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 무명사
사찰은 마음의 번뇌를 정화하고 지혜를 닦는 수행공간으로서 부처님을 모신 신성하고 장엄한 성전이며, 중생들이 기도하고 참회하는 신앙의 귀의처이다. 과거 사찰이 산 중의 도량에 존재 했다면, 오늘날은 바쁜 현대인들이 생활 속에서 불교를 접하고 부처님의 교리를 통해 제도될 수 있도록 도심 속 사찰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이름 없는 절’이란 의미의 무명사가 지금의 도심 속에 자리하기까지는 사연이 깊다. 무명사 주지인 무명 스님께서 출가를 결심하고 은사스님을 찾아 헤매던 중 꿈에 목이 부러진 돌부처를 친견하고 이를 수습하여 불단을 만드는 선몽을 꾸게 되었다.
“이후 수많은 큰 스님들의 상좌 제의를 정중히 거절하고 결국 금정산 모 사찰에서 노스님을 은사로 모시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 곳 사찰에 모셔진 부처님의 목이 부러졌었다는 거야. 그 때부터 목이 부러진 돌부처님과의 인연이 시작된 셈이지”라고 말하는 무명 스님은 개금불사 회향식날 상단 부처님의 백회로부터 금빛의 아우라가 형성되어 스님의 머리를 관통하는 고통을 경험하게 되었으며, 이후 심신의 변화와 함께 주변에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무명 스님의 영험한 원력을 알게 된 노스님은 무명 스님을 핍박하기 시작했고 스님은 결국 사찰에서 쫓겨나 주변에 움막을 짓고 그 곳에 기거하며 기도에만 전념하게 된다. 움막에서의 수행정진 때도 절에서의 갖은 협박과 박해는 계속되었으며 몇 차례나 움막이 철거되고 다시 지어지는 과정에서 스님의 법력이 입소문을 타게 되어 ‘비닐법당’을 찾는 신도들도 끊임없이 늘어나게 됐다.
스님을 찾아 멀리서 오는 신도들이 줄지어 부산외국어대학 주차장을 이용하게 되자 주차요원이 스님을 찾아와 사찰의 이름을 정해야 출입차량을 통제할 수 있다고 말하게 되고 무명 스님은 뜻하지 않게 사찰 명을 짓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스님이 수행을 위해 마련한 움막이 ‘비닐법당’에서 하나의 사찰로서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이름을 고심하며 기도하던 중, ‘없을 무(無), 이름 명(名), 무명사라 하여라.’는 계시를 받고 무명사라 절 이름을 짓게 되었지.”라고 말하는 무명 스님은 이후 스님의 명성을 시기하여 비닐법당의 불상을 엎는 촌극까지 서슴지 않은 은사스님을 부정하기 위해 법명 또한 ‘명각’에서 ‘무명’으로 바꾸게 되었다.
무명사의 시련은 계속되었다. 무명사의 비닐법당이 철거의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많은 신도들이 걱정을 하자, 무명 스님은 신도들에게 ‘슬퍼하지 마라. 저항하지 마라. 이제는 더 이상 부서지지 않는 법당이 생길 것이니 기뻐하여라.’라고 예언과 같은 말을 남겼고 이는 곧 현실로 실현되었다. 2009년 7월31일 비닐법당이 철거되던 날 마치 부처님이 계시를 내리 듯 엄청난 빛이 무지개처럼 비닐법당에서 2㎞ 떨어진 곳을 비추었으며 그 곳이 지금의 무명사가 있는 기산빌딩이다.
“부처님 광명의 빛이 우리를 이끌었으며 산 법당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금정산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이곳에 무명사를 재건하게 되어 그 기쁨이 오히려 말 할 수 없이 크다.”라고 말하는 무명 스님과 신도들은 무명사가 힘들어지면 질수록 그 형세가 바뀌어 더 크고 좋은 변화들이 일어나니 부처님의 가피를 몸소 느끼고 있다.
요즘 무명사는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신도들로 인해 ‘유명사’란 별칭이 생길 정도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정작 무명 스님께서는 “스님은 아무 것도 모르며, 아무런 약력도 없는 산승일 뿐이야.”라며 겸손의 말씀을 하시지만 무명사에서 기도 성취를 이룬 수많은 불자들이 무명 스님의 법력과 신비한 원력을 증명하고 있다.
