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과학

AI와 인간의 마음, 불교교학적 해석과 심층적 논의 / 안환기

수선님 2020. 5. 31. 12:09

AI와 인간의 마음, 불교교학적 해석과 심층적 논의

 

안환기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에서 논문 「유식불교의 언어관 연구: ‘사회적 자아’를 형성하는 언어의 역할 문제를 중심으로」를 쓰고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서울대 종교학과에서 를 강의했으며, 중앙승가대학교에서 와 를 강의했다. 지금은 원광대학 교에서 를,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에서 , , 등을 강의하고 있다. 이와 함께 불교(유식학)와 서양사상을 비교분석하는 연구, 불교(유식학)의 관점에서 현시대를 조명하는 연구를 해오고 있다. 이번에 발표하는 도 이 연구의 일환이다. 전공⋅관심분야 불교(유식학), 응용불교, 불교심리, 불교윤리, 비교종교/철학 주요논저 ?마음과 종교: 종교문화 속 마음탐구?(공저), 고양: 공동체, 2015. 「유식학의 관점에서 본 인터넷: ‘식(識)’의 확장과 가상공간(virtual space)」, ?불교학보? 74, 2016. ?한국사회와 종교학?(공저),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7. 「Reconsidering the Role of Desire in Yogācāra Buddhism: Focus on the Bīja, Another Form of Language」, ?한국민족문화? 62호, 2017. 안환기 _ AI와 인간의 마음, 불교교학적 해석과 심층적 논의 •• 179 1.

 

들어가는 말

현대는 기계로부터 만들어진 지능[인공지능, AI]이 부각되고 있는 시대이다. TV나 신문을 비롯한 대중매체에는 AI가 탑재된 무인자동차가 소개되고 있으며, 버스정류장에는 버스가 도착하는 시간을 알려주는 사물인터넷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도 AI를 사용한 진찰이 이루어지고 있다. AI는 이처럼 우 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해왔던 일을 대신해 주 기 때문에 결국은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소리가 나오 고 있기도 하다. 본 연구는 이러한 현 상황에서 AI를 만들었지만 AI로 인해 편리함과 불편함을 동시에 겪는 인간의 마음에 초점을 두어, AI는 현대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며, AI를 사용하는 인간과 AI의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정립해야 할지를 불교적 관점 에서 모색하고자 한다. 특히 인간의 마음을 치밀하게 분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유식학의 관점이 인간과 소통하고 있는 대상을 마음이 확장된 것으로 보고 있으 며, 마음의 작용을 언어의 문제로 소급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AI와 마음의 관계를 불교의 심층적인 관점에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2. AI와 현대인의 공존 그리고 소통의 가능성 1) 공존의 시대 현대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시대이다. 과학 기술의 발달은 인간이 빠른 시간 내에 자신이 원하는 곳에 갈 수 있게 했고, 인터 넷을 이용해 우리 자신이 가지고 싶은 물건을 집에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인간의 사유패턴을 비슷하게 재현할 수 있는 로봇이 생겨나고, 인간 이 직접 관여하지 않아도 기계가 스스로 일을 처리하는 사물인터넷이 우리 주변 에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공간이 너무 협소하거나 위험해서 인간이 직접 들어갈 수 없는 곳을 탐사해야 할 때,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이 그러한 역 할을 하고 있으며, 신호등에 내재된 AI가 도로에 내재된 AI와 교신해 교통량에 180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맞춰 차의 경로를 지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AI를 갖춘 온갖 장비에서 나온 데 이터를 활용해 지구촌 인류의 건강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되기도 한다.1) 이와 같 이 인공지능을 보유한 로봇이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앞으로 인간은 점 점 더 다양한 로봇과 상호작용하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2) 현대인이 이러한 사실을 의식하던 하지 않던 간에, AI가 어느덧 인간과 공존하는 시기가 되었다. 2) AI와 인간의 소통 그렇다면 AI와 인간의 관계는 어떤 방식으로 정립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사회적 상호작용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 람들이 서로 협동, 경쟁, 갈등하는 과정으로 일컬어지고 있다.3) 그렇다면 사람과 기계 사이의 상호관계를 인간 사이의 관계와 같은 것으로 간주해야 할까? 앞으로 사람들은 로봇 정비공들에게 자신의 로봇 자동차를 제대로 수리하지 않았다고 따지기도 할 것이며, 로봇요리사가 음식을 준비하는 레스토랑에서 로봇 도우미에게 손님을 창가 자리로 안내하기를 부탁하는 때가 올 것이라고 예견하는 사람들도 있다. 끊임없이 기계들과 상호작용하는 일이 사람들의 일상이 될 것이 라는 것이다.4)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러한 기능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로봇을 만드 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며, 오늘날의 로봇은 여전히 자신이 주변 환경을 감지하고 추론하는 데 상당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로봇의 커뮤니 케이션 능력이 매우 취약한 상태라고 알려져 있다.5) 즉 로봇을 제어하는 현재의 방식을 사용하면 외부 신호와 데이터가 일으키는 잡음 때문에 명령을 보내거나 받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더욱이 현재 로봇과 인간 상호 간의 커뮤니케이션 은 상당히 제한적이어서 인간이 주체적으로 서로 소통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한다.6) 이와 함께 인공지능(AI)이 ‘약한 인공지능(weak AI)’과 ‘강한 인공지능 1) 클라우스 슈밥 외 26인, 김진희 외 2인 역(2017), 56-57. 