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함 1]깨달음

수선님 2019. 12. 22. 13:10

1]깨달음

모든 종교의 주장들이 독단(獨斷;Dogma)으로 비판되어도 불교만은 보편,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고, 모든 철학 사상들이 문제 해결의 「추구」에만 그친다고 내몰려도 불교만은 궁극적 문제의 해결을 마침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불교가 모든 문제를「깨달음」을 통하여 해결하기 때문이다. 불교에 있어서 깨달음의 중요성은 대단하다. 깨달음은 불교의 목적이며 본질이라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겠다. 불교의 깨달음에는 대상이 있다.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깨닫기에 보편, 타당성을 갖춘 채 일체의 문제를 결국 해결한다 할 수 있는가?

깨달음의 대상를 아함에서 추구할 때 우리는 12연기설(十二緣起說)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롯한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항아성도하실 때 반드시 12연기를 깨닫는다고 함은 많이도 알고 있을 것이다.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이 바로 12연기임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12연기는 부처님 성도(成道)의 내용인 만큼 매우 어려울 것은 쉬 짐작된다. 부처님을 받들고 모시던 아난(阿難) 존자가 “제가 보기에 연기는 그렇게 심심(甚深)한 뜻이 없는 듯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경책하신다.

“아난아, 그런 말은 말라. 12연기는 매우 심심한 것이니 보통사람이 능히 깨칠 수 있는 법이 아니다.”<僧阿含>

이처럼 어려운 연기법을 쉽사리 말한다는 것부터 무모한 일이지만 개략적으로나마 음미해 보도록 한다. 12연기는 세 부분으로 나눠서 이해 해 볼 만하다. 곧 명(明)이라는 연기의 성립근거와, 「열두 지분(支分)」의 내용 및 순서, 그리고 「연기」라는 발생법이 그것이다.

먼저 12연기의 설립근거가 되는 명(明)에 대해서 살펴보자. 명(明)이란 술어는「vidya」 라는 범어(梵)}를 중국에서 번역한 역어(譯語)이다.「vidya」는 실제(實際)로 존재 한다, 발견한다. 라는 뜻을 지닌 동사 (vid)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실재 (實在)하는것」 「발견된것」등의 의미를 가진다. 결국 명(明)은 「실재하는 세계」「밝혀지는 세계」를 나타냈다고 할수 있다,

이러한「실재하는 세계」「밝혀지는 세계」가 구체적으로 어떠한가는 깨달음의 대상으로 남을 것이고 그것에 대한 앎이 깨달음의 내용이 될 것이다. 그러나 생멸의 변화가 있는 무상한 현실세계에 반(反)하여 「실재하는 세계, 밝혀지는 세계」를 내세움을 볼 때 명(明)이란 생, 멸 이 사라진 상주(常住)의 세계임을 짚을 수 있고 또 유위 (有爲), 조작의 현상계에 반하여 「실재하는 세계, 밝혀지는 세계」를 드러냄을 볼 때 부위자연의 본래면목이 명(明)임을 유추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이러한 명(明)의 있고, 없음에 따라 인간의 존재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왜냐면 명(明)이 있는 인간은 무위의 본래적인 세계에서 상주할 것이지만 명이 없는 자는 우리의 현실처럼 무상한 현상계에서 생사 유전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명이 없는 자는 과연 반드시 생사윤회에 이르게 될까. 이른 다면 어떤 경로로 생사를 받게 될까? 우리가 다음으로 고려할 연기의 12지분은 명(明)이 없는 자는 반드시 죽음의 괴로움을 당하게 됨을 구체적이고도 정연하게 보여준다, 열 두 지분의 첫째는 무명(無明)이다. 앞서 말한 명(明)이 없는 자를 일컫고 있음은 자명하다.

이렇게 명(明)이 없는 자에게는 「무명(無明): Davidya」 을 연하여 「결합(行:samskara)」이 있게 되고 이어 「식별(識;vijnana)」 「명색(名色:nama_rupa)」「6처(六處;sai_ayatana)」「충돌(觸;samsparsa)」「느낌(受;redana)」「갈애(愛;frsna)」「취함(取;upadana)」「됨(有;bhava)」「남(生;jati)」그리고 남을 연하여 되는 것으로 열두 지분은 배열된다.

이러한 12지(十二支) 하나 하나의 진실한 내용은 역시 깨달음의 대상으로 남겨져 있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게 되는 ㅡ앞에 예든 아난과 같은ㅡ 12연기에 대한 오해는, 바로 각 지분들의 내용을 간단한 관찰에서 발견되는 인간과 자연의 상황들 중의 어느 것으로 쉽게 속단해버리는 데서 일어난다. 그러나 그 어느 하나도 심심난해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그것에 대한 앎은 깨달음의 내용이 되는 것이다.

