미 생긴 악법을 없애기 위해서는 일심으로 정진해야 하고, 아직 생기지 않은 악법은 생기지 않도록 일심으로 정진해야 하고, 아직 생기지 않은 선법은 생기도록 하기 위하여 일심으로 정진해야 하며, 이미 생긴 선법은 더욱 키워나갈 수 있도록 일심으로 정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말한 모든 사실들이 가능할 수 있기 위해서는 악업을 끊어내고 선업을 확장시켜 나갈 도덕적 수행주체의 존재가 필연적으로 요구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만일 그런 도덕적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무아설), 도대체 어떻게 그리고 누구에게 이와 같은 주체적 행위가 가능한가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하루는 장로 천타(闡陀)가 비구들에게 진리를 청하여 물었다. 비구들이 답하기를 "모든 것[一切行]은 영원하지 않은 것이며, 모든 것[一切法]에는 실체로서의 '나'가 없고, 열반은 고요한[寂滅] 것"이라고 하였다. 이른바 세 가지의 진리, 삼법인(三法印)를 설하였다. 이에 대하여 천타는 "도대체 그 중에 어떤 '나'가 있어서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것을 일러 진리를 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무아설을 반박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석가의 제자 아난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세존께서 마하가전연(摩訶迦烅延)에게 가르치시는 것을 직접 들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있다 또는 없다는 두 극단에 의하여 뒤바뀌어 있다. 세상 사람들은 갖가지 경계를 자기화해서 헤아리고 집착한다. […] 세상의 발생을 진실 그대로 바르게 관찰하면 세상이 없다는 견해가 생기지 않고 세상의 소멸을 진실 그대로 바르게 관찰하면 세상이 있다는 견해가 생기지 않는다. 가전연이여, 부처는 두 극단을 떠나 중도에서 설하나니,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는 것이다.
천타의 물음에 대한 아난의 답변은 적절하지 않았다. 무아적 주체와 윤회적 주체의 관계설정에 대한 천타의 물음, 즉 진리인식이나 진리실천의 측면에서 무아설을 반박하고자 하였던 시도에 대하여, 아난은 무기적 중도설로 답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아난의 대답은 무아설의 관점에서 보면 카르마적 연기설이 들어설 자리가 없고, 연기설의 관점에서 보면 무아설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천타는 무아설의 입장에서 윤회연기설의 가능성 조건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였으나, 아난의 답변은 두 가지 경우를 뭉뚱거려서 대답한 것이다. 존재자나 실체라는 것도 사실 그렇다. 현재의 사태를 현상학적으로 바라보면 존재를 부정할 수 없고, 그 사태의 변화て소멸을 보게 되면 존재를 승인할 수 없다. 그러나 천타가 물었던 것은 이것이 아니다. 인격적 자기 동일성을 가진 인식 및 행위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진리이론과 불교적 구원이론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물었던 것이다. 혹자는 불교에서의 윤회설 혹은 연기설이 무아설과 상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같은 주장이 이론적으로 가능하기 위해서는 석가의 이론적 세계 인식과 실천적 종교적 진리 주장 사이에서 제기되는 논리적 간격을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불교구원론을 구성하는 연기적 주체를 설정할 경우에는 무아설이 폐기되거나 그 절대적 의미가 손상되어 존재 승인의 형태로 변형될 수밖에 없게 된다. 불교에서의 연기적 주체는 의식의 통일성을 전제하고 있으며, 특정한 인격체의 행위사실에 대한 책임이 인과론적으로 규정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것은 철저하게 무아설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연기적 주체의 존재 승인이 곧 무아설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석가 자신의 주장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석가가 자신의 전생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낸 사실 속에서 우리는 무아설이 철저하게 부정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석가가 구원론적 차원에서 윤회적 주체, 즉 자아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와 같은 행위 주체는 고통을 느끼고 있으며, 모든 가능한 괴로움으로부터 탈출하여 해탈의 세계로 들어가기를 염원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널리 알려서 수많은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석가의 의도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석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였던 사성제(四聖諦)는 바로 무아설과 연기설을 기초로 한 실천적인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괴로움의 범위에 대한 진리"[苦聖諦],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진리"[苦習聖諦],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苦滅聖諦], "괴로움의 소멸을 위해 실천해야 할 방법에 대한 진리"[苦滅道聖諦]에는 무아설이라는 세계관적 전제를 바탕으로 한 세계현상의 설명과 그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조건이 담겨져 있다. 윤회적 주체와 니르바나적 주체와 같은 구원론적 차원에서의 주체 개념에는 분명히 인격적 통일성이 전제되어 있다. 이 사실은 과거 세상의 갖가지 일을 다 기억하는 능력 등, 부처가 갖고 있는 여러 능력들에 대한 상세한 기술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부처가 갖고 있는 고유한 능력 가운데 하나는 무한한 윤회적 삶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자기 존재의 동일성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즉 부처는 이 세상에 와서 수행을 완성하여 진리를 보여 주는 사람[如來]이요, 모든 번뇌를 다 끊어서 일체 중생들에게 공양을 받을만한 덕이 있는 사람[至眞]이며, 모든 것을 아는 지혜를 갖추어 평등하고도 바른 깨달음을 얻은 사람[等正覺]이요, 지혜와 바른 행실을 다 갖춘 사람[明行成爲]이며, 생사윤회가 거듭되고 있는 삼계를 벗어나 피안에 잘 도달한 사람[善逝]이요, 일체 세간의 온갖 일을 다 아는 사람[世間解]이며, 모든 중생들 가운데 가장 높고 큰 스승[無上師]이요, 중생들을 잘 다루고 가르쳐 인도하는 이[道法御]이며, 인간과 천자들의 스승[天人師]이요, 깨달음을 얻어 세간을 이롭게 하며 세간의 존중을 받는 높고 귀한 이[佛世尊]이니 그에 대하여 흔들림 없는 환희심을 일으키는 것이다.
