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大唐大慈恩師三藏法師傳)
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서
수공(垂拱) 4년 앙상(仰上) 사문 석언종(釋彦宗) 한역
김영률 번역
생각해 보면 우리 석가모니께서 인토(忍土)1)에 태어나시어 처음으로 8정도(正道)2)의 법을 선양하시고 삼보(三寶)의 문호를 열어 삿된 가르침들을 몰아내심으로 말미암아 불교(佛敎)가 생겨났다.
1) 감인토(堪忍土) 또는 인계(忍界)라고도 한다. 사바세계(娑婆世界)의 번역으로, 중생이 사는 세계를
말한다.
2) 열반으로 이끌어 주는 여덟 가지의 바른 길을 가리키는 것으로, 정견(正見:바른 견해)ㆍ
정사(正思:바른 사유)ㆍ정정진(正精進:바른 노력)ㆍ정념(正念:바른 기억)ㆍ정어(正語:바른 말)ㆍ
정업(正業:바른 행위)ㆍ정명(正命:바른 생활)ㆍ정정(正定:바른 명상) 등이다. 8지성도(支聖道)ㆍ
8성도분(聖道分)ㆍ8현성도(賢聖道)ㆍ8정성로(正聖路)ㆍ8정법(正法)ㆍ8직도(直道)ㆍ8품도(品道)ㆍ
8성도(聖道)라고도 한다
방등(方等)3)의 1승(乘)4)과 원종(圓宗)5)의 10지(地)6)를 큰 법[大法]이라 하는 것은 참된 말씀[眞筌]7)이기 때문이고, 화성(化城)8)에서 때 묻은 옷을 입고 사슴 떼를 구제하고 양을 모는 것을 작은
학문[小學]이라 하는 것은 방편의 진리[權旨]이기 때문이다. 선(禪)과 계(戒)와 주술(呪術)에
이르기까지 그 가닥은 만 갈래이지만 혹(惑)을 멸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이치는 한 가지이다.
3) 세 가지 해석이 있다. ①약리(約理)로 해석한 것으로, 방(方)은 방정(方正), 등(等)은 평등이다.
이 뜻에 인하므로 방등은 일체(一切) 대승경(大乘經)의 통명이다. ②약사(約事)로 해석한 것으로,
방은 광(廣)의 뜻이고, 등(等)은 균(均)이라는 뜻이다. ③약사리(約事理)로 해석한 것으로 방은
방법(方法)의 뜻이며, 유문(有門)ㆍ공문(空門)ㆍ쌍역문(雙亦門)ㆍ쌍비문(雙非門) 4문(門)의 방법을
말한다. 등(等)은 평등의 이체(理體)이며 사문의 방법에 의하여 각각 평등의 이(理)에 계합한 것을
방등이라 한다
4) 성불(成佛)하는 유일의 교(敎)라는 뜻이다. 승(乘)은 부처님의 교법에 비유한 것이다. 교법은 사람을
실어서 열반안(涅槃岸)에 나르므로 수레라고 한 것이다.
5) 대승의 진실 원만한 교의를 종지로 하는 종파를 가리키는 것으로, 예를 들면 화엄이나 천태(天台)
같은 종파는 자칭 원교(圓敎)의 종(宗)이라고 한다. 후세에는 천태종(天台宗)을 부르는 말로 주로
쓰였다.
6) 보살이 수행하여 성불하기까지 총 52단계의 수행 중에서 제41부터 제50 단계까지를 10지라 한다.
10지는 차례대로 초지(初地), 2지, 3지 등으로 부르기도 하고, 제1 환희지(歡喜地), 제2 이구지(離垢地),
제3 명지(明地), 제4 염지(焰地), 제5 난승지(難勝地), 제6 현전지(現前地), 제7 원행지(遠行地),
제8 부동지(不動地), 제9 선혜지(善慧地), 제10 법운지(法雲地)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10지에
이르러서야 보살은 비로소 불성(佛性)을 보며 중생을 구제하고 지혜를 갖추기 때문에, 10성(聖)이라
하며 성인의 칭호를 받는다. 제41 단계에 오르기 전의 보살은 지전(地前)의 보살이라 하며, 마침내
제41 단계에 오른 보살은 등지(等地)의 보살, 10지에 있는 보살은 지상(地上)의 보살이라고 구분하여
부른다.
