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승가의 소유와 분배 ―빨리율을 중심으로
이자랑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HK연구교수
Ⅰ. 서론
Ⅱ. 중도적 입장의 개인 소유
Ⅲ. 승가의 분배 원칙
1. 분배 소임자의 종류 및 자격 요건
2. 승가의 분배 원칙
Ⅳ. 자기 몫〔一分〕에 대한 만족, 그리고 양보
Ⅴ. 결론
[요약문]
모든 생산 활동의 금지, 하루 한 끼의 식사, 삼의일발(三衣一鉢), 사의(四依) 등등. 불교 수행자의 의식주 생활과 관련하여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이 원칙들은 불교가 철저한 무소유를 지향한 종교였을 것이라는 막연한 선입관을 갖게 한다. 그런데 승가의 일상을 담은 율장(律藏,Vinayapiṭaka)을 보면, 승가는 이미 초기 단계부터 신도의 초대식에 응하고, 정사나 거사의(居士衣)를 수용하는 등 안정된 의식주 생활을 향유하고 있다. 수행자에게 있어 너무 사치스럽다거나 재가신도의 경제사정을 위협할 정도가 아니라면, 율장에서는 보시물의 수용에 큰 제한을 두지 않는다. 붓다의 관심은 물질적 소유의 여부 그 자체가 아닌, 물질에 대한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물질을 눈앞에 두고 욕망과 집착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출가자의 의식주 생활이 담긴 빨리율을 중심으로 비구 개인의 소유 및 승가 차원에서의 분배 원칙을 확인함으로써, 물질과 욕망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붓다가 어떻게 다스려갔는가 하는 점을 확인해보고자 한다. 비구의 의식주 생활에 관한 조문을 검토한 결과, 다음 세 가지 관점에서 이 문제가 조절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는 개인적 소유의 관점이다.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유라는 원칙을 통해 물질에 대한 욕망이나 집착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는 차단하지만, 결코 육체를 괴롭힐 정도의 무소유를 지향하지는 않았으며 평안한 수행 생활을 위한 충분한 배려가 이루어지고 있다. 둘째는 승가 차원에서의 분배의 관점이다. 대부분의 물질을 승가 소유로하고 모든 구성원에게 불만 없이 분배함으로써 구성원들에게 소유욕을 키우지 않으면서도 모든 구성원들이 거의 동일하게 수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셋째는 비구 개개인의 인식 변화라고 하는 관점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몫에 대한 만족과 타인에 대한 양보를 통해, 물질에 대한 탐욕이나 집착이 아닌 평안한 공유와 화합을 강조하고 있다.
Ⅰ. 서론
모든 생산 활동의 금지, 하루 한 끼의 식사, 삼의일발(三衣一鉢), 사의(四依) 등등. 불교 수행자의 의식주 생활과 관련하여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이 원칙들은 불교가 철저한 무소유를 지향한 종교였을 것이라는 막연한 선입관을 갖게 한다. 물론 이때의 무소유란 사전적 의미 그대로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은 상태’, 즉 살아가는데 필요한 극히 최소한의 것만으로 생활한다는 뜻을 함축한다. 그런데 승가의 일상을 담은 율장(律藏)을 보면, 승가는 이미 초기 단계부터 신도의 초대식에 응하고, 정사나 거사의(居士衣)를 수용하는 등 안정된 의식주 생활을 향유하고 있다. 수행자에게 있어 너무 사치스럽다거나 재가신도의 경제 사정을 위협할 정도가 아니라면, 율장에서는 보시물의 수용에 큰 제한을 두지 않는다. 이것은 붓다의 관심이 물질적 소유의 여부 그 자체에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붓다가 물질적 소유의 여부 그 자체가 아닌, 물질에 대한 욕망과 집착으로부터의 벗어남을 중요시했다는 점, 그리고 그 근거를 무아(無我) 내지 무상(無常)의 교리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연구들이 지적하고 있는 바이다.1)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없는 이상, 자신의 소유라고 집착하고 탐욕을 부릴 만한것이 어디 있겠는가.
1) 友松圓諦,『 仏教に於ける分配の理論と実際』上 (東京: 春秋社, 1965); 이재창,
「 불교의 사회/경제관」,『 불교학보』10집, (서울: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1973), pp.97-134; 미야사까 유쇼,『佛敎에서 본 經濟思想』, (서울: 여래, 1991);
이거룡, 「인도 수행 전통에서 물질적 소유의 의미」,『 인도연구』제12권 2호,
(서울: 한국인도학회, 2007),pp.195-223; 박경준「, 돈에 대한 불교의 가르침과
역사적 전개」,『 불교평론』 통권 38호, (서울: 만해사상실천선양회, 2009),
pp.8-30등.
그렇다면 보시물의 수용 그 자체에 대해서는 철저한 제한을 두지 않으면서, 한편으로는 물질에 대한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강조하는, 일견 상충하는 듯 보이는 이 양자의 관계를 승가에서는 실제로 어떻게 조화시키고 있는 것일까? 만약 걸식, 분소의, 수하좌, 진기약이라고 하는 소박한 사의의 원칙2)이 지켜지고 있었다면 이런 의문을 제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의는 이상적 생활상으로 제시되고 있었을 뿐, 사실 출가자들은 승가에 베풀어지는 많은 보시물로 인해 때로는 사치가 우려될 정도였다.3) 이런 상태에서 물질에 대한 집착이나 탐욕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과연 가능했던 것일까?
2) 걸식이란 탁발로 얻은 음식, 분소의란 쓰레기장 등에 버려진 헌 옷감 등을 주워 덧붙여
만든 옷, 수하좌란 나무 밑이나 수풀 등 지붕이 없는 야외에서 자는 것, 진기약이란 소의
오줌을 발효시켜 만든 약을 일컫는다. Vin ⅰ, pp.57-58 및 p.96.
3) 원래 사의의 원칙을 고수하며 소박한 생활을 하던 승가가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여득
(餘得), 다시 말해 신자의 청식이나 거사의, 정사 등을 인정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불교학계의 일반적인 이해인데 반해, 사사키는 율 조문 자체에 사의를 엄수해야 한
다고 하는 자세를 확인할 수 없고 오히려 처음부터 여득에 의한 부유한 생활을 염두
에 두고 기술되어 있다는 점을 몇 가지 예를 통해 논증하며, 불교가 처음부터 풍부한
물자를 보시 받는 종교였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차후 연구를 진행시킬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한다. 佐々木閑,「 ‘無一物’と‘自活の放棄’」,『 印度哲學佛敎學』제15호,
(東京: 印度學佛敎學會, 2000), pp.21-34. 전후의 문제는 있으나, 양쪽 모두 초기
승가가 물질적으로 풍부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지금까지 불교경제에 관해서는 세속사회에 대한 붓다의 관련 가르침이나 현대 경제에 불교가 기여할 수 있는 역할 등의 문제를 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져 왔으며, 위와 같은 시각에서 승가의 운영 실태를 검토하고 출가자의 소유 문제나 승가의 분배 원칙을 중점적으로 다룬 것은 아직 드문 것 같다.4) 하지만 승가가 붓다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공동체인 이상, 승가의 운영 방식이나 이에 근거한 비구들의 생활 역시 그 이상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승가의 소유와 분배 이론을 고찰하는 일은 붓다가 실현하고자 했던 이상 사회의 경제 원칙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출가자의 의식주 생활이 담긴 빨리율을 중심으로 비구 개인의 소유 및 승가 차원에서의 분배 원칙을 확인함으로써, 물질과 욕망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붓다가 어떻게 다스려갔는가 하는 점을 확인해 보고자 한다.
