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이야기

삼덕일심의 도리

수선님 2019. 12. 1. 12:49

 

大方光 三字는 一心三德, 삼덕일심의 도리가 個個圓成하고 人人本具함을 밝힌 것이라면 佛華嚴 三字는 覺行互嚴 性修不二의 법칙이 一念圓證에 當處現前함을 表한 것이다.

마음의 체대는 법신, 용대는 해탈, 상대는 반야,
일심삼덕이란 일심이 법신, 반야, 해탈의 삼덕을 갖췄다는 ,
일체중생이 누구든지 이러한 삼덕을 본래 갖추고 있다.

각행장엄!
성품과 닦음은 둘이 아니다!
자리로 , 본래 시간과 공간이 끊어져서 닦을 것도, 닦을 사람도 없이 끊어졌지만, 닦는 것은 습기 때문이다.
그러나 性修가 不二이기 때문에, 닦아도 시간과 공간이 끊어진 자리에서 닦기 때문에 천만 년을 닦아도 닦는 것이 없다.

앙산과 위산의 대화
"悟後에 어떻게 행해야 옳습니까?"
"卽貴子眼正 不貴汝行爲處"
자네 바로 뜬것만 귀히 여기지, 너의 행하는 것은 귀히 여기지 않는다.
네가 눈만 바로 떴으면 그만이지 다음은 네가 알아서 해라.

百慮而一致요 殊途而同歸라
천가지 생각, 가지 생각 등이 부글부글거리는 망상이 근본은

하나이고
우주의 길이 가지 , 가지 길로 그렇게 많지만 근본은

하나로 돌아간다.

良由瞥循一照之精明
진실로 갑자기 일조의 정명을 따르게 됨에
* 일조의 정명 -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한 번 비친 정명, 망상을 쫓게 됨

條昧天光之圓覽하야
문득 천광의 원감을 어둡게 해서

返認 創成於心體
그릇 인식하는 것이 비로소 심체, 마음속에 이루어지게 되면

雲點太淸하고
구름이 태청을 점하고,
*태청 - 가장 맑은 하늘의 별칭

依心 發動於輪廻 波搖玉海일새
7식이 윤회에 발동함에 물결이 옥해를 흔들게 됨을 말미암을새

故我毘盧遮那如來 愍乎寢惑하사 布以身雲하야
그러므로 비로자나 부처님께서 중생이 미혹에 잠김을 불쌍히 여기사
몸구름으로써 펴서
* 몸구름을 펴다 - 천백억 화신을 이 세계에 한꺼번에 나퉜다는 것

於一切法 而坐道량하시며 於一切智 而成正覺하사 說此大方廣佛華嚴經也시니라.
일체법에 도량에 앉아서 설법을 하시며 일체지에 정각을 이루사 이 대방광불화엄경을 설하시니라.
* 십신 - 부처님이 성불하신 시간, 공간이 끊어진 부처님 마음자리가 우리의 망상이 우글거리는 마음하고 둘이 아니라고 믿는 마음이 굳어지면 십신보살이다.

* 십주 - 마음이 진리에 머물렀다. 범부의 마음의 상이 다한 걸로 佛住를 이루고, 부처님 십주법문을 이루었다. 智를 설한 법문

* 십행 - 경계가 벗어진 상태, 지혜로써 용을 좇아서 중생을 교화하므로 교화해도 교화한 자리가 없다. 行을 설한 법문

* 십회향 - 지행 합일의 단계

* 십지 - 自他同體로 佛地를 이룸, 地는 그것이 굳어져서 땅과 같이 아주 견고하게, 파괴할 없이 굳어졌다. 공부가 깊어졌다, 끝났다는 , 성인의 지위

* 십일지 법문 - 智行淸淨으로 佛華를 이룸, 佛華 = 佛行

* 10, 급고독원, 인간회 -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친견함, 발심의 인과로 前法을 총체적으로 답변하심

次復圓悟一眞 恐迷修進이라 不盡千門之惑習이면 焉成萬行之智悲.
다시 뚜렷이 일진의 진리를 깨달음에 수진을 미할까 두려운지라, 일진만 깨닫고 같으면 수진의 법이 없고 닦는 법을 미할까 그것을 두려워한지라, 천문의 혹습, 망혹의 습기를 없애지 않을 같으면 어찌 만행의 지비를 이룰 있는가.