내 전생을 기억하건데, 나는 과거세에 오랜 세월 동안 선행을 실천하여[修福] 갖가지 훌륭하고 사랑할 만한 과보를 받았다. 나는 일찍이 7년 동안 남을 사랑하는 마음[慈心]이 몸에 익을 때까지 수행하여 7겁(劫)이 형성되고 무너지는 동안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 7겁이 무너질 때는 광음천(光音天)에 났고, 7겁이 이루어질 때는 범천[梵天]에 나서 하늘의 궁전에서 천세계(天世界)를 다스리는 가장 뛰어난 이인 대범왕(大梵王)이 되었다. 그후로는 다시 36번이나 천제석(天帝釋)이 되었고, 또 백천 번이나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었다. 그때 나는 사천하(四天下)를 바른 도덕적 규범[法]으로 다스렸고 […] 슬하에 용감하고 건장한 천 명의 아들을 두었다.
또 부처는 과거 세상의 갖가지 일을 다 기억하여 일(一) 생(生)에서 백천 생에 이르기까지 혹은 일 겁(劫)에서 백천 겁에 이르기까지 기억하되, '나는 그때 거기서 나고 이러한 종족에 이러한 성씨에 이러한 이름을 지녔고 이러한 음식을 먹었으며 이러한 고통과 즐거움을 느꼈고 이러한 수명을 누렸으며, 거기서 죽은 뒤에는 여기서 났고 여기서 죽어서는 저기서 나서, 이러한 행위와 이러한 인연에 이러한 방편으로 살았다.'는 등 과거세에 겪은 일을 진실 그대로 아나니 이를 일러 부처의 여덟째 능력이라 한다.
무수한 겁 동안
나고 죽으며
윤회한 일 헤아릴 수 없나니
저마다 편안함 구하지만
번번히 괴로워하고 번뇌할 일 당하는도다.
내 전생 몸 보니
그 살 집 지어 주고 싶건만
그 몸 마디마디 허물어져
형체 온전치 못하네.
내 마음 이제 이 세상 모든 것들 떠나
남은 애착 없으니
이제 다시는 이런 몸 받지 않고
열반(涅槃) 길이 즐기리.
그러나 이와 같은 윤회주체와 열반주체의 설정은 무아설을 위태롭게 하기에 충분하고, 그 반대로 우리가 만일 무아설에 집착하게 되면 구원론적 주체 개념의 설정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두 가지 명제 사실을 화해시킬 수 있는 방식 중에서 가장 쉽게 연상할 수 있는 것은 무아설의 주장을 상대화시키는 방식이다. 그래서 석가 이후의 불교사상가들은 무아설의 근본주장을 여러 형태로 변형시키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선목(善目)이라는 벽지불(抗支佛)이 있었는데, 그는 용모가 단정하고 얼굴은 마치 복숭아꽃빛처럼 아름다우며 눈매가 또렷하고 입에서는 우담바라 향기가 났고 몸에서는 전단향(烅嫏香) 냄새가 났다. 선목 벽지불은 때가 되자 가사를 걸치고 발우를 들고 바라내성에 들어가 걸식하다가 큰 장자(長者)의 집에 이르러 그 문 밖에 잠자코 서 있었다. 그때 장자의 딸은 어떤 수행자[道士]가 문 밖에 서 있는데 용모가 단정하기 이를 데 없고 얼굴 생김은 보기 드물게 뛰어나며 입과 몸에서는 우담바라 향기와 전단향 냄새가 나는 것을 보고는 곧 욕심을 내어 가 말했다. […] 저는 지금 처녀이고 용모도 단정하니 서로 합할 만합니다. 그리고 저희 집에는 진기한 보물과 재물이 많습니다.[…] 그러자 벽지불이 물었다. '누이여, 그대는 지금 나의 어디에 사로잡혀 있는가?' '저는 당신의 그 눈과 입에서 나는 우담바라 향기와 몸에서 나는 전단향내에 끌립니다.' 그러자 벽지불은 오른손으로 눈을 빼서 왼손 바닥에 놓고 말했다. '그대가 사랑하는 눈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누이여 이제 이것의 어디에 끌리는가? 누이여 이것은 마치 종기와 같아 탐낼 만한 데라곤 하나도 없다. […] 입은 그저 침 그릇으로 더러운 것들을 내고, 백골을 싼 이 몸은 괴로움의 그릇이요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며 늘 더러운 것을 담고 있는 것으로 갖가지 벌레들이 우글대고 있으며 보기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병 같으나 안에는 더러운 것이 가득 차 있다.[…]
그때 장자의 딸은 […] 말했다. '지금부터 허물을 고치고 선(善)을 행하여 다시는 탐내는 생각을 내지 않겠으니 부디 저의 참회를 받아 주십시오.' 그러자 벽지불이 말했다. '됐다. 누이여, 이는 그대의 허물이 아니라 나의 과거세 죄이다. 내가 이러한 모습을 받은 까닭에 남에게 욕정을 일으키게 한 것이다. 그대는 이 눈을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이 눈은 내가 아니요 나는 이 눈의 것이 아니며 또한 이 눈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요 눈이 나를 만든 것도 아니다. 그저 없음에서 생겨난 것이요 생겨난 뒤에는 곧 무너지고 없어지는 것으로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니며 다 원인과 조건[因緣]이 모여 된 것이다."
이 텍스트에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선목 부처님과 아름다운 여인이 등장한다. 여인이 선목에게 반하였다면 그것은 누구의 업 때문인가? 유혹하는 자는 누구이고 유혹당하는 자는 누구인가? 유혹하는 자가 그 홀림의 대상으로 인하여 마음이 흔들렸다면 그것은 누가 지은 업이라고 해야 하는가? 도대체 왜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죄악으로 규정되고 있는가? 욕정을 느낀 여인과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참회하는 여인은 동일한 여인인가, 그렇지 않으면 전적으로 서로 다른 주체들인가? 이 경우에 선업(善業)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의 주인은 누구인가?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선한 의지를 갖고서 선한 결정을 하였다면, 그것은 현재의 내가 결정한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나를 이루고 있는 무수한 과거적인 나의 행위가 결정한 것인가, 아니면 그 양자의 결합에 의한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모든 것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인가? 연기적 주체는 자유의지를 사용할 수 있는가, 또한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어떤 여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고, 그 여인이 한 사내를 볼 수 있고, 그 사내에게서 연정을 갖게 되고, 그 속마음을 사내에게 털어놓을 수 있기 위해서는, 이 모든 사건적 연속을 일관되게 인지하고 파악할 수 있는 인격적 주체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존재자의 상정이 필요하고 또한 가능하다면, 그것은 현세적 시공간을 넘어서서 우주적, 영원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니르바나의 사건체험에 도달할 때까지도 가능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찰나적 존재와 영원적 존재의 차이는 사라지게 되고, 개체와 전체의 구분도 무의미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윤회 및 연기적 주체의 관점에서 보면 무아설이 들어설 자리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3. 무아-윤회 모순설에 대하여
무아-윤회 모순설이란 석가의 무아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에는 주체가 부정되고 윤회설을 수용할 경우에는 주체가 필연적으로 전제되는 사실에서 오는 두 이론체계 사이의 모순관계를 강조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무아설과 윤회설의 모순관계를 드러내는데 그치지 않고 그 두 개의 이론이 양립할 수 있는 새로운 조건을 모색하고 있다. 아마도 국내학자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이론가는 윤호진(尹浩眞) 교수일 것이다.
