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불교

설오 스님의 티베트 불교 강의 - 바르도(bardo)의 가르침

수선님 2021. 9. 21. 14:53

설오 스님의 티베트 불교 강의 - 바르도(bardo)의 가르침

 

설오스님(인도 다람살라에서 티베트불교 수행中)

 

포와 수행법

포와란 ‘의식을 천이(遷移)한다’는 뜻으로, 나로바 육성취법의 한 부분인 동시에 티베트 사람들이 죽음에 임하여 가장 많이 사용하는 수행법이기도 하다.

사람이 죽으면 의식이 육신의 아홉 구멍을 통해 나가게 되는데, 이 아홉 개의 구멍을 윤회에 드는 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미타불의 가피를 믿고 평소에 포와법을 수행하면 정수리의 범혈(梵血)이 열려, 의식이 그 통로를 통하여 극락세계로 왕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범혈을 ‘성인에 드는 문’이라고 한다.

포와 수행은 아주 보편적인 수행법으로 요즈음 외국인들에게도 티베트 린포체들에 의해 많이 전수되고 있다. 이 수행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임종을 도와줄 수 있는 아주 유용한 수행법이다.

포와법을 수행하게 되면 범혈이 열렸는지의 여부를 린포체들이 직접 검증해 준다. 이 포와 수행에 얽힌 두 편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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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만에 있을 때, 밀종에 신심을 내고 있던 한 신도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때마침 티베트의 린포체가 대만을 방문 중이어서 신도는 그분께 포와를 청하였다.

린포체는 신도의 아버님을 위해 포와를 하였고, 사람들은 관을 열어 시신의 정수리 부분을 검사하였다. 그런데 의식이 빠져나간 범혈 부분의 머리카락만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이야기를 듣고 신심이 난 나는 포와 수행을 전수하는 안양린포체를 찾아뵙게 도반스님 둘과 함께 포와 수행을 전수받았다. 그런데 3일이 지나자 정수리 부분에 전에 없던 기감(氣感)이 느껴지기 시작하였으며, 일주일이 지난 뒤 도반스님 둘과 함께 린포체를 찾아뵈었더니, ‘모두 범혈이 열렸다’는 검증을 해주셨다.

그 뒤 더욱 신심이 나서 1년에 한 번씩 인도의 보드가야 성지에서 열리는 포와 수행에 보름 동안 참석하였다. 그때도 나는 함께 수행하던 티베트 사람들과 서양 사람들로부터 범혈이 열리고, 아미타불을 직접 친견한 이도 간혹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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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 암틴의 무문관 도반 중 정진을 아주 잘하는 독댄이 있었다.

그는 티베트가 중국에 함락된 후 인도로 피신하지 못하여, 많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중공군에게 끌려가게 되었다. 도중에 황야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독댄은 눕지 않고 바위를 등진 채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었다.

다음날 아침, 같이 가던 마을 사람들은 그가 앉은 상태에서 포아를 하여 극락세계로 간 것을 발견하였다.


이 포와 수행과 관련하여, 티베트에서는 일반사람의 시신이라도 사흘이 지나기 전에는 옮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고, 그의 의식이 언제 떠나게 될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만일 시신에 손을 대게 되면 의식이 손을 댄 부분 쪽으로 쏠리고, 정수리 쪽의 범혈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나가게 되어 불행하게 태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특히 신중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만의 큰스님들은 의식이 육체를 떠나는 데 8시간 이상 걸린다고 주장하는데 반해, 티베트에서는 대부분 3일 이상이 걸린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시신의 검사나 화장은 3일이 지난 후에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만약 그 전에 시신을 옮기거나 만져야 할 경우에는 반드시 포와 수행을 먼저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나도 이 포와 수행과 관련된 체험을 한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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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속가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 가족들에게 당부하였다.

“호흡이 끊어지기 전에 시신을 두고자 하는 자리로 모신 다음, 향을 피우고 ‘나무아미타불’ 염불 테이프를 돌아가시기 전부터 24시간 계속해서 들려드리도록 하십시오. 호흡이 끊어진 후 8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절대로 시신에 손을 대거나 울거나 잡담하여서는 안 됩니다. 모여 앉아 경건히 염불만 하도록 하십시오.”

