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 소임 중에 주지가 있다. 절의 대표자인 셈이다. 이십대 초반 시절, 계룡산 신원사에서 천일 기도 정진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일찍, 절 대표 전화가 울렸다. “여보시유~ 거기 사장님 좀 바꿔 주시유” 투박한 충청도 억양을 가진 나이 든 남성의 목소리다. “네, 전화 잘 못 거셨습니다.”말하고 끊으려는데 남성이 급히 말한다. “거, 신원사 절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맞구만요, 그러니께 신원사 사장님 좀 바꿔주시유.” 관셈 보살... 나는 그때 해인사 주지 스님도 해인사 사장님으로 불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절의 대표자인 주지는 무슨 일을 할까? 수행과 포교에 전념하는 스님들을 이판승이라 한다. 행사와 재정 등 절 살림을 책임지는 소임자는 사판승이라고 한다. 이판사판(理判事判)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주지는 사판의 최고 책임자이다. 그러나 규모가 작은 절은 법회와 템플스테이, 기도와 공사 감독까지 주지가 다 한다. 그야말로 이판사판인 셈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주지 노릇을 잘 한다고 평가 받을까? 이런 물음 앞에 어느 분이 간단하게 답을 내놓았다. “그냥 뭐든 주면 주지 노릇 잘 하는 거다.” 왜냐고? 주지니까 뭐든 주기만 하면 된단다. 밥 주지, 재워 주지, 차 주지, 들어 주지, 웃어 주지, 심부름 해주지, 책 읽어 주지... 그저 이렇게 주기만 하니 주지 하기 참 쉽다고 한다. 주기만 하면 주지라면, 주지는 머리카락 없으신 출가 수행자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누구나 뭐든 주기만 하면 되니, 머리카락 바람에 날리시는 분도 조계종 총무원장의 임명장이 없어도 마음만 먹으면 주지가 될 수 있겠다. 서설이 너무 길었다. 지금 나는 실상사 주지가 아니지만 늘 주지를 하고 있다. 그 중에서 다른 주지들과 달리 나는 특별한 주지를 즐기고 있다. 다른 스님들이 차 주지, 밥 주지, 재워 주지는 늘 잘 하고 있으니 나는 거기에 ‘걸어 주지’에 시간과 마음을 기울인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실상사는 지리산 둘레길을 만든 곳이다. 지리산길을 만든 내력은 나중에 설명할 것이다. 여하튼 이웃들이 절에 오면 가벼운 산책이나 혹은 서너 시간 걸리는 둘레길을 동행한다. 모두 좋아라 한다. 돈을 들이지 않고도 나눌 수 있는 보시를 ‘무재칠시(無財七施)’라고 하는데, 아름다운 길을 따라 길동무를 하면 무재팔시가 된다.
8월 3일과 4일 이틀 동안 청주에서 함께 꿈을 이루어가는 고등학생과 대학생 들 8명이 실상사를 방문했다. 모두들 맑고 밝고 따뜻한 기운을 간직한 청년들이었다. 차담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그들에게 물었다. 이 절에 ‘진짜 원조 스님’이 두 분이 있는데 누군지 아느냐고. 당연 알 리가 없다. 내가 말한다. “지금 여러분은 템플스테이를 왔는데, 템플스테이를 처음 만든 스님이 이 절에 계십니다.” 모두 눈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내가 답한다. “ 그 스님은 바로 법인 스님입니다.” 그리고 법인 스님이 바로 ‘나’라고 말하니, 다들 대박! 하며, 환호 한다. 이어 2000년에 해남 대흥사에서 ‘새벽숲길’이라는 주말 산사 체험 프로그램을 시작한 이래 템플스테이가 한국문화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은 내력과 비사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실상사 큰 어른이신 도법 스님이 지리산 둘레길을 만든 사연도 들려주었다. 그러니 여러분은 매우 유명한 곳에 왔다고 주입시켰다. 이걸 요즘 젊은이들 말로 하면 ‘자뻑’에 해당한다. 나무 관셈 보살... 템플스테이 일정 중에 산책은 모두가 좋아 한다. 첫째 날 저녁 공양을 마치고 청주에서 온 청년들과 절 옆 둑방길을 함께 걸었다. 뱀사골에서 흘러나오는 남천의 물소리를 들으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삼삼오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마음 가는대로 걷는다. 길에 다동이가 함께 걸었다. 다동이는 어떤 인연으로 2년 전에 내게 온 리트리버 견(犬)공이다. 물길 따라, 들길 따라, 숲길 따라 걸었다. 걸으면서 청년들이 내게 말을 건넨다. 방에서 차담을 할 때 보다 훨씬 표정이 밝고 스스럼이 없다. 역시 나는 여러 주지 역할 중에서 ‘걸어 주지’가 체질에 맞는 것 같다. 가둬 둔 마음을 연다는 것, 눈을 마주 하고 말을 건넨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마음에 상처가 깊고 말 못할 사연이 많은 사람들의 경우 어찌 처음 본 사람과 쉽게 대화할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일수록 한정된 공간에서 자기 말을 편하게 하지 못한다. 그런데 함께 걷다보면 자연스레 닫힌 마음의 문이 열린 경우가 많다. 해남의 어느 암자에 있을 때였다. 어느 날 교육청에서 지인을 통해 내게 제안을 해왔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랬다. 고등하교 2학년 학생 3명과 함께 스님이 2시간 정도 차담을 해달라는 요청이다. 학생들의 어머니도 동행한다고 한다. 제안을 받고 응낙을 했다. 그런데 다음 날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게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지인에게 학생들에 대해 상세하게 물었다. 듣고 보니 내 예상이 어긋나지 않았다. 이른바 부적응학생들을 위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는데, 나와의 차담도 거기에 끼어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인을 불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차담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짐작컨대 스님의 좋은 말씀 듣고 학생들이 정신 차리기를 바라는 심사인 것 같은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건 아니다 싶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차를 마시면서 2시간 만에 바뀔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사람이 ‘좋은 말’로 금방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진지하게 경청하는 지인도 이내 수긍한다. “스님 말씀 듣고 보니 맞는 거 같습니다. 애들은 절도, 찻 자리도 낮설거예요. 더구나 스님은 어렵고 무서울 수도 있는데, 그런 찻자리가 고문일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수정 제안을 했다. 점심 공양을 포함해서 7시간을 나와 함께 하자고 했다. 취지를 듣고 교육청 관계자들이 흔연하게 제안을 받아들였다.
