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이야기

화엄경십지품

수선님 2020. 2. 23. 11:50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십지품 (二十六 十地品)실차난타(實叉難陀) 한역

/무비(無比)스님 현토 및 번역

십지품》『팔만대장경해제3

26. 십지품(十地品) 화엄의 세계』 /십지품(十地品) - 이통현 (효산 역, 약석 신화엄경론)

십지품(十地品)

서분

정종분

1. 환희지(歡喜地 : 기쁨에 넘치는 지위)

2. 이구지(離垢地 : 번뇌의 때를 벗은 지위)

3. 발광지(發光地 : 지혜의 광명이 나타나는 지위)

4. 염혜지(焰慧地 : 지혜가 매우 치성한 지위)

5. 난승지(難勝地 : 진제와 속제를 조화하여 매우 이기기 어려운 지위)

6. 현전지(現前地 : 지혜로 진여를 나타내는 지위)

7. 원행지(遠行地 : 광대한 진리의 세계에 이르는 지위)

8. 부동지(不動地 : 다시 동요하지 않는 지위)

9. 선혜지(善慧地 : 바른 지혜로 설법하는 지위)

10. 법운지(法雲地 : 대법우를 비내리는 지위)


유통분

화엄경 소사전 (일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16 십지품(二十六, 十地品)

십지품》『팔만대장경해제3, (진경팔최근최복흥, 사회과학출판사, 1992)

십지(十地)란 보살수양의 10단계라는 뜻이다. 이것은 보살수양의 마지막 네 번째 10단계에 해당된다. 이 품에서는 금강장보살이 부처를 대신하여 보살들에게 설교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보살수양의 10단계에 대해 금강장보살의 설교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단계는 처음으로 불교의 이치를 통달하고 희열을 느끼는 경지이다. 보살이 이 경지에 들어서면 인간세상에 대한 모든 의욕과 미련이 없어지게 된다. 이 경지에서 보살은 혼잡한 마음과 시끄러운 생각이 없어지고 언제나 안온하고 편안하면서도 불도에 대한 깨끗한 신심과 끝없는 기쁨이 생기게 된다. 이 경지에서 혼잡한 마음으로 시끄러운 생각이 없어지게 되는 것은라는 생각을 버렸으므로 모든 시름과 공포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자기의 몸을 아끼지 않고 남의 신세도 바라지 않으며 죽음에 대한 공포도 느끼지 않고 자기가 죽더라도 부처의 교리대로 불도를 닦을 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고 여기에서 기쁨을 찾는 것이다.

또한 보살은 불교의 리치를 통달하고 희열을 느끼는 경지에 들어서려면 사람들을 구제하는 방법과 수단의 묘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보살이 사람들을 구제하는 방법과 수단의 묘리를 아는 것은 마치 어떤 큰 상인이 자기 밑의 여러 장군들을 데리고 멀리 큰 거리로 물건을 팔러 갈 때에는 우선 떠나기 전에 그들이 가는 동안에 숙식해야 할 곳과 있을 수 있는 위험한 지대를 알아보고 필요한 대책을 세워가지고 떠나는 것과 같다.

보살이 사람을 구제하는 방법과 수단의 묘리를 지니려면 모든 것을 아는 부처의 지혜를 닦아서 대승불교를 끝까지 신앙하는 마음, 불행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남에게 자비를 베푸는 인자한 마음, 모든 미련을 버리는 깨끗한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살은 이 희열을 느끼는 경지에 들어섰다고 하여 만족해하거나 자만하지 않고 부처가 가르쳐준대로 불도수양에 더 큰 힘을 넣는다. 그것은 마치 장인바치가 쇠붙이를 가공할 때 모든 지혜와 힘과 정열을 다하여 끝내 섬세한 장식품을 만들어내듯이 보살도 부지런히 사람들을 교화하여 부처의 세계를 웅장하고 아름답게 꾸리며 여기에서 다같이 행복을 누릴수 있는 기쁨을 마련해가고 있다.

둘째 단계는 모든 더러움을 씻어버리는 경지이다.

보살이 모든 더러움을 씻어버리는 경지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정직한 마음과 참을성있는 마음을 비롯하여 열가지의 깨끗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 보물이 이 경지에 이르면 마음이 저절로 온순하여지기 때문에 일체 살아있는 목숨을 끊지 않으며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고 남과 다투지 않으며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남에게 악담을 퍼붓지 않으며 재물을 탐내지 않고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보살은 이 온순하고 착한 마음을 영원히 지니기 위하여 남을 해칠 수 있는 칼과 몽둥이를 깡그리 없애버리고 원수와 화해하여 벗으로 삼는다.

또한 보살이 모든 더러움을 씻어버리는 경지에 들어서려면 모든 사람들을 잘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착한 행동만을 하고 나쁜짓을 하지 않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만일 사람들을 교화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제멋대로 행동하게 될것이며 살생과 도적질을 비롯한 열가지 악행을 저지르고 지옥에 떨어지거나 짐승 혹은 아귀로 되어버릴 것이다.