4) E. F. Schumacher,S mall Is Beautiful -Economics as if People Mattered -,
김정우 옮김,『불교경제학』, (서울: 대원정사, 1988 재판); 미야사까 유쇼 저,
편집부 옮김,『 불교에서 본 경제 사상』, (서울: 여래, 1991); 정승석「, 分配의
문제에 대한 불교의 기본 인식」,『 省潭金羽泰敎授回甲記念論文集』, (전남
대학교 출판부, 1992), pp.375-391; 大野信三저, 박경준/이영근 옮김, 『불교
사회경제학』, (서울: 불교시대사, 1992); 박규상, 『불교사회 경제학』, (서울:
경서원, 2000); 박경준,『 불교사회경제사상』, (서울: 동국대학교출판부,2010)
등이 있다. 한편, 주 1)에서 언급한 友松圓諦의 저서 및 동일 저자의 『佛敎經濟
思想硏究』 (東京: 東方書院, 1932)와『 仏教に於ける分配の理論と実際』中
(東京: 春秋社, 1970)은 일본에서 많은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불교의 분배 원리
에 관한 가장 종합적이고도 선구적인 연구로서 주목할 만하다. 한편, 승가의
의식주 생활을 소개하는 몇몇 논문들에서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승가의 소유나
배에 관한 언급을 발견할 수 있다. 平川彰,『 原始佛敎の硏究』, (東京: 春秋社,
1964), pp.333-351; 佐藤密雄, 『 原始佛敎敎團の硏究』, (東京: 山喜房佛書林,
1972), pp.667-778; Mohan Wijayaratna, Buddhist Monastic Life ,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0); Ed. Heinz Bechert & Richard Gombrich,
The World of Buddhism , London: Thames and Hudson Ltd, 1998; 백도수,
「승가와 비구 개인의 소유물에 대한 연구 –팔리 『율장(Vinaya)』을 중심으로-」,
『불교학연구』 제6호, (서울: 불교학연구회, 2003), pp.213-247; 공만식,
「초기불교의 음식과 수행의 관계에 대한 고찰」,『 선문화연구』 제4호, (서울:
한국불교선리연구원,2008), pp.1-35; 졸고,「 빨리율에 나타난 수행자의 생활상」 ,
『 한국불교학』 제55권 (서울: 한국불교학회, 2009), pp.177-202 등.
물질적 풍요가 그 어느 때보다 극에 달한 현대사회이다. 그 속에서 현대의 승가 역시 소유나 분배 등 승가 경제에 관한 고민이 적지 않다. 본고의 고찰이 부족하나마 이런 고민에 대해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Ⅱ. 중도적 입장의 개인 소유
율장에 의하면, 비구의 생산 활동은 철저히 금지되어 있다. 바일제 제40조 ‘불수식계(不受食戒)’가 규정하는 바와 같이, 물과 이쑤시개 외의 모든 것은 ‘주어진 것(dinna)’, 다시 말해 재가신도의 보시로 해결해야 한다.5) 이는 승가의 식생활이 오로지 재가신도의 보시로 해결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의생활이나 주거생활 역시 마찬가지이다. 식생활만큼 철저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재가신도의 보시에 의존하고 있다. 즉, 비구 개인이나 승가의 재산은 거의 대부분 재가신도의 보시를 통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5) Vin ⅳ, p.90
시주물은 내용물이나 시주자의 의도에 따라 비구 개인, 현전승가(現前僧伽, sammukhībhūtasaṃgha), 사방승가(四方僧伽,catuddisasaṃgha)의 셋 중 하나로 귀속된다. 비구 개인이란 말할 것도없이 어느 특정한 한 비구의 소유물이 되는 것을 말한다. 매일 걸식으로 얻게 되는 음식을 비롯하여, 승가로부터 개인 몫으로 분배받은 것 등이다. 한편, 현전승가란 일정한 경계를 기준으로 형성된 승가로 실질적으로 함께 의식주생활을 하고 갈마를 하는 기준이 되는 승가이다. 특정한 개인을 지목하지 않고 승가에 바쳐진 가분물(加分物)은 모두 현전승가의 소유가 되며, 이는 일정한 분배 원칙을 통해 동일한 현전승가의 구성원들에게 분배된다. 사방승가란 이러한 무수한 현전승가를 결합하는 개념이다. 즉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현전승가를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이다. 따라서 토지나 정사, 와좌구 등 구성원들에게 실질적으로 나누어서 분배할 수 없는 것들은 사방승가의 소유물이 되어 불교의 모든 수행자가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이 장에서는 먼저 비구 개인의 소유 문제를 보자. 시주자가 개인에게 시주한 것, 그리고 승가로부터 분배받은 것, 이들이 비구 개인의 소유물이 된다. 개인적 소유가 가능한 물질은 당연히 ‘나의 것’이라고 하는 가장 강렬한 욕망과 집착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율장에서는 어떻게 이 개인적 소유에 대한 욕망과 집착을 제어해 갔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제의 소유물에 대해서는 엄격한 제한을 두지만, 향유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완화된 입장을 보인다. 본고에서는 이를 ‘중도적 입장의 개인 소유’라고 표현해 보았다. 말하자면, 사치 등으로 인하여 욕망이나 집착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는 가능한 차단하지만, 궁핍하게 의식주 생활을 제한하며 기본적 욕구조차 억
누르는 일은 하지 않았다.6) 의식주에 관한 조문을 통해 이 입장을 확인해 보자.
6) 물론 두타행자(頭陀行者)라고 하여, 의식주 전반에 걸쳐 고행적인 실천을 하는
수행자들도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상기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상당히
후대에 이르기까지 두타행은 이상적 출가생활로 장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
지만 승가가 정주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현실적으로 두타는 율에 밀려 마하
깟사빠를 비롯한 일부 엄격파 출가자들의 실천행으로서 부각될 뿐이다. 두타
는 주로 사의의 내용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는데, 사의는 율장에서
강제적인 조항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데와닷따의 5사 사건으로부터 알 수 있
듯이, 붓다는 고행적인 생활을 절대필요조건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Vin ⅱ,
pp.196-198) 가능한 자는 실천하라고 하는 정도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두타행의 의미를 부각시키지 않고, 율에 나타난 승가 운영의 기본 원칙에 따라
논리를 전개해 가고자 한다.
