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온 걸 소설로 쓰자면 열권도 넘을 거야!”
아침저녁 드나드는 앞집 할머니가 입에 달고 사는 말씀이다. 구곡양장九曲羊腸에 진 주름이 얼마나 짜글짜글하기에 저러나 싶어, 한번은 그 소설 좀 들어보자고 청했다. 할머니는 신명난 소리꾼처럼 손짓 발짓에 침까지 튀기면서 지나온 설움들을 제법 실감 나게 풀어냈다. 허나 할머니의 판소리는 소설 열권 분량은 커녕 겨우 한 시간 남짓 만에 막을 내렸고, 주섬주섬 옷을 챙긴 할머니는 “있었던 일 다 말로 하자면 사나흘도 모자라”라는 말과 함께 퇴장하였다. 혹여 ‘다하지 못한 말씀’이 있나 싶어 그 후로도 여러 차례 할머니의 연설을 경청했지만 녹음테이프를 재생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질 않았다.
게다가 열변을 토하며 거론한 사건들, 즉 시어머니에게 구박당한 이야기, 남편 바람피운 이야기, 끼닛거리 없어 돈 빌리러 다닌 이야기, 빚쟁이들 찾아와 난리친 이야기, 줄줄이 딸만 낳다가 아들 하나 얻은 이야기를 할머니는 ‘세상 누구도 겪지 못할 나만의 이야기’로 소개했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는 그렇지를 않았다. 사실 그 정도 스토리라면 나의 어머니를 비롯해 그 시대를 산 여인이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소리였다.
할머니는 자신의 삶에 특별한 사건들이 많았다지만 내 눈엔 영 그렇지 않다. 할머니의 삶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아도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땐 꽤 심각하고, 절박하고, 결정적인 순간이라 느꼈던 것도 같은데 돌아보니, 그저 그만그만한 일에 어영부영 대처하고 그냥저냥 살아온 평범한 삶이었다. 그래서 냉정히 말하자면 “나의 삶에도 앞집 할머니 삶에도 깜짝 놀랄 만큼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고 하겠다.
그럼, 부처님의 삶은 어떠했을까? 부처님이 평범치 않은 분이시긴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분의 삶이 놀라운 사건들의 연속이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부처님과 만남으로 삶의 지침이 완전히 바뀐 당사자들 입장에서야 부처님의 일거수일투족과 말씀 하나하나가 깜짝 놀랄 특별한 사건들로 기억되겠지만,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본 부처님의 삶은 그다지 특별하달 것이 없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조용히 명상하고, 해가 한 뼘쯤 오르면 가사와 발우를 챙겨 밥을 얻으러 다니고, 밥을 얻었으면 조용한 곳에 앉아 밥을 먹고, 밥을 다 먹었으면 샘가로 가 발우를 씻고, 발우를 씻었으면 숲속 시원한 나무 그늘을 찾아 다시 명상에 잠기고, 그러다 다리 아프고 허리 아프면 일어나 주변을 거닐고, 간간이 누군가 찾아와 설법을 청하면 자분자분 이야기를 나누고, 사람들이 돌아가면 조용한 숲에서 다시 명상에 잠기고, 그러다 밤이 깊으면 잠자리에 들었다.
더 줄여 말하면, 부처님의 삶은 밥 먹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가만히 앉았다가 잠자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여러 경론에 수록된 내용들 역시 대부분 그런 일상 속에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이야기로 채워져있다. 게다가 사람들과 만남에서도 누구도 막지 않고 누구도 붙잡지 않으셨으니, 드라마로 치자면 애착과 원망과 분노와 그리움 등 자극적인 양념이 빠진 매우 싱거운 드라마이다.
그런 부처님의 삶에 당사자뿐 아니라 제3도 동의할 ‘깜짝 놀랄 만큼 특별한 사건’이 몇 번 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희대의 살인마 앙굴리말라Aṅgulimāla 를 교화한 사건이다. 이 이야기는 『맛지마니까야』 「앙굴리말라 경」, 『불설앙굴마경』, 『증일아함경』 등 여러 경전에 소개되어 있다.
앙굴리말라의 본래 이름은 누구도 해치지 않는 자라는 뜻을 가진 아힘사까Ahirṅsaka였다. 아힘사까는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고 용감하였다. 그의 부모는 아힘사까에게 큰 기대를 걸고, 당시 학문의 중심지였던 딱까실라Takkasīla로 유학을 보냈다. 능력 있고 충직했던 아힘사까는 스승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고,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의 시기질투도 한 몸에 받았다. 결국 아힘사까는 스승의 아내와 부정한 관계를 맺었다는 누명을 쓰게 된다. 제자들과 아내의 모함에 스승은 이성을 잃었고, 결국 아힘사까에게 졸업선물로 천 명의 오른쪽 손가락을 바치라고 요구하였다.
