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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지독하게 사회적인 동물이다. ‘표정’과 ‘언어’가 극도로 발달해 있기에 자신의 내적 상태를 남에게 전하는 능력에서 다른 모든 동물들을 월등하게 앞선다.
살아가면서 각 개인이 터득한 노하우를 ‘타인’과 공유하고 ‘후세’에 전함으로써 문명의 누적이 이루어져, ‘인간 종(種)’은 동물의 세계에서 최강의 포식자가 되었다.
인간 사이의 ‘협력’의 결과다. 그러나 인간 역시 ‘이기심’의 중심인 ‘입과 성기’가 달린 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의 입지를 높이고 후손을 낳아 키우기 위해서 다른 인간들과 ‘경쟁’한다.
남과 ‘협력’할 것인가, ‘경쟁’할 것인가? 인간의 심리에는 상충하는 가치가 공존한다. 내가 속한 ‘집단’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남과 협력해야 하지만, 집단 속에서 ‘나’를 높이려면 남과 경쟁해야 한다. 이타심과 이기심의 대립이다. 진화생물학적으로 표현하면 ‘동족(同族)의 유전자(Gene)’와 ‘개체(Individual)’의 대립이고, 윤리적으로 보면 선과 악의 대립이다.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인간사회에서 제정된 모든 윤리와 도덕과 법률의 원칙이 있다. 황금률(Golden rule)이다.
유교에서는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논어)”고 가르치고, 기독교에서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누가복음)”고 말하며, 힌두교에서는 “자기에게 해롭다고 생각되는 것을 남에게 행해서는 안 된다(마하바라타)”고 쓰고 있다.
‘수평윤리’ 통해 생명세계 평화로워
깨달음 향한 ‘수직윤리’ 동물계 초월
입장 바꿔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윤리’다. 약육강식의 밀림에서 ‘개체’를 위해서 살아가는 짐승의 행동과는 상반된 지침들이다. 진화생물학적으로 볼 때, 황금률은 ‘동족의 유전자’를 보전케 하는 사회윤리의 토대가 된다.
황금률은 나와 남의 관계에 적용되는 수평윤리다. 불교윤리 역시 역지사지의 황금률을 수용하지만, 자기정화라는 수직(垂直)윤리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황금률을 넘어선다. 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란 것이 있다. 석가모니부처님을 포함하여 과거의 일곱 부처님께서 한결같이 가르치신 삶의 지침(戒)이다.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자정기의(自淨其意) 시제불교(是諸佛敎)’라고 쓴다. “그 어떤 나쁜 짓도 하지 말며, 온갖 착한 일은 받들어 행하고, 스스로 그 마음을 맑히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라는 뜻이다.
이 가운데 “그 어떤 나쁜 짓도 하지 말며, 온갖 착한 일은 받들어 행하라”는 지침에 ‘나와 남 사이의 윤리’인 황금률이 담겨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남’의 범위에 다른 모든 생명체를 포함시킨다. 인간은 물론이고 그 어떤 생명체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또, “스스로 그 마음을 맑혀라”는 자기정화의 가르침은 황금률을 넘어선다. ‘인간 종’은 물론이고, ‘생명의 세계’에서 아예 벗어나게 해주는 가르침이다. 자연선택과 성선택과 친족선택(Kin selection)의 원리 모두를 넘어선다. ‘마음을 맑히면’ 동물적 본능이 잦아들고 죽음의 공포가 사라진다.
살생하지 말라(不殺生). 도둑질 하지 말라(不偸盜). 음행하지 말라(不邪淫). 거짓말하지 말라(不妄語). 욕하지 말라(不惡口). 이간질 하지 말라(不兩舌). 꾸며서 말하지 말라(不綺語). 탐욕을 내지 말라(不貪). 분노하지 말라(不瞋?). 삿된 종교관을 갖지 말라(不邪見).
수평적인 사회윤리와, 수직적인 개인윤리가 함께 하는 십선계(十善戒)의 조항들이다. 불교윤리는 입체적이다. 역지사지의 ‘수평윤리’를 통해서 생명의 세계가 평화로워지고, 깨달음을 향한 ‘수직윤리’에 의해서 불교수행자의 마음은 동물의 세계를 초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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