먼저 옷은 삼의(三衣) 만을 허용한다.7) 삼의의 제정 인연담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옷 수용이 허용되자 비구들은 보시 받은 다량의 옷을 이고지고 다녔다. 옷에 대한 탐욕심이 발동한 것이다. 이를 본 붓다는 안타회(安陀會, antaravāsaka)라 불리는 하의, 상의에 해당하는 울다라승(欝多羅僧, uttarāsaṅga), 외출할 때 입는 승가리(僧伽梨, saṅghāṭī)로 구성된 세 옷가지만 소지하라는 학처를 제정한다.8) 하지만 고대 인도에서 옷감을, 그것도 삼의를 만들만큼의 많은 옷감을 구하는 일은 용이하지 않았고, 또한 삼의를 잃어버리거나 옷이 찢어질 경우 등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평소에 여분의 옷감을 입수했을 때 조금씩 비축해 둘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삼의 외에도 신자의 보시가 있을 경우 옷이나 옷감 등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9) 단 이는 10일 안에 다른 비구·비구니·정학녀·사미·사미니 등의 출가의 5중에게 정시(淨施,vikappanā), 즉 맡겨두는 형태로 보관해 두었다가 사용할 수 있다.10) 이와 같이 직접 소유할 수 있는 옷을 삼의에 한정하여 옷을 축적하고자 하는 욕망이나 탐욕심은 차단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적 문제를 고려하여 정시를 통해 여분의 옷을 확보해 두는 것을 용납하고 있다.
7) 삼의 외에, 우기에 샤워할 때 입는 우욕의(雨浴衣, vassikasāṭikā)나 피부병에 걸려
고름이나 피가 나올 때 이것이 옷에 들러붙지 않도록 상처부분을 덮기 위해 사용되
는 부창의(覆瘡衣, kaṇḍupaṭicchādi) 등을 비롯하여 다양한 일상용품의 소유가 허
용되고 있다. 이 물건들에 관해서는 佐々木閑 저, 원영 역『 출가 세속의 번뇌를
놓다』 (서울: 민족사,2007), pp.192-201을 참조.
8) Vin ⅰ, pp.288-289.
9) 삼의 외에 여분으로 받은 옷감은 장의(長衣, atirekacīvara)라고 하는데, 장의 소유를
금지하는 조문은 「의건도」에도 보인다. (Vin ⅰ, p.289) 한편, 장의의 소지는 기본
적으로 10일 밖에 허용되지 않지만, 시의(時衣)가 끝난 후에 옷감을 얻었을 경우에
는 만약 한도 된다고 한다. 이는 니살기바일제 제3조 ‘월망의계(月望衣戒)’ (Vin ⅲ,
p.203)의 규정인데, 히라카와는 이 학처를 정시가 아직 인정되고 있지 않았을 때
제정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平川彰『, 二百五十戒の硏究Ⅱ』, 平川彰著作集
제15권, (東京: 春秋社,1993), pp.104-105, 115
10) Vin ⅲ, p.196; Vin ⅳ, pp.121-122. 한편, 옷감이 아닌 의료(衣料), 즉 옷을 살 돈을
보시 받았을 경우에는 원민(園民, ārāmika) 혹은 우바새를 집사인(執事人,veyyāvaccakara)
으로 삼아 맡겨 두었다가 옷이 필요한 경우에 사용해야 한다. (Vin ⅲ,pp.221-222).
양여의 기준으로는 선서(善逝)의 손가락으로 재어 길이는 8지, 폭은 4지라고 한다.
즉, 이 크기를 넘으면 분배하거나 정시해야 하는 것이다. (Vin ⅰ, p.297)
이와 같은 입장은 옷감의 재료와 관련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삼의의 구체적인 재료로는 아마포(khoma), 무명포(kappāsika), 비단(koseyya), 모직물(kambala), 거친 대마포(sāṇa), 마포(bhaṅga) 등의 6종을 허용한다.11) 원래 승가는 쓰레기장이나 묘지 등에서 얻은 천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분소의를 사용했으나, 출가자의 건강을 염려한 의사 지와까의 권유로 거사의를 수용하게 되었다고 한다.12) 이 6종의 옷감 가운데는 비단이나 모직물처럼 고가의 것도 포함되어 있는 등, 가격에 근거하여 옷감 수용을 제한하고 있지 않다.13) 하지만 율장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옷감을 얻었을 경우에는 반드시 조각조각 내어 이어 붙이거나,14) 괴색(壞色, dubbaṇṇakaraṇa)해서 착용해야 한다고 한다. 바일제 제58조 ‘불괴색계(不壞色戒)’에 의하면, 새롭게 옷을 입수한 비구는 그 옷의 색을 청색이나 흑색, 혹은 목란색이라고 하는 3종의 괴색 가운데 하나로 물들여 입어야 한다.15) 이들은 모두 선명함을 잃은 칙칙한 색깔을 전제로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출가자가 보아도 재가자가 보아도 탐심을 일으키지 않을 상태로 만드는 것을 통해 옷에 대한 집착을 차단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11) Vin ⅰ, pp.281-282.
12) Vin ⅰ, pp.280-281.
13) 나무껍질로 된 옷이나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된 옷, 혹은 짐승의 가죽으로 된 옷 등은
외도와의 혼동이나 세상 사람들의 비난 등을 이유로 금지된다. (Vin ⅰ, pp.305-306)
14) Vin ⅰ, p.287
15) Vin ⅳ, p.120.
식생활에 관해서도 동일한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비구는 식자재를 스스로 생산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얻은 것을 저장해서도 안 된다. 또한 직접 요리를 해서도 안 된다.16) 오로지 하루에 한 번, 걸식을 통해 재가신도로부터 받은 발우 안의 음식을 오전 중에 다 먹는 것으로 하루의 식사를 마쳐야 한다. 만약 받은 음식이 많아 남았을 경우에는 잔식법(殘食法)17)을 하고 원하는 다른 비구에게 주어야 하며,18) 어떤 이유로도 저장해 두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의지대로 내용물을 구하여 입맛에 맞게 요리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며, 다른 이에게 이를 요구 할 수도 없다. 또한 먹고 싶을 때 먹을 수도 없다. 그저 하루에 한 번 재가신도가 발우에 담아주는 음식만으로 끼니를 때워야 한다. 이런 기본원칙들은 사실상 음식에 대한 욕망이나 탐욕을 상당 부분 제어해 주게된다.
16) 보시받은 음식물을 승가 안에 저장하는 것은 내숙(內宿, anto vutthaṃ)이라고 하며,
음식물을 승가 안에서 조리하는 것은 내자(內煮, anto pakkaṃ), 그리고 음식물을
비구 스스로 조리하는 것은 자자(自煮, sāmaṃpakkaṃ)라고 한다. 이 세 가지 행위
모두 금지된다. (Vin ⅰ, pp.210-211)
17) 잔식법이란 충분히 먹었다고 하는 의사 표시를 하여 남은 음식임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18) Vin ⅳ, p.82
한편, 이러한 원칙들은 일견 출가자가 식생활에 있어 매우 궁핍하게 살았을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하지만 이 원칙 외, 음식물의 내용이나 양 등에 관해서는 의외로 관대한 입장을 보여준다. 물론 스스로 맛난 음식을 탐하여 재가신도에게 요구하거나 맛난 음식을 줄 만한 집을 골라 찾아가서 걸식하는 것은 안 되지만,19) 재가신도가 발우 안에 담아 주거나 혹은 초대하여 공양을 올린다면 별 제한 없이 수용할 수 있다. 또한 식사를 하고도 만약 부족하다 느낀다면 다른 비구가 잔식법을 하고 남긴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스스로 탐하는 마음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 주어지는 것이라면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할 정도의 음식 섭취는 얼마든지 용납되는 것이다. 물론 과식을 하거나 보양식 등을 먹어 건강을 해치는 것은 경계한다.
