頌
함부로 손가락질하더라도(함부로 해설을 단다해도), 팔은 밖으로 굽지(내굽지: 무리하게 억지로 해설을 붙이지) 않느니라.
胡亂指注라도 譬不外曲이니라.
호란지주 비불외곡
[선분별제법 후설필경공]
부처님은 우주만유에 대해서 자세히 분석했다. 자연계에 있어서는 큰 것으로는 삼천대천세계와 삼계이십오유有를, 작은 것으로는 티끌의 십만 분의 하나와 한 방울 물속에 팔만사천 벌레가 있다는 것도 말씀했다. 그리고 정신계에 있어서는 백팔번뇌라든지 팔만사천 망상 같은 것들을 자세히 풀어 밝혔다. 또 공부하는 방법으로는 사제四제(글씨가 없음. 두 글자의 合.言帝) 십이인연.삼승사과(乘.果). 육도만행六度萬行. 삼십칠조도품. 오십오위 같은 것을 밝게 가르치고, 나중에는 「반야심경」의 빈(空)이치를 말씀하여 모든 물질과 일과 마음까지라도 본래 빈 것이며 헛것(幻변할환)이치를 말씀하여 모든 물질과 일과 마음까지라도 본래 빈 것이며헛것인 것을 가르친 것이다.
'호란'은 唐代의 속어로 '갑자기, 확실하지 않은 것, 마무리 짓지 않은 것, 함부로, ~ 하는둥 마는 둥, 멋대로'의 뜻이다. '지주'는 주해를 단다는 뜻.
따라서 호란지주는 함부로 아무렇게나 해설을 다는 것을 말한다.
'비불외곡' 무리하게 억지로 해설을 붙인다는 뜻에서 위의 '호란지주'와 뜻이 통한다.
자취는 祖師의 말 자취요, 뜻意은 공부하는 사람의 의식이다. 부처님은 만대에 기댈 스승이시므로 이치를 자세히 가르치셨고, 조사는 곧바로 해탈함에 있으므로 깨치는 것을 위주로 하셨다.
[해탈]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 혹은 자유자재라고도 한다. 또는 열반의 다른 이름으로도 쓰인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서 여러 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해탈과 열반은 개념상 다르다. 해탈이 자유라면, 열반은 평화인 것이다.
10
부처님은 활같이 말씀하시고 조사들은 활줄같이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걸림없는 법이란 바로 한 맛에 돌아감이다. 이 한 맛의 자취마저 떨어 버려야 비로소 조사가 보인 한 마음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므로 「뜰 앞에 잣나무이니라」라고 한 화두는 용궁의 장경에도 없다고 말한 것이다.
'맛' 一味. 모든 사물은 천차만별로 낱낱이 다른듯하지만, 실상은 절대 평등하여 다르지 않고(不二] 똑같은 것이다.
'장경' 석가여래께서 세상을 떠난 후 제자들이 부처님 말씀을 경.율로나누어엮고, 경을 주석하여 論을 썼는데 이를 합해서 삼장藏이라 한다. 모든 진리가 그 속에 갖추어 있으므로 큰 창고와 같다 해서 '대장경'이라고 한 것이다.
제불(諸佛)은 설궁(說弓)하시고 조사(祖師)는 설현(說絃)하시니,
불설무애지법(佛說無碍之法)은 방귀일미(方歸一味)어니와
불차일미지적(拂此一味之迹)하야사 방현조사소시일심(方現祖師所示一心)이니
고(故)로 운(云), 정전백수자화(庭前栢樹子話)는 용장소미유저(龍藏所未有底)라 하니라.
'용장' 용궁의
조사 언구는 경전에 없는 예기다. 그런 말이에요.
'방方귀일미' 바야흐로, 어느 싯점에 다다랐다.
옛날에는 이 방字를 ' 비로소'라고 번역했어요.
이제까지 없다가 이제서야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은 비로소 일미에 돌아갔다.
'일미'가 남아 있으면 자취가 남아 있는 기라.
자취 없는 법을 억지로 또 원상을 이렇게 그리기도 하고
방(때림) 할(고함) 양구(일체대꾸없슴)이 있어요.
주장자가 뭐냐? 그걸 설명하면 일심법이에요.
방에 들어가서 이렇~케 봤는데 방에 아무것도 없어.
그게 아무것도 없은 게 아니죠. 그 방을 바라보는 자기는 방안에 있었거등요.
자기를 못 본 거예요.
그래서 불생불멸이라고했는데, 불생불멸이라고 느낀 그 한마음을 못 본 거예요.
불생불멸이란 한 생각이 일어났는데 어떻게 불생불멸이여~? 아무것도 없다!고
보는 그놈이 방안에 있었는데 어떻게 그 방에 아무것도 없었느냐고.
"방 안에 누구 계십니까?"
"안계십니다."
나는 마음을 비웠다~ 그러면 그거 안비웠다는 그말 아니요. '비웠다' 는 생각이 있으니까.
道라는 게 그런 거예요.
색즉시공, 을 먼저 알아요. 그런데 색이 공한 걸 안 마음까지도 공한 걸 알려면 그 다음에
한참 있어야 알아요. 심공이 그 다음이에요. 심공을 알아두 지금까지 구하던 습관이 있어서 계속 구해요. 그래서 그 습관까지 떨어져 나가야 비로소 '해행' 이 상응하게 되요. 아는 거 하고 실행하는 거 하구 서로 조화가 되게 되요.
첫번째는 색공을 알고, 두번째는 심공을 알고, 세번째는 해행을 이뤄요. 그 다음엔 어떻게 되느냐??
지덕자재에요. 그 경지가 최상의 도인이예요. 물이 흐르면 농사도 짓고, 설겆이도 하고..., 그런 것이 뭐 계획을 갖고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지혜의 덕이 항상 자재롭게 펼쳐지는 단계예요.
불생불멸이다 공하다 그랬는데, 비운놈이 있고 그걸 아는 놈이 있으니, 그게 어떻게 공한 거예요.
뭐라구뭐라구 말을 하자나요. 그 말하는 개념은 주장은 아무 의미가 없고
왜 저런 말을 하는가? 핵심이 거기에 있어요
대답을 하려고 하지말고 그말을 왜 하나? 여기서부터 시작해야되요.
시어머니가 저 말을 왜 할까?
시어머니가 막 뭐라구뭐라구 그래요. 그러면 시어머니가 저 말을 왜할까?
그 말속에 그 사람 모든것이 다 들어있어요. 그래서 심리를 이해하는데는 '그 말을 왜 하나?'
"오늘 날씨 참 덥네요." 그러면 "네. 덥네요."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닌거예요. 날씨 덥다는 말을 왜 하냐? 그 말을 할 때에는 반드시 구하는 바가 있는 거예요. 남편이 뭔 소릴 하면 '저 말을 왜 하나?' 그 말 속에 모든지 다 들어 있어요.
활같이 말했다는 것은 굽다는 뜻이고, 활줄같이 말했다는 것은 곧다는 뜻이며, 용궁의 장경이란 용궁에모셔 둔 대장경이다.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 이에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잣나무이니라" 하였는데, 이것이 이른바 격 밖의 선지이다.
說弓(설궁)은 曲也(곡야)요
說絃(설현)은 直也(직야)니
龍藏(용장)은 龍宮之藏經也(용궁지장경야)라
僧(승)이 問趙州(문소주)하되
如何是祖師西來意(여하시조사서래의)닛고
州答云庭前栢樹子(주답운전백수자)라 하니
此(차)는 所謂格外禪旨也(소위격외선지야)라.
이거를 생각으로는 통과할 수 없다 해서 이걸 '관' 字를 써서 '관문'이라고 그래요.
조사관은 뚫어야 되지, 짐작하는 게 아니거든요. 뚫는거 확 뚫고 나가야 되요.
"달마대사께서 중국에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다" 이랬단 말예요. 그 뿐이에요. 그럼 이걸 뚫는 방법은 뭐냐?
'왜 뜰 앞의 잣나무라고 했을꼬?' 요거 뿐이지
다른 거 일체 붙이면 병이에요. 간화 십종병이라고 정리를 해 놓은 게 있어요. 그 십종병에 다
떨어지게 되어 있어요. 화두를 드는데 열가지 병이 있다~
첫째가 생각으로 헤아리는 거거든요.
그럼 가는 길이 뭐냐? 다만 의심할 뿐이요. '왜 뜰 앞의 잣나무라고 했을꼬?' 왜 했을꼬
영원히 그것뿐이에요. 거기에 모든 것이 다 나타나는 거요. 거기에 현통이 있어요.
'이럴 것이다' 그런 거 없어요. '저럴 것이다' 그런 거 없어요. 그런 건 현통이 아니고 사량이에요.
조사언구는 현통으로 해결되는 것이지 사량으로 짐작되는 게 아니다.. 현묘하게 통해야 된다. 현묘하게 통하는 방법은 '왜 했을꼬?' '
'어째서 했을꼬?' 고것이 가는 길입니다. 고거 하나에 다~ 되는 거에요.
'격외선지'니라 격이라는 건 생각이거덩요. 격 밖의 선의 뜻이니라~
생각 밖에 있는 거예요. 안이다 밖이다 된다 안된다 이게 전부 '격' 입니다.
'왜 뜰 앞의 잣나무라 했을꼬?' 그것뿐이에요. 거기에 모든게 다 들어 있는 거에요.
그렇게 쉬워요, 이게(미소혹은실소를..) 세상에 쉬운 방법이 이 간화선이에요.
죽비를 치고 시간을 지켜라 뭐 이따위 것들 소용없구요,
그냥 앉으나 서나 가나 오나 오직 의심할 뿐예요. 그러니까 '선' 그러면 어깨 세우고 목에 힘주고
이거 생각하는데 그거 아녜요. 의심이 그냥 뭐 이상하다이상하다 그게 아니고 '참구' , 참여해서 찾아간다 이소리에요. 스스로 찾아가는 의심이다. "왜 뜰앞의 잣나무라했을꼬?" 잣나무가 뭐 푸르기 때문에 사시사철 변하지 않으니까 그거 아녜요.
택시기사 왈, 달마가 동쪽으로간 까닭은? 라고 물었더니 "달마가 누구한테 임명장을 받고 갔겠죠(웃음).
그래서 사람은 늘 생각하던 방식대로 생각하는 거여~ㅎ
쉽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도 격외에요. 오래 가냐? 금방 깨닫느냐? 그것도 격외에요. 사람에 따라서 될 수도 있는 거고, 안 될수도 있는 거고. 몇백년이 되도 못 깨달을 수 있는 거고, 일언지하에 깨달을 수도 있는 거죠. 이게 격욉니다. 이게.
그래서 오직 '현통'이래야만 된다. 현통. 격이란 건 자취거든.
頌(송)
魚行水濁(어행수탁)이요 鳥飛毛落(조비모락)이니라.
주장자를 이렇게(쥐고 세우는 액션) 쥔 거, 이게 격외법문이여. 이게 주장자다 격이지. 아니다, 격이지. 있다. 없다. 길다 격 밖의 소식을 격을 통해서 보이는 거죠. 이렇게~(주장자를 쥐고 세운 액션) 그리고 그걸 통해서 거기에 매달리면 아니고, 그걸 통해서 딱 현통을 하면
말을 하면 말에 매달리는 게 아니라 말을 통해서 깨달아야 해. 그게 현통이요.
달을 이러~케 가리키면 손가락을 보는 게 아니라 달을 탁 쳐다봐야해요.
'조비모락' 털이 떨어져서 어디로갔노? 그것도 격이죠(웃음). 물이 탁해서 어찌됐노?
뭐든지 갖다 들여대면 얻어맞죠. 그럼 안들여대면 상받냐? 소용없어요. 그것도 격이죠.
그러니까 더 얻을려고 자꾸 말하는 경우도 있고, 망신 안당할려구 말 안하는경우도 있어요. 말 안하는 사람은 망신당하기 싫은 거고, 말하는 사람은 더 받아낼라고 하는 거고. 똑같지유 뭐.
저 말 왜 하나? 마음을 탁 찔러야지, 말 잡고 끌려가서 말이 어떻다저떻다 소용없는 거요.
선지식들은 척 보면 그 사람이 구하는 걸 알아요. 그게 신통이요. 딱 들어오자마자 알아삐리요. 저놈이 뭘 구하러 오는구나. 선지식을 떠보러 오는 놈도 있고(섬찟하다) 지 생각을 주장하려고 오는 것도 있고, 자길 인정해달라고 오는 것도 있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오는데, 오자마자 알아삐리요. 그게 선지식의 안목이에요.
격이 없는 가운데 격이 있어요. 고함지르자나요. 고함 지르는 것도 거기에 의미가 있는 거에요. 거기에. 이 교재에서는 그게 빠졌는데, 추가해서 넣어야 해요.
종범스님의 선가귀감
제4강 - 1부
2011년 6월 22일(지금이 22년 6월이니 꼭 11년 전의 강의모습이시네~ 11년 지난 지금은 많이 늙으셨겠다)
11구와 12구를 건너뛰고 13구 강의가 있네요ㅜㅜ 내가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요.
종범스님의 선가귀감
제3-5강 이후의 3-6강이나 3-7강은 보이지 않는다..
잘못 알았넹ㅎ 위의 헤멘 부분조차도 지우지 않고 기록한다.
종범스님의 선가귀감
제3강 - 5부
2011년 6월 21일... 것을 찾아 아래에 기록한다.
11
그러므로 배우는 이는 부처님의 참다운 가르침으로써 변하지 않는 것과 인연 따르는 두 가지 뜻이 곧 내 마음의 본바탕과 형상이고, 단박 깨치고 오래 닦는 두 가지 문이 공부의 시작과 끝임을 자세히 가려 알아야 한다. 그런 연후에 교의 뜻을 내버리고 오로지 그 마음이 뚜렷이 드러난 한 생각으로써 참선한다면 반드시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뛰어나 살 길이다.
고(故)로 학자(學者)는 선이여실언교(先以如實言敎)로
위변불변수연이의(委辨不變隨緣二義)가 시자심지성상(是自心之性相)이며,
돈오점수양문(頓悟漸修兩門)이 시자행지시종연후(是自行之始終然後)에
방하교의(放下敎義)하고 단장자심현전일념(但將自心現前一念)하야
참상선지즉필유소득(參詳禪旨則必有所得)하리니 소위출신활로(所謂出身活路)니라.
'위변' 자세히 가려놓아야 한다. 자세히 분별한다. 요새말로 '변별'이죠.
뭘 가려놓느냐? 불변과 수연의 2개인데
자기마음의 본성과 형상이며
'돈오'와 '점수' 단박에 깨친 것과 점점 닦는 게 있는데
이 두가지 문이 자기 수행의 '시종' 이라.
이것을 자세히 가린 연후에
불변수연이 있고, 돈오점수가 있는데
불변수연이 자심의 자심의 성상이고
돈오점수가 자행의 시종임을 교를 통해서 자세히 분별한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방하교의' 교의 뜻을 놓고, 방字기 어조사로 많이 쓰입니다. 이게. 강조하는 어조사에요. 이게 .
아래 '하' 자는 내려놓는다 이소리에요. 교의를 놔 뻐려요.
다만, 오직 앞에 나타난 일념, 일념은 일법인데, 일법은 중생심이라. 중생심이 나타나잖아요. 항상.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이거에요. 현전일념이.
'참상선지'를 한다 그 말이에요. 선지는 마음 찾는 일이에요. 마음찾는 길을 참상하면...,
참구를 해서 자세히 살핀다. 참은 참구의 뜻이교, 상은 상明한다는 뜻이요.
'필유소득' 반드시 얻는다고 했다.
내가 누군지 일물, 을 알게 되요. 부모미생전의 일물, 부모가 낳기 전 일물을 알게 된다 이거요.
소위, 이른 바 몸 벗어날(근심.걱정을 다 놓을) 좋은 길이다.
구해서는 안되요. 돌이켜봐야 해요. 인류가 수억만년을 구해봤는데, 영원히 만족하지 못해요.
구해도 구해도 끝없이 부족해요. 채워두 채워두 영원히 채울 수 없는 게 마음입니다(왜 이렇게 이 대목에서 마음이 처연하고 눈물이 날라고 하는가!)
그 방법을 딱 반성을 하고, 구하는 마음을 돌아봐야 한다.
그런데 중생은 구하는 마음이 뼈속까지 백혀서 그냥 구할라구만 그래요. 그걸 업장이라고 그래요.
저거 하나 구해봐야 만족못할 줄 몰라요. 저거만 구하면 그냥 찰자 고칠 줄 알아요.
구해놓고 딴 거 또 구하고(하~ 도인이네). 여엉원히 그래요.
구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좋은 길이다.
고통이 왜 오냐? 구하기 때문에 와요. 늙는 게 문제가 아니라 늙는 게 싫어하는 욕심땜에 문제에요.
죽는 게 문제가 아니라 오래 살려구 하는 욕심때문에 문제요.
아무것도 아녜요. 낙엽 떨어지는 게 문제 안되듯이, 더 구하는 욕심이 없으면 죽고 사는 게 아무문제가 없는 거지. 못생긴 게 문제가 아니라, 자기 얼굴에 만족 못하는 욕심이 문제인 거예요(뜨끔하다).
자기 얼굴 다른 사람이 아무도 안쳐다보는데, 다 쳐다보는 줄 알고. 자기 하기도 바쁜데 남의 얼굴 왜 쳐다봐요. 그런데 아, 내 얼굴 잘못돼면 어하나하구. 전부 자기 생각에 빠져가지구.
출신활로 참 재밌는 말이에요. 모든 문제 다 해결하는 좋은 길이다. 활로예요. 활로.
마음 하나 돌아보는 것이.
높은 기틀과 큰 지혜가 있는 이는 더 말할 것도 없지만 보통사람은 함부로 건너 뛰어서는 안된다. 교의 뜻이란 변하지 않는 것과 인연 따르는 것, 단박 깨치는 것과 오래 닦는 것에 앞뒤가 있다는 말이다. 선법禪이란 한 생각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과 인연 따르는 것과 성품과 형상과 體와 用이 본래 한 때이므로, 곧 그것도 아니며 아닌 것까지도 아니나[離卽離非] 또한 그것도 되며 아닌 것도 되는 [시즉비즉是卽非卽] 것이다. 그러므로 종사宗師는 법을 쓰되 말을 여의고 바로 한 생각을 가르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하는 것이니, 교의 뜻을 버린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註解(주해)
上根大智(상근대지) 不在此限(부재차한)
中下根者(중하근자) 不可獵等也(불가엽등야)
敎義者(교의자) 不變隨緣(불변수연) 頓悟漸修(돈오점수)
有先有後(유선유후)
禪法者(선법자) 一念中(일념중) 不變隨緣(불변수연) 性相體用(성상체용)
元是一時(원시일시) 離卽離非(이즉이비)
是卽非卽(시즉비즉)
故宗師據法離言(고종사거법이언) 直指一念(직지일념)
見性成佛耳(견성성불이) 放下敎義者(방하교의자) 以此(이차)
頌(송)
明歷歷時(명역력시) 雲藏深谷(운장심곡) 深密密處(심밀밀처) 日照晴空(일조청공)
환히 밝은 때에는 깊은 골에 구름끼고, 깊숙이 빽빽한 곳엔 맑은 하늘에 해가 떳네.
'이의二義' 변하지 않는 '불변'은 성품의 이치이며 자체이고,ㅡ 인연 따르는 것[수연]은 형상이며 작용이다. 즉 본체와 현상을 가리킨 것이다.
'방하교의' 공부하는 이에게 경전은 마치 여행하는 나그네의 안내서와 같다. 길을 안 뒤에는 책을 덮어놓고 부지런히 길을 가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교를 버리고 선에 들어간다'라고 하는 것이다.
'출신활로' 번뇌의 불집(火宅)과 망상의 고생바다[고해]에서 아주 뛰어나 큰 자유와 큰 해탈을 얻는 길 곧 조사선의 바른 길을 이름이다.
'원시일시' 부처님은 많은 중생을 상대로 말씀하여낮고 옅은 곳으로부터 높고 깊은 데로 인도하기 위해, 처음에는 분명하게 선후.시종의 차별이 있는 것으로가르쳤지만, 참선문 중에서는 오묘한 이치를 바로가르치므로 性. 相. 體. 用이 모두 한 생각 가운데 있는 것을 말하게 된다. 변하지 않는 것이 곧 성품이며 體이고, 인연 따르는 것이 곧 형상이며 작용用이다.
'이즉이비 시즉비즉' 진여문眞如門에서 본다면 만법은 다 똑같다. 이것을 '즉= 곧 그것' 이라 한다. 그러나 차별문差別門에서 보게 되면 삼라만상이 완연히 벌어져 있는 것이다. 이것을 '비非=아니다' 또는 '다르다'라고 한다. 그렇지만 본래 하나도 없기 때문에 진여문과 차별문이 둘 아닌 동시에 하나도 아니며, 다른 동시에 곧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차별이 곧 평등이며, 모순이 곧 조화이다. '즉卽도 여의고 비非도 여의고, 시是에도 즉卽하고 비에도 즉한다' 하여 이것을 쌍차雙遮(막을차)쌍조雙照라고 하는 것이다. '종사'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을 전하는 스승을 가리킴이니 조사祖師와 같은 말.
큰나무, 작은나무 에다 비유하면 '근根'이요
기계에다 비유하면 '機'
아무리 총명해도 의지가 약해버리면 그만이요, 안됩니다.
'엽' 자가 사냥할 엽자인데, 뛰어넘을 '엽'자가 됩니다.
'등'은 등차
등차를 뛰어넘지 못할지니라~~
'불변수연'이 어떤 것이고 '돈오점수'가 어떤 것이다. 요거를 먼저 알고
그 다음에 그 교의 뜻을 놓고 선지를 참구하고 상명하는 그 순서의 등차를
뛰어넘지 못한다. 그런 예깁니다. 중하근자는...
'거법' 법에 의지해서 '이언' 말을 떠억 여의고
말로 가르치는 게 아녜요. 선은. 말 여윈 자리를 깨닫게 하는 게 선이죠.
그래서 깨달으면 선이고 가르치면 교예요.
바로 '일심'을 딱 가르켜서 본성을 보아 부처되게 하는 것이니라.
이룰 '성'자나 지을 '작' 자나 같은 의미에요.
부처된다. 작불이다.
교의를 놓는 것이 이러한 까닭이니라. '써이以' 字는 까닭이거든요.
개념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일념'을 가리킨다. 가르치는 게 아녜요~~
그래서 가리키는 방식이 전혀 틀려요.
"진여가 뭡니까?" 물었어요 경봉스님한테.
그랬더니,
"말 배우는 사람 되지 마라~" 그러셨어요.
자꾸 따진단 말예요. 바로 '무엇인가?' 바로 들어가야 해요.
내가 억만년을 해석하고 의견을 내도 자기 의견에 절~대 만족할 수 없어요.
소용없어요(민머리를 계속 매만지신다). 그래서 자기 부족견(?)을 자꾸 다른사람한테서
채울라구 그래요. "내 말 괜찮았어?"(웃음) 지가 괜찮았으면 됐지 왜 자꾸 다른 사람한테 묻냐 이거에요. 게 자기만족 못하는 거제. 자기도 만족못하면서 누구한테 동조해달라고 그래요. 아주 웃겨어~
"좋았어?" 이러면서(웃음) 칭찬듣고 싶어서. "앞으로 계속해도 될까?" 또 묻구(웃음)
그런 동조해주는 사람을 자꾸 찾아요. 자기를 강하게 해야 될텐데.. 자기편 자꾸 만들고.
얼마나 불안하면 자기편을 자꾸 만들어요? 이상하기 그지없어. 고따우로 살아가는 게 중생이요(큰웃음)
頌(송)
훤칠하게 밝을 때에 깊은 골에 구름 끼고, 그윽하게 고요한 곳 맑은 하늘 해가 뜬다.
明歷歷時(명역력시) 雲藏深谷(운장심곡) 深密密處(심밀밀처) 日照晴空(일조청공)
(22/6/25, 22:00 저녁에 2층과 10층 셔터감지기가 울고, 사이렌이 울려 퍼지고 , 껌뻑껌뻑 붉으 파편들과 굉음의 경보음. 얼른 옆의 스위치를 OFF하라고 했고, 오가 잽싸게 커서로 왼쪽으로 하여 껐다. 나는 2층으로 가서 실제 화재가 났나를 보았으나 정상이었다.
(22/6/27, 월욜 20:47)
'명역력시' 밝을명자, 역력할 역자, 역도 역시 밝다는 뜻이거덩요.
'밝고 밝은 때에' 이소립니다.
'명'이나'역력'이나 같은 의밉니다.
구름이 깊은 골짜기에 덮여있고
깊고 은밀하고 은밀한 곳에 해가
맑은 허공을 비춤이로다.
종범스님의 선가귀감 제3-5강
묻는 방식이 있어요.
"말 배우는 사람이 되지 마라."
그게 이제 '방하교의' 하고 '참상선지'하라 이거에요.
교의 뜻을 놓고, 선지를 참구하여 자세히 밝혀라.
교의뜻을 못 놓으면 선지에 들어가기가 어렵잖아요. 그겁니다.
12
배우는 이들은 산 말을 참구할 것이고, 죽은 말을 참구하지 말아야 한다.
원문
大抵學者(대저학자)는 須參活句(수참활구)요 莫參死句(막참사구)어다.
