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철학

4종성(四種姓) 제도에 대한 붓다의 태도와 암베드까르의 해석

수선님 2019. 12. 15. 12:02

4종성(四種姓) 제도에 대한 붓다의 태도와 암베드까르의 해석

[인도철학회 탑재 논문]

우명주/*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 강사. greeni1506@hanmail.net


1) Ⅰ들어가는 말.

Ⅱ 4종성 제도에 대한 붓다의 견해: 암베드까르의 해석.

Ⅲ 4종성 제도에 대한 붓다의 견해.

Ⅳ 맺는 말.


요약문 [주요어: 암베드까르, 달리뜨, 4종성 제도, 평등사상, 개종]

암베드까르(B. R. Ambedkar)는 근대 인도의 실질적 불교 부흥 운동과 달리뜨(Dalit) 해방운동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달리뜨들의 사회적·경제적 상황의 개선과 정치권력의 쟁취를 통해 당시 인도사회에서 달리뜨들이 겪고 있던 부당함과 핍박을 극복하고자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그는 개종이라는 종교적 방식으로 달리뜨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했다.


달리뜨들을 위한 새로운 종교의 선택에 있어서 그가 가장 비중을 두고 고려한 요소는 평등이었다. 그의 개종결심을 촉발시킨 것이 바로 카스트 제도에서 기인한 부당함과 불평등에 대한 반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암베드까르는 붓다의 가르침이 카스트 제도를 반대하고 평등을 지지하는 진리라고 판단하고 불교로 개종했다.


자신의 저서, 「붓다와 그의 가르침」(The Buddha and His Dhamma)에서 암베드까르는 붓다가 카스트의 가장 큰 적이자 가장 확고하고 오랜 평등의 지지자였다고 주장하며 매우 적극적으로 카스트 제도를 반대하는 사회혁명가로 붓다를 묘사한다. 그러나 초기 경전을 살펴보면 붓다는 세속의 카스트 제도 존재 자체에 대해 비난하거나 그것의 철폐에 대해 역설하기 보다는 카스트를 중시하지 않는 새로운 사회로의 편입, 즉 출가수행을 장려하고 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사회인 자신의 교단내에서 카스트가 없는 평등한 사회를 구현했다. 즉 붓다가 역설했던 평등은 모든 중생이 수행에 있어 카스트와 상관없이 같은 가능성을 가지고 궁극적으로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종교적 평등이었던 것이다.


I. 들어가는 말


현대 인도에서의 불교부흥운동의 중심인물은 암베드까르(B. R.Ambedkar) 박사이다. 그는 오랜 기간 인도에서 핍박을 받아온 달리뜨(Dalit)1)들의 지위 향상을 위해 일생을 노력하다 힌두교 안에

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개종을 결심했다. 이후 여러 종교에 대한 긴 모색 끝에 그는 불교를 달리뜨들의 새로운 종교로 선택했다. 그러나 그의 달리뜨 해방운동이 처음부터 종교적 해

결책을 모색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달리뜨들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의 개선과 정치적 권력의 쟁취를 통해 인도사회에서 달리뜨들이 겪고 있던 부당함과 핍박을 극복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여러 조직을 결성하여 식수(食水) 이용이나 사원 입장의 권리를 쟁취하려는 사회적 운동을 벌이기도 했고 달리뜨들을 위한 분리선거구 배정 등을 위한 정치적 활동 등을 하기도 했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에 암베드까르는 달리뜨들의 해방을 위해 외부의 개혁, 즉 사회적, 정치적, 제도적 개혁을 위한 노력과 더불어 내부적 개혁, 즉 달리뜨 스스로의 정신적 변화를 도모하게 되었던 것이다. 암베드까르와 달리뜨 문제에 대해 이견 차이로 충돌했던 간디가 기존의 사회적 구조 안에서 달리뜨 문제의 해결책을 구상하려고 했다면 암베드까르는 그 사회적 구조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그것을 새로운 종교를 통해 이루려고 했던 것이다.

1) 한때 불가촉천민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던 이 계층에 대한 인도정부의 공식명칭은

지정카스트(Scheduled Caste)이다. 본고에서는 이 계층의 사람들이 본인들을

지칭할 때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달리뜨(Dalit)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1935년 10월 13일 예올라(Yeola)에서 “힌두로 태어났지만...힌두로 죽지는 않겠다”는 힌두교 포기선언을 한 암베드까르는 매우 오랜 시간에 걸쳐 달리뜨들을 위한 새로운 종교를 물색했다. 1950

년 9월 29일의 연설에서 남은 생애를 불교의 부흥과 보급에 바치겠다고 선언하며3) 불교로의 개종을 공식화했고 1956년 10월 13일 나그뿌르(Nagpur)에서 열린 대규모 개종식을 열고 계(戒)를 받아 불교도가 되었다.


