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9 9 4 學 年 度 碩 士 學 位 論 文
華 嚴 經 의 敎 育 觀 硏 究
指 導 敎 授 全 海 住
東 國 大 學 校 佛 敎 大 學 院 佛 敎 學 專 攻
金 石
1 9 9 4 學 年 度 碩 士 學 位 論 文
華 嚴 經 의 敎 育 觀 硏 究
金 石
指 導 敎 授 全 海 住
이 論 文 을 碩 士 學 位 論 文 으 로 提 出 함.
金 石 의 碩 士 學 位 論 文 을 認 准 함.
1 9 9 4 年 月 日
主 審 (인)
副 審 (인)
副 審 (인)
東 國 大 學 校 佛 敎 大 學 院
華 嚴 經 의 敎 育 觀 硏 究
차례
序 ....... 1
1. 硏究의 目的 ....... 1
2. 硏究의 方法과 範圍 ....... 2
Ⅰ. 佛敎와 敎育 ....... 2
1. 우리 나라 敎育의 現況과 問題點 ....... 2
2. 問題 解決 方案과 佛敎 ....... 4
3. 佛敎와 華嚴經 ....... 8
Ⅱ. 華嚴經의 中心 思想 ...... 10
1. 華嚴敎學의 形成 ...... 10
2. 華嚴 思想 ...... 13
Ⅲ. 華嚴經에 보이는 敎育 課程 ...... 28
1. 華嚴經上의 敎育 目的 ...... 28
2. 華嚴經上의 敎育 內容 ...... 32
3. 華嚴經上의 敎育 過程 ...... 42
Ⅳ. 入法界品을 통해 본 敎育 方法 ...... 50
1. 53 善知識과 스승상 ...... 50
2. 善財童子와 弟子 ...... 86
3. 求道 行脚과 人間主義 敎育 ...... 88
4. 法界案內와 敎育 方法 ...... 93
結 語 ..... 101
참고문헌 ..... 109
summary ..... 111
序
1. 硏究의 目的
華嚴經은 깨달음의 境界를 드러낸 經典이다. 깨달음의 경계는 그대로 大自然의 理法이기에, 이를 드러낸 화엄경은 그대로 眞理 그 自體이다. 화엄경에서는 우리 모두가 그대로 부처라는 것을 說하고 있다.
그러나 妄想으로因하여 自身 속에 들어 있는 智慧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부처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쉬고 자신에 內在한 佛性을 드러내면 누구든지 부처가 되는 것이다.
교육은 自我完成으로 이끄는 가르침이며 人間을 가장 理想的인 狀態로 해주는 作用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되게 하는 佛敎는 가장 훌륭한 人間敎育이 아닐 수 없다. 敎育은 佛敎를 통해 부처라는 理想的인 人間을 育成할 수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華嚴經은 人間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아주 좋은 敎材가 된다. 깨달음으로 이끄는 方法도 入法界品에서 善財 童子의 發心과 善知識의 菩薩道로 나타나고 있는데, 선재의 請法과 선지식의 說法으로 대부분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眞理 探究를 위한 끊임없는 對話이고 이것은 公正한 討論을 敎授-學習方法으로 내세우는 自由主義的 敎育 方法과 相通하는 데가 있다. 自由主義的 敎育은 敎育을 目的을 위한 手段으로 보지 않고 敎育 自體를 目的으로 본다. 敎育은 흔히 다른 무엇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기 쉽다. 그래서 교육을 幸福을 위한 道具로 생각하여 교육의 목적을 밖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自由主義的 敎育觀은 교육 그 자체를 價値있게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이라는 자아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는 화엄경을 자유주의적 교육관에 입각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깨달음은 自身만을 생각하는 利己主義的 人間에서, 자신은 물론 남까지 생각해주는 自他不二의 自利利他的인 人間으로 되돌아가게 해준다. 깨달음은 一切와 더불어 緣起하는 상태임을 알게 하므로, 나와 남이 따로 없어서 一切 모든 生命體에 대해 慈悲心을 일으키게 하고, 利他心이 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佛性의 可能性을 實現하여 부처라고 하는 理想的 人間을 追究하는 화엄경의 敎育觀을 살펴서, 깨달음의 自我實現을 위한 自由主義的 敎育을 하는데 도움을 얻고자 하는 것이 硏究의 目的이다.
2. 硏究의 方法과 範圍
이렇게 화엄경의 理想的 人間을 추구하는 교육관을 살피기 위해, 먼저 제Ⅰ장에서 우리 나라 교육의 현황을 살피고, 문제를 제기한 다음, 이를 해결할 방안을 생각해 본다. 여기서 불교가, 그리고 불교 가운데서도 華嚴思想이 해결의 실마리를 가지고 있는지 검토해 보는 것이다. 제 Ⅱ장에서는 화엄경의 특징을 간단히 살펴보고 그 사상을 검토해 본다. 다음 제 Ⅲ장에서는 이 화엄경의 사상을 통해 화엄경의 敎育 目的을 추구한다. 화엄경의 교육목적은 舊來不動佛의 自覺과, 보살도를 통한 覺他라고 본다. 그 다음 이러한 교육 목적을 이룰 敎育의 內容을 選定하고 組織하여 敎育課程을 잡아본다. 교육과정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을 성취하여 發菩提心 한 후 正覺을 이루기까지 十住, 十行, 十廻向 十地, 그리고 보살의 구경위인 等覺을 거쳐 妙覺에 이르는 42階位라고 본다. 교육내용은 42계위 속에 들어있는 上求菩提 下化衆生의 菩薩道로 본다. 이러한 교육과정에 따른 敎育方法을 제 Ⅳ장에서 入法界品을 중심으로 찾아본다.
화엄경의 교육관을 화엄경의 교육 과정과, 화엄경의 교육 방법으로 크게 둘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 이유는 화엄경이 世主妙嚴品부터 離世間品까지의 前篇과 入法界品의 後篇으로 나뉘어지고, 교육의 理論과 實際 부분이 되기 때문이다.
Ⅰ. 佛敎와 敎育
1. 우리 나라 敎育의 現況과 問題點
지금 우리 나라 學校 敎育은 人格 陶冶보다 知識 爲主의 入試 敎育에 치중하고 있다. 그래서 교육의 내용도 교과서 중심의 斷片的인 지식이고 가르치는 방법도 敎師의 注入式 강의가 대부분이다. 가르친 결과는 成積으로 나타나 심한 경쟁 의식과 위화감을 낳고 있는 것이다. 교육에서 바라는 성취감 대신에 많은 학생들은 열등 의식을 갖게되고, 진학 제도는 청소년 문화를 저해하고 있다. 교사는 스승보다 강사로 생각되고, 학우는 인생의 동반자보다 경쟁 상대로 보이게 된다. 이러한 학급 속에서 어떻게 따뜻한 인간미를 지닌 유덕한 人格者를 길러 낼 것인가? 오히려 自我 中心的인 個人主義者를 낳고 있는지 모른다.
대학 입시는 치열한 경쟁 때문에 학생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고, 중등학교는 대학 입학을 위한 예비학교로 생각되며, 학부모들은 명예와 자식 걱정사이에서 또한 괴롭고, 대학 진학에 실패하면 인생의 첫 관문에서 방황하게된다. 각박한 삶의 현장에 내동댕이쳐진 학생들은 하루하루를 시험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된 原因은 무엇일까?
日帝下의 민족 문화 말살 정책에 의한 민족 문화의 劣等 意識은 해방 후의 西洋 文化의 무분별한 도입을 가져왔다. 이로 인해 傳統 文化는 퇴색하고, 산업화에 따라 傳統 社會는 變化했다.
다시 말하면 근대 이후 西洋 文物의 과도한 수용으로 전통적인 불교나 유교 사상 등의 人間 中心的인 東洋 思想이 침식되고, 個人中心적이고 神中心的인 서양 사상이 敎育되었다. 더우기 해방 이후 몰락한 민족의식에다 미군정의 실시로 인하여 교육도 일제식 교육에서 미국식 교육으로 방향만 바꾸었다.
이러한 미국식 교육 마저 우리 현실에선 제대로 되어지지 않았다. 구미 사회는 民主主義와 自由主義로 그 나름대로 장점이 있는 반면, 우리 사회는 分斷 현실에서 사상적인 억압과 군사문화의 획일적인 통제 속에서 자발성과 창의성이 제한 받았고, 관권 위주의 비민주적인 정치 행정 속에서 인간성과 정의는 녹슬어 왔기 때문이다.
한편 60년대 이후 産業化는 경제성장과 수출을 앞세워 무모한 개발로 인해 자연환경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으며, 도시집중 현상은 날이 갈수록 공해와 오염을 일으키고 있다. 한편 따뜻했던 전통 문화의 인간성은 도회지의 콘크리트 건물과 자동차의 매연 속에 매몰되어 가며, 흉악 범죄와 무관심은 생명을 병들게 하고, 놀이 문화를 상실한 그 자리를 도박이 차지하고, 심지어 약물 중독까지 나타난다. 곧 이러한 人間性 喪失과 自然破壞 및 黃金萬能主義는 서구문화의 무분별한 도입으로 인한 傳統 文化의 退色과 近代化에 그 원인이 있다.
한편 현재 20 세기말의 文化속에 살아가는 사람들과 社會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전제 왕권의 몰락으로 근대 이후 국민 주권의 民主主義는 보편화되었으나, 自由主義와 社會主義의 갈등으로 資本主義와 共産主義가 대립하고, 결국 自由와 平等의 원칙에 입각한 福祉國家로 나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自然 科學의 발달로 기술과 산업이 발전하고, 교통 통신의 발달은 한층 더 地球村을 가깝게 하여, 국가와 국가간이 역동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경제적 경쟁과, 핵무기의 위협, 그리고 자연 훼손과 날로 심각해져 가는 공해에 찌들리며, 인종간의 갈등, 종교간의 갈등이 민족간의 갈등과 더불어 점차 고개를 들고 있는 세계의 모습이다.
이러한 현대 문명 속에 살아가는 인간들은 경쟁과 위협 속에 하루도 마음 편히 살 수 없는 처지에 와 있다. 인간들 스스로가 서로를 믿고, 양심대로 살며,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해결될 수 있는 지구 가족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가르쳐야 할 스승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 나라에서는 국가의 명령에 충실히 따라야 할 공무원으로서 또는 준 공무원으로서 많지 않는 봉급으로 겨우 살아가고 자유경쟁 사회 자본가들의 횡포에 밀리는 교사들이다. 어떻게 미래의 꿈을 제대로 키울 수 있겠는가? 교사의 본래적인 직무는 학생 지도와 자기연수에 있다. 자기연수란 스스로 자기의 삶을 진지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어서, 이런 사람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타인을 교육시킬 수 있다고 본다. 위대한 스승들은 스스로 구도의 길을 평생 걸었으니, 성현들의 삶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훌륭한 스승이 되는 선지식의 모습을 다음에 살펴보도록 한다.
교육이란 인간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활동이다. 그렇다면 바람직하고 좋은 방향은 어떤 것일까? 이것을 묻는 것은 교육의 목적을 다시 살펴보는 것이 된다. 우리는 敎育의 理想을 다시 살펴보아야 하고, 敎育의 方向이 올바로 되도록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2. 問題 解決 方案과 佛敎
敎育은 人間의 可能性을 꽃피게 하고 結實시키는 人間 課業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의 가능성은 무엇일까? 그리고 어디까지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것은 우리 인간 속에 어떤 가치가 들어 있는가? 에 대한 물음이 된다. 그리고 과연 인간이란 무엇일까? 하는 물음도 제기된다. 또한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과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하는 물음이 따른다.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價置있는 것을 意圖的으로 傳授하는 작용”을 말한다. 교육의 “目的”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곧 교육에서 價置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하고 그것에 전력을 기울이라는 요청이다.
결국 敎育은 人間 스스로와 對 自然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方向이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참다운 敎育은 참다운 人間을 육성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는 참다운 人間에 대한 探究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참다운 인간에 대한 탐구는 먼저 인간인 自身을 아는 데서 出發한다.
교육이라는 말은 특정한 활동을 꼬집어서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활동이 만족시켜야하는 基準을 명시하는 것이다. 그 기준은 교육활동 속에 무엇인가 價値있는 것이 內在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기준은 교육이라는 말속에 理解와 眼目이 그 의미의 한 부분으로 붙박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을 논할 때는 교육의 의미보다 교육의 내용 곧 가르치고자 하는 理念, 다시 말하면 교육의 目的에 대한 논의가 되며 이것은 價置를 따지는 것이 된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는 것도 그 방법에 있어서 자유주의적 교육관은 목적과 방법을 둘로 보지 않기 때문에 교육 자체를 가치실현의 현장으로 보는 것이다.
敎育 活動은 원시 사회에서부터 있어 왔다. 成人式, 또는 入社式 행사에서 단식을 시키거나 등가죽에 구멍을 내 그곳에 새끼줄을 꿰뚫어 나무를 달아 끌고 다니게 하는 등의 고행을 통과한 자 만을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활동에는 다 目的이 있으니, 참을성 있고 건강하며 유능한 사람을 양성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교육이란 원래 先天的으로 內在하고 있는 힘을 잘 開發시켜 참된 것을 볼 수 있게 크게 영혼을 전향시키는 人間의 轉向術이라는 시사를 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교육이란 머리 속에 知識을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잘사는 사람이 되게 영혼을 뒤흔들어 주고, 졸고 있는 영혼을 쇠파리처럼 자극하여 국가 사회 所任을 다하여 理想的인 國家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페스탈로치는 교육의 목적을 內在的인 여러 能力을 啓發하여 어떤 처지에서도 自活하며, 자유롭게 능력을 계발하고,精神力과 心情力을 陶冶하는 것이라 보았다.
스펜서는 이 둘을 교육작용 속에 포섭하여, 교육을 完全한 生活을 위한 準備로 보아 知性敎育, 情緖敎育, 身體敎育, 紳士敎育을 내세웠고, 미국은 스펜서의 이론에 基本的 課程의 履修와, 倫理的 品性 陶冶를 첨가하여 중등교육 7대 원리를 세웠다.
우리 나라는 교육의 목적을 弘益 人間에 두고 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人格을 完成하고, 自主的 生活 能力을 기르고, 公民으로서 資質을 갖추게 함으로써, 民主 國家의 發展과 人類 共榮의 理想 實現에 寄與케 한다고 밝히고 있다. 홍익 인간의 정신은 우리 민족의 정기인 大同의 精神과, 平和 愛護 精神, 그리고 따뜻한 人間味로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홍익인간의 정신은 어떻게 보면 인간만을 위하는 인간 이기주의라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위하는 생명 존중 사상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홍익인간의 정신의 깊은 뜻은 동양의 생명 존중 사상으로, 그 기반은 유교의 仁과 불교의 慈悲에서 볼 수 있다. 그러면 불교의 교육 목적은 무엇인가?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부처님은 지금부터 2600여 년 전에 인도 카필라성 (Kapilavatthu) 에서 정반왕과 마야부인 사이에 왕자로 태어나셨다. 인생의 괴로움을 해결하고자 출가하여 대각을 성취하고, 미혹에 싸인 중생들을 위하여 법을 설하셨다. 이로 인하여 수많은 제자가 생기고, 그들은 마음의 문을 열어 해탈하게 되었다.
바르고 참된 마음 어지럽지 않게 편안히 일곱 걸음 걸었으니 발 아래 발자국 반듯하여 칠성처럼 밝고 뚜렷하여라.
짐승의 왕 사자 걸음으로 사방을 관찰하고
진실한 뜻에 통달하여 이와 같이 말하였다.
“이 태어남을 부처의 태어남으로 삼아
곧바로 마지막의 삶이 되게 하여
내 오직 이 한 태어남으로
마땅히 일체 중생 제도하리라.”
이것은 부처님이 태자로 誕生하시어 설하셨다는 誕生偈이다. 여기서 우리는 부처가 보는 태어남의 意味와, 태어나면서 하는 決意를 느낄 수 있다.
지금 태어난 이 몸으로 부처가 되어 一切 衆生을 濟度하겠다는 것이니, 여기서 부처란 하늘 위나 하늘 아래 가장 존귀한 존재이므로, 그 가장 존귀한 존재가 되겠다는 의미가 ‘天上天下 唯我獨尊’ 곧,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내가 홀로 가장 존귀하다. 라는 뜻으로 되었다. 이러한 탄생게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모든 중생들에게 자신의 존귀함을 알려 주는 가르침이다. 불교에 있어서 교육은 아동 스스로가 부처임을 깨닫게 해주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根本佛敎에는 수 많은 가르침이 있으나 그 근본 원리는 四聖諦로 귀결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쉽게 말하여도 四聖諦이다. 사성제는 먼저 인생에 苦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苦의 원인을 集(渴愛)이라 한다. 다음 괴로움이 사라져 즐거움이 있다고 설한다(滅). 그리고 그 즐거움의 원인을 道(8正道)라 설한다.
그러므로 불교 교육의 목적은 苦의 消滅에 있다. 그래서 그 방법은 8정도에 있으며 그 내용은 渴愛를 끊는 것이다. 그 과정은 苦에 대한 認識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원인을 밝히며, 그 원인을 제거하여 涅槃의 언덕에 도달하는 것이다.
大乘佛敎에 와서는 이러한 自利的인 수행과 더불어 利他的인 수행이 강조된다. 즉 자신의 解脫에 그치지 않고 눈을 사회에 돌려 함께 괴로워하는 중생들의 제도에 먼저 뛰어 드는 것이다. 그래서 上求菩提 下化衆生이란 말로 보살도를 나타낸다.
部派佛敎에서는 인간의 可能性을 阿羅漢으로 보았지만, 대승불교에 와서는 부처로 본다. 부처가 되는 가능성은 一切 衆生의 性品에 佛性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우리와 똑 같은 人間이었다는 점을 공통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지만 부처님은 인간에 내재하고 있는 佛性을 開發하여 깨달음을 통해 부처가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可能性을 확실히 알게 되는 것이다. 곧 불교의 교육 목적은 깨달음이라는 가치를 實現하는 것이다.
깨달음의 가치를 실현하는 불교와, 불교 속의 화엄경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러한 것을 다음절에서 살펴보자.
3. 佛敎와 華嚴經
불교에는 많은 경전들이 있다. 이것들을 크게 나누면 아함경과 같은 근본불교 경전과 반야경 화엄경 법화경과 같은 대승 경전으로 나뉜다. 초기 대승 불교의 경전에 속하는 화엄경은 불멸 후 4∼5 C 경에 그 사상적 발아가 도사경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도사경은 화엄 大經의 如來名號品과 光明覺品에 해당한다. 그 무대는 마갈타 (Magadha)국의 法淸淨處로서, 불타가 처음 부처가 된 때이다. 그 때 광경은 매우 눈부시고 광대한 蓮花의 師子座가 나타난다.
佛身에서 나오는 光明은 모든 佛刹을 비추니, 시방세계로 부터 보살이 모여 와 諸佛刹과 諸佛의 所行과 說法을 示現해 주실 것을 생각하니, 佛이 光明威身을 나타내고 시방으로부터 文殊師利를 비롯한 10보살이 眷屬을 이끌고 도착한다. 이러한 광경은 화엄경의 序品을 연상케 하고 있다.
화엄경은 어떠한 배경 속에서 출현하였을까? 대승 불교가 처음 일어날 때, 佛塔信仰을 하던 在家人들이 부처님을 恭敬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더욱 강해져, 부처님이 처음 成道했을 때의 광경을 묘사하여 설하게 되니, 그것이 口傳되어 점차 어떻게 하면 佛地에 이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부처님의 本生譚이 나온 것이다.
무수한 세월동안 보살행을 닦아 그 因으로 成佛하셔 出現하셨으니, 그것을 결국 비로자나 보살의 因行이라고 보고, 처음 발심했을 때부터 성불에 이르기까지를 단계적으로 나누어 설하니, 부처님의 법을 처음 듣고 發心할 때의 歡喜心에서 貪, 瞋, 癡를 줄이며, 열심히 법을 듣고, 법을 이해하며, 어려운 수행의 과정을 이겨내고, 부처님 앞에 다가가며, 결국 모든 더러움을 떠나 不退地에 이르고,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머리 위로 灌頂하여 받아 법을 自在로 설하는 불지에 이른다는 보살 십지의 원형이 이루어진다. 그것이 十地經이 되고, 이 십지경을 중심으로 화엄대경이 이루어진다. 그 구성 과정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비록 석가세존의 화신은 가고 없지만 비로자나 법신불은 남아 계시니, 연꽃이 시들어도 연화대는 남아 있는 것과 같이 법신의 대광명은 항상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문수와 보현 같은 法師가 삼매에 들어 비로자나 法身佛의 光明을 정수리에 받고 깨어나서 비로자나 법신불의 法을 대신 설하는 것이다. 비로자나불의 대광명은 眉間白毫나, 정수리나, 齒間이나, 무릎이나, 발바닥이나, 입에서 나와 시방 제국토를 다 비추어 한량없는 불세계를 보이신 후, 법사의 정수리나, 입으로, 또는 부처님의 몸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하여 법사는 불의 위신력으로, 비로자나불로부터 받은 법을 설하니, 청법 대중의 알고자 하는 바에 따라, 여래의 因行과 여래의 出現과, 부처님의 境界·業相·音聲·功德·智慧 등을 설하니, 十地品·如來出現品 등의 무수한 법문이 쏟아져 나오고, 각 품별로 정리되어 화엄대경이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성립된 화엄경의 대강은 다음과 같다.
석가 세존은 아란야 법보리 도량에서 처음 正覺을 이루시니, 光明으로 둘러싸이고, 땅과 허공과 菩提樹는 무수한 七寶와 香氣 구름 음악소리로 莊嚴되고, 광명 속에 무수한 菩薩大衆이 있으며, 그들은 모두 부처님의 장엄과 지혜와 덕상을 찬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부처님의 인행을 시방에서 모여온 보살들이 설하니, 信心의 소중함。發心。十住。十行。十廻向。十地 등의 내용을, 도리천궁。야마천궁。도솔천궁。타화자재천궁으로 오르면서 설하고, 다시 寶廣明殿에서 如來出現。離世間 등을 설하고, 마지막으로 入法界品에서 문수는 비구와 용왕과 선재에게 가르침을 주어, 선재는 53 선지식의 도움으로 法界에 들게 된다. 이러한 내용을 지닌 화엄경을 그 제목부터 자세히 살펴보자.
화엄경의 원제목은 大方廣佛華嚴經이다. 크고 바르고 넓은 부처님을 가지가지 꽃으로 꾸민 글로 새겨진다. 여기서 ‘크고 바르고 넓은 부처’는 光明이라는 뜻을 지닌 비로자나불이다. 대방광불과 비로자나불 등의 관계를 좀더 자세히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화엄경은 大方廣佛을 說하는 經이므로, 본경의 敎主는 融三世間 十身具足의 비로자나 法身佛이라고 한다. 융삼세간이란 衆生世間 (人, 天 등의 有情)과, 器世間(山, 河, 大地등의 非情)과, 智正覺世間 (菩薩 佛陀의 境地)의 삼종의 세계로서, 중생은 因位, 지정각은 果位로, 다 같이 正報이고, 기세간은 이에 대하여 依報이다.
즉 화엄경의 교주는 대방광한 毘盧遮那佛인데, 毘盧遮那佛은 온 우주에 널리 가득찬 허공의 빛과 같은 부처님으로 10身을 구족하였다. 그래서 비로자나불은 우주만상 모든 것을 그 몸으로 하고, 계시지 않는 곳이 없어서, 우주 자체가 비로자나불이고, 우리 중생들이 그대로 비로자나불인 것이다.
또한, 비로자나불은 광명으로 가득하니 지혜와 복덕, 원력과 자비, 신통과 위신력 등이 무한히 크고 깊고 넓다. 이러한 부처님 세계를 보살의 萬行華로써 장엄하고 있는 것이다. 화엄경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海印總定에 드셔 一時에 밝게 나타난 비로자나 청정법신불의 대광명이 우주 법계에 가득한 華藏 莊嚴세계의 모습을, 부처님의 위신력을 빌려 문수 보현 등 대보살이 해인삼매에 의지하여 찬탄하고 설한 법문이다. 그러면 이 화엄경의 주된 사상은 무엇인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Ⅱ. 華嚴經의 中心 思想
1. 華嚴敎學의 形成
이 화엄경은 불멸 4∼500년 대승불교의 경전 가운데 초기에 성립된 것이지만, 처음부터 일시에 성립된 것이 아니고, 십지품 등이 단독으로, 혹은 여럿이 결합된 상태로 용수보살에 의하여 널리 유통되었다.
그것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화엄경이 중국에 전래되어 번역될 때, 화엄경의 十地品 入法界品 如來名號品 光明覺品 淨行品 十住品 十定品 十忍品 性起品 離世間品 등이 단독적으로 혹은 타품과 결합하여 역출된 점이다. 그런 후에 대경이 역출 되었으니, 60권 화엄경(7처 8회 34품)이 불타발타라에 의해 동진시대 418∼420년 사이에 번역되었고, 80권 화엄경(7처 9회 39품)이 실차난타에 의해 대주시대 695∼699년 사이에 번역되었다.
이러한 화엄경에 의해 華嚴學이 연구되었으니 대승불교의 꽃이 일승원교로 결성되게 된 것이다.
이에 화엄경에 의한 화엄학이 중국에서 연구되어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논쟁을 해결하고, 그때까지 연구되어온 불교학을 종합 집대성하게되는 과정을 알아본다.
현수는 저 구불교를 대표한 中觀系의 實相派가 法의 性, 즉 實在의 일면에 偏墮하고,신불교를 대표한 瑜伽系의 法相派가 法의 相, 즉 現象의 일면에 傾斜 되어 있음을 看破하고, 잘 이것을 綜合統一하여 완성한 것이 화엄학이다. 그러므로 대승불교의 深遠한 哲理는 華嚴學에서 그 至極의 奧義를 다했다 할 것이다.
용수에 의해 일어난 大乘 불교는 中論 百論 十二門論의 삼론으로 부파 불교의 三世實有 法體恒有등의 有見을 깨뜨리고, 不生, 不滅, 不去, 不來, 不斷, 不常, 不一, 不異 등의 八不思想을 내세우니 이것이 中觀學派이다. 즉 일체는 緣起 中道에 의하여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으며, 끝나지도 않고, 항상하지도 않으며,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緣起, 中道, 空을 내세우는 중관학은 중국으로 전해져 三論宗이 되었고, 한편 천태 지자에 의해 받아 들여져 묘법연화경을 중심경전으로 하는 諸法實相의 천태 사상이 되었다. 여기에는 一切衆生 悉有佛性의 如來藏 思想이 性具 사상으로 자리잡고, 空諦, 中諦, 假諦의 三諦 圓融觀을 닦는 것이 천태 止觀이다.
이에 반하여 중관사상의 空이 惡取空으로 떨어질 것을 경계한 무착, 세친론사의 瑜伽 唯識사상이 새롭게 등장한다. 無我를 주장하지만 6도 윤회를 하는 한 斷滅이 아니고 뿌리가 남게 된다는 것이니, 이것이 윤회의 주체로서 아뢰야식이다. 우리의 마음은 크게 心, 意, 識으로 대별 되지만, 더욱 세분하면 眼, 耳, 鼻, 舌, 身, 意의 6 識과, 아뢰야식과, 아뢰야식을 나로 삼는 말라식의 8 識이 있다. 이 8식은 我痴에 의해 물들여져 있으니 我相과 法相이 眞如를 가리고 있다. 그래서 아상과 법상을 깨뜨리고 無我 空이 달성되면 아뢰야식이 淨化되어 大圓鏡智가 되고, 말라식은 平等性智가 되며, 제6의식은 妙觀察智가 되고, 前5 識은 成所作智가 된다. 그래서 번뇌의 뿌리까지 뽑는 滅盡定을 닦아야 한다고 한다. 이것이 법상종 인바, 앞에 인용된 新佛敎로 현장이 중심적인 위치에 있다.
그러나 화엄교학은 중관 유식의 兩佛敎를 종합하고 통일시켰으니, 중관사상의 緣起中道와 유식사상의 萬法唯識을 받아들이고 여래장사상의 如來藏緣起를 통합하여 性起사상과 法界緣起사상을 완성하였으니 의상과 현수를 대표로 꼽는다.
賢首는 華嚴五敎章에서 一乘 圓敎를 수립하여 華嚴宗을 다른 敎와 종파에 비해 수승함을 서술하고 있다. 一乘이란 三乘에 대한 一乘의 의미로, 삼승은 여러 가지로 말하나 聲聞乘, 緣覺乘, 菩薩乘을 지칭하고, 여기서 성문승과 연각승을 흔히 小乘이라 하고 보살승을 大乘이라 한다. 여기서 생긴 소승과 대승의 대립을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 法華 一佛乘 思想과 華嚴 一乘思想이다.
한편 圓敎란 가르치는 법에 대하여 圓融無碍하다는 뜻으로, 5敎를 수립한 것 중에 가장 나은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5교는 小乘敎, 大乘始敎, 大乘終敎, 頓敎, 圓敎이다. 五敎의 내용은 제법의 근본 이치에 따라 10가지로 상설한 華嚴十宗判에서 살펴보면 그 관계가 다음과 같다.
小乘敎는
① 我 法이 모두 있다고 보는 人天乘과 愚法 小乘 <我法俱有宗>,② 法은 있고 我는 없다는 종 <法有我無宗>,③ 法은 過去 未來가 없다는 종 <法無去來宗>,④ 現在는 假有 實有에 통한다고 보는 종 <現通假實宗>,⑤ 世俗은 虛妄하고 眞諦는 實이라는 종 <俗妄眞實宗>,⑥ 모든 法은 다만 이름뿐이라는 종 <諸法但名宗> 등을 말한다.
