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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허스님과 계룡산

수선님 2021. 8. 29. 12:08

계룡甲寺는 가장 으뜸되는 절이란 뜻이다. 의상대사가 중창한 화엄 10찰 중 하나다. 탄허스님이 말한 艮山사상의 흔적이 서려 있다. 강당의 주련엔 간산사상의 내용이 담겨 있다. 다른 사찰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내용이다.

 

甲生三角法門開 艮佛蓮花君子臺 大夢人天誰大覺 水晶峯塔見如來

세계 으뜸 계룡산에 3봉우리를 만들어 법문을 여니 간불의 연화대가 여기에 있도다. 수많은 인천 중에서 누가 큰 깨달음을 얻을까? 수정봉 꼭대기의 탑<천진보탑>에서 여래를 보네.

미래불=미륵불=간불. 신흥암은 갑사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볼 수 있다. 여기서 보이는 바위탑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탑이다. 계룡산<艮山>에서 미래불이 나투셔서 깨달음으로 인도한다. 간방인 대한민국 계룡산에서 세계의 정신문화를 이끌 부처님이 오신다.

 

鷄化爲龍甲天下 三閣莊嚴護十方 艮山回運降靈山 萬年明德薦馨香

닭이 변해 용이 되니 천하의 으뜸이네 삼성각의 칠성여래 산신 독성님이 장엄하게 시방세계를 옹호하고 간산에 운이 돌아와 신령스러운 상서를 내려줄 것이니 만년의 밝은 덕 향기가 온 세상에 퍼지리라.

艮方은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에 나온다. 지리적으로 보면 한국의 艮山은 오대산이다. 그런데 계룡산을 상징적으로 艮山으로 표현한다. 탄허스님의 출가 전 字가 艮山이다. 계룡산 지역은 미래 정신문화의 수도로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간불과 간산이 담긴 갑사를 뒤로 하고 신원사로 향하면 중악단이 나온다.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은 특별한 의미를 품고 있는 장소다. 諸大山王降臨道場 백두대간의 모든 산신들이 이곳으로 왕림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명성황후가 대한제국 선포 후 만들어졌다. 묘향산의 상악 지리산의 하악 계룡산의 중악은 한반도 3악이다. 중악은 가운데 중심이다. 계룡산 신원사의 중악단은 우리나라 정신의 중심을 의미한다.

 

향적산 국사봉은 높이가 575m이다. 국사봉은 계룡산 천왕봉 기준으로 우백호의 자리에 위치해 있다.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도읍지로 고려했던 곳은 현재 3군 사령부 계룡대 부지였다. 계룡대는 박정희 정권 때부터 준비했던 곳이다. 탄허스님이 설한 간산사상의 근본이 되는 지역이다. 후천세계의 새로운 문명이 일어날 곳이다. 계룡산은 임금 帝를 상징한다. 덕유산 계룡산은 산태극 금강은 수태극 형상이다. 계룡산은 예로부터 많은 도인들이 수행하기 위해 찾는 곳이다.

 

국사봉 정상에는 특별한 구조물이 있는데 남쪽 방향엔 남두육성 동쪽 방향엔 부처 佛 북쪽방향엔 북두칠성이 쓰여 있다. 이것은 예로부터 계룡산은 세상의 중심이라는 의미로 만들어진 표식이다. 국사봉은 연산면으로 이어져 내려간다. 연산역은 주역에서 보면 하나라의 易이 艮괘로 시작하는 곳이다. 계룡산 일대는 모두 艮이 담겨 있다.

탄허스님은 국사봉을 종종 찾으셨다. 이 구조물 옆 또 다른 구조물엔 五 一 火가 적혀 있다. 1-6은 물이고 2-7은 불을 상징한다. 큰 구조물엔 하늘의 별자리를 상징하고 작은 구조물은 五行을 상징한다. 계룡산은 미래를 준비하는 곳이다. 세계의 간방인 한국에서 계룡산은 간산의 의미를 가진다. 앞으로 펼쳐질 계룡산에서의 시절인연을 지켜보면 알 것이다.

天象列次分野之圖 – 국보 제 228호 조선건국 초 흑요암에 새겨 만든 천문도

 

향적산방은 국사봉 등산길 중턱에 있다. 김일부 선생이 정역을 완성한 장소다. 기도를 위한 거북바위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김일부 선생의 再傳제자 학산 이정호 선생을 비롯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정역을 공부한 곳이다. 탄허스님은 학산 이정호 선생을 만나기 위해 방문한 적이 있었다. 향적산방 정면은 능선이 一자로 펼쳐져 있다. 머슴도 벼슬을 하는 명당이라 일컫는 형세다. 현재도 기도나 공부를 위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숭산 국제선원 무상사는 전세계에 한국의 선불교를 알린 숭산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다. 숭산스님과 제자분들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문광스님은 출가하기 전 화계사와 인연이 있었는데 그때 숭산스님은 앞으로 계룡산이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니 사찰을 창건하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숭산스님<1927~2004>은 탄허스님<1913~1983>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1982년 미국 홍법원 개원 10주년 기념 법문에서 탄허스님의 영향을 받아 계룡산을 강조하시고 국사봉 등산로 초입에 무상사를 창건하셨다.  

