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

염불은 / 조계종 염불교육지도위원장 화암 스님

수선님 2022. 2. 27. 11:54

1986년 여름, 강남 봉은사 신도 대중들이 사시기도 마치고, 일주문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때 절 스피커를 타고 낯선 염불 소리가 들려왔다. 많은 신도들이 발길을 멈추고 염불에 귀를 기울였다. 일주문까지 왔던 발길을 되돌려 염불 소리를 따라 법당 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염불이 끝나자 법당 안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스님이 나왔다. 화암 스님(64)이었다. 법당 앞뜰에는 수많은 신도들이 합장하고 있었다. 이 장면은 교계에서 하나의 사건이다. 염불 하나로 신도 대중의 마음에 깊은 각인을 심어준 것이다. 이를 계기로 화암 스님은 “염불 잘 하는 스님”으로 불리게 됐다. 1년 후 스님은 교계에서는 최초로 스테레오 기기로 녹음한 염불 테이프 ‘예불 천수경’을 제작했다. 당시 이 테이프는 레코드 업계에서는 큰 화제가 되었다. 무서운 속도로 팔려나갔다. 80년대 후반 절이나 차에서 흘러나오는 염불 소리의 대부분은 바로 화암 스님의 목소리다. 

사진. 최배문

|    조용필 4천원, 화암 스님 5천원

 

 

- 교계에서 젊은 스님이 카세트 테이프를 제작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당시 봉은사에서 기도법사 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입시 기도를 처음 했을 때는 200여 명 정도였는데, 1년 후에는 1,200여 명이었죠. 아주 대단한 반응이었습니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다 불러주면서 염불했습니다. 염불하면 신도님들이 내 앞에 녹음기를 놓고 내 염불 소리를 녹음했어요. 녹음기가 하나둘 늘어나더니 수십 대가 놓였습니다. 근데 녹음 질도 좋지 않았고, 어떤 때는 감기 걸린 기침 소리 그대로 녹음되어 돌아다녔어요. 아찔했죠. 결국 정식 녹음테이프를 제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외로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 봉은사뿐 아니라 조계사 앞에서도 스님의 독경 소리가 울렸다고 합니다. 

“그랬죠. 당시 조용필 테이프가 4천원이었고, 대부분은 1천원, 2천원이었는데, 나는 염불 테이프 정가를 5천원으로 정했어요.(웃음) 조계사 앞을 지나가면 불구판매점에서 내 염불 소리가 들려 등에 식은땀이 흘렀어요. 부끄러웠습니다.”

 

- 당시에 젊은 스님이 혜성 같이 나타났는데, 염불은 어떻게 배우셨는가요.

“내가 출가할 때는 지금처럼 종단에서 염불을 가르치는 곳이 없었습니다. 염불은 출가 은사인 성암 스님께 배웠습니다. 성암 스님의 염불은 아주 간절했습니다. 행자 생활 3년 동안 대부분의 염불 기도를 다 배웠습니다. 한번은 새벽 도량석을 먼저 하려고 다른 행자와 목탁을 차지하려는 경쟁도 했어요. 잠자기 전에 목탁을 머리맡에 놓으면 어느새 다른 행자가 목탁을 자기 머리맡으로 옮겼어요. (웃음) 은사스님은 내 목소리가 좋다고 녹음기로 녹음해서 절에서 하루 종일 틀어놓기도 했습니다. 이후에 당대 염불명인이었던 해인사 명진 스님, 성공 스님, 영철 스님, 이런 분들과 수많은 옛날 노전스님들에게 배웠습니다.”

해인사 강원과 백양사 강원에서 통강 스님과 각성 스님께 경經을 배웠다. 강원을 졸업하고 제방선원을 다녔다. 선방과 대중처소 외에는 대부분 백일기도를 하면서 염불을 이어갔다. 개운사 승가대학 시절인 1981년. 몸이 많이 아팠다. 43kg까지 몸무게가 빠졌다. 병원에서는 별 증세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대로는 죽을 것만 같았다. 삼척 관음암에서 죽을 생각까지 하며 기도를 시작했다. 이승에서 몸을 접는 것까지 생각했다. 살아난다면 전법을 각오하며 몸을 스스로 제한했다. 팔과 다리를 묶고 생활하기도 하고, 귀와 콧구멍을 막기도 했다. 눈을 감고 있었다. 시간을 잊어버렸다. 저녁 염불을 시작하면 어느새 새벽에 염불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간절하게 관음기도를 이어갔다. 보고 싶을 때 관음보살이 나타나길 반복한다. 설핏 자다보면 관음보살 무릎 위에서 깼다. 이렇게 백일기도를 마치자 병이 회복됐다. 

