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교와 현교의 비교
쫑카빠는 “공성에 대한 견해, 모든 유정의 존재들을 위해 최상의 깨달음을 얻고자 발심하는 의도(보리심), 육바라밀의 수행에 있어 현교와 밀교 양자에 있어 차이가 없다.” 하고 말하였다.
현교와 밀교는 공성(空性)이라는 견해를 지향하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밀법에서 말하는 공성이라는 것도 결국 대승 현교에서 말하는 공성을 말하는 것이지 더 심오한 공성을 말한다거나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현교와 밀교의 공통된 수행도는 곧 보리심이다. 진정한 보리심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을 때 비로소 밀교의 수행승에 들어갈 수 있다. 보리심을 갖춰야 밀교에 박학다식하고 밀교의 수행을 겸비한 자격을 갖춘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밀법의 가르침을 수행할 수 있다.
현교와 밀교 사이에 보리심과 행위인 육바라밀에 있어서는 차이가 전혀 없다. 또한 현교에서 말하는 부처의 과위와 밀교에서 말하는 부처의 과위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부처의 과위에 이르기 위한 방편에 있어서는 현교와 밀교가 차이가 있다. 부처님의 과위, 불과(佛果)라는 것은 법신(法身)과 색신(色身) 두 가지로 양상을 나눌 수 있다. 이러한 법신과 색신을 성취하는 방편에 있어서 현교와 밀교의 차이가 있다. 현교와 달리 밀교에는 지혜와 방편을 완벽히 합일하여 수행하는 법이 있다.
바라밀승의 수행자가 공(空)에 대한 개념적 또는 추론적 인식을 얻게 되면 오직 공만이 나타나고 대상은 사라진다. 그러나 본존요가는 공성에 대한 명상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를 본존으로, 자신의 주변 환경을 본존의 거주지로(만다라), 자신의 도반들을 신성한 존재들로, 자신의 행동들이 본존의 신성한 행동으로 심상화(心象化)함으로써 금강승의 수행자가 공을 깨닫게 되면, 관(觀)하던 현상이 공하다는 지각이 일어남과 함께 그 현상들이 사라지지 않고 공성의 범주 내에서 유지된다. 그러므로 지혜와 방편이 동시에 존재하고 공을 깨닫기 위해 사용된 미묘(微妙) 의식은 붓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또한 금강승에는 본존의 관상 뿐 아니라 신체 구성요소인 기(氣, prāṇa), 기맥(氣脈, nāḍi), 맥륜(脈輪, cakra), 명점(明點, bindu) 등을 활용한 수행법이 있다. 금강승에서는 불과(佛果)를 이루는데 매개체가 되는 수행자의 신체를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무상요가 딴뜨라에 의하면 수행자의 몸과 마음은 일상생활의 거친 수준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이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미세한 수준으로도 존재한다. 다양한 물질요소로 이루어진 수행자의 일상적인 신체적 형태는 병과 쇠퇴와 죽음의 고통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금강신(金剛身)이라 불리는 미세한 몸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파괴 불가능한 성질을 갖고 있다.
소멸되는 물질적인 거친 수행자의 몸이 일반적인 신체기관에 의해 채워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세한 금강신의 몸은 기(氣)와 명점(明點)이 흐르는 수천 개의 기맥(氣脈)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기맥들은 지복(至福)의 원천이며 무상요가 탄트라의 수행에 있어서는 필수적이다. 딴뜨라 수행의 목적은 미세신(微細身)의 구성요소를 정화하여 붓다의 세 가지 몸(法身, 報身, 化身)을 성취하는 수단으로 삼는 데에 있다.
티베트의 학자이자 역사가인 부뙨(Buton)은 밀교를 소작부 혹은 사부(所作部 혹은 事部, kriya tantra), 행부(行部, charya tantra), 유가부(瑜伽部, yoga tantra), 무상유가부(無上瑜伽部, anuttarayoga tantra) 등 네 부파로 분류하였다. 밀교 네 부파는 수행의례나 방법 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소작부는 외적인 의례를 수행의 중심으로 삼고, 행부는 ❮대일경(大日經)❯을 위주로 외적인 의례와 내적인 수행을 함께 중시하며, 유가부는 ❮금강정경(金剛頂經)❯을 중심으로 오직 내적인 수행만을 중시한다. 무상유가부의 가르침은 인도 후기 밀교에 해당하며 비교하여 설명할 것이 없다. 네 가지 탄트라의 수행은 상응하는 근기를 가진 수행자에 근거하여 나눈 것이지,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나눈 것이 아니다.
밀교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격을 갖춘 법맥스승으로부터 관정(灌頂, Skt. abhiṣeka, Tib. wang)과 구전(口傳, Skt. āgama, Tib. lung), 구결(口訣, Skt. upadeśa, Tib. tri)을 받아야 한다. 관정은 왕이 즉위할 때 왕의 머리에 물을 부어주는 의식에서 유래하였으며, 이 의식을 통하여 밀교에 입문하려는 사람은 스승으로부터 밀교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다. 또한 스승의 구전(口傳)을 통해 수행법을 전수받고, 수행법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침인 구결 역시 전수받는다. 밀교 수행을 성취하려면, 현교에서 요구하는 수준보다 더욱 큰 스승에 대한 신심(信心)이 필요하다. 관정을 주는 스승을 본존의 현현(顯現)으로 믿어야 하며 만일 믿지 못하고 의심한다면 관정이 성립되지 않는다.
관정(Abhiṣeka)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허가관정(許可灌頂, jenang)이고 다른 하나는 관정(灌頂, wang)이다. 허가관정은 말 그대로 본존에 대한 간략한 성취법이나 명상을 허가받는 관정이다. 일반적인 관정이 궁극적으로 본존의 과위를 성취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허가관정은 본존의 공덕을 이어받아 단기간에 가피를 얻는 목적이 크다. 허가관정은 2∼3일 간 열리는 관정에 비해 의식이 훨씬 간소하며 관정을 받고 지켜야 할 삼매야계와 수행 의무의 부담도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따라서 허가관정은 대중적으로 많이 전수되고, 한국에서 열리는 티베트 불교의 관정법회 대부분도 허가관정에 해당한다. 허가관정을 통해 밀법과 본존에 인연을 맺으며 보리심의 종자를 심고 단시간에 많은 죄업과 장애를 소멸할 수 있다. 또한 관정을 주는 아사리(阿闍梨, ācārya)와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는다.
티베트에서는 라마들이 이마에 손을 대어 가피를 주곤 하는데 이를 ‘손으로 주는 관정’ 이라는 뜻의 착왕(phyag dbang)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마정수기(摩頂授記)로 오인하여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고, 티베트 린뽀체 초청법회를 ‘마정수기 법회’라고 홍보하여 대중을 오도(誤導)하는 경우가 있어 이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밀교의 계율은 싸마야(samaya, 三昧耶)라고 부른다. 밀교의 수행에서 계율을 지키는 것이 지극히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관정은 먼저 계를 받고 이를 지킬 것을 맹세한 사람에게만 수여된다. 금강승의 밀교계는 매우 엄격하고 지키기 힘들다. 아띠샤(Atisha) 존자는 본인의 삶 중에 ‘비구계는 조금도 어김이 없이 지켰고 보살계는 간혹 지키지 못했지만, 밀교계를 어긴 것은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과 같이 많다.’고 하였다. 아띠샤의 말에서 알 수 있듯 밀교 수행자는 소승의 별해탈계(別解脫戒), 대승의 보살계와 금강승의 삼매야계까지 모두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일반적으로 무상요가 딴뜨라의 밀교계는 ‘14가지 근본 밀교계’와 ‘18가지 부차 밀교계’로 분류하는데, 이러한 밀교계를 어기는 것은 지옥에 떨어지는 원인이 된다. 부차 밀교계를 어기는 것조차 비구계를 지키지 못한 것보다 18배나 무거운 과보를 낳는다고 한다. 역으로 별다른 수행 없이 밀교계만 잘 지켜도 18생 안에 지금강불(持金剛佛)의 과위를 성취할 수 있다는 가르침도 전해진다. 그만큼 밀교계의 의의가 크기 때문에 금강승을 수행하기 전 반드시 밀교계를 자세히 숙지하고, 관정과 밀교계를 받은 후에는 이를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 밀교계의 14 근본타죄(根本墮罪)에는 스승을 모욕함, 가르침을 경시함, 함께 금강승을 수행하는 도반과의 불화, 보리심과 공성의 포기 등이 있다.
