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은 건강에 관한 담론이었다. 의학사 연구자들은 의학의 관심이 건강과 질병의 프레임에 있음을 말한다. 정상상태와 병리적 상태의 이분법이야말로 의학의 기본이었다. 하지만, 근대를 지나며 의학은 생명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분과별 전문화의 길을 걷는 과학이 됐다. 생리학과 병리학을 기본으로 다양한 인체의 계통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다. 특히 과학혁명 이후의 의학은 형이상학적 태도에서 벗어나 분과학문의 하나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통합의학이라는 이름으로 몸과 마음을 종합적으로 보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명상에 관심 갖는 의학의 분야가 바로 통합의학이다.
| 명상연구 30년간 1200배 늘어
명상을 효능을 실험하는 논문들이 쏟아지듯 나오고 있다. 명상이 불안과 우울, 공황장애, 수면장애,트라우마, 암, 알츠하이머, 중독, 면역강화 등 각종 신체적 정신적 증상의 완화와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다.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 of Health, NIH)이 운영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미국국립의학도서관(United States National Library of Medicine, NLM)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의학저널을 통해 발표되는 논문을 색인하는 PubMed 홈페이 지에서 명상meditation이라는 주제어로 검색해보면 1988년 9건에 불과했던 논문수가 1998년 42건, 2008년 166건, 2018년 495건으로 크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1988년에 비해 55배가 늘었다.
마음챙김명상Mindfulness를 주제어로 검색 해보면 더 드라마틱한 변화를 알 수 있다. 1988년 1건, 1998년 5건, 2008년 104건, 2018년 1,216건 으로 30년간 1200배 이상 논문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최근 10년간의 변화는 놀라울 정 도다. 2018년의 논문 수 1,216건은 전년인 2017 년에 비해 무려 303건이나 늘어나 말 그대로 연구 가 폭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명상에 대한 연구가 양적으로만 늘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연구초기에는 심리상담 분야에 집중됐던 연구는MBSR(mindfulnessbasedstressreduction : 마음챙김 기반 스트레스 감소), 암 치료, 통증치료, 알츠하이머 치료, 면역강화, 생리학, 신경과학 등의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 알츠하이머 등 연구로 확산
명상연구는 임상적 연구뿐만 아니라, 신경과학이 나 생리학, 뇌과학 등과 함께 발전하고 있다. 즉 명 상효과의 매커니즘을 밝혀내는 신경과학이나 뇌 과학이 발전하면서 구체적인 임상과 치료분야로
확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임상과 치 료의 분야는 사회적 흐름과 관련을 맺고 있다. 예를 들어 우울증이나 통증, 노인성 치매,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인간면역결핍증) 등 사회적으로 크게 증가하는 질병이나 증상에 관한 연구가 증가하 고 있는 것이 그 예다.
2018년11월알츠하이머저널(Journal of Alzheimer’s Disease) 제66호에 소개된 연구도 그러한 맥락을 보여준다. 알츠하이머 전조증상을 보이는 성인들 에게 명상과 음악치료를 했더니 증상이 완화됐다 는 연구결과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대 공중보건 학과 교수인 킴 이네스Kim Innes박사팀은 ‘주관적 인지 저하를 가진 성인의 세포노화 및 알츠하이머 병의 혈액 생체 표지자에 대한 명상 및 음악 듣기의 효과’라는 논문에서 알츠하이머병의 강력한 예측인자인 주관적 인지능력 저하 상태를 겪고 있는 노인 60명을 대상으로 12주 동안 진행해 명상의 효과를 입증했다.
