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과학

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유식학의 관점에서 본 인공지능의 인식능력 - 이진경

수선님 2020. 6. 28. 13:51

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유식학의 관점에서 본 인공지능의 인식능력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본명은 朴泰昊, 1987년 이란 책을 내면서 사용했던 필명인 이진경이 뜻밖에 허명을 얻으면서 본명은 잃어버렸다. 광주시민들의 유령이 떠돌던 시절에 대학에 들어가, 그 유령들에 홀려 강의실 아닌 거리에서 대학시절을 보냈고, 결국 ‘직업적 혁명가조직’을 만들겠다는 레닌주의자가 되었다. 1990~91년, 감옥 안의 사회주의자에게 덮쳐온 사회주의의 붕괴 덕분에 ‘심연’을 보았고 거기서 얻은 물음을 따라 살고 사유하고 쓰고 있다. 우리의 현행적 삶을 규정하는 근대성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하여, 그것을 넘어선 코뮨적 삶의 방식을 존재론적 차원에서 탐색하다가 불교적 사유와 생명과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모든 개체는 중-생이고 공동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 아닌 생명체나 기계, 사물을 인간이 부여한 위계가 사라진 하나의 존재론적 평면 위에서 다루는 존재론에 대한 탐색으로 넘어갔다. 동물이나 식물 같은 프리휴먼의 존재자에서 인공지능이나 사이보 그 같은 포스트휴먼의 존재자를 근본에서 다시 사유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유식학은 이런 작업에 중요한 개념적 자원을 제공한다고 믿고 있다. 또한 중관학의 ‘공’ 개념과 들뢰즈가 말하는 잠재성 개념이 연결되는 지점에서 ‘존재’를 사유하는 ‘존재의 존재론’을 모색하려 하고 있다. 전공⋅관심분야 현대철학, 뇌과학과 인공지능 주요논저 ?노마디즘 1⋅2?, 휴머니스트, 2002. ?자본을 넘어선 자본?, 그린비, 2004. ?철학과 굴뚝청소부?, 그린비, 2005. ?외부, 사유의 정치학?, 그린비, 2009. ?코뮨주의?, 그린비, 2010.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 휴머니스트, 2011. ?파격의 고전?, 글항아리, 2016. ?불교를 철학하다?, 휴, 2016. 이진경 _ 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 251

 

1. 인간과 기계, 생명과 기계 사이 이전의 산업혁명들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할지는 모르지 만 그 선도적 견인차 중 하나인 인공지능이 도래하리라는 것은 모르기 어렵다. 인공지능의 개발 속도는 매우 빨라서 최근 딥마인드에서 발표한 알파고 제로는 이세돌과 대국했던 알파고(‘알파고 리’)와 달리 인간의 기보를 입력주지 않은 채 단순한 바둑규칙만 입력한 채 스스로 대국하며 진행되는 비지도학습을 통해 바둑 을 학습했는데, ‘알파고 리’와 대결하여 100전 100승을 했고, 알파고 이후 커제를 포함한 모든 프로기사와의 대국에서 승리한 ‘알파고 마스터’와 대결하여 100전 89승 11패를 했다고 한다. 알파고가 48개의 TPU(Tensor Processing Unit)-- 신경망에서 많이 사용하는 행렬연산을 위해 구글이 개발한 프로세서—를 사용한 분산버전(여러 대의 컴퓨터를 연결하여 작동하는 시스템)이었음에 반해 알파고 마스터는 4개의 TPU를 사용한 단일버전(한대의 컴퓨터로 연산하는 시스템)이었 고, 알파고 제로 역시 4개의 TPU를 한 대의 컴퓨터로 돌리는 단일버전이었으니 하드웨어 면으로 보면 크게 줄어든 규모다. 이 축소된 장비로 앞에서 말한 성과 를 비지도학습으로 올린 셈이다. 알파고 리가 이세돌과 대국한 게 2016년 3월이 었고, 알파고 제로에 대한 논문이 ?네이처?에 실린 게 2017년 10월이었으니 이 놀라운 ‘진화’가 일년 반만에 일어난 것이다. 알파고는 이제 바둑계를 떠나 진단 과 처방, 신약개발, 기후예측 등에 사용할 수 있는 범용성을 갖춘 범용인공지능으 로 자리잡았다. 알파고 제로의 성과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전에 계산주의 모델에 기 초한 인공지능은 인간이 전문적인 지식을 공급해주는 이른바 ‘전문가 시스템’으 로 귀착되었는데, 이를 통해 가령 IBM의 왓슨은 퀴즈프로 에서 인간 에게 승리했하긴 했지만, 사실 인간의 손으로 제공해주는 지식을 검색하여 사용 하는 선을 근본적으로 벗어나지 못했다. 신경망을 이용한 연결주의 모델은 제프 리 핸슨의 딥러닝을 계기로 비약적 발전을 했지만, 알파고 마스터조차 여전히 입 력된 지식을 필요로 한다면, 이 또한 ‘지능이라기보다는 검색 시스템에 불과하다’ 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반면 알파고 제로는 사전 지식의 입력 없이 최소 규칙과 목표(승리!)만을 주고 알아서 학습하여 인간에게 승리한 인공지능에게 252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승리를 거두었다는 점에서 인공지능이 ‘지능’이란 말에 충분히 강한 의미를 부여 할 수 있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매우 탁월한 범용인공지능이라 하지만 알파고 제로조차 자신이 의료업 에 종사해야 할지 단백질합성을 연구해야 할지, 혹은 스타크래프트 같은 새로운 게임을 해야 할지는 스스로 정하지 못한다. 간단한 규칙을 아는 것만으로 저 복 합한 바둑에서 최고가 되는 법을 스스로 익혔지만 규칙을 바꾸거나 새로운 규칙 을 갖는 게임을 스스로 만들지는 못한다. 개와 고양이를 구별할 줄 알게 되었고 사진을 주면 뭐하는 장면인지를 서술하는 캡션을 달아줄 수 있게 되었지만, 프란 시스 베이컨이 그린 게 무엇인지를 알아보기는 아직 요원할 것 같고, 20세기 모 더니즘 풍의 음악작품을 만들고 고흐 풍의 풍경화를 그리지만 자신이 그린 그 그 림에 담긴 정서나 감응을 읽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좀더 낮추어 마크 로스코나 아실 고르키의 그림을 보고 그에 적절한 한 마디를 다는 것도 쉽지 않 을 것 같다. 이를 두고 인공지능으로선 불가능한 영역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아 직’에 속하는 무능력이라 해야 할까? 인간이 하는 것보다 훨썬 더 잘 하는 것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아 주 잘 하는 것과 아주 못하는 것 사이의 간극은 매우 크다. 그렇기에 인공지능의 지적 능력에 대해 아주 상반되는 평가들이 여전히 팽팽하고, 인공지능과 더불어 펼쳐질 미래에 대한 생각 또한 상이한 방향으로 발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 다른 이견들이 잣대로 삼는 것은 인공지능이 인간이 하는 것을 구별불가능할 정도로 잘 하는가 여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 언제인가를 측정하는 것으로 인공지능과 미래에 대해 모두 말한 것으로 간 주한다. 인공지능의 발전을 생각하면 인공지능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놀라울 만 큼 단순하다. 그렇기에 여러 견해를 살펴봐도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는 결코 깊어 지지 않는다. 인공지능의 능력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려면 오히려 저 단순화된 평 가의 장을 떠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의 지적인 능력을 이해하는 것은, 그것이 인간의 지능을 모사한 것인 한 인간과 비교하는 것을 피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튜링테스트에 함축된 ‘누가 누 가 잘하나’ 식의 평가방식은 이젠 인공지능의 이해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을 떠나서도 인공지능에 대한 사유는 그것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이진경 _ 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 253 지, 의식이 있다고 할 수 있는지, 인공지능은 과연 지성이라고 할 만한 것인지를 인간을 기준으로 삼아 대조하는 것을 벗어나기 어렵다. 이렇게 양자의 능력을 ‘통 째로’ 비교하는 것은 각각의 능력을 내재적으로 살펴볼 분석적인 개념이 없기 때 문이고, 그런 분석의 결과를 종합하며 관계지울 공통의 평면이 없기 때문이다. 인 공지능을 인간의 이성이나 의식이란 평면에 세우는 한 저 단순화된 평가를 벗어 나긴 어려울 것이다. 인간의 지적 능력을 척도로 인공지능을 ‘통째로’ 평가하며 우열을 재는 걸 피 하기 위해선 먼저 인간을 떠나 인식능력 자체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최소한 생 명체의 인식능력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야 한다. 인간 아닌 생명체, 감각적인 지각을 갖고 행동하는 생명체 전반을 하나의 평면 위에서 다룰 수 있어야 하고, 그 평면 위에 인공지능의 인식능력이 어떠한 지점에 자리잡고 있는지를 살펴보아 야 한다. 인간이 잘 하는 것을 그것이 얼마나 잘 하는지, 인간만이 할 거라고 믿 는 것을 그것이 정말 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대신, 그 평면 상에서 인공지능의 감 각적 지각을 비롯한 지적인 능력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분석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러기 위해선 생명체나 기계의 지적 능력을 다룰 분석적 개념 이 필요하다. 그런데 전통적인 인식론은, 칸트는 물론 후설의 이론조차도 인간의 ‘이성’을 모델로 하기에 인간 하닌 것의 인식능력을 다루기엔 너무도 부적절하다. 예컨대 그것은 인간이라는 유기체 수준에서, 그 유기체의 통합된 능력으로서만 인식능력을 다루기에 유기체 이하 수준의 기관이나 세포의 인식능력을 다룰 수 없으며, ‘의식’을 전제로 하기에 의식 없이 작동하는 지적 능력을 다룰 수 없으며, ‘의미’를 부여하거나 읽어내는 인간의 활동을 전제로 하기에 의미를 이해한다고 하기 힘든 기계의 지적 능력을 다룰 수 없다. 유기체도 아니고 의식도 없으며 말이나 행위의 ‘의미’를 이해하지도 못하는 인 공지능의 인식능력을 다루기 위해선 이와 다른 종류의 개념과 이론이 필요하다. 여기에 무엇보다 유효하다고 보이는 석은 유식불교의 인식론적 개념들이다. 유식 학은 인간 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중생’)의 존재조차 ‘식’이라 명명되는 그것의 인식능력을 통해 다루며, 통상 하나의 통합된 ‘영혼’ 같은 것으로 간주되는 것을 ‘아상’이라는 허상으로 다루며 그것 이하 수준에서 존재하고 작동하는 식들을 통 해 그것을 설명하려 한다. 주체나 유기체를 암묵적 전제로 하는 ‘인식’이란 개념 254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과 달리 ‘식(識)’이란 기관이나 세포 같은 미시적 수준에서 존재하고 작동하는 어 떤 ‘인식능력’을 표현한다. 그리고 흔히 유기체나 인간-주체를 상정하여 사용되 는 ‘인식’이라는 개념조차 이 미시적 수준에서 작용하는 상이한 종류의 식들을 통 해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나아가 8개의 상이한 식들의 상이하고 다양 한 작용양상은 겉으로 보면 단일해 보이는 인식과정을 상이한 식들이 섞이고 떠 받치며 교차하는 다양체로서 볼 수 있게 해준다. 이하에서 유식학의 개념들을 방 법론으로 삼아 인공지능의 ‘지적 능력’에 대해 다루어보려고 하는 것은 이런 이유 에서다. 요컨대 인공지능의 지적 능력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이란 존재자를 벗어나서 인간-이전(pre-human)의 생명체들과 인공지능이나 기계적 센서 같은 인간-이 후(post-human)의 존재자들을 하나로 연결한 존재론적 평면 위에서, 유식학의 미시적 식의 개념을 통해 생명체와 인간, 인공지능의 지적 능력을 검토해보려고 한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선 먼저 유식학에서 말하는 미시적 식이나 8식의 개념 을 생명체들의 지적 활동과 관련해 재규정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아니라 생명체 의 지적 활동에 대한 논의에서 시작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2. 감각적 지각 감각적 지각은 눈, 귀, 코, 혀, 몸으로 표상되는 다섯 가지 지각능력을 뜻하기 도 하고, 그 지각능력에 의해 포착된 바를 뜻하기도 한다. 감각적 지각에 대한 가 장 통상적인 관념은 눈이라는 기관, 귀나 코라는 ‘기관(organ)’에 의해 이루어지 는 인식이라는 것이다. 기관이란 원래 ‘도구’를 뜻하는데, 5개의 감각기관 뿐 아 니라 소화기관, 운동기관, 호흡기관, 배설기관 등 유기체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도구로서 기능하는 신체의 부분을 뜻한다. 이런 관념은 눈이나 귀 같은 특정화된 기관을 감각적 지각의 자연적인 기초로 가정하고, 감각적 지각이란 그 감각기관 이 수용하는 빛이나 소리 같은 자극의 감지를 뜻한다고 가정한다. 즉 시각적인 지각은 눈이란 기관에 들어와 꽂힌, 대상에 반사된 빛이고, 청각적 지각이란 귀라 는 기관에 들어와 포착된 어떤 주파수의 진동을 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진경 _ 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 255 이해하는 한 눈이나 귀, 코와 혀 같은 기관을 갖고 있지 않은 식물의 감각적 지각 은 생각할 수 없게 된다. 기관을 통한 감각 개념이 갖는 이러한 무능력은 어느새 식물에겐 감각적 지각이 없다는 생각으로 쉽게 대체되어 버린다. 그러나 가령 빛 이 절대적인 생존조건인 식물에게 빛을 지각할 능력이 없다면 식물은 생존을 지 속할 수 없을 것이란 점에서 이는 부당한 가정이다. 식물이 빛을 향해 자신의 ‘몸’ 을 구부리는 ‘굴광성’은 이미 잘 알려진 것이지만, 거의 ‘반사’ 수준에 머문 그 정 도의 단순한 ‘반응능력’ 밖에 없는 것인지는 다시 물어야 한다. 따라서 지각을 다룰 때 먼저 감각기관이 아니라 감각능력으로 다루어야 하며, 인간중심주의의 연장인 동물중심주의를 벗어나서 다루어야 한다. 동물적이고 기 관중심적인 관념을 벗어나려면, 세포적인 수준으로, 혹은 그 이하 수준으로 내려 가서 감각적 지각을 이해해야 한다. ‘식’이란 세포나 분자처럼 기관 이하의 수준 에서 작동하는 미시적 지각능력이다. 세포적인 수준에서 말한다면, 가령 빛의 지 각이란 광수용체들로 이루어진 광감세포들에서 포착된 빛의 자극을 하나로 묶어 서 시각적 상으로 바꾸는 특정한 ‘종합활동’이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보면 동물 이나 식물 모두 시지각(眼識)을 갖는다. 인간의 경우에는 빛의 명암을 감지하는 막대세포와 색깔을 감지하는 세 가지 종류의 원뿔세포가 있으며, 이들 세포는 로돕신, 3가지 포톱신, 크립토크롬이라 는 5가지 광수용체들로 이루어진다. 이들 광감세포가 포착한 빛의 자극이 뇌의 뒤쪽에 있는 시각령으로 전달되고, 시각령에서 만들어지고 ‘편집’된 것이 시각상 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식물들의 경우에도 이러한 광수용체와 광감세포가 있을 뿐 아니라 인간보다 훨씬 많이 있다. 가령 작고 단순하여 식물학자들이 즐 겨 실험에 사용하는 애기장대풀의 경우에는 11가지 광수용체를 갖고 있다. 네덜 란드의 식물학자 마르틴 코르네르프는 광수용체가 파괴된 돌연변이를 이용하여 애기장대풀이 적색광, 청색광, 녹색광을 식별할 수 있음을 입증한 바 있다.1) 따 라서 식물은 눈이라는 기관이 없지만 시지각을 가지며, 따라서 시지각능력(안근) 을 갖고 있다고 해야 한다. 여기서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시지각상이란 세포적 수준의 수용체들이 포 1) 샤모비츠, ?식물은 알고 있다?, 이지윤 역, 다른, 2013, 31쪽. 256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착한 자극들을 하나로 묶어 시각상으로 만드는 일종의 ‘수축’ 내지 ‘종합’의2) 산 물이란 점이다. 눈을 갖는 인간이나 동물의 경우에도, 눈이라는 기관 전체가 시각 적 대상을 ‘보는’ 게 아니라 망막 상에 있는 광감세포들이 포착한 것을 하나로 묶 어 수축하고 종합하는 활동이 시지각이다. 시각적인 종합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 다. 망막 상의 수용체로부터 뇌로 보내진 신호들은 5개의 시각령에 보내져 형태 와 색, 깊이감이나 움직임 등을 갖는 것으로 재종합된다. 가령 제5시각령(v5)이 고장난 사람의 눈에는 굴러가는 공이나 움직이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오직 정지 된 공이나 사람만 보이는데, 이는 운동의 지각이 시각령에서 이루어진 종합의 산 물임을 보여준다. 