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알기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수선님 2021. 11. 14. 12:53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중국 송나라 온릉(溫陵)의 승려인 계환(戒環)이 풀이하고 일여(一如)가 여러 주석을 모아 정리한 『묘법연화경』에 세조가 한글 토를 달고 간경도감에서 번역을 붙여 간행한 책이다. 목판본이며 모두 7권으로 처음 간행된 것은 1463년(세조 9)으로, 책 머리에 1463년 9월 2일자로 되어 있는 간경도감 도제조 윤사로(尹師路, 1423-1463)의 해설과 견해를 적은 전(箋)과 도제조 이하 조조관(雕造官)의 열함(列銜)이 있다.『묘법연화경』의 원본은 이미 여러 차례 간행되었으며, 한글로 풀어 쓴 언해본도 이후로 여러 번 간행되어 1523년(중종 18)·1545년(인종 1)경에 나주 쌍계사(雙溪寺), 1765년(영조 41)경에 덕산의 가야사(伽倻寺) 등에서 복각해 간행되기도 하였다.불교의 삼승을 회통하여 일승(一乘)으로 돌아가자는 일불승사상을 각종 비유와 서사의 문학적 기법으로 설하고 있는 『묘법연화경』은 『법화경法華經』이라고도 하며, 『화엄경華嚴經』과 함께 대승불교의 중요한 경전이다. 특히 이 언해본은 쌍자음을 쓰는 각자병서(各自幷書)가 사라진 모습과 한자음 표기의 변화 등이 나타나 국어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로 전해진다.

 

 

1463년(세조 9) 『법화경』 곧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에 세조가 구결을 달고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번역하여 간행한 책이다. 책의 체재와 번역의 양식 등은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목판본 『능엄경언해(楞嚴經諺解)』·『원각경언해(圓覺經諺解)』 등과 일치한다.

 

 

책머리에 1463년 9월 2일자로 된 간경도감 도제조(都提調) 윤사로(尹師路)의 전(箋)이 있고, 『세조실록』의 같은 날짜에 ‘간경도감진신간법화경(刊經都監進新刊法華經)’이라 했기 때문에 간행년도는 1463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간행년도를 추정한다면 『법화경언해』는 『능엄경언해』에 이은 간경도감의 두 번째 불경언해서가 된다.

 

동국대학교에서 원간본과 1523년에 복각된 복각본, 쌍계사판을 모아 수록한 축쇄 영인본이 간행되었고, 이것을 대제각에서 1977년에 다시 영인하였다.

 

1997년에는 홍문각에서 규장각도서 소장의 원간본을 저본으로 한 영인본이 간행되었다.

 

 

7권 7책. 목판본. 원간본은 현재 공공도서관과 개인소장으로 전하나, 대개 영본이며 전질인 경우에도 낙장이 있다.

 

복각본은 상당히 많은데, 간기가 확인된 것만 3종이 있다. 즉, 1523년(중종 18)의 한 사찰, 1545년(인종 1)에서 1547년(명종 2) 사이의 전라도 나주 중봉산(中峰山) 쌍계사(雙溪寺), 1764년(영조 40)에서 1768년 사이의 충청도 덕산(德山) 가야사(伽倻寺)에서 간행한 책들이다.

 

이들 복각본은 원간본의 판심 서명 ‘法華經’을 ‘法華, 法’으로 줄이는 등 정밀하게 판각한 것은 아니나, 번역은 대체로 원간본대로 되어 있으므로 원간본과 동일한 자료로 다루어도 문제가 없다.

 

그런데 이들 복각본과 전혀 다른 중간본이 전한다. 원간본에서 주석문을 삭제하고 『법화경』 본문의 번역만 수록한 책이다. 번역은 원간본과 대체로 일치하나, 각자병서(各自並書)의 폐기와 『동국정운(東國正韻)』의 한자음 표기를 지양한 것에서 차이가 있다. 간행년은 1500년(연산군 6)으로, 권1, 21책이 국립중앙도서관에, 그리고 권4, 1책이 성암문고(誠庵文庫)에 전할 뿐이다.

