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존께서 죽림정사에 계실 때이다. 쿤다라는 이름의 돼지잡이 백정이 있었다. 그는 마흔 다섯 살의 중년남자였다.
한창 흉년일 때 그는 수레에 쌀을 가득 싣고는 시골로 가서 싼 값에 돼지새끼들을 거두어 오곤 했다. 그의 집 뒷켠 허술한 돼지움막 속에서는 어린 돼지새끼들이 오물과 배설물들을 뒤집어쓰고 먹고 자고 있었다.
쿤다는 돼지가 잘 자라면 이렇게 도살했다. 돼지를 기둥에 꽁꽁 묶고는 육모 방망이로 때려잡는 것이었다. 살코기를 부풀게하고 연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는 턱을 벌려 젖히고 칼로 자갈을 물리고 입 속으로는 펄펄 끓는 물을 부어넣었다. 물은 돼지의 뱃속으로 들어가 똥물을 씻어 항문으로 쏟아내는 것이다. 항문에서 나오는 물이 맑아지면 이번에는 끓는 물을 돼지의 등에다 쏟아 검은 털가죽을 벗겨냈다. 그리고는 칼로 목을 베었다. 그때 쏟아지는 핏물을 대야에 받고 나서 돼지를 구어 그 붉은 피로 시침질했다. 그런 다음에야 고기를 베어 온가족이 즐겨 먹거나 내다팔았다. 이것이 쿤다의 생활이요 직업이었다. 그러한 그에게도 스승이 있고, 신앙도 있었다. 그러나 멀지도 않은 곳에 사는 스승을 위해 단 한번도, 단 한 웅큼의 꽃이나, 한술의 공양미도 올린 적이 없고, 누구를 위해 자비를 베푼 적도 없었다.
이런 그가 병에 걸렸다. 그리고 생명의 불이 꺼지기도 전에 아비지옥의 화염이 치솟아 그를 덮쳤다 - 천리 밖에 선 사람도 눈을 멀게 한다는 아비지옥의 불꽃은 영원히 팔방 천리로 뿜어지는데 그 불길에 닿으면 돌탑도 순식간에 녹아버린다. 그러나 죄과의 업장과 고통만은 녹지 않고 남았다가 다음 생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 그러자 돼지도살꾼 쿤다의 행동은 업보에 따라 돌변하고 말았다. 비록 산 채로 그의 방안에 있는 그였지만 돼지처럼 꿀꿀거리며 두 손과 무릎으로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앞마당으로 뒷마당으로 꿀꿀대며 기어다니는 그의 힘이 또 돼지처럼 센지라 온 식솔이 다 덤볐으나 재갈을 물릴 수도, 붙잡아 맬 수도 없었다.
그날로부터 쿤다의 식구들은 죽음의 공포에 떨며, 밖으로 기어나가려는 쿤다를 막느라고 사방에 바리게이트를 치고 지키느라 잠을 잘 수 없었고, 쿤다의 이웃 일곱집에서는 왝왝거리며 울부짖는 돼지의 울음소리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 일주일간의 혼란과 고난을 치른 뒤에야 쿤다는 울부짖으며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는 아비지옥에 환생했다. 그즈음에 어떤 수도승이 쿤다의 마을을 거쳐 불타에게로 갔다.
「세존이시어! 일주일간이나 도살꾼 쿤다의 집은 문이 잠긴 채 돼지의 울음소리만이 요란했습니다. 전에 없이 무자비하고 많은 돼지를 죽이는 듯 했습니다.」
「비구여, 이번 일주일간은 아무도 돼지를 죽인 일이 없다네, 그 소리는 아비지옥의 불길에 싸인 쿤다가 이승의 마지막 일주일 동안 돼지의 과보를 받아 울부짖는 고통의 소리였네. 그는 오늘 죽어 아비지옥으로 갔다네.」
석존은 이렇게 말한 뒤에 게송을 읊으셨다.
악인은 이승에서 괴롭게 살고
저승에 가서도 고통을 당한다.
자신의 죄악상을 스스로 보면서
이승과 저승을 고통 속에 헤맨다.