2) 클라우스 슈밥 외 26인, 김진희 외 2인 역(2017), 193. 3) https://ko.wikipedia.org/wiki/사회적_상호작용(2017.10.11). 4) 클라우스 슈밥 외 26인, 김진희 외 2인 역(2017), 202-203. 5) 클라우스 슈밥 외 26인, 김진희 외 2인 역(2017), 124. 6) 클라우스 슈밥 외 26인, 김진희 외 2인 역(2017), 128-129. 안환기 _ AI와 인간의 마음, 불교교학적 해석과 심층적 논의 •• 181 (strong AI)’으로 분류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약한 인공지능’은 세 상을 알아보고, 알아듣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글을 읽고 쓰고, 정보를 조합 하고, 이해하는 것을 사람과 비슷한 수준으로 수행하는 인공지능을 의미한다. 반 면 이 ‘약한 인공’의 능력을 포함하여 독립성이 있고, 자아가 있고, 정신이 있고, 자유의지가 있는 기계를 ‘강한 인공지능’이라고 한다. 현재로서는 강한 인공지능 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가능하다는 증거도 없고 불가능 하다는 증거도 없다는 것이다.7) 이와 같은 논의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현재 AI와 인간의 관계는 주체적인 상호 관계로 정립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AI와 인간의 소통으로 규정하기 보다는 AI를 만든 설계자와 인간의 관계로 파악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것으로 보 인다. 즉 인간의 관점에서 AI를 분석해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따 라서 본 연구에서는 인간의 마음에 초점을 두고 AI가 인간의 마음속에서 어떤 위상 을 차지하며, 그 관계는 어떠한 지를 불교적인 관점에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3. AI와 인간의 심리공간 1) ‘명언훈습종자,’ ‘공상’ 그리고 AI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불교에서 인간의 심리공간을 가장 정밀하게 분석한 것은 유식학이다. 특히 유식학은 마음의 작용을 모두 언어의 작용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AI와 마음의 관계를 조명하는 데 중요한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AI가 탑재된 기계에는 설계자의 의도가 기호로 입력되어 있으며, 사람들이 그 기 계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그 기호체계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분석 하기 위해서 우선 유식학에서 언어의 작용이 어떻게 설명되고 있으며, 기호라는 언어체계를 사용해서 소통이 발생되는 과정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에 대해 간 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7) 김대식(2016), 75-277; https://ko.wikipedia.org/wiki/인공지능(2017.08.29). 182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1) 언어의 작용과 ‘명언훈습종자(名言熏習種子, abhilāpavāsanābīja)’ 유식학에서는 인간의 언어작용을 ‘명언훈습종자(名言熏習種子)’의 현현(顯現) 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경험한 내용들이 우리의 마음에 ‘종자(種子, bīja)’의 형태로 축적되어 있다가 이후 인연에 의해 생각, 말, 행동 등으로 나타나게 된다 는 것이다. 유식학은 이러한 인간의 경험내용을 모두 언어의 작용으로 본다. 그리고 타인과 정보를 공유하거나 이를 토대로 서로 의사를 소통하는 과정은 ‘전변(듭變, pariṇāma)’에 의해 구조적으로 설명된다. ‘전변’은 마음의 변화를 설 명하는 개념이다. ‘식’이 ‘전변’한다는 것은 우선 마음의 심층에 존재하는 ‘알라야 식’과 그로부터 ‘전변’되어 나온 7개의 ‘식’(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 ⋅말나식) 및 51개의 심소(心所)들이 순환적으로 인과관계를 맺는 과정을 말한 다. 즉 마음의 심층에 존재하는 ‘알라야식’이 변해서 생겨난 7가지 ‘식’과 세밀한 심리작용인 51‘심소’가 상호 영향력을 미치면서 변화하는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특히 언어의 작용과 관련해서 주목해 볼 ‘전변’의 내용은 ?성유식론(成唯識論) ?에서 호법-현장이 말하는 8식 각각의 자체분에서 인식주체인 견분(見分)과 인 식대상인 상분(相分)이 생겨 인식활동이 시작된다는 해석이다.8) 즉 마음이 주관 으로서의 마음과 객관으로서의 마음으로 나누어지는 ‘전변’에 의거해서 인식작용 및 언어의 작용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언어로 무엇인가를 표현할 때, 여기에는 언어를 사용하는 주체, 언어로 표현되는 대상 그리고 언어 그 자체 가 필요하다. 이 해석에 의하면 ‘견분’이 언어를 사용하는 주체가 되며, ‘상분’이 언어로 표현되는 인식대상이 된다. 그리고 언어 그 자체는 바로 ‘명언훈습종자’의 현현으로 생겨난다. ‘명언훈습종자’의 현현 과정은 ?성유식론?의 ‘종자생현행(種子生現行),’ ‘현행 훈종자(現行熏種子),’ ‘종자생종자(種子生種子)’에 관한 해석에 잘 나타나 있다.9) ‘종자생현행’은 ‘알라야식’ 안에서 성숙한 ‘종자’가 표면에 있는 심(心)으로 ‘전변’ 하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등류습기’ 곧 ‘명언종자’로부터 ‘말나식’과 6식이 발생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식’들의 인식활동이 일반인들에게 아(我)와 법(法) 으로 계탁(計度)된 경험세계가 된다. ‘현행훈종자’란 그 현행한 표면심이 찰나에 8) ?