7) 진전(眞詮)이라고도 쓴다. 전(詮)이란 밝게 드러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밝게 드러내는 글을
진전이라고 한다. 『종경록(宗鏡錄)』 제26권에 나온다.
8)『법화경(法華經)』7유(喩)의 하나이다. 여러 사람들이 보배 있는 곳을 찾아가는데, 길이 험하여
사람들이 피로해 하였다. 그때에 길잡이가 한 계교를 내어 신통력으로써 임시로 큰 성(城)을 만들어
여기가 보배 있는 곳이라고 말하자, 사람들이 대단히 기뻐하며 그 성에서 쉬었다. 길잡이는 사람들의
피로가 풀린 것을 보고는 그 화성을 없애버리고, 다시 진짜 보배가 있는 곳까지 가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화성을 방편교(方便敎)의 깨달음에,진짜 보배가 있는 곳을 진실교(眞實敎)의 깨달음에
비유한다.
이런 까닭에 역대의 성현들이 보배처럼 우러러 모셨던 것이다. 8회의 경[八會之經]9)이 근본이 된다고 한 것은 그 교리가 근본이 되기 때문이고, 3전의 법[三轉之法]10)이 끝이 된다고 한 것은 그 교리가 지말이기 때문이다.
9)『화엄경』의 한역본은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와 실차난타(實叉難陀)의 번역본으로 크게 대분된다.
전자는 번역된 권수가 60권이기 때문에 『60화엄』이라 부르기도 하고, 또한 번역된 시대가 동진(東晋)
이므로 ‘진경(晋經)’이라 부르는 반면, 후자는 권수가 80권이라서 『80화엄』 또는 당나라 때의 번역이기
때문에 ‘당경(唐經)’이라 부르고 있다. 그 외에도 반야(般若)가 번역한 『40화엄』이 있으나, 이것은
대본(大本)의「입법계품」에 해당하는 부분적인 번역이다.『60화엄』은 칠처팔회(七處八會), 즉 일곱
장소에서 여덟 번의 법회를 한 34품으로 구성되어 있고,『80화엄』은 칠처구회(七處九會), 즉 일곱
장소에서 아홉 번의 법회를 한 39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화엄경』을 말한다.
10) 부처님께서 성도 하신 후 녹야원에서 성문들을 위하여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의 4제법(諦法)을 세 단계로 설하였다고 한다. 첫째 4제가 이런 것이다고 제시하여 보여주는 것을 시(示)라 하고, 둘째
4제를 이렇게 관하고 닦으라고 방법을 일러주는 것을 관(觀)이라 하며, 셋째 나는 이렇게 증득했다고
경험을 일러주는 것을 증(證)이라고 한다. 소승법을 설하실 때에 이렇게 세 단계로 법륜을 굴리셨는데,
이런 교수법에 의해 상근기는 시에서 깨닫고 중근기는 관에서, 하근기는 증에서 발심한다.
하늘에서 네 가지 꽃이 비 내리고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는 상서가 나타나기에 이르러서는 상투 속의 보배를 풀어놓으시고 품 안의 구슬을 들어 보이시니, 1승(乘)을 들어 3승(乘)11)을 깨뜨리시고 끝을 거두어 근본으로 돌아가게 한 것이다.
