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실체에 대한 착각 |
불법의 논리학을 완전히 이해하신 분 경량부와 유식학의 광대하고 심오한 도리 논리의 인명으로써 확신 시켜주신 은혜로운 법칭논사에게 귀의합니다. -나란다 17논사 찬탄송 가운데- 공성의 정수 반야심경이 산스끄리뜨어로 울려 퍼진다. 그리고 아름다운 운율의 라트비아어로 독송되어진다. 엄숙한 장내의 분위기 속에서 4천 5백여 명의 청중이 함께 공성의 진리를 사유하는 순간이다. 달라이라마(뗀진갸초, 81)는 1991년 처음으로 라트비아를 방문한 이후 2013년 당시 법문 주제로 삼았던 법칭논사의 ‘양평석’을 이어서 설법했다.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 시내에 위치한 스콘토홀에서 10월 10~11일 이틀간 열린 법회에는 러시아 칼미키아 부르야티아 투바 몽골 등에서 온 불자들이 참석했다. 달라이라마의 법문은 티베트어와 러시아 영어 라트비안 에스토니안 몽골어로 현장 동시통역이 되었다. 달라이라마는, “법의 도반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삶의 가장 큰 기쁨이자, 법을 논하고 서로의 사상을 교류하는 것이야말로 수행의 단계를 점검하는 가장 탁월한 방법”이라며, 러시아와 이웃한 여러 나라의 불자들이 합의하여 인도로 오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본인을 초청하게된 것에 감사를 표했다. 라트비아를 시작으로 스위스 이탈리아 체코공화국으로 유럽 법회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달라이라마다. 법문의 주제는 다르마끼르띠(이후 법칭논사)의 <양평석>. 인도철학의 칸트. 불교인식론의 아버지. 7세기 인도불교 논사 법칭논사를 수식하는 호칭이다. 방대한 서양 철학사에서 독보적으로 인도의 불교사상을 중점적으로 연구했던 20세기 러시아 사상가 체르바츠키가 법칭논사의 논문에 상당한 흥미를 가졌다는 것은 유명하다. 인간의 합리적인 사유의 체계의 진정한 저본을 구하고저 했던 그는 결국 인도철학에서 법칭논사를 발견하였고 인식과 사유의 정체를 해체하고자한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의 인구 대다수는 가톨릭임에도 불구하고 불교도들을 포함한 대다수의 러시아인들은 불교가 지닌 특유의 평화와 조화의 사상을 사랑한다고 표현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민족정신이 불교와 통한다고 믿고 있었다. 달라이라마의 라트비아 방문을 기념하며 리가의 구 시가지에 위치한 증권거래소에서는 20세기 종교미술화가 니콜라스레리흐의 특별전이 열렸다. 레리흐는 인도 북부 꿀루밸리에서 1947년 생을 마감하기까지 10년을 티베트와 몽골 등을 여행하며 티베트불교문화와 수행자를 화폭에 담았다. 저는 이 자리에 공통의 관심사로 모인 여러분들과 함께 인류의 평등한 가치를 수호하는데 적극적으로 동참하자는 권유를 하고 싶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모두가 바라는 행복의 가치를 존중하고 평화와 사랑 그리고 우정의 가치를 실천하는데 뜻을 모으는 바를 결의하고자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의 반대편에서 펼쳐지고 있는 전쟁과 살육의 비윤리적인 행태를 중단하고 인류애의 가치를 회복하기를 촉구하는 바입니다. 불교는 궁극의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는 면에서 타 종교와 사유의 시작이 차별됩니다. 이웃의 종교와 차별되는 출발점으로 그 과정에서 분쟁의 갈등을 야기하지만 인간이 공통으로 원하는 행복의 추구에 대해서는 한 치의 차별이 없습니다. 인도의 2천년이 넘는 인류 문명사에서 발생한 다양한 종교와 철학사상에서도 그들이 파괴와 분열이 아닌 조화를 추구하는데 뜻을 모으는 것은 바로 존중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덕분입니다. 오늘날 다양한 종교와 수행의 방식들이 통용되고 있지만 이들 모두가 지닌 일맥 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랑하고 관용을 실천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철학적 사유의 분야에서 자아를 인정하는가 또는 신을 인정하는가의 차이를 보이지만 행복과 평화 사랑이라는 인류애의 최고 가치에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는 상통합니다. 신이 사랑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이웃의 종교를 봅시다. 그러한 신이 매우 존경스럽고 항상 가까이하고 싶어지면서 나 자신 역시 그러한 신과 같은 사랑의 실천을 본받아 실천해지고 싶을 것입니다. 내가 비록 창조주를 부정하는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교도이지만 신과 같은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그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불교도로서 전생과 후생을 인정한다면 오늘 지금 이 순간의 선한 업을 위한 삶을 사랑으로써 구현할 수 있는 길에 그들의 목적에 공감하며 적극적으로 교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세상은 평등의 깃발을 선두로 눈에 띄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인종 간의 평등, 성별의 평등, 계급 간의 평등이 가장 두드러진 현상입니다. 이러한 변화에 있어 정당한 인식과 사유의 논리가 강조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진나논사는 <집량론>에서, 불교의 연기사상을 바탕으로 생멸하는 존재론에 대한 논리학의 체계를 확립하였습니다. 그 뒤를 이어 제자 법칭논사가 존재의 논리학을 사상적으로 보다 섬세하게 논하게 됩니다. 보이는 바를 지각하는 주체의 실체를 면밀히 논하는 체계를 <양평석>을 통해 완성한 바가 그렇습니다. 철저한 연기의 논리에 근거하여 인간의 경험은 6개의 인식 기관과 6개의 인식 대상 그리고 6개의 인식 주관으로 분석이 됩니다. 인식의 기관 대상 주관의 작용 간에는 의존이라고 하는 발생을 일으키게 하는 인과 간의 접점이 있습니다. 말미암은 원인을 주체로 증거를 통하여 사유된 인식의 논쟁이 바로 불교의 논리학입니다. 이러한 논증의 열거는 주장이 되는 원인의 증거를 명제로 삼습니다. 추리하는 주체의 대상을 향한 확신의 필연적인 관계를 논증함으로써 무상의 공성을 더욱 견고하게 확신시켰습니다. 7세기 인도 철학 사상의 근간이 되었던 ‘과연 자재신이 존재하는가. 불변하는 자아가 있는가. 영원한 실체가 있는가.’에 대한 불교 인식론적 측면에 기반을 둔 논증적 측면에서의 과감한 도전은 당시 실체론적 사유의 체계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유일하게 실재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연기법에 변화하는 진리이다.’ 법칭논사는 인식의 논리학을 올바른 인식에 가장 큰 비중을 두었습니다. 지각하는 현량과 추론하는 비량의 잣대로 존재하는 바의 실체를 논증하는데 그의 생애를 모두 바쳐 총 7권의 논서를 남겼습니다. 실제 한다고 여겨온 바에서 상대성을 발견하고 정당히 사유하여 지속적으로 알아차리며 삶에서 직접적인 실천으로 옮겨 실현하는 것은 지속적인 수행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일상이 이미 영원하다고 하는 실체에 대한 착각에 깊숙이 물들어 있는 이유입니다.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어떠한 작용과 현상이 개념적으로 허구임을 알아차렸을 때, 의지하는 실체의 공한 본성을 일상의 사유에서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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