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탄허와 장자

수선님 2021. 6. 6. 11:46

탄허스님은 장자를 공부하다 道란 무엇인가에 막혀 전국의 많은 선지식들에게 편지를 보내 道를 알아보았다. 이에 대해 한암스님은 묵언하며 참선하라 했다. 박한영 스님은 나한테 올 필요 없고 한암스님께 배우면 된다고 하셨다. 20대 초반에 갓 출가한 탄허스님이 많은 스님들 앞에서 강의를 한 것은 대단한 사건이었다.

 

7년 동안 내전을 공부하고 났더니 유교와 불교 사이에서 노장은 自得이 되었다 그래서 스승 없이 노장은 터졌다고 말씀하셨다. 한암스님은 탄허스님의 장자에 대한 관심을 알고 강의를 해보라고 제안하셨다. 탄허스님의 장자 강의를 보고 나서 한암스님은 나의 스승 경허선사가 왜 그리 장자를 많이 보셨는지 이제 알겠다고 말씀하시며 강의를 찬탄하셨다. 탄허스님은 장자에 대한 백가의 주석은 다 봐야겠다고 말씀하셨고 당시 구할 수 있었던 노장의 책은 모두 가지고 있었다. 스님은 원고만 작성한 뒤 책은 출간하지 않고 입적하셨다.

그런데 입적 20년 후 장자 원고가 나온 뒤 책으로 출간되었다. 탄허스님의 책은 입적하시기 전엔 周易 49재 후엔 老子 20년 후엔 莊子가 출간되었다. 스님은 장자를 거의 다 외워 강의를 하셨다.  

 

장자의 구성 – 內篇 7편 外篇 15편 雜篇 11편.

노장사상은 불교를 몰라서는 해부를 못한다는 것이 내 결론입니다. 내가 노장사상을 공부하다가 중이 된 사람이거든 내가 20세부터 노장사상을 파고들다가 선생님이 없어서 사방으로 선생을 구하다가 방한암 스님이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서 편지를 해보고 참 도가 있는 선비 같아서 3년간 서로 편지로 연애가 깊어져서 따라와서 중이 됐거든.

노장사상은 불교를 모르고는 해부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딱 못박아 놓은 거예요. 내가 유교칠서를 보고나서 노장사상에 달라붙어서 한 3년 동안을 그렇게 애를 써봐도 해부가 안 돼. 중이 되어서 7년 동안을 내가 이력을 봤거든 그 뒤에 노장사상을 다시 한번 흝어봤다 이거야. 그러니까 이제 풀어졌어. 그게 내 경험이거든 유교와 불교 사이에서 노장사상이 자득이 된 거란 말이지. 그 전엔 절대 안 풀려. 아무리 文理가 좋아도 안 풀린다 말이야. 장자는 공자의 제자 안연과 석가의 제자 가섭에 견줄만 한 천하제일의 웅변이다.

 

탄허스님은 장자강의로 처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수강생들의 열렬한 요청으로 처음 일주일에서 2달 동안 연장 강의를 했다. 이때 청강1기생 중 한 명이 함석헌 선생이다. 선생은 동국대 교수 자칭 국보 1호 양주동 박사에게 추천하였다. 교수와 대학원생들을 대동하고 상원사에 가서 탄허스님의 장자강의를 일주일 동안 듣고 난 양주동 박사는 스님에게 절을 하고 나서 장자가 다시 살아 돌아와 강의를 한다고 해도 오대산의 탄허스님을 능가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인도의 96파 철학을 모두 알려면 불교공부 하나로 족하다. 불교의 8만대장경 도리 전체를 알려면 화엄경 하나만 연구하면 되며 중국의 九流哲學 전체를 파악하고자 한다면 장자 한 권만 연구하면 된다.

 

탄허스님의 장자 남화경은 2004년 입적 20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청나라 1721년 선영의 南華經解. 공자는 장자 노자를 비판하지 않았다. 以儒爲宗 儒道一致 유교로 종을 삼아라. 유교와 도교는 결국 일치한다. 이런 관점으로 주석한 책이 선영의 남화경해다. 장자의 제1 대가는 곽자현이다. 그런데 탄허스님은 淸初의 선무공주가 나오자 곽자현의 주석은 빛을 잃기 시작했다고 말씀하셨다.

 

장자 南華經의 구성 – 懸板<서두의 설명> 大義<단락의 전체 요약> 句讀 懸吐 講說

懸板 매달 현 자다. 미리 핵심내용을 보고 갈 수 있게 해줘 미리 懸이라고 하셨다. 장자의 중요한 핵심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본의 도는 하나이기 때문에 깨달아도 같은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佛仙通釋 불교와 선을 함께 통해서 해석했다. 장자의 각 편마다 가장 중요시하는 핵심 종지는 무엇인가?

