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상도(八相圖)와 십우도(十牛圖)
심재룡(철학과교수)
예술을 하건 철학을 하건, 아니면 무슨 문학을 하건, 과학을 하건, 그 어떤 활동을 하건 간에 ‘인격이 완성된 다음에야 비로소’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기서 ‘인격의 완성’이란 말을 썼지만 사실 철학적으로 따지고 들면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물론 기예나 기술의 경우는 조금 다르겠다. 예를 들면, 빵을 만들거나 컴퓨터를 만들거나 자동차를 만들 때에는 ‘장인이다’ 혹은 ‘그 기술을 마스터한 사람이다’ 라고 해서 ‘완성’이란 말을 쓸 수도 있고, 또 그 완성의 기준이 어느 정도 정해질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인격의 경우에는 어떤가? 인격의 완성하면 문자 상으로야 ‘사람이 완전히 다 되었다’ 정도로 풀이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이건 도대체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 다 되어서 나온 것을 ‘완성’품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필자처럼 안경을 쓰지 않고 육체적으로, 물리적으로 인간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을 겨냥하여 쓰는 것인지, 인격의 완성이라는 말 자체가 사실 대단히 불분명하다.
그러다 보니까 인격의 완성을 문제삼을 때 옛날 사람들은 어떤 하나의 이상적인 모델을 정해 놓고 그 양반의 생애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를 천착해 보지 않았나 생각된다. 십우도(十牛圖)와 함께 오늘 이야기하게 될 팔상도(八相圖)의 예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아마 불교인들도 그런 식으로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단락으로 나누어서 인격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불교적 수행 과정을 그려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이 두 가지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다시 말하면, 말이나 개념을 사용해서 어떤 것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과, 극적인 사건을 몇 개 뽑아 내서 그것을 그림으로 바꾸어 나타낸다고 하는 것이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느냐 하는 물음이다. 여기에서 이 문제에 대한 뚜렷한 주의, 주장을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나는 다만 문제만을 던져 주는 것일 뿐이다. 사실 필자도 잘 모르겠지만 이 점을 여기에서 거론하는 이유는, 앞서 얘기한 ‘나의 인격 완성은 어떻게 되어 가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화두로 삼아 독자들이 스스로 참구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주십사 하는 것이다. 더불어 만약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 할 때, 다시 말해서 어떤 인생의 마디마디를 그린다, 조각한다, 어떤 형상으로 나타낸다, 공간 속에 조형화 한다 할 적에 그걸 과연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독자들이 스스로 공부해나가는 데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절에 들어가는 입구에 보통 사천왕상이 위치하고 있다면, 대웅전의 경우에는 어떨까. 본래는 불법을 전하려는 목적에서였겠지만 종교적인 의미도 어느 정도 담고 있을 테고, 법당 안이든 밖이든 대략 두 가지 그림 혹은 조각이 있을 것이다. 소위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단락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가 그 하나고, 다른 하나는 까만 소가 하얗게 되고 나중에는 동그란 상이 되는 십우도가 바로 그것이다. 전자가 석가모니라고 하는 특정 인물의 인격 완성의 과정을 인도인들이 공유하는 신화적 맥락을 깔고 그린 것이라면, 후자는 그 인격 완성의 경지, 소위 깨달음의 경지를 소로 상징화하여 그린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동양철학의 주된 전통 중의 하나인 불교는, 인도에서 태어나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하였다. 여기서는 서두에서 이야기한 인격 완성이라는 문제를 저변에 깔고서 팔상도에 대한 몇 가지 철학적 감상을 우선 얘기하기로 한다. 그리고 나서 인도와는 전혀 다른 문화적 맥락을 갖는 중국이라는 땅으로 불교가 나중에 넘어오게 되면서 이제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을 떠나 그것이 추구하는 깨달음의 길이 추상화된 모습으로 상징화되게 된다. 불교적 인격 완성의 길, 깨달음에 이르는 구도(求道)의 길을 소에 비유해서 그렸다고 생각되는 십우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한다. 이 둘을 함께 이야기하게 되면, 아마 동양철학 전체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배경 설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도솔래의(兜率來儀)와 인도인의 세계관
나의 작업은 개념과 개념의 연결을 통해 앞뒤가 들어맞는 하나의 정합적인 사고 체계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예술가들의 작업은 무엇인가를 어떤 공간 속에 조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런 것을 하면서도 그냥 막연한 느낌만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어떤 아이디어, 관념 그런 것이 아마 예술가들에게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무한이라는 관념, 진리라는 관념, 깨달음이라는 관념이라든가 혹은 좀 전에 얘기했던 완성이라는 관념 같은 것 말이다. 이런 것들을 놓고 이야기해 보기로 한다. 동양의 예술사나 회화론 같은 여러 이론들에서 예술, 창작 작업이라는 것은 객관적인 어떤 사실을 그대로 묘사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자기의 생각, 아이디어를 어떤 구체적인 형상을 통해서 전달하려는 데에 최종적인 목적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팔상도나 십우도라는 황소 그림 속에 도대체 뭐가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일까?
조선조 세종때 부처님의 일대기라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나오게 된다. 소위 ?석보상절?(釋譜詳節)이라고 해서 그림이 곁들여진 것 있지 않은가. 석가모니의 족보를 상세히 기록해 놓은 책으로, 세조, 즉 수양대군이 보위에 오르기 전에 부왕(父王)의 명을 받고 엮은 책이라고 한다. 그 속에 보면 요즈음 절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그런 팔상도가 맨 앞부분에 들어 있다. 팔상을 순서에 따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도솔래의(兜率來儀),
비람강생(毘藍降生),
사문유관(四門遊觀),
유성출가(逾城出家),
설산수도(雪山修道),
수하항마(樹下降魔),
녹원전법(鹿苑轉法),
쌍림열반(雙林涅槃).
이 가운데 첫부분인 도솔래의는 전생의 석가모니가 도솔천(兜率天, Tuṣita-deva)에서 백상(白象)을 타고 내려와 마야 부인의 옆구리를 뚫고서 태중에 들었다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여기에서 도솔천이라는 명칭이 등장하고 있는데, 쉽게 상상 속에 잘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왜 여지껏 전해지는 향가(鄕歌) 28수 중에 월명(月明)이라는 스님이 지었다고 하는 도솔가(兜率歌)라고 있지 않은가? 당시에 하늘에 해가 둘이 나타나 없어지지 않아서 경덕왕이 스님을 불러 이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하자 그 이변(異變)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 때의 바로 그 도솔이다. 3계6도(三界六道)설을 기본으로 하여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는 중생들이 거주하는 곳을 33개의 영역으로 정형화시켜 완성한 후대의 불교 세계관에 따르면, 이 도솔천은 욕계(欲界)의 6천중 네 번째에 해당하는 하늘 세계, 신들의 세계(天界, deva-loka)로서, 특히 다음 생에 부처가 될 이, 즉 보살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인간 세상에 하생(下生)하여 성불한다고 하여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그러니까 석가모니의 전신이 그곳 도솔천에 보살로 머물고 있다가 이제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다는 것이 이 도솔래의 부분에서 전달하려는 것이라 하겠다. 석가모니 부처에 이어 다음 세상에 출현할 미래불인 미륵(彌勒) 역시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 불교를 받아들이는 초창기에 당시 인도인들과는 전혀 다른 우주관을 가지고 있었던 중국인들로서는 불교 전적에 등장하는 세계에 대한 묘사는 아마 엄청난 상상력을 요하였을 것이다. 인도인들의 전통적인 우주론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시간적으로든 공간적으로든 무수히 많은 세계들 가운데 단지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흔히 서양인들이 중국을 두고 ‘마술의 정원’이니 해서 소위 중국인들이 붕뜬 생각, 과장된 표현을 많이 한다고들 비꼬기도 하는데, 사실 인도인들의 생각에 비하면 중국인들의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인도인들에 따르면 우주에는 수천, 수만, 수억 개의 세계들이 있다고 합니다. 중중무진(重重無盡)이라느니,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느니 하는 말 들이 인도인들의 광활한, 광대무변한 우주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요즈음의 천문학적 지식을 사용하여 얼추 이해한다 할 때, 일종의 태양계와 같은 것이 109개가 있고, 이 109개의 태양계로 이루어진 은하계로서의 삼천대천세계가 무수히 많다는 것이다.
인도의 우주론을 보면 우주의 성립 구조, 그 크기와 모양을 설명하는 방식에 있어 각 전통에 따라서, 그리고 동일 전통 내에서도 시기에 따라서 사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인도의 고대 천문학자들은 세계를 기본적으로 구형(球形)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는데, 기본이 되는 전통적인 우주론에 따르면 하나의 세계는 브라흐마 안다(Brahmāṇḍā)라고 해서, 계란 모양을 한 것으로 여겼다. 창조신, 브라흐마의 알이라는 뜻인데, 세계의 알(egg of world), 이런 정도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 인도의 수미산설(須彌山說)에 입각하여 힌두교 전통에서는 그 구조를 인간을 포함한 지상 생명체들이 사는 지상계와 그 위와 아래로 층층 구조를 이루고 위치하고 있는 6개의 천상 세계 및 14개의 지하 세계 등등 이렇게 해서 총 21개의 지대로 이루어진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선 이 21지대설을 설명하고, 이어 불교 우주론으로 넘어가 보기로 한다.
베다 이래의 전통에 따라 인도인들은 지상계는 하나의 거대하고 납작한 원반형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세계의 중앙에는 수미산이라고 해서 하나의 거대한 산이 있다고 한다. 이것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산과 바다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데, 4방위에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4주(四洲) 혹은 4천하(四天下)라고 해서 네 개의 대륙들이 위치하고 있다. 이것을 그쪽 인도 말로는 드비빠(dvīpa)라고 하는데, 이곳이 말하자면 우리네 지구 인간들과 비슷한 생명체들이 거주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 4개의 대륙 가운데에 이른바 남섬부주(南贍部洲)라고 해서 남쪽에 있는 대륙이 소위 염부제(閻浮提, Jambudvīpa)라는 것인데, 이것이 말하자면 우리 인간들을 포함한 지구 생명체들이 사는 곳에 해당한다. 이 지구, 염부제라는 대륙의 남쪽에 바라따바르샤(Bhāratavarṣa, 바라따 자손들의 땅이라는 뜻임)라고 해서 히말라야 산에 의하여 격리되어 있는 지역이 있다고 보았다. 그곳이 말하자면 요즈음의 인도에 해당하게 된다. 세계의 중앙에 있다는 수미산 하고 히말라야 산은 서로 다르다. 전자가 상상 속에 있는 것이라면, 후자는 인도 사람들이 보는 히말라야산 바로 그것에 해당한다. 나중에 가면 세계에 대한 그림에 약간의 변형이 이루어져 염부제는 수미산을 둘러싸고 있는 구형으로, 그리고 쁘라끄샤디빠(Plakṣadīpa)라고 불리는 다른 하나의 대륙에 의하여 둘러싸여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런 식으로 수미산을 중심으로 하여 모두 일곱 겹으로 된 구형의 대륙으로 되어 있으며, 대륙과 대륙 사이에는 각각 소금, 당(糖), 술, 우유, 이 우유의 발효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일종의 요구르트 비슷한 기이와 버터 비슷한 응유(凝乳),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로 된 총 7겹의 바다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상의 설명은 지상계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인도인들에 따르면 세계에는 인간들이 사는 곳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납작한 원반형의 이 지상계를 기본 축으로 해서 위로는 천상계가 있고, 아래로는 지하 세계가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수미산을 중심으로 해서 그 꼭대기에 일종의 원뿔 구조로 6개 층의 하늘이 있다고 하는데, 그곳을 데바로까(deva-loka)라고 해서 신들이 사는 곳으로 여겼다. 그러니까 신들도 갖가지의 종류가 있는 셈이다. 인간 세상 아래에는 빠따알라(pātāla)라고 해서 7층으로 이루어진 지하 세계가 있어서 나가(nāga) 등의 신화적 존재들이 살고 있다고 하며, 이 빠따알라 밑에는 다시 7층으로 된 나라까(naraka)가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천상-지상-지하계의 이런 구조에서 위로 갈수록 보다 더 살기 좋은 곳이고, 아래로 갈수록 점점 저 고통스러운 곳이 된다고 한다. 말하자면 고락(苦樂)의 정도로 볼 때 지상계를 기본 축으로 하여 천상계는 고보다는 락의 양이 더 많은 세계가 되는 것이고, 빠따알라나 나라까같은 지하 세계는 고의 양이 더 많은 세계가 되는 것이다. 인간이 거주하는 지상계는 그렇다면 고와 락이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뒤섞여 있는 그런 세계가 되는 것이다.
아무튼 수미산을 중심으로 하여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하나의 계란 알 비슷한 구조의 주위를 해와 달과 별들이 돌고 있다고 보았는데,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것을 하나의 단위 세계로 간주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를 가진 세계는 빈 공간 속에 떠 있으며, 다른 세계들로부터 격리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이 세계를 주재하는 이가 말하자면 인도의 정통 종교에서 우주의 창조신, 주재신으로 이야기하는 브라흐마(Brahmā) 신이다.
나중에 불교에서는 이 단위 세계를 일소세계(一小世界)라고 부르고 있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세계로서 오늘날 천문학에서 말하는 태양계의 개념과 흡사하다. 이 일소세계를 단위로 해서 그것이 천 개 모인 것을 소천세계(小千世界), 이 소천세계가 다시 천 개가 되면 중천세계(中千世界), 그리고 이 중천세계를 천 개 합한 것을 대천세계(大千世界)라 하였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는 것은 바로 이 대천세계의 다른 이름인데, 하나의 대천세계에 방금 말한 소, 중, 대 3종의 천세계(千世界)를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태양계 비슷한 그런 것이 109개가 모인 일종의 은하계가 되겠다 그리고 성주괴공(成住壞空)을 되풀이하는 전 우주는 무수한 수의 삼천대천세계로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불교 우주론의 경우에는 일소세계를 설명할 때 앞서 설명한 수미산설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힌두교의 그것과는 다소 다르다. 흔히 3계6도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3계와 천(天, deva), 인(人, manuṣya), 아수라(阿修羅, asura), 아귀(餓鬼, preta), 축생(畜生, tiryagyoni), 지옥(地獄, naraka), 이렇게 해서 6도가 된다.
이 3계6도의 세계는 완전한 자유인 열반을 얻기 전까지 중생들이 그 안에서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나고 죽는 그런 장(場)이라고 하여 생사의 세계, 삼사라(saṁsara)의 세계라고 한다. 이중 욕계는 6가지 감각기관을 지닌 존재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서 그들의 업에 따라서 태어나게 되는 5 혹은 6가지 존재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아래에 나라까, 즉 지옥으로부터 시작해서 아귀, 축생, 인간계, 그리고 그 욕계의 맨 위에 신들의 세계가 있다. 반면에 색계와 무색계는 모두 신들의 세계에 해당하는데, 욕계의 맨 위에 있는 신들의 세계를 그것들과 구별하여 욕계천(kāma-deva, 欲界天)으로 부르기도 한다. 여기에 일부 전승에서는 축생과 인간계 사이에 아수라를 넣어 6도로 보기도 한다. 이중 인간계와 축생계만이 지구의 표면에 거하며, 신들은 수미산의 정점에 있는 천계에 거한다고 한다. 이런 그림의 전체적인 구도는 사실 힌두교의 그것과 비슷하다.
욕계6천이라고 해서 욕계에는 총 6개의 신들의 세계가 있다. 도솔천이란 바로 이 욕계천의 네 번째 신계(神界)에 해당한다. 수미산 꼭대기로부터 12만 유순(由旬, yojana, 인도에서 길이를 셈하는 단위로서, 멍에를 황소 수레에 걸고서 하루 동안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고 함)위에 있는 하늘이라고 하는데, 7보로 만든 아름다운 궁전이 있고 수많은 신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아래로는 사천왕(四天王), 도리천(忉利天), 야마천(夜摩天)이 있고 위로는 화락천(化樂天),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 있는데, 전자가 욕정(欲情)에 잠겨 있고 후자는 들뜬 마음이 많은 데 비해 이 도솔천은 잠기지도 들뜨지도 않으면서 오욕락에 만족한 마음을 낸다 하여 다음 생에 성불할 보살이 머문다 하였다. 이곳에 사는 신들의 수명이 어느 정도인고 하니 수명은 4천세 인데다가 인간의 4백세가 이 하늘의 1주야라고 하니까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사바세계에 나는 모든 부처님은 반드시 이 하늘에 머물다가 성불한다고 하며, 그래서 부처가 되기 전에 기다리고 있는 부처를 도솔부처라고 한다. 도솔래의는 부처가 되기 이전에 바로 이 도솔천에 계시다가 이제 적당한 시기가 도래하여 이 인간세상으로 내려온다는 그런 식의 관념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보면 팔상도의 성립에는 특이한 관념이 개입되어 있다 하겠다. 우선 들 수 있는 것으로서, 인생은 단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사람이 태어나서 죽는 것 사이에는 몇까지 극적인 사건들이 있으며 그것을 근저로 해서 사람은 죽고 난 연후에도 그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생각을 들 수 있다. 이것을 보통 업(業), 업보(業報), 윤회(輪廻), 윤회전생(輪廻轉生)이라는 등의 말로 표현한다.
업과 윤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빈부, 귀천, 미추 등의 차별이 있고, 훌륭한 인격을 완성한 이가 있는가 하면 별볼일없는 혹은 남에게 해악을 주는 인생으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또한 살아가는 도중에도 어떤 이의 인생은 순조로운 반면에 어떤 이는 수많은 곤경을 겪기도 하며, 남에게 베풀면서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일생 동안 재난과 가난을 면치 못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남에게 못할 짓을 많이 하면서도 떵떵거리고 잘 사는 이도 있다. 이렇듯 생래적인 환경이 불평등할 뿐만 아니라, 당장의 현실을 놓고 볼 때 선인선과 악인악과(善因善果 惡因惡果)라는 이 단순한 이치가 도대체 통하는 것 같지가 않다.
여기에서 인생은 뒤죽박죽, 으레 그렇게 우연적이고 불합리한 것이려니 하면 물론 그만이겠지만, 그러나 합리적인 이유를 묻는 인간으로서는 이 출생의 불평등과 삶의 불합리성을 그냥 내버려두지 못한다. 바로 여기에서 뭔가의 설명이 인간에게 요청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여기에서 만약 인생이 단 한 번의 것이 아니라, 전생-현생-후생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기로 하자. 우리네 인생이 삼세로 이어져 있는 것이라면, 인과가 작동하는 장은 무한 확장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면 다음과 같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을 것이다 : 현생의 내 모습은 전생에 내가 한 행위의 결과이고, 현재 내가 하고 있는 바에 따라 앞으로, 그리고 다음 생의 나의 모습이 결정된다. 이제 이렇게 되면 생래적인 불평등은 전생의 업의 과보로서 설명될 수 있으며, 현생의 불합리성은 다음 생이라는 보다 확장된 영역 속에서 그 합리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윤회와 업보라는 관념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이런 관념을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가면 어떠한가? 가난한 집에 태어나거나 부잣집에 태어나거나, 범부로 생을 마감하거나 소위 성인이 되거나 하는 것이 우연적인 사건, 결과가 아니게 된다. 따라서 훌륭한 성인은 그저 이 한 생에서 어찌어찌 잘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그런 모습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수많은 세상에 수없이 많은 전생(前生), 혹은 본생(本生)을 거치면서 수없이 많은 선행을 실천하였으며, 그런 행이 무르익어 이제 지금 현세에 태어나 완성된 인격, 훌륭한 성인이 된 것이다, 따라서 소위 부처님도 과거 오랜 기간에 걸쳐 쌓아 온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현세에 그런 식으로 태어났다는 생각이 자연적으로 성립되는 것이다.
이때 더불어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인도인들의 시간관과 우주론에 투영되어 있는 무한이라는 개념인데, 이것을 팔상도의 성립에 투영되어 있는 두 번째 관념으로 지적할 수 있다. 이는 인도 사람들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발견한 개념이라고 한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와 같은 관념이 머리 속에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의 생애를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바로 이러한 신화적인 세계관이 투영되어 팔상도의 첫 번째 부분, 즉 도솔래의가 그런 모습으로 형상화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익숙해 있는 일회적인 인생이라는 관념은 사실 따지고 보면 역사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아마 기독교 문명권에서만 보더라도 어거스틴(S. Augustine, 354-430) 이후에 정형화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 B.C 4세기에 알렉산더(Alexander, 356-323 B.C.) 대왕의 동방원정으로 고대 인도문화와 서구문화 간의 교류가 일찍부터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기는 하지만, 윤회라는 관념은 사실 유럽의 사상사에서도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다. 고대 희랍 사상가중에 피타고라스(Pythagoras, 582-500 B.C.)라는 사람 있지 않은가? 그를 추종하는 피타고라스 교단에서는 윤회를 믿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콩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콩나물을 기를 적에 나는 냄새가 아마 생명의 샘에서 나오는 냄새하고 비슷한가 본데, 그래서 콩에 혼이 담겨 있다고 해서 그건 먹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가 보여주듯이, 사람은 한 번 태어나면 그냥 죽고 만다, 여기 시작이 있고 여기 끝이 있다, 여기 알파가 있고 여기 오메가가 있다 라는 이런 식의 직선적인 생각은, 따지고 보면, 인류역사에서 훨씬 나중에 등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인도건, 메소포타미아건, 중국이건, 어느 문명권에서건 직선적인 역사관에 근거한 일회적 인생이라는 생각보다는 되풀이되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심리학자인 칼 융(C. Jung, 1875-1961)같은 사람은 집단 무의식이니, 인간의 잠재의식이니 해서 그 속에 뭐가 있다 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아무튼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경험한 적도 없는데, 그런데도 꿈속에 그런 것이 나타나는 걸 보면, 역사적인, 지질학적인, 우주론적인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인간의 의식 속에는 똑같은 것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아마 그런 것 때문에 전후 과거가 있다는 이런 생각이 도솔래의라는 형태로 팔상도의 제일 첫 번째 부분을 장식하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팔상도에 그런 관념이 담겨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가 팔상도를 볼 때 그것은 석가모니라는 한 개인의 어떤 일회적인 역사적 사건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게 된다. 그것은 어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고 또 다시 태어나고 하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특정 문화권이 공유하는 신화적 맥락을 깔고 그림으로 형상화한 하나의 모형을 보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부처님의 생애라는 것은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페르시아(지금의 이란)의 태양 신화가 인도 땅에서 그러한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지, 실질적으로 그런 인물이 역사적으로 그런 모습으로 살다 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80년을 살았다고 하는 석가모니의 생애가 문자로 기록된 것은 그의 사후 5-6백년이 지나서이다. 예수의 이야기는 대략 사후 1-2백년이 지나서 정형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석가모니의 경우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랜 시일이 지난 후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처음에는 팔상도와 같은 그림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무슨 보리수 잎사귀라든지 부처님의 발바닥이라든지 하는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상당한 시일이 경과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림으로 그려지게 되는데, 이것 자체도 여러 가지이다. 4상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8상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12상이라는 것도 있다. 말하자면 기록하는 사람, 그리는 사람에 따라서 다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각 절마다 거의 정형화된 형태로 팔상도가 그려져 있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게 되겠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석보상절?의 영향인 듯 하다.