다음 大乘 始敎는
⑦ 一切가 모두 空하다고 보는 종 <一切皆空宗>의 空始敎와, 百法을 세워 萬有를 賴耶緣起로 설하는 相始敎(應理圓實宗)가 있으나 賢首는 상시교를 다음의 大乘 終敎의 眞德不空宗에 편입시켰다.
大乘 終敎는
⑧ 眞如의 功德만은 空하지 않다고 보는 종이다 <眞德不空宗>.
다음 頓敎는
⑨ 모습과 생각이 모두 끊겼다는 종이다 <相想俱絶宗>.
圓敎는
⑩ 智慧가 완전 무결하고 功德을 갖추었다는 종이다 <圓明具德宗>.
대승 시교와 종교는 智解와 修行, 言說과 位階가 점차적으로 올라가고 因果가 서로 이어지며 미세한 것에서부터 현저한 것에 이르고 있어 漸敎라고 부른다.
頓敎란 언설이 문득 끊기고 根本自性이 문득 나타나 지해와 수행이 문득 이루어져서 한 찰나의 망념도 생기지 않는 가르침이다.
圓敎의 가르침은 곧 별교 일승교가 설하는 主伴이 具足되어 重重無盡으로 一切를 나타내는데 自在性을 얻고 있다는 法門과 같은 것이다.
한마디로 華嚴敎는 불교의 모든 가르침을 受用하여 가장 秀勝한 智慧로 이끌고 一切의 功德을 갖춘 一乘 圓敎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불교를 가르치는데 있어서 화엄경은 불교의 종합 전시장과 같아 백화점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원만한 가르침을 하나의 經속에 갖추고 있어, 佛敎의 敎育學에의 접근은 華嚴經과 그 思想을 바탕으로 하고, 여기서 출발해야한다고 본다. 일승 원교에서 비로소 佛敎 敎育이 圓融無碍하게 된다고 본다.
그러면 이제 일승원교 화엄사상의 중심이 되는 性起와, 法界緣起와, 그 속에 살아가는 隨處作主 佛菩薩의 行相인 菩薩道를 자세히 살펴보아 교육 이념과 내용을 찾아보자.
2. 華嚴 思想
⑴ 性起 思想
性起 思想은 華嚴學을 다른 교학과 구분 지어주는 가장 뚜렷한 사상으로, 緣起法에서 출발한 근본불교를 이어, 業感緣起 아뢰야연기 여래장연기 사상을 종합 발전시킨 법계연기의 구극인 것이다. 먼저 성기의 뜻부터 알아본다.
고치지 아니함을 性이라 하고, 나타나 쓰임을 起라한다. 곧 여래의 성기이다. 진리를 如라 性이라 하고,나타나 쓰임을 起라 來라 한다. 곧 여래를 성기라 한다. 여기서 不改는 佛格을, 진리는 法格을 나타낸다.
性은 人人 個個, 本來具足 圓成의 心性, 法性으로서, 名도 없고 相도 없어, 一切를 超絶한 不生不滅, 不增不減하고 平等一如한 不可說 不可說의 것이며, 起는 顯起, 擧起, 發起의 義로서 本來 不生 不滅의 心地에 現在 現起해 있는 것이다.
즉 중생의 마음 가운데 지금 바로 일어나고 있는 모습 그대로가 바로 여래의 性起라는 것이다. 이것은 修行에 의하여 비로소 부처를 이룬 것이 아니라 본래 부처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不改眞理의 如來性의 顯用인 性起는, 우리 생활의 根據이며, 활동의 舞臺이며, 舊來의 道場이다. 실로 우리는 이 性起의 道場에서 일상생활을 營爲하고 浮動遊休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생활은 그대로 作佛의 생활이며, 證入法界의 생활이다. 性起 의 세계야말로 躍如한 종교생활의 聖地이다. 산을 보고 바다를 보는 것이 그대로 皆入法界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래 출현된 진리의 터전에서 여법히 살고 있는 것이다.
性起라는 용어는 60권 화엄경의 寶王如來性起品으로부터 유래된 말로서 80권 화엄경에서는 `如來出現'이라 번역되고 있다. 佛의 本質을 現實에 顯現한다는 의미, 즉 如來性의 顯現을 性起라고 보는 것이다.
성기란 여래출현이므로 우주 존재의 생성에 관한 견해를 가진 우주관이 된다.
다음은 여래출현품에서 여래출현의 모습을 찾아본다.
화엄경 如來出現品에서 世尊은 眉間白毫相에서 대광명을 놓으시니 그 如來出現의 광명은 무수한 상서를 보인 후에 如來性起妙德보살의 정수리로 들어갔다. 두번째 광명은 세존의 金口로부터 비치니 그 無碍無畏광명은 무수한 상서를 보이고 普賢보살의 입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보현보살의 몸과 사자좌는 여래께서 앉으신 자리를 제하고는 다른 보살의 몸과 사자좌보다 백배나 훌륭하고 뛰어났다. 여래성기묘덕보살은 `어떻게 하면 보살마하살이 如來。應供。等正覺의 性起正法을 알 수 있습니까?' 하고 보현보살에게 묻는다. 이어서 여래의 法身。音聲。心。境界。行。菩提。轉法輪。般涅槃。見聞恭敬供養善根 등 열가지 법을 묻고 있다. 청량소에서는 여래성기묘덕보살은 문수보살을 지칭한다고 되어있다.
이 때 보현보살마하살은 여래성기묘덕등 제 보살 대중에게 말하였다.
“불자여, 이 곳은 불가사의하니, 이른 바 여래는 무량법으로써 마땅히 정등각하니 왜냐하면 한 가지 연으로써가 아니요, 한 가지 일로써가 아니고, 열 무량 백천 아승지 일로 여래 출현을 성취하나니, 열 가지는 무엇인가?”
보현보살은 성기의 本相이라 할 수 있는 여래성기정법을 열 가지의 因緣으로 설명하고 있다.
如來性起正法의 열가지 因緣
먼저 60화엄을 살펴보면,① 무량한 보리심을 내어 일체 중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② 과거 무수겁동안 온갖 선근을 닦아, 그 마음이 바르고 깊었기 때문이다.
③ 무량한 자비로 중생을 구호하였기 때문이다.
④ 무량한 행을 행하여 큰 서원에서 물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⑤ 무량한 공덕을 쌓되 충분하다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⑥ 무량한 부처님을 공경,공양하며 중생을 교화하였기 때문이다.
⑦ 무량한 방편의 지혜를 냈기 때문이다.
⑧ 무량한 공덕장을 성취하였기 때문이다.
⑨ 무량한 장엄의 지혜를 구족하셨기 때문이다.
⑩ 무량한 제법의 진실한 뜻을 분별 연설하셨기 때문이다.
다음 이와 같은 부분을 80화엄에서 찾아 대조해 본다.
㉠ 과거에 한량없이 일체 중생을 거두어들여 보리심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 과거에 한량없이 수승한 뜻을 깨끗이 하여 즐거움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 과거에 한량없이 일체 중생을 구호하여 대자대비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 과거에 한량없는 행을 상속하여 원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 과거에 한량없는 모든 복과 지혜를 닦고 마음에 싫어하거나 만족함이 없음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 과거에 한량없이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중생을 교화함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 과거에 한량없는 지혜방편으로 청정도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 과거에 한량없이 깨끗한 공덕의 보고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 과거에 한량없는 도를 장엄하여 지혜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 과거에 한량없이 법에 통달하여 뜻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한편 여래의 마음에 대하여, 여래의 지혜는 허공과 같아 일체 세간의 지혜와 세간을 떠난 지혜의 의지하는 바가 되지만 여래의 지혜는 의지하는 데가 없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으며, 일체 중생의 마음을 윤택하게 하고, 일체행을 닦게 하며, 미진경권과 같아서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니, 중생도 없고 중생의 몸으로서 여래 지혜를 갖추지 않은 이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중생들이 착각으로 그 여래 지혜를 모를 뿐이다. 고 하였다. 여기서 보는 塵含經卷喩는 티끌 속에 광대한 경전이 들어 있어 중생을 이롭게 한다는 비유로 성기 사상을 형성하는 요체가 되었다.
性起란 如來出現이며, 如來性起正法으로 여래출현의 因緣과 여래출현의 모습을 자세히 알 수 있다. 여래의 法身은 虛空과 光明으로 비유하니 無邊身이고 淸淨하며 光明으로 가득 차있다. 광명의 원천인 해는 性으로 해에서 나온 광명은 起로 비유한다. 여래의 音聲은 주인이 따로 없으며 중생에 응하여 각자에 맞게 여러 가지 음성으로 들리며, 여래의 境界는 무한하며, 여래의 智慧는 허공과 일체 중생의 의지처가 되어 일체 중생을 윤택하게 하며, 여래의 菩提는 無量性으로 增減이 없으며, 일체 중생의 마음 가운데 떠나지 않고 항상 있으며, 여래의 轉法輪은 다함이 없고, 여래성기의 現顯은 不可說盡으로 여래는 법계와 함께 상주하며, 보살이 여래를 공경 공양함은 그 선근으로 열반에 이른다고 하였다.
이러한 如來 出現의 모습은 우주 삼라만상이 벌어진 양상을 통틀어 볼 수 있게 하며, 이러한 지견을 갖도록 도와 주는 선지식의 모든 생명체 앞에 나타남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즉 여래출현의 모습은 우주와 세계를 보는 안목으로서 우주관과 세계관이 되며 여기서 교육의 이념과 방향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다루게 될 교사와 학생들의 이상적인 상들을 미리 보게 해준다. 곧 스승의 慈悲한 마음과, 생명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願과 行들, 그리고 微妙한 音聲과,허공과 같이 걸림없는 智慧와 菩提, 다함없는 轉法輪 등이 그것이다.
⑵ 法界緣起 思想
화엄경의 대의를 賢首 法藏이 법계연기사상으로 체계화 하였다. 물론 법장의 스승인 지엄의 搜玄記에서 十玄緣起說을 이어 받아 변용시킨 것이다. 지엄의 제자인 의상도 역시 지엄의 십현연기설을 이어 받았는데, 십현문의 명칭과 순서가 거의 동일하다.
다음은 그 오교장 중 ‘法界緣起’라는 말이 나오는 부분이다.
만약 원교에 의한다면 바로 자성 바다의 완전무결한 밝음에 관련되어져 法界緣起가 아무런 걸림도 없이 자유자재롭고, 하나가 바로 일체이며 일체가 바로 하나인 主와 伴이 완전 융합되어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열가지 마음을 설함으로써 중중무진을 나타내는데, (그것은) 離世間品 및 第九地에서 설한 것과 같다. 또한 純一한 법계의 자성이 나타나 일어나는 마음은 역시 열 가지 덕성을 갖추고 있는데 (그것은) 性起品에서 설한 것과 같다.
여기서 보면 이세간품이나 제9지에서 설한 것과 같이 10가지 마음을 설함으로써 중중무진의 법계연기가 걸림없고 자유자재하며, 하나 곧 모두, 모두가 곧 하나, 主와 伴이 圓融한 이치를 나타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열 가지 마음은 이세간품에 두 가지로 나오는데 이러한 열가지 마음을 설한 데서 無碍自在하고, 重重無盡한 법계연기를 드러내서 하나 가운데 모두라는 원융의 이치를 나타내고 있으니, 법계연기 라는 말은 십지품과 이세간품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一中 一切 등의 뜻은 義湘의 法性偈에 있는 내용과 같다.
법성게의 顯緣起分은 연기를 나툼이란 뜻이니 法界緣起와 같은 뜻으로 본다. 현연기분의 처음은 진성심심극미묘 불수자성수연성(眞性甚深極微妙 不守自性隨緣成) 즉 참된 성품 매우 깊어 아주 미묘해, 자성을 지키지 않고 연을 따라 이룬다. 이니 여기서 참된성품 즉 眞性이란, 여래 출현한 우리의 몸과 마음이 그대로 법성이건만, 명상이 따로 없으므로 機가 들어가기 어려워 법성을 진성으로 바꾸어 그것을 익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므로 法性과 眞性의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고 본다. 이것은 법장의 오교장 속에 승만경과 섭대승론을 인용하여 말한 다음의 글에 비추어 알 수 있다.
染하지 않으면서 染한다는 것은, 緣을 따라서 모든 존재를 만든다는 것을 밝힌 것이고, 染하면서 染하지 않는다는 것은, 緣을 따를 때에 自性을 잃지 않음을 밝힌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처음의 뜻 때문에 俗諦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며, 나중의 뜻 때문에 眞諦가 또한 성립되는 것으로서, 이와 같이 眞과 俗이 다만 두 가지 뜻이 있을 뿐이고 두개의 몸이 (따로따로)있는 것이 아니다. (그 두 가지는) 서로 융통하여 서로 막는 일이 없이 무릇 중생들의 집착을 떠나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攝大乘論에서 지혜의 장애라는 것은 극히 눈이 어두운 것이어서 眞과 俗을 따로따로 집착하고 있음을 이르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이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眞과 俗의 두 뜻은 같은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헤아려 보면, 緣을 따라 모든 존제를 만드는 까닭에 물들이지 않으면서도 물들인다 고 하는데서 俗諦의 뜻이 이루어짐을 알 수 있고, 緣을 따를 때에 자성을 잃지 않는 까닭에 물들이면서도 물들이지 않는 것이다 라는 데서 진제가 이루어짐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진과 속은 둘이 아니며 원융하여 같은 뜻임을 알 수 있다. 또 화엄일승 법계도기 총수록에서도 알 수 있으니, 다음과 같다.
問 진성과 위의 법성과는 어떤 차별이 있는가?
答 지금 實을 말하자면 진성이 곧 법성이다. 이른바 <眞性之體 深甚微妙>라 한 것은 다만 자성을 두지 않은 갖가지 緣으로써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일승의 뜻에서 본다면 연 이전에는 법이 없었기 때문에 먼저 진성이 있고 그리고 연을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것이다. … 그런고로 또한 중생을 하나의 무명지로 요약하고, 열 번에 걸쳐 觀할 것 같으면, 부동하는 무명의 이름과 상은 곧 심심한 법이요, 取捨할 바가 없다. 그러므로 <미묘>라고 한다.
라고 하여 법성과 진성의 차이가 없음을 말하고 있다. 곧, 비록 어떤 사람이 法性은 眞과 妄에 통하고 원융하나, 眞性은 眞에만 통한다고 보아 차별이 있다고 하는데, 實을 말하면 진성이 곧 법성이니, 진성이 자성을 따르지 않고 緣을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고 말하고 있다. 삼승에서는 緣이전에眞性이 있지만, 일승에서는 緣 이전에 法이 없기 때문에 법계의 모든 법들이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다. 이는 연기의 법 앞에 자성이니 진성이니 하는 한 법도 없이 갑자기 일어난 현상이 되어버리고 말지만, 사실은 진성이 법성과 다르지 않아 심심하고 미묘하니,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佛出現인 것이다. 그래서 여래는 불법을 설하신 일이 없지만 그 응화하는 데에 따라 법을 연설하신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甚深이란, 진성에 들어가는 문, 즉 華藏世界가 심심하고 또 彌勒樓閣이 심심한 것을 말하는 것이니, 화장세계가 심심하다는 것은 하나 하나의 티끌 중에서 법계를 보기 때문이다.
法界란 우리 마음에 나타나는 존재로서, 다함없는 모든 사물들이 각자의 영역을 지켜 섞이지 않고, 질서 있게 조화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이상을 종합하면 우리 눈앞에 벌어진 두두 물물 모든 것이 법성이 나타난 법계로, 사물은 법계 모든 것의 無窮 無盡한 緣起 總體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법계는 그대로 화엄교육의 내용이 된다. 법계를 이해하고 법계를 통해서만 입법계 할 수 있기 때문에 화엄 교육에서는 네 가지 법계를 설하고 그 중에 3종 法界觀을 닦는 것이다.
金剛心論에 사종법계를 설명하고 있으니 다음과 같다.
㈎ 四種法界
① 事法界란 우리 눈 앞에 펼쳐저 있는 삼라만상의 서로 다른 사물들을 말한다. 이 사물들은 연기의 모습으로 있다.
② 理法界란 진여 본성 자리로서 우주자체의 평등하고 일여인 세계를 말한다.
③ 理事無碍法界란 물질이 곧 공한 것이요, 공한 것이 곧 물질이니, 이와 사가 섞여 통함이 물이 곧 파도요, 파도가 곧 물이라 서로 원융함이 그 모습인 바, 사물의 모습이 그대로 진여의 원융한 성품임을 말한다.
④ 事事無碍法界란 한 부모 아래 태어난 형제자매가 혈육이 같아 화합하고 융화하는 것이 한 맛으로 되는 것 같이, 서로 다른 사물들이 理의 성품처럼 사물과 사물이 걸림 없음을 말한다.
이러한 四種法界를 보다 쉽게 교육적인 관점으로 풀이하면 事法界는 事實, 또는 現象을 말하고, 理法界는 原理, 眞理를 말한다. 그래서 現實 속에 들어 있는 眞理를 찾아보니, 現實 곧 眞理로 걸림 없음이 理事無碍요, 事物 속에 내가 合一되어 걸림 없음이 事事無碍法界이다.
이러한 사종법계중 사법계를 제외한 삼법계에서 삼종의 관법을 세우니, 이 법계의 眞空絶相觀과, 이사무애법계의 理事無碍觀과, 사사무애법계의 周遍含容觀이 이것으로 華嚴法界三觀이라 하며, 漸次 修習하여 事事無碍法界의 境에 들어감을 그의 至極이라 하니 곧 華嚴의 入法界가 이것이다. 그래서 사사무애법계를 무진연기 즉 법계연기라 하고, 十玄, 六相으로 법계를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 十玄緣起說
十玄門은 智嚴의 搜玄記에서 비롯되어, 의상과, 현수에게 이어지고, 현수는 오교장의 십현문을 탐현기에서 최종 마무리하였다. 그래서 오교장에서의 십현문을 古十玄, 탐현기에서의 십현문을 新十玄이라고 한다. 이러한 십현문은 화엄가들에 의해 이어져 연구되어 왔다. 다음은 신십현의 내용이다.
① 同時具足相應門은 동시에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으며 서로 결합관계를 이루고 있는 법문으로서, 십현 연기의 열 가지가 같은 시간 속에, 뒤섞여 어지러움이 없이 자유자재로 연기의 궁극을 이루어, 해인삼매에 의하여 일시에 환히 빛나 나타난다. 모든 법문의 다함없는 바다가 다같이 한법의 도량에 모인다는 것이다.
② 廣狹自在無碍門은 공간적으로 넓은 것과 좁은 것이 자재로 융합하여 무애한 법문으로, 舊十玄의 諸臧純雜具德門을 개조한 것이다. 그 이유는 사사무애를 이사무애로 혼동하기 쉬운 까닭이다. 이것은 현대 물리학의 블랙 홀 이론과 같다고 본다. 블랙 홀 속으로 만물이 빨려들어 갔다가, 다시 만물로 나오는 것이, 하나가 법계에 널리 펴져 남고 부족함이 없으나 각자 제자리를 지키고 넓은 법계가 한 점으로 모여도 좁지가 않은 것과 같기 때문이다.
③ 一多相容不同門은 하나와 많음이 서로 받아들이고 있으면서도 같은 것이 아니라는 법문이다. 서울시 속에 수많은 사람과 집, 차들이 들어 있으나, 서울시는 많은 사람, 집, 차들과 같은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과 집, 차들이 서울시라는 하나의 도시로 들어가나, 많은 사람과 집, 차들이 서울시와 같은 것이 아니다.
④ 諸法相卽自在門은 모든 법이 서로 즉하면서 자재롭다는 법문으로서,一法의 세력이 一切法에 入할 때에는, 一法은 곧 一切法 중의 一法이므로 一切法 외에 一法의 體가 更無하고, 一切法이 一法에 入할 때에는 一切法을 一法에 全收하므로 能同의 一切法은 虛體요 所同의 一法은 有體일세 一虛 一實이 相卽이므로 二鏡相照에 虛實이 和融함과 같으니, 十住品에 一卽是多요 多卽是一이라 한 것과 같다.
⑤ 隱密顯了具成門은 숨은 것과 들어난 것이 갖추어 이룬다 는 법문으로서,‘아파트’라고 할 때는 그 속에 거실, 안방, 부엌 등이 숨고,‘거실, 안방, 부엌’ 등을 말할 때는 아파트가 숨는다. 그러나, 아파트는 거실, 안방 부엌 등으로 이루어지니, 숨어 있는 것과 들어난 것이 함께 이루고 있는 것이다. 賢首品에 ‘혹 東方에서 見入正受하고, 혹 西方에서 見三昧起하여 於 眼根中에 入正受요 於色法中에 三昧起라’한 것과 같다.
⑥ 微細相容安立門은 미세한 법이 서로 받아들이어서 안정되어져 있는 법문인데, 화엄경에, 하나의 털구멍 속에 무량한 불국토를 장엄하고 청정하고도 넓게 안주한다. 함이 이것으로, 이것은 마치 컴퓨터 칩 속에 무수한 자료가 들어 있는 것과 같다.
⑦ 因陀羅網境界門은 인다라망의 경계에 대한 법문 인데, 십현문 모두를 인다라망의 구슬 경계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인다라망이란, 제석천궁전 위에 드리워진 입체적 그물로서, 그물 코 마다 무색 투명한 구슬이 달려 있는데, 구슬에 하나의 빛이 비치면 모든 구슬에도 빛이 비추이고, 비쳐진 빛은 다시 모든 구슬에 반사되어 비쳐지며, 또 반사되어 비쳐진 빛이 또다시 반사되어 모든 구슬에 비치니, 이와 같이 무수히 반사되어 그물에 달린 구슬은 온통 빛으로 가득 차게 된다. 다시 처음 비쳤던 빛을 끄면 모든 구슬에 가득 찼던 빛들은 한 순간에 사라지니 구슬은 원래대로 무색 투명한 상태로 된다. 이와 같이 법계는 중중 무진으로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⑧ 託事顯法生解門은 사상에 뜻을 붙여 법을 나타내어서 깨달음을 일으키는 법문 인데, 제법이 연기하고 있다는 의미가 눈앞에 보이는 사물, 즉 땅, 하늘, 산, 구름 등을 놔두고 따로 연기법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산, 하늘, 땅, 구름 등이 무궁무진토록 연기하고 있음을 이해하는 것으로, 현실 세계 이대로가 법계이고, 법계인 현실 이대로가 緣起 理法이라는 것이다.
⑨ 十世隔法異成門은 십세의 각각 구분되는 법이 다르면서도 동시에 이루어지는 법문으로, 십세란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고, 다시 과거를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며, 현재를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고, 미래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 구세로 나눈다. 그러나 이 구세는 미래가 현재로 오고 현재가 과거로 가므로, 미래, 현재, 과거는 하나의 시간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시간과 구세를 합하여 십세가 된다.
이 십세는 서로 다르면서도 同時에 成就하기 때문에, 일념에 영겁을 받아들이고, 영겁은 한 순간인 것이어서, 뚜렷이 십세가 나뉘어 있으나 시간이 원융 무애하게 성취되고 있다.
⑩ 主伴圓明具德門은 주체와 객체가 원융하고 밝게 덕을 갖춘다는 법문이다. 이는 앞의 종(시간), 횡(공간)의 일대연기인 만법이 모두 한 법이 主가 되면, 다른 一切법이 伴으로 되는 것이다. 즉 자기가 자기의 집에서는 주인이 되어 찾아오는 사람은 다 손님이 되지만, 그 손님이 손님의 집으로 갔을 대는 손님이었던 사람이 주인이 되고, 자기는 그 집의 손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십현문의 한 문이 주체가 되면 나머지 다른 문은 객체가 되어 중중 무진의 법계가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법계무진의 연기상을 육상원융론으로도 설명하고 있다.
㈐ 六相圓融論
六相은 總相, 別相, 同相, 異相, 成相, 壞相으로 그 연원은 다음과 같다.
원하옵건데, 모든 보살의 행이 넓고 크고 한없으며, 무너지지 않고, 섞이지 않으며, 모든 바라밀을 포섭하여, 모든 지를 깨끗이 다스리고, 전체모양, 따로모양, 같은 모양, 다른 모양, 이루는 모양, 무너지는 모양의 보살행을 다 여실히 설하여, 마음이 점점 자라 법계와 같이 넓고 커져서, 구경에 허공과 같아지고, 미래 모든 겁수가 다하도록 쉬지 않게 되는 행을 주어 모두를 교화하기를 바란다.
법계의 모든 사물은 총상 별상 동상 이상 성상 괴상이 있으니, 다르면서도 하나요, 하나이면서 다르다.
하나가 전체 모양을 이루며, 전체는 하나의 모습이 이루어 주고 있다.
또 전체의 모습이 있는 반면 부분의 모습이 있어 부분이 전체를 구성하고 전체는 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전체와 부분은 둘이 아니다.
이러한 법계연기사상은 의상의 법계도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의상은 印像으로서 六相을 밝히고 있다.
총상은 根本印이고, 별상은 나머지 굴곡들이니 別이 印을 의지하여 그 印을 원만케 하기 때문이다. 동상은 印인 연고니 굴곡은 다르나 하나의 같은 印이기 때문이다. 이상은 늘어나는 상이니, 第一, 第二 등 굴곡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성상은 간략하게 설함이니, 인을 이루기 때문이다. 괴상은 광범하게 설하는 연고니 이른바 번회굴곡하지만 각각 그 자체가 본래 따로따로 짓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즉 법계도를 이루고 있는 전체의 印像이 總相이고, 하나 하나의 굽은 모양이 別相이며, 굽은 모양이 비록 다르나 하나의 법계도이니 同相이고, 하나의 법계도 이지만 굽은 모양이 서로 다르니 異相이다. 그리고 굽은 모양 하나 하나가 법계도를 이루고 있음이 成相이며, 법계도를 이루고 있으나 굽은 모양이 서로 따로따로임이 壞相이다.
이 법계도를 이루고 있는 詩는 法界緣起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으니 하나 가운데 모두요, 모두 가운데 하나라는 데서 시작하여 하나가 곧 一切요, 한 티끌 속에 시방을 포함하고, 一念이 無量劫이며, 처음 發心할 때가 곧 正覺이요, 生死와 열반이 함께 하고, 理와 事가 분별이 없어 十佛과 普賢의 大人境界라 한 것 등이 모두, 法界의 무궁 무진하고 無障 無碍한 緣起의 모습을 게송으로 설하고 있다.
⑶ 發菩提心과 菩薩道
이렇게 성기사상과 법계연기에 의해 파악된 화엄경의 내용은 깨달음을 나타내는 경이고, 이 깨달음은 석존에서부터 비롯되며, 석가모니부처님의 해인삼매에서 드러난 경계이다. 그러나, 정작 석가모니 부처님은 해인 총정에 드시고 미간백호, 정수리, 입, 발바닥 등에서 무량 광명을 내 보이실 뿐, 문수, 보현 등의 여러 보살로 부터 長廣舌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화엄경을, 菩薩들이 菩薩道를 설한 經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菩薩들이 설한 菩薩行을 行함으로써 모든 생명체들이 스스로 부처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니, 먼저 자신이 부처임을 확실이 믿고(信),141원의 청정한 원력으로 信을 성취하여 發心하는 것이다. 발심하게 되면 그대로 正覺이니, 법성게에 初發心時便正覺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발심이 곧 因이자 果이니 인과 과가 둘이 아닌 것이다. 발심 후의 菩薩行은 成佛로 가는 因行이 아니라, 正覺後의 果行이니, 곧 自覺後의 覺他 가 이것이다. 이러한 利他行으로 佛國土를 莊嚴하니 선재동자의 53선지식 歷參은 하나 하나가 입법계의 해탈문으로, 처음 발심 하자마자 이미 법계에 들어온 것이고, 문수보살 및 여러 보살과 비구 비구니 善男 善女 그리고 童男 童女 여러 天神들을 만남은 이러한 깨달음을 깊게 하고 넓게 해주는 것이다. 즉 법계 어디에도 깨달음이 充滿함을 보여주고 선재의 몸과 마음이 그대로 비로자나 진법신임을 확인 시켜준 것이다. 이렇게 53선지식들은 보살행을 하고 있고, 보살행이 깊어짐에 따라 圓覺으로 가고 있으니, 뭇 생명체들에게 이익을 주고, 뭇 생명체들은 기틀에 따라서 大陀羅尼의 無盡寶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無緣의 착한 方便으로 本性家에 歸家하니 實際의 中道床에 앉은 옛 부터의 부처인 것이다. 곧 비로소 생명 스스로가 佛이었음을 요달한 것이다. 이것이 화엄경 第一偈에도 나타나니,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로, 만약 사람이 삼세 모든 것이 부처임을 요달하여 알고자하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할지니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은 것이다. 에서, 삼세일체가 다 부처임을 요달하기 위해 선재가 발 보리심하는 것이고,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하기 위해, 선재가 문수 보살을 의지해 53 선지식을 찾아뵈어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한 보살이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할 것인가를 여쭈어, 그들로부터 법계의 안내를 받고 가르침대로 하는 것이며, 가르침대로 하다보니 一切唯心造임을 통달하여 선재 자신의 몸이 법계에 충만하여 보현보살의 몸과 다름이 없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발심 보살은 十住 初에서 부터 十行 十廻向 十地를 거쳐 보살의 究境位인 等覺을 거쳐 妙覺에 이르는 것이다. 이러한 42위에서도 十地는 중요하게 여겨져 왔으니, 보살 수행의 尺度 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42위의 처음인 십주란, 보살이 머무는 열가지 주처 인데, 初發心住 治地住 修行住 生貴住 具足方便住 正心住 不退住 童眞住 法王子住 灌頂住으로, 십주에 따른 보살행이 있다.
