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계연기(法界緣起)
중국 화엄종에서는 화엄을 별교일승원교(別敎一乘圓敎)이며 원명구덕종(圓明具德宗)으로 보고 있으며, 그 화엄세계는 법계연기의 세계라고 보고 있다. <화엄경>의 불보살세계를 ‘인과연기 이실법계(因果緣起 理實法界)’의 법계연기로 나타낸 것이 화엄종의 종취라고 화엄종의 대성자인 법장은 밝히고 있다. 이러한 법계연기설은 청량을 거쳐 규봉종밀대에 와서 사종법계설로 확정된다.
종밀은 <주법계관문>에서 청량징관의 <화엄경소>를 인용하면서 사종법계의 의의를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주법계관문>은 두순이 지었다고 하는 <법계관문>을 종밀이 주석한 것이다. <법계관문>에서는 진공관, 이사무애관, 주변함용관의 법계삼관을 설하고 있다.
먼저 진공관(眞空觀)은 모든 법은 실성이 없어 유(有)와 공(空)의 두 가지 집착을 떠난 진공인 줄을 관함이다. 다음 이사무애관(理事無碍觀)은 차별있는 사법(事法)과 평등한 이법(理法)은 분명하게 존재하면서도 서로 융합하는 것임을 관함이다. 끝으로 주변함용관(周遍含容觀)은 우주간의 온갖 사물이 서로서로 일체를 함용하는 것으로 관함이다.
지엄은 법계연기를 보리정분의 정문(淨門)연기와 범부염법의 염문(染門)연기로 나누고 있다. 법장은 <오교장>에서 법계연기를 과분불가설(果分不可說)과 인불가설(因分不可說)로 나누고 그것이 십불자경계(十佛自境界)와 보현경계(普賢境界)라고 하고 있다.
종밀에 이르러서는 사종법계설로 발전하게 된다. 여기서 법계란 Dharma-dhatu의 번역어로 연기현전하는 우주만유이다. 이 법계의 체는 일심(一心)인데 원명구덕의 일심이며, 총해만유(總該萬有)의 일심이다. 따라서 법계란 일심체상에 연기하는 만유이다. 그래서 우주만유의 낱낱 법이 자성을 가지고 각자의 영역을 지켜 조화를 이루어가는 것을 법계라 한다. 이 법계를 설명하는데 사(事)와 이(理)의 구별을 세워 논한 것이 사종법계설인 것이다.
사종법계는 사(事)법계, 이(理)법계, 이사무애(理事無碍)법계, 사사무애(事事無碍)법계이다. 이 네 가지 법계설은 모든 우주는 일심에 통괄되고 있으며, 이 통괄되는 것을 현상과 본체의 양면으로 관찰하면 네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 화엄의 무진법계는 사사무애법계를 말한다.
사(事)법계는 모든 차별있는 세계를 가리킨다. 사(事)란 현상, 사물, 사건 등을 계(界)란 분(分)을 뜻한다. 낱낱 사물은 인연에 의해 화합된 것이므로 제각기의 한계를 가지고 구별되는 것이다. 개체와 개체는 공통성이 없이 차별적인 면만을 본 것이다.
이(理)법계는 우주의 본체로서 평등한 세계르 말한다. 이(理)는 원리, 본체, 법칙, 보편적 진리 등을, 계(界)란 성(性)을 가리킨다. 궁극적 이(理)는 총체적 일심진여이며, 공(空)이며 여여(如如)이다. 우주의 사물은 그 본체가 모두 진여라는 것으로 개체와 개체의 동일성, 공통성을 본 것이다.
이사무애(理事無碍)법계는 이와 사, 즉 본체계와 현상계가 둘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걸림없는 상호관계 속에 있음을 말한다. 법장은 <금사자장>에서 금사자의 비유를 들어 이를 설명하고 있다. 금이라는 금속은 이(理)의 미분화된 본체를 상징하며, 사자라는 가공품은 분화된 사(事) 혹은 현상인데 사자가 금에 의존하여 표상되고 있음이 바로 이사무애의 경계라는 것이다.
사사무애(事事無碍)법계는 개체와 개체가 자재융섭하여 현상계 그 자체가 절대적인 진리의 세계라는 뜻이다. 제법은 서로서로 용납하여 받아들이고 하나가 되어 원융무애한 무진연기를 이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곧 화엄의 법계연기이다. 이 사사무애(事事無碍)의 세계는 이사무애(理事無碍)를 바탕으로 하여 의지의 전환이 있어야 가능한 직접적인 깨달음의 세계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체험과 실천행을 통해 현현하는 세계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 늘 그렇게 있는 세계이나 이해나 검증의 문제가 아니라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체험을 통해 현실화해야 하는 세계이다.
[출처] 법계연기(法界緣起)|작성자 한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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