티베트 불교의 최대종파인 겔룩파는 다른 종파보다 교학을 강조하여 전체 강원 교육과정을 수학하는데 20여 년 정도 걸린다. 현대교육제도의 초등과정부터 대학원과정까지에 해당하는 기간을 불교 교육에 투자한다고 볼 수 있다.
겔룩파 외의 타 종파는 보통 9∼10년 이상의 강원 과정을 거친다. 강원 과정 이후에도 승려 개인의 자율적인 교학연구는 계속 이어지며, 개중에는 겔룩파와 같이 20년 가까이 강원에서 학습한 후 켄뽀 학위를 취득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타 종파 승려가 겔룩파 승려보다 교학 수준이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다. 종파 간의 교학적 견해는 대부분 일치하나 약간씩 차이를 보이는 부분도 있다.
광성사 소남 걀첸 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겔룩파의 3대 사찰인 데뿡 사원의 로셀링 강원에는 1학년부터 19학년까지 교육과정이 존재한다. 주로 ❮인명학(因明學)❯, ❮반야학(般若學)❯, ❮중관학(中觀學)❯, ❮율(律)❯, ❮구사론(俱舍論)❯ 등 5대 경전을 배우는 교육방법을 체계적으로 잘 갖추었다고 한다. 5대 경전을 주로 배우는 점은 겔룩파 뿐만 아니라 다른 종파에서도 동일하다.
강원에 입학하기 전에는 먼저 예비과정에 들어간다. 맨 처음 출가 서원을 하며 삭발과 승복을 입고 승려로서 사원에 들어간다. 한국 불교의 행자나 원불교의 간사 과정과 비슷하며, 이때 승가의 규율과 의식, 글과 기도문 암송 등을 배우고, 사원 곳곳에서 운력(運力)을 하면서 사원 생활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친다.
모든 승려들이 강원의 전체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것은 아니다. 불교박사학위 격인 게쉬나 켄뽀 자격을 얻는 사람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그 외 승려들은 의식이나 행정 등 사원 운영에 필요한 각자의 업무에 종사한다.
겔룩파에서는 게쉬 학위를 취득한 후 규뙤 사원이나 규메 사원으로 대표되는 밀교 사원에 들어가 밀교 교학을 배운다. 밀교 공부와 수행은 평생 배우고 닦는다는 개념이고, 밀교 수행은 스승의 허락과 자격을 얻어야만 행할 수 있으므로, 견고한 현교의 철학적 토대를 갖춘 준비된 사람만이 밀교 수행에 들어갈 수 있다.
티베트에서는 교학이 갖춰지지 않은 수행자가 수행을 하는 것을 ‘마치 손가락이 잘린 사람이 바위산을 기어오르려고 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수행자는 산의 정상을 오를 수 있는 정확한 지도가 있어야 하고, 산을 오르다가 맞닥트릴 수 있는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철저한 교학의 토대가 필요한 이유이다. 교학을 철저하게 배우고 닦는 과정에서 이미 수행의 반은 완성된다.
티베트불교의 종파를 나누는 가장 큰 기준은 구파(舊派, nyingma)와 신파(新派, sarma)이다. 닝마빠(rNy∼ing ma pa)는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는 구파(舊派) 또는 고파(古派)로 번역되는데, 티베트의 모든 불교 종파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래되었다. 이보다 후에 일어난 사캬, 까규, 겔룩, 조낭 등 모든 티베트의 종파들은 신파(新派)에 속한다.
구파와 신파를 나누는 기준은 경전의 번역이다. 티베트에 인도불교가 도입되던 7∼8세기에 티베트의 법왕들이 후원하여 이루어진 번역을 구역(舊譯), 10∼11세기 지방 귀족 세력이 지원하여 이루어진 번역을 신역(新譯)이라 한다.
종파 간에 정치적 대립이 빈번하였지만 각 종파의 고승들은 종파를 막론하고 존경의 대상이었고, 다른 종파의 학승이 자기 종파의 교리를 배우는 것을 막지도 않았다. 종파 간의 경쟁적 발전과 더불어 상호 이해와 존중이 이루어지고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
닝마(Nyingma)는 ‘오래된’이란 뜻으로 말 그대로 티베트 불교 중 가장 먼저 생긴 종파이다. 8세기 티송데쩬 왕은 당시 네팔에 머물고 있던 인도 날란다 사원의 승원장 샨따락쉬따(Śāntarakṣita)를 초청하면서 밀교 성취자인 빠드마삼바와(Padmasambhava)를 대동했다. 빠드마삼바와는 밀교행을 통해 티베트의 토속 종교인 뵌교의 신도뿐만 아니라 티베트의 토속신들을 제압하여 불교에 귀의하도록 이끌었다. 이에 샨따락쉬따는 왕실의 후원 하에 쌈예사(bSam yas dgon pa)를 건립하고 티베트의 첫 승단을 만들었다. 닝마빠는 이때 샨따락쉬따가 대동했던 밀교 성취자 빠드마삼바와와 그의 가르침을 그 중심으로 삼는다.
닝마빠는 까규빠와 함께 실수행을 중시하는 종파로 알려져 있다. 실수행을 중시하는 점은 두 종파 모두 동일하지만, 닝마는 까규와 달리 명상보다 견해를 좀 더 강조한다. 본연의 지혜를 통해 얻는 가장 핵심적인 견해(Skt. upadeśa, mengak, Wyl. man ngag, pith instruction)를 먼저 알려준 후 그러한 견해를 바탕으로 명상하는 방식이다.
닝마빠의 전승으로는 석가모니로부터 내려오는 전승인 까마(kama)와 빠드마삼바와와 그의 제자들이 비장(秘藏)하고 시절인연에 따라 발견되는 전승인 뗄마(terma)가 있다. 또한 독자적으로 현교와 밀교를 9개 승으로 구분한 9부승(九部乘) 체계를 갖추었다.