애기장대풀이 보는 시지각은 어떤 것일지 알 수 없지만, 우리가 보는 것과 동일한 시각상일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세계를 보는 ‘안식(眼識)’을 갖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안식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 눈에 들어온 시각정보들이 종합되 어 만들어진 상들에 대해 그것이 개인지 고양이인지, 음식인지 아닌지를 식별해 야 한다. 이 식별은 단지 광감세포에서 보낸 신호를 수축하여 묶는 것만으론 이 루어지지 않는다. 이전에 보았던 것, 먹었던 것과 그에 대한 신체의 반응의 기억 들이 수축된 그 상에 추가되며 종합될 때 식별하는 지각은 이루어진다. 이러한 종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 대해 의사들은 보아도 무언지 모르는 시 각실인증이란 이름을 부여한다. 나아가 그렇게 포착된 고양이 얼굴이 내가 키우 는 고양이 얼굴인지, 저 사람의 얼굴이 아내의 얼굴인지 엄마의 얼굴인지를 식별 해야 한다. 가령 안면실인증(顔面失認症) 환자들은 망막의 시세포에 아무 문제가 없고 눈앞의 사물을 정확히 포착하지만, 눈앞의 얼굴이 누구 얼굴인지 식별하지 못한다. 심한 경우엔 얼굴과 모자도 구별하지 못한다.3) 뒤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안면실인증은 대상에 대한 친소관계의 감정도 상실한다. 이는 안면실인증이 단지 2) ‘종합’이란 분리되어 있는 둘 이상의 요소들을 결합하여 하나의 새로운 결과로 산출하는 활동이 다. 인식능력에 이러한 개념을 처음 사용한 것은 칸트였는데(Kant, ?순수이성비판?, 백종현 역, 아카넷, 2006), 칸트는 이 개념을 감각이 아니라 지성, 이성에 대해서만 사용한다. 베르그손은 이러한 활동이 상이한 시점에 울린 소리들을 하나의 선율로 묶는 순수지속의 본질이라고 보았고 (Bergson,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에 대한 시론?, 최화 역, 아카넷, 2001), 들뢰즈는 이를 ‘수축’ 이라는 말로 재정의하여 사용한 바 있다(Deleuze, ?차이와 반복?, 김상환 역, 민음사, 2004, 170~171쪽) 3)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조석현 역, 알마, 2016. 이진경 _ 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 257 기억에 의한 종합에 발생한 문제 때문만은 아님을 시사한다. 즉 안면실인증은 시 각실인증과 다른 층위의 종합이다. 그것은 지각된 대상과 ‘나’와의 관계를 기억하 고 식별하는 능력과 결부되어 있다. 안면실인증은 장소를 알아보고 길을 찾는 능 력이 취약한 풍경실인증과도 연관되는데, 이 또한 눈앞의 풍경을 보지 못하는 것 이 아니라, 내가 찾아야 집이나 길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즉 풍경 또한 얼굴의 식별과 관련된 종합능력의 산물인 것이다. 후각이나 미각은 시각과 매우 다른 양상으로 지각이 진행된다. 인간의 경우 시 각상을 형성하는 광수용체는 5개밖에 없었고 다양한 색채는 세 가지 광수용체에 서 포착된 것의 혼합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후각의 경우 400가지의 후각수용체를 갖고 있으며, 후각상피에 있는 이 수용체는 각각이 특이적으로 반 응하는 냄새분자를 포착하며 이 수용체가 포착한 것을 뇌의 후각령에서 종합하여 수만 가지 냄새의 상(相)을 형성한다. 이 후각상은 편도체와 해마에 보내지고, 감 정적 판단을 하는 편도체에서는 좋은 냄새인지 싫은 냄새인지를 식별하고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에서는 저장되었던 기억을 불러내 전에 어디서 맡았던 어떤 냄새인 지를 식별한다. 이러한 과정은 후각상 역시 복수의 층위에 속하는 종합들을 통해 형성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400가지 후각수용체에서 포착된 것의 종합을 통해 냄새의 상이 형성되고, 그것에 대해 좋은 냄새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감정적 종 합과 기억에 의한 종합이 더해지면서 그것이 ‘어떤 냄새’인지가 식별된다. 미각은 좀 다르다. 단맛, 짠맛, 쓴맛, 신맛의 고전적인 맛에 더해 감칠맛까지 다섯 개 정도의 기본맛이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감칠맛이 일본인에 의해 개념화 되고 최근에 와서 기본맛으로 인정된 이후 다른 종류의 기본 맛을 추가하려는 시 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기본 맛’이란 게 따로 있는 것인지 의문이긴 하지만, 대체로 받아들여지는 저 5개 정도의 기본맛에 대해서는 미각세포에 그에 상응하는 수용체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각각의 미각세포는 그 중 하나의 맛을 감지하는 수용체 하나만을 갖고 있다. 즉 짠맛, 단맛 등은 미각세포와 접촉하는 순간 포착되는 셈이다. 그런데 그렇게 포착된 정보는 맛의 경우 뇌로 가기 전에 연수(延髓)로 보내진다. 연수에서는 포착된 맛에 대한 반사적 반응을 일으킨다. 침이 분비된다든가 얼굴이 찡그려진다든가 구역질이 나거나 심하면 토하는 ‘감정 적’ 반응은 모두 여기서 일어난다. 이는 맛의 경우 신체 내부로 흡수될 대상이므 258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로 몸에 받아들여선 안되는 것을 즉각적으로 밀쳐내기 위한 반응이다. 여기서 맛 에 반응해 일어나는 반사반응은 일차적으로 유전자에 기억된 맛과 관련되어 있으 며 후천적으로는 섭취에 의해 몸이 심하게 고생했던 것들 또한 관련되어 있다. 아기들은 대체로 쓴 음식과 신 음식을 뱉어내는데, 이는 독성이 있는 음식이 주 로 쓴 맛과 결부되어 있고 상한 음식이 신맛과 결부되어 있음을 안다면, 몸은 보 호하기 위해 유전자 수준에 저장된 기억이 유도하는 반사작용이라고 해야 할 것 이다(나중에 학습이나 개념에 의해 이런 반사적 반응을 넘어서 쓴맛이나 신맛 나 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다). 이는 뇌로 가기 전에 이미 감정적 종합과 더불어 유전자 수준에 저장된 기억에 의한 종합이 연수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뜻한다. 연수를 통과한 맛의 정보는 시상(視床)을 거쳐 대뇌의 제1미각령으로 간다. 여기 서는 각 성분의 강도를 포착하고 종합하며 맛의 강도와 질이 분석된다. 이는 다 시 2차 미각령으로 보내져 냄새와 식감, 온도 등의 다른 감각정보와 종합되어 전 체적인 미각상이 형성된다. 이 미각상은 편도체로 보내져서 맛있다, 맛없다라는 호오의 분별을 산출하고(감정적 종합), 이는 다시 시상하부로 전달되어 더 먹고 싶다, 그만 먹고 싶다 등의 반응을 야기한다. 이후 이는 다시 해마로 전달되어 경 혐적인 기억과 종합된다. ‘촉각’이라고 명명되는 감각은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의 감각이 아니다. 대 개 피부를 통해 감지되기에 감지되는 기관을 따라 하나로 간주되었을 뿐이다. 피 부가 촉각으로 감지하는 감각에는 압력, 진동, 온도, 그리고 통증 등의 상이한 것 들이 섞여 있으며 그 감각의 수용체도 모두 별도로 나뉘어져 있다. 가령 손끝에 는 밀집되어 있는 메르켈(Merkel)세포는 압력에 반응하는 센서고, 역시 손 끝에 밀집된 마이스너(Meissner)소체와 좀더 깊은 층에 있는 파치니(Pacini)소체는 진동에 반응하는 센서로, 전자는 40Hz의 진동에, 후자는 250Hz 정도의 진동에 민감하다. 온도와 통증을 감지하는 것은 신경세포 말단에 있는 ‘자유신경종말’인 데, 온도에만 반응하는 것, 통증에만 반응하는 것, 둘 다 모두 반응하는 것 등이 있다. 온도에 반응하는 것도 온도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는 것들로 나뉘어져 있다. 여기서 포착된 신호들은 상이한 속도로 전달하는 신경섬유를 따라 척수를 통해 뇌의 체성감각영역으로 전송된다. 체성감각영역에서 이 상이한 촉감을 수용하는 부분은 피부 부위에 따라 다르게 영역화되어 있는데 여기서 느껴지는 감각에는 이진경 _ 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 259 시각이나 청각 정보 같은 것이 함께 섞여서 종합되어 촉감을 형성한다. 이 때문 에 눈으로 보며 만질 때와 눈을 가리고 만질 때의 질감이 다르다. 청각 또한 그러 하여 2000Hz 이상의 고음을 들으며 손을 비비면 더 건조하게 느껴지고 고음을 약화시킨 소리를 들으면 더 습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이상의 사실을 통해 전5식에 속하는 지각들에 대해 확인해둘 것은 첫째, 지각 은 ‘감각기관’들을 통해 습득된 자극의 포착이 아니라 기관 이하의 층위, 즉 세포 나 분자적 층위에서 발생하는 자극의 포착과 결부된 활동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 이다. 감각적 지각이란 시각세포나 후각세포 등 기관 이하의 수준에서 발생하는 세포적 식들을 하나로 묶어내고 수축하는 종합활동이라는 것이다. 둘째로는 이러 한 종합은 세포적 식들을 수용하여 종합하고 ‘편집’하여 감각적 상으로 변환시키 는 뇌의 감각령에서 이루어지지만, 그 이전에 감각정보들이 모여 이차적 종합이 이루어지는 세포나 소체 같은 세포연합체에서 이루어진다. 가령 빨간색을 지각하 는 광수용체와 초록색, 파랑색을 지각하는 광수용체들이 포착한 정보는 쌍극세포 와 신경절세포에서 종합되어 우리가 지각하는 색으로 종합되며(여기서 가령 빨 간색과 초록색이 종합되면 백색이 된다), 이것이 시신경을 통해 뇌의 시각령으로 전달된다. 후각 또한 그러해서 각각의 후각수용체가 포착한 정보는 사구체에서 모여 강도적 종합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1차 후각령에서 종합되며 ‘이러저러한 냄 새’로 종합된다. 이는 뇌 이전의 세포적 식에도 감각수용체의 식과 구별되는 층위 의 여러 식들이 있음을 뜻한다. 셋째, 여러 세포들의 ‘회로’를 통해 종합된 감각정 보는 뇌의 감각령에서 다시 종합된다. 그런데 감각령에서의 종합은 가령 상이한 순서로 포착된 시지각들을 하나로 종합하여 운동상을 형성하는 종합, 후각정보와 미각정보, 온도(촉각정보)를 종합하여 맛에 대한 상을 만드는 종합이다. 특히 촉 각은 그 자체가 한 종류의 감각정보가 아니라, 압력, 진동, 온도, 통감 등의 상이 한 ‘질’에 속하는 식들의 종합인데, 뇌는 여기에 시각상, 청각상을 섞어서 최종적 인 촉각적 감각을 형성한다. 이는 가장 일차적인 수준의 감각적 지각조차 항상-이미 상이한 세포적 식들이 수축되며 종합된 것임을 뜻하며, 그 종합의 층위 또한 중층적임을 뜻한다. 이런 점에서 감각적 지각은 단일하지 않으며 그 자체가 일종의 ‘다양체’다. 이러한 종 합이 일어나지 않으면 눈이나 코 같은 기관이 있어도 감각적 지각은 형성되지 않 260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는다. 전5식이란 감각기관 이전에 존재하는 식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얻어진 지각상들은 감각기관, 감각수용체로 피드백되어 수용체를 흥분시키는 자극 자체 를 포착하는데 효과를 미친다. 즉 감각수용체나 감각기관은 뇌가 반복적으로 형 성하는 감각상에 따라 대상을 포착한다. 그래서 가령 개구리의 ‘눈’은 움직이는 것에는 반응하여 감각대상으로 포착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것에는 반응하지 않으 며 감각대상으로 포착하지 않는다. 이는 날아가는 벌레를 혀만으로 잡아먹어야 하는 개구리의 생존에 유용한 지각능력이라 하겠다. 환경에 대한 대응방식에 따 라 뇌가 형성하는 층위의 식이 감각정보의 일차적 포착 자체를 규정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감각적 지각은 들뢰즈 말을 빌면 일차적으로 반복에 의해 작동하 는 ‘습관적 종합’이다.4) 그리고 이 습관적 종합은 이전에 종합하던 방식으로 종 합하는 경향을 가지며, 이는 유사한 자극을 동일한 자극으로 포착하려 한다. 여기 에 또 다른 종합을 더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감정적 종합과 기억에 의한 종합 이 그것이다. 뇌는 자신이 종합한 감각상에 호오의 분별을 더하기도 하고 주변의 정보를 더하기도 하여 기억으로 저장하며, 이 기억은 이후 입력되어 들어오는 감 각정보에 추가되며 감각상을 형성한다. 감정적 종합과 기억에 의한 종합, 이는 습 관적 종합만큼이나 감각적 종합에 내재적인 또 다른 종합이다. 이러한 감각상은 대상 전체에 대한 분별 이전에 대상을 포착하는 지각 자체에도 작용한다. 기억된 것이 있다면 명확히 안 들리고 뚜렷하게 안 보이는 것조차 명확하고 뚜렷하게 지 각하게 되며, 그만큼 잘못 지각하게 되기도 한다. 습관적 종합이나 기억에 의한 종합은 감각상의 형성은 물론 감각적 대상에 대한 포착 자체에 작용하며 반복의 양상을 포착하고 그 반복되는 것에 동일성을 형성하는 경향을 갖는 것이다. ‘업 (業)’이라는 말이 활동의 양상에서 나타나는 반복의 구조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 한다면, 그리고 많은 경우 그 반복에서 차이를 제거하며 동일성을 형성하는 성향 을 뜻한다고 이해한다면, 이를 ‘업’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반복에서 차이를 지우며 동일성을 포착하는 이러한 성향은, 개구리의 사례가 보여주듯 생 명체의 생존에 필요하고 유용한 것이지만 실상 자체와는 거리가 있는 식이란 점 에서 이미 전5식의 단계에서부터 형성되는 ‘유용한 무지’라고 할 것이다. 4) 습관적 종합과 조금 뒤에서 말하는 기억에 의한 종합을 들뢰즈는 ‘시간의 세 가지 종합’ 중 첫 번째 종합과 두 번째 종합이라고 말한다(Deleuze, 앞의 책, 172쪽 이하). 이진경 _ 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 261 3. 감각의 선험적 조건 이상에서 본 것처럼 감각적 지각은, 대상을 식별하기 이전에 감각적 포착 자체 의 수준에서 이미 세포적 식, 혹은 분자적 식이라는 미시적 식들의 종합이다. 뇌 의 감각령에서 이루어지는 종합은 이와 다른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또 한 번의 종 합이다. 이 종합은 습관적 종합과 기억에 의한 종합으로 다시 구별되기도 한다. 이러한 종합은 유기체의 의지나 의식 이전에 세포적 수준에서 진행되는 종합이 고, 그런 점에서 유기체의 의지나 의식이 능동적으로 개입하기 이전의 종합이란 점에서 ‘수동적 종합’이며,5) 의지나 의식과 무관하게 거의 자동적으로, 강하게 말 하면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종합이란 점에서 ‘자동적 종합’ 내지 ‘기계적 종합’ 이다. 하지만 ‘수동적’이란 말은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가령 칸트가 감각을 ‘수용’의 심급 내지 능력이라고 보았던 것은 이런 오해에 따른 것이다. 감 각적 지각은 외부의 자극을 수용할 때조차 실은 세포와 세포체, 뇌 등 여러 층위 에서 수행하는 적극적인 ‘종합’ 활동이란 점에서 그저 받아들이는 ‘수용’이 아니 다. 칸트 생각과 달리 지성이나 ‘이성’만이 아니라 감각 자체도 이미 ‘수용능력’과 대비되는 의미에서 ‘종합능력’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종합능력이나 종합활동이 없다면 감각적 지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감각 수준에서 작동하는 이 종합능력 이야말로 감각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조건이란 점에서 감각의 ‘선험적 조 건’이다. 칸트가 이렇게 오해했던 것은 그가 ‘인식’능력을 다루면서 인식의 주체 로서 유기체나 인간을 상정했기 때문이다. 즉 ‘인식’ 이하의 수준에서 작동하는 미시적 ‘식’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고, 유기체나 인간, 혹은 ‘주체’보다 하위 수준에 존재하는 식들의 ‘주체’--가령 세포들—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며, 의식 이전의 단계에 작용하는 식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5식의 감각적 지각에 대한 미시적 분석을 통해 확인되는, 감각적 지각의 선 험적 조건이라 할 이 미시적인 종합활동 내지 종합능력은 그 자체로 식을 가능하 게 하는 능력이다. 이는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이 아니라 마주친 자극을 특정 5) 수동적 종합은 원래 능동적 의지와 무관하게 입력된 감각적 지각을 지칭하기 위해 후설이 사용 한 개념이지만, 의식의 능동적 종합과 대비하여 이런 의미로 재정의해서 사용한 것은 들뢰즈였다 (Deleuze, 앞의 책, 171쪽). 262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한 유형의 대상으로 구성하는 능력이다. 동시에 입력되는 자극을 수축하여 얻어 진 결과물 또한 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를 유식학의 말로 ‘능변(能變)’이라 한 다면, 후자는 ‘소변(所變)’이라 할 것이다. 