그의 저서 「붓다와 그의 가르침」(The Buddha and His Dhamma)은 불교에 대한 그의 탐색을 잘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그는 ‘신불교도(Neo-Buddhist)’라고 불리는 달리뜨 출신 불자들을 위한 불교교리서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이 책을 저술했다. 이 책에는 그의 종교관, 불교관, 붓다관, 그리고 다소 독창적인 그의 불교해석 등이 잘 드러나 있다. 본고에서는 이 책을 중심으로 그가 자신과 달리뜨들의 새로운 종교로 불교를 선택하게 한 이유 중 하나인 붓다의 평등사상, 특히 붓다가 당시 사회의 4종성(四種姓)제도에 대해 어떤 입장을 견지했는지에 대한 그의 해석과 초기경전에 말하고 있는 4종성 제도에 대한 붓다의 견해를 비교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Ⅱ. 4종성 제도에 대한 붓다의 견해: 암베드까르의 해석


1. 암베드까르의 평등사상

예올라에서 힌두교 포기선언을 한 다음해 있었던 연설에서 자신이 힌두교를 떠난 이유를 설명하며 암베드까르는 힌두교에는 인간의 향상을 위해서 필요한 연민, 평등, 자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마하보디협회(Maha Bodhi Society)에서 발간하는 저널에 기고한 붓다와 그의 종교의 미래 (Buddha

and the Future of His Religion)라는 글에서도 그는 자신이 바라는 종교의 조건을 밝힌 바 있다. 그 글에서 그는 종교가 살아남으려면 과학의 다른 이름인 이성과 일치해야 하며 종교의 도덕적 규범에는 자유, 평등, 우애의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1956년 5월, ‘나는 왜 불교를 좋아하며 현 상황에서 불교가 어떻게 세계에 도움이 되는가(Why I like Buddhism and how it is useful to

the world in its present circumstances)’라는 제목의 BBC(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 방송과의 대담에서도 암베드까르는 “다른 종교에는 없는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하기 때문에 나는 불교를 선호한다. 불교는 지혜, 사랑, 평등을 가르친다. 이것은 선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인간이 원하는 것이다. 신이나 영혼은 사회를 구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그가 힌두교를 떠난 이유에서도, 바람직한 종교의 조건에 있어서도, 그리고 마침내 그가 선택한 불교의 장점에 있어서도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바로 평등이다. 당연히 그의 새 종교 선택에 있어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요소 또한 분명 평등이었을 것이다. 그의 개종결심을 촉발시킨 것이 바로 카스트 제도에서 기인한 부당함과 불평등에 대한 반감이었기 때문이다.


암베드까르는 불평등은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지만 불평등을 공식 원리로 가르치고 있다는 점에서 브라만교(Brahmanism)의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들의 사상은 평등에 반대하고 있으며 브라만교의 사회적 질서는 이기적이거나 잘못된 철학적 토대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 암베드까르가 생각한 브라만교의 문제점이었다. 출생에 의해 사회적 계급이 결정되고 아무리 나쁜 행동을 해도 높은 계급이 낮아지지 않으며 선행을 해도 계급이 높아지지 않는 사회 안에서는 인간의 가치나 성장이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암베드까르는 지적했다. 또한 암베드까르는 만약 생존 경쟁에서 불평등이 경쟁의 법칙으로 인정되면 가장 약한 이들이 언제나 뒤처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 적자생존의 법칙에 있어서 적자(適者)들이 언제나 최선의 존재들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적자가 아닌 최선의 사람들이 살아남는데 평등함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암베드까르의 생각이었다.


개종을 결심한 후 암베드까르는 불교 외에도 여러 종교를 탐색했으나 결국 그 종교들로 개종하지는 않았다. 정치적 이유 등도 있지만 그 종교 안에서 힌두교와 유사한 차별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뱅갈(Bengal) 지역의 1901년 인구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이슬람교 안에서도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와 동일한 차별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자료를 통해 인도의 이슬람교 안에는 카스트 제도 뿐만 아니라 천민제도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고 암베드까르는 인도의 무슬림 사회는 힌두 사회와 같은 사회적 악에 시달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이슬람교에서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탄압은 힌두들의 사회악보다 더 나쁘다고까지 판단했다. 또한 그는 1937년 12월 31의 기독교인들을 향한 연설에서는 남인도의 기독교인들이 교회에서 카스트 제도를 유지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기독교 역시 카스트 차별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지적했다. 또한 타밀나두(Tamil Nadu)의 달리뜨 단체는 암베드까르에게 기독교 선교사들이 기독교인들 사이에서의 카스트 관련 차별을 묵인하고 있다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결국 암베드까르는 출생에 따라 신분에 차등을 두는 당시의 관행을 비난하던 붓다의 가르침에서 자신이 원하던 종교의 모습을 발견하고 불교로 개종했다. 그에게 있어 붓다는 평등함을 설하지 않는 종교는 믿을 가치가 없다고 역설한 인물이었다. 불교는 달리뜨 해방이라는 암베드까르의 목표에도 부합하고 그가 생각하던 바람직한 종교상에도 일치하는 종교, 즉 힌두교에는 부재한 요소인 ‘평등’에 기반을 둔 종교였던 것이다.


2. 암베드까르가 이해한 붓다의 평등사상

암베드까르는 붓다와 그의 가르침에서 붓다가 4종성 제도에 대해 어떤 입장을 견지했는지를 보여주고 붓다의 교단에는 모든 사람들이 계급과 상관없이 입단할 수 있었고 입단 후에도 그들 사이에 출생 신분에 기인한 차별이 없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여러 경전의 내용들을 언급한다. 암베드까르가 4종성 제도와 관련한 붓다의 가르침을 설명하기 위해 인용한 내용들은 『앗쌀라 야나 숫따』(Assalāyana Sutta), 『에쑤까리 숫따』(Esukāri Sutta), 『바셋따 숫따』(Vāseṭṭha Sutta), 『앗간냐 숫따』(Aggañña Sutta), 『바살라 숫따』(Vasala Sutta)에서 찾을 수 있다.