'대저' 대체적으로
'학자' 요즘 대학에서 연구하는 그 학자가 아닙니다.
선학자, 도학자, 본분학자다
모름지기 활구를 참구할것이요
정전백수자.. 이게 '경절문' 활구예요.
거기에는 순서가 없어요.
'활구' 격 밖의 말을 활구라고 한다
사구는 격식을 가지고(죽었다!) 설명하는 걸 말한다.
따지는 건 '사구'에요.
바로 들어가는 건 '활구'에요.
주해
산 말(활구)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로 더불어 스승이 될 것이고, 죽은 말(사구)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산 말로써 저절로 깨쳐 들어가게 할 것이다.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활구하 천득 감여불조위사 사구하 천득 자구 불료 차하 특거활구 사자오입)
'천득' 얻는다. 파악한다. 깨닫는다는 소리예요
활구(조사서래 같은 그런 선지)에서 깨달으면
'감여' 할수 있다 가능하다 이거예요.
불조(의)에게 스승이 될 수 있으며
'사구'에서 깨달으면
자신을 구하는 것도 마치지 못하느니라
(책을 읽거나 누군가 가르쳐주는 것으로는 진실로 깨치는 것이 아니다
좌선하거나 어찌 운행하거나간에 화두를 들고 끝내 놓지 아니하면
어느 순간에는 깨닫게 된다; 그런뜻이지 싶다)
자신구제도 불가능하다
'차하' 이 아래는 특별히 활구를 들어서(거론해서)
스스로 깨달음에 들어가게 하나니라
'하여금, 부릴使사 하여금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죠. '하게 한다'
禪이라는 것은 '격외언구' 그쪽으로 참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무엇이 어떻다~저쩠타 평생해도 소용없어요. 생각예요.
북한산에 올라간다 그러면 올라가야지, 여기 앉아서 북한산을
여기 그리고 저리 그리고 억만년을 그려봤댔자 그건 종이에 먹칠한 거 뿐이에요.
북한산 하곤 아~무 상관이 없는 거예요. 생각을 억만년 굴려봤댔자 그건 생각이지
본성심하곤 전~혀 상관이 없다 이말이에요.
본성심을 보면 어떻게 되냐? 거 이상하지
그전에 온갖 생각했던 게 전부 본성심이에요. 그럼 북한산을 가면 어떻게 되냐??
오기 전에 그렸던 북한산이 전부 북한산이에요. 거 희한하잖아요
그러니까 불가사의인 거예요.
똑같이 그렸는데, 가기전에 그린 거는 전부 종이에다 먹칠한 거구
가서떡 보니까 이거 이그림도 북한산이고 저그림도 북한산이구
북한산 아닌 게 하나도 없더라 이말이요.
본성심을 보기 전에는 전부가 망상인데 본성심을 본 다음엔 생각생각이 전부
본성심이에요. 그래서 불가사의하다는 거예요.
그 다음 소식은 어떤가~~
"바로 눈뜨고 봐라."
가르치는 게 아녜요. 바로 눈뜨고 보게 하는 거예요.
이런말을 뭐라고 하느냐?
좋은 약은 스스로 먹게 하느니라`
설명 듣다가 그만 둘(안먹을)수도 있거덩 그리까 설명해주는 것보다도
먹게 하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송
임제스님을 만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頌】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요' 字가 하고자 할 '욕'자와 같이 통해요.
임제를 보고자 하면,
모름지기 쇠로 만든 놈이라야 가능하다 이소리예요.
어디에도 흔들림이 없는 놈이라야 한다
쇠로 딱 만들어놓은 게, 바람이 부나 눈이 오나 꿈쩍이나 하겠어요?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고 그래서야 어디
안된다 이거지.
안움직이는 게 그렇게 쉬운건데,
담배를 예를 들면 "안 피면 그만이예요. 피울려면 성냥도 있어야 되구
담배도 사야되구 방편이 필요하지만 안 피려고 하면 안피면 그만이요.
그게 '상근대지'요 근데 중하근은 생각이 나니까 "화두를 참구하라!"
'일체만물이 너의 마음' 이라 믿고 다시 의지 안하면 그만이거덩
平曰(평왈)
화두에는 말과 뜻의 구 가지 문이 있다. 말을 참구한다는 것은 지금길 빠른 문을 가르치는 산 말이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 더듬고 만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뜻을 연구한다는 것은 원돈문의 죽은 말이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 길도 있어,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話頭有句意二門(화두유구의이문)
參句者 徑截門活句也(참구자 경절문활구야) 沒心路沒語路(몰심로몰어로)
無摸索故也(무막색고야)
參意者 圓頓門死句也(참의자 원돈문사구야) 有理路有語路(유이로유어로)
有聞解思想故也(유문해사상고야)
(22/6/28, 화욜 2~3일 정도 구름비가 북쪽으로북쪽으로 올랐다. 구글 '오늘의 날씨' 에는 매일 비 예보가 90%75% 계속되었으나 어찌된일인지 비같은 비는 오지 않았다. 어제도 밤새도록 비온다는 예보가 화면에 떴는데, 밤새 바람만 불고 비는 오지 않았다. 오늘 방재실단톡을 보니까 A존 실외기 나무로 만든 울타리가 바람에 넘어졌더라~~ 종범스님 선가귀감 3-5강이 끝나고 6강이 있는 줄 한~~참을 찾았는데 못 찾았다. 그 헛 찾음의 끝에 4-1로 찾아보니ㅎㅎ 웃고말자~ 이제 단절된 부분은 더 이상 없길 기도드린다. 왜냐? 너무 힘들어. 집의 컴은 또 클릭이 잘 안되고(늙어선가봐바바)
06/28, 14:05, 한차례 소나기가 퍼붓고 조용하다. 뒷길 계양산쪽길에 차량왕복 시 바퀴물소리만 가끔 소란스럽지. 아내는 분홍빛이 어린 새 잠옷차림으로 낮잠 중. 「로빈손 쿠루소」 영활 보다가 식인종 부분이 나와 전원을 끈다. '선가귀감' 끝까지 참구하면 어디에 도달해 있을 것인가! 집자를 시작한다;
13
참구하는 공안에 대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기를, 마치 닭이 알을 품은 것과 같이 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와 같이 하고, 주린 사람이 밥 생각하듯 하며, 목마른 사람이 물 생각하듯 하고, 어린애가 엄마 생각하듯 하면 반드시 꿰뚫을 때가 있으리라.
凡本參公案上(범본참공안상)에 切心做工夫(절심주공부)하되
如鷄抱卵(여계포란)하며 如猫捕鼠(여묘포서)하며
如飢思食(여기사식)하며 如渴思水(여갈사수)하며
如兒憶母(여아억모)하면 必有透徹之期(필유투철지기)하리라.
'범'대체로, 본참공안에 '자기가 참구하는 공안을 '본참공안'이라고 예기함
'절심' 간절한 마음으로, 한(두가지가 아닌) 마음으로 공부를 하되,
화두는 '오직 무엇인가?' 그것뿐이예요. 홀로 드러난다, 다른 생각을 붙이면
화두참구가 아닙니다. 인간은 생각,궁리,판단하고 그랬지 오직 '무엇인가?'
그래보질 않았거든요.
'여'가 다섯개가 나왔어요
닭, 병아리가 알 속에서 다 되면 그 알 속에서 '지금 내가 나가야 된다'고 딱
부른다고 해요. 안에서 부르는 소리를 듣고 밖에서 딱 쫀다구요.
'내쵀외탁'이라고 그럽니다. '쵀'는 다급하게 부르는 소립니다
'자쵀모탁'
'고양이' 그전에는 쥐잡는, 가축이 아니라 반려동물, 그래서 고양이 고기는 안먹습니다.
'배고픔' 안 겪어본 사람은 고통을 모릅니다, 이게 밥 생각밖에 없지
'목마를 때'
'아이가 어머니를 생각할때 같이 하며' 어머니가 없으면 아이는 죽습니다
하늘이고 땅이고 모든것입니다
' 위에 열거한 이 모든 건 다 간절함입니다'
참선은 왜 안되냐? 무상을 못 느껴서 그렇습니다. 저녁에 갈지 낼아침에 갈지
모래갈지, 차 타고 나와서 집에 못들어가고 갈지...
'투철' 할때가 필히 있으리라~ '기'는 시깁니다. '투'는 꿰뚫고 지나간단겁니다
'철'은 통하는 겁니다 '투과통철'
道가 통하는 때가 반드시 있으리라~
註解
조사들의 공안이 1천七백 가지나 있는데, '개가 불성이 없다' 라든지 '뜰 앞의 잣나무' 라든지 '삼 서 근', '마른똥막대기' 같은 것들이다. 닭이 알을 안을 때에는 더운 기운이 늘 지속되고 있으며,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에는 마음과 눈이 움직이지 않게 되고, 주릴 때 밥 생각하는 것과 목마를 때 물 생각하는 것이나 어린애가 엄마를 생각하는 것들은 모두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고, 억지로 지어서 내는 마음이 아니므로 간절한 것이다. 참선하는 데에 이렇듯 간절한 마음이 없이 깨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祖師公案(조사공안)이 有一千七百則(유일천칠백측)하니
如狗子無佛性(여구자무불성)과 庭前栢樹子(정전백수자)와
麻三斤(마삼근)과 乾屎橛之類也(간시궐지류야)라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정전백수자' 뜰 앞의 잣나무다!
방망이를 많이 쓰는 그런 선사가 있어요.
'방선풍'이라고 그럽니다.
덕산화상은 '방'을 잘 쓴다
임제선사는 '할' 고함을 잘 질렀어요.
조주는 방,할 안썼습니다. 순전히 말로 해요. 이걸 구피선이라고 해요.
말로하는데 꼼짝못해요
말을 하는데 당하는 재주가 없어요. 꼼짝을 못해~
선문염송집에 30권인데, 거기 한권반 정도가 조주선입니다.
경절문 언구라고 해요. '삼서근'
'마를간' 똥시 궐은 막대기
운문종 선사한테 물었어요? 여하시 석가신(몸)입니까?
거기에 대답하기를 '마른똥막대기니라~'
제가 처음 절에 와서 처음 들은 어록이 이거예요
상근대지는 그냥 알아버려요
말 떠나서 뜻이 있는 게 아닌데 그걸 왜 몰라요
생각으로 생각으로 하니까 어려운 거예요
거기 다 들어 있는 거예요. 조사언구에 말속에 있는데
우리 일상생활도 마찬가지예요
아버지가 어머니 부를 때 애들이름 부르면 말요, 어머니가 대답해요
속으로 어머니 생각하고 애들 부르면 어머니가 대답하고,
애 생각하고 애들 이름 부르면 애들이 대답해요
한번도 혼란이 없어요 그게 참 묘해요~ 요즘처럼 자기야~ 그런것도없자나요
여기서 '류' 자는 그런 종류이니라 의 뜻과 같습니다.
鷄之抱卵(계지포란)은 暖氣相續也(난기상속야)요
猫之捕鼠(묘지포서)는 心眼 不動也(심안부동야)요
至於飢思食(지어기사식) 渴思水(갈사수) 兒憶母(아억모)가
皆出於眞心(개출어진심)이요
'마삼근麻三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하는 물음에 대하여 운문종의 동산 수초선사가 대답하기를 '마 삼근(삼 서근)이니라' 하였다.
'幹屎궐'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하는 물음에 대하여, 운문 문언선사는 대답하기를 '궐마른 똥막대기니라' 하였다.
'심안부동지' 왜 안 움직이냐? 참선하는 사람은 생각.눈이 안보이거든요
보이는거나 생각나는거나 일체 거기 관여를 아하기 때문에 그래요
보이는 거 하나 신경쓸게 없어요. 제법이 '공상?'이라
밖으로는 색이 공하고 안으로는 마음이 공해서 생각도 관심둘 께 없고
오로지 중생이 스스로 움직인다.
參禪에 색성향미촉법, 육진경계 전혀 관심 둘 일 없는데
오로지 중생이 스스로 움직인다
움직일 필요가 없는데 움직이는 걸 '번뇌'라 그럽니다
존다구요, 꼭 그래요. 좀 조용하면 졸고, 시끄러우면 거기 신경쓰고
그게 중생이에요
신경쓸 게 없는 거예요. 이 세상에는. 꼭 시끄럽다고 시비하는 사람이
조용해지면 30분도 안 가서 졸아뻐려요
그런데 그럴수밖에 없는 거예요. 경계에 매달리니까
조용한데에서는 자고, 시끄러운데서는 시비하고
'지어' 더 나아가서
'개' 다 진심에서 나오는 것이오
非做作底心故(비주작저심고)로 云, 切也(운 절야)니
無此切心(참선무차절심)하고
能透徹者(능투철자)가 無有是處(무유시처)니라
'주작' 억지로 만든다, 한다 참마음에서 하는 게 아니고
(이 단어 인터넷에서 많이 보던. 주작에 걸려들었다ㅋㅋ 뭐 그런 뜻으로 많이 사용)
'저' 어조사
'절' 간절하다 진심이다
참선하는 데 이 진심이 없으면 능히 '투철'해서 깨닫는 것이
옳은 도리가 있을 수 없다(될 수 없는 일이다)
주작심으로 하면 안된다는 거지요
진심으로해야 한다
'대의지하' '하'는 의심하는 아래에..그게 아니구요
'의심하는데에' 입니다.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다
종범스님 선가귀감 제4강-2부
14
참선에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긴한 것이 있어야 한다. 첫째는 큰 신심이고, 둘째는 큰 분심이며, 셋째는 큰 의심이다.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이 되고 말 것이다.
원문
參禪엔 須(모름지기수)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라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廢器하니라.
(참선 수구삼요 일유대신근 이유대분지 삼유대의정 구궐기일 여절족지 정 종성폐기)
'유' 있다고 예기사지만, 옛날엔 '둔다'고 했어요
가질 유도 되고
'신'은 수미산을 떠억 의지하는 거와 같은 마음이다
일체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 다 성불할 수 있다
난 틀림없이 성불할 수 있다 이렇게..
믿음의 뿌리를 가진다 이거요
'분' 분하다 내가 꼭 이기고 싶었는데 졌다. 반드시 이기고 싶은
분심이다
불성은 다 가지고 있는데, 역대 조사. 나는 왜 못 깨달았는가 그런 분심
해석이 어려운 거예요. 글자가 똑같으니까 문장에 맞게 해석을 하려면
참 고심을 해야되요.
'의' 어두운데서 중요한 물건을 찾아요 생사를 결정하는 정도의
귀중품인데 어둡기는 하죠, 찾기는 찾아야 되겠죠
나올듯나올듯 하면서 안나오는 거, 그게 '大疑情'이라는 거죠. 참선에서..
'참으로 그 하나라도 모자르면'
다리가 부러진 솥과 같아서(옛날엔 솥 다리가 세개였어요)
마침내 못 쓰는 그릇이 되느니라
주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셨고, 영가스님은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뜻을 세워야 한다' 하였고, 몽산스님은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다'라고 하였으며, 또 말씀하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이라 하고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이라 하니라.하였다.
(22/6/27, 18:27 終. 제이타워 단톡에 김남주 주임의 댓글이 없다, 그는 간 걸까? 궁금하지만 이정주에게 전화 삼간다)
(22/6/30, 04:54분에 감지기오작동으로인하여 깼다. 3층2번 감지기 래드램프 확인. 비가 폭포처럼 옆 램프 FD로 굉음을 낸다. 하기사 16층에서 떨어지는 거니 얼마나 거세겠는가! 충청도 100밀리 왔다고 한다. 여기는 10밀리인데도 이 정도의 침수이니. 어제 오ㅇ수가 주임으로 낙점받았다. 그것을 오로부터 들은 순간, 그의 말은 사양하자 팀장이 그랬다고 했다. "오반장 아니면 아무도 할 사람없다" 그말에 더 울화가 올라 하마터면 폭발할 뻔 했다. 참는 걸 이번에 크게 경험하였다. 그리고 마음에 정한 바를 결행하여 그녀로부터 3개월 후에, 추석 이후에 예기하면 실업수당 받을 수 있게 해드리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노동부직원의 설명만 듣고 포기했던 실업수당, 크ㄹ운의 실세가 아니고, 아무 관계도 아니다는 그녀의 말 그리고 3개월 근로계약 갱신의 문젯점을 그녀의 입을 통해서 들을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나는 내 방식대로 마침내 실업수당과 관련하여, 막힌 곳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역시 내 인생은 누굴 통해서 해결하기보다는 스스로 부딪쳐서 해결하는 체질임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전기자격증 합격여부를 유ㅇ춘회장이 물어서 답해주었다. 그는 정말 쪼그라드는 육체에 대한한 정신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의공고 전기과출신임을 비로소 알게 됐다. 밤새 7월 14일의 번개팅에 대하여 아이디어를 냈다ㅋ 근데 그게 무엇이었던가를 기억이 잘 안나네넹ㅜㅜ 집자를 시작한다)
영가대사: [증도가]
몽산대사: [수심결]
15
일상생활 중에 무슨 일을 하면서든지 오직 '어째서 개 한테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 라고 한 화두를 끊임없이 들어, 이치의 길이 끊어지고, 뜻 길이 사라져 아무 맛도 없어지고 마음이 답답할 때가 바로 그 사람의 몸과 목숨을 내던질 곳이며, 또한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될 대목인 것이다.
日用應緣處에 只擧狗子無佛性話하되 擧來擧去하며
일용응연처 지거구자무불성화 거래거거
'일용응연처' 면면밀밀, 은밀히은밀히 이어지고, 이어지고 이걸 잘 알아야 해요.
잘때, 올때, 일할 때 이야기 할때나
이야기 다 해놓고 화두 든다 이런 거 아녜요.
선정에 들었을 땐 이게 선매에 드는데 선정에서 나오면
아무것도 없어져요. 그거 아녜요.
절대로 그거 아닙니다.
疑來疑去에 覺得沒理路 沒義路 沒滋味하야 心頭熱悶
의래의거 각득몰리로 몰의로 몰자미 심두열민
時가 便是當人放身命處며 亦是成佛作祖底基本也니라.
시 편시당인방신명처 역시성불작조저기본야
가정사 돌보면서 면면히 밀밀히 화두를 챙기는 게
일용응연처입니다. 이게 간화선의 특징이에요.
일할 땐 일하면서 하고 일이 없을 땐 다른 일 벌리지 말고
좌선하고, 좌선에 목적을 두지 말고, 집착하지 말고
시끄럽거나 신경쓸 거 없구 조용한 거에 집착할 거 없어요.
지, 다만
거, 챙긴다는 거예요, '거각'이라 하면 챙겨서 살핀다.
물건을 챙기듯이 화두를 챙긴다. 늘 살펴요, 늘
왜 무라했을꼬? 사물을 볼때나 딴 거 없어요. 아주 간단한 거예요.
시간을 지켜라, 허리를 꼿꼿히 세워라
오직 화두만 챙기는 거지. 밤새도록 돌아다니면서 챙기는 건 중요시한다
챙기고 챙기며,
의심하고 의심하며 가고오고 아니예요. 말이에요. 문장하고 어록하고 구조가 달라요
'각득' 느끼어 얻는다. 이치의 길이 없어요.
의미의 길이 없어요
'자미' 재미가 없어서
'민' 민망하다 마음이 갑갑하다
이때가 오는 거예요. 이런 시절이 반드시 온다
'당인' 해당되는 사람. 화두되는 본인의
몸과 목숨을 놓는 곳이다. 목숨의 근심 싹 다 놓는
대깨달음을 얻는 곳이다
부처.조사가되는 기본, 터가 되느니라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도 부처의 성품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조주스님은 "없다"고 대답했다. 이 한마디는 우리 종문의 한 관문이며, 온갖 못된 지견과 그릇된 알음알이를 꺾어 버린 연장이며, 또한 모든 부처님의 면목이고 조사들의 골수다. 이 관문을 뚫고 나간 후에라야 부처나 조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옛 어른은 이렇게 읊었다.
조주의 무서운 칼 서릿발처럼 번쩍이네,
무어라 물을 텐가 몸뚱이가 두 동강 날라.
註解(주해)
僧問趙州(승문조주)하되 狗子還有佛性也無(구자환유불성야무)잇가
州云, 無(주운무)라 하니 此一字子(차일자자)는 宗門之一關(종문지일관)이며
亦是摧許多惡知惡覺 底器仗(역시 최허다악지악각 저기장)이며
亦是諸佛面目(역시제불면목)이며 亦是諸祖骨髓也(역시제조골수야)라
납승이 조주에게 묻되,
'구자환' '환'은 또한 그런 뜻입니다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이 말은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 말과 같은 말이요
'차일자자'의 마지막 子는 의자.탁자.남자.여자 처럼
명사 뒤에붙이는 조사예요.
'이 한 글자는'
선문의 제1관문이다
또한 '허다한' 많은
'악지악각' 잘못 알고 잘못 느끼는 것을
무너뜨려버리는(꺽는) 무기가 되며
또한 제불의 면목, 얼굴이며
역시 모든 조사의 골수다
須透得此關然後(수투득차관연후)에 佛祖를 可期也(불조가기야)라
古人頌云(고인송운),
趙州露刃劒(조주로인검)에 寒霜光燄燄(한상광염염)이라
擬議問如何(의의문여하)하면 分身作兩段(분신작양단)하리라
이 관문을 투과한 연후에,
통과한 뒤에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는 것을 기약할 수 있나니라
옛사람이 송운하되
조주께서 칼날을 드러내니(깨달은 지혜를 칼날에 비유)
'심검당' 선방을 불렀다
차고 흰 광명이 서리 상(차디차다 하얗다) 염염(번쩍번쩍할 염 자임)
묻되, 어떤 것인고 이렇게 물으면, 생각하고 생각해서
(오늘 오후부터 지금까지 셔터감지기 4회 작동, 주경종 울림소리로 정신이 혼미.벙벙하다 현재시간22:30, 오늘 홍3도착. 정빈과 7월 16일 알탕 약속. 김ㄴ주가 없어지니까, 그 자신 살려고하는 몸부림의 동태로 인한 바지런함이 없어졌으니, 점심시간에 11:40에 밥 먹으러 가다)
(22년 7월2일 04:11, 첫 방재실 근무하게된 김ㅇ용반장에게 막걸리1병 얻어먹었다ㅎ. 명목은 신고식. 안주는 오징어땅콩과 샤브레, 그리고 볶음김치다. 순찰돌고, 나서. 잘 익은 액체가 위로 들어가고, 인용이의 입이 점점 작아진다고 보여오자, 그는 자신의 후임들의 겉보기 작업행태를 까대기하기 시작했고ㅋㅋ 나 역시 얄밉게 잘보이려고 맹렬하게 단톡방을 올리던 그를 에둘러 비난하면서 '인물을 몰라보는 한나라의 유방과 인물을 알아보고 쫒아 온 조참이란 인물을 등장시키고 있었다. 한ㅊ영팀장과 김ㅈ수과장이 모가 부족하고 아쉬워서 팰리세이드 타고 다니고, 산업기사를 두개나 갖고 있고, 이번에 전기기능사 자격까지 취득한, 자신들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승진시키겠는가! 만만하고 보들보들한 옹수를 나같애도 선택하겠다. 당연한 결정이었고, 맞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질투심은 그렇게 너그럽지 못하다. 타인의 승진은 곧 나의 무능과 불성실을 돋을새김하는 것 아닌가. 입 앵도만하게 생긴 놈은 그러나 고분고분하게 맞장구를 쳐주지 않는다. 저는 장ㅅ원씨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우리 대화를 좀 하십시다." 아마도 장선생 역시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한 인물이었구나. 그래서 벽하고 예기하는 느낌이라고 앵도만한 입은 불만을 터뜨렸다. 둘은 서로 자신을 대변하고 자신의 관계인을 짓밟은 후에 자리를 끝냈다. 살면서 동료와 사이에 발생하는 불만을 까대기 할 수 있다는 것. 그 자리 정도면 얼마든지 애교로 봐줄만하다. 위로와 한계의 절묘한 경계에서 둘은 각자의 침대에 누웠고, 곧 잠에 떨어졌었다. 홍3은 전직원 회식을 했고, 막 헤어지는 중이라고. 홍3을 생각하면, 16일을 생각하면 또 해야 하나 신고식을 받았다)
화두는 들어 일으키는 곳에서 알아맞히려 하지도 말고, 생각으로 헤아리지도 말며, 또한 깨닫기를 기다리지도말고 더생각할 수 없는 데까지 나아가 생각하면 마음이 더 갈 곳이 없어 마치 늙은 쥐가 쇠뿔 속으로 들어가다가 잡히듯 할 것이다. 이런가 저런가 따지고 맞혀 보는 것이 식정識情이며, 생사를 따라 굴러 다니는 것이 식정이며, 무서워하고 갈팡질팡하는 것도 또한 식정이다. 요즘 사람들은 이 병통을 알지 못하고, 다만 이 속에서 빠졌다 솟았다 하고 있을 뿐이다.
종범스님의 선가귀감
제4강-3부
2011년 6월 22일
16
話頭를 不得擧起處에 承當하며 (하두부득거기처 승당)
不得思量卜度하며 (부득사량복탁)
又不得將迷待悟하며 (우부득장미대오)
就不可思量處하야 思量하면 (취불가사량처사량)
내가 참구하는 화두를 거기처에서, '승당'은 안다는 뜻이거든요.
