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생명윤리사상 연구
- 뇌사와 장기이식을 중심으로 -
곽 만 연 *
목 차
Ⅰ. 들어가는 말
Ⅱ. 불교의 생명윤리 사상
1. 뇌사란 무엇인가
2. 불교의 죽음관
3. 불교의 인간관과 육체관
4. 무속신앙과 유교의 인간관과 육체관
5. 장기이식의 근거를 위한 불교사상
Ⅲ. 맺음말
·참고문헌
·영문초록
Ⅰ. 들어가는 말
불교는 자비와 보시의 윤리를 강조하는 종교이다.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전에 의하여 각막·신장·심장·다리뼈와 관절 등 거의 모든 인간신체를 다른 필요한 사람에게 이식시킬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오늘날 우리들 불자 중에는 흔히들 자기자신의 장기는 자기자신의 인격의 일부라는 말을 하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신체를 그 일부로서 가지고 있는 그러한 인격은 칸트(I. Kant)가 말한 바와 같은 참된 인격, 즉 신체성을 초월한 진실된 자기가 아니라, 신체성과 동일한 차원의 하나의 '에고(ego)'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를 불교적인 입장에서 말한다면, 자기자신의 장기는 결코 자기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러한 사고방식은 자아중심의 사상으로서 불교에서는 그것을 부정한다. 나의 얼굴에 붙어 있다고 해서 내 눈은 나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자신의 장기는 모두가 부처로부터 베풀어 받은 것이라고 해야 한다. 즉, 우주로부터 베풀어 받은 것이 잠시동안 나 자신에게 맡겨진 것일 뿐이다. 그것을 나의 것이므로 누구에게도 줄 수 없다고 그 소유권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불교의 근본사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찍이 우리의 불교지도자들 가운데 자기자신이 죽은 후에 자기의 시신을 소중하게 장례 치르기를 당부한 분은 없었다. 어떤 분은 자기의 시신을 버려서 다른 생물에 공양하라고 하신 분도 있었다는 말도 듣고 있다. 자기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삼라만상의 모든 생물의 은혜를 입었으므로 그들에게 자기의 시신이나마 보은의 뜻으로 공양하겠다는 거룩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들 인간이란 제아무리 다른 생명을 해지지 아니하려고 조심해도 다른 생명의 희생 없이는 자기의 생명을 보존할 수 없는 것으로, 이것이 우리 인간의 깊은 죄업, 즉 숙업(宿業)이라고 할 것이다.
오늘날 의학의 발달로 뇌사상태의 사람의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공양함으로써 귀중한 생명을 살릴 수가 있다면, 그러한 의료에 협력한다는 것은 결코 불교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적극적으로 권장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협력을 모든 불자들에게 의무적으로 부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잘못하면 전체주의적인 경향으로 흐르기 쉬운 위험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기제공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발적인 의지에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장기를 제공하고자 원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의 환경이 아직도 사회적인 합의가 도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써 주저하게 만든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뇌사나 장기이식의 문제가 불교의 근본정신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하게 밝히는 일은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불교계에서는 아직도 어떤 의미에서는 지나치게 신체에 집착하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기에 아직도 장기이식이나 뇌사에 관해서는 불자로서의 명확한 연구나 발언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우리의 생각들은, 그 뿌리에는 여전히 옛날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애니미즘'이라든가 '샤머니즘'이라든가 아니면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는 유교적 윤리도덕의 관념이 불교의 가르침보다도 일상생활면에서 우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들이 불자로서 그러한 샤머니즘이나 애니미즘, 또는 옛부터 이어 내려온 낡은 사회도덕율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며, 또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여기에서 우리는 불자로서의 확고한 신념을 피력하기 위한 바탕으로서, 앞서 말한 바와 같은 불교의 걸림없는 죽음관에 대하여 다시 한번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오늘날의 뇌사나 장기이식이라는 인류의 새로운 생명의 과제에 대하여, 참된 종교의 입장에서 그리고 불교도로서 떳떳하게 발언하지 않으면 안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계(敎界)에서는 아직도 지나치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현실을 보면서 우리는 심히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것이 솔직한 우리의 심정이라고 하겠다.
Ⅱ. 불교의 생명윤리 사상
1. 뇌사란 무엇인가
1) 뇌사의 개념
과학기술과 서양 현대의학의 급속한 발전에 의해 인공호흡기가 발명되었다. 인공호흡기가 발명되기 이전의 인간의 죽음은 심장 박동이 정지하고부터 뇌의 기능이 정지하기까지의 시간차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의사의 사망확인은 가족에게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공호흡기라는 기계가 개입함으로써 인간의 생명기능 정지에 대한 시간의 차이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죽음이란 3가지 징후, 즉 '심장박동의 정지·자발적인 호흡정지·동공의 고정화'를 죽음의 판단기준으로 삼았다. 이 3가지의 기준은 시간의 차이가 없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달에 의해 인공호흡기라는 것이 인간의 죽음에 인위적으로 개입함으로써 '뇌사'라는 새로운 문제점을 초래하였다.
뇌사라는 것은 뇌의 기능 작용이 정지하고 호흡의 정지가 일어나지만, 인공호흡기에 의해 인공적으로 호흡이 유지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심장의 박동, 폐호흡을 자신이 유지할 수 없지만 기계로써 유지되는 상태'이다. 종래의 인간에 대한 죽음의 징후는 동공의 고정화, 즉 뇌간기능의 정지가 마지막의 확인 단계였지만, '뇌사'에서는 '뇌사의 기능정지, 즉 동공의 고정화'가 먼저 생기고, 심장의 맥박, 자발적인 호흡은 기계로서 유지되는 것이다. 기계에 의해 심장박동이나 호흡이 유지된다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족들의 경우에는 좀처럼 죽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상태이다. 특히 뇌사는 현대 의학적인 관점으로는 죽음의 영역에 속한다고 정의할 수 있지만, 인공호흡기를 멈추게 하는 것은 역시 인간의 인위적인 행위가 개입되어야 한다. 따라서 인간의 죽음에 인위적으로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가가 문제의 여지를 안고 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심폐사(심장사)'와 '뇌사'라는 두 가지의 죽음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런데 뇌사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그 세 가지 유형이란 다음과 같다.
① 대뇌·소뇌·척수의 모든 부분이 본래로 되돌아갈 수 없는 상태의 기 능정지로, 이른바 모든 중추신경의 기능정지 상태
② 전뇌사, 즉 대뇌·소뇌·뇌간이 기능 정지한 상태
③ 뇌간사, 즉 뇌간(중뇌·연수·뇌교)의 기능정지 상태
미국 대통령위원회(1981), 일본의 의사회생명윤리간담회(1981)·후생성 연구반(1985)에서는 뇌사의 정의를 '뇌간을 포함한 전뇌기능이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올 수 없는 기능정지 상태'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영국왕립의학회연합총회(영국규약, 1979)와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뇌간의 영구적인 죽음'을 뇌사로 규정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전자의 입장이 널리 지지를 받고 있다.
영국의 뇌사 규정인 '뇌간사'를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뇌간은 생명유지에 불가결한 호흡, 체온을 유지시키는 중추가 있고, 의식부분을 조절하는 기능이 있다. 뇌간에 장애가 일어나면 의식은 혼수상태가 되고 호흡이나 체온 조절 등의 생명유지에 필요한 기능이 정지한다. 따라서 뇌간은 죽음으로 다가가며, 결국 전뇌의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것을 '뇌간사'라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뇌간을 포함한 전뇌(대뇌·소뇌·뇌간)의 죽음'을 뇌사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뇌사의 원인으로서는 보통 자동차 사고에 의한 뇌출혈 등의 뇌가 손상되는 경우와 일산화탄소 중독, 약물중독에 의한 원인이 가장 비율이 높다고 한다.
2) 뇌사와 식물상태의 차이점
식물상태란 대뇌의 중요기능이 완전히 상실되었거나, 또는 거의 기능상실에 가까운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식물상태는 자발적인 호흡 기능을 유지시키거나, 심장박동, 갖가지의 반사작용 등의 작용을 담당하는 뇌간의 기능은 살아있으므로 뇌간사, 전뇌사와는 구별된다. 다시 말해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인 호흡기능, 순환계의 조절은 정상, 또는 정상에 가까운 상태이다. 그러나 뇌간사, 또는 전뇌사의 상태는 이와 같은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식물상태에서는 자발적으로 미세한 호흡이 가능하므로, 인공호흡기를 사용하지 않고 영양분만 공급하면 살아갈 수 있다. 의식상태는 혼수 상태이지만, 호흡기능이 남아있다. 따라서 뇌사와 식물상태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3) 뇌사의 판정
현재 뇌사에 대한 판단기준은 세계적으로 통일된 것은 없다. 그리고 뇌사 판별에 있어서도 몇 가지의 예외 조항도 존재하지만 가장 일반적인 규정으로는 다음과 같다.
① 심한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는 혼수상태
② 뇌간의 기능인 자발호흡이 완전히 정지한 상태
③ 동공이 고정된 상태
④ 뇌간의 모든 기능이 상실된 상태
⑤ 뇌파가 평단한 상태
위의 조항 중에서 뇌간사의 입장을 취하는 영국만(1976) 5번의 조항을 불필요하다고 제외시키고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위의 5가지 규정을 채용하고 있다.
2. 불교의 죽음관
1) 원시불교의 죽음관
(1) 죽음
독일의 한 철학자는 인간을 형이상학적 동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먼저 해결해야 될 것은 의식주의 확보라 하겠지만 동물과 달리 인간은 주어진 삶 자체가 지닌 형이상학적인 문제성을 더욱 크게 의식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왜 나는 여기에 있는가. 왜 나는 살아야 하는가. 나는 무엇인가. 왜 나는 결코 죽어야 하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되는가'. 사실 우리들은 언젠가는 이렇게 물으면서 고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의문들 중에서 보다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 죽음의 문제일 것이다. 나는 이미 태어나서 여기에 살고 있지만 죽음은 이제 닥쳐올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이란 무엇이며 죽고 나면 어떻게 될까. 이 의문이야말로 인간이 던지는 형이상학적 질문 중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 될 것이며 나아가 인간이 지닌 문제 중 가장 고뇌스러운 문제라 할 것이다.
죽음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은 대개 두 가지의 기본적인 견해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죽음이란 마음이 몸을 떠나는 것으로 죽어도 마음만은 불멸해서 사후 존재가 지속된다는 '영혼불멸론(靈魂不滅論)'이다. 이에 반해 또 하나는, 죽음이란 몸을 이루는 물질 요소의 흩어짐인데 마음이라는 것이 물질에 종속된 현상에 지나지 않으므로 죽고 나면 흩어지는 물질만 남을 뿐 사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멸론(斷滅論)'이 그것이다.
이러한 두 견해는 역사적으로 면면히 맥을 이어오고 있는 사상들로서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정립되어 있다. 그런데 그 근거들은 역으로 서로에게 치명적인 모순점을 일깨우고 있어 그 어느 견해도 완벽한 진리라고 볼 수 없음이 죽음을 중심으로 마음과 물질을 연구하는 현대철학의 결론이라고 한다.
사실 아함(阿含)도 삼법인설(三法印說)과 삼세윤회설(三世輪廻說)을 통해 두 견해를 일단 부정하고 지양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그것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2) 윤회와 무상·고·무아
아함에 설해진 여러 교설 중 죽음의 문제에 있어서 먼저 우리의 관심을 모으는 것은 업인과보(業因果報)의 삼세윤회설이다. 이 교설은 현재의 삶이 고통이든 즐거움이든 그것은 과거 및 현재에 자신이 지은 업의 과보임을 깨닫게 한다. 그리하여 주어진 현실을 긍정하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꾸준히 선업을 지음으로써 다가올 미래에도 적극적인 희망을 가지게 한다. 그런데 이 교설은 업보가 전개되는 범위로 숙세·현세와 더불어 내세를 설정하고 있어서 죽음을 문제삼는 우리에게 큰 암시를 던지고 있다. 그것은 삼세윤회설을 뒷받침하는 다음과 같은 핵심적인 경문을 살펴봄으로써도 알 수 있다.
만일 고의로 업을 지음이 있으면 반드시 그 보를 받나니 혹은 현세에 받고 혹은 내세에 받는다.
여기에서 현세와 내세는 죽음으로 갈라진다. 그러므로 이 경문은 죽은 뒤 내세에서는 어떤 방식에 의해서든 과보를 받을 존재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할 것이다.
결국 아함은 사후존재를 일단 긍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삼세윤회설을 통해 아함이 죽음에 대해 지닌 기본입장이 단멸론이 아님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삼세윤회설을 통해 단멸론적인 견해를 지양한 아함은 삼법인을 누누이 설함으로써 이번에는 영혼불멸론적인 입장이 아님도 강조하고 있다. 사후에 영속하는 불멸의 마음이란 일체의 육체적 작용을 통어하고 모든 인식작용을 종합하는 하나의 주체로서 대개들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주체를 나(我)라고 부른다.
그런데 아함은 그러한 주체를 열두 포섭처 가운데에 의지(manas)에다 포섭하고 있다. 여기서 그 의지는 눈·귀·코·혀·몸과 함께 덧없고(無常), 괴로우며(苦), 무아(無我)라고 단정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의지는 영속성이 없으며 또한 주재성(主宰性)도 결여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불멸의 마음이란 잘못된 견해임을 현실의 관찰로부터 자명한 사실로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아함은 삼법인을 설하면서 죽음에 대한 영혼불멸론적인 견해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업보의 삼세윤회설과 삼법인설이 죽음과 사후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을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단지 아함의 기본입장을 나타낼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죽음과 사후의 실상을 알기 위해서 더 나아가 죽음의 근원적인 극복을 위해서 아함에 설해진 새로운 차원의 교설을 다시 면밀히 음미해야 할 것이다.
(3) 계층을 지닌 존재
앞서 예시한 두 견해는 죽음과 사후를 설명하는 전제로서 마음의 본질을 세심히 살피고 있다. 그래서 마음이란 몸을 이루는 물질과는 전혀 다른 실체라는 견해를 가진 것이 영혼불멸론이고, 마음을 물질의 종속적 현상으로 본 것이 단멸론이었다.
이와 같이 두 견해는 마음의 본질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입장을 달리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몸을 이루는 물질에 대해서는 거의 비슷한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두 견해가 물질에 대해서 서로 비슷하게 이해한 내용은 한 마디로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즉, '물질이란 공간을 채우는 것이다'라는 입장이다. 이것을 '주어진 장소를 차지하는 존재'라는 정도로 두 견해의 물질에 대한 파악이 끝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물질이 그렇게 간단한 것일까. 물질을 깊이 연구한 현대의 자연과학은 '물질이란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서 무엇이 일어나는가를 기술하는 편리한 공식'으로 설명한다. 꽤 까다로운 설명이지만 '장소를 차지하는 것'이란 관점과는 자못 다름을 직감할 수 있다. 그런데 위에서 본 현대물리학의 물질관도 현재 개척중인 첨단이론에 입각한 것이어서 계속적인 연구와 수정은 불가피하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죽음과 사후를 설명하는 전제로서 마음의 본질을 살피는 것은 물론 필수적이지만 그와 함께 물질에 대한 정확한 파악도 선결될 것이 절실히 요청된다.
