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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불교의 시작은 언제인가?

수선님 2021. 8. 29. 12:34

미국에서 불교의 시작은 언제인가?

 

미국에서 불교가 언제 시작되었느냐에 대해 한국불교계에서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30년 가까이 불교잡지를 발행하다 보니 이것에 대해서 한번쯤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내가 발행하는 잡지에 연재하는 ‘미국불교사’에 여기에 대해 자세하게 쓴 적이 있다.

 

미국에서 불교 교수를 비롯해서 미국불교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1893년 시카고 종교회의를 미국불교의 시작이라고 주장하였고, 이것은 대부분의 기존 미국불교사에서 주장한 내용이었다. 또한 기존 한국불교계에도 이 주장이 대세였다. 한국인으로 미국에서 불교를 강의를 했거나 하고 있는 교수들은 대개 불교철학이나, 개략적인 세계 불교사, 부처님 생애 등을 강의하거나, 세계종교의 하나로 한국불교 등을 강의하는 경우가 많다. 즉 미국불교사를 강의하는 교수는 아직껏 없었다.

 

이 주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주장이 노스 켈롤라이나 대학의 Thomas A. Tweed가 쓴 ‘미국이 만난 불교, The American Encounter with Buddhism 1844-1912'라는 책을 통해 제기 되었다. 이 책을 미주현대불교에서 2008년 9월부터 한창호씨의 번역으로 연재하면서 1844년이라는 주장을 소개하였다. 이 번역은 2014년에 한국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고, 한국사회에 이 주장을 소개하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주장을 지지한다.

 

 

미국불교는 뉴잉글랜드를 중심으로 한 동부에서는 유럽계 미국인들과 서부 캘리포니아로 입국한 중국인들에 의해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었다. 동부에서는 1844년 불교에 대한 담론이 시작되었고 서부에서는 1853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 타운에 미국 최초의 사찰인 ‘체얍 조합’에 의해 설립되었다.1864년에는 그 경쟁회사가 두 번째 사찰을 세웠고 1875년에는 샌프란시스코에 8개의 사찰이 있었다. 이들은 1850년대 골드러시 때 들어온 중국인들이었다.

미국에 불교전파의 특징 중의 하나는 불교가 없는 지역에 포교승들이 들어가서 포교를 한 것이 아니라 불교에 흥미를 느낀 사람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불교에 대한 담론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1844년 미국에 불교가 시작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배경설명이 필요하다.

 

 

19세기의 미국사회

 

프론티어의 개척과 미국의 건설, 그리고 도덕개혁운동, 기독교 대각성운동

 

1775년에 시작된 미국독립전쟁은 1783년 파리조약으로 영국이 미국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완성하게 되었다. 이후 미국의 행보는 국가적 기틀을 다지고 영토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1787년에 미국의 헌법이 재정되어 반포되었고, 1789년에 조지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 되었다. 독립 후 불과 60년 정도 만에 미국은 31개 주로 발전했다. 미국의 독립은 그동안 독립전쟁으로 미루어졌던 영토 확장 정책을 재점화 시켰다. 이른바 프론티어(frontier)라고 불리는 서부의 개척지로 진출하는 개척운동은 미국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새로운 삶의 터전과 기회를 찾아 19세기 중반까지 이어졌다. 19세기 중반에는 콜레라 발생으로 인해 큰 사회문제가 되었고 그 치유책으로 엉뚱하게 기독교 대각성운동도 일어났다. 1832년에 미국에서 최초로 발생했던 콜레라를 비롯해 1849년과 1866년에 재발했던 유행성 콜레라를 통제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들이 발생했다. 그리고 콜레라 통제 전략과 정책들은 이 시기에 미국사회가 직면했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 개혁운동과도 결합되기 시작했다.1832년에 뉴욕에서 처음 발생했던 유행성 콜레라를 통제하기 위해 시작된 개혁운동은 바로 도덕개혁(moral reform)이었다. 당시 콜레라의 발생 원인을 둘러싸고 다양한 논쟁들이 발생했는데, 종교인들은 “부조리한 미국사회의 체제” 때문에 유행성 콜레라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19세기 이후 대규모의 운하 및 철도 건설과 더불어 뉴욕은 미국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로 발전했고, 미국 내 여러 도시들과 유럽의 도시들을 연결하는 경제중심지로 부상했다. 이와 같이 19세기 초에 발생했던 경제적 성장 때문에 미국시민들은 점차 물질주의에 빠지기 시작했다. 물질과 향락을 추구하면서 인간의 욕망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됨에 따라 오랫동안 미국사회를 지배했던 청교도주의(Puritanism)에서 강조했던 금욕과 절제는 더 이상 미국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로 작동할 수 없었다.

1830년대에 미국사회로 유입된 이민들 가운데 현저하게 두드러진 것은 바로 아일랜드 이민들이었다. 비록 종교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을지라도, 미국사회는 기본적으로 프로테스탄트 사회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19세기 초부터 카톨릭을 믿는 아일랜드 이민들이 급증함에 따라 미국사회에는 反카톨릭 정서가 만연하기 시작했다. 아일랜드 이민들처럼 토착 미국인들이 원하지 않는 이민들이 급증함에 따라 이 시기에 미국사회에서 확산된 것이 바로 反이민주의였다. 19세기에 미국사회는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다양한 이민 등으로 인해 이전 시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변화했다.