成唯識論?2 (T31, 1a-1b). 9) ?成唯識論?2 (T31, 10a). 안환기 _ AI와 인간의 마음, 불교교학적 해석과 심층적 논의 •• 183 멸하면서 그 습기를 알라야식에 ‘종자’로서 이식하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나식’과 6가지 전식이 ‘등류습기’를, 6가지 전식 가운데 선과 악의 마음이 ‘이 숙습기’를 각각 훈습한다. 그리고 훈습된 종자는 알라야식 안에서 생장발달[增 長]해서 새로운 힘을 일으키는 힘을 갖는데 이 과정을 ‘종자생종자’라고 한다.10) 이 세 가지는 우리의 마음작용이 시작되고 그 결과가 다시 ‘알라야식’에 저장되어 또 다른 현상을 일으키는 과정을 구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가운데 구체적인 언어의 작용은 ‘종자생현행’의 원리에 의거한 ‘명언훈습종 자’의 현현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전변’에 의해 마음이 사유의 주체와 사유 의 대상으로 나누어지고, 이후 주체가 대상을 파악하고 판단하며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작용이 발생된다. 마음이 인식의 주체와 인식의 대상으로 나누어지는 이러한 현상은 다음과 같이 도식화된다.11) ‘명언훈습종자’의 현현 ↓ 마음이 나누어짐[분화(分化)] ↙ ↘ 인식주체[견분(見分)] 인식대상[상분(相分)] ↓ ↓ 언어의 주체 언어의 대상 (2) ‘공상(共相)’과 AI 다음은 AI를 탑재하고 있는 기계와 인간 사이의 관계를 불교의 관점에서 살펴 보기로 하자.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반적으로 사회적인 소통은 독립적이며 자유의지가 있는 주체 사이에서 가능하다고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인간과 AI가 10) 안환기(2014), 469-472. 11) 안환기(2013), 106-107. 184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처럼 소통한다고 말하려면 그 때의 AI는 ‘강한 인공지 능’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는 대부분의 AI는 자의식 을 갖고 있지 않은 ‘약한 인공지능’이 탑재된 기계이다. 따라서 인간과 AI의 관계 는 인간과 ‘인간이 만든’ AI의 관계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과 AI를 탑재한 기계와의 관계는 사용자가 AI를 설계한 사람이 만들어 놓 은 기호체계를 공유하면서 시작된다. 즉 사용자는 AI가 탑재된 기계의 사용법을 인지하거나, 기계가 표현하고 있는 기호를 인지해야 사용자와 AI의 작용이 시작 된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카메라로 비춘 대상을 AI가 인식해서 그 대상과 관련 된 정보를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구글렌즈를 이용할 때, 이 기계의 사용방법과 그 기능을 사용자가 알아야 구글렌즈와 사용자의 작용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12) 이 때 구글렌즈의 기능을 사용자가 안다는 것은 설계자의 기호체계를 사용자가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용자와 설계자의 마음에 ‘공상(共相)’이 존 재하게 됨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AI가 탑재된 가정용 로봇과 함께 생활을 할 때, 서로 작용 이 가능하려면 우선 사용자는 AI를 사용하는 매뉴얼을 익힐 필요가 있다. 직접 적혀있는 글귀를 읽거나, 아니면 이미 사용해 본 경험이 있은 타인의 말을 통해 그 사용방법을 공유할 때 사람들은 AI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것 또한 사용자 가 AI를 설계한 사람과 생각을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식학에서 ‘공상’은 일체 중생이 공통으로 인식하는 대상 즉 자연[기세간(器 世間)]을 의미한다.13) 이 관점을 보다 확대해서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곧 나 의 ‘알라야식’에는 인류가 공통으로 인식하는 기세간과 같은 ‘공상’이 존재하면서 동시에 가족끼리 공유하는 공통의 생각 즉 ‘공상’이 존재하고 친구끼리 공유하는 ‘공상’이 존재하게 된다. 즉 가족끼리는 가족만이 공유하는 공통의 생각과 습관이 있고, 친구끼리는 그들만이 공유하는 추억이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서로 유대감 을 느낄 수 있고 상호간의 대화가 가능하게 된다. 이 맥락에서 볼 때, AI가 탑재 된 기계를 사용하는 인간과 설계자의 사이에도 ‘공상’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로 인 12) http://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8107078&memberNo=36410102(2 017.09.13). 13) ?攝大乘論釋?(T31, 178c26-179a10). 안환기 _ AI와 인간의 마음, 불교교학적 해석과 심층적 논의 •• 185 해 AI와 인간이 같은 생활공간에서 존재할 수 있게 된다고 해석해 볼 수 있다. 2) 인간의 마음속에서 AI는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가? (1) AI와 마음의 확장 우리는 버스 또는 전철을 기다릴 때, 다음에 오게 될 버스나 전철이 몇 분 뒤에 도착하는지, 어디까지 왔는지를 사물인터넷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사물인터넷 의 역할로 우리의 인식은 더욱 확장되어 그만큼 우리의 마음속에 쌓이게 될 ‘종 자’의 내용도 풍부해 졌다. 