그래서 아함에서는 마음과 함께 물질의 고찰도 결코 등한시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마음과 물질의 본질을 고찰하는 데 있어서 그들을 따로따로 살피기보다는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는 마음과 물질을 동시에 고찰한다. 바로 이러한 미분(未分)적 고찰에 의해 물질과 마음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견해를 갖도록 한다. 그런데 앞에서도 살폈듯이 정신과 물질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모습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은 열두 포섭처(十二處)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열두 포섭처란 정신과 물질 등 일체 존재를 분류, 포섭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함은 열두 포섭처 전체를 고찰대상으로 삼아 새로운 시각에서 살핌으로써 마음과 물질의 본질에 대해 정확한 견해를 제시한다. 여기서 '새로운 시각'이란 열두 포섭처의 '질적인 변화'에 주의함을 말한다. 즉 앞서 우리가 열두 포섭처를 살필 때는 '형태적인 변화'에 주의하였다. 예를 들어 사람이 돌을 밀면 돌을 민만큼 밀린다고 할 때 우리는 형태적인 변화를 관찰한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나 돌 자체는 변함이 없이 그들이 존재했던 위치 등의 외적상태의 변화만 관찰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열두 포섭처는 형태적 변화뿐 아니라 질적인 변화를 언젠가는 보인다. 예를 들면 사람의 성장 및 노쇠과정이 그것이며 우유나 낙(酪, 버터)이 되고 수(수, 치즈)가 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러한 열두 포섭처의 질적인 변화를 세심히 고찰한다는 것이 바로 새로운 시각이다. 그리고 이런 시각에서 출발하여 아함은 마음과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의 본래적인 구조를 밝혀내고 죽음으로 야기된 여러 문제의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간단히 소개한 현대물리학의 물질관에 대한 이해가 까다로운 것 이상으로 아함이 밝히는 존재의 본래적 구조도 이해하기가 매우 힘들다. 아울러 그런 구조에 이르는 과정도 쉽게 납득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아함에 정연히 전개되어 있는 과정과 결과들을 간단히 언급함으로써 죽음의 근원적인 극복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존재의 질적 변화의 일례로서 우유가 낙으로 변할 때를 살펴보자. 우유가 낙으로 변할 때 우리는 낙을 우유와 질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다르게 아는 것'을 아함은 '식별(識, vij na)'이라고 부른다. 식별은 다시 여섯 가지로 세분되며, 그 뜻은 보다 포괄적이지만 핵심적인 뜻은 열두 포섭처의 질적인 변화를 설명하는데 있다. 그런데 낙이 우유와 질적으로 다르다면 낙은 생하였고 우유는 멸했다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변화 후 주어진 공간에서는 우유는 사라지고 오로지 낙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낙의 발생에는 두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만 한다. 첫째는 온도나 압력과 같은 외부의 인위적인 작용이 주어지는 것이며, 둘째는 우유의 존재가 필연적으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낙은 변화의 결과로써 여섯 식별에 해당하며, 외부의 인위적 작용은 변화의 동력인으로서 여섯 감관(六根)에 포섭되며 우유란 변화의 질료인으로서 여섯 대상(六境)에 들어간다. 그래서 아함에서는 낙이라는 결과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를 의존해야 된다는 뜻으로 '여섯 감관과 여섯 대상에 연(緣)하여 여섯 식별이 생한다'고 종합적으로 설하고 있다. 여기서 '연한다'라는 술어가 바로 '의존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함은 생멸하는 전후의 두 존재 곧 여섯 식별과 여섯 감관 및 여섯 대상의 사이에서 성립하는 '의존관계'를 발견하고 있다. 그런데 의존관계는 현실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의존하는 것'과 '의존되는 것'이 동시에 갖춰져야 성립할 수 있다. 낙이 발생하기 위해 우유 등에 의존한다면 의존하는 낙과 의존되는 우유는 동시에 존재해야 할 것이 강력히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요청에 의하여 우리는 지금까지 가졌던 생멸의 개념을 수정하게 된다. 즉 낙이 生했다 할 때 낙은 완전한 무(無)로부터 생했다기 보다는 어딘가에 잠복해 있다가 현상계로 '올라왔다'고 보게 된다. 또 우유가 멸했다 할 때도 우유는 완전한 무로 사라졌다기 보다는 현상계로부터 '내려갔다'라고 보게 된다. 이와 같이 생멸의 개념을 수정함으로써 우유와 낙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되고 따라서 둘 사이의 의존관계는 원만히 성립하게 된다.
그래서 아함은 다른 차원의 두 세계를 오르내리며 의존관계를 맺고 있는 여섯 식별과, 여섯 감관 및 여섯 대상을 열여덟 계층의 교설(十八界說)로 그리고 있다.
열여덟 계층이 있느니라. 곧 여섯 감관의 계층(六根界)·여섯 대상의 계층(六境界)·여섯 식별의 계층(六識界)이 그것이니라.
여기서 계층(界, dh tu)은 층·요소 등을 뜻하는 술어로서 그 뜻을 여섯 감관 및 여섯 대상이 이루는 중층적 구조를 잘 설명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이러한 열여덟 계층의 교설에서 아함은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즉 좀더 관찰을 진행하면 여섯 식별과 여섯 감관 및 여섯 대상이 모두 몇 개의 기본적인 물질원소가 결합해서 이뤄진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아함은 당시 인도의 사대설(四大說)을 받아들여 지·수·화·풍의 4원소를 기본원소로 잡고 있다. 그런데 이를 4원소의 입장에서 열여덟 계층을 재조명하게 되면 열여덟 계층은 땅의 계층·불의 계층·물의 계층·바람의 계층·공간의 계층·식별의 계층으로 구성된 여섯 계층(六界)으로 파악된다고 한다.
결국 열여덟 계층과 여섯 계층을 설하면서 아함은 마음과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의 본래적인 모습에 대해 하나의 귀결에 도달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존재는 이제 주어진 공간을 메우는 단순한 개체로서 파악해서는 안된다. 질적인 변화에 참여한 전후의 두 존재가 의존관계를 중심으로 차원을 달리하며 이루고 있는 층과 같은 구조 속에서 파악해야 된다. 여기에 더하여 기본적인 원소들이 동일한 차원의 공간 속에서 서로 결합과 분리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존재에 대해 정당한 견해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존재의 본래적인 모습을 이렇게 파악할 때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철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러한 존재관(存在觀)을 염두에 두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시 한 번 살핌으로써 우리는 죽음이란 어떤 것이며, 죽고 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보다 타당하고 진리로운 답변을 얻게 될 것이다.
(4) 인간존재의 성립
생명의 유한성은 인간을 불안한 존재로 만든다. 그리고 깊은 불안은 인간에게 역으로 생명과 죽음의 정체를 규명하게 만든다. 내적 불안과 함께 생사의 정체를 추적하였던 역대의 사상가들은 먼저 마음과 몸을 세밀히 관찰함으로써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얻고자 한다.
그러나 모두들 현상의 관찰에만 그치고 배후에 숨은 원리를 파악하는데는 좀 미흡한 감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몸을 이루는 물질 일반에 대한 각 사상가들의 견해가 너무 피상적임을 보아도 드러난다. 이점에서 불교는 독특한 접근을 보여준다. 아함은 죽음의 문제를 다루기 전에 마음과 물질을 포함하는 일체 존재의 본래적인 모습을 밝히고 있다. 본래의 모습이란 존재의 질적인 변화를 고찰대상으로 삼아 철저하고 정연한 논리적 성찰을 행할 때 누구나 반드시 이르게 되는 동일한 구조를 말한다. 이러한 존재의 본래적인 구조를 아함은 일단 여섯 계층의 교설(六界說)로 그려낸다. 앞서 살폈듯이 여섯 계층의 교설의 내용을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상·하로 두 종류의 공간이 있다. 그리고 지·수·화·풍으로 대표되는 기본존재들이 무수히 있다. 기본존재들은 앞서 밝힌 두 공간의 상·하에 하나씩 배열되어 중층구조를 이룬다. 중층구조를 이루는 존재들은 자유로이 상·하의 위치를 바꾸며 오르내린다.
그런데 존재의 본래모습이 이와 같다고 할 때 현실에서 보는 존재의 모습과는 매우 다름을 우리는 직감하게 된다. 우리에게 인식되는 현실은 두 개의 공간도 없을뿐더러 존재들도 단지 주어진 공간을 채우는 거대한 덩어리의 단일구조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구조상의 차이는 마침내 존재란 본래는 중층구조를 이루는데 현실적으로는 단일구조로 관찰되는 묘한 것임을 드러낸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본래의 중층적인 구조가 현실에서는 단일구조를 갖게 되었는가를 물으면서 인간 및 자연에 대해 전혀 새로운 이해를 추구하게 된다. 아울러 이 물음에 대해 아함이 내리는 답을 심사숙고함으로써 인간개체 형성에 대한 매우 새로운 관점을 경험하게 된다.
아함은 존재의 중층적인 구조와 현실의 단일구조 사이의 간격을 다섯 근간의 교설(五蘊說)을 설하면서 반듯하게 연결한다.
앞서 약술한 여섯 계층은 상·하의 두 공간에 배열된 존재들이 자유로이 아래위로 위치를 바꾸며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보통 오르내리는 기본존재들이 어느 순간 차분히 정지할 때도 있게 된다. 바로 이런 상황에 집착이 가해지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즉 한 때 멈추게 된 존재들이 이루는 일시적인 '형체'를 '나(我)'라고 집착하는 것이다. 이러한 아집은 현실에서 내가 나에 대해 가지는 고집과 맥을 같이한다. 여기서 아집이 가해진 형체는 상·하의 공간에 걸쳐있다. 따라서 위·아래의 존재 중 어느 층의 존재를 중심으로 나는 존재한다는 '느낌'을 일단 갖게 된다. 실제 인식이 영위되는 것이 위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래층의 존재라 해도 자기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아래층의 존재와 위층의 존재를 중심으로 합하여 하나의 존재라는 판단 즉 '생각'을 일으키게 된다.
그런데 아집이 가해진 '형체'는 실은 상·하의 공간에서 층을 만들며 오르내리던 두 존재가 일순간 멈추는데서 이뤄진 것이다. 따라서 성격상 다시 오르내리려 한다. 그러자 오르내리려는 경향은 곧 그 '형체'에게 불안함을 일으킬 것이다. 왜냐하면 오르내림이 수행되면 집착된 '형체'는 여지없이 붕괴될 것이므로 불안한 것이다.
그래서 붕괴될 것 같은 불안을 없애기 위해 불안의 원인인 오르내림이 불가능하도록 상·하의 두 존재를 하나의 개체로 붙여야 된다는 의도가 이어서 일어나게 된다.
붙이려는 의도가 있게 되면 자연히 '결합(結合)'이 일어난다. 즉 실제로 아래층의 존재를 위의 존재에게 '결합'시키는 작업이 진행되는 것이다. 이러한 '결합'이 마무리되면 두 존재는 하나의 개체가 된다. 그런데 그 개체는 이전과는 모습이 다른 데가 있다. 두 존재가 떨어져 있는 경우와 하나의 개체로 결합된 형상은 서로 다른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다르다고 파악하는 '식별'이 있게 된다.
이리하여 최후로 '식별'된 개체는 이미 두 종류의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일한 공간에서 단일구조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단일해진 개체는 역시 주위의 숱한 존재들에 싸여있고 그들과의 작용·반작용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주위 존재의 자유로운 변동이 계속되는 한 끊임없이 붕괴의 위협을 받는다. 그래서 스스로 주위의 존재들을 자신에게 병합시킴으로써 가능한한 붕괴의 위험을 감소해간다. 그런 과정에서 개체는 횡적으로 부피가 증대해가고 필요에 따라 감각기관 등의 생물학적 기관을 갖추게 되어 일반적으로 생물이 탄생하게 된다. 인간이란 그렇게 성립된 생물의 한 부류에 불과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의 형성에 무엇보다 근원적인 것은 일시적으로 집착된 물질적 '형체'와 그를 지속하기 위해 연이어 발생한 '느낌'·'생각'·'결합'·'식별' 등의 성립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불교의 다섯 근간의 교설(五蘊說)은 바로 이러한 내면적 소식을 전해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다섯 근간이 있느니라. 곧 형체(色,r pa)·느낌(受,vedan )·생각(想,sa j )
·결합(行, sa skara)·식별(識, vij na)이 그것이니라.
아함은 이상과 같이 설하고 있다. 더욱이 온(蘊)이라고 흔히 번역되었던 이 술어가 '근원적인 부분' 또는 '근간적인 부분'이란 뜻을 지닌 범어 'skandha'의 번역임을 생각해보자. 그러면 '형체' 등의 다섯 가지가 인간존재의 '근간'을 이룬다고 살펴왔던 앞의 견해는 바로 다섯 근간의 교설 내용으로 적확함을 알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여섯 계층의 교설(六界說)과 다섯 근간의 교설(五蘊說)을 통하여 인간존재 성립에 대해 축약적인 이해를 시도해 보았다. 그런 개략적인 설명 가운데서 죽음의 이해를 위해 우리가 특히 관심을 보여야 할 부분은 '결합'작용이다. '결합'에 주의하면서 죽음에 대한 구조적인 해명을 시도해보자.
(5) 죽음의 형태
신비롭기 그지없던 인간존재의 형성은 불행히도 일시적인 '형체'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다. 한순간 성립된 어떤 '형체' 위에 가해진 아집과 그것을 유지하려는 '느낌'·'생각'·'경합'·'식별' 등의 일련의 작용이 덩달아 일어남으로써 인간개체의 시원적인 부분이 형성된다. 그리고 이와 같이 상·하로 분리된 존재를 붙이는 종적인 결합에 이어서 좌·우 존재를 자기에게 병합하는 횡적인 결합이 일어난 끝에 현실과 같은 커다란 덩어리를 이루게 된 것이다. 즉 인간존재란 상·하·좌·우로 오르내리고 흩어지려는 기본존재들을 한 곳에 결합하고 있는 구조물이며, 이 구조물을 이루는 핵심적인 원동력은 바로 '결합(行, sa skara)' 작용임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개체의 '결합력'이란 기본존재들이 보이는 분리의 성향을 언제까지나 막고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 '결합력'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인간을 구성하는 기본존재들은 주위존재들과 민감한 작용·반응의 관계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주위존재들은 수적인 면에서 인간을 구성하는 기본존재의 합보다 월등히 많다. 작용력의 면에서도 인간존재의 결합력보다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막강하다. 여기서 만약 주위 존재들의 작용이 인간을 구성하는 기본존재들에 상응하는 방향으로 주어지면 별문제이다. 하지만 주위의 작용은 언제나 인간에게 반하는 방향으로 가해진다. 그리하여 인간개체를 유지하는 근간적인 결합력과 주위존재의 반대작용이 서로 대치되는 상황이 필연적으로 조성된다.
여기에 주위존재들의 세력이 월등히 강하므로, 인간의 결합력은 견딜 수 있는 데까지 지탱하다 끝내 한계에 이르고 붕괴해버리고 만다. 이러한 결합작용의 종식과 동시에 인간을 구성하던 무수한 기본존재들도 상·하·좌·우의 본래적인 위치로 주위존재의 작용에 따라 오르내리고 흩어지기 시작한다. 이와 같이 결합력의 종식과 함께 큰 덩어리를 이루던 기본요소들이 본래의 자리로 흩어지는 것이 죽음의 구조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흩어진 기본존재들은 다시 여섯 계층(六界)의 모습을 띠게 되고, 여섯 계층의 한 '형체' 위에는 아집이 더해진다. 아울러 '형체'를 지속하려는 '느낌'·'생각'·'결합'·'식별'의 작용이 진행되고 마침내 또 하나의 인간개체가 형성된다. 인간존재는 주위 존재와의 대치를 견디지 못해 언젠가 또다시 붕괴되고 만다. 이렇게 생각하여 생사는 바퀴가 구르듯 돌고 돈다. 이것을 생사윤회(生死輪廻)라고 한다.