그래서인지 할머니께서 평소의 발원대로 확실히 극락정토에 나신 선몽이 있었다.

불법에 신심이 깊지 않았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당신의 시신 앞에서 향을 피우고 극락정토와 아미타부처님에 대해 설명해 드렸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해드렸다. 문득 가슴 쪽에서 전단향내가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으며, 외할머니의 시신은 너무도 고요하고 편안해 보였다.

그러자 친척들은 모두 기뻐하였고, 그 중의 연로하신 분들은 자신이 죽을 때에 그렇게 해달라며 부탁을 하셨다.


소걀린포체는 포와 수행을 ‘죽어 가는 사람을 위한 가장 가치 있고 효과적인 수행’이라고 하면서, 이 수행을 활용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누구든지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포와 수행의 핵심을 [티베트의 지혜]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구체적인 포와 수행법은 그 책을 참고하기 바란다.

 

바르도란

히말라야에서 흘러나온 가장 진귀한 가르침 중의 하나는 놀라울 정도로 상세한 바르도에 대한 가르침일 것이다.

‘바르도’란 티베트 어로 ‘중간상태’라는 뜻인데, 흔히 죽음과 환생 사이에 생겨나는 ‘중음(中陰)의 상태’를 가리킨다.

깨달은 안목에서 보면 삶과 죽음과 시작도 끝도 없는 흐름의 일부이며, 죽음과 새로운 삶 사이의 바르도 상태도 그 흐름의 일부이다. 바르도 상태의 구체적인 양상과 그때 해탈할 수 있는 비전 등은 티베트 스승들이 깨달음을 통하여 일찍부터 정립하였다.

물론 살아 있을 때에도 바르도, 곧 중음의 사태를 경험할 수 있다. 선정상태에서의 의생신(意生身)을 일으키는 선정중음도 있고, 잠잘 때에 꿈속에서 활동하는 몽중(夢中) 중음도 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중음의 상태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거의 유사하지만, 스승으로부터 바르도에 대한 가르침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거의 인지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티베트에서는 죽는 과정과 죽은 이후의 바르도 상태에서 일어날 일들을 미리 인식하기 위해, 살아 있을 때 스승을 의지하여 상세한 가르침을 받고 끊임없이 마음의 본성을 자각하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잠잘 때와 꿈꿀 때 등의 다양한 국면을 수행에 활용하고 있다.

티베트 사람들은 살아생전에 죽음에 대한 준비를 가장 열심히 하는 민족일 것이다. 그들은 죽을 때 극적으로, 또는 수행자로서 조금도 어긋나지 않게 죽기를 염원한다. 그러므로 살아 있을 때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 또는 ‘죽은 후에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는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깊이 사유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진 파드마삼바바의 [티베트 사자의 서]와 같은 저술들이 티베트에서 생겨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전 세계에 번역되어 서양의 과학문명을 놀라게 했던 이 책은, ‘죽음 직후부터 다음 생의 몸을 받을 때까지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는가’를 밝힘과 동시에, ‘죽어가는 사람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를 기록한 경전이다.

[티베트 사자의 서]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육신을 벗어 버린 중음의 상태에서 구경의 해탈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를 맞게 된다는 것을 천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쥐덫에 걸려 있던 쥐가 덫에서 풀려나듯, 육신의 굴레를 벗어 버린 영혼은 육신의 옷을 입고 있을 때보다 일곱 배 이상의 힘과 영민함을 발휘한다고 한다. 따라서 살아 있을 때 수행을 통해 그토록 갈망했던 최고의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중음의 상태에서 주어진다는 것이다.

종카파 대사를 비롯한 티베트의 많은 성취자들이 ‘구경의 해탈을 죽음의 순간에 성취했다’고 전해지고 있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티베트에서는 스승들의 태어난 날은 기념하지 않고 그가 죽은 날, 곧 최후의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기념한다.

실로 ‘바르도 가르침’의 독특함과 힘은 죽음의 실제 과정을 지극히 명료하게 제시함으로써 해탈의 방편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데 있다.