십행이란, 보살의 열가지 행인데, 歡喜行 饒益行 無違逆行 無屈撓行 無痴亂行 善現行 無着行 難得行 善法行 眞實行으로 십행 법문이 있다.
십회향이란, 보살이 닦을 부처님의 회향인데, 일체중생을 구호하면서도 중생이라는 생각을 떠난 회향 깨뜨릴 수 없는 회향 모든 부처님과 동등한회향 모든곳에 이르는 회향 다함이 없는 공덕장회향 모두 평등한 선근에 들어가는 회향 일체중생을 평등하게 따라주는 회향 진여인 모양의 회향。속박도 집착도 없는 회향。법계에 들어가는 무량회향 등이다.
십지란, 보살의 지혜인 地인데, 歡喜地。離垢地。發光地。焰慧地。難勝地。現前地。遠行地。不動地。善慧地。法雲地 등이다. 初地에서부터 차례로수행법이 설해진다. 다음은 등각과 묘각위니 교육 과정편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이와 같은 42 계위의 수행법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보살의 수행법으로, 모든 생명을 깨우쳐 주고자하는 대원이 담겨 있어 보현보살의 광대행으로 일컬어 진다.
지금까지 화엄경의 중심사상을 성기사상과, 법계연기사상 그리고 발보리심과 보살도를 통해 살펴 보았다. 이제는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화엄경의교육과정을 살펴보자.
Ⅲ. 華嚴經에 보이는 敎育 課程
1. 華嚴經上의 敎育 目的
敎育 課程이란 학교의 지도아래 학습자에 의해서 학습되는 모든 지식。기능, 또는 학습에 의해서 시행되는 경험과 활동을 일정한 순서로 배열해 놓은 교육내용의 계획이다. 바꾸어 말하면,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학교의 모든 학습 활동을 말한다. 이러한 교육과정 속에는 먼저 교육 목표의 설정, 그 목표에 따른 교육 내용의 선정과 조직, 그 다음으로 교육의 실행으로 교수-학습 활동이 이루어지고, 마지막으로 그 모든 과정이 합당한가의 여부를 검증하는 평가의 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그래서 화엄경의 교육과정을 구상하기 위해 먼저 화엄경의 교육 목적을 살펴보자. 화엄경의 교육목적은 화엄경의 첫 부분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이와같이 내가 들었으니, 한 때 부처님께서 마갈타국 아란야(적멸)법 보리도량에 계셨으니 비로소 정각을 이루셨다. 그 땅은 견고하고 금강으로 이루어 졌으며,위에는 묘한 보배 바퀴와 뭇 보배 꽃과 청정한 마니로 엄하게 꾸미고 모든 색상의 바다가 끝 없이 나타났다. 마니로 깃대를 삼아 항상 광명을 놓고, 항상 묘음이 나왔다. 뭇 보배로 펼친 그물과 꽃 영락의 묘향이 두루돌아 드리워 퍼졌다. 마니 보왕은 자재로 변현하고 다함없는 보배 및 뭇묘한 꽃이 내려 땅에 나뉘어 흩어졌다. 보배 나무가 줄지어 섰는데 가지와잎은 빛으로 우거졌다.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이 도량중의 모든 장엄이 그가운데 나타나게 하였다. 그 보리수의 높이는 특별히 뛰어나고 금강으로 몸이되고 유리로 줄기가 되었다. 뭇 여러가지 보배로 가지를 쳤다.
부처님께서 적멸보리 도량에서 비로소 깨달음을 이루니 금강과, 보배 바퀴,보배 꽃, 마니, 색상, 광명, 묘음, 보배 그물, 꽃 영락 향기, 보배 꽃비,보리수 등으로 장엄 함을 설하고 있다. 즉 화엄경은 부처님의 정각에서부터시작하는 것이다. 정각 후 불의 위신력으로 땅과 주변과 보리수와 궁전과사자좌 등이 다 묘음과 향기와 광명을 내고 법을 설하며, 광명속에 마니보가 내리고 마니 속에 무수한 보살 들이 구름처럼 때 맞추어 출현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화엄경이 우리에게 먼저 깨달음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화엄경은 우리들에게 깨닫도록 이끌어 가려고 하고 있음을 느낄수 있다.
“기이하고 기이하다. 이 모든 중생들이여! 어찌하여 여래의 지혜를 갖추고도 어리석고 미혹하여 알지도 보지도 못하는가? 내가 마땅히 성현의 길을가르쳐 망상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게하여 스스로의 몸안에 여래의 광대한지혜를 보게 하여 부처와 다름없게 하리라.”곧 그 중생들이 성현의 길을닦아 익혀 망상을 떠나게 가르친다.망상을 떠나고나서 여래의 무량한 지혜를 증득하고 일체의 중생을 이롭게하고 안락하게 한다.
여기서 화엄경이 우리에게 성현의 길을 가르치고 망상과 집착을 벗어나 몸안에 갖춘 대 지혜를 보게 하려고 함을 알 수 있다. 중생 누구에게든지 보리가 있어 중생 모두가 망상을 떠나면 그대로 부처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三世一切가 다 佛이라고 설하며, 一切는 다 佛(마음)이 지은 것이라 설한다.
화엄경은 이렇게 깨달은 경지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인간의 가능성을깨달음을 통해 활짝 펴 보이고 있다. 그래서 화엄경은 우리에게 깨닫도록발심하고 깨닫도록 수행하라고 하는 가르침임을 알 수 있다.
깨달음으로해서 도달하는 부처의 모습을 화엄경에서는 毘盧遮那 眞法身으로 표현하고 있다.이 비로자나진법신에 대하여 의상은 舊來不動佛로 나타내고 있다. 이를 十佛로 자세하게 풀이하고 있으니 다음과 같다.
⑴ 華嚴十佛
첫째는 집착이 없는 부처이니 현상의 세계에 안주한 그대로의 상태에서 정각을 성취하기 때문이다.
현상의 세계에 그대로 머물러 부족함이 없으니 다른데 집착함이 없는 부처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서원의 부처이니 존재세계에 있어서의 일체의 존재를 출생시키기때문이다.
일체의 존재를 나게 하기 때문에 서원의 부처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업보의 부처이니 자기 그대로가 진실로 업보임을 믿기 때문이다.
업보 그대로가 진실함을 믿으므로 업보불이라 한다는 것이다.
넷째는 포용의 부처이니 일체존재중의 어느 하나도 배척하지 않고 순응해주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를 버리지 않고 순응하니 포용불이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는 니르바나의 부처이니 생사와 열반의 대립을 극복한 영원한 구원의 성취이기 때문이다.
생사와 열반을 뛰어넘었으므로 니르바나 부처라 한다는 것이다.
여섯째는 존재세계로서의 부처이니 존재세계의 어느 곳이든 이르르지 않는곳이 없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모든 곳에 다 이르므로 존재불이라 한다는 것이다.
일곱째는 정신의 부처이니 안주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그대로 머무르니 정신의 부처라 한다는 것이다.
여덟째는 삼매의 부처이니 삼매를 통하여 일체의 존재가 한량없고 그 중어느 하나도 집착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삼매를 통하여 한량 없는 존재를 보니 집착 할 것이 없으므로 삼매불이라한다는 것이다.
아홉째는 본성의 부처이니 본성과 형상에 있어 선험적으로 결정되어 있기때문이다.
본래 성품과 모양에 겪기 전에 정해저 있으므로 본성불이라 한다는 것이다.
열째는 여의의 부처이니 본원의 힘에 의하여 공간세계와 중생세계를 두루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의 원에 의해 공간과 중생의 세계를 감싸므로 여의불이라 한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십이라는 수로써 설명했는가 하면, 보다 많은 측면에 있어서의 부처를 드러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 십불의 의의는 존재들의 진정한근원이며 궁극의 심오한 사상으로서 매우 깊고 난해하니 일단 심사숙고해두어야 옳을 것이다.
부처를 보다 많이 드러내기 위하여 十이라는 滿數로 설명하니, 존재의 근원이며 궁극의 깊은 사상이라 하였다. 이로써 비로자나 대광명불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이렇게 화엄경의 교육 목적은 入法界에 있다. 비로자나 진법신의 대광명이 顯現한 것이 법계의 모습이므로, 이러한 법계에 스스로 속해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한다.
그러므로 법계에 들도록하는 것이다.
⑵ 入法界
이렇게 들어가는 법계의 모습을 보다 명확히 이해하기 위하여, 성기 사상과 법계연기 사상에서 법계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검토해 보자. 그러기위해 먼저 성기사상과 법계연기사상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살펴보자.
智儼은 法界緣起를 本有와 本有修生과 修生과 修生本有의 淨門과, 緣起一心門과 依持一心門의 染門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법계연기의 세계가 性起의 세계와 現象의 세계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것은 4種法界와 일치한다고 본다. 곧 本有의 세계는 理法界이고,本有修生의 세계는 理事無碍法界이고, 修生의 세계는 事法界이고, 修生本有의 세계는 事事無碍法界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現實에 처한 선재동자가 煩惱를 벗어나기 위해 문수의 도움으로發心하니 事法界에서 事事無碍法界로 나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53선지식의도움으로 42 계위를 거쳐 正覺을 이룬다.
그래서 화엄일승의 교육 목표는 發菩提心하는 文殊의 智慧와, 行菩薩道하는 普賢의 慈悲로 비로자나 眞法身에 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發菩提心은 上求菩提에 해당하고, 下化衆生에 해당하므로 大乘과 一乘은 큰차이가 없으며, 앞서의 근본불교 4성제와 어긋나는 것은 없고 단지 더 넓다고할 수 있다. 곧 보살도를 강조한 점에 있어서다.
發菩提心은 부처님과 똑 같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無上正等正覺)심을 얻겠다는 마음을 내는 것이다. 行菩薩道는 깨달은 뒤 모든 중생들에게 그 깨달음에 의한 지혜를 일러주어 교화해 나가는 행이고, 毘盧遮那 眞法身은 우주자체의 대광명으로 허공과 같아 형체가 없지만 무엇으로 든지 될 수 있는가능성이다. 이를 佛性이라고도 한다. 곧 우리 생명의 원천인 것이다.
2. 華嚴經上의 敎育 內容
이렇게 發心과 正覺과 入法界의 過程을 거쳐 性起의 世界에서 現實을 보아 現實의 佛世界를 알고 華藏世界를 莊嚴하는 것이 華嚴敎育의 目的이다.
이러한 敎育 目的에 따른 敎育의 內容은 10住。10行。10回向。10地。等覺。妙覺의 42階位에서 수행하는 菩薩道이다. 이러한 보살도의 교수-학습은입법계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합당한가 하는 것을검증하는 평가의 단계는 선재 동자가 보현보살의 몸을 보고 불도가 무엇인가를 깨달아 자신이 한없는 정각의 지혜에 도달할 뿐만이 아니라, 未來際가다하도록 중생이 있는한 利他敎化의 行을 수행하는데 있다. 곧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보현행을 수행하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중생제도의이타행을 하고 있다면 입법계한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아직 입법계하지못한 것이다.
한편, 의상의 법계도는 法性에서 시작하여 舊來不動名爲佛에서 끝나고 있다.이것은 예부터 움직임 없는 부처에 도달하기 위해서 법성을 처음 말하고,중간에 眞性을 말하여 차근차근 나아가는 것을 뜻한다.
法性의 뜻은 우리의 몸과 마음으로, 本來性의 現顯이며, 性起自然 즉 스스로 그러한 것으로서, 눈 앞에 벌어진 방안의 모습 그대로 본래성의 나툼이요, 방안의 모습과 본래성은 無二相으로 圓瀜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되는 法性偈의 첫 머리에 일체 모든 법을 다 갖추고 있다고하며, 이러한 首分 즉 現示證分은 일체를 여의었으므로 오직 證得함으로써아는 것인데, 8식의 妄心을 가지고서 證入하려고 하니, 이런 사람에게는 직접 증분이 어디인지 가르켜 줄 수 없으므로 일보를 양보하여 임시로 `眞性'이란 이름을 빌어서 그것을 보여 준다. 고 한다.
이러한 화엄 사상은 그대로 화엄 교육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교육이란 가치있는 것을 傳受하는 활동이고, 화엄 사상은 우주와 자연 현상에 대한 신념 체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곧 우주관과 세계관 및 인생관을가지고 있는데, 법계는 우주 자체이며, 법계 연기는 세계의 현상에 대한 견해이고, 보살도는 인생관을 보여주는 것이다.
화엄경의 구조는 처음 정각을 開顯하며, 地上에서부터 차근차근 天上으로올라가니, 순서대로 하자면; 보리량중, 보광명전, 도리천궁, 야마천궁, 도솔천궁, 타화자재천궁으로, 정각을 이루기 위한 수행법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 타화자재천궁에서 다시 지상의 보광명전으로 내려 오니, 이는 우리가처해 있는 땅이 그대로 천상과 다를 바 없고 부처님의 경계임을 나타내는것이다.
그래서 보광명전에서 信을 성취하고, 도리천궁에서 初發心하여 十住를 성취하고, 야마천궁에서 十行을 성취하며, 도솔천궁에서 十廻向을 이루고, 타화자재천궁에서 十地에 도달하며, 다시 보광명전에서 等覺, 妙覺의 정각을이루게 되니, 보살도를 완성하여 비로자나 眞法身을 성취하고 보니 舊來로不動한 부처인 것이다.
여기서 거론 할 수 있는 것은 初發心時便正覺의 의미이다. 초발심 하자마자 그대로 정각인데 어째서 42계위를 거치는가 하는 점이다.
화엄사상에 의하면 一念卽時無量劫이다. 곧 한 생각이 그대로 한량 없는세월이 다는 것인데, 의상의 法界緣起 사상에 의하면 一錢이 그대로 十錢이니, 一錢이 모여서 十錢이 된다고 해설하였다. 그 깊은 뜻은 인다라망의 구슬과 같이, 하나의 구슬 속에 수 많은 구슬 속의 영상이 비치니, 그대로 하나의 구슬이 일체 구슬임을 말한 바와 같다고 보니, 한 생각에 한량 없는세월을 담고 있으며, 또 한량 없는 세월은 결국 한 생각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적인 과정에서는 42 계위를 거치는 것이다. 그 이유는 知識에命題的 知識과 方法的 知識 이 있기 때문이다. 명제적 지식이란, “백두산의 높이를 안다”와 같이 자신이 부처임을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와 같이 살지는 못하니 그것은 방법적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방법적 지식이란 “수영을 할 줄 안다”와 같은 것으로 자신이 부처로 살줄 안다는 것이다. 우리는 수영을 어떻게 해야 물을 건너 가는지에 대해서안다고 하더라도 정작 물 속에 들어 가면 허우적 거려 전혀 수영을 할 줄모르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명제적 지식만으로는 방법적 지식을 안다고 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석가세존은 평생 禪定에 잠긴 모습으로 움직이고 정지했음을 떠올린다고 하면, 단순히 “내가 부처다” 하고 안다고하더라도 그것은 부처가 아직 되지 못했음을 간파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화엄경 사상의 교육내용을 조직해 보자.
⑴ 華嚴經 思想의 敎育課程 試案
㈎ 華嚴經 思想의 敎育 目標
① 화엄경의 사상을 파악한다.
② 법계에 들어가려는 마음을 낸다.
③ 보살도를 행하는 방법을 이해한다.
④ 보살도행을 한다.
⑤ 십주。십행。십회향。십지를 거쳐 등각。묘각을 성취한다.
⑥ 보현행원을 행한다.
⑦ 입법계한다.
이것을 일반 교육 목표로 전환하면;
① 眞理에 대한 理解를 한다.
② 眞理의 世界에 들어가려는 마음을 낸다.
③ 眞理의 世界에 들어가는 方法을 理解한다
④ 眞理의 世界에 들어가는 方法대로 實踐한다.
⑤ 眞理의 世界에 머물고, 眞理에 따라 行動하며, 眞理에 따라 實踐하여 얻은 모든 福德을 수 많은 생명체들에 돌려주며, 眞理를 實踐하여 점차 理想境에 나아가는 聖賢의 길을 닦고, 理想境에 도달하며, 理想的인 人間이 된다.
⑥ 모든 生命體들을 眞理에 따라 理想境으로 이끈다.
⑦ 理想境과 人間이 하나가 된다.
로 바꿀 수 있다.
㈏ 華嚴經 思想의 敎育過程
① 성기의 세계를 이해시킨다.
② 법계연기의 모습을 이해시킨다.
③ 구래부동불임을 이해시킨다.(자료:법성게)
④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려는 마음을 낸다.(자료:사성제。선재 동자의구도심)
⑤ 입법계품을 통하여 보살도를 이해한다.(자료:53선지식의 가르침)⑥ 보살십지를 거쳐 등각。묘각을 성취한다.
⑦ 보현보살행을 하여 입법계를 완성한다.
이것을 일반적인 교육 과정으로 전환하면;
① 眞理에 따른 世界觀을 갖는다.
② 眞理에 따른 世界相을 理解한다.
③ 現實 그대로 眞理의 世界임을 理解한다.
④ 眞理에 따른 智慧를 얻으려는 마음을 낸다.
⑤ 先覺者를 통하여 眞理의 世界를 案內 받는다.
⑥ 안내받은 方法대로 實踐하여 眞理의 世界로 나아 간다.
⑦ 모든 생명체를 眞理의 世界로 이끌고, 理想世界와 하나가 되어 理想的人間이 된다.
로 바꿀 수 있다.
㈐ 華嚴經 思想의 敎育 評價
① 화엄 사상을 이해했는가?
② 발보리심을 했는가?
③ 보살도를 이해하고 있는가?
④ 보살행에 대한 믿음이 있는가?
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었는가?
⑥ 보현보살행을 하고 있는가?
⑦ 입법계하였는가?
이것을 일반적인 교육 평가로 전환하면;
① 眞理의 世界에 대한 理解가 되었는가?
② 眞理를 追究하려는 마음을 내었는가?
③ 眞理를 求하는 길과 모든 生命體들을 眞理로 이끄는 方法을 理解했는가?④ 眞理의 世界에 대한 確信이 있는가?
⑤ 眞理를 완전히 把握해 완전한 智慧를 얻었는가?
⑥ 모든 생명체들을 眞理의 世界로 이끌려는 利他行을 하고 있는가?⑦ 眞理의 世界와 하나가 되었는가?
로 바꿀 수 있다.
화엄경의 교육 과정은 교육목표인 입법계와, 교육내용인 10주。10행。10회향。10지등각。묘각의 42계위에서 수행하는 보살도, 그리고 교수-학습 과정의 활동인 입법계품의 선재 동자의 구도 행각, 평가는 보현행으로 정리된다.
교육과정은 水平的 構成과 垂直的 構成이 있다. 말하자면 수평적 구성은교육 내용의 공간적 배열이고, 수직적 구성은 교육 내용의 시간적 배열이다.
여기서 화엄경의교육 내용도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 볼 수가 있다. 곧 공간적 배열은 十波羅蜜이고, 보살십지 등 42 계위에 따르는 수행도는 수직적구성으로 볼 수 있다. 이 두 선이 만나는 점에서 교육이 행해져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수행자의 성질에 따라 욕심이 많으면 보시 바라밀을 가르치고,진심이 많으면 인욕 바라밀을, 치심이 많으면 혜와 지 바라밀을 가르쳐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행자의 수행 정도에 따라서 낮으면 신심에서부터발심하게 하고, 수행 정도가 높으면 거기에 맞추어 보살 초지이면 10대원을가르치고, 이구지이면 10善道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먼저 보살10지의 수행도를 살펴보자.
⑵ 菩薩十地의 修行
① 初 歡喜地(환희지)에서는 十大願을 세운다. [檀波羅蜜:布施] ② 離垢地(이구지)에서는 十善道를 행한다. [戒波羅蜜:持戒] ③ 發光地(발광지)에서는 無常。苦。無我 등을 관한다. [忍辱波羅蜜] ④ 焰慧地(염혜지)에서는 三十七 助道品을 닦는다. [精進波羅蜜] ⑤ 難勝地(난승지)에서는 四聖諦를 닦는다. [禪定波羅蜜] ⑥ 現前地(현전지)에서는 十二緣起를 관한다. [慧波羅蜜] ⑦ 遠行地(원행지)에서는 十波羅蜜을 닦는다 [方便波羅蜜] ⑧ 不動地(부동지)에서는 無生法忍을 얻는다. [願波羅蜜] ⑨ 善慧地(선혜지)에서는 四無碍智를 얻는다. [力波羅蜜] ⑩ 法雲地(법운지)에서는 大法雨를 내린다. [智波羅蜜] 이와 같은 수행법은 근본불교의 수행법에서부터 일승의 실천법까지 망라하고 있다.
첫째, 환희지의 10대원은 다음과 같다.
불자여 보살은 이 환희지에 머물러 이와같은 큰 서원과 이와같은 큰 용맹과 이와같은 큰 작용을 성취할 수 있다. 남김없이, 법계와 같이 넓고 크게,허공과 같이 끝까지, 미래가 다하도록, 일체 겁수에 쉬임없이 모든 공양구로 일체 모든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하여 광대하고 청정한 결정해를 일으키는 것이다.
일체제불을 공경 공양하고, 일체제불을 칭찬하며, 공양을 널리 닦고, 업장을 참회하며, 불보살 지은 공덕따라 기뻐하고, 법륜 굴리기를 청하며,이 세상에 항상 부처님 계시기를 청하고, 부처님의 법을 항상 따라 배우며, 중생의 뜻에 항상 수순하고, 일체의 중생들이 불도에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十善道는 다음과 같다.
① 성품에 일체 殺生을 멀리하는 것. ② 일체 偸盜하지 않는 것.
③ 邪淫하지 않는 것. ④ 거짓말 않는 것. ⑤ 두 말 않는 것. ⑥ 나쁜 말않는 것. ⑦ 꾸미는 말 않는 것. ⑧ 貪慾하지 않는 것. ⑨ 성내지 않는 것.
⑩ 삿된 견해를 떠나는 것이다.
셋째, 발광지에서 닦는 수행은 三法印으로 ① 諸行無常印, ② 諸法無我印,③ 涅槃寂靜印이다. 곧 모든 것은 變化하며, 모든 것에는 自性이 따로 없어서, 煩惱가 없어져 고요한 것이 가장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넷째, 염혜지에서의 수행내용은 37 助道品이다. 이것은 4念處, 4正勤, 4如意足, 5根, 5力, 7覺支, 8正道를 합한 37 도품이다.
다섯째, 난승지에서는 4성제를 닦으니 이것은 ① 고성제, ② 집성제, ③멸성제, ④ 도성제이다.
여섯째, 현전지에서의 수행내용은 12緣起法을 관하는 것이다. 12연기는無明으로 인하여 行이 있고, 행으로 인하여 名色, 계속하여 六入 觸 受 愛取 有 生 老死가 있다는 것으로, 무명 곧 지혜가 없는 것에서 지혜를 성취하면 생 노사의 괴로움이멸한다는 것이다.
일곱째,원행지에서 닦는 10바라밀을 살펴보자. 이것은 수평적 교육 내용도되니 42 계위 중 맨 처음인 10주에서부터 10행 10회향 10지 등각 묘각에이르기 까지 되풀이 된다. 이것은 마치 교육학의 螺線型 敎育課程과 같다.
나선형 교육과정이란 소라 껍질이 뱅뱅 도는 것과 같이 교육 내용이 돌면서점점 확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10바라밀은 10住 初와, 10行 初, 10回向 初, 10地 初 등에 보시 바라밀이 설정되고, 그 다음에는 지계 바라밀 등이 순차적으로 설정된다. 그러면 10 바라밀의 내용을 살펴 보자.
10바라밀은 布施。持戒。忍辱。精進。 禪定。慧。方便。願。力。智의 바라밀이다.
① 남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재물과 따뜻한 마음을 베풀며(布施),② 보살계를 지켜 止惡 修善하며(持戒),③ 궂은 일을 참고(忍辱),④ 바르게 노력하며(正進),⑤ 마음을 고요히 가라 앉혀 (禪定),⑥ 지혜를 얻으며(慧),⑦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완전한 수단 방법을 얻고(方便),⑧ 큰 서원을 내고(願),⑨ 바르게 판단하여 수행하는 힘을 얻고(力),⑩ 깨달음의 즐거움을 받고서 또 중생을 깨달음에 인도하는 완전한 지혜를낸다(智).
여덟째, 부동지에서의 수행 내용을 보자. 여기서는 無生法印을 얻는다. 무생법인이란, 無生의 法理 곧 不生不滅의 眞如를 깨달아 알고 거기에 安住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아홉째, 선혜지에서의 수행 내용은 4無碍智를 얻는 것이다. 4무애지란,① 어떤 의미를 사리에 맞게 표현할 수 있는 文字나 文章 등에 정통하여 무애자재한 法無碍解 智解辯才,② 文字나 文音에 의해 표현된 의미와 내용에 정통한 義無碍解 智解辯才,③ 方言(地方語)에 정통한 詞無碍解 智解辯才,④ 바른 이치에 따라 걸림없이 말할 수 있는 辯無碍解 (樂說) 智解辯才이다.
열째, 법운지에서는 大法雨를 내린다. 대법우란, 큰 法이 능히 목마른 중생을 慈悲로 潤擇하게 하므로 비에 비유한 것이다.
이의 수행 과정과 수행 내용은 선재 동자가 만나는 54회에 걸친 55선지식으로부터 보여지는 것이며, 결국 선재가 얻게되는 入法界의 모습은 화엄경의 중심사상인; 性起思想과 法界緣起思想, 그리고 菩薩道로 나타내진다.
이는 앞의 화엄경의 중심 사상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우리의 몸과 마음이그대로 비로자나 行境十佛과 解境十佛이며, 우주 그대로 佛性이 顯現함과,顯現한 現象 世界는 重重 無盡으로 서로 因이 되고 緣이 되어 緣따라 일어나고 緣따라 消滅하니 소멸해도 아주 소멸한 것이 아니요, 임시로 조건이흩어짐이요, 일어 나도 일어남이 아니니 단지 조건이 맞아서 임시로 모인것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法界의 모습에 대하여 집착을 버리며, 집착하고 있는 모든생명체를 보고 慈心과 悲心을 일으키고, 布施하며, 愛語하고, 利行하며, 同事하고, 함께 기뻐하며, 함께 괴로워하고, 我와 我所를 다 버린다.
항상 깨끗한 마음을 내어 착하게 행동하고, 욕심을 버려 더러움을 떠나 악행을 짓지 않는다. 자신을 내 세우지 않고 모든 生命體를 받아들여 따르며,항상 佛 菩薩을 생각하고, 가까이 하며, 供養하고 恭敬하며, 정성을 다하여목숨 다해 歸依 하며, 寂靜에 처하여 삼매를 깊게 닦고, 세상을 緣起로 관하여 언제나 마음이 탐욕 갈애로 부터 解脫되어, 영원히 생사의 괴로움을소멸한다.
그리하여 法界는 그대로 우리를 감싸고 있는 비로자나 眞法身임을 터득하니, 깨끗한 마음이 그대로 비추어 大寂光이요, 如來의 十力 을 구족하고,十八 不共法 이 이루어 지니, 如來의 功德이 충만한 노사나 大光明이요,노사나 대광명마다 석가여래 出現하니 삼라만상 如如의 不動佛이다. 이렇게法身을 얻어, 끝없이 많은 모든 생명체를 보고 여래의 大慈 大悲心을 내어끝없는 지혜의 대광명을 비추는 것이다.
이러한 여래 출현의 모습은 우리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이것이다.
그래서 禪師 들은 말도 없고 글도 없이 마음을 전했다. 꽃을 들어 보이고,문 밖에내 쫓으며, 옷깃을 당긴 것이고, 멱살을 잡고, 몽둥이로 내려 치고,고함을 지른것이며, 낮 닭 우는 소리에 깨닫고, 맷돼지는 너의 지난 몸이고木佛은 너의 미래 몸이라는 법문에 깨달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깨달은 법계의 모습을 理와 事로 나누고, 理와 事가 圓融하여걸림이 없으며, 事와 事가 걸림없음을 노래한 것이 法界緣起사상이다. 즉하나의 티끌 속에 온 우주 法界가 다 들어 있으니, 티끌, 티끌 마다 다 이와 같이 온 우주 법계가 다 들어 있다. 온 우주는 그대로 한 티끌이고, 온우주는 그대로 또 다른 하나의 띠끌이다. 하나의 티끌은 온 우주가 緣이 되고, 그 티끌은 온 우주의 緣이 된다. 한 생각은 無量한 劫이고, 무량한 겁은 한 생각일 뿐이다. 이렇게 하여 頭頭物物이 서로 因이 되고 緣이 되어,겹겹으로 緣이 되고 因이 되니, 두 거울이 서로 비침과 같고, 수백개의 여의주가 서로 서로 비추어 끝없이 여의주 속에 나타남과 같다. 꽃, 나무, 들판이 있으면 여기에 무수한 緣起의 세계가 벌어지니, 꽃과 나무와 들판이있으며, 꽃이 보는 꽃이 있고, 나무가 보는 나무가 있으며, 들판이 보는 들판이 있고, 꽃이 보는 나무가 있으며, 꽃이 보는 들판, 나무가 보는 꽃, 나무가 보는 들판, 들판이 보는 꽃, 들판이 보는 나무, 나무가 보는 들판을생각하는 꽃, 들판이 보는 나무를 생각하는 꽃, 꽃이 보는 들판을 생각하는나무,들판이 보는 꽃을 생각하는 나무 등, 끝 없이 이어지는 꽃과 나무와들판의 세계를 볼 수 있다. 이것이 重重 無盡 法界緣起이다.