* 문수를 참례함 - 佛智信因, 불지로 신인을 삼다. 시공이 끊어진 마음자리로써 신인을 삼다.

* 남방으로 선지식을 순례함 - 發行治習, 행동을 발해서 습기를 다스린

* 미륵보살을 친견함 - 미륵보살이 손가락 한번 튕기는 동안에 누각의 문이 열리면서 삼세의 인과를 보다. 습기가 다해서 과를 이룬 .

* 다시 문수보살 친견함 - 因果同詩, 처음에 문수보살을 친견하여 근본지를 믿는 것으로 因을 삼고, 마지막으로 성불한 다음에도 근본지를 果로 삼다.

* 문득 보현보살을 - 法界原行, 성불한 다음에는 무엇을 하는가... 미래제가 다하도록중생을 교화한다.

春秋經世 先王之志. 聖人 議而不辨하시니라.
춘추로 세상을 받게 하는 것은 선왕의 뜻이라. 성인은 의논하되 시비하지 않았다.
비판이 붙고 그냥 얘기하는 , 공정하게 하는 것을 춘추경세라 한다.
春은 상을 주는 , 秋는 벌을 주는 , 天道는 지공무사해서 사사로움이 없다.

存而不論이여, 道爲一生之始로다.
놔두고 논하지 않음이여, 도가 일생의 시초가 되었도다.

비로법신으로 삼는다
비로법신은 광명변조이니
佛에 있으면 청정법신이 되고
중생에게 있으면 본각묘성이 되나니
화엄에 이것으로 체를 삼은 것은 바로 중생으로 하여금 妙性을 보아 법신을 증득케 하고자 것이다.

문수묘지로써 用을 삼는다.
문수로써 信首를 삼음.
문수는 妙德이니
佛에 있으면 普光大知가 되고
중생에게 있으면 관찰묘심이 된다. 자기자성을 반조하는, 관찰하는 묘심이 된다.
화엄경에 문수의 묘덕으로 용을 삼은 것은
"바로 중생으로 하여금 묘심을 밝혀 大知를 증득케 하고자 것이다."

보현으로 行을 발함은 因을 보인 바다.
보현이라는 것은
덕이 두루하지 않음이 없음을 , 넓다 하는 것이고
위로 부처님을 돕고 아래로 중생을 이롭게 함을 賢이라 한다.
佛에게 있으면 眞淨妙行이 되고
중생에게 있으면 塵勞業用이 되나니
화엄에 이것으로써 인을 삼은 것은 바로 중생으로 하여금 진로를 뒤쳐 묘행을 이루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오위의 종결, 끝에 미륵보살을 가서 친견하게 것은 果를 보인것이다.
화엄에 이걸로써 果를 삼은 것은
바로 중생으로 하여금 數取(오온의 ) 여의고 補處에 취향케 하고자 것이다.
그러면 화엄의 체용인과는 제불과 중생 하나로되
다만 제불은 覺에 합하고 중생은 塵에 합한 고로 간격이 있다.


만일 이경을 생각에 반조해서
범부를 고쳐 성인의 지위에 들어가는 것이
손바닥 뒤집는 것과 한가지라서
자기 마음속에 있는
비로법신과 문수와 보현 미륵이 당처에 현전하리니
이른바 초발심할 때에 정각을 이룬다 함이 진실로 허망치 않은 것이다.

십바라밀에 한바라밀만 온전히 같으면 나머지는 들었다고 보는 겁니다.