처음 암베드까르는 자신들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브라만(Brahman)들의 주장을 붓다가 어떻게 반박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브라만 앗쌀라야나(Assalayana)는 브라만만이 우월한 계급이고 다른 계급들은 열등하며, 브라만은 희고 다른 계급들은 검으며 브라만만이 청정하고 다른 계급들은 그렇지 않으며 브라만은 범천의 아들이고 자손이고 피조물이며 그의 입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이 말을 들은 붓다는 브라만의 아내들도 다른 계급의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잉태하고 출산한다는 것과 모든 계급의 사람들이 도덕과 사랑을 함양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그의 말은 논리에 맞지 않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인도와 계급제도의 형태가 다른 나라들을 언급하면서 4종성 제도가 이상적인 제도라면 왜 더 보편화되지 못했는지 의문을 표한다.14) 그리고 붓다의 제자가 된 브라만 바셋따(Vasettha)가 브라만의 우월성을 내세우는 다른 브라만들에게서 최고의 지위를 버리고 머리를 깎고 세상을 버리고 검은 피부를 가진 하위 계층과 어울린다고 비난받는다는 사실을 듣고서 붓다는 역시 브라만 계급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하며 그런 말이 어떤 근거도 없음을 지적한다.15)

14) Ambedkar(2001) pp. 302-303. MN Vol. Ⅱ, pp. 147-157. 참조.

15) Ambedkar(2001) pp. 303-304. Sn, pp. 115-124. 참조.


그리고 브라만 에쑤까리(Esukari)가 종성(種姓)에 대해 붓다에게 세가지 질문을 한 내용도 언급된다. 브라만은 최상의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봉사하지 않아도 되고 다른 카스트들은 브라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태어났으며 상층 계급은 하층 계급에게 봉사를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대한 견해를 묻자 붓다는 봉사가 좋고 나쁜 것은 계급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봉사가 초래하는 결과에 달린 것이라고 한다. 즉,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봉사를 해야 하고 그런 봉사가 좋은 봉사이며 나쁜 결과를 가지고 온다면 그 봉사는 할 필요가 없으며 나쁜 봉사가 되는 것이다. 선조나 혈통이 인간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는 같은 불이 그 재료에 따라 장작불이나 건초불 등으로 불리듯이 태생은 인간의 계급적 명칭을 정할 뿐 선함과 악함, 고귀함과 천함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며 고귀한 태생이 선량한 인간을 보장하는 것도 아님을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에수까리가 각 계급에게 직업이 정해져 있으며 자신의 직업을 버리고 다른 일에 종사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브라만들의 주장에 대해 묻자 붓다는 세상 전체가 이 브라만들의 분류와 일치하지 않음을지적하고 중요한 것은 높은 이상이지 높은 출생이 아니라고 말한다.16)

16) Ambedkar(2001) pp. 301-306. MN Vol. Ⅱ, pp. 177-184. 참조.


붓다를 천민(vasala)이라고 부른 브라만 악기까(Aggika)의 이야기도 언급된다. 붓다는 악기까에게 사람들을 미워하고 가혹하게 대하고 비방하고 속이는 자, 살생·투도·망어·사음을 하는 자,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모르는 자,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 자 등이 천민이라고 하면서 출생이 아닌 행위에 의해서 천민이 되는 것임을 설한다.17)

17) Ambedkar(2001) pp. 306-308. Sn pp. 21-25. 참조.


또한 암베드까르는 붓다의 교단이 신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었음을 보여주기 위해 여러 하층민들의 출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천민이었던 소빠까(Sopaka), 청소부였던 수니따(Sunita), 묘지기였던 숩삐야(Suppiya), 도공(陶工)이었던 다니야(Dhanniya), 거지였던 깝빠따꾸라(Kappata-Kura) 등이 어떻게 출가하게 되었는지 책에서 잘 설명되어 있다.


암베드까르는 승가(僧伽)의 입문을 다루는 장에서도 승가 내에 계급에 근거를 둔 차별이 없었음을 특별히 강조했다. 여기서 그는 8가지 승가의 성격을 서술하는데 거의 모든 내용이 카스트와 관련된 것들이다. 그가 언급한 조항은 승가는 모든 이들에게 개방되었고 카스트의 제한, 성별의 제한, 지위의 제한이 없었으며 승가 내에는 카스트가 없었고 모든 이가 평등했으며 승가 안의 위계는 출생이 아닌 사람의 가치에 따른다는 것이다.18)

18) Ambedkar(2001) p. 415.


암베드까르가 「붓다와 그의 가르침」에서 언급한 경전 속에서 붓다가 사성평등을 강조하는 방식은 논리와 이성에 기초하고 있다. 붓다는 브라만들의 우월성 주장에는 생물학적으로도 논리적으

로도 모순이 있으며 브라만적 계급질서가 전 세계에 보편적으로 적용되지도 않음을 지적함으로써 브라만들을 논박한다. 또한 자신의 인간평가의 기준은 계급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위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점들을 언급하며 암베드까르는 붓다를 “카스트의 가장 큰 반대자이자 가장 오래되고 가장 확고한 평등의 지지자”라고 표현했다.19) 그리고 붓다는 “카스트도 없고, 불평등도

없고, 우월함도 없고, 열등함도 없이 모두가 평등하다20)”는 생각을 가졌으며 4종성(四種姓,

Chaturvarna)에 반대하고 강제적이고 독단적으로 계급이 구성되는 수동적인 사회가 아닌 열리고 자유로운 사회를 선호했다21)고 주장했다. 계급에 따른 차별이 정당화 되는 사회는 개선될 수가 없고 종식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붓다의 생각이었다는 것이다.22)

19) Ambedkar(2001) p. 302.