 

계룡시 신도안면 뒤에 보이는 산이 계룡산 천왕봉이다. 계룡산 정상에서 내려온 산들이 신도안을 둘러싸고 있다. 조선초기 이성계는 신도안을 도성으로 정하려고 해서 도성을 축조했던 주춧돌 흔적들이 남아 있다. 명당 터로 대한민국의 중심지다. 3군 사령부가 있는 신도안면 夫南里는 원명이 佛岩里였다. 조선과 한양도성은 유교를 기반으로 건국되었다. 불암산 부처바위는 도성 밖으로 쫓겨났다. 인왕산 선바위도 도성 밖으로 쫓겨났다. 탄허스님은 계룡산 안쪽 신도안면에는 부처바위가 들어서 있다고 말씀하셨다.     

 

탄허스님은 경전 번역 등에서 일본의 것은 일체 사용하지 않았다. 단 한 번 예외적으로 인용한 글은 일제시대 유키사와 박사의 앞으로 지구의 중심은 계룡산이 될 것이란 말이었다. 계룡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도시다. 이 안에 군부대를 중심으로 미래에 사용될 900만평의 큰 터전이 비워져 있다. 天王峯을 天皇峰 또는 임금 王 자 앞에 날 日을 넣어 天旺峯으로 일제가 수탈정책의 일환으로 바꾼 創地改名을 빨리 고쳐야 할 것이다. 계룡산은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동학사는 운문사와 함께 가장 유명한 비구니 스님의 전통 강원 승가대학이다. 경허스님은 동학사에 강백으로 주석하셨다. 이곳에서 만공스님은 경허선사를 처음 만났다. 탄허스님은 1984<갑자>년부터 1944<갑자>년까지 6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고 하셨다. 비구 사찰에서 비구니 사찰이 된 인연법 역시 남녀의 평등과 음양이 변화한 모습이다. 동학사 스님들은 經眼이 발달하는 학문과 경전을 공부하고 있다. 동학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동학사 앞 文筆峰은 붓 끝과 같은 형상으로 학문이나 학술에 뛰어난 인재들이 많이 나타난다는 곳이다.  

 

자광사는 1969년 탄허스님이 창건한 절이다. 이곳에서 스님은 많은 책을 번역하셔서 많은 유품이 남아 있다. 우암 송시열이 공부하던 集成社 자리다. 후에 대전의 어느 의사가 사서 탄허스님께 창건을 권유했다. 대전하면 유성온천이 떠오른다. 학이 날던 중 날개가 다쳐 내려앉을 곳을 찾다 이곳에 내려와 鶴下里라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탄허스님은 이곳에 한국의 정신문화를 선양할 수 있는 교육기관 설립을 발원하셨다. 비록 생전에 이뤄지지는 못했지만 자광사 주변으로 충남대 한밭대 목원대 건양대 배재대 한남대 을지대 우송대 배재대 같은 수많은 대학들이 예지의 결과물들로 현재 들어서 있다. 그때 동양학을 아우르는 화엄대학원이 만들어졌으면 어땠을까?    

 

탄허스님은 항상 樞星峰下藏經閣에서 쓴다고 토를 달았다. 추성봉은 북극성을 말한다. 별봉이란 이름의 특이한 지형은 북극성을 상징하는 장소다. 별봉은 동아일보 창업주 김성수가 별장을 짓고 많은 사람들을 맞이한 장소다. 탄허스님의 추성봉은 별봉과 국사봉을 중의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문광스님은 본다.

 

자광사 1층 조사전엔 한암스님과 탄허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이곳에 탄허스님의 10만장이 넘는 육필 원고와 유품들이 정리되어 있다. 戊午는 하늘에 태양이 떠서 넓은 땅을 비춘다는 뜻과 같이 자비의 광명이 자광사에서 시작하여 온 세상을 비출 것이다. 해운거사 학산 이정호 등이 찾아와 역학과 함께 한국의 미래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었다. 해운거사는 새로 당선된 케네디 대통령 사진을 보고 단명을 예견하셨다. 자광사는 탄허스님의 간산사상이 남아 있는 역사적 현장이다.      

32회. 문광스님. 탄허스님과 계룡산 중에서

 

 

 

 

 

 

 

 

 

[출처] 924.탄허스님과 계룡산|작성자 Inkf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