윤호진은 1981년에 프랑스 소르본느대학에 제출하였던 박사학위 청구논문 {那先比丘經에서의 무아와 윤회문제}(Le Problème de l'anātman et du saɣsāra dans le sūtra du bhikʃu Nāgasensa)에서 무아설과 윤회설의 모순 관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이 논문은 1992년에 {無我·輪廻問題의 硏究}(민족사)라는 제목으로 우리말로 출판되었다. 그는 불교의 핵심 교리인 무아이론과 윤회설이 모순 관계에 있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역사적으로 다양한 노력이 계속되어 왔음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無我理論은 불교의 핵심교리로서 고유한 것이다. 그 반면 輪廻理論은 바깥에서 도입된 것이다. 이 두 이론은 다른 바탕에서 이루어져 한자리에 모였다. 무아이론과 윤회이론은 양립할 수가 없다. 그러나 불교는 이 두 이론을 양립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불교가 시작된 이래 이 두 이론은 계속해서 불교사상가들을 괴롭혀 왔다.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온갖 상상력을 동원시켜야 했다. 그 덕택으로 윤회이론은 다른 어느 종파에서보다도 불교에서 가장 많이 발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이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다. 無我て輪廻問題는 지금도 우리에게 보다 좋은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
윤호진에 의하면 불교의 핵심적인 이론은 무아설이고, 이것은 윤회설과 모순적인 관계에 있다. 그러나 무아이론과 윤회이론은 불교를 지탱하고 있는 두 개의 큰 기둥이기 때문에, 그 둘 중의 하나를 버리게 될 경우에는 불교 자체의 존립이 불가능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그 두 이론 중 어느 것도 포기할 수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 두 교리가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무아설의 입장에서는 윤회의 주체가 인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윤회의 주체를 인정하는 것은 곧 실체적인 자아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무아설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그래서 양립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버릴 수도 없는 이 두 이론을 양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이 때문에 석가 이후의 불교사상사에서 무아설과 윤회설의 양립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가장 핵심적인 과제로 부각되었다는 것이다(윤호진, 13). 석가 이후의 주요 불교교설은 무아설을 견지하면서도 윤회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새로운 형이상학적 주체 개념의 설정에 몰두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 무아와 주체성은 서로 모순한다. 이 모순에 관한 의문은 일찍이 원시불교에도 보이지만, 부파시대에 이르러 특히 윤회의 문제와 결부되어 요란하게 논의되었다. 즉 "만약 我가 없다면 6道를 윤회하는 자, 응보를 받는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상좌부의 有分(bhavaɥga)識, 有部의 5蘊 相續說 내지 中有說을 비롯하여 독자부의 補特伽羅(非卽非離蘊), 경량부의 一味蘊(根本蘊), 化地部의 窮生死蘊, 대중부의 根本識 등이 설해져서 혹은 무아론의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뭔가의 주체적 지속이 가능함을 설명하고자 하고, 혹은 일종의 정신적 주체를 인정하여 유아론으로 이끄는 등, 여러 가지로 해명에 고심한다. 무아의 사상은 般若 空觀에서 다시 심화하고, 이로부터 대승적인 '無我 즉 大我' 또는 '蘊 속의 眞我' 사상, 혹은 여래장이라든가 佛性을 설하며, 혹은 마나식과 아뢰야식을 세우는 입장, 더 나아가서는 無位의 眞人을 바로 증득하는 입장 등이 전개되어 간다.
불교에서의 존재 개념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물질적, 정신적 현상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으며, 이것은 곧 전통적인 실체 개념인 아트만의 존재에 대한 부정을 정식화하였다. 그레서 인간 존재는 "수레"나 "등불"에 비유되었다. 여러 가지 재목을 한 곳에 모아서 만든 것을 수레라고 부르는 것처럼, 모든 쌓음(蘊)의 인연이 모인 것을 중생(存在)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등불에도 적용된다. 사람들은 기름을 인하여 타오른 등잔의 불을 보지만, 그 기름은 덧없고 심지도 덧없으며, 불도 또한 덧없고 그릇도 또한 덧없는 것이다. 어떤 존재자가 존재하고 있지만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운동て변화하고 있는 경우에 그것을 언제나 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당성 근거는 어디에서 찾아지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실체 또는 본질이라는 개념으로 정당화하고자 하였다. 만일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것과 같은 실체나 본질이 실제로 사실 속에서 들어설 자리가 없는 것이라면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물질적 요소들의 우연적인 결합과 유지 및 분산 작용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불교에서의 무아설은 이와 같은 서구 존재론의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윤호진은 무아설을 설명하는데 전통적으로 연기이론과 오온이론이 도입되고 있다고 소개한다(윤호진 81쪽 이하). 연기(緣起, pratītyasamutpāda)는 "때문에", "에 의해서"를 뜻하는 pratītya와 "태어남"과 "생산"을 뜻하는 samutpāda가 합쳐진 말로서, 어떤 조건들에 의하여 형성되는 것을 가리킨다. 