20) Ambedkar(2001) p. 306.

21) Ambedkar(2001) p. 90.

22) Ambedkar(2001) p. 92.


주목할 점은 모든 사람이 예외없이 자신의 행위에 따른 과보를 받는다는 점에서 평등이론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업(業) 이론을 암베드까르는 오히려 상위 계급들이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시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붓다 역시도 업 이론은 브라만들이 다른 계급들의 반항을 철저히 차단하기 위해 고안한 것으로 보았다고 주장하며 업 이론은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고 착취하기 위한 술책이며 하위계층들이 불평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개인의 잘못으로 돌림으로써 변화를 추구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23) 따라서 업 이론은 불교를 힌두교와 비슷하게 만들려는 의도를 가졌거나 불교를 잘 모르는 사람에 의해 생겨난 이론이며 사회나 국가가 억압받는 계층의 상황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의도로 만든 사악하고 비인간적이며 불합리한 교리라는 것이 암베드까르의 주장이다.24)

23) Ambedkar(2001) pp. 90-91.

24) Ambedkar(2001) pp. 343-4.


암베드까르는 선업이 좋은 과보를 가져오고 악업이 나쁜 과보를 가져온다는 것에는 동의하면서도 붓다가 과거의 업이 상속된다는 주장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에 다르면 붓다의 업 이론에서 업에 따라 과보를 받는 것은 현재의 삶에서만 적용되며 현재의 삶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현재의 삶이 과거의 업과 관련된 것이라는 업 이론은 모든 것이 과거의 행위에 의해 결정되므로 인간의 노력에 어떤 여지도 남겨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악한 교리”라고 그는 주장했다.25)

25) Ambedkar(2001) pp. 338-340.


이런 주장은 인간의지로 인해 과보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보지 못하고 업 이론을 지나치게 숙명론적인 관점에서 해석한 결과로 풀이된다. 또한 달리뜨들의 고통의 원인을 상위 계급으로부터의 핍박에서 찾았던 암베드까르에게 있어서 업 이론은 오히려 핍박받는 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사회제도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이 사회에 문제제기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가혹한 교리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대로 현생에서의 업이 내생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달리뜨들에게도 선업의 결과인 개선된 내생도 보장될 수 없으며 그들을 억압한 상위 계급들도 그들의 악업에 대한 결과를 전혀 받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업 이론을 부정하기 보다는 상위 계급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달리뜨들을 억압할 자격이 없으며 그런 악업은 결국 그들에게 나쁜 결과를 초래할 것임을 지적하여 태도변화를 이끌어내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할 수 있다.


Ⅲ. 4종성 제도에 대한 붓다의 견해


1. 상가(saṅgha)에서의 4종성 제도

붓다의 교단 내에서는 출신에 따른 차별이 없고 붓다는 모든 계급이 평등하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은 당시 교단 외부의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다. 앗쌀라야나 숫따에서는 브라만들이 모여 “수행자 고따마(Gotama)는 모든 종성의 평등에 관하여 말했다26)”고 하면서 이 문제에 관해 붓다와 토론할 만한 상대로 앗쌀라야나(Assalāyana)를 지목한다. 이에 앗쌀라야나가 붓다를 찾아가 이 문제에 관해 질문하고 붓다가 그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이 이 경의 주요 내용이다.

26) Ayaṃ kho samaṇo Gotamo cātuvaṇṇiṁ suddhiṁ paññpeti. MN Vol.Ⅱ, p. 147.


승가의 일원이 된 이후에 승려들은 교단 내에서 종성에 따른 구별로부터 자유로웠다. 그들 사이에 어떤 수직적 질서가 있다면 출가한 시기에 따른 것이었다. 때문에 누군가가 출가하면 그 새로운 비구의 서열을 정하기 위해 구족계를 받은 날짜와 시간을 적어두었다.27) 비나야 삐따까(Vinaya

Pitaka)의 『쭐라왁가』(Cullavagga)에 나오는 우빨리(Upāli)의 출가에 관한 일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샤꺄(Sakyā)족의 귀족 청년들은 그들이 출가할 때 이발사 출신의 우빨리를 그들보다 먼저 출가시켜 달라고 붓다께 요청한다. 오랜 세월 그들의 하인이었던 우빨리를 선배로 공경함으로써 자신들의 교만심을 없애려고 했던 것이다.28)

27) 라모뜨(2006) p. 125.

28) Vin Vol. Ⅱ, p. 183.


바다와 교단을 비교하는 『쭐라왁가』의 내용 또한 교단이 계급 차별이 없는 조직이었음을 보여주기 위해 빈번하게 인용된다. 붓다는 네 강의 강물이 바다에 이르면 예전의 이름을 버리고 큰 바다라고 불리듯이 네 종성의 사람들도 출가 후에는 예전의 이름과 성을 버리고 샤꺄(Sakyā)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것이 수행자들이 가르침과 계율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설한다.29) 『마두라

숫따』(Madhurā Sutta)에서도 어떤 계급 출신의 사람이든 도둑질을 하면 도둑이라고 불리듯이 어떤 계급이든 출가하여 수행하면 이전의 명칭은 사라지고 수행자라고 불린다30)고 밝히고 있어 출

가 후에는 교단 내에서 계급의 구별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29) Vin Vol. Ⅱ, p. 239. c.f. Udāna, p. 53.

30) MN Vol. Ⅱ, pp. 83-90.