마야의 세계와 성인의 탄생
사실 필자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석가모니의 전생이 어떠했느냐 혹은 그가 어떻게 태어났느냐 하는 이런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인간 고타마 싯타르타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완성된 인간, 성자, 석가모니가 되었느냐 하는 이 문제에 저는 더 관심이 있다.
고타마 싯타르타라고 할 때 고타마는 가문의 이름, 즉 족성(族姓)에 해당한다. 싯타르타는 말하자면 퍼스널 네임(personal name)인 것이다. 석가모니(Śākyamuni, 釋迦牟尼)는 석가족(Śākya)의 침묵하는 성자(muni)라는 뜻이다. 깨달은 이(buddha), 눈 뜬 이라고 해서 붓다(Buddha, 佛)라고도 한다. 그는 슛도다나(Śuddhodana)왕을 아버지로, 마야(Māyā)부인을 어머니로 해서 태어났다. 당시 인도 사회에서 크샤트리야 계급에서 태자라는 세속적 신분으로 출생한 것이다. 여기에서 슛도다나라는 것은 정반(淨飯)이라고 한역되기도 하는데, 음식이 깨끗하다, 주는 것이 깨끗하다 이런 뜻이다. 어머니가 마야 부인이라고 했는데, 진짜 역사적인 인물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 말 자체가 그 어떤 상징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인지는 필자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기묘하게도 여기에서 마야는 환(幻), 속임수, 마술, 허깨비, 신기루라고 해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왜 그 마술사가 만국기도 꺼내고 토끼도 꺼내고 그러는 것 있지 않은가. 바로 그런 마술같은 것 말이다.
인도 사람들은 이 세상 자체를 마야라고 생각했다. 본래 있는 것이라면 완전한 모습으로, 언제나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있어야만 하는 것이지, 있다가 없다가 하는 것은 진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은 다양하고, 그 안의 것들은 자꾸만 변하지 않는가? 그래서 다양성으로 특징 지워지는 이 세계는 진짜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마야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로 있는 것은 하나인 것이 되겠다. 여기에서 하나라는 것은 숫자로 하나, 둘, 셋 할 때 그 하나가 아니라, 완전한 것, 변함이 없는 것, 둘로 되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의 하나이다. 바로 그 진짜로 있는 것, 하나인 것, 그것을 인도 사람들은 브라흐만(Brahman)이라고도 하고, 아트만(Ātman)이라고도 했다. 바로 그것만이 진짜이고 나머지는 모두 허깨비 같은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생각인 것이다.
어느 정도로 허깨비인가 하면 이광수가 쓴 ?꿈?이라는 소설 있지 않은가? 그게 사실 어느 나라, 어느 문명권에나 있는 전형적인 스토리라 하겠는데, 인도에도 그와 유사한 것이 있다. 인도의 고대 문헌 중의 하나인 ?맛스야 뿌라나?(Matsya Purāṇa)라는 책에 성자 브야사(Vyāsa)의 입을 통해 진술되고 있는 나라다 설화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춘향전, 홍길동전을 모르면 한국 사람이 아닌 것처럼, 인도 사람이라면 어린 시절부터 친숙하게 들어 누구나 알고 있는 그런 대중적인 이야기이다.
옛날에 나라다라고 하는, 고행을 아주 열심히 닦는 성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도를 부지런히 닦아도 물거품 같은 인생의 비밀을 도대체 캘 수가 없었던가 보다. 그래서 마침내 비쉬누(Viṣṇu)신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다. 나라다가 “도대체 인생살이의 요체가 무엇입니까?” 라고 묻자 비쉬누신은 이렇게 되묻는다 : “내가 가르쳐 주게 되면 너는 놀래서 나자빠질텐데 ... 그래도 알고 싶으냐?” 이렇게 시작되는 나라다 설화가 전달하려는 핵심 내용은 이 세상 전체는 마야의 변형된 모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 설화는 인도 사람들이 인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주목할 만한 조망을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설화의 원조 격인 ?맛스야 뿌라나?를 보면 이 나라다 이야기는 은자 브야사가 일단의 성자들로부터 비쉬누의 마야의 종지를 알려 달라는 요청을 받고서 그들에게 암송해 주는 전설적인 이야기 속에 나온다. 그 전설의 주인공은 까마다마나(Kamadamana)라는 왕자인데, 엄격한 금욕과 고행을 실천하면서 독신을 고집했던 모양이다. 부왕은 아들에게 제발 결혼하라고 설득했고, 이런 독촉이 계속되었지만 왕자는 세속적인 삶이란 부질없는 것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행동 노선을 결코 굽히지 않을 것임을 고집했다. 부왕과의 길고 긴 마라톤 대담에서 왕자는 전생 어느 때인가 자신이 숫따빠스(Sutapas)라는 고행자로 있을 무렵에 가졌던 비쉬누신의 친견담을 이야기한다. 그에 따르면, 그때 그는 고행자로서 그리고 비쉬누의 열렬한 귀의자로 살았으며, 마침내 신의 은총을 입어 비쉬누를 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신은 그때 “네 소원을 말해 보거라.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마!” 라고 약속했고, 그는 마야의 지혜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신은 그것을 알아서 뭘 어쩌겠다는 것이냐고 하면서 대신 재산, 명예, 건강, 후손 등등과 같은 세속적인 모든 것을 누리게 해주겠노라고 제의했다. 그러나 숫타파스는 자신은 바로 그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고 그것들로부터 초탈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한말씀을 재차 청했다. 그러자 비쉬누신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아무도 나의 마야를 이해할 수 없다. 일찍이 그것을 이해한 자는 하나도 없었다. 그 종지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주 오랜 옛날 나라다라고 하는 신에 가까운 거룩한 선지자가 살았는데, 그는 브라흐만 신 자신의 직계손이었으며, 내게 귀의하는 열렬한 신앙으로 가득차 있었다. ...”
이렇게 해서 나라다의 이야기가 비쉬누신의 입을 통해서 서술되게 되는 것이다. 석가모니를 주인공으로 해서 형상화된 팔상도의 경우처럼, 이 나라다 설화는 인도의 신화, 예술에서 주된 소재가 되어 그림 혹은 조각품으로 형상화되어 왔다. 그런데 19세기 인도에 라마크리쉬나(Ramakrishna)라는 성자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광수의 ?꿈?이 ?삼국유사?에 나온 편조의 꿈을 소설로 각색해서 꾸민 것이라고 하듯이 이 사람은 인도 사람 머리 속에 있는 나라다 성자 이야기를 몇 막, 몇 장의 희곡으로 각색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전통적인 설화를 재료로 해서 보다 대중적인 형식의 이야기를 쓴 것인데, 거기에서도 주인공은 여전히 전형적인 참배자 나라다이다. 이 이야기를 우선 소개하고, 이어 그렇다면 왜 굳이 석가모니의 일생을 이런 식으로 정형화해서 우리가 공부를 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따로 살펴보도록 하자.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팔상도라는 것도 크게 보면 인도의 전통 문화 속에서 우러나온 그런 이야기라는 것, 그러나 비슷하지만 동시에 각 종교 전통에 따라 차이를 갖는 인도 사람들의 세계관은 각 종교전통내에 전승되어 온 그림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나라다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마침 ?인도의 신화와 예술?이라는 책에 이 부분이 번역 수록되어 있다.
“끈질긴 고행과 헌신적인 관행들을 통하여 그는 비쉬누의 은총을 얻었다. 신은 암자에 있는 성자 앞에 나타나 그에게 소원을 성취시켜 주겠노라 허락하였다. “제게 당신의 마야의 주술적인 힘을 보여 주십시오.” 라고 나라다는 기구했고, 신도 대답했다. “좋다 나와 함께 가자꾸나.” 그러나 그의 아리땁게 굽은 입술가엔 애매한 웃음을 또 다시 머금고 있었다.
햇빛과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은자의 작은 숲, 유쾌한 그늘로부터 비쉬누는 나라다를 이끌고 무자비하게 작렬하는 뜨거운 태양 하에 금속처럼 이글이글 빛나는 불모의 광활한 육지를 횡단하였다. 그 둘은 이내 심한 갈증을 느꼈다. 눈부신 빛 속에서 그들은 저 멀리 작은 마을의 초가지붕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비쉬누가 부탁하였다. “저곳에 가서 물좀 구해다 주겠니?” “여부가 있겠습니까? 주님!” 하고 성자는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멀리 있는 오두막집들을 향해 달려갔다. 신은 벼랑의 그늘 밑에서 쉬며,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나라다는 작은 마을에 도착하자 첫 번째 대문을 두드렸다. 아리따운 소녀가 그에게 문을 열어 주자, 그 성자는 그가 그때까지 결코 꿈에도 그려보지 못했던 어떤 것을 체험하였다. 황홀하게 사로잡는 소녀의 눈 때문이었다. 소녀의 눈은 그의 신령한 주와 친구의 눈과 닮은 데가 있었다. 그는 우두커니 서서 넋을 잃은 채 바라볼 따름이었다. 무엇 하러 왔는지를 그는 깜빡 잊고 말았다. 유순하고 꾸밈없는 소녀는 그를 반기며 맞았다. 그 소녀의 목소리는 나라다의 목을 낚아 챈 금올가미였다. 마치 환상 가운데서 움직이는 것처럼 그는 대문을 들어섰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나라다를 존경해 마지않았으며, 조금도 스스러움이 없었다. 한 사람의 성자로서 고귀한 영접을 받았으나, 어쨌든 낯선 사람으로서 영접을 받은 것은 아니다. 차라리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오랜 덕망 있는 친구로서 영접을 받았다고 나 해야 할 것이다. 나라다는 그들의 유쾌하고 고상한 거동에 감격하여 그들과 함께 머무르며 아주 편안한 느낌을 가졌다. 아무도 그에게 무엇 때문에 왔는지를 묻지 아니하였다. ... ”
무슨 얘기냐 하면 아무도 이방인인 그에게 무엇 때문에 왔느냐고, 왜 거기에 있느냐고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통 편안하다 라고 말할 때, 우리는 어떨 때 그러하다고 하는가? 사실 묻지 않을 적에 편안하지 않은가? 아무도 묻지 않으니까 마음이 편안한 것이다. 이것저것 캐묻기 시작하면 골치 아프고 불편해지기 마련이다. 나라다가 그들과 함께 머무르면서 아주 편안한 느낌을 가졌다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묻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자신도 묻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나 다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인생을 살면서도 우리는 묻지 아니한다. 그냥 뒤죽박죽 얽혀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왜 이렇게 사는지 묻는 사람은 드물다. 그것을 물으면 이제 어떻게 되는가? “Why are you here?”, “Why am I here?”, “Why are we here?” 이런 것들은 말하자면 인생에 대해서 물음표를 붙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나의 존재 의의가 어디에 있느냐?’ 라는 물음이다. 이런 질문을 할 적에 사실 철학이 시작된다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을 묻기 시작하면 이제 구도행각을 할 수밖에 없다. 숫따빠스처럼 나라다는 바로 그런 질문을 하게 된 것이고, 비쉬누에게 바로 그것을 물은 것이다. “내가 왜 여기 있느냐? 세상을 살면서도 이런 걸 묻는 사람이 없다. 그게 인생의 비밀이다. 그걸 가르쳐 달라.” 이것이 말하자면 나라다가 비쉬누에게 요청한 것이었다.
다시 텍스트로 돌아가 보자.
“ ... 아무도 그에게 무엇 때문에 왔는지를 묻지 아니하였다. 그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마치 그 가족에 속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그는 부친에게 그 소녀와의 결혼을 허락해 줄 것을 청했다. 그것은 그 집안 사람 모두가 기대하고 있던 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그 가족의 일원이 되었고, 가족들과 함께 소농가정의 오랜 걱정과 단순한 기쁨을 나누었다.
1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는 세 자녀를 두었다. 장인이 돌아가시자 집안의 가장이 되었고, 재산을 물려받았다. 재산을 받아서 그것을 관장하고 가축을 기르고 밭을 경작하였다. 12번째 해의 장마철은 유난히도 격심했다. 냇물이 불고 억수 같은 물줄기가 언덕을 타고 쏟아져 내렸으며, 그 작은 마을은 갑작스런 홍수로 물 속에 잠기게 되었다. 야밤중에 초가집과 가축들이 휩쓸려 가고 모두들 물난리를 피해 도망쳤다.
한 손으로 자기의 처를 부축하고, 다른 손으로는 두 자녀를 이끌고, 작은 녀석은 어깨에 무등 태우고 나라다는 황망히 길을 나섰다. 칠흙같은 어두움을 헤치고 휘몰아치는 비를 맞으며 앞으로 나아가면서 미끄러운 진창을 간신히 빠져 나와 소용돌이치는 물살을 비틀거리며 헤쳐 나갔다. 그를 내리누르는 멍에는 그의 다릿가에서 무겁게 훼방하고 있는 물줄기를 감당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가 비틀거리자 마자 어깨에 무등태우고가던 어린아이가 미끄러지면서 노호하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필사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나라다는 큰 녀석에게 작은 아이를 붙잡으라고 소리쳤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 동안에 큰물이 닥쳐 다른 두 아이들을 쓸어 갔고, 그가 그런 불행을 미쳐 깨닫기도 전에 그의 옆에 있던 처를 떼어 갔으며, 그 자신은 급류에 발이 휩쓸려 통나무처럼 곤두박질하다 처박혔다. 무의식중에 나라다는 해안가 작은 벼랑에 좌초하고 말았다. 의식이 돌아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에는 온통 흙탕물만이 보였다. 그는 하염없이 울었다.
바로 그 때 “얘야!” 라고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심장은 거의 멎을 것 같았다. “네가 나를 위해 가지러 갔던 물은 어디 두었느냐? 반시간이 넘도록 너를 줄곧 기다리고 있었느니라” 나라다는 뒤를 둘러보았다. 물 대신에 한나절의 태양이 비취는 환한 사막이 눈에 비쳤다. 그는 그의 신이 어깨 맞은 편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
그러니까 나라다가 경험한 12년이란 장구한 세월은 비쉬누신에게는 반시간도 채 되지 않는 그런 짧은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무슨 말인지를 알려면 힌두교의 비쉬누 세계창조설과 그들의 시간관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앞서 도솔천을 설명하는 도중 인도인들의 광대무변한 세계관을 거론하면서 잠시 언급했지만 인도인들의 관념에 따르면 세계는 생성과 괴멸의 과정을 되풀이한다. 그리고 다수의 생존영역, 삶의 공간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다수의 시간축이 존재한다.
인도인의 시간관
고전문헌 ?비쉬누 뿌라나?에 나오는 우주의 창조와 주기적 변화에 관한 신화를 기본으로 해서 힌두교 전통에서는 세계의 생성과 괴멸의 과정을, 정신(puruṣa)과 물질(prakṛti) 그리고 이 양자를 결합시키고 분리시키는 시간(kāla)이라고 하는 이 삼자의 형태로 존재하면서 동시에 이 세 가지 것을 가지고 우주의 창조와 유지, 파괴의 활동을 이어가는 최고의 신, 비쉬누의 유희, 즉 장난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주의 태동은 최고신인 비쉬누가 정신과 물질을 자극하여 그 원초적 균형 상태를 깨뜨림으로써 시작된다고 하는데, 태초의 물질로부터 우주의 진화가 이루어지면 그것으로부터 전개되어 나온 여러 요소들이 결합하여 하나의 거대한 알과 같은 덩어리를 형성하여 물위에 떠 있게 된다고 한다. 이때 비쉬누는 브라흐마의 형태로 화신 하여 이 우주적 알 속에 들어가 하늘과 땅과 공중권을 창조하며, 여러 신들과 생명체들을 그곳에 살게 한다. 이런 맥락에서 힌두전통에서는 브라흐마신을 창조신으로 봅니다. 그리고 이 우주의 전체적인 그림은 앞서 브라흐마 안다를 중심으로 우주의 구조를 설명할 때 언급한 바와 같다. 이렇게 해서 마련된 우주에서 그는 우주의 유지자인 비쉬누로서 우주를 유지하다가, 때가 오면 우주의 파괴자인 루드라로서 변신하여 우주를 불로써 파괴한다. 그리고 비를 내려 온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대양으로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비쉬누는 이 대양위에 있는 쉐사(Śeṣa)라고 부르는 거대한 뱀등에 올라타고서 밤의 수면과 휴식의 상태에 들어갑니다. 비쉬누신이 잠들어 있는 이 우주의 밤이 낮과 같은 길이로 진행된다. 이러한 우주의 밤이 끝나면 비쉬누는 깨어나 브라흐마 신으로서 세계를 다시 창조하고, 브라흐마 신의 낮이 다시 시작된다. 이상과 같은 브라흐마신의 낮과 밤은 360일 100년간이나 계속되어 반복된다고 하며, 이 기간이 끝나면 시간과 물질과 정신은 무한한 비쉬누 안으로 흡수되어 비쉬누신만이 홀로 남게 되며, 그가 다시 유희를 시작하면 전 과정이 다시 되풀이된다고 한다.
이러한 주기적 변화의 과정에서 하나의 단위 세계가 한번 생성해서 괴멸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을 인도인들은 마하유가(mahāyuga)라고 부르는데, 줄여서 그냥 유가라고도 하며, 마하유가의 길이가 어느 정도인고 하니 인간계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432만년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것만하더라도 거의 무한, 영원에 가까운 시간인 셈인데, 그렇지만 이 기간은 신계(神界)의 시간으로 보면 그 1/360, 즉 12,000년에 해당할 뿐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각 존재에 따라 작동하는 시간계가 상이하다는 것이다. 인간계의 1년이 신계의 시간으로 보면 고작해야 하루가 된다. 다수의 시간축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마하유가라는 주기를 기본으로 해서 세계는 생성과 괴멸의 과정을 무한 반복하게 된다. 겁(劫)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줄로 안다. 유가보다 한 단계 높은 시간 단위인데, 산스끄리트어로는 깔빠(kalpa)라고 그런다. 마하유가가 천번 반복되는 시기가 1 깔빠에 해당한다고 하니까 인간계의 시간으로 하면 1 깔빠는 4,320,000 x 1,000년에 해당하는 기간인 셈이다. 이 어마어마한 기간이 그런데 비쉬누의 화신, 창조신 브라흐마에게는 고작해야 그의 하루 낮동안에 해당한다. 낮과 같은 길이의 밤이 있고 1년 360일하여 100년동안 브라흐마신에 의한 우주 창조가 반복된다고 했으니까, 우주가 크게 한번 대순환을 하는데 걸리는 기간은 인간계의 시간으로 따지면 4,320,000 x 1,000 x 2 x 360 x 100 = 311,040,000,000,000이 됩지만, 아마 이 311조년이라는 기간은 상상조차 안 될 것이다.
이제 이런 맥락을 염두에 두고 보면, “반시간이 넘도록 너를 줄곧 기다렸다”는 비쉬누의 말이 이해가 될 것이다. 나라다의 12년이라는 것이 인간계의 43억 2천만년을 하루 낮으로 갖는 비쉬누의 시간축으로 보면 얼마만큼 짧은 시간일 것인지는 금방 알 수 있지 않은가.
이왕 유가, 깔빠 얘기가 나왔으니까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하나의 세계가 생성되어 괴멸되는 세계의 주기를 앞서 마하유가라 한다고 했는데, 이는 다시 4단계로 세분화된다. 그 각각을 끄리따(Kṛta) 유가, 뜨레따(Treta) 유가, 드바빠라(Dvāpara) 유가, 깔리(Kali) 유가라고 부른다. 마하유가, 그러니까 대(大)유가와 비교해서 이들을 소(小)유가라고 부릅니다. 이들 용어는 인도인의 주사위 놀이에서 취한 것이라고 하는데, 희랍과 로마 전통의 금, 은, 동, 철의 네 시대에 비교될 수 있는 그런 성격의 것이다. 이 네 시기들은 불가역적으로 진행되며 처음에는 조화로웠다가 후대로 갈수록 타락하여 혼란이 극심해진다고 한다. 그 길이 역시 뒤로 갈수록 줄어든다고 하는데, 깔리 유가가 신계의 시간을 기준으로 하여 1,200년에 해당한다고 본다면, 드바빠라, 뜨레따, 끄리따는 각기 그 배수를 더하여 2,400년, 3,600년, 4,800년 이렇게 된다. 맨 처음의 끄리따 유가를 1(4/4)로 보고서 나머지 소유가들의 길이를 환산하면 그것의 3/4, 2/4, 1/4에 해당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이 모두를 합한 마하유가는 깔리 유가의 10배에 해당하는 기간이 됩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10이라는 수가 전부 혹은 완전수로 받아들여지듯이, 어느 문화권에나 특정 수를 특정한 관념에 연관시켜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인도인의 관념에 따르면 전부 혹은 전체라는 관념은 4라는 수와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완전하고 자족적인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4/4 등분을 소유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제 수에 대한 인도인들의 이러한 관념을 알고 있으면, 4개의 소유가 기의 특징, 그리고 질서로부터의 점진적인 타락이라는 관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1기인 끄리따 유가는 4/4인 유가, 즉 완전한 유가이다. 이 시기는 황금시대로서, 다르마(dharma), 즉 세계의 도덕적 질서에 의해 확고하게 지탱되는, 그래서 정의가 완전히 실현된 그런 이상적인 시대이다. 이 시기에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 효력을 온전하게 발휘하며, 모든 존재들이 덕스럽게 태어나고, 그 수명 역시 장구하다고 한다. 그러나 생명체들의 생활 과정은 곧 이어 타성에 젖어 들게 되고, 그에 따라 질서는 점차 흔들리게 된다. 그래서 후대로 갈수록 세계는 점차로 악화되기 마련이다. 끄리따 유가기에 온전히 실현되었던 다르마는 그 다음의 뜨레따기에는 3/4, 드바빠라기에는 2/4 정도로 줄어들었다가 그 1/4 정도의 잔존기 상태인 말세, 즉 깔리 유가의 시기를 거쳐 마침내 암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 4개의 소유가들을 경과하는 동안 인간 사회에는 온갖 불법이 점점 더 증가하여 혼란스러워지며, 그에 따라 그 수명 역시 단축되게 되는데, 끄리따 시기에 4천년이던 인간의 수명은 점차로 줄어들어 부처님이 탄생하실 즈음에는 100년 정도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니까 황금시대, 은시대, 동시대, 철시대 등의 구분에서처럼 이 세상이 예전에는 아주 황금처럼 좋았다가 타락하여 말세가 되었노라는 생각이 여기에도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것이다.