그들은 죽어가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과 죽은 이후의 바르도 과정을 다음의 세 단계로 상세히 진술하고 있다.

① 법신 성취를 할 수 있는 광명의 단계

② 보신 성취를 할 수 있는 달마다투(법성에서 광휘의 불꽃이 일어나는 단계)

③ 화신 성취를 할 수 있는 자비로운 모습을 한 불보살님들과 무서운 모습을 한 본존불, 호법신장들이 나타나는 단계.

이를 조금 더 자세히 풀이해 보자

법신의 성취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던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쇠락하여 차례로 섭수된 다음, 어머니에게서 받은 붉은 명점과 아버지에게서 받은 흰색 명점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캄캄한 암흑과 함께 외적인 호흡이 끊어진다. 바로 이때 가장 먼저 근원적 광명인 법신 광명이 나타나게 된다.

생전에 수행을 잘하였거나 스승으로부터 바르도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이 법신 광명을 곧바로 인지하여 해탈을 하게 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광명을 인지하지 못하고 무의식 상태에 들게 된다.

물론 수행자가 자성 가운데에서 흩어짐 없이 마음을 쉴 수 있는 한 이 광명은 유지되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손가락을 퉁길 정도의 짧은 동안 지속되거나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동안만큼만 지속된다고 한다.

이 때문에 티베트에서는 성취하신 수행자가 열반에 들게 되면 3일에서 5일 동안 그대로 선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시신에 손을 대지 않고 아주 고요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그러다가 시신이 고개를 떨구거나 코에서 액체가 흘러나오면 ‘의식이 몸에서 떠난 징조’라 하여 그제서야 염을 하고 화장할 준비를 하게 된다.

앞에서 잠깐 소개하였던 독댄 암잠께서 열반에 드실 때 보여 주었던 면모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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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캄바카 사원에 있는 동안, 무문관을 지도하시던 독댄 암잠께서 돌아가셨다. 평생을 고행으로 일관하신 그분의 정진력은 너무나 뛰어났으므로 이 절의 전 대중은 하나같이 신망하고 존경하였다.

팔순이 훨씬 넘은 고령에도 라마들의 시봉을 받지 않고 무문관에서 대중과 똑같은 공양을 받았으며, 무문관 수행을 하는 라마들을 지도하는 일 외에는 묵묵히 불상에 복장을 하거나 정진하고 기도하는 일로 하루를 보내셨다.

심지어 열반에 들기 일주일 전까지도 대중기도에 참석하셨고, 평소와 다름없이 불상 복장도 하셨다. 그러나 암잠의 얼굴에 검은빛이 감돌기 시작하자 온 대중은 돌아가실 날이 머지않았음을 감지하였다. 모두들 마음 속으로 안타까워하였으나, 암잠은 고요히 당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새벽녘에 암잠은 구루 암틴을 불러 몇마디를 이르고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고, 암틴은 그 시간부터 암잠이 법신 광명상태에서 고요히 안주할 수 있도록 곁에서 5일 동안을 지켰다. 그런데 5일이 지나도록 시신에서는 전혀 역겨운 냄새가 나지 않았다.

이윽고 5일이 지나 무문관 법당에서는 기도 소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암잠을 위한 기도의식이 있던 날, 맑은 하늘에 너무도 선명한 쌍무지개가 나타났다.

다비식날에는 온 대중과 마을 사람들이 암잠의 시신 앞에 마지막 하직인사를 올리며 ‘카다’를 바쳤고, 다비식은 3시간에 걸쳐 대중 라마들의 기도와 함께 이루어졌다.

그런데 다비 도중 불길 속에서 무언가 튀어나는 것이었다. 라마는 그것이 장작덩이인 줄 알고 불길 속으로 쓸어넣었다. 그러나 공처럼 부푼 그것은 또다시 밖으로 튀어나왔다.

마친 그 자리에는 티베트에서 소 잡는 일을 하다가 출가한 라마가 있었다. 그는 ‘심장!’이라고 외쳤다. 암잠의 심장이 타지 않고 그대로 남은 것이다. 이어 라마들은 잿더미 속에서 사리 150여 과와 혀, 눈 한쪽을 수습하였다.

