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性徹)스님 열반송
生平欺狂男女群 彌天罪業過須彌
생평기광남녀군 미천죄업과수미
活陷阿鼻恨萬端 一輪吐紅掛碧山
활함아비한만단 일륜토홍괘벽산
<성철(性徹)스님>
한평생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에 가득한 죄업이 수미산을 지나간다.
산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지니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태양이 붉은 빛을 토하면서 푸른 산에 걸렸구나.
<해설 > - 무비(無比)스님
이 글은 성철(性徹,1912-1993)스님의 열반게송이다.
스님께서 이 게송을 남기고 열반에 들자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膾炙)되었다.
불교인들에게는 항상 접하는 내용이라서 별 관심이 없었으나
비불교인들이나 타 종교인들은 대단히 의아해 하였다.
나아가서 일부 다른 종교인들은 불교를 폄하할만한 꺼리가
생겼다고 하여 이리 저리 글자대로만 해석하여
크게 비방하고 나섰다.
그래도 불교인들은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소치라
생각하고 그러다가 말려니 여겼다.
그런데 10년이 훨씬 지난 요즘에 더 극성이란다.
성철스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선전을 하며
불교를 형편없는 종교라고 비방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새삼 이 명구 난에 그 해석을 남기게 되었다.
불교에서 존재 일체를 보는 견해가 교리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대체적으로 중도(中道)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성철스님은 일생의 불교공부를 백일법문이라는
법회를 통해서 거의 모두를 피력하였다.
백일법문의 일관된 사상은 중도다.
그것은 스님 역시 일체 존재를 중도로 보았고 불교를
중도로 보았기 때문이다.
스님은 중도를 지나치게 강조하시다가 스스로를
중도광(中道狂)이라고까지 부르기도 하였다.
일체의 존재원리가 중도며 그것을 깨달은 이들의 가르침도
중도로 일관되어 있다고 보았다.
백일법문 속에는 근본불교에서부터 대승불교, 선불교에
이르기까지 중도의 가르침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정리하였다.
중도는 공식이다.
경전과 어록도 모두 중도공식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불교의 이론은 아무리 짧은 글이라 하더라도 중도가
표현되지 않으면 온전한 글이라고 보지 않는다.
열반송도 또한 예외는 아니다.
성철스님의 열반송은 철저히 중도로써 자신의 일생을 표현하였다.
중도란 간단히 말하면 절대부정에서 절대긍정을
나타내는 이론이다.
사물이나 인간의 의식세계를 중도적으로 표현하면
진공묘유(眞空妙有)라는 말을 쓰지만 성철스님은 자신의
일생을 “한평생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에 가득한 죄업이
수미산을 지나간다.”라고 철저히 부정하였다.
더 이상 자신의 삶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성자이기에 그 부정은 더욱 빛난다.
자신존재의 그 진공성의 표현은 참으로 숨이 막힐 정도이다.
경전이나 어록에는 공(空)이나 무(無)를 사용해서
중도를 표현한다.
참고로 금강경의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은 세존이 자신의
깨달음과 일생동안의 설법을 철저히 부정한 내용이며,
또 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은 제자들의 수행성과(修行聖果)마저
철저히 부정한 내용이다.
다시 절대긍정으로서의 내용은 “산체로 무간지옥에 떨어지니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태양[一輪]이 붉은 빛을 토하면서
푸른 산에 걸렸구나.”라고 하였다. 절대긍정의 지극한 표현이다.
선불교에서의 지옥은 극락의 다른 표현이며
한은 기쁨의 또 다른 표현이다.
큰 죽음은 큰 삶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지옥과 극락을 소요자재하면서 모든 생명들과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며 그들을 제도한다.
또한 산체로 지옥에 간다는 말은 죽을 겨를도 없이 지옥에
빨리 가서 지옥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서다.
성철스님 같이 법력이 뛰어난 분이 지옥에 가야
지옥의 중생들을 건질 수 있다.
보통의 도력으로는 지옥에 갈 자격이 되지 못하며
가 보아야 지옥의 중생들을 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서 “태양”이란 무엇인가? 성철스님 자신이다.
태양이 높이 떠서 세상을 비추다가 지금 이렇게 아름답고도
장엄한 저녁노을을 드리운다는 뜻이다.
이 얼마나 지나친 자기자랑인가?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이 이상의 자신에 대한 절대긍정은 없다.
한편 태양은 우리들의 자신이며,
지금 이렇게 견문각지(見聞覺知)하는 바로 이 사실이다.
모든 존재와 모든 생명의 근본이며 성철스님의 본래면목이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크게 긍정하여 가위 중도광(中道狂) 답게
철저히 중도로서 표현하였다. 천고의 절창이다.
부디 바른 이해가 있었으면 한다.
