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철학

[인도불교의 역사 상] 중에서

수선님 2020. 4. 5. 11:50

[인도불교의 역사 상] 중에서.


불교의 교단을 상가(승가僧伽) 특히 화합승(和合僧)이라고 한다. 이것은 평화를 실현하는 단체라는 의미이다. 불교의 목적은 개인으로서는 깨달음을 얻고 진리와 합일한 생활을 하는 것인데 그러한 사람들이 모여 공동생활을 하면 거기에는 진실한 평화가 실현된다. 그래서 상가에 들어가서도 미처 깨닫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해탈을 위해 노력하면서 또한 단체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평화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그대로 자기의 깨달음을 실현하는 것과 합치하는 것이다.

제자들은 불타를 대사(大師)로 받들어 귀의하고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그리고 불타를 법근(法根), 법안(法眼), 법의(法依)로서 존숭하고 항상 그의 지도에 따랐다. 이 때문에 제자들은 가르침을 듣는 자라고 불렀다. 불타에게는 깊은 선정에서 생긴 적정(寂靜)이 갖추어져 있으며 접하는 사람들에게 신비적인 평안함을 주었다. 게다가 일체를 통찰하는 깊은 지혜와 모든 것을 포근히 감싸는 온화한 자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불타에게 무조건 귀의하고 각자의 천분(天分)을 발휘하여 능히 수행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리하여 스승과 제자가 함께 깨달음 속에 안주하였다. 이러한 스승과 제자가 함께 모여 이룩하는 불교의 교단은 대해(大海)에 비유된다. “1. 대해가 차츰 깊어지듯이 승가에는 단계적인 배움이 있다. 2. 대해의 물이 해안을 넘지 못하듯이 제자들은 계율을 어기지 않는다. 3. 대해는 시체를 받아들이지 않고 반드시 해안으로 밀쳐내듯이 승가도 계를 범하는 자는 반드시 거죄(擧罪:죄를 거론함)한다. 4. 온갖 냇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원래의 이름을 상실하듯이 승가에 들어가는 사람은 계급이나 성명을 버리고 사문석자(沙門釋子)라고만 불렀다. 5. 대해(大海)는 동일하게 짠맛이 나는 것처럼 승가는 동일한 해탈미(解脫味)이다. 6. 대해(大海)는 온갖 냇물이 흘러 들어가도 증감이 없듯이 승가의 수행승이 아무리 많이 열반에 들더라도 증감이 없다. 7. 대해에는 갖가지 재보(財寶)가 간직되어 있는 것처럼 승가에는 미묘한 교법과 계율이 있다. 8. 대해에는 갖가지 큰 물고기가 살고 있지만 승가에도 위대한 제자들이 살고 있다.” 고 상가의 특징이 설명되고 있다. 이것을 불교승가의 ‘팔미증유법’이라고 한다.

불타의 제자에는 재가자와 출가자라는 두 종류가 있었다. 재가의 남성 신자를 우파사카(우바새)라 하고, 여성 신자를 우파시카(우바이)라 한다. 우파사카란 ‘시중드는 사람’이라는 의미로서 출가자를 받들어 생활의 자구(資具)를 보시하고 그 지도를 받아 재가생활을 영위하면서 수행한다. 삼보에 귀의함으로써 우파사카라고 불리는데 열성적인 사람은 다시 오계(五戒)를 받는다.

출가한 남성 수행자를 비구라고 부르며, 여성 수행자를 비구니라고 부른다. 비구란 ‘구걸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며, 신자의 시물(施物)에 의해 생활하면서 수행에 전념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비구가 될 때에는 구족계(具足戒)를 받는다. 이것은 이른바 250계이며, 출가자로서의 엄격한 계율생활을 지키는 것이다. 이러한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를 불(佛)의 사중(四衆)이라 하며 불제자를 총칭하는 말이다.


(히라카와 아키라 저, 이호근 번역, [인도불교의 역사 상], 민족사, 1994)에서 인용.


여진무애현오상수 성상구가 적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