사물인터넷이 없었을 당시, 우리는 버스를 기다리거나 전철을 기다릴 때, 정해진 시간에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그 자리에 서 앉아 있거나 동행자와 잡담을 나누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표지판에 숫자가 표시되고 내가 타고자 하는 버스나 전철이 어느 정거장까지 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보다 선명하게 우리의 인식대상이 마음속에 나타나는 것을 자각한 다. 때로는 스마트폰을 통해 약속한 장소에 몇 분후에 도착할 수 있는지를 기다 리는 사람에게 보다 명확하게 알려 줄 수 있게 되었다. 유식학의 관점에서 해석하자면 이 모든 것은 ‘식’이 현행되는 현상이다. 불교는 현상세계의 생성과 사라짐을 연기에 의해 설명한다. 특히 유식학은 마음의 내부 에 존재하는 ‘알라야식’의 현현에 의해 현상세계가 펼쳐진다고 본다. ‘종자’로 표 현되는 잠재적 에너지가 구체적으로 싹을 틔우고 현재의 활동에너지로 변화한 것 이 일상의 모든 경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대상을 보고 생각하고 그것을 어딘 가로 가져다 놓고 싶다는 생각을 일으켜서 급기야 행동으로 옮기는 모든 활 동을 ‘현행(現行)’이라고 부른다. 이것을 모두 ‘식’의 활동이라고 하여 ‘현행식(現 行識)’이라고 일컫기도 한다.14) 확실히 AI는 우리의 생활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있다. 이 변화는 우리를 매우 편리하게 만들었다. 이 현상은 인류의 공통된 욕망 즉 보다 풍족하고 편리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듯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류가 오랫동안 지구상에 생존해오면서 보다 오래살고 보다 편리한 삶을 욕망한 결과물 이며, AI 또한 이 연속상선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현대인은 AI로 인해 보다 빠르 14) 요코야마 고이츠, 김용환⋅유리 역(2013), 132. 186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게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고 세계 곳곳에서 발생된 사건들을 즉시 알 수 있게 되었다. 다양한 정보를 빠르고 쉽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우리의 인식의 범위는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다. 이로 인해 앞으로 우리의 인식의 범위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 지에 대해 예측할 수 없다. AI와 인간의 작용은 이제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종 자’를 마음에 훈습하게 되었으며[‘현행훈종자(現行熏種子)’] 이 ‘종자’는 현대인 들의 인식을 확장시키는 역할[‘종자생현행(種子生現行)’]을 하고 있다. 이 현상 은 현대인 개개인의 ‘알라야식’ 속에서 발생되는 현상이다. 우리는 AI를 인식대상 으로 삼아 그에 대해 반응을 하고 그 결과를 자신의 ‘알라야식’에 ‘종자’의 형태로 저장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2) 심리 공간과 AI의 관계 불교는 무아론의 입장에서 인간 및 인간을 둘러싼 모든 존재를 해석한다. 그리 고 현상을 연기론에 의거해 그 형성과 소멸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 관점에 따르면 인간을 비롯해서 AI가 탑재된 사물인터넷, 로봇 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적 존재이다. 인연에 의해 사람들이 서 로 만나서 이야기하고 차를 마시고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 하듯이, 우리가 AI가 탑재된 기계를 사용하게 된 것도 결국은 인연의 결과이다. 특히 유식학에 의하면 인간의 심층에 존재하는 ‘알라야식’속에 공통의 욕망이 ‘종 자’의 형태로 내재되어 있다가 현현된 산물이다. 인간과 사물을 구분해서 이원론적으로 해석했던 기존의 서양 사상과 달리, 불 교는 무아론을 기반으로 해서 모든 사물은 연기의 원리에 의거해서 그물망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입장을 보인다. 즉 불교는 인간을 포함해서 인간이 아닌 사물도 현상을 구성하는 하나의 존재로 보고 이들 간의 관계를 연기의 입장에서 해석한다. 인간과 사물을 무아(無我)라는 보편적이고 평등한 관점에서 현상세계 를 구성하는 요소를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 관점은 ‘행위자-네트워크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을 연상시 킨다. ‘행위자-네트워크이론’은 1980, 90년대에 프랑스의 미셀 칼롱(M. Callon) 안환기 _ AI와 인간의 마음, 불교교학적 해석과 심층적 논의 •• 187 과 영국의 존 로(John Law) 등에 의해 정립된 이론이다. 이 이론은 ‘네트워크 (network),’ ‘번역(translation)’ 등과 같은 개념을 통해, 현상을 다층적이고 다양 한 요소들의 상호작용에 의한 ‘관계적 효과’로서 이해하고 이들이 맺고 있는 관계 성과 연관성에 주목한다.15) 이 이론에 의하면, 인간 행위자뿐만 아니라 물질적 세계를 구성하는 자연적 요 소들이나 제도, 조직, 기업 등 다양한 사회적 요소들도 네트워크의 한 ‘행위자 (actor)’로 파악된다.16) 여기서 ‘행위자’란 행동하거나 타존재로부터 행위능력 (agency)을 인정받은 존재를 의미한다. 모든 행위자의 행위능력은 고립된 채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항상 그 행위자와 연결되어 있는 많은 다른 행위자들과의 상 호작용에 의한 ‘관계적 효과’에 의해서 행위능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우 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매일 사용하는 컴퓨터와 키보드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나 온 책들은 나의 이력이 되며 독자를 만들어 내고, 이 모든 것은 다시 나에게 영향 을 미쳐서 사회 속에서 나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작용을 한다고 한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메모를 보면서 컴퓨터 스크린을 주시하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온 책은 내 이력의 일부가 되며, 독자 를 만들어 내고, 이 모든 것은 나라는 존재의 일부를 새롭게 구성한다.”17) 즉 이 이론이 묘사하는 현상은 복잡하고, 서로 얽혀 있고, 서로가 서로를 구성 하면서 변화한다. 