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 · 보리심 수행

티베트 불교 최대법회 칼라차크라

수선님 2020. 7. 5. 11:48

티베트 불교 최대법회 칼라차크라

평화의 화신, 달라이라마의 생신 잔치에 모인 15만 티베트 사람들

 

▲ 라다크 칼라차크라 행사장에서 티베트 사람이 불교 경전을 넣은 경통, 마니차를 돌리고 있다. 티베트 사람들은 마니차가 돌아가면 경전의 불력이 세상에 퍼진다고 믿고 있다 ⓒ 송성영


오늘도 어김없이 돌카 엄마는 작은 불상과 달라이라마 사진을 모신 방에서 기도를 올린다. 법당이나 다름없는 작은 방에는 무속인들이 사용하는 무구처럼 생긴 낡은 북이 보인다. 돌카 말로는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2백년 넘은 북이라고 한다.

티베트 사람들은 본래 주술적인 치료 등을 중시하는 뵌교라는 토속신앙을 믿었다. 우리나라의 불교 전래과정처럼 티베트에 불교가 들어올 당시 유목민들이 믿고 있던 토착 신앙과 결합되어 있었다. 불교가 티베트 종교로 정착한 것은 8세기 중엽, 인도 불교, 밀교 수행자였던 파드마 삼바바가 가르침을 전한 후부터인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때 원나라를 통해 들어온 티베트 불교를 라마교라 했다. 라마는 티베트어로 스승을 의미한다. '라'는 생명의 근원, '마'는 '라'의 제자를 말한다. 고려가 원나라의 지배를 받을 무렵 몽골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당시 원나라, 몽골은 티베트 불교를 깊숙이 받아들였는데 우리나라에 티베트 불교가 전해져 온 것은 이 무렵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티베트 불교의 전래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불교예술은 공주 마곡사 5층 석탑이다. 이 석탑의 상륜부, 맨 윗부분의 화려한 장식은 티베트의 불탑 형식이라 할 수 있다.

▲ 칼라 차크라 행사장으로 나서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짐을 챙기고 있는 돌카의 남동생 파드마. ⓒ 송성영

 

▲ 티베트 전통 복장으로 곱게 차려입고 행사장으로 나서는 돌카와 이웃사촌. 남인도 청년 쌍케. ⓒ 송성영


이른 아침부터 칼라차크라 행사장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돌카의 동생, 파드마의 낡은 자동차가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짐칸에 동네 사람들이 짊어지고 나온 매트리스를 잔뜩 실어 나르고 있다.

"어디로 가져갑니까?"
"칼라차크라 행사장으로 갑니다."

돌카는 농장 소들에게 먹이를 주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와 함께 행사장에서 간단하게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우리의 한복이나 다름없는 티베트 전통 옷으로 단장하느라 부산스럽다. 오늘이 칼라차크라 행사 기간 중에 있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라마 존자의 생일이라는 것이다. 이 날은 티베트 사람들의 명절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티베트 사람들은 달라이 라마를 살아있는 붓다(부처)로 믿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돌카네 사랑방에 신세를 지고 있는 쌍케와 함께 이들 모녀를 따라나섰다. 마을 길로 나서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두 티베트 전통 옷차림이었다. 큰 길로 나서자 티베트 사람들이 칼라차크라 행사장으로 구름떼처럼 몰려가고 있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을 얼핏 보아도 수만 명은 넘어 보였다. 돌카에게 물었다.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이 왔습니까?"
"라다크 전역은 물론이고 인도 곳곳에서 흩어져 살고 있는 티베트 사람들입니다."

▲ 인산인해를 이루며 칼라차크라 행사장으로 향하는 티베트 사람들 ⓒ 송성영

 

▲ 이산가족을 만난 듯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글썽이는 티베트 노인들 ⓒ 송성영


중국의 침략으로 1959년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망명했다. 그와 함께 티베트를 떠나온 수많은 난민들은 인도뿐만 아니라 북미·유럽 등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들 티베트 난민은 13만 명에 달하는데 그 대다수가 다람살라를 비롯한 인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칼라차크라 행사장 입구에는 티베트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이산가족을 만나듯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글썽이는 노인들도 보인다. 이 노인들 역시 달라이 라마와 함께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로 들어왔을 것이다. 서로의 사정에 따라 헤어져 살다가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달라이라마를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거의 모든 티베트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전날 발급 받은 외국인 전용 출입 명찰을 달고 행사장 입구로 들어서자 엄청난 인파에 입에 쩍 벌어졌다.