2) 부파불교의 죽음관
부파불교에서는 명근(命根)이라는 원리를 세운다. '명근, j vita-indriya'이란 인간의 생명을 유지·보존시키는 힘(능력)이라는 의미로, {구사론(俱舍論)}에서는 14개의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 중의 하나이고, 실유(實有)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명근의 본질은 수이고, 능히 난과 식을 가진다.({구사론})", "명근은 삼계의 수이다.({발지론})"라고 하여 육도윤회를 거듭하는 인간의 생명의 본질이고,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때는 난과 식을 지탱하고 있다. 그러나 명근이 끊어지면 식과 난의 움직임은 없어진다. 즉 인간의 죽음을 의미된다.
또한 5세기경의 대주석가 붓다고사(佛音, Buddhaghosa)는 {청정도론(淸淨道論)} 제8장 수념업처 중의 사념에 대한 설명 중에서 죽음을 "하나의 존재에 있어 명근의 단절"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부파불교에서는 생명의 근원체를 명근으로 삼았다. 따라서 부파불교에서는 명근의 기능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생명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고, 명근이 기능을 상실할 때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고 볼 수 있다.
3) 유식사상에서의 생명과 죽음관
부파불교에서는 생명유지의 근원을 명근으로 삼았지만, 유식에서는 '아라야식'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출하였다. 우선 아라야식에 대해 세친(Vasubandhu)의 {유식삼십송}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 중에서 변화적 성숙태(異熟)라고 하는 것은 아라야라고 불리우는 인식작용이고,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종자(種子)를 가지고 있다.
그것에 있어서 <내재적인> 소재(素材)에 관한 인과관계와 <외래적인> 장소의 인식을 명확히 감지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① <대상과의> 접촉, ② <대상에로의> 지향(志向), ③ <대상의> 감수, ④ <대상의> 표상, ⑤ <대상에 대한> 심적인 움직임을 동반한다.
다만, 그곳에 있는 ③ 대상의 감수는 <감성적으로 즐거움도 아니고, 괴로움도 아닌> 무기(無記)이다. 또한 이것은 궁극적인 이상의 실현을 방해하지 않는 [무복무기(無覆無記)]이다. 똑같이, <이것 이외의> ① 대상과의 접촉 등에도 적용된다. 그리고 그것은 (아라야) 강의 급류와 같이 변화를 계속한다.
그것(아라야식)은 아라한에 도달했을 때, <그> 기능을 잃는다.
{유식삼십송}에서의 아라야식에 대한 정의를 필자는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아라야식은 모든 존재하는 것의 종자(b ja)가 머무는 곳이고, 일체의 종자를 가진 것이므로 일체종자식(sarva-b ja vij nam)이라고도 한다.
둘째, 아라야식은 과거세의 행위(업)에 의한 훈습(v san )을 받지만,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고 무기(無記)이므로 이숙(vipaka)이라고도 한다.
셋째, 인간의 생존의 근저에 있으면서 매순간마다 작용하여 식의 흐름을 형성한다. 따라서 윤회적인 생존은 이렇게 부단히 흐르는 아라야식을 근거로 한다.(윤회의 주체)
넷째, 아라야식은 드러나지 않은 상태로서 찰나마다 상속을 지속하므로 잠재의식 또는 심층의식이라고도 부른다. 반대로 마나식(자아의식)과 육식은 현세적인 식(prav tti-vij na)이라고 한다. 과거의 행위에 의해 아라야식에 훈습이 남겨져 그 잠재력이 즉, 그 힘이 절정에 도달했을 때 현세적으로 나타난 것이 마나식과 육식이다. 현세화된 육식과 마나식은 기능함과 동시에 그 훈습(여습)을 아라야식 중에 남긴다. 이렇게 하여 아라야식과 현세적인 마나식과 육식은 서로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는 관계를 이룬다.
그런데 아라야식의 설명 중에 인간의 생존과 죽음에 대한 언급이 있다. 제3게송의 [불가지집수처(不可知執受處)(3ab)]이다. 여기서는 아뢰야식의 대상은 무엇인가 라는 것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아라야식의 대상은 집수(執受up di 또는 up d na)와 처(處 sth na, 세계)라고 규정하고 있다. 인식작용은 반드시 대상을 가지고 대상에 작용한다. 인식작용이 존재한다는 것은 동시에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대상은 각각의 인식작용에 의해 다르다. 예를 들어 안식(眼識)의 대상은 색경(色境)이지, 그 이외의 것은 아니다. 붓다의 경지에서는 모든 감각기관이 서로 작용하여 인식작용과 대상 사이에 자유로운 관계가 인정된다. 그러나 평범한 인간의 단계에서는 각각의 인식작용과 대상과의 관계는 정해져있다. 그렇다면 아뢰야식의 대상은 무엇인가? 어떠한 심층적인 의식이라도 아뢰야식이 하나의 인식작용인 한, 역시 대상은 정해져 있다.
아뢰야식의 대상은 '집수(執受)'와 '처(處)'이다. 집수에 대해 {성유식론술기}에서는 '집섭(執攝)'·'집지(執持)'라고 하였다. '집(執)'이라는 것은, 아뢰야식이 종자를 '간수하다'라는 것이고, 종자를 '보존하다'라는 것이라 하였다. 이것이 아뢰야식의 대상이 된다. '수(受)'라는 것은 '수령(受領)'·'각수(覺受)'의 의미라고 하였다. 종자와 신체를 수령하여, 그것을 대상으로 하고, 유근신(身體)에 감각이나 마음의 움직임을 일으킨다. 간단히 말하면 아라야식의 대상은 '종자'와 '유근신'이다. '종자'는 '선험적인 소질·능력·기근(機根)의 본유종자'와 '성장의 과정 속에 학습하고 몸에 붙은 신훈종자'로 구분한다. 이것을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그것과 관계한다는 것이다. 관계한다는 것은 동시에 집착한다는 의미로도 해석 가능하기 때문에, 인간은 심저(心底)에서 자신의 소질에 집착하고, 자신의 경험, 즉 과거에 계속해서 구애받는 존재라는 인간 인식에 서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소질이나 경험에 바탕을 둔 인생의 확립을 나타내기도 하였지만, 반면 자신의 인생의 한계에 대한 자각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반면 유근신은 신체이다. 인간은 심저에서 자신의 신체를 내면으로부터 감지하고, 그것에 관계하면서 살아간다.
따라서 인간은 아라야식이 신체를 대상을 삼아 집수할 때만이 인간은 생명을 유지한다. 반면 아뢰야식이 신체를 대상으로 삼지 않을 경우에는 인간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성유식론} 권3에서는 여러 가지의 각도로 아뢰야식에 대한 논증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일반적인 상식의 논리(理證)로서 아라야식을 논증하는 것 중에서 4번째의 논증은 "선업에 이끌려 무기인 제팔식(아라야식)이 근원이 되어 우리들의 신체는 감각, 지각 등의 활동을 한다."고 하였고, 5번째 논증에서는 "수·난·식은 서로를 의지하며, 상속하고 지속한다. 그리고 수와 난를 가지고 끊어짐이 없이 지속시키는 것이 식(아라야식)이다."라고 하여 우리들의 신체를 유지시키는 것을 아라야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아라야식의 6번째 논증 중에서 인간의 죽음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
"또한 죽음을 맞이할 때는 선악(善惡)의 업에 말미암아 하반신부터 상반신에 냉촉이 점차로 일어난다."
또한 {유가사지론}권1에는
"장차 임종을 맞이할 때 악업을 짓은 자는 …(중략)… 상체는 점차로 냉촉(冷觸)이 일어난다."
{섭대승론}에서도
"악업을 짓고 선업을 짓어 장차 죽음을 맞이할 때, 혹은 하체(下體),
혹은 상체(上體)의 소의가 점차로 차가워진다."
그리고 {섭대승론}을 주석한 무성과 세친의 양주석서(兩註釋書)에서도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주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유식논서의 대부분은 인간의 육체가 죽어갈 때는 상체와 하체가 차갑게 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면 인간이 죽음을 맞이할 때 신체가 차갑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계속해서 {성유식론} 권3에서는
"오직 이숙심(아라야식)만이 먼저의 업으로 말미암아 언제나 두루 상속하여 신체를 집수한다. 집수(執受)를 버린 처(處)에 냉촉(冷觸)이 생기한다. 수·난·식의 3가지는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
라고 하여 아라야식이 신체를 집수(執受)하면 신체를 유지하지만, 아라야식이 신체를 집수하지 않을 때는 처(處-감각기관)가 차갑게 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 유식사상 입장에서의 인간의 죽음은 아라야식이 신체의 집수를 버릴 때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아라야식으로부터 집수를 받지 못하여 냉촉(冷觸)이 일어나면 인간의 신체는 다음과 같이 된다고 {성유식론}에서는 언급하고 있다. 즉, "냉촉이 일어난 處(신체)는 비정(非情)이 된다. 아라야식이 변연(變緣)한 것이지만, 아라야식이 집수하지 않은 것이다."고 하여 신체가 차가워진 상태는 인간이 아니라고 규정하고, 또한 아라야식으로부터 변현한 것이지만 아라야식으로부터 집수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유식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을 포함한 세계는 아라야식의 변현이다. 그러나 인간과 器世界(세계)의 차이점이 있다. 인간도 세계도 아라야식으로부터 변현된 것은 동일하다. 그러나 세계는 아라야식에 집수되지 않지만, 우리들의 신체는 아라야식에 집수된다는 것이다. 아라야식의 집수에 의해 우리들의 신체는 체온을 유지하여 차갑게 되지 않는다. 즉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라야식이 신체의 집수를 포기하는 순간, 인간으로서의 개체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4) 티베트불교의 죽음관
티베트의 밀교승들은 죽음의 세계까지도 분석하였다. 그것은 이집트 사람을 제외하면 유일한 본격적인 분석이었다.
인간이란 살아가며 죽어가고, 죽어가며 살아가는 이중적 존재이다. 우리가 우리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로만 본다면 우리는 자칫 쾌락주의에 빠지기 쉬울 것이며, 죽어가는 존재로만 본다면 우리는 염세주의로 빠지기 쉬울 것이다. 쾌락주의도 염세주의도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손등과 손바닥을 함께 볼 때 손의 본질을 보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삶과 죽음을 함께 생각하고 볼 때 우리의 인생의 본질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엠페도클레스가 시실리섬의 시민들의 생활을 비판한 말로, "그들은 마치 자기들이 내일 죽을 것처럼 사치스럽게 생활하고 있다. 또한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집을 짓고 있다."라는 비판에 우리는 귀 기울여야 한다. 우리 주위에 넘치는 사치풍조는 우리가 어떻게 잘 살 것인가라는 문제에만 집착했기에 전개되는 문제가 아닌가.
티베트밀교는 우리에게 "죽음을 배워라. 그러면 삶까지도 배우게 될 것이다."라고 가르친다. 티베트밀교에 의한 죽음의 세계를 탐구한 {死者의 書(Book of Dead)}는 수 천년 동안 티베트에 비밀로 전해오다가 서양의 학계에 소개되어 커다란 충격을 주었는데, 그 충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티베트 사자의 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중음천도밀법'은 일천 수백년동안 전해져 온 진언밀교의 성전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임종, 그리고 재탄생까지 49일간의 모습이 선명한 그림처럼 묘사되어 있다.
영혼이 육체의 모습을 가지고 태어나고, 영혼이 육체의 모습을 갖지 않은 상태인 죽음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닌 하나의 것이고, 다만 영혼의 무한한 여행일 뿐이라고 가르친다.
"갓난아기가 이 세상에 눈을 떠서 이 세계를 배우지 않으면 안되듯 죽은 자는 사후세계에 눈을 떠서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W·Y·웬즈 박사는 다음과 같이 격찬하고 있다.
"참다운 과학적, 요가적 방법에 의한 인간이라고 하는 그 알지 못할 존재에 대한 탐구야말로, 지구 밖의 세계를 탐험한다고 자랑스러워하는 그런 차원과는 비교조차 될 수 없는 중요한 것이라 하겠다. 인간의 육체가 달 또는 금성 그리고 그 어떤 천체 위에 서 본다는 것은 아마 인간의 지식에 보탬이야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대수롭지 못한 지식을 좀더 걷는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궁극적 목표는 이 책에서의 현인(guru)의 가르침처럼 사물을 넘어선 초월, 바로 그것이다."
{티베트 사자의 서}에는 인간이 사후 다른 생을 얻기까지 49일 동안 흔히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상징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중요한 부분을 현대적 언어로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너희 인간들에게 가르친다. 모든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임종 때, 호흡이 끊어지면 영혼은 육체의 중추에서 떠나가는 것이다. 육체로부터 떠나간 영혼은 처음에 희미한 어둠 속에 떠있는 것 같이 생각한다. 그러나 대개는 곧 밝고 맑은 빛을 느끼게 된다. 이로 인하여 영혼은 아픔으로부터 해방된 매우 평온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에 굉장한 소리가 들린다.
많은 영혼은 그것을 겁낼 것이다. 즉, 영혼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육체는 죽었지만 새로운 몸이 생겼다고 많은 영혼은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몸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투명하게 무게가 없으며 공중에 떠서 날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 중에는 육체의 죽음을 알고 절망하거나, 혹은 육체가 죽은 것을 잘 모르고 죽은 곳에서 헤매고 있는 영혼도 있다.
그러나 많은 영혼은 빛 속을 더욱 날아가서 전에 죽은 육친과 친구들의 영혼을 만나는 것이다. 그들은 말없이 의사를 소통하는 것이다.
그 후 영혼은 이상한 거울도 보게 될 것이다. 이 거울에는 생전에 그 사람이 행한 행위와 생각의 모든 것이 비춰진다. 좋은 행위와 좋은 생각이 비춰질 때 영혼은 편안해 진다. 그러나 나쁜 행위와 나쁜 생각은 비쳐질 때 영혼은 고통을 받을 것이다.
이 시련을 불에 데는 것처럼 느끼는 영혼도 있다. 견딜 수 없는 목마름과 무서운 한랭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또한 더욱 밝은 빛 속으로 날아가는 영혼도 있다.
이 여행은 길다. 혹은 짧다. 도중에 암흑과 빛이 번갈아 나타난다. 그리고 조만간 많은 영혼이 무한한 하늘을 빠져나가 마지막 어두운 길에 들어가게 된다. 그 길은 좁고, 괴롭고, 길고, 혹은 짧게 느껴지는 것이다.
어둡고 좁은 그 길의 저 쪽에 다시금 빛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영혼의 세계의 빛이 아니라 다시금 이 세상의 빛이다. 많은 영혼은 이렇게 하여 다시금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러나 전에 살고 있었던 것과 같은 곳이라고는 할 수 없다. 많은 영혼이 아주 다른 곳에 닿는다. 그리고 다시금 어둡거나 혹은 밝고, 길거나 혹은 짧은 육체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에 표현된 밝음·어두움·길·거울·번갯불 등은 모두 상징적인 표현이라는 데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한 생을 마치고 다음 생을 받기 위하여 생전에 자기 자신이 지은 업(業Karma), 즉 카르마의 환각을 체험하며 49일간의 중음계를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49일간의 하루하루는 자기 자신의 의식구조 속에 고여있던 이 세상에서의 업이 가시적 환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인에게 중요한 점을 시사하고 있다. 살아서 이웃에게 베풀고 착하게 산 사람은 역시 죽어서도 고통을 당하지 않고, 악하게 산 사람은 그 업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 자기심판의 세계가 전개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자의 서}에 있어서는 궁극적인 목적은 중음계를 여행하는 사자에게 일어나는 현상들이 모두 환각임을 자각시키는 일이다. 더불어 그 어느 환각에도 휩쓸리지 않는 생명의 비밀을 깨달아서 지혜를 얻자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서구에서는 인간의 초심리현상에 대한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러한 작업의 결과로 나온 보고서를 보면 {사자의 서}와 통하는 부분이 많은 것이다. 이 점이 서구인들을 경탄케 하고 있다.