충직했던 아힘사까는 고향인 코살라로 돌아와 숲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양심의 가책을 접고 사람을 죽이기 시작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의 손가락 (aṅguli) 을 실에 꿰어 화환 (māla) 을 만들어서 목에 걸고 다닌다고 하여 그를 ‘앙굴리말라’라고 불렀다. 그의 무작위 살인행각으로 마을과 도시는 곧 황폐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사위성에서 공양을 마치고 기원정사로 돌아와 처소를 정돈한 다음, 발우와 가사를 들고서 앙굴리말라가 머문다는 숲으로 향했다. 숲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목동과 양치기와 농부들이 위험을 경고하며 극구 만류했지만 부처님은 침묵으로 거절하며 길을 재촉하였다.
마침 앙굴리말라는 999명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그를 찾아온 어머니까지 죽이려던 참이었다. 숲으로 들어선 부처님을 발견한 앙굴리말라는 코웃음을 쳤다. 수행자는 그에게 너무나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앙굴리말라는 무기를 챙겨들고 세존을 추격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온 힘을 다해 달리는데도 천천히 걷는 부처님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앙굴리말라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했다. 자신은 평소 달리는 코끼리와 마차와 사슴도 따라잡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앙굴리말라는 걸음을 멈추고 소리쳤다.
“멈춰라, 이 겁쟁이 사문아!”
그때 웅장한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돌아왔다.
“나는 멈추었다. 그대도 멈추라.”
앙굴리말라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너는 가고 있으면서 ‘나는 멈추었다’고 하고, 이미 멈춘 나에게 ‘멈추어라’고 말하니,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인가?”
그러자 부처님께서 앙굴리말라에게 말씀하셨다.
“앙굴리말라, 나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 대한 폭력을 멈추었다. 그러나 그대는 살아있는 생명에게 여전히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그러니 나는 멈추었고, 그대는 멈추지 않았다.”
이 한 마디가 깊이 묻혀있던 앙굴리말라의 양심을 일깨웠다. 그는 당장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맹세하였다.
“두 번 다시 나쁜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라, 비구여.”
희대의 살인마가 단 한마디에 뉘우치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희대의 살인마를 그 자리에 제자로 받아주다니, 또 놀라운 일이었다. 부처님은 앙굴리말라와 둘이서 며칠을 함께 보내고, 그를 데리고 기원정사로 향했다. 누구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미 그의 눈빛은 고요하고, 움직임이 부드러웠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보호를 받으면서 깊은 숲에서 은둔하며 수행한 앙굴리말라는 오래지 않아 아라한이 되었다. 그 후 사위성으로 탁발을 나설 때마다 피투성이로 돌아오기 일쑤였지만 그는 끝내 폭력으로 대항하지 않았다. 그리고 숲으로 돌아와서는 해탈의 기쁨을 노래하였다.
예전에 제멋대로 살았더라도
이제는 그쳐 바르게 사는 자그는 세상을 비추네.
구름을 벗어난 달님처럼.
예전에 저질렀던 악한 짓을
지금의 선한 일로 덮는 자그는 세상을 비추네.
구름을 벗어난 달님처럼.
되돌아보면, 나의 삶은 반복되는 실수와 후회의 연속이었다. 그런 나에게 앙굴리말라만큼 큰 위안이 되고, 지침이 되는 분도 없다. 아무리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한들 앙굴리말라만큼 할까? 그랬던 그도 아라한이 되었는데, 하물며 나라고? 그런데 왜 나는 아직도 고뇌의 늪을 탈출하지 못하고 있을까?
멈추어야 할 때임을 뻔히 알면서도 멈출 줄모르는 병통 탓이리라. 몰라서 실수를 반복한다 면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불편하고 불쾌한 삶이 자신의 태도와 행동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정한다면 자신을 엄하게 꾸짖어야 하리라.
“이제 그만!”
획기적인 삶의 전환, 삶의 특별한 사건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성재헌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해군 군종법사를 역임하였으며, 동국대학교 역경원에서 근무하였다. 현재 동국역경위원, 한국불교전서번역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계종 간행 『부처님의 생애』, 『청소년 불교입문』 집필위원으로 참여하였고, 저서로 『커피와 달마』, 『붓다를 만난 사람들』, 『육바라밀』 등이 있다.
[출처] [공유] [붓다의 명장면] 나는 멈추었다, 그대도 멈추라.|작성자 둘이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