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림바르빠 8. 지(止, Samatha 사마타)-삼매수행, 집중수행
이에 먼저 지(止)를 성취해야 하는데, 외부 경계(境界:對象)에 산란(散亂)함을 가라앉히고 나서 내적인 대상(所緣)에 [집중하여] 지속적으로 자기 본성(本性)에 머무르며, [몸과 마음이] 경안(輕安: 맑고 가벼움) 상태에 안주(安住)하는 것을 지(止)라고 합니다.
적절한 예비수행을 마친 다음에, 지(止, Śamatha)와 관(觀, Vipaśyanā)으로 이루어져 있는 실제 수행에 들어 가야합니다.
지를 수행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지는 외적인 대상에 대한 이끌림이 없는 고요함을 이룬 결과로,
수행의 대상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더불어 지는 정신적인 침몰(沈沒)이나 도거(掉擧)에 빠지지 않고 몸과 마음의 허물을 점점 제거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경안(輕安)”은 수행자의 몸과 마음의 속성이 향상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수행의 과정에서 보면, 정신적 경안이 먼저 찾아오고 그 다음에 몸의 경안이 찾아옵니다.
흥미로운 것은 정신적 경안이 생긴 뒤에 몸의 경안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지복감이 생기는 것을 지(止, Śamatha)의 수행이라고 합니다.
관(觀, Vipaśyanā)은 무엇을 말합니까?
지(止)의 본성을 볼 수 있을 때, 그 자체를 분별하는 것이 관(觀)입니다.
『불설제개장보살소문경(佛說除蓋障菩薩所問經)』에서 설하신 것처럼, “지(止)는 한 곳에 집중(一處(点)集中)하는 마음의 성품이며, 관(觀)은 바르게 각각의 것을 분석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지(止, Śamatha)의 수행능력을 개발하고 나서도 수행자가 그 대상 한 곳에 마음을 둘 수 없다면 그 대상을 분석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집중하는 수행의 대상은 기본적으로 절대적 진리를 말하는 것이지만, 세속적인 현상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닙니다.
대상을 분석하면서 생기는 정신적·육체적 지복감의 상태가 관(觀, Vipaśyanā)입니다.
그런 다음, 지(止, Śamatha)와 관(觀, Vipaśyanā)을 하나로 합일해야 합니다.
지와 관은 집중하는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속적인 진리나 궁극적인 진리 할 것 없이 모두 집중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궁극적인 진리에 집중하는 지의 수행도 있고 세속적인 진리에 집중하는 관의 수행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음을 공성에 두고 집중해 들어가는 지(止, Śamatha)의 수행이 있습니다. 또, 수행의 길에서 나타나는 거칠고 미세한 세속적 현상을 분석해 나가는 관(觀, Vipaśyanā)의 수행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수행의 일반적인 차이를 보면,
지(止, Śamatha)는 집중하는 것이고, 관(觀, Vipaśyanā)은 분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교(顯敎)의 바라밀승(婆羅蜜乘)과 세 가지 하급 밀교(密法, Tantra)의 관점입니다. 무상요가(無上瑜伽)에 따르면, 관(觀, Vipaśyanā)이 집중하는 수행입니다. 이 단계는 집중의 힘을 완전히 관(觀, Vipaśyanā)에다 두는 독특한 이해 방식입니다. 반면에 까규(Kagyu)의 마하무드라(Mahamudra, 大印)와 닝마(Nyingma)의 족첸(Dzogchen, 大圓滿) 수행에서는 관(觀, Vipaśyanā)을 단지 분석적인 수행으로만 생각합니다.
(*역주: 여기서 말하고 있는 닝마(rNying-ma), 까규(bKa' brgyud)는 티벳 불교의 사대 종파에 속하는 종파의 이름이며, 족젠(Dzog chen), 마하무드라(Mahāmudrā,, ꇅ Phyag rgya chen po) 등은 그 종파들의 무상요가 수행 방법을 말한다. 또 세 가지 하급 밀교란 무상요가(無上瑜伽, ꇄ Anuttarayogatantra)를 제외한 행(行, ꇄ Kriya), 작(作, ꇄ Carya), 요가(瑜伽, ꇄ Yoga)의 단계적 밀교 수행 방법들을 말한다.)