아래와 같은 구절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풍요 속에서 살면서도 빈곤을 느끼는 현대인에게 어머니의 자장가와 같은 것이 될 것이다.
"다시 태어날 자여, 연속되는 환각으로 하여 슬픔과 기쁨의 소용돌이에서 너는 길을 잃은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감정에도 물들게 하지 말자.
네가 보다 높은 세계에 태어날 운명이라면 그 세계의 <비젼>이 네 앞에 나타날 것이다.
다시 태어날 자여,
네가 이 세상에 남기고 온 재물들과 소지품들이 타인의 손에 넘어감을 보고 너는 분노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분노는 너를 어둠과 괴로움의 세계로 끌고 갈 뿐이다. 설령 너에게 속계의 재물을 준다해도 너는 가질 수 없다.
집착을 버려라…."
결론적으로 여러 불교의 죽음관을 검토해본 결과 정확하게 판결된 뇌사상태는 죽음으로 보아야만 한다. 이런 뜻에서 불교의 죽음관은 뇌사를 죽음으로 봄으로 말미암아 장기이식의 길을 열게 될 것이다. 불교에서의 죽음은 뇌사를 인정하는 데도 긍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뇌가 죽은 상태가 되었을 때, 우리 존재는 이생을 위해서도 다음 생을 위해서도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게 된다. 인위적으로 호흡을 시키면서 심장의 박동을 작동시킨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무 쓸모없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육체'와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관계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뇌가 더 이상 기능을 할 수 없을 때 우리들의 식을 발생시키는 기관의 기능은 마비되어 버리고, 식이 발생할 수 없게 되면 행, 즉 의지작용도 일어나지 않게 된다. 의지작용이 발생되지 않으면 업은 만들어지지 않게 된다. 업이 만들어지지 않게 될 때 우리는 살아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경전의 표현대로 '무덤에 버려진 나무토막'과 같은 것이다. 의지작용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때는 이미 만들어 놓은 자신의 업에도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없지만, 미래의 생존을 위한 여하한 업도 더 이상 만들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의 장기가 누구에게 주어져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 하더라도 우리 자신에게는 공덕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의식이 있었을 때 자의에 의해서 사후에 자신의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기증하겠다는 마음을 내었을 경우여야만이 선업이 만들어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뇌사가 된 상태의 우리의 장기를 누가 잘라간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음 생의 우리의 운명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된다.
3. 불교의 인간관과 육체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는 인간 자신의 오래고도 가장 새로운 문제이다. 인간 스스로 무엇인가를 묻고 스스로를 탐구해 온지 이미 오랜 역사를 가져왔건만, 아직도 이 물음은 우리에게 과제로 남겨져 있다. 현대인들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인간 이해에 대한 노력을 거의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인류의 지혜는 여러 가지 문화를 이루어 내었으며 그로 말미암아 인간의 생활을 발전 향상시켰고 윤택하고 풍만하게 하였다. 반면에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낸 문명의 이기, 원자탄, 수소탄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멸망이라는 위기에 다다랐다. 한 발의 핵무기가 한 도시를 하루아침에 불타버리게 하는 것은 고사하고 나아가서는 이 지구까지도 파괴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있어서 인간의 본질은 무엇이며 인간의 정체를 밝히는 일이야말로 현대의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만약 핵을 사용할 수 있는 소련과 미국의 지도자가 건전한 정신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면 세계는 어찌 되겠는가? 실로 세계는 그들의 인간성이 건전하도록 비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인간에 관한한 거의 무지에 가깝다.
인간이 이 세계 속에서 더 알차고 더 깊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어느 문제보다도 선행되어져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의미에서 물이 흐리면 그 근원을 생각해야 하는 것처럼 불교의 인간관에 귀 기울일 때가 지금이라고 생각되어진다. 부처님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위대한 인간의 길을 보이셨다는 의미에서 더욱 그러하다.
세계의 많은 종교 창시자들 가운데 부처님은 순수하게 인간으로 남아 있기를 원했던 거의 유일한 분이었다. 다른 교조들은 자신이 신이거나 신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거나 신의 아들이라고 하거나, 또는 다른 형태로 화현된 화신(化身)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하여 부처님은 인간일 뿐만 아니라 신이나 인간을 초월한 어떤 존재로부터 오는 어떠한 영향력도 요구하지 않았다. 부처님의 깨달음의 성취는 오직 인간적인 노력의 덕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간들은 부처님을 본받아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다는 위대한 길을, 희망을 보여 주었다. 희망이 없는 인간처럼 무의미한 존재가 없다는 것을 부처님은 우리에게 생의 의미로 제시해 준 분이다. 때문에 부처님은 오직 바른 인간이 되는 길을 설했다. 어느 면에서 불교야말로 [인간학]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리라고 본다.
불교에 의하면 인간의 위치는 지극히 높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외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는 탄생게(誕生偈)는 인간이야말로 이 우주의 주인공이라는 위대한 인간선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부처님 대각(大覺) 후에 범천(梵天)이 와서 설법을 청하였다는 이야기는 범천을 최고신으로 모시는 전통 종교인 바라문 종교에 대해 불교의 우월성에 대한 자부이자, 깨친 인간인 부처님에게 우주 최고의 존재인 범천이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위대한 인간승리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부처님은 인간은 그 스스로가 그의 주인이라고 가르쳤다. 인간 위에 군림하는 보다 높은 존재나 권력은 없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 자신을 안식처로 삼을 뿐 누구에게 도움을 구하거나 안식처를 구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는 인간은 각자가 자기 자신을 개방해서 스스로 해답을 구하도록 가르치며 용기를 불어넣고 북돋아 주었다. 인간은 자신의 지혜와 노력으로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불교사상이야말로 인간존중과 인간신뢰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 사상이며,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난제들을 해결할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부처님은 인간에게 위대한 가능성을 보인 스승이요, 해탈과 열반의 길을 보여 주었다는 의미에서 '구원자'로 불려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삼아 스스로 걸어야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은 오온(五蘊, pa ca-skandha)으로 구성되어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로 본다. 부처님은 "간단히 말해서 이 오온(五蘊)계의 집착이 바로 苦이다."라고 설했다. 부처님은 명백하게 "비구여, '고란 무엇인가? 그것은 오온의 집착이다'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고와 오온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온 그 자체가 바로 고이다. 소위 '인간'을 구성하는 오온의 개념을 정확히 알게 되면, 인간과 고의 문제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오온이란 무엇인가? 가능한 한 그것이 인간 이해의 첩경이기 때문에 자세히 검토해 보자.
첫째는 색온(色蘊, r pa-skandha)이다. 색이란 형태와 색채를 한 가지로 묶어버린 의미로서 시각(視覺)대상계인 색경(色境)뿐만 아니라 성(聲)·향(香)·미(味)·촉(觸)과 더불어 유정고체(有情固體)의 생존을 구성하는 감각적, 물질적 요소 전부와 감각적 인상을 일으키는 운동변화의 전체를 가리킨다.
둘째는 수온(受蘊, vedan -skandha)이다. 이것은 느낌의 집합으로 물질적·정신적인 기관이 외부세계와 접촉을 통해서 경험되어지는 불쾌함(苦)과 유쾌함(樂), 또는 유쾌하지도 불쾌하지도 않는 느낌 등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는 느낌을 받아들이는 기관에 따라 6가지의 종류가 있다. 눈이 대상과, 귀가 소리와, 코가 냄새와, 혀가 맛과, 육신이 닿음과, 그리고 마음이 마음의 대상이나 생각이나 관념과 접촉함으로써 얻어지는 느낌이다. 우리의 모든 물질적·정신적 느낌은 이 범주에 속한다. 불교철학에서 마음(心)이란 용어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알아두는 것이 필요하다. 마음이란 말은 물질과 반대되는 정신이라는 용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 마음이란 단지 눈이나 귀와 같은 감각기관(根)이다. 그것은 다른 기관과 마찬가지로 조정되거나 개발될 수 있다. 부처님은 이 마음을 포함한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根)을 제어하고 수련해야 할 것을 여러 번 강조하였다.
셋째는 상온(想蘊, sa j -skandha)이다. 이것은 인식의 집합을 뜻하며 느낌과 마찬가지로 여섯 가지의 내부적 감각기관과 그 외적 대상과 관련된 여섯 종류가 있다. 느낌과 마찬가지로 인식도 외부세계와 여섯 감각 기관이 접촉을 통해서 일어난다. 물질적이건 정신적이건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 상(想)이다.
넷째는 행온(行蘊, sa sk ra-skandha)이다. 이것은 정신적 행위의 집합을 뜻한다. 여기에는 선악과 같은 의도적 행위가 포함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업(karma)이라 하는 것은 여기서 생겨난다. 업에 관해서 부처님이 정의하길 "비구여, 내가 업이라고 부른 것은 의도(思)이다. 의도가 있으면 몸이나 말이나 마음으로 행하게 된다."라고 했다. 의도란 정신구성이며 정신적 행위이다. 이것은 마음을 선이나 악 또는 선도 악도 아닌 것으로 향하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느낌이나 인식과 마찬가지로 의도도 여섯 가지 감각기관과 그 외부 세계의 대상과 연결된 여섯 가지의 종류가 있다.
다섯째는 식온(識 , vij na-skandha)이다. 이것은 의식의 집합을 뜻하는데, 의식이란 여섯 가지의 감각기관과 이에 대응하는 외부현상이 반응하는 작용이다. 예를 들면 안식은 눈을 근거로 해서 형태를 대상으로 하여 보는 작용이다. 심식(心識)은 마음을 근거로 해서 관념이나 생각을 그 대상으로 하여 인식하는 작용이다. 그래서 이 식온은 다른 기관과 연결되어 있다. 느낌, 인식, 의도적 행위와 같이 의식도 내부적 감각 기관과 이에 대응하는 외부적 대상의 여섯 가지가 있다.
불교에서는 일상적 인간을 '오온'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인간이 '오온'에 지나지 않는 것은 여러 가지 부분이 서로 얽히고 짜임으로서 비파라는 악기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도 하였다. 비파의 소리는 모든 부분이 한데 모여져서 적당한 위치관계에 놓여져 비파가 구성될 때에만 울리는 것처럼 인간도 여러 가지 인연에 의하여 얽혀지는 관계에 놓였을 때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더 엄밀히 따지면 인간은 관련되는 모든 인연이 어떠한 상태에서 보여주는 전체관계의 총화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인간은 고정된 '실체'는 없고 다만 '어떠한 상관관계의 총화'만이 있다. 이 점이 아주 중요하다. 이러한 관계의 총화를 불교에서는 '온'이라고 부른다. 즉 불교 용어인 '온'을 이용해 표현하면 인간은 관계되는 모든 인연의 '온'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온'의 어의 자체에는 '연기'를 예상하고 있다. '색온'이 '연기'를 연상하고 있다는 말은 '무아(無我)'에의 접근을 암시한다. 다시 정리하면 불교에서는 인간을 고정불변한 실체로 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고정불변한 나'가 있을 수 없고, '내 것', '내 자식', '내 견해'로서의 존재는 있을 수 없으며, 그것이 있다고 보는 한 그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인생을 사는 존재를 불교에서는 '범부'라고 부르고 그것을 착실히 깨달아 알면 '깨달음'의 세계로 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교의 인간관에서 볼 때 살아있을 때나 죽은 다음에도 육체에 집착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이런 의미에서 장기이식을 위하여 온몸을 타인을 위해서 바치는 행위는 올바른 것이다. 다시 설명하면 이런 뜻에서 불교의 무아설(無我說)은 장기이식을 위한 근본적인 인간관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면 무아설의 현대적 의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불교의 근본가르침 가운데 하나인 무아설은 '나'는 없다는 뜻이며 더 넓히면 세상 모든 것은 실체가 없다는 뜻이다. '나'란 존재가 없다니? 그렇다면 내가 없는데 수행은 누가 하며 해탈은 누가 얻는단 말인가? '내'가 없다면 내 삶은 무엇이며 먹고 마시고 항상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눈에 분명히 보이는 '나'를 없다고 부정하는 불교의 주장은 매우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불교가 '나'를 부정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불교에서는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변한다고 한다. 다만 변하는데 걸리는 시간의 길이만 다를 뿐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도 같은 '나'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사실 우리는 순간 순간마다 달라지는 '나'로 있을 뿐이다. 생각이나 감정, 심지어는 피로감이나 늘어난 주름살까지도 조금전과는 달라진 내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변하지 않는 '나'가 있다고 생각하며 산다. 그렇게 때문에 불교에서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나'는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네가 생각하는 그런 '내'가 없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불교는 우리의 일상적 삶 모두를 고통이라고 본다. 끝없이 무엇인가를 가지려 하고 그 욕구가 채워지면 또 다른 욕구를 채우려 하기 때문에 우리 삶 전체가 늘 채워지지 않는 갈증으로 시달리고 있으므로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경우 이러한 고통의 근원은 불변의 '나'란 존재가 있다고 보는 데서 오는 것이며, '내'가 가진 집착이 클수록 고통은 더 커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가? 그 길은 무엇인가를 소유함으로써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욕구를 버리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정신 체험을 통해서 가능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불변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다.
살면서 우리가 버리기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자신이다. 실제로 우리는 자신을 아끼는 사람일수록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삶을 사는 경우를 본다. '나'를 살리기 위해 남을 짓밟고, '나'를 잘 먹이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나'보다 더 믿을 수 있는 남이 있다면, 마지막 한 자리 남은 구명보트에 '나'를 버리고 대신 태우고 싶은 남이 있다면 그런 삶이 해탈한 삶 아닐까?
4. 무속신앙과 유교의 인간관과 육체관
1) 무속신앙의 인간관과 육체관
한국인의 원초적·전통적 영혼관도 파악하는데 있어 일반적으로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고, 영(靈)·육(肉)의 결합은 삶이며, 분리는 죽음으로 보았다. 또한 죽은 이후 육신(몸)은 소멸되는데 비하여, 영혼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존재로 이해하고 있다. 또한 사후 영혼은 사후세계인 저승에서 영원히 안주(安住)하거나, 현실세계인 이승으로의 소생·재생한다고 보았다.
한국인에 있어서 원초적 영육(靈肉) 관념의 형성은 우리나라 구석기시대의 가장 이른 시원(始原)문화 유적인 청원(淸原) 두루봉 2호 동굴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여기에는 소위 흥수아이 위에 꽃을 뿌려 죽음과 관련된 매장의식을 행하였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는 곧 우리나라에서도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죽은 사람에 대하여 경외심(敬畏心)을 표현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청원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진달래나무를 꺾어다 살림집인 동굴을 아름답게 꾸미고자 미의식의 표현도 하였으며, 기원과 주술의 표현도 행하였고, 의식을 집행하던 공간도 있었다. 기원과 주술의 행위는 곧 이 지역의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당시의 현실세계를 살면서 정령 내지 영혼의 존재를 인정한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현실세계의 모든 삶이 신(神)과의 관계 속에 생성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은 신령스러운 존재로 받아들여, 신앙의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하늘과 땅 및 성숙(星宿)을 신앙하고 물·나무·짐승 등 모든 생물과 무생물이 신앙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신앙은 모든 곳에 영(靈)이 존재한다는 정령사상(精靈思想)으로서 세계인의 공통적인 사상이기도 하다. 정령사상은 인간에게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래서 인간의 육신(몸) 속에도 영혼(넋)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관념이 구석기시대부터 싹트기 시작하여 신석기시대에 본격화되었다. 이런 점에서 청원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영혼의 존재를 상정한 것은 우연이라기보다 당연한 현상이었다.