『삽뿌리사 숫따』(Sappurisa Sutta)에서도 붓다는 같은 내용의 법을 설한다. 고귀한 가문에서 출가했다는 이유로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비난하는 사람은 참된 사람이 아니며 고귀한 가문에서

출가했다고 해서 탐진치(貪瞋癡)가 없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고 고귀한 가문에서 출가하지 않았더라도 가르침을 실천하고 따르면 칭찬받을 수 있음을 아는 사람이 참된 사람이라는 것이다.31) 또한

『순다리까 숫따』(Sundarika Sutta)에서 쑨다리까 바라드와자(Sundarika-bhāradvāja) 브라만이 붓다에게 태생을 묻자 붓다는 “태생을 묻지 말고 행실을 물어라. 어떤 장작으로든 불을 피울 수

있다. 낮은 가문 출신이라도 의지가 굳은 성자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자신을 제어하는 고귀한 사람이다32)”라고 말한다. 이처럼 붓다는 수행자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이 계급이 아니라 수행의 수준

이나 깊이라고 보았다.

31) MN Vol. Ⅲ, pp. 37-38.

32) Mā jātiṃ puccha caraṇañca puccha kaṭṭhā have jāyati jātavedo, Nīcākulīnopi munī dhitīmā ājāniyo

hoti hirīnisedho. SN Part. Ⅰ, p. 168.


2. 세속사회의 신분차별 관행에 대한 붓다의 입장

암베드까르가 언급했듯이 붓다는 교단 외부의 사람들, 특히 브라만들이 출신을 이유로 자신들의 우월함을 주장할 때 그 주장에는 모순과 허점이 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반박한다. 『바쎗타 숫따』(Vāseṭṭha Sutta)에서는 계행을 지키며 덕행을 갖춘 사람이 브라만이라는 바쎗타(Vāseṭṭha)와 혈통이 청정한 사람이 브라만이라고 주장하는 바라드와자(Bhāradvāja)가 진정한 브라만이 누구인지에 대해 논쟁을 벌이다 붓다에게 질문을 한다. 그러자 붓다는 물고기, 벌레, 새 등 동물은 출생에 따른 특징이 있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으며 인간의 몸에는 차이가 없고 단지 관습적 표현으로 이름을 붙인다33)고 말한다. 때문에 붓다는 『에수까리 숫따』에서 “끄샤뜨리아(Kshatriya) 집안에 태어나면 왕족으로 간주된다. 브라만 집안에 태어나면 브라만으로 간주된다. 그가 평민 집안에 태어나면 평민으로 간주된다. 그가 노예 집안에 태어나면 노예로 간주된다34)”라고 말했던 것이다.

33) Sn, pp. 115-124. MN 98과 동일.

34) Khattiyakule ce attabhāvassa abhinibbatti hoti, khattiyotveva saṅkhaṃgacchati.

Brāhmaṇakule ce attabhāvassa abhinibbatti hoti, brāhmaṇotveva saṅkhaṃ gacchati.

Vessakule ce attabhāvassa abhinibbatti hoti, vessotveva saṅkhaṃ gacchati.

Suddakule ce attabhāvassa abhinibbatti hoti, suddotveva saṅkhaṃ gacchati.

MN Vol.Ⅱ, p. 181.


또한 그들이 사회적 지위를 들어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 또한 붓다는 여지없이 반박한다. 『암밧타 숫따』(Ambaṭṭha Sutta)에서 브라만 암밧타(Ambaṭṭha)는 수행자들과 사꺄족을 천한 종족이라고 멸시하고 브라만이 모든 종족 중에서 최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자 붓다는 암밧타에게 브라만과 끄샤뜨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브라만이 누리는 모든 권리와 혜택을 누릴 수는 있지만 왕이 될 수 없음을 들어 “여성으로 여성을 비교하고 남성으로 남성을 비교해보아도 끄샤뜨리아가 우월하고 브라만은 열악하다35)”고 지적한다. 그리고 죄를 범하고 도시로부터 추방당한 바라문은 다른 바라문들 사이에서 자리나 물을 얻지도 못하고, 음식 접대를 받지도 못하고 바라문 여인들을 아내로 맞을 수도 없게 되지만 끄샤뜨리아들은 도시에서 추방당해도 바라문들 사이에서 자리나 물을 얻을 수도 있고, 음식 접대를 받을 수도 있고 바라문 여인들을 아내로 맞을 수도 있음을 지적하며 “끄샤뜨리아가 최악의 상황이 된 상황이더라도 끄샤뜨리아는 우월하고 브라만은 열등하다”36)고 말하면서 성씨를 중시하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끄샤뜨리아가 제일이라고 주장한다. 즉, 브라만들이 사회에서 가장 우월한 계급임을 주장하지만 현실에서 끄샤뜨리아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35) “Iti kho, ambaṭṭha, itthiyā vā itthiṃ karitvā purisena vā purisaṃkaritvā khattiyāva

seṭṭhā, hīnā brāhmaṇā. DN Vol. Ⅰ, p. 98.

36) Iti kho ambaṭṭha yadā pi khattiyo parama-nihīna-taṃ patto hoti, tadāpi khattiyā

va seṭṭhā hīnā brāhmaṇā. DN Vol. Ⅰ, p. 99.