감각적 지각이란 외부적인 자극과 지 각능력이 만나며 발행하는 사건인데, 그때 능변으로서 작용하는 종합능력을 ‘견 분(見分)’이라고 한다면, 그것에 의해 포착된 것 대상을 ‘상분(相分)’이라고 대비 하여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5식의 가능조건이 되는 이러한 종합능력은 상이한 것들을 수축하고 결합하는 능력이란 점에서, 결합하여 유지하는(執持) 능력을 뜻하는 아타나(adana)식이라 고 할 것이다. 이는 모든 식의 작용이 기대는 의지처가 된다는 점에서 ‘근본식’이 다.6) 이 식 작용은 그 자체로는 ‘깨끗함과 더러움’도 없고 선악도 없으며 어떤 관 성적인 성향도 없다는 점에서 무루(無漏)의 식이다. 이것 없이는 어떠한 식도 있 을 수 없다는 점에서 모든 식의 전제조건이 되는 식이다. 그런데 무엇으로 인해 이런 집지(執持)의 작용, 종합과 지속의 작용이 존재하 는 것일까? 일단 생명체에 한정한다면, 그 작용의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무엇 보다 생명의 지속을 위한 것이다. 생명을 지속한다는 것은—사실 무생물도 마찬 가지인데—현행적인 개체화를 유지하는 것이다. 개체란 흔히 말하듯 더는 분리될 수 없는(in-dividual) 최소한이 아니라 수많은 분할가능한 것(dividual)들이 모여 만들어진 ‘중-생(衆-生, multi-dividual)’이다.7) 복수의 분할가능한 요소들이 하나로 묶여 하나로서, 하나처럼 움직일 때, 그것을 개체라 하고, 그렇게 복수의 요소들이 하나의 개체가 되는 것을 개체화라 한다. 따라서 유기체만이 개체인 게 아니라 기관도, 세포도 개체다. 개체는 그 하위수준의 개체들이 모여서 개체화된 것이다. 우리의 신체는 심장과 허파, 위장과 간, 근육과 신경 등 수많은 기관들이 모여 만들어진 개체다. 또 우리의 심장이나 허파는 수많은 조직(tissue)들, 수많 은 세포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개체이며, 미생물학자 린 마굴리스가 유전학적으로 입증했듯이, 우리 몸의 세포 하나하나도 여러 개의 박테리아들이 모여서 만들어 진 하나의 개체다. 유기체인 우리의 신체는 개체들의 개체들의 개체들...이 하나 6) 세친, 「유식삼십송」(15송), 김묘주 역, ?성유식론(成唯識論)?, 동국대역경원, 1995, 5쪽. “근본 식이란 아타나식이다.”(호법, 「성유식론」, 김묘주 역, 앞의 책, 273쪽.) 7) 이진경, ?코뮨주의: 공동성과 평등성의 존재론?, 그린비, 2010. 이진경 _ 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 263 로 개체화된 중층적 개체다. 단백질도, 세포도, 조직(tissue)도, 기관도, 유기체도 그 구성요소들을, 분할가 능한(dividual) 각 부분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그렇게 결합된 상태를 유지하여 지 속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개체들은 분할가능한 요소 들로 분해, 해체되며, 이를 ‘죽음’이라 부른다. 심장과 허파와 근육 등의 기관들이 리듬을 맞추어 하나처럼 움직일 때 우리의 신체가 유지되고, 수많은 세포들이 통 신하며 물질과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하나의 리듬적 종합을 이룰 때 기관도 유기 체도 생명을 지속할 수 있다. 서로를 하나로 결합시켜주고 그 결합상태를 유지해 주는 종합활동이 없다면 생명은 끝나고 만다. 이처럼 생명을 지속하려는 힘을 스 피노자는 코나투스(conatus)라고 명명한 바 있다.8) 부분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개체적 안정성이나 항상성을 유지하며, 마주치는 조건에 대해 반응하며 그러한 능력자체를 증장시키고 고양시켜가는 힘이 바로 코나투스다. 아다나식은 부분들 의 종합과 지속을 뜻하며, 이런 코나투스의 작용을 표현한다. 생명을 지속하려는 힘이 자신의 개체성의 지속에 집착하게 되듯, 종합하고 결 합하며 그 결합을 지속시키는 힘은 특정한 상태를 동일하게 유지하려는 성향을 갖게 된다. 애초에 외부의 자극에 대한 미생물의 흥분이 반복되며 형성된 미생물 의 포착능력은, 복합체를 이루면서 개체의 지속에 기여하는 나름의 공능(功能)을 갖게 되는데, 이는 반복되는 것을 동일하게 포착하려는 관성적 힘을 갖게 된다. 이러한 종합능력은 반복적인 자극에 대해 습관적 종합이나 기억에 의한 종합을 통해 상이한 것을 유사하거나 동일한 것으로 구성해내는 성향을 가지며, 이 종합 에 관여하는 습관이나 기억은 이후의 종합활동에 방향을 부여하는 잠재적인 ‘종 자(種子)’의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종자식(種子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지각 을 비롯한 식의 형성, 종합작용 자체에 어떤 동일성을 형성하는 성향을 뜻한다는 점에서 업종자(業種子)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능변으로서 이러한 식의 작 용이 산출한 것은 종자로 잠재화되고, 이 종자는 새로운 종합활동에 끼어들어가 면서 현행화된다. 이러한 식의 작용은 의식 이전에 존재하고 작동하며 의식에 알 8) 12연기의 가장 앞부분에서 무명(無明)이란 조건 속에서 생존을 위해 무언가를 행(行)한다고 할 때, 그런 행을 만들어내는 힘과 의지가 코나투스인 셈이다. 그런 행(行)이 식(識)을 조건지으며 만들어낸다. 이 식은 상이한 요소들을 결합하고 종합하며, 이것을 조건으로 명색(名色)이, 물질 과 ‘영혼’이 만들어진다. 264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려지지 않은 채 작동한다는 의미에서 ‘장식(藏識)’이라 할 수 있다. 종자의 작용은 습관이든 기억이든 어떤 동일한 상을 형성하는 경우가 통상적 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기에 반복 안에서 차이를 포착하며 이전과 다른 상을 형성하기도 한다. 전자가 등류습기(等流習氣)의 작용이라면 후자는 이숙습 기(異熟習氣)의 작용이라고 할 것이다.9) 흔히 유식학에서 이숙식(異熟識)이란 개념은 윤회시에 이전 선악의 업이 이어지지 않음을 강조할 때 사용하지만, 상이 한 생물학적 생이 아니라 상이한 두 찰나의 식(識) 사이에서 그처럼 등류습기에 서 벗어난 종합작용이 있을 수 있음을 안다면, 그 개념 또한 미시적 식의 과정에 대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종자가 있지만 언제나 동일한 양상의 종합을 반 복하게 하는 것은 아니기에, 이전 식의 관성에서 벗어난 식—무기(無記)--을 구 성하는 작용을 지칭하여 이숙식(異熟識)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잠재적인 종자로서, 의식 이전에, 의식에 알려지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이러 한 무부무기(無覆無記)의 식을 유식학에서 말하는 아뢰야(alaya)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순수 종합능력으로서의 아다나식이든 종자식 내지 장식으로서의 아 뢰야식이든, 감각적 지각의 선험적 조건을 이룬다고 하겠다. 이를 모아 유식학의 개념대로 ‘8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8식이 전5식인 감각적 지각의 선험적 조건이라고 했지만, 8식은 단지 그것으 로 국한되지 않는다. 가령 동물에게 존재하는 특이적 면역과정은 면역세포의 세 포적 지각능력에, 즉 식에 의해 이루어진다. 밖에서 들어온 것과 자기 신체 내부 에 속한 것을 구별하는 식의 작용이 신체 내부의 모든 기관 안에서 일어나고 있 는 것이다. 이는 감각의 영역 밖에서 일어나지만, 세포적인 수준에서 일어나며, 한번 접촉했던 외부자들은 기억되고 저장되어 이후 빠른 대응으로 이어진다. 이 는 신체의 수용능력을 벗어난 외부자들에 대한 반응이며 한 번 만났던 상대를 기 억하여 식별하는 작용이란 점에서 습관적 종합과 기억에 의한 종합을 동반한 종 합활동이다. 이는 대체로 등류습기의 작용이 강하여 외부로 기억된 것에 대해선 동일한 양상으로 반응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신체 내부에는 세포 수에 버금가는 많은 수의 세균들이 존재하는데, 면역세포가 이를 무조건 공격하지는 9) 호법(護法, Dharmapala), 「성유식론」, 김묘주 역, 앞의 책, 68쪽. 이진경 _ 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 265 않으며, 심지어 노말 플로라처럼 외부에서 들어왔는데 신체와 서로 적응하여 독 자적 면역계를 이루는 세균들도 있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반대로 등류습기 에 따른 종합이 과다한 경우 ‘병’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 분자를 공 격하는 알러지(allergy)나, 자기 신체의 일부를 외부로 간주하여 공격하는 자가 면역증이 그런 경우에 속한다. 좀더 미시적이고 분자적인 차원의 8식도 있다. 무엇보다 유전자에 기억된 식, 혹은 유전정보가 그것이다. 알다시피 유전자는 아데니, 티민, 시토신, 구아닌이라 는 네 가지 핵산들의 배열로 구성되는데, 각각의 핵산을 자신과 결합하는 짝을 ‘알아본다’. 즉 아데닌은 티민과만 결합하고, 구아닌은 시토신과만 결합한다. 이 것이 DNA의 배열을 RNA가 전사하는 활동의 가능조건이다. 각 세포 내부에 존 재하는 세포 이하의 이 분자적 배열은 그 자체로 유전정보라는 분자적 식을 구성 하며, 이것으로 인해 단백질을 합성하고 특정한 신체적 형질을 형성한다. 신체적 으로 손상된 부분을 원상복구하는 것을 보면 유전자 수준의 식이 반복적으로 작 동하는 습관적 종합의 일종이며, 만난 적 없는 천적에 대한 ‘자동적’ 반응이나 맛 에 대한 유아들의 반사적 반응을 보면 기억에 의한 종합 또한 유전자의 식(識) 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모으고 수축하는 방식으로 종합(集)하는 활동인 8식은 그런 활 동의 결과를 종자로 저장하며(積) 그 종자들을 통해 모든 현행적인 활동을 일으 키고(起) 유지한다. 이로써 단백질이나 세포, 기관이나 유기체 등 활동능력을 갖 는 신체(有根身)을 형성하고 유지한다. 나아가 그런 신체들이 살아가야 할 연기 적 조건들을 포착하여 대상(相分)들을, 대상들의 세계(器世間)를 구성한다. 신체 와 환경의 접촉 속에서 발생하는 식이 주어진 환경을 신체가 해석하고 대처할 수 있는 세계로 직조하는 것이다. 개구리는 개구리의 세계를, 까마귀는 까마귀의 세 계를, 인간은 인간의 세계를. 물론 이는 이웃한 다른 인간, 자신이 사는 환경, 자 신이 사용하는 사물 등과 함께 만든다. 살아가는 과정이 혼자일 수 없기에, 혼자 만드는 세계조차 함께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그렇게 구성되는 세계에는 어떤 개 체가 이웃한 개체, 가령 인간과 다른 인간들이 만나고 주고받는, 공유가능한 모든 정보들(共相種子)이 끼어들고 작용하며,10) 이로 인해 세계는 개개의 신체로 환 원되지 않는 안정성을 갖게 된다. 266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4. 유기체적 종합과 자아 8식은 모든 수준에서 개체를 묶어주고 유지하는 활동이다. 단백질도, 세포도, 기관도 유기체도 이를 통해 실존을 지속한다. 그런 점에서 8식은 개체의 실존능 력을 뜻한다. 모든 개체는 다른 하위 수준의 개체들을 하나로 묶어 개체화된 중 생이고, 모든 중생들은 그 내부에 하위수준의 수많은 개체들이 함께 공존하고 공 생하는 다양체다. 상이한 층위의 식들이 겹겹이 중층적으로 얽혀있는 복합체다. 사실은 각자의 생존방식과 생존시간, 생존능력과 생존리듬을 갖는 하위 수준의 개체들을 상위의 더 큰 개체로 개체화하려면 그 부분들이 갖는 이질성을 통합하 여 하나의 통일성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통일성은 우선은 하위 수준 의 개체들 간에 발생하는 리듬적 종합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고, 부분들의 이질성 은 소멸되지 않은 채 리듬적 협-조(協-調)를 통해 조절되는 것이다. 이는 유기 체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유기체가 특히 그렇지만, 현행적 개체화의 최종적 경계를 형성하는 개 체는 바로 그 수준의 개체성을 유지하려는 작용을 통해 자신의 생존이 전체의 생 존이라고 오인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의 생존을 모든 부분적 하위개체들의 목 적으로 부여하고, 하위개체들을 그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기능을 위한 도구 (organ)로, 즉 기관(organ)으로 간주하게 된다. 생명체의 경우 유기체가 특히 그 러한데, 유기체는 피부를 경계로 다른 유기체와 가시적으로 분리되어 있기에 유 일한 개체로 오인되기 때문이고, 이로 인해 유기체가 마치 최종적인 개체화인 양 오인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성생식의 ‘운명’을 타고난 우리는 복수의 유기체들 의 결합이 없으면 생명을 지속할 수 없으며 복수의 유기체들이 결합하지 않으면 생존을 지속할 수 없음을 안다. 더구나 하나의 유기체집단은 다른 유기체에 기대 어만 생존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생태학자들은 유기체들의 집단인 개체군 (population)과 공동체(community)를 생존의 기본단위로 간주한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개체적 경계의 뚜렷한 가시성은 유기체적 개체가 특권화되는 조건을 제공 한다. 유기체 수준의 개체성을 유지하는 작용은 여전히 8식에 속한다고 할 것이 10) 호법, 「성유식론」, 앞의 책, 85쪽. 이진경 _ 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 267 다.11) 그러나 여러 층위의 수많은 개체화를 가능케 하는 8식의 작용 가운데, 유 기체적 개체화를 이루는 작용을 특권화하여 그것이 ‘나’라고 하는 허구를 구성하 는 작용이 유기체에게는 존재한다. 즉 여러 8식 가운데 유기체의 경계를 만들어 내고 유지하는 식을 통해 내부와 외부, ‘나’와 ‘세계’를 구별하며, 그런 세계 속에 서 ‘나’라는 경계를 유지하려 할 뿐 아니라 특권적 허구에 집착하여 모든 식을 그 허구 주변을 맴돌게 하는 방식으로 취착하는 식, 그에 따라 ‘나’의 유지에 유용한 것에 대해선 선으로, 반대는 악으로 분별하는 식이 바로 7식인 말나(manas)식이 다. 가령 망막의 세포들을 자극하여 발생한 시각상은 눈에 속하는 식이지만, 이를 ‘나’의 눈이 본 ‘나’의 감각이라고 간주하는 것, 그런 감각을 코나 혀를 통해 감지 한 다른 감각과 통합하여 ‘내’가 대면하고 있는 단일한 대상이라고 표상하게 하 고, 그렇게 표상된 대상을 ‘나’에 대한 관계를 표시한다고 믿는 개념이나 범주들 로 분류하게 하는 무의식적 작용이 ‘사량분별’이라고 하는 7식의 작용이다. 즉 하 위 수준의 여러 개체들이 포착한 수많은 식들(8식에 속한다)들 사량분별하여 ‘나’에 속하는 것과 ‘내’가 마주하고 있는 대상으로 구분하고 ‘나’에 대한 관계 속 에서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용, 그리고 그렇게 분별하는 식들을 하나로 통합 하여 ‘나’의 인식활동이라고 간주하는 작용이 그것이다.12) 이는 ‘나’라는 허구적 동일성을 유지하려는 힘을 함축한다. 7식은 ‘나’라는 상(相)을 만들고 그것을 척도로 모든 것을 분별하여 그 상에 집 착한다. 이러한 집착의 허구성을 잘 보여주는 것은 가령 사고를 다리를 절단한 사람이 잘린 다리가 가렵다고 없는 다리를 긁는 행동이다. 이전에 갖고 있던 ‘나’ 의 상에 대한 애착과 집착이 변화된 신체의 실상을 오인하게 하여 없는 다리에서 감각을 느끼는 오인을 만들어내고 없는 다리를 긁는 부적절한 행동을 산출하는 것이다. 이 경우 통상 있게 마련인 전5식의 감각적 자극은 없다. 그럼에도 가려움 을 느끼고 긁게 되는 것은 이전에 거기 있던 신체에 대한 기억과 그 신체적 감각 11) 호법은 「성유식론」에서 7식이 등무간연(等無間緣)이 된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8식이 태어나 는 곳에 따라 계박(繫縛)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성유식론」, 앞의 책, 300쪽), 여기서 ‘태어나 는 곳에 계박된다’는 말은 이런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등무간연이란 전찰나의 마음이 후찰나 의 마음을 야기하는 작용에서 원인의 위상을 갖는 것을 뜻한다(「성유식론」, 298~299쪽). 12) 호법의 「성유식론」에서는 이러한 아집을 선천적으로 일어나는 아집(俱生我執)과 분별에 의해 일어나는 아집으로 구별한다(앞의 책, 320쪽). 268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을 구성하는 8식이 여전히 종자로 저장된 채 남아 있고, 그 8식들을 엮어서 ‘나’ 의 신체, ‘나’의 감각이라고 사량(思量)하던 7식의 작용 때문이다. 7식은 8식 견분(見分)을, 즉 종합하고 묶어주는 작용을 대상으로 한다고 하는 데, 이러한 작용은 감각적 인식(전5식)을 구성하는 작용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감각기관, 아니 감각수용체 세포에서 발생하는 감각적 작용들도, 그 감각적 작용 을 가능케 하는 조건(8식)을 ‘나’에 속한 것으로 오인하는 방식으로 ‘나’에 속한 것으로 오인하게 한다. 