이제는 이러한 화엄교육의 내용을 42계위에 맞추어 교육과정을 살펴보자.
3. 華嚴經上의 敎育 過程
⑴ 42 階位의 敎育 內容과 過程
먼저 信位는 42계위에 들지 않지만 42계위에 앞서 초발심을 일으키게하는원인이 되므로 이의 교육 내용을 살펴보면 信成就이다.
제1계위인 初發心住의 교육내용은 發心하는 것이다.
제2계위인 治地住의 교육내용은 大悲心을 增長하는 것이다.
제3계위인 修行住의 교육내용은 智慧를 明了하게 하는 것이다.
제4계위는 生貴住로 교육 내용은 마음에 平等함을 얻게 한다.
제5 具足方便住의 교육 내용은 마음에 染着하는 바가 없게 하는 것이다.
제6 正心住의 교육내용은 無生法忍을 얻게 하는 것이다.
제7 不退住의교육 내용은 一切法으로부터 떠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제8 童眞住의 교육 내용은 善巧方便을 얻게 하는 것이다.
제9 法王子住의 교육내용은 마음에 障碍없게 하는 것이다.
제10 灌頂住의 교육 내용은 一切種智가 자라나게 하는 것이다.
제11 歡喜行의 교육 내용은 布施바라밀을 行하게 하는 것이다.
제12 饒益行의 교육 내용은 持戒바라밀을 行하게 하는 것이다.
제13 無違逆行의 교육 내용은 忍辱바라밀을 行하게 하는 것이다.
제14 無屈撓行의 교육 내용은 精進바라밀을 行하게 하는 것이다.
제15 無癡亂行의 교육 내용은 禪定바라밀을 行하게 하는 것이다.
제16 善現行의 교육 내용은 智慧바라밀을 行하게 하는 것이다.
제17 無着行의 교육 내용은 方便바라밀을 行하게 하는 것이다.
제18 難得行의 교육 내용은 願바라밀을 行하게 하는 것이다.
제19 善法行의 교육 내용은 力바라밀을 行하게 하는 것이다.
제20 眞實行의 교육 내용은 智바라밀을 行하게 하는 것이다.
제21 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의 교육 내용은 6바라밀과 4무량심을 닦은공덕으로 一切衆生을 구호하되 衆生相을 여의도록 회향하게 하는 것이다.
제22 不壞廻向의 교육 내용은 不壞身을 얻은 善根功德을 一切智에 회향하도록 하는 것이다.
제23 等一切諸佛廻向의 교육 내용은 學諸佛 회향으로 얻은 心自在淸淨功德을 諸佛菩薩중생에게 회향하게 하는 것이다.
제24 至一切處廻向의 교육 내용은 善根功德을 修行하여 一切處에 이르도록회향하게 하는 것이다.
제25 無盡功德藏廻向의 교육 내용은 여러 종류의 善根에 따르고 기뻐한 공덕으로 얻은 무진 복덕으로 중생의 복전이 되도록 회향하게 하는 것이다.
제26 隨順堅固 一切善根廻向의 교육 내용은 佛法 智 菩提등에 隨順하여 智慧를 이끌어 내어서 悲門을 성취자재하는 회향을 하게 하는 것이다.
제27 等隨順一切衆生廻向의 교육 내용은 一切衆生의 根品을 따라서 同行利行하는 회향을 하게 하는 것이다.
제28 眞如相廻向의 교육 내용은 人法一如의 無功用位에 나아가 普賢行에住하는 회향을 하게 하는 것이다.
제29 無縛無着解脫廻向의 교육 내용은 甚深微細智로 菩薩行을 닦고 普賢道에 住하는 회향을 하게 하는 것이다.
제30 入法界無量廻向의 교육 내용은 悲圓滿行으로 一切衆生을 보리심에 안주하게 하는 회향을 하게 하는 것이다.
제31 歡喜地의 교육 내용은 10가지 大願을 하게 하는 것이다.
제32 離垢地의 교육 내용은 10가지 善業을 하게 하는 것이다.
제33 發光地의 교육 내용은 4 無量心을 갖고 3 法印을 이해 하는 것이다.
제34 焰慧地의 교육 내용은 37助道品을 닦게 하는 것이다.
제35 難勝地의 교육 내용은 4聖諦를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제36 現前地의 교육 내용은 12緣起를 관하게 하는 것이다.
제37 遠行地의 교육 내용은 10바라밀을 닦게 하는 것이다.
제38 不動地의 교육 내용은 無功用智로써 無量神通 無生法忍을 갖추게 하는 것이다.
제39 善慧地의 교육 내용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넓게 佛事 지음을 알게 하는 것이 제40 法雲地의 교육 내용은 大法雨를 내리게 하는 것이다.
제41 等覺位가운데;
① 10定品의 교육 내용은 智幻을 일으켜 成佛門을 나게 하는 것이다.
② 10通品에서의 교육 내용은 智悲가 自在하여 正念 과 諸法이 잃지 않게현전하는 문을 닦게 하는 것이다.
③ 10忍品에서의 교육 내용은 十方에 널리 펴진 主世法師의 節門을 닦게 하는 것이다.
④ 阿僧祗品에서의 교육 내용은 十方에 널리 펴진 字의 智門을 닦게 하는것이다.
⑤ 如來壽量品에서의 교육 내용은 世間의 一切 正那의 吉하고 凶하며 모든방면 技術師의 筮博說로 一切의 利生에 總達하는 門을 닦게 하는 것이다.
⑥ 菩薩住處品에서의 교육 내용은 세간에 처하여 생각에 집착이 없어 淸淨한 解脫門을 닦게 하는 것이다.
⑦ 佛不思議法品에서의 교육 내용은 세간에 처하여 깨끗한 智의 光明門을닦게 하는 것이다.
⑧ 如來十身相海品에서의 교육 내용은 無相法가운데 無盡相을 얻는 門을 닦게 하는 것이다.
⑨ 如來隨好光明功德品에서의 교육 내용은 誠願語門을 닦게 하는 것이다.
⑩ 普賢行品에서의 교육 내용은 智와 悲가 圓滿한 곳의 幼主門을 닦게 하는것이다.
제 42 妙覺位 가운데;
① 如來出現品에서의 교육 내용은 慈氏의 一生에 얻는 바의 佛果門을 닦는다.
② 離世間品에서의 교육 내용은 佛果의 法界가 寂滅하고 大用하는 常然門을닦는다.
의상은 법계도에 이러한 화엄경의 교육 내용을 54각 210자의 과정으로 담고 있다. 이것을 풀이한 `화엄일승법계도기'에 다음과 같이 법계도를 지은연유를 말하고 있다.
⑵ 法界圖의 敎育 過程
대저 大聖은 그 훌륭하신 敎說이 어느 한 방면에 치우친 바 없어 [衆生의 ]素質을 고려하고 病的氣質을 참작한 것으로서 一律的인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자들은 表象에만 매달려 본질을 잃은 줄은 모르고 있으니 [비록] 노력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根本思想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직 遼遠한 일이 아닐수 없다. 그래서 [나는] 普遍的 原理와聖人의 敎法에 의거하여 간략하게 朱線과 文字를 결합한 時를 만들어 이로써 根源으로 돌아오도록 冀願하는 것이다.
이 시를 읽는 방법은 [圖印의] 중심에 있는 `法'字에서 시작하여 屈曲을따라 돌면서 진행하여 `佛'字에 이르러 끝나기까지 圖印의 길에 맞추어 읽어야 한다.
부처님의 교설이 중생의 병적 기질을 참작하여 설한 것이어서 비록 일률적인 것이 아니긴 하지만 이를 모르는 자들은 표상에만 매달려 본질을 잃고있기 때문에, 법계도를 지었으니 `法'자에서 시작하여 `佛'자에서 끝나기까지 圖印을 따라 읽어야 한다고 하였다.
법계도의 54角은 마치 54善知識 을 뜻하는 것 같아, 굽어 돌아 갈때 마다 새로운 善知識을 만나고, 새로운 菩薩道를 소개 받고, 가르침에 따르며, 舊來不動佛의 끝에 와서 스스로 不動佛이 되어 法界에 듬을 상징하는것 같다.
《표 》一乘法界圖合詩一印
一→ 微→ 塵→ 中→ 含→ 十 初→ 發→ 心→ 時→ 便→ 正→ 覺→ 生→ 死 ↑ ↓ ↑ ↓ 一 量 ←無 ←是 ←卽 方 成 益← 寶 ←雨 ←議 ←思 ←不 ←意 涅 ↑ ↓ ↑ ↓ ↑ ↓ ↑ ↓ 卽 劫 遠→ 劫 念 一 別 生 佛 →普 →賢 →大 →人 如 槃 ↑ ↓ ↑ ↓ ↑ ↓ ↑ ↓ ↑ ↓ ↑ ↓ 多 九 量 卽 一 切 隔 滿 十 海 ←入 ←能 ←境 出 常 ↑ ↓ ↑ ↓ ↑ ↓ ↑ ↓ ↑ ↓ ↑ ↓ 切 世 無 一 →念 塵 亂 虛 別 印 →三 →昧 →中 →繁 共 ↑ ↓ ↑ ↓ ↑ ↓ ↑ ↓ 一 十 是 ←如 ←亦 ←中 雜 空 分 ←無 ←然 ←冥 ←事 ←理 ←和 ↑ ↓ ↑ ↓
卽 世 →互 →相 →卽 →仍 →不 衆 →生 →隨 →器 →得 →利 →益 →是 ↑ ↓ 一 相 ←二 ←無 ←融 ←圓 ←性 ←法 파 ←際 ←本 ←還 ←者 ←行 ←故 ↑ ↓ ↓
一 諸 知 →所 →知 →非 →餘 佛 息 盡 →寶 →莊 →嚴 →法 →界 ↑ ↓ ↑ ↓ ↑ ↓ ↑ ↓ 中 法 證 甚 ←性 ←眞 ←境 爲 妄 無 隨 ←家 ←歸 ←意 實 ↑ ↓ ↑ ↓ ↑ ↓ ↑ ↓ ↑ ↓ 多 不 切 深 →極 →微 →妙 名 想 尼 分 →得 →資 如 寶 ↑ ↓ ↑ ↓ ↑ ↓ ↑ ↓ ↑ ↓ 切 動 一 ←絶 ←相 ←無 不 動 必 羅 ←陀 ←以 ←糧 捉 殿 ↑ ↓ ↑ ↓ ↑ ↓ ↑ ↓ 一 本→ 來→ 寂→ 無→ 名 守 不 不 →得 →無 →緣 →善 →巧 窮 ↑ ↓ ↑ ↓ 中 ←一 ←成 ←緣 ←隨 ←性 ←自 來 ←舊 ←床 ←道 ←中 ←際 ←實 ←坐
법성은 원융하니 두 가지 모양없고, 제법은 움직임 없어 본래 고요하다.
이름 없고 모양 없어 모든 것 사라져, 깨달아야 아는 바요 나머지는 모른다.
참된 성품 매우 깊어 아주 미묘해, 자성을 지키지 않고 연을 따라 이룬다.
하나 속에 모두요 모두 속에 하나며, 하나가 모두요 모두가 하나라.
한 티끌 속에 시방을 넣고, 모든 티끌 속에도 또 이와 같다.
끝 없이 먼 겁이 곧 한 생각이요, 한 생각이 곧 끝 없는 시간이다.
9세와 10세가 서로 서로 다르지 않으며, 섞여 어지럽지 않고 뜸 떠 따로 이룬다.
처음 발심한 때가 곧 정각이요, 생사와 열반이 항상 함께 온화하다.
理와 事가 그윽하여 나눔이 없으니, 10불과 보현의 큰 사람 경계이다.
능히 해인삼매 속에 들어가, 뜻대로 되는 생각 할 수 없는 일이 쏟아져 나온다.
중생에 유익한 보배 내려 허공에 가득하니, 중생은 그릇에 따라 이익을 얻는다.
그러므로 행자여 본제에 돌아가라, 망상을 쉬지 않으면 반드시 얻지 못하리라.
무연의 좋은 솜씨로 여의를 잡아, 귀가하면 몫에 따라 자량 얻는다.
다라니의 다함없는 보배로써, 법계의 진실한 보전을 장엄한다.
마침내 실제의 중도상에 앉으니, 옛부터 움직이지 않음을 일러 부처라 한다.
먼저 의상은 華嚴一乘法界圖에서 법계도가 印의 형식을 취한 까닭을 말하고 있다.
問: 무슨 까닭으로 印이란 형식을 취했는가?
答: 석가여래께서 가르치신 그물과 같은 교법이 포괄하는 세 가지 종류의世間을 海印三昧를 좇아 드러내어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른바 세 가지 종류의 세간이란 ① 器世間 ②중생세간 ③智正覺世間의 셋을 말한다. 지정각이란 佛。菩薩이다. 이 三種世間은 모든 법을 다 포함하므로 다른 것들을 논하지는 않는다.
즉 三種世間을 해인삼매를 통해 들어 내기 때문에 海印이, 즉 法界圖印인것이다. 다시 말하면 법계도는 海印三昧圖라 할 수 있다. 의상은 법계도를海印圖라고 부르고 있다. 이러한 석가의 해인 삼매는 화엄경의 總定이며, 海印三昧一時炳現의 법문이 화엄경이다. 그래서 법계도는 화엄경의 축소판이다.
법계도는 글자 자체로만 화엄일승원교의 이치를 파악 할 수 없고, 반드시그 圖印을 함께해야 일승원교의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 그 까닭은 도인이처음과 끝이 따로 없이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인 만 가지고도 법계에 들어갈 수 없으니 처음과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과 끝을 알수 있는 글자를 먼저 따라가야 하니, 따라 가므로 해서 一乘同敎에 들고,다음에는 익힌대로 印만 따라갈 수 있으니 一乘別敎요, 이 셋이 구비하여비로소 一乘圓敎가 되는 것이다.
의상은 법계도기의 끝에 다음과 같이 誓願을 하고 있어, 결국 중생제도,곧 깨달음음 향한 교육에 회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원하기를 [다음과 같이 한다]
일승보법의 이름자와 그 의의
견문하고 수집하였네
[이로써 심어놓은] 훌륭한 뿌리를
일체의 중생에게 돌려드리나니
두루 익히고 두루 닦으시어
중생의 세계 빠짐없이
일시 성불하소서.
지금까지 화엄경의 교육과정을 살펴 보았다. 화엄경의 교육은 십불을 향한입법계가 그 목표이고, 발심에서부터 시작된 수행도가 내용이며, 42계위의과정을 거치는 조직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교육의 과정에 따라 이제는 어떠한 방법으로 교육을 할 것인가에 생각이 미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53 善知識의 法界 案內를 통한 華嚴經의 敎育方法을 살펴보자.
Ⅳ. 入法界品을 통해 본 敎育 方法
1. 53 善知識과 스승상
敎育은 그 內容이 重要하지만 가르치는 方法도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內容이라도 注入式으로 가르친다면 人間에 내재한 創意性과 自發性이 충분히발휘되지 못한다. 가르치는 사람의 일방적인 교수인 强壓式 訓練은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自我實現이라는 兒童中心敎育 方法이 나왔고, 니힐의 썸머힐과 같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학교도 나오게 되었다. 우리나라도점차 이런 방법을 도입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아동의 활동에만 맡겨둘 때, 교육의 중요한 기능인 文化傳授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교육에 있어서 어디까지나 人間主義的인 입장에서되 文化의 傳授라는 역할을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自由主義的인 敎育觀이있다. 여기서는 교육의 目的과 方法을 둘로 보지 않고 하나로 보고 있다.
곧 교육의 本來的 價値를 생각하는 것이다. 교육은 다른 무엇을 얻기 위한수단으로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배움 곧, 眞理의 探究라는 알려고 하는 마음을 충족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때 화엄경은 훌륭한 교육 방법을 취하고 있음을 볼 수있다. 그것을 잘 볼 수 있는 것은 입법계품에서이다. 入法界品에서는 어떠한 방법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입법계품에서는入法界라는 目標에 도달하기 위해 53선지식이 스승으로 등장하고 선재동자가 발심하여 구도하는 과정을 설하고 있다. 그런데 그 구도과정에서 多樣하고 眞摯한 선지식의 모습을 대하게 된다. 현재 우리가 스승으로 생각하는교사들의 모습과 53 선지식은 좋은 대조가 아닐 수 없다. 먼저 53 선지식의모습을 통해 理想的인 스승상을 살펴보고나서, 善財童子를 통해 바람직한弟子의 모습으로 생각해 본다음, 53 선지식이 선재동자에게 보여준 보살도를 통해 敎育方法을 정리하여 본다.
善知識은 부처님이 말씀한 敎法을 말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고통의 세계를벗어나 理想境에 이르게 하는 이, 또는 노。소, 남。여, 귀。천을 가리지않고, 모두 佛緣을 맺게 하는 이를 말한다. 善知識의 원말은 카라야나미트라(Kalyana-mitra) 이다. 그 뜻은 正直有德한 親友 곧, 相互 親密한 벗으로서 좋은 곳으로 이끌고 利益을 주는 德이 있는 친구이다. 이것은 엄격하고 거리가 먼 位階의 師弟 관계가 아니다.
다음은 53선지식을 차례로 거론하면서 스승으로서 가야할 길과, 제자에게베푸는 大慈悲心을 살펴보자. 먼저 선재 동자가 문수보살을 親見하는 장면이다.
(1) 文殊菩薩
이때 문수사리보살은 이와같이 선재동자를 관찰하고 나서 일체불법을 연설하기 위하여 편안히 위로하고 말문을 열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모든 부처님을 모으는 법을 설하고, 모든 부처님을 상속하는 법을 설하고, 모든 부처님의 차제법을 설하고, 모든 부처님이 모이는 청정한 법을 설하고, 모든 부처님의 법륜으로 교화하는 법을 설하고, 모든 부처님의 색신 상호법을 설하고,모든 부처님의 법신 성취법을 설하고, 모든 부처님의 언사 변재법을 설하고,모든 부처님의 광명으로 비추는 법을 설하고, 모든 부처님의 평등하여 둘이없는 법을 설하였다. 이때 문수사리동자가 선재동자와 모든 대중을 위하여이 법을 설해 마치고 은근히 세력을 증장하며, 은근히 환희하게 끌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 나게 하였다. 또 과거 선근을 기억하게 하고는 그곳에서 다시 중생들을 위하여 적당히 법을 설하고나서 갔다. 이때 선재 동자는문수사리를 따라 이와 같은 부처의 여러 가지 공덕을 듣고 한마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부지런히 구해 문수사리를 따라 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문수 보살은 세존의 설법을 듣고, 세존께 엎드려 절하며 물러나와 부처님이 고행하셨던 남쪽나라로 갔다. 문수보살이라 하더라도 법을 듣고 세존께절하며 부처님을 사모하여 고행하셨던 곳으로 간 것이다. 그래서 선지식은법을 구하고 부처님을 공경하며 가는 곳마다, 군중의 청에 의하여 교법을설하는 유덕하고 정직한 친우로 모든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는 것이다.
여기에 눈빛 초롱한 아동들을 처음 대할 때 느끼는 감동이 느껴진다. 이들에게 불도를 勸勉하고 無上菩提心을 일으켜 宿世에 이미 성취된 바 있는善根 을 기억케 하면서 그 자리를 떠나가니 선재는 홀로 문수를 따라가 문수를 讚嘆하면서 자기의 심정을 노래한다.
삼계의 생사는 성곽되고
교만한 마음 담장이며
여러 길은 문이되고
사랑의 물이 연못되었네.
……
법왕의 지위에 이미 들었고
지혜의 관을 이미 쓰셨고
법의 비단을 머리에 맸나니
바라건대 나를 돌봐 주세요.
이 때에 문수사리보살은 코끼리가 한 번 돌듯이 선재동자를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좋다, 좋다. 착한 남자여, 그대는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고,또 선지식을 가까이하여 보살의 행을 물으며 보살의 도를 닦으려 하는구나.
선남자여, 선지식들을 친근하고 공양함은 온갖 지혜를 구족하는 첫째 인연이니라. 그러므로 이 일에는 고달픈 생각을 내지 말라.”
고 하였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선지식이 법을 설하고 떠난다고 해서그냥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심정을 털어 놓아 다시 법을 청하여 선지식에 가까이 가는 선재의 진지한 구도심과, 간절한 선재의 청에 다시 코끼리가 돌듯이 돌아보고, 그 구도심의 착함을 극구 칭찬하고 선지식에 가까이하고 공양함이 온갖 지혜를 구족하는 첫째 인연이라는 가르침을 주는 문수보살의 대자비심과 선재의 말에 뒤돌아서는 廻向이다. 이 회향에 의하여문수의 지혜로 진여 법성의 깨우침이 선재 쪽으로 몸을 돌이켜서 선재 쪽으로 향하여 오는 것이다. 그래서 선지식은 항상 벗을 향해 돌아서며, 착한구도심을 칭찬하며, 선지식에게 가까이하여 공양하여 지혜를 구족하라 하는것이다. 이러한 회향의 정신이야말로 교사가 학생들에게 가져야할 첫째 조건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교사는 학생들의 좋은 점을 보고 배우려는 마음이 훌륭함을 칭찬하는데서 학생들에게 가까이 가며, 그 결과 학생들이 스승에게 가까이 옴을 잘 알아야 한다. 스승과 제자가 가까워 질 수록덕이 있는 가르침은 쉽게 전달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선재동자가 보살의 행을 묻느데 대하여 자세히 일러주고 나서, 선재동자에게 한 말이다. 여기서 선지식에 대하여 취해야 할 태도가 언급되어있다.
“착한 남자여, 온갖 지혜의 지혜를 성취하려거든, 결정코 선지식을 찾아야 하느니라. 착한 남자여, 선지식을 찾는 일에 고달프고 게으른 생각을 내지 말고, 선지식을 보고는 만족한 마음을 내지 말고, 선지식의 가르치는 말씀은 그대로 순종하고, 선지식의 교묘한 방편에 허물을 보지 말라.”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발심하는 것이 어려우며, 발심하여 보살의 행을구하기는 더윽 어렵다는 것과, 지혜를 성취하려면 선지식을 찾고, 선지식을보고 만족해버리지 말고, 선지식의 가르침에 그대로 순종하며, 선지식의 교묘한 방편에 허물을 보지 말 것이니, 선지식을 찾아 가르침대로 순종하라는것이다. 이 일은 결코 쉽지가 않다고 느낀다. 먼저 선지식을 편견을 가지고보기가 쉬우며, 가르침이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따르지 않기가십상이며, 더욱 선지식의 방편에 허물을 보는 것은, 누구나 쉽게 눈에 띄어이리 저리 말을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도자는 항상 겸허한 자세를 가지며, 스승의 말씀에 귀담아 들을 것이니, 그렇게 하는 가운데 보살의 행은 깊어 간다고 본다. 여기에 선지식의 한없는 덕이 내포 되어 있으니,스승된자는 제자들에게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다. 제자는 스승의 잘 못 된것까지 더 쉽게 배우기 때문이다. 더욱이 수십명 앞에서 잘 못 말한 말은그것이 비록 한 마디라도 수십마디의 말을 잘 못한 것이 되고, 잘 못 가르쳐진 弊害는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말 鎭重한 스승의 모습을 느끼게 된다.
다음은 문수보살이 자신의 가르침을 끝내고 다른 선지식에게 선재를 보내는 말씀이니, 여기서 제자를 위한 配慮와 진리에 향한 끝없는 사랑을 느낄수 있다.
“착한 남자여, 여기서 남쪽으로 가면 승락이란 나라가 있고, 그 나라에묘봉이란 산이 있고, 그 산중에 비구가 있으니 이름을 덕운이라 하느니라.
그대는 그이에게 가서 묻기를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보살이어떻게 보살의 행을 닦으며, 내지 보살이 어떻게 보현의 행을 빨리 원만하느냐하라. 그 덕운 비구는 자세히 말하여 주리라.”
여기서 우리는 문수보살이 이미 덕운이라는 비구가 어디에 거처하고 있는지 상세히 알고 있으며,그에게 가서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할지 자세히 말해 주고 있는 점을 느낄 수 있다. 흔히 지혜의 왕인 문수보살이 선재에게다 가르치지 않았다는데서, 어쩌면 겸허한 마음과, 선재에게 더 많은 것을근기에 맞게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이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이것은 비범한선재를 놓고 흔히 생각하기 쉬운 독점욕이나, 꼭 자기 옆에 두고 끝까지 가르쳐 볼려는 과욕에서 선재는 오히려 보현의 행을 빨리 원만히 닦을 수 없음을 생각 해 볼 수 있다. 자신이 부족한 점이 있다 할 때 제자에게는 큰손해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문수보살처럼 큰 지혜를 갖춘 성인도 보현행에 있어서는 보현보살 만큼 하지는 못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스승된자는 반드시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자신보다 어떤 면에서 훌륭한 선지식을 찾아 배우게 해야 할 것이니, 도를 이룸은 다 같이 큰 일이요, 즐거운일이요, 불은에 보답하는 길이기 때문이고, 부모 스승, 사회, 국가, 인류사회, 온 자연계, 대 우주에 보은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덕운 비구를 찾아 나서는 장면이다.
(2)德雲比丘
“착하고 착하다, 선재여! 너는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구나.
더불어 모든 보살행을 능히 청하여 묻는구나.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나는 결정해력의 자재함을 얻었다. 믿음의 눈이 청정하고, 지혜의 빛이비치며, 널리 경계를 보아 일체 장애를 여읜다. 선교로 관찰하고 넓은 눈은명철하다. 청정행을 갖추고 시방의 모든 국토에 가서 일체 모든 부처님을공경하고 공양한다. 항상 일체 제불 여래를 생각하고, 일체 제불 정법을 총지한다. 항상 일체 시방 제불을 보니 이른 바 동방의 일불과 이불과 십불과백불과 … 불가설 불가설 불찰 미진수불의 가지가지 색상과 모양과 신통과유희와 도량을 장엄함과 광명이 끝없이 비춤과 국토와 중생에 따른 수명과마음이 나타남을 즈김과 정각을 이루는 문과 대중앞에 사자후를 함을 본다.
선남자여 나는 오직 이 일체 제불 경계의 지혜광명을 널리 보아 억념하는것을 얻었을 뿐이요 어찌 대 보살의 가 없는 지혜의 청정 행문을 능히 요지할 것인가?”
덕운 비구가 닦은 것은 念佛三昧門으로서 그 공덕으로 화합하고 즐거움을누린다.
역시 선재의 먼길을 찾아온 구도심을 칭찬하고, 모든 중생의 소원을 만족시켜줄 교화를 받은 선지식에게 따라야하며, 삶과 죽음의 길에서 해탈하기 위해 정진해야 하고, 현실에서 이상을 발견해야 한다고 하였다.
칭찬하는 것과, 선지식에 따라야 하는 것은 문수보살과 같고, 삶과 죽음의길에서 해탈하기 위해 정진하며, 이상을 발견하라는 가르침이 덧붙여졌다.
(3) 海雲比丘
“선남자여! 만약 모든 중생들이 善根을 심지 않으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지 못한다. 普門 善根의 光明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眞實한 道인三昧智光을 갖추면 여러 가지 廣大한 福海를 出生한다.”
해운비구는 선근을 심어야 발심한다고 가르쳐 준다. 여기서 우리는 도덕적으로 착하게 되고나서 진리를 구하는 마음을 내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운비구는 또, “선지식을 섬기는데 피곤하고 싫어하지 말라. 목숨을 아끼지 말고 쌓아둠이 없게하라. 마음을 땅처럼 높고 낮음이 없게하라. 항상 모든 중생의 윤회하는 것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낼것이며, 버리지 않도록 마음을 써야한다.
항상 여래의 경계를 보는 것을 즐거워하면 능히 발보리심 할 수 있으니, 발심은 일체 중생을 널리 구함이기 때문에 대비심을 냄이요, 일체 세간을 동등하게 도우므로 대자심을 냄이다.”
라 하였다. 해운비구는 발심이 곧 자비심을 일으키는 것임을 가르쳐 주고있다. 곧 해운비구는 자비심을 충분히 갖추고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
(4) 善住比丘
“착하다! 선재여 너는 이미 발보리심하고 다시 발심하여 불법과 일체지법과 自然者法을 구하는구나. 나는 보살무애해탈문을 성취하였다. 오거나 가거나 움직이거나 멈추거나 사유에 따라 관찰을 익히고 닦아 곧 지혜광명을얻는다.”
선주 비구는 거리낌없는 법문을 성취하여, 지혜와 신통력을 갖추니, 허공을 날고 마음대로 부처님을 만나 뵙고, 사람이 바라보기만 하여도 그 사람이 깨달음을 얻으니 대 선지식이다. 그러나 계율의 소중함을 말하고, 계율은 현실의 종교 세계라 하였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선지식인 스승은 법에 걸림없어 제자들이 보기만하여도 곧 깨달음을 얻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바램으로 스스로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5) 彌伽長者
미가장자는 선재가 발보리심했다는 말에 갑자기 사자좌에서 일어나 선재가있는 곳에 가서 오체를 투지하고 금 은 화 한량없는 가치의 구슬을 뿌리고위에는 묘수말전단의 한량없는 종류의 옷으로 덮었다. 또 한량없는 가지 가지의 향과 꽃과 가지 가지 공양구를 다시 뿌려 공양한 다음, 일어나 칭찬하였다.
