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열반을 어떤 특별한 경지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탐 • 진 • 치 삼독의 번뇌가 완전히 소멸된 상태
염부차경(閻浮車經)
[원문]
(四九○) 如是我聞: 一時,佛住摩竭提國那羅聚落. 爾時,尊者舍利弗亦在摩竭提國那羅聚落. 時,有外道出家名閻浮車,是舍利弗舊善知識,來詣舍利弗,問訊․共相慰勞已,退坐一面,問舍利弗言: “賢聖法․律中,有何難事?” 舍利弗告閻浮車: “唯出家難.” “云何出家難?” 答言: “愛樂者難.” “云何愛樂難?” 答言: “樂常修善法難.” 復問: “舍利弗! 有道有向,修習多修習,常修善法增長耶?” 答言: “有. 謂八正道. 謂正見․正志․正語․正業․正命․正方便․正念․正定.” 閻浮車言: “舍利弗! 此則善道,此則善向,修習多修習,於諸善法常修習增長. 舍利弗! 出家常修習此道,不久疾得盡諸有漏.” 時,二正士共論議已,各從座起而去. 如是比閻浮車所問序四十經.
[1] 閻浮車問舍利弗: “云何名善說法者? 為世間正向. 云何名為世間善逝?” 舍利弗言: “若說法調伏欲貪,調伏瞋恚,調伏愚癡,是名世間說法者. 若向調伏欲貪,向調伏瞋恚,向調伏愚癡,是名正向. 若貪欲已盡,無餘斷知,瞋恚․愚癡已盡,無餘斷知,是名善斷.” 復問: “舍利弗! 有道有向,修習多修習,能起善斷?” 舍利弗言: “有. 謂八正道 ― 正見乃至正定.” 時,二正士共論議已,各從座起而去.
[2] 閻浮車問舍利弗: “謂涅槃者,云何為涅槃?” 舍利弗言: “涅槃者,貪欲永盡,瞋恚永盡,愚癡永盡,一切諸煩惱永盡,是名涅槃.” 復問: “舍利弗! 有道有向,修習多修習,得涅槃耶?” 舍利弗言: “有. 謂八正道 ― 正見乃至正定.” 時,二正士共論議已,各從座起而去. (後略)
[역문]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마갈제국(摩竭提國) 나라(那羅)라는 마을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존자 사리불(舍利弗)도 또한 마갈제국 나라 마을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사리불의 옛 친구인 염부차(閻浮車)라는 외도가 있었다. 그는 사리불에게 가서 인사하고 서로 안부를 물은 다음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사리불에게 물었다.
"현성(賢聖)의 법과 율 가운데 어려운 것이 무엇입니까?"
사리불이 염부차에게 말하였다.
"오직 출가(出家)하는 일이 어렵습니다."
염부차가 사리불에게 물었다.
"출가한 이에게 어려운 일은 무엇입니까?"
사리불이 염부차에게 말하였다. "사랑하고 좋아하기[愛樂]가 어렵습니다."
"사랑하고 좋아하는 이에게 어려운 일은 무엇입니까?"
대답하였다. "좋아하더라도 착한 법을 닦기는 어렵습니다."
다시 물었다.
"사리불이여,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면, 항상 착한 법을 닦아 더욱 자라나게 하는 길[道]이 있고 방법[向]이 있습니까?"
대답하였다.
"있습니다. 이른바 팔정도(八正道)이니, 즉 바른 소견[正見]․바른 뜻[正志]․바른 말[正語]․바른 업[正業]․바른 생활[正命]․바른 방편[正方便]․바른 기억[正念]․바른 선정[正定]입니다."
염부차가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이것이 곧 좋은 길이요, 이것이 곧 좋은 방법으로서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면, 항상 모든 착한 법을 닦아 익힘이 더욱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출가하여 항상 이 도를 닦아 익히면, 오래지 않아 곧 모든 유루(有漏)를 다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두 정사(正士)는 서로 논의를 마치고 각각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이와 같은 염부차의 물음과 비슷한 내용의 40경을 말씀하셨다.
[1] 염부차가 사리불에게 물었다.
"어떤 이를 설법을 잘하는 이[善說法者]라 하고, 세간의 바른 수행자[世間正向]라 하며, 어떤 이를 세간의 선서[世間善逝]라고 합니까?"
사리불이 말했다.