그러데 한번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열두 지분에는 5온(五蘊)의 지분들과 12처(十二處),생,사(生死)등의 개념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12연기가 아함 교리의 종합임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열두 지분의 순서는 아함에서 한번도 흐트러지는 일이 없다, 그것은 지분의 전후관계가 매우 엄격한 필연성 속에 놓여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명이 없는 자에게는 반드시 위의 과정을 통해 필연적으로 죽음이 있게 됨을 열두 지분의 철저한 순서는 강조하고 있다 할 것이다. 이처럼 엄격한 차례를 유지하는 지분들의 전후관계는 구체적으로 과연 어떠한 모습을 띠고 있으며 어떤양식으로 발생한 것일까?

우리가 마지막으로 성찰할 「연기」라는 술어는 그러한 발생양식을 짐작하게 한다. 즉 「연기」(緣起 ;pratitya_samutpaba)라는 말은 각지분 사이를 맺어주는 발생법을 핵심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연기의 어원적 해석은 「연하여(pratitya)함께(sam)올라간다(utpada)이다. 그래서 「무명」을 연하여 「결합」이 있게 된다고 할 때, 그 때의 상황은 「무명」을 연하여 「결합」이 있게 되고 이어 「결합」은 「무명」과 함께 「결합」의 세계로 올라가는 모습을 띠게 된다. 「연」이란 말은 전법(前法)이 생하기 위한 필연적인 조건을 의미하므로 각지분의 순서는 엄밀하게 유지되며「함께 올라가」므로 열두 지분은 모두모여 하나의 커다란 괴로움의 온(蘊)을이루게 될 것이 예상된다.

이러한 발생법은 인연(因緣)에 의한 발생과 집기(集起)라는 발생법을 한꺼번에 성취하는 양식임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각각 앞서 6식설(六識說)과 5온설(五蘊說)에서 살폈던 발생법이다. 결국 발생법의 측변에서도 12연기는 아함 교리의 최종적 귀결임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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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같이 명(明)을 전체적인 성립근거로 하여 그에 반한 무명에서 부터 「열두 지분」이 서로 자기앞의 지분을 「연하여 함께 올라와」커다란 괴로움의 온이 있게된 것이다. 따라서 무명을 남김없이 멸하여 명(明)에 계합하므로서 무명을 비롯한 열두지분으로 이뤄진 커다란 괴로움의 온은 멸하게 될 것임을 12연기는 설하고 있다.

그래서 앞서도 언급했듯이 비바시(毘婆尸)부처님으로부터 모든 부처님은 괴로움의 집기와 멸함을 다음과 같이 종합적으로 선사(禪思)하고 있음을 아함은 전하고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 즉 무명에 연하여 결합이 있고 결합에 연하여 식별이있고, 식별에 연하여 명색이 있고, 명색을 연하여 6처가 있고 6처를 연하여 충돌이 있고 충돌을 연하여 느낌이 있으며, 느낌을 연하여 갈애가 있고, 갈애를 연하여 됨이 있고, 됨을 연하여 남이 있고. 남을 연하여 죽음이 있다. 그리하여 하나의 커다란 괴로움의 온(蘊)이 집기하게 된다, 따라서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멸한다. 즉 무명이 멸함으로서 결합, 식별, 명색, 6처, 충돌, 느낌, 목마름, 취함, 됨, 생함, 죽음이 없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의 커다란 괴로움의 온이 멸하게 된다.

이러한 12연기는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건 아니하건 관게없이 법계에 상주(法界常住)하는 것이며 여래는 단지 그것을 깨달아 중생에게 법을 연설해 깨우쳐 줄 뿐이라고 설해진다<蘿阿含>

이는 12연기가 지닌 보편·타당성을 나타내며 12연기야말로 진정한 깨달음의 내용이 됨을 말하고 있다. 모든 중생을 성불케 하여 사바세계를 불국토로 장엄하겠다는 것이 불교의 목적이며 이러한 목적의 요체(要諦)는 다름 아닌 깨달음이다. 그리고 깨달음의 대상은 바로12연기인 것이다.

[2] 12연기와 불교

아함에 시설되어 교리들은 12연기에 의해 종합·완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중생들로 하여금 궁극의 깨달음을 효율적으로 이루게 하기 위해 방편시설 되었던 여러 교리들은 12연기에서 하나의 완전한 조직을 이루게 된 것이다. 앞서도 간단히 언급했듯이 열 두지분의 구성이 5온(五蘊)이 지분과 12처(十二處) 생사(生死)등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고 ‘연하여 함께 올라간다.’라는 발생법이 6식설(六識說)등에 나타나는 인연론(因緣論)의 발생양식과 5온 4제(四諦)설의 집기(集起)라는 발생양식을 바탕으로 하여 보다 높은 차원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설해진 것을 살필 수 있는데 이들을 미루어 12연기설이 아함 교리의 구경이며 완결임을 말할 수 있다.

12연기에 의해 아함의 전 교리체계가 완성되면서 ‘연기설’은, 바라문교의 ‘전변설(轉變說)’과 사문들의 ‘적취설(積聚說)’이 주종을 이루고 부처님 당시의 사상계에서, 불교의 대표적인 철학적 입장으로 등장한다. 일례를 들어 살필 때, 이 들 전변설과 적취설은 인간과 죽음 및사후의 존재 유무를 다음과 같이 보았다.