『해심밀경(解深密經)』에서도,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야 지(止)를 완전히 탐구(探究)할 수 있으며, 관(觀)에 능숙한 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답하시기를, ‘미륵이여, 나의 법(法)을 상대적으로 구별하면 다음과 같다. 계경(契經:經, Sutta)·응송(應頌:重頌, Geyya)·기별(記別:記答, Veyyākaraṇa) 풍송(諷誦:偈, Gāthā)·자설(自說:感興偈, Udāna)·인연(因緣,Nidāna)·비유(譬喩, Avadāna)·본사(本事:如是語, Itivuttaka)·본생(本生, Jātaka)·방광(方廣, Vedalla)·희법(希法:未曾有法, Abbhutadhamma)·논의(論議, Upadeśa) 등을 보살들에게 설하노니, 보살은 이것들을 잘 듣고 잘 지니며, 경문(經文)을 염송(念誦)해야 하고, 마음으로 잘 구분하며, 본 것을 잘 이해하고 나서, 홀로 고요한 곳에 바르게 머물며, 이와 같이 잘 사유한 법의 내용을 마음에 새기고, 어떤 마음이 생각을 만드는 마음인가에 대해 내면에서 끊임없이 억념(憶念)해야 한다.”
지(止, Śamatha)에 머무르면서 가르침의 핵심에 마음을 집중합니다.
위의 구절에서 열두 가지 범주로 나누고 있는 것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은 정신적 물리적 온(蘊:모임)이나 대(大:요소) 그리고 입(入:감각 대상과 감각 기관) 등에 대한 심오하고 폭 넓은 주제들을 담고 있습니다.
지(止, Śamatha)를 수행할 때는 개인적인 견해로 희론(戱論)에 빠지지 말고, 무상(無常)이든 공성이든 그 본래의 성품에 있는 그대로 집중해야 합니다.
반면에 관(觀, Vipaśyanā)의 수행은 분석적입니다. 즉, 정신적이거나 물리적인 온(蘊)과 대(大) 그리고 입(入) 등과 같은 수행의 대상이 가지고 있는 기원(起源)이나 정의(定義), 그리고 다른 특징들에 대해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안주(安住)하고 이것을 수없이 반복 적용하면, 이에 몸의 경안(輕安)과 마음의 경안(輕安)을 성취할 수 있으며, 이것을 지(止)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보살은 지(止)를 완전히 탐구할 수 있는 것이다.”
수행자는 수행의 과정에서 먼저 경안(輕安)을 성취해야 합니다.
경안(輕安)은 무겁던 머리의 느낌이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사실 마음의 얼룩이 벗겨지는 것입니다.
마음의 경안을 이루고 나서 몸의 경안을 성취합니다. 이것은 탁한 몸과는 정반대의 상태입니다.
이렇게 해서 몸의 지복감이 생기고 거기서 마음의 지복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는 몸의 경안(輕安)과 마음의 경안(輕安)을 성취하고 나서, 그 자체에 안주(安住)하여 마음의 산란(散亂)을 가라앉힌 다음, 이와 같이 생각으로 만든 현상(法)은 그 자체가 내적인 삼매의 행위경계(境界:對象)로서 영상(影像)과 같은 것이니, [이들] 각각을 분석하여 신해(信解)해야 한다.
이처럼 삼매의 행위경계(境界:對象)인 영상(影像)들이 인식의 대상(境界)임을 판별하여 철저히 구분하고, 완전히 분석하며, [이들을] 모두 분별하기 위해 인내(忍耐)와 기쁨으로 통찰(通察)하여 이해하는 것을 관(觀)이라고 하며, 이렇게 해서 보살은 관(觀)에 능숙해지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긍정적인 동기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행자는 수행의 과정 속에서 이러한 긍정적인 자세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나는 허공처럼 무한한 유정중생들의 이익을 위하여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이룰 것이다. 그러므로 이 위대하신 까말라실라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성실히 들으리라.”라고 생각합니다.