나라다의 설화는 전부다 세계의 마지막 단계인 깔리 유가 시대의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깔리 유가는 어느 한 시대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하유가의 진행 과정 중에 말세가 되었을 때를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세계의 마하유가를 기준으로 볼 때 기원전 3,102년 12월 18일 금요일에 깔리 유가가 시작된 것으로 계산된다고 하니까, 지금도 우리 그 깔리 유가, 즉 말세 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제 다시 텍스트로 돌아가 마지막 부분을 읽어 보기로 하자.
“... 그는 그의 신이 어깨 맞은 편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넋을 빼앗는 입가의 몰인정한 곡선들은 여전히 미소를 띄우고 있었으며, 부드러운 질문을 하기 위해 벌리어졌다. “내가 이야기한 마야의 비밀을 너는 이제 이해하였는가?””
설화에서는 12년을 산 나라다의 인생을 마야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80년을 산 부처님의 인생도 결국 마야가 아니겠는가? 아마 이런 질문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두 가지 해답이 있으니 그렇다는 설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설도 있다.
불교와 힌두교가 똑같이 인도에서 태어났어도 그 둘은 상당히 다르다. 마야라고 하는 것이 인도의 정통 종교, 힌두교의 종지라면, 마야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 소위 불교이고 비정통종교들이다. 인도에서는 정통 사상을 보통 아스띠까(āstika), 비정통을 나스띠까(nāstika) 이렇게 부른다. 여기에서 아스띠란 있다라는 뜻이고, 나스띠는 그것의 부정이다. 모든 지혜는 베다(Veda) 문헌의 계시 속에, ?뿌라나? 등과 같은 힌두 전승의 문헌에 이미 다 들어 있다 라고 믿는 것이 아스띠까라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 불교, 자이나교 등과 같은 비정통사상, 즉 나스띠까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불교는 인도인의 종족적인 관념으로부터 벗어나서 소위 세계 종교로 될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하나의 의미
불교의 종지를 말할 때 흔히 삼법인(三法印)이라는 것을 거론한다. 아마 누구라도 한번쯤은 들어보았음직한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가 바로 그것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런 말이 되겠다: 모든 것이란 변화한다, 이 세상에 영원히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이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것으로 생각하고 집착하는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통이 따른다. 이 세 가지를 기본적인 통찰로 갖는 불교의 정신은 사실, 다양성으로 특징 지워지는 변화무쌍한 현상계를 마야로 규정하면서 동시에 그 현상계를 초월하여 언제나 항상 변화하지 않는 모습으로 온전하게 있는 하나로서의 브라흐만, 아뜨만을 내세우는 힌두교의 그것과는 전적으로 반대가 된다 할 것이다. 후자가 변화하지 않는 것이 있음을 주장하는 반면에, 불교는 무상이니 무아이니 해서 그것을 철저하게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니까 이제 역사적인 실존 인물로서 매순간마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인생의 고민이 여기에 들어 있게 된다. 이 세상이, 나의 인생이 마야라고 보는 나라다의 경우에는 뭔가 결단을 내리고, 무슨 전쟁터에 나가서 영웅이 되고, 미술 작품을 그려서 국전에 일등하고 하는 이 모든 것이 전부 다 쓸데없는 것이 된다. 그런데 그 철학을 벗어나게 되면 이제 어떻게 되는가? 하나하나의 순간이 그저 물거품이 아니라 다 의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러나 그냥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매순간순간이 의미가 있으되,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고통이라는 괴로움에 낙인찍힌 것으로 보여진다는 것, 바로 그것이 불교의 출발점이다. 태어남이 괴롭고 병들고 늙고 죽는 것이 괴롭다, 모든 것이 괴롭다, 이렇게 불교는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까 어떤 사람들은 불교에다 무슨 염세 철학이라는 딱지를 붙이려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불교는 괴롭다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성제(四聖諦)라는 도식에 훌륭하게 정리되어 있듯이, 삶을 괴로움으로 진단한[苦聖諦] 불교는 더불어 그것의 원인과 그것의 소멸과 소멸에로 이끄는 방법으로서의 고집성제(苦集聖諦), 고멸성제(苦滅聖諦), 고멸도적성제(苦滅道跡聖諦)를 말한다. 따라서 괴로움이 소멸된 경지로서의 열반을 말하고 그것에 이르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한, 불교는 단순히 염세적인 그런 철학이 아니다. 열반에 들었다, 도를 이루었다, 이랬을 적에 그가 누리는 경지는 괴로움이 아니다. 집안이라든지 국가라든지 사회라든지 자기가 만들어 놓은 그 어떤 울타리 속에 안주해 버리면 인생 자체가 괴로움이지만, 그러나 그것을 일단 벗어나면 즐거움, 기쁨, 행복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불교를 쾌락주의 혹은 탐미주의로 규정하기도 한다.
사실 염세주의니 쾌락주의니 하는 딱지는 요즈음에만 붙여지는 것은 아니라, 아주 오래 전 이미 불교가 태동하던 시기에서부터 이런 비판이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초기 불전을 보면 석가모니 생존시에도 그런 비판이 분분히 제기되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두 가지 측면을 종합해서, 불교는 초기에는 인생에 대해 괴롭다는 진단을 내리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난 기쁨의 소식을 전하는 그런 종교요, 철학이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제 부처의 가르침이 뭐냐, 불교 철학의 진수가 뭐냐 라고 우리는 물을 수 있다. 부처의 가르침이라고 할 때 그걸 어디 한마디로 얘기해 봐라 그러면, 이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인생은 괴로움인데,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자. 사실 석가모니가 평생을 두고 얘기한 것은 괴로운 현상, 불만족스러운 현상, 참 기분 나쁜 이런 현상들을 그것 그대로 직시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에 관한 것이었다.
공자님한테도 증자라는 제자가 있었다. 언젠가 제자들 앞에서 공자님은 “나의 도는 하나로 꿰뚫었느니라”(吾道 一以貫之)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대부분은 그 수수께끼 같은 말의 뜻을 못 알아들었던가 보다. 그래서 선생이 퇴장한 뒤에 대중이 증자를 붙들고 물었다 : “좀전 그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이요?” 그런데 증자는 유교의 핵심 정신인 인(仁)을 야기하지 않고, “夫子之道, 忠恕而已矣.”라고 해서 충서(忠恕) 두 자를 거론했다고 한다. 알다시피 충(忠)은 마음 심(心)과 가운데 중(中)자가 결합되어 이루어진 글자이다. 그리고 서(恕)는 마음 심에 같을 여(如)자가 결합된 것이다. 그러니까 이를 통해서 보면 자기자신에게 충실하는 것, 그리고 남의 마음도 자기 마음과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이 공자님의 철학이라는 말이 되겠다. 자기자신에게 충실하되 동시에 내가 괴로우면 남도 괴롭고 남이 괴로우면 자기도 괴롭고 남이 기쁘면 자기도 기쁘고 하는 그런 것처럼 남도 나와 같이 대한다는 것으로서 증자는 충서라는 개념을 여기에 끌어들여 스승의 철학을 압축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그랬더니 공자가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듣고 “아! 니가 정말 내 속을 잘 알았다.” 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부처님한테 ‘당신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이라고 물었다면, 그 분은 뭐라고 답변했을까? 초기 경전을 보면 실제로 이런 질문이 그분에게 던져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때 그는 뭐라고 말했을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 “나는 과거에도 지금도 고와 고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가르칠 따름이다.” 공자님이 그랬듯이, 석가모니도 자기는 오직 하나만을 가르친다 이런 얘기이다. 그러니까 나라다처럼 “이 세상은 허깨비다” 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은 괴롭지만, 그러나 그것을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 바로 그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을 내가 가르쳐 주겠다.” 이런 이야기가 되겠다. 일미관행(一味觀行)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일미(一味), 즉 한가지 맛이란 다름 아닌 고와 해탈의 맛을 말하는 것이다.
싯다르타의 탄생과 출가의 계기
싯다르타가 룸비니에서 태어날 적에 경전에 보면 어머니 마야 부인이 무우수(無憂樹)라는 나무를 붙잡고서 바른 곳이 아닌 옆구리로 출산을 했다고 하는데, 그런 일은 사실 있을 수가 없는 것이고 아마 정상적인 분만이 아닌 그런 경우였던 것 같다. 아마도 난산을 했기 때문에 허깨비 마야 부인은 일주일만에 돌아가셨을 것이다. 그런데 정반왕은 마야 부인의 여동생, 말하자면 처제를 다시 부인으로 맞았다. 실은 욕심이 많아서거나 부도덕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당시에는 아마 그게 풍습이었던가 모양이다. 하여튼 싯다르타는 이모 손에서 컸는데, 아마 병약했던 모양이다. 이모는 들어와서 이복동생을 나았으니 싯다르타는 에미 사랑없이 자라난 아이였던 것 같다.
그래도 뼈대있는 집안의 아기라고 아지타라는 점쟁이를 불러 이 녀석이 뭐가 될꼬 하고 점을 쳤다. 그런데 그 점쟁이가 하는 말이 “이 아기는 나중에 커서 성왕이 되지 않으면 성자가 된다” 라고 예언을 했다고 한다. 슛도다나왕을 이어 훌륭한 임금님, 통치자가 되거나, 아니면 점쟁이가 된다 이런 이야기이다.
당시 인도 사회는 후대에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꽉 짜여진 카스트로써 정형화된 것은 아직 아니었지만, 네 가지 종성 제도에 따른 사회 직분이 있었다. 그런데 그 종성 제도가 갖는 세 가지 사회적 특징이 뭐냐 하면, 첫째 아버지의 직업을 잇는 것, 둘째 다른 종성과는, 특히 하위 종성과는 결혼하지 않는 것, 셋째 다른 종성과는 같은 밥상에 앉아 밥도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성 제도를 두고 흔히 인도 사회의 질곡이라 그러는데, 말하자면 완전히 남아연방의 ‘인종분리(segregation)’같은 것이다. 이 종성 제도에 따르면 왕의 자식이라면 왕이 되는 것, 바로 이것이 자신의 사회적 직분,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태자로 태어난 싯다르타가 성자가 된다는 것은 왕되기를 포기하고 딴짓한다는 말 아닌가.
따라서 부왕으로서는 자식이 딴 생각을, 딴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관습적인 제도를 충실히 따르는 아버지로서는 자식을 왕자로 키우기 위해 일체의 바깥 세상살이를 보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결국 엄청나게 고생하고 태어난 친구가 아주 유복한 환경 속에서 그야말로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고 자라나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소위 인생의 비밀을 전혀 깨닫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스물 아홉이 될 때까지 말이다. 그때까지 궁중의 호화롭고 안락한 분위기 속에서 지냈으며, 야소다라라는 아리따운 처녀한테 장가까지 들었고, 그 사이에서 라훌라라는 아들도 보았다.
그러다가 인생의 찬맛, 뜨거운 맛을 가르쳐 주는 이가 등장하게 된다. 그이는 임금님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의 시종인 마부(馬夫), 즉 말몰이꾼이었다. 인도 설화에서는 주로 그런 유형의 인물이 그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왜 춘향전에 나오는 방자같은 친구와 비슷하다. 그래 어느 날 동문으로 세상 구경을 나갔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눈물이 쭐쭐 나오고 허리가 꼬부라지고 머리가 허옇게 되어서 쭈그렁 밤송이가 된 이상한 것이 길가에 엎어져 있었다. 이때까지 궁성이라는 온실속에서만 자라면서 그런 인간을 전혀 보지 못했던 태자는 마부에게 “이것은 무엇이냐?” 라고 물었다. 그러자 마부는 “이것은 거시기, 물건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노인이라고 해서, 늙어서 그런 꼴이 된 것입니다.” 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러니까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어? 가만! 나도 사람인데 ... 그러면 나도 나중에 이렇게 되는 것이냐?” 라고 물었다. 그러니까 그 방자같은 마부 찬다카가 ‘너라고 별 수 있간디? 너도 늙으면 저 꼴 되는 거야 임마!’ 하고 한방 먹였다. 이것이 태자에게는 엄청난 쇼크였다.
유복한 환경에 태어나면 인생의 뜨거운 맛, 찬 맛을 모르지 않는가.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리고 인생살이를 가르치는 이야기로서 사문유관 부분이 팔상도에 설정되었던 것 같다. 잠시 앞으로 되돌아가 보자. 불전 설화에 따르면 싯다르타는 온천지가 진동하는 가운데 어머니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는데, 태어나자 마자 곧 바로 서서 양손으로 땅과 하늘을 가리키며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惟我獨尊)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온 세상에서 자기만이 존귀하다 그런 뜻이라지만, 문자속은 둘째치고 갓 태어난 아기가 똑바로 서서 말을 했다는 것은 도대체 믿어지지 않은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어쨌든 비람강생에 대해서는 대충 이런 식의 묘사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억지 소리를 하는 것일까? 독일 말로는 분다킨트(Wunder-kind)라고 소위 위인이라고 하는 인물이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정상적으로 태어났다고 해보자. 어떻겠는가? 모르긴 해도 아마 별 맛이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그 탄생의 과정이 각색이 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석가모니의 탄생 이야기 역시 인도의 전통적인 신화적 관념을 개입시켜 각색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작품이 바로 두 번째의 비람강생이다. 다음으로 이제 좀전에 동문으로 나가 꼬부랑 노인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시발로 해서 인생의 비밀을 알린다는 것을 세 번째의 사문유관으로 각색하게 된다.
성년의 태자, 싯다르타는 어느 날 시종 찬다카와 더불어 성문 밖을 거닐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첫날에는 동문으로 나가 노인을 보고, 이어 남, 서문을 나서 병자와 시체를 보았다고 한다. 그 때마다 사람이면 누구나 겪어야 할 필연적인 사태, 즉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인도에서는 부자나 되어야 화장을 하고 그러지, 대부분은 갠지스강에다가 그냥 던져 버리고 그것도 돈이 든다고 해서 그냥 갖다 버리는 경우도 태반이다. 우리 나라도 한때는 신당동 주변에 광희문 곧 시구문이라고 해서 시체 내보내는 곳이 있었다고 한다. 아마 당시 인도에서는 서쪽 문에 그런 곳이 있었던 가 보다. 시체를 내다 버리면 이제 어떻게 되겠는가? 인도라는 그 뜨거운 열탕에 부풀어서 썩어 가면서 독수리한테 쪼아 먹히기도 하고 승냥이가 와서 뜯어 먹기도 하고,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결국 백골이 된다. 그런 냄새나는 시체더미속에서 썩어 문드러져 가는 시체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런 정말 못 볼 것을 본 다음 며칠이 지나고, 이제 마지막으로 북문을 나서게 된다. 북쪽 성문을 나서자 우람한 수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숲속으로 난 오솔길로 그 때 덥수룩한 머리에 다 해진 누더기를 걸친 사람이 하나 걸어오고 있었다. 옷은 비록 남루하지만 걸음걸이는 의젓했고 얼굴은 환히 빛나 거룩한 기품이 감돌며 눈매가 빛났다. 그래서 수레에서 내려 묻는다 : “당신은 누구요?” “나는 떠돌이 중인디 ... 왜 그런 것을 묻소?” “아~ 차림새는 비록 남루하지만, 참 기품이 있어 보여서요. 방금 떠돌이 중이라고 했는데 그런 꼴로 다니면서 뭘 합니까?” “아 그게 먼고 하니 ...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이게 누구나 다 그렇지 않소? 바로 그 생노병사를 초탈해서 자유를 얻으려고 이렇게 집을 나와 떠돌아 다니는 것이오.” “얼마 전에 저도 참 못 볼 것을 보고 마음이 심난했는데, 아니 생노병사를 벗어나는 일이 정말 가능하단 말씀이요?” “하먼 그렇고 말고요. 나도 옛날에 참 쓴맛 단맛 다 봤다 아닙니까? 그러다가 세상 모든 것이 덧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단 말입니다. 그래서 부모 형제 다 버리고 집을 떠나 이리저리 떠돌면서 그것을 벗어나려고 도를 닦았습니다. 이제 어언 그 길에 이르러 평안을 얻어부렀당께요. 믿어지지 않으면 당신도 한 번 직접 해보지 그라요?”
다소간 우스꽝스런 묘사를 했지만, 이제 이렇게 출가 사문을 만나는 것으로 사문유관은 끝이난다. 아니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깊이 들여다 보면 사실 시작인 셈이다. 비람강생이라는 것이 분다킨트에 대한 이야기라면, 사문유관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뒤 이어 성을 훌쩍 넘어 가출을 했다 하는 유성출가(逾城出家) 부분이 등장하는데,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사문유관은 바로 이 가출, 집떠남, 출가의 동기를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이야기가 된다. 다시 말해서 싯다르타의 출가와 그 이후 여정이란 단순히 집을 떠나 유랑하는, 그러니까 이것저것 골치 아프니까 배낭 하나 달랑 메고 훌쩍 집을 나가 세상을 떠돌이로 산다는 그런 것으로서가 아니라, 문제 풀이를 위한 위대한 결단으로서의 출가 그리고 그 문제 풀이의 과정으로서의 수도자의 삶이었다는 점을 암시하는 전초 작업으로서 이런 단계를 설정해 놓게 된 것이다.
출가! 인생의 진실을 탐구하러 구들장을 걷어차고 일어서는 결의! 그런 출가의 결의는 어디서부터 오는가? 질문을 던지면 그 질문 속에 이미 해답이 어느 정도 들어 있다. 바로 이 출가의 동기를 바르게 깨달아야 그 결과로서 마지막에 얻게 되었다는 깨달음의 내용을 인식할 수 있다. 6년 수도 끝에 성도, 도를 이루었다라고 하는데, 그 성도의 내용은 실제로 그 출발로서의 출가의 동기 속에 이미 암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 점을 알아보기 위해 사문유관속에 나타난 고(苦)라는 현상에 싯다르타의 반응이 어떠했을까를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처음 반응은 어떠했고, 나중 반응은 어떠했으며, 결국은 어떤 식으로다가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을까?
석가모니는 29살에 토끼 같은 마누라, 떡두거비 같은 아들을 팽개치고 가출, 출가를 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일종의 문화적인 충격에서 기인된 것이다. 그런 충격을 받았을 적에 우리들은 대체로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이런 상황에서 보통 사람들이 보일 수 있는 반응은 생각건대 대략 네 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미리 말하자면 석가모니는 네 가지 중에서 어느 하나도 마땅치 않게 여기고 취하지 않았는데, 그의 이런 태도가 바로 나중에 중도(中道)라는 철학 체계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럼 이제 이야기의 초점을 싯타르타의 사문유관으로 돌려서 그 네 가지 반응에 대해서 점검을 해보도록 하자.
사문유관에서 보이는 싯다르타의 삶에 대한 태도
동문을 나서 늙은이를 본 태자는 처음에는 위축되고 자기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사시나무 떨듯 쓰러지면서 마부 찬다카의 발 밑에 바짝 꿇어 엎드려 버린 것이다. 이게 첫 번째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범인들이 인생의 진실, 인생의 비밀에 직면했을 적에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리라. 엄청난 재난이나 참을 수 없는 고통은 인간으로 하여금 쪼그라들어서 사시나무 떨듯 하나의 가련한 짐승으로 변하게 만들어 버린다. 인생살이가 고뇌라는 이 엄청난 진실에 직면하게 되면, 배포가 두둑하지 못하고 간이 작은 인생은 매일 밤 가위눌림 속에서 허우적대기 일쑤이고, 그러다가 스러져가는 것이다. 고뇌와 고통 속에서 인생의 꽃을 채 피워 보지도 못하고 스러져간 생명들이 얼마나 많은가. 충격이 너무 크면 그냥 스러지는 것이다. 파스칼 얘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야말로 이슬과 같은 그런 신세가 되는 것이다. 햇빛이 비치면 너무 세니까 그냥 스러져 버리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망각과 도피, 즉 잊어버리고 피하려는 태도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을 도피 메커니즘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싯다르타도 궁성의 안락으로 몸을 숨기려고 했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뇌와 재난에 반응하는 양식은 그 고뇌를 잠시 잊고 보자는 것이겠다. 술과 마약으로 고통을 잠시 잊는다거나, 멍청히 텔레비전 오락물에 취한다거나, 노래방으로 기어 들어가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면서 인생의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어 버리자는 것이다. 3-S, 이른바 스크린의 각종 오락물, 섹스, 스포츠로 대별되는 현대 산업 사회의 환락 산업의 배경은 바로 인생을 직시하지 않고 피해 가려는 비겁자들을 위한 도피 메카니즘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임시 방편적 도피와 망각은 어차피 진실 앞에서는 시한부임이 드러난다. 그것도 어떻게 보면 정당한 반응이지만, 으레 인간으로서 그럴 수 있는 반응이지만,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반응이라기보다도 하나의 회피이다.
일단 도피해서 궁정에 들어갔던 싯타르타는 그러나 비겁자가 아니었다. 이어 병자를 보고, 주검을 보고, 마지막으로 출가 사문을 만나서 자기의 갈 길을 정했다고 하니까 말이다. 모두 어려운 결단과 선택의 결과였으리니 말하자면 용감했던 것이다. 그는 도피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줄 알았던 것이다. 흔히 인생 문제를 상담하려 들면 나이든 분들은 시간만이 해결해 준다고들 한다. “쎄고쎈게 남잔데 ... 야, 좀 기다려 봐.” 이러한 것들이 50년데 얘기였다. 어쨌든 시간을 변화의 척도로 생각하면 당연할 수도 있는 조언이다. 그러나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이런 식의, 어떻게 보면 너무도 당연할 수 있는 조언도 당장 현실의 괴로움을 잊게 하는, 현실로부터 달아나게 하는 방편으로 잘못 이용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무엇보다도 먼저 현실을 똑바로 보는 것이 중요하고, 그리고 용감하게 맞서야 한다.
