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없는 가르침

분별망념과 집착을 벗어나는 지혜

수선님 2021. 12. 26. 14:00

모든 형상은 영원 실체로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 다 허망한 것이다. 만약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본다면 바로 여래를 보리라 <금강경 제5 여래실견분>

보살마하살은 집착하지 않는 깨끗한 마음을 내어야 한다. 형색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내어야 하고 소리 냄새 맛 감촉 마음의 대상에도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내어야 한다. 마땅히 집착없이 그 마음을 내어야 한다 <금강경 제10 장엄정토분>

보살은 모든 관념을 떠나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의 마음을 내어야 한다 <금강경 제14 이상적멸분>

 

부처님께서는 모든 상을 없애고 집착과 관념을 떠나라고 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진여본성을 회복하여 참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다. 일체는 모두 연기적 존재로 상호의존적 생멸관계에 있다. 일체 존재는 수많은 조건들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변화할 수밖에 없다<제행무상> 따라서 독립된 영혼이나 고정된 자아는 있을 수 없다<제법무아> 때문에 연기적 관계를 벗어나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일체는 무자성 공성이다.

 

괴로움이 생겨나는 원인

1.괴로움이 생겨나는 것은 과보로 받은 몸 때문이다. 육체는 취착된 색의 특성으로 인필연적으로 부조화가 일어난다. 

성인은 실제로 몸이 고의 근본이고 병이 아닐 때가 없는 줄 아신다. 4대가 합쳐진 것이 몸이니 지수화풍의 본성은 서로 잘 적응하지 못하고 각각 서로 해치기 때문이다. <대지도론>

2.괴로움이 생겨나는 것은 지은 업력 때문이다.

3.괴로움이 생겨나는 것은 무명으로 인한 갈애 때문이다. 갈애는 잘못된 사견 때문에 생겨난다. 사견은 유신견과 아견 등을 집착하는 견해를 말한다. 사견은 무지 때문에 생긴다. 무지란 몸과 마음에 대해 올바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갈애가 사라지면 괴로움도 사라진다. 갈애란 마음 속에 일어나는 모든 형태의 욕망이다. 갈애는 괴로움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모든 중생은 허망하고 비뚤어지게 헤아려서 이것이다 저것이다 이것을 얻었다 이것을 잃었다 하며 착하지 못한 생각을 일으켜 여러 가지 악업을 짓고 6취에 윤회하며 모든 괴롭고 독한 것을 지어서 한량없는 억겁 동안 스스로 나오지 못하느니라 <무량의 경 제2 설법품>

 

일체 중생은 허망한 분별로 악업을 짓고 그 악업으로 인해 괴로움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 중생들은 허망한 분별을 일으킬까? 

중생들이 허망한 분별을 일으키는 것은 무명의 업식으로 마음의 장애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무명은 마음을 주관 객관으로 이원화시켜 분별하게 한다. 마음이 이원화되면 청정과 지혜를 떠나 분별심으로 전환되어 버린다. 분별을 멈추려면 무명을 깨뜨리고 업식을 정화해야 한다. 무명을 만드는 것은 미혹한 업 때문이다. 업은 결과를 낳는 근원적인 행동을 말한다. 마음에 의도를 가지고 하는 모든 행위는 모두 업이 된다. 

 

부처님께서는 인과법칙을 말씀하셨다. 인과법칙이란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는 말이다. 선인락과 악인고과 인과응보다. 자기 삶의 모든 결과는 자기 자신의 책임이다. 업의 과보는 한 치의 오차도 없다는 말이 인과율이다. 악업을 많이 지으면 삶은 구속되며 고통스러워진다. 선업을 많이 쌓으면 인생은 자유롭고 장애가 없어진다. 자작자수 자업자득업이 인과율이다. 자신의 자유와 행복은 자기의 마음가짐과 행동에 달려있다.

과보를 초래하는 악업의 원인은 미혹 때문이다. 미혹-> 작업-> 수고. 반대로 보리심은 선업을 낳게 하고 선한 과보를 받게 한다. 마음 속에 저장된 업은 연을 만나면 과보를 불러 일으켜 나의 모습과 삶의 환경을 만든다. 

 

업이 마음 속에 저장되는 것은 아뢰야식이 있기 때문이다. 아뢰야식에 무명의 업식이 있는 한 삶은 고통 받을 수밖에 없다. 마음에 대한 이해 없이는 마음의 본성을 깨달을 수 없다. 대승불교 유식학에서는 마음을 심의식 또는 8가지 마음으로 설명한다. 심은 제8 아뢰야식 의는 제7 말나식 식은 전6식<전5식과 제6 의식>이라 한다. 5가지 감각기관을 통해서 아는 인식들을 전5식이라 한다. 의근을 통해 객관적인 사물을 인식하는 마음을 제6 의식이라 한다. 자아의식을 제7 말나식이라 한다. 선험적 의식의 함장식을 제8 아뢰야식이라 한다. 

 

전5식은 다른 마음들에 비해 인식활동이 아주 단순하다. 전5식은 직관적인 감각인식이다. 제6의식은 대상인식을 개관화시키는 작업을 한다. 제6 의식은 제7 말나식을 의지처로 삼는다. 제6 의식은 전5식과 함께 인식활동을 하지만 때로는 단독으로 인식활동을 하기도 한다. 제6 의식은 깊은 잠이나 기절했을 때 무상천과 무상정 멸진정에서는 활동하지 않는다<5위무심>

 

제7 말나식은 제6 의식이 대상을 인식할 때 분별해서 인식하는 주체다. 제7 말나식은 나에 대한 집착심을 일으킨다. 제7 말나식의 집착심으로 인해 마음은 오염심이 된다. 제7 말나식은 분별사량하는 염오식이다. 제7 말나식은 아치 아견 아만 아애 등의 근본번뇌를 가지고 있다. 제7 말나식은 항상 무엇인가를 살펴 분별항는 항심사량이 특징이다.  

 

제8 아뢰야식은 마음의 근본이다. 제8 아뢰야식의 Alaya는 저장하고 있다 간직하고 있다 등의 의미로 장 도는 저장소라고 한다. 중생들이 지은 업이 자신의 마음 속에 간직된다는 뜻에서 아뢰야식이라 부른다. 제8 아뢰야식 속에는 훈습된 종자가 저장되어 있다. 아뢰야식 속의 종자는 내 몸과 내 환경을 만들어내는 동력이 된다. 아뢰야식이 만들어지는 근본 원인은 제7 말나식 때문이다. 유루법이 현행하는 사이 즉 아집 등이 활동하는 위치에서만 제8 아뢰야식이 존재한다. 만약 오염심이 없는 성인의 경지에 오르게 되면 아뢰야식의 이름은 없어진다. 

 

마음의 본성은 진여이며 불생불멸이다. 진여 자체는 표현될 수 없고 설명될 수 없다. 우리가 진여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마음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의 오염과 분별망상을 멈추면 진여본성을 깨달을 수 있다. 중생의 마음은 오염과 청정의 화합식이다. 

 

분별망상과 집착을 벗어나는 방법

1.진여본성을 의지해서 아뢰야식을 정법으로 정화시켜 나가야 한다 <정법훈습>

2.본각진심의 진여본성을 믿고 깨달아야 한다.

 

깨달음이란 몸과 마음의 망념을 떠나는 이념이다. 몸과 마음에서 일으키는 망념 망상을 떠나는 이념이 곧 깨달음이다. 마음을 진여본성에 의지해서 끊임없이 훈습시켜 나가자.  

9회. 대풍 범각스님. 분별망념과 집착을 벗어나는 지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