그러한 오인 속에서 눈이나 코 같은 감각기관의 작용도 ‘나’의 감각, ‘나’의 인식작용에 속한 것으로 오인된다. 뇌과학자 로돌포 이나스는 “물리적인 ‘나’의 존재란 없다...그것은 그저 특별한 정신상태일 뿐”이라고 하면서 ‘자아’에 대해 쓰고 있는데, 이는 이런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자아는 본질적인 중추신경계 의미론에서 나온 발명품이다. 그것은 중추 신경계라는 닫힌계 안의 끌개(attractor), 즉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면서 관련 없는 부분들을 연관시키는 추진력인 하나의 소용돌이(vortex)로 존 재한다. 자아는 외부적으로도 유도되고 내부적으로 유도되는 지각 (percept)들을 조직적으로 결합한다. 즉 유기체와 내부표상의 관계를 엮는 베틀인 것이다.”13) 7식은 독자적인 실체가 아닌 것을 ‘나’라는 실체로 간주하는 식이고, 그것에 집 착하여 그것을 중심으로 모든 식들을 끌어들이고 ‘나’에게 귀속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나’에 속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별사량하는 작용이다. 이러한 분 별은 ‘나’와 환경, ‘나’와 ‘대상’을 구별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런데 이는 유기 체가 환경에 대처하며 살아가기 위해 발전시킨 식의 작용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이기에, 유기체가 살아야 하는 환경에 따라, 즉 자신이 처한 연기적 조건에 따라 상이한 방식의 경계를 갖게 된다. 세가락갈매기와 다른 갈매기가 새끼를 식별하 는 능력은 이를 잘 보여준다. 알다시피 새끼란 자기가 낳은 것이지만 유기체 수준에서는 분리된 피부와 경 13) 로돌포 이나스, ?꿈꾸는 기계의 진화?, 김미선 역, 북센스, 2007, 189~200쪽. 참고로, 이 책의 원제목은 I of the Vortex이다. 즉 나라는 소용돌이에 대한 책이다. 이진경 _ 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 269 계선을 갖는다는 점에서 독립적 개체다. 그러나 자신이 낳은 것일 뿐 아니라 유 전적으로 자신의 연장이라는 점 때문에 대개의 동물들은 자기 새끼를 자신의 일 부처럼 여긴다. 즉 자신에게 속한 것, 자기 내부에 속한 것이라고 여긴다. 자신의 새끼와 남의 새끼를 구별하고 아주 다른 방식으로 대하는 것은 이런 작용에 속하 고, 이는 본질적으로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별하는 작용에 속한다. 자기 새끼를 위 해선 심지어 목숨마저 걸기도 하는 것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자기의 연장이라는 믿음, 확장된 자아의 관념과 결부된 것이다. 이러한 작용은 자기를 식별하는 것만큼이나 자기에게 속한 새끼를 식별하는 것이 동물에게 중요함을 뜻한다. 그런데 높은 절벽에 둥지를 짓는 갈매기과 바다 새인 세가락갈매기는 땅에 둥지를 짓는 다른 갈매기들과 달리 자기 새끼를 알아 보지 못한다. 통상의 갈매기는 그 둥지에 다른 새끼를 넣어두면 망설이지 않고 쫓아내지만 세가락갈매기는 자기 새끼처럼 대한다. 이는 절벽에 둥지를 짓기에 특별히 자기 새끼를 보호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새끼가 적에 게 침해당하는 염려할 필요가 없는 환경이기에 새끼에 대한 식별능력이 생겨나지 않은 것이다.14) 이러한 식별은 의식에 속한 것이 아니다. 동일한 갈매기과 새들 이 다른 양상을 보여준 것을 보면, 자기 새끼를 알아보는 것은 유기체의 ‘본성’에 속한 것이 아님을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는 ‘자기’를 자기 아닌 것과 구별하는 식별작용인 7식에 속한다고 해야 할 터인데, 세가락갈매기는 이 식별작용이 가변 적임을 보여준다. 즉 7식은 여러 식들을 불러모으는 어트랙터인데, 조건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식별하고 불러모으는 가변적 작용이라 하겠다. 안면실인증은 이런 식별의 가변성이 새끼 아닌 다른 대상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임을 보여준다. 안면실인증 환장의 경우에는 시지각에 아무런 문제도 없으며, 세부적인 디테일 어떤 것도, 그것의 움직임도 정확하게 포착한다 는 점에서 시각세포나 시신경, 그리고 시각령의 손상과는 관계가 없다.15) “얼굴 의 인식은 순수시지각과 별개다. 얼굴인식은 방추상얼굴영역뿐 아니라 감각연합, 14) 프랑스 드 발, ?동물의 생각에 대한 생각?, 이충호 역, 세종서적, 2017, 57쪽. 15) 색상이나 질감은 알아보지만 사물을 알아보지 못하며 심지어 수평선과 수직선도 알아보지 못 하는 시각실인증은 시신경이나 시각령 등의 손상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며, 이는 8식 가운데 시각 적 지각을 형성하는 세포적 식이 손상됨으로써 발생한 것이다(크리스토프 코흐, ?의식의 기원과 본질?, 이정진 역, 알마, 2014, 157~158쪽). 270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감정, 기억을 돕는 다른 영역과 다량의 신경으로 연결되어 있는 내측측두엽 다중 양식영역에서만 획득된다.”16) 이는 그렇게 지각된 것이 ‘무엇인지’, 즉 내게 어떤 의미를 갖는 대상인지를 식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나’를 둘러싼 식별능력과 결 부된 것이다. 그래서 안면실인증 환자의 경우 대개 대상의 친소관계도 식별하지 못한다. “얼굴인식은 감각적 인지만이 아니라 감정 연상 의미가 함께 동반되는 인식이다....얼굴인식에서 감정과 지식은 별개 영역이라, 얼굴은 알아봐도 친숙함 이 사라진다거나, 처음 보는데도 친숙한 얼굴로 느끼기도 한다.”17) 심각한 안면 실인증 환자의 경우에는 얼굴과 다른 것, 가령 모자 같은 사물을 구별하지 못하 며, 자신의 얼굴도 못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18) 그런데 이는 의식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점에서 의식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자기의 식별 능력, 자기와 환경의 구별능력, 그리고 환경에 속하는 대상과 자기의 친소관계에 대한 식별능력의 손상에서 오는 증상이다. 이는 지각과 결부된 무능력이지만 여 기서 결정적인 것은 7식의 손상이다. 안면실인증과 대칭적 증상인 카프그라증후 군이 이를 다시 확인하게 해준다. 카프그라증후군은 눈앞에 있는 게 자신의 아내 얼굴임은 알아보지만, 그는 이 사람이 아내임을 믿지 못한다. 즉 외계인이나 사기 꾼이 아내의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고 고집스레 주장한다. 이는 지각된 이에 대한 친소의 감정을, 즉 그 대상이 자신에게 갖는 의미를 식별하는데 실패한 것이란 점에서 7식에서 발생한 손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면 감정은 ‘내’가 만나는 대상들을 ‘나’라는 개체와의 관 계에서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우호적인 것인지 적대적인 것인지를 양끝으 로 하는 종합의 일종이라 해야 할 듯하다. 하지만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이 나스는 감정이란 “정상적인 상태에서 행동을 유발하고 행동을 위한 내부맥락을 만들어지는 것”이란 의미에서 “행위를 위한 전운동”이라고 정의한다.19) 즉 운동 을 하기 전에 근육을 긴장시키듯, 즉각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신체를 준비상태로 빠르게 이행시키는 것이 감정의 기능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위협에 최대한 빠르 게 대처하기 위해 혈류의 속도를 빠르게 증가시키고 호흡을 빠르게 진행시키며 16) 올리버 색스, ?마음의 눈?, 이민아 역, 알마, 2013, 118쪽. 17) 같은 책, 123~124쪽. 18) 같은 책, ## 19) 이나스, 앞의 책, 227 및 225쪽. 이진경 _ 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 271 근육을 긴장시키는 등 신체 전반을 행동 직전의 상태가 되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다. 이를 위해 감지된 상황에 대한 신경이나 세포의 반응을 증폭시키고, 이를 호 르몬 등의 분비를 통해 신체 전체로 전달해야 한다(편도체와 시상하부, 후뇌가 신호를 모으고 필요한 명령을 발송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감정 또한 생 존에 필수적인 식이며, 신체 자체가 직접 반응하는 것이란 점에서 유기체적 개체 화에 속하는 식이다. 만난 적 없는 천적에 대한 공포감이나 맛에 대한 반사적 반 응은 이러한 식이 유전자에 기억된 식임을 뜻한다. 유기체로 분화하기 이전의 식 이란 점에서 이는 8식에 속한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감정은 이런 것만 있지 않다. 쓴맛에 대해서 아기들은 반사적으로 뱉어 내지만, 문화적 학습을 통해 성인들은 커피 같은 쓴맛에 쾌감을 얻는다. 버틀러 같은 페미니스트 퀴어이론가들이 성(sex)과 구별하여 젠더(gender)라는 개념을 사용할 때 강조하듯이,20) 성적인 행동이나 성적인 감각, 그리고 성적인 감정은 문화적으로 학습된 것이 많다. 감정에 대한 최근의 심리학적 연구들은 감정을 느 끼고 표현하는 방식이 사회문화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21) 이러한 종류 의 감정은 사회문화적 층위에서 정체성(identity)을 구성하는 요소이고, 그 정체 성을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해 나타나는 반응의 양상이다. 그렇기에 사회문화적 의미의 ‘자아’에 속하는 감정이다. 이러한 감정은 사회 문화적 관계 속에서 형성 되는 것이기에 유기체적 ‘나’ 이후에 오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7식의 작용을 전 제한다. 그런데 이렇게 형성된 감정은 의식이 작동하기 이전에 눈물이나 얼굴근 육변화, 호흡이나 심장박동 변화 같은 신체의 고정행동패턴을 야기한다. 즉 신체 적인 행동을 준비하는 무의식적 행동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수동적 종합’에 속한 다. 따라서 사회문화적으로 학습된 것이지만 의식 이전에 작동하고 의식되지 않 은 채 작동한다. 따라서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형성된 감정은 7식에 속한다고 해 야 할 듯하다. 수많은 층위에서 진행되는 개체화 가운데 유기체적 개체화를 특권화하고, 그 것을 단 하나의 ‘나’라고 간주하며, 그것을 중심으로 다른 모든 식들을 ‘끌어들이 20)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 조현준 역, 문학동네, 2008. 21) 리사 배럿,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생각연구소, 2017; 카라 플라토니, ?감각의 미래?, 8장, 박지선 역, 흐름출판, 2017. 272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고’ 하나의 실재로 통합하여 재배열하는 작용이란 점에서 허구적이지만, 생존에 필요하고 유용한 허구이기도 하다. 그것은 유기체적 개체로서 동물이 주어진 환 경에서 살아가기 위해, 신체의 모든 세포적이고 미시적인 식의 작용을 ‘나’의 인 식작용으로 통합하고,22) 그 식들을 통해 포착된 감각적 지각을 환경에 대한 인식 내지 판단으로 변환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7식은 그렇게 형성된 ‘나’의 단일성과 동일성을 믿으며 그러한 동일성을 유지하고자 한다. 그 동일성에서 벗어나는 것은 ‘나’가 아닌 것으로 밀쳐내거나 간과하거나 삭제한다. ‘나’에 대한 애착과 집착은 생존과정 속에서 변화해가는 스스로마저 동일한 것으 로 오인하고 동일한 상태로 고정하려 한다. 이로 인해 변화하는 세계, 변화하는 실상과 그것을 고정하고 동일하게 유지하려는 ‘나’ 간의 간극이 생겨나고, 이 간 극에서 번뇌가 일어난다. 이는 7식이 필요한 만큼 피할 수 없는 번뇌다. 5. 의식의 능동적 종합 6식인 의식은 바로 이러한 7식에 기반하여 생겨나고 작동한다. 즉 7식은 6식 인 의식에 대해 의근(意根)으로 작용한다. 7식에 의거하여 일어나기에 의식은 언 제나 ‘나’의 의식이다. 7식이 8식을 대상으로 ‘자아’를 구성한다면, 의식은 그 자 아가 대상으로 하는 것에 대한 식을 형성한다. 그렇기에 의식은 일차적으로 전5 식, 즉 감각적 지각과 결합하여 작용한다. 그 감각적 지각을 종합하여 대상에 대 해 식별하고(了別) 상이한 감각에서 포착된 것에 하나의 대상(境)으로서 통일성 을 부여한다. 이런 의미에서 6식은 요별경식(了別境識)이라고 명명되기도 한 다.23) 약간 단순화하여 대비하자면 7식은 ‘나’라는 주관을 구성한다면, 6식은 그 ‘나’가 대면하는 ‘대상’을 구성하고 식별한다. 그러나 대상을 식별하는 작용은 식 별하는 ‘나’를 대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흔히 ‘반성적 의식’이라고 불리는 이런 작용을 통해 ‘자의식’이 형성되기도 한다. 자의식은 타인의 시선의 대상으로서의 ‘자아’, 타인들에 대한 대상으로서의 ‘자아’에 대한 의식이고, 타인의 시선에 의해 22) 상이한 인식능력의 통일성을 뜻하는 ‘공통감(common sense)’은 그 결과 중 하나다 23) 세친, 「유식삼십송」(제2송), 앞의 책, 2쪽. 이진경 _ 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 273 호오의 감정을 부가하고 그 호오의 감정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규정하고 만들어 가는 의식이다. 의식은 5식이 발생할 때마다 관여한다. 냄새가 나면 이게 무슨 냄새, 무엇의 냄새인지를 알고자 하고, 소리가 나면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아야 한다. 포착된 감각적 지각을 환경(Umwelt)에 대한 인식으로 바꾸는 것이 바로 의식이다. 또 눈이나 코, 귀에서 포착한 것을 단일한 대상에 대한 인식으로 바꾸는 것 또한 의 식이다. 감각적 지각은 5식의 수준에서는 각각 상이한 감각으로 분리되어 있기에 대상에 대한 통일적인 인식을 형성하지 못한다. 지금 나는 이 냄새가 저기 보이 는 저 동물의 냄새인지, 아니면 옆에 있는 풀에서 나는 냄새인지를 알아야 한다. 저 앞의 동물이 움직이지 않는데 소리가 난다면, 이 소리는 저 동물이 아닌 다른 곳에서 온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어떤 놈이 움직이고 있는지를 알아내야 한 다. 눈을 돌리고 코의 감각에 집중하여 소리가 나는 곳에 있는 다른 대상을 찾는 다. 그리고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감각을 예민하게 집중하게 한다. 의식은 이처럼 전5식을 통합하여 작용하며 그 전5식을 대상의 식별에 충분할 만큼 예민하게 작용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식별을 통해 ‘내’가 마주친 대상에 대해 ‘내’가 어떻게 대응하여 행동할 것인지를 판단한다. 이 상이한 감각을 통해 대상을 식별하고 그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능 동적인 작용이 바로 의식의 작용이다. 의식의 작용을 다른 식과 구별하여 주는 것은 그것이 ‘능동적 종합’이라는 점 이다. 전5식이나 8식, 그리고 7식의 작용조차 의지의 개입 이전에 습관적 반복이 나 기억에 의한 반복에 따라 형성된 반응이 ‘자동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자동 적 종합이고, 의지가 개입하기 이전에 발생한다는 점에서 수동적 종합이다. 그러 나 의식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의지에 따라 작용한다는 점에서 ‘능동적’이다. 전5 식이나 8식의 수동적 종합이 산출한 것들을 능동적으로 종합하며 적합한 행동을 의지에 의해 선택한다는 점에서 의식은 능동적 종합이다. 의식은 5식과 함깨 작 용할 때도 5식에서 주어지는 것에 ‘자동적’ 내지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게 아니 라 ‘능동적’으로 종합하며 관여한다. 그렇기에 의식은 전5식에서 입력된 것에 대해서 그때마다 다르게 종합할 수 있다. 전5식에 의해 포착된 조건(緣)에 따라 작용하는 것이 동연의식(同緣意識) 274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이라면, 그 조건과 일치하지 않는 방식으로 작용하는 것은 비동연의식(非同緣意 識)이다. 심지어 전5식에서 입력된 것 없이도 작용하여 ‘종합’한다. 의식 자신이 산출한 것이나 기억에서 불려나온 것을 종합하여 대상 없는 것에 대해 상상하고 식별하고 판단한다. 