장자 내편 – 1.逍遙遊의 無己 2.齊物論의 物化 3.養生主의 緣督 4.인간세의 心齋 5.德充符의 忘形 6.대종사의 坐忘 7.應帝王의 혼돈

 

逍遙遊의 無己

소요유는 노닌다는 뜻이다. 노닐 遊. 일을 다 마친 무사한 도인이 자유자재로 세상을 노닌다는 뜻이다. 소요유의 대의는 뭐냐? 至人은 無己하고 지극한 사람은 나라는 것이 없다. 神人은 無功하고 聖人은 無名이라 신인은 공이 없고 성인은 이름이 없다. 이 가운데 至人이 가장 높다. 장자는 자신을 지인에 빗댄다.

 

장자의 無己=유교의 克己=불교의 無我

동양학은 결국 자기의 문제다. 도교는 自 자가 강하고 유교는 己 자가 강하다. 己所不欲 勿施於人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남에게 베풀지 말라. 이 세상의 모든 진리는 모두 나<自/己/我>에게 갖춰져 있다는 말이다. 장자도 결국 불교의 無我사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불교에서 이것을 비판하기를 至人은 無己라 몸만 없다고 했으니까 我空만 됐고 法空은 못 됐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어. 천만의 소리. 人無我 法無我 근본이 我라 이 말이야. 法我도 我고 人我도 我고 철저히 무기가 될 것 같으면 아공법공이 다 되어버린 거여.

 

克己復禮 나의 몸을 극복한다.

몸과 망상을 모두 극복해서 예의 근본으로 돌아간다. 사람은 3종류의 사람이 있다. 禮로 사는 사람이 있고 法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經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 物我兩忘 물아가 양망된 경지다. 나와 밖이 한 덩어리가 되서 완전히 잊어버리는 망아 無我之境의 세계다. 모든 자기의 언어와 사유가 우주자연의 이법과 딱 들어맞게 절도있게 가려면 억지로 禮를 지킨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예는 天理之節文 천리가 하나하나 펼쳐진 세계다.

克己復禮를 형식적인 사소한 에의범절로 잘못 해석할 수 있는데 그런 것이 아니다. 禮를 道로 본 것이다. 우리나라는 법치국가다. 法 이전엔 禮로 살면 되었다. 상항논리에 따라 적당히 맞게 살면 되었다. 그런데 윤리도덕이 먹혀들지 않으니 법치가 나온 것이다. 이보다 못한 세계가 情으로 사는 세계다. 불공평해도 할 수 없다는 하근기의 삶이다. 克己復禮는 나의 妄想을 극복하여 道의 세계로 회복해 가는 것이다.

 

克己至極功=無己=아공 법공=無我.

불교를 공부한다고 無我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我相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無我가 되려면 克己에 도달해야 한다.

 

공자께서는 극기라고 그랬거든. 논어에 克己復禮라. 유교에서 주자가 자꾸 반발하면서 성인의 말씀과 같이 극기라고 해야 말이 되지 무기라고 하면 황당무계하다고 그랬거든. 우리가 儒佛仙을 통해서 보지 못할 때에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만은 지금은 다 통해서 보니까 주자의 비판이 잘못됐다는 것이란 말이야. 공자의 극기라는 말이나 장자의 무기라는 말이나 둘이 있는 소리가 아니란 말이여. 왜?

공자께서는 學者들을 대상으로 말을 하니까 극기라 했고 장자께서는 大人의 경지에서 말하니까 무기라고 하는 것이거든. 공자는 다음 4가지를 끊었다고 말씀하셨다.

 

공자의 絶四 – 무의<母意> 무필<母必> 무고<母固> 무아<母我>

의도함도 없고 기필함도 없고 고집함도 없고 나도 없다고 했잖아? 無我와 無己 克己는 같은 말 아니여?   

 

無可無不可 가한<옳은> 것도 없고 가하지 않은 것도 없다.

유불선 3교의 종지는 내가 없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내용의 탄허스님 장자 주석이다. 이기심만으로는 행복한 세상을 바랄 수 없다. 탄허스님은 모든 사상과 종교의 근본은 하나라고 보셨다. 진리는 하나다. 상대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조화로운 마음을 낼 필요가 있다.

22회. 문광스님. 탄허와 장자 중에서

 

 

 

 

 

 

 

 

[출처] 857.탄허와 장자|작성자 Ink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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