알려고 하지. '부득'이라는 말은 말아라, 말며
'거기'라는 건 뭐냐? 잘못 해석할 수있는 대표적인 말인데,
본인이 화두를 챙겨서 살피는 것을 '거각'이라고 했잖아요?
그래서이것을 '거각'과 같은 뜻으로볼 수 있어요. 그러면 안됩니다.
'거기' 라는 것은 이게 뭐하는 말이냐 하면 선사들이 주장자를 이렇게 떠억 들어서
"보느냐?" 이런 게 거깁니다. 옛 조사가 이런이런 말씀을 했는데 그대들은 알겠는가?
벽암록 같은 게 전부 그런거예요. 이런 게 '거기' 이죠. 들어서 일으키는 거예요.
선사가 주장자를 떠억 보인다든지, 어떤 공안을 떠억 제시한다든지, 이런 게 거기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뭘 알아낼려고 하지 말아라 이런겁니다.
말을 붙이고, 떠억 세워서 제시를 하면 거기서 쉽게 뭐를 깨달을려구하지 말아라. 그 소리예요.
잘못해석하기 쉬운 언구들이예요.
'거기처'는 선사가 공안을, 거기하는 곳에서 알려고, '승당'은 알려고 한다는 말이에요.
알려고 하지 말며,
'사량'하고 '복탁'하지 말며 '장미'라는 것은 미혹한 마음을 가지고 '대오'는 깨달음을 기다리지 말고
사량분별을 없애는 게 참선인데, 이런 거하다보면 전부 자기 생각에 뻐져 들어간다.
참선이라는 건 생각을 키우는 게 아니구 생각을 없애는 겁니다. 요게 아주 중요해요.
참선을 사색한다든지, 사유한다든지 이런 걸로 알면 큰일나요. 반대에요. 생각 자체를 없애는 게 선입니다.
생각을 발전시켜나가고 체계화해서 다듬어가는 게 아니에요. 자체를 부수고 그 자체를 없애는 게 참선인데요
쉽게 예기해서 방아착, 내려놓는거예요. 놓아라, 놔라.
생각을 다 놓는 게 방아착입니다. 생각이 안 놔지거든요. 안놔지니까 화두를 들어서 놓는다.
화두가 타파가 되면 생각조차도 놓는다 이것(화두)도 생각이거든요. 놓는다는 생각도 없쥬.
일체 생각이 공해진 자리에 자유가 있어요. 죽는다 산다 전~부 생각이에요. 불행하다 행복하다
잘났다 못났다 전부 생각이야. 매이고 걸리는 건 전부 생각입니다.
모오든 생각은 아집이요, 자기에 대한 집착이에요. 생각을 놔야 하는데, 생각을 놓을래면 다른 방법이 없어요.
화두에 집중해서 화두가 뻥 터질 때 생각은 다 없어지죠. 이걸 상신실명이라. 몸도 다 잃어버리고,
心無所之(심무소지)함이 如老鼠入牛角하야 (여노서입우각)
便見倒斷也(변견도단야)하리라
又尋常에 (우심상) 計較安排底도 (계교안배저) 是識情이며(시식정)
隨生死遷流底도 (수생사천류저) 是識情이며 (시식정)
怕怖慞惶底도 (파포장황저) 是識情이어늘 (시식정)
今人이 不知是病하고 (금인부지시병) 只管在裏許하야 (지관재리허)
頭出頭沒하나니라 (두출두몰)
'사량'은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
사량할 수 없는 곳에 나아가서
여기 뒤의 '사량'은 분별사량이 아닌 본참화두를 참구하는 겁니다.
'심무소지' 마음이 갈 곳이 없다
늙은 쥐가 소뿔에 들어간 거 같아서, 거기 한번 들어가면 못 나와요
(화두에 한번 꽉 박히면 그 생각이 무너져야 없어지지 생각이 안무너지면
못살아 나와요, 그걸 말해요 )
'도단'은 거꾸러져서 엎어짐 '단'은 명이 끊어진, 죽는 것
또 보통 때에
생각하고 이런가저런가 안배하는 것도 '시식정' 법식의 감정이다, 즉 생각이다 이거요
나고 죽음에 따라 자꾸 옮겨서 흐른다
두려워하고 무서워한다 겁나는 거 많찮아요. 이게 다 식정이란 겁니다.
이 세상에 겁날 거 하나도 없거든요. 왜냐? 색즉시공이거덩요 '공'을 몰라서 그래요
'새끼를 뱀으로 보는 게 식정이에요. 새끼를 보면 두려울 리 없잖아요. 근데 그걸 뱀으로 보니까~
얼마나 무섭겠어요.
그래서 이 생사라는 게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는 거다. 자기 식정으로, 심식감정으로
눈코입.. 6정이라구 하는데, 이것 때문에 그렇다 이거예요. 정식이 없는 사람은 여기서 말하는
'파포장황'이 없어요. 이게 따지고 보면 기가막힌 거예요. 아주 기가막힐 노릇이요.
"살려달라" 그러는데 죽음은 누가 만들었느냐. 본인이 지금 만들고(정말 기막힌 말이다) 살려달라고 하니.
하나도 무서운 게 아닌데 무섭게 생각하는 식정을 없애는 게 그게 살 길이에요. 그게 출신활로(출신활로出身活路: 출신은 일체의 속박을 벗어나 자재무애함.)예요.
죽겠어요, 살려주세요 그러니까 도인이 왈, '반야심경' 읽어라.
반야심경 처음에 '조견 오온개공' 하고 오온이 다~ 공함을 비춰서 보고
도일체거액하니라. 제 고통과 액난을 전부 건넜나니라
"화두 들어라. 無~~"
딱 거기서 진면목을 바로 보며 아, 죽음이 거기 뭐 붙을 수가 있어요? 無 字에 뭐가 붙겠어요?
중생이 붙겠어요 부처가 붙겠어요 無~ 하는 데 거기에 삶이 붙나 죽음이 붙나 희로애락이 붙나
아무것도 못 붙어요. 염라대왕도 못 붙어요 아무것도 못 붙어요 "화두 들어라."
내가 처음 그 법문 들었을 때 미치는 줄 알았어요. 죽겠다고 소리치는데, 경봉스님이 "화두 들어라."
대단한 법문이에요. 거기다 뭐라 그러겠어요. 잘가라~ 가긴 어딜 가(웃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 통하나?
아무짝도 다 죽은 소리고 "화두 들어라~!
그때는 이핼 못해가지고, 죽는 사람이 살려달라 그러는데, 도인이 겨우 하는 소리가 화두 들어라 그말 뿐인가. 아주 당황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진짜루 도인의 자비에요.
지옥 천당 중생 부처 뭐 온갖 것이 범접을 못해요 거기는 "화두 들어라~"
'부지시병' 식정의 병을 알지 못하고 즉 생각의 병을 알지 못하고
'지관' 오직 그 말이요 '재리허' 식정에 매여 있어서 라는 뜻입니다. 옛날 어록에는 '거리껴있어서'
요런 번역 하나하나가 학문이예요. 그냥 '그 속에 있어서' 그러면 맛이 없어요
그냥 있는 게 아니라 식정 속에 매여 있다~ 이 소리예요
그러니까 이게, 학문이란 할수록 더 깊어지고 할 수록 더 어려워져서, 학문도 보통학문이 있고
'명품' 학문이 있어요. 뭐든지 앞으로는 명품만 살아남아요(과연 그럴까요? 보통이 있어야 명품이 표나는 걸 텐데요ㅎ) 道도 명품만 살아남지 껍데기는 아무 존재의미가 없어져요 앞으로는 무서운 시대예요. 음식도 마찬기지요 뭐를 해도 혼이 담기고 기술 예술이 담기고 종합적 작품이 나와야 하거든요. 그냥 형식이나 갖춰선 안돼요
'오직 이에 거리껴 있어서' 이렇게 해석해져 있어요. 거리껴있다는 건 매여있다는 소리거든요.
전부 다 자기 생각에 매여 있는 거에요. 식정 속에 매여 있어 가지고
머리 '두'는 어조산데요, 나들락하나니라~ 출몰 요것만 의미가 있는 거요. 나락들락 한다
식정이 나갔다가 식정이 들어갔다가
좋아했다가 싫어했다가 전부가 출몰하는 거지요 (인간은) 그걸 피할 수가 없어요 금방 좋다가 금방 싫으니
나락들락 하는 거지요
식정을 타파하지 아니하면 고통은 멈출 날이 없다 식정을 타파하는 것이 참선입니다
방아착이에요. 식정을 내려 놓는 거지
화두를 참구하는 데에 열 가지 병이 있다. 분별로써 헤아리는 것과, 눈썹을 오르내리고 눈을 끔벅거리는 곳을 붙잡고 있는 것과, 말 길에서 살림살이를 짓는 것과, 글에서 끌어다 증거를 삼으려는 것과, 들어 일으키는 곳에서 알아90맞히려는 것과, 모든 것을 다 날려 버리고 일 없는 곳에 들어앉아 있는 것과, 있다는 것이나 없다는 것으로 아는 것과, 참으로 없다는 것으로 아는 것과, 도리가 그렇거니 하는 알음알이를 짓는 것과, 조금하게 깨치기를 기다리는 것들이다. 이 열 가지 병을 여의고 오직 화두를 들 때에 정신을 차려 '무슨 뜻일까?' 하고만 의심할 일이다.
註解
話頭(화두)에 有十種病(유십종병)하니
보조스님, 이 병의 본질이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이다 라고 하셨어요
큰스님에게 가서 빨리 깨닫고 싶은데 어떠케 하면 되겠습니까? 물었대요
큰스님이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펑펑 우시더랍니다
왜 우십니까? 그랬더니 '깨닫기를 기다리면 영원히 못 깨닫는다! 니가 영원히 못 깨달을테니
내가 어찌 슬프지 않겠나'
깨닫기를 기다리는 게 흉악~한 왕 번뇌에요, 왕번뇌!
그래서 구오증지심으로, 깨달아 증득하기를 구하는 마음으로써 위본연하 근본을 삼는다
보조스님이 앞에서 딱 밝혀놨어요. 그러니까
'저 산 빨리오라가야 한다' 그래가지고 빨리 올라가지겠어요? 올라간다는 생각은 하지말고 그냥
올라가기만 하면 금방 올라갈 꺼 아니요.
올라가야한다 올라가야한다 올라가야한다 그러면 못 올라가지요
'부득' 하지 말아라
'왈' 만 열번 나오죠 말하지면,
뜻의 뿌리, 생각으로 복탁하는 것이다. 생각으로 헤아리면 그게 병이다.
그분은(경봉스님) 왜 똥막대리라고 했을꼬 이렇게 참구하라고 말씀하신건데, 내가 듣기로는
이렇게저렇게 궁리해서 답을 가져와라~ 이렇게 들었단 말예요
이런말을 하면 이 '초학자'가 어떻게 들을지 이것까지 헤아려서 딱 길을 제시하고 하는 게
그게 참 안목이에요. 난 나대로 말하고 저는 저대로 듣고, 완전히 어긋나는 거예요
한 문장을 놓고 토론하면 전부 개념이 다 다릅니다 개념을 공유하는데 엄청난 시간이 필요해요
각자 자기방식대로 떠들다가헤어져요 당연한 거아녜요?
'간시궐'이라는 게 이게 참 여러가지 농촌에서 많이 쓰이기 때문에 좋은일 한다(종범스님웃음)
曰意根下卜度(왈의근하복탁)이요
曰揚(날일양)眉瞬目處垜(살받이타)根(왈양미순목처타근)이요
曰語路上作活計(왈어로상작활계)요
曰文字中引證(왈문자중인증)이요
曰擧起處承當(왈거기처승당)이요
曰在無事匣裡(왈양재무사갑(작은상자갑)리)요
曰作有無會(왈작유무회)요
曰作眞無會(왈작진무회)요
曰作道理會(왈작도리회)요
曰將迷待悟也(왈장미대오야)라
첫째는, 화두를 생각으로 헤아리지 말라, 그게 병이다.
왜 똥막대기라 했을꼬? 이렇게 참구하라 이렇게 말씀을 하신건데
내가 알아듣기로는
'왜 그렇게 했는가? 이리저리 궁리하고 생각해서 그 답을 가져와라.' 이렇게 들었단 말이요.
'좋은 일 하시니까 부처님이나 똥막대기나 같은 거 아니냐?(웃음)' 이런게 복탁이거든요, 이게
그게 아니다~라는 것을 미리 전제하고 알려주는, 이게 중요한 거예요
참선이라는 건 사색이 아니다, 첫번째 나온 말이 그거예요
'의근하에'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이며
'타'字가 화살받이 타잡니다. 활쏘는데 과녁뒤의 화살이 못 나가도록 봉우리를 만들어요.
화살도 그 쪽으로만 쏘죠, 뿌리도 아래로만 내려갑니다
'타근' 이라는 말은 집중입니다
화살받이와 나무뿌리처럼 그쪽으로만 모이는 것을 타근이라고 그럽니다.
선사가 눈썹을 터억 움직이고, 눈을 꿈벅꿈벅 하면 거기, 선사의 얼굴표정에서 뭐 얻어낼라고
그쪽으로만 집중한다는 것이죠~ 남의 얼굴만 쳐다보구 그쪽으로 집중하지 말아라
'말에서 자꾸 계교를 지어요, 이렇게 궁리하구 저렇게 궁리하구 '활발한 계교(생각)'을 활계라 그럽니다
근데 이건, 말은 떠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말에서 찾으면 벌써 늦거든요
마음에서 얻어야 되지 말에서 찾으면 벌써 늦어요
선禪을 '말을 통해서 찾는 것은 번개를 심어서 뿌리를 찾는 것과 같다' 이런 말이 있어요
'종전심근'이다 그럼 말을 떠나 있냐?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어떻게되냐 마음으로 통하면 모든 것이 선지인데
마음으로 못통하면 종전심근이요
'문자중인증' 문자에서 증거를 이끌어낼려고 막 애를 쓰는 거예요
'거기처승당' 든다든지 공안을 제시한다든지 했을 때, 거기서 뭘 알아낼려구 애쓴다 이 말이오
'양재무사갑리' 무사갑리는 창고에 여러상자가 있어요, 그런데 어느 상자에는 아무것도 없는 빈 상자를 '무사갑리'요
'양'자는 드날릴 양字인데 여기서는 배가 천천히 움직일 양字에요
여기서는 한가할 양자로 쓰인거에요. 한가함 속에 일없는 속에 머물러 있다. 무사갑 속에 한가하게 일없이 앉아 있는 거 이거
약이 없어요. 옛날 큰스님들이 산중호입이라고 했는데, 이산중 저산중으로 바람이나 쏘이고 다니구,
마을의 처사분들도 절에 와서 맛 한번 들리면 못 고쳐요 그래서 병 중에 절寺병病이 젤 무섭다구
이 병은요 도저히 못고치는 병이여 이거, 아주 신세 조지는(이런표현도 쓰시네깜놀ㅋㅋ지금22년7월6일새벽5시50분
나는 04:10 잠에서 깨어, 눈을 비비면서 종범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고, 집자를 하고 있다 말씀들이 뇌에 꼭꼭 들어와 박힌다.. 싶다. 역시 공부는 새벽공부로다. 옥상에 올라갔다 오면서, 엘베앞에서 '너는 너대로의 이익으로 제이타워에 몸붙여있는거고 난 내 유익에 오로지 제이타워에 빌붙고 있을뿐이다. 서로 같다. 그런 생각을 했다. 공오시오십삼분, 곧 여섯시가되면 기상종이 울리리라)
참선이라는게 아무일도 안하고 그냥 머물러 있는 게 아니거든요 뒤에도 나오지만 절대 그런 게 아닙니다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유.무의 알음알이를 짓는 것이다 '회' 자는 견해라는 말
참으로 없다 라는 알음알이를 짓는 것 모인다는 회가 아니라 '안다'라는 회입니다 견해라 이말이죠
이런이치일것이다 저런이치일 것이다 도리의 견해를 짓는 것이다
미혹한 마음을 가지고 깨달음을 기다리는 것이다
離此十種病者(이차십종병자)는 但擧話頭時(단거화두시)에
略抖數(손手변수)精神(약두수정신)하야 只疑是個甚마(지의시개심마)니라.
'이차십종병'을 어떻게 하면 여윌수가 있는가?
'자者' 字는 여의는 사람은, 그런 뜻이 아니라 여의는 방법은 이런 뜻입니다
'단거화두시' 오직 화두를 들어서 챙길 적에
다른 것 온갖 생각을 떨어 내버리고, 정신을 차려서
오직 이것이 무엇인고 의심하는 것이니라
본참화두가 '왜 뭐라했을꼬?'
본참화두가 '시삼마'이면 보고 듣고 이것이 무엇인고
그렇게만 하면 십종병 다 없어진다 고렇게 할 때 거기에 뭐 진무지애도 없고
일없이 머무는 것도 없고 거기처에서 승당하는 것도 없고 없어요 하나두
'왜 뭐라 했을꼬?'
십종병을 이기고 세가지 중요한 것을 갖추어서
時時提澌(훈계할시 삼수변이 타手변임) 어느때나 끈다
時時擧覺 항상 때때로 챙겨서 살펴라
(22/7/6새벽 04:10에 일어나 말씀을 듣고 기록하고 07:05에 終)
(22/7/9, 토욜 오늘 병운이 잔칫날이넹. 태스비의 '총무가 왜 안왕?'ㅋㅋ 어제는 수입리 금강산에 가서 703-5 필지를 매각했다. 어제 아침엔 일본의 우익 정치인이 사제총에 맞아 디졌다. 그놈 못죽여서 속불편했는데 참 일본에도 의인이 있구나.. 싶었다. 안중근 의사의 혼이 살이 있는 듯이 느껴졌다. 물론 그놈과 관련된 파트의 글에는 정치테러는 '아니다' 라고 말하지만서두. 퍼뜩 전광훈이가 떠져 휘둥그레진다. 그놈이 "누구 저 자슥 없앨 놈 엄나?" 그가 말한 대상은 문재인 그때의 현대통령이었다. 내가 오늘 병운이 잔칫날이 날씨 좋고 선선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비 안오고 이 정도면 됐다ㅋㅋ 선가귀감 이어서... )
'양미순목처타근'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마음이고 불성佛性이니, 다른 것이 따로 없으므로 더깊게 알려고 애쓸 것이 없다고해서 그것으로 깨친 것을 삼는 어리석은 병통을 말함이다. 어느 화두나 다 같지만, 특히 '무자無字' 화두에 대해 열 가지 병을 말하게 된다. 그러나간절히 의심해 간다면 아무병도 없게 되고, 생각으로 따지기 시작하면 백 가지 병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17
이 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로 된 소에게 덤벼드는 것과 같아서 함부로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에 목숨을 떼어 놓고 한번 뚫어 보면 몸뚱이째 들어갈 것이다.
此事는 如蚊子가 上鐵牛하야 更不問如何若何하고
(차사 여문자 상철우 갱불문여하약하)
下嘴不得處에 棄命一攢하면 和身透入이니라.
(하취부득처 기명일찬 화신투입)
'차사'는, 화두공부를 하는 것은
'문자'는 모기거든요, 모기가
'상철우' 쇠 소 위에 올라가서 무는 것과 같아서
'상' 자는그냥 올라간게 아니라 쇠 소를 물어뜯어서, 아주
발살을 내려고, 모기 한마리가(웃음)
그런 거와 같다 이거예요.
언뜻 생각하면 가당키나 한 소리에요? 쇠 소를 물어서 구멍뚫을려는 거와 같아서
이 소리에요.
'변' 자는 바로, 어떻다저쩧다를 묻지 않고. 쇠소가 뚫릴건가 안뚫릴건가, 될 건가 안 될건가
안묻는다 이거예요.
'하취'라는 건 뭐에요? 취 字가 모기 주둥이를 말하거든요. 모기 주둥이가 박히지 못할 곳에,
모기 주둥이가 아무리 날카롭다 해도 쇠 소에 박을수가 있어요? 아무리 물어 뜯을려구 해도
안물어뜯어진단 말예요.
거기서 포기하면 안되는 거에요. 게 화두도 들어도 들어도 망상만 자꾸 일어나고, 안들어지는데
거기서 포기하면 절대 안되요. 되고, 안되는 것은 일체 묻지 말아야 되요. 아, 난 화두가 안들린다.
안들린다는 생각하는 동안에 한번 더 들어라, 이거요.
그러니까 되고 안되는 것은 일체 물으면 안되는 거에요.
천번 들어서 천번 안 들어진다해도 계속하고
만번 들어서 만번 안들어진대도 계속하고
그걸 여기서 예기하는 겁니다.
'아래 下' 자는 아래로 내리박는다는 이소리에요.
'부득처'는 못하는 곳이에요. 주디를 박지 못하는 곳
'기명일찬' 목숨을 다~ 버리고 '일찬' 한결같이 뚫는것이, 이소리요
'찬'자는 뚫을 찬 字요
모기가 쇠 소 위에 올라가서 한번도 못물어도 포기하지 않고, 모기 몸이 부서질때까지
'화신'이라는 건 몸까지 '투입'한다, 투과할 투字라 그랬죠. 뚫고 들어가나니라.
이게 선요의 법문인데, 이처럼 의지를 실감나게 표현한 거예요.
'물어두 물어두 안물어지는 그곳에, 목숨을 버리고 한결같이 뚫어서 '화할 화'자는 '섞어서'
'함께' 이말이거던요.
'화신'이라는 건 모기 주둥이만이 아니라 몸까지 뚫고 들어가는 것이니라. 아, 이랬어요.
그니까 이게요, 안된다는 생각부터 해요. 그 안된다는 생각이 천하의 망상이에요. 그래서
된다는 생각이예요. 그 된다는생각도 천하의 망상이에요. 그래서 '여하야카' 어떻다어떻다를 절대
물을 필요가 없고, 그느냥 하는 거에요. 그냥. 그냥 해버리면 그게 '간화선'이에요.
그럼 어떻게 되느냐? 바로 되는 거에요. 며칠 안 가서 바로 된다~
근기 좋은 사람은 사흘만 하면 되버려요(미소) 뭐한 사람은 석달, 아주 둔재가 아홉달이면 끝난다(사람들 웃음). 의지를 안가지고 하는둥마는둥 일없이 턱 무사갑 속에 앉아 있다가 사량복탁도 했다가
문자 중에서 뭔가 인증도 해보고 뭐 별짓도 해보고 이~ 억만년이 지나가도 안되는 거라 이거야.
이런 겁니다. 이건 뭐 기간이 없어요. 한나절이면 될 수도 있는 거고. 3일만 해도 될 수 있는 거고.
근데 이게 병통에 걸리면 몇억만년을 해도 안될 수도 있는 거예요.
이게 간화선이요, 여기에는 계급이 없다! 순서가 없다! 이런 거에요. 계급, 순서 이건 전부 생각, 정식이거든요. 그래서 이 선요같은 법문이 아주 중요해요. 이건 순전히 의지에요.
모기가 생명을 버리고 한결같이 뚫어요~ 그래서 몸까지 뚫고 들어갑니다, 이게
입부리로만 뚫는 게 아니다 금방 이뤄진다, 이것을 여기서 가르칩니다.
주해
위에 말한 뜻을 거듭 다져 '산 말'을 참구하는 이로 하여금 뒷걸음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옛 어른이 이르기를 '참선은 조사관을 뚫어야 하고, 오묘한 깨침은 마음길을 끊어야 한다' 라고 했다.
重結上意하야 使參活句者로 不得退屈이니 古云, 參禪은 須透祖師關이요, 妙悟는 要窮心路絶이라 하니라.
[중결상의 시참활구자 부득퇴굴 고운, 참선 수투조사관, 묘오 요궁심로절]
거듭 위의 뜻을 맺어서
'사참화구자' 활구를 참구하는 이로 하여금
'부득퇴굴' 퇴굴치 못하게 하는 것이니라
뒤로 물러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고인 이르되, 중요한 게송으로 많은 도인들이 읊는 게송입니다
'참선은 수투조사관'이요 '모름지기 수'
묘오는 요궁심로절
(22.7.13, 수욜 22:40 종일 비. 오ㅇ수주임 허리 아파서 되돌아가요. 연차. 어제 두 차 분 대형쓰레기 상차하느라ㅜㅜ, 138호 수도계량기 교체 태영사, 보온재 마감. 13층 복도 창문 바가지 3개 받침대, 1층상가 입출구, 엘베 앞 침수, 등등등
105호 빗물 안빠져서 공장안으로 빗물이 엄청 837호 베란다, 550호 베란다, 관리단이 해야할 일, 중간에 관리실이 있는 거잖아요, 목소리 높아져서 나중에 마무리하러 들름 아고, 힘들고 우중의 하루, 내일 14일 목요일 현대 네서 벙개 친다고 나 ㅂㅇ볼 시간도 없으니 수석부회장이 대신 써 줘. 22:35, 전화 불통 요며칠)
(22/7/14, 10:35, 덕계리에서 벙개있는 날. 길병원 심장내과 내원일. 하고플때마다 원당 갔으므로 무죄.자동면도기 후 컴 앞에 앉다. 하루 잃었던 이어폰베이스, 침낭 안에서 찿다)
조사관을 뚫고 통과하는 것이 참선이요. 묘하게 깨닫는 것은
모름지기 마음길이 끊어진 데 도달하는(다달으는) 것이니라.