-법구경 제15송-
세존께서 사위성에 계실 때이다. 영화와 번영의 도시 사위성에는 많은 종교가들이 모여 있었고 더불어 부처님의 제자도 많아서 흔히 오백제자라고 불렀고 오백제자들도 각각 그들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들 중에 칠남칠녀의 자식을 둔 장자가 있었는데 그 자식들도 신심이 돈독하여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대중공양하기를 즐겼고 덕스럽고 의로운 이들이었다.
세월이 흘러 장자가 병이 들고 임종이 가까웠을 때 그는 부처님께 아들을 보내어 임종설법을 해줄 법사를 청했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명의 스님들을 보내 주셨다. 그들이 장자의 곁에 둘러앉았을 때 그가 말했다.
「대덕이시여! 저는 육신의 기력이 쇠잔하여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죽음을 앞두고 단 한마디 게송이나마 법을 듣고, 받들고자 이렇게 모신 것입니다.」
「장자께서는 어떤 법문을 듣고자 합니까?」
「여러 부처님께서 한결같이 말씀하신 염처경(念處經, Satipatthana Sutta)을 듣고자 하나이다.」 그래서 스님들께서 경을 봉송(奉頌)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길이 있나니 이 길이 뭇생명을 구제할 것이요…」
그때 하늘세계로부터 휘황한 수레들이 줄을 지어 당도했다. 수레마다 하늘의 신들이 버티고 서서는 이렇게 말했다.
「장자시여! 그대를 우리의 하늘나라로 모시겠나이다. 승낙하소서!」
신들은 차례로 장자의 목에 꽃다발을 걸어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깨어진 진흙 그릇을 금(金)사발로 고쳐 놓듯이 사람들은 안락을 구하여 우리의 하늘나라에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장자에게는 마음 밖의 소리일 뿐이요, 스님네의 설법이 방해될까 염려로울 뿐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신들의 제의를 물리쳤다.
「잠자코 계세요. 그만들 하세요!」
그러나 장자의 이 말을 들은 사람은 스님들과 자식들뿐이었다. 스님들은 자기네에게 하는 말로 알아듣고 설법을 멈추었다. 놀란 자식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평생을 두고 설법 듣길 즐기시던 아버님께서 왠일이실까? 특히나 오늘은 스스로 스님들을 초빙하셨고 또 청법하시지 않았던가? 그러한 아버님이 설법을 중단시키다니, 이는 필시 죽음의 변고일거야. 아버님께서는 여늬 사람들처럼 죽음이 두려우신거야. 임종이 가까워진거야.」
그리고는 소리를 죽여 훌쩍이며 울기 시작했고 난처해진 스님들은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그때에야 정신을 차리고 뚝 끊어진 침묵과 침묵을 흩뜨리는 훌쩍임을 의아하게 느낀 장자가 자식들을 불렀다.
「얘들아 왜들 울고 있는 건가? 스님들은 설법을 하다말고 어디로 가시고?」
그리하여 장자는 하늘세계의 신들을 만난 얘기를 했다. 자식들은 그제야 장자의 목에 걸린 여섯 개의 화환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물었다.
「어느 천상세계가 가장 화락(和樂)하옵니까?」
「도솔천이 으뜸이지, 세존의 부모님과 미래세의 여러 부처님께서 머무실 불국토란다. 자!이제 이 화환들을 도솔천의 수레에다 걸어소서.」하고 말하며 힘껏 던져보아라.」
모두가 놀랄 광경이다. 던져진 화환들이 허구에 무지개처럼 광영(光榮)스럽지 않은가!
「잘 보아라 화환들이 도솔천의 수레에 걸렸나니, 나는 도솔천으로 가노라. 울지 말지니라 너희도 자비의 광영을 행하리라. 그리하면 나와 함께 도솔천에 살게 되리라.」
이로써 장자는 숨을 거두었다. 한편 부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장자의 왕생극락을 일러 주시고는 계송을 설하셨다.
오늘은 선한 자는 내일도 선하나니
이생에서 기뻐하고 내생에도 기뻐한다.
청정한 삶중에서 안락을 즐긴다.
-법구경 제16
김영길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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