이런 붓다의 태도를 근거로 크리샨(Y. Krishan)은 붓다가 일반인들 사이에서의 카스트 제도를 인정했으며 그것을 일반 사회의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였다고 보았다. 또 『앙굿따라 니까야』

(Aṅguttara Nikāya)의「앗빤마다 숫따」(Appamāda Sutta)에서 붓다가 상위 세 카스트의 삶의 목표에 대해서만 말하고 수드라와 그 외의 하층민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붓다가 사람들에게 종교적인 삶을 장려하면서도 수드라와 하층민들에게 무심했다고까지 주장했다.37) 또한 불교의 교리 중에서 사회의 개혁이나 개선에 대해 언급한 것은 거의 없다는 주장도 있다.38)

사실 계급 문제와 관련된 니까야의 어느 경전에서도 붓다가 4종성 제도 존재 자체에 대해 비난하거나 그것의 철폐에 대해 주장하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단지 계급에 연연하여 우월감에 빠지거나 오직 계급에만 근거해서 인간을 평가하는 태도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한 개인의 선함과 악함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그 사람의 계급보다는 도덕성이 더 큰 의미를 가진다는 붓다의 주장을 4종성 제도 자체에 대한 비난으로 연결하기도 어렵다.

37) Yrishan(1986) p. 76-82.

38) Bechert(1966) p. 8. Beltz(2005) p. 64. 재인용. Fick(1920) p. 335.


그러나 붓다는 어떤 계급의 사람이든 악행과 선행을 저지를 수 있으며 그에 따라 과보를 받는 것 또한 모든 계급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을 여러 경전에서 상기시킨다. 세속사회에서의 계급

문제에 있어 붓다는 당시 사회에서 실행되고 있던 관습으로서의 4종성 제도는 인정하나 출생으로 인한 계급이 차별의 근거가 되는 것에는 반대했다고 볼 수 있다. 4종성 제도에서 보는 인간평가

의 기준이 출신이었다면 붓다의 평가기준은 도덕과 행위였던 것이다.


3. 붓다의 종교적 평등 구현

사성계급이 모두 평등하다는 관념 자체에 있어서 붓다가 세속사회와 출가사회에 차이를 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관념의 적용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세속사회에서의 계급 문제에 있어 붓다는 세속사회의 제도적 변화를 시도하기보다는 그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변화를 도모했다. 그러나 자신이 제도를 시행할 수 있는 사회, 즉 자체적으로 계율을 지정하여 생활양상을 규제한 교단에서는 그 평등을 제도화하고 실천했다고 할 수 있다. 붓다의 교단 내에서는 입문이나 생활, 수행에 있어서 카스트와 관련한 어떤 제약도 없고 차별도 없었다. 즉, 붓다는 계급과 상관없

이 누구든 출가할 수 있고 출가해서 수행하면 같은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종교적 평등을 구현했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대로『깐나깟탈라 숫따』(Kaṇṇakatthala Sutta)에서 붓다는 네 종성 가운데 차별이 있는지를 묻는 빠세나디(Pasenadi) 왕의 질문에 네 종성 중에서 끄샤뜨리아와 브라만이 최상이라고 대답하지만, 그 말을 들은 빠세나디 왕은 ‘세존이시여, 저는 현재의 삶에 대하여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삶에 대하여 질문하는 것입니다39)’라고 말한다. 즉 사회적인 계급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성취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라고 하자40) 붓다는 네 종성의 사람들이 정근의 다섯 요소(pañcapadhāniyaṅgāni), 즉 여래에 대한 믿음, 무병(無病), 자신을 그대로 드러냄, 정진, 지혜를 갖추었다면 출신이 무엇이든지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마치 불의 원료가 무엇이든지와 상관없이 같은 불꽃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해탈의 경지는 그것을 얻은 사람의 출신과는 상관없이 모두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41)

39) Nāhaṃ bhante, Bhagavantaṃ diṭṭhadhammikaṃ pucchāmi, samparāyikāhaṃ Bhante,

bhagavantaṃ pucchāmi. MN Vol. Ⅱ, p. 128.

40) Ñāṇamoli 외(1995), 1995. p. 1296. 전재성(2014) p. 1010.

41) MN Vol. Ⅱ, pp. 127-130.


『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āya)의 「쭐라앗싸뿌라 숫따」(Cūḷaassapura Sutta)에서도 붓다는 어느 방향에서 온 사람이라도 맑고 시원한 연못에서 물을 마시고 갈증을 없앨 수 있는 것처럼

어떤 계급의 사람이라도 여래가 설한 계율에 따라 안으로 고요함을 얻으면 수행자로서 올바로 사는 것이며 또 그 사람이 해탈을 성취하면 번뇌를 없앤 수행자가 된다고 하였다.42)

42) MN Vol. Ⅰ, pp. 283-284.


세속에서의 계급 문제를 지적하는 경전에서도 그런 사회의 개혁보다는 계급을 중시하지 않는 새로운 사회로의 편입, 즉 출가수행을 장려하는 붓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악간냐 숫따』(Aggañña Sutta)에서 붓다는 가문을 중시하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끄샤뜨리아가 최상이고 지혜와 덕행을 가진 이는 신과 인간들 사이에서 최고라고 말하면서도 지혜와 덕행의 성취를 위해서는 태생이나 성씨, 결혼의 속박을 떠나야 한다고 가르친다.43) 그리고 앗쌀라야나 숫따와 거의 동일한 내용인 방우품(放牛品) 에서는 ‘사람이 혼인할 때에는 반드시 호귀(豪貴)한 성(姓)을 구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바른 법안에서는 높고 낮거나 좋고 나쁜 이름의 성(姓)이 없다44)’라는 표현이 나온다.

43) DN Vol. Ⅰ, p. 99.

