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

[수진 스님] “화엄은 정치경제 빈부를 초월한 융화회통사상”

수선님 2021. 8. 29. 11:35

 [지상법석] 부산 해인정사 주지 수진스님

“화엄은 정치경제 빈부를 초월한 융화회통사상”



수진스님은 80화엄과 청량의 소초, 장자의 초를 최초로 한글로 완간하는 대불사에 매진하고 있다. 이제 대불사의 절반을 넘기고 있다. 스님은 경인년을 맞아 호랑이처럼 당당하고 비굴하지 않는 불자가 될 것을 당부했다.

 

“꼭 10년 만이다. 1999년 1월 은해사 운부암으로 두 번째 상좌 안거 대중공양 갔다 온 그 날 저녁부터 쓰기 시작했다. 책 권수로 따지면 80 화엄 중 38권 째다. 양은 반이 지났다. 4~5년 더 걸릴 것 같다. 본래 10년을 계획했는데 8년이면 될 것 같다. 책을 만드는 기간 2~3년을 합치면 10년이 걸릴 것으로 본다.”


최초로 청량의 ‘화엄 소초’ 한글 역해 대불사에 매진하는 전 해인강원 강주 수진스님을 지난 8일 만나 <화엄경>의 사상과 현재 우리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들었다.


‘화엄경소초’ 한글 번역 대불사
불조·스승·부모 報恩에서 시작
  

 
스님이 주석하는 해인정사는 부산 다대포 앞 바다와 그 넘어 거제가 보이는 산 위에 자리하고 있다. 스님의 방은 신도 면담과 <화엄경> 번역 두 가지 일을 하도록 돼 있다. 한 책상에서는 번역을 하고 몸을 옆으로 옮기면 신도 면담 공간이 된다. 웬만해서는 이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책상은 인연이 깊다. 해인사 강원 시절부터 드나들던 관음전 문이다. 특별한 목재도, 유서가 깊은 문화재도 아니지만 불법에 입문하던 시설부터 함께 했던 방문이다.


하지만 한글 완간 불사가 끝나면 미련 없이 떠날 생각이다. 출가해서 10년 단위로 살아왔다. 첫 출가해서 10년은 강원에서 경전을 배우고 사상의 근원을 익힌 다음에는 참선에 매진하며 자신을 찾는데 주력했다. 이어 10년 동안 후학을 양성하며 자신이 갖고 있는 불법을 전파했다. 지금은 불사를 하고 중생을 제도하며 평생의 원력이던 한글 화엄 역해에 매진한다. 이 불사도 10년이면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 스님은 나머지 생은 다시 당신 공부를 위해 보낼 생각이다.
 

80 화엄경의 주석서는 ‘통현장자의 합론(合論)’과 ‘청량(淸凉)스님의 소초(疏抄)’를 말한다. 수진스님은 지난 2006년부터 <청량 화엄경소초> 전 권 역해 대작 불사 중이다. 통현장자의 ‘합론’은 탄허스님의 강설집으로 나와 있지만 <화엄경소초>는 아직 한글 번역본이 없다. 화엄경과 그 주석서인 소, 소에 대한 또 다른 주석서 ‘초’까지 완벽하게 이해해야 역해가 가능하다. 게다가 <화엄경>은 초기부터 부파 중론 유식 등 시대별 불교사상에다 유가 노장까지 이해해야 들여다 볼 수 있다.
 

“청량의 소초를 교재로 채택한지 오래됐지만 아직 번역이 되지 않았다. 80 화엄에다 소 60, 초 90 합쳐 280 화엄이다. 이를 모두 번역했으면 원력을 안 세웠을 것이다. 1200여 년전 청량의 저술을 여태껏 번역을 안한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시간 여유가 없어서였을 것이다. 화엄은 난해함이 차돌을 깨무는 것과 같다. 내 능력이 미약하지만 이 불사를 하는 것은 첫째 불조의 은혜를 갚음이요, 둘째는 스승의 은혜, 셋째는 부모님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다. ‘화엄’을 채택한 이유는 최고의 사상이기 때문이다. 선사상의 기본이 화엄이다. 그래서 더욱 애착이 간다. 선불교를 꽃 피우려면 선의 사상을 확고히 해야 하는데 바로 화엄을 확고히 하는 길이다.”
 

<화엄경>은 종합백과사전이다. 남방.선은 물론 노장.유가 등 제가백가가 다 포함돼 있다. 화엄을 보면 중도 유식을 보지 않아도 다 알 수 있고, 그만큼 제가백가 사상을 다 알아야 ‘깨물을 수’ 있다고 한다. 스님은 선원에서 공부하면서 산철에는 유학에 밝은 유가학자를 모셔 사서삼경을 공부하고 노장을 배웠다. 주역의 대가로부터 역경을 배우는 열의를 보였다. 몇 해씩 배워도 따라가지 못하는 학문을 스님은 단숨에 배워 가르치는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다. “불교사상에 비하면 양과 질 면에서 많이 떨어져 번역만 하면 바로 알 수 있어 어려움이 없었다”고 말했다. 
 