“죽을 각오로 기도를 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 그때 경험했던 염불 기도 때문입니다. 간절하면 부처님이 감응하고 가피가 옵니다. 간절하지 않은데 어떻게 감응이 오겠어요. 감응이 없는데 어떻게 가피가 옵니까.”

 

 

|    우리말 염불의례가 세상에 나오다

 

조계종 염불교육지도위원장. 지금 스님이 맡고 있는 소임이다. 일반 신도들에게는 낯설지만, 스님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역할이다. 2010년 이전까지 조계종에는 염불을 가르치는 공식 기구가 없었다. 도량석부터 새벽예불, 각종 불교의례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는 인연을 통해서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이 전부였다. 화암 스님이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과 만나면서 염불이 전국의 승가대학에서 공식 교육커리큘럼으로 자리 잡았다. 현응 스님의 제안과 화암 스님의 염원은 한국불교에 염불의례의 전환을 일으켰다. 종단 처음으로 염불 교육을 위한 예산이 책정되고, 교육용 교재인 『염불상용의례집』이 발간됐다.  

 

- 염불교육이 진행된 지 이제 7년째입니다. 달라진 것은 우리말 염불의례입니다. 최근 송광사 새벽예불을 참여했는데, 우리말로 의례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고맙고 반가운 일입니다. 이제 염불의례 교육이 조금씩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빨리 우리말 의례가 종단에 자리 잡아야 합니다. 이미 칠정례와 반야심경, 예불문 등은 대부분 우리말 표준 의례로 바뀌었고, 불교의 각종 상장례도 한글 표준 의례로 종단 홈페이지에서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눈 밝은 사람들이 의례문을 한문에서 우리말로 번역하는 데 좋은 제안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우리말 표준 의례를 수정 보완할  근거로 삼아 더 좋은 안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 불교계의 각종 행사에 의례의 중요성이 아직은 잘 인식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지금 우리 불교행사에는 의례가 사라졌습니다. 기념법회를 하면 축사만 많고, 의례는 거의 없습니다. 영결식에도 온갖 조사만 있습니다. 축사대회이고 조사대회가 된 셈입니다. 불교행사에는 불교의례를 꼭 집어넣어야 하고, 불교의례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불교정신이 살아나게 됩니다.”

 

- 염불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송문관의誦文觀義. 경을 관하면서 해야 합니다. ‘일심一心으로 경經을 관觀하라.’ 이것이 중요합니다. 뜻을 모르면서 염불하면 영가도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감응이 와야 가피가 옵니다. 부처님도 감응이 와야 도와줄 것 아닙니까.”          

 

   - 스님은 염불을 간절하게 해야 감응이 온다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염불 의례가 한글화되었다지만, 대부분 아직 한문으로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신도님들은 뜻을 알기 어렵습니다. 

“염불을 정성스럽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의례를 우리말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도와 함께 할 수 있도록 모든 불교상장례 의식을 통일해서 가야 합니다. 우리의 의식이 이 시대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모두 알아듣는 소리로 가야 합니다.” 

 

- 우리말 염불의례의 통일로 각 지역 사찰 염불 째가 사라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각 지역에서 내려오는 전통은 그 절에서 보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절의 대중 중에서 보존할 스님을 선정해서 보전시킬 수 있도록 해야죠. 물론 전통의식은 맥을 이어야 합니다. 예수재나 수륙재, 영산재 등의 전통의식은 소리의 고하高下가 나와야 합니다. 어산작법이 필요합니다. 소리는 우리말이 잘 안 됩니다. 그것은 전통이니 그 맥을 그대로 이어야 합니다. 우리 한국의 문화니까 그대로 지켜야 합니다. 염불을 대중화할 수 있는 것과 보존할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 지금 각 승가대학에서 통일된 염불의례 교육이 7년 전부터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0년을 보고 있습니다. 염불교육을 받는 스님들이 주지가 될 수 있는 기간이 10년인데, 이때부터 종단 염불의례 교육을 받은 스님들이 의례를 신도들과 함께 할 수 있을 겁니다. 머지않아 통일된 염불 음곡音曲과 우리말 염불 소리를 전국 사찰에서 자주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사진. 최배문

|    집집마다 작은 불당을 모시는 염불행자

 

“관~세~음~보~살.” 스님은 소리 하나하나를 천천히 들려줬다. 입과 입술 모양, 호흡의 변화를 천천히 보여줬다.  “이렇게 관세음보살은 염불할 때 열고 닫습니다. 관세음보살은 힘이 없으면 잘못합니다. 힘이 있어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면 힘 있고 이쁩니다.” 이번에는 나무아미타불이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은 힘이 없어도 할 수 있습니다. 연세 드신 분들은 잘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독성을 끄집어내고 혈액순환을 시키면서 윤회의 세계를 벗어나는 의미에서 아미타불을 염하면 염불이 끝나는 날 극락에 도달합니다. 그런 생각으로 염불해야 합니다.” 