후에 암잠의 심장과 혀는 무문관 법당에 다보탑을 조성하여 안치하였고, 사리와 유골은 법당 마당 옆에 사리탑을 조성하여 안치하였다.

 

깨달은 수행자는 죽음의 순간에 근원적인 광명을 인지하여 법신 성취를 하게 된다. 우리 또한 일생 동안의 수행과 지속적인 정진을 통하여, 스승이 알려 주는 광명의 상태와 본연의 자성광명을 합일시키는 수행을 계속하게 되면, 죽는 순간 그 광명을 인지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뉴욕 공항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누군가를 마중 나갔을 때, 사전에 그 사람의 인상착의를 알거나 사진을 가지고 가면 많은 인파 가운데서도 그를 찾아내고 알아볼 수가 있다. 그러나 사전지식이 없다면 그가 곁에 있다고 할지라도 알아볼 수가 없는 것과 같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르침을 받아 마음의 본성에 대해 미리 인지하게 되면 나중에 그 본성을 알아볼 수 있는 열쇠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사진이 있다 하더라도 몇 번이고 자세히 보고 익혀두어야 그 사람이 스쳐지나갈 때 바로 알 수 있듯이, 평소에 꾸준히 수행하여 마음의 본성에 대한 인식을 한층 깊고 확고하게 해두어야만 많은 경계가 일어나는 바르도 상태에서 바로 근원적인 광명을 인지하여 법신 성취를 하게 되는 것이다.

 

보신의 성취

근원적 광명의 발생은 텅 비어 구름 한 점 없는 동트기 바로 직전의 맑은 하늘에서, 점차적으로 태양이 윤곽을 드러내며 모든 방향으로 광채를 나타내기 시작하는 것과 흡사하다.

이때에 죽은 자의 영혼은 소리, 빛, 색이 흐르면서 내는 진동을 의식함과 동시에, 찬란하게 밝은 빛이 여러 가지 색채로 아른거리며 끊임없이 요동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마치 한낮의 땡볕 아래 신기루와 같은 현상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때, 법성(法性)의 빛에 대한 인식이 있는 수행자에게는 이러한 광휘가 매우 안정되게 일어나게 되고, 이를 활용하여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티베트불교 닝마파의 대원만 수행 가운데에는 ‘토갈 수행’이 있다. 이 수행은 법성(法性)의 참뜻과 실제적인 의미를 알려 주고, 이 법성을 인지하고 안정시키는 방법에 중점을 두어 가르치고 있다.

이 수행을 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법성(法性)의 빛이 단지 번쩍거리는 번갯불이나 반딧불에 불과하다고 하며, 때로는 그러한 현상이 일어났는지조차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닝마파에서는 오직 토갈 수행자만이 그러한 찬란한 빛의 현현이 자신의 마음의 본성에서 일어난 것임을 인지할 수 있고, 해탈을 얻어 보신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한다.

 

화신의 성취

법성의 찬란한 빛이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난 자성의 빛임을 깨닫지 못하면, 그 다음으로 단순한 빛과 색깔들이 크고 작은 물방울 무늬와 밝은 점으로 나타나다가 하나로 통합되어 합쳐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눈을 멀게 할 정도의 밝고 거대한 광명체 속의 천여 마리의 용이 한꺼번에 포효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42분의 자비한 불보살님들과 58분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한 분노의 불보살님들이 나타난다. 이렇게 바르도 상태에서 나타나는 100명의 자비존과 분노존들을 중국에서는 문무백존(文武百尊)이라고 번역한다.

이러한 문무백존의 출현은 며칠에 걸쳐 계속되는데, 생전의 바르도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 문무백존에 대한 인식이 없는 이들에게는 그러한 모습들이 자신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연, 더없는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정신이 혼미하여져서, 우리를 육도 윤회의 세계로 인도하는 희미한 빛 속으로 숨어들어 가게 된다.