연기법에 의하면 세계 속의 모든 존재는 전적으로 상호의존적인 것이어서, 고정불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각각의 존재를 발생시키는 각 요소들은 조건에 의하여 생기고, 그것은 동시에 다른 요소들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연기법에 의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어떤 불변적 실체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 변화, 소멸 중에 있을 뿐이다. 연기법에 의하면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나며(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것이 사라진다(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 다시 말하면 우리의 존재는 전적으로 상대적이고 상호의존적으로 조건지워져 있기 때문에 고정불변적이고 실체적인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존재는 무아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윤호진의 설명은 단순히 무아설이라는 결론을 미리 설정하고 연기설을 해석한 것이어서 근본적이지 못한 측면이 있다. 연기설은 무아적인 측면도 있지만 윤회설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연기적으로 우리에게 드러난 세계현상은 형이상학적 실체를 인정할 수 없게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배후와 근거에서 그러한 현상들을 법칙적으로 발생하게 하는 어떤 원초적 원리와 본질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 입증할 수도 없고 반증할 수도 없는 처지에 있다. 그러므로 연기법은 무아설의 한 측면을 설명하는 계기는 될 수 있을지라도 연기설 그 자체가 무아설을 확정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윤호진에 의하면 오온이론(panca-skandha) 역시 우리의 존재가 여러 가지 요소들의 결합체로서 불변적인 자아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지하고 있다. 오온(五蘊)이란 인간과 사물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존재요소로서 색(色: 육체), 수(受: 감수작용, 감정), 상(想: 대상 인식), 행(行: 정신작용과 특성), 식(識: 眼耳鼻舌身意)을 뜻한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등의 실체적 본질성에 대한 물음을 오온이론으로 접근할 경우에는 부정적인 답을 얻을 수밖에 없게 된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 그 어떤 부분이나 부분들의 총합도 나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오온이론은 비아설(非我說)이라는 형태로 무아설에 접근해 가고 있다. 물론 오온이론은 현상적 존재분석에 충실한 이론이고, 따라서 그 현상존재들의 배후와 근거에 어떤 초월적 계기가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무기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격적 존재의 통일성을 입증할 수 있는 어떤 초월적 존재계기의 요청이 없는 한 오온이론은 비아설 또는 무아설로 해석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윤호진은 오온이론, 특히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에 대한 텍스트 분석을 통하여 무아설을 정당화하고자 하였다. 밀린다왕은 나가세나(Nagasena)에게 나가세가가 무엇인가, 즉 나가세나라는 인격적 정체성에 대하여 묻고 있다. 밀린다왕은 나가세나의 인격 주체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신체의 구성부분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오온이론을 통한 존재 분석을 시도하게 되고, 그때마다 나가세나의 부정적인 대답에 직면하게 된다. 밀린다왕에 대한 나가세나의 공세도 마찬가지 논증에 따르고 있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얻은 공통된 결과는 여러 부분들에 대한 이름들과 공통적인 개념, 그리고 일상적인 표현으로부터 어떤 특정한 존재자에 대한 이름이 형성되지만 실제로 그것에 대한 인격적 개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윤호진, 172 참조). 이처럼 오온이론은 어떤 것의 존재가 실제로 무수한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들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영원불변하는 실체 존재와 같은 것은 없다고 단정하고 있다.
윤호진은 초기불교의 무아설이 연기설이나 오온설을 통하여 바라볼 경우에 단정적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처럼 무아설을 절대적인 것으로 승인하면 할수록 우리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불교의 또하나의 진리주장, 즉 윤회설과 모순되고 상충되기 때문이다. 윤회사상은 이미 우파니샤드에 나타나 있으며, 육사외도 가운데서도 세 사람, 즉 니그란타, 파쿠다, 막칼리는 카르마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석가 역시 여러 곳에서 자신이 성불하기 이전의 여러 삶에 대하여 회상하였다. 윤회를 가능하게 하는 삼계(三界)와 오도(五途)에 대해서도 많은 설명이 뒤따르고 있다. 삼계란 수메르산에 위치하고 있는 욕계(欲界, Kamadhatu), 색계(色界, Rupadhatu), 무색계(無色界, Aruphyadhatu)를 말한다. 욕계는 지옥, 아귀, 축생, 인간, 그리고 저급한 신들이 사는 세계로서 욕망과 지식과 업이 존재하는 곳이다. 색계는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서 정신적 즐거움만을 가진 신들의 세계이다. 무색계는 육체나 욕망이 없는 순수한 정신적 존재들이 살고 있는 모든 물질적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운 세계이다. 오도는 악도(惡途)인 지옥(地獄, naraka), 아귀(餓鬼, preta), 축생(畜生, tiryagyoni)의 길, 그리고 선도(善途)인 인간(人間, manusha), 천(天, deva)의 길을 말한다. 이와 같은 다양한 세계 개념의 설정은 어떤 특정한 윤리적 종교적 주체의 행위 결과가 없어져 버리지 않고 그 존재의 사멸 이후에 계속되는 다른 형태의 존재를 통하여 지속된다는 사실에 입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윤회적 세계관은 무아적 존재이해와 모순상충되는 것이다.