이들이 생존 당시의 활동공간이었던 동굴을 시신의 매장 장소로 선정한 연유는 죽은 사람이 산사람과 동일 공간에서 지속적인 생활을 한다는 관념에서 비롯되었으며, 피장자 위에 국화꽃을 뿌린 것은 미의식의 표현임과 동시에 봄이면 꽃이 다시 피듯이 죽은 사람의 영혼도 소생(蘇生)·재생(再生)하기를 기원하는 의미의 표현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념은 죽은 영혼이 시신과 함께 무덤 속에 기거한다는 전제를 함으로써 그 개연성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청원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매장의식에 나타난 영·육 관념은 靈肉未分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고 하겠다. 그래서 구석기시대에 형성된 영육 미분(靈肉未分)의 관념은 우리나라의 원초적·본원적 관념이라 해도 무방하다. 아울러 이들은 이미 자연관을 바탕으로 영혼의 소생·재생을 기원하고 있었으므로 지속 순환론적 관념도 상정하고 있었다. 특히 동굴은 여성의 상징으로써 재생관념과 연결되어 있다는 기존 연구를 고려할 때, 지속 순환론은 구석기시대부터 비롯되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 신석기 유적으로 확인되는 매장유구는 통영(統營) 연대도(煙臺島, 11기), 욕지도(慾知島, 2기), 부산 금곡동(金谷洞), 동삼동(東三洞), 경북 울진(蔚珍) 후포리(候浦里), 인천 시도(矢島), 경남 진주 상촌리(上村里), 황해도 지탑리(智塔里) 등 한반도의 여러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대부분 신석기시대의 중기에서 후기에 걸쳐 나타나고 있으며, 유구(遺構)는 부정형(不定形)으로 지하를 파서 굴장(屈葬) 또는 신전장(伸展葬)을 하고, 머리의 방향은 서쪽으로 향하거나 동쪽으로 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장자는 팔이나 발목에 장신구를 가지는 경우가 있고, 토기나 석기와 같은 일반적인 생활 도구 등을 부장하고 있으며 이는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통영 연대처럼 바다가 잘 보이는 곳을 매장지로 선정하고 화장(火葬)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경우도 있고, 후포리와 같이 후기의 경우는 40여명을 한 곳에 세골장(洗骨葬)하고 그 위에 180여 점의 돌도끼로 덮어두는 경우도 있다. 진주 상촌리와 지탑리에서는 화장한 사람의 뼈를 주거지 내부에 안치하는 특수한 사례도 있다. 여기서 신석기시대에는 화장, 세골장과 같은 2차장(次葬)이 유행한 것이 주목된다.
이처럼 구석기시대에 비하여 신석기시대의 장례습속이 일반화되어 있으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모습에서 우선, 영육 미분의 관념이 지속되었던 것을 엿볼 수 있다. 신석기시대도 매장지를 생존 당시의 활동 공간과 밀접한 곳으로 설정하였으며, 사자가 생전에 사용하던 장신구나 생활 도구를 함께 부장하고 있다. 이러한 매장습속은 신석기시대 사람들도 아직 죽은 영혼이 육신과 함께 무덤 속에 기거한다는 생각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아울러 이 시기 사람들은 유골 숭배사상도 가지고 있었으며, 영육 미분의 관념이 비롯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굴장이나 시신을 동향·서향으로 놓아두는 매장 습속에서 본원적 환원·지속 순환론적 관념을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굴장은 아이의 임신 형태를 상징하기 때문에 죽음으로써 사자가 탄생의 형태로 환원하여 아이가 탄생하듯이 소생하거나 재생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취한 매장습속이며, 동·서향의 매장도 태양숭배사상과 함께 역시 반복되는 일출처럼 사자가 다시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생각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여기서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인간 생명체의 관찰 경험과 우주관을 매장습속에 반영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죽음에 대한 본원적 환원·지속 순환론적 관념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골 숭배사상이 재생관념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끝으로, 죽은 조상의 뼈를 산 사람의 생활 공간인 주거지에 안치하는 유골 숭배에서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조상숭배사상이 확인된다. 신석기시대에는 정착과 함께 4인 내외의 가족이 거주하는 움집이 발견된 바가 있는데, 이러한 주거지 내부에 화장한 뼈를 안치한 점에서 신석기시대의 영혼관념에는 가족중심의 조상숭배사상이 형성·확산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울러 신석기 사회가 씨족 중심의 사회인 점을 고려한다면, 이 시기에 이미 씨족공동의 조상숭배사상이 대두하였을 것으로 본다. 이러한 변화는 곧 신석기시대의 사회 구조적 변화를 집약적으로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이래 형성된 영혼불멸론의 관념은 청동기시대에도 지속된다. 진주(晉州) 대평리(大坪里) 유적에서 목이 없는 피장자가 발견되었다. 이 피장자는 전쟁의 희생자라기 보다는 오히려 영혼으로서도 격리되어야 할 경우 그 기능을 상실시킨 결과라고도 해석하고 있다. 여기서 영혼의 본질은 사람의 머리, 즉 뇌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여기서 인위적인 영혼 차단 행위를 엿볼 수 있는데, 이는 역으로 해석하면 영혼불멸을 믿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아울러 사자가 살았을 당시 사용하던 생활도구 등을 부장한 것에서도 영혼불멸의 관념이 지속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청동기시대 부장품으로 홍도와 곡식이 발견되는데, 이들 부장품은 일반적으로 피(생명)의 상징으로 무덤 속에 있는 사자의 소생을 기원하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아직 지속 순환론적 관념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실세계의 사회·경제적 변화 현상을 집약적으로 투영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청동기시대나 신석기시대가 유사할 것이다. 하지만 신석기시대에 비하여 청동기시대의 현실적 사회·경제 구조와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그 구체적인 성격이 같다고 볼 수는 없다.
먼저, 영·육 분리의 관념이 비로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무덤에서 청동제·석기 무기류와 홍도(紅陶)가 부장품으로 발견되는데, 이들 유물의 기능은 일반적으로 피장된 영혼을 잡신(雜神), 즉 다른 영혼의 침범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 잡신의 실체는 떠도는 원혼 내지 악령(惡靈)이나 다른 무덤에 묻힌 영혼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피장자의 무덤을 침범하는 잡신은 자신의 육신에서 일시적 또는 항시적으로 분리된 영혼으로 해석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청동기시대에는 영·육 분리의 관념이 형성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지하계에서의 영·육 분리의 관념이 형성되었을 뿐 아니라, 사후세계의 공간을 천상계까지 확대함으로써 그 관념이 확산되어 간다. 함안 도항리의 고인돌 유적에는 겹 동그라미를 그려 피안의 세계를 은하계(천상계)로 상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 시기의 사람들이 천상계로 영혼의 이동을 믿고 있었음을 반증한다. 즉 이 지역의 청동기인들은 은하계를 사후 공간으로 상정함으로써 육신에서 영혼이 분리되어 천상의 은하계로 이동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 그림이 아주 소박하게 표현되어 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천상계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천상계로의 영혼의 이동을 돕는 새와 관련된 조형물이 제작되었을 것이라는 점에서도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영혼의 분리와 이동을 상정하고 있었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원혼 내지 악령의 존재를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든 진주 대평리 유적에서는 목이 없는 피장자가 발견되었고, 부장품에서는 청동제·석제 무기와 홍도(紅陶)가 발굴되었는데, 원혼이나 악령이 존재하면 우리는 그에 대비되는 선령(善靈)의 존재도 상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같은 다양한 혼령의 상정은 청동기시대의 사회적 변화와 연결되어 발생한 관념일 것이다. 이 시기는 전쟁의 수행 및 사유재산의 소유와 같은 현상이 형성되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악역을 맡아 희생된 원혼이나 악령이 상정될 수 있음을 쉽게 추단할 수 있다. 이러한 관념은 사회·경제적 구조가 보다 분화되어 가는 철기시대 이후에 더욱 확대, 고착화되었음을 볼 수 있다.
끝으로, 죽은 '영혼들 간의 계서적(階序的) 분화' 관념이 형성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같은 관념은 곧 청동기시대의 변화된 사회·경제적 양상을 영혼관에 그대로 반영한 결과이다. 생존 당시 사회·경제적으로 지배적 위치에 있었던 사람은 죽은 이후에도 그 지위와 조건을 지속하였으며, 반면에 피지배의 위치에 있었던 사람은 죽은 이후의 영혼도 마찬가지로 상정되었다. 이는 청동기시대 묘제의 규모와 위치 및 내부 출토 유물에 나타난다. 이 시기에는 생전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묘의 규모나 위치가 달랐으며, 지배층 무덤에서 동검(銅劍), 석검(石劍), 동(銅), 석촉(石鏃), 홍도(紅陶) 등과 같은 부장품이 발견된다. 이들 부장품은 영혼을 잡신(雜神)으로부터 보호함과 아울러 피장자의 신분적 위세를 반영한다. 그러므로 청동기시대는 현실세계의 사회·경제적 위상을 죽은 영혼에까지 반영하여, 영혼간의 신분적·경제적 계서화가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시대에는 죽은 영혼의 이동을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영혼들간의 계서적 조직까지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영혼들간의 계서적 분화 현상이 보다 뚜렷해지는 시기는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국가가 발생한 철기시대이다. 부여와 신라 및 가야는 왕이나 귀족이 죽으면 이들과 주종관계에 있었던 산 사람을 함께 무덤에 넣어 매장하는 '순장'을 하고 있는데, 순장 습속은 무덤이라는 동일한 내부 공간에서 영혼들간의 계서적 분화를 발생하게 하였다. 이 같은 현상은 무속의 저승 구조가 불교 수용 이전부터 이미 분화·계서화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삼한ㆍ삼국시대부터는 구석기시대이래 지속되어 온 원초적 영육관이 크게 변모 확대되어간다. 영육 미분의 관념이 지속되면서도 영·육 분리의 관념이 더욱 확산되어, 두 관념이 혼재하는 양상이 드러난다.
먼저, 변진(弁辰)의 장례습속에 반영된 영·육 분리의 관념을 살펴보기로 하자.
큰 새의 날개로써 죽은 이를 보내었는데, 그 뜻은 죽은 이를 하늘 위로 날려보내고자 함이다.
새는 일반적으로 인간계와 천상을 연결하는 매개 고리로 생각한다. 그래서 새의 날개를 달아매는 장례습속은 죽은 영혼이 천상계로 보낸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변진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큰 새의 날개를 단다는 행위도 영은 육과 분리되어 천상으로 보낼 수 있다는 개념을 일반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흔적들은 삼한, 초기 신라 및 가야의 유물·유적에도 나타난다. 고성 동외동유적 발굴의 청동제 조문동기(鳥文銅器), 새 모양의 토기와 관식(冠飾), 배와 수레 및 신발, 그리고 솟대가 있다. 이들 유물이나 유적은 일반적으로 육신에서 분리된 영혼의 이동을 돕는 매개물이나 신앙으로 이해하고 있다. 특히 새는 천상과 인간을 맺어주는 존재로 신령시 되었다는 사실에서, 영·육 분리의 관념이 일반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무속에서 사자와 함께 신발과 노자 돈 등을 넣어주는 오랜 습속도 육신에서 분리된 영혼의 이동 내지 여행을 상정하는 관념이다. 또한 5세기 말부터 6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양산(梁山) 북정리(北亭里) 고분군(古墳群)의 금조총(金鳥塚)에서 출토된 순금제(純金製) 새 발이나 묘도(墓道) 입구에 설치된 솟대의 흔적은 영혼이 지상에서 천계(天界)로 왕래하는 것을 시사하고 있으며, 봉분(封墳)의 형태가 방형(方形)을 취하거나 묘도를 가진 석실분(石室墳)이 나타남은 지상에 유택(幽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처럼 영·육 분리의 관념은 청동기시대부터 삼한·삼국시대에 형성, 확산을 가져왔다. 이런 사실은 불교 수용 이전부터 사후세계관과 영혼관의 변화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 변화 요인으로 우리는 현실사회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종교관념이 중요하게 작용하였을 것으로 본다.
영·육 분리 관념이 확산된 이후 무덤 속에 생활도구와 영혼의 이동을 돕는 새나 배 형태의 매개물이 함께 부장되는 경우를 본다. 우리는 여기서 생활도구를 사용하는 주체가 누구인가를 문제삼을 수 있다. 당연히 그 주체는 무덤의 육신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영혼이거나, 죽은 시신과 일정한 기간동안 함께 있는 백(魄)일 것이다. 그 가운데 후자의 백일 가능성이 더 높다. 옛 중국 기록에 "사람의 정기를 혼(魂)이라 하고, 형체를 백(魄)이라 하며,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으로 돌아온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땅인 무덤에 머무는 실체는 백이다. 이와 같은 관념은 승천하는 혼(魂)과 달리 땅에 스며드는 실체를 백(魄)으로 이해하고 있는 무속적 기반이 한국인에게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무덤 속에 남아 있는 백(魄)이 부장된 생활도구를 사용하는 주체라 할 것이다. 여기서 영·육 분리의 개념을 보다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삼국시대까지 지속된 영육 미분의 관념은 신라의 기록과 함께, 다음의 자료를 들 수 있다.
9월에 태후(太后) 우씨(于氏)가 돌아갔다. 태후가 임종에 유언하되, "내가 (일찌기) 행실(절개)를 잃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국양(國壤; 故國川王)을 지하에서 보랴. 만일 군신( 臣)이 차마 (나를) 구렁텅이에 버리지 아니하거든 나를 산상왕릉(山上王陵) 곁에 묻어주기를 바란다."라고 하였다. 드디어 그의 말과 같이 장사하였다. 무자(巫者)가 말하되, "국양왕(國壤王)이 나에게 강림하여 말하기를 어제 우씨(于氏)가 산상(山上)에 온 것을 보고 (내가)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드디어 그와 싸움을 하였다. 물러와 생각함에 낯이 뻔뻔하여 차마 국인(國人)을 볼 수 없으니 네가 조정(朝廷)에 아뢰어 (무슨) 물건으로 나를 가리어 달라고 하였다."고 했다. 이로 말미암아 릉(陵; 故國川王) 앞에 소나무를 일곱 겹으로 심었다.