 

 

미국 건국시기(1780년대)와 -1830년 사이의 미국인들의 세계종교에 대한 이해

 

미국이 영국으로 독립한 것은 1776년 7월 4일 이다. 이 1776년에 조선은 정조가 왕위에 오른 때이다. 정조는 1800년까지 왕으로 있었다. 이 시기에 천주교가 조선 백성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하던 때이다. 그에 따른 조선 왕조의 대응도 있었다. 즉 조선에 천주교가 시작되던 시절이다.

이러한 무렵에 미국인들은 동양을 대표하는 불교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들이 아는 종교는 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주였고 나머지 종교는 잘 몰랐다. 대부분 미국인 해석자들은 종교계 지도를 (1)그리스도교, (2)유대교, (3)마호메트교, (4) 이단, 혹은 이교도. 종교를 구별할 줄 아는 해석자들은 기독교 외에 이슬람, 유교, 힌두교가 가장 널리 알려졌다. 19세기의 1840년대 들어 서양인들의 불교지식은 조금 증대되었다.

1840년대와 1850년대에 붓다는 종교 창시자로 예수, 마호메트, 공자와 합류했다. 동시에 붓다가 세운 전통이 힌두교 및 기타 ‘이단’의 구성요소와 구별되기 시작했다. 1830년대와 1840년대에 두 가지 진전된 상황이 있었다. 유럽인들의 불교연구 개시와 뉴잉글랜드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 출현이다.

 

 

불교인들은 이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자들을 유심히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수필가로 널리 알려진 에머슨, 그리고 법정스님, 함석헌 등이 큰 사상적 영향을 받았던 ‘월든 Walden'의 저작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시인 월트 휘트먼 등이 여기에 속한다. 소로우는 비록 불교를 잘 몰랐지만 그 당시에 명상을 하고, 생태주의적 삶을 살았기 때문에 가장 전형적인 불교적인 삶을 살았다고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들의 기관지 <다이얼 <The Dial>에서 법화경을 소개한 것이 1844년이다.

 

참고로 초월주의자들 소개를 덧붙인다.

 

미국초기의 초월주의자들(낭만주의자들):

랄프 왈도 에머슨(1803~ 82),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62), 월트 휘트먼(1819~92)

 

초월주의(超越主義, Transcendentalism)는 1830년대부터 1840년대 본격화된 산업혁명과 근대국가로 발돋음 하는 미국의 전환기를 밑바탕으로 미국의 사상가들이 주장한 이상주의적 관념론에 의한 사상개혁운동이다. 초월주의란 직관적 지식과 인간과 자연에 내재하는 신성 및 인간이 양도할 수 없는 가치에 대한 믿음을 망라하는 관념주의의 한 형태이다.

운동의 주요 인물로는 랠프 월도 에머슨헨리 데이비드 소로, 존 뮤어 , 마가렛 풀러 , 그리고 아모스 브론슨 Alcott . 다른 유명 초월주의자 포함 루이자 월 Alcott , 찰스 티모시 브룩 , 오레 스 테스 Brownson , 윌리엄 Ellery 채닝 , 윌리엄 헨리 채닝 , 제임스 프리먼 클라크 , 크리스토퍼 Pearse Cranch , 월트 휘트먼 , 존 설리반 드와이트 , Convers 프란시스 , 윌리엄 헨리 Furness , 프레드릭 헨리 헤지 , 실베스터 져드 , 시어도어 파커 , 엘리자베스 팔머 Peabody , 조지 리플리 , 토마스 트레드 스톤과 존스 참 등이 있다. 1840년 이들은 <<다이얼 <The Dial>> 지를 창간하였다. 에머슨은 창간사에서 “새로운 정신의 잡지”라고 했다. 처음에는 마거릿 풀러가 편집하다가 후에 에머슨이 잡지의 편집을 맡으면서 초월주의자들이 미국에 제시하려는 새로운 사상들의 출구를 마련해 주었다. 이 잡지는 비록 단명했지만 이 학파의 젊은이들에게 여러 가지 중요한 쟁점들을 제공해 주었다

 

근원: 초월주의의 사상적 영향의 근원을 찾자면, 독일 관념주의, 영국 낭만주의, 신플라톤주의, 동양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흔히 초월주의는 문화적, 사상적 빈곤 상태에 있던 19세기 미국 사상가들이 궁여지책으로 편의에 따라 여기저기 수용한, 독창적이지 못한 일종의 조합철학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초월주의의 근본은 초기 미국 역사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청교도주의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고, 미국 특유의 역사적, 문화적 토양에서 필연적으로 자생한 사상이다. 19세기 전반 정치적 독립에도 불구하고 영국 및 유럽의 여러 제국에 정신적 종속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던 미국은 자신들의 국가 정신을 효과적으로 표현해 주는 사상 체계를 필요로 하게 되었으며 때마침 변색되어 가던 청교도주의 또한 신생 미국의 문화적 독립과 새로운 사상의 욕구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대략 19세기 전반에 초월주의는 미국의 문예 부흥기를 장식하며 사실상 미국의 사상,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즉 초월주의는 19세기 전반에 낭만주의에서 분파되어 미국 문화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이들은 아시아 종교에 매료되었다. 이들은 아시아 종교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들은 동양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창의적 작가들이 많았다. 이들은 앞 세대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서 번역해왔던 힌두교, 불교 문헌들을 자유롭게 이용했다. 이들은 잭 켈루악, 게리 스나이더, 알렌 긴스버그, 앤 왈드맨 같은 비트세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유럽인들의 불교연구의 시작과 미국에 끼친 영향