보시가 철저히 된다고 하면 지계도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지계가 무엇입니까? 心淸淨이 是戒라. 마음이 맑고 깨끗한 자리가 계이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정진도 보시를 잘하면 무슨 일이든지 비워버리니까 정진이 아닙니까?
그리고 그것이 바로 선정입니다.

선정이란 망상에 끄달리지 않는 ...
그것 또한 지혜입니다.
지혜는 밤낮 자성을 반조하고 있으니까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를 들면 9바라밀이 갖춰져 있습니다. 9바라밀이 짝이 되는 겁니다. 하나를 들면 나머지 9바라밀이 갖춰졌고, 그래서 화엄경은 전부 十十으로 장엄된 겁니다.

"圓融이 相攝하여 중중무진함을 표한 것이니
이에 一性의 妙用이요
만법의 妙體다."


참고> 육조혜능의 말씀

무엇이 선정인가?
밖으로 相을 여의면 禪이 되고
안으로 어지럽지 않음이 定이 되니
만약 밖으로 상에 착하면 안으로 마음이 어지럽고
만약 밖으로 상을 여의면 마음이 어지럽지 않느니라.
본성은 스스로 깨끗하고 스스로 定에 있는 것이건만
다못 경계를 대하고 경계를 생각하므로
어지러워 지나니 만약 모든 경계를 보아도 마음이 어지럽지 않으면
이것이 참된 定이니라.
선지식아! 일체 생각 생각중에 스스로 본성의 청정을 보아 스스로 닦고 스스로 행하며 스스로 불도를 이루게 하라.
그러나 법문의 좌선은 원래 마음에 착하지 않으며
또한 깨끗함에도 착하지 않으며
또한 동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만약 마음에 착한다면 마음은 원래 이것이 망령된 것이니 마음이 환과 같은 것임을 아는 고로 집착하지 않느니라.
만약 깨끗한 것에 착한다면 원래 사람의 성품은 청정하나 다만 망념으로 말미암아 진여가 덮힌 것이니 망상만 없애면 성품은 스스로 청정하거늘
다시 마음을 일으켜 청정에 착한다면 이것은 도리어 淨妄을 일으키는 것이니라.
妄은 본래 처소가 없는 것인데 이에 착한다면 이것은 망이요.
청정은 형상이 없는 것인데 도리어 깨끗하다는 상을 세워서 이것을 공부로 삼는다면
이런 견해를 짓는 자는 스스로 본성을 막고 도리어 淨縛이 되느니라.
선지식아, 또한 부동을 닦는 자는 다못 모든 사람을 때에 다른 사람의 시비와 선악과 허물을 보지 않나니 이것이 자성부동이니라.
선지식아! 미혹한 사람은 몸은 비록 부동이나 입만 열면 타인의 시비 장단과 호오를 말하며 도와 등지니 만약 마음에 집착하거나 청정에 집착한다면 도리어 도를 막느니라.