 

- 재가자들이 염불 수행을 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우선 염불하는 시간을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천수경』, 『법화경』, 『금강경』 등 경전 하나를 정해서 독경하고, 경전을 정하지 않으면 정근하고, 다라니 등을 하면 됩니다. 목탁으로 하면 가장 좋고, 목탁이 없으면 향 하나 피워놓고 하면 됩니다. 옛날에는 집에 작은 불당佛堂을 모셨어요. 염불시간은 아침에 10분 정도가 좋습니다. 염불기도 후에 좌선 10분하면 좋습니다. 이것을 일상으로 해야 합니다. 불자는 다 (불상을) 모셔야 해요. 고려시대까지는 불자들이 집에 다 모셨는데, 조선시대 유생들 때문에 불상을 파묻었습니다.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 재가자들도 염불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재가자들은 어디까지 의례를 할 수 있을까요.

“법회의식을 할 때 법회집전, 정근, 발원, 독경은 재가자가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축원하고 요령하고, 제사 등은 스님들이 반드시 해야 합니다. 목탁은 잡을 수 있지만, 요령은 잡으면 안 됩니다.”

 

- 재가자들은 염불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우선 염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님들에게 배워야 합니다. 시간을 지키면서 해야 합니다. 기도는 약속입니다. 염불은 부처님(佛)을 염念하는 것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념一念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삶과 부처님 제자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 염불하는 사람의 행은 어떠해야 할까요?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규칙이 나오게 됩니다. 염불을 할 때는 자기 자신을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염불근수勤修念佛입니다. 진정으로 염불할 때에는 부처님 세계를 맛보기 위해서, 부처님 세계를 깨닫기 위해, 부처님 세계를 가기 위해서, 왕생을 바라면서, 생사고를 받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행해야 합니다.”

 

- 이제부터 염불을 하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염불하는 사람은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 목적에 따라 관음기도를 할 것인지, 아미타기도를 할 것인지, 지장기도를 할 것인지 스스로 선정해야 합니다. 때문에 염불할 때에는 해당 경전을 읽어야 합니다. 염불하면서 경전을 함께 읽어야 합니다. 관세음보살을 기도하면 관세음보살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루에 최소한 108번, 또는 천 번, 삼천 번, 만 번, 삼만 번, 오만 번, 육만 번, 십만 번, 이렇게 늘려나갈 수 있는 정신과 의식과 힘이 나오면 천하가 다 불국토입니다.”   

 

- 불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염불을 해야 하는가요.

“염불은 일심一心에서 나옵니다. 법계法界가 일심입니다. 사람들이 법계에서 사는 데 각각 다 다릅니다. 왜냐하면 업식業識 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육근六根의 세계로 세상을 바라보면 중생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염불은 불안佛眼의 세계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줍니다. 염불은 청법請法입니다. 권청勸請이죠. 부처님이 처음 성불하시고 사천왕이 와서 권청했습니다. 법을 설해주시길. 이게 기도입니다. 헌공獻供, 권청입니다. 염불행자는 다음 생에 극락을 갑니다. 죽은 즉시 아미타불이 나를 영접합니다. 죽을 때 서방극락 세계의 불보살이 옵니다. 그런 것을 눈으로 봅니다. 미리 그것을 압니다.”

 

- 그 세계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절실하고 간절한 원력과 발원이 필요합니다. 어디를 가든 이 원력을 등지면 안 됩니다. 앞에 두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렇게 가면 됩니다. 염불행자가 되세요.(웃음)”

사진. 최배문

김성동  bulkpd@hanmail.net

 

 

 

 

 

 

 

 

 

 

 

 

염불은 / 조계종 염불교육지도위원장 화암 스님

1986년 여름, 강남 봉은사 신도 대중들이 사시기도 마치고, 일주문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때 절 스피커를 타고 낯선 염불 소리가 들려왔다. 많은 신도들이 발길을 멈추고 염불에 귀를 기울였다

cafe.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