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다나
-‘깨달음의 순간’설한 법열의 노래 -
-“마음밖에 법 없고 법밖에 마음 없다”-
91년 가을 실상사 선우도량에서 ‘깨달음의 교리적 해명’이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한 적이 있다. 평소 깨달음에 대해 정리해 보고싶던 차였기에 좋은 기회다 싶어 준비에 들어갔고, 경전과 논서, 어록을 열람하는 가운데 만난 것이 <우다나(Udana)>였다. 낯선 경전이었지만 지금의 나에겐 깨달음에 대한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중요한 경전이 되었다. <우다나>란 깨달음의 순간을 노래한 것으로 말하자면 법열(法悅)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질문하는 자 없이 부처님 스스로 설한 경전이라는 의미에서 <자설경·自說經>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우다나>는 8품 80개의 경구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제일품 보리품(菩提品)에서 깨달음에 대한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첫째는 ‘깨달음의 과정’으로 우루벨라의 네란자라 강가의 보리수 아래서 결가부좌하신 채 7일간 해탈의 황홀감을 즐기신 후 선정에서 일어나 초저녁, 자정, 새벽녘에 각기 십이연기법을 순관(順觀)과 역관(逆觀)을 통해 보시고 괴로움의 일어남과 없어짐의 이치를 노래하신다. 둘째, <우다나>의 게송은 깨달음의 근원적 체험의 기본구조를 보여준다. “실로 열심히 선정에 들어 있는 바라문에게 진리가 현현하게 될 때, 그 때 그의 모든 의심은 없어진다 라고 하는 것은 그가 연기의 법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 경구를 살펴보면 존재가 법으로써 나타날 때 동시에 ‘깨달았기 때문에’라는 표현을 쓰고 있어 선정에서 깨달음이 일어남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선정에 의해서 진리가 나타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선정은 깨달음의 마당이 된다. 또 이 <우다나>는 십이연기를 순관과 역관을 통해서 읊으신 것이므로 선정의 장을 통해서 나타난 진리가 연기임이 관조(觀照)되어진 것임을 말한다. 말하자면 관조와 진리가 상응함에는 선정이 장이 되고, 이 선정의 장을 통한 관조는 제법이 연기함을 깨달은 것이 되므로 이 경전에서의 깨달음은 관조 즉 반야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깨달음은 무엇인가? 이 경전을 통해 본다면 진리란 땅이나 하늘, 산, 바다, 나무 등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만 나타나며 갖가지 마음의 작용중에서도 마음의 고요함인 선정이라는 장을 통해서 연기라는 진리가 나타나게 되고 이와 동시에 마음의 깨어남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깨달음과 모든 존재의 실상인 연기법이 불이(不二)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따라서 ‘마음밖에 법이 없고 법밖에 마음이 없는 것이다’라 한 것은 모든 불교 즉 초기불교에서부터 선종(禪宗)에 이르기까지 모든 깨달음에 대한 기술은 바로 이 깨달음의 근원적 체험구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또 이 경전에서의 귀중한 가르침 가운데 하나는 깨달음을 나타내는 파자나티(pajanati: 그는 깨닫다)가 반야(般若)의 동사형, 현재삼인칭단수로써 반야라는 점에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반야는 실천적임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깨달았다 해도 깨달음의 가르침을 실천을 통하지 않고 지식으로만 받아들인다면 사상이나 철학일 뿐이다. 경전이나 논서나 어록의 문자만을 통해서는 진정한 깨달음은 있을 수 없다. 오로지 실천수행을 통해서만이 깨달음을 이룰 수 있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보살의 수행은 바라밀이며, 이 육바라밀 중 보시바라밀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파괴와 단절에서 회복시키고 이어주는 것으로서 상호의존적인 연기관계를 회복시켜주는 깨달음이자 동시에 중생구제이다. 따라서 깨달음이란 학습을 통해 사상이나 철학으로 전락시켜 지식화하는 교육으로는 아무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깨달음이 단순히 교육차원에서만 머문다면 깨달음을 구하고 중생구제를 목적으로 불법(佛法)이 오랫동안 머물러있게 하기위한 승가의 본래 의미는 퇴색되고 만다는 것을 이 경전은 잘 말해주고 있다. 지운<송광사 강원 강주>
