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세계

행복한 금강경(金剛經) - 설우스님

수선님 2022. 3. 27. 13:51

02. 행복한 금강경(金剛經)-설우스님

 

금강경을 읽다가 괜찮은 법의 뗏목을 발견해서 올립니다.

 

법에 대한 공경과 존중의 자세도 좋지만 흐름에 따라 취하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는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육조혜능스님은 금강경 주석서인 <금강경 오가해> ‘조계육조선사서’에서‘금강경은 무상을 종지로 삼고(무상위종 無相爲宗), 무주를 바탕으로 삼고(무주위체 無住爲體), 묘유를 작용으로 삼는다(묘유위용 妙有爲用)고 하셨어요.

 

 

무상위종에서 상 자가 모양 상(象) 자거든요.

 

모양이라는 것은 분별심이나 집착으로 인한 중생들의 이기심이나 번뇌망상, 탐ㆍ진ㆍ치 등 마음에 흔적을 남기는 것들을 말합니다.

 

 

흔적을 상이라고 하지요? 상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서 사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무상은 사상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종지는 핵심이 되고 근본이 되고 가장 주용한 것이라는 의미에요.

 

따라서 무상위종이란 사상이 없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상이 없다는 것은 모든 것은 항상 조건에 따르고 인연에 의해서 연생연멸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원분별하는 자성을 가진 실체가 없다는 것이죠.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마음이 고요하고 무심해지고 텅 비워진다는 말이에요.

 

무상위종을 <육조단경>에서는 ‘무념위종’이라고 했는데 글자는 좀 다르지만 뜻은 같아요.

 

무념을 종지로 삼는다고 할 때 무념은 생각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무념의 무자는 중생들의 분별식심, 차별심, 이기심 등 일체 중생심이 전혀 없는 것을 말한 거에요.

 

무념은 일체 중생심이 없어지면 어디서 온 것도 아니고 만든 것도 아니고 또 새로 생긴 것도 아닌 본래 있던 진여자성의 반야지혜가 드러난다는 것이죠.

 

구름이 걷히면 태양은 그냥 드러나는 거에요.

 

이 때 우리가 성품을 본다고 해서 견성이라고 하고 자성을 깨닫는다고 해서 자각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그러한 경지를 여래라 하고 부처라 한다 이 말입니다.

 

 

 

그 다음 무주, 즉 머무름 없음을 바탕으로 삼는다고 했어요.

 

고요한 호수에 바람이라는 경계가 와서 수면을 치면 호수면에 물결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물결이 일어났다고 해서 물결이 따로 있고 물이 따로 있습니까?

 

물결이 일어났다고 해서 물결 스스로 물결이 일어난 것을 압니까?

 

천 번 만 번 물결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호수는 다시 고요해지는 겁니다.

 

고요하면 그 호수에 여러 가지 상들이 그림자처럼 투명하게 드러납니다.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호숫물이 ‘참 색깔이 좋구나’하고 그 상을 붙들겠다고 집착하지 않아요.

 

그냥 있는 대로 비추고 그대로 드러내는 거에요.

 

드러내다가 다시 그 모든 상들이 연을 따라서 없어지면 호숫물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거에요.

 

기러기가 호수 위를 날 때 기러기에게는 자기 그림자를 호수에 떨구어 놓겠다는 생각이 없고 호수도 기러기 그림자를 붙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일체 번뇌 망상이 없어서 마음이 텅 빈 자리가 되면 ‘나’라는 아집이 없어집니다.

 

아집과 아상이 없으면 내 마음에 머물 수 있는 자리가 없고 어떤 경계가 오더라도 머물지 못하고 훌러가겠죠?

 

‘경계가 흘러간다’는 말은 내 마음을 텅 비워서 경계를 붙드는 집착이 없기 때문에 머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때 내 마음도 무주가 되는 것이죠.

 

경계를 대할 때 항상 밝은 지혜로써 마음을 고요하게 유지하면서 큰 자비를 베풀고 무주상보시를 하는 사람을 우리는 부처라고 하고, 여래라고 하고, 성인이라고 하는 거에요.

 

이러한 경지를 <화엄경>에서는 해인삼매라고 했어요.

 

 

그런데 머물지 않고 흘러가는 가운데 묘하게 늘 작용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묘유로써 용을 삼는다’고 했어요.

 

그냥 공한 상태에서만 빠져 있으면 그건 무기(無記)입니다.

 

무기는 무기력하다는 말입니다.

 

무기력하다는 말은 힘이 없어서 선으로도 못 가고 악으로도 못 간 채,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뭔가 제대로 된 상을 만들지 못한 상태를 말하는 거에요.

 

세상 경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라만 보고 있고

 

또 지혜가 없이 세월 따라서 인연 따라서 흐르기만 한다면 그 또한 불법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흘러가는 가운데 인과가 분명한 것을 알아야 해요.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으면 팥 나는 법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고요한 가운데 생명세계에서 서로 관계를 유지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베풀어야 하고, 또한 서로 상생하고 공존하는 법칙을 믿으면서 조화를 이루고 살아나가는 지혜를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가 천 삼라 만 삼라 우주를 보면 위에는 하늘이 있고 아래는 땅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 사이는 전부 다 텅 빈 공이지요? 텅 빈 공이라는 말입니다.

 

<금강경>에서는 이것을 두고 무상이라고 했어요.

 

무상인데 이 무상 안에 무엇이 있죠? 천지만물이 있죠?

 

꽃은 그렇게 나름대로 조금도 쉬지 아니하고 계속 작용을 하면서 피어가고 있잖아요.

 

무상의 법칙에 의해 쉼이 없이 계속 변화를 하고 있어요.

 

모든 생명체들이 이렇게 끊임없는 운동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그러고 있습니까? 허공 속에서 하고 있잖아요.

 

봄에는 개나리요, 여름에는 능수화, 가을에는 국화, 모두 다 각자의 때에 맞춰 모든 생명이 살아나는 겁니다.

 

그냥 텅 비어 있다고 해서 제멋대로 그냥 자기식대로 되는 게 아니고 정해놓은 기준은 없지만 그 속에 시절 인연이 바르게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묘하다는 의미에서 묘유라고 하는 겁니다.

 

묘유는 중생을 교화하는 방펀법으로써 부처님께 묘법이 되는 거에요.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무상이고 무주고 묘유라는 의미가 여기에 들어있는 것이죠.

 

 

[출처] 무상위종 무주위체 묘유위용의 금강경 <행복한 금강경 이야기> 설우스님|작성자 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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