“착하고 착하다, 선재여! 능히 발보리심하였구나. 만약 능히 보리심을 일으키면 곧 일체의 불종을 끊지 아니함이며, 곧 일체의 불찰을 엄정함이며,곧 모든 중생을 성취함이며, 곧 모든 법성에 요달함이며,……모든 중생계를남김없이 안은하게함이다. 이른 바 악취를 버리게 하기 때문이요, 잡된 곳에서 벗어나게 함이요, 모든 빈궁의 근본에서 벗어나게 함이고,……보리의지에 머무는 까닭이다…….”
우리는 흔히 스승이면 제자 앞에 엎드리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미가장자는 선재동자가 발심하였다는 말에 엎드리고 가지 가지 장엄구로장엄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무엇인가? 먼저는 발심이 부처처럼 존중된다는 사실이요, 그 두번째는 스승이라도 발심한 제자 앞에서는 엎드려 공경 공양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진리에 대하여 한없이 거룩하게 생각하는 지극한 마음을 보게되는 것이다. 다음, 보리심을 내는 것은부처님 종자를 끊이지 않게 하는 등 한량없는 공덕이 있음을 미가장자의 찬탄 속에서 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발심 정도야 초발심이니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버리고 말지만, 여기서는 부처처럼 존중되고 있음을 염두에두어야겠다. 미가장자에서 보리심을 찬탄하며 제자가 훌륭하게 됨에 찬탄을아끼지 않는 스승상을 볼 수 있다.
(6) 解脫長者
선재동자는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의 불가사의한 신통변화를 다 능히 듣고 또 볼 수 있었다. 이때, 해탈장자가 삼매로부터 일어나 선재동자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이미 여래의 걸림없는 장엄 해탈문에 드나들 수 있다. 선남자여! 나는 이 해탈문에 드나들 때 곧 동방의 염부단금 광명세계를 본다.
용자재왕여래응정등각이 비로자나장보살이 상수인 도량의 무리 가운데 둘러싸여 있음을 본다.……”
해탈장자는 삼매의 힘으로 가지 가지 신통변화를 지니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스승은 해탈장자와 같은 정도의 해탈력을 갖추었을 때 능히 보리로 향하는 문을 제시할 수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7) 海幢比丘
주변에 해당비구를 찾으니, 이에 다니는 길가에 결가부좌하고 삼매에 들어가 숨쉬는 것을 벗어나고 별다른 생각이 없이 몸이 편하여 움직임이 없는것을 보았다. 그 발 아래에서는 무수한 장자 거사 바라문들이 가지 가지장엄구로 몸을 장엄하고 출입하였다.
해당비구는 삼매에 들어 거룩하고 정적이 감돌며, 불가사의한 광명이 넘쳐흐른다. 양쪽 겨드랑이로 용과 용녀를 출현시키고, 천변만화의 구름을 일으켜 비를 내리며, 밝은 빛이 우주의 모든 것을 비추며, 부처님까지도 비구를공양하여 기쁨과 즐거음을 더해 주시며, 비구는 인간끼리의 화합을 설하여자비심을 얻게하시고, 자비로운 손으로 중생을 어루만져 준다.
선지식은 이렇게 깊은 삼매에 들어 모든 생명체를 자비로 감싸 어루만져주고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덕을 갖추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는 마음을 일경에 처하는 선의 수행이다. 여기서 능히 선정에 들고 지혜에 자재하는 스승상을 본다.
(8) 休捨優婆夷
선재동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선지식으로 인하여 내가 부처를 볼 수 있으며, 선지식으로 인하여 법을 들을 수 있다. 선지식은 나의 師傅이다. 나를모든 불법으로 이끌어 보이기 때문이다. 선지식은 나의 眼目이다. 내가 허공과 같이 부처를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선지식은 나를 나루터에서건너가게 한다. 나로 하여금 모든 부처님 여래의 연꽃 연못에 이르게 하기때문이다.
“보살은 한 중생만을 교화하고 조복하기 위해서 발보리심해서는 안된다.
…… 보살은 한 여래를 공양하기 위해 보리심을 발하지 않는 것이다.……요약하여 말하면 보살은 이와같은 백만 아승지 방편행 때문에 보리심을 낸다.”
선재 동자가 생각하는 선지식의 모습이 선지식들에서 볼 수 있는 스승상이된다. 선지식은 우리의 사부이고 안목이며 나루터에서 건너가게 해주는 나룻배이다.
우리는 흔히 불교의 목적이 불교인들 만의 안락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쉽다. 그러나 진정한 보리심은 불교만이 아니라 일체의 중생을 위한 것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타종교인이라 하더라도 그들을 바른 길로 이끌 원력을 구비해야 보살이라 할 것이다. 이런 광대한 마음으로 제자 앞에 서야 한다는 말이 된다.
(9) 毘目瞿沙仙人
선인은 조용한 숲속에서 나무껍질로 몸을 가리고 풀을 깔고 앉아 일만 선인을 거느리고 있었다.
선인은 보살의 이길이 없는 당기해탈을 얻었음을 일러주었다. 이때 선재동자는 그 경계가 어떠하냐고 물었다. 이 때 비목선인은 오른 손을 펴서 선재의 이마를 만졌다. 곧 선재는 자신의 몸이 시방 십불찰 미진수 세계 중에있음을 보았다. 십불찰 미진수 모든 부처님 처소에 도달해 저 부처님 나라와 그 무리들이 모임을 보았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비목구사선인의 한량없는 자비심이다. 선재동자의청법에 직접 자신의 경계를 신통력으로 나투어 설명하고 있다.
(10) 勝熱婆羅門
바라문이 말했다. “선남자여! 네가 지금 만일 이 칼산 위에 올라 불더미에 몸을 던진다면 모든 菩薩行이 淸淨해지리라.” 그때 선재동자는 이렇게생각했다. 사람 몸을 얻기는 어렵고, 모든 어려움을 떠나기도 어렵다. 어려움이 없어지기를 얻는 것도 어렵다. 깨끗한 법을 얻는 것도 어렵고, 부처님만나는 것을 얻는 것도 어렵다. 착한사람을 만나고 참 善知識을 만나는 것도 어렵다.……이것이 魔가 아닐까? …….”그때 십천범천이 허공중에 있어이와 같이 말했다. “선남자야 그와 같이 생각하지 말아라 지금 이 보살은金剛焰三昧光明을 얻고 크게 정진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하니 마음에 退轉함이 없다.”
승열 바라문은 불길 속으로 뛰어 들라 하였다. 이것은 인간이 가장 하기어려운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렇게 하기 어려운 일을 이루어야불퇴전하게 되니, 아무리 하기 어렵고 믿어지지 않는 일이라도 선지식의 가르침에 그대로 따라야 하고, 받들고, 참고 견디어야 하니, 쉬운 일은 말할나위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귀중한 가르침을 망각하기 쉬우며, 계율을 어기며, 참아내지 못하나니, 그래서 자꾸 뒤로 물러서는 것이다. 수행자인 제자와 선지식인 스승은 자재력을 얻기 위하여 마음에 깊이 새길 일이다.
(11) 慈行童女
“성자시어 저는 이미 발보리심하였으나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고,어떻게 보살도를 닦는지 아직 모릅니다. 제가 듣기에 성자는 잘 가르쳐준다고 하오니 저를 위하여 설해주소서.” 그때 자행동녀가 선재에게 말하였다.
“너는 마땅히 나의 궁전 장엄을 보아라.”
법당 안에서 모든 부처님이 과거세에 초발심으로 보살도를 수행하시던 모습, 한량없이 거룩한 깨달음을 여시던 모습과, 괴로움 없는 영원히 안락한경지에 이르시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이는 동녀의 과거세 선근의 힘에말미암은 것임도 알았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말로 가르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으로,선지식인 스승은 실제로 수행에 힘써야만 제자들을 완전하게 가르칠 수 있고, 제자들을 수행하게 할 수 있으며, 그래야 만 제자들도 배울 수 있다는것이다.
(12) 善見比丘
선견 비구는 깊은 산중 조용한 숲속을 거닐면서 경문을 외우고 있었다. 비구는 젊은 나이에 용모가 아름답고 단정하여 보기에 반가웠다.
“선남자여! 나는 나이도 어리고 출가한지도 얼마되지 않았으나, 나의 이생중에 38 항하사 불소에서 범행을 깨끗이 닦아 부처님 처소에서 하루 낮하루 밤을 보내기도하고,……한 생각 가운데 불가설 불가설 일체 삼세해가다 현전하고, 일체 세계중의 일체 삼세 분위를 완전히 알게 되었다.……”
선견 비구는 보현보살의 행원력으로 한 생각에 모든 부처님이 출현하여,공경 공양하며, 온몸에서 정진력이 솟구처 나온다. 그것은 부처님을 향한지혜의 광명 원력으로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선지식인 스승은 진리에 대한뜨거운 마음이 일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13) 自在主童子
선남자여! 나는 옛적 일찌기 문수사리동자가 있는 곳에서 세간의 글, 數,算, 印 界 處 등의 법을 배우고, 온갖 공교한 신통과 지혜의 법문을 깨달아알게 되었다.
여기서는 현대 과학 기술 문명에 필요한 수학이나 과학 기술 등의 가르침을 문수보살로 부터 배워 통달했다는 시사를 얻을 수 있다. 선지식인 스승은 전공에 따라 다양하게 연구하고 통달해야 함을 느끼게 해준다.
(14) 具足優婆夷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무진 복덕장 해탈문을 증득했다. 이와같은 하나의작은 그릇에 중생들의 가지 가지 욕락에 따라 가지 가지 맛 좋은 음식으로다 채울 수 있다.
거리낌 없는 큰 덕의 근본 그릇을 완성하여, 음식과 수레와 의복 향 보물등의 장식품을 희망하는 대로 주어도 조금도 줄어 들지 않고, 모든 국토의성문 연각 등을 인도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하여 성불하게 하며, 보살로 하여금 악마를 항복받아 도를 깨닫게 한다.
구족우바이로 부터 다함 없는 복덕이 모든 생명체를 이롭게 하고 해탈 성불케 함을 본다. 법계도에 ` 雨寶益生滿虛空 衆生隨器得利益 '이라 한 뜻과통하는 말로, 선지식은 제자들에게 한량없는 복덕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스승된 자는 이렇게 될 수 있도록 끝없는 노력을 해야 함을 알 수 있다.
(15) 明智居士
“선남자여! 발보리심하는 사람은 얻기 어려우며 만약 발심하면 이 사람은곧 보살행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선지식을 만나는데 항상 싫어하거나만족함이 없다. 선지식을 가까이 하는데 항상 피곤하거나 권태하지 않는다.
선지식을 공양하는데 항상 고달퍼하거나 게으르지 않다. ……나는 隨意出生福德藏解脫門을 얻었다. 무릇 바라는대로 그 원을 만족시켜준다. 이른 바의복 영락 코끼리 말 차 탈것 꽃 향 깃발 덮개 음식 탕약 방사 집 앉는 자리 횃불 노비 소 양 및 모든 시중드는 것등…….
명지거사는 모든 사람이 바라는 물건들을 허공에서 쏟아지게 하여 앉아 있는 사람을 만족시킨 후 정법을 설하여 미혹의 세계에서 법의 세계로, 괴로움을 소멸시켜 법의 감로를 푸짐하게 베풀어 부처님의 지혜를 깨닫게 하는것에서, 현대 심리학적인 안목을 이 때부터 가졌다고 볼 수 있으며, 그런고로 선지식인 스승들은 그런 감로문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가르치기전에 아낌없이 베풀어 만족시켜야 함을 알 수 있다.
(16) 法寶계長者
이때 장자가 선재의 손을 잡고 마침내 사는 곳에 이르러 그 집을 보여주고이렇게 말했다. “선남자여! 나의 집을 잠시 보아라.”
금빛나는 10층 저택에 1층에는 온갖 진수성찬, 2층에는 비단 옷,3층에는보석 장신구와 조각품, 4층에는 단정한 시녀들, 5층에는 성전을 편찬하는초지에서 五地까지의 보살들, 6층에는 절대평등의 진리를 생각하면서 지혜완성의 가르침을 설하는 완전한 지혜를 이룩한 보살들, 7층에는 모든 가르침의 매체가 결국 하나임을 알아낸 音響忍 보살들, 8층에는 신통력을 갖추어 일체 불국토를 살펴보고 일체 중생을 감싸는 常住 보살들, 9층에는 다음시대에 부처님이 될 여러 보살들, 10층에는 모든 부처님이 계시는 보전에부처님께서 발심하고, 수행하며, 대원을 성취하고, 교화하시는 과정과 경지가 나타나 있다. 이는 寶莊嚴王如來께 향과 꽃과 음악으로 공양하고, 모든부처님과 보살과 선지식을 받들어 불법을 들은대로 염하고 수행하여 얻은과보이다. 선지식인 스승들은 이와 같이 부처님께 공경 공양하고 불법을 염하고 수행하여 찬란한 장엄을 이루고 모든 생명체들을 깨달음에 이끌어야할 것이다.
(17) 普眼長者
탐욕이 많은 사람에게는 不淨觀을 가르치고, 성을 잘 내는 사람에게는 慈悲觀을 보여주고, 여러 가지 법의 모양을 분별하여 가르쳐준다.
장자는 일체 중생의 병을 고칠 수 있는 향을 만드니, 향을 피울때는 부처님을 향하여 일심으로 모든 사람을 구제해 줄 것과, 일체 불국토를 청정하게 할 것과, 모든 부처님을 숭배 공경하리라는 맹세를 한다. 장자는 탐 진치의 근기에 따른 수행법을 설하니, 지금의 個別化 敎育이 이것과 같다. 부처님께 피우는 향은 모든 생명체의 病苦를 소멸하려는 大願이니, 선지식인스승은 제자들과 모든 생명체의 아픔을 바라보고 치유해 줄려는 큰 사랑을지녀야 할 것이고 個性에따른 개별화 교육을 하여야 할 것이다.
(18) 無厭足王
다 殺生 盜賊 邪淫을 영원히 끊게 하고자 함이며, 또 妄言 兩舌 惡口 綺語를 금지시키고자 함이며, 또 貪 瞋 邪見을 영원히 끊게 하고자, 다스릴 자는 다스리고, 으를 자는 으르고, 죄악에 따라 벌을 주고, 다툼을 해결하며,외롭고 약한 자를 쓰다듬어 준다.
뜰에 수많은 죄인들을 잡아와 죄의 무겁고 가벼움에 따라 형벌을 가하고있다. 여기서 생각 할 수 있는 것은 교육에 있어서 體罰은 과연 정당한가?하는 논란에 대해서이다. 무염족왕은 보살의 신통력으로써, 환상으로 형벌을 가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게 하여, 사람들을 깨달음의 문으로 이끌어 들어가게 할 수 있다. 이것을 통해 체벌은 남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여 바른길로 이끌 수 있을 망정, 직접 체벌을 가함은 정당하지 못함을 시사 받을수 있다. 즉 무염족왕은 신통력으로 악인을 만들어 형벌 가하는 환상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볼 수 있는 선지식의 모습은 비록 겉으로는 10악 등 나쁜 죄악에 대하여 용서하지 않는 엄격하고 두려운 왕이지만 어디까지나 중생들의 악한 마음을 끊고 보리심을 내도록 하기 위해서임을 알 수 있다.
(19) 大光王
큰 자비를 비나 구름처럼 고루 베풀어 인민을 교화하고, 악한 사람이 오면올바른 법을 설하여 절대로 어긋나는 행동을 못하게 한다. 이 성의 사람들은 큰 깨달음의 세계로 향해 나아가고 있다. 삼매에 들어감으로써 모든사람의 마음 속에서 악한 마음, 번뇌의 마음, 다투려는 마음, 해치려는 마음이사라지게 해준다. 그래서 성 안의 모든것이 큰 진동으로 미묘한 소리를 내고, 바다, 강, 내, 연못, 샘물까지도 왕을 찬탄하고, 용왕은 향수를 뿌리고,천신은 꽃을 흩으며, 나찰귀와 포악한 짐승까지도 자비의 마음을 일으켜 찬탄한다. 자비의 마음이야 말로 삼매의 본질이며, 스승된 선지식의 제자 모든 생명체를 위한 마음 아닌가?
선재는 대광왕으로부터 물러나와 이렇게 생각했다. 선지식은 일체 악도로부터 널리 구호해 줄 수 있고, 모든 평등법을 널리 연설해 줄 수 있으며,모든 오랑케의 험한길을 널리 보여줄 수 있으며, 대승의 깊은 뜻을 열 수있으며, 보현의 모든 행을 널리 권하여 내게 할 수 있으며, 모든 지혜의 성으로 널리 이끌 수 있으며, 법계의 큰 바다에 널리 들어가게 할 수 있으며,삼세의 法海를 보게할 수 있으며, 뭇 성인의 道場을 널리 줄 수 있으며, 모든 밝은 법을 널리 자라나게 할 수 있다.
(20) 不動優婆夷
누각 위를 보다가 허공에 계시는 부처님을 뵙고, `크나큰 용맹과 견고한마음을 내어 믿음을 근본으로 삼아, 꺾이지 않는 발심으로번뇌를 제거하고묘법에 슬기로운 마음을 바치라'는 가르침대로 수행하여 무너지지 않는 가르침의 지혜를 완성하였다.
부동우바이의 몸은 동녀인데 그 집안에서 부모의 보호를 받고 자기의 친속한없는 사람 무리와 더불어 묘법을 연설한다. 금색광명이 널리 다 비치니그 빛을 만난 자는 몸이 청량해 진다. 선재동자가 광명을 몸에 쐬고 즉시오백삼매문을 획득하였다.
선재 동자가 여성 선지식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자태와 도행에 크게 감동하였다. 우리는 여성 선지식 곧 여성 스승의 달과 같이 빛나는 인격의 아름다움을 추앙해 본다.제자는 저절로 교화될 것이다.
(21) 遍行外道
모든 생명체를 널리 상대하여 보살 수행을 가르칠 수 있는 법문을 깨닫고,모든 세계의 모든 사물을 바로 보아 분별하는 불가사의한 신통력을 성취한다.
都薩羅城中의 모든곳에 모든 가족들에 남자건 여자건 모든 사람 가운데 내가 다 방편으로써 그 모양과 같게 보여 응하는 바에 따라서 설법을 해준다.
모든 중생들은 내가 누구이며,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지 아무도 모른다. 오직 듣는 사람들이 참답게 수행하도록 한다.
도살라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外道의 지도에 따라 교화되고 있지마는 그들은 자기가 누구에게 교화를 받으며 누구에게 인도되어 법을 배우고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진실을 알지 못하는 그들이라 하여 절대로 등한히하지 아니하며, 아울러 모든 세계의 모든 생명체들을 여러 가지 방법과 방편으로 교화하여 인도 하고 있다. 지금 외도 들이 극성인 땅에서 어떻게 그들을 대할 것인가 하는 지혜가 씌어 있다. 자신의 종교를 내세우지 않고 가지가지 방편과 방법으로,누구에게 인도되고 교화되고 있는지 모르게 교화하고 인도하며 등한히 하지 말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보살도 아닌가. 곧 길을 모르는 그들이기에 더욱 안타까워 하여 선교 방편을 생각해 보아야 할것이다.
(22) 육香長者
모든 사람의 병을 아무런 고통 없이 고치는 향과, 기쁨과 즐거움을 얻게하는 향이 있으며, 게으름을 막아주는 향, 힘을 얻게 하는 향, 모든 부처님을 염하게 하는 향, 진리에 들어 가게 하는 향, 모든 보살 세계를 알 수 있게 하는 향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와 같이 육향장자는 향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청정 장엄이란 향을 피우면 모든 하는 사람들이 염불삼매에 들어 가게 된다. 선지식은 모든 생명체들의 고통을 없애고, 즐거움을 줄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23) 婆施羅船師
선재는 나는 마땅히 선지식에 가까이 해야겠다. 선지식은 모든 보살도인의수행을 성취함이요, 선지식은 바라밀도인을 성취함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바시라선사를 찾아갔다.
“선남자여! 나는 염부제 내의 빈궁한 중생이 饒益해지기 위하여 모든 고행을 하는 것을 보면, 그 바라는대로 다 만족시켜 준다. 다시 법과 재물을주어서 기쁘게 해주고, 복된 행을 닦게하고, 지혜로운 도가 생기게 하며,善根力을 자라나게 하고, 보리심이 일어나게 한다.……나는 이와 같이 생각하고 이와 같은 생각을 내어 모든 중생들을 이익되게 한다.”
선지식이 먼저 중생들의 소원을 만족시켜 준 다음 수행을 하도록 하고 있음을 본다.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상당히 타당한 면이 있다. 곧 아동의 심리에 맞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24) 無上勝長者
三千大千世界 一切住處에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설법한다. 非法을 버리고諍論을 쉬며, 싸움을 그치고, 분한 경쟁을 그치며, 원수 맺음을 깨고, 묶임을 풀고, 감옥에서 벗어나며, 두려움을 면하고, 살생을 끊고, 내지 삿된 견해의 모든 악업을 지어서는 아니된다고 한다.……
인간과 축생의 욕망을 억제하며, 인색하고 탐욕스럽고 용렬한 무명의 성질을 제거하며, 마음을 청정하게 지켜야만 필경에는 거룩한 불법을 성취할 수있다고 설한다. 언제 어디서든지 통용되는 보살의 행문과, 독립, 독보, 누구 힘에도 의지하지 않는 신통력을 몸에 갖추고, 삼천 대천세계의 모든 중생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교리를 설한다. 선지식인 스승은 보살의 행과 신통력과 교리를 자유 자재로 할 수 있는 큰 힘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25) 師子頻申比丘尼
한량없이 넓고 화려한 勝光王의 日光園에서, 당당하고 위엄스럽게, 모든天部 용왕 아수라 나찰 성문 연각 초지에서 십지에 이르는 모든 보살에 이르기 까지의 중생들에게 장광설을 자재롭게 구사하여 미묘법을 설한다.
사자빈신 비구니는 선재에게 말한다.“나는 一念 속에 능히 三世의 모든법을 비추어 헤아려 볼 수 있는 成就 一切 智慧의 해탈을 얻었고, 智光의밝은 문에 들어가 일체의 법이 일어나게 하는 삼매왕이 될 수 있다. 이 삼매로 어떠한 곳이라도 갈 수 있어서 부처님께 같이 공양하는 중생은 나와같이 불퇴전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사자빈신 비구니는 지혜의 눈을 갖추었고, 삼매로 도솔 천궁에도 갈 수 있으며,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일념 가운데 모든 부처님의 신통력과 말씀이간직돼 있음을 일깨워 줄 수 있고, 모든 중생 속에 들어가 그 마음을 속속들이 알아 낼 수 있게 하여 준다. 선지식인 스승은 노력하여 일체지를 성취하고 중생들의 마음을 다 알아 제자들을 바르게 이끄는 힘을 갖추어야 할것이다.
사자빈신 비구니의 지시를 받은 선재동자는 그로 말미암아 큰 지혜의 광명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비추어 깊이 생각하고 자세히 관찰하여, 일체의 불법을 말하는 반야바라밀문과, 법륜 다라니 법문 등을 터득하고, 여러 신통력을 마음먹은 대로 나타 낼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선재의 성숙한 모습을 보고 이미 凡夫가 아님을 느낄 수 있다. 가르침에 충실히 따른 선재가 점점 法性에 가까이 감을 본다.
(26) 婆須蜜多女
남의 욕구에 따라 몸을 자재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해탈을 얻었다. 만약,天部(천계에 사는 자)와 세간의 모든 남자들이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자 생각할 때 바수밀다녀를 보면, 바수밀다녀는 아름다운 천녀가 되어 그 남자앞에 나타난다. 이와 같이 바수밀다녀는 언제 어디서나 자재롭게 변화 무쌍하다. 그리하여 그 열화처럼 불타오르는 욕정에 사로잡혀 분별없이 바수밀다녀를 찾아오는 남자에게는, 욕정을 없애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근본 교법을설해주고, 그 욕정을 없애는 도법을 신통력으로 보여 주어 깨닫게 한다. 바수밀다녀의 설법을 들은 대중은 모두 탐욕을 여의고 보살의 가지가지 삼매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선지식인 스승은 욕정을 신통력으로라도 없애 줄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할 것이다.
(27) 비瑟지羅居士
“선남자여! 나는 不般涅槃際라는 보살 해탈을 얻었다. 선남자여! 나는 여래는 이미 열반에 드셨다는 말이나, 여래는 이와 같이 般涅槃을 나타낸다는말이나, 여래는 이와 같이 반열반을 당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생기지 않는다. 나는 시방의 모든 세계의 부처님은 오직 중생들을 조복하기위해서 열반을 보이는 것을 제외하고 마침내 반열반이라고 하는 것이 없다고 알고 있다. 선남자여! 내가 전단좌의 여래 탑문을 열때에 나는 佛種無盡이란 삼매를 얻게 되었다.……이 삼매에 들면 온 세계의 모든 부처님을 뵙게 되고,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 성문 연각 등의 깨달음의 세계도보는 등 언제든지 일체 한량없이 신기한 일을 다 알게 된다.”
여래는 중생들을 조복하기 위하여 열반상을 보일 뿐, 부처님에게는 반열반이 없다. 부처님의 대자 대비와 선지식의 불종무진 삼매로 깨달음의 세계는끝이 없으니, 스승된 선지식은 진리의 문을 항상 두드려 제자들에게 깨달음의 세계를 열어 보여 주어야 한다.
(28) 觀自在菩薩
선재동자는 관자재보살의 모습을 보고 이와 같은 생각을 했다. 선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이 곧 여래이며, 모든 법의 구름이며, 모든 공덕을 갈무리한 것이며, 만나기 어려우며, 열 가지 힘의 보배스런 원인이고, 다하지않는 지혜의 횃불이며, 모든 지혜의 문이고, 지혜 바다로 이끄는 스승이며,모든 지혜의 道를 돕는 도구이다.
“선남자여! 나는 이 대비행문에 머물러 항상 모든 부처님 계신곳에 이르게 된다. 모든 중생들의 앞에 나타나 보시로써 중생들을 제도하고, 혹은 사랑스러운 말로 제도하거나, 이롭게하는 행동으로 제도하거나, 같이 일하여제도하거나, 色身을 나타내어 제도하거나, 혹은 여러 가지 생각할 수 없는색의 깨끗한 광명그물을 나타내 중생을 제도하거나, ……중생의 온갖 근심과 슬픔과 두려움을 제거해 준다. 나를 念하고 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있으면 두려움을 없애 주리라는 서원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관자재 보살은 四攝法과 離怖畏 방편으로 중생을 不退轉으로 이끌고 계신다. 스승된 선지식은 관자재 보살 처럼 제자들을 사랑하여 가르침과 재물을베풀고, 따뜻하게 말하며, 이로움을 주고, 같이 행동해야 할 것이며, 두려움을 없애 주어야 할 것이니, 師弟同行이 이것 아닌가.
(29) 正趣菩薩
“선남자여! 나는 普門 速疾行의 菩薩 解脫을 하였다.……나는 동방의 妙藏세계의 普勝生佛이 계신 곳으로 부터 왔다. 저 부처님 계신 곳에서 이 법문을 얻었는데 저 곳에서 이곳에 오기까지 불가설 불가설 불찰미진수겁을지냈다. 하나 하나의 생각 중에 불가설 불가설 불찰 미진수 걸음을 걷고,하나 하나의 걸음에 불가설 불가설 세계의 미진수불찰을 지내왔고, 하나 하나의 부처님 나라에 나는 다 널리 들어가 그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 묘한供養具로 供養하였는데, 다 이것이 위없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보승생불이 계신 곳에서 해탈을 얻어 수 많은 세월 동안 수 많은 걸음을걷고 부처님 나라에 들어가 위없는 마음으로 공양하였다. 모든 곳에 계시는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 빨리 해탈을 얻는 길임을 보여주고 있다. 정취 보살의 스승상은 무량하고 이 없는 공경 공양하는 마음이니 진리에 대한 끝없는 공경심이 진리에 빨리 나아감을 상징한다.
(30) 大天神
그 때 대천은 네 손을 길게 뻗어 사대해수를 떠서 자기 얼굴을 씻고 모든금꽃을 쥐어 선재에게 뿌렸다. 그리고 선재에게 말했다. “선남자여! 모든보살은 만나기 어렵고 듣기 어려우며, 세간을 벗어나기 바라니, 중생중에가장 제일이라. 이 모든 사람중에 분타리 꽃으로 중생에 돌아가, 중생을 구하니, 모든 세간에 安隱한 곳을 짓고, 세간의 큰 광명을 짓는다.……선남자여! 만일 중생이 오욕에 탐착하고 스스로 방일하는 자면 그를 위하여 부정한 경계를 보이고, 만일 중생이 화내고 교만하며, 다투고 경쟁하는 것이 많으면, 그를 위해 피를 마시고 살을 씹는 나찰 등과 같은 극히 두려운 모습을 보여 놀라고 두렵고 무서워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원수 맺는 것을 떠나게 한다.”
보살은 인간 중에 아름다운 꽃이며, 탐욕이 많은 자에게는 도둑과 폭군의재난을 보여주고, 성을 잘 내는 사람에게는 원수의 재난을 보여준다. 역시근기에 따른 가르침이 필요함을 보여 준다.