▲ 줄지어 행사장으로 들어서는 티베트 스님들 ⓒ 송성영

 

▲ 행사장 입구를 지키고 있는 무슬림들. ⓒ 송성영


외국인들이 따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일일이 신원파악을 하고 있는 티베트 사람들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이 있었다. 이들 주변에는 기관총을 소지한 사내들도 보였다. 그들은 티베트 사람들의 용모가 아니었다.

"당신들도 티베트 불교 신자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무슬림입니다."

이슬람교도들이었다. 그동안 인도 내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불교도들을 향해 테러 위협을 가해왔기에 전혀 예상 밖이었다. 2013년 7월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인도 보드가야 마하보디 사원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해 미얀마 스님 1명과 네팔인 성지 순례객 1명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당시 인도 현지 언론에서는 과격 이슬람 단체인 '인도 무자헤딘'의 소행으로 추정했다.

인도는 종교의 나라다. 힌두교, 이슬람교, 시크교, 가톨릭, 불교 등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인도의 불교신자들을 타깃으로 삼은 것은 미얀마에서 발생한 무슬림과 불교 신자간의 종교분쟁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달라이라마는 종교분쟁을 개탄하며 불교도들에게 "이슬람 공동체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생길 때는 부처의 얼굴을 생각하라"고 말했고 불교도들로부터 위협받는 이슬람교도들에게는 "부처가 이슬람교도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종교를 초월하여 평화와 상생을 언급하고 있음에도 그동안 달라이라마 존자는 이슬람 과격파뿐만 아니라 힌두 과격파, 티베트 내 강경파에 이르기까지 테러의 대상이 되어왔다.

라다크에는 티베트 불교도뿐만 아니라 무슬림들도 많이 살고 있다. 라다크 중심지 레의 고대왕궁 건물 아래 대형 무슬림 사원이 들어설 정도다. 돌카 말로는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라다크에서 불교신자와 이슬람교도의 결혼이 심심찮게 있어 왔다고 한다. 하지만 라다크에 불어 닥친 산업화 바람과 함께 두 종교가 점점 멀어져 왔다는 것이다.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부터는 불교도들과 이슬람교도가 결혼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본래 라다크는 티베트 불교의 영향권이었다. 14세기 무렵 이슬람 상인들이 유입되어 티베트인과 혈연관계를 맺으면서 이슬람교가 싹트기 시작했다고 한다. 1959년 전후로 라다크 지역에는 약 3000여 명의 티베트계 이슬람교도가 살고 있었고, 양측 종교계 사이에 이렇다 할 갈등 없이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한다.

돌카의 말에 따르면 1970년대 후반 산업화 바람과 함께 그런 조화로운 관계가 깨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칼라차크라 행사장을 지켜주고 있는 무슬림들을 보면 라다크에서는 불교와 이슬람교가 예전과는 달리 조화로움에서 멀어졌지만 여전히 큰 갈등 없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듯 보였다. 불교 측에서 손을 내민 것인지 아니면 이슬람에서 스스로 도움을 자청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슬람과 불교의 미묘한 갈등 속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로부터 테러 위협을 받고 있는 불교도를 지켜주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감동적이었다.


▲ 15만 명이 모인 티베트 불교 최대 법회 라다크 칼라차크라 행사장. 땡볕 아래 우산을 받쳐 들고 있는 티베트인들, 저 멀리 황금빛 지붕의 연단이 보인다. 그 앞의 푸른 천막이 외국인들을 위해 마련한 자리다. ⓒ 송성영


주최 측에서는 티베트의 일반인들과 승려, 외국인들을 위한 자리를 따로 마련해 놓았다. 외국인들에게는 달라이라마 존자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연단 앞에 공간을 따로 마련해줬다. 돌카네 식구와 헤어져 외국인들 틈에 끼어 자리를 잡고 앉아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주최 측 발표에 의하면 티베트인, 외국인 할 것 없이 전 세계 74개국에서 15만 명이 모였다고 한다. 이중 티베트 사람이 아닌 순수 외국인들만 6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외국인들은 그늘진 천막 아래에 자리를 마련했다. 나와 쌍케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먹고 잘 수 있는 방을 내준 돌카네 식구의 자비심처럼 티베트 사람들은 외국인들에게 그늘을 내주고 땡볕에 앉아 우산을 받쳐 들고 있었다.

수많은 외국인들 틈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가 문득 티베트 불교를 토착화 시켰던 <티베트 사자의 서> 저자인 파드마 삼바바가 남겼다는 말이 떠올랐다.

"쇠로 된 새가 하늘을 날고 바퀴 달린 말이 땅을 디딜 때 너희 티베트 민족은 세상에 개미 떼처럼 흩어진다. 다르마(법)는 붉은 족(서양백인)들에게 전해지리라."