며칠 후 약속한 날에 어머니와 학생들이 차를 타고 암자에 왔다. 예상했던 대로 모두 어색하고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가볍게 인사 나누고 마당 평상에서 음료수와 과일를 나누었다. 그리고 사전에 약속한 대로 난이도가 적은 산길을 걸었다. 학생들은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힘들지? 라는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걷는다. 한 시간 정도 걸으니 학생들의 표정이 다소 풀린다. 걷다가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면 먼저 얼굴이 말을 하는 법이다. 내게 가벼운 질문을 한다. 나도 가볍게 답한다. 이어 산정에 올랐다. 진도와 완도 바다가 일망무제로 보인다. 아! 하고 학생들이 감탄을 한다. 그리고 하염없이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얼굴에 풀린다. “스님, 공부가 너무 힘이 드는데 어떻게 해요?” “친구들과 함께 사는 기숙사 생활이 재미 없어요” 늘 간직하고 있지만 꺼내지 못하고 있는 속마음을 전한다. 이럴 때 나는 눈을 마주 하고 듣기만 한다. 성급하고 섣부른 응답은 위험하다. 너의 길은 네가 찾으리라. 이렇게 너의 두 발을 딛고 길을 걸었듯이 너희들도 사람의 길에서 길을 찾으리라. 산길을 내려와 암자에서 밥을 함께 먹었다. 그리고 차를 나눈다. 이미 학생들은 말이 많아졌다. 이것저것 묻는다. 그래도 나는 말을 아낀다. 학생들이 찾아야 할 답을 내가 가지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차담을 마치고 너희들끼리 편히 쉬어라고 말하고 차담을 끝낸다. 학생들은 피곤한지 달게 잠을 잔다. 기분 좋게 깨고 나서 산을 내려간다. “스님, 다음에 친구들과 와도 돼요?” 그 후 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걸었다. 산길도 걷고 들길도 걸었고 바닷길도 걸었다. 침묵하며 걸었고, 노래하며 걸었고, 제법 묵직한 주제를 가지고 묻고 답하며 걸었다. 누군가는 걸으면서 노래하고, 누군가는 쌓이고 맺힌 울분을 토했다. 이 모든 사람의 갖가지 풍경이 걸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생각해 보니 ‘걸어 주지’의 원조는 나의 스승 석가모니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탁발하면서 걸었다. 다른 곳으로 갈 때도 걸었다. 시자 아난다와도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또 선생님은 마을길을 걸으면서 사람들을 보았다. 그 사람들의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서 사람들의 소리를 생각하며 걸었다. 그래서 나의 스승은 길 위의 명상가이고 길 위의 상담자였다. 부처님의 제자들도 걸으면서 수행했다. 마을에 밥을 얻어먹으려고 걸으면서 스승이 어제 하신 가르침을 사유하고 음미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자연스레 스승의 길을 흉내 내고 있는 셈 이다.
인간이 다른 종들과 탁월한 지위를 확립한 것은 약 300만 년부터 시작한 ‘직립’이라고 한다.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직립인간)는 손을 사용하게 되면서 도구를 만들게 되었고, 여성은 두 손으로 아이를 안아 기를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직립한 인간은 고개를 빳빳이 쳐들게 되면서 성대구조가 바뀌게 되었고 다양한 발음이 가능해졌다. 발성과 함께 다양한 언어를 사용했다. 언어는 곧 사유 기능의 확장을 가져온다. 직립과 보행, 두 발로 걸으니 보이는 것들이 달라졌을 것이다. 자연스레 보이는 것들에 대한 사유가 발생했을 것이다. 걸고 뛰면서 사유와 감정과 언어가 기쁨과 사랑으로 표현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인간이 ‘직립으로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교통과 건강에 한정하지 않음을 알 수가 있다. 오! 나무 호모 에렉투스... 오늘도 나는 걷고 또 걸으리라. 걸으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걸으리라. <화엄경>에서 말한다. 염염보리심(念念普提心) 처처안락국(處處安樂國)이라고. 늘 매 순간 청정하고 깨어있는 마음을 간직하면 바로 그 자리가 안락한 극락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걷는 걸음 걸음에 성찰하면 바로 그곳이 참회도량이다. 걸음 걸음에 무언가를 사유하고 의심하면 바로 그곳이 참선도량이다. 걸음 걸음에 어제 읽은 글의 내용을 깊이 헤아리면 그곳이 바로 인문학 교실이다. 걸음 걸음에 무심과 평온을 간직하면 그곳이 극락이다. 그런 그가 부처다. 오늘도 내일도, 보보자애심(步步慈愛心·걸음마다 자애로운 마음을 일으키면) 보보연화생 (步步蓮花生·걸음마다 연꽃이 피어오른다네). *글 법인스님/ 실상사 한주 & 실상사 작은학교 철학선생님 & 전 조계종 교육부장 & 전 참여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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