"만일 욕탐(欲貪)을 항복 받고 성냄[瞋恚]를 항복 받고 어리석음[愚癡]을 항복 받으라고 설법한다면, 그런 이를 세간의 설법하는 이라 합니다. 만일 욕탐 항복 받기를 실천하고 성냄 항복 받기를 실천하며, 어리석음 항복 받기를 실천한다면, 그런 이를 바르게 수행하는 이라 합니다. 만일 탐욕이 이미 다하여 남김없이 끊어진 것을 알고, 성냄과 어리석음이 이미 다하여 남김없이 끊어진 것을 안다면, 그런 이를 잘 끊은 이라고 합니다."
다시 물었다.
"사리불이여,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면 능히 잘 끊을 수 있는 길이 있고 방법이 있습니까? "
사리불이 말하였다.
"있습니다. 이른바 팔정도이니, 즉 바른 소견과 …… (내지) …… 바른 선정입니다."
그 때 두 정사는 서로 논의를 마치고 각각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2] 염부차가 사리불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열반(涅槃)이라고 합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열반이라는 것은 탐욕이 영원히 다하고, 성냄이 영원히 다하며, 어리석음이 영원히 다하고, 일체 모든 유루(有漏: 번뇌)가 영원히 다한 것이니, 이것을 열반이라고 합니다."
또 물었다.
"사리불이여,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면 열반을 얻게 되는 길이 있고 방법이 있습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있습니다. 이른바 팔정도이니, 즉 바른 소견과 …… (내지) …… 바른 선정입니다."
그 때 두 정사는 서로 논의를 마치고 각각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해석]
이 경은 ≪잡아함경≫ 권18 제490경 <염부차경(閻浮車經)>(T2 pp.126a-128a)이다. 이 경은 붓다가 직접 설한 것이 아니다. 붓다의 상수제자인 사리뿟따(Sāriputta, 舍利弗) 존자가 잠부카다까(Jambukhādaka, 閻浮車)라는 유행자의 질문에 답변한 것이다. 일종의 교리문답 형식으로 편찬된 경이다.
이 경은 ≪상윳따 니까야≫의 제38 잠부카다까 상윳따(Jambukhādaka-saṃyutta)의 내용과 일치한다.(SN. Ⅳ. 251-261) <잠부카다까 상윳따>는 열여섯 개의 작은 경으로 편찬되어 있다. 이른바 열여섯 가지 주제, 즉 ①열반, ②아라한됨, ③설법자, ④무슨 목적, ⑤안식(安息), ⑥최상의 안식(安息), ⑦느낌, ⑧번뇌, ⑨무명, ⑩갈애, ⑪폭류, ⑫취착, ⑬존재, ⑭괴로움, ⑮자기 존재, ⑯행하기 어려움 등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염부차경>에서는 서른 개의 작은 경들이 수록되어 있다. 니까야와 아가마를 비교해 보면 경전의 숫자와 순서는 물론 내용도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 경에 의하면 붓다께서 마갈타(摩竭陀)국의 나라(那羅)라는 마을에 머물고 계실 때, 사리불(舍利弗) 존자도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염부차(閻浮車)라는 유행자(paribbājaka)가 사리불 존자를 찾아와 서로 문답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경에서는 염부차(閻浮車)가 사리불의 옛 친구로 묘사되어 있지만, 잠부카다까는 사리뿟따의 조카였다. 그는 옷을 입는 유행자(channa-paribbājaka)였다고 한다. 그리고 날라까가마까(Nālaka-gāmaka, 那羅部落)는 사리뿟따 존자가 태어난 마을이다. ≪디가 니까야 주석서≫(DA. Ⅱ. 549)에 의하면, 사리뿟따 존자는 이 날라까 마을에 있는 그의 고향집에 가서 어머니를 불교에 귀의하게 하고, 옛날 자기 방에서 세존보다 먼저 열반했다고 전한다. 이곳은 사리뿟따 존자와 인연이 깊은 곳이며, 그가 이곳에서 설한 경들이 ≪상윳따 니까야≫의 여러 곳에 수록되어 있다.
<염부차경>의 서두에 나오는 주제는 ‘법과 율에서 행하기 어려운 것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사리불은 염부차에게 출가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자 염부차는 “출가한 자에게 어려운 일은 무엇인가?”라고 다시 묻었다.
사리불은 “사랑하고 좋아하기[愛樂]가 어렵다.”고 대답했다. ‘사랑하고 좋아하기’, 즉 愛樂이란 출가를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음을 뜻한다. 이어서 “사랑하고 좋아하는 이에게 어려운 일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좋아하더라도 착한 법을 닦기는 어렵습니다.”라고 답변했다.