그것은 마치 숲속의 험한 오솔길로 가는 눈먼 사람의 길잡이를 해주는 사람이 없는 탓으로 길 아닌 길에 잘못 들어서서 악마들에게 붙들려 갖은 고초를 겪고 결국 그들의 악한 행위를 따르게 되는것과 같다. 그러므로 보살은 계율에 의거하여 사람들을 착하게 만들고 자비심을 베풀어 마음을 안정시켜야 한다.

셋째 단계는 빛나는 지혜가 나타나는 경지이다.

우선 보살이 빛나는 지혜가 나타나는 경지에 들어서려면 깨끗한 마음, 안정된 마음, 모든 것에 싫증을 느끼는 마음, 탐욕을 없애는 마음을 간직하여야 한다. 보살이 이런 마음을 간직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것이 허무한 것외에 다른 것이 없다는 부처의 교리에 자그마한 의심도 품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이치를 모르고 어리석은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고통과, 괴로움, 근심과 슬픔, 분노와 울분으로 들어차있다. 그러므로 보자비심을닦아야한다

보살은 의지 할데가 없어 고독하게 사는 사람, 생활이 어려워 쪼들려 사는 사람, 애욕과 탐욕에 눈이 어두워 난동을 부리는 사람, 불도의 계율을 지키지 않는 살마들의 처사를 보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이것을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보살이 사람을 위해 불도를 닦으면 자연히 부처의 지혜가 생기게 된다.

또한 보살은 모든 의혹을 없애고 빛나는 지혜가 나타나는 경지에 들어서려면 부처를 섬기고 받들며 그의 교리에 의거하여 불도를 닦아야 한다. 보살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재물을 아끼지 말고 부처에게 섬기고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며 설사 남의 값진 보물을 보더라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보살은 이미 자비심을 닦은 것만큼 부처의 교리를 소중히 여기고 모든 사람들에게 해설해 주어야 한다.가령 어떤 사람이 보살에게 보처의 교리를 해설하여 줄 것은 청한다면 이때 보살은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지옥이나 불속에라도 따라 들어가서 온갖 고통을 참고 부처의 교리를 설교해 주어야 한다.

이렇게 보살이 생각과 행동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을 교화한다면 부처의 신통한 힘을 얻은 지혜를 빛내이게 된다.

넷째 단계는 지혜가 더욱 원숙해지는 경지이다.

보살이 지혜가 더욱 원숙해지는 경지에 들어서려면 인간세상과 하늘세계의 허무한 본성을 올바르게 살펴보고 거기에서 그 어떤 미련도 가지지 말아야 한다. 보살이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탐욕과 근심을 없애고 착한 법을 닦게 되며 지혜가 원숙해지는 경지에 들어서게 된다. 보살이 경지에 들어서면 부드러운 마음, 양순한 마음, 지혜를 구하는 마음, 부처의 교리를 어기지 않는 마음을 지니게 되며 부처의 의도대로 불도를 닦게 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생에 대한 애착을 가진 탓으로 부처의 꾸중을 들었다면 보살은 그것이 부처의 자비심이라는 것을 알고 곧 적당한 방법으로 그 사람을 어리석은 생각에서 건져내야 한다. 이것이 부처의 뜻에 순응하여 불도를 닦고 사람들을 구제하는 지혜를 더 원만하게 다지는 보살의 끝없는 보람이다.

다섯째 단계는 모든 것을 통달하는 경지이다.

보살이 모든 것을 통달하는 경지에 들어서려면 우선 세상에 모든 것은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에 걸쳐 부처의 교리는 변함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균등하다. 그것은 부처의 교리가 모든 사람들을 차별없이 다 극락세계로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부처의 교리가 이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균등하다는 것을 알아야 인생의 모든 것이 고통으로 일관 되여있고 이 고통은 인간세상에 대한 미련과 가정에 대한 애욕으로 생겨났기 때문에 곧 인간세상을 버리고 이상의 경지로 지향 하여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또한 보살은 모든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온 세상을 통달하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살마들에게 이익이 될 수있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첫째로,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는 글과 산수와 그림과 서적 등 모든 학문을 통달하는 것이며 둘째로, 약방문을 잘 알아서 사람들의 여러 가지 질병을 치료해 주는 것이며 셋째로, 모든 귀신과 도깨비를 제압 하는 것이며 넷째로, 문장과 글씨, 시와 노래, 춤과 풍악 등을 능하게 하는 것이며 다섯째로, 큰 거리와 시골, 집과 원림, 샘과 못, 풀과 나무, 꽃과 약초를 가꾸고 꾸미는 묘리가 있어야 하며 여섯째로 금, , , 진주, 보석 등 보물이 있는 곳을 다 알아내고 파내어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며 일곱째로 해와 달, 별이 조화를 부리고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며 지진이 일어나 재앙을 주는 현상을 잘 관찰하여 길흉을 알아 맞 추 어 야 한다.

