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관련

회서(懷西) 홍인표(洪仁杓)거사

수선님 2021. 3. 14. 12:08

회서(懷西) 홍인표(洪仁杓)거사

 

 

<연종집요>의 저자 이시며,

서지(西至) 현수(賢守)율사 스님의 조부(祖父) 이십니다.

 

필자는 오래동안

회서(懷西) 홍인표(洪仁杓) 거사님(1880~1964)의 가르침을 받들어 온 사람입니다.

본관은 남양(南陽)이시며 원적은 서울이며, 64년에 입적 하셨습니다.

거사께서는 동경제대를 수학 하시고 왜정 시 잠시 총독부 산하 정읍 군수를 역임하셨다고 합니다. 근대 대율사 이신 자운(慈雲)큰스님께서도 이분을 존경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분에 유고 유집 속에는 많은 내왕교감의 흔적을 볼 수가 있습니다.

불교정화 전후로 교단의 승니 계율에 있어서(1940년부터~1956년 율장연구시기) 자운스님께서 노심고뇌 하실 때에 중국 상해불학도서를 많이 제공 하셨으며, 지금의 서울 삼청동 보국사에서 염불왕생에 바탕을 둔"대동염불회"를 결성 하셨습니다. 그리고 거사께서는 박학한 불교교의에 정통, 영 일 한(英日漢) 어학에도 능통 하셨으며, 그에 따른 논문도 필자는 보존하고 있습니다.

 

거사의 유명한 연종집요<蓮宗集要>는 오랫동안 연구해오시고 당시 어려운 대장경 열람을 하신 후 철저한 준비와 함께 집필하여 오셨음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육필유집 통하여 알아 볼 수가 있습니다.

 

일차 출간에는 <염불왕생법>(1955년 세수75세)을 편찬 하셨으며

이차 출간에는 <연종집요> (1962년 세수82세)를 출간 하셨습니다.

삼차 출간에는 <연종집요> (1972년)를 주석을 정리 완전 보완하여 큰 아드님이신

홍성탁 분께서 사재로 간행 제방에 법공양 하였던 것입니다.

 

회서 거사님의 적손이신 현수스님(세수77세)의 말에 의하면

할아버지께서는 일찍 불문에 귀의 하시고, 계사년(1953년) 시월에

조부님을 따라 동생과 함께 해인사 대적광전에 함께 참배 하신 후

불문에 정식 출가 귀의함을 하명해 주셨다고 합니다.

 

당시 고교시절(사진보유)에 일찍 발심출가의 길을 선택하여 명문대학을 졸업 하신 후

다시 동국불교대학원을 수료 하시고 할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아서며,

그 당시“대동염불회”를 결성, 말년에 조부께서는 조용히 염불삼매로 일관 하셨답니다.

 

 

근세 최고의 정토학자 이시며

극락왕생을 하신 거사 이십니다.

 

 

현 보국사 주지이신 태원(승가대총장)스님의 말씀에 따르면, 당시 대동염불회는 만일염불회의 전통을 계승하여 대단한 신심과 원력으로 염불결사를 한 모임으로, 홍인표 거사님은 임종 후 사리가 나올 정도로 철저히 수행하셨다 합니다. 그리고 <연종집요>는 한국근현대불교사에서 정토에 대해 가장 최초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서술을 한 저서로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거사께서는 평생 오신채를 금하셨고 정토 경전에 대한 사경애송은 지극하셨으며 그분의 세필은 장안의 명필로도 정평이 나 있답니다. 만년에는 상시 사성예불과 염불정진으로 일관 하셨으며 근대 염불정업발원행자로 손색이 없으셨던 분이라고 합니다. 가실 때에는 적손을 불러 금강계단(통도사)에 입문케 하시고 조용이 염불삼매로 좌 탈 입적 하신 걸로 명성이 높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적손이신 홍언규는 출가를 단행 해인사 자운스님을 찾아 가던 중 대구에서 남은 여비를 모다 물고기를 사서 금호강에 방생하고 도보로 걸어서 해인사에 당도하여 자운스님을 뵈오니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처사님은 보통 인연이 아니니, 조부님의 인연유훈을 저버리지 마시고. 곧장 금강계단 통도사로 가라” 고 말씀 하셨답니다.

