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님 곁에서 일상을 도와드리고 있는 시자스님이 한적한 어느 날 노스님에게 여쭸습니다.
"스님! 스님께서는 출가하여 스님이 되신 지 몇 년이나 되셨습니까?"
"왜? 어려서부터 입산수도를 했으니 70년은 훨씬 넘은 것 같다."
"스님께서는 그렇게 오랫동안 공부를 하셨으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8만4천 법을 다 보셨는지요?"
"허허허~ 그럼 너는 저 바다에 있는 바닷물을 다 먹어봐야 짠 줄 알겠느냐?"
팔만 경전 중에서 고르고, 뽑아서 엮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경전구절>
어딘가에 뽑힌다는 것은 갈등 없는 영광이며 따를 시비가 없는 자랑일 수 있지만 수많은 대상 중에서 뭔가를 골라 뽑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혼자만의 호불호에 따라 뽑거나 선호도를 매기는 거야 어려울 게 없지만 공공연하게 여럿 중에서 뽑거나 탈락시켜야 한다면 객관적인 기준이나 근거가 요구되니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여럿 중에서 일부를 선정해 '가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으로 엮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며 여러 고비의 과정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무슨 근거로 그것들이 '가장'이 될 수 있느냐는 시비를 받을 수도 있고, 그것보다는 이것이 더 좋은 것 같은데 '네 입맛에 맞지 않으니 이것은 뺀 것 아니냐'는 비아냥거림을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뭔가를 뽑아 '가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 이렇듯 쉽지 않음에도 8만4000가지나 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185개의 구절만을 뽑고 엮어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경전구절>로 출간되었습니다.
이진영이 엮고 <불광출판사>에서 출간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경전구절>은 동국대학교 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역경원에 재직하며 강의 중인 역자가 팔만 권이 넘는 경판 중에서 1차적으로 300여개의 구절을 선정하고, 집필과 경전 번역, 불교 방송 진행 등으로 불교계에서 내로라하는 무비, 원철, 정목스님의 감수를 거치며 최종적으로 185 구절만을 선정해 엮은 내용입니다.
감관을 다스리는 법
-잠아함경|제11권
눈으로 보는 저 모습들
마음에 맞기도 하고 맞지 않기도 하다.
마음에 맞아도 탐욕하지 말고
마음에 안 맞아도 미워하지 마라.
귀로 듣는 저 소리들
기억하고 싶은 것도 있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
기억하고 싶어도 즐거워하며 집착하지 말고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미워하지 말라. -p210-
역자는 글, 법회, 인터넷 등에서 가장 빈번하게 인용되는 경전 중에서 선별하였으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가장 많이 애독되는 구절'을 선별기준으로 하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누구나 공감 할 수 있고 가장 많이 애독되는 구절을 기준으로 하여 선별한 내용이니 8만4000경전의 백미, 경전 중의 경전만을 모은 내용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향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난다.
-법구 비유경|제1권
땅에 종이가 떨어져 있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을 집어라."
제자들은 분부대로 그것을 집었다.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그것은 무엇에 쓰였던 종이인가?"
"이것은 향을 쌌던 종이입니다. 지금은 비록 버려져 있지만 향내는 여전합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걸어가시는데 끊어진 새끼줄 토막이 땅에 떨어져 있었다.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그것은 무엇에 쓰였던 새끼줄인가?"
"이 새끼줄에서 비린내가 나는 것으로 보아 생선을 묶었던 새끼줄인 것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물건이든 본래는 깨끗하지만, 모두 인연을 따라 죄와 복을 일으키는 것이다. 현명한 이를 가까이 하면 도(道)의 뜻이 높아지고, 어리석은 이를 가까이하면 재앙이 온다. 그것은 마치 향을 쌌던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고, 생선을 묶었던 새끼줄에서는 비린내가 나는 것과 같아서 차츰 물들어 친해지면서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pp30~31-
읽어가다 보면 서양에서 전해오는 우화로만 알았던 내용도 만날 수 있고, 2600여 년 전에 말씀하신 내용이 아니고 요즘 이야기라 해도 전혀 모자람이 없을 초감각적인 내용들이 시공을 초월하는 생동감으로 꿈틀대고 있습니다.
경전 중의 백미만을 모아 엮은 '경전 중의 경전'
108염주를 돌리듯이 들고 다니며 읽기에 딱 좋은 크기로 편집돼 있고, 손바닥만 있으면 언제든지 한 모금의 바닷물을 떠 마실 수 있듯이 불교와 관련한 별다른 지식 없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평이한 내용이며 문체입니다.
바닷물 모두를 마시지 않고, 손으로 한 모금만 떠마셔 봐도 바닷물이 짜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8만4000 모든 법문을 다 읽지 않아도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떠하다는 것을 맛보게 해줄 경전 중의 백미, 8만4000 법문 속에서 보석처럼 빛을 발하는 경전 속의 구절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진액(엑기스) 경전의 파노라마입니다.
덧붙이는 글 |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경전구절>|이진영 엮음|무비·원철·정목 감수|불광출판사|2011.6.13|책값: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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