그의 예언이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티베트 민족은 중국의 침략으로 세계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티베트 불교를 전파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라다크에 오기 전 리왈샤에서 만났던 동갑내기 사내, 래미 또한 티베트 불교 성지를 둘러보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 자리한 멕시코에서 날아왔지 않았던가.


▲ 외국인들을 위해 FM 라디오를 통해 동시 동역을 해주었다. 이중에 한국 통역 채널도 있었다. ⓒ 송성영

 

▲ 달라이라마 존자와 인사를 나누는 티베트 승려들. 연단 근처에 외국인들을 위한 자리를 따로 마련해 달라이 라마 존자를 근거리에서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 송성영


인도청년 쌍케가 행사장에서 라디오가 필요하다 했던 이유가 있었다. FM 라디오를 통해 영어를 비롯한 한국, 인도, 독일, 프랑스, 이태리, 프랑스, 러시아, 중국, 일본 등 12개 나라의 언어로 동시 동역을 해주고 있었다.

주최 측 발표에 의하면 이날 외국인들 중 한국인은 123명에 달했다.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와 영화배우 우마 서먼의 아버지이자 티베트 불교 승려이기도 했던 <달라이라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의 저자 로버트 서먼, 중국인으로서 달라이라마와의 만남을 책으로 엮은 <달라이라마의 관용> 저자 빅터 챈을 비롯해 400여 명의 티베트인과 500여 명의 중국인이 함께했다.

라다크를 대표하는 몇몇 사람들과 힌두, 이슬람 지도자들의 달라이라마 생신 축하 인사말과 더불어 외국인을 대표해서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리차드 기어가 연단에 나설 무렵 잠시 소란이 있었다. 한 여인이 비명을 지르며 연단 앞으로 달려 나갔다. 영화배우 리차드 기어가 아닌 달라이라마 존자를 향해 뛰쳐나갔던 것이다.

연단 주변의 경호원들이 저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달라이 라마 존자 앞에 큰 절을 올리며 비명 지르듯 뭔가 큰 소리로 말했다. 달라이 라마 존자가 그녀의 몸에 축복을 내리듯 손을 대자마자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리고 경호원들에게 실려 나갔는데 연단 밖으로 나온 그녀는 아무런 일도 없었었다는 듯이 멀쩡하게 일어났다.

곧장 리처드 기어의 축사가 이어졌다. 그는 1988년 라다크 등반여행 당시 잔스카르에서 열린 칼라차크라 법회에 참석하면서 달라이라마 그리고 티베트 불교와 첫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 중에 한 곳인 라다크에 왔다"며 "지구상의 현 인류가 달라이라마와 같은 위대한 성인과 동시의 삶을 영위하는 것은 무한한 행복"이라며 영화배우가 아닌 불법을 수행하는 달라이라마의 제자로서 법회에 참석했음을 밝혔고 중국에 지배당하고 있는 티베트의 인권 문제를 거론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한 티베트 남자가 단상 앞으로 뛰어 나왔다. 달라이라마 존자는 그를 제지하는 경호원들의 손길을 거두게 하고 가까이 다가오게 했다. 그는 절을 올렸고 조금 전의 여인처럼 달라이라마 존자의 손에 닿자마자 잠들 듯이 쓰려져 실려 나갔다. 그 또한 연단 밖으로 나와 곧장 일어섰다. 티베트 사람들은 달라이라마의 손길에 닿는 것만 해도 엄청난 축복으로 받아 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2014년 현재 나이 만 79세인 달라이 라마 존자의 법문은 나이와 상관없이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기운이 넘쳐났다. 그는 "티베트인은 티베트가 산으로 둘러싸여 흰 눈의 나라라고 불렀다 하지만 티베트의 현실은 어둡다. 인도에 온 이후로 우리는 자유를 누렸고 전 세계의 사람들과 평화를 공유 할 수 있었다."며 21 세기를 강제적인 수단이 아닌,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평화와 조화의 시대로 만드는 데 기여하자고 촉구했다.

평소 그는 불교 경전과 과학적 증거가 대치될 때엔 과학적 증거를 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붓다의 가르침이라 말했듯이 "종교적인 편견 없이 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서양 사람들이 티베트 불교에 매료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달라이라마의 이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법문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티베트 불교에는 크게 4개의 종파 닝마빠(Nyingmapa), 싸꺄빠(Sakyapa), 까규빠(Kagyupa), 겔룩빠(Gelukpa)가 있다. 티베트어에서 "빠(Pa)"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바다처럼 넓은 위대한 큰 스승을 뜻하는 14대 달라이라마는 겔룩빠(dGe lugs pa)와 티베트 불교를 대표하는 동시에 티베트의 최고 통치자다.

