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야단법석

수선님 2020. 12. 6. 13:37

한국인에게 불교는 종교인 동시에 전통이다. 서기 372년 고구려를 통해 전래된 이후 불교는 1600여 년 동안 민족과 고락을 같이 하며 DNA로 박혔다. 특히 집단무의식은 언어문화에서 두드러진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의 상당수는 불교적 배경과 향기를 갖고 있다. 개중엔 역사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단어도 있다. 심지어 장로(長老)나 전도(傳道)와 같이 불교와 견원지간인 개신교가 부지불식간에 가져다 쓰는 말도 있다.

불교에서 비롯된 보통명사는 부지기수에 가깝다. 먼저 화두(話頭)가 대표적인 사례다. ‘화두로 떠오르다’ ‘국제사회의 화두’ 등에서 보듯 이야기의 주제 혹은 첫머리를 뜻하는 화두는, 간화선의 화두에서 유래했다. 조계종의 정통수행법인 간화선(看話禪)은 화두를 타파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청정 고결한 어의가 왜곡된 사례

조선시대 숭유억불 흔적일 수도

어떤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실마리라는 의미에서, 세간의 ‘화두’와 출세간의 ‘화두’는 일맥상통한다. 아울러 ‘예사롭고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을 가리키는 다반사(茶飯事)도 선가(禪家)의 언어다. 역대 조사(祖師)들은 깨달음이란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상사에 있다며 현재의 삶에 충실할 것을 강조했다. 아울러 영화나 드라마의 중심인물인 주인공(主人公)은 원래 번뇌망상에 흔들리지 않는 참된 마음을 일컫는 말이었다.

‘살림’의 어원은 ‘살리다’에 명사형 어미 ‘ㅁ’을 첨가했다는 설과 산림(山林)에서 파생됐다는 설로 나뉜다. 주로 사찰이 산 속에 있다 해서 붙여진 산림은, 절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을 지칭한다. 이런 맥락에서 산(山) 대신 산(産)으로 표기하기도 했다.

‘뒷바라지’ 역시 절에서 재(齋)를 올릴 때 망자를 위해 경전을 독송하고 목탁을 치면서 향과 꽃을 공양하는 ‘바라지’가 기원이다. 아랫사람을 칭찬할 때 쓰이는 ‘기특하다’라는 낱말도 불교용어에서 변이됐다. 기특(奇特)은 부처님이 대자대비심으로 중생제도를 위해 이 땅에 오신, 매우 기이하고 특별한 사건을 일컫는다. 건물과 가옥의 출입문을 의미하는 현관(玄關)의 어원도 의외다.

깊고 묘한 이치로 통하는 관문. <벽암록>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남의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하려면 현관을 격파해야 한다”고 적혔다. 또한 ‘스승’은 스님을 가리키는 사승(師僧)에서 왔다. 지옥의 비슷한말인 나락(那落), 시간의 미세단위인 찰나(刹那)도 처음엔 불경에서 썼다.

한편으론 당초엔 청정하고 고결했던 어의(語義)가 왜곡되고 훼손된 경우도 나타난다. 조선시대 숭유억불의 흔적일 수 있다. 해방 이후 국가권력의 비호로 급성장한 개신교에 밀려 숨죽여야 했던 세월의 반증이란 목소리도 보인다. 예컨대 오늘날 난리법석 또는 난장판과 동의어로 취급받는 ‘야단법석(野壇法席)’은 야외에서 열리는 대규모의 법회를 의미했다.

‘싸움의 끝장을 보자’는 이판사판(理判事判)도, 수행에 전념하는 스님인 이판과 절의 행정을 맡는 스님인 사판의 총칭이 뒤틀린 말이다. 강사(講師) 스님을 가리키는 아사리가 ‘개판’과 유사한 아사리판으로 변질된 것도 안타깝다.

얼빠진 인간을 골리기 위한 회상(和尙)이란 폄칭은, 본래 지혜와 덕망이 높은 큰스님을 향한 존칭이었다. 부처님의 친절하고 유려한 설법을 뜻하던 장광설(長廣舌)은 이즈막 쓸데없는 중언부언을 손가락질할 목적으로 애용된다. ‘건달’도 제석천의 음악을 관장하던 신(神)인 건달바(乾達婆)가 들었으면 땅을 쳤을 일이다.

 

[불교신문3102호/2015년5월2일자]

 

 

 

 

 

 

 

[출처] 야단법석|작성자 임기영불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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