19) Vin ⅳ, pp.88, 75-78.
주거생활의 경우, 기본적으로 주거와 관련된 건물이나 부속품, 와좌구 등은 사방승가의 소유이므로 사실상 비구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없다. 건물 등과 같은 중물(重物)의 처분은 음식이나 옷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이익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탐심이 크게 발동할 가능성이 더 높고 또한 그 결과 승가 운영에 미치는 영향도 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은 개인 소유를 완전 부정하고 철저히 승가, 그것도 사방승가의 재산으로 귀속시켜 버리고 있다. 단, 승잔법 제6조와 제7조에 의하면, 비구가 개인적으로 방사(房舍, kuṭī)나 대정사(大精舍,mahallaka-vihāra)를 소유하는 것이 가능했음을 볼 수 있다.20) 제6조는 특정한 시주 없이 방사를 만드는 경우를, 제7조는 특정한 시주의 보시를 받아 대정사를 만드는 경우를 대상으로 하는데, 양자 모두 비구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짓는 경우를 가리킨다. 전자의 경우에는 특정한 시주자 없이 일반신도들로부터 보시를 받아 지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불걸수(佛搩手)에 의해 길이는 12걸수, 폭은 7걸수라는 크기 제한이 가해진다.21) 그다지 큰 규모는 아님을 알 수 있다. 한편, 특정한 시주의 보시를 받아 짓게 되는 대정사는 크기 제한은 없다. 수행처로서 개인적 방사가 필요한 경우도 있을 수 있으며, 혹은 재가신도가 특정한 비구를 위해 정사를 보시하기를 원할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율장에서는 이러한 요구를 충분히 수용하면서도, 크기를 제한하거나 최종적인 소유를 승가로 돌리는 등의 방법을 통해 탐욕심이나 집착심을 차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거생활과 관련된 것은 대부분 사방승가의 중물(重物)로써 분배의 대상이 되므로, 이에 관해서는 승가의 분배 원칙을 다루는 다음 장에서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20) Vin ⅲ, pp.149, 156. 이 규정은 초기승가에서 비구 개인이 방사나 정사를 소유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하는데 있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 두 학처는 방사나
대정사를 ‘자기 자신을 위해(attuddesaṃ)’ 지을 경우를 전제하는 것으로, 이때 사전에
승가의 검시를 받고 승낙을 얻을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 내용으로부터 판단할 때
초기승가에서 비구 개인이 시주를 받아 개인적인 방사나 대정사를 짓는 것이 허용되었
다는 점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 소유권이다. 승가(이때의 승가란 그 비구가 속한 현전
승가를 말한다)의 검시를 통해 승낙을 받아야 한다는 점, 방사나 정사 등의 거주처는
사방승물로 분류된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최종적인 소유는 승가였을 것으로 추측
되지만(시주자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비구가 원하는 한 우선적으로 사용
권한을 제공했을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기본적인 소유권은 인정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점은 한역율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몇몇 한역율에서는 비구가 개인
적으로 보시를 받는 등의 방법으로 방사를 지었을 경우 일정 기간 소유권을 인정해
주거나, 혹은 개인적으로 보시 받은 방사를 두고 유행을 떠났다 하더라도 다시 돌아
오면 사용 권한을 그 비구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등의 규정이 확인된다. 『마하승
기율』권 27 『( 대정장』22, 444c-445a);『 오분율』 권25 『( 대정장』22, 169a) 등.
21) Vin ⅲ, pp.144-157. 불걸수(佛搩手, sugata-vidatthi)란 붓다의 걸수라는 의미로,
걸수란 손바닥을 폈을 때 엄지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의 두 손가락 끝의 거리를 말
하는데, 불신은 보통 사람의 두 배라고 하므로 걸수 역시 두 배로 보아야 한다고 한
다. 平川彰,『 二百五十戒の硏究Ⅰ』, 平川彰著作集 제14권, (東京: 春秋社, 1993),
p.439.
이상 살펴 본 바와 같이, 의식주 생활에 있어 개인적 소유는 궁핍과 사치,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유라는 원칙을 가능한 지켜 물질에 대한 욕망이나 집착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평안한 수행 생활을 위해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거나 보시자의 의도나 공덕이 훼손되지 않도록 배려하며 승가에 베풀어진 보시물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개인적 소유에 대한 취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승가 소유의 물질은 어떻게 처리했을까?
Ⅲ. 승가의 분배 원칙
승가에 보시된 것들은 일정한 원칙을 통해 구성원들에게 분배되었다. 보시물은 음식이나 옷감, 자질구레한 일상용품 등과 같이 나눌 수 있는 가분물(加分物, vissajjiyāni), 그리고 토지나 건물, 가구 등의 나눌 수 없는 불가분물(不加分物, avissajjiyāni)로 구분된다. 가분물은 주로 현전승가, 불가분물은 사방승가의 소유가 된다. 가분물은 의생활과 식생활에 관련된 것들이 주를 이루는데, 옷감이나 먹거리를 보시 받으면 승가는 이를 구성원에게 분배하게 된다. 한편, 빨리율 소품 제6장「 와좌구건도」에서는 다른 이에게 양도할 수 없는 불가분물로 다음 5종을 든다.22)
22) Vin ⅱ, p.170
①원림(園林, ārāma)과 원림의 토지(ārāmavatthu)
②정사(精舍, vihāra)와 정사의 토지(vihāravatthu)
③ 침상(mañca), 의자(pīṭha), 침대 위에 까는 매트(bhisi), 베개(bimbohana)
④ 놋쇠 가마솥(lohakumbhī), 놋쇠 상자(lohabhāṇaka), 놋쇠 단지
(lohavāraka), 놋쇠 그릇(lohakaṭāha), 자귀(vāsi), 도끼(pharasu), 손도끼(kuṭhārī), 괭이(kuddāla), 삽(nikhādana)
⑤ 덩굴(vallī), 대나무(veḷu), 문자풀(muñja), 밧바자풀(babbaja), 띠나풀(tiṇa), 진흙(mattikā),
목제품(dārubhaṇḍa), 토기(mattikābhaṇḍa)
불가분물은 그 누구도 나누어 가지거나 매매할 수 없다. 현전승가의 구성원도, 몇 명의 비구도, 혹은 한 명의 비구도 승가의 불가분물을 나누어 가지거나 매각해서는 안 된다.23) 불가분물은 그 주처의 현전승이 관리하지만, 소유권은 누구에게도 없으며 승가의 구성원이라면 기본적으로 누구나 평등하게 사용할 수 있다.
23) 현전승가나 일부의 무리, 개인 등 그 누구도 이것들을 나누어 갖거나 매매할 수 없다.