이제 무아설과 윤회설의 모순 관계는 확인되었다. 그런데 윤호진은 석가 이후의 불교사상가들이 이 문제를 충분하게 인식하였으나,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이론들이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화해시킬 수 있는 새로운 개념틀의 모색을 시도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무아설의 근간을 흔들지 않으면서도 윤회설을 정당화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중도체계의 구축이 시도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푸드갈라(Pudgala) 이론은 오온의 배후에서 그것과 같은 것도 아니면서 다른 것도 아니지만 그것들을 짊어지고 있는 짐꾼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새로운 개념을 발굴하였다. 식(識, vijñāna) 이론에서는 아트만과 유사한 생명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정신적 의식현상을 발굴하고자 하였다. 인간이 수태하기 위해서 필요한 간다르바(gandharva; 香陰, 中陰衆生)의 설정이 바로 그것이다. 상속(saɣtati) 이론에서는 푸드갈라와 알라야식과 같은 어떤 것 대신에 "상속"이라는 과정 자체를 도입하였다. 상속이론에 의하면 어떤 존재자가 이전의 삶에서 새로운 삶으로 이행할 경우에, 어떤 유형의 존재요소들, 즉 영혼て정신て물질의 형태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카르마의 원리에 의한 상속을 통하여 계속된다. 이러한 주장은 현상적으로 무아설과 윤회설이 모순되지 않는 것처럼 착각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상속이론에서도 과보의 주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이처럼 푸드갈라, 알라야식, 상속 등의 새로운 개념설정은 무아설과 윤회설의 모순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역사적 시도였다. 그러나 이것들은 윤호진의 지적처럼 어디까지나 하나의 방편에 지나지 않으며, 그 자체로 완벽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4. 무아-윤회 양립설에 대하여
정승석 교수는 무아설과 윤회설이 양립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무아설이 불교의 고유한 주장이라는 사실은 승인하고 있다. 따라서 영혼과 같은 불멸의 본체를 상정하고 있는 고대 인도의 윤회설에 비추어 볼 때 무아설은 현상적으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다가 석가는 일반적으로 자아의 존재, 세계 속의 영혼, 해탈한 자의 존속 등의 형이상학적 물음들에 대하여 침묵(無記)함으로써 해석상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것이 사실이다. 올덴베르크(Oldenberg)는 석가의 무기가 자아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른바 무아설로 이끌었다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앞에서 살핀 것처럼 불교 내부에서는 무아설과 윤회설이 상충되지 않도록 영혼(아트만)의 대체 개념을 발굴하려고 고심하였다. 진아(眞我), 여래장(如來藏), 불성(佛性), 마나식, 아뢰야식 등이 바로 그것들이었다. 그 결과 이와 같은 불교 내부의 시도를 중시하였던 샤르마(Sharma)와 같은 이는 불교의 무아설이 아트만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또다시 이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었다. 카아(Kar)는 석가의 무기가 절대적 아트만을 승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합리적인 근거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무아て윤회의 문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상황을 숙지하고 있는 정승석은 윤회와 무아가 현상적으로 모순됨에도 불구하고 석가가 그 두 가지 주장을 사용하였다는 가장 일반적인 사실로부터 논의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다시 말하면 석가의 의식 속에서 윤회와 무아가 양립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무아설과 양립할 수 있는 윤회설의 성격을 규정하고자 한 것이다(정승석, 86). 정승석에 의하면 윤회설과 무아설의 문제는 윤회주체로서 인격의 동일성을 가진 주체가 항존해야만 윤회도 성립할 수 있다고 전제하는 데서 비롯된다(정승석, 4쪽 이하). 무아설은 윤회를 가능하게 하는 주체적 자아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불교에서 윤회설은 무아설과 상충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정교수는 이러한 일반적 이해는 윤회의 주체로서의 자아를 불교가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시한 처사라고 본다. 자아가 있어서 윤회한다는 이론은 전통적인 힌두사상의 주장이고, 불교에서는 그와 같은 자아가 없어도 윤회한다는 이른바 "무아윤회설"을 고수하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불교윤회설은 영혼 개념으로서 아트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윤회설이 성립된다는 사실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영혼과 같은 불멸의 본체를 상정하지 않고서도 윤회가 가능하다면 무아와 윤회의 모순관계가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정승석, 87).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무아설과 윤회설이 양립될 수 있는가? 정승석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불교는 영혼과 같은 윤회의 주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윤회를 인정한다. 이런 윤회설을 무아설과의 양립 불가라고 논란하기보다는 불교의 윤회설로 그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 緣起的인 세계의 생성·변화 과정은 어떤 基體로서의 我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설명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윤회는 我가 없더라도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의 범부 의식에서는 我를 상정함으로써 심리적 집착에 의해 고통의 세계를 연출하므로, 我는 부정되고 윤회는 극복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결국 불교에서의 무아설과 윤회설은 그 취의가 동일하며, 이런 의미에서도 무아설과 윤회설은 양립한다(정승석, 121).
무아て윤회의 양립 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정승석은 무아설에 대한 포괄적인 해석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것은 비아설(非我說)의 확대로 나타난다. 팔리어 성전에서의 "무아"(anattā)에 상응하는 산스크리트어는 anātman이다. 그런데 리스 데이비즈는 그것을 "비아"로 해석하였다. 실제로 그것은 경전의 여러 곳에서 "내가 아닌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와는 달리 "비아"의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없는 무아의 산스크리트 원어는 nirātman("아트만이 없는", "無我인")인데, 팔리어 성전에서는 이 말에 상응하는 표현은 발견되지 않고 있어서, 후대에서야 비로소 사용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정승석, 26). 따라서 팔리어의 anattā는 "비아" 또는 "무아"를 동시에 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승석의 주장은 무아설의 절대적 의미를 약화시키려는 의도와 연결되어 있다. 그는 불교의 참된 교의는 무아를 주장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비아의 실천적 의미를 밝히는 데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비아란 무엇인가? 석가는 우리의 일상적인 모습이나 그 구성요소를 가리켜서 그것이 참된 자아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오온의 다섯 가지 구성요소 중의 각각이나 혹은 그 모든 것의 총합이 자아는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비아설에 대한 논의는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비아설은 무아설과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어떤 것이 자아가 아니라는 것과 어떤 자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는 그것을 분명하게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카무라 하지메는 불교의 무아설이 참된 자아, 즉 "진아"(眞我)의 부정을 의미한다고 보지는 않았다. 