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法華經) 내용과 중심 사상
법화경’은 방편품과 여래수량품의 두 개의 주요한 골간을 가지고 있다. 이 두 품은 교의적(敎義的)으로 가장 중요한 품이라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이 중 ‘방편품’은 부처님의 제자 중 지혜가 제일인 사리불이 등장하는 지적(知的)으로 깊은 문답이 전개되는 품이다.
부처님은 사리불에게 부처의 위대한 지혜를 무량하고 무변(無邊)하고 미증유의 법이라고 찬탄하였다. 이 때 설해진 법문이 저 유명한 10여시(如是)이다.
이 10여시란, 부처의 지혜로 본 만물의 실상, 즉 제법실상(諸法實相)을 제시한 것이다. 그 열 가지란 상(相:形態)과 성(性:特質)과 체(體:本質)와 역(力:能力)과 작(作:作用)과 인(因:原因)과 연(緣:攀緣)과 과(果:果報)와 본말구경(本末究竟: 상(相)으로부터 보(報)에 이르는 관계가 평등한 것) 등의 열 가지이다.
이 열 가지는 만물이 갖추고 있는 실상이므로 이 열 가지 범주(範疇)에 의해서만이 만물의 실상은 파악될 수 있으나. 그러한 구명(究明)은 오직 부처님만이 가능하며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의 2승(乘), 즉 소승은 불가능하다고 설한다.
때문에 부처가 2승에 출현한 것은 2승에 머물러 있는 이들을 1승으로 나아가게 해서 만물의 실상을 깨닫게 하는 데 있다고 한다.
즉, “모든 부처가 2승에 출현하는 것은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위해서이다. 그 일대사인연이란, 부처의 지견을 열어 보여 주고 사람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부처의 지견에 들게 하는 것이다.”고 하는 개시오입(開示梧入)을 말한다.
따라서 모든 사람을 개시오입하게 하기 위해서는 대상에 상당하는 수단과 방법이 있어야 하므로, 부처님은 사람마다 다른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능력과 그것을 실천하는 능력에 따라 그에 맞도록 선교(善巧)한 방편을 써서 교화한다. 그리고 사람마다 능력 즉 근기(根機)에 차이가 있다고 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에도 차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이 설하는 것은 보든 사람들 평등하게 성불하도록 하는 것을 가르치므로 그것은 1불승이며, 이 1불승 밖에 다른 도는 없다. 그러나 1불승 이외에 다른 도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선교방편(善巧方便)이라고 하는 좋은 수단의 다양성 때문이다. 이 다양성에 대해서 경은 방편의 힘으로 1불성을 세 가지로 나누어 설한다고 하였다. 그것을 개삼현일(開三顯一) 또는 회삼귀일(會三歸一), 개권현실(開權顯實)이라고 한다.
이같이 ‘법화경’은 모든 사람에게 부처의 지혜를 얻게 하는 것이 목적임을 이 ‘방편품’에서 설하고 있다. 그리고 10여시라고 하는 열 가지 범주를 통하여 사물의 진실한 모습에 깨달아 들어가게 하는 논리는 ‘법화경’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주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 10여시는 구마라집이 한역한 ‘묘법연화경’의 기록과 범본의 기록이 동일하지는 않다. 구마라집이 한역할 때 용수(龍樹)의 ‘대지도론(大智度論)’ 32권의 글을 빌려 와 의역하였다고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후세에 이르러 구마라집의 이 부분에 대한 해석으로부터 천태교햑(天台敎學)의 여러 가지 교의(敎義)가 전개되었다.
‘방편품’과 함께 두 골간 중의 한 품인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은 ‘법화경’의 본문의 중심임과 동시에 ‘법화경’의 중심 안목이다.
경에서 부처님은 “그대들은 내가 이승에서 처음으로 성불하였다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다. 내가 성불한 이래 지금까지 무량백천만억의 아승기겁(阿僧祇劫)이니라. 이로부터 무수억의 중생을 교화하여 불도로 이끌어 왔으며, 그 사이에 연등불(燃燈佛) 등으로 출현하였고, 또 중생을 구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열반을 나타내었느니라. 그러나 나는 본래 보살의 도를 행하여 이룬 수명이 아직 다하지 않았으며, 상주하여 법을 설하느니라.”고 설하고 있다.