11) 승(乘)은 타는 수레 따위를 말하는 것이니, “법의 수레를 타고 깨달음의 저 언덕, 즉 피안(彼岸)에
이르게 한다”는 뜻이다. 성문승(聲聞乘)과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을 3승이라고 하는데
대하여, 성문승(聲聞乘)과 연각승(緣覺乘)을 2승이라 한다. 대개 1승이란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은
유일(唯一)하므로, 이 가르침에 의하여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성불한다는 것이다. 3승은 중생의 성질과
능력에 응하여 성문과 연각과 보살에 각각 고유한 깨달음이 있다는 뜻이다. 즉 대개는 1승(무상대도)이
진실이고, 2승과 3승은 중생의 근기에 따라 일불승에 이르게 하여 성불하게 하는 방편설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부법장전(付法藏傳)』12)에서는 “성자(聖者) 아난(阿難)13)이 여래의 모든 법장(法藏)을 외워 지니기를 마치 병속의 물을 쏟아서 다른 그릇에 붓듯 하였다”고 하였으니, 이른바 석존(釋尊)께서 한평생
49년 동안에 근기와 때에 맞추어 응하신 교법이라 하겠다.
12)『부법장인연전(付法藏因緣傳)』 6권을 말하는 것으로, 5세기 북위(北魏)의 승려 길가야(吉迦夜)와
담요(曇曜)가 함께 편찬하였다. 부법장전(付法藏傳) 혹은 부법전(付法傳)이라고 줄여 부르기도 하며,
부법장경(付法藏經)이라고도 한다. 이 책은 부처님이 입멸한 뒤 인도에서의 정법의 부촉(付囑)과 수지
(受持), 즉 부법(付法) 상승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부처님이 입멸한 뒤 마하가섭과 아난 등을 거쳐서
사자(師子) 비구에 이르기까지 23조(祖)에 걸친 정법 계승의 인연들을 담고 있는데, 23조의 이름과
순서는, 제1조 마하가섭, 제2조 아난, 제3조 상나화수(商那和修), 제4조 우바국다(優波鞠多), 제5조
제다가(提多迦), 제6조 미차가(彌遮迦), 제7조 불타난제(佛陀難提), 제8조 불타밀다(佛陀蜜多), 제9조
협(脇) 비구, 제10조 부나사(富那奢), 제11조 마명(馬鳴), 제12조 비라(比羅), 제13조 용수(龍樹),
제14조 가나제바(迦那提婆), 제15조 나후라(羅睺羅), 제16조 승가난제(僧伽難提), 제17조 승가야사
(僧伽耶舍), 제18조 구마라타(鳩摩羅 ), 제19조 사야다(奢夜多), 제20조 바수반다(婆須槃陀), 제21조
마노라(摩奴羅), 제22조 학륵나(鶴勒那), 제23조 사자(師子) 등이다. 이 책의 내용은 인도 불교사의
정립에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13) 범명은 Ānanda이며, 불타의 10대 제자 가운데 하나이다. 아난타(阿難陀)를 줄여서 아난이라고 부르며,
의역하면 환희(歡喜)․경희(慶喜)․무염(無染)이 된다. 불타의 사촌동생으로 출가 후 20년 동안 불타의
상수제자(常隨弟子)였다. 기억력이 좋아서 불타의 설법을 분명하게 기억하였으므로 다문제일(多聞第一)
로 알려졌다. 아난은 날 때부터 용모가 단정하여 얼굴이 보름달 같았고 눈은 푸른 연꽃 같았으며 그
몸이 깨끗하게 빛나서 꼭 밝은 거울 같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출가한 후에도 여자들의 유혹에 계속
시달렸는데, 하지만 아난은 지조가 견고하여 범행(梵行)을 끝까지 지켰다고 한다.
발제하(跋提河)14)에 물이 마르고 견고림(堅固林)15)에 그믐달 그림자 드리워 거룩한 가르침과 깊은 종지가 자칫 사라질 지경이 되었을 때에, 대선배이신 가섭께서 5관(棺)을 이미 가리고 천전(千氈)에 불을 붙이려는 순간에 도착하시어 천인(天人)의 안목이 사라져 창생(蒼生)을 구제할 수 없게 되었음을 개탄하셨다.