희유하고 고귀한 이 인간의 몸을 받은 이유를 깨닫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합니다.
이 몸을 바탕으로 해서 우리는 순간적이거나 궁극적인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자유롭고 복 받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 생은 너무나 좋은 기회입니다.
최선을 다해 이 기회를 활용해야 합니다.
더불어 깨달음의 궁극적인 목적을 성취하려면, 그 근본 바탕인 이타적인 마음을 일으켜야 합니다.
즉 자비심을 일으켜야 합니다. 또 지(止, Śamatha)와 관(觀, Vipaśyanā)이 합일된 수행을 하면서 더불어 보시 같은 다른 공덕을 함께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중생들에 대한 자비심을 일으키기 전에, 먼저 일반적인 윤회의 고통과 특정한 윤회의 세계에서 고통 받고 있는 존재들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참을 수 없는 윤회의 고통에 대한 속성들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어떻게 윤회의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지 저절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스스로 고통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었던 적이 있습니까?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을 필요합니까?
이러한 질문을 정직하게 하나씩 점검해나가다 보면 고통의 원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통의 근본 원인은 업과 번뇌에서 생긴 정신적 장애입니다.
가끔은 잠시 고통에서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수행자가 고통과 그 고통의 원인들을 제거하고 고요함을 이루면, 사성제에서 멸제(滅諦)를 깨우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통과 그 고통의 원인에서 자유롭기를 바라는 출리심(出離心)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더불어 다른 중생들도 역시 고통과 그 고통의 원인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면, 그때 자비심을 수행하는 본격적인 과정을 밟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먼저 수행자는 일반적인 수행의 과정을 밟아야 하며, 점점 더 높은 수준의 길을 밟아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정신적인 수행의 이력을 쌓아나가는 바른 과정입니다.
예비수행을 하고 난 다음에는 두 가지의 보리심을 수행해야 합니다. 세속적인 보리심을 일으키고 육바라밀(六婆羅蜜) 수행 등을 통해 보살행(菩薩行)을 해나가야 합니다.
궁극적인 보리심에 대한 수행은 공성을 직접적으로 깨닫는 출세간(出世間)의 지혜를 일으켜야 가능합니다. 이러한 지혜는 지(止, Śamatha)와 관(觀, Vipaśyanā)이 합일된 선정(禪定) 상태에서 생깁니다.
이것은 공성에 대한 본래의 성품을 보면서 삼매에 들어 있는 상태입니다.
먼저 수행자는 지(止, Śamatha)를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준비해야 합니다.
따라서 요가 수행자가 지(止)를 실제로 성취하고자 한다면, 먼저 계경(契經)과 응송(應頌) 등의 십이분교(十二分敎) 모두가 진여(眞如)로 인도(引導)하고 있고 진여로 이끌어 왔으며 진여로 이끌어 갈 것을 모두 포함하고 있음으로, 그곳에 마음을 가까이 두어야 합니다.
분석의 마지막 단계에서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모두 진여(眞如)와 관련이 있습니다.
무상(無常)이나 고(苦) 등을 분명하게 다루고 있는 경전들도
궁극적으로는 진여(眞如)를 다루고 있습니다.
비록 주체와 객체의 불이성(不二性)과 같은 거친 수준의 무아(無我)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들을 모두 부처님께서 두 번째 법륜을 굴리실 때 보여주셨던 미세한 공성의 경지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형태로 어떤 형태의 현상(諸法)도 포괄할 수 있는 대상(蘊) 등에 마음을 가까이 두어야 합니다. 한 가지 형태라 함은, 보고 들은 바와 같이 부처님의 존상(尊像)을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 즉 『성삼매왕경(聖三昧王經)』에서 설하신 것처럼,
“황금의 꽃과 같은 옥체(玉體)이신
세간(世間) 보호자 [관세음]의 완전한 아름다움,
그 대상(所緣)에 마음을 두고 있는
보살을 정(定, Samāhita)에 들었다 하네.”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지(止, Śamatha)를 수행하는 대상은 다양합니다.