상식적으로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 십일지, 오위는 알아야 됩니다.
십주 표했느냐. 십주는 진리, 이적인 면을 표한 거예요. 마음이 진리에 머물렀다는 겁니다. 우리 마음이 어디에 머물러야 바로 머무르느냐. 진리에 머물러야 한다. 진리는 무엇이냐 하면 시간, 공간이 끊어진 마음자리가 부처님 과덕입니다. 그러한 시간과 공간이 끊어진 마음자리인 부처님의 깨달은 과덕에 머무는 것이 십주인 것입니다. 진리에 머무는 그것이 십주법입니다.
처음에 들어가자마자 진리를 깨달아서 십주 진리에 머물고 나면 그것을 행동에 옮겨야 됩니다. 그래서 다음으로 십행 나옵니다. 행동으로 옮길 쪽에 치우치기가 쉬워요. 진리에 파묻혀서 자기 안락만 취해버리면 소승이 되는 거죠. 반면 행동에 너무 치우치면 속인이 됩니다. 세속화되어 반쯤 속인이 되고, 도리어 진리에 깜깜해집니다.
그래서 십회향 나오는 겁니다. 십회향이라는 것은 자꾸 돌이키는 겁니다. 진리에 너무 치우쳤으면 거기 들어앉아 있지 말아야 됩니다. 그래서 자꾸 진리와 행이 둘이 아니도록, 균형에 맞춰 나가도록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그게 문수와 보현이올시다. 문수보살은 智를, 십주 근본지를 보이고, 보현보살은 行을 드러내 보입니다. 그래서 자꾸 회향을 해요. 그래서 회향법문은 부처님의 무릎에서 광명을 놓아서 설하신 것입니다. 무릎에서 광명을 놓아서 문수보살, 보현보살 입에 주니까 문수보살, 보현보살 입에서 쏟아지듯 법문이 나오는 겁니다.
요즈음은 불사 끝내는 것을 회향한다고 그러죠. 사실은 전에 닦았던 공덕을 전부 , , 삼보께 돌려서 확장시킨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축원할 때마다 "상례소수공덕회를 회향삼처실원만이니라" 그러잖아요. 상례에 닦은 공덕회를 삼처에 회향하여 원만해진다는 겁니다.
삼처는 보리, 실제, 중생입니다. 그리고 보리, 실제, 중생은 바로 불법승입니다. 보리라는 말은 각이니까 불이고, 실제라는 것은 법이고, 중생이라는 것은 승입니다. 보리, 실제, 중생 삼보께 회향한다는 거죠. 불법승 삼보만 삼보가 아닙니다. 전체 삼보에는 붙는 없습니다. 우주 만법이 삼보로 회통될 있습니다.


* 참고 - 대승지관법문에서 말한 삼보
불보 : 주관적인 지혜
법보 : 증득해야 3
승보 : 주관적인 지혜와 증득해야 이치가 하나의 모습으로 화합된

< 六極 >
儒敎학설, 서전에 나옴
박복한 것을 6가지로 말함
1. 凶短折 흉하게 죽는 , 50 전에 죽는 - 요사
2. 병들어서 아픈
3. 근심
4.가난
5. , 성격이 고약한 , 사나운
6. 약한 , 불면 날아갈 같은 신세

< 五福 >
1.
2. 부자, 재물이 많은 , 또는 학문, 사상도 남보다 풍부하면 부자다.
3. 攸好德, 덕을 좋아하는 , 惡과 반대
4. 康寧 완력도 세고 건강한 .
5. 考終命 죽을 어떻게 죽느냐...


건강하고 없고 근심 없게 하려면 약간 미련해야 합니다. 너무 영리한 사람은 좋지 않은 겁니다. 예민, 과민, 요즈음은 쇠약 그러지 않습니까?
그러면 예민의 반대는 뭐냐. 미련한 아닙니까? 아주 미련하여 컴컴한 사람이 사람이 잘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신경 쓰는 사람이 제일 잘난 사람이올시다. 신경 쓰는 방법, 그것이 건강의 제일비결이예요. 신경을 쓰자고 수도를 하는 것이예요. 자리를 생각해야 신경을 쓰는 곳으로 신경을 돌이키게 되는 거예요.
우리는 영리하지 못해서 한이 아닙니다. 미련하지 못해서 한이지요.
온갖 생각하고 앉아 있습니다.
생각없는 자리를 모른다는 거예요.
그것 하나 부처님을 당하는 겁니다.
생각없는 자리, 공부라는 것은 그것이 근본이지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겁니다.

<탄허스님 강설>

四智

四智
大圓鏡智 - 중생의 망상을 일으키는 8식을 뒤집어 놓은
8, 아뢰야식, 무의식, 잠재의식, 근본무명, 컴컴한

망상덩이, 칠통바가지가 뒤집어져서 대원경지가 된다.