44) 增壹阿含 放牛品 六(TD2, No. 125) p.798b13-b14. 其有婚姻嫁娶.便當求豪貴之姓.

然我正法之中. 無有高下 是非之名姓也.


붓다가 설하는 평등은 중생이 수행에 있어 같은 가능성을 가지고 궁극적으로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붓다는 4종성 제도에서 가장 수승한 존재인 브라만의 개

념을 새롭게 규정한다. 『맛지마 니까야』와 숫따니빠따의『바쎗타 숫따』, 그리고 『담마파다』 26장에는 붓다가 생각하는 브라만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모든 속박을 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집착에서 벗어난 ··· 욕망으로 더럽혀지지 않는 ··· 이 세상에서 자기의 괴로움이 소멸된 것을 알고 짐을 내려놓고 속박이 없는 ··· 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 대해서 더 이상 바람이 없고 욕망도 없고 속박도 없는 ··· 집착이 없고 완전히 깨달아 의혹이 없이 불사의 경지를 성취한 ··· 윤회와 미혹을 벗어나 피안에 이르러 선정에 들어 흔들림과 의혹이 없으며 집착이 없이 해탈한 ··· 이 세상의 욕망을 끊고 집을 떠나 유행하며 존재에 대한 감각적 쾌락이 완전히 없어진 ··· 인간의 인연을 끊고 천상의 인연도 벗어나 모든 속박을 벗어난 ··· 전생의 삶을 알았고 천상과 지옥을 보며 다시 태어나지 않게 된 그를 나는 브라만이라 부른다.

45) sabbasaṃyojanaṃ chetvā yo ve na paritassati saṅgātigaṃvisaṃyuttaṃ ··· Yo na

lippatikāmesu ··· Yo dukkhassa pajānāti idhe'va khayamattano, pannabhāraṃ visaṃyuttaṃ

··· Āsā yassa na vijjanti asmiṃ loke parambhi ca, nirāsayaṃ visaṃyuttaṃ ··· Yassālayā na

vijjanti aññāya akathaṃkathi Amatogadhaṃ anuppattaṃ··· saṃsāraṃ mohamaccagā

tiṇṇo pāragato jhāyī anejo akathaṃkathi anupādāya nibbuto ··· Yodhaṃ kāme pahatvāna

anāgāro paribbaje kāmabhavaparikkhiṇaṃ ··· Hitvā mānusakaṃ yogaṃ dibbaṃ yogaṃ

upaccagā sabbayogavisaṃyuttaṃ ··· Pubbe nivāsaṃ yo vedi saggāpāyañca passati

atho jātikkhayaṃ patto tamahaṃ brūmi brāhmaṇaṃ. Sn, p. 119-p.122. MN 98(PTS

본에서는 본문 생략), Dhp, p. 112-120과 동일.


브라만에 대한 위와 같은 설명은 초기경전에서 말하는 아라한(Arhat)에 대한 설명과 유사하다. 즉 붓다에게 있어 브라만은 세속을 떠나 종교적으로 가장 큰 성취를 한 인간이었다. 붓다는 수행을 통해 최고의 결과를 얻은 이, 바로 아라한이야말로 브라만이라고 생각했으며 모든 이들이 아라한이 될 수 있는 자질이 있음을 인정함으로써 수행에 있어 완전한 평등을 구현했던 것이다.


Ⅳ. 맺는 말


암베드까르에게 있어 종교는 단순히 개인의 정신적 구제를 위한 방편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기 위한 ‘사회적 신념’이었다.46) 그는 종교의 기능이 사회를 재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47) 또한 그가 생각하는 종교의 목적은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고 보급하며 그 가치에 정신적 의미를 부여하여 개인의 마음에 심는 것이었다.48) 또한 종교의 목표는 인간이 도덕적 질서 아래 사는 사회적 질서를 만드는 것이기도 했다.49) 이처럼 정신적 측면보다 사회적 측면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그의 종교관은 불교해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46) Kenadi(1995) p. 32.

47) Ambedkar(1982) p. 441.

48) Rodrigues(2002) p. 22.

49) Ambedkar(2001) p. 6.


이런 그의 종교관은 붓다에 대한 기술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사회개혁가적인 붓다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그는 경전이나 기존연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사건들을 기술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붓다의 출가에 대해 서술하면서 사문유관으로 설명되는 전통적인 붓다의 출가동기를 합리적이지 않다고 부정하면서 붓다의 출가동기에 대한 매우 색다른 주장을 펴고 있다. 암베드까르의 기술에 따르면 싯다르타(Siddharth)가 28세 되던 해에 붓다의 부족인 사꺄(Sakya)족은 로히니(Rohini) 강물의 사용 문제로 꼴리야(Koliya)족과 전쟁을 벌이려고 했다. 붓다가 그 전쟁에 강하게 반대하자 갈등이 발생했고 싯다르타는 출가를 가장한 정치적 망명을 선택하고 까삘라왓투(Kapilavatthu)를 떠났다는 것이다.50)

50) Ambedkar(2001)pp. 22-28. 이 주장은 자타카(Jātaka 536: Kuṇāla Jātaka)에 나오는

콜리야족과 샤카족간에 벌어진 강물로 인한 분쟁과 다소 유사한 점이 있지만 분쟁이

발생할 당시 붓다는 이미 정각을 이룬 이후였고 붓다가 두 종족간의 분쟁을 만류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를 붓다의 출가동기라고 하기는 어렵다. 물분쟁으로 인한 붓다

의 출가라는 주장을 제일 먼저 편 사람은 인도의 불교학자 코삼비였고 암베드까르는

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코삼비가 집필한 희곡 ‘보살’의 내용은 암베드까르

의 저술과 매우 유사한데 석가족 남자성인들의 모임(Sangh)의 존재, 로히니 강에 대

한 분쟁, 망명으로서의 출가를 하는 모습 등이 모두 이 극본에서 등장한다. Kosambi

(2010) pp. 34-35. 참조.