보살이 이처럼 인간세상의 기술과 재주를 함께 갖추고 불도를 닦으면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

여섯째 단계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허무한 것이라는 이치를 원만히 소유하는 경지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허무한 것이라는 이치를 원만히 소유하려면 세상만물에 대한 이해를 바로 가지고 모든 것은 거울 속에 비친 영상이나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가상이라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내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을 놓고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게 되며 여기에서 욕망과 애착이 생기고 어지러운 번뇌가 점차 자라나게 되며 결국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윤희길에서 맴돌게 된다.

그러므로 보살은 인생과 사물에 대한 그 어떤 미련도 가지지 말고 부처의 교리대로 모든 것은 허무한것이라는 이치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끊임없이 도를 닦아야 한다.

일곱째 단계는 인간세상을 버리고 부처의 세계로 가는 경지이다.

보살이 부처의 세계에 가려면 모든 사람을 구제하고 부처를 섬길 수 있는 근본인 바라밀을 마음속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보살로 하여금 남에게 재물을 주는 것으로써 자비심을 닦고 모든 애착과 욕망을 없애는 것으로써 계율을 지키며 남의 고통을 대신하여 받는 것으로써 괴로움을 참는 마음을 닦고 착한 일을 하면서도 자만하지 않는 것으로써 부지런히 마음을 닦으며 부처의 지혜를 지향하여 마음을 안착하는 것으로써 명상에 잠기고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이치를 깨닫는 덕으로써 부처의 신기한 힘을 갖추기 때문이다.

여덟째 단계는 마음의 동요가 없는 경지이다. 보살이 이 경지에 들어서면 몸과 마음이 안온하고 편안해진다. 이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강물에 빠져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나 그가 꿈에서 깨어나면 그런 고통이 있었던가 생각하면서 편안히 앉아있게 되는 것과 같다. 보살이 닦는 마음의 수양도 이와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이 안온하다고 해서 해이하지 말고 마음의 동요가 없이 계속 부처의 교리를 따라 어리석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쉬임없이 닦아야 한다. 보살은 부처의 지혜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자기를 처음으로 불도를 닦는 신자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닦아야 부처의 세계에 대한 변함없는 마음을 가지고 동요 없이 대승 교리를 온 세상에 퍼뜨릴 수 있다.

아홉째 단계는 부처의 지혜가 완성되는 경지이다.

보살이 부처의 지혜를 완성하면 우선 마음의 온갖 차별과 번뇌의 여러 가지 표현을 알게 되고 모든 악의 근원을 알게 되며 결국 세상의 모든 일을 통달하게 된다. 그러므로 보살은 모든 사람들의 성품과 욕망 등 온갖 차별을 알고 그에 맞게 교화하고 부처를 믿도록 한다.

또한 보살이 부처의 지혜를 완성하면 기묘한 재주와 힘을 가지게 되며 화를 막고 복을 주는 주문에 통달하게 되며 보살은 이러한 수양의 힘으로써 온 세상을 오가며 모든 사람을 구제하게 된다.

열째 단계는 큰 덕행으로 모든 사람을 극락으로 이끌어주는 경지이다.

보살이 이 경지에 들어서면 인간세상의 모든 번뇌가 생기는 원인과 고통이 가져오는 후와를 알고 사람을 구제하는 바 업에 정통하게 된다.또한 보살이 이 경지에 들어서면 자기의 생각대로 지혜를 불러 일으켜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비심을 베풀고 악마들을 제압한다. 그러나 이 신기한 힘은 부처의 덕행을 지닌 보살만이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경지에 들어선 보살은 부처의 자비로운 마음을 그대로 나타내어 모든 사람들을 교화하고 그들을 극락세계로 이끌어 간다.

이상과 같이 이 품 에서는 보살이 반드시 이 마지막 10단계의 수양과정을 거쳐야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설교하였다.

26. 십지품(十地品) 화엄의 세계(민족사 1998 해주 저)

십지(十地) 사상은 인도 대승불교사상사의 전개과정에서 뺄 수 없는 주맥이 되고 있는 사상이 아닌가 여겨지고도 있다.

십지사상이 마하바스투의 십지에서대품반야경의 십지로, 이것이 다시보살본업경의 십지를 거쳐십지경의 십지로 완성되며, 그것이 유가행자에 의해 보살행으로 실천화되는 것으로 전개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십지사상을 본생십지반야십지본업십지화엄십지유가행십지로 크게 나누어 보기도 한다.