이것은 곧 석가모니부처님만이 아니고 모든 부처님이 구원의 본불임을 설하는 것이다. 다만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로도, 연등불로도 이승에 출현하며, 출현하여 열반을 나타내어 보인다. ‘여래수량품’은 열반을 나타내어 보이는 부처를 ‘법화경’의 유명한 일곱 가지 비유 중 하나인 양의치자유(良醫治子喩)로 설명하고 있다.
아버지인 양의(良醫), 즉 부처님이 길을 떠나 집에 없을 때, 아이들, 즉 중생이 잘못해서 독약(無明:번뇌)을 마시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양약(良醫), 즉 ‘법화경’을 주어 치료하였으나 정신(本心)을 잃어 약을 받아먹을 수 없는 아이가 있는 것을 보고 가엾이 여겨 약을 주고서 다시 길을 떠난다. 아버지는 떠나면서 고용인에게 아버지가 죽었다고 아이들에게 말하라고 한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말을 들은 아이들은 본심을 되찾고 약을 복용하여 병이 나았다는 비유이다.
아버지의 방편의 죽음은 방편으로 나타내어 보이는 열반이다. 따라서 부처의 수명은 영원하다는 것을 설한다. 또 ‘여래수량품’은 그 제목이 가리키듯이 여래의 수명을 설하는 장이다. 이에 대해 ‘여래수량품’에서는 세 여래의 세 수명에 대해서 설한다.
화신불(化身佛)은 수명이 유시유종(有始有終)하며, 보신불(報身佛)은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고 설한다. 이품에서 화신불의 수명을 밝히는 것은 방편문을 여는 것이며, 보신불과 법신불의 수명을 설하는 것이 이품의 진실한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은 곧 ‘법화경’이 앞의 ‘방편품’에서 중생의 성불을 위해서 설해진 경임을 알 수 있는 것과 함께, ‘법화경’이 진리 그 자체인 법신불을 설하는 경임을 알게 한다.
이 밖에 ‘법화경’이 설하고 있는 내용 가운데 다른 경과 취지를 달리하고 있는 것으로 악인(惡人)과 여인(女人)의 성불설(成佛說)이 있다. 어떠한 악인일지라도, 예를 들면, 부처님을 해치고 교단을 분열시킨 제바달다와 같은 악인일지라도 성불하며, 여인이 성불한다고 하는 주장은 ‘법화경’이 갖는, 모든 중생을 남김없이 성불시키고자 하는 원대한 의욕과 원의 발로이다. 이러한 사상에서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이 설하는 인간의 찬탄이 필연적으로 나오며, 이 인간에 대한 찬탄은 곧 모든 사람에게 갖추어져 있는 불성에 대한 예배이다.
‘법화경’은 이같이 인간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갖추어져 있는 불성을 인정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신뢰를 설하고, 그 약속을 인간 각자가 실천하여 성불하도록 구체적인 실현을 설하고 있다. 그것은 근원적인 선행의 장려이다. 인간의 세계에 범람하는 5탁(濁), 즉 무질서한 시대의 혼란인 겁탁(劫濁)과, 욕망이나 의혹 등의 번뇌가 치성하는 번뇌탁(煩惱濁)과, 인간의 악업의 과보를 두려워하지 않는 중생탁(衆生濁)과, 이기주의와 편견과 사견이 횡행하는 견탁(見濁)과, 인간의 생명이 비명으로 감축되는 명탁(命濁)의 상황 속에서 인간의 회복, 다시 말해서 불성의 발견과 개발을 위해 선행할 것을 설하고 있다.
그러나 ‘법화경’은 그러한 악을 본질적으로 인정하고 있지는 않다. 아무리 5탁이 극에 달한다 해도 그 악이 크면 클수록 부처가 출현하여 악을 제거한다고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예언이야말로 불성을 가진 인간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한 것이며, 이 점에서 ‘법화경’은 인간의 진실한 구원의 생명을 설한 경이라고 할 것이다.
출처 : 동국대학교 한글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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