다시 염부차가 물었다. “사리불이여,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면, 항상 착한 법을 닦아 더욱 자라나게 하는 길[道]이 있고 방법[向]이 있습니까?” 이에 대해 사리불은 “있습니다. 이른바 팔정도(八正道)이니, 즉 바른 소견[正見]․바른 뜻[正志]․바른 말[正語]․바른 업[正業]․바른 생활[正命]․바른 방편[正方便]․바른 기억[正念]․바른 선정[正定]이다.”라고 대답했다. 이 내용은 ≪상윳따 니까야≫(SN38:16)에는 이 내용이 별도의 ‘행하기 어려움 경(Dukkāra-sutta)’(SN. Ⅳ. 260)으로 설해져 있다.
위 내용은 성인의 법과 율에서 가장 행하기 어려운 것은 ‘출가’하는 것이고, 출가한 자가 출가를 후회하지 않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출가자가 착한 법을 닦아 더욱 자라나게 하는 길은 팔정도를 실천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염부차경>의 제1경의 주제는 ‘설법을 잘하는 이[善說法者]’이다. ≪상윳따 니까야≫(SN38:3)에서는 <설법자 경(Dhammavādi-sutta)>(SN. Ⅳ, 252-253)으로 되어 있다. 염부차 유행자가 사리불 존자에게 “어떤 이를 설법을 잘하는 이[善說法者]라 하고, 세간의 바른 수행자[世間正向]라 하며, 어떤 이를 세간의 선서[世間善逝]라고 합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사리불 존자는 “만일 탐욕(貪欲)․성냄[瞋恚]․어리석음[愚癡]을 항복 받으라고 설법한다면, 그런 이를 세간의 설법하는 이라 합니다. 만일 탐욕․성냄․어리석음 항복 받기를 실천한다면, 그런 이를 바르게 수행하는 이라 합니다. 만일 탐욕․성냄․어리석음이 이미 다하여 남김없이 끊어진 것을 안다면, 그런 이를 잘 끊은 이라고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한마디로 탐(貪)․진(瞋)․치(癡) 삼독을 제거하기 위해 법을 설하는 자가 ‘선설법자(善說法者)’라는 것이다. 한편 이 경에 나오는 ‘세간의 선서[世間善逝]’는 ‘이 세상에서 잘 가신 분들’이라는 뜻이다. 원래 선서(善逝, sugata)는 여래십호의 하나이지만, 이 경에서는 모든 아라한들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염부차경>의 제2경의 주제는 ‘열반(涅槃)’이다. ≪상윳따 니까야≫(SN38:1)에서는 <열반경(Nibbāna-sutta)>으로 되어 있다. 염부차 유행자가 사리불 존자에게 “어떤 것을 열반(涅槃)이라고 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사리불 존자는 “열반이라는 것은 탐욕이 영원히 다하고, 성냄이 영원히 다하며, 어리석음이 영원히 다하고, 일체 모든 유루(有漏: 번뇌)가 영원히 다한 것이니, 이것을 열반이라고 합니다.(涅槃者,貪欲永盡,瞋恚永盡,愚癡永盡,一切諸煩惱永盡,是名涅槃.)”라고 대답했다.
이어서 염부차 유행자는 사리불 존자에게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면 열반을 얻게 되는 길이 있고 방법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사리불 존자는 “있습니다. 이른바 팔정도이니, 즉 바른 소견과 …… (내지) …… 바른 선정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것은 열반을 증득하기 위해서는 팔정도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니까야의 <열반경(Nibbāna-sutta)>에서는 “도반 사리뿟따여, ‘열반, 열반’이라고들 합니다. 도반이여, 도대체 어떤 것이 열반입니까? 도반이여, 탐욕의 멸진, 성냄의 멸진, 어리석음의 멸진, 이것을 열반이라 합니다.(yo kho āvuso rāgakkhayo dosakkhayo mohakkhayo idaṃ vuccati nibbānanti.)”(SN. Ⅳ. 251)라고 설해져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의 개념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리뿟따는 잠부카다까 에게 “열반이란 탐욕의 멸진, 성냄의 멸진, 어리석음의 멸진이다.”라고 일러주었다. 이러한 사리뿟따의 정의는 초기불교의 정설로 인정되어 널리 인용되고 있다. 흔히 열반은 어떤 특별한 경지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탐․진․치 삼독의 번뇌가 완전히 소멸된 상태를 가리킨다. 이 열반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팔정도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 초기불교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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