(31) 安住神
“선남자여! 지금 이 보배 갈무리는 너를 따라 쫓아 온 것이다. 이것이 너의 과거선근 과보로 온 것이다. 이것이 너의 복력으로 거두어 들인 것이니,너는 마땅히 뜻에 따라 마음대로 써라. 나는 무너지지 않는 지혜 갈무리를얻어 항상 이 법으로 중생을 성취시켜 준다. 내가 생각해 보니 연등불 이래로 언제나 보살을 따라 공경하고 지켜 주었다. 보살이 가진 지혜의 경계를행하는 마음을 관찰하고 모든 청정한 행동을 하려는 서원을 세운다.”
안주신은 선재의 과거 福德藏을 보여 준다. 누구든지 복덕을 쌓으면 그 결과는 꼭 따라오는 것이라는 진리를 설해 준다. 또 꾸준히 보살행에 힘쓰고깊이 지혜 세계에 들어가 그 근원을 규명함으로써, 크고 미묘한 불법으로모든 중생을 교화하시는 부처님의 신통력을 성취하였다. 선지식인 스승은항상 선근을 쌓도록 가르치고, 보살도에 힘써 중생을 교화 하기 위한 부처님의 신통력을 얻도록 해야 할 것이다.
(32) 婆珊婆演底主夜神
“선남자여! 너는 깊은 마음으로 선지식을 공경하고 그 말을 듣기를 좋아하는구나.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고 수행하는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결정코 얻게 되리라. 나는 보살의 모든 중생의 어두움을 깨뜨리는 법의광명 해탈문을 얻었다. 나는 나쁜 꾀를 얻은 사람에게는 큰 자애심을 일으키고, 착하지 못한 업을 짓는 사람에게는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킨다. 착한 업을 쌓는 중생에게는 기쁜 마음을 일으키고, 선과 악의 두 업을 쌓는 중생에게는 두 가지가 아닌 마음을 일으킨다.”
선지식인 스승은 근기에 맞춰, 자비심과 기쁜 마음과 청정한 마음을 일으켜 지혜의 빛으로 악함과 어리석음을 여의도록 제자들을 가르쳐야할 것이다.
(33) 普德淨光主夜神
“선남자여! 나는 이와 같이 모든 여래를 아는 때에 보살의 적정한 禪定樂으로 두루 다니는 해탈문을 분명히 了達하고 성취하고 자라게 하였다. 모든분별 망상을 일으키지 않고 한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모든 중생을 큰 자비로 구하고 보호하여 준다. ① 초선을 닦아 모든 意業을 쉬고, 모든 중생을제도하여 지혜의 힘이 용맹해 지고, 기쁜 마음이 매우 즐거워진다. ② 2선을 닦아 모든 중생의 자성을 생각하여 생사를 멀리 여읜다. ③ 3선을 닦아모든 중생의 뭇 괴로움과 熱惱를 다 쉴 수 있다. ④ 4선을 닦아 모든 지혜와 원을 원만히 자라나게 하여 모든 삼매의 바다를 출생시킨다.”
이때 선재동자는 선지식의 가르침을 공경하고, 선지식의 말을 행하여, 이와 같은 생각을 했다. 선지식은 보기 어려우며 만나기 어려우며, 선지식을봄은 마음을 산란하지 않게 하고, 선지식을 봄은 막히고 걸린 산을 부숨이며, 선지식을 봄은 큰 자비의 바다에 들어 중생을 구호함이다. 선지식을 봄은 지혜의 빛을 얻어 법계를 널리 비춤이며, 선지식을 봄은 모든 지혜의 길을 다 수행할 수 있음이며, 선지식을 봄은 모든 부처님을 보아 법을 굴려기억해 잊지 않음이다.
보덕정광주야신은 청정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禮拜하고, 청정한 눈으로 부처님을 예배하며, 모든 부처님의 공덕이 한량없음을 생각하고, 부처님의 광명이 한량없는 세계를 비추심을 생각하는 등 보살의 10법문을 성취하고, 4선정을 닦아 일체 지혜의 구법 이외에는 딴 생각이 없다. 스승상은 선정을 깊이 닦아 모든 삼매를 성취하는 것이다.
(34) 喜目觀察衆生主夜神
이때 희목신은 선재 동자에게 선지식에 친근하는 것이 모든 선근을 생할수있고 자라날 수 있게 하며, 성숙 될 수 있게 함을 알게 하였다.……선재동자가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희목관찰중생주야신에 가까이 가서 그 야신을보니 여래의 무리가 모인 도량에 연화장사자좌에 앉아 있었다. 그 몸에서는하나 하나의 털 구멍에 무량한 가지 가지의 몸 구름이 나왔다.……이 때 선재동자가 이 해탈을 하여 마음이 기뻤다. 희목관찰중생야신을 향하여 합장하고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 무량 무수겁 동안 부처의 아주 깊은 법을 배워
그 마땅히 제도될 바에 따라 묘한 색신을 나타내도다.
모든 중생이 어린아이의 망상에 빠짐을 알고, 가지 가지 몸을 다 나타내 마땅함을 따라 다 조복하도다.”
큰 깨달음의 도에 이른 야천의 온 몸에서는 찬란한 빛이 나오고, 미묘한구름이 감도니, 그 빛은 근기에 따라 지혜의 빛이고,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의 빛이다. 그 기쁨의 광명은 모든 사람의 근기에 따라 조절하여,발심, 공부, 수행을 하게 하며, 바람 소리, 물 소리, 사람 소리가 되어 법을 설해 준다. 사람은 바람, 물, 나무, 돌 등 어떤 물체에서도 부처님의 모습을 찾아 볼 줄 알아야 한다. 중중 무진의 법계가 부처 아님이 없으니, 스승도 제자도 결국 다 부처님인 셈이다. 스승은 제자를 부처로 볼 줄 알아야진정한 교육이 이루어 지는 것이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할 때, 마음과마음이 일치될 때에 진리가 실현된다.
(35) 普救衆生妙德主夜神
이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지혜가 불꽃이 되어 타오르는 智燈普照淸淨幢의 광명을 양미간에서 비춘다. 선재동자는 야천의 광명이 몸과 마음에 가득 차오르자, 의심을 끊고 깨달음을 성취하는 究竟淸淨輪三昧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야천이 어떤 수행으로 깨달음을 성취 하였는지 물었다. 이에 야천은, “선남자여! 이것은 알기 어렵다. 모든 하늘 및 사람이나 모든 이승이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보현보살의 행자가 머무는 경계이기 때문이다. 대비를 갈무리한 자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모든 중생을 구하고 보호하는 경계이기 때문이다. ……한 마음의 지혜 광명으로 모든 삼세 방편바다의 경계를 널리 비추는 경계이기 때문이다.”
“수미산의 티끌 수 겁 동안 이 가운데 계신 부처님을 널리 세간의 등불을 지어 내가 다 공양하였네
부처님 세계의 티끌 수 겁 동안 출현하신 부처님들을 내가 다 공양하였으니 이 해탈문에 들어 갔도다.”
고 하였다. 선재는 地, 水, 火, 風의 성질과, 물질, 생물이 생성하고 유전함을 자세히 알게 되고, 사물의 하나 하나 속에 큰 세계(법계)와, 부처님의수명과, 깨달음의 씨앗이 있음을 낱낱이 볼 수 있었다. 스승은 우주의 생성과 유전, 일중 일체, 진리에 대하여 자세히 일러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스승은 세상을 보는 눈이기 때문이다. 스승상은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여 얻는 해탈이니, 진리에 대한 공경심이다.
(36) 寂靜音海主夜神
“선남자여! 나는 깨끗하고 평등한 즐거움의 욕심을 일으키고, 모든 세간의 더러움을 떠나 깨끗하고 견고한 장엄이 부서지지 않는 즐거움의 욕심을일으킨다.……나는 모든 중생이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받는 욕심을 일으킨다. 그리고 나서 만약 중생이 궁전 저택에 머무르는 것을 즐거워하여 집착하면 모든 법의 자성을 요달하도록 설법해 주는 등 점차 모든 지혜의 땅에이르도록 설법해 준다.”
우리는 모든 생명체들이 즐거운 마음을 내도록 하고 법에 가까이 가도록애를 써야 한다. 법에 가까이 가고 싶으나, 쉽게 되지 않음을 경험한다. 법에 가까이 가고, 바른 마음을 가지게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 그렇게만 된다면 제도의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스승인 선지식은 제자들을 법으로 이끌고, 올바른 법을 설하여, 청정하고 참된 마음을 얻게 해서 큰 기쁨을 누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스승상은 모든 것에서 법대로 하여 즐거움을 일으키고, 모든 지혜에 가까이 가도록 설법해 주는 것이다.
(37) 守護一切城主夜神
저 야신을 보니 모든 보배로운 광명 마니왕 사자좌에 앉아 있었다. 수 없는 야신이 함께 둘러싸고 모든 중생의 색신 모양을 나타내고……구경에 중생을 調伏함을 나타내었다. 선재가 그것을 보고 기뻐 날뛰었다.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아주 깊은 自在 妙音 解脫을 얻었다. 대법사가 되어 마음에 아무런 걸림이 없다. 모든 부처님의 법의 갈무리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며, 큰 서원을 갖추어 큰 자비력으로 모든 중생을 보리심에 머물게 하기 때문이다. 모든 중생에 이로운 일을 지어 선근을 쌓아 쉬임이 없기 때문이다.……”
스승상은 모든 법의 갈무리를 보여줄 수 있고 모든 중생을 보리심에 머물게 할 수 있음이다. 선지식인 스승은 제자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양식이 되고 태양이 될 수 있는 법문을 항상 해 주어야 할 것이다.
(38) 開敷一切樹華主夜神
“선남자여! 나는 이 사바세계에서 해가지고 연꽃이 아무러지면 모든 사람들이 노는 것을 파하고 모든 산이나, 물이나, 성이나, 들이나, 이와 같은곳에서 여러 가지 중생들이 다 마음을 내어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모두 다 모르게 보호하여 바른 길로 가게 하고 그 처소에 이르러 안락하게 밤에 자도록 한다. 선남자여! 나는 중생이 성년이 되어 색을 좋아하고, 교만하고, 게으르며, 오욕에 방자하면, 나는 늙고 병들고 죽는 모습을 보여 두려운 마음이 나게하여, 모든 악을 버리고, 다시 여러 가지 선근을 칭찬하여익히고 닦도록 한다.……재물을 아끼는 사람에게는 보시를 칭찬하게한다.”
스승상은 진실한 지혜의 길을 밝히고, 생사고를 설해 탐욕을 버리고 보시하게 하며, 방편으로 어리석음을 없애 준다.
(39) 大願精進力救護一切衆生主夜神
인류를 수호하여 서원과 용기의 광명을 베풀고, 태양과 달과 별을 본체로하여 생명 있는 모든 중생의 모습을 나타내는 야천은 중생을 올바르게 각자근기에 알맞도록 지도하여 모두 눈을 뜨게 해 준다.
“선남자여! 그 때의 태자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나의 몸이 이것이다.
내가 옛날 큰 자비심을 일으켜 목숨과 재물을 버려 중생의 괴로움을 구해주고, 큰 보시의 문을 열어 부처님께 공양한 원인으로, 이 해탈을 얻었다. 불자여! 마땅히 알아라. 나는 그 때 단지 중생을 이익되게 할 뿐, 삼계에 집착하지 않았다. 과보를 바라지도 않고, 명칭을 탐하지도 않고, 나를 칭찬하고 남을 업신여기고 훼방하지도 않았으며, 모든 경계에 탐하여 물들이는 바가 없었고 두려워하는 바도 없었다. 다만 대승의 나아가는 중요한 길을 장엄하며, 모든 지혜의 문을 항상 즐겁게 관찰하고 고행을 닦아 이 해탈을 얻었다.”
야천이 善伏太子로 있을 때, 무거운 벌을 받고 있는 죄수들을 대신해서 처형당하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자기의 목숨을 희생해서 선법을 기르고 부처님으로 부터 법문을 체득하여 正義를 잘 구현함으로써 중생을 눈뜨게 해 주었다. 스승은 야천과 같이 살신성인의 자세로 정의를 구현하고 모든생명체를 눈뜨게 하여야 할 것이다.
(40) 妙德圓滿主夜神
“선남자여! 보살은 열 가지의 생을 받는 갈무리가 있으니, 만일 보살이이 법을 이루면 如來家에 태어난다.……선남자여! 보살은 처음 發心할 때에이와 같은 願을 이룬다. 나는 마땅히 모든 부처님을 尊重하고 恭敬 供養하며 부처님을 보는데 싫어함이 없으리라. 모든 부처님 계신 곳에서 항상 그리워하고 즐거운 마음을 내고, 항상 깊은 믿음으로 모든 공덕을 닦고, 항상쉬임이 없으리라. 이것이 菩薩의 모든 智慧로 善根을 모으기 시작하는 受生法이다.”
부처님께서 受生自在의 法力으로 入胎하시고, 出胎하실 때에도 출생 자재의 불가사의를 나타내시어 이 세상에 탄생하셨듯이, 다른 세계에서 탄생하는 보살도 이와 같이 입태와 출태가 자재하다. 스승은 수생 자재하여 부처님으로 태어 날 때까지 용맹 정진 해야 할 것이다. 곧 스승상은 모든 부처님을 공경 공양하는 것 등의 열가지 受生法에 자재하는 것이다.
(41) 瞿波女
“선남자여! 만약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이루면 인다라 그물같은 넓은 지혜광명인 보살의 행을 원만히 할 수 있으리라. 열 가지 법이란 이른바 선지식에 의지하는 것, 광대하고 수승한 이해를 얻는 것,……이다. 불자여! 만약보살이 선지식에 친근하면 정진하고 물러가지 아니하고 닦아 다함없는 불법을 출생할 수 있다. 불자여! 보살은 열 가지 법으로 선지식을 섬겨야 하나니, 열 가지란, 이른 바 자신의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세상의 즐기는도구를 탐내어 구하지 않으며, 모든 법의 성품이 다 평등하다고 알며, 모든지혜와 원을 영원히 버리지 아니하며, 모든 법계의 실상을 관찰하고, 마음이 항상 존재의 바다로부터 떠나며, 법은 허공과 같아 의지할 바가 없음을알고, 모든 보살의 큰 원을 이루며, 모든 세계를 항상 나타내 보일 수 있으며, 보살의 걸림없는 지혜의 바퀴를 깨끗이 닦음이다. 불자여! 이러한 법으로 모든 선지식을 섬기고 어김이 없어야 한다.”
여기서 선지식을 섬겨서 얻는 공덕을 알 수 있고, 선지식을 섬기는 방법을알 수 있다.
(42) 摩耶夫人
“불자여! 나는 이미 보살의 큰 원과 지혜가 환과 같은 해탈문을 성취하여여러 보살의 어머니가 되었고, 가비라성 정반 왕궁에 들어와 오른편 옆구리로 실달 태자를 낳는 불가사의한 자재 신력을 나타내었다. 이와 같이 이 세계 바다가 다하도록 모든 비로자나여래는 나의 몸으로 들어와 탄생하는 자재신변을 보여준다. 또 선남자여! 나는 정반왕궁에서 보살이 장차 하생할때에 보살의 몸에 하나 하나의 털 구멍에 모든 여래의 受生功德 바퀴라고불리는 광명을 품고 있음을 본다.”
선재가 마야부인이 계시는 곳에 이르자, 蓮華法德 神 등의 광명을 정수리로 받아 어리석음에서 벗어 나고, 有에 집착하던 생각을 여의고 인간의 본성을 알게 되었으며, 불국토의 모습을 보고, 法身과 시방세계의 생성 변화를 보게 되었다. 보살이 도솔천에서 이 세간에 탄생할 때에는 큰 광명이 도솔천에서 뻗쳐 내려, 그 광명이 마야부인의 정수리를 통하여 몸속으로 들어감으로써 보살이 입퇴된다. 마야부인은 보살의 입태에서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모습을 다 알 수 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스승상은 생명의 출생에관한 안목을 가져 제자들을 지도하는 것이다.
(43) 天主光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걸림없는 생각의 청정한 장엄 해탈을 얻었다. 선남자여 나는 이 해탈력으로 靑蓮華라고 하는 가장 훌륭한 과거의 劫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저 겁중 항하사와 같은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그 모든여래를 따라 처음 출가하였다. 나는 다 우러러 섬기며 지키고 공양 하였다.……”
오랜 겁에 걸쳐 한량없는 부처님께 꾸준히 공양드려, 그 공덕으로 전세。현세。내세의 모든 일을 다 환히 알게 되었다. 부처님께 공양한 공덕으로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일을 다 알게 되는 해탈법을 얻으니, 스승이 이 정도는 되어야 제자들을 가르칠만 하지 않겠는가.
(44) 遍友童子師
遍友童子는 善財童子에게 선지중예동자에게 가서 가르침을 청하라 하였다.
변우란 벗이 널리 있음을 뜻하니, 친구인 선지중예동자에게 곧 보낸다고 본다. 벗이 그대로 선지식이요, 스승임을 보여준다.
(45) 善知衆藝童子
“선남자여! 나는 모든 예술을 잘 안다고 불리는 보살의 해탈을 얻었다.
나는 항시 이 자모를 가지고 부른다. 阿 자를 부를 때에 보살의 위신력으로차별이 없는 경계에 들어간다고 불리는 반야 바라밀 문에 들어간다. 多 자를 부를 때에 가없는 차별문이라고 불리는 반야 바라밀문에 들어간다.”
선지중예동자는 글자 풀이 수행법을 통해 한량없는 지혜의 법문에 들어 간다. 스승상은 이렇게 다양하게 반야에 들어가는 수행법을 잘 아는 것이다.
(46) 賢勝優婆夷
“선남자여! 나는 아무 것에도 의지할 곳 없는 도량이라는 보살도의 해탈을 얻었다. 이미 스스로 열어 다시 사람들에게 설해주며, 삼매법이 다함있고 다함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혜의 성품 눈이 끝없이 출생하여 다함없는 삼매를 얻었다. 또 모든 지혜의 성품 귀가 끝없이 출생하는 삼매이다.……”
현승우바이는 삼매를 얻었는데, 이 삼매의 법문은 헤매임이 없이 해탈에더욱 정진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삼매로 사물의 본성을 환히 아는 지혜의본성이, 눈。귀。코。혀。몸。마음의 6근에서 샘물처럼 솟아나게 하는 발심을 일으켜 준다.스승은 지혜의 본성이 6근에서 솟아 나와야 남을 지도한다할 것이다.
(47) 堅固解脫長者
“선남자여! 나는 집착하는 생각이 없이 청정한 보살의 해탈을 얻었다. 나는 이 해탈을 얻은 이래 모든 부처님 계신 곳에서 쉬임없이 정법을 구하는데 힘 써 왔다. 선남자여! 나는 이와 같은 집착하는 생각이 없이 청정한 해탈을 알 뿐 모든 보살의 두려움없는 大師子吼를 얻는 安住의 광대한 복과지혜의 취함에 대해서는 모른다.”
스승상은 해탈을 확실하게 증득한 것이다. 스승은 스스로 해탈을 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48) 妙月長者
“선남자여! 나는 청정한 지혜의 빛, 곧 淨智光明이라 불리는 보살 해탈법을 증득하였다. 나는 오직 이 지혜의 빛 해탈을 알 뿐이요, 모든 보살과 같은 무량한 해탈 법문을 어떻게 알 것인가? ”
묘월 장자에게서 보이는 스승상은 청정한 지혜의 빛 해탈을 성취한 것이다.
(49) 無勝軍長者
“선남자여! 나는 다함없는 형상이라고 불리는 보살의 해탈을 얻었다. 나는 이 보살 해탈로 한량없는 부처님이 한량없는 덕장을 얻는 것을보았다.”
무승군 장자에게서 보이는 스승상은 다함없는 형상이라는 보살의 해탈을얻는 것이다.
(50) 最寂靜婆羅門
“선남자여! 나는 진실하게 원하는 말이라는 보살의 해탈을 얻었다. 과거,현재, 미래의 보살들이 이 말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까지 이르러 물러남이 없느니라. 이미 물러남도 없고, 현재 물러남도 없고, 앞으로 물러남도없느니라. 나는 이 진실하게 원하는 곳에 머물러 뜻에 따라 짓는 일이 만족하지 않는 것이 없다.”
최적정 바라문에게서 보이는 스승상은 보살 경지에 이르는 수행 차제와 서원, 부처님 경지에 이르도록 물러나거나 중단됨이 없어야 함을 터득한 것이다.
(51) 德生童子 有德童女
“선남자여! 우리는 幻과 같이 머무름이라고 불리는 보살의 해탈을 증득하였다. 이 해탈을 얻은 까닭에 모든 세계가 인연으로 이루었기 때문에 다환으로 머뭄을 본다. 모든 중생은 업 번뇌로 일어났기 때문에 다 환에 머문다.”
幻으로 머문다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러 모든 사물을 살펴 보면, 세상 모든 일이 다 꿈속의 일과 같다고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든다. 악업과 번뇌에 휘말려 가면서 살아가고 있는 중생이란 존재와, 無。無明。愛着 등에서생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물이 모두가 꿈속에서의 일과 같은 것이다.
뒤바뀐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허망하기만 하다. 바른 견해로보면 세상 일 들이 모두 緣起하여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실체가 있는 것이아니어서 마치 꿈과 같은 것이다. 스승은 세상을 이와 같이 여실히 관찰하여 탐욕을 일으키지 말며, 제자에게도 애착하지 말도록 바르게 가르쳐야 할것이다.
(52) 彌勒菩薩
거리낌없는 법을 남김없이 설하여 인도해 주고, 모든 사람을 부처님 지혜의 집에 태어나게 해 주며, 모든 사람을 길러 주시고 교화해 주신다.
선재가 海岸國 大莊嚴城에 들어가니, 생각하는 것이 허공과 같고, 법계에서처럼 거리낌이 없으며, 모든 것이 그림자와 같고, 산울림과 같다. 모든사물이 인연에 의하여 생겨난다는 것을 환히 알 수 있었다. 유와 무의 세계를 떠난 실상의 세계였다. 또한 내가 없다는 것과 아울러 모든 것이 원인에따라 과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때 미륵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선재동자의 가지 가지 공덕을 칭찬하고,한량없는 백천 중생으로 하여금 보리심을 내도록 하고는 선재에게 말하였다.
“착하다. 착하구나! 선남자여! 너는 모든 세간을 요익하게 하였다. 너는모든 중생을 구호하였으며, 너는 모든 불법을 부지런히 구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구나. 선남자여! 너는 좋은 이익을 얻었다. 너는 착하여사람 몸을 얻었다. 너는 수명이 길고, 너는 여래 출현을 잘 만났구나. 너는문수사리 대 선지식을 잘 뵈었고, 네 몸은 훌륭하다. 모든 선근을 윤택하게하여 너는 밝은 법을 밑천으로 가졌구나. 이해하려는 욕심은 다 깨끗하여모든 부처님의 함께 호념하는 바가 되었구나. 이미 착한 벗의 함께 제도하는 바가 되었구나. 왜냐하면 선남자여! 보리심은 종자와 같아 모든 부처님의 법을 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리심은 좋은 밭과 같아 중생의 밝고깨끗한 법을 자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륵보살의 가르침에 의하여 보면 佛道란 문수보살의 無上智慧와보현보살의 道行임을 알 수 있다. 선재 동자가 감격해 울자 문수보살은 멀리 팔을 뻗쳐 꽃다발을 주었다. 동자는 더욱 감격하여 그 화려한 꽃다발을미륵보살께 바쳤다. 동자의 간절한 청에 미륵보살은 오른쪽 손가락으로 허공을 튕겨 毘盧遮那莊嚴藏大樓閣의 문을 열었다. 누각 안은 허공처럼 넓고가지가지로 장엄되어 눈이 부신 정토와 같아 불가사의한 세계였다. 금방울의 미묘한 소리가 흘러나와 즐겁게 해 주고, 사방 벽 거울에서는 여러 부처님과 권속들이 나타나 깨끗한 세계, 그리고 다른 잡된 세계를 비춰 준다.
미륵의 신통력에 이루어진 것을 확신한 선재는 성자가 어디서 오셨느냐고묻자, 미륵보살은 오고 감이 없이 오고, 가고 머뭄이 없이 오며, 머물 곳,매달릴 곳, 사라지지 않고, 나지 않으며, 머물지 않고 옮기지 않으며, 움직이지 않고 일어나지 않으며, 사모함이 없고 집착함이 없으며, 業과 報가 없고, 일어남과 滅함이 없고, 단멸하지 않고 항상하지 않는 곳에서 온다. 모든 보살은 중생을 교화 인도하여 널리 모든 중생을 제도해 주기 위하여 큰자비심의 부처님 나라에서 온다. 고 하였다. 미륵보살은 慈氏라고 한다. 사랑이 한량없이 깊고도 넓어 모든 사람을 부처님 지혜의 집에 태어나게 해주므로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고, 모든 사람을 길러 주시고 교화 해 주므로거룩하신 아버지와 같은 분이며, 또한 보살계를 가르쳐 주는 큰 스승이시고,모든 중생의 마음 병을 고쳐 주는 이름난 의원이기도 하시기 때문이다.
선지식은 미륵보살과 같이 한량없는 사랑을 남김없이 베풀어 교육애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53) 文殊菩薩
선재가 普門國의 蘇摩那城에 이르러 문수보살 뵙기를 바라자 문수사리는멀리서 오른손을 펴 선재동자의 정수리를 만지고 말씀하셨다.
“착하다. 착하다, 선재여! 만약 신근을 떠나면 마음이 용렬하고 근심하고뉘우쳐서 공행을 갖추지 못할 것이다. 부지런한 마음이 물러나 하나의 선근에 마음이 머물러 집착함이 생기고, 적은 공덕에 滿足하게 되어 행원을 일으켜 착하게 되지 못하며, 선지식의 거두어주고 보호하는 것도 되지 못할것이다. 이와 같은 법의 성품과, 이와 같은 이취와, 이와 같은 법문과, 이와 같은 소행과, 이와 같은 경계를 다 알지도, 두루 알지도, 가지 가지 알지도, 근원을 다하여 알지도, 분명하게 알지도, 들어감, 해설함, 분별함,증지함, 획득함을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문수보살은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니 믿음은 공덕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행에 힘쓰라 하시니 바로 보현행이다. 이것은 역시 불도의 요체를밝힌 것으로 믿음에서 출발하여 끝없는 보현행으로 나아가는 것이 보살의길이다. 선지식인 스승은 믿음에 근거하여 보현행원을 완성할 때까지 제자를 가르치고 모든 생명체를 이끌어야 할 것이다. 보현행원을 완성하는 때는,일체 중생을 다 제도하여 불도에 들게 할 때이니, 중생이 끝이 없으므로 행이 다하지 않는다.
(54) 普賢菩薩
선재는 이제까지의 힘들고 한편 보람찬 수행과정을 돌이켜 보았다. 수 많은 선지식들을 만나고 그들의 가르침을 알고, 터득하여, 이제는 청정한 지혜의 눈으로 보살의 경지에 들고 깨달음을 눈 앞에 두게 되었다. 선재가 어진(菩賢)보살의 경계를 생각하자, 보현보살의 이름과 보리에로 향하는 행및 수승한 願의 소리가 들리고, 꿈 속에도 그리는 보현 보살을 보고 싶다고생각하자 마음이 허공과 같이 널리퍼져 일체의 집착을 떠나 맑아지자, 金剛海藏菩提道場의 비로자나여래의 사자좌를 향하여 一切寶藏蓮華座의 위에 앉아 있었다. 그러자 보현을 보기 위한 열 가지의 瑞相과 대 광명이 나타났다.
그때에 보현보살이 많은 보살에 에워 싸여 毘盧遮那如來의 앞에서 大寶蓮華藏獅子座 위에 앉아 있음을 보았다.
보현보살은 과거 무수한 겁에 걸쳐 수행하여 온 내용을 말하였다.
“善男子여, 내가 과거 不可說 不可說 不刹 微塵數 劫에 菩薩行을 行하여一切의 智慧를 구할때, 낱낱 겁 가운데에 보리심을 청정히 하고자 하는 고로 불가설 불가설 불찰 미진수 부처님을 承事하였다. 낱낱 겁 가운데에 일체 智慧와 福德을 갖추기 원하여 불가설 불가설 불찰 미진수 광대한 布施會를 베풀고, 일체 세간을 다 들어 알게 하고, 무릇 구하는 자를 다 만족하게하여 주었다.
저 겁 가운데 한생각 사이라도 瞋心과, 나와 나의 것을 생각하는 마음과,自他의 差別하는 마음과, 보리를 여의는 마음과, 생사 가운데 피곤하고 싫어하는 마음과, 게으른 마음과, 장애하는 마음과, 迷惑하는 마음을 내지않고, 오직 위없고 무너저 그칠 수 없는 모든 지혜의 도를 큰 보리심에 모았느니라.
어떤 중생이 내 이름을 들으면 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다시 퇴전하지아니하리라.…… 만일 어떤 중생이 나의 청정한 세계를 보고 들으면 반드시이 淸淨한 세계에 날 것이며, 만일 어떤 중생이 나의 청정한 몸을 보고 들으면 반드시 내 청정한 몸 가운데에 나게 되리라. 선남자야, 네가 마땅히나의 淸淨한 몸을 관하라.”
이 때 선재동자가 보현보살의 몸을 보았다. 얼굴과 팔 다리와 낱낱 털구멍가운데에 다 불가설 불가설 부처님 세계 바다가 있고, 낱낱 세계 바다에 다부처님계시어 세상에 나오시며, 큰 보살 무리에 함께 둘러싸인 바이며, 또보니 모든 세계 바다가 가지 가지로 건립되며, 가지 가지 모양과, 가지 가지 장엄과, 가지 가지 큰 산이 두루 둘러 싸임과, 가지 가지 색구름이 허공에 가득히 덮힘과, 가지 가지 부처님이 일어나 가지 가지 법을 연설함 등이,각각 같지 아니하며, 또 보니 보현 보살이 낱낱 세계 바다 가운데서 일체불찰 미진수 부처님 화신 구름을 내어, 시방 일체 세계에 두루퍼져 중생을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행하게 하였다.