제1대 달라이라마는 티베트 타시륀포 사원의 창립자이자 사원장인 게뒨둡파(1391~1475)였다. 그의 후계자들은 게뒨둡파가 환생한 존재로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여기도 있다. 그로부터 제13대 달라이 라마인 둡텐걈초는 1912년 중국에서 반청 혁명이 성공하자, 티베트 내의 중국 군대를 몰아내고 주권 국가의 통치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제14대 달라이 라마인 텐진걈초는 둡텐걈초에 이어 1940년, 티베트의 통치자인 달라이 라마가 되었지만, 1950년부터 중국 공산군에 대항하다가 1959년에 인도로 망명했던 것이다.

출가수행자가 정치와 종교를 한 어께에 짊어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정치는 가장 세속적이다, 그 세속적인 것을 떠난 것이 종교이다. 그럼에도 텐진걈초, 14대 달라이 라마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티베트의 독립을 추구하는 정치지도자인 동시에 티베트인들에게 살아있는 부처, 생불로 불릴 정도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수행자로 칭송받고 있다.

그는 1973년 이탈리아,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아일랜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영국, 서독과 오스트리아를 방문하고서 유럽의 선진문화와 문명에 많은 감동을 받으면서도 환경과 세계평화문제에 대한 주제로 서구 사회에 많은 메시지를 던지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에서의 연설은 티베트 문제에 대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공감을 얻었다. 그 결과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후, 그는 세계 각국의 비정부기구(NGO)들과 종교단체와의 관계를 넓혀 나가면서 세계평화와 환경, 인권문제, 비폭력, 비핵화 운동 등을 전개해 왔다.

그가 처음 칼라차크라 법회를 시작한 것은 1954년 티베트 수도 라싸의 여름 궁전인 '노르부링까'였다. 2014년 7월, 인도 라다크에서 열린 칼라차크라 법회는 33회째. 1980년대부터는 주로 인도에서 행해지던 칼라차크라 법회가 미국, 캐나다를 비롯해 유럽까지 확대되었다.

산스크리트어로 칼라차크라는 시간을 뜻하는 칼라(kala)와 바퀴를 뜻하는 차크라(chakra)의 합성어로, 산스크리트어로 '시간의 바퀴', '시간의 순환'을 의미한다.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칼라차크라는 매우 복잡한 가르침과 수행이며, 상당히 높고 깊은 단계로서 난해한 밀교의 가르침으로 전해져오고 있다. 하지만 티베트 불교는 전통적으로 대중 앞에서 칼라차크라 대법회를 개최해 오고 있는 것이다.

▲ 칼라차크라에 참석한 티베트 사람들이 행사장을 잔치집 앞마당으로 삼아 저마다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 먹고 있다. ⓒ 송성영

 

▲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누고 있는 돌카네 가족과 마을 사람들. ⓒ 송성영


세계의 평화와 종교의 화합을 강조한 달라이 라마 존자의 법회가 끝날 무렵 점심시간이 되었다. 외국인들에게는 빵과 간단한 음식들이 제공되었고 티베트 사람들은 행사장을 잔치집 앞마당 삼아 저마다 준비해온 음식들을 펼쳐 놓고 식사를 한다. 티베트 사람들에게 칼라 차크라는 높고 깊은 단계의 복잡하고 난해한 가르침을 받는 수행 이전에 즐거운 마음으로 평화와 자비를 나누는 화합의 장이기도 했다.

좋은 자리는 외국인에게 양보하고 흥겨운 마음으로 그것도 땡볕에서 음식을 나누고 있는 티베트 사람들을 보면서 그 무엇보다 자비심을 강조하는 달라이 라마 존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경전을 몇 가지나 공부했는지 매일 몇 시간이나 명상했는지 용맹정진은 몇 번이나 했는지 흔히 말들 하지요. 그렇지만 하루에 몇 번이나 십계를 어겼는지 세어 보는 것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열 가지 악업(살생. 도둑질. 음행. 거짓말. 이간질. 나쁜 말. 꾸며대는 말. 탐욕 성냄. 어리석은 소견)을 지켜 내는 마음의 힘이 없다면 높은 수행이나 방편이 어떤 결실을 거두리라는 희망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달라이 라마의 깨달음의 길 중에서

덧붙이는 글 이 글은 2014년 7월 라다크에서 열린 33회 칼라차크라 참가기입니다.

 

 

 

 

 

오마이뉴스

▲ 라다크 칼라차크라 행사장에서 티베트 사람이 불교 경전을 넣은 경통, 마니차를 돌리고 있다. 티베트 사람들은 마니차가 돌아가면 경전의 불력이 세상에 퍼진다고 믿고 있다 ⓒ 송성영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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