 

그 밖에 『법화경』의 서문만 번역한 책과 본문에 한글로 한자 독음만 달아놓은 책이 있다. 모두 임진왜란 뒤에 간행한 것이다. 이 책은 각종 중간본을 포함해 국어사연구의 기본적인 자료로 이용된다.

 

 

15세기 국어의 특징을 보이며, 중세국어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방점이나 본문에 오각과 탈각이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주격조사 ‘ㅣ’가 선행 체언 말음이 ‘i, j’인 경우에도 중복되어 표기되는 등 국어학적 특징은 간경도감의 또 다른 불경 언해서인 『능엄경언해』와 대체적으로 일치하나,『능엄경언해』에서는 볼 수 있었던 ‘ㅸ’ 표기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16세기 국어의 특징을 드물게 볼 수 있으며, 같은 『법화경』의 내용이 『석보상절』과『월인석보』에도 실려 있어 이들을 비교하여 연구하는 것은 국어의 사적 변화를 살피는 데에 도움이 된다.

 

 

장서각 한글특별전 내용

 

표제의 『법화경(法華經)』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약칭이다. 이 책은 1903년 윤5월 11일에서 6월 26일까지 구마라집(鳩摩羅什, 334~413)의 한역본(漢譯本)을 바탕으로 필사되었는데, 필요한 부분만 발췌하여 옮긴 편역(編譯)이다. 각 책 제1면에는 황실과 국가의 안녕을 축원하는 발원문(發願文)이 있고, 각 장의 끝에는 시주자 명단이 있다. 이 명단에는 '출가하지 않은 여성 불교 신자'를 가리키는 '청신녀'라는 용어가 자주 보이고 있어 많은 여성들이 시주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묘법연화경 언해의 유래와 대중성

 

『묘법연화경』(산스크리트어: सद्धर्मपुण्डरीक सूत्र 삿다르마 푼다리카 수트라 →흰 연꽃과 같은 올바른 가르침) 또는 『법화경(法華經)』은 대승경전의 하나이다. 예로부터 모든 경전의 왕으로 생각되었으며, 초기 대승경전(大乘經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으로 이 경전을 한글로 언해한 것이다. 『법화경』의 산스크리트어 원본은 영국인 호지슨이 네팔에서 발견한 것과 여러가지 단편(斷片)이 존재한다. 프랑스어와 영어를 비롯하여,한문, 티베트어, 위구르어, 서하어(西夏語), 몽골어, 만주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여러 민족들이 자주 읽는 경전이다.

 

서쪽에서 전해진 묘법연화경 언해의 종류

 

현재 한문으로 번역된 『묘법연화경』은 세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서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한『묘법연화경』 7권(후에 8권이 되었음)이 가장 널리 유포되어 있다. 『묘법연화경』에서 부처는 머나먼 과거로부터 미래영겁(未來永劫)에 걸쳐 존재하는 초월적인 존재이다. 그가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은 모든 인간들이 부처의 깨달음을 열 수 있도록 대도(大道:一乘)를 보이기 위함이다. 그 대도를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이 경전의 핵심이다. 『법화경』은 모두 28개의 품(品: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량의경』,『불설관보현보살행법경』과 함께 『법화삼부경』(法華三部經)』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한국에 전해진 묘법연화경 언해에 대해서

 