죽은 사람이 묻히는 무덤에 영혼과 육신이 형체를 가지고 함께 거주하고 있다는 이런 내용은 고구려의 왕위 계승 및 혼인제와 관련하여 자주 인용된다. 지하에 영혼과 육신이 함께 거처한다는 생각에서 이 같은 내용을 기술하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신라나 고구려에서 아직 영육 미분의 관념이 지속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관념은 고구려, 백제, 신라와 더불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부부합장(夫婦合葬)의 습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 한국인의 영향에 미친 유교의 인간관과 육체관
한민족과 중국문화와의 관계는 시대가 올라갈수록 소박한 형태이기는 하겠지만 공자시대 이전에도 교섭하였으며, 따라서 공자도 일컬었던 '그 옛날' 상당히 발달했던 은주(殷周)시대의 문물이 때마다 들어와서 어떤 형태로든지 응용되고 그 자취를 남겼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단군 조선이나 논의가 분분한 기자조선 이전에 동방에는 국가체제를 갖추지 못한 구족(九族)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바, {삼국사절요}에는 "동방에 견이·방이 … 등 구이가 있었으되 처음에는 군장이 없었다."고 하였으며, {동사강목}에는 "초에 동방에 구이가 있었다. 견이·방이·우이·황이·백이·적이·현이·풍이·양이라 일컬으니 모두 토착민이었다."라 하여, 구이의 선주민이 정착하고 있었음을 말하면서, 그들의 성품이 "천성이 유순하고 음주와 가무를 좋아하며, 흑 변(弁)을 쓰고 비단을 입었고, 그릇으로 조두(俎豆)를 사용하였다. 하나라 임금 태강이 실국(失國)함에 비로소 반하였다."라고 하였다. 이는 중국의 하대와 그 이상에 걸친 시대를 염두에 두고 말함이니, 기자 이전의 단군조선 시대에 해당된다. 천성적으로 낙천우유(樂天優游)하는 예술적 성향과 제기(祭器)와 비단을 사용하는 예의의 풍속을 이루고 있었음을 아울러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공자의 사상으로 집대성된 유교사상이 부분적으로 전래하기는 서기전 3세기의 위만 조선과 한사군시대라 할 것이며, 공자의 경학사상이 본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활용된 것은 당(唐)나라의 학제인 국학을 받아들인 삼국시대에 이르러서이다. 고구려·백제·신라에 중국문화가 연결, 응용되는 시기와 방법은 차이가 있겠지만, 다같이 한국 고래의 전통적 신앙과 습속을 바탕으로 하면서 변용과 변화를 가져온 것은 마찬가지라 하겠다.
넓은 의미에서 한국 고대정신과 중국의 유교사상은 모두 인간을 본으로 하고 현세를 중시하는 점에서 공통성이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유교는, 멀리는 상고 은대의 신비적 종교문화의 흐름과 내면적으로 관련되고, 가까이는 주대에 있어 비록 종교적 성격이 들어있는 천명사상을 잠재적으로 계승하지만, 인문주의적 예제문화(禮制文化)와 합리적 정신을 보다 중요한 특징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에 비해 고대 한국에 있어서는 인간주의적 바탕을 깔고 있으면서도 원래의 종교적 소박성과 고유한 예속, 그리고 주술신앙을 함께 지녀온 신비주의적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제천사상과 조상숭배, 그리고 영성신(靈星神)·일신(日神)·수호신(守護神)·귀신숭배 등 이른바 '음사(淫祀)'가 성행하였다. 여기에 합리주의적 주대문화를 수용한 유교적 특성이 연결되고 영향을 받음으로써, 재래의 고신도적(古神道的) 전통이 합리화되고 세련된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신비적·감정적 요소가 축소되거나 대치되기도 하고, 중국적 요소와 함께 한국적 요소가 조화되기도 하며, 주술적인 것이 비판, 배척되는가 하면, 오히려 고신도적 전통을 상실하는 등 여러 가지 현상을 빚었다 할 것이다.
초기에 유교의 영향이 소규모적일 때에는 변화 속에서도 고래의 모습을 존속시켰으나, 시대가 지남에 따라 유교가 생활 속에 자리잡고 그 영향이 깊어질수록 다양한 변화를 보이면서 후대에 발달된 바와 같은 가치관·생활체제 등의 역사현실을 형성하는데 유교는 불가피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한민족이 상고시대의 이른 시기에 유교와 만났고 역사적으로 관계해 온 사실은 국가의 발전방향과 민족문화의 성격을 조정, 정립해 가는데 중대한 역할을 하였으며 한국인의 현재적 실상 그대로의 모습을 있게 하는데 큰 몫을 하였다.
고려시대를 통관하여 볼 때, 고려 말에 주자학(朱子學)이 들어와 기능하기 이전에는 유교는 역시 그 역할을 유지, 발휘하면서도 불교·도교 및 그 밖의 토속신앙과도 근본적인 갈등을 빚지는 않았으며, 병행, 공존하거나 교섭, 혼합되는 현상을 보여왔다. 그러나 성리학이 종합된 주자학이 들어오면서 신진사류들의 현실의식과 유·불·도의 관념은 점차 달라지게 되어 반성적·비판적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개국 초부터 태조의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으로 유교가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조선은 유교국가인 만큼 조선시대에 일어난 중요한 사항의 거의 모두에 대하여 유교적 관계와 태도가 수반되어 있을 뿐 아니라, 주자학으로 대표되는 신유학은 종전의 타종교와의 공존 병행을 청산하고 대립적 관계를 뚜렷이 보여주고 있었던 시대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유교의 기초를 처음으로 확립한 학자는 정도전(鄭道傳)이다. 그는 {불씨잡변(佛氏雜辨)} 등의 논설을 통하여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숭상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불가(佛家)의 "사람이 죽더라도 정신은 멸하지 않고 따라서 형체를 받아난다."는 이른바 윤회설에 대한 반론에서 "죽을 때에 기와 더불어 흩어지고, 형상이 다시 멀고 넓은 허공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것을 알게 된다."고 단호히 밝히고 있다. 같은 시대의 유학자로 권근(權近)도 많은 저술로 이에 동조하였고, 또한 고려 유신(儒臣) 길재(吉再)의 학통을 이어받은 같은 시대의 김숙자도 세종에게 올린 척불소(斥佛疏)에서 불교를 끌어들이는 것을 반대하고 '학규(學規)'를 지어 학문의 순차를 차례로 규정함으로써 정통적 유교 교육의 준범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또한 생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남효온(南孝溫)도 "사람은 죽지만 심신(心身)은 죽지 아니하며 만억 겁을 지내도 사라지지 않고, 다시 사람의 모습을 받는다."는 불가의 설에 대하여 그의 {귀신론}에서 "무극(無極)과 태극(太極)은 이(理)요,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은 기(氣)다. 사람이 나면 이(理)와 기(氣)가 서로 합하여 형질(形質)의 가운데 붙어있는 것이 마음이요, 사람이 죽어서 형해(形骸)가 이미 소멸되면, 이(理)는 이(理)대로 기(氣)는 기(氣)대로 있어서, 말이 분명하지 못하고 질은 바로 흙이 되는데, 어디에 그 마음이 있고 그 형이 있겠는가."라고 반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종래까지 답습하여 오던 주자의 이기이원론에 대하여 중국 장횡거(張橫渠)의 태허설(太虛說)을 이어받아 기일원론(氣一元論)을 주장함으로써 한국 주기론(主氣論)의 선구자가 되었던 서경덕까지도 그의 {귀신사생론}에서 역시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음은 이 시기 유학자들에게 있어 귀신의 문제는 송대 신유학의 귀신관을 그대로 이어받았음을 알 수 있겠다. "고명(高明)을 다하되 중용을 말미암는다."고 하였듯이, 어떠한 높은 진리를 말하더라도 일상적 현실을 떠나지 않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실학의 성격을 띠는 것이니 만큼, 근본적으로 현실주의적 세계관을 지녔던 것이고, 노불(老佛)에 대해 비판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영정시대를 전후하여 일어난 천주교 신봉자들의 증가는 유교적 입장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정조 15년(1791)에 상제(喪祭)를 폐하고 신주를 불사름으로써 일어났던 '진산사건(珍山事件)'에서 윤지충·권상연이 처형된 바 있었지만, 순조 조로부터 대규모의 교옥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러한 시대 배경 하에, 유교경전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질서(疾書)}라는 명칭의 방대한 논술 속에 담아낸 대표적 근대 실학자 이익은 서학이 주장하는 천당·지옥설과 같은 종교적 신앙에 대해서는 부정하였으나 수양론이나 윤리사상에 대해서는 긍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리하여 그의 후학들은 스승에게서 볼 수 있었던 전통과 외래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인식하고 보다 개방된 자세에서 새로운 사조를 열어주는 학풍에 접근하면서도 각각의 개성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지고 사상적으로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는데, 특히 천주교에 대한 태도가 그러하였다. 조선후기 실학자의 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안정복은 경사를 근본으로 하고 주자학에 대한 조예를 보이면서 이황을 높이 존숭하였지만, {천학고}와 {천학문답}을 지어 천주교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신후담도 일찍이 {서학변}을 지어 전통유학의 입장에서 천주교 교리서인 {영언여작}·{천주실의}·{직방외기} 등을 이론적으로 비판하였다. 이는 조선 후기에 있어서 서학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서로서는 최초의 것이며 대서학 논쟁사의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익의 학풍을 계승하면서도 천주교에 기울었던 후학이나 이익 문하의 인물들로, 그의 제자 권철신과 종손 이가환과 같은 학자들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천주교인이 되었으며 신유사옥 때 순교하였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 이익 문하의 신서파(信西派)들과 교류하였는데 모두 친인척들을 중심으로 한 것으로 보아 성호학파의 한 계통이 천주교와 깊은 관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정약용은 천주교의 이해를 바탕으로 경전 속의 상제(上帝)사상을 심도있게 서술함으로써 유교를 종교적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하겠다. 정약용이 보는 상제는 '하천지총(荷天之寵)'의 인격천(人格天)이요 '영명주재지천( 明主宰之天)'으로서, 성리의 극치라 할 태극이나 다른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으며, 인간은 영명무형지체( 明無形之體)를 부여받았으니, 그것이 도심이고 도심의 소리가 곧 하늘의 소리라고 보았다.
다음으로 근대 이래의 서세동점(西勢東漸)과 한민족의 국가적 위기를 당하여 뚜렷한 이념과 행동으로 대응하여 의리학의 학통을 이루었던 이항로 및 그 후학인 화서학파의 서학에 대한 입장이다. 19세기 조선은 전통적 기반 위에서 볼 때 밖으로부터의 두 방면의 위기- 즉, 정치적으로는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군사적 각축장이 된 점, 사상적으로는 전통가치 체계와 상반되며 도전적이기도 하였던 서학이 확대된 점으로 인해 유교국가인 조선으로서는 매우 심중한 문제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항로는 천주교 자체의 내세주의와 구복신앙을 논하고, 전총질서에 대한 파괴적 요인을 비판함과 아울러 그것이 외부로부터의 정치·군사적 침략과 결합하여 안으로부터 대응하는 것이라고 파악하였다. 따라서 조선에 대하여 천주교는 반윤리적·반국가적 존재였다고 보았다. 이러한 비판을 상대방에 대한 주의 깊은 통찰과 이해하려는 태도의 부족으로 인한 유교적 독단이라고 탓할 수도 있겠으나, 그의 {천당지옥변}을 살펴보면, 유교적 세계관이 그대로 답습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는 천당과 지옥이 혹세무민한다는데 이에 대한 변으로 "양이 있으면 음이 있고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어서 생재사망(生在死亡)의 설은 분명하기가 낮밤과 같아 삼척동자도 속일 수 없다. 그런데도 나의 말을 따르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천당에서 영생을 얻고 나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지옥에 들어간다는 가르침이 있다 하였다. 이것은 천리에 없는 일이기에 …(中略)… 혹세무민하는 사학(邪學)의 가르침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기독교의 천당·지옥설과 아울러 기독교적 계율(戒律)은 완전하지 못한 인격을 일정하게 자제해야 된다는 유교적 예론(禮論)과는 근본적으로 상치되는 점이 많았던 것이다.
이상과 같이 유교는 한국인에게 영혼관념 및 세계관과 함께 현상적 의례나 제향공간의 설치·운영에도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 배경은 인간 중시에 의미를 두는 현세적 입장의 유교적 세계관과 이를 지향하는 한국인의 관념이 상호 융합할 수 있는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특히 여기에는 한국인의 원초적 죽음관념에 흐르고 있던 친족 혈연성의 결속, 혈연의 정통성과 정치적 권위의 확보, 학연성의 결집이라는 현상도 반영되어 나타난다. 이런 입장에서 현세적 인간중심의 유교는 한국인에게 온전한 몸으로 죽어서 땅에 매장되는 것을 가장 훌륭한 장례방법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장기이식을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보여진다.
무속신앙과 유교의 인간관은 위에서 서술한 이유로 인해 살아 있을 때나 죽은 뒤까지 육체를 온전하게 보전하는 것을 최상의 가치로 삼는다. 이런 태도는 육체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육체를 물려준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정신이 있는 등 여러 긍정적인 요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이식 면에서는 큰 장애요소가 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벽을 뛰어 넘기위해 장기이식을 적극적으로 권장할 수 있는 불교윤리의 불교의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윤리사상이 불교의 여러 가지 사상 중에 특히 자비 사상이 그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다.
5. 장기이식의 근거를 위한 불교사상
1) 자비사상
(1) 자(慈)와 비(悲)
불교가 사회윤리로서 전개될 경우, 평등사상과 아울러 자비사상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불교의 실천을 관철하는 정신이며, 불교의 윤리를 특징짓는 기본적인 사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날 '사랑'이라는 낱말을 너무나도 많이 듣고 있다는 사실에 비한다면, 자비라는 낱말은 무엇인지 어색한 느낌을 지니는 낱말같이 여기는 사람들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상용어로서 우리는 '무자비(無慈悲)하다'는 말은 많이 듣고 있는데, 그것은 원래 불교의 자비의 부정형이라는 사실조차 잊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지금 다시 불교의 '자비(慈悲)'라는 낱말을 되새겨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자비(慈悲)를 하나의 낱말로서 사용하고 있지만, 원래 '자(慈)'와 '비(悲)'는 별개의 말이다. '자(慈)'란 '귀여워하다'라는 의미이지만, 불교에서 산스크리트어의 '마이트리(maitr )'와 팔리어의 '멧타(mett )'를 번역한 말이다. 그 원어는 '미트라(mitra; 친구)'라는 말에서 파생한 낱말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진실이 우정(友情), 또는 순수한 親愛의 念을 뜻하는 말로써, 인도일반에서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요컨대 '자(慈)'란 순수한 우정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깊이 감싸주는 마음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이에 대하여 '자(悲)'는 산스크리트어의 '카루나(karu )'의 번역으로서, 이 원어는 인도일반에서는 애민이나 동정이나 감정 등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비(悲)'란 상대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으로 하는 것같이 깊은 애민(哀愍)의 정을 뜻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慈)와 비(悲)는 어떻게 다른가. 보통 자(慈)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 즉 일체중생에게 행복을 주는 것, 즉 '여락(與樂)'이 된다. 그리고 비(悲)는 불행을 없애는 것, 즉 '발고(拔苦)'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어떤 경전에 의하면 자와 비를 반대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으나, 여기서는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기로 하겠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 두 개념이 너무나 닮았으므로 그 해석에 있어서도 옛부터 혼동을 일으킬 만큼 그 구별을 할 필요마저 없었던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일찍이 자와 비를 구별하지 않고 하나의 낱말로서 자비라고 표현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자비라는 낱말이 원래 인도일반에서 사용하였던 용법과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하겠는데, 그것은 불교의 자비의 관념만으로서 설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고 풀이하는 학자도 있다. 인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불교와 같은 시대의 자이나교에서도 "수행자는 일체의 생물을 애처로워하고, 동정하여라."라고 설하고 있으며, 바라문교 내지 힌두교에서도, 그 성전인 {바가바드기타}(12.13)에서 "일체의 살아있는 것을 미워하지 아니하고 자애심을 가지고 애민(哀愍)한다."라는 가르침이 설해 지고 있다고 한다.