도피에도 두 가지가 있다. 괴로움과 상치되는 쾌락에 탐닉하는 적극적 도피가 있을 수 있고, 우선은 현실 문제를 잊어버리고 시간을 빙자해서 무작정 미뤄 놓고 보자는 소극적 도피가 있을 수 있다. 보통 노인네들이 소극적 도피를 한다면, 젊은이들은 적극적 도피를 한다.
또한 이상한 반응이 있는데, 말하자면 마조키즘, 새디즘 이런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혹여 궁중에 들어갔던 태자가 다시 성문을 빠져나와 남의 병과 죽음을 보고 내일은 아니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남들의 고통을 몰래 들여다봄으로써 혹시 과학적 쾌감에 몸을 떨지는 않았을까? 아마 남의 고통과 재난을 보고 빤히 들여다봄으로써 스스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이런 측면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쇼크를 받고 문제에 직면했을 적에 이런 극단적인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눈을 감아 버리곤 한다. 이것이 네 번째 반응이 되겠다. 나 몰라라 눈을 옆으로 돌리고 남의 고통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것, 놀래지도 않고 위축되지도 않고 속으로 재미있어 하지도 않고 그저 쳐다만 보고 있는 것 말이다. 그냥 무덤덤하게 목석이 되는 것이니, 거기에는 사랑도 증오도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을 보면 사랑도 증오도 아닌 무관심이 마치 최고 인양 착각하고 마치 자기가 깨달은 사람이나 되는 듯이 초연해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인간은 목석이지 깨달은 사람은 결코 아니다. 칸트처럼 무관심의 관심, 뭐 이런 식으로 이런 미적 감정을 호도한 친구들도 있긴 하지만, 이런 것이 그냥 무관심, 초연한 초탈한 경지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뭔가 접하려는 것이 있어야만 와 닿는 것이 있지 않겠는가. 만약 무관심의 상태라면 좋다 나쁘다 얘기할 건더기도 없다고 생각하게 될 겁이며, 그것은 그야말로 무정한 철면피의 반응일터이다.
싯다르타는 위의 네 가지 반응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만약 보통 사람들처럼 넷중 하나를 선택했다면, 불교는 애당초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보통 사람 같은 반응을 나타내 보이지 않은 그에게 남겨진 선택은 그렇다면 무엇이었겠는가? 그로 하여금 앞으로 깨달은 자, 붓다가 되어서 새로운 철학, 새로운 종교를 창출케 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겠는가 말이다. 고통에 눌리어 위축되지도, 망연자실 놀라지도, 그저 무심히 바라보지만도 않고, 사람이면 당연히 해야 할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는 고통을 받는 남을 남으로 여기지 않고, 남의 고통을 나의 문제로 받아들여 고민하고, 그 고통을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다. 다른 어떤 심리적 메카니즘도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싯다르타가 살았던 당시 2,500년전의 인도 사회는 무관심을 마치 해탈의 징표 인양 생각하는 브라만교 철학이 정통의 자리를 굳혀 가고 있었다. 한국 불교계에도 보면 불교를 오도하는 모습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성철스님의 돈오돈수 입장이 무관심, 이 세상 나 몰라라, 뭘로 깨치기만 해라 라는 식의 함축을 깔고 있다면, 그것은 불교를 잘못 전하는, 마치 석가모니가 하나의 극단으로 지적했던 브라만교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무관심, 초탈, 초연, 이런 것이 결코 아니다. 나중에 십우도를 다룰 때 얘기하겠지만, 둥그런 이런 상이 깨달음의 상태라면 마지막에 냄새나는 생선 몇 토막 들고서 다시 저자거리로 들어가는 것, 바로 그것이 깨달음의 표현일 것이다.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란 영화가 있지 않은가. 거기에 중늙은이, 어린 중, 고승, 이렇게 세 스님이 등장한다. 사실 그 가운데 스님의 고민과 깨달음과 그 실천이 그려져 있습니다. 마지막에 논밭이 눈으로 덮혀있는 너른 세상으로 자기 어머니도 구하고, 몸 파는 누이동생을 위해 다시 나간다는 그런 장면이 있다. 그리고 중간에 보면 황소가 줄을 끌고 외양간을 빠져나갔다가 나중에는 끌지도 않는데 다시 쩔렁쩔렁 찾아 들어오는 그런 모습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모든 것을 보면 석가모니의 일생을 그리건, 황소의 수행과정을 그리건, 결국은 이 살 섞고 더불어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그런 얘기가 불교의 마지막 정점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그것은 결코 나 몰라라 하는 그런 식의 초연이 아니다. 당시 브라만들은 바로 그런 초탈을, 무관심을 해탈의 징표로 생각했다. 그들은 이 세상은 어차피 들쭉날쭉하고 나고 죽고 하는 것이니, 그것은 그림자 같은 거고 구름 같은 거고 신기루 같은 거고 물거품 같은 것이다 라고 여기고, 그것으로부터 초연해질 것을, 무관심할 것을 가르쳤던 것이다. 그리고 불교는 이를 하나의 극단으로 선언하고 취하지 말라는 충고했다.
이와는 반대로 극단의 쾌락과 극단의 고행을 마치 인생고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선전하는 자유 사상가들도 당시에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모든 문제에 의문 부호를 붙이면서 단언을 내릴 수 없다는 극단적인 회의주의자들까지도 일단의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산자야 같은 인물이 아마 거기에 해당할 것이다.
이렇듯 석가모니가 젊었을 시절 당시 인도 사회에는 해탈을 향해 나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는 여러 사상가들이 천하를 횡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고통에 억눌려서 인생을 포기한 것도, 고통을 무시하고 인생을 무관심으로 바라만 본 것도 아니었다. 두 극단적 반응을 거부한 싯다르타가 택한 길은 중도, 즉 가운데 길이었다. 가운데 길이라고 하니까 산술적으로다가 양쪽으로부터 다 떨어져서 한 가운데 있으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것은 결국 무취무색하고 어정쩡한 그런 태도를 함축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오해할 수도 있으나, 그러나 불교에서 얘기하는 중도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현실의 고통을 직시하고 동참하고 걱정하며 그 의미를 따져서 그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찾으려는 태도인 것이다. 브라만들은 이 세상이 물거품이니 초연하라고 가르쳤다고 앞서 말했는데, 그것에 연결시켜 이야기하자면 물거품 속이지만 그 속에 고통과 기쁨이 있다는 것을 같이 느끼자, 뭐 이런 것이 중도로 표현된 불교의 현실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크샤트리야 계급은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무사이다. 바로 그 전사의 후예답게 왕자 싯다르타는 생사의 문제와 용감하게 대결을 벌였다. 사문유관 시절 그에게는 아직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할 능력은 없었지만, 그러나 출발점에서 그가 취한 이런 반응은 앞으로 중도로 압축되는 그의 철학의 앞날을 밝히는 서광으로 작용했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苦와 쑨야(śūnya)
지금까지 생로병사라는 인생의 문제를 놓고서 싯다르타가 고민을 했던 것을 네 가지 심리적인 반응을 곁들여서 얘기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삼국유사?(三國遺史)에 실린 일화가 하나 생각난다. 과부가 애를 배서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12살이 되도록 말도 못하고 서지도 못했다. 그래서 뱀 같다고 해서 이름을 사복(蛇福)이라고 했다. 그 사복이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원효를 불러 장사를 지내자고 했다. 그런데 그때 원효가 자기 딴에는 문자속이 깊다고 “살지 말지니, 죽기 괴롭구나! 죽지 말지니, 살기 괴롭구나!”(莫生兮 其死也苦! 莫死兮 其生也苦!) --- 이렇게 아마 타령조로 읊조렸던가 보다. 그러니까 옆에서 듣고 있던 사복이가 “빌어먹을! 뭐 이렇게 길어?” 하면서 네 자로 “死生苦兮”라고 줄였다는 거예요.
나고 죽는 것이 괴롭도다! 사실 인생 문제라는 것도 이리저리 꼬이고 굉장히 복잡한 것 같지만, 또 어떻게 보면 지극히 간단한 것 같기도 하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나 철학을 하는 나같은 이에게 그 간단한 생사의 삶의 진리를 꿰뚫어서 한마디로다가 끝내는 것, 아니면 그 한마디마저도 필요 없는 것이 어찌 보면 인생 문제이겠는데, 그것을 어떻게 표현을 하느냐, 바로 이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제 이런 질문을 한 번 던져 보기로 하자 : 삶과 죽음이 왜 괴로움인가? 나무가 자라다가 태풍을 맞아 쓰러져 죽었다고 치자. 나무가 없어졌을 적에 나무는 괴로워할까? 요즘에 환경윤리니, 환경생태학이니 하는 것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나무도 괴로움에 소리를 친다고들 한다. 화산이 터져서 산이 쪼개지고,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되고 하는 그런 현상을 우리는 흔히 본다. 이때 산이, 바다가 괴로워할까? 요즘 물리학자들은 이런 얘기도 한다 : 어느 때인가 태양이 식어 버리면 이 지구도 돌덩어리로 되고, 파괴되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사라질 것이다. 내가 지금 나무에서 산으로, 바다로, 그리고 다시 지구로 넘어갔지만, 이런 자연의 변화에 괴롭다, 즐겁다라는 인간의 감정이 들어가 있는 것일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뭐 때문에 삶과 죽음이 괴로움인가? 아마도 이런 얘기가 가능할 것 같다 : 삶과 죽음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졌을 때, 바로 그 때 낳는 것도 괴롭고 죽는 것도 괴롭다.
불교 철학은 아다시피 나고 죽는 문제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나고 죽는 자연 현상을 설명하려는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 나고 죽는 것이 자연 현상이긴 하다. 산, 강, 바다와 같은 무정물이 변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유정자, 일체중생(一切衆生), 즉 생명이 있는 모든 것 역시 나고 죽는다. 그리고 불교 철학은 바로 이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통찰로부터 출발한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어떤가? 거기에 그 어떤 자의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한다. 변화하고 알맹이 없는 자연 본래의 이 이법을 깨닫지 못하고 주변의 것들이 자기와 늘 함께 할거라고, 영원불변의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추구한다. 여기에 그 어떤 집착, 욕심, 생에 대한 안타까움, 집념 뭐 이런 것이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설명하는 말로 무명(無明, avidyā)과 갈애(渴愛, tṛṣṇa)라는 말이 있다. 전자는 좀전에 말했듯이 무상(無常)이고 무아(無我)인 자연의 이법을 알지 못하는 무지를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안타깝게 끌어 안아 꼭붙들고 싶어하는 욕망, 바로 그것이다.
불교에서 괴로움이 유발되고 커져가는 과정을 설명할 때 흔히 다음과 같은 도식을 사용한다 : 六入(saḍāyatana, 경험 성립에 관여하는 내외적 요소)→觸(sparśa, 접촉, 구체적인 경험을 성립시키는 세 가지 요소들이 함께 모여 갖추어진 상태)→受(vedanā, 느낌, 경험)→愛(tṛṣṇa, 갈애, 욕망)-取(upādāna, 붙잡음, 집착)→有(bhava, 되어감, 조작 내지 재창조활동)→生(jāti, 有의 결과 구체적인 무엇으로 다시 태어남)→老死(jarā-maraṇa, 쇠퇴와 괴멸). 여기에서 세 번째인 受까지는 생명을 가진 개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과정이므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갈애가 없다면 거기까지는 괜찮다. 그러니까 그냥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까지는 괜찮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 사이에 마음이 하나 들어가게 되면 이제 어떻게 되는가? 이것을 한자로 보면 참으로 흥미롭다. 느낌을 한자로는 “受”라고 한다. 여기에 마음 심자, “心”을 중간에 한 번 넣어 보자. 어떤 글자가 되는가? 아마 이런 비슷한 글자가 나올 것입니다 : 愛. 이것이 좀전에 말한 갈애이며, 붙잡음, 집착, 고집으로 이어져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한 번 만나면 두 번 만나고 싶고, 두 번 만나면 세 번 만나고 싶고, 만나면 비비고 싶고, 비비면 끌어안고 싶고 하는 이런 것이 인간의 심리이다. 이런 게 생겨서 결국 고통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도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함께 바로 이 갈애를 끊으라고 가르친다.
일정한 조건이 모이면 생겨났다 그 조건이 흩어지면 사라져가는 것이 자연의 현상이니, 끊임없이 변화하고 알맹이 없는 그런 것에 사실 본래 늘어붙어 붙잡을 것은 없지않은가.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만 규정을 짓고 그것을 붙잡아 늘어붙으려고 한다. 나는 이렇고 너는 그렇고, 이것은 이래야만 하고 저것은 저래야만 한다 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 아(我)나 상(相)이라는 것은 뭔가. 픽션,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다. 바로 이것이 나중에 용수 같은 사람이 고민했던 것이다. 모든 것이 이리저리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고, 도대체 알맹이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이러한 모습을 용수는 쑨야(śūnya), 즉 비어 있다, 공(空)하다 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렇다면 이제 앞서 했던 얘기와 연결을 해봅기로 하자. 나라다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전부 다 마야, 즉 허깨비, 환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쑨야와 마야, 공과 환, 이것은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쑨야바다(Śūnya-vāda)하고 마야바다(Māyā-vāda)를 같다고 하는 사람이 있고, 다르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이 세상은 용수처럼 ‘비어있다’라고도, 나라다처럼 ‘허깨비, 마술의 작희(作戱)다’라고도 표현되는 것이다. 사실 굉장히 미묘한 차이인데, 후자는 소위 인도의 정통이고, 전자는 소위 비정통인 불교가 되고 있으니, 백짓장 차이가 결국 정통과 비정통이라는 엄청난 차이가 된 셈이다.
나는 불교 철학이든 힌두 철학이든 그중 어떤 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그 차이는 지적을 할 수 있다. 나는 여기서 불교를 믿어라, 아니면 브라만교를 믿어라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철학자의 역할이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뭘 쥐어 주는 것이 아니다. 자! 이제 둘의 차이를 한 번 따져 보자. 우리나라에 구운몽도 있고 홍루몽도 있고 해서 몽자 소설이 있지만, 그처럼 나라다 설화에서는 이 인생을, 생로병사로 특징 지워지는 이 삶을 반시간에 일어난 한갓 꿈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용수처럼 그것을 공으로 보았다고 했을 적에 이것은 도대체 어떤 것이고, 꿈으로 보았다는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공이라는 것은 심리적인, 정신적인 것을 겨냥하고 있다. 이것을 무(無)로 받아들여 오해를 하기도 하지만, 공하다는 것은 있는 것이 없다는 그런 얘기가 아니다. 분명히 있다. 뭐가 있냐 하면 무상하고 무아인 현실이 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꾸만 변화하지만 그러나 그 속에서 진행되는 연속성은 인정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불교는 시간의 철학이다. 변화하는 현실, 이것이 존재의 전부라는 것이다. 상(常)과 아(我)인 그런 존재는 없다는 말이다. 세계의 본질, 실체, 영원한 하나님, 영원한 자아, 영원히 늙어 죽지 않는 나 이런 것이란 없다. 그런데도 그런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서 그것에 집착을 하니까 고가 생긴다, 그러니 그 집착을 버리라고 말한다. 그런데 집착을 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꿔서 이 세상 모든 것을 바라보는 그 눈, 관점, 그것이 마야바다, 즉 공이라는 관점이다.
그런데 나라다의 경우에는 시간 자체를 엄청나게 확대를 해 놓고 보니까 장구한 12년이 고작 반시간도 채 안되는 것이 되어, 인생이 그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에 비해 부처님의 경우에는 어던가? 80 평생 동안 매순간마다 엄청난 결단을 내려야 했지않은가. 그러니까 불교와 힌두교가 똑같이 인과업보라는 전체적인 인도 세계관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불교의 경우에는 80평생을 살았다는 역사적인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단락으로 나누어 팔상도로 상징화 하였듯이,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들이 매순간마다 그 어떤 극적인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요구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아무도 내 인생 허깨비 같은 거니까 아무렇게나 결정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라다의 입장에 따르면 그게 물거품이니 그냥 치지도외(置之度外)해야할 것이다. A하고 B하고 만났을 적에 뭐 우리 그림자끼리 만났는데 아무렇게나 살면 어때 이렇게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사는가? 그렇지 않다. 그런 것이 마야바다와 순야바다의 차이입니다. 마야가 물거품이라면 순야는 무엇인가? 제로이다. 제로는 모든 수의 출발이면서 모든 수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니까 사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어느 순간에 뭔지 모르지만 어떤 현상을 이런 식으로다가 부풀려 놓은 것이다. 뭔지는 모르지만 모두 다 어떤 체험을 갖고 있는데, 이렇게 부풀려 놓고 또 이렇게 부풀려 놓고 증폭해 놓은 것이다.
苦의 제거
보통 불교 철학자들은 고에 대한 부처님의 처방의 비법이 뭐냐라고 했을 적에 고통을 제거해야만 없어진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한생각 바꾸어 고통이 고통인 줄을 깨닫게 되면 고통이 자연적으로 없어진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아예 고와 고멸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후대의 철학자들은 부처님의 애초 이야기를 가지고서 몇까지 조작을 통해 나름대로의 체계를 세운 것이다. 크게 얘기해서 소위 실재론적인 철학, 관념론적인 철학, 그리고 이것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소위 선적인 방법까지 해서 몇 가지 상이한 해석들이 있을 수 있다.
흔히 무명은 깨뜨려야 한다고 말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어둡다’, ‘깜깜한 흑암 절벽이다’ 그랬다. 그런데 그게 시커먼 숫검뎅이 같은 것이라면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말끔히 없애 버리면, 혹은 앞을 막고 있는 시커먼 장막 같은 것이라면 찢어발기고 해쳐 나가면 그런 것이 없어지지 않겠는가 하는 이런 생각이 들겠다. 여기에서 ‘어둡다’, ‘깜깜하다’ 라고 표현된 무명 자체를 만약 바깥에 있는 그 어떤 대상으로 본다면, 그것을 없애 버려야 한다 라는 식의 설명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보는 사람들이 소위 실재론자들인데, 무명 자체가 대상으로 실재한다고 믿고서 그것에 근거해서 철학체계, 수행체계를 끌어갈 수가 있을 것이다. 흔히 소승불교(小乘佛敎)다,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다 하는 부류가 바로 그런 쪽에 해당한다. 설일체유부에서는 모든 것이 존재한다 라고 말한다. 삼세실유 법체항유(三世實有 法体恒有)라고 하는데, 말하자면 과거, 현재, 미래가 있고, 법체(法体)는 과거 현재 미래 언제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법체라고 할 때 법(法)이란 세상에 있는 존재들을 뜻한다. 그 사람들은, 마치 원소주기율표에서처럼, 법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분류를 해서 75가지 혹은 100가지로 나누었다. 만약 그런 법들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눌 수 있다면, 수행이라는 것은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을 키우는 그런 작업이다, 뭐 이런 이야기가 가능해질 것이다. 이것이 말하자면 실재론적인 철학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원효 스님을 떠올려 보자. 그는 해골바가지 물을 마시고 깨쳤다고 한다. 갈증이 나서 뭔가를 들이켰는데, 당시에는 내 몸을 축이는 생명수였을 것이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서 보고는 구역질이 났다고 한다. 사실 똑같은 물이다. 물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뭐가 달라졌는가? 마음이 달라졌다. 그러니까 똑같은 것이 어떤 마음작용에 의해서 어떻게 쓰여지느냐에 따라서 달리 받아들여지고, 다른 방식으로 경험된다는 것이다. 삼계유심조(三界唯心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말한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 것이라는 말인데, 다시 말하면 마음먹기에 따라서 좋은 세상도 되고 나쁜 세상도 된다는 얘기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어떠한 처방이 나오겠는가? 마음 자체를 바꾸면 되지 않겠는가? 이런 식으로 보면, 흔히 관념론이니 유심론이니 하는 철학이 된다.
나중에 유식철학에 오면 100가지로 법의 체계를 세우게 된다. 그런데 마음이건 객관적인 대상이건,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 것들은 결국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개념인 것이다. 뭐가 더럽고 뭐가 깨끗한가? 똥파리는 더럽고 초파리는 깨끗한가? 짚신벌레는 마치 짚신을 신듯이 밟아 죽여도 되고,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니 높여야 되는 것인가? 한생각 돌이켜 보면, 이런 식의 구분은 우리가 어떤 등급을 매기고 값을 매겼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인간 자신이 설정한 구분을 떠나게 되면, 초파리는 초파리가 되고, 똥파리는 똥파리가 된다. 마찬가지로 똥푸는 사람은 똥푸는 사람대로, 밥푸는 사람은 밥푸는 사람대로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때는 좋고 나쁜 것이 없는 것이지요. 그런 임의적인 구분에 마음을 두지 않는 것,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이것을 ‘여여(如如)하게 본다’ 느니 ‘마음을 비우고 본다’ 느니 한다. 스님네들이 ‘무심(無心)하라’ 그러는데, 선가(禪家)에서 얘기하는 무심지교(無心之敎)가 바로 이것이다. 과거 2,500년 동안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오늘 여기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생에 대한 석가모니의 기본적인 통찰로부터 나온 불교의 철학 체계는 요약컨대 이런 세 가지로 정리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 불교는 역대로 선불교 전통이 지배적이었다. 얘기가 너무 길어졌다. 이제 장을 바꾸어 팔상도의 나머지 부분을 얘기하고 이어 바로 그 선불교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십우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시켜 보자.
