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율! 불자들이 지켜야 할 규범이다.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삼귀의계다.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삼귀의계의 수지 여부는 불자와 비불자를 가르는 1차적인 기준이 된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오계를 받는다. “살생을 하지 않겠습니다. 도둑질을 하지 않겠습니다. 삿된 음행을 하지 않겠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삼귀의를 다짐하고 살긴 하지만 오계 받기를 망설이는 불자들이 있다. 특히 다섯 번째 조항인 ‘불음주계’가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사회생활을 하기가 쉽지 않다. 회사에서 거래처 사람들을 접대하고, 친목을 도모할 때 술이 윤활유 역할을 한다. 친구든 친척이든 모여서 식사할 때면 ‘건배’를 하고 술잔을 돌린다. 술을 끊으면 직장생활도 뻑뻑해지고 친구나 친척과의 관계도 소원해진다. 남자 재가불자, 즉 우바새(優婆塞)들이 수계를 망설이거나 미루는 이유가 대부분 이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품은 넓다. 불전에서는 수계의 정도에 따라 재가불자를 다섯 부류로 구분한다. 일분행자, 소분행자, 다분행자, 만행자, 단음행자의 다섯이다. 오계 가운데 하나만 받아서 지키는 재가불자를 일분행자(一分行者)라고 부른다. 소분행자(少分行者)는 두, 세 가지 계만 받고 다분행자(多分行者)는 네 가지 계를 받으며, 오계 모두를 받은 재가불자를 만행자(滿行者)라고 부른다. 술을 끊을 자신은 없지만, 나머지 네 가지 계는 모두 지킬 자신이 있다면 다분행자의 계를 받으면 된다. 수계식에서 오계를 복창할 때 불음주계의 항목에서 입을 다물고 있으면 된다. 술은 마시지만, 절대로 산목숨을 죽이지 않고, 남의 것을 훔치지 않으며, 삿된 음행이나 거짓말을 결코 하지 않는다. 다분행자다.
가끔 모기도 잡아야 하고, 바퀴벌레 약도 뿌려야 한다. 또는 어업에 종사하거나 회집을 운영하기에 살생을 해야 하며, 임기응변으로 “밑지고 판다.”거나 ‘오늘 들어온 싱싱한 광어’라는 거짓말도 해야 한다. 그러나 남의 것을 훔치는 짓은 결코 하지 않을 자신이 있고, 배우자에 대한 ‘사랑의 신의’만큼은 철저하게 지킬 수 있다면 소분행자의 수계를 받으면 된다. 오계를 복창할 때 “남의 것을 훔치지 않겠습니다.”와 “삿된 음행을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조항만 따라하고 ‘불살생’, ‘불망어’와 ‘불음주’의 계목에서는 침묵을 지킨다.
소분행자로 살아갈 자신조차 없으면 오계 가운데 하나만 지키는 일분행자로 살면 된다. 일분행자도 어려우면 삼귀의계만 지키면 된다. 오계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못 지켜도 삼귀의계만 받으면 불자의 범위에 들어온다. 부처님의 품속에서 살아가는 부처님의 아들, 딸이다.
재가불자의 오계. 몇 안 되는 조항이긴 하지만 그 모두를 수지하여 곧이곧대로 지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만행자로 살아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만행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부부생활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재가불자가 있다. 바로 단음행자(斷婬行者)다. ≪대지도론≫에 의하면 오계를 모두 받은 다음에 계사(戒師) 앞으로 나아가 “저는 제 배우자와도 음행을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다짐을 하면 단음행자가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유마거사와 같은 분이다. ≪유마경≫에 의하면 유마거사는 부인과 자식이 있고 복락 속에서 살았지만, 항상 범행(梵行)을 닦았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범행은 단음행을 의미한다. 이통현 장자나 방거사 등 불교사상사에서 이름을 날렸던 거사들 모두 단음행자였을 것이다. 그 외모만 속인이었지, 그 삶과 행동은 출가하여 독신 수행하는 스님과 다를 게 없었다.
계율! 재가불자들은 이렇게 오계만 받는데, 출가한 스님들은 구족계(具足戒)를 받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비구 스님은 250가지 계, 비구니 스님은 348가지 계를 받아 지닌다. 율장 가운데 ≪사분율(四分律)≫에 근거한 조항들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재가불자의 경우 오계 가운데 취사선택하여 수계를 할 수 있지만, 구족계의 경우 그런 선택이 허용되지 않는다. 삭발 염의한 스님이라면 모두 받아 지니고 반드시 지켜야 한다. 또 ≪사분율≫이 ‘소승의 율’이기에 대승 불교권에서 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잘못된 생각이다. 율은 대승이든 소승이든 출가한 스님들이 반드시 받아야 할 ‘출가 율’이다.
계라는 표현을 썼지만, 스님들이 받는 구족계는 계에 근거한 율이다. 현대적으로 풀면 계는 윤리(Ethics), 율은 법(Law)에 대비된다. 계는 선악의 기준이고, 율은 승단의 운영규칙이다. 계는 스스로 지키는 것이고, 율을 어기면 승단의 제재를 받는다. 계는 ‘자율적 윤리’이고 율은 ‘타율적 규범’이다. 계는 출가자나 재가자 모두가 지켜야 할 윤리적 지침이지만, 율은 출가한 스님에게만 해당하는 ‘승단의 규범’이다.