9부승은 크게 외(外), 내(內), 밀(密) 삼승으로 구분된다. 외승(外乘)은 곧 경승(經乘, sutrayana)에 해당하고 내승과 밀승은 속승(續乘, tantrayana)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로 외승(外乘)은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을 가리킨다. 그리고 내승(內乘) 혹은 외전(外傳) 딴뜨라는 사부(所作部 혹은 事部, kriya tantra), 행부(行部, charya tantra), 유가부(瑜伽部, yoga tantra)로 구성된다. 내승의 가르침은 브라만의 베다(Veda) 전통처럼 의례와 외적 청정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밀승(密乘) 혹은 내전(內傳) 딴뜨라는 마하 요가(maha yoga), 아누 요가(anu yoga), 아띠 요가(ati yoga, 혹은 maha ati yoga)로 구성된다. 마하, 아누, 아띠 요가는 신역(新譯)의 무상유가부(無上瑜伽部, anuttarayoga tantra)에 해당한다. 마하 요가는 생기차제(生起次第), 아누 요가는 기맥명점(氣脈明點) 수행, 아띠 요가는 원만차제(圓滿次第)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9부승의 최상위에 위치한 아띠 요가는 바로 닝마빠 고유의 가장 심오한 가르침인 족첸(rdzogs chen)이다. 밀승의 가르침은 모든 현상을 청정하고 평등한 진여(眞如)로 전환시키는 강력한 방편들이다.
까규란 ‘구전의 전통(口傳傳統)’이라는 뜻이다. 11세기 인도의 밀교 요기 띨로빠(Tilopa)를 시조로 삼는다. 띨로빠는 나로빠(Nāropā)를 가르쳤다. 티베트인 역경사 마르빠 로짜와(Marpa lotsawa)는 역경사 독미 로짜와 샤꺄예쉐(Drokmi Śākya Yeshé)에게 가르침을 받은 후 인도의 날란다 사원에서 나로빠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마르빠의 가르침인 마하무드라(mahāmudrā)는 이후 밀라레빠(Mi la ras pa)를 거쳐 까규빠로 성립되었다.
까규빠는 명상, 구루 요가, 나로 6법과 같은 금강승 수행을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까규와 닝마는 모두 실수행을 중시하지만, 까규는 닝마와 달리 명상을 통해 점진적으로 견해를 익히고 체험해나가는 방식을 따른다.
겔룩파의 종조 쫑카빠 롭상닥빠(Tshong kha pa bLo bzang grags pa)는 14세기 동북 티베트 암도의 쫑카 지방에서 태어나서 깔마빠 및 여러 종파에서 공부했는데, 특히 사캬빠의 렌다와 쇤누로도(Red mda' ba gzhon nu blo gros)를 주 스승으로 삼았다. 이후 까담빠의 전통을 따라 엄격한 계율의 수행을 강조하면서, 불교 철학을 바탕으로 단계적인 수행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아띠샤의 ❮보리도등론(菩提道燈論)❯의 주석서인 쫑카빠의 ❮보리도차제광론(菩提道次第論, Bodhipathapradīpa)❯을 비롯한 많은 주석서 및 저서들은 그 당시까지의 철학과 수행 전통을 새롭게 해석해 내면서 티베트불교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후로 까담빠의 전통은 점차로 겔룩파의 영향 아래 들어갔다.
쫑카빠의 개혁을 통해 겔룩파는 여러 승려와 대중의 지지를 얻게 된다. 또한 달라이 라마가 화주(化主)가 되고 몽골, 오이라트, 청(淸) 왕조 등이 시주(施主)가 되는 최왼(mchod yon) 관계를 맺어 통치계급과도 폭넓은 유대 관계를 형성한다. 이를 바탕으로 제5대 달라이 라마가 오이라트 중 코슈트부의 군사를 빌려 티베트 내전에서 승리하면서 겔룩파는 정교합일(政敎合一) 체제를 구축하고 티베트 불교 내의 최대 종파로 부상하여 현재까지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초대 달라이 라마는 쫑카빠의 제자 겐둔 둡빠(dGe 'dun grub pa)이다. 그러나 겐둔 둡빠는 생전에 달라이 라마라고 불리운 적이 없다. 제3대 달라이 라마 때 이르러 몽골의 알탄 칸에게 ‘일체를 성스럽게 아시는 바즈라다라 달라이 라마’라는 존칭을 부여받고, 전전대 전생인 겐둔 둡빠까지 소급하여 달라이 라마란 칭호를 얻게 된 것이다. 제3대 달라이 라마가 사망한 후 알탄 칸의 증손자 중 한 명이 환생자로 지목되어 제4대 달라이 라마에 등극하게 된다. 따라서 제4대 달라이 라마는 몽골인으로, 유일한 비(非)티베트인 출신 달라이 라마이다.
달라이 라마가 받은 존칭 중 ‘바즈라다라(Vajradhara)’, 즉 집금강(執金剛)은 밀교의 이상적인 부처인 지금강불(持金剛佛)을 지칭하거나 혹은 가장 뛰어난 성취를 이룬 스승을 가리키는 존칭으로 쓰인다. ‘달라이(Dalai)’는 몽골어로 ‘큰 바다(大洋)’라는 뜻이고 ‘라마(Lama)’는 티베트어로 ‘스승’이라는 뜻이다.
초대 달라이 라마를 제외하고 달라이 라마로 선정되면 모두 ‘바다’라는 뜻의 ‘갸초(rgya mtsho)’가 들어간 법명(法名)을 얻게 된다.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법명인 ‘뗀진 갸초(bstan ‘dzin rgya mtsho)’의 ‘뗀진’은 ‘가르침(佛法)의 소유자’란 뜻이다. 즉 ‘뗀진 갸초’란 법명은 ‘불법의 바다’를 뜻한다.
공식적인 겔룩파의 종정은 달라이 라마가 아니라 겔룩파의 본산인 간덴 (dGa' ldan)사원의 사원장 간덴 티빠(dGa' ldan khri pa)이다. 간덴 티빠는 간덴 사원 안의 싸르쩨(Shartse)와 장체(Jangtse) 두 학당의 방장(方丈)이 번갈아 가며 맡게 되는데 임기는 전통적으로 7년이다. 환생자 제도로 선정되지 않고 순수하게 개인의 능력과 학식, 덕망, 승가 내 경력 등으로 선정되는 직위이다.
시가쩨 근처 조모낭 지역에서 번성한 조낭빠는 쿤팡 툭제 쇤두(Kunpang Thukje Tsondru)가 1294년 조낭 사원을 건립하면서 시작된다. 그 이전 11세기 깔라차끄라 딴뜨라 전문 수행가였던 유모 미꾜돌제(Yu mo mi bskyod rdo rje)는 조낭빠에 큰 영향을 준 조상격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유모 미꾜돌제는 카쉬미르의 빤디따 찬드라나타(Candranātha)에게서 사사받았다. 후캄에 의하면 타공의 이해는 유모 미꾜돌제가 카일라쉬산(수미산)에서 깔라짜끄라 딴뜨라를 수행하는 도중 터득한 것이라고 한다. 사캬빠에서 계를 받았던 될뽀빠 쉐랍겔첸(Dol po pa shes rab rgyal mtshan) 대에 이르러 조낭빠는 융성했다.
조낭빠는 쉔똥(gzhan stong), 즉 타공(他空) 사상을 내세웠다. 타공이란 모든 속제를 비롯해 다른 것에 의존해 일어난 현상들, 자아와 같은 허상은 그 자성이 공(空)하지만, 그 모든 속제의 근간이 되는 법성, 일체지, 천연의 의식, 불성, 또는 청명한 빛의 마음은 공하지 않다는 사상이다. 이후 조낭빠는 5대 달라이 라마 대에 이르러 정치적ㆍ사상적 이유로 이단으로 몰려 중앙 티베트 지방에서 사라졌고 몽골과 암도 지방에서 명맥을 유지한다.