인격의 완성과 출가
어느 종교에든 이른바 성지(聖地)라는 것이 있다. 요즘에는 ‘문화도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해서 관광산업의 중추기지로 상업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전통적으로 보면 신앙인들의 주 순례코스를 이루면서 종교적 믿음과 실천을 다지게 하는 그런 역할을 담당해 오고 있다. 불교에도 물론 그런 것이 있다. 불교의 4대 성지라고 하면, 아마 석가모니가 태어나고, 깨치고, 처음으로 법을 설하고, 입멸(入滅)한 장소들이 거기에 해당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 네 장소는 모두 그림으로 형상화되어 팔상도안에 등장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팔상도에 그런 장면들을 넣은 것이 직접 찾아가려면 돈도 많이 들고 해서 어려우니까 그런 물리적인, 지리적인 성지들을 그림을 통해서나마 방문해 보자는 그런 의미에서였을까? 아마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정신적으로 성숙을 해서 소위 완전한 인격자가 되느냐 하는 이 문제를 석가모니의 일생을 소재로 해서 여덟 가지 단계로 도식화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팔상도란, 성은 고타마요, 이름은 싯다르타로 이 세상에 태어난 어떤 인물이 도를 이루고 깨친 사람(붓다), 석가족의 성자(석가모니)가 되어 가는 과정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말이다.
앞 장에서 언급한 바 있는 팔상도의 사문유관(四門遊觀) 부분을 놓고 한 번 얘기를 전개해 보자.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소위 인간 세상에 태어나서 세상이 뭔지 모르고 천둥벌거숭이로 온갖 행복하고 쾌적한 생활환경을 누리다가, 어느 무렵인가 인생이 뭐라는 소위 뜨거운 맛을 보았다는 것을 극화시켜 놓은 장면이라는 말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는 거냐 하는 것을 그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았다는 것이 사실 좀 우습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것을 계기로 해서 싯다르타는 생사의 문제에 부딪힌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길을 모색하게 된다.
이제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 그가 걸은 길, 겪은 단계가 그 뒤에 이어진다. 우선은 지금까지 맺어 온 사회적 인연을 과감히 끊는 계기가 등장하는 것 같다. 그것이 바로 출가(出家)이다. 다음으로 이제 그 결단에 대한 저항세력, 말하자면 “내가 무슨 수로 이런 엄청난 일을 성취할 수 있어?” 라는, 그의 무의식에 들어 있는 심리적인 저항감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대두한다. 결국 그는 그것을 극복하고 마침내 도를 이루어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그것이 바로 성도(成道)이다. 출가와 성도, 바로 이 두 가지 것이 본래 속세에 태어난 싯다르타가 석가모니로 탈바꿈하는, 다시 말해서 인격의 완성을 이루는 주된 계기를 이룬다. 나머지는 이제 자기가 깨달은 것을 세상에 펴는 과정이다. 이것을 선(禪)에서는 보림(保任)이라고 한다. 그것은 곧 과거의 보살이 다시 현세의 보살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정도로 팔상도를 대충 개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팔상도에 담긴 인격 완성의 모델을 좀더 보편화시켜 보면 이렇게도 말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사람은 세 번 태어난다. 인간 세상에 태어나고, 그 다음에 스님 집안에 태어나고, 그 다음에 깨친 사람 집안에 태어난다. 완전한 인격이 되려면 이런 세 가지 계기가 필요하다. 흔히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사람이 되기는 어렵다는 말들을 한다. 연결지어 보면 사람이 정말로 되려면 뒤의 두 계기가 더 필요하다는 뜻이다.
앞서 석가모니의 출가와 성도를 그가 인격 완성을 이루게 되는 주된 두 계기로 지적하였다. 그런데 출가란 어떤 것인가? 자기 나름의 길을 걷기 위해 부모 자식의 인연은 물론 사회적인 맥락, 이념 등의 모든 세속적인 줄을 싹뚝 끊어버리는 것이다. 출생이 엄마와 연결된 탯줄을 끊고 물리적으로 독자적인 인격체로 태어나는 기점이라고 한다면, 이 출가라는 계기는 세속의 탯줄, 사회의 탯줄을 끊고 정신적으로 독자적인 인격체로 태어나기 위한 과정의 시작이라고 할 것이다. 돌려 말하면 독자적인 인생을 경영하자는 그런 얘기이다.
그런데 이 출가라는 것이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우선은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소위 그 일가의 경지를 이루려면 반드시 세속적인 인연을 끊어야만 하는 것이냐 하는 점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아마 다음과 같은 점이 또한 문제가 될 것이다 : 일단 도를 이루고 나면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스스로 즐기면서 ‘세상 어떻게 되든 나는 몰라!’, ‘난 상관할 바 아니야’ 라고 해도 되는 것이냐, 아니면 다시 다른 사람과의, 세상과의 어떤 식의 교섭을 통해서 지금까지 자기가 얻은 바의 기량이나 쌓은 인격, 경지를 알리고 인정을 받는 이러한 과정이 요구되는 것이냐?
첫 번째 문제와 관련해서 만약 사회적인 인연을 끊지 않고서도 일가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석가모니의 일생에 견주어서 개인의 정신적인 성숙과정, 인격의 완성과정을 얘기하는 것이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할 것도 같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 팔상도의 모델은 스님네들의 인격 완성을 위한 도식이지 보통 사람들의 정신적인 성숙 과정을 그린 것은 될 수 없다. 이것은 말하자면, 팔상도란 출가를 한 스님네들 위주로 부처님의 일생을 그런 방식으로 도식화해 논 것일 뿐이라는 평가가 될 것이다. 특히 사람이 태어나 죽고 또 태어나 죽고 그러는, 소위 삼사라의 세계, 윤회전생의 세계를 믿지 않는, 그리고 부모와 처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가 홀로 떠돌아다니면서 고고한 도를 닦는다는 삶의 모델이 그렇게 매끄럽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다른 문화권에 오게 되면 문제는 다소 심각해질 수 있다. 일례로 우리는 중국의 경우를 떠올릴 수 있다. 거기에서는 오직 도를 닦아서 도를 이룬다, 이것만이 중요하다. 중국인들에게는 지긋지긋한 생사윤회의 세계로부터의 해탈이라는 문제는 그렇게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환경에서는 팔상도적 인격 완성 모델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마 어떤 식으로든 변형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석가모니의 구도기는 의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구도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문화권에 따라 여러 가지 도식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토마스 아켄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든지, 선재(善財) 동자가 52명의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구도 행각을 펼치다가 마지막에 결국은 자기자신이 부처하고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의 구도기가 모두 다 그런 유형의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그런 도식의 하나로서 가장 많이 인구에 회자되어 왔고 여러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것이 바로 십우도(十牛圖)인 것 같다. 오늘날 인구에 회자되는 십우도라는 명칭은 거의 곽암(廓庵) 선사의 십우도를 가리킨다. 그는 10세기 송(宋)나라 때에 살았던 사람인데, 도라는 것, 진리라는 것, 자기 필생에 목표로 하는 것을 농경사회에서는 아주 흔한 동물인 우직하고 성실한 소에 빗대어서 열 단계로 인격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정신적인 성숙 과정을 그렸다. 따라서 이것을 중심으로 해서 이야기를 진행시켜 보도록 하겠다
보통 사람이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특수한 정신의 상태를 획득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성취하는 것을 일러 보통 ‘깨달았다’[覺] 혹은 ‘도를 얻었다’[得道]고 말한다. 그렇다면 불교 전통에서 바라볼 때 이른바 ‘인격을 완성한다’,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불교적 인격 완성이다, 부처가 되었다, 깨달은 사람이 되었다고 할 때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으로 보통 두 가지 것이 거론된다. 자유[解脫]와 자비(慈悲)가 바로 그것이다. 말하자면 사회적 관계를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수용, 그로부터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그물망 안에 있으면서도 거기에 갇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자유와 무한한 자비, 이 두 가지를 자기 몸에 구현함으로써 완성된 인간이 되는 것, 바로 이것을 불교 전통에서는 사람이 되었다, 인격이 완성되었다, 부처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이상적 인격으로 상정되는 부처란 초인간적 존재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완전한 사람이 된 이이다.
팔상도에 대한 분석
절에 가면 대웅전에 보통 두 가지 벽화가 있다. 그 하나는 바로 팔상도인데, 부처님의 생애에서 중대한 기점이 되는 몇몇 사건을 추출하여 그분의 일대기를 묘사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까만 소가 하얀 소로 바뀌어 마지막에는 하얀 소조차 없는 전개 구도를 보여주는 십우도로서, 이것은 동아시아 불교의 주축을 이루는 선불교에서 얘기하는 깨달음의 단계를 마음을 소로 비유하여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두 그림은 우리 비속한 인간들에게 인격의 완성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전달하는 회화적인 메시지로 작용해 왔다. 두 그림을 보면서 우리는 그 이면에 깔려 있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기본적인 전제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를 완성하기 위해서 자기의 모습을 바꾸어 갈 수 있다는 신념이 그 하나라고 한다면, 그 신념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변화하는 세상 속에는 영원무궁한 불변의 실체 같은 것이란 없다는 생각이 다른 하나이다. 바로 이 두 가지 전제를 두 그림은 모두 깔고 진행되고 있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로 대별되는 현실 속에서 진행되는 인격 완성의 모델인 셈이다.
자기를 바꾸어서 인간됨을 완성하자는 팔상도의 고전적 처방은 그러나 반드시 8가지로 정형화된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포뮬러(formula), 상이한 공식들이 있다는 말이다. 다소 전문적인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르겠지만, 예를 들어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이라고 해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대승불교권에서 불교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는, 기본적인 강요서 비슷한 그런 책이 있다. 그 책을 보면 부처님의 팔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① 도솔천에서 내려왔다[從兜率天退], ② 인간의 태속으로 들어갔다[入胎], ③ 태에 머물렀다[住胎](入胎와 住胎가 세-네번째로 들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④ 룸비니 동산에서 어머니의 옆구리에서 탄생했다[出胎], ⑤ 19세 또는 25세에 출가하여 사문이 되었다[出家], ⑥ 6년에 걸친 고행 끝에 성도했다[成道], ⑦ 법륜을 굴렸다[轉法輪], ⑧ 80세에 열반에 들었다[入於涅槃]. 또 다른 하나의 예로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의 경우를 들 수 있는데, 이것은 10세기경에 한국 스님 제관(諦觀)이 광종(光宗)의 명을 받고 중국에 건너가 당시 중국 불교계의 요구를 받아 천태종의 교의에 관해서 써 준 책이다. 거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 ① 석가모니께서 과거불을 대신해서 도솔천에서 내려왔다, ② 태에 들어갔다, ③ 세상에 났다, ④ 출가했다, ⑤ 마라를 물리쳤다[降魔], ⑥ 깨달음을 얻었다[成道] (그러니까 여기에서 降魔와 成道를 둘로 나누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⑦ 설법을 했다, ⑧ 열반에 들었다.
?대승기신론?은 1-2세기경의 인물인 인도의 마명(馬鳴, Aśvaghoṣa)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지만, 정확히 누가, 언제, 어디에서 지은 것이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산스크리트 판본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있고, 또한 내용상으로 보더라도 중관(中觀), 유식(唯識) 등 대소승의 불교 제학설을 모두 다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사상사적으로 볼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학계 내에서는 중국에서 성립된 위작(僞作)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인 것 같다. 어쨌든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한역 ?대승기신론?은 두 가지가 있는데, 6세기 진제(眞諦, Paramārtha)의 번역본과 7세기 초엽 실차난다(實叉難陀, Śikṣānanda)의 번역본이 그것이다. 전자는 구역(舊譯), 후자는 신역(新譯)으로 보통 구분하는데, 동아시아 불교권에서는 어느 종파를 막론하고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대승기신론?과 제관 스님의 ?천태사교의?에서 언급하고 있는 팔상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대체적으로 비슷하다. 차이라고 한다면, ?대승기신론?에서는 입태 뒤에 주태(住胎)가 있는데, ?천태사교의?에서는 그 주태를 빼고 항마(降魔)와 성도(成道)를 둘로 나눴다는 것 정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팔상도 모델은 ?석보상절?에 등장하고 있는 형태의 것이다. 아마 앞의 두 형태가 종합되어 ?석보상절?의 그것으로 정착되었고, 이것이 우리 나라에서는 보편적인 유형으로 확정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데 ?대승기신론?도 그렇고, ?천태사교의?도 그렇고, ?석보상절?에 있는 것도 그렇고, 모두 여덟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여덟이라고 했을까? 여기에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아마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 라는 것을 들어봤으리라 믿는다. 여기에 4와 8이라는 숫자가 등장하고 있는데, 인도 사람들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2의 배수의 형식의 진행을 선호하는 것 같다. 특히 4라는 수는 완전이라는 개념과 연결되어 생각되었습니다. 짜뚜스꼬티(cātuṣkoṭi)라고 해서 사구(四句)라고 번역되는 말이 있다. 또 언어도단(言語道斷)을 내세우는 선가에 사절백비(四絶百非)라는 말도 있다. 사절할 때의 사가 바로 그 사구이다. 인도 사람들은 모든 문장은 그것이 어떤 것이건 간에 네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말하자면, 어떤 긍정 문장(p), 이것을 부정한 형태(-p), 이 두 가지를 한 데 합친 것(p and -p), 그리고 네 번째로 첫 번째와 두 번째를 각각 부정하여 이를 한데 합친 것(-p and --p)이 그것이다. 이러한 네 가지 선택지로 모든 문장은 정리될 수 있고, 모든 주장은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 이 4를 두배하면 여덟이 된다. 요가철학에 보면 아쉬따앙가 요가(aṣṭāṅga-yoga, 八支瑜伽)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정신집중을 위한 요가수련의 단계를 누구나 다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8가지로 구성해서 구체적인 수련법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팔상의 8이란 인도인의 관념이 투영된 문화적인 기호에 불과한 것이지, 여덟이 갖고 있는 특별한 의미는 없다는 말이다.
하여튼 인도 사람들은 여덟으로 했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에게는 어떤가. 열이 완전수 아닌가. 십(十), 즉 열이란 말이다. 그냥 9보다 1이 더 많은 그런 10이 아니겠는가. 거기에는 말하자면 모든 것을 완결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 사실 황소 그림도 처음에는 여러 가지였다. 사우도(四牛圖)가 있었고, 육우도(六牛圖), 팔우도(八牛圖)가 있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십우도(十牛圖)로 정착이 되게 되는데, 여기에는 분명 열이 상징하는 의미, 즉 완결이라는 의미가 아주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발상도에서 발견되는 몇 가지 특징
우선 팔상도 속에서 몇가지 특징을 언급하고, 그 다음에 십우도로 넘어가야 될 듯 싶다.
첫째는 부처님의 일대기에 담긴 내용의 역사적 진실성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이 정말로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을 다룬 것이냐?,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이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가 참이냐? 하는 이런 식의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부처님 일대기는 모두 사후 5-600년 이후에 성립된 것들이다. 그러니까 이것만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일대기의 내용은 실제 역사적 사실, 진상과는 상당한 거리를 갖게 된다. 석가모니가 생존했던 기원전 5-6세기에는 사실 문자도 아직 정착되지 않았었다. 전적으로 전수자(傳授者)의 기억에만 의존하여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口傳)의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니 전해지는 과정에서 당연히 가감첨삭(加減添削)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전수 형태상의 것만은 아니다. 당시 전기, 즉 부처님 일대기를 저술하거나 그리거나 조형하는 저자들에게는 듣고 보는 사람들에 대한, 그것을 감상할 이들에 대한 고려도 중요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당시 청중들의 듣는 능력을 고려해서 이런저런 형식으로 각색을 한 측면이 그 안에 보인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보자.
전기를 보면 석가모니의 전생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도솔천에서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출가 수도하여 부처가 되기 이전, 말하자면 보살로 있었던 시기에 효성이 지극했다거나 불쌍한 존재를 보면 그것을 참지 못하고 도와줬다 라는 식의, 말하자면 범인으로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고상한 행적, 즉 보살행(菩薩行)에 관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개중에는 태자의 신분으로 태어나 굶주리는 호랑이한테 자기 몸을 던져서 공양을 했다는 얘기도 있는데, 이런 이야기는 물론 듣거나 읽는 사람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꼴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모르긴 해도 이런 범상한, 비정상적인 상황 설정은 강렬한 느낌, 전율을 불러일으키거나 감동을 주거나 하는 극적 효과가 아마 뛰어날 것이다. 물론 사실적인 해석이 아닌 상징적인 의미로만 이것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불교의 보살 정신에 대한 충분한 예화가 되는 것이겠다. 바로 그런 효과를 노리고 전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중에 덧붙여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태사교의?에서 독립 항목으로 설정된 항마(降魔), 즉 악마를 굴복시켰다는 것의 경우도 보면, 기적적인 능력을 행사한다는 의미에서 덧붙여진 것이 아니냐 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일례로 기원후 1세기경에 나온 것으로 ?붓다짜리따?(Buddhacarita)라는 책이 있다. ‘붓다의 생애’ 라는 뜻이니까, 말 그대로 부처님의 전기인데, ?불소행찬?(佛所行讚)이라는 제목으로 한역되어 있기도 하다. 이 책을 쓴 이가 아쉬바고샤(Aśvaghoṣa)라는 인물인데, 앞서 말한 ?대승기신론?의 저자와 이름이 같다. 그는 당시 인도의 저명한 희곡 작가였다고 한다. 이 양반이 부처라는 인물을 모델로 해서 그의 일대기를 쓴 것인데, 전해지는 것 중 가장 완비된 부처님 전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필치가 화려하고 문학적으로도 굉장히 훌륭해서 궁정시(宮廷詩)의 선구로 산스크리트 문학의 주류에까지 들어간다고 한다. 이걸 읽고 나면 굉장한 감명을 받는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인고 하니,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빈슨(Robinson)이라는 불교학자가 이 전기를 읽고 나서 쓴 감상문을 인용해 보기로 하자.
“ ... 석가모니는 갈등을 경험하고 유혹을 헤쳐 나갔다. 그리고 선택의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잘못된 선택은 과감히 버리고, 운명 또는 신들의 간섭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자신의 결심을 통해서 고난을 극복한 분이다. 그런데 그런 고난을 극복한 심리적인 동기는 고통을 받는 괴로움에 싸인 인간에 대한 자비심, 군인과 같은 용기, 인내, 진취적인 기상 그리고 극기의 덕성을 보여준 분이다. 감수성이 섬세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인격적인 위엄을 지니신 분이었다.”
로빈슨 교수는 미국 불교학계에서는 거물급에 속하는 인물인데, 토론토에서 태어났다. 중국인 마을에 살게 되었는데 아마 그 인연으로 중국 문화에 아주 심취한 나머지 동양 사상, 불교를 연구하게 되었던 듯 싶다. 위의 인용문에서 우리는 로빈슨이 받은 감명의 정도를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위대한 인물의 일대기는 그 역사적 진실성의 여부를 떠나 또 다른 상징적 의미를 띄고서 독자에게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팔상도를 통해서 볼 때 완전한 인격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계기가 필요한 것일까? 이제 두 번째로 이 문제를 한 번 이야기해 보기로 하자. 팔상도에서 보면 앞서 지적했듯이 출가(出家)와 성도(成道)가 가장 중요하고 필수 불가결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모든 것이 전부 다 필요조건이겠지, 이것들이 다 한데 모여서 충분히 완전한 인격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 둘이 반드시 있어야만 하겠다는 뜻이다. 바로 이 두 계기를 통해서 보통 사람, 고타마 싯다르타는 전혀 다른 사람, 완전히 깨친 인간, 붓다, 석가족의 성자인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완성된 인격을 추구해 나아감에 있어서 이 출가(出家)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우리네 보통 사람들은 출장을 가든, 해외 여행을 가든, 집을 떠나 아무리 먼 곳으로 가더라도 사실은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늘 마음속으로는 가정에 집착하고 자기-나라, 자기-집, 자기-아내, 자기-자녀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걱정하는 것이 소위 범부들의 일상인 것이다. 여자들이 친정집을 떠나 시집으로 간다는 뜻에서도 출가라는 말을 쓴다. 그동안 살았던 가정을 떠난다는 의미에서 보면, 그것도 출가(出家)와 비슷하긴 하다. 그렇지만 그 출가(出嫁)는 또 다른 가정과 가족을 이루기 위한 떠남이지, 세속적인 인연을 완전히 끊는 것은 아니다. 그런 출가의 결과는 어떠한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욕망과 고통의 또 다른 형태인 아이들을 낳고, 그 아이들이 또 다른 아이들을 낳고 ... 아마 이런 식이 될 것이다. 이를 불교 식으로 말하면, 생(生)과 사(死)가 계속되는 상사라(saṁsara), 윤회전생을 영속시키게 되는 것 이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고타마가 집을 떠나게 된 진정한 동기는 무엇일까? 고타마의 유성출가(逾城出家)를 사회적 의무를 방기한,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도피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나중에 싯다르타가 도를 이루어 부처가 되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집을 떠난 싯다르타가 항마성도(降魔成道)라는 인격 완성의 계기를 갖지 못했다면, 그의 출가, 집떠남은 가장의 의무를 저버린,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짓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성도한 후에 자기 본가를 찾아갔을 적에 싯다르타의 아내, 야소다라는 얼굴을 돌리고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야소다라 부인이 매몰차고 인정이 없어서 그랬던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너는 이미 인연을 끓었다 ... 뭐 그런 얘기가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나중에 그 부왕도, 친척들도 전부다 불교신도로 귀의하게 된다. 심지어 그의 계모, 즉 그의 이모이자 어머니였던 마하프라자파티는 최초의 여성 출가자가 되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귀의가 이루어진 연후에 라야 비로소 인간적인 교류가 재개되었다고 하겠다.
사실 이 떠남이라고 하는 계기가 반드시 필요하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문제가 되는 그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출가하면 일차적으로는 가정을 떠난다는 것이지만, 가정을 떠난다는 것은 세속적인 모든 것으로부터 떠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보통 이를 출세간(出世間), 줄여서 출세(出世)라고도 한다. 사회적인 틀 속에서 도를 닦는 것이 가능하냐, 아니면 정신을 뒤바꾸기 위해서 (영적 성장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보다 더 새로운 환경으로 가는 것이 필요하냐 라는 것은 아마 인류 사회가 있는 한 계속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됩된다. 어렵게 말하자면, 어떠한 궁극적인 목적이 있을 적에 이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적절한 환경이 무엇이겠는가 하는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석가모니의 경우에는 집은 아니었다. 지금부터 2,500년전 당시 인도 사회에서 집안에서 배우자한테 들볶이고, 애들 재롱보고, 부모한테 효도하고, 이러면서 도를 닦는다는 것, 자기가 바라는 그 어떤 인격을 완성한다는 것, 이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신의 궁극적인 목적을 수행하기에 집이라는 환경은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이루려고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도대체 무엇이었기에 그랬던 것일까? 거기에 대해서는 앞서 이미 이야기를 했다. 그것은 두 가지이다. 자유와 자비.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 그리고 고통받는 모든 중생과 그 괴로움을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넓은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 말이다. 이런 인격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이 집안이라는 굴레에 구속당해서는 안되겠다 하는 이런 자각이 싯다르타에게는 있었다.