화엄경<십지품>에서는 앞에서 제345회 등에서 살펴본 십주와 십행과 십회향을 통틀어 포섭하는 십지보살행이 시설된다. 이 십지보살행은 화엄이 일승임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십지법문은 타화자재천궁에서 이루어진다. 금강장보살이 보살대지혜광명삼매에 들었다가 십지를 설했으니 여기서 지()란 지혜의 지이다. 십지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1. 환희지(歡喜地 : 기쁨에 넘치는 지위)

2. 이구지(離垢地 : 번뇌의 때를 벗은 지위)

3. 발광지(發光地 : 지혜의 광명이 나타나는 지위)

4. 염혜지(焰慧地 : 지혜가 매우 치성한 지위)

5. 난승지(難勝地 : 진제와 속제를 조화하여 매우 이기기 어려운 지위)

6. 현전지(現前地 : 지혜로 진여를 나타내는 지위)

7. 원행지(遠行地 : 광대한 진리의 세계에 이르는 지위)

8. 부동지(不動地 : 다시 동요하지 않는 지위)

9. 선혜지(善慧地 : 바른 지혜로 설법하는 지위)

10. 법운지(法雲地 : 대법우를 비내리는 지위)

(1) 환희지(歡喜地)

환희지는 10가지 원을 성취하며, 보시섭(布施攝)과 보시바라밀로 기쁨에 넘치는 지위이다.

만약 보살이 선근을 깊이 심고 모든 행을 잘 닦고 내지 광대한 지혜를 내며 자비가 앞에 나타나서 범부의 처지를 뛰어나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서 여래의 집에 태어난다. 이때가 환희지에 머무는 때이다.

여래의 집에 태어난다[生如來家]는 말씀은화엄경에서 여러 번 보인다. 그것은 앞의 초발심주와 이곳 초지, 그리고 제4지에서도 보이고 있다. 이것은 비심(悲心)이 점점 증대됨에 그 차이가 보인다.

보살이 환희지에 머물면 모든 두려움이 다 사라지며 10가지 큰원을 성취한다. 그 십대원은 일체 부처님께 공양하는 원 불법을 수호하는 원 법륜 굴리기를 청하는 원 모든 바라밀을 수행하는 원 중생을 교화하는 원 세계를 잘 분별하는 원 불토를 청정히 하는 원 항상 보살행을 떠나지 않는 원 보살도를 행하여 이익을 주는 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원이다.

이를 청량징관은 공양원(供養願)수지원(受持願)전법륜원(轉法輪願)수행이리원(修行二利願)성숙중생원(成熟衆生願)승사원(承事願)정토원(淨土願)불리원(不離願)이익원(利益願)성정각원(成正覺願)으로 이름하고 있다.

보살이 환희지에 머물러 이렇게 큰 서원을 내니, 만일 중생계가 끝나면 이 원도 끝나려니와 중생계가 다할 수 없으니 이 원의 선근도 다함이 없다고 한다.

화엄경의 원으로서는 앞에서 140, 10회향원을 보았고, 이곳 초지에서 10대원을 만났는데 앞으로 <여래출현품>에서도 여래성기원이 설해지고 있다. 의상은 이러한 원을 들면서 원에 의해 부처가 된다고 해서 10불 중에 원불을 말씀하고도 있다. 이외에도사십화엄에서는 보현보살의 10대행원을 설하고 있다.

이 십대원 중 제7원에서는 '일체 국토가 한 국토에 들어가고 한 국토가 일체 국토에 들어간다'는 상입(相入)으로 체계화되고도 있다.

그런데 특히 제4원이 화엄교학에서 대단히 중시되고 있다. 모든 바라밀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총상(總相)별상(別相)동상(同相)이상(異相)성상(成相)괴상(壞相)으로 닦기를 원하는 이 원은 후에 육상원융설로 체계화되기 때문이다.


다음은 제4원의 내용이다.

또 원을 일으키되 일체 보살행이 없고 크고 한량없어서 무너지지않고 잡되지 않으며 모든 바라밀을 거두어서 모든 지를 깨끗이 다스리며, 총상별상동상이상성상괴상의 있는바 보살행을 다 여실히 설하여 일체를 교화해서 그로 하여금 받아 행하며 마음이 증장을 얻게 하여지이다.

보살이 육상으로 모든 바라밀행을 설해서 중생으로 하여금 닦아 마음이 증장케 하는 원을 일으킨다. 이는 후에 육상원융설로 체계화되면서 화엄교학의 골격이 되고 있다. 육상원융에 대해서는 후에 살펴보기로 한다.

그런데 이 환희지에서는 또 보시섭과 보시바라밀로 기쁨에 넘치는 지위로 되어 있으니, 여기서는 단지 보시바라밀을 중심으로 한 제바라밀을 동상 내지 괴상으로 닦아지이다고 발원한 것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화엄보살도는 총상이며, 보시바라밀 내지 지바라밀 각각은 별상이다.