부처님이 깊은 감흥 일 때 제자가 묻기도 전에 설법# 불교경전의 구성 부처님의 말씀은 인도에서 빨리와 산스크리트 두 언어로 기록되었는데, 이들 모든 기록들을 종류별로 편집한 뒤 한 군데 모아 엮은 것을 ‘광주리’라는 뜻의 삐따까(pitaka)라고 불렀다. 이 삐따까는 진리(法)를 해설한 부처님의 말씀인 수뜨라(su-tra), 윤리적 실천덕목들을 모은 비나야(vinaya), 숫따를 논리적으로 해명한 아비다르마(abhidharma)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도에서는 이 셋을 합쳐서 뜨리삐따까(tripitaka)라고 하였고, 동북아시아에서는 각각 경장·율장·논장이라 하고 통칭하여 삼장(三藏) 혹은 대장경(大藏經)이라고 불렀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뜨리삐따까는 동북아시아에 이르러 한자와 티벳어로 번역되었다. 한자 대장경은 다시 한글과 일본어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티벳 대장경은 다시 몽골어와 만주어로 재번역되었다. 이 네 언어로 된 대장경이 가장 종합적으로 완비된 대장경이다. 그러나 정작 이들 대장경의 저본이었던 산스크리트 삐따까는 대부분 산실(散失)되어 현존하지 않는다. 이 산스크리트 뜨리삐따까 중에서 수뜨라 삐따까는 다섯 아가마(agama 經集)로 분류되었는데, 이 다섯 아가마에 모든 경전들이 편집되어 있는 것이다. 중국사람들은 이 아가마를 아함경(阿含經)으로 번역하였다. 이와 달리 빨리어 뜨리삐따까는 동남아시아로 전승되었다. 부처님의 육성에 가장 가까운 기록인 빨리어 삐따까는 부처님의 말씀을 최고로 완벽하게 편집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동남아시아 언어들과 영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이 팔리어 삐따까는 대승불교가 성립하기 이전인 서력기원전 3세기 경에 편집되었으므로 여기에는 동북아시아 불교의 근거가 되었던 대승경전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 팔리어 삐따까 중에서 경전(sutta)들을 모아 편집한 부분을 숫따삐따까(suttapittaka)라고 하는데, 이는 다시 아주 긴 경전모음인 디가니까야(Dl-ghanikaya), 중간 길이의 경전모음인 맛지마(Majjhima)니까야, 길이가 아닌 중심주제에 따라 편집된 경전모음인 상윳따(Samyutta) 니까야, 숫자로 된 중심주제에 따라 편집된 앙굿따라(Anguttara) 니까야, 짤막한 경전들을 모은 꾼다까(Khundaka) 니까야의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이 중에서 마지막 꾼다까 니까야에는 15개의 경전이 속해 있는데 그 유명한 담마빠다(법구경), 자타까(본생담), 이띠부따까(여시어경), 테라가따(長老偈經) 등이 이곳에 편집되어 있다. # 우다나(Udana) 이 꾼다까 니까야에 속한 또 하나의 중요한 경전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우다나(Udana)이다. 우다나는 일본사람들에 의해 자설경(自說經)으로 번역되었다. 대부분의 경전들은 제자들의 질문에 부처님께서 답변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제자들이 묻지 않았는데도 부처님께서 스스로 설법을 펼치는 경우가 있었다. 따라서 이런 양식으로 베풀어진 말씀을 무문자설(無問自說), 혹은 감흥어(感興語)라는 의미인 우다나라고 이름지었는데 이는 전체 8품 80경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처님은 깊은 감흥이 일어날 때 이를 게송으로 읊으셨고 경전 편집자는 이 게송에 그 연유를 산문으로 덧붙여 하나의 경전으로 편집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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