14) 중인도 구시나게라국(拘尸那揭羅國)에 있는 아시다발제하(阿恃多跋提河)의 약칭이다. 석가(釋迦)가
이 강의 서안(西岸)에서 입멸(入滅)했다고 하는 강의 이름으로, 발제(跋提)라고도 한다.
15) 사라수림(娑羅樹林)을 말하는 것으로 사라(娑羅)라고도 한다, 범어 śāla를 음역한 것으로, 의역하면
견고(堅固)라는 뜻이 된다, 또 견림(堅林), 쌍수림(雙樹林), 학림(鶴林), 사고사영수(四枯四榮樹)라고도
부르기도 한다.『번역명의집(翻譯名義集)』 제3권에서는 “이 나무가 여름에나 겨울에나 시들지 않고
견고하므로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구시나게라성(拘尸那揭羅城) 발제하(跋提河)
물가에서 열반에 들 때에 그 침상의 네 주위에는 각각 한 뿌리의 사라수(娑羅樹) 한 쌍이 있었다고
한다. 이 숲이 바로 부처님께서 열반한 자리이다.
그리하여 여러 성자들을 소집하여 거룩한 말씀을 결집하시되 승묵(繩墨)16)을 상고하여 선정의 문을 정하시고 관화(貫花)17)에 나아가 율장 부분을 여시고 우바제사(優婆提舍)18)에 의거하여 논장(論藏)으로 삼으셨다.
16) 수다라(修多羅)를 한역한 것이다.
17) 경(經)의 산문을 비유하여 경화(敬花)라 하고, 그 게송을 관화라고 한다. 수다라를 선(線)이라 하는데,
선은 꽃을 꿴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18) 우바제사(優波提舍)ㆍ우바제사(優婆題舍)․우바제사(優婆替舍)․오바제삭(鄔波題鑠)․오바제삭(鄔波弟鑠) 등으로 쓰기도 한다. 논의(論議), 축분별소설(逐分別所說)이라고 번역한다. 부처님이 논의하고 문답하여
온갖 법의 모양을 명백히 말한 경문이라는 뜻이다.
공(空)과 유(有)19)의 도리를 분석하고 단견(斷見)20)과 상견(常見)21)을 드러내어 인수(因修)22)의 도리로써 보이시고 과증(果證)23)의 논리로써 밝히시니, 당대의 중생에게 법보로써 보여주고 미래의 중생에게 궤칙으로 전하기에 충분하므로 귀의하는 무리 모두가 그 도리를 따르게 되었다.
19) 막는 것을 공이라 하고, 세우는 것을 유라 한다. 유무(有無)와 같은 뜻이다. 제법(諸法)이 인연(因緣)
때문에 생겨나고 존재하므로 유라고 하고, 제법이 인연의 화합으로 생겨나지만 본래 자성이 없으므로
공이라고 한다.
20) 모든 것이 무상하여서 실재하지 않는 것과 같이 사람도 죽으면 몸과 마음이 모두 없어져서
공무(空無)로 돌아간다고 고집하는 그릇된 소견이라는 뜻으로, 상견(常見)과 상대되는 말이다.
21) 2견(見) 가운데 하나로, 사람은 죽어도 자아(自我)는 없어지지 않으며 5온(蘊)은 과거나 미래에
상주불변(常住不變)하여 없어지는 일이 없다고 고집하는 그릇된 견해를 말하며, 단견(斷見)과
상대되는 말이다.
22) 아직 부처가 되기 전의 수행, 즉 성불하려는 지위에서 수행하는 것을 인지(因地)라고 한다. 또는 성불할
수 있는 인(因)을 수행하는 것이다. 본래는 수인(修因)이라고 하여 과증(果證)에 상대되는 말인데 그
어구가 전도되었다.『자은전(慈恩傳)』서(序)에 “인수로써 보여주고 과증으로써 밝혀준다”고 하였다.