平等性智 - 7식을 뒤집어 놓은
7... 보나 보지 않을 때나 밤낮 분별작용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아상... 에고...
밤낮 아상덩어리인 7식이 평등성지가 된다.
性理, 마음, 우리 근본자리, 우주가 일어나기

자리인 성리를 타파하고 보면
밤낮 주야로 분별하는 식이

*유식 삼십송 - 마음의 두번째 층은 마나식이라고 한다. 아라야식으로부터 발생하지만 아라야식을 대상으로 한다.
마나식의 본질적인 기능은 여러모로 생각하는 것이다.
네가지 번뇌와 함께 있다.

, 아치,아견, 아만, 아애다. 그외의 지각 등의 작용과도 결합되어 있다.
번뇌에 덮여는 있지만 선악에 대해서는 중성이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종자의 특성으로 규정되어 있다.
아라한과 멸진정과 출세간도라고 하는 단계로 변혁된다.

妙觀察智 - 6식을 뒤집어 놓은
6식의 분별작용은 間斷이 있다.

, 보고 들을 때나 분별하지 보고 듣기 전에는 분별이 없다.

成所作智 - 안이비설신 5식이 所作을 성취하는 지혜인 성소작지가

된다.
짓는 바를 성취하는 智란 뭔가... 보고 듣는 것마다 듣는 것마다
전부 불법 아닌 하나도 없다.



五眼
육안 - 고기눈깔은 場內를 봅니다. 백짓장 한장 너머도 보지 못합니다.
천안 - 場外를 봅니다. 천안통이 열려서 알면 알아도 보통 아는 것을 넘어갑니다.
혜안 - 자성을 반조하는 지혜..
자성을 반조한다는 것은 바깥 물질에 우리 마음이 부딪치질 않고
그것을 돌이켜서 시간 공간이 끊어진 자성자리로 반조해서 자성을 돌이키는
법안 - 우주만물을 달관하는 자리
산을 보면 산이 아니라 그냥 부처자리이고
물을 보면 물이 아니라 그냥 부처자리임을 보는 그것.
불안 - 혜안, 법안이 한덩어리가 .


* '혜안' 라즈니쉬의 '주시력'
"그대의 주시력이 빛날 때마다, 바로 시점에서 체험하라."
그대는 체험자를 체험할 것이다. 그대는 그대 자신으로 되돌아 것이다. 모든 곳으로부터 그대는 자신이 반조되어 것이다. 모든 곳에서부터 그대는 반사될 것이다. 존재계 전체가 그대를 비출 것이다. 오직 그때만이 그대는 자신을 있다. 그전에는 없다.
존재계 전체가 그대 앞에서 거울이 되지 않는 , 존재계의 모든 부분이 그대를 드러내 주지 않는 , 모든 관계성이 그대에게 열리지 않는 ...

* 육조스님의 五眼에 대한 해석
모든 사람에게 모두 오안이 있지만 미혹때문에 덮혀져서 스스로 없다. 그런까닭에 부처님은 이들에게 미혹된 마음을 제거해 버리면 오안이 원명하고 념념에 반야바라밀을 수행하게 된다고 가르치신 것이며 처음 헷갈린 마음을 제거하는 것은 육안이라 이름하였고 모든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음을 보고 연민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천안이라 이름하였으며 어리석은 마음이 생기지 아니하는 것을 혜안이라 이름하였고 법에 집착하는 마음을 제거하는 것을 법안이라 이름하였고 미세한 번뇌가 영원히 다하여 원명하게 두루 골고루 비추어보는 것을 불안이라 이름하였다.
이르기를
[색신가운데 법신이 존재하는 것을 보는 것을 육안이라 이름하였고 모든 중생들이 각기 반야의 자성을 갖추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을 천안이라 이름하였고 반야바라밀이 능히 삼세의 모든 법을 낳을 있음을 보는 것을 혜안이라 이름하였으며 모든 불법이 본래 스스로 갖추어졌음을 보는 것을 법안이라 이름하였으며 명철하게 자성을 보고 주관과 객관이 영구히 제거되는 것을 불안이라 이름하였다.] 라고 하였다.
<금강경오가해 一體同觀分第十八>

[출처] 삼덕일심의 도리|작성자 곡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