『법화경』은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는데, 제일 먼저 이 경전이 들어온 것은 고구려였다. 고구려의 수도(427년 천도 - 668년까지)였던 평양의 대성산성(大城山城) 성돌 사이에서 1천 자 정도의 글자가 남은 묘법연화경이 발견되었는데, 현재 북한의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삼국유사』 기록에는 백제의 승려 혜현(惠賢)이 수덕사에서 아침저녁으로 『법화경』을 독송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신라의 승려 원효는 『법화경』의 교리를 해설한 『법화경종요(法華經宗要)』를 짓기도 했다. 현재 한국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법화경』판본은 1236년에 간행된 『법화경』과 1467년(세조 13)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법화경』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송나라 계환(戒環)이 1126년(인종 4)에 저술한 『묘법연화경요해(妙法蓮華經要解)』 7권본이다. 『법화경』에 대한 연구 주석서로는 신라 시대 고승들의 저술을 비롯하여 중국 역대 고승들의 저술이 수십 종에 이르고 있다. 계환의 주해 판본이 우리나라에서 크게 알려진 까닭은 그 내용이 한국 불교의 흐름과 일치하고 문장이 간결하며 이해가 쉽기 때문이다. 현존 판본을 살펴보면 고려 시대 것 세 종류에 조선 시대의 것이 117종으로 모두 120종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고 있는 법화경판은 34종 3,036장이다.

 

 

 

이 책은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조선시대 세조(世祖)가 친히 국역하여 간경도감(刊經都監)에서 간행한 판본과는 그 형식이 다른 법화경언해본으로 연산군(燕山君) 6년(1500)에 경상도 합천(陜川)의 봉서사(鳳栖寺)에서 간행된 국역불경으로 2권 2책이다.

일반적으로 화엄경 · 금강경과 더불어 불교의 대표적 대승경전으로 널리 알려진 『묘법연화경』은 법화사상을 담고 있는 천태종(天台宗)의 근본경전으로, 이를 흔히 ‘법화경(法華經)’으로 약칭하여 불리고 있다. 이 경전의 원서명은 “삿다르마 푼다리카 수트라(saddharma-pundarika-sutra)”로 알려져 있으며, 그 의미는 ‘백련꽃과 같이 올바른 가르침을 주는 경전’으로 풀이한다. 일반적으로 법화경의 성립 연대는 다른 대승경전처럼 확실치 않으나, 대략 3차에 걸쳐 기원후 2세기 중엽까지는 소품 단위로 결집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법화경은 인도에서 결집된 이후 불교의 전래와 더불어 여러 구법승에 의해서 인도의 서북지역으로부터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전래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래의 초기 단계에는 현재와 같은 27품 내지 28품의 완전한 경전이 동시에 입수되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되며, 서역의 귀화스님이나 중국의 구법스님에 의해 수집이 가능했던 소품 단위로 전입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 까닭에 한역의 초기단계에는 소품 단위로 역경이 진행되었던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이 시기를 지나 불교가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자 초기의 안세고(安世高)와 지루가참(支婁迦讖)과 같은 서역 귀화인에 의한 역경에서 5세기 이후로 법현(法顯) 등 중국인에 의한 본격적인 역경작업이 추진되었다. 이처럼 법화경 또한 이러한 전래 및 역경과정을 거쳐서 완성된 한역본으로는 3종이 남아 있는데, 그 중 406년에 구마라집에 의해서 번역된 한역본이 가장 널리 유통되고 있다.