될뽀파는 삼전법륜(三轉法輪)에 해당하는 ❮보성론(寶性論)❯의 여래장 사상을 요의(了義)로 보았다. ❮보성론❯에 따르면 속제의 현상들은 공(空)하지만 진제에서의 공성과 함께 나타나는 비이원적(非二元的)인 불지(佛智), 광명심(光明心), 부처의 공덕 등은 공하지 않다. 이러한 견해를 기존의 중관(Madhyamaka)에 대비하여 ‘대중관(大中觀, Mahamadhyamaka)’이라고 명명하였다. 유식학파의 삼성설(三性說)에 영향을 받은 점 때문에 학계에서는 타공설의 등장을 티베트 불교에서의 유식학파의 흐름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대중관’이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될뽀빠를 비롯한 타공론자(gzhan stong pa)들은 그들 스스로를 진정한 중관 논사라고 생각했고, 타공설과 유식은 다르다고 주장했다. 한편 겔룩파 위주의 종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19세기 리메(Rimé, 無山, 무종파) 운동에 참여했던 사캬, 닝마, 까규 등 비주류 종파의 스승들도 타공설의 영향을 받아 타공, 혹은 타공과 자공(自空, rang stong) 사이의 절충적인 견해를 취하였다. 각 파의 독자적인 밀교 전승은 현교의 중관학적 견해가 분화되는 과정에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절충적인 견해 중에는 자공설(自空說)로 분류되는 견해도 있다. 가령 미팜(Mipham) 린뽀체의 경우, 겔룩파의 자공설처럼 일체법의 자성(自性)이 공(空)함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자기 인식’이나 ‘밝음’ 등 진여(眞如)의 현상적인 측면을 긍정하였다. 그러나 현상의 실체화, 개념화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미팜의 견해는 타공설과도 구분된다. 김성옥, ❮『법법성분별론』에 대한 미팜(Mi Pham) 주석의 특징❯ 이렇듯 자공과 타공을 양 축으로 하는 스펙트럼 안에 다양한 견해들이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현교의 자공, 타공과 밀교의 족첸, 마하무드라는 (일치하는 부분도 있지만) 서로 다른 전승과 문헌에서 유래한 견해들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실 겔룩과 조낭을 제외한 나머지 종파들은 시대별, 계파별, 인물별로 견해가 나누어지고 더 나아가 동일 인물(예컨대 미팜)의 저작들 중에서도 타공을 옹호하는 저작과 비판하는 저작들이 모두 전해지기도 하여 자공(自空)과 타공(他空) 중 어느 한 쪽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설사 타공으로 분류되더라도, 조낭의 타공과 달리 깔마 까규, 닝마 등 다른 종파의 타공은 자공에 가까운 ‘완화된 타공’에 해당한다. 예컨대 조낭의 타공은 여래장을 삼세(三世)에 종속되지 않는 궁극적이고 불변하는 독립된 실체(rtag dngos)라고 주장하였지만, 깔마 까규에서는 부정(negation)의 토대인 ‘조건지어지지 않은 빛나는 마음’을 (외부의 원인과 조건에 영향을 받지 않고) 이전 순간의 동류(同類)의 마음에 의존하여 발생하는 순간들의 연속으로 규정하여 연기(緣起)와 분리하지 않았다. 다만 “물과 기름이 서로 섞이지 않는” 비유처럼, 불성 혹은 정광명은 객진번뇌에 오염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조낭의 타공과 견해를 같이 하였다.
초교파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제14대 달라이 라마 대에 이르러서야 조낭빠는 티베트 불교의 정식 종파 중 하나로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달라이 라마가 속한 겔룩파와 조낭빠의 교학적 입장은 다르다. 달라이 라마는 반야경을 요의경(了義經)으로 보는 겔룩파의 전통적 견해에 따라 조낭빠의 타공을 부정하고, 일체법이 승의적(勝義的)인 차원에서 독자적 실체가 없이 공(空)하다는 자공을 견지한다.
7세기 유식학의 대가였던 원측(圓測)
고려 충렬왕 20년(1294년) 티베트 승려 절사팔(折思八)이 티베트 경전과 법구류를 가지고 고려에 들어오고, 충선왕 즉위년(1298년)에는 충렬왕과 충선왕, 계국대장공주 등이 티베트 불교 승려에게 보살계를 받았다. 또한 고려인 출신으로 원나라에 들어가 출가하여 티베트 불교 승려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충숙왕 1년(1314년)에는 홍약이 티베트 경전 1만 8천여 권을 고려에 전해주었다.❮고려사❯에 따르면 충숙왕 7년(1320년)에는 몽골에 볼모로 잡혀 갔다가 티베트로 들어가게 된 충선왕을 위하여 민천사(旻天寺)에서 기도법회를 열었다고 한다. 충선왕은 1320년 원인종 아유르바르와다가 사망하자 환관 임백안과 틈이 생겨 그의 참소로 인해 불경을 공부하라는 명목으로 티베트에 3년 간 유배된다. 충선왕의 유배지는 당시 티베트의 정치ㆍ종교적 중심지였던 사캬빠의 사캬 사원이었다. 지금까지 현지에선 충선왕과 그의 아들에 대한 일화와 충선왕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탕카(탱화)가 전해진다.
현재 우리나라 불교에 널리 퍼진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 옴마니반메훔도 티베트의 자사태마(刺思駄麻)와 사팔자(思八刺) 라마가 전한 것이다.
이처럼 원 간섭기에 원나라 황실에서 신봉하던 티베트 불교가 고려에 유입되었으나, 티베트 불교의 신도층은 원나라 공주(=고려 왕비)의 수행원과 고려에 거주하는 몽골 관인들 위주로 한정되었다. 고려에서의 티베트 불교 수용은 황실에 대한 존중과 공주에 대한 배려의 성격이 강했으며 전체 고려 불교계나 일반 백성들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다만 원나라 황실을 축원하는 법회의식 등을 통하여 티베트 불교의 의례와 불상, 불구(佛具) 등이 수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공민왕의 반원 정책으로 친원 세력이 축출되면서 티베트 불교 역시 자취를 감추게 된다.
고려시대 이후에 편찬된 의식집들에서 진언들을 실담문자나 티베트 문자로 표기하고, 관법차제(觀法次第)와 같은 수행법에서 범자(梵字)로 된 종자자(種子字)를 명상에 채용한다.
또한 사원의 건축물이나 법구류 등에서 범자나 티베트 문자로 된 진언종자들을 활용한다. 사원건축에 단청을 하고, 거기에 범자로 된 문양을 새겨 넣는 것은 티베트를 제외한 어떤 국가에도 없는 독특한 양식이다.
인도나 티베트로부터 몽골 지역을 거쳐서 전파된 나가리ㆍ실담ㆍ란차ㆍ티베트ㆍ팍파문자 등은 우리나라의 불교관련 의식집의 찬술 및 문자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고려시대 때부터 제작된 금강저(金剛杵)와 금강령(金剛鈴)은 현대 한국불교에서는 별로 안 쓰이지만, 밀교경전에 의거한 수행법에서는 널리 쓰인다. 현재 우리나라에 전하는 금강저는 티베트 계통과 당나라 계통 금강저를 응용한, 한국의 독자적인 형태인 것이 대부분이다.
고려 명종 20년(1190년)에 조성된 예천 용문사 윤장대(輪藏臺)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현재 티베트인들의 신앙생활에서 널리 쓰이는 마니륜통(摩尼輪筒)이다. 2000년대 넘어서 용문사의 윤장대와 그 형식은 다르지만 전국의 여러 사찰에서 티베트의 것을 채용한 마니륜통을 제작하여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법구로 활용한다.
