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성게 강설 /종범스님17
窮坐實際中道床 궁좌실제중도상
舊來不動名爲佛 구래부동명위불
그 다음에는
窮坐實際中道床
궁좌실제중도상하면
舊來不動名爲佛구래부동이
名爲佛명위불이라.
窮坐궁좌라
이 말은 마지막에 앉는다.
이게 窮坐궁좌에요.
마지막에 앉는다.
마지막에 턱 돌아간다.
거기에 턱 편안히 머문다.
이게 좌거든요.
좌(머물 坐).
窮궁이라 하는 것은
마지막에
최종적으로 이런 얘기요.
그럼
어디에 머물고
어디에 돌아가느냐?
실제 中道床중도상이라.
실제.
실제라고 하는 것은
그 본 깨달음의 세계.
際제라고 할 때
이것은 세계를 말하죠.
국제적으로 할 때. 그 세계
세계를 제자라는 말을 쓰죠.
그러면
현상세계가 아니고 진실세계.
이것을 실제라 그럽니다.
진실세계. 그 본질세계.
그 진실과
본질의 세계의 中道床중도상에
마지막으로 안주한다. 이리 되는데.
實際中道床
실제중도상이라고 하는 거
이게 참 중요한 문제에요.
中道중도.
中道중도라고 하는 게
이게 참 좋은 말인데.
中道중도가 뭐냐?
中道중도라고 하는 것은
열반에 치우치지도 아니하고
생사에 치우치지도 아니하고.
이게 際中道중도에요.
그러니까
생사와 열반을 다 초월해 버려.
초월. 생사에 집착도 안 해요.
성불하게 되면.
또 열반에 집착도 안 해요.
생사에 집착하는걸 보고
중생이라 그러고.
열반에 집착하는걸 보고
소승이라 그래요.
소승. 소승들은
아라한. 벽지불 이런 분들인데.
이런 분들은
삶과 죽음이 없는
그 열반을 좋아해요. 생사를 싫어하고.
그런데 중생은
끊임없이 이 세상거를 구하는거에요.
좋은 거 다 가지려고 그러고.
좋다면 다해요 중생은.
하여튼 좋은걸 좋아하는 게 중생이에요.
참 이상해요.
평생을 두고도 좋다면 좋아해.
지금까지 좋은 거
좋아한 거 다 어디 갔는지.
계속 좋은 것만 좋아해.
그게 좋은 것만
끊임없이 좋아하는 게
그게 중생입니다.
그걸 일러서
생사에 집착한다.
이 세상에 집착한다 이래요.
그런데 또 세상거는
항상 투쟁과 고통이 있다고
그래서 싫어하고.
조용하고 신성한
해탈만을 좋아하는걸 보고
열반에 집착한다고 그래요.
그런데
부처님은
생사열반에서 다 초월해 버린다.
생사도 집착하지 않고.
열반도 집착하지 않고. 다 초월해 버려.
그런데 때에 따라서는
생사에도 나타나시고
열반에도 나타나시니까.
초월과 자재.
자유자재.
이걸 중도라 그러는 거에요.
첫째는 초월해 버리고.
둘째는 자유자재하는 거에요.
도망가는 게 아니에요.
이게 중도입니다.
오늘 날 일반적으로
중도파. 중도계열.
뭐 이리 되면은
여당도 아니고 야당도 아니고.
중간에 있어서
꼭 충청도사람처럼.
전라도하고 경상도 하고 싸우면.
여기저기도 속하지 않다가.
어느 한쪽에서 이기면.
이긴 쪽에 슬쩍 붙어서.
덕 보려고 하는.
그런 어정쩡한 그런 걸 보고
중도파라 그러거든요.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는 그게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요.
그래서 용어는 같은데
의미가 다른 게 너무너무 많아요.
그게 참 많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는
첫째는 초월해야 되요.
여기저기에서
다 떠나야 된다 이 말이야.
그런데
그 다음에는 자유자재가 되요.
이쪽으로 나타날 때는
이쪽으로 나타나고.
저쪽으로 나타날 때는
저쪽으로 나타나서.
마음대로
원력에 따라서 나타나는 거.
이것이 바로 중도상입니다.
그럼 마지막으로는
거기에 앉는다 이거요.
생사에 초월해서
생사에 자유자재하는게 성불인데.
그 세계에 들어간 듯이
實際中道床실제중도상에
궁극적으로
편안히 머물게 된다 이 말이죠.
그것이 바로
窮坐實際中道床
궁좌실제중도상이에요.
최고로 성불한걸 말합니다.
그리되면
舊來不動名爲佛
구래부동명위불이라.
옛부터 움직이지 아니한 것이
바로 그게
이름하여 부처라고 한다.
움직이지 않는 게 뭐냐?
理事이사가
冥然명연하야 무분별이니까.
모든 사물 현상이 나타났지마는
그 이치에서 볼 때.
그건 나타나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고.
물이라고 하는 습기가
여러 가지
얼음도 되고, 구름도 됬지만은.
습기는 달라진 게 없다 이 말이죠.
습기. 얼음이 됐다 그래서
습기가 달라진 게 아니고.
구름이 됐다 그래서
습기가 달라진 게 아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가보니까.
여러 가지 모양으로
돌아다녔지마는
그대로 있었던 거다.
이게
舊來不動구래부동이에요.
이게 화엄경 사상이에요.
그래서 화엄경은
여러 가지 작용을
끊임없이 일으키지만은
그 본질은 그대로 있다.
이게
諸法不動本來寂
제법부동본래적이고.
舊來不動名爲佛
구래부동명위불.
이게 화엄경의 중요한 사상입니다.
그래서 이걸
여러 가지로 비유를 하는데.
꿈속에서
여러 군데 돌아다니던 사람이.
꿈속에서는 많이 다녔는데.
꿈 깨고 보니까
그대로 본래 누워 있더라.
이런 거에요.
그런데 꿈꿀 동안에는 몰라요.
자기가 그대로 있는 줄을 몰라.
그래서 꿈을 깨봐야
내가 그대로 있었구나를 알게 되요.
마지막에 아는 겁니다
이게. 그래서 젊을 때는
수 없는 방황을 하게 되요.
방황을 하게 되는데.
결국에
지혜가 높아 갈수록.
아~ 인생이라는 게 결국
요 자리로 돌아오는구나.
그걸 알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그래요.
인생이라는 말을 왜 썼겠는가?
살아봐야 안다고 인생이에요.
그래서
사람인자 밑에는
산다는 生생자를 넣어서
인생이라 그래요.
이제 머리 좋다고
2,30년 살고 인생을 안다.
그건 거짓말이에요.
인생은
적어도 다 살아보고.
마지막에 죽을 때 가서 알아요.
죽을 때가서.
그래 살아봐야 알지.
살지도 않고 인생을 어떻게 아는가?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참 머리가 좋아서.
살아야 사람을 안다는 뜻으로.
사람 人인자 밑에는
산다고 하는 날生자를 딱 넣어서
人生인생이라 한 거 같아요.
아주 묘하더라고요.
그러듯이
不動부동이라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고로 높은 세계에 가봐야
不動부동의 세계를 알지.
가보지도 못하고
어떻게 아는가? 이런 얘기죠.
완전히 성불해 보면은.
옛날옛날 그 억만 겁 전서부터
달라짐이 없이 제 자리에 있더라.
제 자리에 있는 것을
깨달은 사람을
이름하여 부처라고 한다.
이게
舊來不動名爲佛
구래부동명위불이라.
이렇게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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