사실상 문무백존 가운데에 42분의 자비존은 자신의 가슴 차크라에서 현현한 모습이고, 58분의 분노존은 자신의 대뇌, 곧 정수리 차크라에서 현현한 모습이라고 한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자비존 가운데 아미타불을 위시한 오방불(五方佛)은 우리의 오온(五蘊)이 정화되어 대원경지 등의 다섯 가지 지혜로 현현한 모습이고, 관음보살을 비롯한 팔대보살(八大菩薩)은 팔식(八識)이 정화된 모습이며, 그 배우자인 불모의 모습은 팔식의 대상이 되는 경계[八境]들이 정화되어 나타나는 모습이다.

이와 같이 자비존과 분노존의 모습이 자신의 번뇌와 집착이 정화된 모습이요, 그것이 바로 ‘내 마음’의 본성인 줄을 알아차리게 되면, 해탈을 이루어 화신 성취를 하게 되는 것이다.

티베트나 대만 사람들은 이러한 바르도의 문무백존에 대한 사전지식을 확고히 하고 있다. 그들은 중음의 상태에서 화신 성취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백 분의 자비존과 분노존에 대한 탱화를 그리거나 사진으로 모시기도 하고 불상을 조성하여 법당에 안치하기도 한다.

 

수행단계의 사상(四相)

그런데 이러한 문무백존은 죽은 후에 바르도 상태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닝마파의 ‘족첸수행[大圓滿修行]’을 하게 되면 선정 상태에서도 근원적 광명의 상태를 거쳐 법성의 광휘가 현전하고, 그 다음에 문무백존이 현전하는 단계를 체험함으로써 법신, 보신, 화신의 성취를 원만하게 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수행 단계를 ‘사상(四相)’이라고 하며, 정리를 하면 다음과 같다.

① 자성의 본질인 법성의 빛을 실제로 보게 되는 ‘법성현전상(法性現前相)’의 단계

② 바깥 경계를 반연해서 지혜가 일어나고, 미혹한 분별망상을 벗어나 청정한 지혜가 증장되는 ‘증오증장상(證俉增長相)’의 단계

③ 증오증장상의 단계에서 더욱 정진하면, 모든 청정하지 못한 현상들이 사라지면서 오색 빛을 띤 현상들이 세간에 가득 차고, 오방불을 비롯한 자비존과 분노존들의 만다라가 세간에 가득 차게 된다. 그리고 부처님들의 가슴에서 발현되는 미세한 빛줄기가 자신의 가슴으로 연결되는 현상이 일어나면서, 번뇌에서 해탈하여 모든 습기가 끊어지고 모든 환(幻)의 현상들이 사라지면 지혜가 늘어 각종 신통의 경계가 열리게 된다. 이때에는 실제의 현상들이 법성으로 정화되어 법신, 보신, 화신과 정토를 증득하게 되는데, 이러한 경계를 세 번째 단계인 ‘명지여량상(明智如量相)’이라 한다.

④ 거기에서 더욱 용맹스럽게 정진하면 모든 번뇌와 미혹한 현상들이 스스로 정화되어 원초적인 불이(不二) 법계에서 보리를 증득하게 되는데, 이때 법력의 부사의한 힘이 법계에 가득함을 체득함과 동시에 온전히 위신력을 나툴 수 있게 된다. 마치 하나의 달이 천 강에 달 그림자를 나투듯이, 온 법계에 화신을 나투어 중생들을 위한 불사를 지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경계를 구경의 ‘법성변진상(法性遍盡相)’이라고 한다.

생전의 수행을 통하여 자성을 인지하고 구경의 해탈에 이르는 이상과 같은 과정은 사후의 바르도 상태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살아 있을 때 수행에 마음을 두고 열심히 정진하여야 바르도 상태에서도 해탈할 수 있는 능력과 지견이 갖춰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티베트불교에서는 해탈할 수 있는 최후의 기회인 죽음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살아 있을 때 스승의 가르침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정진하며 죽음의 순간을 맞이할 준비를 게을리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또한 티베트에서는 바르도 상태에서 듣기만 하여도 해탈을 얻을 수 있는 귀중한 가르침들이 있다. 이 가르침은 오래 전에 바위나 물속에 감추어 놓았던 것으로, 근세에 ‘뗄똔’들이 꺼내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 가운데 바르도 상태에서 출현하게 되는 문무백존의 만트라를 모아놓은 ‘딱돌’이 있다. 딱돌은 우리가 흔히 부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다라니로서,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준비해 두었다가 목에 걸어 주면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죽기 전에 자신의 수명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를 살필 수 있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기록해 놓았다.