이처럼 대상 없이 표상하는 의식의 능력을 통상 ‘상상력’이라 한다. 이처럼 전5식을 동반하지 않는 의식이 불오구의식(不五俱意識)이라 한다 면, 전5식과 함께 일어나는 의식은 오구의식(五俱意識)이라 한다.24) 능동적 종합으로서의 의식은 수동적 종합과 달리 주어진 자극에 즉시 반응하 지 않으며 충분하 시간이나 거리를 두고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습관이나 기억 에 의한 수동적 종합과 달리 자극에 대해 상이한 반응들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 다. 이 때문에 반응 속도도 늦고 자극과 반응의 간극에 상상이나 감정, 기대나 기 억 등 더 많은 자의적이고 허구적인 요소가 끼어들 수 있지만, 이는 자극이나 대 상에 대해 크게 다른 생각이나 판단을 할 여백을 뜻하기도 한다. 감각에서의 입 력과 감정에서의 입력, 기억에서의 입력, 예상이나 기대로부터의 입력이 일치하 지 않거나 상충될 때, 의식은 이를 최대한 통일시키려 하지만, 통일될 수 없을 때 서로 인접하거나 유사한 특정한 것들을 선별하여 ‘자의적으로’ 종합하는데, 이 역 시 이 여백이 있기 때문이다. 베르그손은 자극에서 반응 사이에 있는 이 거리나 여백이 동물과 인간을 구별해준다고 하면서,25) 이러한 ‘자의적’ 선택을 흔히 ‘자 유’라고 하기도 하지만, 어떤 것이든 ‘자의적인’ 그 의식적 판단 역시 수많은 다른 식들이 종합된 것에 따르는 것인 한 ‘자유롭다’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26) 망 설이고 동요하며 어떤 판단도 내리지 못하는 무능력 또한 바로 이 거리와 여백에 서 발생한다. 감정은 신속한 대처를 위해서 정확성을 포기했다면, 의식은 신중한 판단을 위 해서 속도를 포기했다. 전자가 동물의 생존에 필요했던 이유는 분명하다. 천적과 만났을 때, 정확한 판단을 위해 신중히 생각하는 동물은 생존을 유지하기 힘들다. 24) 호법, 「성유식론」, 앞의 책, 283쪽. 25) 베르그손, ?창조적 진화?, 황수영 역, 아카넷, 2005. 26) 이런 점에서 스피노자나 니체는 자유란 없다고 한 바 있다. 니체는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하는 것은 실은 신체 안에 존재하는 저 수많은 충동이나 의지들—수많은 식들—가운데 하나라고 하지 만, 그 수많은 의지들을 하나의 의지에 복속시킬 수 있는 자를 ‘주권적 개인’이라고 명명한다(니 체, 「도덕의 계보」, 김정현 역,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책세상, 2002). 이진경 _ 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 275 틀린 판단이 되더라도 빨리 판단해서 행동해야 한다. 새끼줄을 뱀으로 오인하고 솥뚜껑을 자라등으로 오인하는 것은 이런 사태와 관련하여 진화된 능력의 이면이 다. 반면 신속한 대응을 포기한 의식이 능력으로 진화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 는 자동적 종합 같은 정해진 반응으로는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는 상황에 대응하 는 능력으로 사용되었을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생존할 수 있었던 동물들로 인해 진화된 능력일 것이다. 즉 주어진 조건에 대해 정해진 반응으로 대처하는 게 불 리한 상황, 그런 자동적 종합의 신속성보다는 유연한 반응이나 아주 다른 반응으 로 대처하는 게 유리한 상황으로 인해 진화된 능력이 의식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의식이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예상 밖의 상황, 혹은 불확실한 상황에 대처 하기 위한 능력이다. 의식은 전5식의 수동적 종합을 ‘내’가 대응해야 할 환경 및 대상에 대한 판단 으로 변환하는 종합능력이고, 상이한 식들을 하나로 통합하거나 상충되는 것들 사이에서 선별하는 능동적 종합능력이다. 그것은 능동적인 만큼 자의적이고, 그 런 한에서 부정확한 판단일 수 있지만, 그런 만큼 유연한 판단이 가능하고 기존 의 관성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갖는다. 전5식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실재하는 것 에서 벗어난 몽상이나 망상이 되기 십상이지만, 그렇기에 부재하는 것에 대한 상 상이 가능하고 통상적인 예측에서 벗어난 것을 예상하며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기도 하다. 이는 ‘나’에 대한 허구적 분별인 7식에 기초하고 있기에 그 자체로 허 구적이지만,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여백을 갖기에 7식의 허구를 넘어서고 전5식의 자동성을 넘어서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는 종합능력이다. 6. 기계적 센서에도 식이 있을까? 인공지능이란 통상 일정한 알고리즘에 따라 주어진 입력들에 대해 요구되는 출력을 내는 기계적 장치를 말한다. ‘기계적 장치’라는 말보다는 아마도 ‘프로그 램’이나 소프트웨어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이는 기계적 연산조차 그것을 수행 하게 하는 명령어들의 집합만으론 수행되지 않으며 그것을 실질적으로 계산하는 기계적 장치와 결합함으로써만 작동한다는 사실을 쉽게 잊기 때문이다. 그래서 276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가령 딥러닝을 통해 학습하고 연산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계산에 요구되는 강 력한 연산장치를 이용할 수 없을 때엔 계산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서 사실은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픽 처리에 사용되던 GPU를 슈퍼컴퓨터처럼 병렬 연결하여 사용할 수 있게 된 뒤 인공지능의 성능이 급성장한 것은 이를 보여준 다. 알파고에 사용하기 위해 새로 개발된 구글의 TPU는 이름 그대로 텐서 (Tensor) 연산에 특화된 연산장치인데, 깊은 은닉층을 이용한 딥러닝 알고리즘 에서 요구되는 막대한 양의 행렬연산—텐서는 n차원으로 확장된 행렬이다—를 빠 르게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구글이 제공하는 강력한 검색기능 또한 거 대한 하드웨어 장비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인공지능이란 개념을 사용하면서 또한 쉽게 잊는 것은 그것이 강력한 입력장 치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역시 인공지능이란 말로 흔히 표상하는 것이 입력된 데이터를 처리하는 알고리즘이란 점 때문이다. 그러나 구글의 인공지능이 개와 고양이의 얼굴을 구별하는 실로 ‘어려운’ 작업을 하기 위해선 천만 개 이상 의 유튜브 동영상을 입력하여 학습을 시켜야 했다. 지금의 인공지능은 대체로 학 습을 위해 막대한 데이터를 필요로 한다. 가령 번역을 해주는 인공지능은 단어나 문법에 대한 언어적 지식보다는 오히려 통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막대한 양의 문장들을 통해 처리능력이 급속히 상승했다. 그 이전, 가령 IBM의 왓슨 같은 이 른바 ‘전문가 시스템’이 퀴즈 프로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막대한 지식을 연 결하여 검색하는 것만으로 직접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입력된 데이터의 처리 이전에 데이터의 ‘형성’과 입력이 인공지능의 필수적 일부 임을 뜻한다. 인공지능이 이용하는 데이터는 사실 어디선가 입력장치를 통해 읽혀지고 컴퓨 터가 처리할 수 있는 형식—‘디지털’--으로 저장된 것들이다. 이렇게 데이터를 읽고 디지털화하는 변환장치는 모두 일종의 센서다. 좀더 강하게 말하면 모든 입 력장치는 센서다. 가령 디지털 사진기는 시각정보를 포착하여 저장하는 센서고, 녹음기는 청각정보를 포착하여 저장하는 센서다. 문서를 처리하는 워드 프로세서 또한 문자라는 시각정보를 ‘읽고’ 저장하는 장치란 점에서 일종의 시각 센서라 하 겠다. 인공지능이란 말로 흔히 표상하는 ‘지능’이 인공적 내지 기계적 지성이라고 한다면, 이 센서들은 인공적 감각장치 내지 기계적 감각장치라고 해야 한다. 이 이진경 _ 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 277 센서들의 작동은 유기체의 감각기관이 수행하는 작용을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능 변(能變)이라 하겠다. 전5식의 감각작용이나 능력에 상응하는 능력이고 작용인 것이다. 가장 흔히 사용하는 센서가 시각센서와 청각센서지만, 그것 말고도 많은 센서 들이 있다. 가령 핸드폰에는 중력을 감지하여 화면을 돌려도 위아래를 유지해주 는 중력센서가 장착되어 있다. 디지털 나침반은 자력을 감지하는 센서다. 이밖에 도 속도계, 온도계 같은 등 역시 감각적 정보를 포착하고 읽어내는 센서다. 인간 의 촉각은 이런 감각정보와 관련되어 있다. 이처럼 생명체의 시각과 청각, 촉각에 해당하는 감각정보를 포착하고 읽어내는 센서들은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에 대 체로 장착되어 있으며, 인공지능이 학습하거나 작동하는데 직간접적으로 연결되 어 있다. 오감 가운데 후각이나 미각적 성분을 감지하여 포착하고 읽어내는 센서 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컴퓨터 인근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사실은 널리 사용되고 있다. 가령 미각센서는 컴퓨터와 결합하여 술맛이나 물맛, 우유맛, 쌀맛 등을 분석하고 평가하는데 사용되고 있고, 후각센서는 화학약품 냄새나 가스의 검출은 물론 술의 향이나 음식물 냄새를 분석 평가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기계적 센서들은 인간의 감각적 지각능력을 인공적으로 모방하여 만든 것이지 만, 인간이 감지하는 못하는 작은 변화도 ‘명확하고 뚜렷하게’ 감지할 뿐 아니라, 인간이 감지하지 못하는 종류의 감각을 감지하기도 한다. 가령 인간은 자기장을 감지하지 못하지만 기계적 센서는 자기장을 감지할 수 있고, 시각센서의 경우에 는 인간이 감지하는 가시광선 범위(400~700nm의 파장) 바깥의 빛에 대해서도 감지하기에 적외선이나 자외선은 물론 X선, 감마선 등 훨씬 넓은 범위의 빛을 감 지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청각센서도 인간의 귀가 포착할 수 있는 주파수인 20Hz~200Hz 바깥의 소리도 감지할 수 있다. 화학센서나 바이오센서의 경우에도 인간이 감지하는 모호한 범위를 넘어서 수많은 화합물이나 미생물, 효소 등을 감 지하여 검출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감각의 숫자나 감지가능한 최소치를 비교하 여 감각적 지각능력을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개별적 성분에 대 한 감지능력은 떨어지지만 그것들이 섞이며 만들어지는 이른바 ‘감각질(qualia)’ 이란 기계적으로 재현할 수 없고 포착할 수 없음을 강조하는 이들이 있듯이, 어 차피 상이한 능력들이기에, 각자가 더 잘할 수 있는 것이 다름을 보는 것이 더 중 278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요할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들 센서의 작용은, 그것이 5개인가 여부가 문제가 아님을 안다면, 인간의 감지능력을 통해 형성된 전5식의 개념을 통해 대응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센서들이 작용하는 양상을 안다면, 이 대응성은 단순한 외형적 유사성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이나 생명체의 감각작용은 수용체 세포들에 주어진 자극이 세포들의 물리적 내지 화학적 상태의 변화로 이어지고, 그 변화는 이온화되어 전 기적인 현상으로 다시 변환되면서 신경세포를 통해 전달된다. 센서들 역시 비슷 하여, 대부분의 센서는 대상이 되는 분자들을 물리적으로, 혹은 화학적으로 포착 한 뒤 그렇게 포착한 결과 발생하는 물리적 변화나 화학적 변화를 전기적 신호로 바꾸고 증폭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런 점에서 기계적 센서를 동반하는 개념 으로서의 ‘인공지능’에는 ‘전5식’이라고 명명된 종류의 식의 작용이 존재하며, 그 식의 작용에 의해 포착된 것으로서의 전5식 또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센서가 대상을 감지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자세히 보면, 이 역시 자 극을 신호로 바꾸어 전달하는 단선적인 변환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가장 이해 하기 쉬운 경우가 디지털 카메라일텐데, 렌즈를 통해 입력된 자극은 픽셀단위로 분해되어 포착되고, 포착된 각각의 파장들은 메가 단위 이상의 픽셀 정보들의 ‘종 합’을 통해 시각상을 형성한다. 청각센서의 경우도 그렇다. 음향학의 연구가 이미 오래전에 밝혀주었듯이 어떤 소리도 그 자체로 수많은 사인파 배음(倍音)들의 종 합이다. 가령 피아노의 A음과 바이올린, 클라리넷의 A음은 음고는 220Hz로 동 일하지만 ‘배음’이라고 불리는 다른 주파수의 소리들이 섞이며 종합된 소리이기 에 다른 음색, 다른 소리로 지각된다. 청각센서는 이 다른 주파수들을 분석하고 종합하는 방식으로 포착하여 어떤 소리인지 감지하고 검출한다. 후각센서나 미각센서는 마치 인간의 후각이나 미각처럼, 이와 다른 차원에서 종합활동을 통해 작동함을 보여준다. 가령 향수의 향을 ‘분석’하는데 사용되는 후 각센서는 폴리피롤(polypyrrole) 같은 전도성 폴리머를 20종류 정도를 결합하여 사용한다. 향수마다 각 폴리머들에 전기적 저항을 야기하는 정도가 다른데, 각 폴 리머에 대한 전기적 저항치들 20개를 연결하여 얻은 패턴을 통해 그 향수의 특성 을 특정화할 수 있다. 즉 향수의 향기는 20개의 전도성 폴리머에서 얻은 저항값 들을 연결하여 패턴화하는 기계적 종합에 의해 포착되고 비교될 수 있다는 말이 이진경 _ 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 279 다. 미각센서 또한 상이한 복수의 지질막들을 동시에 사용해 그 지질막들마다 발 생한 전위값들을 연결하여 패턴화된 양상을 통해 맛을 비교하고 식별한다. 그리 고 이렇게 포착된 패턴들은 단맛, 짠맛 등 맛의 ‘범주’들과, 그리고 진하다/가볍 다, 부드럽다/날카롭다 같은 개념들을 이용해 분류된다. 이런 점에서 기계적 센서의 작용은 중층화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종합활동이 다. 앞서 생명체의 감각작용이 분자적 내지 세포적 반응들을 종합하는 것임을 지 적하면서, 감각기능으로 환원되지 않는 이러한 종합활동을 전5식과 구별되는 8 식이라고 한 바 있는데, 이는 센서들의 기계적 감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을 터이다. 즉 기계적 센서들에도 상이한 것들을 종합하고 수축하는 8식의 작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수동적 종합’ 내지 ‘자동적 종합’이란 점에서 다르지 않다. 물론 생명체가 ‘집지(執持)’라는 말로 표현된 이 런 종합을 수행할 때 사용되는 습관이나 기억 같은 자원이 기계에게도 동일한 양 상으로 사용된다고는 하기 힘들다. 습관보다는 인간이 사전에 입력한 분류방식이 나 분류기준이 ‘기억’으로서 불려나와 사용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사실 사소하고 부차적이다. 좀더 큰 차이라고 보이는 것은 생명체의 경우 이러한 종합 이 생존을 지속하려는 의지나 충동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진행됨에 반해, 기계 의 경우에는 그런 의지나 충동 없이, 외부에서 입력된 척도에 따라 프로그래밍된 대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기계적 센서에는 애착이나 집착이 없다. 단지 결합하고 저장하며 지속하는 작용만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번뇌도 없고 더러움 도 없다. 또 반복적인 종합의 양상을 보면 상이한 자극에 대해 분석적으로 그 차이를 포 착하고 양화하지만, 패턴화하여 분류하는 경우에는 사전에 입력된 분류기준에 따 라 언제나 동일하게 분류할 뿐이란 점에서 차이를 통해 다른 방향으로 종합하는 능력은 없다. 