한반도와 일본과는 다르게 중국은 몽골 제국의 행정으로서 직접 지배를 받아서 티베트 불교가 매우 성행했다. 중국령이 된 상태인 티베트 자치구와 칭하이성, 쓰촨성 일부 지역을 포괄한다. 내몽골 자치구의 몽골인들과 신장 위구르 자치구(주로 북부 중가리아 지역) 몽골 자치현의 오이라트인들 그리고 동북 3성의 만주족도 많이 믿는다. 상술한 지역에 거주하는 한족들 중에도 티베트 불교도들이 다수 있다.
티베트는 이름대로 티베트 불교의 중심지였으나, 중국의 병합과 달라이 라마의 인도 망명, 이후 문화대혁명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현대까지 중국 내 티베트인들 650만 여명 대부분은 독실하게 티베트 불교를 믿는다. 사실상 티베트 지역의 국교. 그러나 10% 정도는 티베트 고유 종교인 뵌교를 믿는다. 다만 현재의 뵌교는 불교를 신봉하는 지배층의 탄압을 피하고자 불교의 교리와 의식 등을 거의 그대로 흡수하여 외부인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불교와 유사하게 변모하였다.
대만에는 티베트 불교도가 상당히 많다. 대만에 티베트 불교를 널리 포교한 스루스(釋如石) 스님은 대만 내 티베트 불교 전파 과정을 두 단계로 구분하였다. 1950년부터 1982년까지는 이른바 ‘전홍기(前弘期)’로, 이 기간 동안은 국민당 정부를 따라 대만으로 건너온 소수의 겔룩, 사캬빠 승려들 외에 대부분 한족 재가 불자들 위주로 티베트 불교를 신앙하였다. 밀법의 전수는 적었고, 전파 지역은 대만 북부에 한정되었다. 그 후 1982년부터 인도, 네팔에서 티베트 불교 승려들이 포교를 위해 대거 대만에 입국하고, 또한 미국에서 밀법을 수행했던 천젠민(陳健民)의 저작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대만 전역에 티베트 불교 전(全) 종파의 가르침이 본격적으로 전래되었다.
현재 닝마, 까규, 사캬, 겔룩 등 티베트 불교 주요 4대 종파가 모두 대만에 진출한 상태이다. 사라 프레이저(Sarah E. Fraser) 하이델베르크대 교수가 2018년 연구에서 인용한 가장 최근의 통계에 따르면 대만 내 티베트 불교 신자 수는 현재 약 50만∼60만여 명에 달한다.
몽골 제국시절에 몽골의 종교였으나 제국이 쇠퇴하면서 몽골 내 티베트 불교도 쇠퇴하였다. 알탄 칸 대부터 다시 몽골인들의 종교가 되었다. 티베트어로 된 경전을 학습하고 티베트 승려와 동일한 복식을 착용할 정도로 몽골과 티베트의 불교는 거의 차이가 없다. 몽골 승려들의 수준은 예전부터 우수하였는데, 제13대 달라이 라마가 몽골을 방문한 후 그 곳 학승들의 능숙한 논쟁 모습을 보고 큰 감명을 받은 일이 지금과 같은 길고 철저한 게쉬 학위 제도를 정립하게 된 계기가 될 정도였다. 안병남, ❮티베트 불교의 사원 교육제도❯
공산주의 시대에는 독재자 허를러깅 처이발상의 주도로 내몽골지방에 극심한 탄압을 받았지만 탈공산화 후 완화되었다. 비록 공산 정권의 탄압을 받았지만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불교 관련 유산이 철저히 파괴되고 약탈당한 티베트와는 달리 많은 경전과 유물이 따로 보관되어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고 한다.
현재 몽골 인구의 약 60%가 불교도로 대부분 티베트 불교(주로 겔룩파)를 믿으며, 간단 사원이 몽골 티베트 불교의 중심적인 사원이다. 소련이 붕괴된 1990년대 이후 몽골과 칼미키아 공화국, 부랴티아 공화국, 투바 공화국의 승려들이 남인도 카르나타카 주 내 소재한 데뿡 사원의 고망 강원(Drepung Gomang Monastic University)으로 유학을 오기 시작하여 현재는 2000여 명의 몽골, 러시아 연방 출신 승려들이 고망 강원에서 정진 중이다. 개중에 게쉬 학위를 취득한 승려나 사원의 방장(方丈) 등 고위직에 오른 승려도 상당 수 배출될 정도로 몽골 승려들의 자질은 우수하다.
대락(大樂)을 상징하는 남성에너지와 불이(不二)의 지혜를 상징하는 여성에너지의 결합을 통해 참된 본성을 자각할 수 있다.
후기 밀교 수행법 중에는 성에너지를 이용한 수행도 있으나 이를 ‘저급하다’, ‘좌도 밀교’라고 표현하는 것은 딴뜨리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과거 서구의 기독교적 편견(혹은 동양의 유교적 편견)에 해당한다. 밀교에 대한 이해가 축적된 현대에는 이미 불교의 철학적 개념에 대한 상징적, 은유적 표현으로 해석된다. 예를 들어 밀교의 부모불(혹은 쌍신불)은 지혜와 방편, 혹은 현상과 공성의 합일을 상징한다. 수행에 있어서도 실제 딴뜨릭 수행자 간의 직접적인 육체적 결합 대신 관상(觀想)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았다.
불교학자 정성준은 딴뜨리즘의 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근대학자들은 힌두교의 샤끄띠파의 성을 매개로 한 성력(性力)적인 수행을 좌도밀교(左道密敎, the Left-hand path)라 지칭하여 비판하고, 이에 비해 윤리적이고 사회적 도덕성을 강조한 쉬바나 비슈뉴파 등은 우도밀교(右道密敎, the Right-hand path)라고 말하여 구분하였는데, 이는 지역적으로나 시대적으로 속성이 다른 용어를 강제로 결합시킨 말이 되며, 이러한 언어적 오류가 한국불교에도 해명되지 않은 채 답습되고 있는 것이다. 좌도밀교는 원래 ‘힌두딴뜨리즘의 샤끄띠파의 성력(性力)사상이나 그 실천체계’라고 불러야 정확한 말이 된다.
인도 후기밀교의 경우 전법스승인 아사리(阿梨)와 수행을 전수받기 위한 제자의 자격은 오계를 비롯해 보살계뿐만 아니라 삼매야계와 같이 행위가 아닌 내면적 의식을 문제 삼는 등 엄격한 계율에 의해 자격을 심사받으며, 밀교수행의 자격도 현교(顯敎)의 경론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시험을 거쳐야만 비로소 관정(灌頂)의식을 통해 밀교수행에 참여할 수 있다. 실제 인도의 밀교수행의 전통을 계승한 티베트사원의 현실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원칙에 의해 수행이 이루어지며, 밀교의 관정의식과 입문의식에 동원되는 성과 관련된 도구들도 남존의 보리심을 상징하기 위한 술이나, 여존을 상징하는 염색된 물을 이용하는 등 인간의 실상을 불성으로 관조하고 자각하기 위한 상징적 도구들이 사용되고 있다.
후기밀교의 한 시대에는 관상(觀想)에 의지하더라도 성적(性的) 관상을 실천하는 수행이 전통적인 비구계의 율의를 범한 것이 아닌가에 대한 논란이 있어왔는데, 이와 관련한 대목이 ❮비밀집회딴뜨라❯의 관정의식을 다룬 ❮제4관정의궤, Sakiptbhiekavidhi❯에 전해진다. 저자는 위끄라마실라(Vikramala)사의 육현문(六賢門)의 한 사람인 와기슈와라(Vgvara)로 그는❮비밀집회딴뜨라❯의 유파인 즈냐나빠다류에 속하며, 현밀(顯密)과 계학(戒學)에 능통한 당시 인도에서 가장 번영한 사원의 학두(學頭)였다.