만약 이를 어긴다면 투란차죄를 짓게 된다. Vin ⅳ, p.90
나눌 수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귀속 대상이 달라지고, 또한 구체적인 분배 형태가 달라지지만, 승가의 구성원이 불만 없이 공평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는 현전승가의 보시물도 사방승가의 보시물도 동일한 원칙하에 분배되고 있었다. 승가가 보시물을 분배하는 명확한 원칙을 가지지 못한다면, 구성원들은 자신이 좀 더 많이, 좀 더 좋은 것을 획득하기 위해 신경을 쓸 것이고, 이는 곧 욕망이나 집착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따라서 율장에서는 올바른 분배를 위해 여러 가지 기준을 마련하고 있는데, 분배 원칙을 확인하기 전에 먼저 분배 소임자의 종류 및 그 자격 요건을 보자.
1. 분배 소임자의 종류 및 자격 요건
올바른 분배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분배를 실행하는 분배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아무리 분배 원칙이 잘 정해져 있어도 실제로 분배하는 사람이 제대로 그 역할을 해 주지 못한다면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승가에는 다양한 소임자가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 분배와 관련된 일을 수행하는 비구를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24.)
① 분와좌구인(分臥坐具人, senāsanapaññāpaka): 숙식할 곳이나 침상 등을 배정하는 자25)
② 분의인(分衣人, cīvara-bhājaka): 승가에 보시된 옷감을 분배하는 자
③ 분욕의인(分浴衣人, sāṭiya-gāhāpaka): 욕의를 분배하는 자
④ 분발인(分鉢人, patta-gāhāpaka): 발우를 분배하는 자26)
⑤ 분잡물인(分雜物人 혹은 捨些細人, appamattaka-vissajjaka): 자질구레한 생활용품을 분배하는 자
⑥ 분죽인(分粥人, yāgubhājaka): 아침식사로 먹을 죽을 분배하는 자
⑦ 분과인(分果人, phalabhājaka): 과일을 분배하는 자
⑧ 분경식인(分硬食人, khajjakabhājaka): 승가에 공양된 식사를 분배하는 자
24) 분배의 소임을 담당하는 비구에 관해서는 Vin ⅱ, pp.176-177과 Vin ⅰ, pp.283-285에
다양한 명칭이 발견된다. 이에 관해서는 佐藤密雄, 위의 책, pp.310-319에서 자세한 설
명을 볼 수 있다. 한편, 분배 외 승가의 다양한 소임자 및 그 선발 방법과 출처 등에 관해
서는 森章司, 「サンガにおける紛爭の調停と犯罪裁判」『中央學術硏究所紀要』モノグ
ラフ編, No.16, 論文20, pp.36-41 (http://www.sakya-muni.jp)에서 총망라하여 상세
히 소개하고 있다.
25) 빨리율에는 와좌구를 분배하는 소임자의 명칭으로 senāsanapaññāpaka와
senāsanagāhāpaka라고 하는 두 가지가 보인다. 이 두 가지의 차이점 및 와좌처의
관리인과 분배인에 관해서는 今野道隆의 일련의 연구가 있다. 今野道隆, 「パーリ
律における臥座処を割り当てる2つの役職 ーsenāsanapaññāpakaとsenāsanagāhāpaka」,
『 印度學佛敎學硏究』 제52권 제2호, (東京: 인도학불교학회, 2004), pp.868-866;
「 臥座処の管理人と分配人 ー韓訳律を中心としてー」,『 印度學佛敎學硏究』
제53권 제1호, (東京: 인도학불교학회, 2005), pp.401-399.
26) 분발인은 단순히 발우를 나누어주는 소임을 맡은 것이 아닌, 발우 돌리는 의식에서
사회자 역할을 하는 비구를 가리킨다. 발우 돌리는 의식에 관해서는 Vin.3.246 및
佐々木閑 저, 원영 역『 출가 세속의 번뇌를 놓다』, (서울: 민족사, 2007), pp.188
-189; 佐藤密雄, 위의 책, pp.312-313 등을 참조.
이 외, 차승차식인(差僧次食人, bhattuddesaka)이라고 하여 승차식(僧次食 혹은 僧伽食, saṃghabhatta)에 가는 자를 지명하는 소임을 맡은 비구도 있다. 음식은 걸식을 통해 비구 개개인에게 베풀어지지만, 때로는 신도가 승가에 공양을 올리고 싶다는 뜻을 밝힐 경우도 있다. 이때 승가란 물론 현전승가를 말한다. 그런데 현전승가의 구성원이 너무 많아 한꺼번에 공양을 올리기 어려울 경우, 차승차식인은 신도가 원하는 숫자만큼의 비구를 선발하여 공양 받도록 하게 된다. 분배의소임을 이렇듯 세분화하여 맡김으로써 승가의 보시물이 누군가 한 사람의 관리 하에 집중되는 현상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또한 분배의 소임을 맡게 될 비구는 다섯 가지 능력을 갖춘 자를 승가의 백이갈마를 통해 선발하게 된다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다섯 가지 능력이란 애(愛, chanda)·진(瞋, dosa)·치(痴, moha)·두려움(怖,bhaya)으로 인해 잘못된 길을 가지 않으며, 각자 맡은 일을 잘 처리하는 능력의 소지 여부이다.27) 특정한 개인이나 무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나 분노로 인해 치우친 분배를 하거나, 어리석음, 혹은 자신의 분배에 불만을 품은 무리들로 인해 화를 입을 것 등을 염려하는 두려움으로 인해 잘못된 분배를 하지 않아야 하며, 모든 상황을 잘 파악하여 올바르게 분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멸쟁건도」에 전해지는 답바 말라뿟따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답바는 아라한이었으며 승가에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소임을 맡고 있다. 즉 소임을 맡게 되는 비구는 위의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추었다고 평가되는 자타공인 총명 유능한 비구여야 하며, 또한 승가에서 특별한 권력이나 지위를 가지기 위해서가 아닌 승가에 봉사하기 위해 소임을 맡게 되는 것이다.28) 자신
에게 부여된 임무를 능히 잘 견뎌내며 설해진 대로 일을 처리할 뿐, 결코 ‘내가〔일을〕했다’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 곧 소임자의 자세라고 할 수 있다.29)
27) 율장에서는 분배 외, 다른 소임을 맡은 지사비구에게도 동일하게 이 다섯 가지
조건을 요구한다. 앞은 네 가지 조건은 완전히 공통되며, 다섯 번째 조건은 각
소임의 내용에 따라 조금씩 표현이 다르지만 각자 맡은 일을 잘 처리하는 능력
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Vin ⅱ, pp.167, 175-176 등.
28) 佐藤密雄, 위의 책, p.318.
29) Vin ⅰ, p.359
2. 승가의 분배 원칙
분배는 승가의 운영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므로 율장 중에서도 「건도부」를 통해 실태를 확인할 수 있다.「 건도부」를 통해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기본적인 분배의 원칙은 ‘공평한 분배’와 ‘법랍에 따른 분배’이다.