때에 선재동자가 자신을 보니, 보현의 몸안에 있어, 시방 일체 모든 세계가운데서 중생 교화하고, 불찰 미진수의 모든 선지식에 가까이 함을 보았다.
선재의 선근과 지혜 광명은 보현 보살의 백천억분 내지 산수 비유로도 능히미치지 못하였다.
이리하여 선재는 법계에 들어 불가사의 해탈 자재하게 된 것이다. 선지식인 스승은 보현의 광대행을 성취하여 부처님과 같이 되어야 할 것이니, 비로소 三界大導師요 四生慈父이시며 是我本師 석가모니불의 뒤를 이어 人天의 큰 스승이 될 것이다.
53선지식 중에는 보살。비구。의원。장자。신녀。선인。바라문。동녀。동자。왕。외도。해사。비구니。성녀。천。신。부인 등이 있어 사회의 각계각층을 망라 한다. 그 중에서 여신과 여인이 20명이나 된다. 이것은 진리의수행자가 어느 특정 직업에 한정되지 않음을 보여주며 성의 차별이 없음을보여 준다. 지금도 교직에는 여성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으며, 점차 직업에있어서 성의 구별이 없어져 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어떤 직업을 갖든지 남녀 노소 가릴 것없이 모두 훌륭하게 보살도를 닦을 수 있으며, 다른사람에게 보살도를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 53선지식은 菩薩, 比丘, 比丘尼, 長者, 優婆夷, 童子 童女, 神, 居士,王, 師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선지식을 통해 교사상을 살펴보았고, 다음은 선재동자로 부터 학생상을 간단히 살펴보자.
2. 善財童子와 弟子
선재동자는 태어 날때 복이 많게 때어나서 선재라 하였다. 그가 출생할 때재보가 집안에 가득한 것이다.
선재는 처음 문수 보살의 가르침을 듣고 발심하여 법계에 들기 까지 수 많은 어려움을 당하여 다 훌륭히 극복하였다. 수 차례 구도를 포기할까 하고망설였지만 끝내 이겨내고 선지식들의 가르침을 잘 따랐던 것이다. 여기서우리는 진리를 구하는 학생들은 굽히지 않는 굳은 정신으로 매진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스승의 가르침에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믿고, 몸을 돌보지않아야 함을 보았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구도심은 불구덩이에 자신의 몸을 던져야 하는 난관에 봉착하는 것도 보았다. 다음 선지식을 만나기 위해 12년간을 찾아 헤메는 것도 보았다. 아무도 가지 않는무섭고 쓸쓸한 길을 참고 가야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불타는 구도심은 게으름과 두려움과 쓸쓸함도 잘 이겨내서, 항상 훌륭한 선지식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또 선지식의 가르침에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믿음이 없으면 선지식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음은 현실적으로도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수행 방법에 있어서 선종과 교종이 차이를 보이며, 같은 선종이라도 묵조와 간화가 다르며, 염불과 다라니 간경 등을 가볍게 여기고, 계율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화엄에서는 10바라밀을 구비하여 내세우고 있다. 어느 하나라도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재는 각 선지식 마다 보여주는 보살행에 빠뜨리지 않고 터득하여 구경에 보현행원에 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생, 구도자는 선지식의 가르침에 그대로 믿고 따르며 하나도소홀히 함이 없이 간절한 발보리심을 지속하여야 할 것이다.
선지식에 갈앙심을 내며, 선지식으로 그 마음을 훈습하고, 선지식에 뜻과욕심이 견고하며, 방편으로 모든 선지식 보기를 구하는데 마음이 물러서지않는다.
한편 선재는 만나게 될 선지식을 생각하고 항상 즐거운 마음을 내고 용기를 얻으며,만나면 합장하여 공경하고, ‘자신이 보리심을 일으켰으나 어떻게 보살도를 배워야하며, 어떻게 보살행을 수행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법을 청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도 승가에서 법사에게법을 청할 때는 삼배를 올려 공경심을 나타내고, 청법게를 하는 전통이 존속되고 있어 잘 알 수 있다. 이것을 통해 법을 배우는 제자들은 스승을 공경하고 정성을 다해서 모셔야 함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스승의 날까지있고, 누구든지 옛 스승이나 지금 모시고 있는 스승에게 공경심과 정성을다하는 것이다. 절에 가서 불전에 참배를 드리는 것이나, 공양을 올리는 것이나, 스님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모두 이러한 정신의 표출이라 보여진다. 제자는 스승과 스승의 가르침을 소중히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만큼 스승은 제자를 사랑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다 가르쳐 주며, 제자의 인생을 바른 길로 이끌어, 자아의 완성과 인격도야를 이루고, 개성을 발휘하여 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열성을 다 할 것이다.
3. 求道 行脚과 人間主義 敎育
지금까지 선재동자의 구법 행각으로 부터 바람직한 학생상을 찾아 보았다.
이제는 이러한 구도 행각의 의미 및 필요성을 교육철학적인 안목으로 살펴보고, 특히 현대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점과 결부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선재동자의 구법행각은 한마디로 깨달음의 과정을 보살도를 통해 보여준것이다. 그래서 먼저 깨달음의 의미를 교육철학적인 안목으로 살펴 보고자한다.
쉬프랑거는 覺醒 敎育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김정환저, 교육철학에;
쉬프랑거는 교육을 넓은 의미의 發達의 援助, 의미가 풍요한 문화의 계승,개개인의 정신적 삶의 각성이란 세 단층으로 나눈다. 그에 의하면 가장 중요하고 또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셋째 단층인 覺醒의 교육이다. 여기에서말하는 각성이란 넓은 의미로는 良心的 覺醒을 말하는데 이를 구체적으로풀어 보면 풍요한 정신 세계를 즐길 수 있는 內面 世界의 각성, 각 개인이귀한 개성과 사명을 지님을 깨닫는 人格的 自我의 각성, 모든 사람이 이웃과 역사에 대해 책임을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文化的 責任의 각성… 등이다.
쉬프랑거의 인간성 지향의 교육이란 바로 이 세째 단층의 교육에 힘써 사람됨을 일깨워 주자(Erweckung) 는 주장이다.
고 하였다. 곧 각성의 교육이 인간성 지향의 교육이라는 것인데, 양심적 각성을 말하며, 더 풀이하여, 내면 세계의 각성, 인격적 자아의 각성, 문화적책임의 각성 이라 하였다.
이것을 깨달음의 교육과 연결해 보면, 內面 世界의 覺醒은; 見性에 해당하고, 人格的 自我의 覺醒은; 發菩提心과 成佛에 해당하고, 文化的 責任의 覺醒은; 普賢 菩薩道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정확한 대비는 아니겠으나, 良心的 覺醒이라는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自覺 覺他의 圓覺에 견줄 수있다 하겠다.
우리의 양심은 항상 깨끗하다. 깨끗한 양심이 그대로 행동으로 나올 때는善行이 되고, 깨끗한 양심이 더럽혀져 나올때는 惡行이 된다. 무엇이 더럽히는가? 우리들의 欲心이다. 欲心은 좋은 대상에는 貪慾心으로, 싫은 대상에는 瞋心으로 나타난다. 탐욕심과 진심은 痴心에 기인하니, 치심은 緣起法을 바로 보지 못함에서 생긴다. 연기하여 고정된 實體가 없는데도 나를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나가 있기 때문에 나의 所有를 찾고, 나의 소유욕은 끝이 없어 온 우주를 다 소유해야 만족하는데, 도저히 그렇게는 되지 않는다. 그래서 苦가 발생하는 것이다. 우주는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는집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크나 큰 생명체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어도 모든 생명체들이 평등하게 우주를 보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나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뿐 사람→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보면 어떨까? 그러므로 세상을 무아 무상으로 바로 볼때, 우주는 하나의 법계로서, 여래 출현이요, 여래성이 연기하는, 중중 무진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곧우주 모든것이 그대로 부처 아님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비로자나 대일 여래의 법신은 석가 세존이 연기법을 깨닫기 전 부터 있어 왔다.
그러므로 이러한 見性 成佛 및 菩薩行은 自覺(見性), 覺他(普賢 菩薩行)로서, 자각과 각타가 원만해 진 圓覺(自他一時成佛道)으로 끝나나, 생명체가끝이 없으므로, 모든 생명체들을 제도하여 성불에 이르게 하는 것은 다함이없다. 이것이 大行 普賢 菩薩道 인 것이다. 이것이 곧 풍성한 정신적 세계를 즐기는 내면적 각성이요, 개인이 귀한 개성과 사명을 지님을 자각하는인격적 각성이요, 모든 사람이 이웃과 역사에 대해 책임을 나누어 가져야한다는 문화적 각성이다. 보현 보살도는 그 내용이 4무량심에 의한 보시요,계율을 지킴이요, 참고, 정진하며, 선정에 들고, 지혜를 닦아, 그것을 생명체에 회향하니, 생명체를 깨닫게 하려는 원과, 깨닫게 하려는 힘과, 깨닫게하려는 방편과, 부처님의 지혜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인 것으로 보아서 분명하다 하겠다. 곧 보살도는 진리를 구하고, 인격을 갖추며, 모두를 위하는지혜와 자비행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살도 수행은 그 복덕이 무량하니, 모든 생명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부처님은 그 공덕이 우주를 가득 채우니 불가설 불가설 불가설전 불가설인 것이다. 입법계품 마지막 부분에 보현보살의 게송이 이렇게 불공덕을 설하고 있다.
세계의 티끌을 마음으로 생각하여 세어 알 수 있고, 큰 바닷물을 다 마실 수 있고, 허공의 무게를 달 수 있고 바람을 붙잡을 수 있어도, 부처님의 공덕은 다 설할 수 없다.
다음은 인간주의 심리학에서 自我의 開放을 주장하고 있는 것을 살펴 보자.
로저스의 인간주의 심리학은 행동주의 심리학, 정신 분석학이란 2대 심리학 밖의 “제3 심리학”이다. 행동주의 심리학은 인간을 외부의 자극에 의해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피동적 기제로 보며, 정신 분석학은 인간을 생리적인 힘과 생장사 안에서 겪었던 갈등에 의한 희생물로 보는데 비해 이 인간주의 심리학은 인간을 그 이상의 존엄한 것으로 본다. 즉 환경과 과거의 특징을 뛰어 넘을 수 있고, 또 뛰어 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심리학이 각각 인간의 비자유성과 비극성을 강조하는데 비해 제3 심리학은 인간의 자유와 희망을 부각시키려 한다. 그리하여 인간이 환경을 재구성해 나갈 수 있는 결정요인임을 강조하며, 또 우리에게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더관심을 갖게 하고, 우리 자신이 “진실한 삶”(authentic life)을 자기 책임하에 개척해 나갈 것을 촉구한다. 이 인간주의 심리학에서는, 교육에서가장 중요한 것을 교사와 학생과의 인간적인 관계의 정립에 의한 자아의 개방이라 보는데, 이것은 교사의 온정성, 공감성, 진실성에서 비롯된다.
곧 제3 심리학인 인간주의 심리학은 인간을 자극 반응에의한 피동적 기제나, 생리적인 힘과 생장사 안의 갈등에 의한 희생물로만 보지않고, 존엄한존재로 보아, 환경이나 과거의 특징을 능히 뛰어 넘으며, 자유와 희망을 부각하여, 인간이 환경을 재구성해 나가는 결정요인이며, 현재와 미래에 더관심을 가져 진실한 삶을 자기 책임하에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하며, 교사의 온정。공감。진실성에서 학생의 자아 개방이 이루어 지도록 인간관계를정립해야 한다고 하였다. 먼저 인간을 존엄한 존재로 보는 것은 동양의 사상, 그 중에서도 一切衆生悉有佛性(모든 생명체는 깨달음의 성품을 가지고있다.)을 내거는 불교, 특히 우주 모든것을 부처님으로 보는 화엄의 性起思想과 法界緣起 思想에서 근본을 찾을 수 있으며, 이러한 불성을 개발하는菩薩道야말로 人間主義 心理學의 最高峰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가장 존엄한 인간은 능히 환경을 인간에 맞게 바꾸니, 미륵보살의 大莊嚴城과, 문수보살의 普門城, 마야부인의 摩尼寶獅子座, 대원정진력구호일체중생주야신의普照 摩尼王 藏子座, 보구중생묘덕주야신의 離垢圓滿 三昧, 관자재보살의金剛寶座, 사자빈신 비구니의 日光園, 법보계장자의 10층 저택, 보현보살의寶蓮華獅子座, 金剛海藏菩提道場의 비로자나如來의 獅子座 등이 이것이다.
다음 “과거보다 현재나 미래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갖게하고” 에서, 불교는 과거를 지나가버렸기 때문에 없다고 보고, 미래는 오지 않았기 때문에없다고 보아, 오직 현재 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 이순간에 눈 떠 있을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법성게에서도 無量遠劫卽一念(한량없는 긴 시간이오직 한 순간이다.)이라 하여 먼 미래 조차 지금의 한 생각에 넣어 생각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또 九歲十歲互相卽(구세와 십세가 서로 일체화하니)이라 하여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고, 다시 과거를 과거 현재 미래로나누어, 이렇게 현재와 미래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니, 9세가 되고, 이구세는 모두 한 순간에 포섭되므로, 10세가 되니 이 9세와 10세는 일체화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은 일념에 있으므로, 역시 지금을 강력히 깨달음의 순간으로 삼으니, 念자는 이제 今자와 마음 心자의 합성으로, 지금 이마음이 念이 되는 것이고, 지금 이 마음이 깨달음으로 향할때, 이것이 念佛이요, 지금 이 마음이 진리를 향할 때, 이것이 念法이요, 지금 이 마음이보살도행에 가 있을때, 이것이 念僧이다. 곧 이것이 禮佛인 것이다.
또 “진실한 삶을 자기의 책임 아래 개척해 나가는 것을 촉구한다.”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發菩提心이요, 行菩薩道 인 것이다. 진실한 삶은 眞理에바탕을 둔 삶이고, 진리에 바탕을 둔 삶은 無上正等正覺을 성취한 부처님과,무상정등정각을 구하기 위해 마음을 내는 菩薩만이 가능하다. 보살이란 보리 살타 즉, 깨달음을 얻으려는 모든 생명체이니 불퇴전의 보살은 성불을기약받는 것이고, 비록 초발심하였다 하더라도 성정각은 멀지않았으니, 시작이 반인 셈이요, 무량원겁이 곧 한 순간인 까닭에, 초발심한 그 순간이그대로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므로, 발보리심은 그대로 정각인 것이다. 그러므로 법성게에 初發心時便正覺(처음 발심한 때가 곧 정각이니) 이라 하였다.
이러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무상정등정각。정각)를 자신의 책임 아래 개척해 나가는 것을 촉구 한다고 하는 것이 인간주의 심리학이므로, 인간주의심리학은 바로 불교 심리학이라 할 수 있다. 선재 동자는 문수 보살의 가르침을 얻어 그대로 발심하고 문수 보살의 가르침에 의하여 선지식을 찾아 나서니,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책임 아래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고독과싸우고, 험난한 길에서 자신과 싸우며,게으름과 싸우고, 이제는 만족하지않나 하는 자신의 자만심과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선지식의 가르침이 허황한것 같아 믿음을 일으키지 못하는 의심과 싸운다. 53선지식과 보살도를 만나고, 이를 터득하여 그 선지식과 같은 경지에 이르며, 드디어 보현 보살의몸을 보고, 법계에 들어 보현 보살도를 행하여 마침내 정각을 이룬다.
그래서 인간주의 심리학에서는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교사와 학생과의 인간적인 관계의 정립에 의한 자아의 개방이다.” 고 하였는데,이것은잘 아는 바와 같이 발심한 선재와 53선지식 간의 보리를 향한 일념에서 주고 받는 慈悲心。恭敬心과 믿음이다. 여기서 그 믿음이 성취되어 공덕을 이루니, 선지식마다 지니고 있는 수행 방편인 삼매나, 염불이나, 다라니나,해탈문, 법문 등이 이것이다.
또 교사의 溫情性, 共感性, 眞實性은 선재 동자의 발보리심을 극구 칭찬한문수 보살 등에서 볼 수 있으니; “선재동자여, 그대가 그처럼 진실한 구법의 마음을 일으킨 것은 비할 데없이 거룩한 일이다.” 라든지, “착하고 착한지라 선남자야, 만일 선근을 여의었으면 마음이 하열하고 근심하고 뉘우칠 것이며, 공행이 갖추지 못하여 정근을 물리칠 것이며, 한 선근이 주책을내며, 조그마한 공덕에 문득 족함을 삼아 능히 선교의 행원을 밝히지못하여선지식의 섭포한 바가 되지 못할 것이며,……”에서 溫情性과 共感性, 眞實性을 느낄 수 있다. 또 관세음 보살의; “착하도다 선재여, 잘도 찾아왔구나.” 에서 溫情性을, “동자는 대승의 마음을 일으켜 보현보살의 대행 묘법을 이어 받아 부처님의 삼매 광명을 몸에 지니고, 부처님 지혜의 광명 속에 머물러 있었느니라.” 에서 共感性을 느끼며, 미륵보살의; “너희들은이 선재동자를 사슴과 같이 생각하여라. 이 동자는 진리를 터득하기 위해조금도 느즈러짐이 없이 용맹정진하여 많은 선지식을 두루 찾아 다닌 끝에이제 여기까지 온 것이다.……이 동자처럼 대승의 가르침을 받들고자 한 발심도 매우 희귀하고 갸륵한 일이거니와,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냄으로써 반드시 큰 깨달음을 열고, 모든 중생을 제도해주고자 꾸준히 정진하여 여기까지 이른 것은 참으로 기특하고 거룩한 일이다.” 라고 한 칭찬의 말에서 共感性, 眞實性을 느끼며, 선재동자가 감격에겨워 우는 모습을 머나먼 곳에서 보게된 문수 보살 재빨리 팔을 뻗쳐, 멀리멀리 떨어져 있는 동자에게 꽃다발을 준 것에서 한없는 溫情性과, 共感性을느낀다. 또 수호일체성주야신의; “동자여, 자세히 들으라. 모든중생을 구원해 주고 지켜 주고자하는 마음은 한량없이 거룩한 일이다. 장하도다, 동자는 능히 그런 마음을 가지고 가르침을 청하는구나. 동자여, 나는 부사의하고 자유자재하신 부처님의 심심묘덕 자재음성의 법문을 깨달아 알고 있다.
이에 나는 마음에 아무런 거침이 없고, 모든 일에서 선근의 마음을 꾸준히기르고 있다.” 에서 共感性과 溫情性과 眞實性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다음은 자유주의 교육 방법을 살피고 법계 안내를 통한 교육의 의미를 새겨 보자.
4. 法界案內와 敎育 方法
우리 나라의 학교 수업은 교사 중심의 주입식 교육 방법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교육 방법은 교육의 본래적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다. 브렌다 코헨은교육 방법의 철학 에서 자유주의적 교육 방법을 가장 인간주의에 입각한 교육의 본래 목적에 부합되는 교육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교육 방법을 도구주의적 교육방법과, 학습자 중심의 교육 방법, 그리고 자유주의적교육 방법으로 나누어 논하고 있다.
교육 방법은 크게 세가지 범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실제성 유용성 혹은 도구주의적 가정에 기초를 둔 것이고, 둘째는 근본적으로 개인주의적인 것들이고, 그리고 셋째는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출발하여, 교수와 교육,교육과 주입을 구분하고, 각각의 경우에 있어서 비자유적 절차보다는 자유주의적 절차를 선호하는 것들이다.……도구주의적 방법은 공리주의적 교육목표와 관련하여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보면 기본기능의 훈련, 시민성의 훈련, 직업 훈련 등이 그러한 목표에 포함된다.
개인주의적 목적은 교육에 있어서의 진보주의와 특별한 관계를 갖는다. 여기서, “교육의 목적은 개인의 필요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말하며, 개인적필요는 자아 발달이라는 말로서 총칭된다. 삶에 적응하는 것을 강조할 수록,지식 자체의 가치는 그만큼 낮아진다. 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는 이것을 치료적 교육관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위와 관련된 기술이나 접근방법은 포괄적으로 학습자 중심이라고 말하며, 일반적으로 발견법, 자유놀이, 자기 지도와 같은 것이 포함된다.
끝으로, 자유주의적 접근은 교육을 더 넓게 본다. 도구주의적 접근이 특정한 현대 사회의 필요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라면, 자유주의적 교육관은 시간과 공간의 경계선을 뛰어넘고, 다른 사회들까지 포괄함으로써, 인류 전체의문화적 전통을 중시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피터스(R.S. Peters)는, “교육은 최소한 成就를 가리키는 말이지 過程만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요, 또 교육은 내재적 이유를 갖는 것이며 외재적 이유를 갖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도구주의적 입장에서는 교육을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간주한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자유주의적 입장은 교육 자체를 목적으로 간주한다.
道具主義的 방식은 敎師 위주의 프로그램식 교육으로 인간의 무한한 독창성을 페쇄시키고 있으므로 인간 자체를 경시하기 쉽고, 個人主義的 방식은學習者 위주의 교육으로, 탐구 발견학습이 주로 이루어진다.“傳統的 학교가 말을 잘 듣지 않는 학생에게 행동이나 지식을 注入시키는 것을 목표로삼지만 進步主義 학교에서는 학생의 내부에 이미 잠재적으로 들어있는 가치있는 것을 發達시켜주려고 노력한다.” 또 自我 充足과 自律性 增進을통하여 인간의 자유로운 發達을 강조한다. 한편 自由主義的 방식은 “본질적으로 個人主義的이고 人間主義的이며, 그러면서도 文化의 傳受라는 과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는 가운데 자유주의적 방법은 敎育의 內容, 즉 文化의 知識 측면과 道德 측면의 가치를 암암리에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따르면, 자유주의적 관점에서만 우리는 교육을 어떤다른 善의 手段으로 보지 않고, 敎育 그 自體를 目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벌써 불교는 훌륭한 문화의 체계를 갖고 있고, 이를 가장 인간주의적인 방법으로 전수하려고 하기 때문에 자유주의적 교육 방법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인간주의적 방법과 자유주의적 방법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자유주의적, 인간주의적 전통에 속하는 많은 학자들은 교수, 훈련, 교육을서로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훈련이나 교수는 가치중립적, 기술적 용어로 파악되었다.……훈련이나 교수는 이들이 암시하는 좁은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교육이라고 말할수 없다는 것이다. “ 넓은 시야나 안목이 바로 교육 개념의 본질적 특성이다.”(피터스). 피터스의 교육관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아이디어는 입문(initiation)이다. 그에 따르면(1965,p.102)
“그들(곧, 아동)은 야만인의 위치에서 출발한다. 우리의 과제는 그들을문명의 성 안으로 인도하여, 그들이 그 곳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볼 수 있게되는 것들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여기서 敎育이라고 하는 개념이 바로 入門이며, 문명의 성안으로의 인도임을 보건데, 이것은 화엄경의 마지막 품의 명칭을 연상하게 한다. 곧 入法界라는 의미가 법계로에의 안내, 또는 법계에 들어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역할을 담당하는 교사는 문명의 성안으로 아동들을 이끌어들이는 일은 문명의 가치와 신념에 부합되지 않는 방법을 가지고서는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는 것을 알고 스스로가 문명의 신념에 입각해 아동들을 그 방법에의해 이끌어야 한다.
그래서 53선지식들은 모두 자신의 신념에 찬 구도의 길을 보여주고 있는것이다. 곧 자유주의적인 방법으로 교육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허스트는 자유교육이 충족하고 있어야할 기준을 3가지 들고 있다. 곧;
첫째, 자유 교육은 절대적이고 불변적인 의미의 진리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바꾸어 말해서 反상대주의다.
둘째, 자유 교육은 내재적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공리주의적인 이유나 직업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지적 측면의 충족으로서, 즉 그것 자체로서 가치를 부여 받는 것이다.
셋째, 자유 교육은 사회적 그리고 윤리적 함의를 가진다(Hirst, 1965, pp.
114∼115를 참조).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불교는 절대적이고 불변적인 진리를 깨달으신 부처님의 가르침, 곧 법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가장 좋은 교육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것도 사회적인 함의에 도달해야 한다. 부처님 당시에는 부처님이직접 이러한 함의에 이를 수 있도록 지도하셨다. 항시 진리에 서서 법을 설하시고 외도들을 바른길로 이끌어, 다수의 사람들이 전통적인 부족의 문화에 맞는 불교를 생명으로 여기고 따르며 부처님과 승단을 위해 보시를 아끼지 않고 법을 청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다시 이러한 함의에 도달해야 할 시기에 와 있다. 이 함의는 합리적 토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합리적 토론에 의한 교수의 모습은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교수는 가르치는 교과가 무엇이건간에 인간의 정신에 작용한다. 교사는 설명할 준비를 갖춘다. 즉 학생들이 이유를 물을 권리를, 그리고 그 이유를따지는 일을 함에 있어서 학생들이 판단력을 행사할 권리를 인정한다. 이러한 표준적 의미의 교수는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토론 소속으로 학생들을 입문시키는 일이다.
여기서 합리성이란 원리와 목적을 파악하고, 공적 토론 속에서 제기할 수있는 이유를 토대로 삼아, 그것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능력 (셰플러 I.
Scheffler) 으로 정의되고 있다. 이 합리성은 그 자체가 價値이며, 합리적 토론이라는 이상은 자유주의적 방법의 핵심이다.
이러한 합리성의 이상은 公正性을 받아 들이지 않을 수 없고, 眞理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그래서 자유주의 교육은 사람이 선택한대로 생각하는 것이진리라는 상대주의적 견해에 반대하고, 권위와 도그마를 거부하며, 인간이도달한 진리는 허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여, 보편적으로 다듬어진지식의 세계를 뛰어 넘어서, 硏究하고 發見하며 論爭하는 자유로운 學問 活動으로 진입한다.
한편 이러한 知的 理想과 함께, 社會的 理想과 道德的 理想을 지지하는 것이다. 곧 관용。공정성。인간존중。타인의 이익고려。타인에 대한 공감。세심한 관심 등의 이념을 윤리적 이상으로 세우고 있다.
또다른 實踐的 원리는 다양한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制度的 장치가필요한데 이것은 地位의 平等을 의미하는 社會的 平等이다.
그러므로 교사의 일방적 주입에 의한 교육으로는 합리성에 바탕을 둔 진리추구를 어렵게 하고, 결국 선택에 따른 편견으로 다른 사람과 대립될 수 밖에 없으며 사회적 함의는 이루어 지지않는다. 그래서 항시 종교적인 갈등이남게되는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어떤 이념에 사로잡힘이 없이 공정한 바탕에서 토론을 하여야한다는 것이다. 곧 진리를 추구하는 合理的 討論만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는 말이다.
입법계품은 선재 동자와 선지식간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보살도를 찾아가는 것이다. 물론 선재 동자는 배우는 입장이고 선지식은 가르치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지식들도 자신이 얻은 보살도에 만족하지 않으며, 더나은 선지식의 보살도가 있음을 선재 동자에게 일러주는 것이다. 그리고는그 선지식에게 가서 배우도록 권하고 있다. 이것은 선지식 들이 자신 만의도그마에 빠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말하자면 더 나은 진리를향해 열려 있다는 것이다. 문수 보살은 조그만한 공덕에 머물지 말도록 신신 당부하고 있다. 곧;
“착하다. 착하다, 선재여! 만약 신근을 떠나면 마음이 용렬하고 근심하고뉘우쳐서 功行을 갖추지 못할 것이다. 부지런한 마음이 물러나 하나의 선근에 마음이 머무러 집착함이 생기고,적은 공덕에 만족하게 되어 행원을 일으켜 착하게 되지 못하며, 선지식의 거두어주고 보호하는 것도 되지 못할것이다. 이와 같은 법의 성품과, 이와 같은 理趣와, 이와 같은 법문과, 이와 같은 소행과, 이와 같은 경계를 다 알지 도, 두루 알지도, 가지 가지 알지도, 근원을 다하여 알지도, 분명하게 알지도, 들어감, 해설함, 분별함,증지함, 획득함을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한결 같이 선지식들은 진지한 자세로 보살도를 닦고 있는 점이 모든 사람들의 스승이 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며, 남에 대한 충분한배려와 공정성과 인간을 향한 큰 사랑이 한없이 나오는 문이 되는 것이다.
문수 보살이 우리 앞에 있다고 하면 우리와 끝없는 대화를 통해 법계에 들어가도록 할 것이 틀림없다. 마구잡이로 형식과 권위를 앞세운 일방적 설교로 정신없이 따라 오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선지식들은 높은 자리에서 교화에만 힘쓰는 위대한 사람만이 아니라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여러 가지 직업인들도 많았다. 이것은 보살도가 지극하게 보이는 곳에 외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 있음을 보여 준다. 이에 맞추어 교육에서도 학문의 소중함과 도덕의 귀중함을 말할 뿐만 아니라 勞作의 중요성을 말하는 勞作敎育論도 있다.