 

곧장 통도사에 입산 출가 하시고,

월하방장스님으로부터 서지(西至)라는 당호를 받으실 때에

선친(홍성탁)의 신심발의로 <연종집요>를 세상에 정식 유포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 거사의 적손인 현수(홍언규)스님은 68년도 통도사로 입문, 홍법(雲祖)스님께 전강(傳講)하시고 철저한 오후 불식이며, 계율엄정하시고 제방 선원안거 하시다가 76년도 여름, 미국으로 출국, 그때에 주지 청하스님과 본인은 함께 김포공항에서 작별한 후 지금까지 그 누구도 스님을 뵙지를 못하여 습니다. 혹자는 흑인의 피습을 이야기 하는가 하면, 가정을 꾸려다는 풍문만 무성 하였답니다. 본인은 스님과의 후의를 간직, 출국 시 모든 유품문집을 필자가 보관하게 대어서며, 그 후 스님을 찾아 미국을 두 서너 차례나 방문하여 백방으로 찾아 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남방 불교 종신수도원에 입방 하셔서,

이 땅 통도사 금강계단의 서지 율맥을 미주땅에 정착화 하고 계신답니다.

 

끝으로

열반하신 방장 월하노스님의 말씀에 따르면 거사께서는 참선 하는 스님을 홀대하시고, 염불 하는 이를 우대함에 “거사께서는 왜? 차별심을 내시는지요?” 거사 왈 “모든 수행의 근본은 계율에 있는데 요즈음 선문은 계율을 등한시 하는 것 같습니다. 하여, 막행막식을 홀대 할 뿐입니다.”라고 하셨답니다.

 

 

 

 

거사께서는 말년에 밤으로 옷도 잘 벗지 않으시고

서쪽을 향하여 항상 엎드려 절하는 자세로 주무시고

오신채며 육식은 일 체 금하시며 육자염불을 저성으로

하시다가 않은 자세 그대로 극락 왕생 하셨답니다.

 

 

 

懷西 洪仁杓 居士님의 遺訓

 

 

淨土往生發願行者는 첫째 持戒嚴守 戒行淸淨

 

둘째 四聖禮文 朝夕日行

 

셋째 一心不亂 一心念佛

 

 

참고로

下記 近代 큰스님의 生 入寂을 表記 합니다.

용성 백상기 스님 1864년생 ~ 1940년(76세 입적) 146주기

만해 한용운 스님 1879년생 ~ 1945년(65세 입적) 131주기

운허 대종사 스님 1892년생 ~ 1980년(88세 입적) 118주기

자운 대율사 스님 1911년생 ~ 1992년(81세 입적) 100주기

회서 홍인표 거사 1880년생 ~ 1964년(84세 왕생) 130주기

 

 

 

부언: 거사께서는 구한말 이 땅의 지성인으로써 일생을 풍미 하셨으나

민족 해방과 더불어 불심에 의한 은연지중 수행 참회의 길을 철저히

걸어 시고 나아가신 분이라 사료 됩니다.

유집 가운데에는 <정토경.론.소.초집>등이 많으나 <율장>부분도 많답니다.

특히 직접찬술하신<연종집요>부분에 “第八章 殞命의 前後”는 종래

한국 불교전통교의 에서는 드물게 보는<唯識中有說>과<死者의 書>를

간단명료하게 비교해 생각하여 볼 수 있는 중요부분이라 하겠습니다.

 

 

 

 

 

 

 

 

[출처] 회서 홍인표 거사|작성자 임기영불교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