그에 의하면 불교의 게송에는 아트만(我), 즉 진아가 승인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초기 불교에서는 anattan이 아트만이 아닌 것, 즉 비아(非我)를 뜻하였으며, 이는 아집을 버리기 위한 실천적 목표의 달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후기 불교에 이르러서야 "자아가 없다"는 무아설의 맹아가 보이지만, 이것 역시 일체의 사물 속에 고정적인 불변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에 한정되며, 따라서 그는 불교에서는 전적으로 무아만을 주장하는 관념을 찾을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불교에서의 무아설은 어디까지나 비아설이며, 따라서 실천적 주체로서의 자기 존재를 부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카무라 하지메는 무아설을 부정하였다. 샤르마 역시 "무아설의 불교는 순수 의식이자 유일한 실체인 순수자아, 즉 순수한 아트만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원시경전에서의 비아적 표현이 초월적 자아로서의 아트만을 부정하는 절대적인 무아설이 아니라고 해석하였던 리스 데이비즈, 라다크리슈난, 나카무라 하지메 등에 대해서 바르마는 "초기불교의 베단타화"(Vedantification)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정승석은 무아설을 부정하고 어떤 형태의 것이든 실체적 주체의 존재를 인정하려는 입장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비아설과 무아설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비아에서 무아로의 단계적 이행설을 주장하는 나카무라 하지메의 입장에 대해서 정승석은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리하여 형이상학적 실체를 부정하는 무아설과 비아설로부터의 眞我를 인정하는 두 가지 모순된 주장이 어떻게 동시에 가능한가를 반문하였다(정승석, 33). 무아는 비아일 수 있지만 비아가 반드시 무아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무아와 비아를 계기적 이행으로 파악하는 나카무라 하지메의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정승석은 무아적 관점에서 비아설을 포용하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계기적 이행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한다. 불교에서의 "非我的 표현은 무아설의 일환이요 非我의 의미가 無我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정승석, 41). 이렇게 되면 정승석은 윤회의 주체를 상정하기 위한 변형된 무아설이 아니라 어떤 가능한 형이상학적 주체도 철저하게 배제한 순수한 무아설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무아설을 수용한 정승석이 어떻게 그것을 윤회설과 절충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도덕적 종교적 행위 주체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윤회가 성립될 수 있을까? 윤회의 주체가 없이도 윤회가 가능한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하여 정승석은 불교에서의 윤회는 자기동일적 실체(자아)의 연속이 아니라 "업의 상속"에 의하여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자아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오온이 남긴 업의 힘은 새로운 오온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이어짐으로써 업이 상속되고 따라서 윤회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잠세력[업력]은 오온이 파괴되더라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면서 연기적인 계기에 의해 가아인 오온으로 다시 형성된다. 이 끊임없는 연결을 상속이라고 칭하므로, 불교에서의 윤회는 '업의 상속'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정승석 117) 오온의 상속이론이나 심의 상속이론도 오온이나 심 자체가 상속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온이나 심이 남기는 업력이 상속된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정승석은 무아て윤회의 모순관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앞에서 제시된 유형 중에서 상속이론을 취한 셈이다. 그렇다면 "업의 상속"이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구사론}에서의 한 표현에 주목한다: "蘊은 찰나마다 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윤회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속하는 어떤 원리나 어떤 아트만이 전혀 없이, 다만 번뇌와 업에 의해 조건지어지고 만들어진 蘊의 상속이 모태에 들어간다." 그는 무아설을 인정하면서도 특정한 업에서 특정한 업으로 끊임없이 지속되고 상속되어 가는 "무아적 주체성"을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도대체 찰나적이면서 미세한 존재(微細身)들이 업력 또는 잠세력을 통하여 윤회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어떻게 찰나적인 것들이 그 이전의 찰나적인 것들로부터 업을 이을 수 있으며, 그 이후의 찰나적인 것들에게 다시 업을 넘겨줄 수 있는가? 그 이전의 것으로부터 받아서 그 이후의 것으로 넘길 수 있는 존재자의 찰나성이란 것은 존재할 수 없으며, 그것이 또한 존재할 수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더 이상 찰나적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찰나적인 것의 윤회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무의미한 것이기도 하다. 찰나라는 순간 속에서는 어떤 주체가 들어설 수도 없고 어떤 상속도 이루어질 수 없다. 그것은 모든 세계로부터 와서 모든 세계로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모든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어떤 것이 어떤 것을 상속받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무아설과 윤회설이 양립될 수 있다는 정승석의 주장은 윤회설의 본질적 특성을 상대화시키는 방식으로만 가능했던 것이다. 그가 시도한 것처럼 무아윤회가 가능하다면 윤회적 주체와 니르바나적 주체를 상정한 석가의 언설들은 모두 부질없는 것이 된다. 주체가 없는 윤회는 무의미한 것이고 그것은 이미 초기불교의 정신을 배척한 것이다.
정승석의 무아윤회설에 대하여 칸트와 피히테 등의 독일관념론 철학으로 정향된 한자경 교수가 비판적 입장을 세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업이나 과보(Karma), 그리고 윤회와 해탈 또는 열반은 고대 인도의 사상에서나 불교에서 동일한 지평 위에 있으며, 자기 동일성을 가진 하나의 연속적 주체 개념을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석가는 브라만주의자들과는 달리 윤회와 해탈을 주장하면서도 그 어떤 유형의 형이상학적 실체 개념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논쟁점을 제공한 것이다. 이와 같은 석가의 주장은 분명히 현상적으로 모순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전통불교에서는 이 두 가지 대립되는 주장 가운데서 어느 한 편을 강화하거나 방편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극단적인 모순대립을 회피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석가사상이 출현한 사상사적 배경에 조금만 유의하더라도 두 가지 사실 중에서 하나만을 취하는 방식은 대단히 어리석을 뿐이다. 그러나 불교사상사의 전통 속에서는 그 두 가지 체계 중에서 어느 한 편을 약회시키거나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종합하려는 어리석음을 범하여 왔다. 무아설의 절대성은 인정하되 윤회설의 의미를 약화시켜서 무아て윤회설을 정당화하려는 그 중심에 정승석 교수가 서 있는 것이다.
5. 무아설과 윤회설의 일치 조건에 대하여
무아설과 윤회설은 우리에게 여전히 모순적인 것으로 남겨져 있다. 불교에서의 철학적 문제를 살펴보기 위하여 적절한 텍스트를 찾다가 실망한 상태에서 조계종출판사에서 간행한 {아함경}을 보게 되었다. 한문 원전과 우리말 해석, 그리고 평석까지 붙여진 이런 유형의 불교경전 간행사업이 시급한 것 같다. 불교에서의 중요한 철학적 문제들은 대개 석가의 침묵[無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우리는 앞에서 선목 부처님의 비유에서 업의 근원적 출처가 어디에 있는가를 정확하게 진단할 수가 없었다. 무아설과 윤회설에 대한 논의 역시 무기적인 특성을 안고 있다.
부처님께서 라자그리하(Rājagɻha, 王舍城)에 있는 그리드라쿠타(Gɻdhrakūʍa) 산에 계실 때 아첼라 카사파(Acela Kassapa, 阿支羅加葉; 迦葉)가 다가와서 물었다:
"어떻습니까! 고타마시여, 괴로움은 자기가 지은 것입니까?"(苦自作耶?)
부처님께서는 카사파에게 말씀하시었다.
"괴로움을 자기가 지었다고 하면 그것은 무기(無記)이다."(苦自作者 此是無記)
"어떻습니까! 고타마시여, 괴로움은 남이 지은 것입니까?"(苦他作耶?)
"괴로움을 남이 지은 것이라고 하면 그것도 또한 무기이다."(苦他作者 此亦無記)
"괴로움은 자기와 남이 지은 것입니까?"(苦自他作耶?)