여기서 비인간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행위자(actor)가 된다. 나 의 모습은 나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다양한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생겨나는 ‘관계적 효과’라는 것이다.18) 이 이론은 모든 존재를 상호작용하는 행위자로 본다. 즉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세계를 구성해 간다는 입장이다. 불교의 연기론 과 매우 유사하게 현상을 존재들 간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보다 엄밀 하게 생각해 볼 때, 인간의 행위와 비인간의 행위를 같은 차원으로 볼 수 있는지 15) 김환석(2011), 11-46. 16) 최병두(2015), 125-172. 17) 브루노 라투르, 홍성욱 역(2010), 107; 오한나(2013). 18) 브루노 라투르, 홍성욱 역(2010), 17-34. 188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에 대해서는 보다 깊은 논의를 필요로 한다. 유식학의 관점에서 볼 때, 메모를 보 면서 컴퓨터 스크린을 주시하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주체는 바로 ‘알라야식’으로 부터 전변된 인식의 주체가 되며, 이 과정을 통해 나온 책, 이력 그리고 나라는 존재를 새롭게 구성하는 것 또한 ‘알라야식’이 확장된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행위자-네트워크이론’에서 정의하고 있는 비인간의 행위는 인간의 마음에 의해 해석된 것으로 보여 진다. 4. 인식대상으로서의 AI 1) AI는 인간의 욕망의 결과물 인간의 ‘알라야식’에는 인류 공통의 욕망이 존재한다. 즉 인간은 누구나 건강하 고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유식학에 의하면, 이 러한 것들이 ‘공종자(共種子)’의 형태로 각자의 마음에 있다가 다양하게 현현되 는 것이다. 특히 현대사회에 이러한 욕망이 구체화된 것 가운데 하나가 과학기술 문명이다. 과학기술은 인간이 보다 빠르고 편리하게 일을 처리하고 보다 많은 정 보를 받아볼 수 있게 했다. 예컨대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현대인들은 언제 어디 서든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얼굴을 보면서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서 중간상인에게 농산물을 팔던 사람들도 이제는 직접 자신이 생산한 물품을 인터넷에 올려서 광고를 한다. 이를 본 구매자들은 인터넷 공간 속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고들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직접 시장에 가 지 않고 집에서 편하게 자기가 사고 싶었던 것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기술문명은 우리에게 행복한 미래만을 보장하지 않는다. 자동차는 우 리를 편리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하지만, 교통사고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 오기도 한다. 친한 동료와 조금 더 어울리고 싶은 욕망으로 인해 밤까지 과음을 하게 되면, 이 욕망은 자신을 정확히 인지할 수 없는 상태를 만든다. 이로 인해 자기가 운전을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결국은 자신 의 생명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명까지 해치게 되는 상황이 발생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러한 사고를 종종 뉴스를 통해 접한다. 전 세계를 지구촌으로 만든 비 안환기 _ AI와 인간의 마음, 불교교학적 해석과 심층적 논의 •• 189 행기 또한 이제 우리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그 사고는 더 욱 치명적이다. 이와 함께 공장의 폐수로 인한 환경오염, 배기가스로 인한 대기오 염 그리고 방사능 오염 등 이 모두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또 다른 면들이다. 인간의 욕망은 인류에게 이익을 주고 있지만 그 뿐만 아니라 피해도 주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게 되었다. AI 또한 인간의 욕망의 산물이기 때문에 예외가 될 수 없다. 사실 AI가 다양한 측면에서 인간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날씨 안내와 지식 검색을 할 수 있는 로봇과 병원에서 환자 응대와 건강 정보를 제공하고, 향 후 무균실, 중환자실 등 일반인 접근이 어려운 병실에서 환자들의 감성을 보살피 는데 활용할 예정인 로봇인 페퍼가 인간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사람들은 예 상한다.19) 애완강아지 로봇 소니 또한 눈에 카메라가 달려 있어 장애물이나 사람 등을 감지하며, 음성인식도 가능해서 사람소리가 나는 쪽으로 갈 수도 있다고 한 다. 이로 인해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20) 하지만 AI가 인간에게 항상 이롭지는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인간이 해왔던 다양한 일을 AI가 맡게 되면, 사람들은 결국 일자리를 잃게 되는 때가 결국 도래할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의 결과에 대한 또 다른 예 로서 의학과 생명과학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는 병원의 현 상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울 내 대형병원이 다국적 제약회사의 임상시험 허브로서 역할을 하면서, 이런 임상시험의 유치가 병원의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경영진은 적 극적으로 이를 장려하고 있다고 한다. 