전변설에서는, 범(梵)신에서 분화된 마음과 물질이 하나로 결합한 것이 인간이며, 죽음이란 마음이 몸을 떠나는 것이고, 사후에는 불멸(不滅)하는 마음이 다시 몸을 받는다고 설한다, 그리고 적취설에서는 인간은 물질요소들이 적취되어 한덩어리를 이룬 것이고 죽음이란 물질요소의 흩어짐이며 마음은 물질의 종속적 현상이므로 사후에는 흩어지는 물질만 남을 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두 견해에 대해 아함은 일찍이‘일체(一體)는 덧없고 괴로우며 나(我)라 할 게 못된다.’라는 3법인(三法印)을 설하면서 전변설의 불멸의 마음을 부정하였고, 업보의 3세 윤회설을 가르치면서 과보를 받을 내세(來世)를 설정한 뒤 적취설의 단멸(斷滅)의 견해를 극복하였다.

여기에서 누구라도 다음의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불멸하는 마음도 없다면 도대체 누가 내세에 다시 과보를 받을 것인가?’ 윤회의 주체에 대한 의구이다. 이러한 반문 앞에서 3법인설과 3세 윤회설은 모순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12연기설에 들어설 때 그들은 논리정연히 연결된다. 곧 연기설에 입각할 때, 인간이란 명(明)에 대한 망념인 무명에서 연기한 12지(十二支)가 근간이 되어 성립한 것이며, 죽음이란 무명 등의 근간들이 실질성이 없으므로 ㅡ‘실재하는 것’은 명(明)이다.ㅡ 필연적으로 있게 되며, 사후에는 전혀 다른 무명이 또다시 앞의 무명을 상속(相續)하게 되고 이어 12지가 연기하여 새로운 개체를 형성할 수 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즉 인간의 근본은 실재하지 않는 무명이므로 인간의 마음은 무상, 고, 무아를 피할 길이 없고, 죽음으로 그러한 무명이 깨어지면 또 다시 새로운 무명이 상속하게 되므로 내세는 필히 전개된다. 그리하여 불멸의 마음이 없이도<無我說> 내세는 전개되는 것이다.<三世論 說>

인간과 죽음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이와같이 해결한 연기설은 이어 존재와 무(無)에 대한 불교의 독특한 입장을 설하여 나아간다. 이미 말했듯이 인간을 비롯한 세간은 무명에서 연기한 것이다. 그리고 무명은 명이 없는 상태이다. 다시 말해 실재성(實在性)이 없다. 이러한 비실재성의 무명에서 비롯된 일체는 ‘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면 멸할 수 밖에 없는 무명이 멸하면서 모두 사라지기 때문이다.

결단코 일체세간은 무아(無我)이며 공(空)인 것이다. 그러나 아주 없지는 않다. 무명에서 연기한 망념의 세계만큼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을 비롯한 일체는 연기한 세계인 까닭에 ‘있다’고도 ‘없다’고도 못하게 된다. 바로 이와같은 묘경(妙境)을 부처님은 ‘중(中)’으로 제시하며 구체적인 내용으로 연기를 관찰하게 하신다.

‘세간의 집기(集紀)’를 여실히 알면 세간이 ‘없다’는 견해가 없을 것이고 세간의 멸함을 여실히 알면 세간이 ‘없다’는 견해가 없을 것이고, 세간의 멸함을 여실히 알면 세간이‘있다’는 것이 하나의 끝이요 ‘없다’는 것이 또 하나의 끝을 떠나 ‘중(中)]’으로 법을 설하나니, 그 법은 곧 12연기이다.<雜阿含>

여기서 우리는 12연기를 통해 공(空)과 중도(中道)의 핵심적인 뜻을 엿보게 된다. ‘공’과 ‘중’은 반야(般若), 법화(法華)로 뻗어가는 대승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들에 속한다. 이런 개념들이 바로 12연기설에 구체적인 내용을 담겨두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중관사상(中觀思想)의 비조인 용수보살도 공,가,중(空假中)의 기반을 12연기설에서 찾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12연기를 대승의 기초라고 불러 좋을 것이다. 불교는 깨달은 자가 깨달으려는 자를 깨닫게 하는 종교이다. 이러한 깨달음의 진실한 내용은 12연기이다. 183권에 이르는 방대한 아함에는 숱한 교리들이 산설되어 있다.

이러한 아함의 모든 교리들이 종합, 완성되는 구경(究境)이 12연기이다. 반야경의 세계의 튼튼한 지반(地盤)도 역시 12연기이다. 여러 갈래의 강물이 한 바다에 모이고 다시 더 얿은 바다로 나아가 무변대해(無邊大海)를 이루듯이, 아함의 숱한 교리는 12연기에 모이고 다시 더 깊은 가르침으로 발전해 가없는 깨달음의 세계를 이룬다 할 것이다.

*최봉수 1961년 부산출생. 1984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및 동대학원입학. 현재 석사과정 재학중.

최봉수 bulkwang_c@hanmail.net

[출처] 아함|작성자 임기영자료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