불치병인 베체트병으로 20여 년간 고통 받아 온 이나 말기 암 환자가 완치되었으며 선천적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들의 언어력과 표현력이 정상인의 수준에 가깝게 회복되고 알코올중독의 남편이 술을 끊으며 만년실업의 자녀가 대기업에 취업하게 되었다.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방황하는 비행 청소년들을 스님이 직접 사랑과 죽비로 다스려 바른 마음으로 용기를 갖고 학업에 도전하는 모범생으로 바뀌게도 한다. 과학적으로 믿기 힘들지만 실제 그러한 성불을 경험한 이가 무명사에는 부지기수이며 이들의 소개와 입소문으로 전국의 수많은 불자들이 무명 스님을 찾는다.
“도가 어디 있어? 스님은 도를 몰라. 그러나 세상에 도 아닌 것은 없지. 모든 것이 도야”라고 말하는 무명 스님은 “무명사에 기도 와서 소원성취를 이루게 되면 이 산승의 법력과 도 덕분이라 감사해하지만 그저 때가 되어서 이루어졌을 뿐이야”라고 덧붙인다. 마치 모든 것을 훤히 꿰뚫는 듯, 날카로운 통찰력과 함께 무심한 듯 쉬이 던지는 무명 스님의 말씀과 행동에 많은 불자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근심과 걱정이 눈 녹듯 사라지고 있다. 사실 무명 스님의 이러한 신비로운 법력은 일찍이 많은 고승들로부터 예견되어 왔으며, 심지어 천도재 날짜만 잡아도 스님의 기도로 좋은 일이 생기다 보니 무명사 종무소에는 천도재 접수 후 비용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는 웃지못할 규칙도 생겨났다. 기도성취의 도량, 신비의 무명사는 무명 스님의 법력이 함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거울과 같이, 행한 그대로 돌아온다
사실상 제대로 된 은사 스님을 모셔본 적이 없어 경과 법문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무명 스님은 언제나 그 찰나의 생각들을 법문처럼 설법하고 있으며 오히려 신도들에게 더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비록 법문하는 법을 알지 못하지만 바른 귀 있어 잘 들으면 그것이 곧 법문이지 않은가?”라고 말하는 무명 스님은 ‘웃음 보시를 많이 하라.’는 말씀을 법회 때 마다 강조한다. ‘웃음만큼 좋은 보시가 없으며 웃으면 되게 되어 있고, 웃다가 보면 이루어진다’라고 말하는 무명 스님의 말씀 속에는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고 작은 것부터 일상생활에서 실천해 나가라는 가르침이 담겨있다.
“웃음보시가 이 곳 무명사에서 시작되어 온 세계로 온 우주 법계로 퍼져나가길 발원한다.”라고 말하는 무명 스님.무엇보다 무명 스님은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삶이란 마치 거울과 같이 자신이 행한 그대로 되돌아와 결실을 맺기 마련이지”라고 일침을 놓는다. 이 한 구절은 왜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고 수많은 관계 속에서 차별과 갈등 없이 더불어 정직하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당위성을 시사한다.
신도들뿐만 아니라 스님을 친견하는 많은 불자들과 스님들까지 허튼 길을 걷고 있으면 죽비로 정도의 가르침을 일깨워 주고 있는 무명 스님은 “탁자 위의 그릇 또한 스님의 스승이며, 길가의 개미도, 흙도, 낙엽도, 모두 스승 아닌 것이 없어. 모든 것을 스승으로 믿으며 오로지 깨달음을 통해 일체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부처다운 부처가 되기 위해 살아있는 동안 시간 아껴 쉼 없이 정진할 일이야”라고 말한다.
무명스님은 부처의 심오한 법을 알려하지도 보려하지도 말고 일심으로 믿으며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라고 강조한다. 스님의 영험한 법력과 신비한 무명사의 기적들을 과학적 근거로 해석해 내려고 의심하기보다 직접 체험해 보고 부처님의 가피를 몸소 경험해 보기를 바라는 무명 스님이다.
<출처 : 시사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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