사실 싯다르타의 출가 동기는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싯다르타는 사문유관을 통해서 노란색 옷을 입고 떠돌아다니는 소위 사문이라고 하는 자유사상가들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바로 이점을 주시하면 우리는 첫 번째 동기로서, 떠돌아다니는 삶에 매력을 느껴서 집을 떠나는 것, 말하자면 고대 인도의 수많은 젊은이들 가운데 하나로서의 고타마 싯다르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사실 이점에 대해서는 본인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그는 나중에 제자들한테 출가전 자신의 심경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한다 : “집안에서 사는 것은 답답하고 구질구질하다. 그러나 떠돌아다니는 스님네들의 삶은 넓게 열려진 자유로운 삶이다. 집안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온전하고 깨끗한 영적 생활을 영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그는 출가, 즉 집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니까 요즘 말로 일단 배낭 하나 달랑 매고 나가고 싶다는 그런 심리적 동기가 하나 있었다는 말이다.
둘째로 당시 유행(遊行) 스님들의 삶과 관련된 모험적이고 의기양양한 첫 번째의 마음가짐과 함께 거기에는 동시에 그러한 삶이 목표로 하는, 어떤 확실하지 않은 전망으로 인한 불안감도 있었으리라. “자! 내가 집을 떠났지만, 내가 생각했던 이상을 과연 제대로 실현할 수 있을까?” 하는 이런 생각 말이다. 사실 집을 떠난다고 할 적에 의기양양한 생각도 있었겠지만, 또한 뒤가 켕기는 그런 것도 있었으리라. 이것은 두 가지 심리상태를 저울질해 보면 어떤 것이 더 세고 어떤 것이 덜 세고 했다는 그런 뜻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집을 나가는 바로 그 순간에 자유롭다는 생각도 있고, 자유롭기 때문에 불안하다라는 생각도 동시에 있었을 거라는 뜻의 말이다.
두 가지 심리, 생각이 어떤 것이 더 많고 적고가 아니라 동시에 있었다는 점에 좀더 주목을 해 보자. 만약 여기에서 두 계기를 하나로 합쳐 주는 그 어떤 더 큰 동기가 있지 않으면 아마 꼼짝을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똑같은 힘이 동시에 있으니까 말이다. 결국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출가함으로써 조그마한 사회적 굴레는 벗어 던지게 되지만, 보다 더 큰 정신적인 자유, 소위 대자재(大自在), 해탈이라고 말해지는, 고통으로부터 그리고 생사로부터 벗어난다는 바로 그 이상을 이뤄 내야 한다는 엄청난 짐을 다시 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다. 만약에 첫 번째 동기만 생각한다면 싯다르타의 출가는 젊은이들이 부모의 지나친 간섭이 싫어서 달아나는, 소위 일로프먼트(irropement)-가출 혹은 연애도피행, 이런 것들과 전혀 다름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싯다르타의 출가 동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 둘을 같이 설명해 줄 수 있는 제3의 동기를 우리는 발견해 내야만 한다.
싯다르타의 선택
자! 집안에 남을 것이냐, 아니면 떠날 것이냐 --- 이것이 문제로다! 이런 일도양단의 딜레마에 봉착했을 때 싯다르타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 “두 가지 대안이 있다. 재가자의 삶과 출가자의 삶이 그것이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인습적인 생활, 집안의 어른으로서 무반성적이고 그리고 습관이 습관을 낳는 그런 틀에 박힌 생활, 그래서 결국은 슬픔과 절망만을 낳게 되는 그런 재가자의 삶이 있다. 반면에 욕망과 고통의 늪을 훤히 꿰뚫어 보고 벗어나는, 고요하고 깨끗한 마음이 제공하는 그런 유리한 고지에서 이 모든 것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집떠난 출가자의 삶이 있다.” 바로 이 두 가지 선택지에서 싯다르타는 출가자의 삶을 택하고, 당시 자유사상가들을 선례로 삼아 그들의 뒷길을 밟았던 것이다.
이렇듯 집을 떠난다는 결단 속에는, 그리고 그러한 생활태도속에는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극기, 고행, 또는 더 나아가 염세 같은 그런 색깔이 결코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집을 떠났기 때문에 일어나는 불안과 아직 획득하지 못한 완성된 인격, 그것을 과연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불안감이 엄연히 있다. 그러나 집에서는 성취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밝은 희망 같은 것이 또한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같이 섞여 있는 그런 마음가짐이 싯다르타, 그에게 아마 있었으리라.
그런데 싯다르타가 재가자의 삶을 버리고 출가자자의 삶을 택했을 때에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것으로 제가 언급했던 세 번째 동기가 아마 선명하게 다가가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것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려면 우선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당시 인도 사회에 팽배했었던 독특한 행위 이론이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까르마(karma) 이론이다.
까르마는 행동, 행위, 활동이라는 뜻이다. 사람은 태어나면 누구든지 어떤 행동을 통해서 자기자신의 생활을 영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까르마에 의해서 속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이것을 ‘業’으로 번역을 했는데요. 일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것이 우리 인간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까르마, 업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우선 자기 또는 남의 생활 환경에 계속해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필연적이고 결과를 일으키는 행위들이 있습니다. 아르타(artha) 같은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아르타란 수단, 방법, 목적이라는 뜻이다. 수단은 말 그대로 그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어떠한 결과를 유도하기 위한 그런 것이다. 말하자면 일을 하고 행동을 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반드시 일어나는 그런 행위들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결과란 비단 눈으로 확인되는 결과, 이승에서 바로 나오는 결과뿐만이 아니라 저승에서, 다음 생에서 경험되는 그런 결과까지도 포함한다. 그러니까 인과의 장이 현생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닌 것이된다. 이와는 달리 남한테 영향을 끼치지 않고 결과를 주지 않는 행위가 있다.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 가고, 밥 먹고, 이빨 닦고 하는 이러한 행위 말이다.
요약하면, 반드시 결과를 야기하는 유위(有爲)적인 행위, 작위(作爲)적인 행위가 있는 반면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결과를 낳지 않는 그러한 행위가 있다. 그런데 욕심을 버리고 독신을 지키고 가난하게 살면서 남에게 도움을 주는 깨끗한 생활을 할 때에 결과를 내지 않는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당시 사람들은 생각했다. 성적 쾌락이나 출산, 양육이나 재물을 소유하는 것, 권력을 행사하는 등등의 이런 행위와는 달리, 그것은 남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 깨끗한 행위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행위들로 이루어지는 것이 그렇다면 어떤 유형의 삶이겠는가? 아마 재가자의 삶보다는 출가자의 삶이 여기에 가까울 것이다. 집을 떠나 일체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가진 것도 없이 일정한 거처도 없이 이리저리 떠돌면서 자유로운 방랑 생활을 하는 그러한 삶은 분명 그 환경적 요인에 있어서 재가자의 그것보다는 소욕(少欲), 봉사, 희생, 자유 이런 쪽의 행동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러니까 싯다르타는 재가자의 삶에 대해서 이렇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 재가자들은 어떤 행위, 어떤 일을 하던지 다른 육신과 다른 모양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힘을 가진 유위적이고 작위적인 행동을 하게 되며, 바로 그 행위의 힘에 의해서 다른 모습으로 환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지금으로부터 2500년전, 당시 인도 사회에 풍미하고 있었으며 지금도 인도적인 혹은 불교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믿고 있는, 윤회전생이라는 생각이다. 고대 희랍의 피타고라스도 그런 걸 믿었다고 한다. 아마 창조와 심판으로 이어지는 직선적 역사관에 근거한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유럽에서 생겨나 정착이 되고 근세 이후 유물론적이고 기계론적인 사고 방식의 영향하에서 일회적인 인생이라는 관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이전 시기까지, 이른바 고전적인 세계에서는 나의 생이 단 한 번으로 끝나는 일회적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의 보편적으로 깔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자!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자기가 만든, 자기가 지은 행위의 영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삶이 계속된다고 치자.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는가? 아마 그것은 일상의 것들이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그런 생활의 연속, 욕망과 슬픔으로 점철된 세속적인 삶의 한가운데에 빠져 영원히 고통스러운 삶이 반복되는 그런 것이 되지 않겠는가. 전문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삼사라, 생사윤회의 수레바퀴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그런 꼬락서니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 위해서는 그것과는 다른 그 어떤 극한 행을 해야 할 것이다. 일상적인 행위와는 다른, 재가자의 생활과는 다른 그런 것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좀 전에 얘기 한대로 독신생활, 청빈생활, 자비행, 청정행 뭐 이런 것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것들은 아무런 의도 없이 이루어지는 행위들, 무위적인 행위들, 결과를 낳지 않는 행위들로 간주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집을 떠나서 가진 것이 없이 욕심을 떠난 행위를 하게 되면 나고 죽는 윤회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는 믿음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쯤 되면 아마 하나의 의문이 들 것이다. 구태여 출가를 해야만 깨끗한 생활이 가능하냐? 꼭 출가하지 않더라도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도 욕심을 내지 않고 남한테 은혜를 베풀고 착한 일을 많이 하고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이런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분명 의미 있는 반론이다. 사실 나중에 가면 이것 자체가 다시 문제된다. 그리고 결국 이것은 앞서 언급했던 것, 즉 출가, 출세라는 계기가 불교적 인격 완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냐 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이 문제에 대한 당시의 지배적인 생각은 아마 “그런 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재가자의 경우에는 소위 신적인 세계, 천당에 나게 된다.” 는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보통 나쁜 짓을 많이 하게 되면 지옥에 난다고 그런다. 그러나 인도적인 배경에서 보면 천당과 지옥이라는 것은 앞 장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괴로움과 즐거움, 선과 악의 상대적인 비율의 차이를 갖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천당의 세계가 즐거움, 선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세계라면 지옥의 세계는 괴로움, 악쪽으로 기울어진 세계라고 볼 수 있다. 인간 세계는 그 중간 정도 될 거구요. 따라서 신적인 세계에 태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돌고 도는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게 된다. 좀더 좋은, 편안한 생활환경이 마련된 세계에 태어난다는 단지 그런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이제, 나쁜 곳에 태어나는 경우는 물론이고 제아무리 좋은 곳에 태어나더라도 생사윤회의 수레바퀴안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이지, 완전한 자유는 결코 아니다 - 그러니까 생로병사가 없는 열반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착한 일, 좋은 일이 아니라 선악을 뛰어넘는, 즉 집착이 없는 행위를 통해서만 윤회전생을 벗어날 수 있다 - 뭐 이런 생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모든 것을 떠나서, 지옥, 인간계는 물론이고 신적인 세계에조차도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생사의 끝, 윤회의 끝, 대자유, 니르바나가 되는 것이죠. 영원이라는 말이 아마 인도사람들에게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는 그런 말과 같은 의미를 가질 것이다. 불교경전에도 보면 부처님이 성도를 하고 나서 법열 속에서 터트렸다는 해탈송중에 ‘아! 다시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을 것임을 알게 되었다’ 라는 그런 구절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왜 성도 후에, 니르바나를 성취한 후에도 45년이나 더 살아있었을까? 아마 나중에 “이제까지 행해 왔던 유위적인 행위 때문에 남아 있는 육신이 있어서 그것이 소멸할 때까지 살았다.” 이런 식으로다가 설명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답변이 될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세 번째 동기와 관련해서 우리는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다 : 까르마 이론, 인간의 행위에 대한 다소 어렴풋하지만 그 나름의 체계를 가지고 있는 이런 생각들이 당시 인도 사회에 깔려 있었고, 싯다르타는 바로 그것을 믿고서 집을 뛰쳐나갈 수가 있었다. 그런 행위 법칙, 소위 윤회업보에 대한 법칙을 나중에 석가모니는 연기법(緣起法)으로 정리를 했는데, 이게 인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형식화된다 : 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 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 쉽게 이해하자면, 모든 것은 조건이 합쳐졌을 적에 발생하고 조건이 없어지면 소멸한다 라는 이런 생각에 해당한다.
그런데 석가모니의 이 연기법의 특징은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는 법칙을 주재하는 인격적인 신이 따로 없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탈인격적인 법칙인 것이다. 둘째는 누구에게나 가능하고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성을 띤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통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고, 어떤 시대는 통하고 어떤 시대에는 통하지 않고 하는 그런 특수한 법칙이 아니라, 보편적인 법칙이라는 말이다. 특정 신에 의해서 지배되지 않기 때문에 탈인격적인 법칙인 것이고, 존재하는 모든 중생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보편적인 법칙인 것이다. 누구나 자기가 지은 행위, 업보를 통해서 다른 생에서 자기가 지은 행위를 또 다른 생에서 경험하지만, 동시에 누구든지 일단 집을 떠나 적절한 수행을 하면 윤회를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보편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보편성과 탈인격성으로 대별되는 연기법이 지닌 바로 이러한 특징은 당시의 사회구조와 지배적인 사상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면, 상당히 혁명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부처님 당시 인도 사회는 카스트라는 것에 의해 정형화된 모습을 띠고 운행되고 있었다. 맨 밑에는 수드라라는 노예 계급이 있고, 그 다음에 바이샤라고 해서 생산을 담당했던 일반 산업전사 계급이 있었다. 그 다음으로 왕 또는 무사들이 위치하고 있는데, 싯다르타가 태어난 크샤트리야 계급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제사를 지내는 브라흐만이라고 하는 성직자 계급이 있었다. 바로 이 네 가지 계급을 축으로 해서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이런 종성 제도에 따라서 꽉 짜여진 대단히 경직된 그런 사회 체제였다. 누구든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출신 성분에 따라 직업과 결혼 상대와 일거리가 정해진다고 하면 그 얼마나 답답하고 숨통이 막히는 일이겠는가? 그런데 바로 이러한 구조를 불교는 깨고 나온 것이다. 연기법에 따르면 자기행위에 따라 인간의 몸으로도 태어나고 강아지로도 태어나고, 노예 수드라로도 태어나고 브라흐만으로도 태어나고 하는 것이다. 이런 쪽으로 가면, 운명론, 인성이 정해져 있다 라는 식의 생각은 당연히 무너진다.
결론적으로, 기존의 카스트 체계에 근거한 경직된 사회 체제, 그것이 함축하는 운명론, 이것을 연기법을 통해서 깨뜨려 버리는 것이 바로 그 법칙을 발견해 낸 부처님의 철학적, 창조적 발견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연기 법칙을 실천하는 것이 그 당시로서는 집안을 떠나서 왕자라는 계급적 지위를 떠나서 자유로운 방랑승이 되는 길이었다. 그러니까 그것을 택했던 것이다. 그래서 흔히 석가모니 부처님을 두고 두 가지 특징적인 묘사를 한다. 하나는 종성제도를 타파한 일종의 사회적인 개혁아, 반항아라는 것이고, 그러면서 동시에 자유로운 자비행을 펼칠 수 있는 성자, 리버럴 세인트(liberal saint)였다는 것이 나머지 하나이다. 그는 네 가지 종성이 나면서부터 정해져 있고 그중에서 브라흐만이 다른 계급보다 우월하다는 기존의 사회체제 옹호이론을 비판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는 분명 시대의 반항아였다. 또한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 당시 인도 사회에 통용되었던 인간 완성 이론 이외에 제2의 인간 완성 이론을 제시하였다. 바로 이 새로운 대안을 통해서 누구나 그 어떤 카스트에 태어났느냐에 상관없이 자기의 인격을 완성해 나갈 수 있는 보편적인 길을 열어 놓았다는 점에서 그는 성자, 성직자였다. 한편으로는 사회의 모순에 반항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귀한 성직자의 모습을 갖춘, 이 두 가지가 한데 어우러진 사람, 그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인 것이다.
싯다르타의 수도과정
지금까지는 출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했다. 이제 출가 이후 싯다르타의 수도와 성도의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자. 출가를 한 후 그가 설산(雪山), 즉 히말라야산에서 했던 수도의 내용은 일종의 고행 형식을 띠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 “출가하기 이전 나는 최상의 쾌락적인 생활을 즐겼다. 당시 내가 궁중에서 누린 그 향락은 그 누구도 향유하기 어려운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출가한 다음에는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정도의 지독한 고행을 했다.” 그러나 그가 최종적으로 택한 인격 완성의 길은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세속적인 쾌락, 쾌적한 환경을 추구하는 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극심한 고통이 함께 하는 고행의 길도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는 이 둘 모두를 치우친 두 극단으로 간주하고, 그 어느 쪽에도 접근하지 말라는 경계를 제자들에게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것이다. 연기를 다른 말로 중도(中道)라고도 하지만, 가운뎃길이라고 하는 바로 이 용어 속에 말하자면 그의 고민이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는 보통 사람들이 추구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설명했던 출가의 배경이 여러분의 머리 속에 어느 정도 그려진다면, 고타마가 왜 전자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했는지는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될 것 같다. 문제는 후자가 될 것인데, 이제 이 문제를 점검해 보도록 하자.
이 고행이라는 방법은 그 당시 수많은 요기들, 즉 요가수행자들이 행하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의 독특한 수련 방법을 개발하기 전에는 부처님도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했던 것이다. 얼마나 열심히 했든지, 눈이 쏙 들어가고 뱃가죽과 등가죽이 착 달라붙고 ... 뭐 이럴 정도로다가 엄청난 고행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서 자기가 바라는 생사를 벗어나는 길은 발견할 수는 없었던 가 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아마 고민을 했으리라. 그러다가 마침내 다음과 같은 이치를 깨닫게 된다. 리틀붓다라는 영화를 보면, 엄청난 고행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가야금 비슷한 인도 악기를 가르치는 사람이 배를 타고 지나가면서 제자들에게 무슨 얘긴가를 하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악기의 줄을 너무 팽팽히 당겨도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고, 너무 느슨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아마 이런 말을 악기 선생이 했을 것이다. 그런 말을 듣고 깨닫게 알게 된 것이다. “아! 내가 잘못한 거로구나. 그건 너무 느슨했던 거고, 이건 너무 팽팽하게 당긴 거로구나. 지나친 쾌락도 되지 않고, 극심한 고행도 되지 않는다.” 라고 말이다.
그래서 수자타라는 마을의 부잣집 하녀가 가져다 준 죽을 마시고 우선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나서 보리수 나무 밑으로 가 자리를 잡고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그는 이제 자기가 이제까지 해온 것을 하나하나 점검하면서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게 된다. 바로 이때에 생각난 것이 어렸을 적 언젠가 한 체험이었다. 당시 인도 사회에서는 농사가 시작되는 시기에 일종의 한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그런 의미로서 국왕이 밭에 나가 첫 삽을 흙에 꽂는 그런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태자 싯다르타도 그 행사를 보기 위해서 아버지를 따라 들에 나갔던 것 같다. 그때 들에서 쟁기로 파헤쳐진 흙속에서 노출된 벌레를 새가 날아와 낼름 잡아먹는 것을 우연히 목격하게 되는데, 그게 어린 마음에 상당히 충격을 주었던 가 보다. 그래 마음이 심난해서 시끌벅적한 들녘을 벗어나 숲속으로 들어갔다. 고요한 숲속, 서늘한 나무 그늘 밑에 앉아 들에서 목격한 장면을 떠올리면서 아마 이런 저런 생각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정신이 통일된 상태에서 세상이 마치 정지하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던 그런 체험을 했던 가 보다. 이제 바로 보리수 나무 밑에 앉아 그때의 그 분위기를 연상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극심한 고행 뒤에 오는 그 어떤 마음의 평온이라고도 하는데, 본래 명상 기법은 고행을 하기 전에 다른 두 스승으로부터 전수 받은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이때 경험한 것을 기본으로 해서 나중에 석가모니는 나름의 방식대로 훈련의 단계 비슷한 걸로다가 정리해서 네 단계로 이루어진 선정(禪定)의 방법으로 제자들에게 전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색계사선(色界四禪)이라는 것인데요. 초선, 제2선, 제3선 제4선,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초기 경전을 보면 이 색계사선(色界四禪)이 가장 흔하게 언급되어 있고, 여기에 무색사선(無色四禪)과 멸수상정(滅受想定)이 덧붙여져서 구차제정(九次第定)으로 정리, 제시되어 있는 유형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경전의 설명을 들여다 보면 이러한 정신집중의 방법은, 쉽게 이해해서, 마치 불순물이 많은 금광석을 여러 가지 단계를 거쳐 유연한 순금으로 만드는 과정처럼, 마음을 마치 팥고물처럼 보드랍게 만드는,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바대로 어떤 형태로든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기르는 성격의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준다. 나중에 이러한 선정 수행의 전통을 발전시킨 것이 인도의 요가철학인데, 거기에 보면 아쉬따앙가 요가라고 해서 정신집중을 위한 요가수련의 단계를 8단계로 구성한 구체적인 수련법이 있기도 하다. 또한 무슨 소지관(小止觀)이라든지 마하지관(摩阿止觀)이라든지 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그와 같은 정신집중, 선(禪), 이것을 종지로 삼은 것이 십우도를 완성한 선불교 전통인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건 굉장히 중요한 수련 방법이 된다 하겠다.
갖가지로 제시된 방법에 따라 정신통일을 할 적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건지, 그리고 각각의 단계에서 실제로 어떠한 구체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인지는 사실 실습을 해보지는 않아서 모르겠지만 필자가 아는 대까지 그 성격과 과정을 한 번 설명해 보기로 한다.