십바리밀의 모든 연이 서로 위배되지 아니하며 보살도의 전체 모습이 되는 것이 동상이며, 보시바라밀 등 각 바라밀이 각기 다른 양상을 띠고 있음은 이상이다. 성상은 모든 바라밀에 의해 보살도의 공용이 이루어지며, 괴상은 보시바라밀은 보시바라밀의 공덕이 있고 내지 지바라밀은

지바라밀의 공덕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상원융적으로 볼 때 보시바라밀이 곧 화엄보살도이다. 보시바라밀이 없으면 온전한 보살도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보시바라밀이 지계바라밀 내지 지바라밀과 다르며 주()()()() 각위에 보시바라밀부터 차제로 닦아가도록 시설되어 있기는 하나, 또 반드시 보시바라밀을 다 닦아 마친 후에 지계바라밀을 닦고 보시와 지계를 다 닦아 마친 후에 다시 인욕바라밀 내지 지바라밀을 닦아가서 보살도를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십바라밀이 각각 차별하여 하나가 아니면서도 무애원융하다. 보시바라밀이 자기 자리를 움직이지 않고 모든 바라밀을 포섭하여 보살도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원융수행법이 이루어지기에 초발심 때에 정각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처음 발심을 하는 자리인 초발심주에서는 보시바라밀을 치우쳐 닦도록 시설하고 있다. 보시바라밀이 주()가 되고 여타바라밀은 반()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초발심주에서 또한 초발심시에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육십화엄에서는 초발심시변정각이라고 하였다. 이는 보시바라밀로 정각을 이루고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불종성을 이어가게 한다고도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전개되는 모든 보살계위에서의 제바라밀행은 화엄보살도가 그러하듯이 부처님 세계의 갖가지 장엄이라 하겠다.

(2) 이구지(離垢地)

이구지는 십선업도(十善業道)를 행하고 애어섭(愛語攝)과 지계바라밀로 모든 번뇌의 때를 여의는 지위이다. 10가지 깊은 마음을 일으켜 제2지에 들어간다. , 정직한 마음[正直心]부드러운 마음[柔軟心]참을성 있는 마음[堪能心]조복한 마음[調伏心]고요한 마음[寂靜心]순일하게 선한 마음[純善心]잡되지 않는 마음[不難心]그리움 없는 마음[無顧戀心]넓은 마음[廣心]큰 마음[大心]이다.

이구지보살은 성품이 일체 악업을 멀리 여읜다.

성품이 저절로 일체 살생을 멀리 여의어서, 칼 등의 살생도구를 두지 아니하고, 원한을 품지 아니하고, 일체 중생에게 항상 이익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낸다. 보살은 중생이라는 생각을 내면서 거치른 마음으로 살해하는 일이 없다.

성품이 훔치지 않는다. 보살이 자기의 재산에 만족함을 알고 다른 이에게는 인자하고, 다른 이에게 소속한 물건에는 남의 것이라는 생각을 내어 훔치려는 마음이 없고, 풀잎 하나라도 주지 않는것은가지지 않는다

성품이 사음하지 않는다. 보살이 자기의 아내에 만족함을 알고 다른 처를 구하지 않는다. 다른 이의 처첩이나, 다른 이가 보호하는 여자에게 탐하는 마음도 내지 않는다.

성품이 거짓말하지 않는다. 보살이 항상 진실한 말과 참된 말과 시기에 맞는 말을 하고, 꿈에서라도 거짓말 하려는 마음이 없다.

성품이 이간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보살이 이간하는 마음이 없고 해치려는 마음도 없다. 이간하는 말은 실제거나 실제가 아니거나 말하지 아니한다.

성품이 나쁜 말을 하지 않는다. 이른바 해롭게 하는 말, 거치른 말, 남을 괴롭히는 말, 남을 성내게 하는 말 등은 모두 버린다. 항상 윤택한 말, 부드러운 말, 뜻에 맞는 말, 여러 사람이 기뻐하는 말, 몸과 마음이 희열한 말을 한다.

성품이 번드르한 말을 하지 않는다. 보살은 언제나 잘 생각하고 하는 말, 시기에 맞는 말, 진실한 말, 의로운 말, 법에 맞는 말을 좋아한다. 보살은 웃음거리로라도 항상 생각하고 말한다.

성품이 탐욕 부리지 않는다. 보살이 남의 재물이나 다른 이의 생활용품에 탐심을 내지 않고 원하지 않고 구하지 않는다.

성품이 성내지 않는다. 보살이 일체 중생에게 항상자비한마음을 낸다

또 성품에 삿된 소견이 없다. 보살이 바른 길에 머물러서 불승 삼보에 결정한 신심을 낸다.

보살이 이와 같이 10가지 선한 법[十善業道]을 행하여 항상 끊임이없다

이 보살이 4가지로 거두어 주는 법[四攝法] 중에서는 사랑스러운 말[愛語]이 치우쳐 많고, 십바라밀 중에서는 지계바라밀이 치우쳐 많으니, 다른 것을 행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힘을 따르고 분수를 따를 뿐이다.

소승계와 대승보살계, 또는 사계(事戒)와 이계(理戒)는 차이가 있다. 소승계인 사계는 표업만 범계가 되나 대승보살계는 무표업 또한 범계가 된다. 예를 들면 소승계는 직접 살생을 하지 않으면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보살계는 마음으로 생각만 해도 파계가 된다. 그것은 보살은 성품 자체가 살생과는 전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또 보살은 일체 중생이 살생을 하지 않도록까지 해 주어야 살생계를 지키는 것이 된다.