병원이 더 이상 아프고 병든 사람의 안식 처가 아니고, 생명자본주의의 공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21) 2) 욕망의 조절 그리고 현상에 대한 정견(正見)이 필요한 시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대는 욕망의 산물인 AI와 인간이 공존하기 시작하 는 시대이다. 점점 더 다양한 방식으로 AI 존재의 양상이 펼쳐질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결과를 낳을지에 대해 명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러한 19) http://www.hankookilbo.com/v/e866202d0a484d3b873f8b81238f2bc7(2017.10.11.). 20) http://www.spoonidea.com/2017/11/13674(2017.10.11). 21) 유상호(2017); http://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1841(2017.10.25). 190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상황을 만든 인간의 마음 그 자체에 시선을 돌려 세속적인 욕망에 휩싸이지 않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주지하듯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유식학은 현상 그 자체를 연기 의 원리에 의해 설명하고 수행을 통해 생과 사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을 궁극적 인 목적으로 제시한다. 즉 존재하는 것은 오직 ‘식’뿐임을 깨닫고 그 ‘식’을 ‘지 (智)’로 전환하여 진여를 깨닫는 것을 목적으로 본다. 그리고 이것은 여러 단계로 나누어진 실천을 통해서 비로소 도달될 수 있다고 본다.22) 그 출발점은 진리의 세계에서 흘러나온 가르침을 잘 듣는[정문훈습(正聞薰 習)] 데에 있다고 한다. 즉 부처나 보살 등 뛰어난 인물을 만나 가르침을 받아서, 자기의 내부에서 그 가르침을 숙고하고, 깊이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다음 단계로서 유식사상의 독자적인 관법인 ‘사심사(四尋思)’와 ‘사여실지 (四如實智)’를 깨닫는 것이 제시된다. 이 가운데 사심사란 모든 인식대상을 다음 의 4가지로 나누어 그들 각각이 ‘임시존재에 지나지 않고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사색하는 수행방법이다. 그 4개는 다음과 같다. 1) 명(名): 인식대상을 지시 하는 언설 2) 의(義): 언설로 지시되는 사물 3) 자성(自性): 언설과 사물의 자체 그것 4) 차별(差別): 언설과 사물 여러 가지 특수한 존재방식 등이다. 이 네 가지 는 우리들이 견문각지(見聞覺知)하는 여러 대상을 모두 포괄한다. 또한 ‘사심사’ 란 그 하나하나가 ‘자기의 마음에 지나지 않으며 ‘식’을 떠나 외계에 실재하는 것 은 없다’고 사색하여 관찰하는 관법이다. ‘사여실지’란 이상의 네 가지 사색을 통해 ‘인식대상(명, 의, 자성, 차별)은 그 것을 인식하는 마음을 떠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나아가 그 인식하는 마음 자 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실히 아는 지혜를 말한다. 즉 ‘사심사’의 결과로서 객 관도 주관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으로 깨닫는 것이다.23) 유식학의 수행위는 5가지 단계(자량위, 가행위, 통달위, 수습위, 구경위)로 제 시된다. 앞에서 소개된 것은 자량위와 가행위에 해당된다. 자량위는 복덕과 지덕 을 쌓는 단계이며, 가행위는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이다. 이 두 단 계는 일상인들이 세속적인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그것을 잘 조절할 수 있는 방법 22) 요코야마 고이츠, 김용환⋅유리 역(2013), 192. 23) 요코야마 고이츠, 김용환⋅유리 역(2013), 195-197. 안환기 _ AI와 인간의 마음, 불교교학적 해석과 심층적 논의 •• 191 을 얻을 수 있게 한다. 특히 진리의 세계에서 흘러나온 가르침을 잘 듣는 것에서 그 길이 시작된다고 하는 점은 일상인들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알려준다고 생각된 다. 아직 관련지식이 없는 사람은 우선 해당분야의 전문가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인간은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AI가 탑재된 로봇과 공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발생되는 문제 또한 다양할 것이다. 특히 인간이 사회 속에서 타인과 관 계를 맺을 때 중요하게 여기는 도덕적 전통이 로봇과 사람 사이에는 없기 때문 에, 인간이 로봇을 사용하면서 생겨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대부분 로봇을 만든 사람이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로봇을 설계하는 사람들에게 이와 관련된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즉 이러한 도전에 대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 만 그에 대비하기 위한 몇 가지 조치를 다음과 같이 제안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연구기관과 대학 그리고 이들을 규제하는 당국은 지능형 기계를 설 계하고 만드는 사람들이 엄격한 윤리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노 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직하게 로봇을 만드는 기관에 투자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임을 명확하게 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거의 항상 의도 를 발견하고 분석하는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24) 이것은 인간 의 세속적 욕망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로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에 이르 기까지 인간사회 속에서 인간의 세속적 욕망이 어떤 양상을 보이고 있는 지에 대 해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유식학의 관점이기도 하다. 