무엇보다도 우선 약간의 오해를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명상하면 엑스터시(ecstasy)라고 해서 자기를 벗어나 그 어떤 황홀경에 들어가게 된다는 얘기를 흔히들 한다. 탈아(脫我)의 경지에서, 자기밖에 서 가지고서 그 어떤 영감이 떠오른다는 것 말이다. 그러나 필자가 이해하기로는 불교적 명상의 경우 그런 성격의 것은 결코 아닌 것 같다.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자기 속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탈아가 아니라 입아(入我), 그러니까 자기 속에 들어가서 자기 마음에 그 휘황찬란한 보물을 발견한다고나 할까? 만약 어떤 초월자가 있는 것으로 상정된다면, 그런 경우에는 자기를 벗어나서 초월자와 일치되는 그런 경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의 선에서는 아마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런데 불교적 입장에서 보면 초월자가 따로 없지않은가. 자기 속에 침잠해서 자기 속에 들어 있는 영롱한 빛과 하나가 되는 그런 경지, 그것을 기르는 테크닉이 지금부터 필자가 말하는, 네 가지로 정리된 선정의 방법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제일 첫 번째 단계에서는 일체의 감각적 욕구와 불건전한 생각을 제거하는 것이다. 일단 부정적인 얘기, 네거티브한 것이다. 자! 감각적인 차원을 우선 보기로 하자. 오관(五官)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감각기관이 그에 상응하는 대상과 만날 때 우리의 마음은 그 감각대상을 좇아 자꾸만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그런 경향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런 경향을 갖는 생각들이 막 일어난다. 그것도 좋은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에는 소비적인, 낭비적인 그런 생각으로다가 가득 차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 일단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이런 상황을 한 번 그려 보자. 한참 친구하고 열을 올리면서 논쟁을 하다가요. 말을 멈추고 눈을 한 번 감아 보라.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몇 번 하면서, 이기려는 마음에 이리저리 굴려 본 생각들을 서서히 가라앉히자. 이렇게 신체의 활동을 줄이고 여러 산란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상당히 차분하고 산뜻해질 것이다. 지지않을려고 잔뜩 추겨 세운 긴장감도 당연히 사라질 것이고, 그와 동시에 앞뒤 상황을 반성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는 심리적인 여유가 생기리라. 관찰력, 분석력 등과 같은 사고력이 아마 커질 것이다.
경에서는 신체를 차분히 하고서,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따라 자꾸만 밖으로만 치달려 가려는 생각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예컨대 이기려는 생각 등과 같은 나쁜 것을 제거하게 되면, 바깥에 떠도는 사물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게 된다고 했다. 이것까지는 부정적인 표현이고, 이생희락(離生喜樂)이라고 해서, 부정적인 것들을 제거하고 떠남으로 인해서 자연적으로 육체적으로 편안해지고, 정신적으로는 기쁨이 일어난다고 했다. 이 초선의 단계에서 경험하는 경지를 비유하기를, 세숫대야에 가루분을 쏱아 물을 뿌려 풀어놓은 것과 같다는 표현을 했다.
건조 가루분에 물을 뿌려 주면 어떻게 되겠는가? 물에 적셔져서 가루분 입자들이 수분을 흠뻑 머금을 것 아닌가. 가루분이 물을 흠뻑 머금은 것 같이, 나쁜 생각들이 제거되면 몸과 마음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해진다. 이런 상태에서 사물을 넓게 보고 자세히 살필 수 있는 사고력을 키운다. 그러니까 청소를 해내고 깨끗한 마음자리에 분석적인 것, 널리 볼 수 있는 조망력, 그리고 깊히 볼 수 있는 투시력, 이런 것들을 키운다는 말이다. 아마 이런 과정에서 어느 한곳에 집중할 수 있는, 골몰할 수 있는 능력은 더욱 커질 것이고, 그에 따라 일어나는 어떠한 변화가 있을 것이다. 대략 이 정도 수준에 이르려 해도 엄청난 정신집중을 요구하는 것인데, 이건 겨우 첫단계에 불과하다.
이제 두 번째 단계에서는 자세히 살피는 분석적인 사유작용을 제거한다. 그러니까 분석을 하게 되면 자꾸만 이렇게 저렇게 나누고 들어가게 되니까 피로해지므로, 그러한 작용을 서서히 가라앉히라는 것이다. 그러한 작용마저 쉬게 되면, 내적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의 모든 빛을 한곳에 집중할 수 있어서, 바로 그 정신집중으로 인해 생겨나는 즐거움만이 있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이 두 번째 단계에서 갖게 된다는 정생희락(定生喜樂)이다.
이해를 위해서는 설명보다는 비유가 더 나을 듯 싶다. 숲속에 옹달샘이 하나 있는데 그 내부에서는 차가운 물이 끊임없이 솟아 나오고 있다고 치자. 이 샘에는 외부에서 다른 물이 유입될 수 있는 물고가 하나도 없고, 비가 오지도 않는데도 이 샘은 마르지 않는다. 외부에서 물을 집어넣지 않더라도 자체적으로 소위 내부에서 끊임없이 차갑고 깨끗한 샘물이 나오고 있으니까, 샘을 가득 채우고 주변을 흠뻑 적시면서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테니까 말이다. 두 번째 선정의 단계에서 경험되는 상태가 이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만큼만 되도 참 몸이 붕 뜨는 것 같은 즐거움이 있을 터인데 이제 3단계로 들어간다. 그러니까 조였다가 풀었다가 다시 조였다가 풀었다가 하는 그런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의 세상만사로부터 자유롭다는 그 즐거움으로부터 이제 마음이 멀어진다. 그리고 그 즐거운 마음으로부터 벗어나서 다시 조율해 가지고서 골똘하게 다시 마음을 한곳에 모으라는 것이다. 즐거운 마음이 아니라 즐거움과 괴로움, 둘다 떠난 평등한 마음에서 다시 한군데에다 마음을 집중해라 이런 얘기이다. 그러니까 열띤 상태에서는 되지 않으므로 마음을 가라앉혀서 똑바로 주시하고 또렷한 의식을 유지한 상태에서 다시 한군데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경험되는 것이 세 번째 선정의 단계입니다.
다음으로 이제는 자유롭다, 괴롭다, 평등하다, 고통이다, 즐거움이다 하는 이런 등등의 것과는 관계없는 그야말로 순수한 마음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제3선정에서 한데 모았던 것을 다시 또 풀어놔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바로 네 번째 선정의 단계에 진입한다. 이렇게 해서 도달한 선정의 경지에서 마음은 ‘완전히 순수하게 되고 완전히 청정하게 되며 그 어떤 더러움도 없고 그 어떤 번뇌로부터도 자유로우며 유연한 상태로 되었으며 원하는 대로 조작 가능하며 한곳에 고정되어 있으며 확고부동한 그러한 집중된’ 상태가 된다고 경에서는 기술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마음이 되면 이제 갖가지의 초일상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한다. 부처님의 경우에는 여기에서 세상만사를 보통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는 독특한 능력으로다가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한다. 왜 그 삼명육통(三明六通)이라는 것 있지 않은가? 그런 능력이 이제 바로 이러한 선정의 수준에 올라서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능력을 이제 실천적 지혜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신족통(神足通)이라고 해서 몸을 깃털처럼 가볍게 하고 물위를 걷고 하는 그런 능력이 생겼다고 그런다. 천이통(天耳通) - 천하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 타심통(他心通) - 남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능력, 숙명통(宿命通) - 자기자신의 과거를 알아보는 능력, 천안통(天眼通) - 일체 중생의 과거와 미래를 꿰뚫어 보는 예지력, 그리고 마지막 누진통(漏盡通)이라고 해서, 이제 자신에게서는 모든 번뇌가 다하고 괴로움이 완전히 끝났다는 것을 간파하는 지혜를 얻었다고 한다. 이런 것이 정말로 어떻게 가능할까?
연기법에 대한 깨달음
그런데 지금까지의 과정을 살펴 보면 어느 정도 분명한, 그리고 대단히 중요한 하나의 사실이 있는 것 같다. 앞서 고행은 전부다 육체에 대한 얘기였다. 그런데 이런 능력들은 고행을 통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육신보다는 마음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마음을 어떻게 가졌느냐에 따라서 이런 뛰어난 능력들이 나왔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인격이 바뀌는 것 가운데 중심이 되는 것은 마음인 것이다. 보통사람들처럼 남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 이 석가모니라는 사람은 자기 인격을 바꾸는 방법에 대한 분명한 통찰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능력의 성취가 가능했던 것 같다.
이렇게 쾌락도 버리고 고행도 버리고 정신을 집중해서 얻은 마음과 신통력을 통해서 발견해 낸 중요한 사실이 세 가지인데, 그것에 대한 앎을 보통 삼명(三明)이라고 한다. 숙명지(宿命智), 생사지(生死智), 누진지(漏盡智)가 바로 그것인데, 이것들은 석가모니가 설파한 연기법의 타당성을 증명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첫째로 정각을 이루게 되는 전날 밤 대략 초저녁, 아홉 시에서 자정에 이를 무렵에 그는 숙명지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이 내용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 “나는 지나 온 과거, 나의 전생을 기억해 냈다. 과거 일생, 과거 이생, 삼사오십생, 이십 삼십 사십 오십 백생, 천생, 십만생, 수천 억겁 이전의 전생을 기억했다. 내가 거기에 있었다. 내 이름은 아무개였다. 가족은 누구였다. 종성은 무엇이었다. 내 생활 태도는 어떠하였다. 내가 행했던 선행과 악행 그리고 마지막은 어떠어떠했던지를 기억했다. 죽고 나서 다시 태어난 나의 이름은 무엇이며, 그 마지막은 어떠했는지를 기억했다. 이렇게 나는 수많은 전생과 그 생애의 특징과 환경을 모두 기억했다. 이 앎을 나는 그날 초저녁에 얻었다.” 그러니까 앞서 언급한 여섯 가지 신통력 가운데 네 번째의 소위 숙명통을 통해 자기자신의 과거를 알 수 있었다는 얘기이다.
그 다음 두 번째로 아마 열두 시에서 세시쯤 되겠다. 이 무렵에 그가 깨달은 것은 다음과 같이 기술되고 있다 : “속인의 안력과 시계를 초월하는 천안으로 나는 일체 중생들이 죽어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았다. (앞의 숙명지가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말하자면 일체 중생들의 앞뒤를 꿰뚤어보는 것에 해당하겠다.) 높은 사람이건 낮은 사람이건, 잘난 사람이건 못난 사람이건 자기가 행한 까르마에 따라서 좋고 나쁜 곳에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까 그 당시 사회적인 통념이었던 까르마 관념을 자기 이론 속에 받아들여서 이런 방식으로 정식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알았다. 몸과 말과 생각을 잘못 쓴 사람들은 그 몸이 죽어서 다시 태어날 때 고통스런 삶을 받아 결국 지옥에 가고, 몸과 말과 생각을 옳게 쓴 사람은 좋은 삶을 받아 천당에 간다.” 이것이 바로 생사지라는 것이며, 천안을 통해서 생사를 알았다고 해서 천안생사지(天眼生死智)라고도 한다.
그러나 저녁 아홉 시부터 새벽 세시 무렵에 걸쳐 깨달았다고 하는 이 두 가지 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점쟁이의 깨달음에 불과하다. 만약에 석가모니가 이 두 가지만 깨달았다고 한다면, 부처님은 요즈음 김봉수하고 별반 차이가 없는 점쟁이였을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하나가 덧붙여지면서 부처로 태어나게 된다.
이제 막 먼동이 트고 있었다. 싯다르타는 마지막 힘을 기울여서 삶이 괴롭다는 진리의 보편성, 그리고 이를 벗어나는 길을 알아내고 극복하고 해탈한다. 그는 그것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 “나는 마음을 돌려서 일체의 부정한 기운이 사라진 지식을 얻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았다.” 그리고 나서 얘기하는 것이 이런 것이다 : “‘이것이 괴로움이다’, ‘이것이 그 원인이다’, ‘이것이 곧 괴로움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그 사라짐에로 이끄는 길이다’ 라고 나는 빠삭하게 알았다.” 말하자면, 사성제(四聖諦),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진리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앎으로 해서 나의 마음은 감각적 대상을 획득하려는 욕망, 다시 살려는 욕망, 그리고 일체의 무지로부터 벗어났다. 나는 깨달았다. ‘나의 생은 이미 다했다. 나는 고귀한 수행을 닦아 이루었다. 내가 할 일은 모두 다 끝냈다. 나에게 더 이상의 다시 태어남이란 없다’ 라는 것을.” 이것이 바로 가장 중요한 앎인 누진지(漏盡智)이다. 이 앎을 얻음으로 해서 그는 부처가 된 것입니다.
자신의 생은 다했고 더 이상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나는 영원하다’ 이런 얘기이다. 그러니까 인도라는 그 뜨거운 나라에 또다시 태어나 똑같은 생활을 반복해야만 하는, 비참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 그러한 처지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하는 바로 그 사실이 그 양반한테는 엄청난 기쁨을 주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석가모니 이 양반 얘기는 굉장히 비인간적인, 비정한 가르침인 것인데, 그러나 어쨌든 그것이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이라는 점은 틀림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가.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그런다. 다시 태어나는 것이 좋다는 얘기다. 이러니 다시는 태어나지 말자, 그런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 라는 불교의 이야기가 절실하게 다가갈 리가 없다.
이제 다시-태어남의 여부의 문제는 별다른 관심사가 되지 못하고 오직 자유롭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그런 것이 최고의 경지라는 이러한 생각이 지배하는 다른 문명권으로 불교가 넘어왔을 때 팔상도에 반영되어 있는 이 불교적 인격 완성이라는 주제는 이제 어떤 식으로 바뀌어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로 들어가 보기로 하자. 시간과 역사를 건너뛰어서 기원후 10세기경의 중국으로 옮겨가 보면, 당시 중국에서는 불교가 소위 선(禪)이라는 형태로 정착되어 있었다. 바로 이 무렵 곽암이라는 스님이 황소 그림을 통해서 도통(道通)하는 길을 이야기해 보려고 했던 것 같다. 이제 중국 스님, 곽암이 제시한 인격 완성의 모델에서 그 주인공은 석가모니라는 특정한 시대의 역사적 인물에서 상징적인 황소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더불어 출가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도를 닦아서 도를 이루는 과정, 바로 그것만이 문제가 된다.
잠깐 빗나간 얘기를 좀 해 보면, 동탁 조지훈 선생은 자기 집을 방우산장(放牛山莊)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때까지 불교집안에서는 목우(牧牛)라는 말을 일반적으로 써 왔다. 조계종을 성립시킨 보조 지눌 스님의 호가 바로 목우자(牧牛者) 아닌가. 그런데 목우라면 소를 친다는 뜻이고 친다는 것은 기른다는 것이니, 거기에는 어떤 틀속에서 사람을 키운다 하는 그런 뜻으로 연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동탁 선생은 아마 그런 함축이 내키지 않았던 가 보다. 그래서 방우(放牛)라는 말을 통해 자기나름의 어떤 생활 태도를 표현하고자 한 것 같다. 틀을 깨트리고 내식대로, 내맘대로 살겠다 라는 그런 분위기의 메시지 말이다.
그런데 성북동인가? 만해 한용운 선생의 생가에 가면 심우장(尋牛葬)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십우도의 맨 처음이 심우로 시작하고 있으니까 ... 그렇다면 만해 스님은 자기는 정신적인 성숙 과정에서 가장 초보적인 경지에 있노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것일까? 우리는 일제의 암흑기 속에서 아직도 진리와 자유의 빛을 찾고 있는, 참으로 암울한 그런 상황에 있다 --- 아마 이것을 빗대어서 그렇게 총독부를 뒤로 등지고 북향이 되도록 집을 짓고 거기에 소를 찾는다는 그런 당호를 붙였을 것이다.
최근에는 이런 얘기도 들었다. 석사자(石獅子)로 불리기도 하는 구산 스님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지눌 스님의 가풍을 이어받아 7-80년대에 송광사 방장을 지냈던 분으로 10여년 전에 타계하셨다. 그런데 그 분의 호가 뭔고 하니 파우자(破牛者)였다. 그 스님 얘기가 요즘에는 그냥 키우기만 해서도 안되고 채찍으로 때려서 두들겨 패야 한다는 뜻에서 자기 스스로를 그렇게 부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때 그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친구분이 하는 말이 요즘 세상에는 전두환이나 노태우 같은 사우자(邪牛者)들이 너무 많다고 했단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소라는 것이 그냥 보통 우리가 흔히 보는 동물로서만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그 어떤 정신적인 경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대상, 그런 것으로 소가 상징화되고 있다는 말이다.
팔상도에서 십우도로의 전환
이제 두 번째로 팔상도에서 십우도로의 변화에 담겨져 있는 또 하나의 측면을 살펴보기로 하자. 중국과 한국인들은 대체로 현세적인 경향이 강하다. 그것은 곧 내세에 대한 믿음이 약하다는 말도 될 것이다. 그래서 다음 생에 그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제 부처님의 가르침을 현세적인 차원에서 설명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선불교에서는 열 가지 소를 그려서 깨침의 경지만을 묘사하게 되는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소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다. 이제 선불교에서 정화되어야 할, 깨끗하게 되어야 할 마음이라는 대상은 소로 상징화되게 된다. 처음에 소몰이꾼, 즉 초심자(初心者), 깨닫지 못한 사람은 자기자신을 소와 따로 떨어진 개별적 자아로 간주한다. 그러니까 자기자신을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는 독립적인 실체로서의 자아와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점점 깨달음이 무르익어감에 따라 나라는 주관과 소라는 객관을 구분하는 차별성을 극복하게 된다. 차별성을 뛰어넘어 궁극적 실재와 근본적으로 일치한다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신적인 차원에서 초부, 소몰이꾼은 이 세상 모든 것이 불성(佛性) 혹은 깨달음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을 깨치게 된다. 그리고 깨침의 체험을 일상생활 속의 모든 행위에 연결 지우게 된다. 매 순간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지도 않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지도 않는다. 선불교에서 나무하고 물깃는 데에 도가 있다 라고 말하는데, 매 순간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이 말에 반영되어 있다고 하겠다.
고전적인 인격 완성의 길을 소로 비유했을 적에 흔히 열 가지로 이루어졌다고 하여 완성의 과정 역시 열 단계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런 것은 아니다. 처음에서 일곱번째까지는 단계적인 것이라 치더라도 여덟 번째와 아홉번째 그리고 열번째 이 세 가지는 다른 것들과는 좀 다르다. 그것들은 순차적인 단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완성된 인격이 취할 수 있는 세 가지 시각이라고나 할까. 일단 완성의 경지에 올라서면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이렇게도 볼 수 있다 하는 그런 것 말이다. 따라서 “그중 무엇이 가장 최고의 경지냐?” 하고 묻게 되면 그것은 빗나간 질문이다. 왜냐하면 방금 이야기했지만 세 가지 모두가 마지막까지 올라간 정점에서의 체험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여덟 번째를 강조하고 어떤 사람은 어홉번째를, 또 어떤 사람은 열번째를 강조한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그중 어떤 것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선불교에 대한 인식이 혹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그 어떤 기본적인 방향이 엄청나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열가지의 소 그림 가운데 여덟 번째의 인우구망(人牛俱忘)은 모든 것이 비어있는 공(空)의 세계라는 뜻인데 불교용어로는 진공(眞空)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일원상이라고 해서 본래는 그냥 동그라미만 그렸다. 그 이론을 숭배대상으로 하는 것이 이제 원불교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여덟 번째와 아홉번째 그리고 열번째를 두고 공의 세계다, 유의 세계다, 신의 세계다 하는 식의 표현을 쓰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공과 유라는 대극적인 상태를 상정하고 그중 어느 한편을 선택한다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다. 사실 모두 다 지지고 볶고 하는 이 시끄러운 세상에서 자유롭게 산다는 것이다. 입전수수(入廛⻏ 垂手), 그것은 곧 긴장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생활 바로 그것에 해당한다. 그것이 바로 이를테면 자재(自在)하는 것이다. 자유라는 말을 쓰고 자재라는 말을 방금 썼는데 비슷한 뜻이지만 불교에서는 전자보다는 후자를 선호한다. 산은 산이다 라는 통상적인 인식에서 시작해서, 산은 산이 아니다가 되었다가, 이제 결국 산은 산이다가 되는 것이다.
이제 결론적으로 다시 말하면 여덟 번째와 아홉번째 그리고 열번째에 해당되는 세 그림은 그중 어느 하나만 강조해야 할 성격의 것이 결코 아니다. 이 세 가지 태도가 모두 한데 어우러져야만 아무런 힘을 들이지 않고 세상을 편안하게, 자유롭게 살아가는, 그야말로 고통은 고통으로, 즐거움은 즐거움으로 살아가는 그런 태도가 아닌가하고 생각해 본다.
십우도의 내용
이제 곽암 선사의 제사(題詞)를 중심으로 십우도의 각 부분을 연차적으로 설명하면서 그것이 상징화하고 있는 정신적 행로를 점검해 볼까 한다.
1. 심우(尋牛) : 잃어버린 소를 찾아 필사적으로 헤매는 과정
곽암이 쓴 「십우도송」(十牛圖頌)을 보면, 이 부분에 다음과 같은 제사(題詞)가 붙어 있다 : “아득히 펼쳐진 수풀 헤치고 소의 자취를 찾나니, 물은 넓고 산은 먼데 길은 더욱 험하도다. 힘은 다하고 기력은 지쳐도 소를 찾을 길은 없는데, 숲속 나뭇가지에 매달린 매미울음소리만 들려 오네.”(忙忙撥草去追尋 水闊山遙路更深 力盡神疲無處覓 但聞楓樹晩蟬吟) 그러니까 그림과 함께 시의 이러한 표현은 이 심우가 어떤 경지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다.
2. 견적(見跡) : 소의 발자욱을 보는 과정
잃어버린 소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던 목동은 어느 무렵엔가 소의 발자욱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소의 희미한 흔적을 보며 소는 영원히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이 부분의 시를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 “물가와 나무그늘에 수많은 발자국, 풀이 우거졌으나 이를 헤치고 본다. 비록 이곳이 험한 골짜기라고 할지라도, 요천에 비공이 어찌 그것을 감출 수 있겠는가?”(水邊林下跡偏多 芳草離披見也麽 縱是深山更深處 遼天鼻孔怎藏他)
3. 견우(見牛) : 소를 실제로 보게 과정
그러다가 이제 직접 소를 보게 된다 : “나뭇가지에서 지저귀는 금빛 꾀꼬리, 따스한 햇볕과 부드러운 바람에 언덕의 버드나무는 푸르다. 다만 이것이니 어찌 다시 회피할 것인가? 삼삼한 두각그림으로도 그릴 수 없다.”(黃鶴枝上一聲聲 日曖風和岸柳靑 只此更無回避處 森森頭角晝難成) 여기에 그림하고 관계되는 것으로 서문에 이런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 “물 속의 소금 맛이요 물감 속의 아교러니 눈썹 치켜들고 바라봐도 별다른 물건 아니로다”(顯露水中鹽味色裏膠靑 目乏上眉毛非是他物)
그러나 물에 짠맛이 있으나 보기만 해서는 모른다. 직접 맛을 보아 보아야 그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안다. 색깔만 보아서는 채색의 아교가 있는지 모른다. 직접 그림을 그려봐야 안다. 마치 물 속에 짠맛이 있는 것처럼 우리 안에 소, 즉 불성이 있지만 몸소 그 소를 잡아 봐야 안다는 얘기다 되겠다.