23) 인위(因位)의 수행에 의해 과지(果地)의 증오를 얻는 것을 말한다.
왕진(王秦)이 사자(使者)로서의 명을 받들어 일광(日光)24)의 꿈을 상고하여 불법을 구하고, 마등[騰]25)과 축법란[蘭]26)이 청에 응하여 채찍을 다그쳐[練影] 경을 전달하기에 이르러 그 후로부터 머리 모습을 바꾸고 마음을 고쳐먹은 나그네가 불법의 아름다움을 하늘 저 밖까지 퍼뜨리고 어려운 경전의 걸리던 이치가 이 땅 안에서 정교하게 번역되었다.
24) 보살 이름으로 월광보살(月光菩薩)과 함께 약사여래의 양협사(兩脇士)가 되어 왼쪽에서 모시고 있다.
현장(玄奘)이 번역한 『약사경(藥師經)』에 “그 나라에 두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있는데, 하나는
일광편조(日光遍照)이고 또 하나는 월광편조(月光遍照)이다. 이들은 저 무량 무수한 보살들 가운데
우두머리이다”라고 하였다.
25) 가섭마등(迦葉摩騰)을 말한다. 중인도 사람으로 후한 영평(永平) 10년(67)에 축법란(竺法蘭)과 함께
중국에 와서 처음으로 불교를 전했다고 한다.
26) 성은 축(竺), 이름은 법란(法蘭)이다. 중인도 사람으로 한나라 명제(明帝) 영평(永平) 10년(67)에
가섭마등(迦葉摩騰)과 같이 중국에 와서『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을 번역한 사람이다.
그러나 지극히 그윽하고도 지극히 신묘한지라 생각하는 이는 가끔 성(性)과 상(相)에 헷갈리고, 황(恍)하고 홀(忽)한지라 이야기하는 이는 간혹 그 시(是)와 비(非)에 어두운 이가 있으니, 하물며 성인과의 거리가 이미 멀어서 들어오는 교법에 결함이 많건만 제각기 길을 달리하여 분주히 수레를 달리고 제각기 다른 가닥으로 방법을 구하고 있을 뿐이니 어찌하랴?
법사께서 일찍이 탄생하실 때엔 방에 공생(空生)27)의 감응이 나타났고 휴(觿)를 차는 동자가 되어서는 마음이 묘덕(妙德)28)의 정성에 부합되시었다. 애욕의 바다에는 벗어날 나루터가 없고 깨달음의 경지에라야 마음을 깃들일 곳이 있다 하여, 그리하여 머리를 깎고 문장을 다듬어 이공(二空)29)의 진리를 널리 모으기 위해 낯선 고을 먼 산천을 두루 헤매며 천 리를 누비셨다.
27) 부처님 10대제자 가운데 해공제일(解空第一), 또는 무쟁제일(無諍第一)이라는 수보리(須菩提)를
말한다.
28)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의 한역 이름이다.
29) 2공(空)은 ①인공(人空)과 법공(法空), ②성공(性空)과 상 말한다.
그러나 번번이 옛 현인들이 보던 책과 유통시킨 책에는 어(魚)가 노(魯)로 바뀌는 틀린 글자가 많아서 짜증스러웠고, 지난 종장(宗匠)들이 들었던 의문과 전해주는 의문은 시(豕)니 해(亥)니 하는 글자에 현혹되어 개탄스러웠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하시기를 음악소리를 담은 나무 밑에는 반드시 금석(金石)의 메아리가 숨어있듯이 5천축(天竺)30)에는 반드시 백 편(篇)의 이치가 갖추어 있으리라 하시고는, 마침내 뜻을 내어 길을 떠나시니 끼니를 잊으시고 험한 길 밟기를 평지와 같이 여기셨다.