연구는 대상자들을 명상과 음악 청취 프로그램에 무작위로 배정해 12분간 매일 시행하도록 하고 첫 3개월 동안 매일 12분씩 연습 하도록 요청했다. 다음 3개월은 참가자 재량에 따 라 실시하도록 했는데 증상완화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명상과 음악 청취 양쪽 군 모두에서 기억 력과 인지능력 개선이 보고됐다. 이 연구의 주목 할 만한 점은 단순 설문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혈 액검사를 통한 유전 물질들의 변화로 나타낸 결과 라 더욱 주목할 만하다.
| 암 수술 후 회복에 활용되는 명상
명상은 암환자들의 치료를 위한 보조 치료요법으 로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미국의 의학논문색인 아카이브인 PubMed를 통해 검색해보면 1998년 마음챙김 명상과 암을 주제로 한 논문은 한편도 없었다. 그러나 2008년에 11편, 2018년에는 97편의 논문이 발간돼 큰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주로 연구되는 내용은 암을 직접적으로 치료하는 분야 는 아니다. 암 진단이후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불 안, 분노,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보조 치료분야가 주된 연구분야다.
캐나다 탐베이커암센터 린다 칼슨 박사팀은 2014년 유방암 치료를 받은 여성을 대상으로 명상의 효과를 보는 실험을 진행했다.
첫 번째 그룹은 마음챙김 명상을 8주동안 시행했고,두번째 그룹은 집단지지 표현요법 치료를 12주 동안 받았다. 집단지지 표현요법은 환자들이 모여 억눌린 감정을 표현하면서 서로를 격려하는 행동심리치료다. 세번째 그룹은 비교대상으로 퇴원전 6시간 짜리 스트레스 관리 세미나를 받은 그룹이었다.
연구팀이 조사한 생리적 지표는 텔로미어의 길이다. 텔로미어는 세포 안에서 유전자정보를 담고 있는 염색체의 말단 부분으로 염색체를 안정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텔로미어가 조금씩 짧아지고 결국 고갈이 되면 염색체가 불안정해지면서 그 세포는 죽는다.
텔로미어 길이는 그 사람의 생리적 나이를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지표로 여겨진다. 재미있는 것은 스트레스 가 많은 사람들이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속도도 빠르다는 연구 결과다. 린다칼슨 박사의 연구결과를 보면 명상을 한 그룹과 지지 표현요법치료를 한 그 룹은 텔로미어의 길이가 변화가 없었던 반면, 단순 교육을 받은 사람은 텔로미어의 길이가 짧아졌다는 사실이다. 암환자의 스트레스 관리를 통해 암치료후 회복에 효과가 있었다는 연구다.
이러한 임상연구는 우리나라에서도 진행됐다. 중앙대 간호대 윤미라 교수팀이 2016년 발표한 ‘유방암 생 존자의 마음수련 명상경험’이란 논문이 그것이다. 윤미라 교수팀은 수술이나 항암치료를 받은 유방 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명상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 유의미한 개선효과가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실험에 사용된 명상방법은 마음챙김 명상 8주 프 로그램이었다. 주된 치료효과는 명상을 통해 부정 적인 기억을 버리고, 긍정적이고 스트레스가 줄어 든 마음상태를 찾는 삶의 변화였다.
| 균형과 조화, 세상을 꿰는 이치
의학분야에서 속속 확인되는 연구성과의 기본 메 커니즘은 명상이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며, 이를 통해 스트레스와 불안, 분노 등을 감소시키는 기 능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 으면서 자연스럽게 특정 질환의 증상완화에 역할 을 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몸을 치료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의학이 명상연구를 통해 발견하고 있는것은 불교가 오래전부터 이야기해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붓다께서는 이미 사성제를 통해 모든 고통의 원인은 집착이라고 설파한 바 있다. 또 팔정도를 통해 집착을 끊어내는 사념처 수행을 방법론으로 제시한바 있다. 물론 일부에서는 명상연구의 방법론이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효과가 과장되었다는 반박도 있다. 하지만, 불완전함 속에서도 명상연구는 계속된다. 과학과 의학은 언제나 실험과 검증을 통해 내려지는 잠정적 결론 이다. 새로운 진실이 밝혀지면 옛 이론은 폐기된 다. 지금까지 그런 길을 걸어왔다. 불교는 과학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과학이 놓치는 이타적 삶의 중요성에 대해 계 속 강조한다. 불교와 과학이 만나는 교차로에 자비와 보살정신이 놓여 있다.
글. 김우진
김우진 kimwj5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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