유식학의 ‘가행위’에서 제 시되고 있는 ‘사심사(四尋思)’와 ‘사여실지(四如實智)’는 우리 일상인들에게 현상 을 정확히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구체적으로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 한 점에서 불교는 현대인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5. 맺는 말 현대인들은 불교가 생겨난 고대 인도와는 달리 기계문명 속에서 살아가고 있 24) 클라우스 슈밥 외 26인, 김진희 외 2인 역(2017), 193-195. 192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환경을 바꾸어 놓고 있지만 여전히 인간의 마음에 는 번뇌가 생겨나고 이로 인해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 점이 현시대 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불교가 필요한 이유이다. 본 연구는 AI가 탑재된 로봇, 무인자동차, 사물인터넷 등과 인간 사이의 소통 의 문제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인식이 필요한 때이며, 이 새로운 시대에 인 간이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의 확대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심리적인 변화에 대해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특히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 의 단절, 기계화된 문명이 해결해줄 수 없는 마음의 공허함, 우울증 등과 같은 문 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불교에서 찾아보고자 하는 목적에서 비롯되었다. 주지하듯 불교는 기계 문명 속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통찰할 수 있는 힘을 보 여주기 때문이다. 현시대에 불교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세속적인 욕망의 산물인 AI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관찰하여, 매순간 정확하게 현상을 파악하려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 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안환기 _ AI와 인간의 마음, 불교교학적 해석과 심층적 논의 •• 193 ▮ 참고문헌 ▮ T: 대정신수대장경 ?成唯識論?(T31) ?攝大乘論釋?(T31) 김대식(2016),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 인공지능이란 무엇인가?, 서울: 동아시아. 김환석(2011), 「행위자-연결망 이론에서 보는 과학기술과 민주주의」, ?동향과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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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권 제1호, 2015. 「비베카난다의 요가관 연구」, ?인도연구? 제21권 제1호, 2016. 196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논자는 약한 인공지능과 강한 인공지능을 나누고 “인공지능도 불성이 있는가” 같은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물체로서 현 단계의 약한 인공지능의 문제를 유 식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약한 인공지능’은 세상을 알아보고, 알아듣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글을 읽고 쓰고, 정보를 조합하고, 이해하는 것을 사람과 비슷한 수준으로 수행하는 인 공지능을 의미한다. 반면 이 ‘약한 인공’의 능력을 포함하여 독립성이 있고, 자아 가 있고, 정신이 있고, 자유의지가 있는 기계를 ‘강한 인공지능’이라고 한다. 현재 로서는 강한 인공지능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가능하다는 증거도 없고 불가능하다는 증거도 없다는 것이다.1) 이와 같은 논의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현재 AI와 인간의 관계는 주체적인 상 호관계로 정립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AI와 인간의 소통으로 규정하 기 보다는 AI를 만든 설계자와 인간의 관계로 파악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것으 로 보인다. 즉 인간의 관점에서 AI를 분석해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으로 생각 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인간의 마음에 초점을 두고 AI가 인간의 마음속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하며, 그 관계는 어떠한 지를 불교적인 관점에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논자에 따르면 인공지능을 만든 인간 설계자와 그 기계를 사용하는 인간 사이 에 “공상(共相)”이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과 인간이 같은 생활공간에 존재하게 된 다고 한다. 또 인공지능을 통해 인간의 인식 영역이 확장된다는 것이다. 