마음길이 뚝 끊어져서 지혜가 고요히 홀로 밝을 때, 그게 깨달음이죠
이리저리 궁리해가지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공부하는 사람이 '내가 저런 걸 알았습니다.' 마음길이 남은 거 아닙니까.
아니다. 마음길이 남아 있어요. 근데 그 지가 생각할 때는 꼭 그런것 같거든.
근데 지 얼굴에 뭐 묻은 거 지는 못봐요. 다른 사람 다 보지.
'심로' 이것을 본인이 몰라서 그렇지. 심로가 끊어진데 도달한 게 깨달음인데
깨달았다는 생각이나, 못깨달았다는 생각이 남아 있으면 그건 깨달은 게 아니란 밀이요.
중생은 생각이 얼마나 많은지, 이익을 추구하는 생각하고 자존을 추구하는 생각하고
이 두가지가 항상 함께 있어 가지고 헷갈리는거에요. 이익과 자존, 그래서
속으로는 이익을 구하는데 겉으로는 자존을 내세워요.
그래서 "뭐 드릴까요?" 그러면 속으론 받고 싶거든. 그런데 자존심때문에
안받는다 이레요. 그러면 안받는다 이말 듣고 안주면 박살나는 거에요.
(갑작스리 어떤 친구가 생각나네ㅜ) 그래서 줄때도 그 자존심이 안상하도록
자알 주는 게 기술이에요. 그거 잘못했다가는요, 주고도 박살나는 거에요.
왜나? 자존심을 상했거든.
요게 중생은 자존심하고 이익하고 항상 같이 있기 때문에 이~ 거 조심해야 되요
그리구 뭐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자존심상하게 터억 주면 이익심은 채웠는데
자손심은 상했기 때문에 그건 뭐 안되는 거여. 완전히 내쳐뻐려야 하는 거지.
그런거요. 준 것 자체가 싫은 거냐? 그건 아니거덩. 준 건 좋다이거야 근데 왜 자존심을 상하게 하냐.
어느 노스님이, 상좌들이 "우리들 어디 가는데 스님 같이 가십시다."
"아 내가 이 나이에 어딜가냐? 니들끼리 갔다와라." 젊은스님들이 자기들끼리 갔어요.
근데 노스님이 아침부터 전부 어디 갈 거 챙기고(웃음소리) 기다리고 있었던 거에요.
이녀석들이 아무리 기다려도 안오거덩? 나중에 내려가보니 지들끼리 떠난 거에요.
차~암 그렇게 어리석어빠져가지고.. 그러면 그게 뭐냐 이말이오.
아, 내가 이 나이에 어디가? 그건 자존심이고
속으로는 아 그렇지 내가 지금 안가보면 언제 가보노 이런 기회에 꼭 갔다 와야지.
이건 이익심이란 말이지. 그럼 애들이 그걸 딱 챙겨서 아, 스님이 미안하니까안간다 그래도
속으론 다 가고싶어할꺼다 이래갖고 그냥 터억하니 안 간다 소릴한걸 못들은 듯이 그게 또
자존심 세워주는 거거든. 아유, 안간다고 그러더니 왜 가요? 이건 또 자존심 상하는 거잖아(웃으심)
그니까 그말 못들은 듯이 "스님 모시러 왔습니다. 가십시다." 그러면 자존심 다 세우고 갈 거 다 갖다오고
이게 이제 그, 지혜예요.
항상 여기서 걸리는 거예요. 이걸 못하면 출세도 못하고 앞길이 참 고달퍼요(미소지으심)
근데 사람에 따라서 이익심을 많이 내고, 자존심을 많이 내는 사람이 있어요. 이게 인격이에요. 근데 이
두가지가 다 있어요. 어느 정도 많냐 적으냐 그 차이 뿐이에요.
주더라도 자존심 안 상하게 잘 줘야지(웃으심) 아무리 좋은 걸 줘도 자존심상하게 줬다가는 거 안되는 거에요.
(이런 게 아마 상처일 거다. 그랬구나! 주는 기술이 없었구나.. 싶다)
18
공부는 거문고 줄을 고르듯이 하여 팽팽하고 늦춤이 알맞아야 한다. 너무 애쓰면 집착하기 쉽고 잊어버리면 무명에 떨어지게 된다. 성성하고 역력하게 하면서도 차근차근 끊임없이 해야 한다.
工夫는 如調絃之法하야 緊緩에 得其中이니 勤則近執
[공부 여조현지법 긴완 득기중 근즉근집]
着하고 忘則落無明하리니 惺惺歷歷하고 密密綿綿이니라.
[착 망즉낙무명 성성역력 밀밀면면]
(22/7/15, 21:40 강ㅈ은과장이 15:52에 전활했다. 뭐하시느냐? 어디냐? 내려오겠다고 하여 '방재실'에서 만날 줄로 알았다. 화장실이 마려워서 화장실 갔다 왔다. 상가 엘베 오른쪽 게 말썽부려서 또 그쪽으로 갔다. 상가엘베 쪽 편의점에서 강과장이 A존에서 나오는 게 보인다. 그녀는 왜 날 찾을까? 혹 내게 무슨 감투를 의뢰하려는 걸까? 글쎄, 그건 그녀의 범위를 벗어난 건데? 그럼 내가 부정적인 꼬투리를 잡혔나? 그래서 전전날에 약속한 거 못해주게 생겼다고 말할래나? 그녀와 불안한 수인사를 나눈다
"저 이번달만 일하고 그만둡니다."
"그래요? 나의 놀라운 반응이다.
아니 왜요?? 그냥 좀 쉬고 싶어서요.
"저~ 번에 오주임에게서 듣긴 했는데, 세너장과 문제 때문인가요?"
그녀는 잠시 말을 못 잇는다. 숨을 고르는 걸 게다. 내가 잘못 물은 걸까?
"그것도 그렇고, 일이 싫어졌어요. 좀 쉬려구요."
수긍됐다. 일 싫어지는 것은 인간관계가 잘못됐다는 설명에 다름 아님을 안다. 오주임은 말했었다. 세너장이 싫어서 그만둔다, 본사로 가든가, 그만두든가... 그 딜이 안받아들여졌구나. 세너장을 감싸안을 수 밖에 없는 게 회사의 입장일 거다.
그녀와 대화가 시작될 때 폰 녹음 버튼을 누른다.
나중에 일이 뒤틀렸을 때 증거가 되리라~
"접때 예기 나눈 거 있잖아요, 후임에게 그렇게 되도록 말해놓을게요."
새삼 그녀의 마무리가 탐탁하다. 필이 내게 꽂혀 온다.
부은 건가? 건강한 탓인가? 통통하고 적당히 그을은 듯한 살색과 우수에 깃든 눈꼬리. 지금 그녀는 마음이 아플 것이다. 스스로 그만둘 때, 즉 딜을 건넸는데, 회사는 잡지 않고 손을 놓았다. 더러운 기분일거다. 이용만 당했다...고 자책할거다.
나는 또 어쩔 수 없는 내 사족을 건넨다.
"책임감 있으신 분입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고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녀와 돌아섰다. 시간이 흐르자 조금 안타까운 게 하나 걸렸다.
바로 옆이 카페였는데..., 메가와 컴퍼니ㅜㅜ
'공부'는 무슨 공부냐? 마음찾는(깨닫는) 공부는
'여조현지법' 하야, 거문고 줄을 고르는 것과 같아서
'긴완'을 '득기중'이니 '긴'은 팽팽하며, '완'은 느슨하며
'중'을 얻어야 하느니
'근즉근집착' '근'은 힘쓰면(부지런할 근) 집착에 가깝고,
공부는 힘써서(애써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집착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냥 손놓고(마음 탁 놓아버리는 게) 하는 게 아녜요.
잊어버리면 무명에 떨어지느니라
'성성역력'히 하며 '밀밀면면'이 할지니라
'성'은 밝고 밝게 하며 항상 밝게 챙겨야 합니다.
'은밀히하고은밀히 하며' 아무도 몰라요. 공부를 하는지 않하는지
'면면'은 이어지고 이어갈지니라. 중간에 끊어지면 공부가 잘 안되는 거죠
이게 마음공부예요. 그것뿐입니다.
시시제시하고 시시거각하라 그런말씀이 있는데
항상 스스로, 붙든다 그랬어요. 놓으면 안되요
무엇이냐? 무엇이냐?
거각이란 '든다' 흔히 참구라는 말은, 옛말에 찾는다 그 뜻입니다.
참선의 참 字는 찾는다. 거 字는 챙긴다
항상 스스로 붙들고 항상 스스로 챙겨서 찾는다~ 이게 마음 공붑니다, 이게
보고 듣고 하는 이게 무어냐?
이걸 항상 붙들어야되요. 늘 챙겨서 찾아야 된다. 그게 이제 성성역력하며
졸면 안되죠, 끊어지니까. 밀밀면면이니라.
은밀히은밀히 하며 이어가고 이어갈지니라
항상 스스로 붙들고 항상 스스로 챙겨서 찾을지니라
'공부'는 무슨 공부냐? 마음찾는(깨닫는) 공부는
'여조현지법' 하야, 거문고 줄을 고르는 것과 같아서
'긴완'을 '득기중'이니 '긴'은 팽팽하며, '완'은 느슨하며
'중'을 얻어야 하느니
'근즉근집착' '근'은 힘쓰면(부지런할 근) 집착에 가깝고,
공부는 힘써서(애써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집착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냥 손놓고(마음 탁 놓아버리는 게) 하는 게 아녜요.
잊어버리면 무명에 떨어지느니라
'성성역력'히 하며 '밀밀면면'이 할지니라
'성'은 밝고 밝게 하며 항상 밝게 챙겨야 합니다.
'은밀히하고은밀히 하며' 아무도 몰라요. 공부를 하는지 않하는지
'면면'은 이어지고 이어갈지니라. 중간에 끊어지면 공부가 잘 안되는 거죠
이게 마음공부예요. 그것뿐입니다.
시시제시하고 시시거각하라 그런말씀이 있는데
항상 스스로, 붙든다 그랬어요. 놓으면 안되요
무엇이냐? 무엇이냐?
거각이란 '든다' 흔히 참구라는 말은, 옛말에 찾는다 그 뜻입니다.
참선의 참 字는 찾는다. 거 字는 챙긴다
항상 스스로 붙들고 항상 스스로 챙겨서 찾는다~ 이게 마음 공붑니다, 이게
보고 듣고 하는 이게 무어냐?
이걸 항상 붙들어야되요. 늘 챙겨서 찾아야 된다. 그게 이제 성성역력하며
졸면 안되죠, 끊어지니까. 밀밀면면이니라.
은밀히은밀히 하며 이어가고 이어갈지니라
항상 스스로 붙들고 항상 스스로 챙겨서 찾을지니라
(내일 강씨봉자연휴양림 간다. 정빈과. 그곳은 군대시절 유격훈련하고 복귀하던 도성고개길이다. 그때는 늦가을이었고, 계곡의 소가 줄줄이 이어져 있었는데,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는 '결혼하면 이곳으로 신혼여행 올거야' 라고 생각했다. 그 다짐은 잊고 말았지만 큰딸의 이름을 '隱志'라고 지을때는 이곳을 연상하였었다. 연병장에서 바라보면 동쪽에 삼각형 봉우리가 톡 튀어 있는 그 강씨봉. 궁예의 부인이 연관된 강씨봉. 무슨 미련이 이토록 질긴걸까? 사직리. 복골.한나무봉.강씨봉.논남기......22:00 終)
22년7월21일 목욜, 19:00 강씨봉에 토욜 갔다왔으니까 6일만에 집자한다. 오늘 김ㅇ용반장 연차라 지금 혼자임. 최씨가 만든 파스퇴르 우유 한잔 먹음. 엄여사가 장ㅅ원관리원에 만원을 주어서 망고를 한잔 먹음. 금일 B존여화장실 지하피트 수중펌프 흡입구이물질 제거함ㅜㅜ 내일 간기능검사겸 건강검진예정. ......일과속은 소음의 터널일진데 매일 아니 하루건너 하루 출근해서 뭐 아무 즐거움없이 어찌하여 시간은 안가는지만 염두하믄섬 이곳은 승진도 아니요, 만족도??도 없을 뿐더러 왜 이곳에 붙잡혀서 시간을 잊고 있느뇨? 시간은 청산가리처럼 독하게 내 곁을 비껴가고 있다. 여보, 은지 우리집으로 주소 옴겼어요. 내가 ㅇㅇㅇ로 돼 있네요. 서정이네는 잘나가는데, 대산이 꺼까지 30만원 나와서 의료보험비 20씩 네 번 내주겠다고 했어요. 집으로오면서 내 신세가 어찌하여 하면서 펑펑 울잖아요...
주해
거문고 타는 사람이 말하기를, 그 줄의 늦고 팽팽함이 알맞아야 아름다운 소리가 잘 난다고 한다. 공부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조급히 하면 혈기를 올리게 될 것이고, 잊어버리면 흐리멍텅해서 귀신의 굴로 들어가게 된다.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않게 되면 오묘한 이치가 그 속에 있을 것이다.
彈琴者曰, 緩急이 得中한 然後에사 淸音이 普矣이라 하니 工夫이라 亦如此하야 急則動血囊하고 忘則入鬼窟이니 不徐不疾하야사 妙在其中이니라.
[탄금자왈, 완급 득중 연후 청음 보의 공부 역여차 급즉동혈낭 망즉입귀굴 불서부질 묘재기중]
거문고를 타는 이는 말하되
완급, 중을 딱 얻은 연후에
맑은 소리가 퍼진다고하였나니라
공부도 이와 같아서
급하게 하면 핏주머니를 움직여서 혈이 안 통하고
내던지고 잃어버리면
귀신굴속에 들어가나니라(온갖 생각속에 헤메게 된다)
천천히도 아니하고 빠르기도 아니해야
묘한 이치가 그 가운데 있느니라
여조현지법如調絃之法
부처님 제자에 소오나라는 비구가 있었다. 그는 항상 밤에 잠도 자지 않고 열심히 정진을 했으나깨치지 못해 비관하게 된다. 어느 날 부처님은 그의 심중을 살펴 아시고 소오나를 불렀다.
"네가 세속에 있을 때 혹시 거문고를 타 본 일이 있느냐?"
소오나는 타보았다고 대답했다.
"그럼 그 줄을 너무 죄면 소리가 어떻터냐?"
"소리가 끊어집니다."
"너무 늦추면?"
"그때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줄을 알맞게 골라야 소리가 제대로 나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그렇다. 정진도 그와 같이 해야 한다. 너무조급히 하면 들떠서 병나기 쉽고, 너무 느리면 게을러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무 집착하지도 말고 게으르지도 말며 꾸준히 힘써 닦도록 하여라."
소오나는 이와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이날부터 거문고 줄을 고르듯이 정진하여 마침내 깨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잡아함경 제9권 '이십억이경'에 나온다.
만일 마음을 거칠게 쓰면 몸이 피곤하고
육신이 피곤하면 정신이 번뇌롭게 되며
정신이 번뇌로우면 수행이 물러나며
수행이 물러나면 반드시 허물이 더할 것이니,
오로지 펑정하고 편안히 하여야 도를 잃지 않으리라.
19
공부가 걸어가면서도 걷는 줄 모르고 앉아도 앉는 줄 모르게 되면, 이때 팔만사천 마군의 무리가 육근六根 문앞에 지키고 있다가 마음을 따라 들고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무슨 상관이 있으랴.
工夫가 到 行不知行하며 坐不知坐하면
當 此之時하야 八萬四千 魔軍이 在 六根門頭 伺候라가
隨心生設하리니 心若不起하면 爭如之何리요?
공부가 집중이되고 다니되 다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앉되 앉는 줄을 알지 못하는데에
떠억 이르르면
가도 가는 줄 몰라요. 오직 '이 무엇인가?'
앉아도 앉은 줄 모르며 '이 무엇인가?'
여기에 이르르면 '당차지시' 이때를 당해서 뭐가 생기나?
팔만사천마군이 '안의비설신의' 안의비설신 위에 딱 기다리고 있는 거에요.
그때 볼 수 있는 잠재력이 눈에 딱 있고
들을 수 있는 잠재력이 뒤에 있고
맛볼 수 있는 잠재력이 혀에 있어서
언제든지 튀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사후' 기다리다가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이 일어나면 잠재해 있던 생각이 튀어나오는 거죠
수심생기 일으키는 마음을 따라서. 다른 여러가지, 밖으로 구하는 마음이 마구 나온다는 거죠
'심약불기' 마음이 만약 일어나지 아니하면
'쟁여지하' 석 字가 전부 '어찌하리오' 요.
주해
마군이란 생사를 좋아하는 귀신의 이름이고,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八만四천 번뇌다. 마魔는 본래 씨가 없는 것인데 수행자가 바른 생각을 잃는 데서그 움이 트게 된다. 중생들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수행인은 그 환경에 거스르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억세어 간다'라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서 상주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붙잡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마의 여러 가지 재주일지라도 마치 칼로 물을 베려거나 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 옛말에 '벽에 특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했다.
(마귀란 것은 생과 사의 반복을 즐기는 귀신의 이름입니다.
팔만사천마귀의 군대라는 것은 곧 중생의 가진 바 팔만 사천가지의 번뇌입니다.
마귀는 본래 씨種가 없습니다.
수행자가 본래의 마음을 잃으면 따라서 그 마귀의 근원을 물결치게 합니다.
중생이 그렇게 일어난 마군이라는 애욕과 집착의 대상세계를 따르기 때문에
생사의 순환고리를 따르고, 수행하는 사람道人은 그렇게 일어난
마귀의 군대라는 애욕과 집착의 대상세계를 거스르기 때문에
생사의 고리도 거스릅니다. 그러므로 "수행의 도가 높으면 마귀도 번성한다"라고
했습니다. 선 수행할 때에 누구는 효자를 보고서 허벅다리를 찍었다고 하며
누구는 돼지를 보고서 코를 잡았다고 합니다. 또한 스스로의 마음에
견해가 일어나 감응한 것이 바로 이 밖의 마귀입니다.
마음의 생각이 만약 일어나지 않는다면 곧 가지가지의 재주는 도리어물을 가르고
빛에사 바람을 부는 것과 같이 쓸모 없는 것이 됩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벽의 틈으로는 바람이 들고 마음의 틈으로는 마귀가 침입한다 햇습니다.)
【釋】魔軍者는 樂生死之鬼名也요, 八萬四千魔軍者는 乃衆生八萬四千煩惱也이라. 魔本無種이나 修行失念者가 遂派其源也이라, 衆生은 順其境故로 順之하고, 道人은 逆其境故로 逆之하나니, 故로 云, 道高魔盛也이라 하니라.
마군자 낙생사지귀명야 팔만사천마군자 내중생팔만사천번뇌야
마본무종 수행실념자 수파기원야 중생 순기경고 순지
도인 역기경고 역지 고운 도고마성야
마군자 생사를 좋아하는 귀신이니
팔만사천마군이라는 것은 팔만사천 번뇌이니라
마는 본래 종자가 없으나
마음공부를 주욱 해나가는데 실념자, 한생각 일념을 잃어버리면
수행이 뭐냐?
밖으로 나아가는 마음을 되돌려서 안으로 바라보는 것이 1차 수행이고
1차 공부고,
그 마음을 바로 봐가지고 그 마음이 다시 밖으로 나가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도록 잘 연마하는 것이 수행이고
그 연마된 마음을 조금도 중생 습기가 끼어들지 않은 상태에서 잘 펼쳐나가는 게
그게 수행입니다.
생사에서 해탈하고, 생사에서 자재하고 생사 중생을 인도하는 게 수행이에요. 그래서
생사업을 익히는 게 수행이 아닙니다.
생사는 뭐나?
생각이 색성향미촉법 육진을 향해서 나아가면 그게 생삽니다.
육진을 따라가지 아니하면 생사는 없는 거에요.
그래서 생사라는게 지금 이순간에 한 생각 일으키면 생사고
이것이 무엇인가? 돌이키면 고 순간은 열반이에요.
생사 종자가 안 이뤄져 있어요.
'이것이 무엇인가?' 그 무엇인가 몇초 동안만은 생사가 없는 거예요.
생사 종자가 만들어지지 않아
그럼 왜 생사가 이어지느냐
과거에 만들어진 종자가 있는 거죠.
이게 무엇인가? 이게 무엇인가?
육식이 육진을 거둬잡아서 칠식에다가 심고 칠식이 팔식에다 심어야
생사가 이어지는데 육식이 색성향미촉법을 거둬잡지 아니하면
생사종자가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럼 그 안들어가게 하는 방법이 뭔가?
그냥 안되죠. '이것이 무엇인가?' 그럼 그 일초 이초만큼은 생사가 없는 거예요
고 순간만은 해탈이에요
그래서 무념이 해탈이다~~무념이라는 것은 색성향미촉법에 분별 집착하는 마음이 없는 거
무념이 해탈이에요. 분별 집착하면 념이 있는 거 그래서 유념이면 생사요, 무념이면 해탈이다~~
그게 수행이에요, 그게
집착하는 마음이 있어서 밖으로 나아가면 그건 생사업이에요. 고걸 분명히 알아야 되요.
밖으로 구하는 건 뭘 하든지 그건 생사고,
밖으로 구하는 걸 안으로 돌려서 무념으로 들어가면 그건 해탈이다 이거죠(눈 비비심)
불교는 생사업을 끊는 게 그게 불교지, 생사를 자꾸 이어가는 게 불교가 아닙니다.
수파기원야, 드디어 그생사가 그 근원(수행에서 실념하는 거)에서 파생되는 것이니라
근원에서 물결로 나온다 그겁니다
중생은 그 생사의 물결을 따라가는 고로 순지하고(아무 문제가 없어요)
도인은 그 경계(색성향미촉법은 눈으로 보되 경계를 따라가지 않고)를 거슬리는 고로
수행하려면 '무상무념'이 첫 짼데
무상은 뭐냐? 상을 보되 상을 안 따라가는 게 무상이에요
화두가 왜 안들리느냐? 상을 따라가서 안들리는 거거든요
무념이 되야 돼 무념은 뭐냐? 생각이 일어나되 생각을 안 따라가는게 무념입니다
생각자체가 하나도 없는 게 아니라 온갖 망상이 다 일어나도 전혀 그기에 안따라가면 그게 무념입니다.
눈으로 안 볼 수 없고 귀로 안 들을 수 없고 손으로 뭐 안만질 수 없는데
전부 상 뿐인데, 안의비설신의로 어떤 게 비치더라도 상에 따라가지 않는 게 무상이에요.
전혀 신경안쓰고, 상에서 상을 여윈다.
자꾸 따라가니까 이리 끌려가고 저리 끌려가고
그래서 무상무념이 되면 그게 공부에요 그 담에 머물 주 짜 무주가 있는데,
선악경계에 구하지 말아라 그게 아주 3대 기본이에요.
무념무상무주로 하라.
생각이 일어나는데 안 따라가면 무념이에요. '이것이 무엇인가?' 뭔가 잘못돼서 생각에 따라가고
상에 따라가고 또 성성역력하게 안하고 밀밀면면하게 안해서 그렇지 이게 하면 왜 안돼나??
밥먹은 돼지가 배 안부를 수 없거든요.
아홉을 아홉번 딱 모아놓으면 이게 팔십일이 안될 수가 없어요
아홉뭉치를 댓개 해놓고 팔십일이 될려면 안되는 거죠 그니까
이거 따라가고 저거 따라가면 안챙겨지구요. 안챙겨지면 무머 모르는 거죠
제대로 하면 안될 일은 없다. 구구가 갖춰졌는데 지가 81이 안되면 어쩔거에요
상이 보이고 생각이 일어나면 어찌하냐??
그기 따라가지 말고 만번 생각나도 만번 안따라가면 그만이에요
아~무 상관이 없는 거에요. 어찌 전부 안일어날 수가 있나. 다생겁래로 생각으로 살고
다생겁래를 형상으로 살았는데 지금 당장 거슬린다고 탁 끊어질 수가 있나요? 안돼요~
지금서부터 거슬리며하는 것은 '무상무념'이다
금강경을 생활속에서 실천하는 구체적으로 방법이 육조단경이다. 무상무념무주 딱 그 실천방법을
그냥 제실했거든요. 그럼 응소주가 저절로 되면 반야청정심이 나타나게 되 있어요. 무주가 안되니까 반야심경이 거기에 묻혀서 안나타나는 거요.
'거슬리는 연고니라' 고로 이르되,
보이는데로 따라가면 아무 문제 없어요. 근데 보이는데 신경을 안쓸라니까 자꾸 이게 거슬리게 된다 이거요. 생각나는대로 뭐 전화도 하고, 생각나는대로 뭐 일기도 쓰고, 뭐 생각나는대로 음악도 듣고 생각 따라서 별별 걸 다 하면 아~~무 문제 없죠. 생각이 일어나도 안따라가려하니까
반야심이 깊을수록 생사심도 자꾸 일어난다 이거예요. '도고마성'이라~
禪定中에 或見孝子而斫股하며, 或見猪子而把鼻者는 亦自心起見하야 感此外魔也니라. 心若不起則種種伎倆이 飜爲割水吹光也니라, 古云, 壁隙風動이요, 心隙魔侵이라 하니라.