그가 다룬 제4관정은 인도후기밀교에서 중요시되는 것으로 ① 병(甁)관정, ② 비밀(秘密)관정, ③ 반야지(般若智)관정, ④ 제사(第四)관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략히 소개하면 병관정은 물, 보관, 금강저, 금강령, 명명식(命名式)의 다섯 단계로 이루어지는데, 여기에 동원되는 기물들은 만다라의 중심을 이루는 오불(五佛)의 지혜를 상징하는 것으로 아사리는 제자에게 기물을 부여함으로써 오지(五智)를 성취할 것을 명하는 것이다.
반면에 두 번째인 비밀관정과 세 번째 반야지관정은 성적인 요가를 수반하는 과정이다. 먼저 제자는 관상(觀想)을 통해 스승에게 반야모(般若母)를 바치는데 ❮비밀집회딴뜨라❯에는 “푸른 연꽃의 눈을 가졌고, 16세의 나이로 아름다우며 도살자(屠殺者)의 딸이다”라고 묘사하고 있으나, 문헌에는 즈냐나빠다류의 전통에 입각해 문수금강(文殊金剛)의 화현으로 대신하고 있다.
비밀관정은 아사리에 의해 공성(空性)을 상징하는 반야모와 육신의 현상세계로 현현한 방편(方便)의 합일을 통해 반야와 방편의 합일이라는 상징적인 의식을 행하는 것이며, 반야지관정은 제자로 하여금 합일을 상징화한 매개물을 통해 반야(般若)의 대락(大樂)을 체험하게 된다. 마지막 단계의 제4관정은 ‘언어에 의한 관정’으로 아사리는 구두(口頭)로 제자에게 비의(秘義)를 전하는 과정으로 되어 있다.
❮제4관정의궤❯에는 대론자가 “(반야와 방편의 합일을 상징한) 이근교회(二根交會)의 의식이 어찌 비구의 율의를 훼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묻자, 와기슈와라는 “삼계에 태어난 인간과 제천(諸天) 등의 아름다운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여 유루(有漏)의 애착을 향수하는 것으로 탐욕을 향수하는 것은 비나야 등에서 금해지고 있는 것이지만, 삼계(三界)를 초월한 신체를 지니고, 유식(唯識)을 자성으로 하는 문수금강(文殊金剛) 등이 현현한 여성들은 그런 류가 아니다”라고 반론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론자는 다시 “비나야 등에서 금지되고 있는 외적인 갈마인모(羯磨印母)에 대해서는 어떻게 적정(適正)하다고 할 것인가?”라고 반론하고 있다. 여기서 갈마인모란 현실세계의 육체를 가진 반야모를 가정하는 말이다. 이에 대해 와기슈와라는 “진언이취(眞言二取)에 있어서 실재하지 않는 색 등의 일체의 사물을 자심의 현현(顯現)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꿈과 같은 문수금강을 본성으로 전변한 갈마인모들도 환(幻)과 같은 것이다. 때문에 그녀와의 성적유가를 포함한 관정을 실수(實修)한다 하더라도 청정하며, 과실이 없기 때문에 계율을 범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한다.
반면 와기슈와라 후대에 생존했던 인물로 같은 사원의 대학승(大學僧)이었던 아티샤(Atiśa)는 그의 명저인 ❮보리도등론(菩提道燈論)❯에서 “범행자(梵行者)는 비밀과 반야의 관정을 실수해서는 안된다”라고 강조하고, 계를 범할 시 악취에 떨어지는 죄과를 받는다고 경고하고 있어 와기슈와라와 반대의 입장에 있다.
같은 시대의 아브야까라굽타(Abhaykaragupta)는 ❮금강의 화환(Vajrāvalī)❯에서 “일체가 공성이기 때문에 갈마인모도 또한 공성을 본질로 한다. 따라서 그녀와의 유가(瑜伽)도 율의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논리를 펴고, 반면에 “‘고결한 진실을 신해(모르거나 어려운 것을 알기 쉽게 밝히어 말하다)하지 않는 비구’인 경우 갈마인모(磨印母)가 아니라 지인(智印)을 사용한다.”하여 와기슈와라와 아티샤와의 절충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청사(靑史)❯에는 아브야까라굽타 자신은 위끄라마실라사의 학두로 있으면서 평생 비구의 불범계(不犯戒)를 지키며 결정코 성적 유가를 행하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여성을 단순히 성력의 심볼로만 취급한다는 주장도 온당치 못하다. 밀교에서는 성별에 따른 차별 없이 남녀 모두 동등한 수행자로 취급되며, 때로는 여성이 스승이 되어 남성 수행자를 지도하는 등 밀교 수행자로서의 여성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밀교의 계율인 사마야(samaya)에서는 여성을 비하하거나 무시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미란다 쇼(Miranda Shaw) 리치몬드대 교수는 ❮열정적 깨달음 : 딴뜨릭 불교의 여성들❯에서 딴뜨릭 불교는 대승불교의 윤리적, 철학적 원칙을 함께하지만, 상징과 의식 분야에서 친밀감과 성(性), 젠더와 체현을 해탈의 길에 포함시키는 특징을 보인다고 말하였다. 남녀가 나란히 등장하는 패턴은 남성과 여성이 착취하거나 강제하지 않고 서로 일깨워주는 관계를 창조할 수 있다는 믿음과 숭고한 이상을 나타낸다.
여성과 여성의 가르침이 등장하고 여성의 에너지와 영적 능력을 인정하는 것이 딴뜨릭 종교성의 특징이다. 딴뜨릭 불교의 여성들은 격렬한 지혜의 화염 속에서 즐겁게 춤추며 태연히 번뇌의 시체를 밟는 거침없고 대담한 모습을 보인다. 그녀들은 가부장적인 제약을 받지 않는 열정적이고 자유로우며 깨달은 여성들이었다.
리타 그로스(Rita Gross) 위스콘신대 교수 또한 그녀의 저서 ❮불교 페미니즘 : 가부장제 이후의 불교❯에서 금강승 불교만큼 여성의 정신적 발달과 성숙에 유리한 종교를 찾기 힘들다고 강조하였다. 그로스는 불교 전반에 걸친 남성 중심적 관행과 가부장성, 그리고 비구니 승단 없이 사미니 승단만 존재하는 티베트 불교 교단 내의 열악한 여성수행자의 지위에 대해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비판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타 그로스는 티베트의 금강승 불교가 다른 어떤 불교 분파보다 여성성을 중시하고, 뛰어난 여성 스승들이 많이 존재하며, 수행에 필수적인 여성 상징들이 발달해 있기 때문에 불교의 가부장성을 극복하고 불교를 성평등적으로 재구축하는데 매우 유용한 자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통상적으로 우리를 한 가지 불만상태에서 또 다른 불만상태로 몰아대는 것과 동일한 욕망 에너지가 딴뜨라의 연금술을 통해서 초월적인 희열과 지혜를 체험하는 것으로 변화된다.
욕망의 에너지가 우리의 불만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불만의 원인, 즉 실제의 본성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인 무지를 없애는 방식으로 이용된다.