역자 구마라집은 기원후 350년에 중앙아시아의 구차(庫車=龜玆)에서 태어나 409년에 중국의 장안에서 열반하였다. 그의 부친은 본래 인도사람인 구마라염(鳩摩羅炎)으로 명문 집안의 출신이었으나, 출가후 구도차 구차에 와서 왕의 누이와 결혼하여 구마라집을 낳았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鳩摩羅(父)+什(母)’라 하였으며, 이를 약칭하여 ‘羅什’이라 하고 중국명으로는 ‘童壽’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와 함께 출가한 이후 스무 살에 구족계를 받아서 어엿한 比丘가 되었다. 그후 전진(前秦)을 이은 후진(後秦)의 요흥(姚興)이 사신을 보내어 그를 초빙하여 홍시(弘始) 3년(401)에 구차를 떠난 지 10여 년 만에 비로소 중국 장안에 당도할 수 있었다. 이에 요흥은 그를 국사로 예우하였으며, 나집(羅什)은 장안의 서명각(西明閣)과 소요원(逍遙園)에 머물면서 불교경전의 번역에 몰두하여 35부 294권을 완역했다. 그의 많은 역경 중에는 406년에 번역된 법화경이 포함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본은 구마라집이 406년에 번역한 한역본을 저본으로 간행된 판본으로 가장 간결하고 유려한 역본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현존하는 수당대의 돈황본(敦煌本) 사경(寫經)은 물론 송대의 판본은 대부분이 이 역본을 저본으로 하였으며, 이에 따라 일찍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사경 및 판경 또한 구마라집 역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현존하는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판본류에는 대장경에 편입된 2종의 역본을 제외하고 모두가 이 28품 7권본인 구마라집의 역본을 저본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목판으로 간행된 가장 오래된 법화경은 최근에 전라남도 영광의 불갑사(佛甲寺) 명부전(冥府殿)의 시왕상(十王像)에서 권3 일부가 발견되었는데, 고려대장경 및 그 이후에 간행된 고려본과는 권두제의 특징이 상이한 점으로 보아 대략 대장경 간행 이전 시기인 고려 초기의 판본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대표적 초기 고려본은 성암본과 연대본이 있으며, 이들 판본에는 각필(角筆) 부호가 발견되어 주목되고 있다. 고려 중기 이후에 간행된 판본은 계환(戒環)의 주해가 들어 있는 송나라 판본계통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으며, 고려 후기에는 휴대의 편리를 도모한 소자본이 등장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우리나라의 독자적 판본이 출현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현재 대략 150여 종이 간행된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이들 판본의 계통은 참여주체나 간행수단에 따라 성달생판본계 · 갑인자판본계 · 을해자판본계 · 정희왕후판본계 · 간경도감언해판본계통으로 크게 가름된다. 이 중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판본은 조선초기에 세조 등이 국역하여 간경도감에서 세조(世祖) 9년(1463)에 간행된 법화경언해본과는 그 번역 체계나 형식이 전혀 다른 언해 이본으로 연산군 6년(1500)에 경상도 합천의 봉서사에서 판각한 목판에서 후에 재차 인출한 책이다. 현재 2권의 2책만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공덕을 목적으로 권1, 2만을 후쇄(後刷)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봉서사판 법화경언해의 세부 특징을 살펴보면, 권수에는 변상도 2장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어 ‘弘傳序’가 언해문으로 수록되어 있다. 서문에 이어 권두서명이 제1행에 ‘妙法蓮華經’이며, 다음 행에 ‘姚秦三藏法師鳩摩羅什奉 詔譯’이라는 역자표시가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송나라 계환의 주해본을 저본으로 하고 여기에 일여의 집주를 저본으로 언해 간행했던 간경도감본과는 달리 순수히 법화경의 내용만을 대상으로 언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권1은 제1품 「서품(序品)」부터 제2품 「방편품(方便品)」까지 모두 2품이 수록되어 있다. 본문은 반엽을 기준으로 광곽은 사주단변으로 반곽의 크기는 24.7 x 18.3 cm이며, 전체 9행으로 되어 있는데, 한 행의 경문은 17자로 배되어 있다. 중앙의 판심부에는 상하로 대흑구가 있고 그 아래에 상하흑어미가 보이고 있으며, 판심제는 상어미 밑에 ‘法華經’으로 새겨져 있고, 그 아래로 권수 및 장수 표시가 나타나 있다.

본서는 간경도감의 국역 법화경과는 저본과 형식에서 전혀 다른 이본 언해본으로 연산군 6년(1500)에 판각된 목판에서 후쇄한 판본이다. 현재 법화경 국역본은 간경도감에서 세조 9년(1463)에 간행된 원간본을 비롯하여 이를 저본으로 나주 쌍계사에서 인종(仁宗) 1년(1545)에 간행한 판본이 유일한 복각본으로 조사되었다. 그런데 국립본 또한 간경도감본과 전혀 다른 계통의 판본으로 밝혀짐으로써 주목된다 하겠다. (송일기)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중국 송나라 온릉(溫陵)의 승려인 계환(戒環)이 풀이하고 일여(一如)가 여러 주석을 모아 정리한 『묘법연화경』에 세조가 한글 토를 달고 간경도감에서 번역을 붙여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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