(오늘 집자 끝. 22:20, 순찰돌자! 평소에 나는 '무상무아주'를 읊조렸는데 그 뜻을 오늘 상세히 알게 되었다. 문득 화두참구가 그와 비슷한 경로로 알게 되는 것을 말함일까? 나는 '무아'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무념'이 조금 다르다. 하지만 같은 뜻이라고 본다. 혼자 근무하는 거니 밤에 주경종 좀 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ㅎ)
(7/22, 금욜, 20:02, 금일 에어컨 고치러 왔었으나 실외기 방열머시기가 안가져왔다면서 내일 온다고 도로 갔다. "비오면 못옵니다" 라는 말꺼정 하고. 곧 8월인데 삼성 뿐이라서그럴까? A/S가 근 한달 가까이 걸린다ㅜ 여름 초에 서너번 에어컨 튼 후 고장나고 만. 작년에 설치한 건데ㅜㅜ)
선정중 혹견 효자이작고 혹견 저자이파비자 역자심기견 감차외마야
심약불기즉종종기량 변위해수취광야 고운 벽극풍동 심극마침
'감차외마야'
이 외마를 느낀 것이니라
'견'을 자신이 일으켰는데 딱 느끼기에는 밖에서 온 것처럼
느끼는 겁니다.
이거이 틀림없는 소립니다. 자기 생각을 자기가 일으켰는데 꼭 밖에
그런것이 있는 것처럼 보여요 내가 이 물건을(볼펜을 짚는다) 좋다고 생각하면
내가 좋다고 생각한거거든요 근데, 이게 정~말 좋은거처럼 보여요
그것이 '감차외마야'요
이게 좋은겁니까? 이게 나쁜겁니까? 있는거냐 없는거냐 본래 이게 전부 헛생각이에요
좋은거라고해도 나쁜거라고해도 있는거라고해도 없는 거라고 해도 전부 마군이에요
그럼 실지 주인공은 뭐냐? '유일물어차' 하니 종본이래로 소소영영하야 밝고 밝아서
부증생부증멸이라 명부득상부득이라~ 그게 정법이에요.(인간의 心이 아니고 물건에다가 인격을 주셨네)
보인다 안보인다 이건 전부 '마군'이다 자기가 만든 물건을 자기가 훔치면서 사는 게
생사에요. 좋~타(물건을 듦) 이거 내가 만들어놓은 거에요. 그래놓고 이걸 가질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거지. 이게 훔친거예요 저 하늘이 저게 하늘인가? 내가 하늘이라고 만들어놨어요.
하늘은 이제 내 물건이에요. 그런데 저 하늘에 어떡하면 올라갈까?
올라가서 뭐할라구 그래요? 하늘이 아름답다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울까
전부 자기 물건을 자기가 훔쳐요~ 이게 생사입니다.
'割水吹光' 물을 베고, 빛을 분다
내가 생각을 안 일으키면 번뇌는 쓸모가 없다 그런 예기예요
(금욜, 오늘은 건강검진을 길병원에서 받았고, 변 내용물ㅜㅜ 왜 그렇게 그 행위가 하기 싫었던지... 그러나 할 수 없이 양변기 바닥에 변을 보고, 찍어 넣고 잠근다. 누가 말하였었지. 알바생들 위생검사 해야하는데, 항문에 찔러넣는 그 요식행위를 그녀도 했겠지 상상하며 감정이 비틀어지는 얘기를. 검진 받는 모든 여성들 역시 나처럼 변기 밑에 휴질깔고 응가를 하고 그 절차를 밟겠지 싶으니, 검진센터 문을 나서면서도 마음이 허덕하였다. 소보로.팥빵과 중우유를 사서 벤취에 앉아 먹었다. 그리고는 시청도서관엘 들러 도서목록을 찾고 있다가 누군가가 아는 체, ㅋㅋ 전기학원 동료였다. 전번을 따고 커피점으로 갔고 수달 떨고, 6기갑 20사단 통합, 병기주특기 가라휴가... 순 보병이었던 내게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흑석동 학교를 다닌 보람이겠고 나는 그에게 고졸이란 말을 하지 않고 수다떠는 그를 바라보았다. 마스크 쓰고 보던 눈매와 마스크 벗은 얼굴의 조화 혹은 부조화를 관찰하는 건 재밌다. 그는 후자에 속했다. 코감기로 콧물이 많이 나와 GS5는 취소하였다. 오늘 집자 終한다. 22/7/22 21:46 )
20
일어나는 마음은 천마이고 일지 않는 마음은 음마이며 일기도 하고 일지 않기도 하는 것은 번뇌마이다. 그러나 우리 바른 법 가운데에는 본래 그런 일이 없다.
기심 시천마 불기심 시음마 혹기혹
起心은 是天魔요 不起心은 是陰魔며 或起或
불기 시번뇌마 아정법중
不起는 是煩惱魔어니 我正法中엔
본무여시사
本無如是事니라
천마天魔: 고대 인도의 전설에 의하면 欲界의 제육천, 곧 타화자재천의 임금은 魔王으로 그 이름이 波旬파순이다. 그는 항상 바른 법을 파괴하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른 법을 공부하는 이가 있으면 그의 궁전이 흔들리기 때문이란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바른 법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낼 때에 곧 천마가 따르게 된다. 다시 말하면 한 생각 일어나는 그것이 곧 천마이다.
음마陰魔: 오음마五陰魔 또는 五蘊(쌓을온)魔.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면서 우리에게 어떤 감촉을 주는 모든 환경과 그에 대한 우리의 감각으로 일어나는 반사적 동작 또는 정신작용. 그러니까 대상과 생각이 일어나는 근본을 밝히지 못한 까닭에 생각이 저절로 쉬어지지 않는다. 또한 억지로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뚜렷하게 현존하고 있는 환경과 육신의 지배를 받아 고통과 번민이 따른다. 그것이 곧 마가 되는 것이다. 불법은 '집착함이 없이 마음을 내는 것應無所住而生其心'이므로 그것을 무심無心이라 하고, '함이 없이 하는 것' 이므로 그것을 무위無爲라고 한다. 분별하는 것이 있게 되면 부처가 곧 마군이 될 것이고, 무심하다면 악마의 화살이라도 곧 보살의 연꽃이 될 것이다.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천마'다 마구니다
"니가 마구니다" 그러면 다 싫어해요 벌써 그게 싫어한다는 게
한생각 일으킨 것 아니요 정법일념, (부증생부증멸)을 떠억 챙기고 있으면
마구니라고 하든 천신이라고 하든 전혀문제가 없는거지
"잠 푹 들었을 때 어느곳에 계셨습니까?" 그러니까 뭐라대답했을꺼 같아요?
모르면 그런데에 당해요, 모르면. 묻는 게 마군이에요 아니 생멸이 없는데 어디 있고 없고
그걸 따지면 있다없다 그건 벌써 생각을 일으킨 거 아니요. 벌써 마군인 거요 무어라고 그러면
"이리와, 그냥 한방에 박살을 내버리지 거기서 우물쭈물하고 뭐 당황하고 그래요?"
정법 앞에서는 어디에 있었다없었다잤다깼다 다 소용없는 거요
마음이 트릿해가지고 어? 내가 어디에 있었지??
그래서 방(방망이)이 필요한거요 그따위 걸 질문이라고 하고 있나 말요
'유일물어차'하니 그게 정법인데, 소소영영해서 부증생부증멸이라 명부득상부득이라~
등도없고 꼬리도없고 머리도 없다 그걸 떠억 챙기고 있는데 뭐~~ 어디 있었느냐 없었느냐
그게 천마외도, 눈뜨고 당하고 있어? 그냥 박살을 내야지 그렇찮아요? 자기가 희미하니까
당하는 거거든 공부라는 게 그런거예요
'연아정법중' 내 정법중에는 본래 이런 일이 없다
이 '정법'이 뭐에요? 소소영영한 거 부증생부증멸하고 명부득상부득하니 그 자릴 떠억 알아서
챙기고 있으면 혹기혹불기, 시번뇌마, 그런 게 붙을 수가 없는거라 이말이에요
죽겠다고 고함 막 지르고, 살려달라구 '나는 살았다' 하는 미혹한 견해때문에 그래요
언제 살아 살기는, 또 죽으면 큰일난다 언제 죽어요? 그러니까 순전히 생사견을 가지고
생사가 '밖'에 있는 것처럼 외감을 하는 거에요
생사해탈하면은 거, 내견을 타파하면 외감은 없는 거예요
전부 안으로 내견을 일으키기 때문에 밖으로 그런 형상을 느낀다 이말이요
'나는 죽는다' 이게 천마외도거든요 그니까 '나는 죽는다' 하는 그놈을 후려부셔야지 그걸 놔두고
내가 살려줄께 그건 마가 마를 낳고 낳아서 생사가 이어지는 거요
본분종사의 주장자는 그런걸 조금도 용납하지 않아요 유견무견, 그냥그냥 용납하지 않아요 그게 정법이거든요
주해
대체로 무심한 것이 불도이고 분별하는 것은 마의 일이다. 마의 일이란 꿈속 일인데 더 길게 말할 것이 무엇이랴
大抵(대저) 忘機(망기)는 是佛道(시불도)요
分別(분별)은 是魔境(시마경)이라
然(연)이나 魔境(마경)은 夢事(몽사)이니 何勞辨詰(하노변힐)이리오.
대체로, '기'는 분별심의 기틀인데, 잊는 것은 불도요
분별은 마경계니라 그러나 마경은 몽사라 꿈같은 일이다이거요
정법을 딱 챙기면 마는 없는 거요. 예를 들면 잠 안들면 꿈은 없죠
부증생부증멸한 정념을 딱 챙기고 있는데 생사고락이 거기 어떻게 붙느냐?
'하로변힐' 어찌 힘들게 그걸 가리고 찾으리오
꿈깨고 나면 그만이지 꿈을 어떻게 찾느냐 이말이요 헛된건데,
허공의 꽃인데 어디서 생겼느냐? 눈병에서 생겼거든요
눈의 병이 나으면 허공꽃은 저절로 없어지고
꿈을 깨면 몽사는 저절로 없어지느니라
좋은 꿈 꿨다고 그걸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하고ㅎ
살 게 없어서 남의 꿈을 다 사요, 어이구 내참
남의 생각에 따라가서 사는 게 그 꿈 사는 거하고 똑같은 거요
자기 의지를 갖고 살아야지 남 생각 따라가가지고 살면
남의 꿈 사서 사는 거랑 똑같은 거에요 그게
공부를,
'타'는 어조산데 한덩어리를 이룬다는 게 뭐요?
간단없이 끊임없이 계속 이어가는 겁니다 밀밀면면히 이어가는 걸
한 덩어리라 그럽니다. 무엇인가? 무엇인가? '상자거각' 항상 스스로 챙겨서 찾고
붙든다이거야 그럼 그게 한덩어리를 이룬 건데,
'타성일편' 이라는 건 고정된 용어예요
'종'자는 비록 금생에 '투'는 사무칠 뚜자인데, 깨닫는 거 통달한 거
눈빛이 땅에 떨어질 때에(죽을 때)
악한 업으로부터 끌리는 바가 되지 않는다
까치집을 극락세계로 보고 까치가 된다든지, 소를 굉장히 좋은 걸로 보고 인제, 송아지가 된다든지
그러면 안되는 거예요
이것이 무엇인가? 한 생각을 안으로 챙기니까 밖으로 악업에 안 끌린다 이거거든요
21
공부가 한 고비를 넘긴다면 비록 금생에 깨치지 못하더라도 마지막 눈감을 때에 악업에 끌리지는 않을 것이다.
工夫가 若打成一片則縱今生에 透不得이라도 眼光
공부 약타성일편즉종금생 투부득 안광
落地之時에 不爲惡業所牽이니라.
낙지지시 불위악업소견
좋은 꿈 꿨다고 그걸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하고ㅎ
살 게 없어서 남의 꿈을 다 사요, 어이구 내참
남의 생각에 따라가서 사는 게 그 꿈 사서 사는 거하고 똑같은 거요
자기 의지를 갖고 살아야지 남 생각 따라가가지고 살면
남의 꿈 사서 사는 거랑 똑같은 거에요 그게
공부를,
'타'는 어조산데 한덩어리를 이룬다는 게 뭐요?
간단없이 끊임없이 계속 이어가는 겁니다 밀밀면면히 이어가는 걸
한 덩어리라 그럽니다. 무엇인가 무엇인가 '상자거각' 항상 스스로 챙겨서 찾고
붙든다이거야 그럼 그게 한덩어리를 이룬 건데,
'타성일편' 이라는 건 고정된 용어예요
'종'자는 비록 금생에 '투'는 사무칠 뚜자인데, 깨닫는 거 통달한 거
눈빛이 땅에 떨어질 때에(죽을 때)
악한 업으로부터 끌리는 바가 되지 않는다
까치집을 극락세계로 보고 까치가 된다든지, 소를 굉장히 좋은 걸로 보고 인제, 송아지가 된다든지
그러면 안되는 거예요
이것이 무엇인가? 한 생각을 안으로 챙기니까 밖으로 악업에 안 끌린다 이거거든요
(이성씨가 한 수 의향을 물어와서 쾌락했다. 그동안 안뒀으므로(전기기능사2차로 인해 폐점함ㅋ) 내가 지겠지만 바둑이라는 게 책만 들여다봐서야 어느세월에 棋理가 트이겠는가? 엊그저께 장자의 '양생주'에서 받은 영향이리. 삼사천원정도 지불한다는 생각으로 즐기려 한다. 이 토요일 오후를...22/7/23,14:15)
(뼈해장국 먹고 오다. 파리 한마리가 같이 먹재서 파리챌 들고 오니 금새 사라졌다. 써빙녀는 빙긋웃으면서 파리가 없네요 한다. 아침에 옥상의 주차장에서 보았던 고추잠자리가 떠오른다. 한참을 내가 저 왔다리갔다리 하는 걸 보고 서 있자, 나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경계하던 녀석은 어느 순간 11층 경계턱을 넘어 내려가버렸다. 사라진 것이다. 조금 서서 기다려보았으나 오지 않았다. 여자. 궂이 말이 서로 없어도 통할려면 통하지만, 그래도 말마중물이 있으면 한결 편하게 말을 할 수 있는 게 남자. 계산을 치르고 나올 때 계산이 됐으면 신호음이 가는데, 그 신호를 받았느냐고 묻는다. 메시지.카톡을 봐도 없더라니 아항, 내가 이음카드로 썼구나! 무슨 그럴싸한 조크를 그녀에게 한 거 같은데 싼 조크였는지 까먹고 없다. 이 성씨와 근 한시간 넘게 바둑을 뒀는데 동률, 즉 집이 48집씩 똑같았다. 이천원 벌 수 있었는데, 내 좌상 귀에서 수 아끼다가 공배를 메우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내가 백 쥐고 뒀으므로 6호 반을 이겨서 천원 벌었다ㅋㅋ 그는 바둑 한판 두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짜증을 부리는 거다. 얼마만에 두는 바둑인가! 그리고 얼마만에 그를 이기는 희열인가. 천원 들고 기분좋게 뼈해장국을 먹으로 갔다. 18:45, 다시 19:25에 집자에 들어간다.
주해
업이란 어두운 무명이고, 참선은 밝은 지혜다.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서로 맞설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닌가
業者는 無明也요 禪者는 般若也라 明暗不相敵은 理固然也니라.
업자 무명야 선자 반야야 명암불상적 이고연야
"무명이란 것은 밝은 것만 나타나면 없어져뻐려요~"
무명이 뭐, 밝은 게 없기 때문에 어두운 게 있는 거지
한생각만 바로 챙기면 생사중생은 없다
무명은 꿈과 같은 거다
꿈에서 깨면 꿈은 없는 거에요
생사는 어두움이다 이거요 어둠은 뭐냐 반야를 등져서 그렇다
반야는 정법인데, 정법은 부증생부증멸 명부득상부득이예요~
소소영영하다 그말이에요 그거 하나 떠~억 보고 있으면
어딜 거기에 생사가 붙고 무명이 붙을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밝음과 어두움은 서로 싸울 수 없다
이치가 저절로 그러하다 누가 만들어서 그런 게 아니다 이거지
그냥 그런거예요 부증생부증멸을 누가 만들어서 그럽니까?
진실로 그러한 걸 보는 게 그게 견성이다 있는 걸 보는 게 견성이다 왜 안되나?
상에 매이고 생각에 매이니까 그렇다 무상무념으로 하면 견성이 안될 수가 없다
이게 간화선입니다, 이게
(공짜로 이런 귀한 이치를 다 가르켜주시네~ '유일물어차' 로 시작되는 그것이 바로 정법이로구나! 라고 내 눈썰미가 '척'한다)
22
참선하는 이는 항상 이렇게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네 가지 은혜가 깊고 높은 것을 알고 있는가?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 더러운 이 육신이 순간순간 썩어가는 것을 알고 있는가? 사람의 목숨이 숨 한번에 달린 것을 알고 있는가? 일찌기 부처님이나 조사와 같은 이를 만나고서도 그대로 지나쳐버리지 않았는가? 높고 거룩한 법을 듣고 기쁘고 다행한 생각을 잠시라도 잊어버리지 않았는가?
공부하는 곳을 떠나지 않고 수도자다운 절개를 지키고 있는가? 곁에 있는 사람들과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며 지내지 않는가? 분주히 시비를 일삼고 있지나 않은가? 화두가 어느 때나 똑똑히 들리고 있는가? 제 공부를 돌아볼 때 부처와 조사를 붙잡을 만한가? 금생에 꼭 부처님의 지혜를 이을 수 있을까? 앉고 눕고 편할 때에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는가? 이 육신으로 윤회를 벗어날 자신이 있는가? 여덟 가지 바람이 불어올 때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 이것이 참선하는 이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때때로 점검해야 할 도리이다. 옛 어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몸 이 때 못 건지면 다시 어느 세상에서 건질 것인가!"
원문
大抵參禪者는 還知四恩이 深厚麽아 還知四大醜身이
대저참선자 환지사은 심후마 환지사대추신
念念衰朽麽아 還知人命이 在呼吸麽아 生來値遇佛祖麽아
념념쇠후마 환지인명 재호흡마 생래치우불조마
及聞無上法하고 生希有心麽아 不離僧堂하여 守節麽아
급문무상법 생희유심마 불리승당 수절마
不與隣單으로 雜話麽아 切忌鼓扇是非麽아 話頭가
불여인단 잡화마 절기고선시비마 화두
十二時中에 明明不昧麽아 對人接話時에 無間斷麽아
십이시중 명명불매마 대인접화시 무간단마
見聞覺知時에 打成一片麽아
견문각지시 타성일편마
대저 '참'에서 참이라는 뜻은 참구라는 뜻인데요, 찿는 거다 라고 그랬어요
옛날 언해본에. 참여할참과 연구할 구字 '참'은 스스로이고 '구'는 찾는 거
'禪'이라는 건 한생각 일으키기 이전에 자성심을 찾는거다. 이게 참선이예요~
대승선은 생각을 고요히 하는 이따위 정의가 아니고, 그 소소영영한 마음
그게 선인데, 그거를 찾는 게 그게 참선이다 이소리예요
'대저참사자' 참선하는 이는, 사람을 딱 지적하는 거예요 문장을 가리키는 자字가
아니란 거요 환지사은이 두터운줄 아느냐?
'환지' 또한
사대의 추한 몸이 찰나에 '세후'라는 것은 늙는다는 것을 아느냐? 이걸 알아야 해요
몸을 중심으로 찰나찰나에 늙어가는데, 이 몸을 중심으로 온갖 인생설계를 다해요~ 그거 헛일이요
무슨소립니까
이 몸 언제 죽을 지 아무도 몰라
(나는 상기 말을 지금 마음 깊이 각인해. 김ㅇ용반장이 따다 놓은 바가지 속의 방울토마토를 먹어서 배 적당히 부른 상태에서 집자를 하고 있고, 지금 시간이 21:54분이니 곧 순찰나가야 하고 그 이후엔 잠자겠지. 그런데 기실 내 왼가슴 통증은 나를 부지불식 늘 깨어있게 각성을 주지 않은가. 혹은 창자 속에서는 혹이 자라고 있을 줄도 모르고 비형간염이 어떻게 변질되어가고 있는지도 볼 수 없으니 죽음이 언제 나를 덮칠지 어찌 알겠는가! 다만 여지껏 안죽고 살고 있으니 내일도 또 살아있을 꺼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니, 부질없는 70세 넘어서까지 돈 욕심을 내고 있는 나는 도대체 뭐하는 걸까? 아무튼 오늘 쩡이 생일인데, 아내가 갈산4거리 뼈해장국 먹고 나오는데 전화가 왔었지. 여보 나 쩡이 낳느라고 고생한 오늘인데, 당신 한마디 듣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괄하고 내일은 맛있는 거 사주겠다고 위로하였었지... ) 꿈이 언제 깰지 모르는데, 꿈 한번 딱 깨면 그냥 끝나는 거예요.
인생에 대한 관찰이 깊어야 도가 닦아지지 이 몸을 가지고 헛된 꿈을 꾸면 도는 닦일 수가 없어요. 절대로
또한 사람의 목숨이 호흡에 있는 줄을 아느냐? 살아오면서 불조를 만난적이 있는가?
무상법을 듣고 신심을 낸 적이 있느냐?
승당을 여의지 아니하고 법도를 지켰느냐?
옆 좌불에 앉아 있는 그런 사람으로부터 잡된 말(마구니의 말, 마음 밖으로 구하는 말)을 하지 않았느냐?
안으로 이것이 무엇인가? 이거 하나로 족한데, 앉아가지고 온갖 세상얘기 다하면 안되요, 이거는
절대 될 수가 없어요 세상 얘기 하는 동안에 무엇인가? 챙겨야되지 언제 그거 세상예기를 할 겨를이 어디 있는가 이말이죠 찰나찰나 이 몸이 늙어가는데(이 말씀 들으니 가슴이 서늘해진다. 나는 지금 방재실에 앉아 토요일밤의 종범스님 말씀을 감동으로 들으며 집하하고 있어 늙는지 뭐하는지 잊고 있지만 틀림없이 세포가 뼈가 죽고 줄어들고 있을 것임은 학씰하다) 이 몸 늙기 전에 찾아내야지~~
'고선' 이라는 건 부채 부쳐서 일으키는 그런 것처럼 부추기는 걸 말하는데요
'절기'라는 건 간절히 꺼린다는 말은 않는 거예요 시비를 부추겨 일으키지 않았느냐?
사람은 밖으로 구하는 마구니가 다 하나씩 있어서 이 싸움을 자꾸 부추겨 일으키고 시비를 자꾸 부추겨 일으켜요. 그런 짓 안했느냐? 전부 그게 생사업이다 이말이죠 기가 막힙니다 어떻게 이걸 다 아는지 이런거를...이 양반도 그전에 다 해봐서 아는가?(웃음) 그건 잘모르겠어요
이게 중생노름에 고대로 나타나는거예요 이게 태보스님 법문인데, 고려말에 서산스님이 딱 뽑아 여기다가 이제 갖다 놓은 거예요. 서산스님이 여기 갖다 놓은 건 다 중요한 말씀이예요 그려니 갖다 논 거예요
화두가 십이시중에, 24시간에 밝고밝고 불매마, 어둡지 아니한가?
사람과 말을 할 때에 화두가 끊어짐은 없느냐?
견문각지할 때에 한 덩어리가 되느냐?
返觀自己하야 捉敗佛祖
반관자기 착패불조
麽아 今生에 決定續佛慧命麽아 起坐便宜時에 還思地
마 금생 결정속불혜명마 기좌편의시 환사지
獄苦麽아 此一報身이 定脫輪廻麽아 當八風境하야 心
옥고마 차일보신 정탈윤회마 당팔풍경 심
不動麽아 此是參禪人의 日用中點檢底道理니 古人云
부동마 차시참선인 일용중점검저도리 고인운
此身不向今生度하면 更待何生度此身이리요 하니라.
차신불향금생도 갱대하생도차신
(오늘 집자 끝, 22년 7월 23일, 22:00)
(22.07.26, 목욜 21:36 퇴근해서, 감자 굵게 채썰어 볶은 반찬 맛있게 먹다. 김원사가 보내준 감자라고 생각된다. 혹은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중요치 않고, 감자 채 볶음반찬이 중요하다. 아내와 사위네는 고촌 쪽 카페에 갔이 가자고 했으나 나는 바둑공부도 하고, 반야심경도 읽어야 하고 무엇보다 호젓하게 홀로, 또 잠이 오면 잠도 자고 싶어서 빠졌다. 로아녀석은 내가 간다고 하니까 싫은 표정과 투정을 몸으로 부린다. 아 구여워라! 12:30 경에, 평소 회사에서라면 잠자는 시간이라서 잠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폰을 보다가 폰이 뚝 침대로 떨어져서 잠을 청했다. 잠깐 삼십분 여 잤던가 싶었을 때 로아가 천사의 몸뚱어릴 하고 하얗게 왔다. 아내가 고촌 가기 전에 데리고 온 것이다. 잠이 깨어 다시 다께미야의 사활공부와 기타 EAEGBE, EBGDAE를 세 군데에서 해 보고 그러다 보니 다시 졸려 잠을 청했다. 잠을 좀 잤나? 14:00쯤에 깨어 화장실 있을 때 아내가 들어오는 초인종소리가 났다.