밀교(密敎)에서는 독특하게 수행본존(修行本尊)이나 종자음(種字音) 등을 지(止, Śamatha)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현교(顯敎)의 체계에서는 주로 부처님 모습 그대로를 그 대상으로 합니다. 선정(禪定, Dhyāna)은 불교나 비불교도(非佛敎道)할 것 없이 일반적으로 하는 수행입니다.
따라서 불교도들은 부처님의 모습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렇게 부처님을 기억하고 복덕을 쌓으면 많은 이익을 거둘 것입니다. 소중한 보석의 옥좌(玉座)에 앉아계시는 부처님을 관상하십시오. 눈앞의 허공에 우리 몸과 같은 크기로 이마 정도의 높이에다 관상해야 합니다. 그 모습은 구체적이고 빛을 내고 있어야 합니다.
좀 더 지적인 수행자들은 먼저 바른 견해를 찾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공성을 수행의 대상으로 삼아 지(止, Śamatha)를 성취해야 합니다. 이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또 다른 이들은 마음을 지의 직접적인 대상으로 삼기도 합니다.
이런 수행자는 사실 명료한 의식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것이 마음 자체에 집중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이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먼저 실제로 맑은 의식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마음은 억념(憶念)의 도움으로 감각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마음은 너무나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외적인 대상을 인식하고 판단하듯이 그렇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는 색깔이나 형체 등이 없습니다.
단지 감각과 경험에 대한 맑은 의식이 있을 뿐입니다.
마치 여러 가지 색깔에 물든 물과 같습니다.
여러 가지 색깔이 섞인 물은 본래의 색깔을 보기가 힘듭니다. 마찬가지로 마음도 물리적인 모습과 같은 외적인 형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다섯 가지 감각 의식에 너무 물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오염된 마음은 거의 물리적인 형상이나 색깔과 구분할 수 없는 상태에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실제로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수행은 모든 종류의 생각과 인식을 의도적으로 멈추는 것입니다.
일단 감각적인 의식을 잡아두는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즉 즐거움과 고통을 경험하는 감각적인 의식을 멈추도록 해야 합니다.
마음을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에 빼앗기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십시오.
이렇게 함으로서 서서히 마음의 본래 색깔이 드러나기 시작할 겁니다.
마음이 모든 종류의 생각이나 개념에서 자유로워지면 갑자기 텅 빈 상태가 나타날 것입니다.
이 텅 빈 상태와 점점 익숙해지면 명료한 의식은 저절로 더 분명해질 것입니다.
지(止, Śamatha)를 수행하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다섯 가지 허물과 여덟 가지 대응법을 완전히 이해해야 합니다. 다섯 가지 허물에는 게으름, 수행의 대상을 망각하는 것, 정신적 침몰(沈沒:무겁게 가라앉음)과 도거(掉擧:들뜸), 정신적 침몰과 도거에 대응법을 사용하지 않는 것, 적절하지 않은 대응법을 사용하는 것이 있습니다.
또 여덟 가지 대응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덟 가지 대응법에는 신심(信心:믿음), 관심, 인내, 경안(輕安), 억념(憶念:잊지않음), 자각(自覺:깨어있음), 침몰과 도거가 일어났을 때 대응법을 적용하는 것, 불필요한 대응법을 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신심이란 집중하는 수행의 이익을 알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수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수행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고, 인내하는 마음을 키워줍니다.
앞의 네 가지인 신심(信心) 관심 인내 경안(輕安)은 게으름에 대한 대응법입니다. 다섯 번째 억념은 수행의 대상을 망각하는 것에 대한 대응법입니다. 여섯 번째 자각은 침몰과 도거에 대한 대응법입니다. 마음이 침몰하여 힘들어 지면 깨워서 부추겨야 합니다. 도거는 들떠있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지속적인 수행을 통하여 정신적 안정을 찾고 수행의 단계를 높여갈 수 있습니다.
마음의 여덟 번째와 아홉 번째 단계는 오래도록 집중 상태에 머무는 것입니다.
이 상태가 이루어지면 갖가지 대응법은 오히려 해가 됩니다.