티베트의 딴뜨라불교에서는 이렇게 욕망의 에너지를 변화시키는 것을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한다. 나무에서 생겨난다는 어떤 벌레들이 있다. 그들의 생애는 나무줄기 속 깊은 곳에서 부화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다음에는 자신들이 태어난 바로 그 나무를 먹으면서 자란다. 그와 마찬가지로 딴뜨라의 변화 수행을 통해서 욕망은 통찰적 지혜를 낳고 그 다음에 그 지혜는 그 자신을 태어나게 한 욕망을 포함해 우리 마음을 가리고 있는 부정적인 것들을 모두 없애버린다.
따라서 우리는 통상적인 욕망의 작용과 깨달은 이의 작용은 정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딴뜨라에서는 욕망에서 일어나는 희열의 체험이 마음을 확장시켜서 우리가 모든 제한을 극복할 수 있지만, 통상적으로 욕망의 대상과 접촉하는데서 오는 쾌락은 우리의 주의를 제한하고 더 강하고 더 좋은 쾌락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어떤 때에는 잡신들이 잘생기고 피부 좋고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나는 매력적인 청년으로 변신하여 나타나기도 했다. 음욕을 일으키는 여러 가지 음담패설을 늘어놓았다. 색정을 일으키는 여러 가지 행위를 했지만 그 자체를 환상으로 보고 삼매에 드니 대부분 실체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어 보살의 대치법을 수행하니 몇몇은 검은 시체로, 몇몇은 늙고 추한 모습으로, 몇몇은 문둥병 환자로, 몇몇은 귀머거리, 장애자, 바보와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변하여 모두 사라져버렸다.
현교, 특히 성문승에서는 대체로 욕망을 억제하는 점진적인 방법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깨달음을 추구한다. 반면 대승의 바라밀승에 이르게 되면❮유마경❯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 보살은 때로 욕망을 회피하지 않고 불이(不二)의 견지(見地)에서 욕망을 중생 제도의 방편으로 활용하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 밀승에 이르러서는 독초(毒草)를 이용해 효능 좋은 약을 만들듯이 더욱 적극적으로 욕망을 활용하여 빠르고 효과적으로 수행의 결과를 얻는 혁신적인 방식을 따른다. 그러나 밀교에서도 현교와 마찬가지로 번뇌는 고통의 원인이기에 극복의 대상이며, 최종적으로 “나무에서 생겨난 벌레가 나무를 갉아먹듯” 번뇌에서 얻는 에너지는 수행을 통해 번뇌 그 자체를 제거하는데 이용된다.
밀교의 성적 요가는 범속한 성행위와는 다르다. 성적 요가를 수행하려면 현교보다도 더욱 크고 확고한 출리심, 보리심, 공성의 지혜를 기반으로 대부분의 거친 번뇌를 제거하고 미세한 에너지를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 예를 들어 티베트의 대표적인 여성 수행자 예세 초겔(ye shes mtsho rgyal)은 성적 요가를 행한 밀교 수행자였지만, 여러 잡신(雜神)들이 매혹적인 남성의 몸으로 유혹하여도 전혀 동요하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번뇌만이 남아있던 상태였다. 또한 예세 초겔은 기(prāṇa), 맥(nāḍī), 명점(bindu) 수행으로 신체의 미세한 에너지를 조절하여 자재(自在)한 신통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라마 툽텐 예셰(Lama Thupten Yeshe)의 설명처럼 성적 요가시 가장 미세한 의식을 활용해 공성을 깨닫게 되면, 번뇌와 지혜라는 두 상반된 마음은 함께 공존할 수 없어 공성을 깨닫는 즉시 성욕을 비롯한 모든 번뇌는 사라지게 된다. 반대로 통상적인 성적 행위는 끝없는 갈망과 불만, 흐릿하고 둔한 의식 상태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밀교에서는 단순한 성적 희열만을 깨달음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욕망에 의해 일어난 지복(至福)이 불이(不二)의 지혜와 결합하여 도(道)로 전환되는 과정은 밀교계의 엄격한 통제를 받으며 확고한 출리심, 보리심, 공성의 지혜를 갖춘 소수의 이례적인 사람만이 수행 가능하다.
출가한 비구, 비구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일지라도 이 수행에 참가하지 않는다. 일체 음행을 금하는 구족계를 수지하였기 때문이다. 아티샤가 ❮보리도등론(菩提道燈論)❯에서 밝혔듯 무상요가를 통해 얻는 공덕보다 출가의 공덕이 더욱 크고, 또한 만일 구족계를 수지한 승려가 성적 요가를 수행할 경우 바라이죄를 범하여 매우 엄중한 과보를 받게 되므로 수행을 성취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지옥에 떨어지는 원인을 얻게 된다. 대신 비구, 비구니 같은 범행자(梵行者)는 성적 요가를 제외한 다른 밀법을 수행할 수 있다.
밀교를 통해 성과 육체, 번뇌를 다룬 내용은 기존의 대승불교(顯敎)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밀교의 교리와 수행체계를 최초로 체계화한 ❮대일경❯은 대승불교사상이 다양한 측면에서 결합된 것으로, 중관, 유식, 여래장사상이 경전에 반영되어 있다. 경전의 비로자나여래는 절대법신인 ❮화엄경(華嚴經)❯의 비로자나불을 계승한 것이지만 보살과 같이 공성에 머물면서 중생구호를 위해 다양한 신변을 나투는 능력을 보이는 것으로 묘사된다. 밀교의 붓다들은 열반의 세계에 머물지 않고 수용신(受用身)과 육신을 통해 중생을 직접적으로 구호하는 존재들이다.
현교의 경우 중생의 세계에 드나드는 존재는 중생구제를 위해 성불을 포기한 대비천제(大悲闡提)인 대보살들로서 관세음보살이나, 보현보살, 문수보살 등이 그 예이다. 열반을 성취한 현교의 붓다는 열반이라는 절대세계에 도달한 상징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는 지혜의 광명인 수용신의 범주를 넘지 않으며, 중생의 현실과 접촉할 수 있는 것은 대보살의 몫이다. 그러나 유식계의 논서를 통한 불신론(佛身論)의 전개는 붓다의 몸은 법신(法身, 자성신(自性身)), 수용신(受用身, 보신(報身)), 변화신(變化身, 응신(應身))의 세 가지가 있으며, 열반의 절대신이라도 삼계의 범주를 다양한 불신을 통해 넘나드는 것으로 이론화하였다.
❮대일경(大日經)❯ 이후 성립된 ❮금강정경(金剛頂經)❯에는 중생의 의식과 우주법계의 현상세계가 오불의 속성(屬性)을 지니고, 이에 입각해 현화한다고 보는 부족사상(部族思想)을 체계적으로 설하였다. 오불은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중심으로 아촉불(阿閦佛), 보생불(寶生佛), 무량수불(無量壽佛), 불공성취불(不空成就佛)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도 후기 밀교경전에는 경전마다 다르지만 오불의 범주에 번뇌를 포함시켜, 탐진치(貪瞋癡)와 아만(我慢), 질투(嫉妬)의 다섯 번뇌도 불성의 부족으로서 성불한 붓다에게 중생을 구호하기 위한 의지와 갈망의 대번뇌로 전변한다고 설하고 있다.