 

유럽과 미국에서는 불교에 관한 학문적 연구의 시작 외제네 뷔르노프의 활동에 기인한다. 외제네 뷔르노프Eugène Burnouf(1801~52)와 크리스띠앙 라센(Christian Lassen, 1800~ 76)가 공동으로 쓴 최초의 팔리어 문법서  '팔리어에 대한 논문(Essai sur le Pali)'이 처음 출판된 것은 1826년이다. 유럽 최초의 팔리어 문법서였다. 불교언어인 팔리어 문법서 발행이 중요하지만 유렵에서 본격적인 불교연구 시작은 뷔르노푸의 ‘인도불교사입문 L' Introduction à l'histoire du Bouddhisme indien (1844)'이라는 주장이 많다.

 

뷔르노프의 저작을 예일대 교수인 엘브리지 솔즈베리(Edward Elbridge Salisbury 1814~1901) 가 1844년 5월 28일 미국 동양학회( the American Oriental Society) 첫 연례모임에서 발표한 ‘불교역사에 관한 연구보고(Memoir of the history of Buddhism)'에 나타나 있다. 솔즈버리 교수는 프랑스에서 뷔루노프와 함께 공부했고 논문을 통해 뷔르노프의 연구결과를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솔즈베리의 강연이 있기 전 몇 달 전에 엘리자베스 피바디가(Elizabeth Peabody 1804~94)는 초월주의 자들이 발행하는 ‘다이얼’지에 싣기 위해 뷔르노프의 저작으로부터 한 구절을 번역한 바 있다. 피바디는 ‘법화경’의 불어 번역본에서 그 구절을 따왔다. 1844년 해설이 달린 피바디의 번역과 솔즈베리의 강연이 미국인들에게 불교 논의를 촉발시켰다. 피바디는 당대의 지도적 여류 지식인 중 한 사람이었고 교육자, 개혁가, 저술가, 편집자. 그리고 출판업자 였다. 그녀는 에머슨의 권유로 다이얼지 편집을 맡았다. ‘다이얼’지에는 에머슨이 편집인으로 있을 때부터 동양에 관심을 보이며 소수민족 경전들을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당시에 불교인이 뚜렷하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불교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알려진 상태였고 관심의 대상이었으므로 담론이 시작된 1844년을 미국불교의 출발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시의 조선시대 연표

 

1776~ 1800: 정조 시대

1800년 조선 순조 즉위

1801년 신유사옥·황사영 백서 사건, 공노비 해방

1811년 홍경래가 홍경래의 난을 일으킴

1831년 천주교 조선교구 설치됨

1832년 영국의 로드 암허스트호가 최초로 통상을 요구

1834년 조선 헌종 즉위

1839년 기해사옥 일어남

1846년 병오사옥 일어남

1849년 조선 철종 즉위

1854년 미국과 일본 미일수호통상조약 맺음

1860년 경신사옥 일어남, 최제우가 동학 창도. 일본 사절단 처음으로 미국도착

1861년 김정호가 대동여지도 간행

1862년 진주에서 임술 농민 봉기 일어남

1863년 조선 고종 즉위하고, 흥선대원군 집권

1864년 동학의 교조 최제우 처형됨

1865년 경복궁 중건

1866년 병인사옥, 병인양요, 제너럴 셔먼호 사건 일어남

1871년 신미양요 일어남

 

조선에 서양인들이 출현하고 천주교가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에 미국 동부 보스톤에서는 불교에 대한 담론이 시작되었고, 서부에서는 중국인들에 의해 절이 건립되었다.

미국의 불교 논의는 1844년 피바디가 초월주의자들의 잡지를 위해 프랑스어 불경을 영어로 번역하고, 솔즈베리가 미국 동양학회에서 불교 관련 강의를 했을 때 시작되었다는 것이 1893년 시카고 종교회의가 시작이라는 주장에 반하는 다른 주장이다. 이들은 불교에 관한 많은 담론을 하였고 이 담론 집단의 미국인 구성원 대부분은 영국 출신의 신교도 유산을 물려받은 교육받은 뉴잉글랜드 남성들이었다.

 

나는 이 주장을 지지한다.

 

동부지역에서 강연과 출판을 통해 불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고 불교 옹호론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기독교와 문화적 긴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크게 남아 있었다. 불교가 마침내 그렇게 많은 관심을 끌게 되었음에도, 불교를 포교하는 포교승이 없었기 때문에 불교 포교에는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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