종범스님의 선가귀감 강의 5-2를 청강하려 하였지만 소파에 앉아 복숭아를 먹고, 양지와 그 오빠의 노래, 93점 그리고 의무로 2년을 떠나 있었다는 강호중의 노래를 듣다. 보니 다시 서재로 돌아와 기타를 치다. 작은배가 있었네 작은 배로는 떠날 수 업네~ 그리고 사랑은 한순간의 꿈이라고 남들은 웃으면서 말을 해도 내 마음... 내 바람은 어케된건가 이십년이 되어가면서 점점 알수 없는 무심풍이 되가고 있어라 남자는 자신을 떠받치는 존재에 의미를 두는구나. 나이 먹을 수록에 뚜렷해지는 어떤 앎이다 그리고 좁다란 산길에 앉아 무얼 그래 생각하는지 도대체 알수가 없네 그 한정선은 부평의 모 공원에서 떠돌이로 살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지 구름이 왜 한곳에 머물지 못하는가? 바람이 불기 때문이지 살금살금 늦은 시간이어서 소리도 낮추고 운지도 낮추어서 부르다가 멈춘다 끊이지 않는 창 밖의 차소리... 조금 전에 티비에서본 달의 유용함의 대두, 그리고 누리호의 8월 22일 미국에서 발사한다는 뉴스
오늘 폐농지가 된 동쪽 벌판을 산책했다. 벌레 먹은 복숭아조차 타인이 눈치보여 스쳐 지나는 손길, 버려진 땅 강제수용의 땅, 황폐화된 포도밭 주인 없는 게 이토록 표나는구나 22/8/26, 23:28 終.
(22/7/29, 금욜 18:50 요 며칠 또 집자가 집중이 안된다. 엊그저께는 윤화백이 귀신얼굴의 영상을 보내와서 개시키라고 농담삼아 욕을 했고, 그 후 잠들기 전까지 불교의 잡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구나 불교의 씨(나무)를 갖고 있다. 그 나무를 어떻게 살지우고 키우는지는 각자에게 달렸다는 대목에서는 감동이 밀려온다. 능엄경에서 읽었던 대목이 생각나기도 한다. 누구나 원석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 원석은 보석으로 다듬지 않고 놔두기만 하면 이윽고는 돌밖에 안 된다. 그런 얘기. 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의 잡학이 과연 공부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이런 철학을 나눌 수 있는 벗이 있다는 것이 고맙다. 이따가 밤에 고창에서 큰손주들이 온다고 하였다. 나는 출근해 있고. 이 미래의 인재들에게 어떤 마음의 씨앗을 심어줄 것인가? 가 고민이다. 내 가장 큰 관심은 분수에 관한 갈촤줌이지만 거개 포기한 상태. 함께 같은 시선으로 놀아주고 마음 위로해주는 것 밖에 더 있을까 한다.
'반관자기' 자기를 돌이켜보아서
'착패불조마' '패'는 허물인데, 불조의 허물을 잡느냐?
'착'자가 의미가 있는데, 제대로 불조를 파악하느냐?
불조를 알아채느냐? 불조에게도 반드시 허물이 있거든요
그 허물은 자기가 견성하지 않으면 알 수 없잖아요?
자기가 돌이켜보아가지고 불조가 어떤 입장에 있는지를 아느냐?
화두를 떠억 타파하면 그 화두를 말한 불조의 허물이 탁! 보여요
왜그러냐? 마지못해서 한 말씀이니까 완전치 않거등요
"나를 누가 낳았습니까?" 엄마가 낳았다 아버지는 뭘 했는가? 그건 커보면 안다
그럼 컸을 때 엄마가 잘못 말했구나 하구설랑 엄마를 치는 거예요~ 근데 사실 그거
잘못말한 거 아니잖아요
엉뚱하게 말한 건 아니지만 제대로 말한 건 아니잖아요
똑같은 거예요 불조를 잡아내느냐 이거에요 불조의 허물을 잡아내는 거면 자기 눈이
밝아진거예요
'차일보신' 한번 받은 몸에 '정탈윤회마' 결정적으로 윤회에서벗어날려구하느냐?
"이 몸 다하기 전에 결정적으로 윤회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몸 죽고나면 뭐가 될런지 모르거든요
한 생각을 못챙겼기 때문에 알 수 없어요 뭐가 될른지.. 업 따라서 이리 끌려가고 저리 끌려가니까
이런 거죠"
(솔직히ㅎ 죽으면 無로 化하고 마는거지 뭐가 남아서 무엇이 어디로 머리채 잡혀 끄달려 간다는 건가? 어떤 곳에서 들은 바로는 두꺼비로 화해서, 두꺼비 부부가 좋아서 따라간다는 그런 허황된 얘기와 비슷한 건가? 이런 부분은 좀 종교적 사기행각의 색채가 짙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섬찟한 주요 문제를 아무 의식 없이 종범스님이 말씀하시는 건 또 무슨 연유인가? 나는 나의 과학적 인식을 기반으로 이런 우스꽝스런 말에 이끌리지는 않는다. 그건 나의 여러 모자람 중에 나름 훌륭한 부분이라고 본다.)
'점검' 은 살펴보는 거다 우리가 흔히 점검 점검 하는데 이게 금방 생각이 안떠올라요 이게
'살펴본다' 이렇게 해석을 했어요 자기를 따악 살펴본다 이거예요 이런 점검이 부족하면
도 닦기 힘들어요(진중하심) 자기 점검부터 따악! 해라. 이 몸뚱이가 어떻게 생긴건지
아주이게 허망하기 짝이 없는 걸 가지고 철석같이 믿는 사견.망견이 있기 때문에 도를 못 닦는 거예요. 구해 봤댔자 생사업이니까..
이몸 금생에 제도하지 아니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서 이 몸을 건지리오
주해
네 가지 은혜란 부모와 나라와 스승과 시주의 은혜이고, 네 가지로 된 더러운 몸이란 아버지의 정수 한 방울과 어머니의 피 한 방울이 물에 젖은 기운이고, 뼈와 살은 땅의 단단한 기운이며, 정기와 피의 한 뭉치가 썩지도 않고 녹아 버리지도 않는 것은 불의 더운 기운이고, 콧구멍이 먼저 뚫려 숨이 통하는 것은 바람의 움직임이다. 아난존자가 말하기를 '정욕이 거칠고 흐려서 더럽고 비린 것이 어울려 뭉쳐진다'라고 한 데서 더러운 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순간순간 썩어간다는 것은 세월이 잠시도 쉬지 않아 얼굴은 저절로 주름살이 잡히고 머리털은 어느새 희어 가니, 옛말에 '지금은 이미 옛 모습 아니네, 옛날에 어찌 지금 같았을까' 한 바와 같이 과연 덧없는 몸이 아닌가! 덧없는 귀신이란 죽이는 것으로써 오락을 삼으므로 정말 순간 순간 무서울 뿐이다. 날숨 들숨이 불기운과 바람 기운이므로 사람의 목숨은 오로지 들이고 내쉬는 숨에 달린 것이다. 여덟가지 바람이란 대체로 마음에 맞는 것과 거스르는 두 가지 환경이고,
(아난은 "육신은 거칠고 탁한 정욕의 기운이 비리고 노린내 나는 더러운 것과 서로 만나
도랑을 이룬 것이다"라고 했으니 이것이 '더러운 육신'이라 부르는 까닭입니다.
'생각 생각마다 노쇠하고 썩어간다'는 것은 머리 위로 흘러가는 세월이 한 순간이라도 머물지 않고
얼굴은 스스로 주름살이 늘어가고 머리털도 스스로 희어진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미 옛날과 같지 않으니 후에는 당연히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이
이 무상無常한 육신입니다.
그러나 무상한 귀신(無常之鬼)인 육신은 그 육신을 죽이는 것으로써 놀이(戱휘)를 삼으니 생각 생각마다 늘 두려운 것입니다.
"내쉰다呼"는 것은 숨을 내보내는 불의 요소이고 "들이쉰다吸"는 것은 숨을 들여보내는 바람의 요소입니다.
인간 수명은 단지 숨이 들고 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여덟바람八風"이라는 것은 인간이 처하는 좋은 환경과 좋지 않은 환경 두 가지의 환경境입니다.)
지옥의 고통이란 인간의 육십겁劫이 지옥의 하루가 되는데, 쇳물이 끓고 숯불이 튀고 칼산과 창숲에 끌려 다니는 고생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기란 마치 바다에 떨어진 바늘을 찾기보다도 어렵기 때문에 불쌍히 여기어 일깨운 것이다.
四恩者(사은자)는 父母君師施主恩也(부모군사시주은야)요
四大醜身者(사대추신자)는 父之精一滴(부지정일적)과
母之血一滴者(모지혈일적자)니 水大之濕也(수대지습야)요
精爲骨血爲皮者(정위골혈위피자)는 地大之堅也(지대지견야)요
精血一塊不腐不爛者(정혈일괴불부불란자)는 火大之暖也(화대지난자)요
鼻孔先成(비공선성)하야 通出入息者(통출입식자)는
風大之動也(풍대지동야)라.
阿難曰(아난왈) 欲氣추濁(욕기추탁)하야 腥조交구(성조교구)라 하니
此所以醜身也(차소이추신야)라.
念念衰朽者(염념쇠후자)는 頭上光陰(두상광음)이
刹那不停(찰나부정)하니 面自皺而髮自白(면자추이발자백)이라
如云(여운)今旣不如昔(금기불여석)이라
後當不如今(후당불여금)이니 此無常之體也(차무상지체야)라
然(연)이나 無常之鬼(무상지귀)가 以殺爲戱(이살위희)하야
實念念可畏也(실염념가외야)라
呼者(호자)는 出息之火也(출식지화야)요
吸者(흡자)는 入息之風也(입식지풍야)라
人命寄托(인명기탁)이 只在出入息也(지재출입식야)라.
찰라찰라에 늙는다고 하는 것은, 머리의 광음이 찰라에도 부정하야
일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이삼십대, 사오십대만 중요시 하지 육칠십대 팔구십대는
모~든 여론조사에서(헛웃음들 터지기 시작함) 결과도 안밝힙니다 그거는
내가 육십댄데, 헛일이에요 이젠(웃음) [나 육십이센데ㅜㅜ 지산 방재실 근무하자나 우씨;;;]
이공삼공사공오공(웃음) 정권도 이사람들이 바꿀 수 있구요, 육공칠공팔공구공은 뭐 이제
할 게 없어요~~ 이 몸을 가지구 뭘 하겠다는 건가
그러니까 이 몸 되기 전에 해야 된다 그래서 '노인불수' 노인은 닦지 못한다
오십 넘어진 몸 가지구 모 할라그러면 안되요, 이게~ 안되는 거라구
스님들두 스님되는 나이를 자꾸 늘리면 안돼 노인이 들어와게지구 뭐하겠다는 건가?
육십 넘어서 정진한다?? 그거 제대로 안돼요
그게 '두상광음'이 "찰나부정'한다 이 말을 잘 새겨야 되요 '광음' 은 세월이거든요
세월이 일 찰라도 머물러 있지 아니해서, 젊을 때 해야 돼.
'면자추이발자백' 얼굴이 스스로 찌그러져요 누가 쭈그려트리는 게 아니고
머리도 스스로 희어진다 이거여요
스님들두 나이들면 흰머리 안보일라구 삭발을 자주하는데, 흰머리가 어디가나??ㅋㅋ
허연 거 나오는 거 싫다 이거지 싫은 들 어찌하겠는가 빨리 견성을 해서 그 생사를 해탈하는 게 중요하지 그머 흰 머리 안보이게 하는 게 중요한게 아니거등요
'금기불여석' 하니 지금도 이미 옛과 같지 아니하니,
뒤에는 마땅히 지금과도 같지 않으리라 세월이 더 지나가버리면 지금과 같지도 않타 이거에요
지나가면 자꾸 이 몸은 늙어가고 죽어가니까. 그런거죠~
'염염'은 찰나찰나 '가외' 두렵다
호흡이란 숨을 내쉬는 것이 날숨이니 불火이며 양(陽)이요
숨을 들이쉬는 것이 들숨이니 바람이며 음이다.
사람 목숨의 살고 죽음이 날숨과 들숨에 있다.
후우~ 밖으로 내뿜는 거죠
사람목숨이 의지하는 것은 오직 내쉬고 들이쉬는 숨에 있느니라
정말 허망한 게 생명이에요 사람의 목숨이 이렇게 허망해요 숨 한 번 못 쉬면 끝나는 거에요
그런데, 그걸 모르고 온갖 생각 다 일으키고 거기다가 별별 생각을 다 가지고
사는 것도, 완전히 참 꿈꾸는 거죠(어딘가 나도 모르는 몸 구석에서 소름이 돋는 걸 온 몸이 확인한다. 더 늙기 전에 바둑의 경계 위로 올라서야 (미혹) 끝나는가? 더 늙기 전에 새 것을 취해야 하는가? 더 늙기 전에 선가귀감을 떼어 道人이 되어야 하는가? 지금보다 점점 더 트미하고 흐릿하고 어지러워갈 것이니 이걸 어찌하나요. 한 소뜸 무언가 휘익~ 내 몸을 날려 저~ 편 피안의 언덕에 도착해야만 하리(나 지금 참 열심히 이 인생에 대하여 참구하고 있구나-,-:; )~ 22/07/29, 금욜 21:45 終.)
(22/07/31, 일욜 10:40 어제 일영계곡에 다녀오다. 여름향기 같은 여름향기를 향유했다. 여름옷과 젖어 드러나는 살의 근육. 젊다고 다 흡족한 건 아냐. 늙은 여인이 아직 간직한 여성을 내게 보냈다. 그 옆에 동생으로 보이는 젊음이 욕구를 질책하는 듯. 늙음은 살짐과 주름과 심드렁한 표정이니. 풍선을 타고 내게로 부딪쳐 온 살에 묻어 온 정욕. 남녀의 시작은 요란은 절대금물이라서. 아아, 평창 그 냇가에서도 어떤 여성이 흥미를 보였었지. 실루엣 여름은 하얀 뭉게구름. 그 위의 자청빛깔 금욕이여
八風者(팔풍자)는 順逆二境也(순역이경야)요
地獄苦者(지옥고자)는 人間六十劫(인간육십겁)이
泥犁一晝夜(니리일주야)니 확湯爐炭(확탄로탄)과
劍樹刀山之苦(검수도산지고)를 口不可形言也(구불가형언야)라 人身難得(인신난득)이 甚於海中之鍼故(심어해중지침고)로
於此(여차)에 愍而警之(민이경지)하노라.
여덟 가지 바람이란 대체로 마음에 맞는 것과 거슬리는 두 가지 경계요,
팔풍은 순풍이 네 가지이니
칭찬(讚)과 기림(譽) 등(칭찬, 명예, 이익, 즐거움)이고
역풍이 네 가지니 나무람(譏)과 헐뜯음(毁) 등(쇠퇴, 비방, 꾸짖음, 괴로움)이니라.
'니리' 는 지옥을 말해요
육도중생의 몸이 있는데, 육도중생의 몸 중에는
사람의 몸이 도 닦는데 가장 중요한 몸이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천상의 몸도 있는데, 거기는 즐거움이 너무 많아서 도 닦기 힘들어요
축생은 괴로움이 너무 많아 가지구 도 닦기 힘들구
인간은 고락이 반반이라 그래서 이 고를 통해서 낙을 알 수 있고
낙을 통해서 고를 알 수 있고, 해서 인간세상에서 도 닦기가 제일 좋아
'인신난득기' 인신을 얻기 어려우니, 바다에서 바늘을 얻는 것보다
'甚' 정도가 지나치다, 깊고 두텁다
사람 몸 받는다는 게 그렇게나 힘들다~
평역
위에 말한 법문은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실 때 차고 더운것은 스스로 알 뿐이므로, 총명이 업의 힘을 막을 수 없고 마른 지혜가 고생 바다의 윤회를 면할 수 없음을 가리킴이다. 각기 살피고 생각하여 저절로 속지 말아야 한다. (고로 총명함으론 업을 다 상대할 수 없고 마른 지혜로도 고통스런 윤회를 피할 수 없습니다. 각자 반드시 생각을 살펴서 스스로 총명과 지혜로 고통을 벗을 수 있다고 자만하지 마십시오.)
上來法語는 如人飮水에 冷暖自知이라, 聰明이 不能敵業이요 乾慧가 未免苦輪이니, 各須察念하야 勿以自謾하라.
[상래법어 여인음수 냉난자지 총명 부능적업 간혜 미면고륜 각수(모름지기수)찰념 물이자만(속일만)
'여인음수 냉난자지' 인생을 살아보면 그~냥 알게 되어 있구요,
또 도를 닦아보면 '이런 마음이 아니면 도를 못 닦는다' 그냥
알게 돼 있다.. 이소리예요
인생 허망한 거예요~ 이십대가 오래가는 게 절대 아녜요,
육십칠십팔구십 되면 여론조사에서 숫자도 안 껴주니깐 있으나마나한 인생이란 소리거든요
그때부턴 '지공노인'이라해가지고 지하철 공짜노인 돼가지구(왁자지껄웃음) 아주 심각해요
지공노인들이 염치가 없어서 춘천으로온양으로 왔다갔다 해가지고ㅋㅋ
'물이자만' 써이는 한다는 말이거든요 '물'자는 말라
자만하지 말라
스스로 오만히 여겨서 인생이 무상한데도 무상하다는 생각지도 않하고 허망한데도
허망하게 생각지도 않는 거, 이건 자만이거든 자만하지 말지니라
(22/7/31일 일욜, 20:25 하루가 마감시간 되다. 허튼 비, 센비가섞이어 오락가락 한다. 태풍 송다. 전 세계가 기후이상을 보이고 있다. 오늘아침뉴스에서는 캔터키 홍수가 보도되었다. 캔터키. 어딘가 낭만적인 컨트리송이 흘러나올 것만 같은 미국 州 이름일진댄 울면서 한 노인이 곡하다. "평생 모은 돈이 한순간에 다 날라가 버렸다. 이제 늙었는데 맨손뿐이다. 그는 아마도 홍수로 모든 재산을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평생 돈 모아 후년을 기약하려 한 노인의 절망섞인 목소리가 안타까워선지 하루해가 지도록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오늘 손주들은 애니메이션 영활 본다고, 8만원을 내라고ㅋ 이서방이 계산했다고 하여. 조금 전에 전화했더니 영화보고, 노래방 가고 지금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고 한다. 로아의 기분좋은 음향이 스피커를 울린다. 파트너 도윤이 목소릴 듣고, 민승이 목소릴 일부러 청해 듣곤 연아에게 구구단 외우고 있니?ㅋㅋ 어젯밤에 연아와 산수 숙제를 했는데 곱하기에서 제법 암산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똑똑한 녀석이어서 무엇보다 고맙고 기껍다. 진중하고. 7월로 그만둔 강ㅈ은의 이미지와 흡사하다. 바둑 한 수 두고 마물하고자 한다. 오늘 終. )
[22/8/14, 어제는 퇴근했으니 쉬었고 오늘은 출근했으나 사실상 쉰다. 내일은 광복절이니, 하긴 어차피 나는 퇴근하여 쉬겠네. 김은 추곡의 텃밭을 매고 왔다고 찌뿌둥하단다. 나는 젊은이 육중한 무게감에 이리비척댔으면서도 혹은 실수로 민망하여 사괄하니 괜찮습니다 라고 위로하는 말이 따뜻했다. 한편으론 너무 나대 타인에게 폐는 끼치지 않았는지 걱정되었고. 기우이리. 화장실 좀 깨끗했으면 좋겠어. 옛날엔 얼음도 쟁여 놓아 냄새도 안나더만. 왜 이 부분은 과거보다 더 후퇴하는 것일까. 우산은 괜히 천원만 낭비한 셈. 영례와 김포 광산김씨 아들네 가서 만삼천원짜리 시켜 먹고 막걸리도 한병 시킨다. 깊이 눌러쓴 모자 마스크 눈만 그 틈새로 보일 뿐이다. 지금 세상은 이렇게 가면 쓰고 산다. ...한참동안을 찾아보지 않은 이 진중한 마음공부의 선원에 오랜만에 들렀다. 한문공부도 하려고 '이이화'의 책도 시청에서 빌리지 않았던가. 남은 생애는 바둑과 한문의 세계와 산과 예술이 될 것이다. 23 차례를 집자해 들어가는 일요일 출근 업무ㅋㅋ
23
말을 배우는 사람들은 말할 때에는 깨친 듯하다가도 실지 경계에 당하게 되면 그만 아득하게 된다. 이른바 말과 행동이 서로 틀린다는 것이다.
원문
學語之輩 說時似悟 對境還迷 所謂言行 相違者也(학어지배 설시사오 대경환미 소위언행 상위자야)
'학어지배' 말씀만 배우는 무리, 배우기만 하고 안 닦아요ㅜ
'설시사어' 말할때에는 깨달은 것 같으나
'대경환미' 경계를 당해서는 역시 또 따라가버려~ 경계를 따라간다는 것이 자기가
자기 물건을 훔치는 거고, 생사업인데 그냥 따라간다는 거야
'소위언행' 이른바 언(말)과 행(행동)이
'상위자야' 서로 어기는 사람들이니라
주해
이것은 위에서 말한 저절로 속는다는 뜻을 맺는 말이다. 말과 행동이 같지 않고야 무슨 소용이 있으랴.
此는 結上自謾之意라 言行이 相違에 虛實을 可辨이니라
'언행'이 상응해야 하는데 '상위' 해버리면 '허'가 되는 것이죠
'언행상위' 되면 허와 실을 가릴 수 있다
경전이나 어록을 배우면 안배운것보다는 도움이 되죠. 그러나
배우고 끝나면 아무 도움이 안된다.
24
생사를 막아 내려면 이 한 생각을 탁 깨뜨려야 비로소 나고 죽음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원문
若欲敵生死인댄 須得這一念子를 爆地一破하야사 方了得生死하리라
약욕적생사 수득저일념자 폭지일파 방료득생사
(본문에 없는 강의임. 원문 강의 전에 한 말씀으로 사료됨;
왜 밥을 먹냐? 배고프니까 먹는거죠
생사를 벗어나는 일이 禪선이다 이거에요
한가하게 해도되고 안해도 되는, 이벤트하듯이 하는 그런 게 아녜요.
생사가 먼 데 있는 게 아니거든요
어제까지 좋던 게 오늘 싫어지고, 괴롭고 즐겁고 싫고 좋고 끊임없이 되풀이되니
하루이틀도 아니고,
생사해탈이 참선이거든요 뒤에 나오는 게 전부 그거예요
생사해탈이 염불이고, 생사해탈이 경 보는 거고, 생사해탈이 주역이다. 계율을 지키는 거다.)
생사를 물리치고자 하면
'수득저일념자' 일념은 '일법' 즉 중생심인데,
만날 일어나고 또 사라지고 이 중생심을
불이 탁 터지는 소리를 나타낸 거예요.
옛날에는 생강을 많이 화로에 구웠어요,
밤 굽다보면 터져서 껍질이 다 벗겨지고 터지잖아요.
'퍽!' 한번 부서져 없어져야 한다
중생심을 부수는 것이 수행이다 이거예요.
수행을 잘못알아가지고 중생심을 키우는 게 수행이 아녜요
중생심을 체계화하고... 그건 잘못하는 거예요.
경상도말로, 동쪽으로 가야하는데 서쪽으로 가는 거에요
천만년을 해도 그건 생사에요. 천만년을 해도 이건 생사예요
'심모'마음줄이 끊어진 곳에 다달아야 생사가 끊어진다
바야흐로(그때서야) 생사를 마침을 얻느니라(생사가 없어지느니라)
'료득' 이라는 건 마칠 료자거든요. 마침을 얻는다.
일념을 퍽 한번 부수어야 그때서야 생사가 없어지느니라
이게 禪선이예요. 간화선. 퍽 하는 한순간의 깨달음을 '퍽'이라는 소리로 형상화해서
비유한거거든요. 한순간이 뭐냐? 그게 오거든요. 항상 스스로 챙기고 찾고 항상 스스로 늘 붙들어서 면면밀밀히 하다보면 그 순간이 와요 근데 기다리면 안 와요. 고냥 고, 다른 건 다 필요없고 '무엇인가?' 고거 뿐예요. 고것만 해야지 거기다 뭘 갖다가 때려붙여도 안되요(이부분 이제야 조금 이해할 것 같다. '중생심'을 체계화 한다는 말이 그말 아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하고 붙이고, 빼고 그런 것이 체계화라는 뜻일 것이다). 항상 그렇게만 해야해요. 그러면 다 되요. 무슨 생각도 그거는 잘못하는 거요. 항상 그렇게만 해야해요. 다른 건 일체 필요없다 이거 아주 중요해요.
주해
"탁!" 하는 것은 새까만 칠통을 깨뜨리는 소리다. 칠통을 깨뜨려야 생사를 끊을 수 있는 것이다.모든 부처님이 因地인지에서 닦아 가신 것이 오로지 이것뿐이다.
爆地는 打破漆桶聲이라. 打破漆桶然後에 生死可敵也이라. 諸佛因地法行者_只此而已이라.
'칠통' 깜깜하게 어둡다 모르는 것이다 어리석음... 을 타파하는 소리니라
타파칠통연후에 생사가적야니라, 생사를 물리칠 수 있는 것이니라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 되기 전 인당의 법으로 닦은 행위,
오직 이것뿐이니라
한 생각을 없애는 것에 있다!
한생각은 중생심. 일념은 일법. 일법은 중생심이다.
중생심이 끊어지지 않으면 그 생사는 안 끊어집니다.