선사상 기본이자 종합백과사전
시대별 불교사상에 儒·老莊 포함
 

 
“역사적으로 볼 때 화엄이 꽃필 때 한국불교가 꽃 피었다. 지금처럼 지적수준이 높고, 글로벌 시대가 특히 화엄이 꽃필 시기다. 이제 화엄을 마음대로 이야기해도 알아듣는 시대가 됐다”는 스님은 화엄사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화엄사상은 융화 회통 무애다. 융화는 이것 저것을 초월하는 것이다. 정치 경제, 돈, 명예, 빈부를 초월한다. 사회를 회통하고 융화할 수 있는 것이 화엄이다. 이 화엄을 정치권에서 이용하도록 지속적으로 설파하고 전파하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다. 불교를 모르는 사람에게 새로운 불교사상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화엄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다.


<화엄경>은 <금강경>과도 비교하면 다르다. ‘금강’은 잘라버리는데 있다. 다하지 말라고 한다. 반면 ‘화엄’은 집어치우고 집어치우지 않는 것이 어디 있냐며 그냥 두라고 한다. 화엄은 그대로 두는 것이다. 그것이 비로화장의 세계다. 그래서 이 세계를 일러 ‘두두가 비로요, 물물이 화장’이라고 했다. 그 세계는 우리 마음이 그렇게 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를 하나로 표현하면 마음(心)이다. 마음이 무엇인가. 불교에서는 모든 것의 주체를 연기로 본다. 이 연기의 주체가 바로 마음이다. 바로 ‘약인욕료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이 문구 속에 핵심이 들어있다.”
 

화엄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불가사의한가를 보여주는 사례를 들어보겠다. 화엄경 ‘현담’에 이르기를 ‘보리수 밑을 떠나지 않고 칠처의 법계에 모든 화엄을 설파한다’는 구절이 있다. 또 ‘도솔천궁품(昇兜率天宮品)’에 이르기를 보리수 밑을 떠나지 않고 도솔천을 갔다는 말이 있다. 이는 4차원의 세계에서 4차원으로 넘어가는 이야기다. 시공이 자유로운 세계가 4차원이다.


이 내용이 현재 IT에서 구현된다. 인터넷의 가상공간의 이론적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서 한 발자욱도 움직이지 않고 온 우주공간에 있다는 것이 바로 IT세계가 아닌가. 불교를 바로 이렇게 설명해야한다. 아는 사람들끼리만 공유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스님은 새해를 맞아 몇가지 당부를 했다. 첫째는 마음을 다스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임을 명심하고, 두 번째는 호랑이처럼 당당한 기상을 잃지 말 것을 당부했다.


“마음을 다스려야 진짜 다스리는 것이며 핵심을 얻는 것이다. 부처님은 최고의 엘리트를 만들기 위해 생을 바쳤다. 이를 일승(一乘)이라고 표현한다. 이승(二乘) 삼승(三乘)이 아니다. 보살도의 세계가 아니다. 하물며 성문 연각에 머물러서야 되겠는가. 붓다의 모습으로 깨어나기를 바란다. 모든 사람이 최고의 가치, 최고의 행복으로 살기를 바라는 것이 바로 불교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가 자기를 알면 된다. 천하의 모든 것을 알아도 자기를 알아야 진정 아는 것이며, 천하의 모든 것을 정복한다 해도 자기를 정복해야 진정 정복하는 것이다. 어떻게 정복하는가. 목숨을 걸고 공부하는 길 밖에 없다. 생명과 바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죽음과 바꿀 짓을 하면 못할 것이 없다. 그것이 공부다.
 

스님은 경인년 새해를 맞아 덕담도 던졌다. “호랑이 포효의 기상이 중요하다. 가난하고 벼슬이 없다고 해서 비굴하게 살아서는 안된다. 호랑이는 굶어죽을지언정 죽은 고기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처럼 가난해도 당당하게 살아야한다. 출가자도 마찬가지다. 돈 명예 사랑 부모 자식 등 가장 소중한 그 무엇을 버리고 출가를 했는데 비굴할 일이 어디 있나.” 
  

 
■ 수진스님은…
 

경남 고성 옥천사 아래 마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부터 자연스럽게 출가를 떠올렸다. 한번 사물에 빠지면 수 시간을 꼼짝 않고 바라 볼 정도로 집중했다. 1971년 부산 마하사에서 문성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스님은 자기를 찾기 위한 공부에만 매진하기를 원했지만 은사는 사상이 확고해야 한다며 경학 연찬을 권했다. 그렇게 해서 10년간 경 공부에 매달렸다. 범어사 강원을 졸업한 후 금산사 화엄학림을 이수했다. 탄허스님 문하에서 화엄을 수학했다.
 

어느 정도 사상이 확고해지자 이번에는 10년간 참선에 몰두했다. 1984년 김천 수도암 안거를 시작으로 봉암사, 통도사 등 제방선원에서 10년간 수행에 매진했다. 1993년부터 해인사 강주를 7년간 맡아 후학을 양성했다.
 

조계종 11대 중앙종회의원, 조계종 교육위원, 교재편찬위원, 전국승가대학협의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현재 부산 해인정사 주지다.

 

[출처: 불교신문 2590호/ 1월16일자]

 

 

 

 

 

 

 

 

 

 

 

[수진 스님] “화엄은 정치경제 빈부를 초월한 융화회통사상”

[지상법석] 부산 해인정사 주지 수진스님 “화엄은 정치경제 빈부를 초월한 융화회통사상” 수진스님은 80화엄과 청량의 소초, 장자의 초를 최초로 한글로 완간하는 대불사에 매진하고 있다. 이

cafe.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