❮금강정경(金剛頂經)❯에 설해진 부족사상과 번뇌의 긍정은 인도 후기밀교의 성과 번뇌의 긍정이라는 대전제를 이끌어내는 핵심사상이 된다. 그러나 밀교의 긍정은 중생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성의 지혜에 입각한 불지(佛智)에 의해 조명되었을 때 비로소 대번뇌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이다. ❮금강정경❯에서 설해진 오상성신관(五相成身觀)의 수행은 일체의성취(一切義成就)보살이 육신을 사바세계에 둔 채 수용신(受用身)의 몸으로 색구경천(色究竟天)에서 일체여래의 가르침에 의해 성불한다는 내용이 설해지고 있는데, 오상성신의 증금강신(證金剛身)의 수행은 중생의 삼업(三業)의 현실을 신금강, 어금강, 의금강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그 이론적 배경은 마음의 자성을 깨닫는 전식득지(轉識得智)의 수행이념이 경전을 통해 형식화된 것이다.
한편 대반야경에 소속된 ❮반야이취분(般若理趣分)❯은 공성의 지혜를 통해 정(淨)과 부정(不淨)의 분별을 초월한 보살에게 번뇌와 육체적 현실은 청정한 진여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는 극적인 표현을 볼 수 있는데, 같은 품은 독립적인 밀교경전으로 조직화되어 ❮이취경(理趣經)❯으로 출현하고, 여기에는 인간의 감촉과 애욕의 수용과정을 17가지로 분류한 ‘17청정구(淸淨句)’로 표현되어 있다. 이에 대한 인도후기밀교의 주석은 17청정구를 포옹(抱擁)과 결합을 통해 일어나는 애락(愛樂)을 향수하는 남녀의 성교(性交)로 해석한 주석서도 존재한다.
이처럼 대승불교의 밀교화는 외교적 요소를 단기간에 수용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반야와 중관, 유식사상 등의 대승불교사상을 점진적으로 반영시켜 경전화(經典化) 된 과정을 여러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승불교의 밀교화가 외교의 수행을 급작스럽게 받아들인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부적인 성장과정에 의해 경전화 되고 출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밀교에 있어서 육체뿐만 아니라, 번뇌와 성마저도 불지(佛智)에 의해 관조할 때 현실은 실제(實際)로서 법계의 현현인 것이다. 이러한 사상적 연원은 연기법의 무아사상으로부터 반야, 공, 유식 등 불교사상의 전개에 따른 것으로 밀교는 딴뜨리즘에 의해 문제시 되었던 성과 번뇌를 전통적인 불교사상의 영역에서 해석한 것이다.
유식학파의 소의경전인 ❮화엄경(華嚴經)❯에서는 바수밀다(Vasumitra, 婆須蜜多/伐蘇蜜多)를 53선지식 중 하나로 소개하며 탐욕이 지혜로 바뀌는 전식득지(轉識得智)의 과정을 보여준다. 금강승의 사부ㆍ행부ㆍ요가부ㆍ무상요가부는 수행자가 욕망의 에너지를 정신적인 수행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각각 관락(觀樂), 소락(笑樂), 집수락(執手樂), 옹포락(擁抱樂)의 ❮사락(四樂)❯으로 비유되는데, 그 출처가 바로 ❮화엄경❯❮입법계품❯의 바수밀다 일화이다.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해탈을 얻었으니 이름은 ‘탐욕의 경계를 여읨’이다. 그들의 욕망을 따라 몸을 나타내는데, 하늘이 나를 볼 적에는 나는 천녀의 형상이 되어 광명이 훌륭하여 비길 데 없게 된다. 그와 같이 사람이나 사람 아닌 이가 볼 적에는 나도 사람과 사람 아닌 이의 여인이 되어 그들의 욕망대로 나를 보게 한다.
또한 어떤 중생이 애욕에 얽매여 나에게 오는 경우에, 내가 그에게 법을 말하면 그가 법을 듣고는 탐욕이 없어지고 보살의 집착 없는 경계의 삼매를 얻게 된다. 어떤 중생이 잠깐만 나를 보아도 탐욕이 없어지고 보살의 환희삼매를 얻는다. 어떤 중생이 잠깐만 나와 말하여도 탐욕이 없어지고 보살의 걸림 없는 음성삼매를 얻는다. 어떤 중생이 잠깐만 내 손목을 잡아도 탐욕이 없어지고 보살의 모든 부처 세계에 두루 가는 삼매를 얻는다. (중략) 어떤 중생이 나를 끌어안으면 탐욕이 없어지고 보살의 모든 중생을 거두어 주고 항상 떠나지 않는 삼매를 얻는다. 어떤 중생이 나와 입술을 한 번만 맞추면 탐욕이 없어지고 보살이 모든 중생의 복덕을 늘게 하는 삼매를 얻는다. 이와 같이 나에게 가까이 하는 중생들은 모두 탐욕을 여의는 경계에 머물러 보살의 온갖 지혜가 앞에 나타나는 걸림없는 해탈에 들어간다.”
금강승의 성적 요가는 중관, 유식, 여래장 등 대승불교 철학과 금강승 고유의 인체 생리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금강승의 입문은 매우 제한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무상 요가 딴뜨라의 성적 요가는 극소수의 자격을 갖춘 최상근기의 수행자 - “생각만으로 땅에 떨어진 열매를 다시 가지에 붙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비유할 정도로 초월적인 능력을 갖춘 - 에게만 허용된다. 구족계를 수지(受持)한 출가 수행자는 성적 요가를 행할 수 없다. 또한 성적 요가 중에는 복잡하고 때로 위험할 수 있는 수행 절차를 거치며, 반드시 정해진 금기를 준수해야 한다.
티베트의 금강승 불교가 여성성을 중시하고 다수의 뛰어난 여성 수행자들을 배출하였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페미니스트 여성 학자들 사이에서는 금강승의 성적 요가가 여성에게 능력을 부여하는지 반대로 여성을 착취하는지 여부를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이 있었다. 특히 티베트 불교가 현대에 이르러 북미, 유럽 등 서구 사회에 널리 전파되면서 문화적 차이와 밀교의 폐쇄성으로 인해 많은 오해와 논란이 야기되었다.
성적 요가의 효용을 인정하면서도 성적 요가의 실천을 엄격히 제한했던 겔룩파와는 달리 닝마, 까규 등 밀교 수행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종파들은 성적 요가 수행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관대한 편이었다. 티베트 불교가 서구에 도입되던 초창기에 히피(Hippie) 문화의 열풍에 힘입어 서구 사회에 널리 알려진 티베트 불교 종파도 밀교 수행을 강조하는 닝마, 까규였다.
서구 사회 포교에 나섰던 재가수행자 스승들 중에는 자신의 서양인 제자에게 성적 요가를 함께 수행할 ‘영적 배우자’ 혹은 ‘비밀 배우자’인 쌍윰(gsang yum)이 되어줄 것을 제안하는 경우가 있었다. 개중에는 스승과 원만한 동반자 관계를 맺는 제자도 있었지만, 성적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며 후회하고 스승을 비난하거나, 수행 공동체 내에서 배척당하고 가쉽(Gossip, 이야기 거리)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제자들도 종종 있었다.
홀리 게일리(Holly Gayley) 콜로라도대 교수는 이러한 문제의 배경에 서구인들의 티베트 불교에 대한 환상과 문화적 차이, 밀교의 폐쇄성으로 인한 정보 부족이 있다고 보았다. 오늘날 밀교 관련 유물이 박물관에 전시되고 밀교 서적이 서점의 베스트셀러 항목에 오르는 등 밀교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중에게 널리 공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밀교 경전 일부는 번역이 금지될 정도로 밀교 교의(敎義)의 공개에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밀교의 계율인 싸마야에서 밀교를 수행할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밀교의 가르침을 공개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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