생사는 이거, 저거, 태어났다, 죽는다 이런게 전부 생각이예요
그 생사가 끊어지면 생사가 없어요
생사가 먼 데 있는 게 아니에요
그 생각이 있으므로해서 정말로 나 밖에 뭐가 있는 것 처럼 느껴져요
눈병이 나면 정말로 허공에 꽃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눈병난사람에게 저거 없다고 말해도 안믿어요 왜냐? 분명히 보이니까
생사없다고 그래도 믿을 수가 없잖아요,
분명히 내가 왼쪽가슴이 아파 (죽을지도 모르겠고) 그것 둘 중 하나는 감감무소식이고
하나는 제사치레했다고 핑계대지만 집착 안할 수도 없고 이런데 왜
'생사'가 없다고 그러냐 이거예요
틀림없거든요(햐~~ 말씀대롤쎄)
因地: 공부해서 正角을 완성하는 경지를 果地라 하고, 부처의 씨를 심고 그 싹을 길러가는 수행기간을 인행시라 한다.
칠통: 중생의 마음은 무명에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통 속과 같다는 비유로 쓴 말.
25
그러나 한 생각을 깨친 뒤에라도 반드시 밝은 스승을 찾아가 눈알이 바른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원문
然이나 一念子를 爆地一破然後에도 須訪明師하야 決擇正眼이어다.
이 중생심(일념)을
퍽 하는 한순간에 한번 파한 뒤에
'수방명사'하야 모름지기 밝은 스승을 찾아서
결택, 분명하게 가려내라
주해
이 일은 결코 쉽지 않으니 모름지기 부끄러운 생각을 내야 한다. 도道란 큰 바다와 같아서 들어갈수록 더욱더 깊어가는 것이니, 작은 것을 얻어 가지고 만족하지 말라. 깨친 뒤에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제호과 같은 좋은 맛이 도리어 독약이 될지도 모른다.
(제호: 옛 인도에서 우유를 가지고 만든 제품중에 제호가 그중 품질이 뛰어났다. 히말라야 산에 있는 '비니' 풀만 뜯는 소의 젖으로 만든 것이 더욱 좋은 것이었다고 한다.)
결택정안: 깨치는 정도에도 천층 만층이 있다. 눈 밝은 선지식이라야 잘 잘못을 가리어 바르고 깊게 인도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스승없이 절로 깨친 것을 외도(外道)라고 한다. 설사 혼자 깨쳤더라도 스승을 찾아가 인가를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此事는 極不容易하니, 須生懺愧하야사 始得다. 道如大海하야 轉入轉深하니, 愼勿得少爲足하라. 悟後에 若不見人則하면 醍醐上味가 翻(날번)成毒藥하리이라.
차사 극불용이 수생참괴 시득 도여대해 전입전심
신물득소위족 오후 약불견인측 제호상미 번성독약
'수생참괴' 지금 내가 깨달음을 얻었다는게 우월.자만이 아니라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까지 생사윤회를 하다가, 이제서야 깨달았으니 참 부끄럽다 이거예요
밤새도록 꿈꾸다가 해가 이만큼 떠올라서 꿈에서깨면 부끄럽잖아요
왜냐? 벌써 깨서 일 다 끝낸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고
큰소리 치는 건 아주 이상한 거 잖아요? 참괴심을 내야 옳다.
'제호상미' 최고 위의 맛이 제혼데 도리어 독약이 되느니라
조금 깨달아 놓고 이걸로 만족하면 이거 완전히 독약이 된다. 그래서 선지식을 찾아가서 깨달은 걸 내어놓고 점검을 받으라는 거예요.
오늘날 그런데 "선지식이 없다. 없는데 어떻게 찾아가냐?" 이런 말두 토론에서 있어요
이게 참~ 어리석은 소리예요. 정말 칠통같아. 선지식이 왜 없냐? 선지식을 안 찾으니까 없지
선지식을 딱 찾으면, 자기가 안하무인인데 어떻게 선지식이 있겠어요?
선지식이 없다 이게 자기 자신이 선지식을 다 죽였다는 말이거든요.
선지식이 정말로 있을 거다. 찾으면 있다 이거거든요
자기 안에 '상주선지식'이 있어요. 그게 뭐나면 진실심이라는 거요. 자기가 자기를 이렇게 진실한 마음으로 점검해보면 알아요. 내 깨달음이 어느정도 되는지. 이거 이 진실을 외면하고 모르는 거, 의심나는 건 탁 덮어버리고 아는 건만 휘휙 드러내서 아는소릴 해대면 그건 아닌 거지요.
참구선지식이 있어요.
참구선지식은 뭐냐면 어떤 깨달음이 왔어도 그 깨달음에 만족하지 않고, 작은 거 얻어가지구서는 만족하지 못한다. 그럼 어떻게 되느냐? 깨닫기 전과 같이 '무엇인가?' 계속 참구해야 되요. 그게 선지식이에요. 그러니까 깨닫기 전에도 '무엇인가?' 깨달은 후에도 무엇인가? 계속참구하는 거예요.
천리 멀리를 바라보고자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요?
다시 일촌 누각 위로 올라가라. 이런 말이 에요. 그러니까 이제, 이제 다 됐다! 이건 마구니고 절대 자기가 아는 걸로 만족하지 않고 계속 정진하면 정진 선지식이고 그 진실심을 항상 놓지 않고 진실한 태도를 가지면 그게 진실선지식이거든요.
이, 선지식이 이런거지 자기가 다 죽여놓고 이 세상에 선지식이 한사람도 없어. 내가 가서 물을 사람은 없어(종범스님 웃으심). 싹 다 죽였는데 뭐가 그게 공부가 되며 정진이 뭔 정진이 되냐 이거야.
이따우 토론하는 걸 보면 정말 기도 안차요.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요. 그 소리가~~ 이 공부가 뭔지 꿈에도 모르는 그런 토론이예요.
뭐냐 이게? 깨닫기 전이나 깨달은 후나 쪼끔도 다름없이 정진하면 그게 제일 방편이고 그게 제일 수도다~ 오후공부와 오전공부가 틀리면 이게 안된다 이거에요. 긍까 오후에도 오전처럼 똑같이 정진하면 그게 최고의 선지식이거든요. 그리고 내가 내 마음을 점검하는 게 가장 진실한건데, 이게 어떨 땐 된 듯도 하다가 어떨땐 아니다? 그럼 아니라는 거를 딱 잡아서 되도록 해야지 아닌 건 감추고 되는 것만 드러내면 그거 안되는 거에요, 그거는. 그렇게 해서는 될 일이 없는 거에요.
그러니까, 계속 올라가면 뭔지 볼 수 있다. 육공천리목 갱상일층루 하라. 다시 1층 누각 위로 올라가라! 그러니까 오후공부가 중요하다.
믿음이 가는 분이 있으면 그냥 득달같이 찾아가야죠. 그래서 아니다 그러면 그냥 와야지. 왜 아니냐고 다꾸 달겨들구 그건 선지식 말이 필요없는 거요. 요즘에 환자들이 그렇다고 그래요. 인터넷보고 자기병 진단하고 병원에 가거등요. 환자하고 의사하고 서로 싸워요.
의사가 아니다 이병이다 그러면 따라야해요.
어떤 것이 선지식입니까? 라고 물으니까 묘와구자니라. 묘는 고양이 구는 개요
선지식이 없다! 그따우를 토론이라고 앉아 하구 있어요(ㅋㅋ 아마도 종범스님께서 목격한 일인 듯)
26
옛 어른이 말씀하시길 '다만 자네의 눈 바른 것만 귀하게 여길 따름이지, 자네의 행실은 보려고 하지 않네.' 라고 하였다.
원문
古德이 云, 只貴子眼正이요 不貴汝行履處라 하니라.
'행리(밟을리)처' 행하는 바 내용
그대의 눈 밝은 것만을 귀하게 여김이요
그대의 행리처를 귀하게 여귐이 아니다
'행리처'는 소행처 행하는 바 내용 그게 행리첩니다.
어떤 행동을 지금 하고 있나?
깨달은 바른 눈만 귀하게 여긴 거지 깨달은 후에 몸가짐을 잘 하는 일은
따로 있다 이거예요.
눈이 밝다고 다 소행처가 밝은 것이 아니거든요
서산스님은 행리처와 깨달아 얻은 세계를 다 중요시 여기는 성품이예요
행리처는 깨달은 후에 다시 보자 이거예요. 그거는 동일한 게 아니거든요+
+
주해
옛날 위산스님의 물음에 대해 앙산이 대답하기를 "『열반경』 40권이 모두 마군의 말입니다" 하였으니, 이것이 앙산의 바른 눈이다. 이번에는 앙산이 행실에 대하여 묻자 위산스님은 "자네의 눈 바른 것만 귀하게 여길 뿐이지, 자네의 행실은 보려고 하지 않네." 라고 했다. 바른 눈을 뜬 뒤에 생실을 말하게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수행을 하려면 먼저 깨쳐야 한다.
昔 仰山이 答潙山問云하되 涅槃經四十卷이 總是魔說하니 此가 仰山之正眼也니라 仰山이 又問行履處하자 潙山答曰하되 只貴子眼正 云云했으니 此所以先開正眼而後 說行履也로 故 云하되 若欲修行하면 先須頓悟니라
석 앙산 답위산문운 열반경사십권 총시마설 차 앙산지정안야 앙산 우문행리처 위산 답왈 지귀자안정 운운 차소이선개정안이후 설행리야 고 운 약욕수행 선수돈오
'정안正眼' 이 있고, '행리行履(밟을리)' 가 있는 거예요.
정안은 얻었는데 행리는 아직 안된다? 그래서 돈오점수를 해야 한다 이거요
사람의 근기에 따라서 돈오점수가 있고, 돈오돈수인 사람도 있는 겁니다.
27
바라건대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깊이 믿어, 스스로 굽히지도 말고 높이지도 말아야 한다.
願諸道者는 深信自心하야 不自屈不自高니라.
원제도자 심신자심 부자굴부자고
주해
이 마음이 평등하여 본래 범부와 성인이 따로 없다. 이치는 그렇치만 사람에게는 어두운 이와 깨친 이가 있고, 범부와 성인이 있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문득 참 내가 부처와 조금도 다름이 없음을 깨치는 것은 이른바 "단박깨침"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굽히지 말 것이니 저 "본래 아무것도 없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깨친 뒤에 익힌 버릇을 끊어 가면서 범부를 고쳐 성인이 되는 것은 이른바 "오랜 닦음"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높이지도 말 것이니 저 "부지런히 떨고 닦으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굽히는 것은 교를 배우는 이의 병통이고 높이는 것은 참선하는 이의 병통이다. 교를 배우는 이들은 참선 문 안에 깨쳐 들어가는데에 깊이 걸려 참과 거짓을 따로 국집해 가지고 관행을 닦지 않고 남의 보배만 세게 되므로 스스로 뒷걸음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참선하는 이는 교문에 닦고 끊어가는 좋은 길이 있음을 믿지 않고, 물든 마음과 익힌 버릇이 일어날지라도 부끄러운 줄 모르며, 공부의 정도가 유치하면서도 법에 대한 거만한 생각이 많기 때문에 그 말하는 품이 무턱대고 교만한 것이다. 그러므로 옳게 배워 마음을 닦은 사람은 굽히지도 않고 높이지도 않는 것이다.
此心이 平等하야 本無凡聖이라. 然이나 約人하야 有迷悟凡聖也이라, 因師激發하야 忽悟眞我가 與佛無殊者는 頓也니, 此는 所以不自屈이라. 如云, 本來無一物也라 因悟斷習하야 轉凡成聖者는 漸也이라, 此는 所以不自高이라. 如云 時時勤拂拭也라
차심이 평등하야 본무범성이라. 연이나 약인하야 유미오범성야라.
인사격발하야 홀오진아가 여불무수자는 돈야니 차는 소이불자굴이라. 여운본래부일물야라.
인오단습하야 전범성성자는 점야라. 차는 소이불자고라 여운 시시근불식야라.
(차심이 평등하여 본래 범성이 없느니라.
이게 평등이죠, 그러나
사람을 일거해보면 미오범생이 있나니라.
스승의 격발로 일으킴을 인해서 홀연히 깨닫는다
여불무수자는 부처님과 더불어 다름이 없음을 홀연히 깨닫는 것은 돈이니
이것은 소이 굽히지 아니하는 까닭이니라
'소이'다 이말이여
'여운' 이르되 본래무일물, 한 물건도 없다.
인어단습, 깨달음으로 인해 습기를 끊어서
범부를 점점 닦아서 성인이 되는 것은 '점야'니
이것은 스스로 높이지 아니하는 까닭이니
시시때때로 털고 닦는다고 했느니라.)
屈者는 敎學者病也요, 高者는 禪學者病也이라. 敎學者는 不信禪門에 有悟人之秘訣하고 深滯權敎하야,別執眞妄하야 不修觀行하고 數他珍寶故로 自生退屈也요. 禪學者는 不信敎門에 有修斷之正路하고 染習이 雖起나 不生慙愧하고, 果級이 雖初나 多有法慢故로 發言이 過高也이라. 是故로 得意修心者는 不自屈不自高也니라.
굴자는 교학자병야요 고자는 선학자병야라.
교학자는 불신선문에 유오인지비결하고 심체권고하야
별집진망하야 불수관행하고 수타진보고로 자생퇴굴야요.
(굴이라는 것은 교학자의 병이요
고라고 하는 것은 선학자의 병이니라
"이게 서산스님의 법문이예요."
흔히 듣는 "우리같은 중생이~" 이거 굴병이에요
누가 중생이라고 했나, 지가 중생이라고 한 거지
아, 이거 마음이 청정한데 그 뭐~~ 이게 고병이라 이거요
교학자는 뭘 믿지 않는가. 선문에 깨달아들어가는 은밀한 길, 결 있음을 안믿어요
깊이 방편의 가르침에 걸려서, 진과 망이 다르다고 집착해서 관찰을 행하는 그런 수행을 닦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의 진보를 세는 고로
스스로 퇴굴심을 내느니라
선학자는 교문의 닦아서 끊는 바른길이 있음을 불신하고
그 물든 생사습관이 비록 일어나나
참괴심을 내지 않고
수행의 결과와 급수가 비록 처음 단계에 있지만은
대부분 법의 오만함에 있으므로
말을 하는 것이 지나치고 높느니라
"이게 실제 형편없는데 다된 것처럼 하는 거, 선학자의 병이다 이거에요.
만날 경전의 말만 해가지고 다른 사람의 보배만 세고 있고
난 안된다 라고 보는 게 교학자의 병이다"
그러니까 돈오점수를 해야 한다 이게 서산스님의 법문이에요.
고로 돈오를 해서 마음을 닦는 자는
스스로 굽히지도 않고 높이지도 아니해야 하느니라)
평역
스스로 굽히지도 말고 높이지도 말라는 것은, 첫 마음낼 때에 벌써 씨 안에 열매가 다 갖추어 있는 것을 대강 들어, 한 자리뿐인 것을 믿어야 하겠지만, 보살의 열매가 씨의 근원에 사무친 것을 널리 들어, 말하자면 55위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不自屈不自高者는 略擧初心의 因該果海則雖信之一位也나, 廣擧菩薩의 果徹因源則五十五位也니라.
평왈, 불자굴불자고자는
약거초심 인해과해,
초심에서 처음 발심할 때, 그때가 因인데, 과해, 결과의 바다를 다 포함하고 있어요.
이게 인제 인과가 원융한거예요. 이거는 이제 화엄이지마는
인해과해라, 인에서 과해를 다 포함하고 있다.
이걸 간략히 들면, 즉 수신지일위 이나, 비록 신심의 한 지위이나
광거보살 과철인원 하면 즉 최상급과를 떠억 얻었다.. 얻어가지고 보니까
인원에 또 사무친다. 처음에 출발했던 때와 딱 맞물려 있다 이거예요
인해과해요 과철인원이라 결과에서 보면 바로 결과가 원인을 떠나지 않고
원인에서 보면 원인이 결과를 떠나질 않는다. 이게 원융이거든요 화엄인데
딱 깨닫는게 바로 성불이고, 계속 성불하다보면 처음 깨달은 입장에서
한걸음도 안 벗어났다 이걸 여기서 예기한 거에요.
本來無一物: 노행자 곧 육조의 글이다.
時時勤拂(떨칠불)拭(닦을식): 神秀의 말
권교: 부처님이 말씀하신 깊은 진리는 보통 상식인으로서는 대번에 알아듣기 어려움으로 일시적인 방편으로 처음에는 옅은 이치의 차별법을 가르치다가, 나중에는 참된 실상의 둘 아닌 법(불이법) 을 가르쳤다.
觀行: 觀은 마음의 눈으로 관찰하여 본다는 뜻이므로 이치를 생각하고 안으로 비추어보는 것이고, 행은 실지로 행동한다는 뜻이다. 교학을 공부하는 이는 눈과 입으로만 건성으로 경전을 읽지 말고 마음으로 돌이켜 비추어 보는 回光反照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心不反照 看經無益라고 청매선사도 말한 바 있다.
(2022/08/28, 일요일. 하루 하루 가을로 가는 것이 느껴진다. 엊그제는 여름 내 차 내부에 숨은 모기한마리... 가 퇴근할 때 어디에선가 기어나와서 차창 쪽에 비실거리며 앉아 있길레 작업복 상의로 때려잡았다. 그때 나는 모기 침이 비뚤어졌다고 청우단톡에 단문을 올렸었다ㅋㅋ 그리고 그제 아침 옥상에 올라갔을때는 추위까지 느꼈다. 정말 추운 그런 추위 말이다. 오늘은 날씨가 참 깨끗하여 옥상에서 용문산까지 보였다. 하늘은 무던히도 푸르고 구름은 더더욱 하얗다. 인천상지초교 교정에서 천사의나팔꽃 옆에서 저녁 빵을 먹었다. 오랜만에 26 일부와 27을 집자하였고 청담대선사 고승열전을 탐청했다. 행복하다고 느낀 生의 순간이 오늘 낯이라 할 것이라)
(2022/08/29, 월 06:45. 비 한방울 재활용장에 떨어지는 그런 아침, 어제에 이어 집자를 시작한다. 취침자리에 9388.. 어제뭐했어정말드물게 푸르른어제나는혼자였다 다케미야바둑사활1小뜸,바스트업영상과대송이버섯채취,낮잠으로오후네시까지,아내와점보배구장인근공놀이후감동의감자옹심이,다음날아침운우지락아들수술예약이유로혼자있겠다는거날못믿는거야쌩뚱맞은이전화가못믿게했네하산할때가됐다달라져버린붙잡고여전할수는없는게남자어젠미안해서이황과두향의끝부분을봐그건오래하는게아님이증명되었지그럼다른걸찾겠다는거지그럼산에도안갈거야난있고넌없자나그게이유라면물러날수있어화나서벌컥이지말고순연하게받아들여
因該(갖출해)果海 果徹(뚫을철)因源: 청량국사(738~839)의 「화엄경소」에 나오는 말인데, 널리 무르녹고 서로 통하여 걸림없는 이치로 본다면, 처음 발심할 때에 벌써 정각正覺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씨를 심기도 전에 바다와 같은 부처의 넓고 큰 공덕 열매가 그 씨 안에 다 갖추어진 것이다. 따라서 부처의 자리(佛位) 하나밖에 말할 것이 없지만 차별문으로 볼 때에는 보살이 무량겁에 난행고행難行苦行으로 五五위(位)의 과정을 낱낱이 밟아 올라가 비로소 성불하게 되는 것이다.
五十五位: 『능엄경』에 있는 대로 하면, 처음 乾(건을 간으로 읽는다)慧地를 지나 열 가지 믿음 자리[十信], 열 가지 머무는 자리[十住], 열 가지 나아가는 자리[十行], 열 가지 돌이키는 자리[十廻向], 네 가지 더 힘쓰는 자리[四加行], 열 가지 땅[十地]을 낱낱이 거쳐 올라가야 성불하게 된다고 했다.
28
마음을 모르고 도를 닦는다는 것은 무명만을 도와줄뿐이다.
원문
迷心修道하면 但助無明이니라
미심수도 단(다만단)조무명
주해
철저히 깨치지 못했다면 어찌 참되게 닦을 수 있으랴. 깨친 것과 닦는 것은 마치 기름과 등불이 서로 따르고(의지하여), 눈과 발이 서로 돕는 것과 같다(눈이있어야 발이 움직이고).
悟若未徹(뚫을철) 修豈(어찌기, 즐길개)稱眞哉(어조사재)리요. 悟修之義는 如膏(기름고)明이 相賴(의지할뢰)하야 目足이 相資니라.
29
수행의 알맹이는 범부의 생각(망상.마구니)을 (다하게)떨어지게 할 뿐이지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있을 수 없다.
修行之要는 但盡凡情이언정 別無聖解니라.
주해
병이 없어져 약조차 쓰지 않는다면 앓기 전 그 사람이 아니겠는가.
病盡藥除(덜제) 하면 還是本人 이니라.
단진범정: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서 8만4천 번뇌를 덜쳐 버린 뒤 따로 깨달음을 구하지 않았다. 왜냐? 번뇌가다한 그 경지가 바로 깨달음의 경지였기 때문이다. [원각경]에서 "헛것인 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헛것을 여의면 바로 깨달음이다[知幻(변할환)則離, 離幻則覺]
30
중생의 마음을 버릴 것 없이 다만 제 성품을 더럽히지 말라. 바른 법을 찾는 것이 곧 바르지 못한 일이다.
원문
不用捨(버릴사)衆生心이요 但莫(없을막)染汚自生하라. 求正法이 是邪니라.
求正法示邪: 무엇인가를 구함이 있으면 잘못이라는 이 말은, 한 생각 일으킬 때 벌써 어긋나게 된다는 뜻[本分上]
구하는 마음이 다 邪 에요. 번뇌망상을 없애는 게 수도다. 없앨려면 어케해야나.
번뇌망상을 안 일이키는 거다. 안일으키는 게 무어요? 무엇인가! 듣는 게 이게 무엇인가!
글씨 쓰는 게 이게 무엇인가! 그럼 뭐 번뇌망상이 어딜 일어나요. 절대일어날 수가 없거든.
주해
버리고 찾음이 다 더럽히는 일이다.
捨者求者가 皆是染汚也라.
뭘 버리는 것도 邪요, 뭘 구하는 것도 邪다..
31
번뇌를 끊는 것은 이승(이乘)이고,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큰 열반이니라.
원문
斷煩(괴로워할번)腦가 名二乘이요 煩腦不生이 名大涅(진흙열)槃(쟁반반)이니라.
주해
끊는 것은 하는 것(能)과 되는 바(所)가 벌어지는데, 일어나지 않는 것은 됨도 없다.
斷者는 能所也요 不生者는 無能所也니라.
단자는 능소야요
능소; 능이다 소다, 나다 너다, 주관이다 객관이다.
불생자는 무능소야니라
내지 않는다라는건
능소가 없는 것이니라
이승: 대승법을 一乘이라 부르고 소승법을 이승이라 한다. 즉 聲聞과 緣覺을 가리킨다. 대승을 전혀 믿지 않는 이승을 우법이승[愚法二乘], 생각을 돌이켜 대승으로 나아가는 이승을 불우법이승[不愚法二乘]이라 한다.
열반: 범어로 니르바나nirvana, 음을 따라 니원. 열반나 라고도 쓰며, 뜻으로 옮기어 멸滅. 적멸寂滅. 멸도度. 원적圓寂.안락安樂이라 한다. 번뇌와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청정한 경지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번뇌의 불꽃이 꺼져버린 안온한 상태를 열반이라고 한다. 소승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하고, 대승법으로는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달으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열반의 즐거움이 된다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할 것 없이 무엇이나 다 열반이며 어느 때나 늘 열반인 것이다. 이것이 큰 열반이다. 그러니까 열반이 지닌 본뜻대로 한다면 성도成道가 곧 열반인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생애에서는 육신을 버리고 돌아가신 것을 열반이라한다. 흔히 스님들의 죽음을 열반이라고 부르는 것은 열반의 본뜻과는 상관없이, 죽음 자체를 높이 평가해 주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32
모름지기 마음속을 비우고 스스로 비추어 보아, 한 생각 인연 따라 일어나는 것이 사실은 일어남이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원문
須(모름지기수)虛(빌허)攘(물리칠양)自照하야 信一念緣起無生이어다.
주해
이것은 성품이 일어나는 것만을 밝힌 것이다.
此(이곳,여기 차)는 單明性起라.
一念緣起: 모든 존재와 현상은 인연에 의해 있게 되고 일어난다는 것이 불교의 기초적인 교리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마음이란 실체가 없기 때문에 자성自性도 없고 또한 일어났다 멸했다 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공(空)의 논리다.
33
죽이고 도둑질하고 음행하고 거짓말하는 것이 다 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자세히 살펴보라. 그 일어나는 곳이 비어 없는데 무엇을 다시 끊을 것인가.
諦觀殺盜淫妄([살필체,울제]제관살도음망) 從一心上起(종일심상기)
當處便(편할편,똥오줌변)寂(당처변적)何須更斷(하수갱단)
당처; 옛날에는 '그곳' 이라고 했어요.
당처가 '살도음망'을 이 여기선 '그곳'이죠
당처변적; 그곳을 문득 고요함을 제관한다 이거요, 자세히 보면
어찌 모름지기 다시 끊으리오.