(3) 발광지(發光地)

발광지는 10, 특히 삼법인을 관하고 이행섭(利行攝)과 인욕바라밀로 지혜의 광명이 나타나는 지위이다.

보살이 제3지에 머물고는 모든 유위법의 실상을 관찰한다. 즉 유위법은 무상하고, 괴롭고, 부정하고, 안온하지 못하고, 파괴하고, 오래 머물지 못하고, 찰나에 났다 없어지고, 과거에 생한 것도 아니고, 미래로 가는 것도 아니고, 현재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법을 관찰하면 모든 유위법에 대하여 싫어함이 배나 더하여 부처님 지혜로 나아간다. 보살은 이와 같이 여래의 지혜가 한량없이 이익함을 보고, 모든 유위법은 한량없이 걱정되는 줄을 보므로, 일체 중생에게 10가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낸다.

보살이 발광지에 머물면 4선과 4무색정에 머물고 한량없는 신통력을 얻는다. 사섭법 중에는 이행섭이 수승하니, 십바라밀 중에는 인욕바라밀이 수승하니, 다른 것을 닦지 아니함은 아니지만, 힘을 따르고 분수를 따를 뿐이다.

(4) 염혜지(焰慧地)

염혜지는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을 닦고 동사섭(同事攝)과 정진바라밀로 지혜가 매우 치성하는 지위이다. 이 염혜지에 머물면, 지혜로써 여래의 가문에 태어난다. 삼십칠조도품은 다음과 같다.

사념처(四念處) : 관신부정(觀身不淨)관수시고(觀受是苦)관심무상(觀心無常)관법무아(觀法無我)

사정근(四正勤 혹은 四正斷) : 이생악령단(已生惡令斷)미생악령불생(未生惡令不生)이생선령증장(已生善令增長)미생선령생(未生善令生)

사여의족(四如意足, 四神足) : ()정진(精進)()사유(思惟)

오근(五根) : ()()()()()

오력(五力) : ()()()()()

칠각분(七覺分) : 택법(擇法)정진(精進)()()()()

()팔정도(八正道) :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정진(正精進)정념(正念)정정(正定)

(5) 난승지(難勝地)

난승지는 진제와 속제를 조화하여 이기기 어려운 지위이니,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四聖諦)와 선정바라밀을 주로 닦는다.

난승지에서는 또 보살이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세간의 기예를 모두 익힌다.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일이면 모두 열어 보여서 점점 위없는 불법에 머물게 한다.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문자와 산수와 약방문과 글씨와 시와 노래와 춤과 풍악과 연예와 웃음거리와 재담 등을 다 잘하며, 나무와 꽃과 약초들을 계획하고 가꾸는 데 묘리가 있고, 마니진주유리보배보석산호 등의 있는 데를 다 알아 파내어 사람들에게 보이며, 산수가 좋고 나쁜 것을 잘 관찰하여 조금도 틀리지 아니한다.

(6) 현전지(現前地)

현전지는 세간 출세간의 일체 지혜가 다 나타나는 지위이니, 십이연기[無明名色六入老死]를 관하고 반야바라밀을 성취한다.

이상에서 시설된 수행법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설명을 생략하겠다. 근본불교시대부터 소승불교시대까지 시설된 기본적이고 중요한 수행방편이었던 것이다. 이곳 <십지품>에서는 일심에 입각하여 일승적으로 재해석되어 십지보살도의 내용으로 들어와 있는 것이다.

(7) 遠行地

원행지는 광대한 진리세계에 이르는 지위이니 십바라밀[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智慧方便]을 구족하고 특히 방편바라밀을 치우쳐 닦는다. 십바라밀을 그 주된 수행덕목으로 삼고 있는 제7원행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이 보살은 생각마다 항상 능히 10가지 바라밀을 구족한다. 왜냐하면 생각마다 대비로 으뜸을 삼고 부처님 법을 수행하여 부처님 지혜에 향하는 까닭이다.

있는바 선근을 부처님 지혜를 구하기 위하여 중생에게 베풀어 줌이 단나바라밀(檀那波羅蜜)이요, 일체 번뇌의 열을 멸함이 시라바라밀(尸羅波羅蜜)이요, 자비로 으뜸을 삼아 중생을 해롭히지 않음이 찬제바라밀(?提波羅蜜)이요, 수승하고 선한 법을 구하여 만족해 싫어함이 없는 것이 비리야바라밀(毘梨耶波羅蜜)이요, 온갖 지혜의 길이 항상 앞에 나타나서 일찍이 산란하지 않음이 선나바라밀(禪那波羅蜜)이요, 모든 법이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음을 능히 인정하는 것이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이요, 한량없는 지혜를 능히 출생함이 방편바라밀(方便波羅蜜)이요, 상상품의 수승한 지혜를 구함이 원바라밀(願波羅蜜)이요, 모든 마군들이 능히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 역바라밀(力波羅蜜)이요, 일체 법을 실제와 같이 요달해 아는 것이 지바라밀(智波羅蜜)이다. 불자여, 이 십바라밀은 보살이 생각마다 모두 구족하니라.

