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라습鳩摩羅什
1세기를 전후하여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면서 범본梵本의 불전佛典이 하나씩 한역漢譯으로 소개되고 그 분량과 종류가 상당수에 이르렀을 때, 교판敎判(교상판석敎相判釋의 준말)의 필요성은 강하게 대두되었습니다. 교판은 석가가 보리수 밑에서 성도成道한 이후, 사라쌍수림沙羅雙樹林에 열반할 때까지 설법한 무수한 경전을 불교의 가르침의 제상(교상)으로 분류해서 그 순서를 설명함으로써 불교경전의 근본진리와 불도수행의 궁극목표를 확립하려는 경전해석법입니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승려들은 너무나 다양하고 때로는 모순되는 것 같은 설법의 내용을 접하면서, 그 교상을 판석하고 화의化義(중생을 도道의 길로 이끌어 이롭게 하는 형식과 방법)의 순서나 교리의 심천深淺에 관한 질서와 체계를 잡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하여 교상판석敎相判釋에 관한 여러 가지 의견들이 속출했습니다. 대역경승大譯經僧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부처의 일음一音과 원음圓音은 평등하고 둘이 없다無二”는 일음교一音敎의 설을 세운 뒤, 양쯔강揚子江을 경계로 강남삼가江南三家와 강북칠가江北七家의 교판가들이 나왔습니다. 수나라 때는 몇몇 교판을 거쳐 지의智顗가 종합적인 체계로 정리했습니다. 그 뒤에도 길장吉藏, 진제眞諦, 현장玄奘 등에 의해 중요한 교판이 나왔으며, 신라의 원효元曉도 독창적인 교판을 제시했습니다.
구자국龜玆國(현재의 신장 쿠차에 속함) 출신의 구마라습을 한자로 鳩摩羅時婆, 拘摩羅耆婆로 적기도 하며, 줄여서 나습羅什, 습什, 의역하여 동수童壽라고도 합니다. 그는 후진後秦 시대의 장안長安에 와서 약 300권의 불교 경전을 한자로 번역한 것으로 유명하며, 그의 불경 번역은 불교 보급에 공헌했을 뿐 아니라 삼론종三論宗, 설실종成実宗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최초의 삼장법사三蔵法師로 불리며, 훗날의 현장玄奘 등 많은 삼장이 등장했습니다. 구마라습은 현장과 함께 2대 대역성大訳聖으로 불리며, 또한 진제真諦, 불공금강不空金剛과 함께 4대 역경가訳経家로 꼽기도 합니다.
구마라습의 역문은 유려하여 <법화경法華經>이나 <아미타경阿彌陀經>의 역문 등은 현대의 법의法儀에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의 번역 사업에 의해 당시 유행하고 있던 <반야경般若經> 연구는 더 연구가 깊어졌고 또 대지도론大智度論 등의 대승론부大乘論部도 처음으로 소개되었습니다. 그가 <반야경>을 포함한 불교 경전들을 불교 본연의 뜻에 맞게 바르게 번역하면서 당시까지 중국에서 유행하던 격의불교格義佛敎의 폐단이 비로소 극복되었습니다.
구마라습은 번역에 대해 “이미 입에서 한 번 씹은 밥을 다른 사람에게 먹이는 것과 같아, 원래의 맛을 잃는 것은 물론 심지어 구역질까지 느끼게 한다”고 했으며, 한역에 대해서도 “천축의 풍습은 문채를 몹시 사랑하여 그 찬불가는 지극히 아름답다. 지금 이것을 한문으로 옮겨 번역하면 그 뜻만 얻을 수 있을 뿐 그 말까지 전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탄허스님과 계룡산 (0) | 2021.08.29 |
---|---|
죽음이란 무엇인가 (0) | 2021.08.29 |
한국사회와 분노 그리고 불교/개인적 · 사회적 분노와 치유의 길 (0) | 2021.08.15 |
생명에 대한 간섭과 불교의 지혜 (0) | 2021.08.15 |
승가대학 전통교과목 (0) | 2021.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