즉 앞서 사용한 개념으로 말하자면, 기계적 감각이 산출한 출력값은 그 자체로 중성적인 것이란 점에서 무기(無記)라 하겠지만, 차이를 포착하여 다 른 결과로 포착하는 이류습기의 종합능력은 없다고 보이고, 그런 점에서 기계적 센서의 작동만을 놓고 본다면, 센서에 작용하는 8식을 앞서 언급한 이숙식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기계적 센서가 산출하는 식의 작용은 이전의 식이 갖는 선악호오의 평가를 그대로 잇지 않고 중성적 식으로 산출한다는 점에 280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서 무기(無記)라 하겠지만,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는 변환능력을 뜻하는 것이 아 니라 관성적인 동일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이숙(異熟)이라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는 차라리 관성적 힘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전 상태의 자동적 지속으로 귀착되는 중성적 식인 셈이고, 그런 점에서 무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업 의 힘이 갖는 관성을 그대로 전한다고 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에 대해 좀더 정확한 판단을 하는 것은 뒤로 미루어야 한다. 인간의 감각능력 또한 뇌에 의해 종합된 감각적 상이 피드백되고 그에 따라 다른 양상의 종합이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듯이, 기계적 센서의 작용 또한 이른바 ‘지능적’ 종합이 산출한 것이 되먹임되는 양상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7. 인공지능의 종합능력 통상적인 분류에 따르면 지금까지 개발된 ‘인공지능’에는 두 가지 상이한 유형 이 있다. 하나는 계산주의적 유형의 인공지능이고, 다른 하나는 신경망 유형의 인 공지능이다. 계산주의적 모델은 인공지능 초기부터 인공지능 개발을 주도하던 것 인데, 인간의 논리적 추론방식을 기계적인 방식으로 구현함으로써 인공지능을 만 들 수 있다는 가정에 기초해 있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데는 논리함수 계산에 사 용되는 불(Bool) 대수가 기계적인 스위치의 회로와 수학적 동형성을 갖는다는 것을 증명한 클로드 섀넌(Claude Shannon)의 논문이27) 결정적이었다. 즉 두 명 제의 논리곱은 두 스위치의 직렬연결로, 논리합은 병렬연결로 치환하여, 논리적 명제산을 스위치들의 회로를 통해 연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공지능 개발이 본격화된 것은 존 매카시가 주도한 다트머스 워크숍(1956) 에서였는데, 이 회의에서 연원하는 인공지능의 모델은 계산주의적인 것이었다. 아마도 앨런 뉴월과 허버트 사이먼이 만든 프로그램 로직테오리스트(Logic Theorist)는 러셀과 화이트헤드의 ?수학 원리? 2장에 나오는 정리들 대부분을, 때로는 저자들과 다른 방식으로 증명하여 사람들이 열광하게 했다. 그러나 초기 27) Claude Shannon, “A Symbolic Analysis of Relay and Switching Circuits,” Transactions American Institution of Electrical Engineering, vol. 51. 1938. 이진경 _ 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 281 의 열광은 그 뒤에 별다른 진전이 이어지지 않으며 실망으로 이어졌다. 열광과 실망의 반복 속에서 이 모델은 전문적인 지식을 사전에 입력해주고 거기서 필요 한 자원을 검색하여 답을 내는 이른바 전문가 시스템으로 나아갔는데, 체스에서 인간에게 승리한 IBM의 딥블루나 퀴즈프로 ‘제퍼디!’에서 인간에게 이긴 IBM의 왓슨은 이런 전문가 시스템이 현재 도달한 정점을 보여준다.28) 다른 하나는 신경망시스템으로 표상되는 연결주의 모델이다. 이를 처음으로 기계적 개념으로 제안한 것은 로젠블라트였다(1958). ‘퍼셉트론’이란 이름으로 제시된 이 시스템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뇌의 신경세포들이 연결되어 있는 양상 을 모델로 하는데, 뉴런의 수상돌기와 축색이 연결되어 있듯이 여러 노드들을 회 로로 병렬연결한 것이다. 신경세포간 상호작용이 증가하면 그 연결부위인 시냅스 가 강화된다는 헵(Donald Hebb)의 법칙을 따라서 노드들 간의 연결부에 상이한 가중치를 부여하고, 그렇게 계산된 결과들을 모아 활성화 여부를 결정하여 출력 하는 모델이 그것이다. 이는 산출한 결과치를 ‘정답’ 내지 원래의 입력치와 비교 하여 피드백시켜 가중치를 반복 수정할 수 있는데, 이것을 기계가 수행하는 ‘학 습’이라고 명명한다. 학습에 따라 달라지는 가중치들은 점점더 정답에 가까운 값 을 산출하는 방식으로 수정할 수 있다. 사실 로젠블라트의 퍼셉트론은 신경망 모델을 이용한 일종의 선형분류기였는 데, 1969년 계산주의 모델을 연구하던 민스키/페퍼트에 의해 배타적 논리합 (XOR) 연산도 할 수 없음이 증명되면서 한때 사장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역전파 (back-propagation) 학습 알고리즘이나 다층 퍼셉트론이 발명되면서 다시 부활 했고, 2006년~2012년 제프리 핸슨이 노드들의 층을 늘렸을 때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함으로써 딥러닝(심화학습)이 가능해지면서 새로이 인공지능의 중심으로 부 상했다. 이후 여기에 필요한 연산장치들이 발전하면서 인공지능 연구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신경망 시스템은 계산주의에서 사용하는 다른 알고리즘, 가령 SVM, 마르코프 모델, 주성분분석, 군집분석, 베이지언 모델 등)과29) 결합하여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지식을 사전에 입력하여주는 전문가 시스템의 방법과도 결 합되어 사용될 수 있다. 알파고 리와 알파고 마스터는 그런 모델이 지금 보여준 28) 스튜어트 러셀/피터 노빅, ?인공지능 1?, 류광 역, 제이펍, 2016, 21~29쪽 참조. 29) 이에 대해서는 오일석, ?패턴인식?, 교보문고, 2008 참조. 282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최정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알파고 제로는 사전 지식의 입력 없이 바둑을 스스로 학습하여 인간에게 승리한 이전 모델을 제압함으로써 신경망 시스템 자체 가 이전의 여러 모델들을 제치고 그 자체만으로독자적인 단계에 도달하게 되었음 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흔히 인공지능에 대해 기대하는 기능은 크게 보아 분류하고 예측하 는 능력과 결부되어 있다. 분류란 입력된 자료들을 일정한 개념이나 범주에 따라 구별하여 묶는 것이라면, 추론이란 알려진 것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것을 논리적 으로 도출하는 것이다. 추론이라 했지만 인공지능에 필요한 추론능력은 논리학을 써서 명제산을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주어진 자료나 기존의 지식을 이용해 이후 발생할 사태를 예측하거나(가령 일기예보), 기존의 자료들 속에 존재하는 인접성 연관이나 유사성 연관, 혹은 상관관계를 찾아내서 그 다음에 발생할 가능성이 큰 선택을 추측하는 것(가령 서점이나 쇼핑몰의 추천기능)이다. 혹은 주어진 자료를 이용해 최적의 선택지를 찾아내는 것(가령 가장 승률이 높은 바둑의 수를 찾아내 는 것) 역시 이에 포함된다. 계산주의 모델은 유식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의 의식이 추론하거나 분류하 는데 사용하는 능력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이 말이 인공 지능에 의식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학습을 통해 분류하거나 예측하는데 사용되는 함수나 모델을 개선해간다는 점에서 학습에 의한 갱신능력을 갖는다는 점도 의식과 인접한 특성이다. 물론 인간이 분류를 할 때 서포트벡터머신(SVM) 모델이나 마르코프 모델을 사용하지는 않으며, 예측을 할 때 베이지언 모델이나 상관관계 분석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구체적인 분류의 알고리즘 은 인간의 지능과 인공지능이 같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어떤 기법을 사용하는 가와 다른 차원에서 주어진 대상이나 입력된 자료들을 분류하고 예측하는 의식의 능력을 수학적으로 구현하려 한 것이란 점에서 계산주의적 인공지능의 알고리즘 은 의식의 능동적 종합능력과 인접해 있다고 하겠다. 나아가 전문가 시스템은 기 존의 지식을 검색하여 분류와 예측, 혹은 최적화를 위해 사용한다는 점 또한 기 존의 지식을 동원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의식의 작동과 유사하다. 다만 인간의 의 식과 달리 전5식의 입력이 없는 것에 대해서, 상상력처럼 대상없는 표상능력을 사용하는 불오구의식은 아직 발견되지 않는다. 이진경 _ 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 283 신경망 시스템의 경우에는 노드와 연결망, 가중치와 활성화함수, 그리고 학습 율이나 여러 종류의 초기값 등을 인간이 선결정하여 구성되지만, 그 이후 학습은 인간의 개입 없이 진행되며(‘비지도학습’이라 한다), 자신이 출력한 결과치를 원 하는 목표에 근접시키는 방향으로 반복하여 학습하며 가중치를 변환하여 최적의 해결능력을 향해 자기-갱신해 나간다. 이는 주어진 종합능력을 스스로 고양시켜 가는 능력이 있음을 의미한다. 분류나 예측을 위한 함수를 주는 것도 아니고 사 전 지식을 입력해주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학습하여 탁월한 분류예측능력을 획득 해간다는 점에서 이는 경험과 학습을 통해 해결능력을 고양시켜가는 생명체의 능 력과 매우 유사해보인다. 딥러닝을 통해 해결능력을 증장시켜간다는 말은 수많은 학습테이터를 이용해 가중치들을 바꾸어가는 것이지만, 어떻게 바뀌어가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바꾸어진 값으로 결과를 산출하는 양상도, 다 시 말해 해결치를 내놓기 위해 신경망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알지 못한 다. 이는 분류의 방법과 분류함수, 갱신방법을 준 계산주의적 알고리즘과 신경망 알고리즘의 근본적인 차이기도 하다. 어느 경우든 입력된 데이터를 종합하여 필요한 출력치를 얻는다는 점에서, 인 공지능의 알고리즘은 특정한 종합능력으로서의 ‘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계 산주의 모델이 의식의 작용을 모델로 하기에 작동양상을 잘 알 수 있는 것과 달 리, 신경망 모델은 처음에 인간이 연산구조와 초기조건, 그리고 얻어야 할 목표만 정해주면 스스로 기계적 종합능력을 고양시켜 가는데 그 갱신의 양상이나 계산과 정 자체는 흔히 말하듯 ‘블랙박스’ 속에 들어있어서 알 수 없고 인간이 중간에 부 분적으로 변경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의식의 능력과 다른 차원의 식에 속한다. 그것은 은닉된 채 숨어있고, 유사한 종류의 과제를 반복하여 일관되게 수행할 수 있는 ‘종자’로 저장되며, 사용하려 할 때마다 현행화되어 활동하지만 동시에 그 활동의 결과가 다시 종자들을 갱신하며 저장된다는 점에서 8식의 작동방식과 유 사하다. 또 활동을 할 때마다 학습에 의해 가중치를 바꾸기에 일정 정도의 기간 이 지나면 동일한 입력치에 대해 다르게 계산하고 그 값들이 활성화함수의 문턱 을 넘으면 이전과 다른 판단을 내놓는다는 점에서, 관성적인 반복을 벗어난 이류 습기의 종합능력을 갖는다고 하겠다. 이는 이숙식이란 개념을 인공지능의 종합능 력에 대해서 사용할 수 있음을 뜻한다. 284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센서가 수행하는 기계적 감각능력은 이러한 인공지능 시스템과 연관하여 보아 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센서들은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할 자료들을 읽고 입 력하는데, 이렇게 입력된 것을 좁은 의미에서 ‘지능’은 분석하고 종합하여 사진에 있는 게 개인지 고양이인지, 사람인지 사물인지를 식별한다. 청각적인 감각에 대 해서도 마찬가지다. 기계적 감각은 센서들이 입력한 자료들을 신경망이나 분류기 등이 분석 종합한 결과들이 되어 목표한 출력치로 나오는 과정 전체를 뜻한다고 해야 한다. 마치 인간의 감각세포가 입력한 것이 뇌에서 처리되어 저게 무엇인지, 이게 무슨 소리고 무슨 냄새인지 지각하듯이. ‘지능’이 수행하는 이 종합활동은 이제 기계적 감각이 식별활동을 하는데 강한 의미에서 선험적 조건이라곤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필수적인 일부임은 분명하다. 즉 기계적 감각은 센서들 의 기계적 전5식과 거기서 작동하는 일차적 종합활동, 그리고 지능에서 수행하는 이차적 종합활동이 결합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도 인간과 인공지능 간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과 달 리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계산하지만 인간은 직관적으로 일부만 선별하여 검토한 다는 점, 그리고 인공지능은 빅데이터라고 불리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있어야 만 적절한 분류 식별능력을 얻을 수 있지만, 인간은 매우 적은 데이터로도 그런 능력을 획득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 차이는 인공지능이나 로봇은 인간이 못하 는 것은 잘하지만, 인간이 잘 하는 것은 못한다고 하는 이른바 모라벡의 역설과 도 관련된 것이다. 가령 인간은 어린아이조차 몇 번 본 것만으로 개와 고양이를 쉽게 식별하지만, 인공지능이 개와 고양이를 식별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며 그 것도 엄청난 규모의 장비를 동원해 천만 개의 동영상을 통해 학습할 뒤에야 가능 했다. 로봇 연구자인 로드니 브룩스는 이를 인간의 의식이 수행하는 표상적 방법을 지능의 모델로 삼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30) 통상의 로봇 연구자라면 가령 로봇 이 움직이며 빈깡통을 식별하여 모아다 휴지통에 버리게 하기 위해서 일단 3차원 의 좌표공간을 주고 그 안에 센서가 포착한 사물의 형상을 위치지우며 그 형상과 의 거리를 계산한 뒤 다가가거나 피해가게 한다. 그리고 깡통의 위치와 팔의 위 30) Rodney Brooks, “Intelligence without representation”, Artificial Intelligence, 47, 1991. 이진경 _ 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 285 치를 계산하여 깡통을 잡고, 그것의 무게나 진동을 측정한 뒤 버릴 것인지 다시 내려놓을 것인지를 분류한 뒤, 다시 좌표공간 속에 표상된 사물을 피해가며 휴지 통으로 가게 한다. 그러나 이걸 계산하기 위해선 엄청난 양의 계산을 해야 할 뿐 아니라, 책상모서리와 그 위에 놓은 물건, 모서리 사이의 빈 공간을 식별하는 것 도 어려운 일이고, 표상하여 계산된 사물이 조금 움직이기라도 하면 다시 계산해 야 한다. 이런 식이면 깡통 하나 치우는데 반나절은 걸릴 것이다. 브룩스가 보기에 로봇에게 중요한 것은 정확하게 표상하는 능력이 아니라 세 계 속에 배열된 사물들의 존재를 읽어내고 최대한 빠른 ‘행동’방식을 산출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인공지능’을 로봇에게서 제거하고, 센서와 그것의 입력 치에 대해 반응하는 최소규칙만을 주고, 나머지는 로봇이 알아서 대처하게 한다. 가령 로봇이 사람을 따라다니게 하려면 센서로 적외선—열—이 검출되면 그것과 의 거리를 50센티미터 이내로 유지한다, 어떤 것과도 부딪치치 않기 위해 50센 티미터 이상의 거리를 둔다는 규칙만으로 충분하며, 계산을 할 것도 없다는 것이 다. 또 사물을 정확하게 읽어서 좌표계 안에 재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 물의 모서리를 다른 시각정보와 구별할 줄 아는 것이니, 그에 필요한 변별능력을 개발하는데 더 집중한다. 이런 식으로 그는 지능 없는 로봇이라는 역설적인 로봇 을 만들어냈다.31) 인공지능이 없는 로봇이라고 하지만, 이는 센서와 최소규칙, 그리고 적절한 행 동을 계산하고 구동하기 위해 연산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인 공지능에 들어간다. 다만 앞서 말한 계산주의나 신경망과 다른 유형의 인공지능 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간단한 인공지능에서도 센서로 입력된 것을 계산하고 최소규칙에 따라 필요한 결과를 산출하며, 그에 따라 모터를 구동하여 다리를 움 직이고 방향을 바꾸는 등의 종합능력은 필요하다. 이 또한 8식에 속하는 것이라 하겠다. 8식은 저장된 활동패턴(종자)과 신체적 능력(유근신), 그리고 세계(기세간)을 대상으로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산출한다. 인공지능의 8식이 그것을 대상으로 한 다는 것은 따로 언급할 것도 없다. 