먼저 공평한 분배를 보자. 이는 가장 기본적인 승가의 분배 원칙이다. 특히 음식이나 옷감 등과 같은 가분물의 경우, 상좌와 하좌의 구별없이 기본적으로 이 원칙이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비구들의 숫자를 정확하게 파악한 후, 가능하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똑같이 분배하는 방법이다. 특히 음식의 경우, 예외 없이 평등한 분배가 강조된다. 예를들어, 빨리율 소품 제8장「 의법건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숙소(熟酥, sappi), 기름(tela), 진미(uttaribhaṅga)가 있다면 장로는 말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거라.’
30) Vin ⅱ, p.214
이는 음식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상좌비구에 대한 존경심으로부터 상좌비구에게는 맛난 음식을 주고 하좌비구에게는 맛없는 음식을 주는 일이 없도록 상좌비구가 주의를 주어야 함을 보여준다.31) 옷감 역시공평한 분배가 기본이다. 대품「의건도」에 의하면, 비구들이 옷감의 분배 방법을 묻자 붓다는 다음과 같이 지시한다.
31) 平川彰, 위의 책, 1964, p.340
비구들이여, 먼저 선별하고, 측정하고, 공평하게 한 후, 비구들의 숫자를 헤아려 분할하고 나서, 옷 분배를 할 것을 제정하노라.
32) Vin ⅰ, p.285
anujānāmi bhikkhave paṭhamaṃuccinitvātulayitvāvaṇṇāvaṇṇaṃkatvābhikk
hūgaṇetvāvaggaṃbandhitvācīvarapaṭivisaṃṭhapetun.
와좌구의 분배 역시 기본적으로는 공평한 분배가 원칙이다. 「와좌구건도」에서는 분와좌구인이 어떤 방법으로 와좌구를 분배하면 좋을까 붓다에게 묻자 다음과 같이 지시한다.
비구들이여, 먼저 비구의 숫자를 헤아려라. 비구의 숫자를 헤아린 후 와구를 헤아리고, 와구를 헤아린 후 와구 마다 나눌 것을 제정하노라.
33) Vin ⅱ, p.167
이와 같이, 대부분의 보시물은 현전승가의 구성원에게 동등하게 분배되도록 배려하고 있다.
다음은 법랍에 따른 분배이다. 공평한 분배가 가능한 물건이나 음식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특히 의식주 가운데서도 주거와 관련된 것들은 사방승가의 소유물로 모든 구성원이 나누어 사용할 권리를 갖게 되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공평한 분배가 실현되기 어려울 경우가 있다. 이때 적용되는 기준이 법랍이다「. 와좌구건도」에 의하면, 붓다가 제자들과 더불어 사왓티를 향해 유행을 하고 있었는데 먼저 도착한 육군비구의 제자들이 서둘러 정사와 와좌구를 차지해 버렸다. 그래서 그 다음 도착한 사리뿟따는 와좌구를 얻지 못한 채 나무아래 머물러야 했다. 이어 도착하여 이 모습을 본 붓다는 비구들에게 ‘비구들이여, 누가 먼저 자리, 물, 음식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비구들 사이에서는 출가 전에 높은 지위에 있었던 자가 먼저 받아야 한다거나, 지율자(持律者)나 설법자(說法者)가 먼저 받아야 한다거나, 아라한이 먼저 받아야 한다는 등의 여러 가지 답변이 나온다. 하지만 붓다의 대답은 연장자, 즉 법랍이 높은 자34)가 먼저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다음과 같이 설한다.
34) 구족계를 받고 승가의 정식 일원이 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의 삶은 새롭게 시작된다.
따라서 율장을 비롯한 초기 경전에서 출가자에게 ‘연장자’라는 의미를 지니는 단어
가 사용될 때 이는 법랍이 높은 자, 즉 하루라도 구족계를 빨리 받은 자를 가리킨다.
연장자를 공경하는 사람들은 법에 통달하고 현세에는 칭찬을 받으며 후세에는 선취(善趣)를 얻는다.
그리고 이어 다음과 같이 제정한다.
비구들이여, 법랍에 따라 인사하고, 일어나 맞이하며, 합장하고, 경배 드리고, 먼저(혹은 가장 좋은) 자리와 물과 음식을〔제공할 것을〕제정하노라.
35) Vin ⅱ, pp.160-162.
공평하고 평등한 분배가 원칙이지만, 경우에 따라 ‘법랍’이라고 하는 승가 질서 유지의 기본적 원칙이 분배에 있어서도 적용되어야 함을 보여준다.36) 옷감의 경우에도 평등 분배가 기본이지만, 만약 나누면 사용할 수 없게 된다거나 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난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공평한 배분이 어려울 경우에는 법랍 순으로 분배가 이루어지게 된다. 니살기바일제 제22조 ‘걸발계(乞鉢戒)’도 한 예이다. 니살기바일제란 소유가 금지된 물건을 비구가 소유하고 있을 경우의 죄인데, 이 죄를 지은 비구는 문제의 물건을 승가에 내놓고 참회해야 한다. 이때 승가에서는 이 물건을 법랍 순으로 선택하도록 한다. ‘걸발계’는 발우에 관한 것이다. 삼의일발이라는 표현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발우는 하나밖에 소지할 수 없다. 설사 구멍이 나거나 손상되어도 다섯 번까지는 고쳐 써야 하는데, 만약 이를 어기고 새 발우를 지닌다면 니살기바일제죄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전승가의 비구 전원이 모인 자리에서 범계자는 문제의 발우를 들고 나와 발우 돌리는 의식을 하게된다. 이때 법랍 순으로 발우를 선택할 수 있다. 즉, 가장 법랍이 높은 장로가 문제의 새 발우를 먼저 선택할 수 있다. 이어서 그 장로는 다음 장로에게 자신의 발우를 주고, 그는 둘 중에 하나 선택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범계자를 제외한 모든 비구에게 발우를 교환할 기회가 주어지게 되면, 가장 법랍이 낮은 비구가 포기한 발우가 바로 범계자의 몫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37)
36) 여기서 ‘법랍에 따른 분배’의 예로 든 사리뿟따에 관한 전승은 시각에 따라 승가의
분배 원칙이 아닌, 장로에 대한 예의 혹은 배려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 이러한 법랍 순의 질서가 실제 승가의 분배 원칙에 적용되고 있
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 전승은 ‘법랍에 따른 분배’ 논리를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되므로 여기서 언급해 둔다.
37) Vin ⅲ, p.246
단, 법랍 우선이라고 하는 이 원칙을 이용하여 상좌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물론 용납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아직 식사가 끝나지도 않는 자를 나중에 도착한 상좌가 자신보다 법랍이 낮다는 이유로 일으켜 세우려 하거나,38) 다른 비구들이 안거를 보내려고 미리 수선해놓은 방사를 자신이 법랍이 높다는 이유로 빼앗거나 하는 등이다39.)
38) Vin ⅱ, p.165
39) Vin ⅳ, p.44 바일제 제17조 ‘견타출승방계(牽他出僧房戒)’에 의하면, 17군비구가
어떤 대정사에서 안거를 보내고자 생각하며 협력해서 그 정사를 수리했다. 그런데
6군비구가 찾아와 ‘정사는 법랍 순으로 이용하는 것이 규정이니 우리들이 이 정사
를 사용하겠다. 너희들은 떠나라’라며 17군비구를 무리하게 끌어내어 쫓아낸 일을
계기로 ‘비구가 화를 내며 다른 비구를 승방 밖으로 끌어내는 것’을 금지하는 이
계가 제정되었다고 한다.