'살도음망'이 뭐냐? 이게 바로 일신상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라는 것을 자세히 보면
끊을려구 애쓸일이 아니다 이거죠. 그게 본체가 없는 것을 자세히 보는 게 중요하다, 이게 깨달음이에요. 깨달음이라는 것은 모든 게 체가 없는 것을 자세히 보는거다 이 말이요. 무체를 철저히 보는 거 그게 깨달음이예요. 그럼 그것만 가지고 되냐? 습기가 붙어서, 습기가 다~ 빠질때까지 잘 닦는 거, 그게 점수다 이거에요. 알기는 아는데, 눈은 환하게 밝은데 이 몸은 말이요, 온갖 그 나쁜버릇이 안빠졌다 이거거든요(이 대목에 오니까 무슨 말인지 처연하게 느낌이 와. 하릴없는 S만 해두 그래. 그거 값어치없는행위인데 머할라구 그 구멍에다가 힘을 쓰나~ 그렇게 아무리 다짐하고 표창을 박아놔두 막상 마음이 虛해지면 그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 자신과의 약속이 아무 액면도 없어지고 말아 맥도없이 무너져버리자나. 환히 알아. 너무나 의미 없는 것도 잘 알아. 그래서 안하겠다고 작심해놓고도 작심삼일, 반복하는 걸 보게 돼. 이런 무료무미하게 인생 살아서 모하나. 쾌락이라두 즐기며 살아야지).
주해
여기에서는 성품과 형상을 함께 밝힌 것이다. 경에 말씀하기를 "무명을 아주 끊는다는 것은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 것"이라 하였고 "생각이 일어나면 곧 깨달으라" 하였다.
此는 雙明性相하니라. 經云, 不起一念이 名爲永斷無明이요 又云, 念起卽覺이라 하니라.
'염기즉각' 기(일어나는 게)가 뭐요? 번뇌망상이지. 탐진치.
곧 깨달아라. 부질없이 중생심이 일어났구나! 그런 줄 알면?? 사라져뻐려요. 그니까
안끌려가는 거죠. 깨달으면 없어져버려. 딸려간다는 건 뭐냐. 무슨 생각이 일어나두 거기에 생각을 두지 않는 거예요. 중생심에 생각을 안두는 게 그게 무념공부에요.
중생은 과거 기억이 전부 좋지 않거든요. 과거에 좋은 일도 많았는데 인간의 이 기억구조가 좋은 일은 다 잊어 먹고 나쁜일만 우루루루하게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과거 생각은 무조건 안좋은 거에요. 나쁜기억이 좋은 것 보다 다섯배가 더 강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 과거 기억은 안좋은 것이 그냥 남아 있어요. 고생한 거, 얻어 맞은 거, 손해 본 거, 기분 나쁜 거, 전부 이런거예요. 좋았던거, 나를 잘 도와준 거 이런 건 하나두 기억이 없어요. 힘들었던 게 기억에 남고 좋았던 건 기억이 하나두 없어요. 그러니까 어떤 생각이 일어나도 생각에 마음을 두지 마라, 그게 무념이에요. 무엇이 보이거나, 무엇이 들리거나 그 보이고 들리는 것에 마음을 두지 마라, 그게 무상이예요. 마음 안 두면 끝나는 거에요~(확신에 찬 강한 음성) 그래서 무상.무념이 되야 한다는 거요. 그래서 인생이 허망하다는 걸 알고 일념으로 참구해 들어가면 며칠 안가서 금방 깨닫는다~~ 그렇게 안 해서 못 깨닫지. 그거예요.
(22년9월9일 20:45, 추석연휴 첫째날. 오랜만에 집자했다. 깨달음과 삶이 과연 연결성이 있는가,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결국 이 공부는 道공부이리라.
이성이가 출근할 때 전활 걸어 "한판 둬요." 했고 여덟시경부터 대국. 첫째판은 이성의 우주류에 말려 그야말로 완전 사망인 것을 운 좋게 살고 또 잡기까지 해서 한방(천원)뿐으로 졌고, 두번째판에서 그만 만방으로 지고 말아 만원을 내줘야 했다. 아내가 원당에서 고스톱쳐서 따서 준 돈 2만오천원 중에 만원을 날렸다. 어제 컴 랜선을 바꾸고, 그리하여 오랜만에 컴의 야동으로 인해서 근기가 약해진 탓을 했으나 본관은 내 삶에 이익이고 활력임을 믿는다. 아내와 두 딸 전 부치고 커피 사라고사라고. 사위가 로아도 있다믄섬ㅋㅋ 낼 옥계리 성묘. 흥규는 처갓집 갔다. 요 며칠 태풍 힌남노로 쌩고생한 후 평소에 마음먹었었고, 삼개월 전에 강ㅈ은 과장과 약조했던 대로 15일 경에 사직서 제출한다.)
(22/9/10 연휴 둘쨋날, 19:30
22년 성묘는 형내외와 가을 들판을 가로질러 북으로 갔다가 내려왔다. 인천 출발할 때 구름 껴, 오늘 해는 안나겠구나! 그랬는데 옥계리 하늘은 자청빛으로 빛났네. 산성막걸리 신청이 불과 두시간 오차로 불접수되어 옥계상회를 들렀고, 범상치 않은 중년상인 가게 주인은 컵을 몇 개 서비스 줬다. 성열.이서방내외와 그들의 두 아들(막내는 너무 뚱뚱하더라)을 만났고, 큰손주를 위해서 언젠가는 용돈을 준비해가야한다. 그들은 차례 후 식사중이었는데, 언덕길을 내려와서 제례품을 받았다. 차례상에 잔을 올리다가 할머니 잔이 빠진 것ㅜㅜ 할머니께 용서를 빌다. 차례 후 자작나무 숲에서 사돈네가 준 홍어에 막걸리 한자. 형수는 앉은뱅이 되셨나, 껴안고 일으켜주었으니. 벌써 이렇게 몸이 늙어버린 것인가. 약수터에서 다래 줏어 먹고, 삼화리 길 가의 복숭아도 따고. 간패고개 넘어갔다가 넘어왔고, 늘목리 명칭에 고갤 끄덕이다.)
34
환상인 줄 알면 곧 여윈 것이라 더 방편 지을 것이 없고 환상을 여의면 곧 깨친 것이라 또한 닦아 갈 것도 없다.
원문
知幻卽離라 不作方便(편할편) 이며 離幻卽覺이라 亦無漸(점점)次니라.
'知'
탐.진.치나 색성향미촉법이 다 幻이예요.
주해
마음은 요술장이[幻師] 이다. 몸은 환상의 성(城)이고, 세계는 환상의 옷이며, 이름과 형상은 환상의 밥이다. 그 뿐 아니라 마음을 내고 생각을 일으키는 것, 거짓이라 참이라 하는 어느것 하나 환상 아닌 것이 없다. 시작도 없는 아득한 환상 같은 무명이 다 본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환상은 실체가 없는 허공의 꽃과 같으므로 환상이 없어지면 그 자리가 곧 부동처다. 꿈에 병이 나서 의사를 찾던 사람이 잠을 깨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듯, 모든 것이 환상인 줄 아는 사람도 또한 그러리라.
心爲幻師也(심위환사야)요, 身爲幻城也(신위환성야)라. 世界는 幻衣也(세계환의야)요 , 名相은 幻食也(명상환식야)니
至於起心動念(지어기심동념), 言妄言眞(언망언진), 無非幻也(무비환야)又無始幻無明(우무시환무명)
皆從覺心生(개종각심생)이라
幻幻이 如空華(환환여공화)하니, 幻滅하면 名不動(환멸명부동)이라.
故로 夢창(부스럼)瘡求義者가 寤(잠깰오)來에 無方便하니 知幻者도 亦如是니라.
환상幻像: 근본 무명(根本無明)이 언제 일어났는지 그 시각을 알길 없으므로 본래부터[종본이래] 라 하고, 시작도 없는 無始 이라고도 한다. 무명이 일어나는 곳도 없고 그 실체도 없으므로 환상 같다 하고, 눈이 어릿거려 허공이 서물거리는 허공꽃 같다고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실체가 없는 무명에서 나온 온갖 것이 또한 모두 환상이고 공화空華인 것이다.
부동지不動地: 마음 바탕心地이 본래 깨끗한 것을 깨쳐서, 한없이 밝고 뚜렷이 고요한 곳에 머물러 한 생각도 일어남이 없고, 온갖 주체와 대상이 끊어진 경지를 부동지라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상相이 없는 지혜가 끊임없이 빛을 발해 어떠한 번뇌에도 움직이지 않는 경지이다.
(21:00, 집자 끝. 어제 성묘하고 오면서 형내외 내려드리고, 양주휴게소를 패스해서 왔는데 그게 무리였었나부다. 좀 쉬고 올껄. 차들이 더 밀릴 게 걱정되어 패스했었지. 잡채밥을 먹은 저녁부터 배가 조금 아팠다. 아무리 시간을 흘리며 노력해도 아픔은 지속되었고, 못 참을 정도도 아닌. 아내도 몇일 일을 못본탓에 힘들어하고 있었지. 아령하고, 스쿼트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거의 열두시 되어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나니 또 쏠쏠하고 아프다. 출근해서 A존 옥상에서 턱걸이를 하고 났어도 배가 쏠쏠 아픈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주 두개 추석 전일 퇴근하면서 땄다. 오늘 오전 내내 자다가 컴 보다가 하면서 오후까지 보냈다. 저녁식사 때 작전동 세무서 맞은 편 대명양국에서 약을 사 샀다. 약을 먹고 집에 가서 집밥을 먹고 왔다. "당신 오늘 2만원 벌었네." 아내도 오후 서너시에 전화를 해서 변비 끝을 외쳤다.)
(9월13일, 연휴 끝. 06:44 초딩동창 ㅂ ㅅ에게서 전화, 이번 동문회 때 사진 쫌 찍어줘. 수고롭지 않고 쉬고싶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잘받아들였구나 생각든다. 고향에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 돌아온 탕자이거나 죽거나 아니면 고향을 위해 무언가를 한 사람에 한정된다. 그로 인하여 카메라에 대해 더 탐구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넹
35
중생이 나는 것 없는 가운데서 망령되게 생사와 열반을 봄이 마치 허공에서 꽃이 서물거리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원문
衆生이 於無生中에 妄見生死 (-출근해야 해서 終 )
22/9/14, 수요일 10:33 마석再行, 15:30 間石五 to 만수maket around.
衆生이 於無生中에 妄見生死涅(개흙열)槃(소반반)이 如見空花起滅이니라.
주해
성품에는 본래 나는(태어나는) 것이 없으므로 생사와 열반이 없고 허공에도 본래부터 아무 것도 없으므로 서물거릴(실체가 어른거리는것) 것이 없다. 났다 죽었다 하는 줄로 아는 것은 허공꽃이 일어나는 것을 보는 것과 같고, 열반이 있는 줄로 아는 것은 허공꽃이 스러지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일어나도 일어남이 없는 것이므로 이 두 가지 견해에 대해서는 더 따질 것이 없다. 그러므로 「사익경」에 말하기를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심은 중생을 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생사와 열반의 두 가지 견해를 건지기 위해서다" 라고 하였다.
性本無生故로 無生涅也요, 空本無花故로 無起滅也이라,
見生死者는 如見空花起也요, 見涅槃者는 如見空花滅也니라.
然이나 起本無起요, 滅本無滅이라.
於此二見에 不用窮詰(물을힐)이니, 是故로 思益經에 云,
諸佛出世가 非爲度衆生이요,
只爲度生死涅槃二見耳이라’하니라.
'비위도생사열반이견이' 다만 생사와 열반의 두 가지 견해를 없애기 위한 까닭이라.
생사견 열반견을 없애기 위해서 세상에 출현했지 생사를, 즉 중생을 제도하려고
세상에 출현한 게 아니다. 이게 이게 뭔 얘기냐면 생사견해일 뿐이라는 거예요. 생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사견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생사견을 없애면 생사는 없는 거죠.
空花가 있는 것이 아니라 눈병이 있을 뿐이다.
무슨 소린지~ㅎ 정말 맞는 소린지 안맞는 소린지......맞는 소릴 것 같으면 견성을 해야 할 것이고
안 맞는 소릴 것 같으면 반대로 대꾸해야할 것인데, 이건 뭐 이게 참~ 이게 만날 들어도
안될것 같으면, 이게 왜 이렇냐고 반대를 해야 할 것인데,
아니면 그냥 믿고 그냥 여기서 깨달음을 얻던지.
신심이 확실하면 의심이 들 수 밖에 없어요. 신심이 없으면 의심이 안되요(이미 오래 전 死者가 된 차동엽 신부의 주장, "불교는 인간의 근원에 대하여 아무 관심이 없다." 에 내가 따지고 든 게 떠오른다.)
아, 이게 이렇다. 근데 나는 왜 모르는가. 안믿으니까 의심이 안생기는 거예요.
의심이 그냥 생기는 게 아닙니다. 확실히 믿어야 의심이 생겨요.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니고,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래되가지곤(~ㅜㅜ) 아 그냥 들을 뿐인거죠
思益經: 동쪽 일월광불국에서 온 사익 범천이 부처님과 문수보살.망명보살 같은 이들과 문답한 형식으로 되었는데, 모든 법이 비어서 고요한 까닭을 밝혔다.
36
보살이 중생을 건져 열반에 들게 했다 할지라도 사실은 열반을 얻는 중생이 없는 것이다.
주해
菩薩이 度衆生入滅度나 又實無衆生이 得滅度니라.
'입멸도' 열반에 들게 하나
보살은 오로지 중생에 대한 생각뿐이다(이 부분은 조금 생경해서 부자연스럽다. 왜 보살은 본인의 성불에만 전념하지 못하고 중생만 생각할까. 중생을 성불시켜주면 그 중생이 성불하는 것인가? 절대 성불할 수 없을 것이다). 생각의 바탕이 빈 것임을 알아내는 것이 곧 중생을 건지는 일이다. 생각이 이미 비어 버리고 그 마음이 고요하다면 건질 중생이 어디 있겠는가.
이상은 믿음과 깨침을 말한 것이다.
菩薩은 只以念念으로 爲衆生也니, 了念體空者가 度衆生也이라,
念旣空寂者인댄 實無衆生得滅度也니라.
此上은 論信解하니라.
실무중생득멸도: 금강경에 나오는 말. 보살이 한량없이 많은 중생을 구제했는데도 사실은 구제받은 중생이 없다는 이 말은, 보살은 자기가 한 일에 마음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차별이 없는 것이라면, 누가 구제를 하고 누가 구제를 받을 것인가.
37
이치는 단박 깨칠 수 있다 하더라도 버릇은 한꺼번에 가시어지지 않는다.
원문
理雖(비록수)頓(조아릴돈)悟나 事非頓除(덜제)
깨달은 거 하고 닦는 거 하고 문제가 생긴다고 항상 예기합니다.
훤하게 깨달았는데, 삶의 현장에서는 막힌다.
능엄경에 있는 말씀, 참 유명해요.
깨달은 지혜로는 아무 걸릴 게 없는데, 사물에 부딪히면 걸려요. 걸린다는 예기는 구하는 습관이 남았다는 얘기예요.
이치로는 구할 게 없다는 걸 알아요. 그런데 생활로 돌아가면 구하는 습관이 나와요.
구하는 습관이 오래 몸에 배어서 구하는 버릇을 좀처럼 놓지 못합니다.
마구닌데, 모든 고통이 구하는 데서 오는 거거든요.
구해도 나에게 고통밖에 없다, 알아요. 모든 고통이 구하는데서 왔지,
事라는 게 습관이고 업장이요,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 등에 부딪쳤을 때 틀린다 하면
습관은 몰록(정확한 뜻을 모름) 제거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이치는 비록 금빵 깨달으나 사물에는 금방 제거되는 것이 아니니라
몰록: 돈오를 예전에는 '몰록 깨닫다' 라고 풀었는데, 요즘은 '단박에 깨닫다'라고 풀이하기도한다.
여기서 돈頓이라는 글자를 '몰록'이라고 하는데 '갑자기' '단박에' 이런 뜻과 비슷하다.
'갑자기'라는 수식어는 관찰이 가능한 외부의 사건이고, '몰록'은 사람의 오감으로는 관찰이 불가능한
내면의 사건을 가리킨다.
주해
문수보살은 천진天眞에 이르렀고, 보현보살은 인연 따라 일어나는 이치를 밝히었다. 알기는 번갯불 같아도 행동은 어린애 같은 것이다.
이 아래는 닦는 것과 깨치는 것을 말한다.
文殊는 達天眞하고 普賢은 明緣起니, 解似(닮을사)電光이나 行同窮子이라. 此下는 論修證하니라.
여기저기 다니면서 얻어먹는 사람을 '궁자'라 그래요.
얻어먹는 사람은 하나두 가진 게 없기 때문에
큰걸 줘두 고맙구, 작은 걸 줘두 고맙고 고마운 마음 뿐예요.
이 궁자가 자기 께 본래 하나도 없으니까.
그게 수행자라 이 말이죠.
견해는 전광과 같고, 시행은 궁자와 같이 하나니라~
설리와 선행이 다 맞는 것이 도인이다. 조사다 그런예깁니다.
문수.보현: 모든 보살들은 다같이 부처님 공덕 가운데 일부분만을 나타내어 그것으로써 그 특징을 삼고 있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표방하므로 본래 성불한 천진면목 곧 체성體性을 가리키고, 보현보살은 신훈新薰의 닦아 가는 육도 만행을 표방하기 때문에 모든 법이 인연을 따라 일어나는 작용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우리 자성 안에 본래 갖추어진 지혜와 자비가 곧 문수이고 보현이라고 할 수 있다.
38
음란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 같고, 살생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제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으며, 도둑질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새는 그릇에 가득 차기를 바라는 것 같고, 거짓말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똥으로 향을 만들려는 것과 같다. 이런 것들은 비록 많은 지혜가 있더라도 다 악마의 길을 이룰 뿐이다.
원문
帶婬修禪은 如蒸沙作飯이요 帶殺修禪은 如塞耳叫聲이요 帶偸修禪은 如漏瓮求滿이요 帶妄修禪은 如刻糞爲香이니 縱有多智라도 皆成魔道니라. |
대임수선 여증사작반 대살수선 여새(변방새)이규성 대투(훔칠투)수선 여누(샐루)옹(독옹)求滿
대망수선 여각분(똥분)위향 종(물들인비단종)유다지 개성마도
주해
이것은 수행의 법칙인데 세 가지 무루학을 밝힌 것이다. 소승小乘은 법을 받아 지키는 것으로 계율을 삼기 때문에 대충 그 끝을 다스리게 되고, 대승大乘은 마음을 거두는 것으로써 계율을 삼기 때문에 자세히 그 뿌리를 끊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으로 지키는 계율은 몸으로 범하는 일이 없을 것이고, 마음으로 지키는 계율은 생각으로 범하는 일까지도 없는 것이다. 음란한 것은 깨끗한 성품을 끊고, 살생하는 것은 자비스런 마음을 끊으며, 도둑질하는 것은 복과 덕을 끊고, 거짓말하는 것은 진실을 끊는다. 지혜를 이루어 여섯 가지 신통을 얻었다 할지라도 만약 살생과 도둑질과 음행과 거짓말하는 일을 끊지 않는다면 반드시 악마의 길에 떨어져 영영 보리의 바른 길을 잃고 말 것이다.
이 네 가지 계율은 모든 계율의 근본이므로 따로 밝히어 생각으로라도 범함이 없도록 한 것이다. 생각하지 않는 것을 계율이라 하고, 생각이 없는 것을 선정이라 하면, 어리석지 않은 것을 지혜라 한다. 다시 말하자면 계율은 도둑을 잡는 것이고, 선정은 도둑을 묶어 놓는 것이며, 지혜는 도둑질을 죽여 버리는 것이다. 또한 계의 그릇이 온전하고 튼튼해야 선정의 물이 맑게 괴고, 따라서 지혜의 달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 삼학三學은 참으로 만법의 근원이 되는 것이므로 특별히 밝히어 새어 흐르는 일이 없게 한 것이다.
영산회상에 어찌 함부로 지내는 부처가 있었으며,
소림문하에 어찌 거짓말하는 조사가 있었으랴.
此는 明修行軌則이니 三無漏學也라 小乘은 稟法爲戒하야 粗治其末이요 大乘은 攝心爲戒하야 細絶其本이니 然則法戒는 無身犯이요 心戒는 無思犯也라
차 명수행궤칙 삼무루학야
소승 품법위계 조치기말 대승 섭심위계 세절기본
연즉법계 무신범
소계 무사범야
婬者는 斷淸淨하고 殺者는 斷慈悲하고 盜者는 斷福德하고 妄者는 斷眞實也라 能成智慧하야 縱得六神通이라도 如不斷殺盜婬妄則必落魔道하야 永失菩提正路矣리라
음자 단청정 살자 단자비 도자 단복덕 망자 단진실야
능서이혜 종득육신통 여불단살도음망즉필락마도 영실보리정로의
此四戒는 百戒之根故로 別明之하야 使無思犯也라 無憶曰戒요 無念曰定이요 莫妄曰慧라 又戒爲捉賊이요 定爲縛賊이요 慧爲殺賊이라 又戒器完固하야사 定水澄淸하고 慧月方現이니 此三學者는 實爲萬法之源故로 特明之하야 使無諸漏也라
차사계 백계지근고 별명지 사무사범야 무억왈계 무념왈정 막망왈혜
우계위착적 정위박적 혜위살적 우계기완고 정수징청 혜월방현
차삼학자 실위만법지원고 특명지 사무제루야
靈山會上에 豈有無行佛이며 少林門下에 豈有妄語祖리요
영산회상 기유무행불 소림문하 기유망어조
삼무루학: 흐르는 샘이 없이 닦아가는 세 가지. 법계의 체성體性을 지키지 못하고 망령된 생각이 흘러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공부에 세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곧 계율과 선정과 지혜가 그것이다. 이것을 삼학三學이라 하는데, 이 힘으로 탐욕과 증오와 무지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고 서로 통하고 같이 이어진 것이다.
육신통六神通: 보통 상식의 세계에서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이 신통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
신족足통;공간에 걸림없이 왕래하며 그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다.
천안통;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없이 무엇이나 밝게 본다.
천이통; 멀고 가까움과 크고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무슨 소리나 잘 듣는다.
타심통;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생각하는 바를 다 알 수 있다.
숙명통; 저가뿐 아니라 육도六道에 윤회하는 모든 중생들의 전생.금생.후생 일을 다안다.
누漏진盡통;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보리: 道. 智. 覺이라 번역. 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 곧 불과佛果를 말한다. 또는 정각正覺의 지혜를 얻기 위해 닦는 도道, 곧 불과에 이르는 길을 가리키기도 한다.
賊: [도둑]. 번뇌. 망상은 우리들의 참 성품을 해롭게 하는 것이므로 번뇌를 가리켜 도둑이라 한다.
영산회상: 중인도 마가다의 왕사성 부근에 있는 산이다. 부처님은 이곳에서 많은 설법을 하였으므로 그와 같은 설법의 모임을 가리킨 말이다.
소림문하; 중국 하남성 숭산 소실봉 아래 소림사가 있다. 중국 선종의 초조 달마대사가 9년 동안 이 절 석굴 속에서 면벽 하다가 혜가慧可에게 법을 전해 중국의 선법이 퍼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중국의 전통적인 선종을 소림문하라 한다.
39
덕이 없는 사람들은 부처님의 계율에 의지하지 않고 三업을 지키지 않는다. 함부로 놀아 게을리 지내며, 남을 깔보아 따지고 시비하는 것을 일삼고 있다.
無德之人은 不依佛戒하며 不護三業하고 放逸懶怠하야
무덕지인 불의불계 불호삼업 방일나태
輕慢他人하며 較量是非로 而爲根本
경만타인 교량시비 이위근본하니라.
주해
한번 마음의 계율을 깨뜨리면 온갖 허물이 함께 일어난다.
一破心戒일파심계하면 百過俱(함께 구)生이니라
평역
(22/09/23, 금욜 20:55 앞으로 7일만 근무하면 J타워와의 인연은 끝난다. 1년7개월15일 째다. 20년 6월 30일 부로 정년퇴직하고 7개월을 논 후 2021년 2월 8일 이곳에 들어왔고 이제 며칠 후면 계약종료와 함께 막은 내린다. 내일은 가을을 주우러 연천에 갈 예정이다. 소회산리의 밤 언덕은 그대로일까? 절기가 조금 이른 건 아닐까? 멋지게 장식할 수 있을까? 어쨌거나 나는 내 자신이 멋있다고, 생각한다는 것. 환상도 아니고 현실이되 현실을 환상적으로 만들 줄 안다는 것. ㅎㅎ허경영의 짤을 보았는데, 뇌는 말을 하면 그대로 따라 한다고 하였다.)
'종범스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窮坐實際中道床 궁좌실제중도상 舊來不動名爲佛 구래부동명위불 (0) | 2022.01.09 |
---|---|
“부처 종자도 범부 종자도 모두 인연으로 생깁니다” - 종범 스님 (0) | 2021.12.12 |
심여공화사 능화제세간(心如工畵師 能畵諸世間) (0) | 2021.10.31 |
看經으로 反照 마음을 깨달아 성불 - 종범스님 (0) | 2021.10.17 |
불을 켜면 어둠 사라지듯 - 종범스님 (0) | 2021.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