따라서 이 상태에서는 대응법을 피하고 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무언가 바라던 대상(所緣)에 마음을 두고, 그 자체가 되기 위해 지속적으로(相續)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그렇게 가까이 두고서 마음에 대해 이와 같이 분석해야 합니다. 즉 대상을 잘 지니고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침몰(沈沒: 무겁게 가라앉음)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외부경계(境界:對象)에 도거(掉擧:들뜸)하여 산란(散亂)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점검해야 합니다.
지(止, Śamatha)의 수행이 발전해가면, 수행자는 적절하고 편안한 수행의 대상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그 대상에 집중하여 마음이 외부로 이끌리거나 무겁게 가라앉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선명(鮮明)한 삼매(三昧)를 이루는데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침몰(沈沒)은 마음의 상태가 불분명하거나 경계심을 잃을 때 또는 게으름으로 인해 생깁니다.
그냥 보통의 일상에서도 우리는 “멍하다.” “불쾌하다.”라고 표현합니다.
수행의 대상을 분명히 챙기지 못하고 침몰이 오면 수행은 효과가 없습니다.
이에, 만일 혼침(昏沈: 몽롱한 무기력)과 수면(睡眠:졸음)에 굴복하여 마음이 침몰(沈沒)하거나 침몰할 염려가 있을 때는 최고 환희(歡喜)의 대상인 부처님의 존상(尊像) 등이나 밝은 빛을 관상(觀想)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침몰(沈沒)을 제거한 다음, 무엇이든 대상 그 자체에 마음을 [두고] 대상을 아주 분명히 볼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 합니다.
혼침(昏沈)과 침몰(沈沒)은 서로 원인과 결과로 작용하여 생깁니다. 의식이 몽롱해지면 몸과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수행자가 명료함을 잃고 나면 마음은 별 다른 효과 없이 비생산적이 됩니다. 침몰(沈沒)은 정신적으로 가라앉아 있는 상태 중에 하나입니다. 따라서 마음을 깨우고 부추기는 대응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효과적인 방법들 중에는 완전한 성품을 모두 갖추신 부처님과 같은 기쁨의 대상을 생각하거나 인간 몸을 받은 소중함과 그 기회를 얻은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수행의 의미와 결과를 생각함으로서 마음을 고취시킬 수 있습니다.
지(止, Śamatha)의 발전과 함께 정신적 도거(掉擧) 같은 다른 장애들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과거에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이나 욕망의 대상을 쫓아가면 도거가 일어납니다. 거친 형태의 도거는 집중하고 있던 대상을 완전히 놓치는 원인이 됩니다. 미세한 형태의 도거는 대상을 부분적으로만 집중하도록 만듭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들뜨게 하는 생각들에게 무상(無常)이나 고(苦) 등을 적용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은 서서히 가라앉습니다.
언제든지, 선천적인 맹인(盲人)이나 어둠 속에 있는 사람 같고, 눈을 감은 것과 같아서 마음의 대상을 분명하게 볼 수 없을 때는 침몰(沈沒)하고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또] 언제든지, 외부의 형상 등에 [마음이 향하여] 그들의 특성을 구별하는데 쫓아가거나 [그에 따른 여러 가지] 다른 생각을 하고, 이전에 경험한 경계(境界:對象)에 이끌려 마음을 방일(放逸: 놓고 풀어짐)하거나 방일할 염려가 있을 때는 모든 생각을 분석하지 말고 고통스러움 등에 대한 생각을 내서 대상(所緣)의 본질(性品)을 파악해야 합니다.
방일(放逸)의 허물을 계속 지켜보거나 다른 대상으로 향하는 마음에서 힘을 빼면, 도거(掉擧)가 줄어듭니다. 수행의 대상을 놓치고 과거의 경험이나 집착의 대상으로 마음이 향하는 것을 도거라고 합니다.