4. 득우(得牛) : 소를 붙잡는 과정
이제 득우에서는 소를 붙잡게 된다 : “온 정신을 다하여 이 놈을 잡았으나, 힘세고 마음 강해 다스리기 어려워라. 어느 땐 고원 위에 올랐다가도 어느 땐 구름 깊은 곳에 들어가 머무는구나.”(竭盡神通獲得渠 心强力壯卒難除 有時纔到高原上 又入姻雲深處居)
여기에서 소를 잡았다 하더라도 소를 부리는 것은 쉽지 않다. 소는 좋아하는 풀을 그리워한다. 야성이 남아 있어 자꾸만 이리저리 날뛴다. 따라서 순리를 얻으려면 코뚜레를 끼우고 채찍을 가해야 한다. 이제 여기 이 득우라는 그림을 보면 소에 코뚜레를 끼워서 소와 씨름하면서 분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철부지 어린 시절에 꼭 필요한 엄한 회초리를 우리에게 연상시켜 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그러니까 선에서 마음가는대로 내버려둔다는 얘기, 막행막식이다느니 무슨 짓을 해도 좋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십우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소를 잡았으면 일단 그 야성을 길들이기 위해 엄격한 수련을 거쳐야 한다는 얘기이다. 이처럼 엄청난 수련과 각고면려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득우와 이어지는 목우에서 표현하고 있다.
5. 목우(牧牛) : 소를 길들이는 과정
“목우 채찍과 고삐를 쉽없이 사용하여 곁에서 떨어뜨려두지 말라. 그대가 한 걸음 한 걸음 티끌로, 더러운 세상으로 들어갈까 두렵다. 그러나 길들여 순화되면 채찍과 고삐에 구애되지 않더라도 스스로 사람을 따르게 된다.”(鞭索時時不離身 恐伊縱步入埃塵 相將牧得純和也 覊鎖無抑自逐人)
일단 어느 정도 테크닉의 수련 과정을 거쳐 테크닉의 완성에까지는 아직 이르지못했더라도 어느 정도 자기 몸에 익숙해지게 되면 코뚜레를 끼지 않고서도 소를 마음대로 부릴 수가 있다. 득우에서 시커멓던 소는 이제 목우에 가면 앞은 하얗고 뒤는 까맣고 하여 반반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목우에서 소몰이꾼은 코뚜레에 꾀여 어느 정도 양순해진 소를 몰고 길들인다. 그러다가 기우귀가에 이르면 코뚜레가 없어지고 소몰이꾼은 소등에 올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니까 이 득우에서 기우귀가로 이어지는 과정이 상징하고 있는 것은 득우를 했다 하더라도 목우를 잘못하면 소를 놓쳐 버릴 수도, 후퇴할 수도,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잘하면 이제 코뚜레를 놓고 소위 동양화에서 가장 흔한 화제, 이렇게 피리를 불면서 콧노래를 부르면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완전히 소가 하얗게 되면, 즉 순치가 된 다음에는 피리를 불고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6. 기우귀가(騎牛歸家) :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
곽암이 기우귀가 부분에 쓴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다 : “전쟁이 이미 끝나 무기를 버리니 얻음도 잃음도 모두 비었어라. 목동들이 노래 부르고, 아이들이 콧노래를 부르네. 태평한 모습으로 몸을 소등에 올려놓고, 눈은 아득한 허공을 바라본다. 불러도 불러도 돌아보지 않고, 잡아당겨도 더 이상 물러나지 않는다.”(干戈已罷 得失還無 唱樵子之村歌 吹兒童之野笛 橫身牛上 目視雲霄 呼喚不回 撈籠不住.)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라는 영화를 보면 이런 장면이 있다. 소가 외양간의 줄을 끊고 나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엔가 어린 동자승이 죽은 어머니를 생각하고 엄청난 가위눌림을 당하면서 악몽을 꾸는 그런 장면이 나온다. 그 순간에 소가 저절로 자기 외양간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 어렴풋하게 오버랩 되어 나타난다. 세 스님의 그 수행 과정과 소가 왔다갔다 하는 장면이 겹쳐서 나타나는데, 여기에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일까?
언젠가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다닌다는 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리곤 다짜고짜 “선생님! 어째서 소가 쓸데없이 들락날락하는 겁니까?” 하고 묻는 거였다. 그런데 그게 쓸데없지가 않다. 영화에는 세 스님이 등장하고 있다. 꼬마동자승, 그 다음에 중간승, 그리고 노승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그 스님들의 정신적인 갈등의 과정을 소에 비유해서 배용균 감독이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십우도, 목우도 가지고는 되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소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농업사회가 다 지나간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뒷배경 삼아서 언뜻언뜻 던져 주고 지나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십우도에서 그리고 있는 정신적인 성숙의 과정을 오늘날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 것인지는 이제 독자들의 몫이다.
7. 망우존인(忘牛存人) - 소는 잊었지만 사람은 남았다
소는 잊었지만 사람은 남았다는 것은 아직은 어떤 주관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자! 이 부분의 제사를 한번 보기로 하자 :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니 소는 없어지고 사람은 한가롭네. 해가 석자나 떴는데 늦잠을 잘 정도로 꿈을 꾸는 것 같구나. 소용없는 채찍은 초당 속에 던져두도다.”(騎牛已得到家山 牛也空兮人也閑 紅日三竿猶作夢 鞭繩空頓草堂間) 소가 없는데, 채찍이 무엇 때문에 필요하겠는가. 백묘법이 어떻다, 육법이 어떻다 해서 그림을 그리는 데에도 여러 가지 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일단 테크닉이 완성되고 나면 무슨 기법을 따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아마 그 정도 경지에 올라서면 테크닉 같은 것은 모두 다 던져두고, 자기 스스로의 어떤 경지만이 남게 될 것이다. 망우존인은 바로 그런 경지를 상징화한 것이다.
8. 인우구망(人牛俱忘) : 사람과 소를 모두 잊었다
그러다가 자기자신마져도 잊어버리고 놓아 버리면 어떻게 될까. “채찍과 고삐, 사람과 소 모두 비어 있으니, 맑고 푸른 하늘 멀고 넓어 소식 전하기 어렵구나. 끓는 솥에 어찌 흰눈이 남아 있겠는가? 이 경지 이르러야 선의 뿌리와 하나가 되는도다.”(鞭索人牛盡屬空 碧天寥廓信難通 紅爐焰上爭容雪 到此方能合祖宗) 사실 그렇다. 끓는 솥에 흰눈이 남아 있을 수가 없듯이 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선의 뿌리와 하나가 된다. 영원의 상 밑에서 모든 것을 똑같은 눈으로 바라본다고 얘기를 하지만, 모든 차별상을 떠나 모든 것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그런 경지, 기독교적 신비주의식으로 말하자면, 절대자인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그런 경지가 되겠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사실 평등만 가지고서는 어떤 구체성을 띨 수가 없다. 흔히 공에 빠졌다[滯空]느니 단공이니 하는 이런 표현을 써서 경계하기도 하지만, 이 인우구망의 경지에 빠져서도 안된다. 이 경지에 빠진다는 것은 그러니까 기독교식으로 얘기하면 초월자와 하나가 되어 다시는 이 세상과 교섭이 없는 그런 상태가 될 것이고,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공속에 묻혀서 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어 버리는 그런 상태를 얘기할 것이다. 초월의 함정, 평등의 함정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헤어나야 되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경지에서 그냥 떨어지고 추락하고 만다. 나는 이제 도통했다, 이 세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 위험을 동시에 안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인우구망의 경지이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을 평등하게 보면서도 거기에 빠지지 않고 고통은 고통으로 알고 기쁨은 기쁨으로 안다 라는 것이 반본환원(返本還源)이다.
9. 반본환원(返本還源) : 근원으로 돌아가 돌이켜 보다
“근원으로 돌아가 돌이켜 보니 기울인 노력도 헛되도다. 차라리 당장에 귀머거리나 벙어리 같을 것을. 암자 속에 앉아 암자 밖 사물을 인지하지 않나니, 물은 절로 아득하고 꽃은 절로 붉도다.”(返本還源已費功 爭如直下若盲聾 庵中不見庵前物 水自茫茫花自紅) 있는 그대로 공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만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그런 마음가짐을 지니는 것, 바로 그것이 반본환원이다.
10. 입전수수(入廛⻏ 垂手) : 저자거리에 들어가 손을 드리우다
바로 이 두 가지, 즉 진공(眞空)과 묘유(妙有)의 세계가 한데 어울려 촉매 작용을 일으켰을 적에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일까? 다시 제사를 보자 : 깨달은 사람, 인격이 완성된 사람은 “가슴을 헤치고 맨발로 거리에 선다. 흙을 바르고 재투성이지만 얼굴 가득 웃음이라. 신선의 비결을 쓰지 않아도 바로 가르쳐 마른나무에 꽃을 피게 하는구나.”(露胸跣足入廛⻏ 來 抹土塗灰笑滿지思頁 不用神仙眞秘訣 直敎枯木放花開) 자기 스스로 신선의 비결은 갖고 있지만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바로 가르쳐, 즉 내 마음속에 있는 본래의 품성을 가르쳐서 마른나무에 꽃이 피게 한다는 것이다.
소의 비유가 아니더라도 인도 사람들은 일찍이 이 경지를 연꽃에 비유하였다. 깨달은 사람, 완성된 사람의 경지는 흙탕물 속에 있으면서도 그것에 물들지 않고 깨끗한 꽃을 피우는 그런 연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연꽃의 비유가 정적인 비유라면, 입전수수는 시끄러운 저자거리에 들어가서 손을 늘어뜨리고 세상사람들과 한데 어울린다는 것이니 상당히 동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원래는 ?노자?(老子)에 나오는 말로서 우리자신의 날카로운 빛을 어눌하게 숙이고 티끌과, 즉 중생과 더불어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서른 다섯에 깨닫고 나서 45년동안 일반세속인과 어울려 그들과 함께 뒤섞여 살면서 자기가 발견한 길을 전파했다고 한다. 앞서 지적했지만 망우존인한 형태로부터 입전수수까지는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화광동진하는 경지는 텅빈 것을 보고 평등하게 보면서도 동시에 차별상을 보는, 다시 말해서 공과 유를 동시에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 이후 45년 동안 석가모니의 삶이었던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불교계에 돈오점수(頓悟漸修)니 돈오돈수(頓悟頓修)니 해서 돈점논쟁이라는 것이 있다. 혹시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몰록’이란 말을 들어보았을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안 쓰는 말이니까 뜻이 불분명하지만, 중세의 국어로 다할 진을 뜻하는 ‘몰쑉’과 문뜩을 뜻하는 ‘모로기’가 아마 그 어원이 되지 않나 생각됩니다. 한꺼번에, 투게더(together), 올 오브 어 써든(all of a sudden) 써드니(suddenly) 정도의 뜻에 해당합니다. 이런 의미들을 아마 한데 합쳐서 ‘몰록’ 이렇게 쓴 것 같은데, 한꺼번에, 모두 다 평등하게 보면서도 차별적인 것을 동시에 보는 것 속에 보살행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되겠다.
이제 끝으로 지금까지 장을 바꾸어 가면서 길게 한 이야기를 정리해 보기로 하자. 우리는 지금껏 인격의 완성이라는 문제를 큰 주제로 하여 대웅전 사방 벽에 그려진 두 종류의 그림, 팔상도와 십우도를 고찰해 봄으로써 불교에서 바라볼 경우 인격 완성이라는 문제가 어떻게 얘기될 수 있겠는지를 살펴보았다. 흔히 우리는 출세(出世)를 권세, 재물, 명예를 소유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출세의 본의(本意)는 세간을 떠났다는 것으로 불교 용어이다. 그렇다면 석가모니의 출세는 어떻게 가능했던가? 석가모니의 생애는 여덟 장면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이들중 출가와 성도라고 하는 두 가지 계기를 통해서 고타마 싯다르타의 성인(成人), 즉 사람됨의 과정을 살펴볼 수가 있다. 그리고 더불어 거기에서 우리는 출세로 대별되는 불교적 초월의 두 가지 차원을 확인하게 된다.
첫 번째로 어여쁜 처자식을 떠나는 것을 배경으로 하여 궁극적인 진리를 찾아 설산으로 향하는 장면이 있었다. 여기 이 처자식을 떠나 설산으로 향한다는 것 속에서 우리는 출세의 배경적인 설명 하나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틀에 박힌 상투적이고 반복되는 일상적인 세계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제 초월의 첫 번째 차원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 장면으로 도를 이루어 인간 싯다르타가 성자 석가모니가 되는 성도의 계기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집을 떠나는 출가라는 것이 시작이고 도를 이루었다는 성도라는 것이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도 이후 열반에 든 석가모니는 세상을 버렸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성도 후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와 무려 45년 동안 이 세상에 머물면서 고통 속에 있는 중생으로 하여금 깨칠 수 있도록 설법하고 구제하는 보살행을 보였다. 즉 세상을 떠난 존재가 아니라 세상 속의 존재로 남은 생을 살았던 것이다. 바로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옴, 이것을 초월의 두 번째 차원으로 우리는 지적할 수 있겠다.
바로 이 초월의 두 가지 차원, 그것이 한데 어우러진 것이 소위 깨달은 사람의 모습일 것이다. 실제로 팔상도를 통해 알 수 있는 바, 석가모니는 세상을 떠났으면서도, 즉 출세(出世)하였으면서도 재세(在世)하는 인물의 전형이다. 또한 동아시아 선불교의 정신을 담고 있는 십우도의 인우구망, 반본환원, 입전수수로 이어지는 그 경지 역시 다름 아닌 세상을 떠났으면서도 다시 이 세상으로 되돌아온다는 그러한 이미지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격 완성에 대한 불교적 가르침의 구조는 어떻게 성립하는 것일까? 자기자신의 집착과 욕심을 벗어나서 인격을 완성하자는 불교의 가르침, 그 핵심을 이제 네 가지 명제로 요약해 볼까 한다. 이를 통해 필자는 깨달음의 철학, 불교 철학 전반을 꿰뚫고 있는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여러분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그 첫째 명제는 다음과 같다 : 대부분 속세의 중생들은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자아를 고집하는 근원적 무지 때문에 생과 사가 반복하는 윤회의 고통을 받는다. 즉 윤회는 윤회하는 주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 때문에 윤회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곧 고통의 현실에 대한 일종의 원인 진단이다.
그런데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자아라는 것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관념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이 두 번째 명제에 해당한다. 관념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의미에서 ‘가’(假)라는 표현을 보통 쓴다. 한자 ‘假’에는 주목할만한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예컨대 가명(假名), 가상적(假想的) 인물 할 때의 假로, 이때는 실제와는 다르거나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꾸며낸 이름, 인물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 경우에는 가위(假僞), 즉 픽션, 허구, 거짓이라는 뜻이 강하게 풍겨 나온다. 개별적인 자아라는 것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것은 허구, 거짓이다. 둘째로 가건물(假建物)의 경우를 보자. 가건물이란 없는 건물을 뜻하지는 않는다. 임시적으로 잠시 지어 놓은 건물을 아마 말한다. 이 경우에는 무엇인가가 있기는 있는데, 그것이 임시적인, 변통적인 그런 것이라는 뜻이 강하다. ‘나는 어떻다’ 라고 말할 때 화자의 ‘나’는 분명 있다. 그러나 그 ‘나’는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집착된 마음이 만들어 낸 고정 관념의 형태로 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假, 즉 임시적으로 있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나’를 얘기할 때 예를 들어 개체의 고유 유전자나 지문처럼 자기자신에게만 독특한 그 무엇을 얘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그런 의미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런 순수 자연적인 고유함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는지는 몰라도, 흔히 ‘나’라는 말로 표현되는 것은 그런 것은 아니다. ‘나’라고 할 때 보통은 즐겁거나 괴로움을 겪는 나, 사랑하고 미워하는 나, 먹고 마시고 하는 나, 이런 나를 말하며, 이런 ‘나’라는 관념이 문제를, 고통을 일으킨다. 이것이 假라는 것은 이제 그것은 하꼬방, 즉 가구물(假構物)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바로 가건물, 가구물이기 때문에, 그것은 역으로 버릴 수가 있다. 그것을 버린다는 것을 흔히 초월이라고 한다. 픽션으로서의 자아는 버릴 수 있다,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두 번째 명제가 던지는 비전, 즉 세 번째 명제에 해당합니다.
이제 픽션으로서의 자아,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자아라는 관념 그것을 버리는 것, 그것을 초월하는 것을 두고 ‘깨친다’느니 ‘도를 얻었다’느니 하는 말로 표현한다. 그러니까 불교에서 깨친다는 것의 의미는 집착심, 이기적인 자아라는 관념은 본래 그림자, 픽션, 가구물일뿐이라는 바로 이 법성(法性)을 밝히는 데에 있다. 이것이 바로 네 번째 명제에 해당한다.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픽션으로서의 자기를 깨뜨려 버렸다는 말이다. 남과 독립되어서 홀로 서 있다는 개별적 자아 관념, 이것으로부터 벗어난, 초월한 의식! 이때 이 의식은 나라는 의식이 아니다. 다만 의식 자체일 뿐이다. 그런 의식을 통해서 일체 자연계와의 완전한 조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입전수수, 즉 자기도 버리고 전부다 버리고 모든 것과 한데 합쳐지는 그런 깨달음의 경지, 실천의 경지인 것이다.
이런 철학적인 논변이 다소간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보다 쉽게 접근을 해서, 이런 가르침으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어떤 심리적인 측면으로부터 조망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자기, 이기적인 자기를 벗어난다’ 라는 자아 초월의 첫 번째 목표는 다름 아닌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흔히 괴롭다고 느낀다 할 때 그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자기 중심적 사고, 자기 중심적 행위 때문이 아닌가? 자기 중심적 사고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자기자신과 타인 그리고 이 세계 일반을 있는 그대로, 그것 그대로 볼 수 없다. 그런 사람은 보통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골라서 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럴수록 계속해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이것이 말하자면 생사 윤회, 고의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극복할 수 있다. 이기적 생각과 이기적 행위들은 본래적인 자아보다는 자기 중심적 자아, 즉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집착하려 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는 역설적으로, 깨달아야 할 대상, 벗어나야 할 대상은 이 세상에 없노라고 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대상은 외재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구성해 낸 관념인 것이니까 말이다. 자기 초월이라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내어서 그 안에 자기가 갇혀 있는 틀, 즉 집착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자기 초월의 과정은 관점의 변화에서 오는, 눈을 달리 하는 인식의 전환인 것이지, 자기의 존재가 무슨 달 같은 특별한 그 무엇으로 바뀌는 그런 과정이 아니다. 자기 중심적 세계에 자기 스스로 빠져 있는 바로 그 관점, 그것을 바꾸는 것이다.
따라서 깨친 사람의 마음은 관점이 없는 마음, 항상 비어 있는 마음, 그러면서도 바로 비어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런 마음이다. ‘비어있다’느니 ‘공하다’느니 라고 말할 때 이 말은 꽃병이 비어있다 라는 식으로 마음이, 심장이 텅 비어있는 그런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기 중심적 사고 방식에서 벗어남을 뜻한다. 자기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난 이런 의식을 통해서만이 개별적인 인간은 전체 우주와 하나가 될 수 있다. 비어있음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우리는 가득찬 삶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할까. 우리가 특정한 대상에 온 의식을 집중할 적에 우리는 그 대상과 하나가 된다. 이것이 우리의 의식의 특성이다. 그러나 자기중심적인 인간은 그 의식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어느 대상에 관심을 집중시킬 수가 없다. 자아에 대한 관념이 텅 빈 것임을 경험한, 깨친 사람이라야만, 오직 그런 자만이 자기가 바라보고 있는 대상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자유로운 의식을 획득한다. 텅빈 자아를 통해서 넓게 열린 무제약적 자유의 세상을 체험하는 것이다.
2,500년전, 석가모니가 살던 당시에는 출가, 즉 집떠남이라는 것이 있어야만 소위 자기 운신의 폭을 넓힐 수가 있었던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요즘에는 집, 가정이라는 것을 떠난다는 것보다는 일단 어떤 하나의 전문 분야에 들어가는 것, 이것이 말하자면 출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다 똑같은 조건이 되는 것이고, 출가를 이제 미술가 집단이라든지 철학자 집단이라든지 하는 그 어떤 전문가 집단에 입문하는 것 정도로다가 요즘에는 생각할 수 있겠다는 얘기다. 이런 식으로 해석한다면, 오늘날에도 어떤 식으로든 출가의 계기는 필요하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술대학을 나와 미술가가 되었다거나 유학까지 마치고 철학박사가 되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예술가, 철학자로서 일가를 이루었느냐 하면, 그것도 결코 아니다. 우리가 ‘자수성가’다, ‘일가를 이루었다’ 라고 할 적에는, 사실 어느 집단에 소속하고 있느냐 라는 것을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합당한 그 어떤 도를 이루었느냐, 이것이 이제 문제가 될 것이다.
도라는 말이 사실 너무 막연한 말이기는 하지만, 예술의 경우도 그렇고 학문의 경우에도 그렇고 나는 어떤 스타일이라고 본다. 자기 나름의 어떤 격이라고나 할까. 바로 그런 스타일을 완성하는 것, 그것이 여러분 도를 이룸, 즉 성도(成道)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보면 어떤 사람이 도를 이루었다 할 적에 그 말은 그 사람은 자기 나름의 독특한 인생의 스타일을 완성한 사람이다 라는 말이 되겠다. 대부분 우리들은 그저 모방을 하고 흉내만을 내죠. 그런데 흉내내지 않고 자기 것을 하는 것, 이것을 성도라고 말해도 그리 막된 말은 아니 듯 싶다. 그리고 성도를 위해서는 아마 두 가지 과정이 필요하겠다. 첫째 과거의 모든 테크닉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엄청난 수련의 과정, 그리고 둘째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그 테크닉과 자기가 하나가 되어 자유롭게 그 어떤 자기만의 스타일을 개척해 가는 것 말이다. 이것을 이루게 되면, 이제 누구에게나 성도의 그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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