이처럼 붓다는 정치적인 사건이 동기가 되어 출가를 했으며 출가 직후에 자신의 출가원인이 되었던 분쟁이 해결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그런 사회적 갈등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출가생활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정각 후에 설법의 여부를 두고 고심하던 붓다가 설법을 하기로 결심한 이유 또한 사회개혁을 위함이었다. 정각 후 붓다는 이 세상에는 많은 불행이 있고 이를 방관하는 것은 옳지 않은 태도라고 생각했다. 나아가 자신의 해야 할 일은 이 세상을 등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바꾸고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므로 법을 설하기로 했다는 것이 암베드까르의 주장이다.51) 이후 붓다의 첫 설법을 들은 5비구 역시 붓다를 도덕적 목표로 가득 차 있는 개혁가로 받아들인다.52)

51) Ambedkar(2001) pp. 112-113.
52) Ambedkar(2001) pp. 131-132.

암베드까르는 이와 같은 서술을 통해 붓다가 사회적 문제에 매우 민감한 인물이었음을 강조하며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붓다 역시 부당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싸우는 사회개혁가로 재창조하려 했다. 그가 붓다를 “카스트의 가장 큰 반대자”라고 표현하고 『에쑤까리 숫따』의 내용을 기술하면서 원전에는 나오지 않는 “카스트도 없고, 불평등도 없고, 우월함도 없고, 열등함도 없이 모두가 평등하다53)”는 붓다의 주장을 삽입한 것 등은 그가 그린 사회개혁자로서의 붓다의 모습을 카스트 문제에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언급한 경전이나 다른 초기 경전에 나오는 붓다의 모습들은 그가 원하는 개혁자로서의 붓다의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다소 미약하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붓다는 자신의 영역 안에서 평등한 사회를 구현하려고 했을 뿐 세속의 문제에 있어서는 계급에 대한 집착으로 일어나는 그릇된 생각이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지적하는 정도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또한 출생에 따라 신분이 결정되는 사회의 관습을 언급할 때도 이런 관습에 대해 비난하거나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하지도 않았다.

53) Ambedkar(2001) p. 306.


그러나 붓다는 자신의 교단 내에서는 계급의 차별을 두지 않았고 어떤 계급의 사람이라도 같은 종교적 수행과 성취가 가능함을 역설했다. 이는 당시 사회에서의 위치는 물론이고 종교적으로도

계급 간에 차별을 두었던 브라만교와 비교해보면 크게 차별되는 점이다. 암베드까르가 말한 대로 브라만교는 차별을 공식화했고 종교적인 측면에서도 계급에 따라 차별을 두었다. 따라서 하위 계

급의 구성원들은 종교의 궁극 목표로 나아가는 길에서 배제될 수 밖에 없었다. 암베드까르는 브라만교에서 인생을 네 단계, 즉 학습기(學習期, Bramhacarya) 가주기(家住期, Grahastha), 임서기(林

棲期, Vanaprastha), 유행기(遊行期, Saṅnyāsa)로 나누었다는 사실을 서술하면서 네 번째 단계인 임서기를 신을 찾고 신과의 합일을 구하는 단계로 설명했다. 그리고 수드라에게는 이 네 가지 단계 중에서 학습기와 임서기가 허용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54) 당시 학습기에서 이루어지던 교육이 브라만교의 성전인 베다(Veda)였던 점과 유행기가 가정을 완전히 떠나 전적으로 종교적 수행에

몰두했던 시기였음을 고려하면 슈드라(Shudra)에게는 종교적 기회가 차단되었던 것이다. 슈드라는 베다 희생제를 할 수 없었고55) 베다의 보조 문헌이라고 할 수 있는 「가우타마 다르마수트라」

(Gautama Dharmasūtra)에는 슈드라가 베다를 들으면 귀에 납물을 붓고, 베다를 암송하면 그 혀를 자르고, 베다를 기억하면 몸뚱이를 둘로 가르라고56) 하는 등, 하위 계급에 대한 종교적 불평등

이 브라만교에서 제도화되어 있었다. 붓다는 이런 차별이 만연하던 시기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종교적 접근과 성취를 할 수 있음을 가르쳤던 것이다.

54) Ambedkar(2001) pp. 88-89.

55) Wilkins(1975) pp. 247-248.

56) Pandey(1966), Ⅻ. 4-6. Shrirama(2007) p. 67. 재인용.


이처럼 붓다는 4종성 제도가 실행되고 있던 당시의 사회를 바꾸려고 하기 보다는 자신의 교단을 통해 계급이 없는 사회를 구현했다. 그리고 그 사회는 종교적인 평등이 실현된 사회였다. 암베드카르는 “붓다가 카스트 제도에 반대하는 가르침을 설하고 카스트 제도와 싸우고 그것을 뿌리 뽑기 위해 모든 일을 했다”57)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 암베드까르에게 더 잘 어울리는 설명이다. 암베드까르는 자신이 경험한 사회의 카스트 문제에 대해서는 붓다보다 훨씬 적극적인 태도로 개혁을 시도했다고 할 수 있다.

 

 

 

 

 

 

 

 

실론섬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2981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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