수행의 대상을 완전히 놓치고 외부의 대상에 마음이 향해 있는 상태를 거친 도거라고 합니다. 또 부분적으로 집착하는 대상에 마음이 가 있는 것을 미세한 도거라고 합니다. 도거는 마음이 많이 들떠있을 때 생깁니다. 마음이 너무 들떠있으면 활동적이 되어 쉽게 풀어지게 마련입니다. 이에 대한 대응법은 마음을 다잡아 가라앉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외적이든 내적이든 집착하는 대상에 대한 집중을 줄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따라서 무상(無常)이나 고(苦) 등을 그 집착의 대상에 다시 한번 적용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침몰과 도거에 대응하는 방법은 자각(自覺) 즉 항상 깨어있는 것입니다.
자각의 기능은 마음이 수행의 대상에 잘 머무르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해 깨어서 관찰하는 것입니다. 억념(憶念)의 기능은 잊지 않고 수행의 대상에 마음을 계속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한번 억념의 상태를 이루고 나면 수행의 대상에 마음을 잘 두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자각이 일어납니다.
억념이 강해질수록 자각이 더 강해집니다. 예를 들면 만약 “이것은 좋아.”, “이것은 도움이 안 되는군.” 등의 생각을 계속해서 기억할 수 있다면, 자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는 부정적인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경계하고 억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자각 기능의 특징은 몸과 마음의 상태를 잘 살펴서, 수행의 대상에 머무르고 있는 지를 챙기는 것입니다.
동시에 마음이 너무 가라앉으면 침몰하게 되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침몰할 염려가 있으면 마음을 고취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의 상태는 모두 일상의 건강상태나 음식 그리고 움직이거나 앉아있는 시간대 등에 많이 의존합니다. 따라서 언제 가라앉히고 언제 고취시켜야 할지 항상 최선의 판단을 해서 조절해야 합니다.
이렇게 산란심(散亂心)을 가라앉히고 나서, 주의(主意: 알아차림)와 경계(警戒: 깨어 있음)의 끈으로 마음의 코끼리인 대상(所緣)을 나무에다 묶어 두어야 합니다. 언제든지, 침몰(沈沒)과 방일(放逸)이 사라지고 대상(所緣)에 대한 마음이 평온해 지는 것을 보게 되면 정진(精進)을 [조금] 느슨하게 하여 적당하게 해야 하며, 그렇게 적당한 상태에 머물도록 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수행의 대상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침몰과 도거 등에 대한 대응법을 지속적으로 수행해 나가다 보면 거친 장애는 점점 줄어들고 미세한 면이 점점 확실히 드러납니다. 주의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수행을 계속해 나가면 미세한 유형의 장애도 수행을 방해하지 못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힘 있게 수행을 계속해 나가다 보면 모든 장애가 사라지고 긍정적인 면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결국 한 정진을 마치는 시간 내내 큰 노력 없이 앉아 있을 수 있게 됩니다.
삼매(三昧)에 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오랜 수행의 시간을 감내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수행해야만 몸과 마음의 얼룩을 모두 제거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얼룩이란 수행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무겁게 침몰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허물들은 수행자가 아홉 단계의 지(止, Śamatha)를 모두 개발해야 완전히 제거됩니다. 그러면 마침내 마음의 경안(輕安)이 찾아오고 이어서 몸의 경안이 찾아옵니다.
이와 같이 지(止)를 닦고 나서 몸과 마음의 경안(輕安)이 이루어지고, 원하는 만큼 대상(所緣)에 [집중하는] 마음을 스스로의 힘으로 갖추고 나면, 그 때 지(止)를 성취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止, Śamatha)의 수행은 불교 수행자나 비불교도(非佛敎道) 수행자 할 것 없이 일반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개념적으로는 별로 특별해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대상의 특성을 잘 관찰해 보면 세속적으로든 궁극적으로든 지의 수행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밀교 수행에 입문한 사람들은 이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집중력이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먼저 수행의 대상에 대한 완전한 집중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초기 단계에서는 완전한 지의 상태를 이룰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육바라밀(六婆羅蜜)이나 이타심 등을 수행하는 동안에도 정신적 안정성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止, Śamatha)를 수행하는 최종 목표는 관(觀, Vipaśyanā)을 성취하기 위한 것입니다.
무인아제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moonceo/565 에서 복사한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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