비구스님의 250계나 비구니스님의 348계와 같은 율의 조항들을 쁘라띠목샤(Pratimokṣa)라고 부르며 한자로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라고 음역한다. ‘해탈(mokṣa)하게 만드는 낱낱의(prati) 지침’이라는 뜻이다. 별해탈(別解脫)이라고 의역하기도 한다. 세속적인 삶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낱낱의 지침이다. 동물적 감성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낱낱의 지침이다. 삼계 가운데 욕계에 대한 미련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낱낱의 지침이다. 별해탈의 ‘해탈’은 ‘벗어남’을 의미한다. 출가하여 정식으로 스님이 되고자 할 경우 250가지 또는 348가지 ‘별해탈’을 굳게 지킬 것을 다짐한다. 구족계의 수계 현장에서 스님들의 마음속에 ‘계체(戒體)’가 만들어진다. 목숨이 다하도록 바라제목차를 지키겠다는 ‘다짐’이다.
승가의 율은 세속의 법률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법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 ‘헌법, 형법, 민법, 상법, 형사소송법, 민사소송법’의 육법이다. 승단의 규범인 율은 육법 가운데 ‘형법’과 ‘형사소송법’에 해당한다. 250계 가운데 앞의 243가지는 형법에 해당하고, 마지막 7가지 ‘멸쟁법(滅諍法)’은 범계(犯戒) 여부를 놓고 다툼이 일어났을 때 죄상을 판가름하는 방법이기에 형사소송법과 유사하다.
스님들이 어겨서는 안 되는 243가지 행동규범들은, 그 경중에 따라 다시 일곱 가지 부류로 나누어진다. 가장 중한 것을 바라이법(波羅夷法)이라고 부른다. ‘이성과 직접 음행하는 것, 5전 이상의 돈을 훔치는 것, 사람을 죽이는 것, 깨닫지 못했는데 깨달았다고 하는 것’의 네 가지다. 이 가운데 두 번째 조항에서 말하는 ‘5전 이상의 돈’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지만, 세속에서 일반인이 5전 이상의 돈을 훔치면 사형을 시켰다고 하니 꽤나 큰 액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네 가지 바라이법을 범하면 영구히 승가에서 추방되며 다시 출가하는 것도 금한다. ‘스님의 자격을 박탈하는 형벌’을 주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중한 계목이 승가바시사법(僧伽婆尸沙法)이다. 자위를 하든가, 여인의 몸을 만지든가, 중매를 서든가, 무고를 하든가, 대중의 화합을 파괴하는 것 등이 이에 속한다. 이를 범할 경우, 20인 이상의 비구 스님 앞에서 참회를 한 후 6일간 격리 생활을 한 다음에 승가로 복귀할 수 있다. 과도한 소유를 금하는 조항으로 니살기바일제법(尼薩耆波逸提法)이란 것이 있는데 이를 어길 경우 소유물을 승가에 반납한 후 4인 이상의 비구 스님 앞에서 참회를 하면 죄에서 벗어나 승가로 복귀한다. 또 욕을 하든지, 작은 거짓말을 하든지, 이간질을 하든지, 가르치는 사람을 비방하든지, 때가 아닌 때에 먹든지, 이성과 함께 있든지, 술을 마시든지, 남을 때리든지 하는 행위를 금하는 바일제법(波逸提法)이 있다. 이런 행위를 했을 때에는 4인 이상의 비구 앞에서 참회하여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보다 경미한 바라제제사니법(波羅提提舍尼法)을 범하면 1인의 비구 앞에서 참회하면 죄에서 벗어나고, 가장 경미한 중다학법(衆多學法)의 경우 고의로 범한 것은 1인의 비구 앞에서 참회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스스로 참회함으로써 죄에서 벗어난다. 가사를 머리에 뒤집어쓰거나, 팔을 흔들며 걷거나, 장난치고 웃거나, 밥을 씹는 소리를 내거나, 풀밭에 침을 뱉는 등의 행동이 중다학법에 속한다.
율! 승가를 유지하는 규범이다. 비단 율뿐만 아니라, 어느 집단이든 그 집단에서 제정한 규범이 잘 지켜지면 그 집단은 오래 존속한다. 규범은 콩가루 같은 개인을 묶어주는 끈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율과 관련하여 구족계의 수계식과 함께 반드시 치러야 할 중요한 의식(儀式)이 두 가지 더 있다. 바로 포살(布薩)과 자자(自恣)다. 포살은 스님들이 보름에 한 번 모여서 250계의 조항을 읽으면서, 범계한 것을 고백하고 참회하는 의식이고 자자는 안거가 끝날 때 범계 행위를 고백하고 참회하는 의식이다. 승가가 귀의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율을 수지한 스님들이 정기적으로 그 준수 여부를 점검하면서 세속의 때를 씻어내기 때문이다. ‘출가 계’인 250계에 근거한 자자와 포살의 복원! 우리 불교를 살아 숨 쉬게 만드는 혈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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