‘공평한 분배’와 ‘법랍에 따른 분배’라는 두 가지 기본 원칙을 고수하지만, 경우에 따라 이를 보완하여 ‘수행 여건을 고려한 분배’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좀 더 효율적인 수행 여건의 조성을 위해, 각 비구의 취향이나 직분을 고려하여 와좌구를 분배한 경우이다.『상윳따니까야』에서 ‘사람들은 그 특성에 따라 결합하고 화합한다’라고 기술하고 있는바와 같이,40)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고 또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이는 초기승가에 있어 전문적 영역에 관해 그룹을 형성할 때도 그대로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41) 바로 이와 같은 경향이 분배의 원칙에서도 적용되고 있음을「멸쟁건도」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답바말라뿟따 비구는 와좌구인의 소임을 맡고 있었는데, 그는 동분(同分)의 비구들을 위해 한 곳에 와좌구를 준비했다고 한다. 즉 송경자(誦經者)인 비구들을 위해 한 곳에 와좌구를 준비하여 서로 경을 암송하게 하고, 지율자(持律者)인 비구들을 위해 한 곳에 와좌구를 준비하여 서로 율을 결정하게 하며, 설법자(說法者)인 비구들을 위해 한 곳에 와좌구를 준비하여 서로 법을 논의하게 하고, 선정자(禪定者)인 비구들을 위해 한 곳에 와좌구를 준비하여 서로 방해하지 않도록 하며, 잡담이나 즐기는 비구들을 위해 한 곳에 와좌구를 준비하여 서로 즐겁게 머무르게 하고 있다.42) 또 소임자에게 ‘인센티브(incentive)를 제공’하는 방법도 실행되었다. 소임을 맡아 애쓴 비구에게는 옷감을 특별 배급하거나 가장 좋은 방을 사용하게 하는등의 특전이 주어졌다.43)
40) SN ⅱ, p.157
41) SN ⅱ, pp.155-156에 의하면, 사리뿟따를 추종하는 비구들은 지혜를 갖춘 자들이고,
마하목갈라나를 추종하는 비구들은 대신통력을 갖춘 자들이었으며, 마하깟사빠를 추
종하는 자들은 두타설자였다고 한다. 이 외에도 아누룻다를 비롯하여 특별한 능력을
지닌 지도자를 추종하는 비구들이 모두 동일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42) Vin ⅱ, pp.75-76
43) Vin ⅳ, p.154. 佐々木閑 저, 위의 책, 2007, p.227
이상 살펴 본 바와 같이, 승가 소유물에 대해서는 모든 구성원이 평등하게 수용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를 하면서도, 때로 공평한 분배가 어려울 경우에는 법랍이나 각자의 취향 내지 노력 등을 고려한 분배가 이루어지고 있다. 승가가 소유권을 지닌 채 개인은 주어지는 대로 수용해야 하는 이 기본 구조는 탐욕과 집착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를 상당히 감소시킨다. 한편, 공평한 분배는 구성원이 모든 혜택을 공유할 수 있게 하며, 이 외 위에서 소개한 분배 방법들은 불평등한 분배로 인해 구성원들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만들을 비교적 잘 차단하는 효과를 지니는 것들이라고 생각된다. 단, 이런 조문들이 제정되었다는 것 자체가 뒤집어 보면 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불만을 표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비구 개개인의 인식의 변화인 것이다. 다음 장에서 이 점을 살펴보자.
Ⅳ. 자기 몫〔一分〕에 대한 만족, 그리고 양보
개인 소유물에 대한 적절한 대응과 승가의 다양한 분배 원칙을 통해 아무리 구성원들의 만족을 도모한다 해도 한계는 있다. 예를 들어, 승가의 의도와는 달리 시주자의 의도가 개입됨으로써 불공평한 분배가 이루어질 수 있다「. 멸쟁건도」에 의하면, 한 장자가 승차식을 공양하며 매일 일정한 수의 비구를 집으로 초대하여 공양을 올렸다. 승가는 당연히 공평하게 매일 일정한 수의 비구를 정하여 차례대로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 멧띠야와 붐마자까라고 하는 두 비구가 가게 되었는데, 평소 이들의 악행을 듣고 있던 그 장자는 일부러 아주 초라한 음식을 공양했던 것이다. 사정을 모른 이 두 비구는 이것이 분배의 소임을 맡았던 비구의 음모라 여기며 그에게 바라이죄의 누명을 씌우는 악행까지 저지르게 된다.44) 이와 같이 시주자의 의도가 개입되면 승가의 분배원칙이 제대로 적용되지 못할 수도 있다.
44) Vin ⅱ, pp.76-79.
또한 분배는 소임을 맡은 특정한 한 비구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이므로 그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 따라서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지사비구는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춘 자를 승가의 갈마를 통해 엄격하게 결정하지만, 구성원 간에는 그를 신임하지 못하는 자도 있을 수 있고 혹은 어떤 일을 계기로 감정이 상해 그를 미워하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설사 공평한 분배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불신하며 불만을 제기하는 자가 나타날 수 있다. 바일제 제81조 ‘동갈마후회계(同羯磨後悔戒)’는 승가에 보시된 것의 배분이 끝난 후에 지와좌구인, 차승차식인, 분죽인, 분과인, 분작식인, 분잡물인의 6종의 소임자로 취임한 비구에게 의복, 음식, 와구, 병자구, 그 외의 자질구레한 물건의 배분이 많았다고 하여 불평하는 것을 금지하는 학처이며,45) 바일제 제13조 ‘혐매승지사계(嫌罵僧知事戒)’는 승가의 지사비구를 미워하고 매도하는 것을 금지하는 학처이다.46) 이는 승가에서 실제로 이런 트러블이 많이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45) Vin ⅳ, pp.154-155.
46) Vin ⅳ, pp.37-39.