"괴로움을 자기와 남이 지었다고 하면 그것도 또한 무기이다."(苦自他作者 此亦無記)
카사파는 다시 물었다.
"어떻습니까! 괴로움은 자기가 지음도 아니요 남이 지음도 아니라면 원인이 없이 지어진 것입니까?"(苦非自非他無因作耶?)
부처님께서는 카사파에게 말씀하시었다.
"괴로움은 자기도 아니요 남도 아니어서 원인이 없이 지어진 것이라고 하면 그것도 또한 무기이다."(苦非自非他無因作者 此亦無記)
카사파는 다시 여쭈었다.
"어떻습니까! 고타마시여, '괴로움은 자기가 지은 것인가?'라고 물어도 무기라고 대답하시고, '남이 지은 것인가, 자기와 남이 지은 것인가, 자기도 아니요 남도 아니며 원인이 없이 지어진 것인가?'라고 물어도 무기라고 대답하시니 그러면 이제 이 괴로움은 없는 것입니까?"(云何無因作者? 瞿曇! 所問苦自作耶? 答言無記. 他作耶? 自他作耶? 非自非他無因作耶? 答言無記. 今無此苦耶?)
부처님께서는 카사파에게 말씀하시었다.
"이 괴로움은 없는 것이 아니다. 이 괴로움은 있는 것이다."(非無此苦 然有此苦.)
카사파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장하십니다. 고타마시여! 이 괴로움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위해 설법하시어 저로 하여금 괴로움을 알고 괴로움을 보게 하십시오."(說有此苦 爲我說法 令我知苦見苦)
부처님께서 카사파에게 말씀하시었다.
"만일 느낌이 곧 자기의 느낌이라면 괴로움은 자기가 짓는 것이라고 나는 마땅히 말하겠다. 만일 남의 느낌이라면 남이 받는 자이므로 그것은 곧 남이 짓는 것이다. 만일 느낌이 자기의 느낌이자 남의 느낌으로서 다시 괴로움을 준다면, 이러한 것은 자기와 남이 지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것을 말하지 않으며, 다시 나와 남을 원인하지 않고 원인이 없이 괴로움이 생긴다고도 나는 또한 말하지 않는다. 이 모든 치우친 극단을 떠나 그 중도를 말하여 여래는 이렇게 설법한다.(若受卽自受者 我應說苦自作 若他受他卽受者 是則他作 若受自受他受 復與苦者 如是自作他作 我亦不說 若不因自他 無因而生苦者 我亦不說. 離此諸邊 說其中道 如是說法)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남으로 저것이 일어난다. 곧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 나아가서는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모이며,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 나아가서는 순수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한다'라고."(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 謂緣無明行 乃至純大苦聚集 無明滅則行滅 乃至純大苦聚滅)
이 긴 텍스트에서는 괴로움 그 자체는 있으나 그 괴로움이 누구로 인하여 생긴 것인지에 대해서는 무기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무기에는 무아설과 윤회설에 대한 입장 유보도 함께 들어 있다. 다시 말하면 누가 괴로운 일을 행하고, 또한 그것을 누구에게 물려주었는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이 텍스트가 만일 무아설에 기초한 것이라면 어떤 이에게서 나타나는 업의 출처를 규명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욕망의 산출과 악업의 형성 역시 개체적인 것이 아니라 우주적인 현상인가?
삼세십이인연설(三世十二因緣說)에 의하면 무명(無明)과 행(行)은 과거세에 속하고, 생(生)과 노사(老死)는 미래세에 속하며, 그 나머지 것들, 즉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는 모두 현재세에 속한다. 여기에서 무명은 과거세의 모든 번뇌를 가리키고, 무명을 좇아서 생긴 업이 곧 행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은 과거세의 주체가 행한 것으로서 현재세의 나에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세십이인연설(二世十二因緣說)에 의하면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는 현재세에 속하고, 생(生)과 노사(老死)는 미래세에 속한다. 그리고 {대집경}에서는 무명을 현재세가 시작되는 교접현상으로 규정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무엇을 무명을 살핀다고 말하는가? 먼저 중음(中陰)을 다음같이 살피는 것이다. 부모가 낸 탐애심, 그 탐애심의 인연으로 사대가 화합하고, 남녀의 정과 혈의 두 방울이 합하여 한 방울을 이루면 크기가 콩알만하니 이것을 '가라라'(歌羅邏)라고 한다. 이 가라라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목숨[命]이고 둘째는 알음알이[識]이고 셋째는 따뜻한 기운이다. 과거세 가운데 업으로 반연한 과보이므로 지은이[作者]도 없고 받는 이도 없다. 처음 숨이 들어오고 나갈 때 이것을 '무명'이라 한다. 가라라 때 기식(氣息)이 들고 나는 것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이른바 어머니의 숨이 올라가고 내려감을 따르며 일주일에 한 번씩 바뀐다. 숨이 들고 나는 것을 '수명'(壽命)이라 하니 이것을 '바람길'(風道)이라 한다. 썩지 않고 문드러지지 않으니 이것을 '따뜻한 기운'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마음과 뜻[心意]을 '식'(識)이라 한다. 선남자가 만일 벽지불을 얻고자 하면 마땅히 이와 같이 십이인연을 관해야 한다."
불교의 십이인연설은 윤회설에 기초한 것이며, 따라서 윤회적 주체의 탄생과 성장과 죽음에 대하여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분명하게 태어나는 이가 있고 그가 살아서 죽다가 다시 어떤 특정한 누군가로 태어난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아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함인가?