(8) 부동지(不動地)

부동지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어 동요하지 않는 지위이니 원바라밀을 치우쳐 닦는다. 마음과 뜻과 식으로 분별하는 생각을 여의어서 집착할 바가 없음이 마치 허공과 같으며, 일체 법의 성품이 허공과 같으며 들어서 다시는 남이 없는 법에 들게 된다.

이 부동지에서는 무공용각혜(無功用覺慧)로 일체지지의 경계를 관하며, 중생의 좋아함을 따라서 갖가지 몸을 나타내어 중생을 교화한다. 이렇게 해서 나타내 보이는 부처님 몸은화엄경의 다른 품에서 보이는 십불설과 함께 후에 화엄교학에서는 이종십불설로 나타나게 된다. 이 점도 다음에 고찰하기로 한다.

(9) 선혜지(善慧地)

사무애지[樂說]를 얻어 대법사가 되어 설법하는 지위이니 역바라밀이 가장 수승하다.

(10) 법운지(法雲地)

대법우를 비내리는 지위이니, 지혜바라밀이 가장 수승하다.

경에서는 이상의 십지경계를 바다의 10종 이익에 배대하여 다시 한 번 보이고 있다. 큰 바다의 10가지 이익은 다음과 같이 설해지고 있다.

차례로 점점 깊어진다.

송장을 받아두지 않는다.

다른 물이 그 가운데 들어가면 모두 본래의 이름을 잃는다.

모두 다 한맛이다.

한량없는 보물이 있다.

바닥까지 이를 수 있다.

넓고 커서 한량이 없다.

큰 짐승들이 사는 곳이다.

조수가 기한을 넘지 않는다.

큰 비를 모두 받아도 넘치지 않는다.

십지보살의 행도 그와 같다.

환희지는 큰 서원을 내어 점점 깊어지는 까닭이다(십대원).

이구지는 모든 파계한 송장을 받지 않는 까닭이다(십선업).

이구지에서는 보살이 성품 자체에 일체 나쁜 것이 없어서 나쁜 업은 일체 지을 생각조차 없으므로 십선업도를 닦는 자리이다. 그러므로 바다가 송장이나 나쁜 오물을 속에 남겨 두지 않고 밖으로 내보내는 공덕에 비유하고 있다. 우리도 우리의 마음 속에 일체 번뇌를 담고 있지 않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서 화가 날 때 속으로 화를 참고 있다면 이는 속에 번뇌를 담고 있는 것이 되겠다. 그렇다고 남에게 화풀이를 해서 화를 해소하라는 것은 아니다. 화 자체에 자성이 없어서 아예 화낼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만약 그 이치가 터득이 안 돼서 그래도 화가 난다면 자비관을 닦아가도록 경에서 교설하고 있다.

발광지는 세간에서 붙인 이름을 여의는 까닭이다(삼법인).

세간의 유위법을 잘 관찰하면 그 유위법이 좋아할 것이 아닌 줄 알게 되므로 가치관이 달라질수밖에없다.

염혜지는 부처님의 공덕과 맛이 같은 까닭이다(삼십칠조도법).

보리를 돕는 수행법은 어떤 것을 닦든지 다 부처님 세계에 도달되는 일승 수행법이 된다.

난승지는 한량없는 방편과 신통과 세간의 보배들을 내는 까닭이다(사성제).

이 난승지는 이기기 어려운 단계를 넘어서는 자리이다. 세간지와 출세간지가 하나 되어서 중생을 위해 갖가지 방편을 시설하고 있는 자리이다. 모든 고통을 여의고 열반세계로 인도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현전지는 인연으로 생기는 깊은 이치를 관찰하는 까닭이다(12연기).

우리 존재는 모두 상의상관의 인연 속에 있다. 이 연기의 진리는 불교의 근본진리로서 그 순역관을 통해서 생사의 고통을 해결하고 지혜를 증득하게 된다. 이 또한 다 마음에 의해서 생겨나는 깊은 도리를 관찰하는 자리이므로 바다가 깊고 깊어서 바닥까지 다다를 수 없는 데 비유되고있다

원행지는 넓고 큰 깨달음에 이르는 지혜를 잘 관찰하는 까닭이다(10바라밀).

모든 바라밀로 부처님의 광대한 세계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부동지는 광대하게 장엄하는 일을 나타내는 까닭이다(무생법인).

선혜지는 깊은 해탈을 얻고 세간으로 다니면서 사실대로 알아서 기한을 어기지 않는 까닭이다(사무애변).

법운지는 모든 부처님 여래의 큰 법의 비를 받으면서 만족함이 없는 까닭이다(대법우).

그래서 끝없는 원행으로 이어지게 된다.