30) 오천(五天)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동․서․남․북․중 오방의 천축(天竺)을 가리킨다. 즉 동천(東天)․
서천(西天)․남천(南天)․북천(北天)․중천(中天)을 말한다. 『서역기(西域記)』에 “5인도의 국경은 주위가
9만 4리나 되며 세 곳이 바다에 연한다. 북은 설산(雪山)으로 넓고 남은 좁으며 모양은 반달과 비슷하다”
고 하였다. 여기서 5방의 분배는 지금과는 다르다.
만 번의 죽을 고비도 가벼이 여기시어 총령(蔥嶺)과 열하(熱河)를 건너시고 한 말씀을 소중히 여기시어 암라수원[柰苑]31)에 도달하셨다. 취산(鷲山)32)과 후소(猴沼)33)에서는 수승한 행적을 우러르면서 기적을 보았고, 녹야원34)과 가비라성[仙城]35)에서는 묵은 서적에 남아 있는 교학의 자취를 찾으셨다.
31) 내(柰)라고 하는 것은 암라수원(菴羅樹園), 즉 암라나무 숲에 지어진 정사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은
불사를 내원이라고 부른다. 룸비니라고도 하며 중인도 가비라위성(迦毘羅衛城)에 있었던 숲의
이름이다. 석가모니가 탄생한 장소로서 성지(聖地)이다. 현재 네팔의 남부 타라이 지방에 있는데,
남비니(藍毘尼)․남비니원(藍毘尼園)․유비니(流毘尼)․유미니(留彌尼)라고도 하며, 가애(可愛)․
화향(花香)․해탈처(解脫處)라고 번역한다.
32) 인도 마갈타국(摩竭陀國) 왕사성(王舍城)의 동북에 있으며 부처님이『법화경』을 설하였다고 하는
산이다. 취령(鷲嶺)․취봉(鷲峰)․취암(鷲巖)․취악(鷲嶽)․취대(鷲臺)․영산(靈山)․영취산(靈鷲山)․
기사굴산(耆闍崛山)이라 하는데, 산정에 독수리가 많아서 왕사성 사람들이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33) 인도의 선후지(獮猴池)를 말한다.
34) 중천축 바라나국(波羅奈國)에서 부처님이 성도한 후 처음 이곳에 와서 4제(諦)의 법을 설하여 교진여
(憍陳如) 등 5비구를 제도하였다. 또 예로부터 선인이 처음 법을 설한 곳이라 하여 선인논처(仙人論處),
선인이 주석한 곳이라 하여 선인주처(仙人住處)라 한다. 옛적에 5백 선인이 왕의 음녀들을 보고 욕정이
발하여 신통을 잃고 이곳에 떨어졌다 하여 선인타처(仙人墮處)라고 하며, 많은 사슴이 서식하였다 하여
녹림(鹿林)이라 하고, 또 범달다왕(梵達多王)이 이 숲을 사슴에게 시여(施與)했다고 하여 시록림(施鹿林) 이라고도 한다.
35) 부처님이 탄생한 곳이다.
봄과 가을, 추위와 더위를 겪기 열일곱 해, 눈과 귀로 보고 들은 나라가 무려 130개 나라였는데, 가는 곳마다 우리 황제의 융성한 위엄을 선양하고 그 황후의 권능을 알리셨다. 외도의 도도한 교만을 잠재우고 같은 스승들의 드높은 깃발을 돋우어 주셨다. 이름난 왕들이 고개를 조아리고 훌륭한 도반들이 어깨를 나란히 했으니 만고의 영웅은 오직 법사 한 분뿐이시리라.
법사께서는 그 나라에서 얻은 대승 소승 삼장의 범본(梵本) 총 656부를 모두 큰 코끼리와 날랜 말에 싣고서 길을 나섰으니, 서리를 무릅쓰고 눈발과 싸우며 걷는 길은 하늘이 도와서 잘 뚫렸고 고통스러운 햇볕과 음산한 그늘은 황제의 위엄에 의해 잘 건널 수 있었다.