이상과 같이 불교가 일어나기 시작한 시대에 인도일반에서는 자비의 사상이 제창되었을만한 기운이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통설이다. 그것은 당시의 사회적 현상에 대응하여 평등사상이 제창된 것과 같은 사정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평등사상을 다른 시각에서 파악한 것이 자비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는 인도일반에서 새로이 일어난 사상을 이어 받으면서 자비사상을 발전시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독자적인 전개를 했던 것은 물론이며, 우리는 불교에 있어서 자비사상이 어떻게 전개했던 것인지를 다음에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2) 원시불교에 있어서의 자비
원시불교의 성전 속에는 '손(孫)'을 주제로 하는 경전이 몇 가지 있다고 알려지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숫타니파아타}에 수록되어 있는 {慈의 經典(멧타숫타)}이다. 그것은 오늘날도 남방불교권에서는 이른바 호주경전(護呪經典)으로서 사용하고 있는 {소송경(굿다가파아타)}에도 들어 있다고 한다. 이 경전은 십시구(句)로 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자비심을 노래부르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마치 어머니가 자기의 외동아들을 신명을 걸고 지키는 것과도 같이, 그렇게 일체의 살아 있는 것에 대하여서도 무량의 자비의 마음을 수행해야 한다. 또 전 세계에 대하여 무량의 자비심을 수행해야 한다. 상에도 하에도 또한 옆으로도 가림 없이, 원한 없이, 적대심 없는 자비를 수행해야 한다. 서거나 걷거나 앉거나 눕거나, 잠들지 않는 동안은, 이 자비심을 확립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자비의 숭고한 경지라고 부른다."(149-151)
여기에서는 무량의 자비심을 수행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어머니가 그의 외아들에 대하여 가지는 본능적인 절대무조건의 애정에 비유하고 있는데, 그러한 깊은 애정을 모든 생명 있는 중생에게도 미치도록 해야 한다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무량의 자비심은 전세계의 모든 것에 대해서도 원한이나 적대감이 없는, 또 화내지 않는 마음으로서 대해야 한다는 것을 설한다. 그리하여 그러한 자비심은 행주좌와(行住坐臥)로서 늘 잊지 않고 지녀야 한다는 것을 자비심의 숭고한 경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자비심은 원시불교에 있어서는, '자(慈)'와 더불어 설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나아가서 '희(喜)'나 '평정(平靜)'이라는 덕목과 더불어 설하는 일이 많았다. '희'는 사람의 행복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을 뜻하며, '평정'은 한역으로는 '사'라고 하는데, 그것은 사람에 대하여 공한심이나 집착심 등을 버리고[捨], 전적으로 마음이 평안(平安)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숫파니파아타}(73)에서도 출가수행자가 취해야 마땅한 태도로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자비와 평정과 연민, 그리고 해탈과 즐거움을 때에 따라 잘 다스려, 세상을등지는 일 없이,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이러한 가르침은 약간 뒤에 성립된 경전에서는 이 네 가지의 마음을 모아서 설하게 된다. 예컨대 {전륜성왕사자후경(轉輪聖王獅子吼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재보에 부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비구가 있는데, 자비심을 가지고 한쪽에 편만(遍滿)하여 머문다. 마찬가지로 제2의 방향에, 또 마찬가지로 제2의 방향에, 또 마찬가지로 제4의 방향에 편재해서 머문다. 이와 같이 상(上)으로 하(下)로 횡(橫)으로 모든 곳에, 두루 일체를 포함하는 세계에 널리 크게 무량하게 원한 없이 노여움이 없이 자비심으로서 편만하게 머문다. 애초로워하는 마음으로서 …(中略)…. 기쁨을 함께 하는 마음으로서 …(中略)… 평정을 지니는 마음으로서 편만하게 머문다. 비구들이여, 그것이 비구가 재보에 부하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자(慈)·비(悲)·희(喜)·평정의 네 가지 마음이 일체 한량없이 충만하는 것을 원시불교에서는 '사무량(四無量)' 또는 '사무량심(四無量心)'이라고 한다.
(3) 대승불교의 자비관
대승불교에 있어서의 자비사상은 보살행의 실천이라는 양상으로서 전개된다. 대승의 구도자인 보살은 일체중생을 자비심으로서 대하는 사람이다. 보살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려는 서원을 세우고, 그 완성을 위해서 보살행을 실천한다. 이 서원은 자비(慈悲)·이타(利他)의 정신에 바탕하는 것이므로, 달리 비원(悲願)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대승의 보살에는 출가의 보살과 재가의 보살이라는 구별은 있으나, 그래도 모두가 보살이라는 점에는 다를 바 없다. 출가와 재가를 통해서 보살의 실천은 자비이타로 일귀(一歸)하며, 자비행의 완성을 통해서 자리이타(自利利他)가 충족되며, 깨달음을 얻어서 성불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보살행으로서의 자비는 대승경전에는 여러 가지의 형태로 설하고 있다. 예컨대 {법화경(法華經)} [안락행품]에서는 보살은 "일체 중생에 대하여 자력을 버리지 아니한다."라고 설하고 있으며, [법사품(法師品)]에서는 보살로서 {법화경}을 설하려고 하는 자는 여래의 방에 들어서 여래의 의복을 입고, 여래의 자리에 앉아서 설해야 한다고 하여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약왕(藥王)이시여, 여래의 방이란 무엇인가. 일체중생에 대하는 자비가 머무는 곳이, 실은 여래의 거실인 것이다. 거기에 저 양가의 자식은 들어가야 한다. 약왕이시여, 여래의 의복이란 무엇인가. 크나 큰 인내에 의한 유화가 여래의 의복인 것이다. 그것은 저 양가의 자식 또는 양가의 자녀가 입어야 할 의복인 것이다. 약왕이시여, 여래의 법좌(法座)란 무엇인가. 일체의 존재하는 것은 공이라는 것에 들어가는 것이 여래의 법좌인 것이다. 거기에 저 양가의 자식은 앉아야 한다."
경전에는 이상과 같이 보살은 여래의 자리에 앉은 다음에, 법화의 법문을 보살의 길을 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설해야 한다고 하고 있는데, 거기에서는 보살의 모든 중생에 대한 크나큰 자비심을 으뜸으로 들고 있다. 그것도 그것이 인내에 의한 유화한 마음, 즉 유화인전심과 일체의 존재하는 것이 공이라고 관하는 것, 즉 일체법공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설하고 있다. 그것은 보살의 자비가 인육과 표요를 이루고, 사상적으로는 대승불교의 근본을 이루는 공관을 바탕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실로 자비와 인내와 공관이라는 삼자는 법화경에서 설하는 보살행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며, 법화경을 넓히려는 자에 있어서는 규범이 되는 것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다음에 {유마경(維摩經)} [문수사리문질품(文殊師利門疾品)]에는 병문안을 온 문수보살에 대한 유마거사의 말을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문수사리여, 무명(無明)이 남아 있는 한, 생존에의 애착이 있는 한, 나의 이 병도 그만큼 계속됩니다. 모든 중생에게 병이 있는 한, 그 만큼 내 병도 계속됩니다. 만일 모든 사람이 병을 떠나게 되면 그때 내 병도 가라앉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문수사리여, 보살이 윤회 속에 있는 것은 중생에게 그 원인이 있고, 병은 이 윤회가 그 원인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모든 중생에게 병이 사라지게 되면 그때는 보살에게도 병은 사라질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부잣집 외동아들이 병이 났을 때, 그 병 때문에 양친도 또 병이 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외동아들에게 병이 없어지지 않는 한, 양친도 계속 고민할 것입니다. 문수사리여, 그와 마찬가지로 보살은 모든 중생을 외아들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중생이 모두 병들어 있는 한, 그도 병들어 있고 중생에게 병이 없어졌을 때, 그에게도 병이 사라지게 됩니다. 문수사리여, 이 병은 무엇에서 생겼느냐고 물으셨는데, 보살의 병은 크나큰 자비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대승의 보살이 모든 중생의 병, 즉 무명과 생존에의 애착에 의한 괴로움을 자기 스스로의 괴로움으로 여긴다고 밝히고 있다. 보살은 중생의 병을 더불어 앓고 아파하고 괴로워하며, 중생을 외아들과도 같이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 사랑은 앞서 인용한 바 있는 {숫타니파아타}에서 설하는 "마치 어머니가 자기의 외아들을 신명을 걸고 지키는 것처럼"이라는 자애심과 전적으로 같은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아무것도 구하는 것이 없는 사랑을 여기서는 '크나큰 자비'라고 부르고 있는데, 불교에서는 그것을 '대비(大悲)'라고 부른다. 보살의 자비심을 이와 같이 대비라고 부르는 것은, 이 경전에서만은 아니다. 예컨대 {화엄경} [십지품(十地品)]을 보면, 보살은 열 가지의 계층인 십지의 첫째 단계인 초지, 즉 환희지에 있어서, '대비(大悲)를 으뜸으로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고 설하고 있다. 또 모든 중생이 모든 외로움에서 해탈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대비'를 일으키고,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게 하여 열반에 들게 하려는 '대비'를 일으킨다고 설한다. 즉, 대승의 보살은 '대자'·'대비'라고 부르기에 알맞은 대자비를 실천하는 것을 목표한다는 것이다.
(4) 자비의 특성
그러면 이러한 자비를 윤리적(倫理的)인 관점에서 말한다면, 어떠한 특성이 있다고 하겠는가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자비와 가장 잘 대비할 수 있는 관념으로서 '사랑'을 들어야 할 것이다. 사랑이란 그것을 서양의 사상사를 통해서 본다면, 두 가지의 종류로 나눌 수가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그리스적인 감성적인 사랑, 즉 '에로스(eros)'와 다른 하나는 기독교에서 설하는 종교적인 사랑, 즉 '아가페(agape)'가 그것이다.
그런데 불교의 자비는 그 어느 하나의 관념과도 동일한 것이 없다. 자비는 그러한 서양적인 관념의 사랑과 닮은 것 같지만, 그러면서도 그것과는 이질적인 의미내용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불교가 사랑의 종교가 아니라 자비의 종교라고 흔히들 부르고 있는 것은, 실은 거기에는 사랑과는 구별되는 자비의 특성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랑에 대하여 자비는 어떠한 특성을 지니는 것인지를 가장 뚜렷한 점만을 들어 설명해 보기로 한다.
우선 지적해야 할 점으로는 불교의 자비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초월해서, '일체의 살아있는 중생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랑이 어디까지나 인간관계의 심정이며,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 위에 서고 있다는 점과 겨누어 볼 때 매우 다르다고 하겠다. 물론 사랑도 인간관계에만 한정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현재도 서양에서는 동물애호라는 점을 강조하고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근세에 이르러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아울러 그것에 부수적으로 설해지게 되었다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에서는 동물에는 영혼이라는 것이 없으며, 따라서 영혼의 구제를 받을 수가 없으므로, 천국에는 갈 수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또 동물은 인간에 봉사하기 위해서 신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므로, 그것을 죽여도 죄악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의 자비는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에까지도 미치는 사랑이다. 자비의 대상으로서는 인간도 동물도 모두가 동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비는 단지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까지도 포함한 모든 생물을 죽이지 않는다는 불살생(不殺生)의 사상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자비의 정신에서 말한다면 동물 애호라는 것은 당연한 도리인 것이다.
이상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불교의 윤리적 특색은 '살아있는 모든 것', 즉 '중생(衆生)의 윤리'라는 점에 있다. 그러므로 자비사상도 바로 그것을 바탕으로 삼고 있음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또한 불교의 자비의 특성으로서는 일체의 차별적인 사고방식을 버리고, 평등(平等)성을 관철하는 점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사랑에는, 부부의 사랑, 친자의 사랑, 형제의 사랑, 친구의 사랑, 조국의 사랑 등 여러 가지의 사랑이 있으나, 그 각각에는 친조나 호오(好惡)의 차별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친근한 것, 바람직한 것에 대해서는 애정을 강하게 가지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애정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불교의 자비는 그러한 사랑의 차별성을 초월하여 무차별, 평등의 입장에 선 것이다. 그것은 자기지신에게 친근하거나 않거나를 가리지 아니하고 모든 것에 평등하게 미치는 사랑인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던 원시불교에서 설하는 '사무량심(四無量心)'의 정신에 비추어 보아도 알 수 있겠지만, 자비심은 시방세계의 만물에 편만(遍滿)해야 하는 것이며, 거기에는 어떠한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비의 입장에 선다면, 인간사회의 평등이라는 것은 당연한 도리로서 요청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불교는 평등사상을 강조하지만, 그것은 바로 자비사상과 표리의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불교의 자비사상의 특성으로서는, 사랑이 감성적인 상대적 성격을 지니는 것에 대하여, 순수한 절대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불교에서도 자비 이외에 사랑이라는 낱말에 해당하는 말이 있어 인간의 사랑을 여러 가지의 양상으로 설하기도 한다. 예컨대 남녀의 성애라든가 연애 등은 '카마(kama)'라고 해서 애욕에 해당하는 낱말이 있으며, 친자와 같이 친근한 사람 사이의 애정은 '스네하(sneha)'라고 해서 친애라고 번역되는 낱말이 있다. 그리고 일반적인 인간애는 '애호'라는 의미의 '프리야(priya)'와 '애념'이라는 의미의 '프레만(preman)' 등과 같은 개념의 낱말들이 있어서, 그러한 사랑이 인생에게 주는 아름다운 의의를 여러 가지로 설하기도 한다.
즉 그와 같은 개념을 설하는 점에서 말한다면, 불교에서는 인간적인 애정을 멀리 하라고 설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인간에 있어서 바르고 아름다운 애정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교 본래의 입장에서 말해, 세속적인 입장에서의 사랑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은 언제든지 미망(迷妄)의 외로움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는 상대적인 사랑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녀의 애정은 상대가 배신했을 때는, 곧 바로 증오(憎惡)로 바뀌어지고, 그 사랑이 깊으면 깊을수록 증오도 또한 깊어진다. 그러므로 인간이 가지는 사랑은 궁극적으로는 맹목적, 충동적인 애욕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그러한 근원적인 사랑을 '트리슈나(t ; 渴愛)'라는 낱말로서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목마른 자가 물을 구하는 것과도 같은 격렬한 사랑이며, 불교에서는 그것을 근본적인 번뇌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에 있어서 인간애는 그대로 자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즉, 자비는 인간적인 애증의 대립을 초월한 절대의 사랑인 것이다. 감성적인 사랑을 초월한 순수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거기엔 애정이나 증오 따위는 전혀 없다. 그런 의미에서는 자비는 초세속적인 사랑이라고 하겠다. 그의 궁극적인 모습을 우리는 부처님의 자비에서 찾아볼 수가 있는 것이다.
2) 자타카에 나타난 사신 설화
일반적으로 '사신(捨身)'은 스스로 생명을 버리고 불도를 구하거나, 불도를 위해 자신의 생명조차도 버린다는 의미이다. {자타카}에 등장하는 사신(捨身)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자신의 신체나 그 일부를 타인에게 주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토끼 이야기', '지비왕 이야기' 등이다. 둘째는 불교의 가르침(진리)을 구하여 목숨을 버리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설산동자 이야기'이다. 셋째는 붓다에게 공양하기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경우이다. 이 세 가지 유형 중에서 첫 번째 사례를 중심으로 논하고자 한다.
(1) 시비(尸毘)왕 본생 이야기(Sivi-j taka)
이 전생이야기는 붓다가 기원정사에서 하신 말씀이다.
시비왕은 왕위에 오르자 왕궁의 입구나 거리의 여러 곳에 보시를 하였다. 그러나 재물의 보시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보시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여, 자기의 심장, 피, 살을 떼어주기를 결심하였다. 그리고 누군가 노예로 삼고자 한다면 노예가 되겠다고 하였고, 나의 눈을 욕심내면 나의 눈을 주저 없이 주겠다고 생각하였다.