결국 비구 스스로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완벽한 분배도 소유물에 대한 집착의 방기도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율장에서는 비구 개개인의 감성에 호소하는 경우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일분(一分)’, 즉 자기 몫에 대한 만족을 강조한다. 재가신도로부터 직접 자기 몫으로 받았건, 아니면 승가로부터 분배해 받았건, 자기가 받은 것에 대해 혹은 받을 것에 대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집착하거나 탐욕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 만족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걸식할 때는 밥과 적당한 양의 스프를 받아야 한다거나,47) 자신의 발우를 넘지 않을 만큼 음식을 받아야 한다거나,48) 혹은 불만스러운 마음으로 다른 비구의 발우를 보아서는 안 된다거나49) 하는 등의 학처는 자신에게 주어질 음식의 양과 질에 상관없이 만족할 것을 가르친다. 또한 바일제 제34조 ‘수이삼발식계(受二三鉢食戒)’에서는 보시자가 아무리 권해도 발우 가득 두 세 발우 이상을 받아서는 안 되며, 받은 것은 승가에 돌아와 다른 비구들과 함께 나누어 먹어야 한다고 한다.50) 바일제 제33조 ‘전전식계(展轉食戒)’는 한 곳에서 식사 공양을 받은 후 또 다른 곳에서 공양을 재차 받는 것을 금지한다.51) 이는 맛난 음식을 찾아 이집 저집 돌며 걸식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바일제 제35조 ‘족식계(足食戒)’에서는 충분히 먹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면 그 날은 더 이상 식사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52) 이는 충분히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맛난 음식을 보았을 때 탐하는 마음으로 더 먹으려 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바일제 제39조 ‘색미식계(索美食戒)’ 역시 마찬가지이다. 유제품이나 생선, 고기, 꿀, 설탕, 기름 등과 같이 영양가 높고 맛난 미식(美食,paṇīta-bhojana)을 병이 아닌데도 구걸하여 먹어서는 안 된다.53) 이 외바일제 제31조 ‘시일식처과수계(施一食處過受戒)’도 편하게 맛난 음식을 먹고자 하는 태도를 경계한다.54) 이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음식에 만족하며, 더 많은 것을 탐하거나 더 맛난 것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을 가질 것을 가르치고 있다.
47) Vin ⅳ, p.190
48) Vin ⅳ, p.190
49) Vin ⅳ, p.194
50) Vin ⅳ, pp.78-81.
51) Vin ⅳ, pp.75-78.
52) Vin ⅳ, pp.81-83. a
53) Vin ⅳ, p.88 a
54) 출가자에게 한 끼 식사를 공양하는 시식처에서는 한 끼 식사만을 받아야 하며,
두 번 이상 음식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는 사위성 근처에 있는 조합의
사람들이 출가자에게 식사 공양하는 시식처를 만들어 음식을 제공하고 있었는
데, 마침 걸식으로 음식을 못 얻고 돌아다니다 우연히 이곳에서 맛난 음식을
먹게 된 육군비구가 이후로도 매일 이 시식처를 찾아가 공양을 받은 것을 계
기로 제정되었다고 한다. 단, 병이 들어 장소를 이동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연
달아 시식처에서 공양을 받아도 된다. Vin ⅳ,pp.69-70.
자기 몫에 대한 만족과 더불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나 양보도 강조된다. 예를 들어「 와좌구건도」에 의하면, 한 대신이 승차식을 준비하여 비구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뒤늦게 도착한 우빠난다 장로는 아직 식사가 끝나지도 않는 비구를 자신보다 법랍이 낮다는 이유로 일으켜 세우려 했다. 이로 인해 소란이 일자, 붓다는 일차적으로 우빠난다의 행동을 꾸짖으며 이를 금지하는 조문을 제정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떤 경우라도 법랍이 높은 비구가 자리에 앉지 못하는 일
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여 법랍이 낮은 자의 배려와 양보를 요청하고 있다.55) 또한 병든 비구가 좋은 와좌구를 차지했을 때는 이를 용납한다고 하는 것도 역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자 양보이다.
56)
55) Vin ⅱ, p.165
56) Vin ⅱ, p.166
모든 구성원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는 공평한 분배를 지향하지만, 사정에 따라 때로는 승가의 갈마를 통해 특정한 비구에게 몰아주는 경우도 있었다. 위에서도 언급한 바일제 제81조 ‘동갈마후회계’의 인연담에 의하면, 답바 말라뿟따라는 비구는 승가에 봉사하기 위해 스스로 지사비구의 소임을 맡아 매일 정사에 찾아드는 비구들에게 와좌구를 분배하고 청식에 갈 비구의 순서를 정하느라 다망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정작 자신의 옷을 세탁하거나 찢어진 곳을 수선할 여유가 없었는데, 마침 승가에 훌륭한 옷 한 벌이 보시되었다. 이미 완성된 옷이었기에 잘라서 현전승가의 비구들에게 전부 분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승가는 항상 승가를 위해 봉사하느라 다 헤어진 옷을 입고 있는 답바에게 그 옷을 주기로 결정하고 백이갈마를 통해 구성원의 동의를 얻어 그에게 주었다고 한다.57)
57) Vin ⅳ, p.154
자신의 몫에 대한 만족, 그리고 타인에 대한 양보와 배려. 이 두 가지 요소는 일견 서로 무관한 듯 보이지만, 실은 불가분의 감정이 아닐까 생각된다. 주어진 자신의 몫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에게 양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타인에게 양보하지 못하는 사람이 주어진 자신의 몫에 만족한다는 것 역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분히 이상적인 바람일 수도 있지만, 승가의 소유·분배 문제는 출가자에게 수행자로서의 자각과 함께 이 두 가지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근본적인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Ⅴ. 결론
상당수의 율 조문이 소유와 분배의 문제를 계기로 제정되었다는 사실은 고대인도의 승가에서도 ‘물질’의 취급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였던가를 보여준다. 비구의 의식주 생활에 관한 조문을 검토한 결과, 막대한 보시물을 앞에 두고 이에 대한 탐욕과 집착을 금지한다고 하는 일견 상충하는 듯 보이는 두 가지 문제가 다음 세 가지 관점에서 조절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는 개인적 소유의 관점이다.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유라는 원칙을 통해 물질에 대한 욕망이나 집착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는 차단하지만, 결코 육체를 괴롭힐 정도의 무소유를 지향하지는 않았으며 평안한 수행 생활을 위한 충분한 배려가 이루어지고 있다. 둘째는 승가 차원에서의 분배의 관점이다. 대부분의 물질을 승가 소유로 하고 모든 구성원에게 불만 없이 분배함으로써 구성원들에게 소유욕을 키우지 않으면서도 모든 구성원들이 거의 동일하게 수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셋째는 비구 개개인의 인식 변화라고 하는 관점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몫에 대한 만족과 타인에 대한 양보를 통해, 물질에 대한 탐욕이나 집착이 아닌 평안한 공유와 화합을 강조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승가에서 이루어진 소유와 분배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특징들을 빨리율을 중심으로 확인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었다. 본고의 결론적 내용들은 한역율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의해야 할 점은 빨리율이든 한역율이든 현존하는 율장에는 초기 승가의 모습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상당히 후대의 요소도 혼입되어 있기 때문에 물질을 둘러싸고 고뇌하는 승가의 모습을 차후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검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6대 광율 가운데서도 비교적 후대에 성립되었다고 하는『 근본설일체유부율』의 경우에는 고리대금업 등으로 인해 수입이 늘어난 승가가 물질적 풍요 속에서 타락해 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사방승물로 분류되는 부동산은 그렇다 하더라도, 금전이나 화폐가 승가에 축적되었을 때 그 소유나 분배, 혹은 남은 부분에 대한 처리 등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하는 문제는 현대의 승가 경제 문제를 논할 경우에도 비껴갈 수 없는 점이다. 또한 현대사회에서는 사회 복지에 승가가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것을 권장하지만, 과연 승가에 대한 보시물을 일반 사회에 분배하거나 환원한다고 하는 생각이 율장에서도 확인되는가, 확인된다면 그것은 어떤 이념에 근거한 것이며 또한 어느 정도까지 용납되었는가 하는 문제 등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실론섬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2680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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