경에서는 이상의 십지보살 행과로서 <십정품> 내지 <이세간품>11품에서 등각과 묘각의 경계를 설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보살도는화엄경이 일승보살도를 펼치고 있음을 확연히 알 수 있게 한다. 십지보살도는 회삼귀일에 바탕한 일승보살도로서 보살도의 정화로 간주되어 왔던 까닭이 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초지는 원을 세우는 자리이니 대승보살은 원이 없으면 보살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원을 세우는 것은 기본적인 보살의 모습이라 할수있다

2지에서의 십선업도(十善業道)는 근본교설에서는 십선업으로서 재가불자의 윤리 도덕에 해당하는 항목으로 여겨졌던 것이, 대승불교도들이 지키는 십선계(十善戒)로서 대승적 의미가 부여되었고, 다시화엄경에서는 제2지 보살이 닦는 수행덕목으로 들어오고 있다.

3지에서는 삼법인에 해당하는 일체 법을 관찰한다.

4지에서 닦는 삼십칠조도품은 소승불교시대에 종합된 수행덕목이다. 대승은 소승을 비판하고 일어났던 것임을 볼 때화엄경이 일승설이기에 이 37조도품 역시 보살의 수행방편으로 다시 해석되어 수용된 것이라 하겠다.

5지에서 닦는 사성제는 처음 대승불교가 일어났을 때는 대승에서 자리매김하기를, 성문승이 주로 닦아가는 수행법이고 이 사성제를 통해서 아라한과를 증득하게 되는 수행법이다.

6지의 십이연기를 관하는 것은 소승에서 연각이 닦아가는 수행법으로서 역시 아라한과까지 도달된다고 한 실천법이다.

다시 말해서 삼승(三乘)이라고 할 때 성문승연각승보살승을 말하는데, 성문승연각승은 소승이고 보살승은 대승이다. 처음 대승불교가 일어날 때는 보살은 성문연각과는 다르다고 하고, 대승은 소승을 비판함으로써 일어났던 것이다. 성문연각은 아라한 정도의 깨달음밖에 성취할 수 없고 보살은 6바라밀행을 닦아서 부처가 될 수 있는 자로 보았다. 그때 성문과 연각이 닦는 대표적인 수행법이 사성제와 십이연기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화엄경에서는 이 두 수행법이 제5지와 제6지 계위의 보살이 닦는 수행법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리고 보살의 바라밀행은 다음 제7지 보살이 닦는 대표적인 수행법으로 10바라밀이 교설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화엄경십지보살도는 회삼귀일에 바탕한 일승보살도로서 보살도의 정화로 간주되어 왔던 것이다.

여기서 이상의 모든 바라밀에 관한 교설을 총합해 보자. 다음과 같이 십바라밀을 약설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자기에게 있는 선근과 내외의 모든 가진 것을 중생에게 베풀어 주어 마음이 만족하게 하되 집착하는 바가 없음이 단나바라밀이다.

일체 번뇌의 열을 멸하고, 부처님의 계법을 청정하게 지니어 범계하지 아니하면서도 집착하지 아니하고 아만을 영원히 여의는 것이 시라바라밀이다.

부처님 인욕에 머물러 자비를 으뜸으로 삼아 중생을 해롭게 하지 않으며 온갖 나쁜 것을 모두 참으면서 여러 중생에게 마음이 평등하여 흔들리지 않음이 찬제바라밀이다.

수승하고 선한 법을 항상 닦아서 게으르지 아니하고 퇴전치 아니하며 용맹한 세력을 제어할 이 없고 모든 공덕에 만족함이 없는 것이 비리야바라밀이다.

온갖 지혜의 길이 항상 앞에 나타나서 바르게 생각하는 힘으로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한 경계를 생각하고 온갖 삼매문에 들어가는 것이 선나바라밀이다.

한량없는 모든 법이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음을 사실대로 관찰하고 분별하여 실상인을 얻으며 온갖 지혜의 지혜문에 들어가서 영원히 휴식함을 얻음이 반야바라밀이다.

한량없는 지혜를 능히 출생하여 중생을 교화함에 그들의 즐겨함을 따라 몸을 나타내며 일체 행하는 법에 물들지 아니하고 탐착하지 아니함이 방편바라밀이다.

끝까지 일체 중생을 성취하며, 일체 세계를 장엄하며, 일체 부처님께 공양하며, 장애없는 법을 통달하며, 법계에 가득한 행을 수행하며, 여래의 지혜를 증득하니 보현의 큰 서원을 만족하여 마음이 동요하지 아니함이 원바라밀이다.

온갖 자재한 신통을 나타내는 심심력(深心力)심신력(深信力)대비력대자력총지력변재력바라밀력대원력신통력

가지력 등 갖가지 힘을 갖추어 중생들을 널리 제도함에 모든 이론(異論)과 마군들이 능히 깨뜨릴 수 없는 것이 역바라밀이다.

일체 법을 실제와 같이 알며 모든 중생이 여래와 더불어 성품이 같은 줄 알아 모든 부처님 법에 두루 들어가는 것이 지바라밀이다.

이러한 십바라밀을 구족하여 대비를 으뜸으로 삼고 부처님 지혜에 향하는 것이다.

[출처] 화엄경십지품|작성자 asky6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