왕의 이 같은 결심이 진실한가를 확인하기 위해 제석천이 병들고 눈먼 바라문으로 변장하여 왕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바라문은, "나는 눈먼 사람입니다. 바라옵건대 제게 당신의 눈 하나를 주시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자 시비왕은 "나는 마음이 깃든 보시를 하려고 결심하였다. 그대는 한 쪽 눈만을 원하지만 나는 두 눈을 주리라."하고 의사를 불렀다. 그러자 여러 신하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반대하였다. 그러자 왕은 "나는 명예가 탐나서도 아니고 안락하게 살기 위해 보시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옛날 훌륭한 이들이 행하였던 올바른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시한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격렬한 통증을 참고 양쪽 눈을 뽑아 바라문에 주었다. 그리고 장님이 된 이상 국왕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하여 나라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출가하였다. 이것을 보고 있던 제석천은 시비왕에게 눈을 되돌려주기 위해 다가가서 "그대의 소원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왕이 "나에게는 권력도 있고 수많은 재산이 있습니다. 그러나 장님이 된 이상 지금은 죽는 것이 소망입니다."라고 답하자 제석천이 다시 물었다. "그대는 왜 죽음을 바라는가, 장님이 되었기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장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양쪽 눈을 잃었고, 내가 바라는 진리를 보는 진실한 눈을 얻는 것도 불가능해졌습니다. 차라리 죽음만이 내가 바라는 소망입니다."라고 하자, 제석천이 다시 "보시란 베푸는 행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미래에 태어나기 위해, 또한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서도 보시는 행해져야 한다. 그런데 그대는 현재 살아가는데 필요한 양쪽 눈을 보시하였다. 그러므로 그대가 바라는 눈을 얻기 위해서 그대는 진실한 서원을 세워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시비왕은 자신에게 진리의 눈을 주기를 게송으로 노래하였다. 그러자 시비왕에게 진리의 눈이 생겼다.
왕은 다시 왕국으로 돌아와 시비국 사람들에게 말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부터 보시하는 마음을 가져라. 나는 마음이 담긴 보시를 하였기에 진리의 눈을 얻었다. 타인에게 보시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큰 기쁨이다. 부디 각자의 생활에 걸맞는 보시를 행하라."고 하였다. … ({자타카}499)
(2) 토끼 본생 이야기(Sasa-j taka)
이 이야기는 붓다가 기원정사에 계실 때 말씀하신 것이다.
옛날 보살(붓다의 전생)은 토끼로서 태어났다. 그 토끼는 원숭이, 여우, 수달이라는 친구와 함께 숲 속에서 살고 있었다. 토끼는 보살의 전생(轉生)이므로 보통의 동물과는 달리 지혜가 있었다.
그들은 낮에는 각자 먹이를 찾아 별도로 행동하였지만, 밤에는 한 곳에 모였다. 그때 토끼는 나쁜 짓, 교활한 짓을 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였고, 또한 자신만을 위한 삶의 방식이 아니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하는 보시를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한다는 수행 등의 이야기를 하였다.
어느날 토끼는 세 친구와 함께 수행을 하였다. 그런데 배가 고파서 먹이를 찾으려고 생각하였다. 토끼는 "오늘은 수행 중이므로 혼자서 먹이를 먹어서는 안되고 누군가에게 일부를 주고서 먹어라."하고 친구에게 말했다. 그래서 수달은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았다. 여우는 밭에서 사람들이 먹다 남긴 고기와 치즈를 발견하였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망고를 취하여 왔다. 토끼는 풀을 먹기 때문에 먹이를 저장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먹기 전에 보시를 해야한다고 자신이 정하였기 때문에 커다란 고민이 생겼다. 왜냐하면 풀을 구걸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세 친구들의 먹이는 인간도 먹을 수 있는 것이므로 간단하게 보시가 가능하였다. 토끼는 자신이 위선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끼는 "위선은 안된다. 누군가 음식을 구걸하면 나의 신체를 바치자. 토끼고기를 먹고싶어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지 않는가."라고 결심하였다. 이것을 제석천이 보고 진심인지를 실험하기 위해 걸식하는 사람으로 변하여 각자의 동물에게 갔다. 여우, 수달, 원숭이는 자신의 먹이의 일부를 기쁘게 보시하였다. 그리고 토끼에게도 가서 먹을 것을 구걸하였다. 그러자 토끼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보시를 하겠습니다. 장작을 가서와서 불을 피우십시오." 불을 피우자 토끼는 몸에 붙어있는 벌레를 떨어지게 하기 위해 몸을 흔들고, 그리고는 불 속으로 뛰어 들었다. … ({자타카}316)
(3) 찬벤야 용왕(龍王)의 이야기(n gar j -j taka)
옛날 앙가국과 마갈타국 사이에 찬바라는 강이 있었다. 그 강에는 챤베야라고 하는 용왕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앙가국과 마갈타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마갈타국이 싸움에 패하였다. 그래서 마갈타국의 왕은 도망쳐 찬바강에 이르게 되었다. 왕은 적에게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죽을 것을 작정하고 타고 있던 말과 함께 강물에 뛰어 들었다. 그때 용왕 챤베야가 왕을 구해주었다. 그리고 왕을 도와 앙가국을 멸망시켜 서로 사이좋게 지냈다.
그런데 용왕이 죽었다. 용왕이 죽은 지 7일 후에 보살이 용왕으로 다시 환생하였다. 환생한 용왕은 짐승의 세계에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포살(布薩)을 어기므로, 인간세계에 가서 포살회를 바로 지키고자 결심하여 인간세계로 갔다. 그리고 용왕(보살)은 "나의 가죽을 원하는 자는 가죽을 가져가도 좋다. 나를 잡아 재주를 부리는 뱀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라고 하여 신체를 무조건적인 보시물로 내던졌다.
그러던 어느날 뱀을 잡아 마을이나 도시에서 재주를 시켜 재산을 늘리려고 생각하는 한 젊은이에게 순순히 잡혔다. 그리고 수많은 고통을 참아내며 사람들에게 많은 재주를 보여 젊은이에게 많은 재산을 얻게 해주었다. … ({자타카}506)
(4) 로한타 사슴왕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서론 부분인 현생에서 아난(아난다)이 붓다를 위해 자기의 생명을 희생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붓다는, 아난은 전생에서도 자기의 생명을 희생하였다는 과거 이야기를 시작한다.
옛날 범여왕이 바라나에서 나라를 통치하였다. 그에게는 게야라는 왕비가 있었다. 보살은 그때 설산에서 사슴 팔 만두를 인솔하는 황금색 색깔을 띤 사슴왕(로한타)으로 있었다. 그의 남동생은 치타미가라는 이름이었고, 여동생은 스타나라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앞을 못 보는 양친이 있었다. …(중략)… 어느 날 게야왕비는 왕에게 부탁하여 황금색 사슴을 잡아오도록 부탁하였다. 그래서 일찍이 황금색 사슴을 보았던 사냥꾼이 사냥을 나갔다. 사냥꾼은 사슴이 물을 마시려 오는 연못가에서 덫을 놓고 사슴을 기다렸다. 드디어 사슴왕(보살)이 사냥꾼의 덫에 걸렸다. 사슴왕은 생각했다. "만약 내가 여기서 소리를 지르면 팔만 마리의 사슴들이 모두 겁을 먹고 물도 마시지 못하고 당황하여 도망갈 것이다. 모두가 물을 마신 후에 나에게 걸린 덫을 제거하자." 그리고 사슴들이 물을 다 마신 후에 사슴왕은 세 번이나 덫을 제거하려고 시도하였다. 첫 번째의 시도에 가죽이 벗겨지고 두 번째의 시도에서 살이 찢어지고 세 번째의 시도에서 힘줄까지 끊겨 덫이 뼈까지 닿았다. 그 고통에 사슴왕이 소리를 지르자 놀란 사슴들이 세 갈래로 나누어 도망쳤다.
그런데 도망치던 남동생(치타미가)과 여동생(스타나)은 형의 목소리라고 생각하여 되돌아 왔다. 사슴왕은 여기는 위험하니 빨리 도망가라고 하였으나 둘은 도망가지 않고 양쪽에서 그의 형을 부축하였다.
드디어 사냥꾼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사냥꾼을 보고도 남동생(치타미가)은 도망가지 않았다. 여동생은 공포에 질려 조금 도망갔지만 다시 되돌아 왔다. 그리고 나는 두 오빠를 버리고 도망갈 수 없다고 하여 왼쪽에 섰다. 여기서 남동생은 아난이고, 사슴왕은 나의 전생이었다.… ({자타카}501)
(5) 백조왕의 본생이야기(hamsar j -j taka)
이 이야기도 서론 부분인 현생에서 아난(아난다)이 자기의 생명을 희생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붓다는, 아난은 전생에서도 자기의 생명을 희생하였다는 과거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타카}502)
(6) 독수리왕의 본생이야기
이 이야기도 서론 부분인 현생에서 아난(아난다)이 자기의 생명을 희생하여 데바달다(Davadatta)로부터 붓다의 목숨을 구했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붓다는, 아난은 전생에서도 자기의 생명을 희생했다는 과거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타카}533·534)
(7) 투신아호(投身餓虎)
이것은 {금광명경(金光明經)}제17 [사신품(捨身品)]에 등장하는 붓다의 전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살타태자(붓다의 전신)는 어느 날 숲에서 7마리의 새끼를 낳고 7일 동안 굶주린 호랑이에게 자신의 몸을 던져 보시하였다.(생략)
앞에서 언급한 이야기들은 전생에서 붓다와 아난이 실천한 보시이다. 지금부터는 앞에서 제시한 {자타카}의 사례를 바탕으로 신체의 전체나 일부를 보시하는 행위와 장기이식을 관련시켜 서술하고자 한다.
앞에서 언급한 일곱 가지 사례 이야기의 공통점은 철저한 보살의 자비심을 바탕으로 한 보시이지만,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시는 자신의 자발심을 기초로 해야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서양의 종교와는 달리 자신의 생존을 자기 자신이 조정하는 것을 불교는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불교적인 논리(자타카)에 따른다면 자기의 신체를 보시하는 장기이식은 기증자(도나)의 의사표시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장기이식이 보시인가? 장기이식이 보시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장기이식이 보시가 되기 위해서는 '삼륜청정(三輪淸淨)'의 조건을 갖추어야한다고 불교에서는 주장한다. 이른바 도나(보시자)·레시피언트(보시를 받는 사람)·장기(보시물)는 모든 집착과 분별(계산)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의 생사를 불문하고 타인이 필요하다고 하는 경우에 자신의 신체 전부나 일부를 보시(기증)해야한다. 절대적이고, 철저하게 이타적인 마음의 발로가 보살행으로서의 보시이다. 이처럼 불교 입장에서는 장기이식을 보시행으로 삼고자 할 때는 반드시 앞에서 언급한 내용(삼륜청정)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500명의 회원 가진 세계 최대의 인도학·불교학회인 일본 인도학불교학회에서는 3년간의 연구 성과물로서 '삼륜청정'의 조건을 갖추었다면 장기이식을 허용한다는 내용의 위원장(마에다 센카쿠) 보고서를 1990년에 학회에 제출하였다.
한편, 그리고 설사 보시자(도나)의 자발적인 의견에 의해 보시물(장기)를 받는다고 하여도 보시를 받는 사람(레시피언트)은 다음과 같은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남의 장기를 받으면서까지 그렇게 생명을 연장하고 싶은가? 자기의 생명에 대해 집착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모르는가?". 이와 같이 불교에서 집착은 부정한 것이고, 보시행은 성립하지 않는다. "생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는 가르침은 어느 시대에도 통하는 불교의 중요한 가르침이다. 즉 생의 집착을 떠나 생의 의욕을 억제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진정한 불교도의 입장이다. 그러나 장기를 이식하면서까지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어느 누가 비난할 것인가? 따라서 현실적으로 인간에게 삶의 욕구를 비난하거나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보시 행위가 자기 육체의 전부나 일부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는 현재의 장기이식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자타카에 나타난 사신설화는 장기이식의 근거를 위해 귀중한 자료로 받아들여져야만 한다고 본다.
Ⅲ. 맺는말
필자는 불교의 근본정신이 중생의 고통을 제거하는 데 있다고 보고, 특히 중생의 고통 중에서 병고가 가장 큰 고통 중에서 하나로 보아, 병고를 제거하고 근본적으로 해결하는데 있어서 장기이식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서술하였다.
우선 뇌사를 살펴보고 불교의 여러 사상에서의 죽음관을 살펴보았으며, 이러한 불교의 죽음관에서 뇌사를 죽음으로 볼 수 있다고 서술하였다. 그리고 불교의 인간관을 살펴보고 특히 불교의 무아사상이 장기이식을 위한 근본적인 인간관이라고 제시하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한국인이 근본적인 심성과 가치관을 지배했던 무속신앙과 유교적인 육체관이 여러 긍정적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이식을 위하여 장애요소가 될 수 있다고 보고, 그것을 근본적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 사상으로서 불교의 자비윤리사상이라고 보았으며, 자비윤리사상에 대하여 자세하게 고찰하였다. 그리고 사신설화에서 장기이식의 근거를 위한 논리를 찾아보았다.
필자의 이러한 작업에 여러 무리한 논리적 비약이나 자세한 논리적 전개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불교쪽의 선행 연구가 미비하므로 자료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서술하였다.
▶ 주제어 - 죽음, 뇌사, 장기이식, 무아, 자비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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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 샤논·J. 디지아코모 著, 황경식·김상득 譯, {生 倫理學이란}, 서울 : 박영사, 1989.
4) 최운식, {이야기에 나타난 한국인의 삶과 죽음}, 서울 : 한울,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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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융조, {한국의 선사문화 - 그 분석 연구}, 서울 : 탐구당,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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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Study of Buddhist View
on Brain Death and Organ Transplant
Kwak, Man-youn
(Professor in Educational Morality·Ethics
Dong-A University)
Today, as a result of medical technology, views on death have changed. Conventionally when the breathing and the beating of ones heart stop, it was considered as dead. Once such essential functions stop, immediate breakdowns in all other organic systems follow. This meant when one came close to death, it was appeared as a complete death of that individuals entire body to the observers. Within the current few decades, this kind of common view has been challenged by the development of machines to artificially maintain body organs. Use of such machines put an end to the breakdown of both breathing and heart beating at the same time. This kind of situation is commonly found in the cases of almost every patients receiving concentrated medical treatment. These patients are getting artificial pressure from various mechanical devices. A complete breakdown of the entire body organs is the basis of the conventional view on death. But if it doesnt involve all the organs of the body, the question is that functioning of which organ plays the main role in deciding the time of death.
In problems regarding brain death, Buddhist beliefs also show accordance with the brain death and this can be illuminated through various concepts in Buddhist beliefs. For instance, human philosophy in Buddhism related to the concept of selflessness no doubt supports the idea of organ transplant. Confucian idea of human body have dominated the root of Koreans minds and values for a long time and many positive elements can be found in their own way however they, can also be seen as hazards particularly regarding brain death and problems associated with organ transplant. To overcome various existing elements of hazards at a principle level, an introduction of new values were suggested. The idea of mercy in the Buddhists ethic was presented for that.
The fundamental mind of Buddhism lies in the thought of removing pain. Illness is perhaps the most painful of all. Therefore, in this paper the organ transplant will be seen as a positive solution to remove illnesses at a fundamental level.
[출처] 불교의 생병 윤리사상|작성자 심법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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