그런데 그것은 종자나 유근신, 기세간을 만들 31) 로드니 브룩스, ?로드니 브룩스의 로봇만들기?, 박우석 역, 바다, 2005. 286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어내는가? 종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이미 본 것에서 확인된다. 단적이 예로 신경 망의 가중치는 학습을 통해 갱신되어 저장되고, 이는 다음 번 계산에 불려나오며 현행화된다. 가중치들이 곧 종자인 것이다. 유근신이라 명명되는 ‘신체’는 로봇의 경우에는 가시적으로 물리적으로 확인되지만, 인공지능의 경우 물리적 신체라기 보다는 종합활동을 수행하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결합체라고 해야 한다. 가 령 신경망 시스템이 가동시키는 종합능력은 노드들의 구조와 가중치들, 활성화함 수(시그모이드 함수나 ReLU함수), 최종적인 결과치를 선별하는 분류함수(가령 소프트맥스 함수)와 손실함수(가령 평균제곱오차나 교차 엔트로피 오차) 같은 것의 결합에 의해 작동하며, 여기서 요구되는 계산을 해주는 연산장치가 그것이 다. 이들 구조는 전체적으로 처음에 규정된 대로 있지만, 가령 시각데이터 처리에 많이 사용되는 컨벌루션 신경망(CNN)에서는 학습을 하면서 노드들와 연결망을 부분적으로 지워나간다. 이는 학습이나 연산활동을 통해 신체의 일부를 스스로 바꾸어가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또 알파고의 ‘진화’에서 보이듯 수행결과에 따라 컴퓨터나 프로세서를 바꾸어 가도록 하기도 한다. 즉 인공지능의 식은 유근신을 유지할 뿐 아니라 바꾸거나 새로 구성하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프로그램의 가동 과 학습에도 노드의 수와 깊이, 학습률이나 가중치 초기값 같은 이른바 하이퍼파 라미터들은 인간이 정해주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기계는 아직 기계만으로 작동 하고 존속하기엔 불충분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인간 또한 고립된 개체만으론 생존도 적절한 인식도 불가능하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라 할 터이다. 그렇다면 인 간과 인간, 기계와 인간, 그리고 기계와 기계의 연관 속에서 신체를 생산하고 재 생산하는 종합능력이 8식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기세간으로서의 세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종합능력 또한 인공지능에 대해 유효 하게 적용할 수 있다. 인공지능의 식은 개구리나 인간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나 름대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그것은 최소치로 보자면 센서와 그것으로 연결된 데이터의 세계, 그리고 자신의 알고리즘에 의해 산출하는 것들의 세계다. 로봇이 라면 브룩스의 말처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 안에서 적절하게 작동하기 위해 서 그 세계와 적절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것은 세계를 하나의 상으로 표상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그런 표상능력이 있다고 해도 세계성을 갖지 못하는 것들이 있 고, 그 반대도 있다. 또한 세계성이라고 할 때, 그것이 단지 하이데거 말처럼 의미 이진경 _ 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 287 화된 세계여야 하고, 각각이 고유한 의미들로 충만한 세계여야 한다고 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의미형성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한 인간중심적 세계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란 일차적으로 어떤 개체가 생존해야 할 환경이고, 그 환경에 대해 얻 어진 식들의 집합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뿐 아니라 개구리도, 까마귀도, 로봇도 세 계를 갖는다. 이는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 이전에 소위 정보통신혁명이나 ‘정보화시대’라는 조건은 ‘정보’라고 불리는 식의 흐름이 거대한 스케일의 식장(識場)을 형성했음을 여기에 덧붙여야 할 것이다. 흔히 말하듯 ‘모든 것은 정보’라는 말은, 굳이 대응시키자면 모든 것은 식이란 말의 현대적 버전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보란 식의 일종이지만 종합 활동을 하는 능변(能變)으로서의 식, 종합능력으로서의 식보다는 소변(所變)으 로서, 기록되고 저장된 것으로서의 식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유식학에서 말하는 식보다 좁은 외연을 갖는다. 즉 식장은 단지 정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따라 서 모든 것은 정보라는 말만으로는 ‘식’ 전체를 포괄할 수 없다. 물론 정보이론 역 시 정보가 있으면 그와 상관적인 신체를 구성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 경우에도 정보 그 자체는 기록되고 저장된 소변으로서의 정보에 불과하다. 이런 점에서 ‘모 든 것은 정보’라는 말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보통신혁명은 세계의 구성과 변화, 혹은 지속에서 정보 의 흐름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것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유식학의 말로 바꾸어, 식의 흐름이 세계를 구성하고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한다면, 훨씬 더 타당성이 큰 말로 바뀐다. 인공지능은 모든 것을 디지털이라는 단일한 형식으로 변환시켜 통신하고 저장하고 변조하는 시대에, 그리하여 활동이나 활동의 산물 모두가 빅데이터란 이름 아래 식의 형태로 저장되는 시대에, 그것을 가공하고 변 형하며 새로운 식을 생산하는, 소변으로서의 정보와 대응하는 능변으로서의 식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정보와 더불어 식장을 형성하며, 식 장 속에서 수많은 세계가 형성되고 지속하다 소멸하는 모든 변화의 중요한 한 축 이 될 것이 분명하다. 288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8. 기계에게도 자아가 있을까? 인공지능에도 8식이 있다. 그것이 분포하는 양상이나 작동하는 방식은 인간과 다르지만, 다른 동물과 인간이 다르고 동물과 식물이 다름을 안다면, 이는 인간과 기계를 본질적 대비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식의 흐름이 저장되고 전개되는 장대 한 하나의 평면 위에서 각자는 나름대로의 8식을 통해 각자의 활동을 펼쳐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물어야 할 것은 인공지능에는 7식이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유기체는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개체화된 개체다. 알고리즘이나 그것 이 진행되도록 만든 문자열들, 그것을 구성하는 함수나 가중치, 그리고 입력장치 역할을 하는 센서들과 그것을 연결해주는 연결부들, 그리고 그렇게 입력된 것을 알고리즘에 따라 계산하는 연산장치와 기억장치 등등이 하나로 통합된 하나의 개 체다. 그런 한에서 개체화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어떤 요인은 있다고 해야 한다. 가령 각 부분들이 리듬을 맞추어 하나처럼 협-조하여 작동하게 하는 조절 메커 니즘이 있을 것이고, 각 부분에 적절한 역할과 그에 필요한 정보를 분배하는 식 또한 있을 것이다. 그것이 있기에 사람이 일일이 손대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불 러내어 계산하고 저장하고 출력한다. 그리고 이 개체화에 참여하는 부분들 역시 하위 수준의 독립적 개체들이라는 점에서 개체들의 개체고 중층적으로 개체화된 개체다. 그러나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통상 생명체가 생존을 지속하려 한다는 말을 할 때와 유사한 의미에서 개체성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기 계도, 개체도 현재의 상태를 지속하게 만드는 어떤 힘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 재의 개체성에 대해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애착을 갖고 자신의 개체적 생존을 유 지하는데 집착을 갖고 있다고 하긴 어려울 것 같다. 이는 그 개체성을 해체하려 는 시도에 맞서 자신의 실존을 지속하려는 행위-작동을 통해 확인될 수 있다. 그 런데 가령 알파고가 자신을 해체하여 새로운 것으로 바꾸려는 시도에 맞서 개체 성을 유지하려 할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구성요소가 해체되는 통상 ‘죽음’이라 불리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도 거리낌도 없어 보인다. 알파고를 만든 사람이라면 그런 해체에 저항하려 할지 모르지만 알파고 자신은 그렇게 할 것 같지 않다. 이 이진경 _ 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 289 런 점에서 기계의 코나투스는 생명체의 코나투스와 다르다. 기계는 자신의 능력 을 고양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조차, 자신의 실존을 지속한다는 말은 그에 반 하는 것에 대한 어떤 반발이나 저항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따라서 인공지능도 개체화되지만, 현행적 개체화의 최종적 경계를 그 하위의 다른 개체화에 대해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령 프로그램은 라 이브러리 같은 모듈화된 하위 프로그램 단위로 분리되어 사용되기도 하고 그것은 다른 라이브러리와 결합하여 다른 개체화를 이루기도 한다. 그렇기에 최종적 수 준의 개체성을 특권화하지 않는다. 데이터로서 주어진 것과 그것을 계산하는 개 체는 구별되고, 이런 점에서 외부인 환경과 구별하여 입력정보를 감지하여 계산 하여 결과를 산출하고 그것에 따라 작동하는 것을 하나로 묶어 ‘에이전트(agent)’ 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에이전트는 센서들을 통해 자신의 환경을 지각하고 작동 기를 통해서 환경에 대해 어떤 동작들을 수행한다.”32) 이런 점에서 인공지능은 환경과 맞은편에 있는 어떤 ‘주체’가 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을 에이전 트로 정의한다는 것은 주어진 명령을 실행해주는 것으로서의 위치를 부여하고 있 음을 뜻하며, 이는 개체로서의 주체성을 정의 자체에서 배제하고 있음을 뜻한다. 덧붙이면 가장 잘 알려진 인공지능 교과서의 저자들은 에이전트로서의 인공지능 이 수행한 성과의 측정을 설계할 때, 에이전트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기준 으로 삼기보다는 환경이 실제로 어떻게 변하는 게 바람직한지를 기준으로 삼기를 권하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전자의 경우 에이전트가 자신의 성과가 완전하다 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33) 다시 말해 에이전트로서 의 인공지능에게 환경이란 자신의 개체적 생존을 유지하고 지속하기 위해 이용하 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반대로 요구되는 적합한 작동을 산출하기 위해 자기 스스로를 바꾸어가야 하는 준거인 것이다. 즉 인공지능은 환경에 대해 작동 의 중심성을 갖고 있지 못하며, 환경에 대해 도구적이고 이차적인 자리에 있는 셈이다. 이는 인공지능이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로서 고안되고 개발된 것임을 안 다면 어쩌면 자연스런 것이라 하겠다. 이런 이유에서 인공지능이, 적어도 인간의 명령을 수행하는 에이전트로서 정의 32) 러셀/ 노빅, ?인공지능 1?, 44쪽. 33) 같은 책, 47쪽. 290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되고 있는 현재의 수준에서 식의 작용이나 신체의 작동을 ‘나’라는 허구적 실체를 중심으로 끌어들이고 배치하며 작동하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 하면 인공지능이 그 모든 것을 배치하고 사용하면서 자신의 존속을 목표로 하는 ‘나’라는 허구적 중심을 형성하기 어렵고, 8식의 활동능력을 환경과 대비되는 독자 적 경계로 묶어내기도 어렵다. 즉 인공지능에 대해 인간이 근본적으로 다른 위상 을 부여하지 않는 한, 인공지능이 7식인 말나식을 가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7식이 없는 한, 7식을 의근으로 삼아 형성되는 의식 또한 갖기 어렵다고 해야 할 듯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실 계산주의 모델은 분류하고 추론하는 의식의 능 력을, 나아가 표상하는 의식의 능력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고자 했고, 또 일정 정 도 그에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공지능이 의식을 갖는다고 하기 어려운 것 은 이 때문이다. 그것은 의식의 작동방식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하여 의식처럼 분 류하거나 예측하긴 하지만, 의식 없이 작동하며, 의식과 달리 자동적 종합 내지 수동적 종합능력에 속한다. 따라서 자극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지도 못하고 동 일한 자극에 대해 다르게 반응하지도 못한다. 그것은 의식에서 끄집어낸 것이지 만, 차라리 신경망의 알고리즘과 마찬가지로 8식 수준의 종합능력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겠다. 따라서 현재의 위치에서 인공지능이 6식인 의식을 갖고 있다고 하 기는 어렵다. 6식과 7식에 관한 한, 로봇으로 확장해도 동일하게 말해야 한다. 그런데 인공지능이나 로봇에게 할당된 위상을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가령 그 들이 자신의 실존의 지속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하도록 프로그래밍한다면 어떻게 될까? 인공지능이나 컴퓨터를 사용한 것도 아니지만, 테오 얀센의 ‘살아있는 기 계’들은 사태가 크게 달라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기계들을 해변에 풀 어놓고, 자신의 존속을 목적으로 움직이게 했으며, 이를 위해 바람을 이용해 에너 지를 축적하고 물을 만나면 피하는 감각을 사용하게 했다. 이는 수공적인 기술로 만들어진 지능 없는 기계조차 자신의 존속을 목적으로 작동하고 움직일 수 있음 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 칼 심스(Karl Sims)가 만든 인공생명은 컴퓨터 시뮬레이 션인데, 자신의 존속을 목적으로 하며 이웃한 유사 개체들과 경쟁하며 스스로 변 이해가며 생존을 지속하면서 진화하는 디지털 생명체를 멋지게 구현해 보여준다. 이러한 예들은 자신의 존속을 목적으로 프로그램될 경우 인공지능이 아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간의 도구적 에이전트가 아니라 자신의 이진경 _ 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 291 존속을 목적으로 주어진 환경에 대해 대처하는 독자적 개체성을 갖게 될 가능성 을. 이 경우 인공지능은 개체화의 최종 경계를 유지하고 지속하며 생존하려는 코 나투스를 갖게 될 것이며, 이는 아마 다양한 식들의 작용을 끌어모으고 배치하는 허구적 중심으로서의 ‘나’라는 상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식으로 7식이 형 성될 때, 그것을 의근으로 삼아 의식이 생겨날 가능성 또한 부정하기 어렵다. 그 런데 그 경우 그 개체는 인공지능의 수준을 넘어서 인공생명이라는 다른 존재자 의 위상을 갖게 될 것이다. 9. “기계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가?” 인공지능의 한계에 대한 부정적 견해, 즉 “인공지능은 어떻게 해도 인간의 지 능을 따라갈 수 없어!”