해설 : 무비(無比)스님
〈 평론 〉 대 원경(圓鏡)불자
무비스님은 성철스님이 남기신 열반시에 대하여 중도(中道)의 관점에서 이교도들의 해석은 잘못된 것이라고 따끔하게 지적하고, 불가(佛家)의 바른 해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마치 금강경의 무실무허(無實無虛) = 중도 = 절대부정도 절대긍정도 아니다. = 그래서 성철스님의 열반시는 진공묘유(眞空妙有)한 이치를 담아 표현한 천고(千古)의 절창(絶唱)이라고 극찬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무비스님의 해석은 성철스님의 시에 금강경 7분, 9분을 끌어다 댄 견강부회(牽强附會)의 느낌을 지울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철스님의 열반시는 금강경 5분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금강경 5분 여리실견(如理實見)분에는 “범소유상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즉견여래”(凡所有相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則見如來)라는 유명한 제1사구게(四句偈)가 들어 있습니다. 이 뜻은 “ 세상이 다 허구로 되어 있다. 그래서 허망하다. 그러니 이를 볼 줄 안다면 곧 진리의 실상을 보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성철스님도 중생들은 모두 다 허망한 존재라는 것을 전제로 해탈시를 시작 하고 있습니다. 이 “범소유상”속에는 당연히 성철스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종교의 지도자라는 스님들, 목사님들, 신부님들 등도 모두 포함되는 포괄적 개념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필연적으로 중생들, 신도들, 신자들에게 지고의 성스럽고 거룩하고 진실된 지도자라는 아상(我相)을 내세우며 법문, 설교, 교역을 해오고 있습니다. 왜 ? - 그래야 믿기 때문입니다. 또, 금강경의 9분 일상무상(一相無相)처럼 그 위계에 따라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으로 이름이 다르듯이 스님들, 목사님들, 신부님들의 세계에도 그 위계에 따라 그 명칭이 제각각 다릅니다. 그러면서, 이 들 종교지도자들도 자신들은 허망한 존재라는 실상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종교계의 불문율이고 전통이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성철스님은 ‘ 아! 종교라는 구조는 원래 지도자들이 너나 할 것없이 탈을 쓰고 남녀노소를 속이게 되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구나, 그러니, 양의 탈을 쓸 수밖에 없는 직업이구나. 이를 어찌하랴 ' 하는 또 다른 진리를 확연히 깨우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 “ 生平欺狂男女群 彌天罪業過須彌 活陷阿鼻恨萬端 ”하시고 읊퍼 경책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불교지도자에 대한 경책(警責)만이 아니었습니다. 카돌릭, 기독교, 힌도교 등등 모든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경책(警責)이었던 것이지요. 따라서 카톨릭 특히 기독교에서 “성철스님은 평생 남을 기망하다 가신 분이다” “불교의 종정까지 지내셨던 성철스님을 봐라. 죽을 때 남을 기망하셨던 것을 후회하고 지옥에 떨어졌다고 하질 않더냐”는 식으로 해석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그들의 해석은 자신들 스스로가 얼마나 신상(神相)에 마취된, 얼마나 큰 무명(無明)한 존재인지를 알게 하는 대목일 뿐입니다. 스스로가 얼마나 상(相)에 중독된 장님인 가를 드러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성철스님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성철스님은 살아계실 때에도 젊은이가 심각한 얼굴로 찾아와 출가하고 싶다는 상담을 구하면 그때마다, “상담받고 싶으면, 우선 부처님께 삼천배부터 해라” 명하시고는, 죽어라고 삼천배를 채워 쓰러질 듯 “스님! 저 삼천배 끝냈습니다. 그 다음과정은 무엇입니까.”하고 물으면, “이 사람아 내말에 속지말게나.” 고 그냥 지나치셨던 것입니다. 또 수행시 스님이 깜박 졸면 “야, 대중을 속였으면, 밥값을 해라. 이 자슥아.”라고 죽비로 내리치시며 경책을 하셨던 것이지요. 이게 다 무슨 소리겠습니까. 제가 듣기에는 살아 숨쉬는 화두처럼 들립니다.
그렇다면, 무비스님은 마땅히 “이 한심한 무명(無明) 덩어리 들아! ” 하고 쿵하고 주장자을 치며 할을 하여 그들을 크게 경책을 하셨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성철스님을 제대로 이해시킬수 있을 것입니다. 또 그렇게 해야 명쾌해집니다.
그러나 “중도”, “절대부정, 절대긍정” “천상천하유아독존”등등 관련도 없는 말들을 동원하여 어렵게 치료하려 하셨으니, 한마디로 “난감하네~”입니다. 마땅히 금강경 제5분의 사구게를 들어 주장자를 내리치어 할을 한 다음, “一輪吐紅掛碧山”이라고 나머지 명귀를 해석했어야 할 것입니다.
'선지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에서 생각을 걷어내야 바로 보입니다 / 조실 지유스님 (0) | 2022.04.10 |
---|---|
“술은 지혜종자 없애고 정신 어지럽게 하는 독약” - 통도사 율학승가대학원장 덕문 스님 (0) | 2022.03.27 |
부산 금정산 무명사 : 무명스님 (0) | 2022.03.13 |
효봉 스님 마지막 제자 : 법흥 스님 (0) | 2022.02.27 |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 (0) | 2022.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