이런 내 용을 논자는 유식이론을 들어 적절히 해설하고 있다. 또 무아론의 연기적 관점에서 인간과 사물을 포함한 모든 요소들을 어떤 현상 을 구성하는 평등한 관계(과연 불교가 평등한 관계로 바라보는 건지는 의문이 있 다)에서 바라보는 불교의 입장은 ‘행위자-네트워크이론(Actor-Network Theory, ANT)’ 이론과 유사하다고 한다. 이 이론은 인간과 비인간적 요소 모두 를 일정한 현상을 이루는 ‘행위자’로 보지만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의 행위가 동일 1) 김대식(2016), 75-277; https://ko.wikipedia.org/wiki/인공지능(2017.08.29). 심준보 _ 논평문 •• 197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고 한다. 이런 논의들을 통해서 논자는 인공지능의 미래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도록 인공지능을 만드는 인간이 정견을 가져야 함을 주장하면서 이를 위해 유 식 수행론을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논자는 인공지능을 포함한 과학이 극성한 현 대 사회에서 불교는 이들에 대한 혜안을 밝혀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한다. “AI와 인간의 마음, 불교교학적 해석과 심층적 논의”라는 제목에서 상상했던 로봇불성론(?)이 다루어지지 않아 평자는 조금은 실망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의 식의 본질까지 다루어야 할 것이기에 소논문에서 다루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더 구나 그런 바램이야 평자의 마음이지 논자는 논자의 마음이 있는데 글의 소재와 주제를 평자가 이래라 저래라 할 일도 아니다. 전반적인 글의 흐름은 무난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인공지능이 논문을 쓰고 평가할 시기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 글에서 특별히 반박할 점이나 질문을 던질만한 것은 없다. 다만 아마도 인 간과 인공지능의 가장 큰 차이는 생명이냐 아니냐, 전통적인 표현을 쓰자면 유정 이냐 무정이냐가 될 텐데 도대체 불교에서 말하는 생명, 혹은 정이란 무엇인지 논자의 견해를 듣고 싶다. 보충적으로 말한다면 평자의 전공은 불이론 쉬바파 탄트라인데 이 교설은 유 정무정이 다 쉬바(종교적으로는 쉬바, 철학적으로는 의식, 화엄철학의 일체유심 조의 심과 유사한 의미이다)의 현현인바 유정, 즉 생명은 자신과 대상을 비추는 능력(전문용어로는 vimarśa, 구태여 번역한다면 反照, 反映의 의미 정도일 것이 다)을 가지고 무정은 그런 능력이 비활성 상태에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생명이 란 잘 닦인 거울이고 무정은 안 닦인 거울이라는 것이다.2) 이런 점에서 기왓장이 나 인공지능도 존재인 점에서는 의식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만약 인공지능의 인 식, 판단 능력이 단지 기계적인 분류 차원이 아니라 자신과 대상을 비추는 수준 이라면 이것은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인도에는 신밧드의 모함에 나오는 요술램프 속의 지니, 혹은 마법양탄자의 2) 억지로 거울에 비유했지만 의식은 비추어진 대상을 “안다”는 점에서 거울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인공 지능이 아무리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인식’이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하더라도 이 인식이 단 지 기계적인 자동적 반응일 뿐이라면 이것은 외관상 인식처럼 보이겠지만 거울의 비추는 단순한 작용과 다를 바 없다. 이런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198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원형인 베탈라(vetala, 起屍鬼)라는 귀신이 있는데, 이것은 일종의 좀비로서 인간 의 시체에 주술을 걸어 귀신을 빙의시킨 것이다. 그러나 베탈라는 자유의지가 없 고 주술사의 의지에 따라 조종될 뿐이다. 말하자면 고대의 로봇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과연 베탈라도 고통을 느끼고 해탈할 수 있을까? 하여간 현대인은 점점 더 골치 아픈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해를 위해 비마르샤에 대한 인용을 하고 글을 마칠까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빛(prakāśa)의 현현이라고 하였다. 그 빛의 현현 일 부는 인식을 되돌려 스스로나 빛의 다른 측면들을 스스로에게 반영하는 능 력을 가진다. 이것이 우리가 생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에너지장의 이 마 디점들은 자기 반영(自己反映, vimarśa)3)의 행위를 통해 말하자면 자기 스스로에게 빛을 되접을 수 있다. 우리는 자기반영이라는 용어를 상징적으 로도 문자적으로도 여기서 이해할 수 있다. 자기인식을 하는 존재는 모든 다른 존재가 자신에게 반영되고, 그 또한 다른 존재들의 반영이 되어, 모든 것은 단일한 진아의 반영이 된다. 이런 이유로 비마르샤는 또한 “재투사”로 번역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의식이 스스로에게 스스로를 다양한 형 태들로 다시 투사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 형태들은 자기인식과 자기애 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이다.4) 3) vi는 再, marśa는 觸의미가 있다. 4) Wallis, Christopher D. (2012). Tantra illuminated : The Philosophy,History, and Practice of a Timeless Tradition, The Woodlands, TX: Anusara Press, p.61.

 

 

[출처] AI와 인간의 마음, 불교교학적 해석과 심층적 논의/안환기|작성자 임기영불교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