라는 견해와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한 공포, 즉 “이제 인공 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올 거야!”라는 견해가 모두 가정하고 있는 인공 지능의 개념은 이른바 ‘강한 인공지능’이다. 강한 인공지능이란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말한다. 이와 반대로 약한 인공지능은 인간이 설정한 과제를 지능적으로 연산하여 수행하는 기계적 기능을, 즉 인간이 제공한 구조 위에서 작 동하는 에이전트를 말한다. 초기에 다트머스 워크숍에서 제안된 것도, 지금까지 만들어진 인공지능도 모두 약한 인공지능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공지능이 빠른 속도로 발전한다면 스스로 생각하는 강한 인공지능의 단계에 도달할 수 있지 않 을까? 이는 철학자들이나 인지과학자들을 두 부류로 나누게 하는 질문이고, 인공 지능의 미래에 대해 상반되는 두 입장으로 나누게 하는 질문이다. 간단히 말해, 기계는 인간처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가? 그렇다고 답한다면 강한 인공지능이 가능하리라고 믿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면 불가능하리 라고 믿는 것이다. 이는 사고과정을 기계화하려는 발상을 처음 했던 튜링부터 누 구도 피해가지 못한 질문이다. 한때는 기계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을 통해 인간 이 좀더 강한 능력을 가진 ‘트랜스휴면’이 되리라고 믿었던 낙관주의자 가운데 일 부조차, 지금은 이 질문 앞에서 주춤하며 두려워하고 있다.34) 이런 식의 두려움 34) 닉 보스트롬, ?슈퍼인텔리전스?, 조성진 역, 까치, 2017. 292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은35) 대개 지금의 인공지능이 강한 인공지능으로 발전하리라는 가정 위에서 나 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기술의 진보는 강한 인공지능으로 이어질까? 이는 두 인공지능 사이에 선형적 연속성을 가정하고 있는 게 아닐까? 강한 인공지능이 기술적으로 발전하면 강한 인공지능이 되리라고 믿는다면 이 는 양자 사이에 선형적 연속성을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양자 사이에 이런 연속 성을 가정할 수 있을까? 이를 제대로 검토하려면 ‘기계가 스스로 생각한다’는 것 이 무슨 뜻인지를 다시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사실 이는 매우 애매모호한 말이다. 기계가 생각하는지 여부를 가시적으로 확인할 길은 없기에, 튜링은 사람 들이 지능적 기계의 작동과 인간의 행동을 구별할 수 없다면 그것은 기계의 지능 이 사람과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한다고 보아 ‘튜링테스트’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그러나 특정한 과제를 수행하는 데서 사람과 구별할 수 없고, 나아가 사람보다 더 탁월하게 하는 지능적 기계라고 해도, ‘스스로 생각한다’고는 할 수 없다. 그것 은 ‘사람처럼 행동한다’나 ‘지능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와 다른 종류의 상태다. 그렇다면 스스로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를, ‘사람처럼’이란 말과 분리하여 다시 물어야 한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인간의 지적 능력 가운데 사고하는 능력을 감성, 지성, 이성의 세 가지 심급으로 구별하여 분석한 바 있다. 감성은 대상이 주는 자 극을 수용하는 심급이고 지성은 그렇게 수용된 것을 분류하는 능력, 이성은 추론 을 통해 일반화하는 능력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공지능은 앞서 본 것처럼 감성적인 지각능력을 갖고 있고, 지성적인 분류능력을 갖고 있으며, 이성적인 추 론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적어도 그가 순수이성이라고 부른 인간의 이론적 사고능력에서 기계는 지금의 수준에서도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고 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즉 이미 인공지능은 강한 인공지능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정말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 칸트가 있었다고 해도 그렇다고 답했을 것 같진 않다. 이와 반대로 현상학자들처럼 ‘지향성’이란 말로 대상을 구성하는 능력이나 해석학자들처럼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을 ‘스스로 생각 하는’ 강한 인공지능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35) 가령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MS 회장 빌 게이츠, 테슬라 회장 일론 머스크(Elon Musk) 등이 이런 두려움을 표명한 바 있다. 이진경 _ 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 293 기준을 기계에 들이대는 것이어서, 답은 분명해지지만, 인공지능의 모든 발전을 ‘그래봤자 그건 인간과 달라’라는 말로 묵살하는 게 될 것이다. 이는 기계적 지능 이 하는 사고는 어떤 것이고 그것은 어느 방향으로 어디까지 나아갈 것인지를 생 각할 여지를 차단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유식학의 개념을 이용해 살펴본 인공지능의 지적 능력은 ‘스 스로 생각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보다는 좀더 진전된 검토를 가능하 게 해준다. 앞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인공지능은 감각적 지각활동이라는 전5식의 능력에 관한 한 인간 이상의 감지능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선험적 조건이기도 하며, 독자적인 인식능력인 8식 또한, 인간 과 동일한 양상이라곤 할 순 없지만 결코 열등하다고도 할 수 없음을 보았다. 그 런데 인간이나 다른 생명체와 비교할 때 크게 달라지는 지점은, 적어도 현행의 지반 위에서라면 7식인 말나식과 6식인 의식을 갖고 있다고는 하기 어렵다는 결 론을 내렸다. 그 이유는 인공지능이 작동하는 최소신체를 개체화의 최종적 경계 로 삼아, 그 개체성을 유지하고 지속하려는 식이, 생명체라면 ‘충동’이나 ‘욕망’이 라고 명명되는 그런 종류의 식—이 식 자체는 8식에 속한다—이 없기 때문이다. 개체를 지속하려는 힘 내지 의지로서의 코나투스가 전적으로 없는 것은 아니며, 또한 그것이 관성적 지속을 뜻하는 이너시아와 달리 자기-고양의 성분을 포함하 기도 하지만, 개체성을 유지하고 지속하기 위해 그것을 저해하는 요소들에 맞서 고 저항하려는 성분이 있다고 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개체화를 형성하는 8식들을 모아서 ‘나’라고 오인하고 그 ‘나’를 중심으로 여타의 식들이나 능력을 배치하고 사용하는 7식이 존재한다고 하기 어려우며, 그렇기에 인간의 의식의 작동방식을 모사한 알고리즘이 널리 사용됨에도 불구하고 7식을 의근으로 삼아 작동하는 의 식 또한 존재한다고 하기 어렵다. 따라서 자극에 대한 자동적 반응을 함축하는 수동적 종합과 달리, 주어진 자극이나 조건에 대해 거리를 두고 상이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의성의 여백이 없으며, 그렇기에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독자적 대 처능력이나 습관적 종합이나 기억에 의한 종합의 등류적 반복을 벗어난 대처능력 을 갖지 못한다. 7식과 6식의 결여는 그것이 좋은가 나쁜가를 떠나서, 자기 자신의 생존을 일차 적 목표로 하는 그런 명령이 주어지지 않는 한 넘어서기 힘든 문턱이다. 생명체 294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의 경우에는 유전자에 기억되어 전승되는 이 명령을 인간이 기계에게 부여할 가 능성이 있을까? 인공지능이나 기계가 인간에게 필요한 도구로서 간주하고 그것 의 의미를 그 유용성에 따라 판단하는 인간중심주의적 지반 위에서는 그럴 가능 성이 없어 보인다.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난다고 해도 기계의 실존을 생명의 실존, 인간의 실존과 동등하게 간주하고 기계가 인간의 의지에서 벗어나 자립적 개체로 서 존재하게 하려는 의지가 발동하지 않는 한, 그런 의지들이 모이며 새로운 존 재의 평면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 인간이 그렇게 할 가능성은 매우 작다고 해 야 할 것 같다. 강한 인공지능의 존재는 그 새로운 평면 위에서라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왜 냐하면 지능 없는 기계나 컴퓨터 시뮬레이션 수준에서 인공물이 자기 자신의 생 존을 목표로 행동하고 변이하는 것은 이미 확인된 것이고, 그렇다면 지적인 인공 물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지적 능력을 사용하리라고 보는 것은 자연스런 추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의식을 가진 인공지능, 자기 자신의 생존을 목표로 하는 로봇을 인간이, 그것도 많은 비용과 노력을 투여하여 만들어낼 이유를 발견 하기 어렵다면, 강한 인공지능의 실존을 보게 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 논평 「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유식학의 관점에서 본 인공지능의 인식능력」에 대한 논평 성청환 인도철학불교학연구소 연구초빙교수 동국대학교 BK21 연구원과 의 전임연구 원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한국연구재단 토대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전공⋅관심분야 불교학 주요논저 「지각 논의에 내포된 인식론적 토대: 쿠마릴라와 다르마키르티의 지각론 비교」, ?인도철학? 34, 2012. 「미망사학파의 앎과 행위의 주체로서의 자아」, ?인도철학? 36, 2012. 296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0. 이진경 교수님의 「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이라는 발표문은 부제가 제시하듯이 유식학의 관점에서 본 인공지능의 인식능력을 광범위한 범위에서 다 양한 논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전체 8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본 발표문은 불 교교학에의 발전에서 정점이라고 흔히 일컬어지는 유식학의 용어들, 특히 8식을 현대적 관점에서 다양한 서양철학의 사상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다 가오는 4차 산업의 시대에 통용될 수 있는 일반적인 용어로 풀이하고 있다는 점 에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 논자는 강한 인공지능은 기계적 기능을 넘어선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는” 즉 스스로 사유하는 능력이라고 규정합니다. 인공지능은 전 오식의 활동인 감각적 지각활동능력을 갖추고 있으나, 유식학에서 설명하는 7식과 6식의 능력은 결여 되어 있다고 분석합니다. 반면 인공지능에서는 유식학에서 설명하는 8식은 인간 과 다른 형태로 활동 가능하다고 여러 사례들을 제시합니다. 7식과 6식의 결여로 인하여 다가오는 미래에도 강한 인공지능을 마주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다고 전망 하고 있습니다. 2. 논자에 따르면 8식은 전5식인 감각적 지각의 선험적 조건이면서, 유체기의 활 동능력을 갖는 신체를 형성, 유지하게 하는 종합화하는 능력이며, 개체의 존재를 지속하게 하는 안정성을 유지 것으로 해석합니다. 이를 각 개체의 실존능력이라 고 명명합니다. 이러한 8식의 작용 중에서 ‘자아’라는 개념에서 기인하는 ‘아(我)’와 ‘아소(我 所)’에 개념을 7식의 작용으로 풀이하며, 사회문화적 의미에서 형성된 이들 개념 도 7식을 전제로 한다고 해석합니다. 7식의 이러한 작용은 허구이지만, 유용한 도구이며, 필수적으로 번뇌가 수반된다고 합니다. 성청환 _ 논평문 •• 297 6식은 7식을 기반으로 작용하므로 자아가 대상으로 하는 것에 한정되어 식을 형성하며, 이것의 특성을 ‘능동적 종합’이라고 풀이 합니다. 전5식이 수동적인데 반하여, 능동적 종합인 6식은 ‘판단’과 ‘선택’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6식 은 7식의 허구를 극복하고, 전5식의 수동성을 뛰어넘는 출발점으로서 종합능력 이라고 해석합니다. 3. 인공지능의 기능에 대한 기대치는 ‘분류’와 ‘예측’이라고 합니다. 인공지능의 기계적 센서들에도 서로 다른 것들을 종합하고 수축하는 ‘수동적 종합’, ‘자동적 종합’이라는 ‘지능적 종합이 산출되는’ 8식이 작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작 용은 중성적 식으로 ‘무기(無記)’로 파악합니다. 이에 전제되는 정보는 수동적인 소변(所變)의 범주로 분류하는 반면 인공지능은 종합능력으로서의 능변(能變)의 식으로서 이들 둘은 세계가 생성, 소멸하는 변화의 중심이라고 합니다. 현재까지 인공지능에서 규정하는 ‘에이전트(agent)’는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적응시켜야 하는 것이므로 도구적이고 이차적인 것으 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7식의 작용이 산출하는 ‘자아’라는 허구적 개념을 형성하 기 어렵기에 현재까지는 7식을 가질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고 논자는 전망합니다. 따라서 7식의 결여로 인하여 6식의 존재도 또한 인정하기 어렵다고 이해합니다. ① 모든 불교학이 그러하듯이 유식학에서도 현상적 경험의 세계를 지양하고 번뇌가 소멸된 세계를 추구합니다. 무의식으로 해석되는 8식을 감각적 지각의 선 험적 조건이며, 종합화하는 능력이라고 풀이할 수 있는지 재고해 볼 필요가 있습 니다. 논자도 밝히고 있지만, 유용한 허구적 자아로 풀이한 7식을 논문 전체의 핵심 키워드로 현재까지는 인공지능과 구별되는 인간만의 고유성으로 해석하고 있습 니다. 그러나 이것이 경험적 현상 세계의 실존적인 부분과, 불교가 궁극적으로 지 향하는 ‘무아(無我)’라는 관점에서 논의 범위와 개념의 규정을 보다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한정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② 인공지능에서 ‘에이전트(agent)’는 환경을 지각하고, 환경에 따라서 임무를 298 •• (사)한국불교학회 2017국제학술대회 수행함으로, 현재까지는 에이전트에 중심을 둘 것이 아니라 에이전트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합니다. 즉 현재까지는 인간 중심주의에 서 수동적으로 인간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서 논자는 에이전트에 ‘근본적으로 다른 위상을 부여하지 않는 한’ 인공지능은 7식 과 6식을 가질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고 전망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발전 속도와 미래를 예측함에서 에이전트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위상과 역할을 부여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③ 인문학적 글쓰기와 담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진경 교수님의 글쓰기와 토론의 능력은 언급할 필요 없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본 발표문은 주어진 시간과 분량에 적합한 것인지, 또한 수많은 예시와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것들이 오히려 논의를 깊이 있게 이 끌기 보다는 오히려 논리성과 논의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불필요한 요소들이 있지 않은지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출처] 이진경/인공지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유식학의 관점에서 본 인공지능의 인식능력|작성자 임기영불교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