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부처님의 머리는 왜 퍼머머리예요?”
도량안내시에 어떤 보살님이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의 상을 보고는 부처님 머리 모양이 스님들의 머리 모양과 같지 않고 자신의 꼬불꼬불한 퍼머머리와 닮았다며 던진 질문입니다.
‘스님들은 머리카락을 인간의 번뇌에 비겨 번뇌를 끊어 없앤다는 뜻에서 머리를 깎았다고 하는데 부처님의 머리는 왜 재가 보살님들의 퍼머머리일까?, 부처님께서는 이미 정각을 이룬 분으로써 더 이상 끊을 번뇌가 없기 때문에 두발 자율화를 하신걸까요?’
아닙니다. 최초의 삭발자는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은 출가를 결심하고 궁을 빠져나오자마자 머리와 수염을 깎고 사냥꾼이 입고 있는 옷과 바꿔 입었습니다.
『과거현재인과경(因果經)』2권에 태자가 “이제 수염과 머리를 깎았아오니 일체 번뇌와 죄장을 끊어 주소서”라고 말하자 인드라는 머리칼을 받아 떠나갔으며 허공에서 여러 하늘이 향을 사르고 꽃을 흩으면서 “장하십니다, 장하십니다.”라며 찬탄했고 부처님의 머리카락은 인드라가 삼십삼천에 모셨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분율(四分律)』에서도 부처님이 머리가 긴 어떤 비구를 보고 “깎으라, 스스로 깎든지 남을 시켜 깎든지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초기경전인『장아함경』『사문과경(沙門果經』에서도 부처님이 아사세 왕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출가 사문이 되는 것을 ‘수염과 머리를 깎고 三法衣를 입고 집을 나가 도를 닦아’라고 표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분율(四分律)』이 부처님 입멸 후 100년 뒤에 결집되었고 ‘아함’이 원시불교 경전인 점을 감안할 때 부처님 재세시부터 삭발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도 불상은 왜 곱슬머리 모양일까요?
불상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증일아함경』을 보면 부처님 성도후 잠시 어머니 마야 부인을 위해 설법을 하시려고 삼십삼천(즉 도리천)에 오르신 일이 있었는데 그 동안 부처님을 그리워하던 코살라의 파사익 왕과 코삼비의 우다야나 왕이 각각 자마금(紫磨金)과 전단목(栴檀木)으로 불상을 조성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불상의 기원에 대한 전설로써 불상이 조성된 것은 기원후 1세기경부터이고 그 후 쿠샨 왕조 때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 왕 때 이미 불교가 전해져서 메난도로스(기원전 160~140)와 같은 그리스계 왕이 불교에 깊이 귀의했던 것을 『미란다왕문경』(『나선비구경』이라고도 함)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쿠샨 왕조를 일으킨 대월지족은 오늘날의 페샤와르를 중심으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해당하는 간다라 지역과 인도의 마투라 지역(델리의 동남쪽)으로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습니다. 마투라 불상은 인도 고유의 전통을 기반으로 한 소박함과 전통적 기법으로 인도인의 모습을 닮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간다라 불상은 중앙 아시아와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아 서구적 외양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간다라 불상은 특히,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으로 그리스 아테네 등 신전들의 신상(神像)의 영향을 많이 받아 신상의 머리카락 모양('나발(螺髮)' 또는 '나계' 또는 '파상발'이라고 함)이 우리가 그림이나 조각상으로 아는 것처럼 대부분 소라모양인 곱슬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그래서 간다라 불상의 머리 모양이 그러한 영향으로 인해 불상을 조성할 때 곱슬의 형태가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불상을 조성시 의복은 승려들과 같으나, 머리는 승려들처럼 삭발하지 않고 긴 머리카락을 위로 올려서 상투를 틀었다고도 합니다. 석가모니 붓다는 출가하면서 머리를 잘랐고 그 뒤에도 다른 승려들과 마찬가지로 삭발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대지도론』에 붓다의 신체적 특징을 체계화한 三十二相에는 uṣnīṣaśīras(혹은 uṣṇīṣaśīraskata)라는 것이 있습니다. śīras(쉬라스)는 ‘머리’라는 말이고, uṣṇīṣa(우슈니샤)는 ‘터번’, ‘터번을 두른 것 같은 머리 모양’ 혹은 ‘상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따라서 간다라 불상의 머리에 표현된 것은 이 우슈니샤이고, 터번을 두른 것처럼(혹은 터번을 두를 만큼) 고귀한 머리 모양, 즉 숱이 많은 머리카락으로 보기 좋게 상투를 튼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붓다의 머리 모양이 이처럼 불교의 출가 수행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형상을 갖게 된 것은 三十二相에 기술된 붓다의 신체적 특징들이 인도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대인상(大人相, 뛰어난 인간의 신체적 특징)에 관한 전승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역 경전에서는 우슈니샤를 붓다의 三十二相의 하나로 언급할 때 일관되게 ‘육계(肉계)’ 즉 ‘살상투’ 로서 정수리가 상투처럼 솟아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인도에서 2세기 후반부터 마투라와 아마라바티 지역에서 이렇게 정수리가 솟은 불상이 등장합니다. 머리카락이 짧고 한 올 한 올 말려 있는 형상(螺髮)으로 보아 머리 위에 솟아오른 것이 머리카락을 묶은 상투가 아니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우슈니샤가 육계라는 뜻으로 변화했으리라 추측합니다.
현재 중국이나 한국에서 보여 지는 머리 모양이 최초의 불상과 다른 것은 시대의 변천과 장소에 따라 그 머리형태가 조금씩 변모해 왔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불상 나발모양의 기원에 관한 연구는 불교학자들에 의해 여러 견해가 있으나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더 연구가 되어져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스님, 추운 날씨에 법체청안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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