무아설과 윤회설은 여전히 모순적이다. 이 두 이론의 양립 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어느 한 편의 입장을 상대화함으로써만 가능하다. 먼저 무아설을 약화시키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무아설이 참된 자아 존재를 부정하기보다는 일상적인 자기의식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 도입되었다고 해석할 경우에, 그것은 현상적 자아 존재를 부정하면서도 순수 자아 또는 진아(眞我)의 존재를 설정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진아는 윤회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명제로 상정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석가가 브라만사상과 육사외도의 철학을 지양하면서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하였던 무아설의 본질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회와 해탈을 전제하게 되면 무아설은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윤회설을 약화시키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자아가 없는 윤회가 가능할지도 모르나,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윤회가 아니고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와 같은 변화 속에 자기 동일성을 가진 주체가 들어설 수 없다면 윤회가 들어설 자리도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무아윤회설은 의미있는 이론인가? 무아설을 절대적으로 해석할 경우에 "업의 상속"이나 "업력"의 상속이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하게 된다. 동일한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세계 존재를 관찰하게 되면 죽음에 의한 현상적 자기존재의 해체 이전에도 동일한 자아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을 통하여 전적으로 해체된 사태들의 상속 여부를 논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된다. 무아윤회설은 서구의 범신론이나 일원론적 회통사상과 다를 것이 없다. 단 하나의 실제적인 존재만이 있다. 그것은 언제나 드러난 현상으로서 존재하며, 그 변화 가능성은 예단할 수 없으나 언제나 상호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단 하나의 존재사실에 불과하다. 이 경우에 차용되는 윤회라는 개념 역시 전통적인 언어사용에서의 의미와는 전적으로 다른 내용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인격 주체의 환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 속에 모든 것이 뒤섞이는 상태를 의미할 뿐이다. 모든 것이 모든 것에 의존하여 있고, 모든 것으로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업과 윤회, 그리고 해탈이라는 말마디에 집착할 필요가 있는가? 따라서 무아윤회설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무아설을 절대적으로 승인하게 되면 업, 윤회, 해탈, 열반 등의 개념 속에 담긴 전통적인 의미함축은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즉 어떤 형태의 형이상학적 주체 개념이나 자기 동일성 또는 본질을 담보하고 있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모든 가능한 철학적 사유나 윤리적 실천, 그리고 종교적 희망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담론윤리학적 지평상실인 동시에 지반해체를 의미한다. 현상적으로 분명히 나는 존재한다. 그런데 현상적으로 존재하는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고, 그런 구성분자의 총합이 나인가는 분명치 않다. 왜냐하면 나를 구성하는 것들을 해체할 경우에 우리는 그것들을 완전하게 해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으며, 구성인자들의 변화를 주도하는 시간적 계기를 저지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능력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동시에 우리는 지금 있는 내가 어제의 나와 구성인자나 시간계기의 변화 등에서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것들을 동일한 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갓 태어났을 때의 나와 죽기 직전의 나는 아무 연관성도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서로 다른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무수한 나를 같은 하나의 나로 인식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만일 서로 다른 나의 존재들을 동일한 나로 인식하게 하는 어떤 근거가 있다면, 그것은 과거세의 무수한 나와 현세의 나, 그리고 앞으로 무한하게 출현할 수 있는 미래세의 내가 서로 다른 나임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나로서 인식하게 할 수 있는 바로 똑같은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참된 나의 존재가 있다고 말하거나 없다고 말하는 것 모두가 가능하게 될 수 있다. 따라서 무아설은 참이고, 진아설 역시 참이다. 그러나 그 두 개의 이론이 설명하는 관점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무아설은 변화하는 주체의 상이성에 주목한 것이고, 진아설은 부단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다시 복원되는 주체의 동일성에 주목한 것이다. 그리고 변화주체의 동일성을 담보하는 최소 구성인자가 에테르이거나 푸루샤이거나 알라야식이거나 불성이거나 관계 없이 그것의 존재가 상정되는 즉시 우리의 물음은 또 다시 적용될 수 있다.
모든 것이 불성을 가진 존재이고 모든 것이 순간적 잘못으로 사악한 존재로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왜 하나의 우주적 전체일 수 없는가? 분명한 것이 있다면 현상 속에 드러난 존재진리는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와 같은 현상 속에 내가 있다면 나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나의 존재가 무엇으로 되는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하든지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선험철학적 깊이의 문제만이 남게 된다.
선험철학적 깊이의 차원에서 새로운 불교해석의 지평을 여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것은 칸트의 요청적 사유방법론을 통하여 불교철학의 실천적 변증론을 재구성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칸트는 이론이성의 비판을 통하여 가능한 지식의 한계를 설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론적인 이성사용의 측면에서는 유보할 수밖에 없었던 이성의 대상개념들을 도덕적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명제로서 요청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요청명제에는 자유의 요청, 영혼불멸성의 요청, 그리고 신 존재의 요청이 속한다. 새롭게 기술되어야 할 불교철학의 변증론은 무아설과 윤회설 사이의 모순에서 비롯되는 좌초될 수밖에 없는 불교적 최고선을 실현 가능하게 하는 조건명제로서 실천적 행위주체의 요청, 자유존재의 요청, 그리고 니르바나적 세계질서의 요청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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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usammenfassung]
Das Problem der Selbstlosigkeit und Wiedergeburt
im Buddhismus
Kim, Jin (Ulsan Univ.)
Der Widerspruch zwischen der Selstlosigkeit-Lehre und der Wiedergeburt-Lehre im Buddhismus entsteht daraus, dass sich in der gesamten Lehre Buddhas die Resultate seiner theoretischen Weltbeobachtung einerseits und die Anwendung in seiner praktischen Erlösungslehre, seine praktischen Idealzielvorstellungen anderer- seits, in kontradiktorischer Weise gegenüberstehen. Buddhas Anatta-Lehre läßt sich beschreiben einen unvermeidlichen Widerspruch als derjenigen zwischen der Dharma-Lehre(die auch die Anatta-Lehre umfaßt) und Karma-Lehre(die auch die Wiedergeburtslehre in sich einschließt), wobei immer vorauszusetzen ist, daß alle diese Lehren unter gleichen Weltgesetz stehen.
Die Selbstlosigkeit, von der die Dharma-Lehre spricht, ist die Feststellung, daß es in der scheinbaren Wandelwelt der Dharmas, aus deren beständiger Kombi- nation und Rekombination die Erscheinungen entstehen, kein Bleibendes, also auch keinen unveränderlichen Existenzkern, kein wahres Selbst des Menschen geben könne. Die Wiedergeburt-Lehre fordert dagegen ein ewig beständiges Substrat des wahren Selbst, das die karmische Kausalkette und den Samsara überwinden könnte. Dieser so entstandene Widerspruch zwischen Selstlosigkeit und Wieder- geburt im Buddhismus kann nur widerspruchsfrei gedacht werden durch die postulatorische Annahme einer theoretischen Idee des wahres Seins, die Kant zur Lösung des ähnlichen Problems angewendet hat.
Schlagwoerter : Ch'an, zen, Hui-nêng, Buddhism, Chinese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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