오근이 쇠퇴하여 눈이 잘 보이지 않거나, 코끝이 움직이거나, 귀가 뒤쪽으로 붙거나, 헛소리를 하거나, 남자들의 오줌이 두 갈래로 갈라져서 나오거나, 오랫동안 누워 있던 사람이 허우적거리거나 하면 머지 않아 죽을 징조라고 한다.

실제로 티베트 사람들은 음력 보름날 저녁이나 새벽녘,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달이 아주 밝고 바람조차 없을 때, 아주 편안한 곳에 자리를 잡고 옷을 다 벗고 앉아 간절하게 불보살님께 기도를 올린다.

그리고 나서 만트라 ‘옴 아유케 싸라까라레샤라레 훔팩’을 101번 염송하고 일어나, 사방에 절을 7번씩 한다. 이어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린 후 양팔을 어깨 높이로 펴고, 발 뒤꿈치를 든 사태로 사지를 최대한으로 편다. 손에는 염주나 눈에 잘 뜨일 만한 물건들을 든다.

다음으로 자신의 그림자의 가슴 부분에 ‘아’자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아’자를 눈을 깜빡이지 않고 계속 응시하며 마음을 집중한다.

눈이 시리고 뻣뻣하다고 느껴질 때 허공 한가운데를 바라보는데,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허공에 자신의 그림자가 보이며, 그 그림자가 얼마만큼 보이느냐에 따라 삶의 시간을 판단한다. 그 판단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 몸 전체가 완전하게 보이면 ‘죽지 않는다’는 징조이다.

* 손에 든 물건이 보이지 않으면 내가 의지하고 있는 본존과 인연이 끊어지고, 7년 후에 죽을 징조이다.

* 오른손이 보이지 않으면 5년 후에 죽을 징조이고, 왼손이 보이지 않으면 3년, 오른다리가 무릎 아래가 보이지 않으면 2년, 왼쪽다리가 보이지 않으면 1년 내에 죽을 징조라고 한다.

* 얼굴의 오른쪽이 보이지 않으면 9개월, 왼쪽이 보이지 않으면 7개월, 얼굴 전체가 보이지 않으면 5개월, 목 위부터 보이지 않으면 3개월, 배 위부터 보이지 않으면 2개월, 배 아래로의 하반신이 보이지 않으면 1개월 정도 있다가 죽을 징조이다.

* 몸 전체의 우반신이 보이지 않으면 29일, 좌반신이 보이지 않으면 21일 정도 있다 죽을 징조이다.

* 모양으로 관찰함에 있어 몸 전체가 사각형으로 보이면 5개월, 원형으로 보이면 4개월, 반달 형태로 보이면 3개월, 직사각형으로 보이면 2개월 후에 죽을 징조이다. 이상의 현상들이 보이면 기도를 하여 생명을 연장하거나 만회할 수도 있다.

* 삼각형으로 보이면 한 달만에 죽을 징조이고 정수리 부분이 보이지 않으면 열흘 정도 있다가 죽을 징조이다. 이 경우에는 기도를 해도 만회할 수 없다고 한다.

살아 있을 때 죽음을 준비하고, 죽어 해탈을 이루게 하는 바르도의 수행! 이것은 티베트 불교의 위대한 방편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예수재(豫修齋)는 있지만, 그것이 공덕 쌓기의 방편으로 전개될 뿐 해탈의 수행법으로는 전개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도 티베트 불교의 바르도의 수행과 같이 생사를 익히고 살아서나 죽어서나 해탈을 이루는 수행법을 정립하여 보다 쉽게 해탈의 길을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 출처 문헌
- 월간『법공양』 254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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