이에 정관(貞觀) 19년(645)에 경성에 도달하시니 승려와 속인들이 모두 나와 영접하였다. 무리들이 성곽을 꽉 메우고 시끌벅적 늘어섰으니 이 또한 당대에 보기 드문 성대함이었다.
천자께 알현하자 그간의 노고를 간절히 하문하시고 이어 유사(有司)에게 명령을 내리시기를 가져온 경전을 번역하여 널리 퍼뜨리라 하셨으니 많은 사람들이 힘써서 공경하여 받든 사실은 일일이 다 기록할 수 없다.
나아가 이름난 가문의 선비가 세속을 버리고 불법으로 귀의하여 먼 길을 왕래하면서 나라 안팎에서 밝히고 드날린 일, 교화의 걸음을 멈추시고 저 세계로 돌아가심이 마치 땔감이 다 타고나서 불이 꺼지는 것 같았던 일, 이러한 일들까지도 이 전기(傳記)에 갖추어 수록되어 있다.
이 전기는 본래 다섯 권이었으니 위(魏) 나라 서사(西寺)에 있던 사문 혜립(慧立)36)이 지은 것이다. 그의 속성은 조(趙)씨이며 빈국공(豳國公) 유인(劉人)이며 수(隋) 나라 기거랑(起居郞)이며 사예종사(司隸從事)인 의(毅)의 아드님이시다.
36) 당(唐) 나라 때의 승려(615-?)로, 감숙(甘肅) 진주(秦州) 서남의 천수(天水) 사람이다. 속성은 조(趙),
본명은 자립(子立)이다. 혜립(慧立)은 고종(高宗)이 칙명으로 내린 이름이며, 혜립(惠立)이라고도 부른다.
유(儒)와 석(釋)을 널리 상고하여 문장이 능하고 우아하였으며, 묘한 말솜씨가 구름 일듯하고 좋은 생각이 샘솟듯 하였다. 더구나 정색을 하고 곧은 말을 하실 때에는 위엄을 보이시기에 서슴지 않았으며 물과 불에 뛰어들 일이 있더라도 흔들림이나 굽힘이 없으셨다.
삼장의 학행(學行)을 보고 삼장의 형의(形儀)를 흠모하게 되어 우러르는 마음과 찬탄하는 마음이 갈수록 견고하고 갈수록 심원하여져서, 그리하여 그의 사적을 찬술하여 후대에 전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원고를 다듬는 일을 끝내신 후에는 행여 유실될까 염려하시어 땅 속에다 묻어두었기에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그 뒤 몸과 마음에 병이 깊어 목숨이 경각에 달리자 문도들에게 명하여 파내라 하시고 곧 출판하려 하셨지만 바로 입적하시고 말았다. 문인들이 애통해 하면서 슬픔을 이기지 못하는 사이에 이 전기의 원고는 이리저리 흩어졌다.
그 뒤 여러 해 동안 원고를 수소문하고 수집하다가 근래에야 비로소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서문을 쓰고 편집도 하여 책을 만들라고 조르는 것이다.
그러나 내 부족함을 스스로 아는 터라 거절하였더니 또 나에게 말하기를 “불법의 일을 속인들에게 맡길 수야 없지 않습니까? 하물며 꼭 하셔야 할 일을 굳이 사양하시다니요?” 하는 것이다.
내 다시 한 번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물러나와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해보고 종이를 펴고 붓을 들기는 하였으나 마음이 영 껄끄럽고 답답하기만 하다. 이제 호랑이와 표범 같이 힘찬 글에 개나 양 같은 보잘것없는 글을 갖다 붙이고 아름다운 옥돌에다 무른 기왓돌을 섞는 것처럼 본문을 이리저리 뒤섞고 모아서 10권으로 만들었다. 뒷날 이 책을 보는 이들이여, 행여나 비웃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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