켈센쉬타이너는 페스탈로치의 교육방법이론 중의 하나인 “일하면서 배우며, 배우면서 일한다.” 는 원리를 勞作敎育論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여기서 知的敎科와 實技敎科 사이에 있는 장벽을 헐고 知的敎科의 내용은 勞作을 통해 습득시키고, 實技敎科의 내용은 理論的 배경을 통해 심화시키고자하였다. 노작을 통해 自主的, 創意的, 精神的 自己活動을 환기시키며, 勤勉性, 忍耐, 注意力, 奉仕精神, 勤勞愛 등을 체험시키고, 학교에서 분리되기쉬운 人格陶冶, 公民陶冶, 職業陶冶를 하나로 통일하고자 하였다. 陶冶란心身을 갈고 닦아서 기른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菩薩 修行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53善知識 들은 다양한 계층에서 여러가지 역할을 담당하고있다. 비구, 비구니, 장자, 우바이, 동자, 동녀, 선인, 왕, 해사, 거사, 천,신, 보살 등, 이들은 찾아오는 선재에게 한결 같이 보살도를 보여주고 스스로 습득하고 싶은 생각이 나도록 하고 있다. 결국 선재동자는 다음 선지식을 찾아가는 동안 충분히 생각하고, 터득하며, 다음 선지식과 그 가르침을빨리 배우고 싶어서 걸음을 재촉하는 것이다.
이때 선재동자가 선지식의 가르침을 사유 관찰해보니 큰 바다에 大雲雨를받는 것 같아 싫어하거나 만족함이 없었다. 선지식의 가르침은 봄볕에 일체의 착한법 뿌리의 싹이 자라남과 같았다. 선지식의 가르침은 보름달이 비치는 곳 마다 다 淸凉하게 하는 것 같았다. 선지식의 가르침은 여름에 설산이일체 모든 짐승의 뜨거움과 갈증을 없앨 수 있는 것과 같았다. 선지식의 가르침은 꽃 연못에 햇볕이 일체의 선심연꽃을 피게 할 수 있음과 같았다.
하는데서 충분히 알 수 있다. 한편 관자재 보살은 선재 동자의 어려운 구도행각을 덜어주기 위해 자비심으로 선재 동자가 멀리 가지 않고도 쉽게 정취보살의 처소로 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또普救衆生妙德主夜神이 양미간에서 智燈普照淸淨幢이라는 빛을 놓자 빛이 선재동자의 몸과 마음에 가득차 오르면서, 동자는 의심이 끊어지고 깨달음을 성취하는 究竟淸淨輪三昧를성취하였다. 그러므로 선지식들은 자신의 專門 보살도를 통해 菩提의 문을열어 주는 勞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니일의 써머힐은 교육에서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여 어린이의 삶과 공부를즐겁게 해주고, 창조적 생긍정적 호의적 인간을 키우자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에서의 자유와 즐거움과 호의는 53선지식의 각자 개성있는 도량에서 찾을 수 있다. 선재 동자는 즐거운 마음으로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들고자신의 뜻에 따라 구도의 길을 자유스럽게 가고 있다. 이것은 자유주의 교육의 체계화와 일반화를 위한 좋은 시사가 될 것이다. 교육 환경은 자유주의적인 교육을 위하여, 선지식인 스승을 중심으로 짜여져야 한다. 실제로각 사찰의 조실 및 강사 스님들은 선지식의 자리에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우리 학교 교육도 건물교육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환경을 개방하여 스승을찾아 각지 각곳을 탐방하면서 배우는 제도로 바꾸어야 한다고 본다. 선재의구도심은 결국 보현에까지 이어지고 깨달음을 성취하여 법계에 들어 한량없는 생명체들을 깨닫게 해주는 것을 보았다. 이 사회에도 훌륭한 스승과 학자와 인격자들이 각 직업 각계 각층에 충분히 있다. 그래서 이들을 선지식으로 하여 교육의 도량을 꾸미도록 국가에서 지원하고 학생들에게는 전문가인 스승으로 부터 그 과정을 이수하여 다음 단계로 계속 나아가게 하여 결국 덕。체。지를 겸비한 훌륭한 인격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일방적인 국민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등의 제도를 합리적인 토론에 근거한 자유주의적인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풍부한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職業이 人生을 위한 준비인가? 人生 그 자체인가? 스스로 반문 하여 보아야 한다. 인생을 위한 準備라고 본다면, 교육은 인생을 위한 준비밖에는 되지않는다. 그러나 인생 그 自體라고 본다면, 교육은 삶 그 자체인것이다. 직업이 삶 자체라면, 직업을 위한 교육은 지식과 기술을 통해서 인격을 도야하여야 한다. 지식과 기술을 통한 인격의 도야가 바로 지혜를 얻는 일이다. 바꾸어 말하면, 지혜는 지식과 기술을 통한 인격의 도야에서 얻어지는 것이고, 인격의 도야는 지식과 기술의 전수를 통한 지혜의 터득에서이루어 지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선재 동자의 53 선지식 역참에서 들어 나고 있다. 선지식들은 직업 자체에서 지혜를 터득하여 인생을 즐겁고 참되게살아가는 것이다. 지혜를 터득하였으므로 慈悲喜捨(상대에 대한 한량없는친근 공경심 온정, 상대에 대한 한량없는 연민 발고심 동정, 상대에 대한한량없는 기쁨 축하심 찬양, 상대에 대한 한량없는 양보 희생심 봉사)의 4無量心이 끝없이 나와, “나”와 “너”의 구별이 없어지고, 하나가 되어,平和가 실현되는 것이다.
結 語
지금까지 논의한 것을 각 장별로 요약해 보고 끝맺음을 해보자. 먼저 제Ⅰ장 불교와 교육의 요약은 다음과 같다.
우리 나라의 교육 목적은 좋으나, 현실적으로 학교교육은 입시를 위한 과도 경쟁으로,지식과 기술 전수에 급급하고 있어, 인간성의 본래 모습인 덕성, 지성, 미성의 조화로운 인간교육이 잘되지 않고 있다. 교육은 사회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격 도야라는 보다 중요한 기능이 있는 것이다. 인격도야는 조화로운 인간성을 갖춘 스승으로 부터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아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스승을 우리는 인류의 위대한 성인들로부터 찾아 볼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석가모니 부처님은 가장 훌륭한 스승이요 선각자셨다. 석가모니부처님의 깨달음은 以心傳心으로내려오고 있으며, 한편 깨달음의 내용을 경전으로 편찬하여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화엄경은 깨달음의 경지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화엄경에서 성기와 법계연기 그리고 보살도를 통해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화엄경 사상을 통해 부처님의 깨달음을 들어내고, 이를 교육 활동에 적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화엄경은 불멸 후 재가신도들이 부처님을 그리워하여 부처님의 깨달음을구하고, 깨달음을 얻으려는 부처님의 본생담에서, 열심히 도를 구하는 본생보살의 보살행에 관심이 집중되며, 발심하고 수도하여 드디어 어려움을 이겨내고 불퇴전에 올라 부처와 같이 된다는, 십지경이 출현하고, 부처님의경계와, 보리와, 수명과, 음성과, 삼매와, 일체 뛰어난 부처님의 힘과 공덕을 정리하고, 이러한 깨달음을 얻기위한 선재동자의 발심과 보살행을 보여준 입법계품 등이 종합되어 화엄대경을 이루게 된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열반에 드셨으나,부처님이 깨닫기 전부터 있어온 법은 남아 있으니, 이것이법신이요, 허공에 광명이 충만한 것으로 비유된 비로자나 대일여래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이 비로자나 광명으로 빛나는 정각을 성취하셨으니, 화엄경의 세주묘엄품은 정각의 광경과 장엄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연꽃 위에앉아 계신 석가모니부처님의 화신은 비록 스러졌지만, 연꽃잎이 시들어 떨어져도 연꽃 받침은 남아 있는 것 처럼, 비로자나 대광명은 남아 있는 것이니, 이것이 법신 상주요, 석가모니부처님을 대신하여 큰 법사가 入定하여그 광명을 몸에 받아 비로자나부처님의 법을 연설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화엄경에는 정각을 이루신 부처님 주변에 한량없는 대중과 보살이 모여드니,그 중에 상수가 비로자나불이요, 대지 문수 보살의 청법에, 대행 보현 보살의 입정 후 설법이 장광설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로 되어 있는 화엄경은 각 품마다 청법사와 설법사가 다양하게 나오고, 결국 대중들의 부처님 찬양과 공경과 공양 및 깨달음과 법계와 여래의 출현이 무궁하게 설해지니 그 광대함은 필설로 다 할 수 없고, 불가설 불가설 불가설전 불가설이축약으로 설해지니 화엄 항본과 대본 및 약본이요, 60권 3만 6천게, 80권4만 5천게이다.
다음은 제Ⅱ장 화엄경의 중심사상에 대한 요약이다.
이러한 화엄경은 중국에서 연구되어 화엄학을 이루니 소승과 대승의 갈등을 一乘으로 해소하고, 부파 불교의 三世實有 法體恒有의 `有'견에 의한 業感緣起와, 근본불교의 사상에 돌아간 대승시교의 空。無常。無我의 12 緣起와, 輪廻의 主體를 아뢰야 식으로 정리한 아뢰야연기의 사상 및 대승 종교인 아뢰야식의 淨化에 의한 淨識의 如來藏연기사상을 원만하게 합하여, 如來 出現(性起)의 法界緣起사상을 확립시키니, 이것이 일승원교이다. 순전히화엄 사상만을 말하면 일승 별교가 되는 것이고, 근본불교 및 대승불교를아울어, 성문。연각。보살의 3승을 일승으로 이끌 때는 일승 원교가 되는것이다.
여래 출현이란, 一切衆生悉有佛性 (모든 생명체는 부처의 성품을 가지고있다.)의 사상에서, 그 부처의 성품, 곧 여래의 나타남이니, 여래를 性, 출현을 起라 하여, 性起라고도 한다. 출현한 여래의 모습은 허공과 같고, 태양과 같으며, 광명에 비유되니, 태양은 여래에, 광명은 출현상에 비유된다.
여래 출현은 큰 구름에서 내리는 큰 비와 같아 일체를 두루 적시며, 대의왕과 같아 일체 모든 생명체의 병고를 없애주며, 보름달과 같아 밝은 빛을 고루 비춘다. 여래 출현은 허공과 같아 끝이 없으며, 두루 일체를 감싼다. 여래 출현은 태양에서 발하는 대광명과 같으니, 끝없는 허공을 비추고, 일체모든 생명체를 살리고 있다. 여래 출현은 바다와 같아 다함없는 보배를 쏟아 모든 생명체를 유익하게 한다.
이렇게 일체처에 충만한 여래 출현의 법계는 중중무진으로 연기하고 있으니, 이것이 法界緣起사상이다. 現象의 事法界와, 佛性의 理法界는 圓融無碍하여 둘이 아니며(理事無碍法界), 事法界와 事法界도 圓融無碍(事事無碍法界)하니, 이것을 十玄緣起와 六相圓融으로 설명한다. 그 가운데 因多羅網境界門은 帝釋天의 인다라망에 달린 구슬이 무색투명하여 모든 影象을 구슬가운데 비추니, 한 구슬에 비친 그림자가 옆에 있는 모든 다른 구슬에 동시影顯하니, 그 모든 구슬에 영현한 그림자가 다시 모두 옆에 있는 구슬들에비추어 이와 같이 중중 무진으로 비추니 끝이 없음과 같이, 모든 事物은 重重 無盡으로 서로 聯關되어 成立시켜주고 있어, 하나가 그대로 一切인 것이다.
海東華嚴初祖인 義湘은 法性偈에 이러한 뜻을 함축적으로 나타내고 있으니,곧 一中 一切요, 一切卽 一이며, 一微塵中含十方이요, 一切塵中亦如是하니,無量遠劫卽一念이요,一念卽是無量劫이다. 한 털구멍속에 시방의 허공이 벌어져 한량없는 겁이 지나도, 끝이 없는 모든 생명체를 다 깨달음에 이끌지못하고, 변제를 알 수 없으니, 보현의 광대행이여! 發菩提心은 이러한 法界에 들고자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자 마음을 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菩薩道를 배우고 보살도를 행해 나가서, 菩薩行이 圓滿具足해 질 때가普現行願이 이루어지는 때이니, 一切 모든 생명체가 깨달음을 이루는 佛國淨土가 실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제Ⅲ장 화엄경에 보이는 교육과정의 요약은 다음과 같다.
화엄경의 교육 목적은 구래부동불인 비로자나불의 자각에 의한 입법계에있다.
구래부동불이란 깨달음을 성취하고 보니 그대로 한자리에 움직이지 않은채 본래 부처라는 것이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잠에서 깨어보니 잠자리에 그대로 누운 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과 같다. 이러한 깨달음의 과정은 교육과정이 되는데, 법을 듣고 믿음을 일으켜[信], 깨달음을 성취하겠다는 발심을 하게된다[發菩提心]. 이렇게하여, 十住, 十行, 十廻向, 十地를거쳐, 보살도의 구경인 等覺에 이르고, 佛道인 妙覺을 성취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菩薩 十地의 十波羅蜜로 요약하면;
① 初 歡喜地에서는 여래의 집에 태어나 열가지 큰 원을 만족하여 檀바라밀 (보시)을 成就하고, ② 離垢地에서는 십선도를 행하고 자비심을 길러 戒바라밀 (지계)을 성취하고, ③ 發光地에서는 무상。고。무아를 관하여 忍辱바라밀을 성취하고, ④ 焰慧地에서는 37조도품을 닦아 精進바라밀을 성취하고, ⑤ 難勝地에서는 4제를 닦아 禪定바라밀을 성취하고, ⑥ 現前地에서는12연기를 관하여 慧바라밀을 성취하고, ⑦ 遠行地에서는 10바라밀을 닦아方便바라밀을 성취하고, ⑧ 不動地에서는 무생법인을 얻어 願바라밀을 성취하고, ⑨ 善慧地에서는 4무애지를 얻어 力바라밀을 성취하고, ⑩ 法雲地에서는 대법우를 뿌려 智바라밀을 성취한다.
교육내용은 화엄경의 중심사상인 性起(如來出現)思想과, 法界緣起思想 그리고 發心 修行의 菩薩道이다. 이 몸과 대자연이 그대로 如來出現으로 비로자나 眞法身이니, 그 여래 출현한 法界의 모습은 圓融無碍하게 겹겹으로 연기하고 있다. 이러한 法界에 들기 위한 發心을 내고 菩薩 修行을 닦아나가正覺을 이루어 自他一時成佛道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의상의 법계도를통해 한 눈에 알 수 있다. 법계도는 54각 210자로 되어 있어 마치 54선지식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法性은 圓融하고 眞性은 微妙하니 行者는 妄想을 쉬어 歸家하여 法界를 莊嚴하니 옛부터 그대로 不動의 佛이라는 海印三昧에 나타난 法의 모습을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곧 진리의 모습과 보살도를 요약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Ⅳ장 입법계품을 통해 본 교육 방법을 요약 한다.
선재 동자가 문수보살의 설법을 듣고 發心하여 구도의 길에 나선다. 처음공덕운 비구로 부터 念佛 三昧를 배우고, 계속하여 관자재보살, 정취보살,구바녀, 마야부인, 덕생동자와 유덕동녀, 미륵보살, 다시 문수보살 등을 만나 다양한 菩薩道를 배우고 익히며, 보현보살을 봄으로써 入法界하여 보현보살도를 성취한다. 그 동안 선재 동자는 앞에 든 문수보살을 비롯하여53선지식을 찾아 험한 여행을 나서는데, 어려운 고비를 수없이 넘기고, 갈수록 걸음은 가벼워진다. 보살십지로 말하면 불퇴전에 이른 셈이다. 이러한선재 동자를 맞는 선지식들은 발심한 선재를 칭찬하고 격려하며 위로하여용기를 주고 끝까지 보살도를 행하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보이며, 자신의 미흡함을 말하고 보다 나은 보살행을 하고 있는 선지식을 가르쳐주고 안내하는 것이다. 여기서 스승인 교사는 제자인 학생들에게 인생의 참모습을보여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여 보살행을 하여야 함을 느낄 수 있다. 또 제자인 학생들은 스승을 믿고 공경하며, 가르침에 따라 열심히 보살행을 하여야 함을 느끼게 된다. 53선지식은 비구, 비구니, 장자, 우바이, 거사, 해사,선인, 왕, 천, 신, 동자, 동녀, 보살 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직업을가리지 않으며, 국가에 한정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발심하여 보살도를 닦으면 누구나 선지식이 되는 것이고,구경에 보살행을 원만하게 구족하여 입법계하며, 일체 모든 생명체들이 성불하는 때가 미륵보살이 성불하는 때이고,누구든지 妙覺을 이루는 때이며, 불국정토가 실현되는 때인 것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의 성취라는 화엄경의 교육사상으로, 현대의 교육이 소홀히 하고 있는 인간 교육을 채울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교육도 그 방법에 따라 성취가 달라진다. 교육 방법은 크게 3가지로 나누어 살펴 볼 수있다.
첫째, 도구주의적 교육 방법은, 어떤 특수한 외재적인 목적과의 관련 속에서 교육자는 교수 상황을 통제하고, 교육내용을 결정하며, 이를 위한 효과적인 방법을 고안한다. 목적과 방법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중심위치를 차지하는 사람은 학생이 아니고 교사이다.
둘째, 학습자 중심의 교육 방법은 교육을 수단으로 보기는 하나, 교육과정을 개인을 넘어선, 개인 밖의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바로 교육적 과정의 중심에 놓여 있는 그 개인을 교육의 중심 목적으로 보는 것이다.
셋째, 자유주의적 교육방법은 특정한 사회의 필요에 맞추어져 있지 않고,시간과 공간의 경계선을 뛰어넘고, 다른 사회들까지 포괄함으로써, 인류 전체의 文化的 傳統을 중시한다. 여기서는 교육이 과정 만을 가리키는 말이아니라 成就를 가리키며, 외재적 이유를 갖는 것이 아니라 內在的 理由를갖는 것이라 보며, 교육을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敎育 自體를 目的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교육은 미래에 살아갈 인간들이 새로운 상황에 대응 할 수 있는 행동을 할수 있도록 知와 德을 성취하는 내재적 이유를 갖는 것이다. 그래서 학습자의 獨創性과 創意性을 꽃피우도록, 公正하고 眞理를 目的으로한 合理的인討論에 의해서, 本質的으로 個人主義的이고 人間主義的이며 그러면서도 文化의 傳授라는 自由主義的 敎育 方法을 채택해야 한다.
선재 동자는 선지식들과 진리로 들어 가는 보살도를 끊임없이 대화를 통해아니면 그 선지식의 수행을 통해 배우고 있다. 선지식들도 자신만의 틀에빠지지않고 보다 나은 보살도를 알고 이를 선재 동자에게 가르쳐주고 찾아가 배우도록 권하고 있다. 이에 선재 동자의 입법계를 위한 끊임없는 수행이 이루어지고 결국 입법계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선지식들이 선재 동자를 위한 開放的이고 人間的인 自由主義的 敎育 方法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있다.
이제 이들을 모두 종합하여 끝맺음을 해보자.
하늘에는 초생달이 뜰 때도 있고, 보름 달이 뜰 때도 있다.또 그믐 달이뜰 때도 있다. 우리는 그믐 달 보다 보름 달을 더 좋아 한다. 그러나 그믐달은 없는 달인가? 그믐 달도 달이다. 단지 해가 비치는 부분이 우리 눈에보이지 않고 해가 비치지 않는 부분이 보일 뿐이다. 그믐 달도 우리가 보는반대 쪽은 해가 비치고 있다. 그래서 그 쪽에서 보면 보름달인 셈이다. 그러니 그믐 달도 보름 달이다. 단지 우리가 착각으로 한 쪽만 보아 그믐 달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등 차별이 없이 그믐 달이 보름 달이다. 보름 달도또 그 반대 쪽에서 보면 해가 비치지 않아 그믐 달로 보인다. 그래서 보름달도 그믐 달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보름 달, 그믐 달이 따로 없다는 것이고, 항상 보름 달이며, 항상 그믐 달이고, 또 항상 반 달이다. 그래서 보름달이든 반 달이든 그믐 달이든 달은 달 자체로 평등하고 무차별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믐 달만 보고 싫어하고, 보름 달만 보고 좋아 하며, 반 달은반 쯤 좋아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이 스스로 잘 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대로의 세계를 是非하고 曲直하여 平地 風波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보고 산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는 따로 이름붙일 필요도 없다. 부처니, 一心이니, 本來面目이니, 實相이니 하고 꼬리표를 붙이면, 듣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 이외에 따로 세계가 있는 줄로잘 못 알게 된다. 그래서 산은 산이고, 들은 들이지, 산이 부처요, 들이 一心境界라고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分別心을 일으켜 버린다.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서 性品대로 살다 보면, 바람이 불지 않게되고, 바람은 그쳤어도 아직 물결은 흔들리다가, 그 물결 마저 고요해지면,森羅萬象이 바닷물 속에 있는 그대로 비치는 것 같이, 저절로 舊來不動佛에들어맞게 되니, 한 몸 그대로 누워 꿈 속에서 30역을 돌아다닌 것과 같다.
깨고 나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과 마음 그대로가 부처이고, 이 세상 산과 들, 바람과 바다, 꽃과 구름이 그대로如來 出現임을 믿는 순간 初發心이 되고, 初發心이 되는 순간 正覺을 이룬다.
자신이 부처이고, 산과 들이 如來 出現임을 믿으면 정작 부처로 살고자 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고자 하지 않을 수 없으니, 文殊菩薩의 說法을 듣고 善財童子가 發心하는 것과 같다. 선재 동자가 간절히 求道心을 일으키니, 세상사 아무리 살아도 虛妄하게 되고 말며, 세상에 아무리 오래 살고자 해도 消滅하고 말며, 福樂을 좋아해 사방으로 구하나 괴로움만 더하고,세상 理致를 알고자 하나 쉽게 되지 않으며,막막한 가슴은 살 수록 더하고,자다가도 문득 놀라 일어나니, 먹는 것도 맛이 없고, 산천 경계가 다 無常함을 보여주니, 부처님의 境界는 어떠할까? 부처님의 智慧는 어떠할까? 부처님의 마음은 어떠할까? 부처님의 慈悲心은 어떠할까? 하는 물음이 선재를뛰어 나가 문수보살을 따르도록하는 것이다.
이러한 初發心은 彌勒 菩薩을 거쳐 普賢菩薩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결국普賢行을 이루어 法界에 들게 되는 것이다. 곧 等覺이 이루어지고,다음 순간에 妙覺을 성취하여 비로자나 大光明이 빛나는 것이다.
53선지식은 자신이 터득한 法界의 모습을 선재에게 보여, 선재의 마음을계속 열리게 하고 있다. 이것이 현대 우리 敎育이 지향해야 할 人間 敎育의참모습이다. 사회에는 수 많은 專門 知識人과, 專門 職業人이 있다. 이들은모두가 人生을 眞實되게 살려고 애쓰며, 나름대로 人格의 陶冶를 꾀하고,社會에 奉仕하려고 나서는 것이다. 專門 知識이 現實과 圓融無碍하게 될 때,佛性을 드러내는 智慧가 되는 것이고, 專門 職業이 社會와 圓融無碍하게 될때, 佛性을 드러내는 慈悲가 되는 것이다. 知識을 통한 智慧와 職業을 통한慈悲가 한 쌍이 되어 自我實現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敎育은 社會에開放되어야 하고, 社會는 學生들을 따뜻이 맞이하여, 個性을 伸長하고 人格을 陶冶하여 成熟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스님들은 모두다 훌륭한 善知識으로서 수많은 善財 童子들에게 法身의 淸淨한 光明이 끝이 없음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고, 재가의 佛弟子들은菩薩行을 잘하여 직업생활을 통한 理想法界를 실현하며, 자식과 가족은 물론 모든 이웃 들이 부처님의 甘露 法門을 맛 볼 수 있도록 精進하여야 할것이다.
敎育은 그 자체가 眞理探究라는 내재적 價値를 가지므로 진리를 목적으로한 合理的인 討論에 의한 자유주의적 교육 방법을 취해 傳統 文化 傳受로知識과 道德 및 自由와 平等, 寬容, 公正性, 他人에 대한 考慮, 共感, 關心과 같은 사회적 이상을 추구하여야 한다. 이러한 自由主義的 교육 방법은선재 동자와 선지식들 사이에 충분히 발견되며 자신을 어떤 틀에 한정해 버리지 않는 선지식들의 노력과 진실한 삶에서 수 많은 공감과 존경심이 절로나는 것이다.
이 세상은 허공 중에 핀 꽃이다. 빈 허공이지만 무엇이든지 나올 수 있는가능성이 가득찬 허공이다. 이 허공에서 우리 인간도 한 송이 꽃으로 피어있다. 한 송이 꽃으로 예쁘게 피어 있다. 꽃이 스러저도 언제고 가능성은가득차 있는 것이다. 우주의 시작은 자신이다. 우주의 끝도 자신이다. 우주의 중심도 자신이다. 한 가운데서 아무런 움직임없이 공간이 비켜가고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거나, 우리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자연의 환경이 변화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세만년토록 변하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다.
이러한 화엄경의 교육관을 현실적으로 교육현장에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찾아 보기 위하여 화엄사상과 선이 만나는 華嚴禪에 대하여도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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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高岐直道外, 華嚴思想(大乘佛敎講座3), 鄭舜日 譯(서울: 經書院, 1988)28) 中村 元外, 華嚴思想論, 釋元旭 編譯(서울: 文學生活社, 1988)29) 高峯了州,華嚴思想史, 張戒環 譯(서울: 保林社, 1988)30) 田村芳朗,天台法華의 思想, 李永子 譯(서울: 民族社, 1990)31) 智의, 止觀坐禪法, 金無得 譯註(天台小止觀)(서울: 經書院, 1990)32) 이중표, 아함의 중도체계(서울: 불광출판부, 1991)
2. 교육학 관계 논저.
1) 朴先榮, 佛敎의 敎育思想(서울: 同和出版公社, 1981)2) 朴先榮, 佛敎와 敎育社會(서울: 保林社, 1983)
3) 金俊경, 佛敎敎育學(釜山: 佛敎出版社, 1981)
4) 金丁煥, 敎育哲學(서울: 博英社, 1987)
5) 吳炳文外, 敎育原理(서울: 三光出版社, 1973)
6) 全南大學校 師範大學 敎育學科編, 敎育原理(光州: 全南大學校 出版部,1982)
7) Brenda Cohen, 교육방법의 철학(Means and Ends in Education), 이지헌옮김(서울: 星苑社, 1993)
8) R.S.Peters, 倫理學과 敎育(ETHICS AND EDUCATION), 李洪雨 譯(서울: 敎育科學社, 1980)
3. 논문
1) 全好蓮, 華嚴經의 發菩提心에 對한 硏究, 1983, 碩士學位 請求論文.
2) 宋琴仙, 知訥의 禪敎觀 硏究, 1987, 碩士學位 請求論文.
3) 朴貴出, 圭峰禪師의 禪敎一致論에 對한 硏究, 1970, 碩士學位 請求論文.
4) 申賢淑, 元曉의 空觀과 華嚴頓敎(韓國佛敎學).
summary
T h e E d u c a t i o n V i e w o f
A v a t a m s a k a S u t r a
Kim,Seok
Dept. of Buddhism Graduate School Dong Guk University
The thought of Hwa-um may be summed up in Tathagata appearance(성기), Dharma-dhatu pratitya-samutpada(법계연기) and Bodhisattva-paramita(보살도). Tathagata appearance means the coming out ofTathagata-nature(여래성) which fills the empty space and the univers.
So to speak, all things in nature are appearance of Tathagata.
Dharma-dhatu pratitya-samutpada means that the appearance of world inwhich Tathagata showed up is caused by each other.
The one's own volition toward this world is “Awakening to one'sbodhi-mind (anuttara-samyak-sambodhi-mind)”. With the own volition wemust find 53kalyana-mitra (teachers :good friend in the practice ofthe way) and learn Bodhisattva-paramita(보살행) from them. After thatwe can meet Samantabhadra-bodhisattva and enter into dharma-dhatu.
When we identify Buddha with us and excute Samantabhadra-bodhisattva-paramita, we can redeem all the world. At that moment, we can beBuddha and accomplish to become enlightened for oneself and makeothers do so in one moment.
The education according to this Hwa-um thought purpose to come truethe perfection of self. So it can be human education. Human educationmake a student identity Budda with himself and motiviate him to doAwakening to one's anuttara-samyak-sambodhi-mind.As thisBodhisattva-paramita is learned in the form of continual question andanswer, the education above is connected with liberal view ofeducation. Liberistic education is based on human education(learner-oriented approaches). It regards accepting traditionalculture highly. Rational discussion for truth is its teaching method.
Teaching course of Hwa-um is as follows.
First, the student who is the appearance of Tathagata should believehimself originally nat moving Buddha, and understand that the full andperfect identity of all things are reasoable and endless. When heregard all thing as Buddha, Bodhisattva-paramita will come true. Atthat time he can enter into Dharma-dhatu finally. Awaking to thewisdom and charity which equel to Buddha, he can obtain unendingvirture. This Bodhisattva-paramita is shown in the class like 10 stay(十住),10 practice(十行),10 transfer(十回向),and 10 stages(十地 ), andsummed up in the three seals of the Law(3법인),the Four NobleTruths,the twelvefold links of the chain of causation, the 37 ways toenlightenment and the 10 paramitas which are practice dharmaparyaya(修行法門) that 53 kalyana-mitra realized ago. The basic thought of thisBodhisattva-practice is that Buddha and all mankind are indifferentand the creatures of one mind. The one mind is mental function onemoment. So the one mind is Buddha. It is practice that the studenttreats all things as Buddha.
[출처] 華 嚴 經 의 敎 育 觀 硏 究 - 金 石 |작성자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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